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핼로윈이 가까워져서 때를 놓치기 전에 써서 올려요ㅎㅎ


* 시마마츠 핼로윈 육둥이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오소마츠 : 늑대인간

카라마츠 : 좀비헌터

쵸로마츠 : 우시노 코쿠마이리(저주술)

이치마츠 : 뱀파이어

쥬시마츠 : 마법사

토도마츠 : 빨간망토


* 가을에 피는 벚꽃이 있다네요ㅎ 저도 조사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 공미포 8,721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24. 벚꽃/벚꽃놀이 (오소른/카라오소)   죽어버린-, 푸르 님 신청 키워드.




1.

 

-, 이거 안 먹히네.”

오소마츠의 한숨 섞인 말에 뒤따르던 육둥이 전원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핼러윈 의상까지 갖춰 입었건만, 꿈에 바라던 아름다운 여자들과의 즐거운 시간은 고사하고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고생만 했다.

질질 끌다시피 발을 돌려 집으로 향하는 육둥이의 얼굴은 가로등 아래에서도 어두웠다

누구랄 것도 없이 푹-, 한숨을 내쉰 육둥이가 검은 골목길 한가운데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편의점 문 앞에 멈췄다.

 

 

 

덜렁덜렁, 술이 가득한 비닐봉투를 들고 이미 딴 맥주캔을 손에 들고 흔들며 휘청거리는 여섯명

술기운이 올라 발개진 볼을 한껏 치켜 올리고 와하하- 웃음을 터뜨린 오소마츠가 동생들을 돌아보았다.


우햐~! 춥네~!”

안 추워? 카라마츠 형.”

, 얼어죽을 것 같다.”

, 쓰럽네! 정말!!”

오소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옆에서 걷던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좀비헌터라며 다 찢어진 셔츠와 바지를 입은 카라마츠가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리고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훌쩍, 콧물을 들이마시는 카라마츠를 향해 한심하다는 듯이 외친 토도마츠가 시선을 돌려 쵸로마츠를 응시했다.


, .”

쵸로마츠 형도 추워보이네.”

“…시끄럿.”

얇은 흰 천 하나 달랑 두른 쵸로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눈을 슬쩍 내리깔았다

윗사람처럼 거만하게 자신을 바라보며 끌끌 혀를 차는 토도마츠에게 낮게 으르렁거린 쵸로마츠가 제 입에서 나오는 허연 입김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쥬시마츠를 불렀다.


쥬시마츠는 걸치고 있는게 많아서 춥진 않겠네.”

! 안 추워요~!”

쵸로마츠의 말에 씩씩하게 대답한 쥬시마츠가 땅을 박차고 오소마츠에게 달려갔다

오소마츠 형아~!!” 하고 등에 매달린 쥬시마츠를 업자마자 걸음을 멈춘 오소마츠가 눈을 번뜩였다.


잠깐만. 오늘 핼러윈이지?”

? 그렇지.”

오소마츠의 질문에 지금 와서 뭘 묻냐는 투로 대답한 쵸로마츠가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쵸로마츠의 말에 한껏 눈을 빛낸 오소마츠가으흐흐~.” 하고 음흉한 미소를 피웠다.


그럼 작년처럼 그걸 해야지! ‘Trick or Treat’!”

? 누구한테? 이야미는 완-전 거지인데?”

오소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스마트폰 주소록을 확인하며 콧방귀를 끼었다

동생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예상했던 반응에 오소마츠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이야미는 볼 일 없고! 가야지~, . . 보 네를~!”

하타보라는 단어 하나하나를 끊어 말한 오소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씩- 웃었다

마치 악마가 제 계략이 성공해 만족스럽게 웃는 것 같은 미소에 발끝에서부터 소름이 돋았다

몸을 부르르 떨어 소름을 털어낸 토도마츠가 오소마츠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정말 오소마츠 형은 대단해…. 어쩜 그렇게, 천재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

그취~?”

하아!? 그게 칭찬할 일이냐!!”

경악해 외치는 쵸로마츠를 뒤로하고 동생들을 대동한 오소마츠가, 그럼 쳐들어가자~!” 하고 손을 흔들며 하타보네로 향했다.

 

 

 

 

 

2.

 

모처럼 하타보네를 왔건만…. 

그렇게 한숨지으며 육둥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탑을 응시했다

- 꼭대기 층에서 파티라도 여는지 어두운 밤하늘에 색색의 조명이 닿아 있었다

땅에서까지 울려 퍼지는 흥겨운 음악 소리

분명 크리스마스 때처럼 돈을 뿌리며 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육둥이가 눈썹을 지그시 치켜 들었다.


핼러윈 파티인가….”

조아쓰-!! 여기 이대로 있을 순 없지!”

또 뭔일을 하려고!?”

아쉬워 작게 중얼거리는 토도마츠에 이어 오소마츠가 불끈 주먹을 쥐었다

당당히 외치는 오소마츠에게 불안한 얼굴로 외치는 쵸로마츠가 곧이어 담을 타고 오르려는 오소마츠를 보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뭐해!!!”

쳐들어가야지! 우리도 파티에 넣어달라고 하자고~?”

초대 받지도 않았는데 무슨 염치로!?”
쵸로링~, 잘 생각해 봐. 하타보가 여는 파티라구~? 분명 쭉쭉빵빵 천상계 누님들이 가득일거라고~? 이 기회를 그냥 두고 볼 생각~?”

오소마츠의 비아냥 섞인 물음에 쵸로마츠가 인상을 팍 구겼다

담에 걸쳐있는 오소마츠의 도발에 넘어간 카라마츠가, 과연. 형님이군.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기다려다오, 카라마츠 걸-!” 하고 오소마츠를 따라 담을 타기 시작했다

이어 쥬시마츠와 이치마츠, 토도마츠가 높은 담 저편을 훌쩍 뛰어넘은 것을 보고 푹-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마지막으로 담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결국은 자기도 넘어올 거면서. 튕기긴, 체리마츠!”

맞아. ~말 촌시러. 체리마츠.”

시끄럿-!!”

육둥이가 한데 모여 담 너머 정원에 모였다

우뚝 솟은 탑 주변의 넓은 면적이 온갖 나무와 풀로 가득했다

마치 영국의 정원을 연상케 하는 넓고 화려한 정원에 육둥이가 모두 말을 잃었다

풀숲 사이사이에 주변 풍경과 어울리는 간접 조명이 정원에 가득한 빨갛고 노란 낙옆을 은근하게 비추고 있었다

바삭바삭, 땅에 떨어진 낙엽을 밟아 탑 주변으로 이동한 육둥이가 함께 이리저리 탑을 살폈다.


뭐해?”

쵸로마츠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들어갈 틈이 있나 찾아봐야지!”

정말로 들어갈 셈!?”
당근! 그래서 힘들게 담도 넘었잖아!”

어이어이, 그만 두자. 불법 침입이라구!”

헤헹-, 싫네요~. 뭐야? 쫄려? 쵸로링~.”

놀리는 건 됐으니까 그만하고 집에나 가자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비웃는 듯이 자신을 응시하는 오소마츠의 손을 낚아챈 쵸로마츠가 이마에 핏줄을 잔뜩 세워고 외쳤다

오소마츠를 따라 탑 안으로 들어가려는 동생들을 불러 모은 쵸로마츠가! 돌아간다!” 하고 오소마츠와 동생들을 잡아 끌었다.

아무리 찾아도 틈이 보이지 않아 반쯤 포기하고 있던 동생들도 할 수 없다는 얼굴로 쵸로마츠의 뒤를 따랐다.

-.” 하고 노골적으로 아쉬움을 드러내며 쵸로마츠에게 끌려가던 오소마츠가 갑자기 발을 멈췄다.


쵸로마츠, 저기 봐봐!”

!? 또 뭔데!”

제 등을 퍽퍽 때리며 멈춰 세우는 오소마츠에게 짜증난다는 얼굴로 뒤돈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 뭐야…. 저거….”

- 마이 갓.”
….”

우왓-!! ~단해요~!!”

계절감 어긋나는데….”

쵸로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 말을 잃었다

이어 동생들도 오소마츠가 가리킨 곳으로 눈을 돌려 한 마디 감탄사를 내뱉었다

빨갛고 노란 단풍 가운데 홀고 고고히 서 있는 분홍색의 꽃

나무 가득 분홍빛의 꽃이 활짝 피어 작은 꽃잎이 바람을 따라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말을 잃고 단풍 사이에서 만개한 벚꽃을 응시한 육둥이가 천천히 벚꽃 아래로 다리를 옮겼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은 육둥이는 너나 할 것 없이 비닐봉투를 열어 맥주캔을 땄다.

 

 

 

 

 

3.

 

벚꽃 아래 편의점에서 산 안주를 펼치고 하나, 둘 씩 비운 맥주캔이 바닥에 뒹굴었다

하타보네 정원에 오기 전에 이미 한잔 한 덕분인지 육둥이는 한 캔을 다 비우자마자 벌겋게 익은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우햐~! 벚꽃 아래서 마시는 술 최고—!!”

“““““최고~!!!”””””

높이 캔을 들고 외친 오소마츠를 따라 동생들이 맥주캔을 들어 신나게 부딪쳤다

, 하고 옅은 금속음을 내며 부딪친 캔은 곧 육둥이의 뱃 속으로 맥주를 부어 넣었다

알큰하게 퍼지는 술기운과 그에 맞춰 따끈해지는 몸.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적당히 차가웠고, 그 바람에 흔들리는 벚꽃 나무는 아름다운 벚꽃잎을 뿜어냈다

분홍빛 벚꽃 옆에는 붉은 단풍이 하늘하늘 바람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절경, 눈보신, 최고의 안주에 오소마츠는 한껏 들뜬 기분이 되어 해맑게 웃었다

빈 캔을 휙-, 옆으로 던지고 새 맥주캔을 따 벌컥벌컥 마시는 오소마츠 옆에서 도수가 낮은 칵테일을 홀짝이던 토도마츠가 쵸로마츠를 보며 픽-,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그 짚 인형, 쵸로마츠 형이 직접 만든거야? 완전 촌시려-.”

아아?! 뭐가 촌스럽다는 거야!? 짚 인형의 기본이잖아!!”

그러니까 촌시럽다는 거야~. 근데 그걸로 누굴 저주하려고?”

촌스럽다는 말에 발끈하는 쵸로마츠를 보며 한차례 더 비웃음을 날린 토도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쵸로마츠의 말대로 가장 기본적인 모양을 하고 있는 짚 인형에는 그 흔한 사진 하나 붙어있지 않았다

짚 인형을 이용한 저주는 짚 인형에 저주하는 대상의 사진을 붙여서 쓰는 거라고 생각한 토도마츠의 질문에 쵸로마츠가 캔에 남은 미지근한 맥주를 넘기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오소마츠 형.”
. 그래.”

하아?!?!? 이 카리스마 레전드 횽아를 저주할 일이 뭐가 있는데?!”

쵸로마츠의 대답에 이해한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인 토도마츠를 제치고 불쑥 몸을 내민 오소마츠가 핏대를 세우고 외쳤다

-, 하고 혀를 찬 쵸로마츠가 차갑게 오소마츠를 노려보며겁나 많거든!?” 하고 언성을 높였다.


뭐가 많은데!!”

하나하나 말해줄까!?”

그래! 어디 한 번 말해봐!”

언성을 높이는데 그치지 않고 벌떡 일어나 서로의 멱살을 잡고 떠들기 시작하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술을 홀짝였다

제 위에서 벌어지는 언쟁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토도마츠가 스마트폰을 켰다

익숙하게 잠금화면을 풀자마자 갤러리를 연 토도마츠가 점점 더 커지는 두 형의 목소리에 살포시 눈썹을 찌푸렸다.


-, 정말 시끄럽네!! 딴 데서 싸워!”

-가 불만인데 이 딸딸마츠!!”

누가 딸딸마츠냐!! 정말 네 놈의 그런 점 짜증나!!”

하아!?”

-, 진짜!! 일단 이거 마시고 좀 진정해 봐!”

치솟는 화에 씩씩거리던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토도마츠가 내민 술을 홱 낚아채 잡고 그대로 벌컥벌컥 마셨다.


으엑!? 이거 엄청 쎈 술이잖아!!”

. 좀 닥치라고.”

어이! 드라이 몬스터-!!!”

한 모금 마시자마자우엑-!!” 하고 뜨거운 숨을 뱉은 오소마츠가 캔에 쓰인 도수에 경악하며 토도마츠를 향해 외쳤다

50도에 근접한 독주는 입 안은 물론이고 식도까지 불을 먹은 것처럼 뜨겁게 달궜다

안 그래도 발갛던 볼을 더 붉게 물들이고 술 냄새 물씬 풍기는 숨을 내뱉으며 진저리를 친 오소마츠가 턱, 하고 빈 캔을 내려놓은 쵸로마츠를 놀라 응시했다.


? 쵸로마츠…? 혹시 다 마셨어!? 그 독한 걸!?”

…?!”

, 취했다. 이거.”

아아?! 누가 취해따는 거야! 아직 마시수 이쒀어!! 더 가죠와!!”

아니, 너 혀 마구 돌아가고 있으니까.”

토도마츠가 내민 술이 독한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전부 마신 쵸로마츠가 완전히 새빨개진 얼굴로 딸꾹질을 하며 오소마츠를 손가락질했다.

비닐봉투에 남은 술을 집어들려는 쵸로마츠를 억지로 막은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보며어구야-.”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글고! 이건 저쥬가 아니라고~!”

““…?””

쵸로마츠의 외침에 쵸로마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비닐봉투를 옮긴 오소마츠와 스마트폰을 만지던 토도마츠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렸다

여전히 딸꾹질을 하며 휘청대던 쵸로마츠가 바닥에 놓아둔 짚 인형을 집어 들었다.


이건 그거야. , 샤랑의 쥬문! 여기에 오쇼마츠 형의 머리카락이랑 샤진이 드뤄있따구우~.”

…?”

이걸로 오쇼마츠 형도…, 으흐흐흐흐.”

우왓-, 징그러.”

히에에….”

쵸로마츠의 말에 멍청히 반문한 오소마츠가 짚 인형을 소중하다는 듯이 껴안고 얼굴일 비비적 거리는 쵸로마츠를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카라마츠 옷을 입은 이치마츠가 거짓으로 고백했을 때보다 더 무섭다

절로 돋는 소름에 치를 떨며 쵸로마츠에게서 저만치 거리를 둔 오소마츠가그건 좀 무서운데.”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로 오쇼마츠 형이랑~, 요런 거 죠런 거 다~ 할 수 있지…. 흐흐흐흐흐-.”

잠깐! 진짜로 뭔가 기분 나쁘니까 그만 둬!?”

무엇을 상상하는지 침을 길게 늘이고 묘한 웃음을 흘리는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서둘려 쵸로마츠의 손에 들린 인형을 뺏었다

!! 뭐하는 거야! 내놔!” 하고 매달리는 쵸로마츠를 떨어뜨리고 피하며 짚 인형을 사수한 오소마츠가 토도마츠 뒤로 숨자마자, 충혈된 눈으로내 놔아~!!” 하고 다가오던 쵸로마츠가 픽-, 꼬꾸라졌다

드르렁-, 코까지 골며 잠든 쵸로마츠의 모습에 깊이 안도하며 떨리는 가슴을 붙잡은 오소마츠가 토도마츠 뒤에서 기어나왔다.


