안녕하세요. WHITEPINE입니다.

 

티스토리에서 비밀글의 비밀번호 입력 오류가 잦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고,

 

나름의 해결방법도 공지에 올렸지만, 그 해결방법도 완벽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글이 아니라 비밀글만이라도 자체적인 성인인증 기능이 있는 포스타입으로 옮길까 고민 중입니다.

 

이대로 티스토리에 비밀글을 올린다면 지속적인 비밀번호 입력 오류가 있을 것 같은데

(이게 또 개개인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해결법이 통하는 분이 계시고 아닌 분이 계시고...)

 

만약 포스타입으로 비밀글만 옮긴다면 티스토리에는 포스타입의 링크를 올려놓을 생각입니다.

 

물론 전연령 글은 지금처럼 티스토리에 올라갈 것입니다.

 

 

저 혼자 고민하자니 답이 나오지 않고,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고마우신 분들의 의견도 알고 싶어서 공지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투표 결과 성인글은 포스타입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티스토리에는 포스타입의 링크를 올릴 것 같아요.

 

그리고 포스타입에도 전연령 글을 올리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포스타입과 티스토리를 당분간 병행해서 운영하려 합니다.

 

새롭게 올라오는 글은 모두 티스토리와 포스타입 두 곳에 함께 올라갈 거에요^^

 

 

안녕하세요. WHITEPINE입니다.

 

오늘 알게 된 사실인데, 모바일로는 티스토리 비밀글을 볼 수 없는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설정된 비밀번호를 쳤는데도 글이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였고,

 

컴퓨터로는 정상적으로 글이 열리는 것도 확인하였습니다.

 

개인적인 기기나 인터넷 문제보다는 티스토리 자체의 문제 같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해결법을 알려드리려고 공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해결법을 간단하게 알려드리면 모바일 크롬의 설정에서 "데스크탑 사이트"에 체크해 주시고 모바일 주소가 아니라 컴퓨터 주소로 들어가셔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마피아마츠] No salvation"으로 설명드리면

 

모바일로 1화를 들어가면 주소가 https://whitepinetree.tistory.com/m/137 로 나옵니다.

 

먼저 데스크탑 사이트에 체크하시고 주소창의 /m을 지워주시면 컴퓨터상 주소인 https://whitepinetree.tistory.com/137 로 연결이 되고 그러면 비밀번호가 정상적으로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위에 쓴 주소에 링크까지 연결해 두었으니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 티스토리 글 에디터가 많이 변해서 예전과 같은 형식으로 글을 올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ㅠ
다음글을 올릴 때까지 대안을 찾아보겠습니다ㅠ 형식의 변화로 글을 읽는 것이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ㅠ

  • 이번년도에 열리는 오소른 배포전에 회지로 내려고 계획했던 오소른입니다.
    배포전이 취소되어서 블로그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 캐붕있습니다. 마피아마츠가 나옵니다.

    • 마피아 육둥이는 일본계 이탈리아인이라는 설정입니다. 보통의 육둥이보다 신장과 체격이 큽니다.

    • 약간의 유혈표현이 있습니다.

    • 1기 24화가 조금 언급됩니다.
    • 공미포 36,381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1.

 

“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텅빈 지갑을 내려다보며 쓴입맛을 다셨다.

신기계가 들어온다길래 모처럼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 결과는 대패.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리고 말았다.

 

“아~, 오늘은 이길 것 같았는데—.”

항상하는 불평을 허공에 뱉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집에 돌아가봤자 녀석들 다 나가고 없을 거란 말이지-.

조금 전 카라마츠가 항상 가던 다리 지났는데 그 녀석 안 보였고….

횽아 버려두고 다 어디 간거야~!!

눈썹을 찌푸리고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몰려오는 무료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괜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눈에 들어온 푸른색 지붕에 씩- 입꼬리를 올리고 가벼워진 발을 옮겼다.

 

“데카판~~!”

자동문 앞에서 외치자 금방 “호에호에.” 하고 데카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나온 데카판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연구소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팬티 한 장에 하얀 가운을 입은 괴상한 옷차림의 데카판은 우리가 상상도 못한 것들을 잘 만들어낸다.

미녀가 되는 약이라던가, 도핑약이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약 같은 것들.

이곳에 오면 재미있는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높단 말이지~.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데카판이 꺼낸 발명품을 쳐다보았다.

 

“오늘 새벽에 완성한 것이다요. 이 시계는 시계를 찬 대상을 원하는 공간으로 전이 시켜주는 것이다요.”

“오!? 텔레포토인가 뭔가 그거!”

“텔레포트다요.”

“응응. 뭐던 간에~. 내가 한 번 시험해 봐도 돼?”
데카판에게서 시계를 재빨리 뺏어 손목에 차고 묻자, 데카판이 당황해 손을 흔들었다.

“아, 아직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모른다요! 위험할지도 모른다요!!”

“괜찮아~, 괜찮아~. 잘 될거라구—. 그래서 뭘 누르면 돼?”

“호, 호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전이되길 원하는 공간을 떠올리면서 이 버튼을 누르면 된다요.”

뭔가 되지도 않는 말을 중얼거린 것 같은데 일단 무시하고, 데카판의 설명을 따라 손목시계 옆에 있는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전이되길 원하는 장소란 말이지….

음~~~~. 시코마츠가 있을 만한 곳으로 가볼까? 그 레이카였나?

거기 공연장은 파칭코랑 정반대 방향에 있어서 안 가봤단 말이지.

 

“응! 생각했어. 그럼 이 버튼 누를게.”

“호, 호에호에. 불안하다요….”

“에잇~!”

지하 콘서트장을 떠올리며 있는 힘껏 버튼을 누르자 눈앞이 하얗게 빛났다.

완전히 새하얀 빛에 둘러싸여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을 때, 내가 있는 곳은 콘서트장이 절대 아니었다.

 

 

 

 

 

2.

 

환한 빛이 없어지고 눈을 떴을 때는 여전히 데카판의 연구소였다.

 

“데카판~, 이거 안 되잖아.”

멍청한 얼굴을 한 데카판에게 입을 삐죽 내밀고 불평하다 옆에 있는 카라마츠와 눈을 마주쳤다.

응? 카라마츠 저런 양복 있었나??

푸른 셔츠에 검은 양복을 입은 카라마츠는 그 안~쓰러운 금목거리와 금색 시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키가…, 커졌다…??

데카판 약이라도 먹었나?

고개를 기울이고 일단 당장 떠오르는 질문을 카라마츠에게 던졌다.

 

“근데 카라마츠, 너 언제 여기 왔냐??”

“——읏, 이 자식!!!”

카라마츠는 대답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았다.

에!? 뭔, 뭔데?!

설마 파칭코 가기 전에 지갑에서 슬쩍한거 들켰나!?

근데 카라마츠 얼굴 겁나 험악한데!?

전에 라면집에서 본 양아치보다 쎄보여!!

키가 크니까 더 무섭잖아!

 

“카, 카라마츠!?”

“어디에서 온 첩자냐, 이 자식.”

“헤??”

영문모를 말을 하더니 뒷춤에서 총을 꺼낸 카라마츠가 총을 내 머리에 겨눴다.

잠깐!? 유키치씨 한두장 좀 가져갔다고 총은 너무하지 않음!?!?

이치마츠가 비싸보이는 선글라스 깨도 화 안내면서 왜 나한테만!?

철컥하고 머리에 닿은 총에서 울리는 소리에 이것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난감 총은 이런 무거운 소리 안 난다구!!

아무리 나라도 머리에 구멍이 뻥 뚤리는 것은 싫어~~!!

서둘러 손을 들어 항복 표시를 하고 카라마츠에게 미안하다 사과했지만 카라마츠는 총을 거두지 않았다.

 

“미안하다니까! 유키치씨 가져가서 미안!”

“하? 무슨 소리를….”

“카, 카라마츠 군! 잠깐 멈춰달라요!”

“네 놈도 한 패였나, 닥터-.”

“트, 틀리다요!!!”

나를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는 카라마츠를 데카판이 말리자 내 머리에 있던 총이 데카판에게 돌아갔다.

다행이다아~~!

카라마츠는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데카판을 싸늘하게 응시했다.

우와, 카라마츠의 저런 눈빛 처음 봐-.

역시 형제라도 모르는 게 많구나….

혼자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데카판이 뭔가 필사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치가 이상하다요. 그는 분명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요!!”

“다른 세계?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건가?”

“아, 아니다요!! 분명 그는 평행 세계에서 온 오소마츠 군이다요!”

“평행, 세계…?”

데카판의 설명을 이해하는 건지 카라마츠가 의심이 담긴 눈으로 나를응시했다.

응? 카라마츠?? 너 데카판 설명 알아 들었어?

아직도 뭔가를 카라마츠에게 설명하는 데카판의 말은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뭔소리야 저게….

멍청히 눈썹을 찡그리고 있자 카라마츠가 들고 있던 총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왜 또!?

 

“카, 카라마츠~?”

“닥터의 설명은 이해했다. 다만 네가 첩자가 아니라는 증거는 없지. 물론 닥터도 말이야.”

“헤?? 아니아니아니. 데카판이 무슨 말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 첩자 아니고!? 파칭코에서 지고 집으로 가려다가 잠깐 여기 들린 것 뿐이라고!!”

“…일단 보스에게 데려가지. 닥터-, 네 놈은 의심이 풀릴 때까지 감금이다.”

“호에호에….”

내 목덜미를 잡은 카라마츠는 그대로 나를 끌고 가면서 데카판에게 말했다.

꼭 명령하는 것같은 강압적인 목소리에 데카판은 할 말을 잃었는지 망연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카라마츠에게 끌려가는 동안 뒤로 당겨진 옷에 목이 졸리지 않도록 하려 필사적이었다.

 

일단 데카판의 말은 대충 이해했다.

왜냐면 연구소 나오니까 전혀 다른 세상이었고….

길거리에 세워진 건물이었던 데카판의 연구소를 나오니 웬 기다란 복도가 있었다.

우리집의 배는 되어 보이는 복도를 걸어 커다란 문앞에 멈춘 카라마츠는 문을 열고 나를 그 안으로 던져 넣었다.

하나뿐인 형을 던지다니 너무하지 않아?!

덕분에 ‘콰당!’ 하고 방안이 울리도록 엉덩방아를 찍고 말았다.

 

“앗, 파라~~.”

궁둥이를 슬슬 문지르며 일어나니 뒤에서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라마츠? 무슨 일이야?”

“닥터의 랩에서 조금 일이 있었다.”

“일?”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카라마츠와 대화하는 그 목소리는 분명…, 내 목소리였다.

자신과 똑같은 음성에 돌라 홱 뒤돌자 커다란 책상에 팔을 올리고 커다란 가죽 의자에 앉아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흐에…?”

“…응? 나랑 얼굴이 똑같네?”

바보같은 소리를 내자 가죽 의자에 앉은 ‘내’가 갸웃거리며 태연하게 웃었다.

 

“닥터 말로는 평행 세계의 형님이라는 듯하다.”

“헤에~.”

카라마츠의 설명에 느긋한 손놀림으로 턱을 괸 ‘나’는 눈을 옆으로 돌려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쵸로 씌~.”

“글쎄….”

‘내’ 시선을 따라 나도 눈을 돌렸다.

너무 놀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 이 방안에는 카라마츠와 쵸로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모두 있었다.

가죽 의자에 않은 ‘나’를 기준으로 양옆에 일렬로 서 있는 녀석들은 모두 나보다 키가 컸고,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에에…. 뭐야 이거어—.”

피부에 와닿는 비현실성에 어쩌구니가 없어 멍청히 중얼거리자 ‘내’가 후후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으음~~.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이거 ‘나’네!”

“오소마츠 형아가 두 명임까아~!? 대단해유~!!”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양복에 붉은 셔츠를 입은 ‘나’는 이리저리 나를 훑어보더니 간단하게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 그렇게 깔끔하게 인정해버리는 거야? 좀 더 의심해야 하지 않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나’의 모습에 눈을 깜빡이자 ‘내’가 싱긋 웃으며 내 뒤에 서 있던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 설명 듣게 데카판 데려와.”

“아. 알겠다, 보스.”

보스?? 처음 듣는 호칭에 놀라 카라마츠를 쳐다보았지만 카라마츠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방을 나갔다.

 

“또 다른 세상의 ‘나’.”

“흐에!?”

‘쾅’ 하고 닫힌 문을 야속하게 쳐다보고 있자 ‘내’가 나를 불렀다.

나랑 똑 닮은 목소리에 뭔가 등골이 흠칫흠칫거린다.

 

“어쩌다가 이쪽 세계에 오게 된 거야~? 그리고 나보다 작아!”

“엑, 아니…. 데카판의 발명품을 시험하다가…. 그리고 나는 평균 키라고 생각하는데.”

너네가 큰 거라고, 너네가!! 자신이 대답하는 것이 맞는지 몰라 띠엄띠엄 대답하자 양복을 입은 ‘내’가 “흐음~.”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평균 키라기엔 작지 않아? 이탈리아인으로선.”

“이, 이탈리아!?”

‘나’의 말에 놀라 되물었다.

헤? 이탈리아아~? 일본이 아니라???

 

“나, 는 일본인이야!?”

“엇? 그래? 우리는 일본계 이탈리아인이야.”

생긋 웃으며 말하는 ‘나’의 말에 내 정신은 저 아득히 먼 곳으로 날아갔다.

일본인이 아니야!? 그럼 설마, 여기는….

 

“그럼 여기는…,”

“이탈리아야.”

“일본조차 아니었어!!”

어느정도 예상했던 대답에 외쳤다.

나 왜 이런 곳에 날려온 거!?

데카판이 위험하다고 한게 이런 거였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구, 데카판~~!!

도와줘요, 아카츠카 선생님~~!!!

 

“큭큭, 표정이 엄청 잘 변해~. 웃긴다—.”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 흰 얼굴이 되었을 나를 보며 ‘내’가 웃었다.

키들키들, 어깨를 떨며 웃더니 고개 돌려 우리를 응시하는 쵸로마츠에게 말했다.

 

“다른 세계의 ‘나’는 꽤 귀엽지 않아?”

“평행 세계의 오소마츠 형이 아니라 첩자면 어쩌려고 그래?”

“아니면 고문해서 정보 빼내고 죽이면 되지~.”

응? 지금 엄청 살벌한 말이 나오지 않았어? 고, 고문이요??

다시 한번 핏기가 발 아래로 모이는 것을 느끼며 지금 당장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맹렬하게 들었다.

하지만 내 어깨에 올려진 또 다른 ‘나’의 팔이 그걸 막고 있다.

가볍게 올려진 건데 엄청난 압박감이…! 존재감 장난 아니라구!! 이제 어째야 하냐….

백지가 된 머리를 억지로 돌려가며 핑핑 돌아가는 눈으로 달아날 쥐구멍이라도 있지 않나 살피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카라마츠가 데카판과 함께 들어왔다.

 

“데카판~. 이 녀석, 어쩌다 이쪽으로 오게 된 거야?”

“호에호에. 저쪽 세계와 동시에 실험을 했다가 두 세계간에 간섭이 일어난 것 같다요.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는 장치를 만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요….”

“흐응~. 그래. 그럼 데카판은 빨리 그 장치 만들어주고. 이봐 ‘나’.”

“느, 넵!!”

“뭘 그리 긴장해~.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전까진 여기서 지내. 우리가 돌봐줄게~.”

“아, 고, 고마워….”

“뭘-. 같은 ‘오소마츠’끼리 돕고 살아야지~.”

무셔~. 미소가 무셔어——!!

내 얼굴인데 저렇게 무서울 수가 있나!?

어깨를 눌러오는 미소의 위압의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카판이랑 있고 싶은데!

 

“이렇게 쪼끄마니까 막내가 생긴 것 같다!”

풀이 죽은 내게 다가온 토도마츠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서도 여전히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놓지 않은 토도마츠의 말에 열이 확 올라왔다.

 

“내가 왜 막내야!! 어디건 나는 장남이라고!”

“….”

손가락질까지 하며 외치고 나서 샘솟는 식은땀에 마른침을 삼켰다.

나 지금 무슨 짓을 한거!?

딱 봐도 이녀석들 위험해 보이는데!

아까 고문이라던가 죽인다던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고!!

다시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끼며 쳐든 손가락도 내리지 못하고 굳어있자 멍청히 나를 보던 토도마츠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장남 운운 하는 것도 오소마츠 형이랑 똑같네~! 귀엽다~!!”

“응! 오소마츠 형아인데 귀여워!!”

다시 내 머리를 쓰다듬는 토도마츠의 말에 쥬시마츠가 팔을 번쩍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일단은 괜찮은 것 같지…?

토도마츠의 손을 따라 머리가 흔들리는 채로 푹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나이에, 막내 녀석에게 귀엽다는 소리를 듣다니….

아무리 다른 세계의 토도마츠이고, 나보다 키가 크더라고 좀 그렇다구~.

그렇게 한숨을 쉬고 나자 토도마츠가 나를 꽉 안더니 또 다른 ‘나’에게 말했다.

 

“오소마츠 형, 다른 세계의 오소마츠 형은 나랑 같이 지내게 해줘!”

“응?”

