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쓰는 50제! 오랜만에 오소른! 입니다ㅎㅎ

 더 빨리 올리고 싶었는데 플롯을 다듬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지금 50제 또 한편 쓰고 있어서 주말 전에 하나 더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ㅎㅎ


* 긴 연휴가 끝났는데 후유증이 남네요... 일하기 싫어요. 굉장히...


* 키워드를 빌려 인어 오소를 쓰고 싶었을 뿐인 글이 되었습니다.


* 공미포 10,278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46. 임신 (오소른)   뜨튼! 님 신청 키워드.



1.

 

와장창,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널부러진 여섯 명의 취객

그 앞엔 구겨진 영수증을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술집 주인이, 시뻘겋게 부은 얼굴로 가게 바닥에 쓰러진 여섯 명의 취객을 노려보았다.

 

 

여섯 명의 백수를 키우는 것은 어렵다

시간은 물론이고 들어가는 돈도 무시할 수 없는 레벨

여섯 명의 식비에 관리비에 게다가 집으로 날라오는 손해 배상 청구서까지

마츠조의 월급 절반을 뺏어먹은 청구서를 든 마츠요가 핏줄이 잔뜻 일어선 채로 쾅, 거실문을 열었다

외출도 하지 않고 뒹굴뒹굴 거실에 모여 있던 여섯의 아들, 아니 웬수들에게 마츠요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했다.


너희가 까먹은 돈 만큼 벌어와야지. 그러니까, 너희 중 한 명을 친척이 하는 새우잡이 배에 태워야겠다.”

““““““에에에에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어려운 일 못한다, 징징대는 백수들을 싸늘하게 내려다 본 마츠요는내일까지 누가 갈지 정하렴.” 하고 차갑게 내뱉고 거실문을 닫았다

그간의 경험으로 애교나 아첨으로는 마츠요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육둥이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새우잡이 배는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오소마츠 형! 이런 말 하고 싶진 않았지만..., 여기선 장남으로서 총대를 매줘!!”

하아!?!?”

장남이니까!”

!?”

아니, 진짜로. 이럴 때를 위한 장남이잖아.”

이 쓰레기들!! 진짜 최악!! 역시 형제따위 친구가 아니라 적이였어!! 너네가 가!!”

토도마츠를 필두로 오소마츠를 보내려는 동생들과 오소마츠의 말싸움은 점점 격해져 곧 주먹이 나가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동생 모두가 덤벼도 장난으로장남이라는 칭호를 달고 있는 게 아닌 오소마츠를 이길 수는 없었다

거실이 엉망이 되고, 전원 얼굴에 푸른 멍 하나씩 달고 나서야 싸움이 멈췄다

씩씩-, 거친 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종이와 연필 한 자루를 내밀었다.


사다리타기로 정하자.”

“““““.”””””

 

여섯개의 선, 육둥이가 2개씩 선을 그어 시작한 사다리타기

그 결과는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두를 만족시켜주었다.


왜 나아~?!?!”

 

사다리타기에 걸린 오소마츠는 다음 날, 마츠요가 부른 친척의 손에 이끌려 마츠노 가를 떠나게 되었다.

 

이걸로 해결이네.”

““““.””””

손을 탁탁 털며 한숨과 함께 내뱉은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가 사라진 마츠노 가의 아침은 평소와 다름없는, 너무나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2.

 

퐁당, 낚싯줄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을 확인한 토도마츠가 자리에 엉덩이를 내렸다.


카라마츠 형.”

으응~? 뭔가, 브라더-?”

왜 낚시터에서 폼 잡고 있어?”

무슨 말인가, 브라더-. 나는 딱히 폼을 잡고 있지 않다! 그렇게 보인다면, 그것은 즉, 이 카라마츠 님의 샤이닝이-,”

, . 됐으니까.”

.”

질렸다는 얼굴로 반쯤 뜬 눈을 흘긴 토도마츠가 입을 다문 카라마츠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높은 가을 하늘엔 한가로운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며 낚시터에 드문드문 그늘을 내려주었다

밝은 햇살을 올려다보며 준비해온 선크림을 팔에 바르던 토도마츠가 흔들리는 수면에 비친 낚시줄을 따라 시선을 올렸다.


카라마츠 형? 낚시대! 흔들리고 있는데!?”

?!”

토도마츠의 말에 선글라스를 들썩이며 폼을 잡던 카라마츠가 놀라 재빨리 낚시대를 고쳐잡았다

좌우로 요동치던 낚시대를 단단히 잡고 릴을 감아 올린 카라마츠가우왓!” 비명을 지르며 U자로 휘어진 낚시대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 에에?! 여기 이 정도로 큰 물고기 있던가!?”

한 눈에 보아도 무게가 느껴지는 낚시대의 경련에 토도마츠가 놀라 카라마츠의 낚시대에 손을 올렸다

힘을 주며 릴을 감던 카라마츠를 도와 낚시대를 잡아 당긴 토도마츠가 퐁, 코르크 마개가 열리듯이 훅 들어올린 낚시대를 응시했다.


““...?””

토도마츠와 카라마츠의 바보 같은 신음이 겹쳐졌다

카라마츠의 낚시대 끝에 걸려 있던 것은 지독히 안쓰러운 러브레터

그 러브레터를 쥐고 수면 위로 얼굴을 드러낸 것은..., 오소마츠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 님인가...?”

파닥파닥 낚시터의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치는 물고기 꼬리에 토도마츠가 중얼거리자마자 인어의 얼굴을 확인한 카라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붉은 비늘에 감싸인 유선형의 꼬리 위에 나신의 상체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얼굴은 분명 오소마츠였다.


“...!? 오소마츠 형?”

토도마츠의 물음에 꼬리를 흔들던 인어가 토도마츠와 눈을 맞추고 방긋- 웃었다.


‘‘, 이거. 오소마츠 형이 아니다.’’

확신에 찬 둘의 마음 속 외침이 겹쳤다

토도마츠를 향해 보여준 미소는 오소마츠에겐 있을 수 없는, 토도마츠도 흉내낼 수 없는 귀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항상 빈둥대고 제멋대로에장남이란 이유도 빌어먹을 독재 정권을 펼쳤던 오소마츠와 전혀 다른 귀여운 미소는 숨을 쉬는 것도 잊을 정도의 것이었다.


, 에에..., , 어떡하지? 카라마츠 형.”

!?”

이 인어.... 오소마츠 형하고 닮았지만, 분명 오소마츠 형이 아니지?”

, 그런 것 같군. 이렇게 형님과 닮은 얼굴인데 말이다.”

...? 그럼 이 인어 어떻해? 여기 주인한테 알려?”

, 으음....”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곤란한 얼굴로 서로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굳이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하고 신음을 흘리는 카라마츠가 눈을 떴다.


뭔가 수가 있어?”

.”

? 있어?”

“...노 플랜이다!”

왜 망설인거!?”

힘줄을 세우고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으려는 손을 간신히 억누르고 부들부들 떠는 토도마츠가 옆에서 작게 들려오는 기침에 고개를 돌렸다.


켈룩, 켈룩, -.”

물 밖으로 끌어올려진 인어의 꼬리가 윤기를 잃고 퍼석퍼석 메마르기 시작해, 사람의 모양을 한 피부는 완전히 말라 갈라져 하얀 각질이 일어나있었다

숨도 쉬기 힘든지 목을 잡고 얼굴을 찡그려 기침하는 인어의 모습에 토도마츠와 카라마츠가 당황해 손을 휘저었다.


, 에에!? 물 밖에 있어서 그런가? 빨리 도로 들어가!!”

토도마츠의 말에 인어가 홱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뿌연 물 속을 보고, 토도마츠를 보며 고개를 휘저었다

물 속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 인어의 모습에 토도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인어는 공중에 멈춘 토도마츠의 손을 살포시 잡고 반짝이는 눈으로 토도마츠를 올려다보았다.


“...카라마츠 형.”

, , 으응?”

데려가자.”

하아!?”

이대로 여기 둘 수는 없잖아. 사람들에게 끌려가서 해부 당할지도 모른다고? 오소마츠 형하고 같은 얼굴인데 그런 꼴을 당하게 둘 수 없잖아! , 빨리!!”

토도마츠의 재촉에 카라마츠가, .” 소리를 흘리며 조심스럽게 인어를 안아들었다

평일 낮, 다행히 낚시터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제 낚시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탓에 인어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토도마츠는 추위를 대비해 입고 온 가디건을 인어의 허리에 감아 꼬리를 감추고, 카라마츠의 등을 떠밀어 낚시터를 벗어났다.

 

 

전력으로 뛰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욕실로 직행한 둘은 욕조에 물을 받아 그 안에 인어를 내려놓았다

물이 닿자마자 각질도 사라지도 다시 맨들거리는 피부로 돌아온 인어가 활짝 웃고 꼬리로 수면을 때리며 몸을 들썩였다

즐거워하는 모습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이제 앞으로 어쩔 것인가, 토도마츠가 입을 열기도 전에 터벅터벅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가 욕실로 접근했다.


둘이 뭐해? 욕실에서.”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이어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토도마츠와 카라마츠가 변명할 새도 없이 욕실에 들어닥친 세 명의 형제들이 욕조에 들어가있는 붉은 인어를 본 순간, 숨을 멈췄다.

 

 

 

인어를 데려오게 된 경위를 토도마츠가 설명한 후, 쵸로마츠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인어를 보며 슬쩍 다가가 욕조 앞에 앉았다.


저기-, 이름이 뭐야?”

오소마츠!”

대답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던 형제들은 자신을오소마츠라 밖인 인어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오소마츠?” 하고 되물은 쵸로마츠에게!” 하고 해맑게 고개를 끄덕인 인어의 모습을 빠짐없이 카메라로 찍은 토도마츠가 인어에게 물었다.


왜 낚시터에 있었어?”

토도마츠의 질문에 인어가 밝은 미소를 지우고 눈썹을 늘어뜨렸다

- 늘어진 어깨로 발랄하게 움직이던 꼬리를 멈춘 인어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토도마츠의 되물음에 인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살던 곳은 어디...?”

줄곧 인어에게서 한발짝 물러나 침묵하고 있던 이치마츠가 슬쩍 물었다

인어는 이치마츠를 보며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넓고 푸른 곳!”

인어가 말한 곳이바다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무슨 연유로 바다에 살던 인어가 도시 한 가운데에 있는 낚시터에 있었던 것은 알 수 없었으나, 인어를 도로 바다에 돌려보내주어야 한다는 결론은 쉽게 낼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어쩔까, 머리를 맞댄 다섯을 보며 참방참방 물을 때리던 인어가 행동을 멈췄다.


꾸르륵-.”

빈 속이 내는 소리가 시원스레 욕실에 울려 퍼졌다

머리를 맞댄 다섯이 서로에게 눈길을 주며 뱃고동 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욕조에 앉아있던 인어가 배에 팔을 감싸고 처량하게 다섯명을 바라보았다.


, 고픈 건가?”

뭐 줄 거 있나?”

인어의 눈길에 욕실을 나가는 쵸로마츠를 따라 토도마츠가 주방으로 발을 옮겼다

냉장고를 열어 구석구석 살핀 토도마츠를 누르고 냉동실을 열어젖힌 쥬시마츠가이거는~?” 하고 꽁꽁 언 고등어를 꺼내 들었다.


그거다!”

쥬시마츠가 번쩍 들어올린 얼린 고등어를 싱크대에 옮겨 물을 받아놓은 대야에 넣은 쵸로마츠가 고등어가 충분히 녹자마자 그것을 들고 욕실로 돌아갔다.

고등어를 기쁘게 받아들어 맛있게 먹기 시작하는 인어는 뼈만 남은 고등어를 욕조 밖으로 휙 던지고, 입맛을 다시며 부른 배를 통통 가볍게 두드렸다.

 

 

 

 

 

3.

 

인어가 욕실을 차지하고 있는 덕분에 목욕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숨길 수도 없어 집 욕실에 인어가 있다는 것을 솔직히 마츠요와 마츠조에게 털어놓자, 육둥이의 부모는 시원스럽게 인어를 받아들였다

매일 장을 보는 마츠요는 인어를 위해 물고기를 사 준비해놓을 정도로 빠른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이치마츠 형, 또 욕실 가?”

거실을 나가 복도에 오른 이치마츠에게 스마트폰으로 직접 찍은 인어의 사진을 보던 토도마츠가 말했다

“....” 하고 작게 대답한 이치마츠가 욕실에 들어가자마자 쥬시마츠가 그 뒤를 따라 욕실로 향했다

오소마츠와 똑같은 얼굴인데도 똑같지 않은 인어는 금새 마츠노가에 익숙해졌다

욕실에 들어오는 이들을 꼬리를 흔들어 반기는 인어는 쥬시마츠만큼이나 환하고 토도마츠 이상으로 귀여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말을 걸면 성의껏 대답해주는 인어는 꼭 마츠노 가의 막둥이처럼 형제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이 녀석이 이 근처 대장.”

잘린 꼬리에 눈가에 해적같은 흉터가 남아있는 검은 고양이를 인어에게 소개하는 이치마츠의 말에 인어가 빵긋- 웃으며 고양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인어의 손길에 눈을 지그시 감고 골골대기 시작하는 고양이를 보며 잔잔한 미소를 피운 이치마츠가 욕조 안에 있는 인어의 상태를 살폈다

고양이에게서 손을 뗀 인어가 상냥하게 웃으며 제 배를 슥- 문질렀다

인어가 마츠노 가에 온 이후로, 자주 배를 쓰다듬는 것을 목격한 이치마츠가 짐짓 걱정하는 표정으로 인어에게 물었다.


, 아파?”

이치마츠의 말에 고개를 저은 인어가 -.” 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피우고 대답했다.


아기!”

“...?”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의심하며 눈을 깜빡인 이치마츠가 인어의 배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 더 부풀어오른 것을 눈치챘다

아핫! 엄마였구나!” 하고 웃는 쥬시마츠의 말에 이치마츠는 그대로 넋을 잃고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에에에에에!? 남자지?! 저 녀석!!”