쵸로마츠가 먼저 잠들어서 다행이다…. 그럼 이걸,”

손 끝으로 쿡쿡 쵸로마츠를 찔러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거침없이 짚 인형을 뜯기 시작했다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을 징그럽게 바라보며 손가락 끝으로 달랑 집어들어 땅에 버린 후, 인형 안에 들어있는 자신의 사진을 꺼낸 오소마츠가 멍청히 중얼거렸다.


이건 또 언제 찍은겨….”

방석을 접어 머리에 베고 침까지 질질 흘려가며 잠든 자신의 사진에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 그거 내가 찍었엉~.”

? 톳티-? 근데, !! 왜 그 술 마신 거야!!”

~? 어랴~? 아하하, 쓰다 했더니 독한 술이었넹~. 톳티-, 실수우~.”

으아…, 귀여운 척 하기 시작했어-.”

오소마츠가 남긴 독주를 전부 마신 토도마츠가 슬적 오소마츠 옆으로 다가와 오소마츠의 어깨에 턱을 괴었다.


, 봐봐~.”

, 술 냄새!”

내가아~, 오소마츠 형 사진을 또 엄췅 찍었징~.”

?”

오소마츠 옆에 앉아 팔짱을 낀 채로 스마트폰 갤러리를 연 토도마츠가 배시시 웃으며 자랑스럽게 사진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건 오소마츠 형이 배 내놓고 자고 있던 거고~, 이건 밤에 우리 몰래 라면 먹을 때~, 이건 카라마츠 형이 까준 귤 먹으면서 웃을 때~, 요건 엄마가 웬일로 칭찬해줘서 부끄러워 할 때~. 이때 정말 귀여웠는데~. , 이것도! 오소마츠 형이 고딩 때 축제에서 여장-,”

—!!! 그건 어떻게 찍었어!! 너 이때 스마트폰 없었잖아!!”

친구가 찍은 걸 받았어.”

!?”

왜냐니~, 귀엽잖아~. 세라복 입은 오소마츠 형.”

하아!?”

찰칵, 하고 뜬금없이 울린 촬영음에 오소마츠의 눈이 동그래졌다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웃으며오소마츠 형의 놀란 얼굴도 확보-!”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토도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는 말 그대로 얼이 빠지고 말았다.


오늘 오소마츠 형 코스튬도 엄청 귀여워어~. 나만큼 귀여워~.”

에에…, 톳티-. 너 엄청 취했어.”

~, 털 복슬복슬해~. 오소마츠 형, 평생 이 모습이면 내가 키워줄게~.”

안 듣고 있어, 이 자식….”

늑대인간으로 변장해 털이 풍성한 오소마츠의 얼굴 주변을 이리저리 만지며 털을 손가락에 넣고 꼬던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았다.


내가 오소마츠 형 키우면~, 매일 산책도 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구~, 또 엄-청 예뻐해줄텐데-….”

어이~? 톳티-?”

음냐아….”

감은 토도마츠의 눈 앞에서 손을 흔든 오소마츠가 완전히 잠든 토도마츠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알고 싶지 않은 동생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묘하게 찜찜한 기분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오소마츠에게 검은 망토를 질질 끌며 이치마츠가 다가왔다.


오소마츠 형.”

이치마츠?”

뭔가, 복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오소마츠 형 맛있어 보여.”

!?”

너도 취했냐!!!’ 하고 속으로 외치며 다가오는 이치마츠를 피하려고 해도 토도마츠가 어깨를 기대어 잠들어 있는 탓에 자유롭게 도망치지도 못하는 상황

속수무책으로 제 앞에 털썩 엉덩이를 내린 이치마츠를 오소마츠가 불안하게 응시했다

검은 망토와 반듯한 정장을 갖춰 입은 이치마츠는 제 복장의 컨셉에 맞추어 날카로운 송곳니를 끼우고 있었다.


, 이치마츄~? 횽아는 맛 없다구~?”

. 일단 맛 보고.”

히익!!!”

덥썩-, 멱살을 잡아 쭉 당기며 다가오는 이치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비명을 삼켰다

오소마츠가 걸치고 있는 빨간 체크무늬 셔츠를 잡아늘려 맨살을 드러낸 이치마츠가 그대로 오소마츠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꺄아———!!!”

두껍고 까끌거리는 미지근한 혀가 목을 타고 올라오는 감각에 오소마츠가 결국 비명을 질렀다

토도마츠가 기대고 있는데다 이치마츠가 단단히 멱살을 잡고 있어 움직일 수 없는 오소마츠가 간신히 팔 하나를 빼내 벚꽃 나무 아래서 꽃구경을 하고 있는 두 동생을 불렀다.


카라마츠!! 쥬시마츠!! 도와줘~~!!”

팔을 파닥이며 간절히 도움을 청한 목소리가 다행히 닿았는지 벚꽃을 올려다보고 있던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뒤돌았다

거의 이치마츠에게 깔리려는 기세로 기울어진 오소마츠를 본 카라마츠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파앗-!’ 하는 효과음이 날 정도로 활짝 웃은 쥬시마츠가왓세왓세-!” 하고 오소마츠를 향해 뛰었다.


오소마츠 형아! 꽃이 엄~~청 예뻐!!”

흐에?”

도와달라는 오소마츠의 말은 싸그리 무시한 채, 말을 마친 쥬시마츠가 오소마츠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번쩍 높이 들어올렸다

쥬시마츠의 기세에 이치마츠는 뒤로 넘어지고 토도마츠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이 들어올려져 멍청히 눈을 깜빡이는 오소마츠를 향해 해맑은 미소를 보여준 쥬시마츠가 오소마츠를 안아든 채로 나무 쪽으로 향했다.


, 쥬시마츠?”

가까이서 보면 더 예뻐!!”

“…?”

쥬시마츠의 말에 일말의 불안을 느낀 오소마츠가 미처 무슨 말이냐 되묻기도 전에, 오소마츠의 몸이 공중에 떴다

있는 힘껏 오소마츠를 위로 던진 쥬시마츠가 밝게 웃으며 어린 아들과 놀아주는 아버지처럼 외쳤다.


높이높이~!!”

꺄아아아아아———!!!”

바로 코앞에 벚꽃나무의 두꺼운 가지가 보였다. 땅에서 멀어져 공중에 떠 있다는 감각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가장 최고점에 도달한 몸이 멈췄다

곧 중력에 이끌려 바닥으로 추락할 것을 예감한 오소마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자마자, 야속한 중력은 오소마츠를 땅으로 끌어당겼다

빠르게 추락하는 몸, 엄청난 고통을 예감한 오소마츠가 두눈을 질끈 감았다

당연히 어마무시하게 땅에 박힐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참이 지나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고, 의아한 얼굴로 눈을 뜬 오소마츠가 자신을 안아든 쥬시마츠와 눈이 맞았다.


그럼 한 번 더-!!”

, 잠깐!! 쥬시마ㅊ,”

또 말을 끝내기 전에 하늘로 던져 올려진 오소마츠가 새파란 얼굴로 헛웃음을 흘렸다

지면보다 높이, 가까이서 보는 벚꽃은 시야를 전부 가득 채우고 푸른빛의 달빛과 섞여 은은한 분홍빛을 풍기고 있었지만 오소마츠에게 벚꽃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

다시 추락하는 몸에 이번에도 제발 쥬시마츠가 제대로 잡아주길 빌며 두 눈을 감은 오소마츠가 부유감에 눈을 떴다.


예쁘지? 그럼 한 번 더-!!”

아니!! 이제 괜찮으니까-!!! 쥬시마츠으~~!!”

-? 그래애~?”

, 쥬시마~!?! 그 정도면 형님도 만족했을 거다!!”

거세게 고개를 저으며높이높이를 만류하는 오소마츠에 이어 카라마츠도 당황한 얼굴로 쥬시마츠를 향해 외쳤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깜빡인 쥬시마츠가 높이 들어올린 오소마츠를 내려주었다

발이 지면에 붙어있다는 것에 감격하며 슬쩍 새어나온 눈물을 닦아낸 오소마츠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쥬시마츠를 불렀다.


쥬시마츠?”

! 오소마츠 형아도 예뻐!”

…?”

의미불명의 말을 끝으로 쓰러지듯 잠든 쥬시마츠를 안아든 오소마츠가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쉬며 쥬시마츠를 옮겼다.

제일 먼저 잠든 쵸로마츠 옆에 이치마츠, 토도마츠, 쥬시마츠를 눕히고, 추운지 몸을 웅크리는 쵸로마츠에게 이치마츠의 망토를 덮어준 오소마츠가히유-.” 하고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4.

 

흐드러지게 쏟아지는 벚꽃 아래, 멀쩡히 남아있는 건 두 사람

오소마츠는 땅에 널부러진 빈 캔을 치우는 카라마츠를 보며 작게 하품하고, 제 옆으로 다가온 카라마츠를 보며 능글맞은 미소를 피웠다.


웬일로 아직 멀쩡해~?”

, 위스키의 힘이지.”

또 보리차 마셨어!? 언제 산 거야. 난 분명 술만 샀는데….”

카라마츠가 든 봉투에 슬쩍 보이는 보리차라고 쓰인 페트병

어이없다는 얼굴로 카라마츠에게 가벼운 핀잔을 준 오소마츠가 한데 어울려 흩날리는 벚꽃와 단풍을 응시했다

고개를 돌리면 평온하게 잠든 동생들이 있고, 반대로 돌리면 카라마츠가 자신과 함께 벚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무릎을 안은 채, 작게 카라마츠를 불렀다.


-?”

안 추워? 그 옷.”

조금 춥다. 마이 스위-트 울프 씨의 털이라도 빌리고 싶을 정도로.”

, 꼬리.”

.”

-, 하고 특유의 잘난 척하는 미소를 띄운 카라마츠에게 간결히 답한 오소마츠가 코스튬에 붙은 늑대 꼬리를 카라마츠의 무릎 위에 올려주었다

분명 싸구려 코스튬이었지만 묘하게 꼬리의 털만큼은 부드러웠다. 슥슥-, 제 무릎 위에 올려진 꼬리를 쓰다듬으며 벚꽃을 응시하던 눈을 돌렸다

늑대 탈을 벗겠다는 생각도 없는지 털복숭이가 된 채로 처연히 벚꽃을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옆모습에 피식-, 미소를 흘린 카라마츠가 꼬리를 쓰다듬던 손을 훌쩍 들어올렸다.


“…뭐야.”

울프 씨가 귀여워서.”

“….”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한쪽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린 오소마츠와 눈이 맞았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눈동자에 자신이 비치고 있는 것이 기뻐, 가슴 가득히 퍼지는 행복에 부드럽게 웃은 카라마츠가 대답했다

카라마츠의 대답에 놀랐는지 입을 꾹 다문 오소마츠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들어올리고 손톱을 세웠다.


나는 귀여운 게 아니라 멋있는 거라구!! 잡아 먹어버린다!?”

하핫, 대사 칠 대상이 틀린데.”

빨간 망토를 입고 잠든 토도마츠를 가리키며 오소마츠의 대사를 흘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을 잡았다

망연히그러네.” 하고 카라마츠의 말에 수긍하며 카라마츠의 손이 이끄는 대로 몸을 낮춘 오소마츠가 일순 표정을 바꿔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냈다.


카라마츠~, Trick or Treat!”

으음~? 곤란한 울프로군. 울프에게 줄 만한 사탕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 어떤 트리트를 보여줄 거지~? 마이 큐트 울프—?”

아야야야야, 갈비뼈 부러진닷!!”

어째서!?”

키득키득, 짧은 웃음을 끝낸 오소마츠가 빙긋- 웃으며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스스로크앙-!” 하고 효과음을 내며 입을 크게 벌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콧등을 가볍게 물었다

아얏!” 하고 콧등을 문지르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미소와 함께 혀를 낼름 내밀었다

붉은 혀 위에 분홍빛의 벚꽃잎이 하나

카라마츠의 콧잔등에 살포시 앉아있던 꽃잎을 과시하며 즐겁게 웃은 오소마츠를 따라 카라마츠의 입가에도 다정한 미소가 번졌다.


내년에도 또 올까.”

-, 내년엔 제대로 허락 받고 말이지.”

~? 별로 상관 없지 않아? 그냥 와도.”

불법 침입은 좋지 않다. 오소마츠.”

서로의 체온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 앉은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아래로 춤추며 내려오는 벚꽃잎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마주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 담긴 깊은 애정에 수줍은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슬쩍 눈을 감았다

가볍게 감긴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모습에 짙은 눈썹을 늘어뜨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얼굴 선을 따라 손가락을 흘렸다

가는 턱선을 따라 쓸어올린 손가락에 부드러운 살갗이 닿고, 뜨거운 입술이 살포시 오소마츠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 시마마츠의 늑대인간 오소마츠 엄청 귀엽습니다!!


* 여기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4편 들고 왔습니다^^

 이번 왕자공주 장편은 여우골 이야기보다 길어질 것 같아요...

 아마 완결이 13화...ㅎㅎㅎ;;


* 여전히 썸을 타고 있는 오소카라입니다ㅎ


* 소설에 나오는 '붉은 왕국'은 북유럽과 바이킹족을 모델로 참고했어요.


* 공미포 10,521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눈을 창밖으로 돌렸다

이어질 말을 억지로 무시하고 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푹-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망설이지 않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조만간 왕위 계승자 발표가 있을 테니까, 준비해.”

“….”

어이!”

꽃잎이 내리듯 차분히 대지에 가라앉는 하얀 눈송이를 보며 딴청을 피우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제야 깊은 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창에서 눈을 뗐다.


.”

준비해 두라고.”

“….”

오소마츠는 또다시 쵸로마츠에게서 눈을 돌렸다

거실에서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는 장작을 지그시 응시하더니 또각또각 거실로 다가오는 구두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 뭔가 중요한 이야기 중이었나…?”

쵸로마츠와 오소마츠 사이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기류에 카라마츠가 마른침을 삼키고 눈썹을 늘어뜨렸다

티격태격 대긴 해도 사이가 좋은 편에 속했던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사이에 긴장된 공기가 잔뜩 움츠려있었다

카라마츠를 보자마자 푹신한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활짝 웃으며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다.


요즘 할 일 없어서 심심하지 않아? 겨울이라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말이야!”

…, ?”

그렇다고? 그럼 나가야지! 옷 갈아입자!!”

, !?”

,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의 부름도 무시하고 카라마츠의 손을 잡아 끌어당긴 오소마츠가 당황하는 카라마츠와 함께 거실을 나섰다

오소마츠와 교대하듯 거실로 들어온 이치마츠가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는 쵸로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소마츠 형이 하고 싶은대로 하게 놔둬, 쵸로마츠 형. 오소마츠 형도 다 알고 있을 테니까….”

나른한 이치마츠의 목소리로 내뱉은 그 말에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실렸다

오소마츠에게 있어서 아마도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자유

이치마츠는 그것을 빼앗고 싶지 않았고, 쵸로마츠 역시 그 마음은 같았다

오소마츠가 떠난 거실에 남겨진 두 동생이, 앞으로 형이 헤쳐 나가야할 역경을 떠올리고 무겁게 입을 다물었다.

 

 

 

 

 

2.