“나두!! 나도 작은 오소마츠 형아랑 같이 지내고 싶슴닷!”

토도마츠의 경악할만한 발언에 쥬시마츠가 ‘나도 나도’ 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한번도 입을 벙끗하지 않은 이치마츠도 갑자기 손을 슬쩍 들어올렸다.

 

“토도마츠, 뭐든 혼자 독차지 하는 건 옳지 못해. 우린 육둥이니까 뭐든 공평하게,”

“쵸로마츠 형, 라이징하지 말고 본심을 말해.”

“…그 녀석이 첩자인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가 나도 그 녀석과 같이 시간을 보내야,”

“아-, 네네. 여전히 라이징하고 있구요~. 카라마츠 형도 이 ‘오소마츠 형’ 이랑 보내고 싶어?”

“응? 아, 아아…. 다른 세상의 형님이라면 나는 언제든 환영이다만?”

쵸로마츠의 말을 막고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콧방귀를 뀐 토도마츠의 물음에 카라마츠도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났을 때 나를 엄청나게 노려보던 눈빛은 어디에 갔다 버렸는지 빙긋- 웃는 얼굴은 우리집 차남하고 똑같았다.

아니, 다른 세상의 카라마츠니까 똑같겠지만서도….

 

“음~. 그럼 번갈아가면서 하루씩 돌봐주는 건 어때?”

“내가 애완 동물이냐!!”

또 다른 ‘오소마츠’의 말에 바로 반발했지만 나를 껴안고 있는 토도마츠나 다른 녀석들은 모두 만족한 얼굴로 찬성했다.

나를 뺀 녀석들의 만장일치로 나는 이 이상한 세계에서 녀석들과 모두 함께 지내게 되었다.

게 무슨 일이야….

 

 

 

 

 

3.

 

토도마츠와 함께 모두 모여있던 방을 나와 긴 복도를 다시 걸어 도착한 곳은 커다란 소파와 커다란 평면 TV가 있는 방이었다.

반짝거리는 컵이 있는 장식장과 책 몇 권이 꽂혀있는 책꽃이도 있는 방은 예전에 TV에서 봤던 부잣집의 응접실처럼 보였다.

 

“여기 앉아~. 배고프거나 목마르지는 않아?”

토도마츠답지 않게 친절하게 물어보는 녀석에게 고개를 젓고 소파에 앉았다.

푹신한 소파는 가죽 냄새도 나지 않고 엄청 부드러웠다.

 

“자-, 주스.”

“아, 고마워.”

토도마츠가 건네주는 오렌지 주스를 받아 낮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잔을 받느라 고개를 위로 한껏 올린 덕에 목이 아프다.

나보다 키가 큰 토도마츠는 뭔가 어색하다.

토도마츠는 빙긋 웃으면서 소파에 엉덩이를 내리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아무 것도~. 뭐 궁금한 거 없어?”

궁금한 거라고 갑자기 물어봐도 말이야….

주스를 홀짝이며 눈을 굴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너네는…, 혹시…, 그러니까—,”

“마피아야.”

“아하.”

‘아하.’ 가 아냐~~~!!!!!!

마피아?!?!

모쏠에 동정에 돈도 없고 망할 백수인 우리들이 마피아아~?!

조금 전, 이쪽 세계의 ‘오소마츠’가 말했던 고문 운운을 떠올리며 머리를 감쌌다.

엄청 위험한 세계에 와버렸잖아~!!

데카판 이자식! 불량품을 만들고! 돌아가면 죽인다!!!

새삼 마피아와는 실오라기 만큼의 연도 없을 녀석들이 생각나 1초라도 빨리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마피아…. 마피아란 말이지.

그럼 나 까딱하면 죽,

거기까지 생각하고 핏기가 가시는 소리가 들렸다.

 

“….”

“그렇게 무서워하지 말라구~. ‘오소마츠 형’은 안 해치니까.”

“하, 하하.”

나는 안 해친다는 건 다른 녀석들은 해친다는 거!?

톳티가 그런 말 하니까 더 무셔!

여기에 톳티 얼굴까지 하면 겁나 무서울 것 같아!!

 

“일단 이 집 안을 돌아다니는 건 괜찮지만, 되도록이면 집 밖으로 나가지 마.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니까~.”

우와…. 총알이래. 우와….

 

“네….”

이젠 따질 힘도 없어 추욱 늘어진 채로 대답하자, 갑자기 ‘찰칵’ 하고 카메라 소리가 들렸다.

 

“방금 뭐 찍은 거야?”

“오소마츠 형.”

“왜!?”

“귀여워서.”

“귀?!”

하아!?!? 이쪽 세계의 톳티는 눈에 문제가 있는 녀석인거야!?

카리스마 레전드 장남님의 어디가 귀엽다는 거!?

괜찮아?? 안과 가자!?

어이가 없어 스스로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얼굴 근육을 풀 수 없었다.

톳티는 조금 전 찍은 사진을 확인한 후, 내 얼굴을 보고 “푸—.” 하고 알 수 없는 웃음 소리를 내더니 다시 사진을 찍었다.

 

“썩은 얼굴도 귀여워~.”

끝에 하트 하나는 붙어있을 것 같은 말투에 얼굴에 있는 근육이란 근육은 모두 찡그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다 이런 세계에 날라와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손목에 찬 데카판의 발명품을 흔들었다.

이 시계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하게 됐잖아!

옛날에 지지직 거리던 TV를 아빠가 세게 때리면 정상이 되었던 것처럼 이 시계도 힘껏 흔들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했지만 헛수고였다.

푸욱 한숨을 내쉬자 또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를 보는 토도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왜….”

“오소마츠 형이 이렇게 작으니까 꼭 어린애같아~.”

“하아!?”

카리스마 레전드 장남님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울컥 화가 나서 외쳐도 토도마츠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웃어 넘겼다.

 

“이씨….”

어떻게 된게 이쪽 세계의 녀석들은 다 여유가 넘치는 거야!

씩씩대고 있는데 토도마츠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웃음기를 싹 없애고 전화를 받은 토도마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눈썹을 찡그리고 내게 손을 모았다.

 

“미안, 오소마츠 형~. 일이 생겨서…. 이 방 안에서는 자유롭게 있어도 되니까 저녁까지 여기서 기다려줘~.”

“뭐!? 나만 놔두고 가는 거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토도마츠는 미안하다며 손을 비비고 바로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여기서 뭘 하라고!!”

버럭 외치고 소파에 털썩 누웠다.

성인 남자가 누워도 공간이 남는 커다란 소파 크기에 질려 혀를 내두르며 멍청히 천장을 응시했다.

허연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어 괜히 집의 나무 천장이 그리워졌다.

나, 돌아갈 수는 있는거야…? 머리를 감싸는 불안에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마츠 형.”

“으응….”

“오소마츠 혀엉~.”

“응……?”

누가 어깨를 잡고 흔들며 나를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아…, 토도마츠인가.

조금만 더 자겠다고 웅얼거리며 몸을 돌리자 토도마츠의 한숨 소리가 살며시 넘어왔다.

 

“저녁 안 먹을 거야~? 엄청난 진수성찬이라고?”

“진수성찬…?”

마츠요 여사가 고기 반찬을 많이 만들었나?

아빠 월급날도 아닌데 그럴 일이 있을 리가….

아직 잠에 빠진 머리를 굴리며 몸을 일으키자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토도마츠가 키들대며 하늘 위로 솟아오른 내 머리를 매만졌다.

 

“잠버릇 엄청나네~.”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가라앉히는 토도마츠의 모습에 잠이 싹 달아났다.

아, 맞아…. 여기는 원래 세계가 아니지.

잠에 취해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고 속으로 한숨을 쉬며 소파에서 엉기적 기어 나왔다.

토도마츠는 스마트폰을 쥐고 나를 보며 계속 웃어댔다.

 

“아, 왜!!”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웃음의 대상이 나라는 것에 짜증을 내고 토도마츠는 “귀여워서 그런다니까~.” 하고 태연하게 웃어 넘겼다.

 

 

토도마츠를 따라 방을 나와서 들어간 곳은 커다란 식당이었다.

부잣집에나 있다던 커~~다란 식탁에는 하루 종일 먹어도 다 못 먹을 정도로 많은 음식이 가득했다.

처음 보는 음식도 가득하고 비싸기로 소문난 음식도 한 가득이다.

벌어진 입을 도저히 다물 수가 없어서 멀뚱히 서 있자 토도마츠가 툭, 내 어깨를 건드렸다.

 

“뭐해? 오소마츠 형. 얼른 앉아~. 여기 내 옆에!”

“아…, 응….”

앞서 걸어가 의자를 빼주는 토도마츠의 말에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큰 식탁에 검은 양복을 입고 둘러 앉은 이쪽 세계의 녀석들의 모습은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있었다.

쫄 거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어깨를 막을 수는 없었다.

 

“자, 오소마츠 형. 이거 엄청 맛있어!”

녀석들의 시선이 엄청 따갑다.

구멍 뚫리겠다, 이 자식들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밥을 먹냐아,

 

 

아, 먹을 수 있겠다.

 

 

토도마츠가 내밀어준 커다란 스테이크에 내 고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뜨거운 석판 위에 올려진 스테이크는 지금까지 살면서 본 고기 중에 제일 컸다.

콧속으로 쳐들어오는 고기 냄새에 군침이 가득 쏟아져나왔다.

입 밖까지 흘러내리는 침을 소매로 대충 닦아내고 토도마츠가 건네준 나이프와 포크를 들어 고기를 잘랐다.

와, 막힘없이 부드럽게 썰리는 고기의 대단함에 감탄하며 포크로 콕! 조금 큰 고기 조각을 찝어 입에 넣자 씹기도 전에 그 커다란 고기가 사르르 녹았다.

 

장난 아니게 맛있어~!!!

 

이건 눈물 나올 정도로 맛있다.

가라아게 하나에 눈물까지 흘리며 맛있다고 먹는 카라마츠의 마음을 알 것 같아!

혼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열심히 고기를 입에 넣고 있자, 뭔가 불만이 가득한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사해봤는데, 이곳까지 자객이나 첩자를 보낼 만한 조직은 없는 것 같아. 외부인이 이 집에 들어온 흔적도 없고…. 데카판 박사 말대로 저 녀석은 다른 세계의 ‘오소마츠’가 맞는 것 같아.”

“내가 말했잖아~. 저건 ‘나’라구.”

쵸로마츠의 말에 이 세계의 ‘내’가 뭐라 대답하는 것 같았지만 그런 걸 신경쓸 시간은 없었다.

겁나 맛있어 보이는 이 음식들을 어떻게 해야 다 먹을 수 있을까. 그 생각 밖에 없었다.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먹고도 결국 엄청난 음식들을 다 먹을 수는 없었다.

더 먹고 싶었지만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포크도 쥘 수 없게 된 나를 황당하단 얼굴로 쳐다보던 토도마츠는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웃지마!

너네야 맨날 이런 음식을 먹으니까 그렇지. 나같은 서민은 평생에 한 번 먹을까 말까라고!

그렇게 항의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심호흡했다.

진짜 숨이 찰 정도로 배가 부른 건 처음이야—. 헥헥대며 숨을 고르고 있자 토도마츠가 빙긋- 웃으며 뭔가를 내놨다.

 

“디저트 먹을 배는 남겨 놨어? 이거 엄~청 유명한 베이커리의 케이크라구~?”

토도마츠의 말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군침을 꿀꺽 삼켰지만 이제 더는 무리. 진짜로 들어갈 배가 없다.

할 수 없이 고개를 저었더니 토도마츠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케이크를 자기 쪽으로 잡아 당겼다.

 

“그래? 할 수 없네~. 그럼 내일도 하나 사올 테니까 내일은 디저트 먹을 배는 남겨두라구~.”

“응! 톳티-, 고마워!!”

오늘은 못 먹지만 내일은 꼭 먹겠다 다짐하며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토도마츠는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빙그레- 웃으며 부지런히 케이크를 포크에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부드러워 보이는 스폰지 빵과 하얀 생크림, 그리고 그 가운데 폭 박혀있는 딸기들은 정말 맛있어 보였다.

멍청히 점점 작아지는 토도마츠의 케이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자 이쪽 세계의 ‘나’ 앞에 놓인 케이크가 보였다.

한입도 먹지 않은 채, 케이크를 놔두고 커피를 들이키는 ‘나’의 모습에 눈을 깜빡였다.

 

“안 먹어?”

“이거? 난 단 건 별로 안 좋아해서-.”

“….”

‘나’의 거짓말에 할 말을 잃었다.

단 걸 싫어해~?

그럴 리 없잖아! ‘오소마츠’라면!!

먹을 수 있는 건 뭐든 먹는다구!!

허세나 부리면서 계속 커피나 홀짝이는 모습에 울컥 솟아오르는 것을 따라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를 따라 시선을 올리는 ‘나’의 옆에 털썩 앉아 포크를 들어 케이크 조각을 꽂아 ‘나’ 앞에 내밀었다.

 

“자.”

“에?”

“단 거 싫어하지 않잖아. 게다가 이거 엄청 맛있어 보인다구—. 안 먹으면 손해잖아.”

말하며 케이크가 꽂힌 포크를 가볍게 흔들자, 눈을 동그랗게 뜬 ‘내’가 피식- 웃더니 입을 벌려 덥석 케이크를 먹었다.

 

“응. 맛있네~. ‘오소마츠’가 먹여줘서 더 맛있는 것 같은데~?”

순순히 케이크를 먹는가 싶더니 이건 또 뭔 멍멍이 소리야.

이쪽 세계 녀석들은 다 머리가 어떻게 됐나?

어이가 없어 응시하자 ‘나’는 싱긋 웃으면서 ‘왜?’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식사를 끝내고 바보같이 커다란 욕실에서 목욕을 하자 참을 수 없는 피로가 몰려왔다. 

토도마츠를 따라 녀석의 방에 가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정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심심해서 데카판에게 놀러갔더니 이상한 세계로 날아오고….

바로 돌아갈 수도 없다니 말이야….

눈을 지그시 감고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으니까 토도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온몸에 퍼진 피로와 잠이 몰려와 토도마츠의 목소리는 저 멀리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작고 불확실하게 들렸다.

토도마츠에겐 적당히 “응….” 하고 대답하며 이불 속에 파고 들어 눈을 감았다.

 

 

 

 

 

4.

 

“으응….”

“오소마츠 형아!”

“응~?”

편안한 이불 속에 묻은 몸 위로 올라오는 무게에 눈썹을 찌푸리고 신음하자 쥬시마츠의 밝은 목소리가 울렸다.

또 야구하자는 거~? 횽아, 오늘은 좀 피곤한데—.

쥬시마츠에겐 미안하지만 오늘은 거절하고 다시 자자.

벌린 입 밖으로 흘러 나오는 침을 추륵 들이마시며 다짐하고 눈을 떴을 때, 바로 코앞에 보이는 쥬시마츠의 눈동자에 놀라 기겁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우와악!!”

“아핫! 좋은 아침, 오소마츠 형아!”

“조, 좋은 아침….”

내가 왜 놀랐냐면 말이지….

쥬시마츠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미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사람 사이의 거리에 둔감한 녀석이고.

근데 바로 눈앞에 절대 일본인으로 보이지 않는 노란 눈동자가 있으면 놀라지 않겠어!?

엄청난 운동신경으로 벌떡 일어나는 나를 피해 침대 옆에 선 쥬시마츠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슨 원리인지 소매가 길게 늘어난 양복을 입고 해맑은 미소를 띤 쥬시마츠에게 멍청히 인사했다.

 

아—. 여기 이탈리아랬나?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지나치게 커다랗고 푹신한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이탈리아 혼혈이라던 이쪽 세계의 녀석들의 말이 사실인지 쥬시마츠는 갈색 눈동자가 아닌 노란, 아니 주황색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진짜로 얼핏 보면 외국인이라고 생각할 거라구-.

아니, 외국인 맞나?

데카판의 불량 발명품 때문에 이쪽 세계로 날려와서 토도마츠 방에서 잠들기까지의 기억을 더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상한 세계에 날라온지 오늘로 이틀째. 뻑뻑한 눈을 깜빡이며 목구멍까지 올라온 한숨을 삼키자 쥬시마츠가 내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오소마츠 형아! 오늘은 나랑 있자-! 같이 놀아유~!! ‘보스’가 휴가 줬어!”

“아…, 응.”

그러고보니 이 자식들, 나를 하루씩 번갈아가며 돌본다고 했던가?

나를 무슨 애완동물 취급하는 녀석들에게 살짝 화가 났지만, 따져도 들을 녀석들이 아니기에 꾹- 참고 쥬시마츠의 말에 적당히 대답했다.

쥬시마츠니까 보나마나 야구나 하자고 하겠지.

이쪽의 쥬시마츠는 우리 쥬시마츠보다 체력이 더 좋을 것 같으니 적당히 놀아주다가 내빼자.

토도마츠가 준비해준 후드와 청바지로 갈아입고 콧노래를 부르는 쥬시마츠를 따라 방을 나왔다.

근데 이 옷 엄청 좋은 거 아냐?

저렴한 가격에 6개 한 세트로 파는 후드와 감촉이 전혀 다르다.