쵸로마츠의 경악에 말은 내뱉지 않아도 남은 형제 전원이 끄덕이며 동의했다

평평한 가슴과 오소마츠와 똑 닮은 얼굴은 인어가 남자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형제들의 패닉에 동참하지 않고 조용히 스마트폰을 두드리던 토도마츠가 급히 손을 들어 형제들을 불렀다.


형들! 이거 봐봐!”

토도마츠가 보여준 화면엔해마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해마는 번식 시, ‘수컷이 알을 품는다는 이야기를 보여준 토도마츠가 눈이 휘둥그레진 형들에게 말했다.


오소마츠도 이런 거 아닐까?”

토도마츠가오소마츠라 부른 것은 당연히 인어의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이오소마츠라 밝힌 인어를 형제들은 그대로오소마츠라고 불렀다

토도마츠의 말에 쵸로마츠를 비롯한 일동이 이해되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그럼 곧 아기가 나온다는 거 아냐?”

눈썹을 찌푸리고 말을 꺼낸 쵸로마츠에게 꽂힌 시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군.... 여기서 낳게할 수는 없겠지....”

카라마츠의 중얼거림에 이치마츠가 태클 거는 일 없이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서로 눈빛을 교환한 다섯이 머리를 맞대고 끙끙대기 시작했다

인어를 대체 어떻게 바다로 옮겨줄 것인가

낚시터에서 집까지 옮기는 그 짧은 시간도 인어는 너무나 괴로워했다

바짝 마른 피부가 갈라지고, 갈증에 고통스러워하며 기침을 하던 인어를 떠올린 카라마츠가 짙은 눈썹을 찌푸리고 근심에 빠졌다

물과 함께 인어를 옮겨야 한다는 것은 다섯에게 쉽게 풀 수 없는 난제와 같았다.

 

 

째깍째깍, 초침이 움직이며 자정이 넘은 시각을 가리켰다

후암-, 하품을 내는 쥬시마츠가 졸린 눈을 비볐다

머리를 맞대고 3시간. 온갖 의견을 내고, 오류를 지적하고, 또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의 반복


겨우 해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필요한 것은 큰 욕조와 트럭

트럭을 빌려주는 렌트 업체가 있는 것은 찾아낸 토도마츠가 반짝이는 눈을 들어 형제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알겠지?”

““““오우!””””

토도마츠의 말에 형제들이 일심단결해 손을 모았다.

 

 

 

 

 

4.

 

음식 냄새가 배어버린 옷에 절망하며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나마 쉬울 것이라 생각해 고른 음식점 아르바이트는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진상 손님 상대하랴, 쉴 새 없이 음식을 옮기고, 확실하게 주문을 받아 주방에 전달해야했다

정신없이 넓지 않은 가게 안을 움직이다보면 옷은 땀과 음식과 기름 냄새에 찌들어 답답하게 몸을 감쌌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목욕탕에 가기 전, 쵸로마츠와 토도마츠의 발이 욕실로 향했다

토도마츠가 준비해준 타블렛으로 TV를 보던 인어가 욕실에 얼굴을 내민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를 보며 활짝 웃고 꼬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소마츠~! 다녀왔어!”

나도, 다녀왔어.”

어서 와! 쵸로마츠! 토도마츠~!”

생긋- 웃으며 둘을 반긴 인어가 몸을 불쑥 욕조 밖으로 내밀었다.


? 뭔가, 냄새 나.”

킁킁, 코를 위로 올려 욕실에 퍼진 냄새를 씁- 빨아들인 인어가 토도마츠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톳티-한테서 난다! 쵸로한테서도!”

-, 음식 냄새일려나.”

음식?”

쵸로마츠의 말에 인어가 고개를 슬쩍 기울이고 눈을 깜빡였다

인어의 귀여움에 입 밖으로 나오려는 신음을 손으로 틀어막고 쉴 새 없이 카메라를 연사하는 토도마츠를 놔두고 쵸로마츠에게 다가간 인어가 쵸로마츠 가까이서 다시 코를 킁킁거렸다.


좋은 냄새~! 맛있는 냄새다!”

수면 밖으로 튀어나온 붉은 꼬리가 살랑살랑 너울거리며 기쁜 주인의 심정을 대변했다.

가까이 다가온 인어에게 당황한 쵸로마츠가 얼굴을 붉히고, .” 하고 말을 더듬는 동안, 쵸로마츠의 냄새를 만끽한 인어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에잇!”

-!”

쵸로마츠의 등에 팔을 감아 배에 얼굴을 묻은 인어가 쵸로마츠에게서 나는 맛있는 냄새를 듬뿍 빨아올렸다

햐아~, 맛있겠다아~!” 하고 감탄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킁킁, 쵸로마츠의 냄새를 맡는 인어의 모습에 토도마츠가 부루퉁한 얼굴로 가방에서 검은 봉투를 꺼냈다.


오소마츠~! 배고파? 치비타네 오뎅 사왔는데.”

오뎅-?”

! 오뎅~!”

토도마츠의 말에 쵸로마츠를 놓아준 인어가 토도마츠의 손에 들린 봉투를 응시했다

맛있다구~!” 하고 조심스럽게 오뎅을 꺼내 동봉된 나무꼬치에 어묵 하나를 꽂은 토도마츠가—.” 하고 오뎅을 불어 식히기 시작했다.


, 알맞게 식었어. -~!”

—!”

토도마츠가 내민 오뎅을 덥썩 받아먹은 인어가 오물오물 입을 움직이더니 곧 해바라기같은 노랗고 환한 미소를 활짝 피웠다.


맛있, 어어—!!!”

해사하게 웃은 인어가 꼬리를 팔랑이더! 더 줘어~!” 하고 토도마츠를 졸랐다

다시 사이좋게-을 하는 토도마츠와 인어를 본 쵸로마츠가 분하단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가 오뎅 하나를 꼬치에 걸어 후- 불었다.


, 오소마츠. 여기도.”

—!”

쵸로마츠가 내민 오뎅도 탐스럽게 받아 입에 넣은 인어가 콧노래를 부르며 꼬리를 살랑였다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내민 오뎅을 전부 받아 먹은 인어가 전보다 부푼 배를 안고후햐아~!” 하고 행복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감격해 울 것 같은 얼굴로 응시한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는 하루의 피로가 전부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5.

 

커다란 박스를 이리로 저리로.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고, 사다리차로 짐을 내리는 동안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땀이 송글송글 맺힌 이마를 닦아낸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동료에게 인사하고 이삿짐센터 사무실을 나왔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힘이 세고 체력이 좋은 둘은 급료가 높은 이삿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지쳤다....”

절로 나오는 한탄을 던지고 욕실로 향한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자신을 반기는 인어에게 미소를 보였다.


오소마츠! 리틀 머메이드-! 다녀왔다!”

오소마츠~! 다녀왔슴니머-!”

어서 와! 카라마츠, 쥬시마츠!”

깨끗한 물 속에 부푼 배를 담그고 꼬리를 흔들며 둘을 반긴 인어가 싱긋- 웃었다.


, . 오소마츠, 좋은 냄새!”

인어에게 다가간 쥬시마츠가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카라마츠는 쥬시마츠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그런가?” 하고 욕실 안의 습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사람의 체온 정도의 미지근한 공기 속에서 은근한 꽃향기가 코 끝에 맴돌았다.

코를 올리고 킁킁대는 쥬시마츠와 카라마츠를 보며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린 인어가 향기의 이유를 설명했다.


오늘 톳티-가 씻겨줬어~! 좋은 냄새나는 바, 바디샴푸우? 그거 써서!”

인어의 말에 카라마츠가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쥬시마츠는그렇구나아~!” 하고 인어 주변에 맴도는 향기를 빨아들이고, 표정을 바꾸어 제 옷에서 나는 냄새를 킁킁 맡았다.


쥬시마~?”

땀 냄새나네!”

옷과 팔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은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의 부름에 눈썹을 늘어뜨리고 말했다.


-, 계속 땀 흘렸으니까 말이지.”

쥬시마츠를 보며 카라마츠도 제 옷에 뭍은 냄새를 확인했다

지독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땀냄새에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인어와 눈을 맞췄다.


? 무슨 일이지? 리틀 머메이드.”

씻어야 되면 내가 씻겨줄게!”

카라마츠의 질문에 유쾌하게 웃으며 대답한 인어가 제 꼬리를 높이 쳐들어 철퍽! 욕조에 담긴 물을 강하게 내려쳤다

큰 소리와 함께 욕조 속 물이 파도처럼 위로 들솟아 카라마츠와 쥬시마츠를 덮쳤다.

순식간에 물에 흠뻑 젖은 둘을 보며 인어가 순진하게 물었다.


됐어?”

인어의 질문에 쥬시마츠가 활짝 웃으며!” 하고 대답했다

카라마츠는 젖은 머리를 넘기며 자랑의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그렇군.” 하고 중얼거렸다

욕실 벽에 붙은 거울을 보며물에 젖은 좋은 남자인, !’ 하고 폼을 재는 카라마츠를 보며 인어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하하!” 하고 의미 모를 웃음을 흘린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의 팔을 붙잡고 빠르게 욕실을 빠져나갔다

쥬시마츠에게 끌려가다시피 욕실을 나가 목욕탕으로 향하는 카라마츠를 인어가 설렁설렁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6.

 

봉투 접기

봉투 하나에 5


거실의 원형 테이블 위에 쌓인 봉투를 보며 이치마츠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커뮤니케이션이 불편하고 음침한 자신이 다른 형제들처럼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치마츠는 부업을 선택했다

하나하나의 값은 작지만 매일 한다면 형제들만큼은 아니어도 적지 않은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봉투를 접느라 퉁퉁 부은 손을 까딱이며 거실을 나와 욕실로 향한 이치마츠가 수건을 수면에 가라앉히며 풍선처럼 만드는 인어에게 다가갔다

이치마츠 뒤를 따라 욕실에 들어온 고양이를 보며 빙그레 미소 지은 인어의 배는 제법 부풀어 금방이라도 아기가 나올 것만 같았다

욕조 앞으로 뛰어나온 고양이를 향해 손을 뻗어 놀기 시작한 인어의 옆, 욕조에 걸터 앉은 이치마츠가 물 속에 흔들리는 부푼 배를 보며 걱정스럽게 눈썹을 찡그렸다.


너무 심하게 움직이지 마. 조심해.”

!”

냐아~!”

이치마츠의 걱정에 기쁘게 웃은 인어가 대답하자마자 고양이가 따라 울었다

-, -.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인어의 손 움직임에 따라 우는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본 인어가 욕조에 기대로 있던 허리를 피고흠흠.” 하고 목을 다듬었다.

 


인어의 입에서 나온 아름다운 음색에 이치마츠가 말을 잃었다

대화하던 평소의 목소리보다 더 얇고 몽환적인 목소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비단처럼 부드러운 노래를 욕실에 가득 퍼뜨렸다

신화에 나오는 뱃사람들을 노래로 홀렸던 세이렌처럼,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노래를 부르는 인어를 이치마츠가 멍청히 응시했다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혀주는 노랫소리는 어릴 적, 잠투정을 하던 이치마츠를 위해 마츠요가 불러주었던 자장가 같았다

가슴 속에 존재하는 티끌같은 걱정과 불안조차 사라지게 할 정도로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노랫소리.

고양이도 우는 것을 멈추고 눈을 감은 채, 인어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현관.

꼭 찬송가처럼 평온하고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형제 전원 욕실로 향했다

인어의 노랫소리에 놀란 것도 잠시, 곧 이치마츠와 함께 인어를 둘러싸고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모든 정신을 청력에 집중시켰다

귀를 간질이는 듯한 노랫소리는 마츠요와 마츠조가 돌아올 때까지 집 안에 가득 퍼져, 다섯의 마음을 천국에 온 것같은 평온으로 이끌었다.

 

 

 

 

 

7.

 

렌트카 업체에서 빌린 트럭, 뒤에는 대형 욕조 + 물 가득

짐칸엔 커다란 천을 씌워 밖에서 보이지 않게 만들고 되도록 안락한 분위기가 되도록 짐칸엔 간접 조명도 설치했다

그 동안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전부 쏟아부었음에도 그 누구도 돈이 아깝단 말은 하지 않았다

만족스럽게 응응,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준비를 마친 다섯은 욕실로 향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는 동안 착실히 쌓이는 돈과 함께 인어의 배도 부풀어 올랐다

금방이라도 아기가 나올 것처럼 크게 부푼 배를 인어는 소중히 안고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자신을 부르는 다섯에게 눈을 맞췄다.


...? 뭔가 안색이 나쁜데?”

인어의 얼굴을 살핀 토도마츠가 말을 꺼내자마자 쥬시마츠가괜찮아~?!” 하고 크게 외쳤다

욕실 안에 울려퍼지는 큰 목소리에 인어가 살포시 눈썹을 찌푸렸다

쥬시마츠에게 손가락을 세워-!” 하고 주의를 준 쵸로마츠가 인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마에 어렴풋이 보이는 물방울은 단순한 물이 아닌 것 같았다

이마에 식음땀을 가득 흘리며 눈을 감은 채, 제 배를 안고 몸을 웅크리는 인어의 모습에 쵸로마츠는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이 온 것을 직감했다.


, 아아아아기가!!”

!? 벌써 나오려는 거야!?”

왓뜨?!?!”

아우아우아우아아아아

당황한 쵸로마츠의 외침에 토도마츠가 경악하고, 카라마츠가 눈을 크게 뜨며 신음했다

요상한 비명과 함께 몸을 덜덜 떠는 쥬시마츠 사이에서 슬쩍 앞으로 나온 이치마츠가좀 조용히 해봐!” 하고 드물게 큰 소리를 냈다

전원이 끊기듯 입을 딱 다문 형제들을 노려본 이치마츠가 먼저 욕실의 불을 끄고 거실에 가 양초를 가져와 켰다

은은한 촛불에 욕실이 주홍빛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하고 말을 흘린 이치마츠가 욕조에 연결된 수도꼭지를 아주 약하게 열어 온수가 흐르도록 만들고 제 형제들을 욕실 밖으로 내쫓았다

익숙한 이치마츠의 행동에 쵸로마츠가 무슨 연유인지를 묻자 이치마츠가 들릴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양이, 아기 낳을 때가 있으니까....”