 

옷장 깊숙이에 숨겨 놓았던 평민의 옷을 꺼내는 김에 엄마가 준비해 주었던 정장을 함께 꺼냈다

공주를 위해 엄마가 손수 만든 정장은 한눈에 보아도 고급진 원단에 짙은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꺼낸 옷들을 침대에 획 던져놓고 뒤돌자, 나를 따라 침실로 들어온 공주가 멀뚱히 서 있었다.


뭐해? 갈아입어.”

에엩?! 지금 말인가?”

.”

놀라는 공주에게 대답하고 옷을 벗었다

답답하게 몇 겹이나 입고 있던 정복을 벗어 침대에 던지고 펼쳐 놓았던 평민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코트를 벗고 베스트, 셔츠를 벗었다

바지도 벗어 침대에 올리고 평민의 바지를 입는다

혹독한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평민의 옷이라도 동물의 털이나 따뜻한 털실을 소재로 만들어져 있어 춥지는 않았지만, 정복만큼의 화려함이나 고급진 느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붉은 빛이 도는 짙은 갈색의 평민옷을 입고, 낡은 털신을 신고 침대에서 일어나자, 아직도 푸른 드레스를 입고 있는 공주가 눈에 띄였다.


? 왜 아직도 안 갈아입었어?”

, 아니…. 저기,”

같은 남자끼리 부끄러울 것도 없잖아.”

그게 아니라, …, 드레스를…, 혼자 벗을 수가 없다.”

?”

공주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물쩍거리며 다음 말을 망설이는 공주를 재촉하자, “뒤에 있는 끈을 풀어야 벗을 수 있다.” 하고 공주가 남은 말을 이었다

- 나오는 한숨을 내뱉고 공주의 뒤로 돌자, 과연 이건 혼자 못 벗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레스라는 건 귀족들만이 있는 것이고, 귀족들에겐 당연히 시녀가 붙어있으니 혼자 벗을 수 없는 드레스를 입어도 상관없다지만, 이 녀석은 남자고 이렇게 철저하게 여성용 드레스를 따라할 필요가 있어?! 

순간 샘솟는 분노를 억누르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도 드레스 벗겨 본 적 없다고….”

, 끈만 풀면 되니까!”

내 불평을 들었는지 공주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주의 지시를 따라 드레스의 등에 달린 끈을 하나씩 풀었다

X자로 어긋나 자잘하게도 묶여있는 드레스 끈을 하나씩 풀다보니 나도 모르게 억눌렀던 분노가 다시 머리를 들었다.


끈 겁나 많아!!”

, 미안하다….”

공주의 잘못은 아니지만 내 짜증에 사과하는 공주에게 작게 사과하고, 마침내 그 많던 끈을 다 풀었다

휘유~, 하고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공주는 드레스 끈이 전부 풀린 것을 확인하고 침대에 올려둔 정장을 집어들고 침실 구석에 세워진 파티션 뒤로 들어갔다

들어가 숨어서 갈아입을 필요 없을 텐데…. 

침대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산을 보고 있는 사이, 공주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엄마가 만들어준 남성용 정장이 제법 잘 어울렸다

아니, 그 전에 남자옷을 입은 걸 보는게 처음인가

오랜만에 입은 남자옷이 어색한지 쭈뼛거리는 공주의 손을 잡고 침실을 나왔다

어딜 가냐 묻는 공주에게 씩- 웃어주고 별궁을 나와 성의 뒷문으로 향했다

시녀나 하인들이 드나드는 아주 작은 쪽문

문을 지키는 문지기도 겨우 2명인 뒷문은 문지기에게 미리 말만 해둔다면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성 밖 마을은 시장과 여러 길드가 모여 있어 항상 활기가 넘쳤다

시장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손님을 모으려는 상인들의 커다란 외침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금발과 푸른 눈동자가 신기한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피는 공주의 손을 잡았다

어리벙벙하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구경하는 모양이 곧 인파에 쓸려 길을 잃을 것처럼 보였다

맞잡은 손은 군데군데 굳은살이 박히고 피부도 두꺼워서, 굉장히 딱딱하고 두터웠지만, 그러면서도 너무나 따뜻했다.


, 오소마츠.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괜찮은 건가?”

무슨 걱정이 든 건지, 짙은 눈썹을 잔뜩 늘어뜨리고 묻는 공주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웃었다

허름한 평민옷을 입은 남자와 짙은 청색 고급 정장을 입은 남자

한눈에 봐도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동안 내가 이 마을에서 쌓은 평판이라면 문제 없다.


웬 떠돌이 한량이 도련님 하나 꼬셔서 돈줄로 데리고 나온 걸로 보일테니까 걱정 마.”

…?”

 그게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쳐다보는 공주를 끌고 시장 거리를 헤치고 나갔다.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밝은 얼굴에는전쟁이 주는 어둠이 보이지 않았다

치열하게 전투가 일어나고, 생명이 무참히 스러지는 곳은 오직 국경 주변 전장뿐

처절하게 싸우는 군인들과 달리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는 스처가는 표정들에 안도감과 함께 묘한 분노가 들끓는다

뒤에서 힘겹게 뒤쫓는 공주를 끌고 마을에 내려왔을 때마다 찾았던 잡화점으로 발을 재촉했다.

 

 

여어-, 올슨. 오랜만이다?”

뭐 그렇지~. 전쟁 중이었잖아? 병사로 안 끌려갈려고 시골까지 내려갔었다구~.”

마을에서 가장 큰 잡화점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서 있떤 마이클 아저씨가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다

마을에 내려오면 나는왕자 오소마츠가 아닌떠돌이 한량 올손이 된다. 올슨이 내걸만한 변명을 말하며 카운터에 기댔다.


요즘 어때?”

말도 마라. 전쟁 중이라고 장사 안 되고, 지금은 겨울이라고 안 되고….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에이~, 마을에서 제일가는 아저씨가 장사 안 되면, 다른 아저씨들은 벌써 굶어 죽었지~.”

그건 그렇지-. 하하핫!”

호쾌하게 웃는 아저씨가 이어 잡화점 안을 둘러보며 신기하단 눈을 빛내는 공주를 눈짓했다.


저 녀석은?”

~잣집 도련님. 돈줄 좀 될까 해서 꼬셨지~.”

너도 참…. 적당히 빨아먹고 보내줘라.”

알고 있어~. 나도 그렇게 냉혈한은 아니라구~.”

아저씨의 엄포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불어 오늘 열릴 도박판의 장소를 물어보았다

항상 열리던 그곳이라고 답해준 아저씨가 스윽- 몸을 굽혔다

아저씨에 맞춰 몸을 낮추자, 아저씨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전에 애플파이 나누어준 미란다 아주머니 말이야….”

.”

남편분이 병사로 나갔다가 돌아가셨대. 그 이후로 계속 혼자 일하시다가 며칠 전에 쓰러졌대나봐. 그 아들이 약값 벌려고 일하더니, 양아치놈들이 바람을 넣어서 도박판에 종종 나타나나 뵈. 혹시나 가서 본다면 말 좀 해서 이쪽으로 보내라.”

“OK.”

아저씨에 맞춰 최대한 목소리를 죽이고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3.

 

어딜 가는 건가?”

카라마츠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빙그레 웃으며 집게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갔다

-.” 하고 소리를 줄이는 오소마츠를 따라 카라마츠가 숨소리를 죽이고 눈썹을 찌푸렸다

활발한 시장통,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 구경을 하며 들뜬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타국과 활발히 무역을 하는 푸른 왕국에서도 금발의 외국인을 본 적은 있었지만, 국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은 머리가 아닌 다양한 머리색을 가진 것이 카라마츠가 보기엔 너무나 신기했다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몸집과 큰 키

머리 하나 이상 높이 솟은 그들을 구경하며 시장을 돌아다니고, 푸른 왕국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기계나 도구들을 보았다

대장장이에서는 푸른 왕국의 것보다 훨씬 우수한 품질의 무기와 갑옷이 걸려져 있었다

시장에서 파는 음식이나 진열된 과일, 야채의 종류는 푸른 왕국보다 적었지만, 타국의 국민들이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다니는 시장은 그 풍경만으로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사방을 보며 구경을 하는 카라마츠를 끌고 오소마츠가 데려온 곳이 바로 이곳이다

술집으로 들어가나 싶었더니, 바에 서 있던 주인에게 오소마츠가 뭐라 말하자 곧 술집 주인이 가게 뒤편을 가리켰다

뒤쪽에 있는 쪽문으로 나와 뒷골목으로 들어왔다 싶었더니 바로 어두운 골목을 지나, 검은 문 앞에 섰다

단단히 잠긴 문 앞에 선 오소마츠가 똑똑똑, 일정한 박자로 문을 두드리자, 스륵- 문에 직사각형의 구멍이 열리고 싸늘한 검은 눈이 카라마츠와 오소마츠에게 박혔다.


감자.”

들어와.”

오소마츠가 댄 암호에 철컥, 중후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시장에서 본 그 어떤 사람들보다 더 거대한 몸집을 가진 사내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들어갈 수 있도록 몸을 비켰다

간신히 문을 지나 깜깜하고 긴 복도를 걸어 나오자 연약한 촛불에 의지해 앉아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다수의 원형 테이블이 있는 방이 나왔다

창문 하나 없는 방 안에는 사내들이 내뿜은 담배 연기로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너무나 밝고 활기차던 시장의 분위기와 상반된, 어둡고 정체된 공기에 당황한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뒤에 바짝 붙어 마른침을 삼켰다.


, 오소마츠…. 여긴 대체….”

불법 도박장. 그리고 성을 나오면올슨이라고 불러.”

도박장…?”

. , 저쪽으로 가자.”

도박장이라는 단어에 황당한 얼굴을 하는 카라마츠를 끌고 자리가 두개 비어있는 테이블로 발을 옮긴 오소마츠가 아무렇지도 않게 빈 의자에 엉덩이를 내렸다

멀뚱히 서 있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아 끌여 옆자리에 앉힌 오소마츠가 저를 쳐다보는 사내들에게 멀쭉이 웃었다.


오랜만이야~, 아저씨들.”

올슨이냐. 오늘도 지려고 왔냐?”

아니야~, 오늘은 좀 다르다구~. 내 승리의 여신을 데려왔으니까!”

, 웬 도련님이냐?”

이 녀석이 오늘 나를 승리로 이끌어 줄 승리의 여신~!”

그건 두고 봐야지.”

카라마츠를 가리키며승리의 여신이라고 너스레를 떤 오소마츠가 딜러가 나눠주는 카드를 집어들었다

오소마츠가 하는 것을 따라 자신 앞에 던져진 카드를 집어든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 이걸로 뭘 하면 되나?”

-, 적당히 하면 돼.”

어이어이, 올슨. 규칙도 모르는 녀석을 끌고 오면 어쩌냐.”

괜찮아~. 이런건 잃으면서 배우는 거잖아~? 일단 시작하자고? 나는 바로 100 올릴게.”

-, 오늘은 통이 큰데? 좋아, 나도 100 올린다.”

나는 다이.”

레이즈.”

오소마츠가 판돈을 올리고 바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따라 설명 듣지 못한 규칙을 홀로 추리해가며 게임에 집중했지만, 초심자의 행운(begninner’s luck)도 잠시

카라마츠는 도박장에 들어오기 전 오소마츠가 나누어준 돈을 모두 잃고 오소마츠의 게임을 구경하는 처지가 되었다

오소마츠는 선수들 사이에서 이기고 지는 것을 반복하다 막판에 맞은편에 앉은 아이에게 모든 돈을 뺏기고 말았다.


———!! 패는 좋았는데!! 올인하지 말걸~!!”

잘 가라, 올슨. 네 여신은 가짜였던 모양이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하는 오소마츠를 조롱하는 사내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넨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와 함께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소마츠는 돈을 챙기는 검은 피부의 아이를 흘겨보더니, 다음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아이를 불렀다.


어이, 잠깐 따라 나와. .”

-, 올슨의 화풀이가 시작된 건가?”

초보니까 너무 심하게 하진 말라고~.”

나도 사람이야~? 심하겐 안 한다고~. ~깐 요 꼬맹이한테 인새의 쓴맛을 좀 보여주려고. 꼬맹아? 설마 이 올슨님의 돈을 전-부 따 먹어놓고 그대로 발 빼려고~?”

싱글싱글 웃으며 사내들에게 농담을 던진 오소마츠가 움찔거리는 검은 피부의 아이를 붙잡고 도박장을 나왔다

뭘 하려는 거냐고 얼굴로 물어오는 카라마츠를 옆에 세운 오소마츠가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뒷골목에서 아이의 손을 놓고 가만히 아이를 응시했다.


, ‘라구엘이지? 미란다 아주머니 아들.”

…? 저를 어떻게.”

마이클 아저씨한테 들었어. 너말이야, 돈이 궁하면 도박장에서 딸 생각하지 말고 착실히 일을 해야지.”

!! 그러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아! 나는 빨리 돈이 필요해서…!!”

그렇다고 도박~?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애가 도박은 너무 빠르다고. 오늘 딴 내 돈으로 당분간 버텨. 그리고 또 돈이 필요하면 마이클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해. 이자는 비싸게 받겠지만, 마이클 아저씨라면 반드시 도와주실거고. 그걸로도 모자라면 나도 도울테니까.”

 


 

-, 저 녀석만 없었으면 더 놀다 가는 건데.”

라구엘이라는 아이를 보낸 후, 한숨을 내쉬며 다시 시장으로 나온 오소마츠가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오소마츠를 뒤따르던 카라마츠가 밝게 불을 밝힌 집들과 시장을 보고, 걸음을 재촉해 오소마츠의 옆에 섰다.


오소마츠.”

올슨.”

, …. 혹시 아까 도박장 간 이유가 그 아이 때문인가?”

? 아니? 그냥 평범하게 도박이 하고 싶었을 뿐이야.”

평범….”

—. 그렇게 깬다는 얼굴 하기~?”

너무나 가벼운 대답에 카라마츠가 황당하단 얼굴로 오소마츠를 가볍게 노려보았다

그런 카라마츠를 보며 씩- 웃은 오소마츠가어때? 여기.” 하고 물었다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번 둘러본 카라마츠가 조심스럽게 미소를 피웠다.


좋은 것 같다…. 모두 활기차고…, 우리 나란 밤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으니까.”

? 그래?”

이런 시간까지 불이 꺼지지 않은 곳은 아마….”

“…-~. 그럼 갈까, 다음.”

다음?”

성큼성큼 앞서 걷기 시작한 오소마츠를 놓칠새라 카라마츠가 발을 재촉했다

좋은 데가 있어~.” 하고 싱글벙글 웃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와 함께 한 가게 앞에 섰다.

 

 

여기…?”

여기!”

망연히 서서 멍청히 물어보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그곳으로 발을 들인 오소마츠가 당당하게 주인장을 불러 맥주를 주문했다

이미 거나하게 취한 이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 술집.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손짓해 자신의 맞은편에 앉히고 검은 맥주를 건넸다.


쭉 마셔!”

카라마츠가 잔을 받자마자 자신의 잔을 쭉 기울인 오소마츠가 빈 잔을 내려놓았다

크햐-!” 하고 술기운이 물씬 묻어나는 뜨거운 숨을 내뱉은 오소마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사 술집 한쪽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오소마츠가 건넨 팁으로 오소마츠가 신청한 민요가 연주되기 시작하고, 술에 빠진 이들은 그 음악에 따라 몸을 들썩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새올슨을 알아보고 다가온 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마시기 시작한 오소마츠가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떠들썩하게 잡담을 나누었다

아직 비우지 않은 잔을 든 카라마츠는 도저히 오소마츠를 따라갈 수 없어 멍청히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어이, 도련님~! 도련님도 마시라구~~!”