뭔가 부들부들하다고 해야 하나? 옷을 입은 것 같지가 않아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무튼 쥬시마츠는 복도를 신나서 앞질러 뛰어가더니 계단 앞에 멈춰 나를 향해 손짓했다.

팔이 떨어질 정도로 붕붕 흔드는 쥬시마츠에게 걸어가자 쥬시마츠는 나를 짐짝처럼 번쩍 들어올리고는 엄청난 속도로 계단을 내려갔다.

 

“쥬, 쥬시마츠으으~!! 조, 조금만 천천히…! 우욱!!”

계단을 따라 엄청나게 흔들리는 몸에 눈이 빙글빙글 도는 건 물론이고 아무것도 집어넣지 않은 위가 요동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입안까지 차오른 신맛을 어떻게든 참아내자 겨우 쥬시마츠가 뜀박질을 멈췄다.

 

“우엑….”

“오소마츠 형아?”

“주, 죽을 뻔 했다….”

진심으로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숙였던 허리를 폈다.

 

“뭐하는 데냐, 여긴….”

“사격장!”

멍청히 중얼거리자 쥬시마츠가 순수한 얼굴로 대답했다.

쥬시마츠…, 얼굴은 굉장히 순진한데 말이야….

‘사격장’은 절대 순진한 곳이 아니거든!?

절로 나오는 태클을 간신히 삼키고 쳐들었던 손가락을 접었다.

쥬시마츠한테 태클을 걸어봤자 의미없으니까.

물어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너무나 익숙하게 총을 조립한 쥬시마츠는 덥석 귀마개를 내게 씌워주고는 자리에 서서 과녁을 향해 총을 들었다.

 

탕! 탕! 탕!

 

3발 모두 과녁 정중앙에 맞는 것을 보고 꿀꺽 침을 삼켰다.

일단, 이쪽 세계 녀석들에게는 개기지 말자.

끽하면 끔살 당할 거야….

피투성이가 되어 뒷골목에 버려지는 자신을 상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소마츠 형아는 안 함니까~?”

총을 든 채로 이쪽으로 오지마! 쥬시마츠으!!

재빨리 휙휙 고개 젓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좀 더…, 좀 더 덜 무서운 걸 하자고 해야…!!

눈동자를 굴리며 뭔가 없나 사격장 안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위험하지 않으면서 쥬시마츠가 흥미를 느낄 만한 거 없나!?

 

“아, 그래. 야구! 쥬시마츠, 야구 안 할래?”

쥬시마츠하면 야구!

야구하면 쥬시마츠지!

응응,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쥬시마츠를 보자 쥬시마츠는 가만히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얼레? 응?? 쥬시마츠?

설마, 이쪽 세계 쥬시마츠는 야구를 안 하나?!

 

“쥬, 쥬시마츠…?”

“음…, 야구는 해 본 적 없지만, 배트는 있어!”

쥬시마츠 답지 않게 입을 꾹 다물고 한참을 생각하던 쥬시마츠는 활짝 웃으면서 품에서 나무 배트 하나를 꺼냈다.

 

“쥬시마츠. 보통 야구 배트엔 못 안 막혀 있어.”

그리고 피도 안 묻어 있어!!

뭐야 그 검붉은 얼룩은!? 피!? 피야?

아니아니아니, 어떻게 봐도 피지!?

그건가? 양키가 껌 짝짝 씹으면서 어깨 두드리는데 쓰는 배트지, 그거!?

온몸의 땀샘에서 부왁- 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 일단 그거 집어넣자, 쥬시마츠.”

“응.”

“말하면 들어주는 구나!?”

무시무시한 배트를 쥬시마츠는 순식간에 품에 집어 넣었다.

대체 그 배트를 어디서 꺼내는지는 물어보지 말자.

 

“야구 말고 딴 거 하자, 쥬시마츠….”

“응! 뭐 할까~. 오소마츠 형아가 골라줘!”

야구는 무리였고, 쥬시마츠니까 머리를 쓰는 것도 할 수 없다.

몸을 움직이는 건 뭔가 무섭다.

우리 쥬시마츠도 가끔 인간 수준을 벗어나는데 이쪽 세계의 쥬시마츠는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할 리 없으니.

 

“카드 놀이, 라던가?”

“좋아!”

끄응—, 신음하며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가볍게 꺼낸 제안에 쥬시마츠는 쉽게 미소지었다.

 

카드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게임은 많다.

고전적인 원카드나 도둑잡기부터 포커나 블랙잭 같은 도박도 할 수 있고. 스스로 꺼낸 말이지만 참 잘했다 생각하며 토도마츠 방에 돌아가 쥬시마츠와 마주 보고 앉았다.

 

“사기는 없음이야~, 오소마츠 형아.”

웃으며 말했지만 쥬시마츠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쥬시마츠의 눈빛에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쥬시마츠가 나눠준 카드를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쥬시마츠와 하는 카드 놀이는 제법 재미있었다.

내가 몰랐던 게임도 쥬시마츠가 알려줘서 함께 할 수 있었고, 쥬시마츠한테 사기 기술도 몇 개 배울 수 있었다.

 

“쥬시마츠, 오소마츠……, 형. 저녁 먹을 시간이야.”

본심을 낸 쥬시마츠에게 털려 파산 직전이 되었을 때, 나른한 얼굴을 한 이치마츠가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방에 들어왔다.

이치마츠는 마피아가 되어도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건가?

집에서 보는 이치마츠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든다.

이쪽의 이치마츠와 우리 이치마츠와 다른 점은 이쪽 이치마츠가 키가 좀 더 크다는 것 뿐인가?

가만히 이치마츠를 보고 있자, 이치마츠가 눈썹을 늘어뜨리며 눈을 돌렸다.

 

음…, 뭔가 이쪽의 이치마츠는 나를 껄끄러워 하는 것 같단 말이지—.

아까도 형으로 부르는 거 망설였고.

횽아를 이름으로만 부르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구~?

혼자 작게 한숨을 쉬며 쥬시마츠를 따라 의자에서 내려 방을 나왔다.

어제와 똑같이 엄청나게 커~~다란 식탁이 있는 방에 들어가자 하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하나같이 흰 셔츠에 검은 조끼를 입고 머리도 비슷비슷한게 꼭 여러명의 쌍둥이가 있는 것 같아 조금 무섭지만….

어제와 같은 진수성찬에 침을 꿀꺽 삼키고 나이프와 포크를 들었다.

묵직한 무게를 자랑하는 나이프와 포크도 엄청 반짝거려서 눈앞에 있는 스테이크가 비쳤다.

이거 은이겠지?

가져가서 팔면 돈 좀 되려나?

하지만 이렇게 무거우니 많이 가져갈 수는 없겠지.

주머니 늘어날거고….

옆에서 뭔가 살벌한 대화를 하고 있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나는 눈앞에 있는 음식을 열심히 입으로 옮겼다.

진짜 여기 음식 겁나 맛있어~! 마츠요 음식보다 맛있다~!!

그렇게 한없이 배에 음식을 넣고 있는데 의자가 끄는 소리가 나더니 쥬시마츠가 총총 이쪽으로 뛰어왔다.

 

“오소마츠 형아! 다녀오겠습니다.”

“응? 으, 응. 다녀와~.”

‘어디를?’ 하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쥬시마츠 손에 들린 배트를 보고 입을 닫았다.

이런 건 안 물어보는게 정답이니까.

쥬시마츠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주자 쥬시마츠는 포크를 쥐고 있는 나를 그대로 들어올려 위에 넣은 음식이 튀어나올 정도로 꽉 안고는 후다닥 식당을 뛰어나갔다.

 

“나, 나올 뻔 했다….”

뱉기는 아까우니까 식도까지 올라온 음식을 다시 삼키고 의자에 앉자 하인들이 음식을 치우고 있었다.

배가 불러서 더 못 먹을 건 알지만 치우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아쉬웠다.

반찬통에 싸주면 가져가서 먹을 건데….

아쉬움을 가득 담아 멀어지는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치마츠가 천천히 내쪽으로 걸어왔다.

 

“그…, 쥬시마츠 방으로 안내해줄게. 씻고 자….”

“응….”

뭐가 멋쩍은지 머리를 긁적이는 이치마츠의 낮고 힘없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5.

 

토도마츠 방에 있던 침대 만큼은 아니어도 적당히 푹신하고 큰 쥬시마츠 침대에서 눈을 감았던 것이 어제의 마지막 기억. 크게 하품을 하며 일어나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니 점심은 이미 지나고 오후 3시가 되어 있었다.

 

“어제 꽤 일찍 잤는데 말이야—.”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잠버릇으로 솟아오른 머리를 누르고 배를 벅벅 긁으며 침대에서 나왔다.

 

“어제 잠옷을 입고 잤던가?”

그대로 잠든 것 같았는데 말이야. 기억에도 없는 잠옷을 내려다보며 다시 하품을 하고 실내용 슬리퍼에 발을 끼웠다.

이 시간이 되도록 쥬시마츠는 돌아오지 않은 건가? 왔으면 또 놀자고 깨웠을텐데….

 

“끄으으~~.”

팔을 높이 들어 기지개를 끝내자마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하고 대답하자 문을 열고 어제 식당에서 보았던 하인이 들어왔다.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식당으로 오시죠.”

“밥!”

마침 배에서 울리는 뱃고동에 눈을 반짝이며 하인을 따라 나섰다.

아직 잠옷차림이지만 그러면 뭐 어때~. 밥 먹는데 지장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신나게 식당에 도착하자 커다란 식탁에 준비된 의자는 2개 뿐이었다.

 

“얼레? 오늘은 이치마츠 뿐이야?”

하인이 빼준 의자에 앉으며 묻자 이치마츠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의 이치마츠는 어째 우리 이치마츠보다 더 나른하고 피곤해 보인다.

어두운 오라도 더 많고….

눈 아래로 내려온 검은 기미를 보며 기계적으로 음식을 입으로 날랐다.

항상 사내놈 여섯이서 함께 먹었던 식사인데, 이렇게 커다란 식탁에 단 둘이 먹다보니 어째 밥맛이 별로다.

어제보다 덜 맛있는 음식에 적당히 배를 채우고 이치마츠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은 이치마츠 너랑 보내면 되는 거지? 뭐할거야?”

하루씩 돌아가면서 나를 돌본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고 이치마츠에게 묻자 이치마츠는 뭐라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 하고 신음하면서 눈을 굴렸다.

우리 이치마츠면 뭐할려나….

이치마츠하면 고양이 밖에 생각이 안 난단 말이지—.

열심히 눈을 굴리는 이치마츠를 보고 있다가 우연히 눈이 맞자 이치마츠가 꿀꺽 침을 삼켰다.

 

“나, 낮잠이라도 잘래?”

“나 지금 일어났거등?”

갑자기 웬 낮잠?

게다가 지금 막 일어난 참인데 잘도 낮잠 자겠다!

내 태클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이치마츠가 당황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 그럼 일단 내 방에라도 가자…. 오, 소마츠……, 혀엉.”

그렇게나 날 ‘형’이라고 부르기 힘든거야?

내게 ‘형’이라는 말을 붙이기 힘들어하는 이치마츠를 따라 복도를 걸으며 우리 이치마츠를 떠올렸다.

어둡고 음침해 보여도 꼬박꼬박 나한테는 ‘형’이라고 부르는 착한 동생이란 말이지~, 우리 이치맛쨩은.

 

“여기가 내 방이야.”

식당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던 토도마츠나 쥬시마츠 방과 달리 이치마츠는 복도를 한참 걸은 후에야 방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끼익-, 방문을 열고 이치마츠 방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이치마츠 방이니까 고양이가 있는 건 예상했어.

이치마츠하면 고양이, 고양이하면 이치마츠니까. 그런데—

 

“완전 환하잖아!!”

저 커다란 창문을 뭐야!? 벽 하나가 완전 창문인디요!?

게다가 햇빛이 완전 쨍쨍하게 들어오잖아!?

이게 이치마츠 방이라고~?! 말도 안 돼!!

떡 벌어진 입으로 멍청히 방을 둘러보자 이치마츠가 이해한다는 얼굴로 방바닥에 늘어져 있던 고양이를 들어올렸다.

 

“히히, 나랑 안 어울리는 곳이지?”

“응. 엄청.”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자 이치마츠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고문 담당이라 지하실에서 일한단 말이지…. 그래서 보스가 건강 챙기라고 일부러 이 방으로 정해 준거야.”

“헤에….”

안물안궁!!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그렇게 따뜻한 눈빛으로 말해도 말이지!?

나같은 서민에게 그런 뒷이야기 해 줄 필요 없다고!

 

“자, 여기 누워.”

이치마츠는 잠시 멘붕 상태로 있던 나를 방치하고 멋대로 방바닥에 이불을 깔더니 툭툭 자기 옆을 두드렸다.

 

“진짜 낮잠 잘 생각이었어!?”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 완전한 낮잠 태세에 들어간 이치마츠를 보고 외치자 이치마츠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아니아니, 방금 막 일어났다니까—! 이치맛쨩!!

허둥지둥 손을 흔들며 고개를 젓자 이치마츠가 일어나 나를 억지로 이불 위에 눕혔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를 내 배 위에 올려주었는데 고양이는 사람과 붙어 있는게 익숙한지 금방 내 배 위에 몸을 둥글게 말았다.

 

“어때?”

“따, 뜻하긴 한데….”

등은 푹신한 이불이, 위는 고양이 체온과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아 솔직히 점점 졸음이 몰려온다.

점점 내려오는 눈꺼풀에 반쯤 정신이 나가 있을 때, 옆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고개 돌렸다.

배 위에 고양이를 올려놓은 이치마츠가 내 옆에 누워 지그시 눈을 감는 것을 뭔가에 홀린 듯 가만히 응시했다.

다크서클에 전체적으로 피곤해 보이는 이치마츠는 고양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천천히 숨을 쉬었다.

이치마츠의 호흡에 따라 오르내리는 고양이를 보면서 서서히 다가오는 졸음에 눈을 감았다.

 

 

 

 

 

6.

 

잠결에 느껴지는 시선에 눈을 뜨자 옆에 누워있어야 할 이치마츠는 어디로 사라지고 깔끔하게 검은 정장을 입은 쵸로마츠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멋으로 쓴 건지 알 수 없는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에 괜히 등골이 오싹해져서 이불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 여어~. 쵸로마츠.”

“일어났으면 따라와.”

“녜이~.”

낮잠을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지만,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새까맸다.

뭐가 불만인지 작게 한숨을 쉬는 쵸로마츠를 따라 방을 나가면서 쵸로마츠를 관찰했다.

마피아라고는 하지만 말이야—.

동정티가 팍팍 나는 게 역시 쵸로마츠네~.

조금 전엔 막 일어나서 쪼~~끔 긴장했지만 결국 쵸로마츠니까 쫄 필요 없고 말이지?

 

“여기 들어가.”

멍청히 쵸로마츠를 뒤따르다가 어떤 방에 들어갔다.

쵸로마츠는 문앞에 서서 눈짓으로 방안으로 가리켰다.

 

“이 방에서 나오지 말고 있어.”

“에엑!? 여기서 혼자 뭐하라고? 쵸로마츠가 같이 있어줄 것도 아니잖아~!”

금방이라도 나갈 것처럼 문앞에서 떨어지지 않는 쵸로마츠를 향해 외쳤다.

아니 진짜 이 방 아무것도 없다고!

찾아보면 딸딸마츠의 반찬 몇 개는 나오겠지만 그걸로 떼울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고?

TV도 없고, 게임기도 없고, 만화책도 없잖아~!

저기 책꽂이에 책이 있긴 한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뭐야 저거, 영어?? 읽지도 못하면서 라이징해서 산 책일 거 아냐!

 

“감금 플레이냐!! 횽아를 감금해서 어쩌려고!? 딸딸마츠 무셔—!”

“뭣, 뭐라는 거야!? 내가 널 감금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리고 ‘딸딸마츠’는 뭔데!!! 그딴 별명으로 부르지 마!!”

“여기서 혼자 뭘 하라구~. 심심하단 말이야—. 파칭코 보내줘~! 아니면 경마! 아니면 전에 네가 보던 그 라노벨인가 뭔가라도 내놔~.”

“뭇!? 내가 라노벨 보는 건 어떻게 알…, 아니 그게 아니라! 시끄럽네! 얌전히 방에나 있어! 이따가 토도마츠가 와서 식당 데려가 줄 테니까 밥이나 먹고 자!”

“에에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쵸로마츠는 “흥.” 하고 콧방귀를 끼고 매정하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엑——, 진짜 갔어~!!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방을 천천히 둘러봤다.

싱글 침대에, 일인용 소파에, 낮은 테이블에, 작은 책장에…. 뭐 놀게 하나도 없잖아!!

이미 나가고 없는 쵸로마츠를 향해 성을 내고 푹- 한숨을 쉬며 침대에 털썩 앉았다.

응? 이 냄새는….

우와, 이런 데에서 이 냄새가 날 줄은….

머리를 얹은 이불에서 엄마가 자주 쓰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살살 올라왔다.

이거 우리 쵸로마츠가 좋아하는 냄새인데.

이쪽의 쵸로마츠도 좋아하는 건가.