몇 년간 길고양이를 돌보며 고양이가 아기를 낳을 때도 도와준 경험을 살린 이치마츠에게 형제 전원이 엄지를 들어 올렸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욕실 안에 들어가 도울 수 있도록, 욕실 문 앞에 딱 붙어 앉은 다섯은 물이 출렁거리는 소리에 귀기울였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인어의 신음소리에도 자신들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에 슬퍼하며 초조하게 기다리기를 수십 분

물소리가 그치고 문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불안해 떨리는 눈으로 이치마츠를 재촉하는 형제들에게 짧게 혀를 찬 이치마츠가 천천히 욕실 문을 열고 안의 상황을 살폈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인어와 눈이 마주치자 인어가 방긋- 화사한 미소를 보였다

이제 들어가도 괜찮다 판단한 이치마츠가 욕실문을 열자마자, 형제들이 앞다투어 욕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여느때와 같이 미소로 다섯을 반기는 인어의 팔 안에는 작은 아기가 색색 잠들어 있었다

인어와 같은 붉은 비늘에 인어를 꼭 닮은 얼굴.

작은 사이즈가 주는 귀여움에 욕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다섯의 모습에 인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트럭 뒤 욕조에 인어와 아기를 조심스럽게 옮기고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바다

인적이 드문 등대 아래 방파제로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인어를 안아 옮겼다

넓고 푸른 바다와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눈을 빛낸 인어가 바닷물에 꼬리가 닿자마자 힘차게 물 속으로 다이빙했다

짙은 바닷속으로 아기와 함께 들어간 인어가 곧 불쑥 수면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기와 함께 빵긋 웃으며고마워!” 하고 인사하며 자신을 응시하는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몸을 올려 쪽, 볼에 짧은 입맞춤을 내렸다

아앗!!” 하고 질투에 눈멀어 외치는 넷을 보며 웃은 인어는 차례로 쵸로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에게 카라마츠와 같은 입맞춤을 선사했다.


잘 가!”

베이비-와 해피 씨- 라이프를! 리틀 머메이드!”

“...바이바이.”

아하핫! 또 봐!!”

놀러 올게!”

손을 흔들며 점점 방파제에서 멀어지는 인어를 향해 다섯이 손을 흔들었다

인어는 천사와 같은 밝은 미소로 힘차게 손을 흔들고 아기와 함께 물 속으로 사라졌다

잠잠해진 바닷가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잔잔한 파도 소리를 울리며 인어와 형제들의 헤어짐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제 갈까.”

쵸로마츠의 말에 저 멀리 뻗은 수평선을 응시하던 형제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8.

 

야외 주차장에 세워 놓은 트럭으로 향하는 길. 지나치는 선착장에서 익숙한 붉은 후드가 눈에 띄었다.


? -!!”

작은 배에서 휙 뛰어내려 선착장에 내린 오소마츠가 제 동생들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오소마츠가 뛰어오길 기다리는 동생들에게 달려든 오소마츠가 눈물을 글썽이며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진짜-, 니네 완전 너무하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죽는 줄 알았어, 진심!!”

툴툴대며 볼을 부풀리는 오소마츠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다섯이 함께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 키워드랑 아무 상관도 없는 물건이 나온 것 같다...;;


* 타비마츠에서 인어 오소마츠가 너무 귀여워서... 쓰고 싶었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편 들고 왔습니다!  늦어버렸네요...ㅎㅎ;;


* 오소카라지만 이번 화에서 오소마츠 출연은 없습니다ㅎ

  카라마츠가 아프지 않습니다.


* 기승전결에서 '기'부분에 해당하는 화라 조금 지루할 수 있습니다ㅠ


* 공미포 12,316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전쟁을 위해 왕자 오소마츠가 성을 떠난 후, 별궁에는 공주가 홀로 남게 되었다. 

소수의 선별된 시녀와 시종만이 오가는 별궁에는 사실상 공주와 공주의 시종 외엔 그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았고, 탑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공주 카라마츠는 마음 편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때때로 카라마츠가 홀로 외로워하지 않을까,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한 제 2왕비 마츠요가 별궁에 들렀다. 

차를 즐기는 푸른 왕국 출신답게 다양한 나라에서 수입된 고급 차를 가지고 온 마츠요는 공주 카라마츠와 함께 소소한 다도회를 열어 즐겼다. 

아들을 키우며 겪었던 고충이나 붉은 왕국에 적응하면서 느꼈던 문화 차이 등 여러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나가는 마츠요를 보며 카라마츠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차를 입에 머금었다.

 

좁고 답답한 공간, 습기찬 벽, 제대로 빛이 들어오지 않은 어두운 방 안. 

공주인 자신의 성별이 남자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탑에 갇혀 지낸 세월은 너무나 힘들었다. 

불만이 절로 튀어나오는 탑 안 생활에도 카라마츠는 작디 작은 한숨 한 번 내지 않았다. 

자신의 입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붉은 왕국와 푸른 왕국은 오랫동안 교류하였고, 동의 제국의 침략에 함께 싸우는 동맹을 맺었다. 

자원이 많고 기계공업이 발달한 붉은 왕국과 농업과 상업 중심의 푸른 왕국은 서로의 이득을 위해서 서로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리 동맹 국가 사이라해도 국력의 차이는 존재하는 법. 

평지가 많아 농업이 발달하고 그를 바탕으로 여러 나라에 수출하는 상업이 발달한 푸른 왕국에게 대국인 붉은 왕국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다. 

가장 많은 곡식을 수입하고 또 발달한 농기구를 수입할 수 있는 중요하고 중요한 거래 상대. 

그것이 붉은 왕국이었고, 순수하게 국력을 따지더라고 푸른 왕국은 붉은 왕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상하관계를 따지자면 붉은 왕국이 위, 푸른 왕국이 아래에 있었고, 그러한 입장 차이가 카라마츠를 인내하게 만들었다. 

엘린이라는 왕자가, 카라마츠의 약혼자가 카라마츠를 단 한 번 보고 탑에 가두어놔도 카라마츠는 저항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감수한 탑 안의 생활에서 겨우 벗어나나 했더니, 새로 머물게 된 오소마츠의 별궁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쾌적했다. 

카라마츠 자신이 때때로 놀랄 정도로.

 


낯설었던 별궁에서 지낸지 한 달. 

별궁에 일하는 시녀 및 시종은 카라마츠의 눈에 띄지 않게 쥐가 곡식창고를 드나들듯 별궁을 왕래했다. 

카라마츠가 넌지시 마츠요에게 물었을 때, 모두 오소마츠의 명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오소마츠 또한 자신의 성에 가족 외 타인을 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마츠요의 얼굴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별궁에 오는 이는 마츠요뿐, 시녀나 시종들의 눈도 없는 이곳에서 카라마츠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했다. 

토도마츠나 쥬시마츠는 보는 사람도 없으니 (남자 옷을 입고) 편하게 지내라며 재촉했지만, 카라마츠는 그 모든 제안에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이곳에 ‘공주’로서 와 있는 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카라마츠에게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도 더는 카라마츠의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았다.

 


 

전쟁 중이라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별궁에서 지극히 평화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다과회를 위해 별궁에 들린 마츠요가 새로운 소식을 전해왔다.

 

“...이치마츠, 왕자님 말인가요?”

“그래! 아, 정식 이름은 '올리버'야.”

후후후-, 하고 작은 미소를 흘린 마츠요가 섬세한 손길로 찻잔을 들어올렸다. 

하얀 바탕에 금색 장미가 그려진 조그만 찻잔은 ‘딸깍’ 하는 소음을 흘리는 일 없이 마츠요의 손에 자리했다. 

마츠요가 ‘이치마츠’라 부른 왕자는 오소마츠의 두번째 동생. 

임시 휴전 당시 전장을 지키느라 레드 버로우에 오지 못한 동생이었다. 

카라마츠는 아직 만나지 못한 오소마츠의 동생이 레드 버로우에 온다는 마츠요에 말에 저도 모르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달각-, 소리를 내며 카라마츠의 손을 떠난 찻잔이 컵반침에 떨어졌다. 

향긋한 차를 만끽하고 슬쩍 시선을 올린 마츠요가 카라마츠를 보며 훗-, 하고 가늘게 뜬 눈으로 웃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굉장히 상냥한 아이야. 겉으로 드러내진 않아도 속도 깊고....”

마츠요의 말에 카라마츠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마츠요의 말이니 다정하다는 것은 거짓이 아닐테지만, 카라마츠에겐 첫만남이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약혼녀가, 푸른 왕국의 공주가 남자라는 건..., 좋아할 수 없겠지.’

쓴웃음을 속으로 삼키로 타는 갈증을 차로 달래는 카라마츠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츠요는 다과회 내내 미소 띤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2.

 

“진짜냐....”

카라마츠를 마주하자마자 이치마츠의 입에서 나온 혼잣말에 카라마츠는 사형수의 앞에 선 것 처럼 등골이 서늘해졌다.


‘역시나 좋아하지 않는다아~!!’

걱정하지 말라며 웃던 마츠요의 얼굴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속을 읽을 수 없는 이치마츠의 눈길에 카라마츠는 입술이 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극명했지만, 카라마츠와 함께 이치마츠를 맞이한 마츠요는 그녀 특유의 자애로운 미소를 흩뜨리지 않고 오랜만에 보는 아들과의 재회를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왕에게 전장의 상황을 보고하고 추가로 징집된 신병들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이치마츠는 단 3일을 별궁에서 머문다고 했지만, 카라마츠는 그 3일이 지옥처럼 길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째서 좋지 않은 예감은 딱 드러맞는 것일까. 

마츠요의 환대가 끝나고 카라마츠와 토도마츠, 쥬시마츠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이치마츠는 그대로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저녁 식사 시간에 잠깐 얼굴을 내비친 이치마츠에게 카라마츠는 그가 자랑하는 환한 미소를 피우고 조심스럽게 이치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식사 준비는 우리가 했다만, 특별히 꺼리는 음식은 없나...?”

“...없어.”

카라마츠의 질문에 무심히 대답하며 이치마츠는 얉은 접시에 담긴 수프를 들이켰다. 

여섯이 앉으면 가득찰 정도의 작은 식탁에서 최대한 카라마츠와 멀리 떨어져 앉은 이치마츠의 대답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놓쳐버릴 정도로 그 음량이 작았다. 

카라마츠에겐 시선도 주지 않는 이치마츠의 태도에 토도마츠가 눈살을 찌푸렸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다음 질문 후보를 고르고 고른 카라마츠가 다시 이치마츠를 향해 목소리를 냈다.


“그럼 먹고 싶은 음식은..., 말만 해준다면 준비해서 내일 당장,”

“없어.”

“그, 런가.... 그, 그럼, 전장은 어떤가? 잘, 하고 있나? 오소마츠는,”

“밥, 먹고 싶은데.”

“아, 그..., 그렇군. 미안.”

슬쩍 고개를 들어 잔뜩 찡그린 눈매로 카라마츠를 응시하는 이치마츠의 대답에 카라마츠는 몸을 뒤로 빼고 어깨를 움츠렸다. 

카라마츠가 입을 닫자, 쇳덩어리보다도 무거운 침묵이 어깨를 진득이 눌러내렸다. 

넓은 식당엔 식기가 부딪며 내는 간헐적인 소음만이 울려퍼졌고, 답답하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가 평소보다 빠르게 식사를 마무리할 디저트를 가져올 때까지 카라마츠와 이치마츠 사이에 내려앉은 정적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소마츠의 방에 뚫린 창문을 통해 이치마츠가 본성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토도마츠가 커다란 한숨과 함께 몸을 돌렸다. 

아침 단장을 마치고 장식 없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카라마츠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는 쥬시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입을 열었다.


“너무 어두워.”

“응? 무엇이?”

토도마츠가 툭 던지듯 내뱉은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토도마츠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저 ‘이치마츠’라는 왕자 말이야. 소통 장애라도 걸린 건지.... 어제 저녁 식사 시간에 얼마나 답답했는데!”

볼을 살짝 부풀리고 툴툴대는 토도마츠의 투정에 카라마츠가 작게 웃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동생의 불평에 카라마츠는 부드럽게 웃으며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싫다고는 하지 않았다.”

어제 보여준 이치마츠의 태도를 회상하며 카라마츠가 눈썹을 늘어뜨렸다. 

좋아해줄 리 없다는 것은 각오하고 있던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경멸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치마츠가 보여준 태도는 과연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최악의 수도 아니었다. 

카라마츠에겐 최악을 피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 할만한 일, 카라마츠는 제 말에도 부풀린 볼을 터뜨리지 않는 두 살 아래 어린 동생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오늘 간식은 토도마츠가 좋아하는 메뉴로 할까.”

“어?”

“과카몰리. 좋아하지?”

“응!”

마침 어제 마츠요가 가져다 준 크래커가 남아있었다. 

좀 넉넉하게 만들어 오늘 있을 다과회에도 내놓자, 고개를 작게 끄덕인 카라마츠가 단숨에 얼굴을 활짝 피운 토도마츠를 보며 생긋- 웃고 쥬시마츠를 불렀다.


“쥬시마츠, 식료창고에 아보카도가 있는지 봐주고 오겠나?”

“아이아이!”

힘차게 대답하고 투다닥- 발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쥬시마츠를 배웅한 카라마츠의 곁엔 어느새 다가온 토도마츠가 “샐러드도 만들어 줘!” 하고 조르기 시작했다. 

마냥 어린 동생의 응석에 카라마츠의 입가에 온유한 미소가 깃들었다.

 

 

 

식료 창고에서 짙은 초록빛의 열매가 있는 것을 확인한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의 음식 앞에서 행복한 미소를 띄울 동생을 떠올리고 방그레 웃었다. 

재료가 있다는 소식에 기뻐할 동생의 얼굴이 보고싶어 다시 후다닥 창고를 떠난 쥬시마츠의 귀에 얇고 작은 울음소리가 닿았다.


“으응~?!”

발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다보는 쥬시마츠의 귀에 다시 한번 그 작은 울음 소리가 걸렸을 때, 멈췄던 발이 망설이지 않고 별궁의 앞마당으로 향했다. 

별궁 주변에 듬성듬성 심어진 커다란 나무들.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가 필요이상으로 나무를 커다랗게 만들었다. 