, 아뇨…. 저는.

, , 빼지 말고~! 올슨 녀석한테 끌려다니느라 고생했어~!”

어이, 아저씨~! 내가 뭘 했다고 그래~!”

오소마츠와 함께 웃으며 떠들다 카라마츠에게 다가온 이들이 즐겁게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를 놀리기 시작했다

오소마츠도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오소마츠와 취한 이들의 강요에 할 수 없이 맥주 한 잔을 비운 카라마츠가 발개진 볼을 붙잡고 무리와 한데 뒤섞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즐겁게 활짝 웃으며 손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가가 가늘게 휘었다

무리에서 떨어져 앉아있던 오소마츠에게 또 다른 무리가 다가왔다

오랜만에 마을을 찾은올슨에게 안부를 건네는 이들에게 오소마츠도 잘 지냈냐는 인사를 건네며 슬쩍 현 생활은 어떠냐는 질문을 던졌다

힘들다, 겨울은 견딜만 하다, 장사가 안 된다 등등 다양한 말이 나온 와중에 오소마츠의 이목을 끄는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요즘 공작가 하인들이 아주 오만방자해서. 우리 가게에 와서 온갖 진상짓은 다 하고 갔다니까.”

! 그건 우리집도야.”

공작가에서 물건을 다 사가는 통에 우리는 죽겠어.”

좌우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평에 오소마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 하고 건조한 감탄사를 흘리며 고개를 숙인 오소마츠의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취한 이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를 갈며 작게역시 공작 가가 문제인가….” 하고 중얼거리는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떠들썩한 이들의 소음에 묻혀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4.

 

펜이 멈춘 종이에 까만 글자가 가득하다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

그 편지에 대체 나는 뭐라고 써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오소마츠라는 왕자는 도저히 종 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전장에서 훌륭히 병사들을 이끌고, 국경을 회복하는 업적을 세운 대단한 자인데…. 

평소에 보면 그런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장난스럽고, 대충에, 진지하지 않고, 바보같다

하지만 가끔 굉장히 성숙한 얼굴을 보여준다…. 

묘하게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어,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어떤 불만도 없어 보인다

함께 웃고 떠들고 즐겁게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멍청한 것인지 생각이 깊은 것인지, 타인에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톡톡, 펜을 종이에 두드리다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버리고 다시 편지지에 시선을 내렸다.


“….”

하얀 편지지에 가득한 까만 글자는 전부 오소마츠에 대한 것

필요 이상으로 오소마츠에 대한 설명이 많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려 재빨리 편지지를 접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 편지지를 펼쳤다

으레 하던 대로 정기적인 간단한 보고서를 써서 봉투어 넣었다.


카라마츠 형?”

토도마츠, 잠깐 산책 갔다 오겠다.”

마침 노크를 하고 들어온 토도마츠에게 편지를 건네고 한숨과 함께 침실을 나왔다

오소마츠는 별궁 주변으로 한정한다면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좋다고 했다

그 이후, 생각이 정리되지 않거나 답답한 기분이 들 때면 별궁 근처를 산책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마츠요 왕비님이 오지 않을 때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돌아 처치가 곤란할 지경이라 산책은 곧 하루 일정 중 내가 가장 기대하는 시간이 되었다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는 아직 자는 중

조금 전 막 해가 뜬 이른 시간이니 아직 침대 속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소마츠는 아침 일찍 눈을 떴을 때, 침실에 없었다

일하러 본궁으로 간 것일까

겨울 휴전 이후, 오소마츠는 지친 몸을 쉴 새도 없이 많은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감고 찬 새벽 공기를 들이마셨다

고향에 있을 땐, 새벽 이슬이 사라지기 전에 눈을 떠, 이 찬 공기를 맞으며 훈련을 했었다

붉은 왕국에 온 뒤로 검은 커녕 몸을 제대로 움직일 기회조차 없었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뻐근해져 오는 목과 어깨를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평소 걷던 길이 아닌 낯선 길로 들어갔다

항상 산책하는 코스는 사람들이 다소 다녔던 길로 뚜렷하게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 뻐근한 몸을 조금이나마 풀고 싶어, 풀이 자란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을 걷고 싶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은 자연히 보통의 길보다 조금 험하다

돌이 치이고 풀을 헤치고 걸어가야 하는 길 속으로 들어서자, 보다 짙어진 풀내음과 함께 사람의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낮은 기합소리와 쇠가 쇠가 부딪치는 소리


근처에 기사들의 훈련장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기사들이 훈련하는 모습만이라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마음에 기합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별궁의 뒤쪽, 넓게 정돈된 훈련장에서 내 예상대로 기사들이 검과 검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고 있는 갑옷을 입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기사들을 눈에 담았다

양날검을 휘두르고, 상대방의 검격을 피하거나 유연하게 흘러넘겨 갑옷 사이 급소를 벤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움직임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열 명 남짓한 기사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투구에 빨간 깃을 단 자가 제일 검술이 뛰어났다

누구보다도 재빠른 움직임에 방패를 쓰는 것도 능숙하다

무엇보다 순식간에 상대방의 검을 흘리며 몸을 돌려 급소를 치는 기술이 대단했다

조용히 수풀 사이에 숨어 감탄하며 눈을 떼지 못하던 그때, 투구를 벗은 기사의 정체에 숨을 들이마셨다

가장 검술이 뛰어난 붉은 깃의 기사


그는 오소마츠였다


열 명의 기사들과 모두 일대일 대전을 펼치고, 그에 모자라 갑옷을 입은 채로 온갖 체력 훈련을 하는 오소마츠는 우리 나라의 장군보다 더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있었다

땀에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고 투구를 옆구리에 낀 채로 기사들과 휴식을 취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오소마츠는 엄연한왕자이다

그런데 기사들과 저렇게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건가…? 

게다가 기사들보다 더 강도 높은 훈련에, 뛰어난 검술까지

왕자가 갖춰야 할 기본 소양 이상의 실력을 가진 오소마츠에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감탄사를 늘어놓아도 부족할 것 같다.


어이.”

-!!”

! 조용히.”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어 절로 튀어나오는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내 입을 틀어막고 제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 댄 이치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나를 노려보았다

이치마츠의 조용히 하란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자, 이치마츠가 내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내렸다.


여기서 뭐해.”

아니, 산책하다, 우연히….”

그래-. 오소마츠 형인가….”

, 아아…. 기사들과 훈련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저런 검술 실력은 나도 못 당할 것 같아….”

, 그렇지-. 오소마츠 형은 노는 것 같아도, 맘만 먹으면 저렇게 제대로 하니까. 그래서 우리도 믿고 따를 수 있는 거고. 오소마츠 형은 어릴 때부터 저렇게 기사들과 함께 훈련해왔어. 만약의 상황이 왔을 때, 마음먹은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어야 우리들을 지킬 수 있다면서…. 나같은 쓰레기, 지킬 가치따위 없는데 말이야.”

, 그런가….”

자조적으로 내뱉은 이치마츠였지만, 오소마츠를 향한 그 눈빛은 너무나 다정하고, 이치마츠가 얼마나 오소마츠를 신뢰하고, 존중하고 있는지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삼형제의 장남이지만, 나는 오소마츠에 비하면 그리 훌륭한 형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동생들을 이끌어 주어야하는데, 완전히 반대가 되어버렸고…. 

솔직하게 동생에게서 이런 무한 신뢰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


“…훌륭한 형님이네.”

,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거든?!”

, 이치마츠!! ! 쉬잇-!!”

. ….”

흥분해 갑자기 일어서려는 이치마츠를 끌어내리고 다급히을 외쳤다

정신을 차린 듯, 멋쩍은 얼굴로 몸을 웅크린 이치마츠가 휴식을 마치고 다시 훈련을 시작하려는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3일에 한 번씩, 아침 일찍 저렇게 훈련해…. 그러니까, 보고 싶으면 보던가.”

, …. 고맙다. 이치마츠.”

별로.”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썹을 찌푸린 이치마츠가 다시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이치마츠가 돌아가고 그 후로 한 시간, 오소마츠의 훈련이 이어졌다.

 


 

이치마츠의 말대로 오소마츠는 3일 간격으로 기사들과 훈련했다

너무나 기분좋게, 그리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아, 오소마츠가 훈련을 하는 날이면 항상 훈련장 구석 수풀 속에서 그 모습을 구경했다

훈련을 몰래 훔쳐 본 것이 딱 4번째가 되었을 때, 중간 휴식에 들어간 오소마츠가 망설임 없이 내가 몸을 숨기고 있는 수풀 쪽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구경만 하지 말고 같이 하자.”

“…눈치 챘었나….”

옛날 옛적에 말이지.”

“….”

그대로 오소마츠에게 끌려 드세르 차림으로 기사들 앞에 섰다

남자인데도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에 기사들은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지만, 자신의 친구라는 오소마츠의 소개에 곧 웃는 얼굴로 나는 맞이했다

오소마츠가 건네준 끝이 뭉특한 훈련용 검을 받자마자, 오소마츠가 훈련장 중앙에 나를 세웠다

오소마츠와 기사들과 나란히 서서 드레스 차림으로 검을 휘둘렀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는 기쁨과, 검을 휘두를 때마다 자신의 존재를 자랑하는 근육, 팔의 움직임, 검의 흐름에 따라 발빠르게 움직이는 몸이 너무나 오랜만이여서, 그래서 기뻐서, 내가 드레스를 입고 있다는 것도 잊고 오소마츠를 따라 검을 휘둘렀다

기사들도 버거워하는 고난이도 훈련을 어떻게든 뒤쳐지지 않고 따라가자, 기사들은 제법 놀랐 얼굴로 내게 칭찬의 말을 던졌다

그 동안 움직이지 않아 떨어진 체력 덕분에 헐떡이는 숨을 몰아 내쉬고, 칭찬에 감사 인사를 건네자 기사들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번졌다.


우리 왕자님이랑 싸워서 이기는 거 아냐? 공주님.”

에이-, 설마아~.”

아냐. 이 정도 실력이면 가능성 있겠는데?”

어때? 왕자님~? 한 번 대결해 보는 건?”

무서워서 못하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저마다 한 마디씩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짓궂은 말에 오소마츠가 쓴웃음을 피우고 다가왔다.


어이어이, 나를 너무 얕보는 거 아냐~?”

내기할까?”

좋아! 그럼 나는 공주님께 걸지!”

나는 왕자님.”

나는 공주님. 공주님, 꼭 저 콧대 놓은 왕자님을 꺾어줘!”

할 수 없네~. 좋아. 공주님~, 이쪽으로.”

.”

오소마츠의 대답에 걸렸다는 듯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린 기사들이 모여 내기를 시작했다

신나게 떠들어대는 기사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나를 보고 눈짓했다

훈련장 한가운데, 서로 마주보고 섰다

긴장된 공기가 발 아래를 기어다니고, 우리를 지켜보는 기사들 또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깊은 심호흡을 한 번, 그리고 기사의 신호에 맞춰 오소마츠에게 달려들었다.

-, 하고 검이 맞붙고, 오소마츠가 깔끔하고 신속하게 몸을 돌려 내 검을 피했다

확실하게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칼을 흘러버리고 몸을 돌려 칼을 내려치지만, 오소마츠의 칼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손 안에서 자유자재로 칼을 놀리며 내게 맹공격을 퍼붇는 오소마츠의 기세에 방어를 하는 것이 전부

틈을 보여 찌르려 해도 오소마츠는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차칵, 하고 내 손을 떠난 칼이 바닥에 꽂혔다

내게 칼을 겨누고 거친 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오소마츠의 공격을 피하려다 스텝이 꼬여 바닥에 주저앉은 내가 보면 어느새 높이 뜬 햋빛을 가득 머금은 오소마츠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괜찮아~? 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열중해 버려서~.”

검을 휘두르던 때의 박력은 어디로 날려버리고 평소와 같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내게 손을 내민 오소마츠의 모습에 어쩐지 가슴이 아팠다

꼭 심장을 밧줄로 동여매서 꽉 조이는 듯한,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에 가슴에 손을 올리고 눈썹을 찌푸렸다

두근 대는 심장은어디 다쳤어?” 하고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그 속도를 더했다


환하고 따뜻한 햇빛 아래서, 오소마츠의 미소 하나로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착각에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 믿기지 힘들겠지만, 츤데레 이치마츠였습니다ㅎㅎ


* 노말 오소마츠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ㅎㅎ


* 오소른 50제는 내일 한편 올릴 것 같습니다^^

* 입병 걸려서 짜증나 쓴 글입니다ㅎㅎ

 '나만 당할 순 없다' 라는 생각으로 썼어요ㅎㅎ


* 어쩐지 카라오소를 오랜만에 쓰는 것 같은 기분이...;;


* 이미 사귀고 있는 카라오소 입니다.


* 공미포 5,937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백수 1.”

거실의 장식장에서 약상자를 꺼내 그 안에 있는 작은 연고를 건넨 마츠요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고마워요, 엄마.” 학고 아픔에 얼굴을 찌푸리며 연고를 받아든 오소마츠가 연고 뒷면에 쓰인 사용 방법을 읽어내려갔다.


백수가 피곤할 일이 어디있다고.”

황당하다는 투로 내뱉은 마츠요가 몸을 일으키며 등 뒤에 메인 매듭을 풀었다

하얀 앞치마를 고이 접어 주방 식탁 위에 올려놓은 마츠요가 장바구니를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


장 보고 올테니까 집 지키고 있으렴-.”

-, 다녀오세요.”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혼자 앉아 현관에 서있는 마츠요에게 손을 흔든 오소마츠가 약상자를 뒤졌다

몇 개 남지 않은 면봉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깐, 곧 입 안에 퍼지는 바늘로 찌르는듯한 통증에 얼굴을 있는대로 찌푸리고으으으-!!” 하고 신음했다.

 

입병

입 안 점막이 헐어버리는 증상으로 주 원인은 비타민 등의 영양소 부족이나 피로, 스트레스가 꼽히고 있다

항상 마츠요가 준비해주는 밥도 잘 챙겨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자는 백수가 대체 왜 입병에 걸린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굉장히 아프다는 것이었다

입술 안쪽이 헐은 것도 아픈데 하필 염증이 혀로 옮겨가고 말았다

혀의 옆면 검붉고 하얗게 부어오른 혀를 카라마츠의 거울로 살핀 오소마츠가흐아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고통에 눈썹을 찡그렸다. 입술 안쪽이라면 혀로 건들이지만 않으면 아프지 않지만, 혀는 이야기가 달랐다.

조금만 움직여도 욱씬거리고, 찌르는 듯한 아픔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혀에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바로 덮쳐오는 고통에 오소마츠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우우-, 혀 아하 (, 아파)….”

혀를 제대로 굴리지 못해 어정쩡한 말을 내뱉은 오소마츠가 주방에서 우유를 가져왔다

왜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려오는지, 한탄하며 우유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입병과 더불어 혓바늘까지 찾아왔다

까끌까끌한 느낌에 혀에 생긴 염증에 비하면 그리 아프지 않았지만 감각이 이상한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언젠가 TV에서 우유를 먹으면 혓바늘이 낫는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 기분에 오소마츠는 재차 우유를 들이켜 곧 우유 한 컵을 비웠다.