흐응~. 머리속을 스치는 녀석들의 얼굴에 눈을 굴렸다.

내가 갑자기 없어졌다고 녀석들 찾고 있으려나.

그 녀석들이라면 절대 그럴 일 없겠지—.

손을 들어 이곳에 오고 며칠이 지났는지 세어보았다.

처음 와서 토도마츠와 지내고 그 다음이 쥬시마츠, 오늘은 이치마츠 방에 낮잠 잤다가 쵸로마츠한테 끌려서 여기 왔고….

오늘로 여기 온 지 3일째인가아~.

 

한숨을 쉬며 몸을 굴렸다.

아~~, 심심해-. 여기서는 맨날 방에 갇혀 있기만 하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모르겠다.

눈을 조금 돌려 낮은 테이블에 올려진 디지털 시계를 확인했다.

1시간 정도 지나면 저녁 식사 시간인가.

침대에 늘어져 있다가 벌떡 일어나 책장으로 걸어갔다.

이런데 숨길 것 같단 말이지~, 딸딸마츠는.

솟아오르는 장난기에 책장 뒤로 손을 넣었다.

겨우 손 하나 들어갈 정도의 틈엔 예상대로 여러 권의 책이 숨겨져 있었다.

 

“빙고~! 근데, 응?”

이건…, 레이카?

책장 뒤에서는 쵸로마츠가 좋아하던 ‘레이카’라는 아이돌의 화보집이 나왔다.

여기 쵸로마츠도 ‘레이카’를 좋아하는 건가?

아무리 봐도 얼굴은 보통인데 말이야.

휙, 화보집을 테이블에 던지고 다시 방을 샅샅히 훑어보았다.

저기? 아냐아냐, 저렇게 뻔한 곳에 숨길 리 없지.

전에 들었던 녀석들의 비밀 장소를 하나씩 떠올리면서 방을 둘러보았다.

내가 딸딸마츠라면…, 에로책을 어디에 숨겼으려나~.

짱구를 굴리며 천천히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눈이 간 곳은 침대 아래 어두운 그림자 속.

 

“설마….”

그렇게 뻔하려구~.

부정하면서 척척 침대로 걸어가 몸을 숙였다.

 

“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침대 아래 깊숙이 들어간 끝에 겨우 손에 얻었다!

머리에 붙은 먼지 덩어리를 적당히 털어내고 침대에 앉아 책을 펼쳤다.

 

“….”

그리고 다시 덮었다. 이게 일본과 서양의 차이인가….

뭐든간에 일본 누님들보다 한 사이즈가 크다.

나같은 동정에게 이건 자극이 너무 강하다.

정말 잠깐 봤지만 타투한 누나랑 비슷할 정도의 무서움을 느꼈다. 엄청난 에로책이다.

역시 이탈리아. 체리희롱을 하는 에로책 처음 봤어….

여기 쵸로마츠는 엄청난 걸로 딸…, 여기까지만 하자.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에로책을 침대 밑에 슥 밀어넣었다.

이건 봉인. 응.

 

이제 뭐하지? 다시 밀려오는 지루함에 시계로 눈을 돌렸다.

오! 조금 있으면 저녁 시간!

그 엄청나고 맛있는 진수성찬을 떠올리자 입에서 주르륵 군침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어떤 요리가 나오려나~.

디저트도 맛난 게 나오면 좋겠는데-.

머릿속에서 맴도는 멜로디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발을 굴렀다.

여기 와서 딱 하나 좋은 게 있다면 밥이란 말이지~.

언제 밥 먹으러 가려나, 기다리며 시계를 보고 있자 10분도 안되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오소마츠 형~.”

“톳티!”

문을 빼꼼 열고 나온 토도마츠의 반가운 얼굴에 침대에서 뛰어 문으로 달려갔다.

 

“오늘 이치마츠 형이랑 뭐 했어?”

“낮잠.”

“아~.”

복도를 걸으며 묻는 토도마츠에게 대답했더니 토도마츠가 예상했다는 얼굴로 작게 웃었다.

낮잠 말고는 어떻게 지냈냐며 별 거 없는 오늘 하루 일을 물어보는 토도마츠에게 짧게 대답하며 식당 문을 열었다.

 

“아! 오소마츠 형아~!”

“오, 어나더 월드의 오소마츠.”

자리에 앉아있던 쥬시마츠가 손을 붕붕 흔들며 자기 옆자리를 가리키고, 쥬시마츠 맞은편에 앉아있던 카라마츠도 선글라스를 벗으며 내게 손짓했다.

저 녀석은 실내에서 왜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거야.

카라마츠의 안쓰러움에 지끈거리는 갈비뼈를 붙잡고 쥬시마츠 옆에 앉았다.

토도마츠도 내 옆으로 의자를 가져와 앉아, 나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 사이에 껴있는 어린아이처럼 되었다.

진짜 이 녀석들 크다고…. 내가 어린애 같잖아!

세계의 부당함에 눈을 찌푸렸다가 상에 하나씩 올려지는 음식에 금방 얼굴이 풀어졌다.

 

디저트로 나온 치즈 케이크까지 먹어 치우고 빵빵하게 부푼 배를 통통 두드리자 토도마츠가 빙긋 웃으며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우리 카드 게임할까? 어제 쥬시마츠 형이랑 엄청 재미있게 했다며~.”

“좋아~.”

쵸로마츠 방에 돌아가봤자 놀 거리도 없고 말이지. 토도마츠의 제안에 순순히 타서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와 함께 카드를 잡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카라마츠도 어느샌가 껴들어 넷이 함께 트럼프를 했다.

가장 최근에 한 트럼프는 혼자서 했었으니까 오랜만에 넷이 하는 트럼프는 꽤 즐거웠다.

 

 

 

고막을 두드리는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어제 밤 늦게까지 토도마츠랑 카드 게임을 하다가 잠들었었는데….

뻑뻑한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니 쵸로마츠의 방이었다.

제 돌아왔는지 쵸로마츠는 방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얼굴을 팩 찌푸리고 발을 탁탁거리고 있었다.

 

“후암~.”

“지금 하품이 나와!? 방을 이렇게 어질러 놓고!”

“응~.”

또 시작이네. 적당히 대답하고 기지개를 켰다.

그렇게 더럽지도 않구만….

어제 에로책을 찾느라 조금 어지른 것 뿐인데 과민반응하는 쵸로마츠에게 한숨을 돌리고 크게 나오는 하품을 했다.

 

“아, 쵸로마츠. 어제 이거 잘 봤어~.”

“긋, 그건 어디서 찾았어!?”

세모꼴의 입을 떡 벌리고 레이카 사진집을 재빨리 내 손에서 채간 쵸로마츠가 외쳤다.

그냥 사진집인데 그렇게 소중하게 껴안고 있을 필요 있어?

쵸로마츠는 나를 보며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고는 레이카 사진집을 옷 속에 넣고 나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오늘도 나는 나가니까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가지 마! 방 더럽히지 말고! 밥도 방으로 넣어줄 테니까.”

“엑!? 횽아 심심해서 죽어-!!”

“네가 무슨 동물이냐! 심심하다고 죽는 놈은 이 세상에 없어! 얌전히나 있어!!”

“딸딸마츠~!”

“누가 딸딸마츠냐!!!”

버럭 외치고 쵸로마츠는 ‘쾅!’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이쪽의 쵸로마츠는 우리 쵸로마츠보다 더 시끄러운 것 같단 말이지—.

입맛을 다시고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 방을 빙 둘러보았다.

여기서 뭘 하라는 거야-. 진짜 아무 것도 없다구~.

어제 봉인한 체리희롱책이라도 볼까, 진지하게 궁리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깍듯하게 내게 인사하고 들어온 남자는 밖에서 뭘 들고 와 소파 앞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남자 손에 들린 것은 예전에 녀석들하고 신나게 했던 게임기.

더는 지루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절로 나오는 미소로 묻자 남자가 쵸로마츠의 지시가 있었다고 대답했다.

크~, 역시 나의 쵸로마츠! 틱틱대도 잘 돌봐준단 말이지~.

게임기를 다 설치한 남자는 만화책도 한 아름 안고 들어와 내 앞에 놓고, 아점까지 테이블 위에 차리고 방을 나갔다.

고소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버터 토스트를 입에 물고 게임기를 켰다.

오~, 이거 진짜 구하기 힘든 고전 게임인데!!

그리웠던 게임팩을 게임기에 꽂고 컨트롤러를 잡았다.

십자 버튼과 A, B 버튼.

이래야 게임기지!

요즘 게임기는 쓸데없이 버튼이 많아서 헷갈리고.

유명한 8 비트 음악에 구린 조작 방법으로 유명한 게임을 틀고 TV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시간이 되면 밥이 배달되고, 만화에, 게임에~. 이대로 여기 눌러 앉아도 되겠는데?

너무나 편안하고 쾌적한 생활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조금 무섭긴해도 녀석들도 다 나한테 잘해주고, 굳이 빨리 돌아갈 필요 없는 거 아냐?

만족스럽게 게임 엔딩을 보며 컨트롤러를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해서 조~금 실력이 녹슬었지만 역시 카리스마 레전드.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모든 스테이지를 깨고 엔딩까지 봤다.

간식으로 들어온 나쵸를 입에 털어 넣으면서 발치에 내려놓았던 만화책을 집어 올렸다.

 

“근데 쵸로마츠는 언제 돌아오는 거야~.”

저녁 시간은 옛날에 넘어갔고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게임과 만화를 즐기며 시간이 꽤 지났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정말 엄청 지났구나.

몇 분 후면 ‘12:00’으로 바뀌는 디지털 시계를 보다가 남은 나쵸 조각들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여기에 술만 있으면 최고인데….”

쩝, 입을 다시고 빈 그릇들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쵸로마츠는 물론이고 다른 녀석들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

진짜 하루종일 혼자 있었구나, 나~.

혼자 노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야.

괜히 올라오는 머쓱함에 머리를 긁고 점점 문쪽으로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숨소리를 낮췄다.

쵸로마츠인가? 아니면 또 뭘 같다주러 오나?

누가 들어올지 기대하면서 문을 보고 있자 익숙한 얼굴이 열린 문에서 넘어왔다.

 

“쵸로 씌~~!!”

“다녀왔, 방 상태가 이게 뭐야!?”

“어서 왕~.”

방을 보자마자 버럭 소리를 지르는 쵸로마츠에게 설렁설렁 손을 흔드니 얼굴을 감싼 쵸로마츠의 한숨 소리가 흘러왔다.

 

“소파에 과자 다 떨어졌잖아! 아-! 기름 묻은 손으로 테이블 만졌지!? 이불도 정리 안 해놓고!! 이런 빈 접시는 바로바로 애들 불러서 치우라고 해야지!”

“그래그래. 오늘 게임기랑 만화 고마워~. 덕분에 심심하지는 않았어.”

방안을 돌아다니면서 궁시렁궁시렁대는 쵸로마츠를 피해 침대에 올라가 만화책을 펼쳤다.

치우지 않은 접시나 소파를 열심히 치우고 있는 쵸로마츠에게 시간 떼우는데 도움을 준 녀석들을 이야기했더니 순간 쵸로마츠의 움직임이 멈췄다.

뭐야? 급똥?

“…별로, 어제 하도 심심하다고 시끄럽게 구니까 그런거야. 오늘은 중요한 손님도 오는 날이라 칭얼대는 목소리 들리면 좀 그렇고…. 딱히 오소마츠 형을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니까!”

“응? 어, 그래.”

꿍얼대면서 뭘 말하나 했더니.

‘츤데레냐!’ 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영혼없이 대답했다.

쵸로마츠는 하고 싶은 말이 끝났는지 다시 청소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읽다 만 만화에 눈을 돌렸다.

한 시간 정도를 쓸고 닦고 나서야 만족했는지 쵸로마츠가 걷어올렸던 소매를 내리고 이마를 닦아냈다.

아니, 내가 앉았던 소파랑 테이블 겁나 반짝거리는데.

그렇게까지 청소하면 내가 무슨 병균인 것 같잖아! 좀 더럽게 쓰긴 했지만서도!?

무슨 보물 보시듯 소파를 바라보는 쵸로마츠의 모습에 뭔가 욱해서 침대에서 일어나 일부러 소파에 털썩 앉았다.

 

“쵸로마츠, 게임하자. 게임.”

“하?”

소파에 앉는 나를 험악한 눈으로 보는 쵸로마츠에게 옆자리를 팡팡 두드리면서 컨드롤러를 들었다.

쵸로마츠는 ‘무슨 게임이냐’는 얼굴로 어이없다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쵸로마츠에게 컨트롤러를 드밀었다.

 

“하자~. 혼자라서 격투 게임은 못 했다궁~. 이런 건 둘이 해야 재미있단 말이야-.”

멀뚱히 서 있는 쵸로마츠 손을 잡아 끌어 억지로 옆에 앉히고 게임기를 켜서 격투 게임을 실행했다.

이것도 어릴 때 녀석들이랑 많이 했던 고전 게임이란 말이지~.

혼자 있을 때 조금 했지만 역시 혼자 하는 격투 게임은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다.

쵸로마츠는 얼떨떨해 하면서도 컨트롤러를 손에 들고 옆에 앉았다.

 

“쵸로마츠는 이 녀석으로 골라~.”

“내가 고르고 싶은 녀석 고르는 거 아니었어?”

“아냐, 나는 이 캐릭터가 하고 싶단 말이야. 쵸로마츠가 이 캐릭터를 골라야 내가 이길 수 있다구!”

“이, 쓰레기 자식이….”

“아! 그건 이 캐릭터한테 강한 녀석인데!!”

“알까보냣!”

멋대로 내가 고른 녀석보다 강한 녀석을 선택한 쵸로마츠에게 짜증을 냈지만 쵸로마츠는 차갑게 일갈하고 버튼을 연타하기 시작했다.

 

“악!! 나 아직 준비 안 했는데!!”

“알게 뭐야, 빠른 놈이 선빵 치는 거지!”

“이익!!”

무방비하게 쵸로마츠의 캐릭터에 맞은 덕분에 체력바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콤보를 노리는 쵸로마츠를 가까스로 막고 필살기 커멘드를 누르며 이를 갈고 게임에 집중했다.

 

 

저 멀리서 웅얼대는 사람의 목소리에 눈썹을 찌푸렸다.

아침해가 뜨기 직전까지 쵸로마츠와 게임을 하고 잠든지 이제 겨우 몇 시간 밖에 안 지났는데….

꿀잠을 방해하는 목소리에 눈을 감은 채 몸을 굴렸다.

내가 몸을 뒤척인 것을 신경썼는지 목소리가 끊긴 것에 만족하며 다시 단잠에 빠지려는데 누군가에 의해 몸이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성인 남성을 이렇게 간단히 안아 올릴 수 있는 녀석도 있는 건가?

허공에 부유하는 느낌에 잠깐 눈을 뜰까 생각했지만 너무 졸려서 눈꺼풀이 꼭 1톤 같았다.

나를 안아올린 녀석은 어디로 걸어가는지, 녀석의 걸음걸이에 맞춰 몸이 조금씩 흔들린다.

어릴 때, 잠이 잘 오지 않으면 엄마가 가슴을 두드려줬던 것처럼 천천히 흔들리는 몸에 의식은 금방 검은 잠 속에 가라앉았다.

 

 

 

 

 

7.

 

뭔 상황이냐, 이건.

아침인지 점심인지 눈을 뜬 건 좋았는데, 왜 내 눈앞에 맨살이 있는 거?

게다가 팔다리가 꿈쩍도 안 하는데요??

가위 눌린 거야? 노출증 있는 귀신한테??

일생 한번도 눌려본 적 없는 괴상한 가위에 신음하면서 뻣뻣한 목을 움직여 고개를 들자 편안히 자고 있는 카라마츠의 얼굴이 들어왔다.

 

“…뭐,”

카라마츠의 잠든 얼굴과 지금 내 상황을 보아하니 나는 지금 카라마츠에게 안겨있는 것 같았다.

그렇군—. 그러니까 내 눈앞에 보이는 맨살은 카라마츠 가슴이라는 소리지~.

그렇구나아~.

 

“‘그렇구나~’가 아냐~!!!”

가슴 큰 누나도 아니고 뭐가 아쉬워서 같은 거 달린 동생놈한테 안겨 있어야 하는 거야!

그것도 전라인 녀석한테!

당장 팔딱 일어나 침대에서 저만치 떨어졌다.

무식하게 큰 침대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카라마츠가 꿈틀대고 있었다.

일단 심호흡으로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카라마츠 방인가, 여기.

파란색 가구로 가득한 방을 둘러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카라마츠답게 가구들도 자기주장이 강하다.

눈이 아플정도로 새파란 방에 눈을 비비고 고개를 들자 커다란 덩치가 눈앞에 있었다.

 

“우왓!?”

“굿 모닝-, 리를 오소마츠.”

언제 일어났는지 침대에서 나와 내 앞에 서 있는 카라마츠의 인삿말에 갈비뼈가 삐걱대면서 아파왔다.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부담스러운 카라마츠의 맨몸을 밀어내려는 순간 ‘쪽’ 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에? 뭐한 거?”

“응? 굿모닝 키스다만?”