나무 아래에 서서 고개를 들어올리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찬 푸른 나뭇잎 사이로 쥬시마츠를 불러들인 작은 울음이 새어나왔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하얀 줄기 사이를 찬찬히 살핀 쥬시마츠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짧은 탄성이 튀어 나왔다.


“아!”

“냐아-.”

가는 줄기 사이에 몸뚱이를 끼운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쥬시마츠를 보며 애처롭게 울었다. 

줄기에 발톱이 끼였는지 우는 와중에도 고양이는 제 앞발을 들어올리려 애를 쓰고 있었다. 

나무에 걸린 발을 들어 힘껏 흔드는 고양이는 가는 줄기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척 위태로워 보였다. 

고양이의 움직임에 따라 잎이 부딪치는 소리가 서늘히 울려 퍼지고 가는 줄기도 함께 휘청거렸다. 

떨어질지도 모른다, 생각한 순간 쥬시마츠의 몸이 머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단단한 줄기를 붙잡고 양발다닥을 줄기에 빈틈없이 붙여 훌쩍 나무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눈에 담고 “괜찮아!” 하고 위로하며 마침내 고양이를 품에 안았을 때, 저 아래서 칼칼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거, 거기서 뭐하고 있어!? 위험하잖아!!”

야옹야옹 우는 고양이를 매만지며 달래주던 쥬시마츠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순간, 아찔한 높이에 현기증이 일었다. 

슬쩍, 휘청거리는 중심을 다시 붙잡고 줄기에 몸을 기댄 쥬시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경악한 얼굴로 턱을 내렸다. 

왕에게 보고를 마치고 친구가 걱정되어 돌아왔더니 나무 위에 친구와 메이드(남자)가 앉아있는 광경에 이치마츠는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반가운지 쥬시마츠 품에 얌전히 안겨있떤 고양이가 발버둥치며 이치마츠를 불렀다. 

고양이의 몸짓 하나하나에, 그리고 그에 맞춰 흔들리는 쥬시마츠의 몸에 이치마츠의 비명이 뒤따랐다. 

목이 꺾일 정도로 고개를 위로 치켜 들어야 끝을 볼 수 있는 나무는 7m가 넘게 높이 솟아 있었다.


“조, 조심해!! 거긴 왜 올라가서!!”

쥬시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어쩔 줄 몰라 손을 뻗는 이치마츠의 모습에 “아핫-!” 하고 히쭉 웃은 쥬시마츠는 거세게 고개를 흔들어 현기증을 털어냈다. 

고양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옷과 앞치마 사이 틈에 고양이를 넣은 쥬시마츠는 천천히, 작은 가지를 타고 높은 나무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하고 쥬시마츠를 따라 시선을 내리며 덜덜 떨던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의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뛰어나가 쥬시마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

아직 땅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쥬시마츠는 이치마츠가 내밀어준 손을 기꺼이 잡고 씩씩하고 경쾌하게 팔짝 튀어올라 안정적으로 땅에 착지했다. 

품에 안전히 넣어두었던 고양이를 꺼내 이치마츠에게 내밀자, 온몸을 감싸고 있던 긴장이 풀린 이치마츠가 흐물흐물하게 녹아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쥬시마츠를 잡아주었던 손이 땀으로 흥건히 젖을 정도로 이치마츠는 온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긴장하고 있었다. 

털썩 주저앉은 이치마츠를 걱정하듯 고양이가 다가가 이치마츠의 손을 핥았다. 

그에 응답해 이치마츠가 힘없이 손을 들어올려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때, 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동에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별궁 밖으로 뛰어 나왔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녹초가 된 이치마츠와 그 앞에 서 있는 쥬시마츠를 본 카라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일이 있었냐 묻자, 이치마츠에게 시선을 맞춘 쥬시마츠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휙휙 휘저었다.


“별 일 아니었슴닷!!”

쾌활한 쥬시마츠의 대답에 어이없는 한숨을 내쉰 것은 고양이를 쓰다듬던 이치마츠였다.

 

 

고양이를 안고 함께 별궁의 거실로 자리를 옮긴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말을 잃었다.

별궁 근처에 심어진 나무는 특히 높이 자라는 종류로 성 안에 있는 나무들 모두 10m 가까이 자란 나무들뿐이었다. 

그 높은 나무에 쥬시마츠가 맨몸으로 올랐단 사실을 들은 카라마츠는 즉시 쥬시마츠에게 주의를 주었다.


“발톱이 걸렸던 건가...?”

“응, 그랬던 것 같아.”

저도 놀랐을 고양이를 소중히 무릎에 앉혀 쓰다듬어주는 이치마츠에게 카라마츠가 묻자, 이치마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던 이치마츠의 손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 고양이의 발톱을 확인했을 때, 카라마츠와 토도마츠 모두 그 날카롭고 긴 발톱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


“이러니까 걸릴 수 밖에....”

발톱을 보고 푹- 한숨을 내쉰 이치마츠를 본 카라마츠가 조용히 빙그레 웃고 방에 올라가 손톱 깎기와 파일(네일아트용 사포)를 가지고 내려왔다. 

이치마츠에게 안겨있는 고양이가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가 세심하게 발톱을 잘라주고, 발톱이 걸리지 않게 파일로 다듬는 카라마츠를 이치마츠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사각사각-, 발톱을 가는 와중에도 고양이는 얌전히 카라마츠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다 끝났다!”

앞발, 뒷발 모두 발톱 손질을 마친 카라마츠가 “휴-.” 하고 숨을 내쉬며 이마를 적신 땀을 닦아냈을 때, 가만히 고양이를 쓰다듬던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와 시선을 마주했다.


“...고마워.”

“벼, 별 말씀을....”

솔직한 감사 인사에 카라마츠가 놀라 말을 더듬었다. 

이치마츠는 아주아주 옅은 미소를 살짝 걸고 고양이를 안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직 어머니가 말해주지 않을 것 같은데....”

“어?”

“...장례식 끝나고 상복 입는 기간은 한달로 충분하니까....”

“아....”

“별로, 여기 드나드는 녀석은 우리 외에 없으니까 괜찮지만..., 이제 평복 입어도 돼.”

“아, 아아-. 알려줘서 고맙다.”

“...응.”

카라마츠를 스쳐 지나가려다 멈춘 이치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는 고개 숙여 자신이 입고 있는 검은 드레스를 응시했다. 

전 약혼자의 장례식 이후로, 이 별궁에 옮겨서도 카라마츠는 줄곧 검은 드레스나 어두운 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함께 다과회를 즐기는 마츠요가 별말 없었기에 카라마츠도 쭉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치마츠의 조언에 카라마츠는 살포시 미소를 피웠다. 

감사 인사에 대답을 하는둥 마는둥,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가는 이치마츠의 등을 보는 카라마츠의 가슴에 작은 따뜻함이 은근하게 퍼졌다.

 

 

 

 

 

3.

 

탁탁, 먼지 털이를 손에 들고 벽에 걸린 액자를 털던 토도마츠가 창문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토도마츠?”

“카라마츠 형, 저기-.”

청소를 멈춘 토도마츠를 부르자, 토도마츠가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손짓해 나를 불렀다. 

밖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토도마츠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이치마츠의 둥근 머리가 보였다. 

오늘도 본성에 갔던 이치마츠가 돌아오는 길인 것 같았지만, 이치마츠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치마츠보다 더 작은 체구의 남자들이 둘. 이치마츠보다 화려한 옷차림을 한 것이 귀족의 자제 같았다.


“저거, 괴롭히는 거지?”

토도마츠의 말에 “에?” 하고 반문하며 이치마츠를 자세히 살폈다. 

두 어린 남자들은 이치마츠에게 점점 가까이 걸어가는데 반해, 이치마츠는 몸을 움츠리고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며 뒷걸음질 쳐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치마츠와 이곳의 거리가 너무 멀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세 명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괴롭히는 거 같은데-.”

확신을 담아 중얼거린 토도마츠가 “어휴-.” 하고 숨을 내쉬곤 바닥에 내려놓았던 쓰레받기를 들고 자리를 옮겼다. 

조금 전까지 이치마츠를 보고 있떤 창문보다 더 이치마츠와 가까운 곳에 있는 창문으로 옮긴 토도마츠가 창문을 활짝 열고는 쓰레받기에 있는 먼지를 힘껏 밖으로 던졌다.


“토, 토도마츠으?!”

회색 먼지가 눈처럼 창문가에서 멀리 퍼졌다. 

작은 먼지는 그대로 바람에 실려 훌렁 날아가고 남은 먼지가 잿가루처럼 아래로 유유히 추락했다. 

창가에서 조금 떨어진 이치마츠와 두 명의 어린 남성에게 닿을 정도로.


“....”

“갔다 올게. 카라마츠 형.”

“어, 아, 으응....”

말을 잃은 내게 토도마츠는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대체 어딜 가는지 물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청히 대답하자, 곧 이치마츠에게 걸어가는 토도마츠가 창문 너머로 보였다. 

토도마츠가 열어둔 창문으로 아주 희미하지만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죄송합니다! 쓰레받기를 놓치는 바람에 그만!! 죄송합니다아!”

놓쳤다는 쓰레받기는 태연히 네 손에 있다만, 토도마츠.... 

태연하게 연기하며 허리를 깊이 숙이는 토도마츠에게 두 어린 남성은 분노해 호통쳤다. 

그칠 줄 모르는 남자들의 역정에 토도마츠는 깊이 숙인 허리를 피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에 사죄로 일관하는 토도마츠에게 남자들이 그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토도마츠는 푸른 왕국의 공주인 나의 시종이고 동시에 오소마츠의 별궁에 속해있다. 

남자들이 직접적으로 토도마츠에게 벌을 줄 수는 없다. 

아마 토도마츠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이런 짓을 한 것이겠지만.... 

두 남자는 한참 동안 화를 내고 먼지 투성이의 옷을 대충 털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제서야 허리를 핀 토도마츠는 통통, 제 허리를 가볍게 두드리고 이치마츠의 손을 잡아 끌고 별궁으로 들어왔다.

 

“이치마츠, 괜찮나? 바로 목욕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다.”

토도마츠가 이치마츠를 끌고 오는 것을 보자마자 쥬시마츠를 불러 목욕 준비를 부탁했다. 

토도마츠는 이치마츠의 어깨와 등에 붙은 먼지를 툭툭 대충 털어주고는 제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휙- 하니 청소하던 구역으로 돌아갔다. 

얼떨떨한 표정의 이치마츠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자, 이치마츠는 “아, 응.... 목욕, 할게.” 하고 대답하고는 욕실을 향해 하느작하느작 걸어갔다.

 

 

 

저녁 식사 시간, 목욕을 마친 이치마츠는 다행히 아무일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식사 전 토도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먼지를 뿌린 것을 사과하자 이치마츠는 “괜찮아.” 하고 대답하곤 토도마츠를 빤히 보며 “...고마워.” 하고 작게 인사를 건넸다. 

서둘러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한 이치마츠를 보는 토도마츠의 얼굴에 씩- 자랑스러운 미소가 걸린 것을 이치마츠는 보지 못했다.

 

식사가 끝나고 거실에 모여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고양이를 안아 들고 매만지던 이치마츠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첫만남 이후 처음으로 이치마츠가 먼저 나를 불러주어 적잖은 감동이 느껴져 서둘려 이치마츠의 부름에 답했다.


“뭔가?”

“나, 내일 나가니까....”

“아, 그렇군....”

“응....”

“부디, 조심해라.”

“응.”

이치마츠는, 마츠요님의 말대로 상냥하고 속이 깊었다. 

이치마츠처럼 다정한 사람도 피가 튀기는 전장에 나가야한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진심을 다해 이치마츠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취침 전, 이치마츠가 내일 출발 준비를 마치자마자 하늘이 커다란 노성을 내지렀다. 

하늘이 깨져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커다란 소리에 쥬시마츠도 움찔 놀라며 눈을 굴렸다. 

곧 엄청난 천둥 소리와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고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에 이치마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소마츠 형 하고 쵸로마츠 형, 괜찮으려나....”

쏟아지는 빗줄기에 전장에 있는 형제들을 걱정하며 중얼거리는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실렸다.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놀란 이치마츠가 곧바로 입을 꽉 틀어막았지만, 이미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의 귀에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닿은 뒤였다.


“그거! 그거 달면 됨닷!!”

“쥬시마츠 형, ‘그거’가 아니라 ‘테루테루보즈’-!”

타닷-, 뛰어 흰 천을 휘저으며 외친 쥬시마츠의 말을 정정한 토도마츠가 쥬시마츠가 건넨 천을 능숙하게 매만져 하얀 천 인형 하나를 만들어냈다.


“뭐야? ...그거.”

“‘테루테루보즈’. 날이 맑기를 기원할 때 창문에 매다는 인형이다. 우리 나라의 풍습이다.”

“헤-.”

토도마츠가 만든 테루테루보즈를 창가에 매다는 쥬시마츠를 응시하며 이치마츠가 건조한 감탄사를 냈다. 

이치마츠에게는 테루테루보즈가 신기한 것 같아 “이치마츠의 침실에도 매달아 놓을까?” 하고 권하자, 바로 “아니, 괜찮아.”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침실 가득 울려퍼지는 울음 소리와 번쩍이는 빛에 눈을 떴다. 

부드러운 비단 이불에서 몸을 일으켜 침대 옆 작은 탁상에 놓인 등에 불을 붙였다. 

아직 한밤 중. 모두 잠든 궁 안은 어둠만큼이나 고요했다. 

따끈하게 데워진 이불에서 몸을 빼자 섬뜻한 밤공기가 피부를 매만졌다. 

온기를 빼앗기는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고 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요의에 등을 들고 실내용 슬리퍼에 발을 끼웠다.

 

슬리퍼를 끌고 침실을 나와 복도에 섰을 때, 어두운 복도에 낮고 작은 음산한 울음 소리가 깔렸다. 

나 이외에 소리를 낼 만한 사람은 없는데도 복도에 넓게 퍼지는 소리에 숨을 삼키고 몸을 움츠렸다. 

무섭다. 

아니, 무서운 건 아니지만 화장실은 가야하니까.... 

침을 꿀꺽 삼키고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복도를 걸었다. 