? 좀 나은데?”

한결 나아진 혓바늘에 다시 거울로 혀를 확인한 오소마츠가 잇따른 고통에 크으-.” 하고 신음했다

혓바늘은 나았다고 해도 아직 염증은 그대로

게다가 어째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양치질도 제대로 못하고 맛있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오소마츠는 인생 처음으로 (겨우 입병 하나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휴-, 하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면봉을 꺼내 연고를 쭉 짜냈다

입병 전문 연고임을 다시 확인하고 거울을 들어 혀를 쭉 빼들어 옆으로 옮겼다

혀 옆면에 퉁퉁 부어오른 염증 부위에 아주 조심스럽게 면봉을 가져대고 살살, 아주 살살 연고를 발랐다

약간 노란빛을 띄는 하얀 연고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상한 맛이 났다

흘러내리려는 침을 쓰읍-, 들이마신 오소마츠가 면봉을 휙 던져 쓰레기통에 버렸다

연고를 바르자마자 염증이 싹 나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오소마츠가 벌렁 바닥에 몸을 던져 누웠다

연고를 발랐어도 혀는 여전히 욱신거린다

딱지를 억지로 뜯어내고 다시 상처를 벌리는 듯한 아픔에 인상을 찌푸린 오소마츠가 멍청히 거실 천장을 응시했다.


아무도 없는 거실 안에는 시계 초침이 똑딱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늘은 오소마츠도 나가려고 했지만, 어제보다 심해진 통증에 도저히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어제 파칭코에서 크게 승리한 덕분에 빵빵한 지갑을 가지고 있는데도 반강제로 집에 갇히게 된 꼴이 적잖이 슬프다

아하하.” 하고 마른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TV를 켰지만, 평일 낮에 하는 방송이라곤 드라마 재방송 혹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예능 프로가 전부였다.

삑삑, 리모컨을 눌러 고속으로 채널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다시 TV를 껐다.


케이블 달고 싶다아~, 뭐 달아도 안 보겠지만….’

피유~,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눈을 감았다. 정말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싶을 정도로, 지루했다

오소마츠는 검은 눈꺼풀 위에 한 명 한 명 동생들을 떠올리고 자신을 버리고 외출한 것을 원망했다.


톳티-는 또 미팅 간 건가? 들어오기만 해봐, 그 녀석. 쵸로 씌는 헬로 워크라고 했고, 이치마츠는 고양이인가? 쥬시마츠는 야구일테고…. 카라마츠는 다리….’

-!! 심심해!!”

저도 모르게 팔다리를 홱 들어올려 외친 오소마츠가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며 입을 감싸 쥐었다

말을 하면 아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깊은 한숨을 쉰 오소마츠가 몸을 데굴 굴렸다.


겨우 입병 주제에….’

이젠 아예 입병을 의인화해 욕하기 시작한 오소마츠가 드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위로 들었다

활짝 열려있는 거실문 덕분에 현관이 바로 보였다

갈색 구두를 벗고 현관에 오른 카라마츠가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오소마츠의 눈과 마주치자 흠칫, 어깨를 떨었다.


, 무슨 일 있나? 브라더-?”

뚫어지라 카라마츠를 응시하는 오소마츠에게 손가락을 튕기며 묻자, 오소마츠가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카라마츠에게서 눈을 돌렸다.


형님, 왜 그러지? 오늘따라 기운이 없군.”

—.”

카라마츠의 말에 입도 열지 않고 대충 대답한 오소마츠가 머리를 굴렸다


카라마츠는 돌아왔지만, 혀가 아파 말은 할 수 없다

그런데 심심하다

뭔가 놀 수 있는 방법은 없나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놀거리를 생각하고 있는 오소마츠 옆에 엉덩이를 내린 카라마츠가 미동도 하지 않는 오소마츠의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형님?”

—.”

대답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흘리는 오소마츠를 더욱 이상하단 눈으로 응시한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재차 불렀다.


오소마츠.”

으응—?”

눈썹을 팩 찌푸리고,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카라마츠에게 겨우 시선을 준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아무리 불러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오소마츠에게 화가 났는지 카라마츠의 얼굴은 막 집에 들어왔을 때보다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할 수 없네-.’

, 속으로 혀를 차며 최대한 조심조심 혀를 움직이지 않도록 신경쓰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아마흐 (카라마츠).”

“…? 뭐 먹고 있는 건가?”

아야 (아냐).”

?”

, 아하서 (, 아파서)….”

?”

고개를 기울이고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혀를 길게 내밀었다

혀를 옆으로 굽혀 하얗게 헐어버린 염증을 보여주자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건가.”

모하 (몰라).”

많이 아픈가?”

.”

걱정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카라마츠에게 씩- 웃음을 피워 올린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어 카라마츠를 가까이 오도록 했다

바닥에 누운 오소마츠에게 맞춰주기 위해 허리를 굽힌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덥썩 끌어안았다.


우왓! 오소마츠?”

우햐햐~.”

찬바람에 식은 가죽이 기분 좋게 오소마츠의 피부를 식혀갔다

가죽 아래에서 은근하게 전해지는 카라마츠의 체온에 오소마츠는 조금 전까지 자신을 괴롭게 만들었던 지루함이 저 멀리 떠나가는 것을 느꼈다

오소마츠가 느끼고 있던 지루함이 외로움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을 오소마츠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저 카라마츠가 함께 있는 것이 기뻤다

오소마츠 바로 아래의 동생인 카라마츠는 심각한 나르시시스트에 머리도 텅 비었지만, 오소마츠와 함께을 하고 있는 든든한 동생이었다

게다가 꽤 오랜 시간을 이어온연인이기도 했다

연인의 귀가에 기쁜 마음이 샘솟은 오소마츠가 다리까지 들어올려 카라마츠의 허리에 홱 감았다.


잠깐! 오소마~!? 움직일 수가 없다!! 그리고 아파!!”

이히히~!”

카라마츠의 항의를 못 들은 척 무시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물론, 입 안에 있는 혀가 닿지 않게 살짝

배시시-, 무방비하게 천진난만한 웃음을 마구 흘려대며 자신에게 매달려있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는 적잖이 외로웠구나, 하고 독백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 혀에 연고는 발랐나?”

—? -. 근데 다 업어져허 (근데 다 없어졌어).”

카라마츠의 질문에 혀에 발랐던 연고를 확인해본 오소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어휴-.” 하고 한숨을 흘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다시 발라라. 내가 발라줄테니까 일단 이거 풀어.”

—.”

불만스럽게 카라마츠를 흘겨본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껴안고 있던 팔과 다리를 풀었다

겨우 오소마츠의 구속에서 해방된 카라마츠가파하~.” 하고 숨을 몰아내쉬고, 장식장에서 연고와 면봉을 꺼냈다

이제 겨우 3개 남아있는 면봉의 수에 인상을 찌푸린 후, 연고를 쭉 짜낸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턱을 잡고 살짝 들어올렸다.


, ‘-’ 해라.”

—.”

카라마츠의 말에 따라 입을 크게 벌린 오소마츠가 혀를 내밀었다

연고를 바르기 쉽게 혀를 옆으로 돌린 오소마츠가 염증이 난 부분을 드러냈다

오소마츠가 아프지 않게 신중히 연고를 바른다고 했지만, 면봉이 살짝 닿는 것도 아픈지 오소마츠의 몸은 연고를 바를 때마다 흠칫흠칫 떨렸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오소마츠를 위해 신속하게 연고를 바른 카라마츠가 한숨과 함께 면봉을 거뒀다.


다 끝났다.”

아 애어 (다 했어)~?”

카라마츠의 말에 아직도 입을 벌리고 있는 오소마츠가 눈을 떴다.

아픔을 참느라 꾹 감고 있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

가아마흐 (카라마츠)?”

혀에 면봉이 닿을 때마가 움찔 거리던 몸

그리고 두 눈엔 눈물이 맺혀 촉촉하게 빛나고 있고, 묘하게 볼도 붉다

카라마츠는 자신의 이성의 끈적이는 욕망에 먹혀가는 것을 자각하며 오소마츠의 턱을 다시 들어올렸다.


오소마츠, 다친 곳엔 연고보다 침을 바르는게 좋다는 옛말이 있다.”

으으응!?!?”

진지하게 자신을 응시하며 말하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본 순간, 오소마츠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웃와-!! 이 자식 대체 어디서 스위치 들어간 거!?!?’

오소마츠를 빤히 쳐다보는 카라마츠의 눈빛은 타오를 것처럼 뜨겁고 축축하게 젖은 욕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슬슬 엉덩이를 뒤로 뺀 오소마츠가 얼굴을 흔들어 카라마츠의 손을 털어냈다.


, 아냐. 연고 발랐으니까 횽아는 이제 그만 가볼게.”

잠깐.”

꺄아———!!!”

벌떡 일어나 거실을 나가려고 했지만, 잽싸게 카라마츠에게 붙잡힌 오소마츠가 그대로 바닥에 밀쳐졌다

두 손을 속박하고 제 위에 올라탄 카라마츠를 보며 비명을 내지른 오소마츠가 또 혀를 바늘로 수십번 찌르는 것 같은 고통에 입을 다물고 울먹였다.


아하 (아파)~~!!”

그러니까 빨리 침을 바르지 않으면.”

아 바아도 애 (안 발라도 돼)!!!”

-, 오소마~?”

으응~!!!”

입술을 꾹 다물고 다가오는 카라마츠의 얼굴에 오소마츠가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제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오소마츠의 행동에 힘줄 하나를 이마에 세운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턱을 단단히 붙잡아 고정했다.


으우~~!!”

이 고릴라 놈!!’

카라마츠의 힘에 옴짝달싹 못하고 항의하는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곧 카라마츠의 입술에 막혔다

말랑말랑한 입술에 잠깐 닿았다가 떨어지며 새가 쪼듯 키스를 몇 번 떨어뜨린 카라마츠가 뜨거운 혀를 내밀어 오소마츠의 입술을 핥았다.


오소마츠, 입 벌려.”

흐으!!”

카라마츠의 말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노려보며 반항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한쪽 눈썹을 씰룩인 카라마츠가호오?”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으햣!!”

붉은 후드 속으로 쑥 들어온 카라마츠의 손이 가슴에 서 있는 돌기를 꽉 쥐자마자 오소마츠가 입을 열고 비명을 질렀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입술을 막고 혀를 집어넣었다

깊숙이 침입해 온 혀가 오소마츠의 입안을 이리저리 헤매다 오소마츠가 격렬하게 반응하는 한 곳에 멈췄다

카라마츠의 혀를 피해 입안 구석에 숨어있던 오소마츠의 혀를 억지로 꺼내 빨아들인 카라마츠가 퉁퉁 부어오른 혀의 옆면을 쓸어올렸다.


으응~~!!!”

눈에 눈물을 글썽이고, 카라마츠의 아래에서 발을 버둥대는 오소마츠의 반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끄러우면서 묘하게 까끌까끌한 느낌을 주는 연고를 핥았다

하얀 연고가 두 사람분의 타액에 섞여 끈적하게 녹아간다

얌전히 환부에 앉아있던 연고는 요동치는 혀에 이리저리 휩쓸려 혀 전체에 퍼져 특유의 이상한 맛을 선사했다

연고가 섞인 타액이 맛있을리 없는데 오소마츠의 타액은 어쩐지 달게 느껴졌다

염증 때문인지, 키스 때문인지 넘쳐나는 오소마츠의 타액을 혀로 취해 맛본 카라마츠가 다시 혀를 뻗었다

집요하게 염증이 생긴 부분을 핥고 문지르며 움찔거리는 오소마츠의 몸을 강하게 억눌러 껴안았다.

 

찌릿찌릿, 아픔이 멈추지 않는다. 고통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상냥하게 닦아주면서도 카라마츠는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퉁퉁 부어올라 움직이는 것도 고통스러웠던 혀가 카라마츠의 혀에 얽히고설켜 입안을 누빈다

말을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카라마츠의 혀는 끈질기게 염증을 핥아오고, 오소마츠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차라리 강하게 배를 차이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될 정도로 아프다

입안의 점막은 특히 약한 부분이라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아릿하게 따끔한 전류가 혀 전체에 퍼지는 것 같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아픔에 카라마츠를 밀쳐내고 도망치려고 해도 카라마츠의 강한 팔에 억눌린 손은 옴짝달짝 못하고, 입안에 계속되는 자극에 몸을 움직일 기력도 낼 수 없다

묘한 맛을 자랑하는 연고가 혀 전체에 눌려 펴지고, 그 뒤를 카라마츠의 타액이 따라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입안을 채웠다

혀를 타고 올라오는 통각. 이쯤되면 무뎌질만도 한데 바늘로 찌르는 그 감각만은 끊임없이 신경을 타고 올라와 뇌를 자극했다

나을 줄 모르는 아픔에 슬슬 오소마츠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넘친 타액이 뺨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감촉에 눈썹을 찌푸린 오소마츠가 온힘을 짜내 주먹을 쥐어 카라마츠의 가슴을 내리쳤다.

 

!?”

푸핫…!!”

아프잖아, 오소마…,”

, 우읏…!! , 망할 개똥마츠으!! 아프다고!!!”

오소마츠의 주먹에 맞아 욱신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입술을 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나무라려던 입을 멈췄다

거친 호흡을 내쉬며 가슴을 달싹거린 오소마츠가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으로 매섭게 카라마츠를 노려봤다.

울먹이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는 저 멀리 여행을 떠나있던 이성이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말하는 것조차 아파하던 오소마츠를 억지로 붙잡아 키스를 퍼부운 자신을 비난하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뻗었다.


저리 가아! 바보 멍충이 개똥마츠!! 이제 너 싫어!!”

, 오소마츠. 그렇게 큰 소리 내면 또 아플거다.”

너 때문에 충분히 아프거든!?”

, 미안….”

“….”

풀 죽은 강아지마냥 꼬리와 귀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환상에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비난하던 것을 멈췄다.


진짜 치사하다고, ‘동생이란거….’

조금 전까지 카라마츠에게 잡혀있던 손을 들어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감촉에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 미소가 묘하게 열받아 머리를 매만지던 손에 힘을 주어 있는 힘껏 벅벅 카라마츠의 머리를 문질러주고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한숨과 함께 아직도 욱신거리는 혀를 내둘렀다.


-, 더 아파졌어.”

, 미안하다!! 지금 바로 다시 연고 발라주겠다.”

내가 바를 거야!!! 직접!!!”

당황하며 재빨리 장식장에서 약상자를 꺼내는 카라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 빽 소리를 질렀다

카라마츠의 혀가 닿았던 염증은 여전히 욱신거리고 있다.