황당해 고개를 기울이자 카라마츠도 나를 따라 고개를 기울이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얘네 진짜 왜 이러냐….

이쪽 세상에 온 뒤로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건데, 이쪽의 녀석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 이상하지 않음??

보통 친형한테 아침 인사랍시면서 볼에 뽀뽀를 하지는 않지?

볼에 카라마츠의 침이 남아있는 것 같은 찜찜함에 볼을 문지르면서 아직도 나체로 서 있는 카라마츠를 밀어냈다.

 

“일단 옷 좀 입어!!”

“응~~? 이 몸에 매혹되어버린 것인가, 오소마츠? 하핫, 오소마츠까지 홀려버리다니. 역시 길티-,”

“그런 거 됐으니까 옷 입어!!”

“엩.”

옷장에서 가장 무난한 파란 셔츠를 냅다 카라마츠 얼굴에 던지면서 외쳤다.

얼떨떨한 얼굴로 셔츠에 팔을 끼우는 카라마츠를 향해 “하아~~”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고 옷장을 힐끗 쳐다봤다.

우와-, 겁나 반짝반짝해…. 안 반짝이는 게 없는데?

반짝이 산에서 뒹굴기라고 한 거?

보고 있으면 눈이 따갑다.

 

“아, 오소마츠.”

“응?”

옷장 문을 닫고 몸을 돌리자 셔츠와 바지를 다 입은 카라마츠가 나를 불렀다.

또 무슨 안쓰러운 발언을 하려는지 기다리고 있자 빙긋- 웃은 카라마츠가 내 옆에 붙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이 붙은 카라마츠는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오늘은 오랜만의 비번이라 오소마츠와 오래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헤에.”

그러니까 안물안궁이라고!!

그리고 횽아 머리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쓰다듬지 말아줄래?

내가 덩치가 작아서 뭐라 하지는 못하지만!

분한 마음을 꾹꾹 누르고 카라마츠와 함께 방을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사람 10명이 앉아도 자리가 남을 것 같은 커다란 식탁에 앉은 사람은 나랑 카라마츠, 그리고 이치마츠가 전부였다.

이쪽의 이치마츠도 카라마츠랑 사이가 안 좋은지 이치마츠는 내 옆에 붙은 카라마츠에게서 멀——찍이 거리를 두고 앉아있었다.

밤샘이라도 했는지 다크써클이 내려앉은 초췌한 꼴로 깨작깨작 밥을 먹는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갔다.

이렇게 맛있는 밥을 저렇게 먹으니까 진짜 맛없는 꿀꿀이죽이라도 먹는 것 같잖아….

 

“아, 오소마츠.”

“응?”

“크림이….”

“에?”

이치마츠를 보면서도 입은 쉬지 않아서 지금 내 접시에 올려져 있는 건 후식인 슈크림이었다.

크림이 가득한 슈크림을 한 입 베어먹자마자 카라마츠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할짝)

 

응?

뭐가 일어난 건지 파악하기도 전에 크림이 묻은 카라마츠의 혀가 녀석의 입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게 보였다.

카라마츠는 후식 안 먹는다고 했는데 저 크림은 어디서 솟아난 거? 눈을 깜빡이면서 무의식적으로 내 볼을 만졌다.

 

“칫! 개짓거리는 방에 가서 해라, 개똥마츠!”

이치마츠의 끓어오르는 목소리에 불안한 예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냥 묻었다고 위치를 말하라고! 직접 핥지 말고!!!

이해할 수 없는 카라마츠의 행동에 멍 때리고 있는 사이, 카라마츠와 뭐라뭐라 대화를 끝낸 이치마츠가 식사를 끝내고 나는 카라마츠한테 들려서 방으로 돌아갔다.

 

카라마츠 방에는 어제 쵸로마츠 방에 있던 게임기나 만화책이 옮겨져 있었다.

카라마츠에게 안겨 공중에 뜬 발이 방바닥에 닿자마자 일단 카라마츠한테서 거리를 두고 게임기를 켰다.

이쪽의 카라마츠도 놔두면 거울이나 보면서 자기 혼자만의 세상에 빠지겠지.

게임이나 하자.

더는 카라마츠가 나한테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어제 하던 게임을 켜자 카라마츠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응? 그건 무슨 유희인가?”

“어…, 그냥 좀비 잡는 게임인데.”

“흐음…, 그렇군. 그런데 저 총은 조립이 잘 못된 것 같다. 저러면 발사할 때 반동이 커진다.”

그런 생생한 정보 필요 없어~!!!

아니, 이 자식은 왜 거울 안 보고 관객모드야?

옆에서 들려오는 필요없는 조언을 참다참다 은근슬쩍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카라마츠, 거울 안 봐?”

“응? 거울? 아아-, 내 고져러스한 얼굴을 보는 건 언제나 즐겁지만 지금은 오소마츠가 있으니까. 오소마츠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에 집중하고 싶다.”

“아, 그래….”

이런 말을 하면서 생글생글 상큼하게 웃는다.

진짜로 뭔데 이거….

원래 장남님 무시하고 놀아주지도 않던 녀석들이….

같이 있으면 좋다느니 뭐 그런 소리나 해대면서 붙어있으려고 하는 건데.

완전 내가 막내인 느낌이잖아!?

이 자식들의 이런 거 겁나 어색하고 징그럽고….

 

 

이상하게 기쁘잖아!!!

 

 

“아~~, 진짜! 적당히 좀 해라, 너네!!”

“에?”

컨트롤러를 내팽겨치면서 벌떡 일어나 카라마츠를 삿대질하면서 외쳤다.

뭔가 여러가지가 짬뽕되서 잘 모르겠는데 화가 난다.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해도 나는 ‘오소마츠’라고? 횽아라고?? 장남님을 자꾸 어린애 대하듯이 하지 말라고! 키가 작아도 횽아는 횽아! 너네 형이거든!?”

“아니, 전혀 다르다.”

“하!?”

멍청히 나를 보고 있다가 확실하게 부정하는 카라마츠의 말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머리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를 노려보자 카라마츠는 당황한 얼굴로 내게 손을 뻗었다.

 

“뭐가 다르단 건데.”

내 손을 잡으려는 카라마츠의 손을 쳐내고 묻자 카라마츠가 진지하게 변명하기 시작했다.

“형님은 우리의 보스다. 절대적인 왕이자 강인하고 멋지다.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절대군주, 그게 우리의 형님이다. 감히 손 댈 수 없는 절벽 위의 플라워라고도 할 수 있지. 하지만 오소마츠는 다르다. 확실히 형님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오소마츠는 작고 귀엽다. 우리의 ‘형’이라기보단 ‘동생’같은 느낌이다. 그러니까 형님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한 거다.”

“….”

“오소마츠가 ‘오소마츠’라고 주장해도 형님과 너무나 다르니까 그…, 와닿지 않는다고나 할까. ‘오소마츠’라는 이름의 ‘동생’이 하나 생긴 것 같다.”

……뭐야 그게!? 하아??

그 말은 뭐야, 이쪽 세계 녀석들에게 나는 장남님으로 안 보인다는 거?

횽아의 위엄은 개뿔도 없다는 거?

바보 아냐?? 완전 바보 아냐??

충격밖에 없는데요…. 에에….

물론 내가 이쪽 녀석들보다 작긴 하지만, 귀엽다는 건 뭐야. 횽아인데….

 

“카라마츠.”

“응? 뭔가, 오소마츠.”

“너, 이쪽 세계의 ‘나’도 이름으로 불러?”

“설마! 보스를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다!”

지금 깨달았는데 이쪽의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꼬박꼬박 ‘형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나는 평범하게 이름으로 부르면서.

그런건가아….

나는 이 녀석들에게 정말 ‘형’으로 보이지 않는 건가….

그건 뭔가 쓸쓸하다.

 

“오소마츠?”

한참을 입 다물고 서 있자 카라마츠가 걱정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슥- 눈을 돌려 주변에 널린 물건들을 봤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책에 온갖 게임. 내가 심심할까 녀석들이 준비해준 것들이다.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며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쪽 녀석들에게 형으로 보이지 않으면 뭐 어때.

내가 한참 덩치가 작으니까 동생으로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어찌됐건 이쪽 녀석들은 나를 잘 챙겨주는 것 같고.

이 기회에 어리광이나 좀 부리면서 지내볼까.

혼가 고개를 끄덕이고 카라마츠를 향해 씨익- 웃었다.

 

“혼자하는 게임은 질렸으니까 같이 놀자, 카라마츠.”

“아아! 그럼 사격장에 가보지 않겠나?”

“아니, 안 가.”

“엩.”

아무렇지 않게 살벌한 장소를 추천하는 카라마츠를 무시하고 협력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을 집어들었다.

컨트롤러 하나를 카라마츠에게 주고 게임을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옆에서 시시콜콜 참견하던 것과 달리 게임을 엄청 못했다.

 

 

게임을 끝내고 유명한 영화 DVD를 보고 느긋하게 낮잠도 자고 하니 어느새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카라마츠는 낮잠도 옆에 꼭 붙어서 잘 정도로 하루종일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덩치도 산만한 녀석이 옆에 시종일관 붙어있으니까 엄청 답답했다.

식당에 가니 웬일로 이쪽 세계 녀석들이 다 있었다.

카라마츠가 빼주는 의자에 얌전히 앉자 이쪽의 ‘오소마츠’가 나를 보면서 빙그레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네-, 오소마츠. 우리 동생들하고는 잘 지냈어?”

“뭐—, 적당히 잘 지냈어.”

“헤에~. 다행이잖아. 오늘은 오랜만에 나도 일찍 귀가했고, 다 모였으니까 식사가 끝나면 다함께 놀까?”

‘오소마츠’는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썰면서 나를 향해 말했다.

왜 나를 보면서 말하는 거?

‘오소마츠’는 다른 녀석들 의견은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이 내게만 물었다.

뭐, 다같이 논다는데 싫다고 할 이유는 없지.

고개를 끄덕이자 ‘오소마츠’가 활짝 웃으며 “좋아-!” 하고 대답했다.

 

식사 후 깔끔하게 정리된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쪽의 녀석들과 포카를 했다.

칩까지 있는 제대로 된 녀석으로.

이렇게 본격적인 포카는 익숙하지 않아 표정관리가 어려웠다.

좋은 패가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얼굴 근육이 느슨해져버린단 말이야….

래서 시간이 갈수록 내 앞에 있는 칩이 점점 줄어들었다.

초보니까 어쩔 수 없나, 단념하는데 갑자기 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 나한테 져주고 있는 거 아냐?

가만——히 보니까 진짜 이 녀석들 나한테 져주고 있다.

뻔히 좋은 패가 있는 게 보이는데 일부러 ‘다이’로 죽고. 좀 찜찜하지만 이기고 있으니까 뭐라 하지는 않기로 했다.

 

“오소마츠, 이거 마셔볼래?”

“응? 뭐야? 와인?”

나랑 녀석들이 카드 게임을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오소마츠’가 포도주가 든 와인잔을 내밀었다.

이건 또 어디서 가져온 거래. 마음 같아서는 맥주를 달라고 하고 싶지만, 비싼 술 같아 얌전히 잔을 건네받았다.

 

“…! 맛있어!!”

전에 아빠 몰래 훔쳐 먹은 사케보다 맛있잖아!?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자 ‘오소마츠’가 나를 보며 키들거렸다.

 

“그렇지? 꽤 비싼 거라구-. 한 잔 더 줄까?”

“응!!”

그 뒤는 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듯이 술판이 벌어졌다.

테이블 위에 카드 대신 안주를 올려놓고 ‘오소마츠’가 권하는 술을 한 잔 씩 들이키다보니 취해버리고 말았다.

 

 

 

 

 

8.

 

“느와….”

머리야…. 어제 너무 신나게 마셨나….

머리는 지끈거리고 위장은 울렁거린다.

혀뿌리까지 올라온 위액을 삼키고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 기는….”

워데냐. 갈증에 입을 다시며 방을 둘러봤다.

다른 녀석들 것보다 월등히 큰 방과 빨간 요가 깔린 침대로 여기가 ‘오소마츠’의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인 없는 방은 크기에 비해 가구가 별로 없었다.

방을 안 꾸미는 건 이치마츠랑 비슷한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침대에서 내려와 소파에 엉덩이를 내렸다.

커다란 벽면 TV의 검은 화면에 내가 비치는 것을 가만히 쳐다봤다.

내 발치에는 게임기와 만화책이 늘여져 있었다.

만화책이라도 보고 싶은데 머리가 아파서 뭘 못하겠다.

 

“으으-. 일단 다시 잘까.”

‘끄응’ 하고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머리에 뭔가 차가운 걸 올리고 싶은데 이 방에는 머리에 올릴 만한 게 하나도 없다.

한숨쉬며 소파에서 일어나 다시 침대에 누웠다.

지잉지잉-, 끈으로 머리를 강하게 조이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억지로 눈을 감았다.

 

“응, 아?”

몸이 흔들리는 감각에 어렴풋하게 눈을 뜨자 토도마츠가 스마트폰을 들고 나를 찍고 있었다.

지겹지도 않나, 뭘 저렇게 찍어대는 거야. 속으로 불평을 씹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침보다는 두통이 나아졌지만 아직 조금 아프다.

 

“으…, 머리 아파.”

“응? 숙취야? 말하지 그러면. 얼음이라도 갔다줬을 텐데.”

아니, 너네가 나 방에 남겨두고 갔잖아.

방에서 나갈 엄두도 못내게 만들어놓고 그런 말 하기 있음!?

어이가 없어서 토도마츠를 노려보면서 침대에서 나왔다.

 

내가 일어난 시각은 점심시간이었는지 토도마츠를 따라 식당에 가자 점심이 준비되어 있었다.

식탁에 앉은 멤버는 ‘오소마츠’를 제외한 나머지 녀석들.

자기 자리에 앉아 나한테 인사하는 녀석들에게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고 토도마츠와 쥬시마츠 사이에 앉았다.

 

“오소마츠는?”

“형님은 오늘 대외행사가 있어서 말이야. 저녁즘엔 돌아올 거다.”

“흐응~. 바쁘구나.”

오소마츠의 빈자리를 보며 묻자 카라마츠가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이쪽의 녀석들은 우리와 달리 백수가 아니니까 여러가지로 바쁜 것 같다.

느긋~하게 일도 안하고 집에서 노는 게 최고인데 이 녀석들은 그걸 모르는 건가.

불쌍한 녀석들을 속으로 동정하면서 점심으로 나온 구이와 피자를 부지런히 먹었다.

 

식사 후에는 이쪽 녀석들하고 어울려 놀았다.

토도마츠와 가벼운 산책을 하고, 쥬시마츠와 캐치볼을 하고, 이치마츠와 낮잠, 쵸로마츠랑 카라마츠와 게임을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나니 금방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오소마츠는 저녁식사 때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후아~.”

오늘도 맛난 식사였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푹신한 침대에 앉았다.

이제 뭐하지? 다른 녀석들은 저녁 식사가 끝나자 다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이 커다란 방에 혼자 있으니까 너무 조용해서 무서워진다.

 

“오소마츠, 언제 오는 거야.”

작게 한탄을 끝냈을 때, 벌컥 문이 열리고 오소마츠가 들어왔다.

 

“여~, ‘오소마츠’. 오늘 하루 잘 지냈어?”

헤실 웃으며 오소마츠가 들어왔다.

적당히 잘 지냈다는 대답을 하고 검은 정장 재킷을 소파에 벗어 던지는 오소마츠에게 손짓했다.

 

“응? 왜~?”

미소를 지우지 않고 침대로 다가온 오소마츠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쪽의 오소마츠가 나보다 덩치가 커서 어정쩡한 포옹이 되었지만, 일단 오소마츠의 어깨를 감싸고 꼬옥- 팔에 힘을 주어 안았다.

 

“에? 응응?? 오, 소마츠?”

이쪽의 오소마츠가 당황했는지 나를 부르며 고개를 위로 들었다.

녀석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고 팡팡 오소마츠의 등을 두드리며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오늘도 장남 수고했어—.”

아침부터 이 시간까지 일을 한다니, 나는 절대 못할 거다.

약~간의 존경을 담아서 녀석을 쓰다듬어주자 오소마츠가 하하 작게 웃었다.

 

“장남으로서 그리고 보스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인걸.”

어느정도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와 쓴웃음을 짓고 ‘오소마츠’의 머리를 더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하지만 외롭잖아? 오소마츠.”

나직이 건넨 질문에 오소마츠가 겨우 미소를 없앴다.

놀랐는지 눈을 깜빡이던 오소마츠가 복잡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있는 세계의 우리는 여섯명 전원 한심한 백수라서 말이야, 이쪽 세계의 녀석들만큼 빠릿하지는 않단 말이지. 그래도 녀석들도 ‘동생’이지만 한 녀석 예외가 있어서. 카라마츠는 그다지 ‘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녀석도 ‘동생’으로 생각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단 말이지—. 근데 이쪽의 카라마츠는 아니더라구~.”

“…흐응.”

“그러니까 나는 그 바보라도 옆에 있어주지만, 여기 녀석들은 다 ‘오소마츠’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있짆아. 고로 이 장남 오소마츠님이라도 놀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단 말씀!”

“후핫.”

의기양양하게 말하자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웃었다.