낮보다 길게 느껴지는 복도를 올라 목적지가 코앞에 있을 때, 등 뒤에서 “흐으-.”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히익...!!”

꽉 다문 이 사이로 새어나온 비명을 떨리는 숨과 함께 삼키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왔던 길을 되집어 돌아가자 복도를 걸으며 지나친 방문 너머에서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분명, 이 방은 이치마츠의 침실....

어디가 아픈 것인가!?

불현듯 몰려오는 걱정에 노크를 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도 못할 정도로 아픈건가!? 

걱정은 불안이 되고 다른 이를 깨울지도 모르는데도 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쾅, 쾅, 복도에 크게 울리는 노크 소리에도 이치마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등불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주고, 깊은 숨을 내쉬며 문고리로 손을 옮겼다. 

달그락-, 하고 가볍게 열린 문은 다행히 잠겨있지 않았다.

 

“...이치, 마츠...?”

“흣,”

어둠 속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번쩍이는 빛. 

그 빛에 비친 실루엣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망설이면서도 걸음을 옮겨 이치마츠의 침대 앞으로 걸어가자, 침대에 둥글게 몸을 말고 잠든 이치마츠가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치마츠.” 하고 작게 불러도 깊이 잠든 이치마츠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눈가에 맺힌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 베개를 차갑게 적시고 있었다.


“이치마츠, 이치마츠.”

“으, 으-...?”

가볍게 어깨를 흔들며 부르자, 겨우 눈을 뜬 이치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괜찮은가? 자면서 울고 있었다.”

젖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자, 이치마츠가 “아....” 하고 한탄하며 작게 웅크리고 있던 몸을 피고 침대에 똑바로 누웠다.


“...놔둬. 자주 있는 일이니까.”

여전히 거세게 내리고 있는 창밖의 빗발을 응시하며 작게 말하는 이치마츠를 이대로 놔두고 나갈 수는 없었다.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어 침대 옆에 놓고 앉자 이치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뭐, 해?”

“이치마츠가 잠들 때까지 있어 주겠다. 아, 자장가 불러줄까?”

“...하? 아니, 필요 없고.”

“그럼 옆에 있겠다.”

“아니, 필요 없대도.”

“이치마츠가 잠들 때까지!”

“말 좀 들어, 망할 고릴라 공주.”

“망!?”

이치마츠는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 끝까지 덮고는 말이 없었다. 

하늘이 으르렁대는 소리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3초. 이치마츠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한 것을 확인하고 침실을 나왔다.

 

 

 

테루테루보즈 덕분인지, 날이 밝자 폭우가 깔끔하게 멈췄다. 

출발 준비를 하고 마츠요 님께 인사를 마친 이치마츠는 나와 토도마츠, 쥬시마츠에게 시선을 주고 작게 “그럼, 다녀올게.” 하고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새초롬히 다녀오라 인사하는 토도마츠도, 팔이 떨어지라 손을 흔드는 쥬시마츠도 이치마츠의 인사에 답하며 이치마츠를 배웅했다.

 

 

 

 

 

4.

 

창문을 때리는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거실에 놓인 벽난로는 밤낮 가리지 않고 불을 피워 온기를 퍼뜨렸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온의 하락에 토도마츠가 “흐으-.” 신음하며 팔을 감쌌다. 

카라마츠와 마츠요가 여는 다과회도 별궁 마당에서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카라마츠가 마츠요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는 바삐 움직여 방 청소를 마무리하고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서늘해진 공기에 온기를 뺏기지 않을 수 있었다.

 

열린 거실문 너머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의 모습에 신경을 뺏긴 카라마츠의 손에 들린 찻잔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소중한 온기를 멀리 날리고 있었다. 

찻잔을 손에 쥐고 시선은 거실문 너머로 고정한 카라마츠를 본 마츠요가 “훗.” 하고 다정하게 웃었다.


“이제 겨울이 코앞에 왔구나.”

“아, 아아-. 네. 그렇네요.”

“다과회가 끝나면 깜짝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네?”

“짠-!”

찻잔을 내려놓고 활짝 웃는 마츠요는 오소마츠의 장난스러운 미소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몸을 숙여 발치에 놓아둔 상자를 집어드는 마츠요를 따라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옮긴 카라마츠가 마츠요가 들어올린 드레스에 눈을 깜빡였다.


“재봉은 전문가에게 맞겼지만, 디자인은 내가 마음대로 봐꿔봤어. 토도마츠하고 쥬시마츠 것도.”

검은 기모 재질의 천이 목을 감싸는 하이넥과 긴 세트 인 슬리브, 허리에 하늘색 리본을 가지런하게 두른 푸른 드레스가 마츠요의 손에 걸린채 하늘하늘 흔들렸다. 

가벼워 보이면서도 따뜻할 것 같은 드레스에 놀란 카라마츠가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마츠요의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이 드레스는 이 숄과 같이 써도 좋아!”

카라마츠에게 드레스를 안겨주고 꺼낸 군청색의 숄은 끝에 부드러워 보이는 털장식이 달려 있었다. 

넉넉한 크기는 숄로도, 케이브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숄까지 카라마츠에게 안겨준 마츠요가 이어서 쥬시마츠에게 줄 겨울용 메이드복과 토도마츠에게 줄 겨울용 시종옷을 꺼냈다.


“동복으로 쓸 옷이 없을 것 같아서. 우리 나라 겨울은 유난히 추우니까....”

카라마츠의 드레스와 어울러 군청색으로 디자인된 시종복과 메이드복까지 카라마츠의 품에 안긴 마츠요가 잠시 말을 멈추고 가만히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너무 했으려, 나...?”

“아, 아니요! 감사합니다.”

혼자 들떠 카라마츠에게 불필요한 선물을 준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마츠요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고개를 휘저었다. 

품에 안긴 드레스와 옷 모두 너무나 가볍고, 따뜻해보였다. 

탑에서 지내는 시절엔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적당한 옷이 없어 하루 종일 이불을 돌돌 두르고 다녔던 것을 떠올린 카라마츠가 살며시 옷을 껴안고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지었다.


“감사합니다....”

“실은, 하나 더 있어.”

후후후, 하고 묘한 웃음을 흘린 마츠요가 마지막으로 상자에서 옷 한 벌을 꺼냈다. 

검은색 바지와 검은 조끼에 짙은 파랑의 재킷이 딸린 옷은, 남성용 슈트였다.


“엣. 그건....”

“오소마츠가 준비해주라고 해서. 적어도 별궁에 있을 동안엔 편히 지내라는 의미로.”

남성의 슈트까지 카라마츠에게 안긴 마츠요는 복도에서 두 사람을 관찰하고 있던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에게 손짓했다. 

쥬시마츠에게 메이드복을 토도마츠에게 시종 정장을 보여준 마츠요에게 둘은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보냈고, 인사를 받는 마츠요의 입가엔 기쁜 미소가 넘실댔다.


“후후후, 정말-. 아들이 늘어난 것 같아.”

옷을 이리저리 살피며 몸에 대보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마츠요가 슬쩍 흘린 말에 카라마츠는 드레스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입술을 꾹 다물고 쓴웃음을 숨긴 카라마츠는 울컥 가슴에 퍼지는 아픔에 눈을 감고 더운 숨을 내쉬었다.

 

 

다과회가 끝나고 겨울옷을 모두 전해준 마츠요는 본성으로 돌아갔다. 

별궁 앞까지 마츠요의 배웅을 나갔던 카라마츠가 거실로 돌아와 아직 치우지 못한 찻잔을 응시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푹신한 소파에 걸친 겨울옷은 옷감부터 디자인까지, 하나하나 마츠요의 정성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잘 알 수 있었다. 

슥- 드레스에 잡힌 주름을 따라 손가락을 내리면 보들보들한 천이 따뜻하게 손가락을 감쌌다.


“...정말, 상냥한 사람들이다.”

등받이에 올려져 있던 드레스를 들어올리고 소파에 앉아 소중하게 드레스를 무릎에 올린 카라마츠가 중얼거렸다. 

고개 숙여 그늘진 얼굴은 어떻게 보면 슬퍼보였고, 또 어떻게 보면 기뻐보였다. 

묵묵히 드레스를 쓸어올리는 카라마츠를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가만히 지켜보았다. 

카라마츠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둘은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가지고 있는 마음 속 짐도 카라마츠와 다르지 않았다. 

후-, 하고 깊은숨을 내쉰 카라마츠에게 토도마츠가 주머니 깊숙이 넣어놓았던 편지를 건넸다. 

발신인의 이름이 없는 하얀 봉투에 카라마츠는 마른침을 삼키고 봉투를 뜯었다. 

하얀 백지에 쓰여진 글귀는 단 한 마디, “지금 이대로만 할 것”. 편지를 접어 구기고 벽난로에 훌쩍 던진 카라마츠가 다시 커다란 한숨과 함께 소파에 늘어져 팔로 눈을 가렸다. 

울 것 같은 기분을 입술을 물어 억누르고 똑바로 자세를 고쳐 앉은 카라마츠가 토도마츠를 응시했다. 

말없는 눈빛에 담긴 뜻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토도마츠가 고개를 끄덕이고 재킷 안주머니에 들어있던 작은 수첩을 꺼내 펼쳤다.


“이 나라의 제 1왕비는 그레이스 디 쥬드. 이 나라 귀족들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쥬드 공작의 영애야. 그 아래 전사했던 엘린 왕자, 오닐 왕자, 제임스 왕자가 있어. 제 2왕비는 마츠요 님. 푸른 왕국 출신으로 정략 결혼을 통해 붉은 왕국에 왔어. 아들은 에드윈, 알렉스, 올리버 왕자로 세쌍둥이야. 대외적인 행사는 모두 제 1왕비인 그레이스가 담당하고 있고.”

“...그래. 전쟁 소식은?”

“당분간 전쟁이 끝나진 않을 것 같다는 게 중론이야. 계속 신병 모집하고 있고.... 하지만 귀족들 사이에서 슬슬 징집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엘린 왕자 전사를 계기로 귀족들은 전쟁을 이어가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알겠다. 미안, 토도마츠. 내가 움직일 수 없는 탓에 네게 이런 일을 맡기게 되어서.”

“괜찮아. 카라마츠 형이 시녀들 비위 맞춰주는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고. 이 정도 정보는 조금만 돌아다니면 얻을 수 있으니까.”

“...그래. 정말 고맙다.”

“응.”

싱긋-, 하고 토도마츠를 향한 완온한 미소에 지친 기색이 얕게 깔렸다. 

토도마츠의 보고에 뻐근한 눈을 눈꺼풀 아래로 감춘 카라마츠는 눈동자 뒤쪽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저 아래 바닥에서 부터 스멀스멀 올라온 열은 머리끝까지 올라와 지끈거리는 두통을 선사했다.


“빨리, 이 모든 게 나면 좋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는 카라마츠의 말에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눈썹을 늘어뜨리고 눈을 낮게 깔았다.

 

 

 

 

 

5.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이어졌다. 

카라마츠가 별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한달, 그리고 또 한달.... 

가을의 문턱을 밟고 별궁에 들어섰는데,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 곧 추운 겨울이 코앞에서 서릿발을 만들어냈다. 

나무를 떠난 낙엽은 매일 수북히 별궁 앞에 쌓였고, 앙상한 가지가 남아 하얀 하늘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쓱, 쓱- 경쾌하게 리듬을 타며 좌우로 크게 빗자루를 쓸어 낙엽을 한 곳으로 모으는 쥬시마츠의 콧잔등에 하얀 눈송이가 떨어졌을 때, 붉은 왕국의 악명 높은 겨울이 왔다. 

그리고 이어 전장에서 잃었던 전선을 다시 회복했다는 승전보가 날아왔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동의 제국에 사신을 보냈다.

 

춥고 혹독한 긴 겨울, 전장에 일시적 평화를 가져올 ‘겨울 휴전’이 성립되었다.





* 여기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드디어 1편 들고 왔습니다.


* 2기 1화 보고 멘탈 나가고 리뷰 글 쓰느라 올리는게 늦어졌네요...


* 2화는 낼모레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ㅎㅎ


* 1화가 쓰고 나니까 재미 없네요...OTL

  재미 없어도 조금만 참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ㅠㅠ


* 공미포 14,700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1.

 

커다란 함성 소리와 칼과 칼이 스치는 금속음, 땅에 흩뿌려진 핏물 속에서 오소마츠는 자신을 부르는 동생의 목소리를 잡아냈다

세게 고삐를 당겨 말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적군의 목을 베어내자마자 매섭게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동생, 쵸로마츠가 말을 멈췄다.


“오소마츠 형! 엘린이 전사했어!!”

“하아?!”

“그리고 전선도 함께...!!”

“그 멍청한 자식이!!”

오소마츠가 내뱉은 황당함이 실린 신음은 전장에 퍼지는 비명소리에 파묻혀 사라졌다

쵸로마츠의 보고에 빠득- 이를 간 오소마츠가 거세게 고삐를 당겨 말을 크게 돌렸다

등자를 차며 말을 달리는 오소마츠의 시야에 적군과 함께 뒤엉킨 아군 사이로 무너진 전선을 향해 밀려 들어오는 한 무리가 보였다

절대적으로 수가 부족한 자국의 군대가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었던 적군이 한 지휘관의 실수로 크게 무너져 내렸다

이대로 흐름을 바꾸지 못한다면 적군은 이 기세를 몰아 수도레드 버로우까지 진격할 것이 분명했다

오소마츠는 이를 갈았다

더는 적군이 어머니가 있는 수도로 들어갈 수 없도록 반드시 막아내리라, 다짐하며 자신을 따르는 기사들을 불러모아 시퍼런 칼을 뽑아들고 높이 쳐들었다

또다시 시뻘건 핏물이 칼이 맺히고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높은 산맥을 끼고 대륙의 북쪽에 자리한 대국, 아카츠리아

제련이 유용하고 녹이 잘 슬지 않는 금속인 붉은 철이 많은 그 나라는 주변에서붉은 왕국라고 불리고 있었다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눈부신 기계공업의 발전이 이루어진 붉은 왕국는 주변 소국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절대 강국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하지만 곧 수많은 소국과 소수 민족을 정벌한 한명의 남자가 붉은 왕국에 도전장을 던졌다

동쪽 대륙의 영토를 차지한 커다란 대국, ‘동의 제국’

제국의 초대 황제는 동쪽 평지에 만족하지 않고 붉은 왕국까지 넘보며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굶주린 늑대떼처럼 몰려오는 제국군에게서 자신의 영토와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이어간 전쟁은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을 좀먹으며 끝을 보여주지 않았다.