* 제가 앓고 있는 입병을 그대로 오소마츠에게 주었습니다ㅎㅎㅎ

 입술 아래에 혀 옆면에 혓바늘까지 돋아서 정말 힘들었어요..ㅠ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

 지금은 많이 나았습니다^^


* 여기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3편 들고 왔습니다^^


* 공미포 9,350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고의적으로 흐트러진 전열

그 사이로 파고들어 깊이 침투하는 적들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말의 등자를 찼다

붉은 철로 만든 갑옷은 붉은색이 묻어나오는 은색에, 가볍고 단단해 적들의 날카로운 칼에도 베이지 않았다

작은 방패와 칼을 들고, 무게를 최대한 줄여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오소마츠의 기사단

붉은 왕국 내에서도 최고라 일컬어지는 적기사단이 오소마츠의 신호에 맞추어 일제히 달려나갔다

붉은 왕국 쪽으로 깊이 들어온 적군의 허리를 끊고, 우왕좌왕 당황하는 적들을 하나씩 베어나간다

함정에 빠진 것을 눈치챘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기사단의 칼과 뒤따라 적군을 향해 쏟아진 무수한 화살은 피바다를 만들며 적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말발굽에 채이는 적의 시체를 밟고 나아가 완전히 붉은 왕국의 영토에서 적들을 몰아낸 오소마츠가 국경을 회복했다

붉은 왕국과 제국,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국경을 훌롱히 지켜낸 오소마츠는 이미 적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오소마츠가 이끄는 적기사단의 깃발을 본 것만으로 도망치는 적들이 있을 정도였다

국경을 지키고 서서 꽁지 빠지게 줄행랑치듯 후퇴하는 적군을 지켜보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거세게 달려왔다

히이잉-!, 하고 우는 말을 멈추고 오소마츠 곁에 선 쵸로마츠가겨울 휴전이 성사되었다는 소식을 알렸다.

 

국경을 회복하고 일주일, 겨울 내내 이어질 휴전을 대비해 전선을 재정비하고 군대를 남겨둔 채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이치마츠가 수도 레드 버로우로 향했다.

 

 

 

 

 

2.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세 아들을 반기는 마츠요의 옆에서 카라마츠가 미소와 함께 오소마츠를 맞이했다

성에서 멀리 떨어진 전장에서 무사히 돌아온 것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이치마츠의 얼굴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는 마츠요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이런 날은 그냥 넘길 수 없다며,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위해 주방으로 향하는 마츠요를 배웅한 카라마츠가 깊은 한숨과 함께 계단을 오르는 오소마츠에게 작게 인사를 건넸다.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다.’

-, .”

카라마츠의 인사에도 카라마츠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오소마츠는 건조한 대답을 끝마치자마자 계단을 올라 방에 들어갔다

마츠요에게 환하게 웃으며 다녀왔다고 인사하던 오소마츠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더는 말 걸지 못하고 거실에 망연히 선 채 얼어붙었다

시선을 슬쩍 돌려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를 향하니, 오소마츠처럼 마츠요에게 보여주었던 미소를 싹- 지운 둘은 어딘가 공허해보이는 눈을 껌뻑이며 너덜너덜해진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처음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거의 3개월

겨우 일주일 정도 성에 머물렀던 오소마츠는 이후 줄곧 전장에 나가있었다

3년이나 이어진 전쟁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와 만나기 전부터 전장에서 제국군을 막아내고 있었다

한 번도 전쟁을 경험해본 적 없는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와 그 동생들이 있었던 전장의 참상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 지독히고 잔인하고 끔찍할 것이라는 감각은 인간의 본능에 강하게 박혀있었다.


지친 거겠지….’

초췌한 얼굴을 손으로 비벼 마른 세수를 하고 카라마츠에게 짧은 인사를 건넨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작게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힘없이 발을 올려 각자 침실로 향하는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짙은 눈썹을 늘어뜨리고 오소마츠가 틀어박힌 방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라마츠와 함께 세쌍둥이에게 어릴 적 종종 해주었던 고향의 음식을 만든 마츠요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붉은 왕국의 음식도 푸른 왕국만큼이나 발달해왔고 맛있는 음식도 많았지만, 푸른 왕국의 음식과는 근본적인 맛이 달랐다

고향의 맛을 그리워해 하나 둘씩 만들기 시작한 음식을 마츠요의 자식인 세쌍둥이도 즐겨 먹었다

고생한 아들에게엄마의 손맛을 먹이고 싶다는 일념으로 커다란 상이 가득 차도록 음식을 내온 마츠요가 놀란 얼굴로 상을 응시하는 세쌍둥이에게 외쳤다.


-! 맛있게 먹으렴~!”

행복하게 활짝 웃으며 말하는 마츠요를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다는 눈빛으로 슬쩍 바라본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잘 먹겠습니다~!” 하고 외치며 포크를 들었다

이치마츠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카라마츠를 따라 젓가락을 들어올렸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는 어릴 적부터 젓가락 사용을 힘들어했지만, 이치마츠만큼은 마츠요를 따라 곧잘 젓가락질을 했다

침묵 속에서, 상 가득했던 음식은 하나씩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 위엔 빈접시만이 가득했다.


잘 먹었어요. 엄마.”

그래~! 잘 먹었다니, 엄마도 기쁘구나. , 오소마츠?”

?”

냅킨으로 입을 닦고 부른 배에-.” 하고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마츠요를 응시했다

아들의 시선에 생긋- 미소를 피운 마츠요가 3일 뒤 열릴 파티 소식을 전했다.


파티이~?”

그래. 우리 오소마츠의 활약을 축하하는 파티!”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되묻듯 신음하는 오소마츠에게 마츠요가 자랑스럽게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우리 아들이 고생해주었으니까, 파티 정도는 열어야지!” 하고 웃는 마츠요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오소마츠가 눈썹을 더욱 찌푸렸다.

하지만, 휴전이라곤 해도 아직 전쟁 중인데요…?”

오소마츠를 대신해 쵸로마츠가 마츠요에게 물었다. 아무리 휴전이여도 붉은 왕국은 엄연히 동의 제국과 전쟁 중인 상태 였다

이럴 때, 왕가와 귀족이 파티를 연다고 한다면 민심이 그것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크게 하지 않고 왕실과 몇몇 귀족만 참가하는 소규모 파티가 될 거야. 오소마츠의 활약에 백성들도 기뻐하고 있고. 작은 파티 한 번 연다고 큰 일은 없지 않겠니?”

하지만….”

또 이번 파티는 폐하의 사비로 열리는 거니까 별 문제 없을 거야.”

소규모 파티라는 말에도 찡그린 눈썹을 풀지 않는 쵸로마츠를 향해 마츠요가 말했다

아무리 소규모 파티라고 해도 돈은 든다

전쟁 중에, 전장과 군대에 쓸 돈도 없는 마당에 파티를 연다고 하면 그 부담은 자연스럽게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것을 염려한 쵸로마츠에게 마츠요가 부드럽게 웃으며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왕의 사비로 열리는 파티. 마츠요의 말에 쵸로마츠가그렇다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썹 사이에 짙게 패였던 주름을 피고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돌린 쵸로마츠가 짧게 말했다.


어쩔 수 없어, 오소마츠 형.”

“….”

쵸로마츠와 마츠요의 대화를 줄곧 찌푸린 얼굴로 듣고 있던 오소마츠가 한층 더 험상굳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짜증나.” 하고 작게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쵸로마츠가제대로 참가 해.” 하고 핀잔을 주는 것으로 저녁 식사가 끝났다.

 

 

 

달과 별, 그리고 푸른 숲 속의 동물들도 잠든 새벽. 타닥타닥, 불을 튀기며 타오르는 장작을 응시하는 오소마츠의 짙은 눈동자에 붉은 불꽃이 비쳤다. 겨울 문턱에 발을 건 기온은 눈처럼 찼다

얇은 잠옷 위에 검은 코트를 하나 덜렁 걸친 오소마츠가 한숨과 함께 거실 소파에 몸을 기댔다

고요한 거실에 벽난로에서 퍼지는 따뜻한 주황빛이 간신히 시야를 밝히고 있었다

불규칙적으로 울리는 장작 타는 소리에 고개를 기울인 오소마츠가 거실로 들어오는 발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안 자고 뭐해.”

너야 말로.”

눈을 비비며 다가온 쵸로마츠에게 피식-,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제 옆에 놓인 소파를 가볍게 툭 쳤다

말없이 오소마츠 옆에 앉은 쵸로마츠가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괜찮아~. 쵸로 씌야 말로 괜찮은 거~?”

쵸로마츠의 걱정 어린 물음에 씩- 웃음을 펼친 오소마츠가 능글맞게 눈을 가늘게 떴다

금방이라도 장난을 칠 것 같은 얼굴에 처진 눈썹을 찌푸리고 오소마츠를 흘겨본 쵸로마츠가 머리를 긁적였다.


-. 견딜만 해.”

이치마츠는?”

그러고보니, 그 녀석을 안 보고 나왔네.”

이치마츠가 자고 있을 2층 침실로 눈을 올린 쵸로마츠를 보며 눈을 깜빡인 오소마츠가읏챠-.” 하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난 가서 잘게. 이치마츠 좀 한 번 봐줘.”

. 잘 자, 오소마츠 형.”

오냐~.”

눈으로 거실을 나가는 오소마츠를 배웅하는 쵸로마츠에게 손을 흔든 오소마츠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새까만 층계와 복도. 저 멀리 복도 끝 어둠 속에서 괴물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깊은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침실의 문을 열었다

나긋한 어둠이 가라앉은 방 안은 커튼이 쳐지지 않은 커다란 창문으로 푸른 달빛이 비추고 있었다

달빛에 감싸여 길게 비단을 내린 침대를 본 오소마츠가 시선을 돌렸다. 침실에 놓인 긴 소파

그 위에서 담요를 덮고 오르락내리락 흔들리는 몸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적였다

터벅터벅, 실내용 슬리퍼를 끌며 소파로 다가간 오소마츠가 곤히 잠들어있는 카라마츠를 흔들었다.


-.”

, 으응…?”

흔들리는 어깨에 눈을 가늘게 뜬 카라마츠가 제 앞에 서 있는 오소마츠의 존재를 깨닫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 ?”

침대에서 자. 난 좀 이따 잘 거니까.”

…. 하지만,”

괜찮으니까.”

눈썹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저으려는 카라마츠의 손을.” 하고 잡아 일으킨 오소마츠가 그대로 카라마츠를 침대 앞으로 끌고갔다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카라마츠를 앉히고 오리털이 들어간 비단 소재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덮어준 오소마츠가 작게 하품을 하고 침대를 떠났다.

달빛에 의지해 간신히 보이는 눈으로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쫓았다

침대를 벗어나 힘없이 걸어 침실 발코니로 걸어간 오소마츠가 그대로 유리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갔다

별궁에 도착했을 때, 기운 없던 오소마츠의 모습이 떠오른 카라마츠가 천천히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소파에 걸쳐놓았떤 담요를 숄처럼 걸치고 오소마츠가 있는 발코니로 나간 카라마츠가 조용히 오소마츠 곁에 섰다.


“…안 자?”

멍청히 하늘에 높이 뜬 푸른 달과 별을 세던 오소마츠가 돌연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잔잔한 침묵을 깨고 던져진 물음에 당황한 카라마츠가 어깨를 움찔였다.


, 아니, 잘 거다…. , 왜 안 자는 건가, 궁금해져서….”

잠이 안 올 뿐이, ~.”

말을 하던 도중 터져 나온 하품으로 입을 크게 벌린 오소마츠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멋쩍은 미소를 피웠다.


졸리면 빨리 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 ….”

걱정스러운 얼굴로 짙은 눈썹을 늘어뜨리고 응시하는 카라마츠의 눈길을 피한 오소마츠가 대답을 흘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말야, 졸리긴 한데 잘 수가 없는 거야.”

“…잘 수가 없다?”

카라마츠의 되물음에 오소마츠가 몸을 숙여 발코니에 기대고 턱을 괴었다.


-, 전장에 있었으니까. 귓가에 맴돌아, 전장의 소리라던가 그런게. 쇠가 부딪치는 소리나, 비명 소리나, 갑옷이 철렁거리는 소리, 말 울음 소리 같은 거.”

“….”

몇 개월이고 그런 곳에서 잤으니까. 그런 소리가 나지 않으면 잘 수가 없다고 할까…. , 그런 거지. 근데, 나 왜 너한테 이런 이야기 하는 거야….”

붉은 눈빛이 은빛에 물들었다

곧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촉촉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한 카라마츠가 어깨에 걸치고 있던 담요를 강하게 쥐었다.


“…잠시만 기다려 줘.”

?”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슬리퍼를 끌고 침실을 나간 카라마츠는 그대로 주방으로 향했다

작은 냄비에 우유를 넣고 끓여 꿀을 곁들인다

잠시 창틀에 올려놓아 적당히 식은 따끈한 우유잔을 들고 다시 계단을 올랐다

똑똑, 노크를 하고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열었다. 발코니로 걸어오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물었다.


거실에 아무도 없었어?”
거실…? 아무도 없었다.”

주방으로 향하며 언뜻 보았지만 거실엔 아무런 인기척도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발코니 난간에 우유잔을 내려놓은 카라마츠가 대답하자 오소마츠가그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이거.”

“…뭐야?”

따뜻하게 데운 우유다.”

고마워.”

카라마츠가 건네는 우유잔을 감싸쥐고 은은한 미소로 화답한 오소마츠가-.” 하고 우유를 불고 천천히 우유를 목으로 넘겼다

꿀꺽꿀걱, 목을 울리며 오소마츠가 우유를 다 마실 때까지 카라마츠는 말없이 그 옆을 지켰다

하늘에 뜬 별을 보며 어렴풋이 기억나는 별자리를 찾고 있을 때, 오소마츠가 우유잔을 난간에 내려놓았다.


“…침대에서 같이 자지 않겠나?”

?”

나는 한 번도 전장에 나가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옆에 사람의 체온이 있다면 잘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건 시도해 본 적 없네.”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이고 중얼거렸다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옅은 미소를 피웠다. “그럼 오늘 시도해 보는 건 어떤가?” 하고 오소마츠의 손을 잡은 카라마츠가 웃었다.

따뜻한 우유를 쥐고 있었는데도 차가운 오소마츠의 손에 조금이라도 제 손의 온기가 옮겨가기를 바라며 오소마츠의 손을 감쌌다

침대로 이끄는 카라마츠에게 끌려 오소마츠가 침대에 눕자마자 카라마츠가 그 옆에 누웠다.


잘 자. 오소마츠.”

“…그래, 잘 자.”

 

자신의 체온이 조금이나마 오소마츠를 좋은 잠으로 이끌 수 있기를 바라면서 카라마츠가 눈을 감았다.

 

 

 

열린 창 밖으로 짹짹짹,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 새의 지저귐이 방 안에 퍼졌다

눈부신 햇살에 눈을 비비고 일어난 카라마츠가 제 옆에 누워있는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돌렸다

으음….” 하고 신음하며 눈을 뜬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빙긋- 웃었다.


덕분에 잘 잤어. 고마워, 고릴라 공주님.”

“…별 말씀을….”

무방비한 오소마츠의 미소에 카라마츠는 가슴이 심하게 두방망이치는 것을 느꼈다

노란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그 미소를 처음 본 탓이라고, 그렇게 되뇌며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했다.

 

 

 

 

 

3.

 

짙은 빨강의 정복

어두운 얼굴로 단추를 하나하나 천천히 잠그는 오소마츠에게 참다 못한 쵸로마츠가 빽 소리를 질렀다.


좀 빨리빨리 해! 파티에 늦겠다!!”

“…좀 늦으면 어때서.”

네가 주인공이잖아!! 게다가 아버지도 오는데, 아들인 네가 늦으면 어떤 소리를 들을지 뻔히 알고 있잖아!”

—, 알겠어.”