기쁜 것 같으면서도 슬픈 듯한 미소에 예전에 괴로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립하겠다며 집을 떠난 녀석들과 혼자 남은 그 때의 기억을.

이쪽의 ‘오소마츠’를 보고 있으면 꼭 그 때의 나와 닮았다.

나를 보는 오소마츠에게 씨익- 장난스럽게 웃어주자 녀석도 잘게 웃으면서 내 등에 손을 둘렀다.

 

“그거 고맙네—.”

“나는 카리스마 레전드님이니까! 이 정도는 간단하다구.”

“크크크.”

편하게 힘을 빼고 내쪽으로 기대오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마구마구 헤집어 주고 녀석과 마주보면서 웃었다.

커다란 침대에 둘이 나란히 천장을 보고 누워서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오소마츠는 이쪽의 녀석들과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궁금해했다.

토도마츠와 지냈던 날부터 오늘 낮에 있었던 일까지 전부 말하며 오소마츠와 눈을 맞췄다.

 

“카라마츠도 그렇고 쥬시마츠도 그렇고 살벌한 놀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구-. 너네 겁나 무셔.”

“큭큭큭.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그렇게 놀았으니까 어쩔 수 없다구.”

“어떻게 자라온 거야, 너네….”

“오소마츠 쪽은 어떻게 살았어?”

“응? 우리?”

“응. 들려줘.”

오소마츠의 말에 하나씩 하나씩 내 쪽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간많은 백수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녀석들하고 겪었던 여러 헤프닝들을 말해주자 오소마츠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눈을 빛내며 내 이야기에 웃었다.

 

“우리도, 그렇게 평범하게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나지막히 중얼거리는 바람에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소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안타까운 미소로 나를 보곤 자기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을 붙잡았다.

 

“이게 이쪽으로 넘어오게 만든 시계야?”

“응? 아, 응. 무슨무슨 포터랬나?”

“텔레포터겠지. 한 번 봐도 될까?”

“응. 여기.”

나를 이쪽으로 날려보낸 시계를 풀어 주자 오소마츠가 이리저리 시계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흐음…. 이걸 누르면 작동하는 구조인 건가?”

시계 옆에 튀어나온 버튼을 오소마츠가 매만진 순간 ‘번쩍’ 하고 새하얀 빛이 방안에 퍼졌다.

한번 겪었던 빛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을 때, 나와 같이 침대에 앉아있던 이쪽의 ‘오소마츠’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에, 이거 설마….

스치는 불길한 예감에 부왁- 식은땀이 솟아났다. 이거 어쩌지…?

완전히 정지해버린 머리를 어떻게든 굴러보려고 노력하던 순간,

 

“보스, 쉬고 있는데 미안해. 급한 일이 생겨, 서…,”

이 무슨 귀신같은 타이밍! 서류로 보이는 종이를 들고 문을 연 쵸로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쵸로마츠느 방을 빙 둘러보며 ‘오소마츠’를 찾았지만, 있을 리가 있나!

 

이걸 우째 설명하지.

답이 없는 상황에 다 포기하고 시선을 돌려 있지도 않은 먼산을 바라봤다.

 

 

 

 

 

9.

 

“….”

카라마츠 이하 다섯 명에게 둘러싸여 머리 위에서 오가는 대화를 엿들었다.

이쪽의 오소마츠가 데카판의 발명품-완전히 쓰레기!-과 함께 사라져 버린 상황을 쵸로마츠에게 필사적으로 설명하자 쵸로마츠는 다른 녀석들을 불러 모았다.

딱히 죄지은 것도 없는 산만한 덩치의 녀석들에게 둘러싸여있으니 어쩐지 불안해서 자동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도 푹 아래로 떨어졌다.

설마 나를 죽이겠다거나 그렇지는 않겠지?

혼자 되뇌면서도 한 구석에서 혹시 모른다는 불안에 식은땀만 줄줄 흘리고 있을 때, “하아~~.” 하고 쵸로마츠의 한숨이 길게 늘어졌다.

 

“오소마츠, 일어나도 괜찮아. 너한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 망할 보스가 멋대로 텔레포터를 만지다 일어난 일이니까.”

“우, 응….”

“닥터 말로는 오소마츠의 세계로 넘어간 것 같다고 하더군.”

“그럼 데카판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기계를 만들면 해결되겠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아.”

쵸로마츠의 말에 안심하고 무릎을 펴자마자 또 불안한 대화가 오고간다.

쵸로마츠는 얼굴을 찌푸리고 잠시 턱에 손을 짚고 눈을 감았다.

 

“내일 ‘라토’의 정기 보고가 있으니까 보스가 없으면 곤란한데….”

쵸로마츠는 혼자 중얼거리며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응? 뭐야, 그 묘한 눈빛은…?

 

“어쩔 수 없지. 남은 오소마츠로 어떻게든 넘기자.”

“엑!?”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쵸로마츠의 말에 나는 당연히 맹렬하게 반대했지만 내 목소리는 싸그리 묵살당했다.

 

“오소마츠가 형님의 대역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오소마츠! 부탁드림닷!!”

“부탁해~. 오소마츠~.”

“내 의견은 듣지도 않냐!?”

일방적으로 손을 모으고 부탁을 빙자한 협박을 하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에게 외쳤지만 녀석들을 생글생글 웃기만했다.

 

“보스가 없어진 거 엄밀히 따지면 오소마츠가 원인이니까 책임져주지 않으면 곤란한데.”

“이히힛, 쵸로마츠 형이 화나면 무섭다고-? 내 고문실을 구경하게 될 수도 있어.”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는 정직하게 협박하고 있고!?

여기서 고개를 가로로 저으면 뼈를 분질러서라도 하게 만들 것 같은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삼키고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알겠, 어.”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을….

 

 

그 후로 쵸로마츠에게 간단하게 내일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 듣고 엄청 불편한 잠을 잤다.

어제와 같은 푹신한 침대에서 잤지만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 피로로 뻑뻑한 눈을 비비고 쵸로마츠가 내민 양복을 입었다.

근데 이거, 크잖아….

“쵸로마츠.”

“아, 다 입었어?”

“이거….”

“에.”

쥬시마츠만큼이나 소매가 남는다. 게다가 바지도 길고.

자켓은 무슨 어린애가 아빠옷을 걸친 것 같은 핏이다.

쵸로마츠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기색으로 나를 보더니 푹- 한숨을 내쉬고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방을 떠났다.

이쪽 녀석들이 덩치가 큰 건 알고 있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무슨 거인 옷을 걸친 것 같은 기분이다.

쵸로마츠가 작은 옷을 들고 올테니까 일단 이건 벗을까.

자켓과 셔츠를 벗자마자 쵸로마츠가 양복 하나를 더 들고 왔다.

 

“이건 맞을 거야. 오소마츠 형이 10대 때 입은 거니까.”

10대애~? 나는 엄연한 20대인데!!

지극히 평범한 일본인의 평균이라고!

너네가 코끼리만큼 큰 주제에!!

울분을 삼키고 쵸로마츠가 새로 가져온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셔츠가 좀 덜 붉고 크기가 작은 걸 빼면 아까 것과 똑같은 디자인이다.

 

“다 입었어.”

“….”

“쵸로마츠? 어—이, 쵸로마츠!”

다 입고 쵸로마츠에게 보여주자 쵸로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말 없이 나를 쳐다보기만한다.

뭐야, 갑자기 귀신에 홀리기라도 했어?

발꿈치를 들어 쵸로마츠 눈앞에서 손을 흔들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쵸로마츠가 “아, 미안.” 하고 입을 가렸다.

어째 귀가 조금 빨갛지 않아, 이 녀석?

왜 이러나 싶어 계속 쳐다보자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더니 헛기침을 하고 다시 돌아왔다.

 

“일단, 방에 들어가면 책상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기만 하면 돼. 진행은 다 우리가 할 테니까.”

“응…. 심각한 얼굴은 이러면 돼?”

간단한 일이니까 잘 될 거라 스스로 다독이면서 쵸로마츠에게 내가 지을 수 있는 최고로 심각한 얼굴을 보여줬다.

쵸로마츠는 내 얼굴을 보고 한참을 또 말이 없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이마를 문질렀다.

뭐야, 또. 뭐가 문젠데…. 아, 너무 심각했나?

쵸로마츠에게서 작게 “겁나 귀엽네, 진짜.” 하는 이상한 말이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쵸로마츠의 머리를 툭툭 가볍게 내리쳤다.

 

“어이, 쵸로마츠. 아까 그걸로 괜찮냐구—.”

“아니, 좀 더 심각한 표정 못 해?”

“더? 우응….”

쵸로마츠의 요구에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었다.

심각한 표정이란 거 어떻게 짓더라?

잠깐 잠깐만. 아까 그게 아웃이면 무슨 표정을 지어도 안 될 것 같은데!?

 

“의식해서 짓기 힘들면 심각한 상황을 상상해봐.”

“응…. 해볼게.”

심각한 상황…, 심각한 상황이 뭐가 있대냐.

백수 생활에 심각한 일이 벌어질 때가 별로 없단 말이지~.

심각….

아아…….

 

“아, 그 표정 괜찮다! 그걸로 가줘, 오소마츠.”

“응….”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쵸로마츠를 따라 회의실로 향했다.

 

 

쵸로마츠와 간 회의실은 내가 처음 카라마츠한테 끌려 왔던 방이었다.

문 맞은편에 무식하게 큰 오소마츠의 책상이 있고 그 양옆으로 녀석들이 늘어져 서있는 구도.

처음 봤을 때도 생각했지만 확실히 위압감이 있단 말이지, 이 녀석들.

쵸로마츠에게 들은 대로 오소마츠의 책상에 앉았다.

 

근데 의자 높앗!!

발이 땅에 안 닿는다.

앉으려고 뒤로 뺀 의자를 앞으로 밀 수가 없잖아!!

짧은 다리를 원망하며 버둥대고 있자 옆에 서 있던 카라마츠가 “응응응~~.”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의자를 앞으로 밀어줬다.

의자는 해결됐으니 싫은 기억을 되새기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쵸로마츠가 나를 보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쥬시마츠에게 간부-무슨 간부인지 모르겠지만-를 불러오라고 말했다.

 

쥬시마츠가 방을 나가고 몇 분 후,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쥬시마츠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앉은 책상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서서 뒷짐을 지더니 뭐라뭐라 말을 하면서 쵸로마츠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응, 뭐라는지 전~혀 모르겠다.

이 녀석들하고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대화해서 잊고 있었는데 여기 이탈리아였어.

꼬부랑어로 말하는 남자와 같이 대화하는 쵸로마츠를 슬쩍 쳐다보다가 이치마츠의 눈초리에 다시 심각한 얼굴 짓기에 집중했다.

 

“역시나 거짓말인가.”

“디포네 패밀리랑 접촉하는 거 다 알고 부른 건데 말이야~.”

“대리를 보내다니 비겁하구만유~.”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옆에서 조용조용히 일본어로 대화하는 카라마츠랑 토도마츠, 쥬시마츠의 말뿐이었다.

대충 보니까 이쪽에 불려온 저 남자가 뭔가 문제를 일으킨 것 같았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쵸로마츠의 말투가 날카로워지고 추궁하는 말투가 되었다.

남자도 점점 목소리가 거칠어지더니 버럭 무슨 말을 외쳤다.

순간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날이 선 공기에 피부가 찔리는 것 같다.

저 아저씨 무슨 말을 한 거야….

남자는 ‘흥.’ 하고 콧방귀를 끼더니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고 했다.

쥬시마츠가 순식간에 나타나 문을 막기 전까지는.

남자는 쥬시마츠를 밀치고 나가려고 했지만 쥬시마츠가 그렇게 쉽게 떨어질 리가 없다.

쥬시마츠가 남자를 막는 동안 쵸로마츠가 뭔가를 말하며 들고 있던 서류를 남자 눈앞에서 흔들었다.

남자는 “핫,” 하고 헛웃음을 흘리더니 입꼬리를 비틀고 뭔가를 말했다.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는 말이라는 것을 나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저 아저씨는 간이 배밖으로 나온 건지, 심장이 엄청 큰 건지 모르겠다.

지금 내 옆에 서 있는 카라마츠나 이치마츠 얼굴을 보고도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게 대단하다.

나는 무서워서 도저히 이 녀석들의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는데.

남자는 멈추지 않고 입을 놀리더니 곧 그 대가를 받고 말았다.

 

“탕!”

 

옆에서 울린 커다란 소리와 “삐이이———!” 하고 거슬리는 이명이 고막을 때렸다.

귀청이 떨어져나갈 것 같은 아픔에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잊고 귀를 막은 채 카라마츠를 쳐다보았다.

연기가 올라오는 총을 주머니에 넣은 카라마츠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비명을 지르며 피가 철철 흐르는 무릎을 붙잡은 남자를 무자비하게 패기 시작했다.

퍽퍽,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바닥에 피가 퍼진다.

말도 안 나오는 광경에 머리가 아찔한데 녀석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카라마츠! 그만 해! 이치마츠, 그 자식 데려가.”

멍청히 정신을 날리고 있을 때, 쵸로마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쥬시마츠에게 카라마츠를 말리라 소리치면서 내 쪽을 확인하는 쵸로마츠의 모습에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다.

쵸로마츠의 명령에 따라 이치마츠가 비명을 멈추지 않는 남자를 질질 끌고 방을 나갔고, 쥬시마츠는 아직도 숨을 씩씩대는 카라마츠를 붙잡아 말렸다.

 

“그…, 오소마츠?”

“……응.”

입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아 몇 초 간격을 두고 간신히 대답했다.

그 짧은 대답을 하는데도 목소리가 엉망으로 떨린다. 목소리만이 아니고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미안. 일반인한테 이런 모습 보여주는 게 아닌데.”

“그걸 지금 알았냐!!”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솔직히 그럴 기운이 없다.

혼이 쏙 빠져나간 기분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쵸로마츠가 토도마츠에게 눈짓했다.

 

“오소마츠~, 잠깐 휴게실 가서 쉴까?”

다가오는 토도마츠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10.

 

“카라마츠.”

“미안하다, 그 자식이 내뱉는 말에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나도 그건 알지만 오소마츠가 있으니가 좀 더 참았어야 했어.”

“아아. 면목없다.”

쵸로마츠의 한숨 소리에 카라마츠가 깊이 머리 숙였다.

오소마츠를 더 신경써야 했다며 카라마츠를 추궁하는 쵸로마츠는 카라마츠의 행동 자체를 비난하고 있지 않았다.

 

“그나저나 눈치 한 번 빠르다니까 정말.”

“괜히 고위 간부직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겠지-. 오소마츠 형 반대파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간부니까.”

혀를 차는 쵸로마츠 옆에서 오소마츠를 재우고 들어온 토도마츠가 어깨를 으쓱였다.

정기 보고를 위해 왔어야 할 남자는 고위 간부인 ‘라토’라는 자였다.

선대 보스의 측근이었던 그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지 오늘 온 젊은 남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대리를 보냈으나 그 대리가 너무나 멍청했던 것은 쵸로마츠에게 있어 행운이었다.

빈약했던 증거를 들이대며 몰아세우자 제 입으로 술술 잘못을 불어주어 일이 수월해졌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망언을 해 카라마츠의 분노를 산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선대의 힘으로 패밀리가 여기까지 올라온 것을 날름 받아 먹은 애송이가 누굴 의심해! 그 자리에는 너같은 새파란 애송이가 있어서는 안 됬어!」

 

자신의 형을, 보스를 무시하는 발언을 용서할 이는 없었다.

쵸로마츠는 눈을 돌려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있던 토도마츠를 불렀다.

 

“토도마츠, 그 간부 쪽에 잠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처단할 수 있으니까.”

“네네-. 조금 전 그 멍청이가 한 말로 충분할 텐데 쵸로마츠 형은 지나치게 꼼꼼하다니까. 그럼 쥬시마츠 형이랑 다녀올게.”

“응, 부탁한다.”

쵸로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빙그레 웃으며 쥬시마츠와 함께 방을 나섰다.

 

“‘라토’를 이쪽으로 부를 건가?”

“응, 이런 일은 빨리 해치우는 편이 좋으니까.”

“하지만…, 보스가 없는데 괜찮을까? 오소마츠를 또 대역으로 세울 수는 없다.”

카라마츠의 걱정에 쵸로마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고위 간부이긴해도 ‘라토’라는 자는 배신자였다.

그것을 놔뒀다가는 처리할 때 이쪽이 받는 피해가 늘어날 뿐이었다.

오늘 본 오소마츠는 ‘보스’의 대역이라는 어려운 일을 잘 해냈다.

중간에 카라마츠가 일을 치지만 않았다면 끝까지 ‘보스’를 연기했을 것이다.

큰 일을 치루기 위해서 어느정도의 위험부담은 감당해야했다.

쵸로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손가락을 세우고 단단히 일렀다.

 

“이번엔 꼭! 참으라고. 또 오소마츠 앞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아아, 나도 반성하고 있다. 오소마츠 앞에서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벌이지 않겠다 약속하지. 프로미스다.”

“하아…. 그래, 알겠어.”

카라마츠의 단언에 쵸로마츠의 못미더운 마음을 애써 거두고 비어있는 ‘보스’의 의자를 응시했다.