 

 

수도 레드 버로우에 도착한 서신은 곧바로 왕좌에 앉아있는 붉은 왕국의 왕

절대 권력을 가진 레온 3세에게 전해졌다

왕국의 제 1왕자, 엘린이 전사했다는 소식에 레온 3세는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의 제 2황자가 전사했다는 소식으로 전쟁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지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

레온 3세는 제 아들이 명예롭게 전사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눈을 떴다

동의 제국과 붉은 왕국 모두 귀한 왕자를 잃고 말았다

레온 3세는 제국에게 임시 휴전을 제안하는 서신을 써 사신에게 들려보냈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고는 하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를 시간이 필요했다

제국 또한 황자를 잃었기에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질 것이라 믿은 레온 3세는 아직도 전장에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자신의 아들들에게 잠시 수도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얻어 심부름꾼을 전장으로 보냈다.

 

 

 

 

 

2.

 

따각따각, 바닥에 깔린 돌과 부딪치는 말발굽 소리가 푸른 평원에 퍼졌다

단 두 마리의 말이 저 멀리 보이는 산맥을 등지고 레드 버로우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말 위에 탄 오소마츠는 아주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한 레드 버로우의 성벽을 보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임시 휴전이라지만 전장을 떠나는 건 좀 그런데....”

“엘린이 죽었으니까, 장례식을 하는 건 당연하잖아.”

“근데 내가 갈 필요 있어?”

“안 갔다가 또 무슨 말을 들으려고?”

오소마츠의 불평을 딱 잘라낸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와 함께 멀리 보이기 시작한 레드 버로우로 눈을 옮겼다

엘린의 시신을 간신히 수습해 먼저 레드 버로우로 보낸 다음 날, 왕이 보낸 서신에는 임시 휴전이 성립되었으니 성으로 돌아오라는 간결한 왕명이 적혀 있었다

아직 무너진 전선을 회복하지도 않았고, 임시 휴전이라는 상태도 불안했다

스스로 나서서 전장에 남겠다는 이치마츠를 남겨두고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는 레드 버로우를 향해 말을 몰았다

뒤돌면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맥 너머엔 아직도 붉은 선혈로 물들여진 땅이 있었다.


...빨리 끝내고 돌아가야지. 이치마츠를 위해서.”

가까워지는 성문을 보며 중얼거리는 오소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왕위 계승자였던 제 1왕자 엘린의 죽음이 어떤 파란을 가져올런지, 침울한 기분을 한숨으로 내뱉은 쵸로마츠가 눈썹을 길게 들어내렸다.

 

 

왕족만이 출입할 수 있는 성문을 지나 성에 도착한 오소마츠는 바로 왕의 집무실이 아닌 왕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royal chamber로 발을 옮겼다

북쪽 지방에 위치해 척박한 기후 환경을 건뎌야하는 붉은 왕국은 오래전 높은 유아사망율이 문제가 되었다

아이들은 태어나 처음 겪는 겨울을 쉬이 이겨내지 못했고 그로 인해 아이들의 수는 어른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왕가도 예외는 아니었고 다음 왕위를 이어야할 후계자가 없을 것을 두려워한 왕은 왕비를 2명 들인다는 법을 만들었다

1왕비와 제 2왕비

두 명의 왕비에게서 난 자식들은 자동적으로 다음 왕위를 이을 후보자가 되었다

번영의 축복을 내려받은 왕가의 세 쌍둥이,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이치마츠는 제 2왕비의 자식이었다

2왕비가 머무는 방 앞에 멈춰선 오소마츠가 정복을 고쳐입고 정중히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허리 숙여 인사하는 시녀의 뒤를 따라 도착한 방에는 인자한 미소를 띤 오소마츠의 어머니, 붉은 왕국의 제 2왕비인 마츠요가 서 있었다.


“어머니.”

“어서오렴, 오소마츠. 그리고 쵸로마츠.”

““다녀왔습니다.””

장성한 아들들이 무사히 전장에서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안도하고 기뻐하며 마츠요가 제 앞으로 다가온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의 뺨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손을 내려 오소마츠의 주름진 넥카라를 매만져 펴준 마츠요가 방긋 웃으며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의 손을 맞잡았다.


“무사히 돌아와주서 고맙구나.”

자애로운 마츠요의 목소리에 쵸로마츠는 울컥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뜨거워진 눈시울을 소매로 가린 쵸로마츠의 등을 가볍게 두드린 오소마츠가 마츠요와 눈을 맞추고 살포시 웃었다.


“우리가 죽을 리 없잖아요~?”

어릴 적 그대로, 변하지 않은 장난기 섞인 귀여운 미소에 마츠요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그래, 그렇구나.” 하고 오소마츠의 말에 수긍하며 오소마츠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마츠요가 짐짓 근엄한 표정을 만들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지? 오늘은 푹 쉬렴. 내일은 장례식이 있으니까....”

““네.””

살아 돌아오지 못한 제 1왕자, 엘린

그는 제 1왕비의 아들이었으며 동시에 다음 왕이 될 왕세자였다

마츠요는 피끓는 전장에서 차갑게 식어갔을 왕자를 기리며 손을 모으고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까만 정복을 입은 오소마츠가 목관 속에 누운 차가운 시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흰 꽃을 시체의 가슴께에 내려놓은 오소마츠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올리며 관이 놓인 단상을 내려왔다

아직 전쟁 중이라는 것을 의식했는지 장례식은 매우 조촐하게 치뤄졌다

왕자의 장례식 치고는 그 규모도 화려함도 너무나 작았다

초대받은 귀족들과 왕족들만이 참석한 장례식은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성 밖에는 왕자의 전사 소식을 들은 국민들이 붉은 촛불을 켜고 함께 슬픔을 나누고 있었다

저 관 속에 누운 것이 자신이나 자신의 동생들이 아닌 것에 깊이 감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살기등등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한쌍의 눈을 마주했다

수수해보이지만 고가의 장식품으로 온몸을 감싼 검은 드레스의 여인, 1왕비 '그레이스'

핏발이 선 그 눈은 오소마츠에게왜 네가 아니라 내 아들이 죽은거냐!!’ 하고 따지는 것 같았다

왕또한 자리하고 있는 장례식이기에 입으로 소리내어 말하지 않을 뿐이지 그레이스의 눈빛과 오소마츠를 향해 소근거리는 귀족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구만-.’

태연하게 그레이스에게서 눈을 돌린 오소마츠가 쓴웃음을 지으며 다른 왕자들의 옆을 지나쳐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그레이스의 또 다른 아들, 5왕자와 제 6왕자는 오소마츠보다 어린 소년들이었지만, 제 형을 잃은 슬픔과 오소마츠를 향한 분노는 성인의 그것처럼 뜨겁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오소마츠가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말해도 귓등으로도 들을 것 같지 않은 태도에 오소마츠는 질린 듯이 손을 흔들어 털어냈다.

 

 

“장례식도 끝났겠다. 돌아갈까.”

“아, 오소마츠 형. 잠깐만.”

먼저 장례식장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던 쵸로마츠가 전장으로 돌아가자는 오소마츠의 말을 막았다

?” 하고 묻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슬쩍 눈짓하며 눈썹을 찡그렸다

붉은 왕국의 왕이자 오소마츠의 아버지 레온 3세가 그 눈빛만으로 엄청난 압력을 선사하며 오소마츠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 하고 남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혀를 찬 오소마츠가 코앞까지 걸어온 제 아비를 올려다보았다.


“할 말이 있으니, 내 방으로 와라. 둘 다.”

....”

“예.”

중후하게 사람의 마음을 꽉 쥐어짜는 낮고 근엄한 왕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눈을 돌리며 할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리며 왕에게 대답하고 가볍게 목례했다

많은 귀족들과 대 신에게 둘러 싸여 장례식장을 떠난 왕의 등을 보며 오소마츠가재수가 없네-, 오늘은.” 하고 한탄했다.

 

 

 

화려한 장식이나 무늬 없이 깔끔하게 각이 잡힌 원목 가구가 놓인 왕의 개인실

커다란 원목 책상에 앉은 왕 앞에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걸어갔다

발을 가볍게 벌리고 장갑을 낀 손은 등 뒤로 돌려 가볍게 맞잡았다

군대의 기본 자세와 같은 그것으로 오소마츠가 왕 앞에 서서 왕과 눈을 맞추었다.


“엘린의 실수로 전선이 무너지는 것을 잘 막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짐은 말재주가 없고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바로 본론을 말하마. 전장에 있는 너희들이라면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공교롭게도 우리 왕국은 기사나 보병들에게 넉넉히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농업이 발달하지 않았다. 현재 군대에서 받고 있는 모든 식품과 보급은 동맹 국가인 푸른 왕국에서 받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겠지. 이 전쟁을 버티기 위해서, 우리와 푸른 왕국의 동맹은 절대로 깨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런 전시에는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할 필요가 있지. 짐은 전쟁 전, 푸른 왕국과 동맹을 더욱 진하기 만들기 위한 제안을 했다. 짐은 신의 축복인지 아들이 많지. 푸른 왕국의 공주를 우리의 신부로 맞이한다면 그 이상 기쁠 일이 없을 것이라, 그리 전했고 푸른 왕국의 왕도 수긍했다. 엘린은 차기 왕으로서 푸른 왕국의 공주의 정혼자였다. 헌데 지금 엘린은 전사했지. 하지만 푸른 왕국과의 동맹은 꼭 필요한 것이다. 에드윈, 너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겠지.”

왕에게에드윈이라 불린 오소마츠가 쓴입맛을 삼키고 마른 입술을 핥았다

왕이 부른 이름, ‘에드윈은 오소마츠의 이름이었다

다만, 오소마츠는 자신의 이름보다 마츠요가 불러주는 애칭인 오소마츠를 더욱 마음에 들었고, 형제들 사이에서도 오소마츠라 불리기 원했다

쵸로마츠는 뒷짐 지고 왕과 오소마츠에게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대답을 망설이는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그건, 꼭 저여만 하나요?”

...무슨 말이지?”

“제가 아니어도 이 나라에 왕자는 많습니다만.”

자칫 반항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에 쵸로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오소마츠의 말에 역정을 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왕은 피식- 묘한 미소를 흘리곤 의자에서 일어나 오소마츠 앞으로 걸어갔다.


“그래, 왕자는 많지. 그런 너를 제외하면 누가 남을까? 오닐과 제임스는 아직 어리다. 네가 싫다면 알렉스나 올리버가 남는군.”

왕은 쵸로마츠를 향해 힐끗 눈을 돌렸다

알렉스는 쵸로마츠의, ‘올리버는 이치마츠의 이름이었다

오소마츠는 말에 담긴 강압에 입술을 깨물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 밖에 없네요.”

타국의 공주, 그것도 동맹을 맺고 있는 공주와 혼약을 한다는 것은 왕가에서의 입지가 커지는 것과 같았다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나 이치마츠에게 그런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았고, 그것을 간파한 왕의 제안을 싫어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오소마츠의 대답에 만족스럽게 눈을 내린 왕이그럼 나가보거라.” 하고 말하자마자 오소마츠는 똥이라도 밟았다는 듯이 발을 차고 왕의 개인실을 나섰다

인사도 없이 나가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당황한 쵸로마츠가 꾸벅 인사를 마치고 재빨리 오소마츠를 뒤따랐다

혼자 남겨진 왕은 개인실의 창문으로 보이는 오소마츠의 모습을 보며 기쁜듯한 작은 미소를 흘렸다.

 

 

 

 

 

3.

 

왕의 개인실을 나와 곧바로 마츠요의 방으로 향한 오소마츠는 마츠요에게 간단한 인사를 마친 후, 쵸로마츠에게 몸을 돌렸다.


“가자. 이제.”

“하? 어딜?”

“이치마츠한테.”

“자, 잠깐!! 오소마츠 형!!”

당연하다는 듯이 내뱉는 오소마츠의 말에 당황한 쵸로마츠가 손을 들어 오소마츠를 막았다

고개를 기울이고 왜 그러냐는 눈길로 자신을 응시하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황당하다는 투로 외쳤다.


“공주는 어쩌고?!”

“하?”

“아니아니아니, 한 번쯤은 보고 가야할 거 아냐! 오소마츠 형의 정혼자가 되었는데!!”

“지금은 전쟁 중이니까 놔둬도 별로 상관 없잖아.”

“어이!”

오소마츠의 귀찮다는 말투에 쵸로마츠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뭐라 나무르려는 쵸로마츠의 말을 뒤에서 듣고 있던 마츠요가 잘라냈다.


“오소마츠.”

....”

“한 번은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이 예의야. 그리고 아직 임시 휴전이 끝나지 않았으니 서두를 필요 없잖니. 이 엄마한테 얼굴 좀 더 보여주고 가렴.”

“그래, 오소마츠 형. 무슨 일이 있으면 이치마츠가 연락 할 테니까.”

마츠요의 부드러운 말과 쵸로마츠의 다급히 오소마츠를 막으려는 말에 오소마츠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가 가장 아끼는 두 사람이 협력해 오소마츠를 몰아세운다면 오소마츠에게 남은 길은 없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인 오소마츠를 본 마츠요의 눈이 가늘게 휘어지며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엘린의 시녀 뒤를 따라 성 뒤쪽을 걷는 오소마츠는 휑한 주변 광경을 눈에 담으며 멍청히 중얼거렸다.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엘린의 시녀에게 공주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달라고 한 것인 10분 전

오소마츠는 시녀를 따라 성을 나와 아무것도 없는 뒷마당을 몇 분째 걷고 있었다

당연히 성 안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오소마츠는 잠자코 시녀의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오소마츠와 함께 시녀를 따라 걷는 쵸로마츠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시녀는 그 후로 또 10분을 넘게 걸어 허름한 탑 앞에서 발을 멈췄다.


“여기!?”