쵸로마츠의 재촉에 오소마츠가 정복을 다듬고 머리를 쓸어올렸다

검은 머리를 깔끔하게 넘겨 잘생긴 이마를 드러낸 오소마츠가 한숨과 함께 저를 응시하는 카라마츠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도 같이 가면 좋을텐데-.”

아니, 무리 잖아.”

왕실은 모두 참여하는 파티

하지만남자인 카라마츠는 초대받지 못했다

아직 혼인식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남성인 공주를 아직은 보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마츠요의 판단 때문이었다

카라마츠를 보며 툭 내던지듯 말하는 오소마츠를 노려보며 평범하게 태클을 건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목덜미를 붙잡고 그대로 별궁을 떠났다.

 

오늘은 오소마츠의 활약을 축하하는 파티의 날

별궁에서 저 멀리 보이는 댄스홀은 이미 환한 빛과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질질 끌고가며 쥬시마츠와 함께 고양이를 데리고 놀고 있는 이치마츠를 불렀다.


이치마츠, 출발한다.”

…, .”

붕붕, 바람을 만들며 손을 거세게 흔드는 쥬시마츠의 배웅을 뒤로하고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이치마츠가 파티장으로 향했다.

 

 

아직 전쟁 중이라는 것을 의식했는지 파티의 장식은 화려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심플한 장식 사이를 지나 들어간 파티홀에도 극히 적은 수의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식사를 대신할 음식보다는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쿠키나 음료가 전부

학교에서 학생들이 조촐하게 여는 파티와 같았다

파티장에 들어서는 왕실 한 명 한 명을 호명하는 신하가 마지막으로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이치마츠를 호명했다

계단 위에 서서 간단히 손을 흔들고 내려온 세 명의 왕자는 왕의 손짓에 이끌려 왕의 옆에 붙어 섰다

왕의 최측근만 설 수 있는 가까운 자리에 자신의 아들이 아닌 마츠요의 아들이 선 것을 시기 어린 눈으로 응시하던 제 1왕후, 그레이스가 작게 혀를 찼다


왕실과 내빈이 모두 참석하고나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파티

아름다운 왈츠 리듬에 따라서 귀족들이 손을 맞잡고 댄스를 시작했다

커다란 파티홀에 아름다운 드레스가 휘날리는 모습을 오소마츠가 가만히 응시했다

1왕후 그레이스와 고위 귀족들은 모두 형형색색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음악에 몸을 실어 우아하게 홀을 누볐다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음료를 들이키며 파티홀을 바라보는 오소마츠를 왕, 레온 3세가 불렀다

왈츠를 추는 귀족들이 차례로 왕에게 인사를 하러 다가왔다

왕은 저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귀족들에게 오소마츠를 소개했다

이번 전쟁에서 정말 큰 공을 세운 왕자라며 왕이 직접 소개하는 오소마츠에게 귀족들은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왕이 직접 자신을 소개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오소마츠도, 그리고 제 2왕후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하던 귀족들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황스러운 귀족의 인사가 모두 끝난 후, 겨우 왕의 옆에서 풀려난 오소마츠가 파티홀 구석에 모여있던 동생들에게 다가갔다.


집 가고 싶어.”

“…나도.”

좀 참아! 둘 다!”

작게 툴툴거리는 오소마츠의 말에 이치마츠가 동의하자 쵸로마츠가 어김없이 잔소리를 날렸다

축 늘어진 오소마츠와 이치마츠를 보며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의 시야에 쭈뼛대며 이쪽을 바라보는 여성들이 걸렸다.


어이, 저기.”

?”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고 쵸로마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두세 명의 귀족 영애들이 오소마츠 쪽을 보며 수근대고 있었다

전쟁에서 활약한 영웅, 그리고 제 1왕자가 전사한 지금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 후보자인 오소마츠를 귀족 영애들이 눈독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조금 전 왕이 직접 귀족들에게 오소마츠를 소개한 것이 오소마츠가 다음 왕이 될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능글맞은 귀족 할아범들….”

-, 혀를 찬 오소마츠를 따라 이치마츠도 차가운 눈길로 귀족 영애들을 노려보았다

제 딸들을 부추겨 오소마츠에게 접근을 유도한 귀족들을 욕하며 오소마츠가 들고 있던 음료를 단번에 들이켰다.


음료 좀 더 가지고 올게. 쵸로마츠랑 이치마츠는 뭐 더 필요해?”

아니….”

나도 괜찮아.”

오케-.”

오소마츠 형.”

-?”

조심해.”

알고 있어~.”

쵸로마츠의 당부에 오소마츠가 배시시 웃고 손을 흔들며 음식이 준비된 테이블로 향했다

빈 잔에 마시고 싶은 음료를 따라내는 오소마츠에게 멈칫멈칫, 귀족 영애들이 접근하기 시작했다.


에드윈 왕자님, 왕자님은 홀에 나가지 않으시나요?”

…, 저는 춤 실력은 형편 없어서요.”

얼굴에 홍조를 피우고 다가온 영애들에게 딱 잘라 말을 끊은 오소마츠가 잔을 들고 쵸로마츠에게 돌아갔다

남겨진 영애들이 아쉬움을 달래는 동안 귀족에게 둘러쌓인 왕이 은근슬쩍 폭탄 선언을 던졌다.


계속 왕세자 자리가 비어있는 것은 좋지 않지. 에드윈 왕자가 이번 전쟁에서 활약도 많이 하고, 나이도 적당하니 왕세자 자리에 적당하지 않은가.”

왕의 말에 귀족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귀족의 태반은 제 1왕후를 지지하는 자들이었다

무엇보다 귀족의 리더인 쥬드 공작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귀족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왕세자의 장례를 치른지 1년도 되지 않았다, 왕세자를 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다른 왕자들도 앞길이 창창하니 좀 더 기다려보는 것이 좋다 등등

하나같이 비굴한 구색을 붙여 반대하는 귀족들의 모습에 왕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깊은 숨을 내쉬며 지친 기색을 비친 왕이 눈썹을 찌푸리고되었다!” 하고 근엄한 목소리를 크게 외쳤다

뻘뻘대는 귀족들을 무시하고 파티장을 빠져나가기 전, 오소마츠와 눈을 맞춘 왕은 그대로 파티장을 떠났다

왕이 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떠난 덕분에 흐르게 된 꺼림칙한 분위기에 귀족들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잔뜩 얼어버린 귀족들을 한심하단 눈으로 쳐다본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불렀다.


나도 가볼게.”

하아?!”

이 정도면 충분히 했잖아? 이치마츠도 어느새 없고. 뒷일 부탁해~.”

하아!? 아니, 잠깐! 진짜 이치마츠 어디 갔어!?”

경악하는 쵸로마츠를 남겨두고 오소마츠 역시 밝은 불빛이 밝히는 파티장을 떠났다.

 

 

 

 

 

4.

 

밝은 불빛이 비치는 파티장을 응시하던 카라마츠가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돌았다

어둠 속에서 정복을 입은 오소마츠가 발코니로 걸어왔다

불빛이 휘양찬란한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파티의 주인공이 지금 자신 앞에 서 있는 것에 적잖이 놀란 카라마츠가!?” 하고 비명지르듯 신음했다.


, 오소마츠?”

-. 여기서 뭐하고 있어?”

, 구경을….”

흐응—.”

파티 어땠나?”

-. 그저 그랬어.”

갑갑하게 몸을 조이는 정복 단추를 풀고 다가와 발코니 난간에 기댄 오소마츠가 허공을 응시했다

짙은 눈동자 속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것 같은 불안에 카라마츠는 저도 모르게 오소마츠의 옷깃을 붙잡았다.


오소마츠의 활약을 축하하는 파티인데 안 돌아가도 되는 건가?”

“…별로. 축하한답시고 파티 열어줘도 기쁘지 않고.”

“…그런가…. 그래도,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

카라마츠의 솔직한 말에 오소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만면에 피운 오소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헤에~, 칭찬해 주는 거야? 고릴라 공주님.”

물론이다. 정말 대단한 일이고, 훌륭한 일이니까.”

“….”

카라마츠의 칭찬에 오소마츠가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고 눈을 내리깔았다

갑작스런 침묵에오소마츠?” 하고 카라마츠가 부르자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고 싱긋- 웃으며 코 아래를 문질렀다.


공주님, 춤은?”

?”

출 수 있어?”

, 아니….”

그럼 내가 알려줄게.”

별궁의 발코니에서도 파티장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통통 튀는 것 같으면서도 우아하게 하모니를 자아내는 현악기의 아름다운 음색을 따라 오소마츠가 손을 내밀었다

머뭇거리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아 이끈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제 팔에 올렸다

한 손을 서로 마주 잡고, 다른 한 손은 카라마츠의 팔 아래에 얹은 오소마츠가, 천천히-.” 하고 말하고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 , , -.”

으아아….”

왈츠 리듬에 맞춰 발을 움직인다

혹시나 오소마츠의 발을 밟을까 초조해하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필사적으로 따랐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한 걸음, 반 걸음 움직이며 푸른 드레스 자락이 달빛에 흔들렸다.


….”

발 밟아도 괜찮으니까. 긴장 풀어.”

부드러운 음성에 카라마츠가 성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 하고 귓가에 울리는 오소마츠의 웃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카라마츠는 당황하고 있었다

왈츠의 음악도 들리지 않아 이리저리 오소마츠에게 끌려 가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딱딱하게 굳어 삐걱거리는 카라마츠의 움직임에 쓴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댄스를 멈췄다.


음악에 집중해. 칼을 휘두르듯이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움직이는 거야.”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닫혀있던 귀를 열었다

은은하게 공기를 울리는 현악기의 음색

잔잔한 물길에 흘르는 낙엽잎처럼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아름다운 음색에 집중하고 다시 오소마츠의 리드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칼을 휘두르듯, 흐름에 몸을 맡기고

오소마츠의 적절한 설명에 따라 음악이 이끄는 대로 발을 움직이자 제법 나쁘지 않은 춤이 완성되었다

오소마츠의 발을 밟을거란 불안을 겨우 떨쳐낸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고개 들자마자 어두운 하늘과 밤을 밝히는 달빛, 그 아래 잔잔히 퍼지는 음악 속에서 카라마츠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과 마주쳤다

전신의 혈액이 심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땀이 나고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재빨리 도로 고개를 숙였다

왈츠를 추기 위해 오소마츠와 밀착한 몸이 그제야 의식되기 시작해 춤을 추는 것도 괴로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시 뻣뻣해진 카라마츠의 몸짓에 오소마츠가 의아한 얼굴로 카라마츠를 부르려는 찰나, 똑똑-, 방에 퍼지는 노크 소리에 둘만의 작은 무도회가 끝이 났다.


-.”

“…오소마츠 형.”

오소마츠가 대답하자 문을 빼꼼 열고 들어온 이치마츠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카라마츠에게서 몸을 떼고무슨 일이야?” 하고 물으며 이치마츠에게 다가가는 오소마츠를 대신하듯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가왔다.


형아-! 이제 잘 시간임닷!!”

“…무슨 일 있었어? 얼굴 빨간데?”

쥬시마츠의 활기찬 목소리에 이어 토도마츠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얼굴을 기울였다

토도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 것도 아니다.”


작게 대답하는 카라마츠의 얼굴은 꼭 붉은 사과처럼 붉었다.





* 4편은 다음주 주말에 올리겠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소른 50제 10번째 글입니다~!! 이제 5분의 1 정도 완료했네요ㅎㅎ


* 오소른입니다. 카라마츠와 쵸로마츠에게 좀 더 비중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착각입니다.


* 일란성 쌍둥이는 묘한 텔레파시가 있다는 말이 있죠. 육둥이도 그런 게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썼습니다ㅎ


* 공미포 15,250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31. 숨바꼭질 (오소른)   카미사마 님 신청 키워드.



1.

 

우리 모두가오소마츠 군이라고 불리던 시절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고, 함께 뛰놀던 그 때, 종종 했던 숨바꼭질

점점 내려가는 숫자에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보다 몸을 숨기고, 다가오는 발소리에 숨 죽였던 우리

다 숨었으면 이제 찾는다~!” 하고 외친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절대 나를 찾지 못할 거라 코웃음쳤었다

어디를 숨둔, 기상천외한 곳이든, 쉽게 스쳐 지나가는 곳이든, 정말 꽁꽁 숨겨져 있는 곳이든

우리가 숨어있다면 오소마츠 형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냈다

찾았다~!” 하고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코 밑을 문지르던 그 얼굴에 너무 쉽게 찾아진 것에 대한 분함과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오소마츠 형이 술래일 때, 우리는 오소마츠 형을 이길 수 없었다

반드시 오소마츠 형은 우리를 전부 찾아냈다

하지만, 오소마츠 형이 숨는 쪽이었을 때는….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 술래가 찾아내 함께 모인 수는 다섯

오소마츠 형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오소마츠 형이 마음 먹고 숨는다면, 우리는 절대 오소마츠 형을 찾을 수 없었다

모두 모여 오소마츠 형을 크게 부르며 공원 안을 돌아다녀도, 마을을 전부 뒤져도 오소마츠 형을 찾을 수 없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붉은 하늘 아래, 남겨진 우리들은 곧 참을 수 없는 불안에 울먹이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해일처럼 몰려와서 우리를 덮치고, 우리의 눈물샘은 기다렸다는 듯 터져 줄줄 흘러내렸다

모두 모여 훌쩍거리고 있을 때, 회색의 도로에 길게 그림자를 늘이고 선 오소마츠 형이 나타났다

- 웃으며돌아가자!”고 외치는 오소마츠 형을 따라 우리는 집으로 뛰어갔다.

 

 

 

, 손등에 떨어진 따뜻한 눈물에 오소마츠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아—. 그 녀석들, ….”

만마권을 구겨 쥐고 주머니에 꽂아 넣은 오소마츠가 기대고 있던 난간을 떠났다

전력을 뛰는 말을 향해 응원을 보내는 수 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 출구로 향하는 오소마츠를, 막 경마장에 들어온 이야미가 불러 세웠다.


“오소마츠? 어디 가는 거심?”

“아-! 잠깐 갈 데가 있어서!”

밝게 대답하고 걸음을 재촉하는 오소마츠의 등을 보며 이야미가 고개를 기울였다.

 

“별 일이삼. 오소마츠, 저 악동 녀석이 울다니….”

 

 

 

 

 

2.

 

미팅이 끝난 늦은 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에 길거리의 가게의 불은 전부 꺼져있다

터덜터덜, 길을 차듯 걸으며 가만히 땅을 응시했다

모처럼의 미팅. 자기도 데려가라고 아우성치는 쓰레기들을 겨우 떼어놓고 갔는데…. 

하필 아츠시 군이 나올 게 뭐야-. 

일류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차도 있고, 좋은 집에 살고….

여자애들과도 익숙하게 대화하고, 주문도 모두를 신경써서 능숙하게 하고, 계산도 척척. 그야말로 일류

나같은 백수 동정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친아

분명 고등학교까지는 이렇게 큰 차이 없었는데

함께 웃고 떠들고 장난치면서 바보같은 학교 생활을 이어갔었는데, 어느새 우리 둘은 이렇게 메꿀수도 없는 절벽같은 차이가 나게 된 걸까

전부 다 가진 아츠시 군. 그리고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나.


세상은 불공평하다

사람은 평등하다면서, 실상은 그렇지 않아

이 세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니까

같은 인간인데도 아츠시 군과 내가 이렇게 차이나듯이

이 차이는 노력한다고 메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애초에 노력한 적도 없지만….