 

 

 

 

 

11.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감았던 눈을 뜨자 창 밖이 깜깜했다.

몇 시간을 잔 건지 몰라 벽시계를 보자 3시간 정도가 지나있었다.

 

“으으, 뭔가 지친다….”

새어나오는 한숨에 기지개를 펴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직도 그 빨간 핏자국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남자의 처절한 비명도.

정말 그 녀석들은 ‘마피아’구나.

왜 이쪽의 ‘오소마츠’가 평화로운 나날을 바랐는지 싫어도 알 것 같다.

그런 일상을 ‘오소마츠’는 혼자 보내고 있는 건가.

조금은 카라마츠나 쵸로마츠한테 의지해도 될 텐데. 이쪽의 ‘오소마츠’는 억지로 혼자 모든 걸 떠안고 있는 느낌이다.

뭐-, 나도 예전엔 그랬으니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머리를 긁적이고 문득 배가 비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시간은 새벽 4시.

다른 녀석들은 다 자고 있겠지.

식당에 가면 뭐 먹을 게 있으려나….

가만히 있어도 먹을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질 일은 없으니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왔다.

거의 일주일간 이곳에 머문 덕분에 집의 구조는 대충 기억했다.

내가 나온 게 오소마츠 방이니까 이쪽 복도를 지나서 여기 코너를 꺾으면…,

 

“빙고-!”

익숙한 문을 열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꺼져있던 불을 켜고 커다란 식탁을 본 순간 “아.” 하고 신음이 나왔다.

여기는 식사를 하는 곳이지 주방은 따로 있잖아!?

식사시간마다 집의 하인들이 음식을 가지고 여기로 들어왔을 뿐 여기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건 본 적이 없다.

즉, 주방은 따로 있다는 소리잖아~~!!

끄으으으-. 생각지 못한 헛점에 머리를 쥐어뜯으니까 괜히 더 배가 고파졌다.

 

“우—, 배고파아….”

“……츠! 오소마츠! 어디 있나!!”

꼬르륵~ 울리는 뱃고동 소리에 어깨를 늘어뜨리자마자 밖에서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뭘 저렇게 급하게 찾고 있는 거래. 근데 이 시간에 안 자나?

그나저나 쓸데없이 목소리 좋네, 저 녀석.

 

“여기 있어.”

“오, 오소마~~츠!! 다행이다. 네가 없어진 줄 알고!!”

“배고파서 먹을 것 좀 찾아다녔어. 근데 왜?”

“아, 급한 일이 생겼다. 빨리 쵸로마츠에게 가자.”

“급한 일?”

식당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카라마츠에게 붙잡혀 그대로 오소마츠 방으로 끌려갔다.

방에는 쵸로마츠가 팔짱을 끼고 발을 탁탁 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 뭔 일?”

“그 망할 자식이 지금 온다는 소식이 와서 말이야. 미안하지만 한 번 더 ‘보스’인 척 해줄 수 있을까? 오소마츠.”

“엑.”

“이번엔 그런 일 절대 없을테니까! 정말로 그냥 앉아있기만 하면 돼!!”

새삼 되살아나는 그 끔찍한 광경에 주춤하자 쵸로마츠가 다급하게 내 손을 잡았다.

눈썹을 늘어뜨리고 부탁한다는 쵸로마츠에 카라마츠도 가세해서 아무 일 없을 거라며 비는 통에 거절하기가 힘들어졌다.

 

“하아~~~. 할 수 없네.”

거절하는 걸 포기하고 중얼거리자 쵸로마츠가 눈을 반짝이며 아까 입었던 양복을 다시 건넸다.

떨떠름한 기분을 안고 양복으로 갈아입고서 다른 방으로 쵸로마츠, 카라마츠와 함께 이동했다.

금 전 그 방은 그 소동이 있고 해서 사용하기 그러니 이쪽 방을 쓰자면서 쵸로마츠가 안내한 방은 소파가 있는 휴게실이었다.

마주본 상태로 놓인 소파 한쪽에 앉자 쵸로마츠와 카라마츠가 소파 뒤에 섰다.

 

“예의를 상식하고 쌈싸먹은 새끼.”

“쵸로마츠, 오소마츠 앞에서 험한 말은 자제해라.”

“아, 미안.”

쵸로마츠의 건조한 사과에 고개를 끄덕였다.

쵸로마츠는 뭐라 중얼거리긴 했지만 욕은 하지 않았다.

근데 지금 중얼거리는 저거 이탈리아 욕 아냐?

내가 못 알아들을 뿐이지 엄청 심한 욕하고 있는 거 같은데?

의심스럽게 쵸로마츠를 보고 있는데 별안간 문이 열리더니 이치마츠가 웬 할아범과 함께 들어왔다.

딱 보기에도 명품으로 보이는 흰 양복을 빼입고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짚으며 들어온 할아범은 내 맞은 편 소파에 앉아 거만하게 나를 노려보았다.

뭐야, 이 할아범은.

이유도 없이 째려보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나도 같이 노인을 노려봐주자 “허흠!” 하고 헛기침을 한 노인이 먼저 입을 뗐다.

 

“낮에 보낸 조직원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더군. 뭔가 짚이는 게 있을 텐데?”

응? 이 할아버지 일본어로 말한다. 놀라서 할아범을 가만히 보자 얼굴이 아까 왔던 남자와 달랐다.

전체적으로 동양인이라는 느낌이다.

혹시 이 할아범도 녀석들하고 같은 일본게 어쩌구인가?

 

“그렇다고 이 시간에 연락도 하지 않고 들어닥치는 건 무례하군요, 라토.”

할아범의 말에 쵸로마츠가 차갑게 대꾸했다.

할아범은 쵸로마츠를 깔보는 눈으로 가볍게 어깨를 들었다 내렸다.

 

“이 내가 언제 오든 그건 내 맘이지-. 보아하니 내가 보낸 충고도 들을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군.”

“충고라. 그게 충고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자살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만?”

“하하, 정말이지. 애송이들의 좁은 시야에 뭐라 할 말이 없군. 조직이 이만큼이나 커졌다. 관리하는 구역도 넓어졌지. 수월한 관리가 힘들어졌어. 게다가 미국에서 건너온 양키 놈들이 우리 카지노까지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친구 하나 정도는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그 정도 생각도 하지 못하는 건가?”

“그렇다고 ‘티포네’와 손을 잡을 정도로 궁하지 않습니다. ‘티포네’가 하는 짓을 알고도 손을 잡자고 하는 겁니까?”

“그래, 티포네는 성질이 고약하고 여자와 아이를 돈벌이로 쓰지.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우리 패밀리가 주민들의 동의와 두려움을 동시에 이끌 수 있는 건 그딴 짓거리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하, 주민들을 왜 신경써야 하지? 두려움은 폭력으로 충분히 끌어낼 수 있어. 먼저 급한 양키를 몰아내고 그 후에 티포네를 잘라내면 될 것 아닌가.”

“정말 말이 통하지 않으시군요.”

“그건 이쪽의 할 말이네.”

점점 차갑고 날카로워지는 대화에 마른침을 삼켰다.

말은 일본어라 알아듣겠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

얼핏 들어도 살벌한 대화라는 걸 잘 알겠다.

쵸로마츠와 카라마츠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고 했으니까 앉아있긴 하는데 말이지….

 

“젊은 보스도 같은 생각인가? 설마 모든 대화를 그쪽의 보좌를 통해서 할 생각은 아니겠지. 티포네와의 접촉 경로는 이미 뚫어놨네. 결정만 내려진다면 손을 잡는 것은 간단하지. 자-, 어떻게 하겠나?”

에, 갑자기 왜 내쪽으로 이야기가 넘어오는거??

나를 보는 할아범의 눈에는 뭔가 말로 할 수 없는 압력이 있었다.

무거운 돌로 누르는 것 같은 압박에 다시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할아범에게 들키지 않도록 주먹을 쥐고 숨을 들이마셨다.

이거 어떻게 넘겨야 해!? 도와줘요, 아카츠카 선생니임~~!!

 

“잘 생각하고 대답하게. 이쪽에 와 있는 그쪽의 형제들을 생각해서라도.”

 

할아범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형제? 누구?

눈을 위로 올려 할아범 뒤에 서 있는 이치마츠를 확인했다.

내 뒤에는 쵸로마츠와 카라마츠가 서 있다.

응? 그럼 쥬시마츠랑 톳티는?

 

 

“그 녀석들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려 봐. 지옥이 뭔지 알게 해줄 테니까.”

 

나도 모르게 나온 목소리는 자신도 놀랄 정도로 낮고 사나웠다.

누구 마음대로 녀석들을 가지고 협박해?

이 녀석들을 놀리거나 괴롭힐 수 있는 건 장남인 나, 오소마츠뿐이라고. 망할 할아범.

피가 쏠려 뜨거워지는 머리에 이를 갈며 할아범을 노려봤다.

주춤하며 몸을 뒤로 빼는 할아범의 모습에 막타를 때리려 입을 열었지만 쵸로마츠가 선수를 쳤다.

 

“티포네와 손 잡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게 불만이라면 패밀리를 떠나시죠. 얌전히 떠난다면 대가는 받지 않겠습니다. 다만,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패밀리가 당신을 죽음까지 쫒을 겁니다.”

쵸로마츠의 말이 끝나자마자 카라마츠와 이치마츠가 할아범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커다란 덩치 두 명이 주는 압력에 할아범은 “칫,” 하고 혀를 차더니 반항하지 않고 일어나 방을 나갔다.

 

“하아아아아아———.”

놀랐다아아아!!

어마무시한 대화 내용에도 놀랐지만 내가 갑자기 개소리를 터뜨린 거에 더 놀랐다아아아아-!!

지옥이 뭔지 알게 해주겠다니 뭐야!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면서!!

하아—, 정말 한 번 화나면 머리 안 거치고 말 내뱉는 이거 고치는 게 좋을려나아-.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며 액체처럼 소파에 흘러내리듯 누웠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진짜아~.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자 싱글벙글 미소를 띠운 카라마츠와 쵸로마츠가 다가왔다.

 

“제법이었다, 오소마츠. 전에 ‘형님’과 전혀 다르다고했던 말은 철회해야겠군.”

“잘했어, 오소마츠! 오소마츠도 ‘오소마츠 형’이 맞구나.”

“놀랐어, 오소마츠 형.”

단번에 긴장이 풀려 늘어진 내게 녀석들은 당연한 칭찬을 했다.

카리스마 레전드 횽아라구—. 이 정도는 간단하지!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쏟아지는 칭찬에 어깨를 으쓱이며 일어나자 나를 보던 카라마츠가 미묘한 얼굴을 지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배고프다고 했었지. 가자, 오소마츠. 먹을 걸 준비해주겠다.”

순식간에 그 표정을 지운 카라마츠가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아, 그러고보니 나 배고파서 일어났었지. 자각하자마자 ‘꼬르륵~’ 하고 위가 큰 소리로 울렸다.

 

 

 

 

 

12.

 

할아범의 소동이 있고 이틀 후, 쥬시마츠와 톳티가 돌아왔다.

쵸로마츠에게 USB로 보이는 걸 건네준 토도마츠는 바로 내게 달려와 와락 나를 껴안았다.

 

“이치마츠 형한테 다 들었어~, 오소마츠 형. 엄청 멋있었다면서-. 나도 보고 싶었는데!”

“오소마츠 형아, 감사함닷! 나도 오소마츠 형아의 멋진 모습 보고 싶었슴닷!”

쥬시마츠와 톳티는 나를 품에 안고 머리를 마구마구 쓰다듬었다.

잠깐만! 머리를 쓰다듬는 건 형인 내 일이라고!!

멋졌다고 하면서 왜 취급은 여전히 막내인 거!?

막내놈들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포커페이스의 쥬시마츠 힘이 너무 세서 도저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쓰다듬당하고 나서 해방된 내게 쵸로마츠가 희소식을 알려줬다.

 

“데카판 박사가 그 발명품 다 만들었대. 이제 돌아갈 수 있다나봐, 오소마츠 형.”

“어? 정말로!!”

쵸로마츠의 말에 다 함께 데카판의 연구실로 가자 데카판이 뭔가 엄청 커다란 박스 하나를 꺼냈다.

뭐야, 이거. 공중전화 박스 같은데?

내쪽의 데카판은 시계처럼 만들었는데 이쪽은 왜 이렇게 큰거야?

이해할 수 없는 구조에 고개를 기울이고 데카판의 설명을 들었다.

 

기계는 확실하게 완성되었고 그걸 통해서 내쪽 세계와도 연락이 닿았다고 한다.

이쪽의 오소마츠는 예상대로 내가 있던 세계로 넘어가있었다고.

저쪽과 이쪽의 기계를 동시에 가동시키면 또 간섭이 일어나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나와 ‘오소마츠’가 넘어갈 수 있으니 교대로 오소마츠를 돌려보내면 된다면서, 말을 마친 데카판이 커다란 조종판에서 버튼 여러개를 삑삑 누르자 전화박스가 빛나더니 안에서 이쪽의 오소마츠가 나왔다.

 

“어서 와, 오소마츠!”

내 빨간 후드를 입고 넘어온 오소마츠에게 인사하자 오소마츠도 씩- 웃으며 “다녀왔어.” 하고 대답했다.

 

“삼일 정도였지만, 너희도 잘 지냈지?”

내 옆에 선 오소마츠의 말에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들을 향해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은 오소마츠가 녀석들과 차례로 인사하는 동안 제일 끝에 서 있던 카라마츠가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라마츄.”

“엩.”

“뭐 생각하고 있어?”

어쩐지 카라마츠가 고민하고 있는게 뭔지 알 것 같았다.

그걸 해결하면 이쪽의 오소마츠도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카라마츠는 내 질문에 머뭇거리며 ‘오소마츠’ 눈치를 보더니 마음을 정한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저번의 일로 오소마츠가 ‘형님’과 닮았다는 걸 알았다. 전혀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어느 세계의 오소마츠건 오소마츠는 ‘오소마츠’라고…. 그래서, 바보같은 생각이라는 건 알지만…, 형님도 오소마츠처럼 약한 면이 있지 않을까 하고….”

카라마츠의 말에 빙그레 입꼬리를 올렸다.

겨~~우 알아준 건가-.

이쪽의 녀석들은 이상하게 ‘오소마츠’를 올려다보고 있는단 말이야-.

‘오소마츠’가 카리스마 레전드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고.

카라마츠의 말에 다른 녀석들도 뭔가를 짐작한 것처럼 혼란스러운 눈으로 이쪽의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이건 앞으로 오소마츠가 잘 풀어나가겠지. 서로 마주보는 녀석들을 내버려두고 데카판에게 얼른 나를 보내달라고 재촉했다.

 

오소마츠가 나왔던 전화 부스에 들어가 이쪽의 녀석들에게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오소마츠’와 눈을 맞췄다.

앞으로 잘 하라구—. 내가 웃자 ‘오소마츠’도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환한 빛에 휩싸였다.

 

 

 

 

“우왓!? 아야야.”

오소마츠는 안전하게 전화부스에서 나왔는데 나는 왜 공중에서 떨어진 거!?

엉덩방아 찍었는데?!

바닥에 제대로 부딪쳤는지 얼얼한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일어나자 울상이 된 녀석들이 일제히 내게 달려왔다.

횽아가 좀 없어졌다고 이 난리~? 어쩔 수 없구만~.

자동으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활짝 웃으며 녀석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녀왔어-!”

 

“““““어서 와, 오소마츠 형!”””””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랜만입니다! 개인통판용 회지 작업이 길어져서 블로그를 방치했네요ㅠ
    어느정도 회지 작업을 끝내서 문득 생각난 소재로 짧은 카라오소를 써왔습니다^^
    이제 또 격주로 글을 올릴 것 같아요!

  • 사귀고 있는 카라오소. 카라마츠가 바보입니다.

  • 공미포 2,201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티스토리 글 쓰기 에디터가 바뀌어서 문단 간격을 조절하지 못했습니다ㅠ 원래 문단 간격을 좀 늘려서 글을 읽기 쉽게 했었는데 그 기능이 사라져서 조금 보기 불편하실 수 있어요ㅠㅠ

 


 

 

음식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 그리고 먹는 방식에 따라 위험한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생크림. 토도마츠가 자주 먹는 스위츠나 커피에 올라가지만 그것을 사람의 피부에 올린다면 어떨까.

연인들의 열정적인 나이트를 위한 촉매가 된다. 둥근 아이스크림 바나 바나나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발단은 마미가 이웃에게 받은 싱싱한 방울토마토다.

빨갛게 익은 싱싱한 방울토마토 5kg짜리 상자는 맛 좋은 방울토마토를 실컷 먹으라는 이웃의 배려였겠지만, 그는 중요한 것을 하나 놓치고 말았다.

이 마츠노가는 건장하고 냄새나는 사내놈 여섯이 있는 집이라는 것을.

식후 간식으로 내놓은 방울토마토는 단 3일만에 바닥을 보였다.

덕분에 지금 눈앞에 놓인 접시에 가득 쌓여있는 방울토마토가 집에 남은 마지막 방울토마토라는 것이다.