어이없는 오소마츠의 외침이 메아리치듯 성 안에 울렸다

시녀는 오소마츠의 신음에 대답하듯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 후 오소마츠를 지나쳐 성 안으로 뛰어갔다

창고로 쓰였던 허름한 탑

쌓인 돌에는 이끼가 잔뜩 끼어있고 무너지기 일보직전으로 보이는 그 모습은 도저히 사람이 살고 있는 곳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의 턱은 쩍- 하니 아래로 내려간 채로 제자리로 올라오지 않았다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것이 까마귀라도 울며 지나가면 그야말로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마녀의 집과 다를 바 없었다

간신히 입을 다물고 침을 꿀꺽 삼킨 오소마츠가 터벅터벅 탑을 향해 걸어갔다

쵸로마츠가 그 뒤를 따라 탓탓탓 발소리를 울리며 탑에 가까이 갔을 때, 끼익- 하고 녹슨 문이 열리는 소리에 둘 모두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어서오세요.”

탑에서 나온 것은 시종 차림을 한 앳된 얼굴의 소년이었다

눈을 깜빡이며 탑에서 사람이 나온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에게 인사를 한 소년이 문을 활짝 열고여기로.” 하고 두 사람을 안내했다.

 

소년의 뒤를 따라 들어간 탑 안은 습하고 한낮인데도 등불을 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어두웠다

터벅터벅 탑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소년의 뒤를 따라 걸어가며 오소마츠는 힐끗 뒤따르는 쵸로마츠에게 시선을 돌렸다.


“엄청난 추녀면 어떡하지...?”

“지금 그게 걱정?!”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오소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핏발을 세우고 오소마츠를 노려보았다

그치만....” 하고 말을 흐리며 떼쓰는 어린애마냥 볼을 부풀리는 오소마츠의 등을 퍽! 때린 쵸로마츠가 빨리 가기나 해!” 하고 오소마츠에게 쏘아붙였다

-.” 하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한숨을 흘린 오소마츠가 다시 소년에게 눈을 옮겼을 때, 탑 정상에 있는 방에 도착한 소년이 낡은 나무문을 열었다.

끼기긱- 하고 나무문이 돌바닥에 쓸려 기괴한 소리를 냈다

꼭 부러질 것처럼 휘어지는 나무문을 힘주어 연 소년이 오소마츠에게 인사하며공주님은 안에 계십니다.” 하고 말했다

대체 왜 이런 곳에 공주가 머물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인 오소마츠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탑에 있는 유일한 창문에서 빛이 들어와 층계보다는 밝은 방 안에 군청색 드레스를 입은 공주가 드레스를 살짝 들어올리고 고개를 내려 오소마츠에게 인사했다

장식도 없이 수수한 드레스는 상복일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며 오소마츠가 가볍게 인사했다.


“엘린을 대신해서, 새롭게 약혼하게 된에드윈왕자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푸른 왕국의 공주, ‘카라라고 합니다.”

-, 하고 입맛을 다시며 마지못해 인사한 오소마츠에게 다시 허리 숙여 인사한 공주가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가 낮다고 생각했더니....’

고개를 든 공주와 마주한 오소마츠가 멀뚱히 서서 공주를 응시했다

어이?” 하고 일시정지를 누른 것처럼 멈춘 오소마츠를 부른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팔을 잡아 흔들자, 오소마츠가 슥-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를 보며 말했다.


“추녀 이전의 문제였어.”

“하?”

멍청히 되묻는 쵸로마츠를 공주 앞에 세운 오소마츠가 공주를 향해 말했다.


“이쪽은 내 동생, ‘알렉스.”

“처음 뵙겠습니다. 알렉스 왕자님. 저는 푸른 나라의 공주카라라고 합니다.”

...남자?”

쵸로마츠에게 드레스를 들어올려 가볍게 인사하는 공주는 분명남자였다

물끄러미 공주를 본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옮겼다

공주의 성별이 남자라는 것에 놀란 것은 오소마츠도 마찬가지였는지, 오소마츠도 쵸로마츠의 눈길에 어깨를 으쓱하더니 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줄곧 이곳에 머물고 있었던 건가요?”

“네. 알렉스 왕자님.”

“아....”

습기 차고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탑 안. 제대로 보온도 되지 않는 이 탑에서는 도저히 혹독하기로 유명한 붉은 왕구의 겨울을 지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쵸로마츠의 의심어린 질문에 공주는 최악의 대답을 내주었고, 쵸로마츠는 망연히그런....” 하고 말을 흐릴 수 밖에 없었다.


“남자라는 이유로 여기 가둔 것 같은데-.”

쵸로마츠가 내뱉으려 하지 않았던 짐작을 오소마츠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렸다

쵸로마츠의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마친 오소마츠가 제 뒤에 서 있는 시종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거처 옮길 준비 해주겠어?”

...?”

오소마츠의 말에 시종차림의 소년이 눈을 깜빡였다

오소마츠는 태연하게계속 여기 지낼 셈~?” 하고 어이없다는 말투를 하고는 성큼성큼 걸어 방을 나섰다.


“짐 옮길 사람 보낼 테니까 앞으로..., 2시간 후에 옮길 수 있게 준비해 둬.”

제 할말을 마친 오소마츠는 그대로 훌쩍 방을 떠나 탑 아래로 내려갔다

오소마츠가 지나간 문과 공주를 번갈아 보며, ....” 하고 당황해하던 쵸로마츠도 급히 공주에게 인사를 마치고 오소마츠를 따라 탑을 뛰어 내려갔다

남겨진 시종차림의 소년은 “...뭐야?” 하고 당황스러운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4.

 

따각따각, 두 마리 말이 끄는 마차 안에서 시종 차림의 소년, 토도마츠는 흔들리는 창밖의 풍경을 보며 팩-, 큰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번 왕자는 저번보단 낫네-.”

그렇게 한탄하며 고개를 돌린 토도마츠의 시야에 드레스 차림의 공주가 자리했다

공주 옆엔 검은 메이드 복장을 입은 토도마츠의 형, 쥬시마츠가 활짝 웃고 있었다.


“응, !! 낡은 방은 바이바이-!!!”

“카라마츠 형은, 괜찮아?”

창밖으로 머리를 불쑥 내밀고 활기차게 멀어지는 탑을 향해 손을 흔드는 쥬시마츠를 진정시킨 토도마츠가 공주,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카라마츠는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약혼자였던 왕자가 전사했다는 소식은 카라마츠에게도 충격이었다

설사 단 한번 밖에 얼굴을 본적 없는 상대라고 해도 전사했다는 소식에 안타깝지 않을 리 없었다

토도마츠가 전해준 전사 소식에 바로 가장 어두운 색을 가진 드레스를 꺼내 입은 것도 카라마츠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위로라는 것을 토도마츠는 잘 알고 있었다

토도마츠는 초연히 앉아있는 카라마츠를 보며 조금 전 처음 만난 새 왕자를 떠올렸다

카라마츠나 쥬시마츠, 토도마츠와 같은 검은 머리에 짙은 눈동자를 가진 왕자는 자신을 에드윈이라고 소개했다

붉은 왕국의 사람들은 금발과 큰 덩치와 새하얀 피부로 유명한데, 에드윈 왕자는 푸른 왕국의 사람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혼혈이려나? 그럼 원래 약혼자와는 배다른 형제....’

외모 하나만으로 온갖 추측을 다 더해가며 머리를 굴린 토도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카라마츠 혼자 붉은 왕국에 보내는 것이 불안해 함께 따라왔다

각오를 정하고 한 일이지만, 낯선 땅에서 어떤 일을 겪을지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토도마츠는 다시 한번 카라마츠를 불렀다.


“정말 괜찮아?”

...약혼자가 누가 되던 괜찮다. 비밀만 들키지 않는다면.”

쓴웃음과 함께 대답한 카라마츠는 토도마츠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미련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카라마츠의 답변에 토도마츠는 갑갑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여차하면 카라마츠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인데도 카라마츠는 자신과 무관한 일인양 초연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탑에서 지냈던 탓인가....’

본래 카라마츠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고, 과거 활기찼던 카라마츠를 떠올린 토도마츠가 슬픈 얼굴로 창밖을 응시했다.

 

 

 

붉은 왕국의 성은 강국임을 자랑하듯 매우 컸다

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만 수 km. 

성벽 안에는 왕과 왕비가 머물며 집무를 보는 본성과 왕자들이나 다른 왕족들이 머무는 자잘한 성들

그리고 성 구석에 놓은 별궁들까지 많은 건물이 있었다

카라마츠가 거처를 옮긴 곳은 성 안에서도 가장 구석에 위치한 오소마츠의 별궁이었다.

 

마차로 20여분을 걸어 도착한 별궁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성 밖 서민들의 집 중에서 조금 큰 축에 속하는 작은 궁이었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마차에서 짐을 내리는 동안 마차에서 내린 카라마츠를 맞이한 것은 한발 앞서 별궁에 와 있던 마츠요였다.


“어서오렴!”

꼭 제 자식을 맞이하는 것처럼 환대하는 마츠요의 밝은 얼굴에 카라마츠가 얼떨떨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이렇게 환대 받을 줄은 몰랐다

카라마츠와 그 뒤에 있던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도 놀란 얼굴이었다

마츠요는 성큼성큼 카라마츠에게 걸어가 두 손을 꽉 붙잡았다.


“나는 오소마츠, 아니-, 에드윈 왕자라고 해야 하나? 에드윈 왕자의 어머니, 마츠요에요. 이곳에서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우후후-, 하고 웃는 마츠요의 얼굴에 세월을 보여주는 잔주름이 잡혔다

눈가에 그윽히 맺힌 주름에 푸른 왕국에 홀로 있을 아버지를 떠올린 카라마츠가 톡-, 하고 풍선이 터지듯 퍼진 그리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 부탁 드립니다.” 하고 대답한 카라마츠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낸 마츠요가 카라마츠를 재촉하듯 이끌고 별궁 안으로 들어갔다

별궁의 이곳저곳을 안내한 마츠요는 거실로 쓰이는 커다란 방의 소파에 앉아 직접 타온 차를 카라마츠에게 건넸다.


“우리 아들내미들은 지금 본성에 가 있어서.... 약혼자가 오는데도 마중하지 못해 미안해.”

“아, 아닙니다.”

따뜻한 찻잔에서 은근하게 퍼지는 꽃향기에 카라마츠는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무슨 대우를 당할지 몰라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던 것이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끼며 달콤한 차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마츠요가 본성으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별궁에 도착했다

시녀가 준비한 저녁식사를 한 테이블에서 함께 하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향해 말했다.


“여기선 편하게 지내. 우리 말고 여기 오는 사람도 없고, 나는 (전쟁 때문에) 거의 없을 테니까.”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는 입안에 가득찬 고기를 재빨리 대충 씹어 넘기고 대답했다

서걱서걱, 은으로 된 나이프가 접시에 눌려 만들어낸 소음을 깨고 쵸로마츠가 툭-, 폭탄 하나를 던졌다.


“근데, 방은 어쩌려고?”

“방?”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되묻자 역시나, 하는 얼굴로 눈을 내리깐 쵸로마츠가 흘끔 카라마츠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방 남는 거 없잖아. 합방할 수 밖에 없다고.”

-, 쵸로마츠의 말이 끝나자마자 날카로운 소리가 식당에 가득 퍼졌다

쵸로마츠의 목소리는 그리 작은 것이 아니었기에 카라마츠에게도 너무나 잘 들렸다

합방이라는 단어에 놀란 카라마츠가 저도 모르게 힘을 준 탓에 고기가 올려져 있던 접시는 나이프에 눌려 깔끔하게 두 동각나고 말았다

좌우로 갈라진 접시를 본 쵸로마츠의 입이 떡 벌어지고, 눈을 크게 뜨고 카라마츠 앞에 놓인 접시를 본 오소마츠를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덜덜 떨었다.


..., -, 흐읏. , 하하하하하하!!! 접시-!! 접시가 두 동강, 났어!! 얼마나 힘이 센 거야! 크하하하하하!! , 고릴라 공주다아-!!!”

어깨를 떨던 오소마츠는 대폭소를 하며 고개를 들고 식탁을 탕탕 내리치며 배를 잡았다

식당 가득히 웃음소리를 퍼뜨리는 오소마츠를 쵸로마츠가 잠시 흘겨보았지만 오소마츠의 웃음은 그 후로도 한참을 이어졌고, 당연히 카라마츠의 얼굴은 새빨개질 수 밖에 없었다

오소마츠가 웃음을 그칠 때 즈음, 새 접시를 가지고 온 메이드 쥬시마츠가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접시를 바꿔주었다

히이히이-, 거리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은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말했다.


“이치마츠 방을 주면?”

“그 녀석 방에 남을 들였다가 무슨 꼴을 보려고!?”

“아-, 역시 그런가.”

“당연하지!”

“음-, 그럼.... 어쩔 수 없네.”

쵸로마츠의 핀잔에 가볍게 고개를 저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럼 내 방 써.”

“엩!?”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놀라 포크를 떨어뜨렸다

재빨리 새 포크를 가져다준 쥬시마츠에게 고맙다 인사를 건넨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보며 말을 더듬었다.


“아, 아아아아니, 다른 방이 없다면 거실도 괜찮다!”

“하? 공주님을 그런데 머물게 할 리 없잖아. 아무리 고릴라 공주라고 해도.”

“고릴라 공주!?”

“참, 그리고 말하는 거 잊었었는데-. 나는오소마츠라고 불러줘. 이 녀석은쵸로마츠.”

“오, 소마츠...?”

“‘에드윈’이라는 이름보단오소마츠쪽이 좋으니까.”

“에....”

속사포처럼 몰아치는 오소마츠의 말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카라마츠는 뒤로하고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는 남은 대화를 이어갔다

카라마츠는 멍청히 자신을오소마츠라 불러달란 오소마츠의 말을 되새기며 포크를 들고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오, 마이 갓뜨!!’

취침 시간이 되어 잠옷으로 갈아입은 카라마츠는 마찬가지로 잠옷을 입은 오소마츠를 보며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았다

자신과 같은 방을 쓰자고 했던 오소마츠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카라마츠는 먼저 침대에 앉은 오소마츠를 보며 방문에 기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뭐해? 거기서.”

“엩!? , 아니....”

“그보다 잘 때도 그 차림!? 불편하지 않아?”