다른 이가 보면 경악할 정도로 커다란 그릇에 산더미처럼 쌓인 방울토마토를 둘러싸고 않은 브라더들은 부지런히 방울토마토를 입으로 옮기고 있다.


토요일 저녁에 흔히하는 만담 프로를 틀어놓고 시선을 TV에 고정한 채로 손만 움직이는 브라더들은 그 성격에 따라 먹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곧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이 출연한 프로그램이 시작한다면 리모콘을 자기 앞에 둔 쵸로마츠는 정성스럽게 두 손으로 토마토의 꼭지를 뗀다.

방울토마토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꼭지는 접시 한 구석에 모아둔다.

깔끔한 성격의 쵸로마츠다운 방식이다.

그 맞은편의 이치마츠는 특이하게 토마토의 꼭지를 잡고 입으로 가져가 반을 잘라 먹는다.

토마토의 절반을 깨물 때마다 방울토마토의 즙이 튀어 쵸로마츠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 그 방식을 고집한다.

그리고 이치마츠 옆의 쥬시마츠는, 손 가득 꼭지도 떼지 않은 방울토마토를 올려놓고 전부 입에 넣는다.

우물우물 빵빵해진 볼을 움직이며 방울토마토를 씹더니 “퉤-” 하고 꼭지만 뱉어낸다.

OH…, 대체 저건 무슨 기술인 건가.

남들은 흉내낼 수 없는 특이한 방식이 쥬시마츠답다면 쥬시마츠 답다.

쵸로마츠 옆에 있는 토도마츠는 작은 앞접시를 가져와 꼭지를 떼어낸 토마토 여러개를 올려놓고 포크로 토마토를 찍어 먹는다.

포크, 필요한건가?

브라더들처럼 손으로 집어 먹으면 될텐데.

 

남은 건 오소마츠. 여기가 문제다.

내 옆에 앉은 오소마츠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방울토마토를 먹고 있다.

방울토마토를 잡아올려 입에 먼저 가져가 방울토마토를 살짝 물고있는 사이에 꼭지를 떼어낸다.

방울토마토는 그대로 입으로 쏙- 들어가고 꼭지는 접시에 아무렇게나 던진다.

다행히 쵸로마츠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방울토마토가 담긴 접시 곳곳에 오소마츠가 던진 꼭지가 널려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성을 내며 잔소리를 퍼붓는 쵸로마츠와 귀를 후비며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오소마츠의 모습을 손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여기까지 들으면 뭐가 문제인 것인가 하고 물을 수 있다.

논논,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고?

굳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따진다면 오소마츠에겐 문제가 없다.

방울토마토가…, 그래, 방울토마토가 지나치게 싱싱한 것이 문제다!

 

싱싱함을 머금은 빨간 작은 공이, 오소마츠가 꼭지를 떼어내는 동안 오소마츠의 입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자극적인 그림이 되건만, 오소마츠의 입 안으로 사라진 방울토마토는 ‘톡’ 하고 앙증맞은 소리를 내며 터진다.

그 뒤에 방울토마토에서 터져나오는 즙을! 즙을 오소마츠가 삼키면서 ‘꿀꺽’ 하는 소리가 울리는 것이다!!

'톡’에 이은 ‘꿀꺽’!

그리고 오소마츠의 결후가 큐트하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그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데인져러스!!

게다가 이 소리들이 너무나 작아서 오소마츠 바로 옆에 앉은 내게만 들리고 있는 것이다.

 

JEJUS KRIST!!

 

“카라마츠 형-, 카라마츠 혀엉!”
“으, 응!? 뭐, 뭔가, 톳티-.”
“안 먹어? 쥬시마츠 형이랑 오소마츠 형이 거의 다 먹었는데.”
이 시츄에이션을 나를 어떻게 헤쳐나가면 좋을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 나를 토도마츠가 불렀다.

기특하게도 내가 먹을 방울토마토를 걱정해주는 톳티에게 감동하며 쿨-하게 받아쳤다.


“아, 아아. 오늘은 별로 생각이 없군. 내 몫까지 마음껏 먹으라구-! 브라더!!”
“아, 그래.”
“응~?"

으응~~??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인가?

이상하군. 나의 쿨-함이 부족했던 탓인가.


“카라마츠, 안 먹, 아!”
“응? 아, 나는 괜찮, 아.”
옆에서 들려오는 사랑스러운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대답하려 고개를 돌린 순간 방울토마토 즙이 오소마츠의 입에서 튀어나와 상에 떨어졌다.

방울토마토를 입에 문 채로 내게 말을 건 것인가.


“얼른 이걸로 닦아라, 형님.”
“응, 땡큐-!”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휴지를 건넸다.

그나저나 조금 전 그건 위험했다, ...마이썬이.

설마 오소마츠의 입에서 즙이 튀어나오는 것이 위험할 줄은.

얼마나 에로한 것인가, 오소마츠는!

썬을 진정시키려 오자키의 훔친 자전거를 머릿속으로 부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정하자, 진정하는 거다!


“카라마츠.”
“응? 뭔, 웁!?”
오소마츠에게 두번째로 불려 고개를 오소마츠에게 돌리자 별안간 입에 뭔가가 쑥 들어왔다.


“토마토?”
“응. 하나도 안 먹었다며-. 그게 마지막.”
큐트한 미소로 히히 웃으며 턱을 괸 오소마츠의 대사에 브라더들이 있는 곳에서 오소마츠를 덮칠 뻔했다.

 

핫!?

아니, 잠깐. 웨이트다, 나!

조금 전 오소마츠의 그 대사와 입에 들어온 토마토…. 그 둘을 조합하면…, 오소마츠는 내게 ‘아—, 앙’을 해준 것 아닌가!?

브라더들이 있는 곳에서!?


등에 샘솟는 식은땀을 느끼고 홱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브라더들은 TV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나와 오소마츠 사이에 일어난 일을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


“이거 맛있다. 다음에 또 가져와달라고 할까?”
빈 접시를 보며 아쉬워하는 오소마츠의 말에 내일은 비너스의 가호를 받아 크게 벌어서 싱싱한 방울토마토를 사오자 다짐했다.

 

 


 

 

  • 방울토마토를 먹으면서 떠오른 소재입니다ㅎㅎ
  • 중간에 카라마츠가 외친 'JEJUS KRIST'는 원래 'JESUS CHRIST'가 맞는 스펠링입니다. 카라마츠가 바보라서 틀린 거에요.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근데 티스토리 글 쓰는 에디터(?)가 바뀌었는데 너무 불편하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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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9년이 되고 벌써 한달 넘게 흘렀네요ㅎ

  제 블로그에 와주시는 모든 분들, 2019년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빌어요^^


 * 카라오소 초단편입니다.


 * 이번에 새로 나온다는 오소마츠상 드라마CD의 샘플을 듣고 뽕이 차서 써 보았습니다ㅎ


 *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이미 사귀는 사이.


 * 공미포 3,430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얏!”

제 머리에 박힌 카라마츠의 주먹에 오소마츠가 머리를 감싸쥐고 성난 눈으로 주먹의 주인을 노려보았다. 

손에 쥐고 있는 귀이개를 거칠게 바닥에 던진 오소마츠가 씩씩대며 벌떡 일어나 카라마츠에게 손가락을 걸었다.


“왜 때리는데!!”

“그러니까 들어올 때는 들어온다고 말을 하라고 했잖아!”

오소마츠의 삿대질에 덩달아 일어난 카라마츠도 목소리를 높였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비난에 발을 쾅쾅 구르며 눈썹을 세웠다.


“했잖아!”

“말하자마자 푹 쑤셔 넣지 말라고!”

“해달라고 해서 해줬는데 뭐 그렇게 말이 많아!!”

“오소마츠가 이렇게 못할 줄 알았다면 부탁하지 않았을 거다!”

노구치(1000엔)까지 꺼내가며 부탁한다 사정사정해서 할 수 없이 해줬건만 괘씸하게 큰소리로 불평하는 카라마츠의 태도에 오소마츠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뭐가 다정한 연인 사이의 스킨십인가. 

카라마츠가 어떤 식의 다정한 시간을 상상해 부탁했는지 몰라도 지금 이 상황은 그 상상과 정반대일 것이 분명했다. 

오소마츠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와 쿵쿵, 계단을 부술 기세로 내려와 거실문을 벌컥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자신에게 꽂히는 동생들의 시선에 오소마츠는 숨을 몰아내쉬며 토도마츠와 쵸로마츠 사이에 엉덩이를 끼워 앉았다.


“오소뫄~츠?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하? 아니, 끝났거든? 내가 그렇게 못하면 다른 녀석한테 부탁하던가!”

오소마츠를 따라 거실에 들어온 카라마츠를 향해 날카롭게 외친 오소마츠는 고개를 팩 돌렸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쵸로마츠는 한심하다는 생각을 얼굴에 드러내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무슨 일인데….”

“그게….”

쵸로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칭얼대며 달라붙었다.


“쵸로 씌~, 내가 귀를 좀 못 판다고 화를 내는 게 정상이라 생각해?”

“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한다고 말하고 했는데도 개똥마츠가 뭐라 하잖아—.”

입을 삐죽 내밀고 테이블에 엎드리는 오소마츠에서 시선을 돌린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카라마츠 형, 오소마츠 형한테 귀청소 부탁했어?”

“응? 아, 아아-.”

“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쵸로마츠가 되묻자 카라마츠가 “아…, 그게….” 하며 목소리를 흐렸다. 

쵸로마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오소마츠를 가리키며 증언하기 시작했다.


“오소마츠 형, 귀청소 잘 안하잖아. 해도 면봉으로 슥슥 대충하는 사람한테 무슨 귀청소를 부탁해. 당연히 못하지.”

“엩, 그런…, 가?”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눈썹을 내리고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카라마츠를 따라 이치마츠, 쥬시마츠의 시선도 저에게 머물자 오소마츠가 억울하다는 얼굴로 허리를 폈다.


“아니! 내 귀는 따로 청소 안해도 항상 깨끗하거든!? 카리스마 레전드라고!”

“‘카리스마 레전드’가 여기서 왜 나와…. 오소마츠 형은 그냥 게으른거야.”

“아니라구! 그럼 쵸로 씌는 어떤데!!”

“나는 평범하게 귀이개로 일주일에 한 번은 한다고.”

반쯤 뜬 눈으로 오소마츠를 보며 차갑게 대답하는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우웃….” 하고 숨을 삼켰다. 

자신의 편일 것이라 생각했던 쵸로마츠의 배신에 오소마츠는 구원타자를 찾아 쥬시마츠에게로 눈을 돌렸다.


“쥬시마츠는?”

“지는 이치마츠 형아가 해주구만유~.”

“에엑!?”

커다란 공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놀던 쥬시마츠의 해맑은 미소에 형제 일동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구석에서 고양이를 쓰다듬던 이치마츠는 한번에 쏠린 눈길에 어깨를 움찔하며 눈을 피했다.


“설마 어둠마츠 형이 그런 걸 할 줄은….”

줄곧 스마트폰을 잡고 있던 토도마츠의 혼잣말에 오소마츠가 화색이 되어 토도마츠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톳티는 어떤데?”

“나는 물론 전용 클리너 쓰고 있지~.”

“전용 클리너어~?”

윙크로 귀여운 얼굴을 만들어 손가락을 가볍게 흔드는 토도마츠의 대답에 오소마츠는 얼굴을 팩 구겼다. 

이 방 안에 제 편을 들어줄 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얼굴을 구기자, 카라마츠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알겠나? 오소마츠~? 그러니까 이 카라마츠 님이 특훈을 해주지.”

“하아!? 무슨 특훈!?”

“귀청소 특훈이다.”

“필요없거든요!?”

어깨에 올려진 카라마츠의 손을 쳐냈지만 카라마츠는 “응~?” 하고 입꼬리를 올리고 오소마츠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부담스럽게 눈을 반짝이는 카라마츠의 손에 질질 끌려가는 오소마츠를 동생들은 누구도 붙잡지 않았다.



“오소마츠.”

“뭐.”

2층 방에 카라마츠와 마주보고 삐딱하게 앉은 오소마츠가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뿌루퉁하게 저를 보는 오소마츠를 보며 통통, 제 무릎을 두드린 카라마츠가 귀이개를 손에 들고 오소마츠를 불렀다.


“여기 누워라.”

“응?”

“내가 시범을 보여주겠다.”

“엑. 싫은데.”

“오소뫄~츠?”

“아~, 알겠어. 알겠다구—.”

이럴 때의 카라마츠는 질기기 때문에 거절한다 해도 계속 고집을 부릴 것을 잘 알기에 오소마츠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카라마츠 무릎에 얌전히 머리를 누였다.


‘딱딱해….’

머리 아래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카라마츠의 허벅지의 감촉에 오소마츠가 눈을 굴렸다. 

타인의 무릎베개는 어릴 적 엄마인 마츠요에게 받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푹신하고 포근했던 마츠요와 달리 말랑한 살 하나 붙어있지 않은 카라마츠의 무릎에 후회가 몰려오는 오소마츠였다.


“한다.”

“으, 응.”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묻은 긴장에 오소마츠도 사뭇 엄중하게 대답했다. 

카라마츠를 등지고 누워있는 탓에 카라마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서서히 귀로 다가오는 귀이개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귀이개가 귓바퀴를 지나 귓속으로 들어오기 직전 꿀꺽, 침을 삼킨 오소마츠가 귀를 긁어내는 감각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우왓!? 갑자기 움직이면 위험하잖나, 오소마츠!”

“이상해! 느낌이 이상하다구!!”

카라마츠의 핀잔에 일어난 오소마츠가 손으로 귀를 막고 울상이 되어 외쳤다. 

아주 어릴 적, 마츠요의 손을 떠난 오소마츠의 귀는 면봉 외에는 침입을 허락한 적 없는 성역이었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딱딱한 귀이개의 촉감이 주는 낯설음에 오소마츠는 당장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었다. 

오소마츠가 도망칠 기회를 보고 있는 것을 이미 눈치챈 카라마츠는 싱긋-, 얼굴 가득 미소를 피우고 오소마츠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금방 익숙해질 거다. 자, 다시 누워라.”

“너, 뭔가 무셔!!”

후후후, 묘한 웃음을 늘리며 다시 무릎을 팡팡 두드리는 카라마츠의 보이지 않는 강압에 오소마츠는 ‘끄응’ 신음하면서도 카라마츠에게 민감한 귓속을 맡겼다.


슥-,

귓속에서 울리는 귀이개 소리가 주는 두려움에 두눈을 질끈 감은 오소마츠는 빨리 이 고문같은 시간이 끝나기를 빌었다.


사각사각,

스걱스걱,


고막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눈썹을 치푸리고 치솟는 불안을 참아내길 수 분. 

서서히 퍼지는 묘한 만족감에 오소마츠가 질끈 누르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카라마츠가 조종하는 귀이개가 닿는 곳마다 자각하지 못했던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꼭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누가 긁어주는 것처럼 시원함과 함께 퍼지는 만족감에 절로 긴장이 풀어졌다. 

사각사각, 종이에 미끄러지는 연필이 내는 소리와 닮은 기분 좋은 소음이 고막을 어루만지고, 부드럽게 귓속을 긁어내는 귀이개는 발끝까지 차오르는 편안함을 내려주었다.


“흐햐아—.”

귀청소를 끝내고 잔여물을 날려보내려 귓가에 불어넣는 카라마츠의 숨결에 저도 모르게 녹아내리는 신음을 뱉어낸 오소마츠가 당황해 입을 틀어막고 일어났다.


“….”

“…바, 반대편 아직 남았으니까 다시 누워라.”

“으, 응…….”

언뜻 교성으로도 들릴 수 있는 소리를 내뱉은 것에 당황해 변명도 하지 못하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차분히 끌어당겼다.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진 머리는 달리 다른 방도를 찾아내지 못하고 카라마츠 말에 따라 몸을 돌렸다. 

카라마츠의 배를 향해 누워 다시 귓속으로 슬금슬금 들어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 좋음을 선사하는 손길에 오소마츠는 당혹감도 잊고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귓속에서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음과 가까이서 느껴지는 카라마츠의 체온, 그리고 아주 살며시, 포근하게 닿는 카라마츠의 숨소리가 오소마츠를 노곤노곤한 잠의 세계로 유혹했다. 

토끼를 쫓다가 깊은 구멍에 빠진 앨리스처럼 오소마츠는 저도 깨닫지 못한 채 깊은 잠 속으로 떨어졌다.



“후우~, 이제 끝났다.”

“….”

“응? 오소마츠?”

불러도 대답않는 오소마츠를 내려다본 카라마츠는 빙그레-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상냥하게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자신의 무릎 위에서 새근새근 평온하게 잠든 오소마츠를 내려다보며 카라마츠가 부드러운 숨을 내쉬었다. 

이런 순간을 원해서 오소마츠에게 귀청소를 부탁했던 카라마츠였다. 

꿈 속에서 뭘 먹는지 우물우물 작게 입을 움직이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풋, 온화한 웃음을 흘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가슴을 통통, 잘게 두드렸다. 

더없이 기분 좋은, 행복한 꿈을 꾸기를 바라며 통통, 통통, 오소마츠를 더 깊은 꿈 속으로 이끌며 가만히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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