카라마츠의 잠옷을 본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리며 툭 던진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숙여 제 옷을 응시했다

카라마츠의 잠옷은 여성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란제리

오소마츠가 말한불편하다의 의미는 분명 남자인데도 여성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깨에 걸친 란제리 끈이 넓적한 자신의 어깨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다시금 인식하며 카라마츠가 몸을 움츠리고괜찮다....” 하고 대답하자, “, 그래.” 하고 간결한 말이 돌아왔다.


“침대 와 누워.”

아직도 문가에 서 있는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제 옆의 침대보를 팡팡 두르리며 말했다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고개를 붕붕 젓고는 침실 한쪽에 놓인 소파로 다가갔다.


“나, 는 여기서 자겠다!”

“남자끼리 뭘 내외하는 거야, .”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내뱉고 침대에서 일어나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덥석 카라마츠의 팔을 붙잡은 오소마츠가 당황해, !?” 하고 외치는 카라마츠를 잡아 끌어 침대에 앉혔다.


“편하게 생각해.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 ?”

“응. 친구. 그럼 잘 자.”

오소마츠의 말에 동그랗게 눈을 뜬 카라마츠를 보며 빙그레 작은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 누웠다

카라마츠를 등지고 누운 오소마츠는 몇 초 지나지 않아 평온한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여기서 더 사양하는 것은 실례라고, 그렇게 판단한 카라마츠는 친구처럼 생각하라는 오소마츠의 말을 작게 따라 중얼거리며 푹신한 침대에 고단한 몸을 파묻었다.

 

 

, 하고 주먹이 날아와 카라마츠의 머리를 때렸다

크읏!” 하고 숨을 삼키고 신음한 카라마츠가 신속하게 몸을 돌려 주먹을 붙잡고 억누르며 몸을 세웠다.


 

“으응...?”

...?”

멍청히 신음하며 눈을 뜬 오소마츠에 이어 카라마츠도 졸린 눈을 깜빡였다.


“에...? 왜 이렇게 된 거?”

오소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눈을 굴렸다

밤 중, 자신을 공격하는 뭔가가 있어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인 감각이 어렴풋하게 남겨져 있었다

카라마츠는 눈을 내려 자신의 아래에 엎드려있는 오소마츠를 다시금 확인했다

카라마츠를 공격한 주먹은 오소마츠 등 뒤로 돌려져 카라마츠가 누르고 있다

오소마츠 자신의 몸은 엎드린 채로 카라마츠 아래에 놓여져 있다

카라마츠는 자신이 오소마츠를 올라타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마자 황급히 내려와 침대에 앉아 오소마츠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하다!! 갑자기 주먹이 날라와서 그만!!”

“아-, 아냐. 괜찮아. , 잠버릇 나쁘니까. -, 설마 주먹 한번 날렸다고 뒤집혀서 눌리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저, 정말 미안하다!! , 역시 나는 소파에서 자겠다!!”

“아, 잠깐잠깐.”

스륵-, 비단으로 만들어진 이불보를 미끄러져 내려가 소파로 향하려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붙잡았다

팔을 강하게 잡아 그대로 힘껏 끌어당겨 카라마츠를 도로 침대에 눕힌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적이며넌 여기서 자.” 하고 말하고 침대를 내려갔다.


“내가 소파에서 잘테니까.”

졸린 듯 크게 하품하며 오소마츠가 소파에 누웠다

2인용의 소파는 오소마츠를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삐죽, 오소마츠의 발을 밖으로 내뱉었다

소파의 팔걸이를 베개 삼아 누운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크게 당황해 외쳤다.


“여긴 원래 오소마츠의 방이니까, 내가 거기서 자겠다!!”

“됐거든요~? 괜찮으니까 침대에서 자. 전장에 비하면 소파도 엄청 편하니까. 자는 데는 문제 없어. 그럼 잘 자, 고릴라 공주님.”

말을 마친 오소마츠는 팔을 들어 눈을 가리고 곧 쿨쿨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하고 카라마츠가 흘린 항의는 잠들어버린 오소마츠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고 차갑게 가라앉은 밤공기에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지독한 잠버릇에 뒤척이다 오소마츠가 소파에서 떨어지며 낸!’ 소리에 카라마츠가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야야야야....”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는지 뒤통수를 문지르며 일어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아침 인사를 하자마자 침실 안으로 들어온 쵸로마츠가 바닥에 앉아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한심하단 눈길을 쏘아 붙였다.


“또 자다 떨어졌어? 대단하다, 대단해.”

“힛-. 내가 좀 대단해.”

“칭찬 아니야! 그리고 그 엄청나게 뜬 머리 좀 어떻게 해!!”

“아침부터 기운도 많네-, 쵸로 씌.”

“얼른 움직여!”

쵸로마츠의 언성에 오소마츠가 하품하며 일어났다

오소마츠에 맞춰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카라마츠를 손들어 막은 오소마츠가더 자지 그래?” 하고 카라마츠를 말리고 침실을 나왔다.

....”

숙면해버리고 말았다, 고 카라마츠는 독백하며 털썩- 침대에 누웠다

푹신푹신한 매트리스, 매끄럽고 부드러운 비단

뽀송뽀송한 담요에 감싸여 살아온 이래 가장 달콤한 꿀잠을 자고 말았다

혼자가 아닌 남과 함께 있으면 단 한번도 이렇게 편히 잤던 적이 없었던 카라마츠는 내색은 하지 않아도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어째서....’

스스로에게 물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소마츠가 함께 있었는데도 혼자 있었을 때보다 더 편하게 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비단의 감촉을 만끽한 카라마츠는 그 후로 쥬시마츠가 자신을 깨우러 올 때까지 꿀잠을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5.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첫만남을 가진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소마츠는 자신의 말대로 전쟁을 위한 준비로 바쁜지 별궁에 있는 시간이 적었다

별궁 안에서라면 자유롭게 지내도 된다는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는 마음대로 별궁 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별궁은 3개의 방과 2개의 욕실과 주방, 식당, 거실과 서재가 있었다

서재엔 카라마츠도 처음 보는 어려운 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거실에 있는 벽난로엔 항상 불이 켜져 있었다

별궁을 관리하는 시녀나 시종의 수는 10명도 채 되지 않는 소수로 카라마츠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림자처럼 별궁을 돌아다니며 관리했다

탑에 비하면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한 환경이었다

이틀에 한번씩 마츠요가 카라마츠를 찾아와 수다를 떨거나 식사를 함께 했고, 외로울 시간도 없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출전, 인가?”

“응-. 이제 가야지.”

아침 식사 자리

쵸로마츠와 오소마츠가 함께 한 가운데 오소마츠가 한 말에 카라마츠가 포크를 멈추고 되물었다

이 일주일간 오소마츠는 출전할 준비를 마쳤다

필요한 식량이나 무기도 챙겼고, 왕과 함께 의논해 새롭게 시도할 전략도 다 짜놓았다

식사를 마치고 마츠요에게 인사를 하고 나면 오소마츠는 수도 레드 버로우를 떠나 다시 전장으로 나가야만 했다.


...꽤 빠르군.”

“지금은 임시 휴전일 뿐이잖아, 아직 전쟁 중이라고 이 나라는.”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일주일간 이어지는 엘린의 장례식은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3일로 축소하여 끝났다

장례식도 마쳤고, 준비도 모두 끝난 와중에 더 오래 레드 버로우에 머물 이유가 오소마츠에겐 없었다

카라마츠는 조용히 고기를 썰며 새 약혼자의 출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해답을 찾으려 애썼다.

 

 

식사를 마친 오소마츠는 속전속결로 본성으로 발걸음을 옮겨 마츠요에게 인사를 마쳤다

다시 전장으로 나가는 오소마츠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며 마츠요가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를 배웅했다

별궁에 돌아와 출발할 채비를 마춘 오소마츠를 배웅하려 카라마츠가 거실로 나왔을 때, 쵸로마츠가 문득 오소마츠를 보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오소마츠 형도 이제수호의 키스를 받아야 하잖아?”

“아? 그게 뭐야?”

“수호의 키스!! 수업 시간에 배웠잖아!”

..., 그건가.”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는 오소마츠를 뒤로 하고,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기울인 카라마츠를 대신해 옆에 있던 토도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물었다

쵸로마츠는 친절히 카라마츠와 토도마츠, 쥬시마츠를 바라보며수호의 키스가 무엇인가 설명했다.


붉은 왕국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영웅왕, ‘에드윈 그레이는 붉은 왕국의 영토를 크게 넓힌 공이 있었다

매일 전장에 나가는 왕을 위해 왕비는 성을 떠나는 왕의 칼에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무사히 왕이 성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전장이라도 자신이 왕과 함께 있다는 의미를 담아 왕의 칼에 키스를 내렸고, 그것은 곧 붉은 왕국 전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후 붉은 왕국에서는 부부 혹은 그에 준하는 관계라면 반드시 전쟁에 나가기 전 수호의 키스를 받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

쵸로마츠의 설명에 카라마츠가 멋진 전통이라며 감탄하는 사이, 귀찮단 듯이 귀를 후빈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럼 우리 쵸로 씌도 받고 온 거야? 수호의 키. .”

“아?!”

“있잖아, 좋아하는 사람. , 레이카? 라는 녀석.”

...고향으로 돌아갔어.”

“엥? 언제?”

“어제.”

“엄머나~, 쵸로 씌가 싫어졌대?”

“아니거든!? 부모님이 걱정하시니까, 전쟁 중이고, 그래서....”

“그래그래, 그런 걸로 해줄게.”

“빨리 키스나 받아!!”

발끈하며 얼굴을 붉힌 쵸로마츠의 성화에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놀리는 것을 그만두고 카라마츠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통이라면 지켜야 한다

쵸로마츠의 따가운 눈빛에 담긴 재촉에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적이며그럼 빨리 끝내고 가자.” 하고는 허리에 찬 칼을 빼들었다.


“그거 아냐! 이 망할 형아!!”

“아얏!!”

스릉-, 날 선 칼을 빼들어 카라마츠에게 내민 오소마츠의 머리를 용서없이 가격한 쵸로마츠가 외쳤다.


“진짜 칼을 빼들면 어떻게 해!! 그게 아니라고! 수업 시간에 뭐 들었어!!”

“잤다!!”

“자랑이냐!!”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사이에 한껏 노성이 오가고 곧하아아아~.” 하고 지친 듯이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을 이었다.


"진짜로 칼에 하면 위험하니까 직접 키스하는 걸로 바뀌었다고.... 좀 들어라 제발.”

쵸로마츠에게 맞아 혹이 뽈록 튀어나온 머리를 매만지며 툴툴대던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거 기분 나쁘지 않겠어?”

아무리 전통이라지만 남자와 키스하는 것이 기분 좋을 리 없었고, 카라마츠도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도 오소마츠의 생각 없는 발언에 울컥한 것도 잠시, 오소마츠가 한 말이 자신에게 한 것이 아님을 깨달은 카라마츠가 멍하니 오소마츠를 마주 보았다

기분 나쁘지 않겠냐.’는 오소마츠의 걱정은 카라마츠를 향한 것이었다

카라마츠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오소마츠에게 전통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묘한 대답을 흘렸다

그래?” 하고 의아하단 듯이 되물은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따가운 눈길을 등돌리고 카라마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럼 한다.”

“읏.”

카라마츠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싼 오소마츠가 천천히 입술을 내렸다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입술이 스치듯 잠깐 머물다 떨어졌고, 카라마츠는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끝났으면 가자.”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비롯한 다른 시녀와 시종들의 배웅을 받으며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말에 올라 성을 떠났다.

 

 

성문을 지나 전장을 향해 걸으며 오소마츠는 저 높이 뻗은 푸른 하늘을 응시하고는 눈을 내려 쵸로마츠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남자여도, 입술은 부드럽구나.”

 

같은 시각, 별궁에 남은 카라마츠는 자신의 첫키스를 같은 남자에게 뺏기고 만 것에 절망하며 아버지에게 보낼 편지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 다시 읽어봐도 제가 보기엔 재미가 없네요... 2편은 재미있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2편은 목요일에나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내일 서울 올라갈 예정이라 글을 쓸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ㅠㅠ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WHITEPINE입니다.

저는 1화를 본방으로는 못봤는데...
트위터나 리뷰보니까 난리났더군요...

일단 이걸로 휴덕이나 탈덕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육둥이는 나쁘지 않아요...
제작진이 XXX들일 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1화는 다시 볼 수 있는 한 빨리 보고
마음 부여잡고 블로그에 챕쳐와 함께
비판 좀 하겠습니다.

대충 스포 보니까 B파트는 그렇게 심하지 않더라구요.
A파트는 신명나게 까준 후에
2화를 기다리겠습니다.


원래 어제 올리려했던 오소카라 장편 1화는
쓰는게 좀 늦어져 오늘 안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2화도 1화 올리고 이어 써서 올릴 예정이라
2기 1화보고 멘탈 터지신 분들게 소소한 위로가 됐으면 좋겠네요...

안녕하세요. WHITEPINE입니다!


이제 앞으로 하루만 지나면!! 2기가 방영되네요!!!


신나서 마구 발광을 치고 있습니다만ㅎㅎㅎ




이 신나는 마음을 이어서!


새 장편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 장편은 무려!! 오소카라에요ㅎㅎㅎ


제가 오소른을 밀긴 하지만, 오소카라도 버릴 수 없어서ㅎㅎ


제 블로그를 많이 들려주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오소카라도 좋아하고 가끔 글도 올립니다만


오소카라 장편 연재는 처음이라 두근대고 있습니다ㅎㅎ



왕자공주AU 이고


8~10편 정도면 완결될 것 같습니다ㅎ


매주 주말에 올릴 예정이고,


오소른 50제와 병행해서 연재하겠습니다ㅎㅎ



오소카라 지뢰이신 분들은 죄송합니다...ㅎㅎ


오소른 미시는 분들은 오소른 50제를 기다려주시면 될 것 같아요.




2기 시작에 맞춰서


2일 (내일!!) 1편, 2편 올리겠습니다.


근데 늦어질지도 몰라요...(쭈글)


늦어도 3일까진 올릴 예정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시면 좋겠어요ㅎㅎ


그럼 내일 1편 들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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