—, 나는 왜마츠노가에 태어나서…. 

기왕 태어날 거면 부잣집이 좋았는데….

 

….

 

아냐, 취소. 죄송해요엄마, 아빠

하아…. 최악이다. 부모님 욕이나 하고…. 

나도 오소마츠 형이나 이치마츠 형 만큼이나 쓰레기구나

정말, 피는 못 속이네-. 

백수에 동정에 쓰레기

와아~, -!

 


젠장.”

멋대로 튀어나온 욕을 술기운과 함께 날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땅을 강하게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아침에 돌던 조깅 경로를 따라 온몸이 땀에 젖을 때까지 실컷 뛰고 나서, 24시간 편의점에 들어가 소주를 샀다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말없이 소주를 따서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크아-! 취한다!”

저 하늘 높이 뜬 달빛이 푸른 술병에 일렁였다.

 

 

 

뚜껑을 열자마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에 쥬시마츠가 군침을 삼켰다

손을 묶고 있던 밧줄을 스스로 풀어낸 쥬시마츠가 젓가락을 든 오소마츠를 보며 눈을 빛냈다.


“이제 됐슴까!? 이제 됐슴까아!?”

“응! 이제 먹자! 쥬시마츠!”

“아이!!!”

출출함에 눈을 뜨고 주방을 뒤지고 있으니 나온 컵라면

사막을 헤매던 자가 찾아낸 오아시스처럼 구원으로 보였던 컵라면이 탱글탱글한 면을 뽐내며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

라면 냄새에 줄줄 흘러내리는 침을 후르륵- 들이마신 쥬시마츠가 오소마츠가 건넨 젓가락을 들고 당장이라도 돌진할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자, 이제….”

…? 오소마츠 형아?”

쥬시마츠와 함께 젓가락을 들어 라면을 먹어치우려 했던 오소마츠가 행동을 멈췄다

젓가락을 다시 식탁에 내려놓는 오소마츠를 보며 쥬시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쥬시마츠의 부름에 씩- 웃은 오소마츠가 코 밑을 문지르며 쥬시마츠에게 말했다.


“쥬시마츠, 먼저 먹고 있어!”

“어? 오소마츠 형아는…?”

“급똥이 와서! 일단 배를 비우고 먹어야 겠어! 내가 늦으면 다 먹고 먼저 자고 있어!”

“아…, 으응….”

멋쩍게 웃으며 배를 문지른 오소마츠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따라 쥬시마츠가 시선을 올렸다

정말로 배가 아픈지 오소마츠의 안색이 어쩐지 어두웠다

거실을 나가는 오소마츠를 따라 몸을 기울인 쥬시마츠가 자신을 부르는 라면의 향기를 이기지 못하고 몸을 되돌렸다

후르륵-, 면을 빨아들이는 소리 속에 작게 울리는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쥬시마츠는 듣지 못했다.

 

 

 

 

 

3.

 

“없어….”

강바닥을 헤집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돌을 들었다 놨다, 바닥에 쌓인 흙을 이리저리 들추느라 뿌얘진 강물은 잔잔히 반짝이며 흘러갔다

-, 한숨을 내쉬고 강가로 올랐다.

 

계속, -속 아꼈던 글러브

고등학교에 들어가 야구에 재미를 붙였을 때, 가족이 다 함께 스포츠 용품점에 들러 샀던 글러브

세월이 흘러 헤져도 토도마츠나 엄마가 고쳐줬는데…. 

오늘 아침도 배트에 끼워서 휘두르기 하러 갔는데…. 

그래도 차에 치이려고 했던 아이를 구했던 건 좋은 일이야

있는 힘껏 뛰었으니까! 배트에서 글러브가 떨어져도 어쩔 수 없어

! 다시! 다시 길가 찾아보자

쵸로마츠 형아가 이럴 땐 처음으로 돌아가보라고 했으니까.

 

강둑을 올라 카라마츠 형아가 항상 있던 다리를 한 번더 살폈다

난간 사이사이, 다리 위, 다리와 이어진 차도와 인도

혹시 건물 사이에 들어갔을까

아니면 쓰레기통에 들어갔을까

아니면, 누가…, 주워갔을까…?

 

찾았는데, 없어. 강에도 없었어. 강도 한 번 더 찾아 봤는데-.

첨벙첨벙, 강에서 나와 강가에 섰다

강가에 깔린 마른 자갈에 뚝뚝 옷에서 떨어진 물이 방울무늬를 만든다

똑똑, 똑똑, 똑똑-. 옷에서 떨어진 물이, 자갈을 짙게 적셨다.

 

“괜찮-머슬머슬! 허슬허슬!”

글러브 없어도 휘두르기는 할 수 있으니까!! 

강둑에 세워둔 배트를 들고 즐겨찾는 휘두르기 장소로 뛰었다.

 

 

 

빈 캔이 부딪치며 검은 봉투 안에서 묘한 하모니를 이어갔다

이치마츠는 집에 도착하기 전, 길거리에 있는 재활용 쓰레기통에 빈 캔을 넣고 탁탁 손을 털었다

저 멀리, 시야에 겨우 낯익은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골목에서 나온 붉은 후드에 이치마츠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쳇, 오소마츠 형도 돌아온 건가…. 지금 들어가면 또 놀아달라고 귀찮게 할텐데….’

오소마츠가 점점 더 집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집에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던 이치마츠는 집 외에 딱히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떠올리고 칫, 하고 혀를 찼다

고양이들을 돌봐주러 이미 동네는 한 바퀴 돌았고, 고양이캔을 사느라 부실해진 지갑으로는 파칭코도 갈 수 없다

곧 저녁 시간이니 형제들이 돌아올 때까지 아주 잠깐, 오소마츠의 칭얼거림을 참아야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작게 한숨을 내쉰 이치마츠가 집을 향해 멈췄던 걸음을 이어갔다

질질, 슬리퍼를 끌며 이치마츠가 집에 다가가는 사이, 먼저 집에 도착한 오소마츠가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한 10결음. 이치마츠도 집에 들어가려고 발을 내디딘 순간, 벌컥 현관문을 연 오소마츠가 밖으로 나왔다

집에 들어가서 겨우 수 초. 다시 나온 오소마츠를 보며 눈살을 찌푸린 이치마츠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형.”

“어? , 이치마츄~!”

“어디 가?”

“응~? , 그게-! 담배 사는 걸 잊어버렸엉~!”

“아, 그래. 나 들어갈거니까 좀 비키지?”

“췟-! 차갑고만!”

뭣하면 같이 가줄까? 담배사러….”

입을 삐줄 내밀고 이치마츠가 들어갈 수 있게 비켜주는 오소마츠를 빤히 바라본 이치마츠가 툭, 던지듯 말했다

오소마츠는 이치마츠의 제안에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두세번 깜빡였다.


“아, 아니. 금방이고. 괜찮아-!”

-, 평소와 다름없는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코 밑을 문지르는 오소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그래.” 하고 건조한 대답을 끝으로 오소마츠를 지나쳐 현관으로 발을 들였다

열린 현관문 너머로 오소마츠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이 들렸다.


“목소리, 떨리고 있었지…?”

다른 때라면 오소마츠가 어딜 가든 상관도 하지 않았던 이치마츠는 묘한 위화감에 답답한 가슴에 손을 얹었다

담배를 사러 간다는 오소마츠의 태도는 평소와 같았지만, 아주 미약하게, 그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고양이의 울음 소리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는 이치마츠는 그런 목소리의 작은 변화도 잘 알 수 있었다

뭔가가 이상하다, 예민한 감각에 따라 오소마츠와 함께 나간다는 말을 내뱉었지만 바로 후회했다

놀란 오소마츠의 표정에 이건 자기 캐릭터가 아님을 마음 속 깊이 깨달은 이치마츠는 이로 말할 수 없는 데미지를 받고 말았다.


‘자폭이라니, 웃기지도 않는다고-.’

- 한숨을 내쉬며 복도에 발을 올린 이치마츠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찜찜함에 오소마츠가 나간 현관을 가만히 응시했다.

 

 

 

 

 

4.

 

“크힛-.” 하고 웃음을 흘리자, 내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질겁하며 거리를 둔다

-, 그래. 나같은 쓰레기 보기도 싫고, 옆에 오기도 싫겠죠-. 

완전히 이해함다-. 

손에 들린 봉투 속 빈 캔은 어제처럼 흔들리며 쨍그랑거리고 있다

오늘은 안 풀리는 날이었어

아침에 늦잠 자서 오소마츠 형한테 시달리고, 항상 사던 고양이캔은 다 팔려서 더 비싼 녀석을 살 수 밖에 없었다

, 녀석들이 잘 먹어줬으니 됐지만…. 

그리고, 하필그 자식을 만나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골목을 나와 큰길에 들어섰을 때, ‘그 자식을만났다

항상 묘하게 우리를 괴롭히던 녀석

쓸데없이 좋은 집에 태어나서 허세 쩌는 또라이 자식

삐까번쩍한 비싼 정장을 입고 지나가던 그 자식은 날 보자마자 뭐가 반갑다고여어-.” 하고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그렇게 돈이 많으신 분이 왜 걸어다니는 지는 모르겠지만, 내 앞에 서서 내 차림을 위아래로 훝어보더니 피식-, 비웃음을 날렸다

, 나야 항상 입는 후드에 츄리닝 바지에 슬리퍼 차림이었으니까

가소롭다는 얼굴로 거만하게 나를 내려다본 그 자식은 곧 필요없는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

대답할 필요성이 먼지만큼도 느껴지지 않아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더니, 그 가벼운 입을 털기 시작한다.


“너네 부모님도 참 대-단하시다. 이런 걸 아들이라고 여태 키우시고, 아직도 집에 데리고 사시는 거 보면.”

….”

“널 보니까 네 형제들도 어쩌도 있을지 뻔하다, 뻔해.”

….”

그 이후로 그 자식이 뭐라 씨부렸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멋대로 떠들길래 놔두고 와 버렸다.

 

별로 상관 없지만, 나는 구제불능의 쓰레기니까

하지만, 부모님이나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나 때문에 그 자식에게 우습게 보인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엄마랑 아빠는 우리를 지금까지 키워주셨다

완벽한 부모라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좋은 부모님이었다

토도마츠랑 쥬시마츠는 내가 학교 가기 싫어했던 시절에 나와 함께 등하교를 했다

나같은 쓰레기랑 같이 다니면 자기들 평판도 나빠질 텐데, 그런 거 신경쓰지 않았다

오소마츠 형도, 쵸로마츠 형도, 카라마츠 형도

한 번씩은 나를 챙겨주었었고…. 

그 자식에게 화내고 싶었는데, 화내야 했는데, 비굴한 나는 그것조차 할 수 없었다

행동력 없는걸. 그래도, 나 때문에…, 비난을 듣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

 

까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입안에 퍼졌다

이가 강한 힘으로 마찰해 미끄러지며 잇몸까지 욱씬거리는 아픔이 신경을 타고 올라온다

화낼 자격조차 없는데-.


히힛, 그래. 역시 나 같은 쓰레기는 살아 있을 가치 없는데 말이야.”

큰길을 벗어가 대낮에도 짙은 그늘이 드리운 골목 속으로 발을 옮겼다.

 

 

 

톡톡, 스마트폰의 화면을 두드리며 라인의 답을 기다리고 있던 토도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 바로 앞에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던 오소마츠가 번쩍 눈을 뜨더니,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타박타박, 발소리를 울리며 거실을 나가 복도에서 멈추지 않고, 뒷축이 구겨진 운동화에 발을 끼우는 것을 본 토도마츠가 의아하단 말투로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형, 비 온다는데, 어디 가려고?”

오늘 일기예보는 비 올 확률 80%. 

웬일로 들어맞은 일기예보를 따라 하늘은 검은 먹구름이 가득 채우고 햇빛을 틀어막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굵은 빗방울을 토해낼 것 같은 하늘을 보며 토도마츠가 묻자, 오소마츠가 씩- 웃으며 버릇처럼 코 밑을 문질렀다.


“똥 꿈 꿨으니까, 복권 사려고.”

“아, 그러셔. 그럼 당첨되면 나도 좀 줘~.”

“하? 싫네요~!”

휙휙, 놀아달라 귀찮게 달라붙는 강아지를 내치듯 손을 휘저은 오소마츠가 후드 주머니에 손을 끼우고 현관문을 열었다.


“잠깐! 오소마츠 형!”

“아? 뭐야?”

눈 비볐어?”

“어? -, . 습관적으로?”

“눈 비비면 안 되잖아! 손에 얼마나 병균이 많은데!”

“아-. 네네. 조심할게. 다녀오겠습니다~!”

오소마츠 형?”

토도마츠의 부름을 듣지 못했는지, 오소마츠는하고 현관문을 닫고 밖으로 떠났다

자고 일어난 탓인지, 정말로 눈을 세게 비볐는지 오소마츠의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평소라면 또 비볐구나, 하고 넘어갈 일은 오늘은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소란스럽게 이상한 소동을 만들어내는 가슴에 눈썹을 찌푸린 토도마츠가 오소마츠가 사라진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띠링-, 라인의 답장이 오는 소리가 귀에 닿았다.

 

 

 

 

 

5.

 

-. 오늘도 안됐다. 취직은 커녕 아르바이트도 구할 수 없었다

기분 전환으로 냐-짱의 라이브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다

-!! 모처럼 이력서도 준비해 갔건만, 헬로워크의 사무원은 내 이력서를 보자마자 픽-, 코웃음을 쳤다

재수없어.

똥꼬털 태워버린다 그 자식.

 

걷던 걸음을 멈췄다

손에 쥔 이력서를 구기고 잘게 찢어 공원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누군 아무런 경력도 없고, 자격증도 없고, 학력도 없는 이력서 쓰고 싶은 줄 아나

나도 싫다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는 걸 어떡하라는 거야!? 

빌어먹을 세상!!

 

중학교 시절, 흑역사라고 뭍어두었던 기억이 떠올라 주먹을 쥐고 숨을 삼켰다

육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오소마츠 군이 아니라쵸로마츠라고 불리고 싶어서

외로워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소마츠 형의 곁을 떠났다

악동을 그만두고 착실히 공부하고, 성실해져서 선생님들의 호감도 샀다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 때는, 이대로 탄탄대로를 걸어어른이 될 수 없다고

항상비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있던 육둥이를 벗어나정상에 들어갈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 따위 생각도 하지 않았어

남들이 하는 만큼 노력했다

아니, 그 이상으로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거라니, 개그도 안 된다고-.

 

처음엔, 당황했었다. 오소마츠 형은

돌연 오소마츠 형과 같이 다니지 않겠다 선언한 나를 보며 놀란 얼굴을 했었다

내 다짐을 믿지 않았는지, 아니면 여느때와 같이 작심삼일로 끝날 거라 생각했는지 오소마츠 형은 전과 똑같이 나를 대했다

같이 땡땡이 치자고 꼬셨고, 누가 싸움을 걸어오면 꼭 나를 불렀다

그게 너무 싫어서, 모처럼 다잡은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오소마츠 형이 싫어서, 전부 무시했다

오소마츠 형의 부름을 무시하고 먼저 집에 돌아 갔을 때, 엉망이 되어 돌아온 오소마츠 형이 화내며 따졌다

왜 안 왔냐고, 덕분에 엄청 맞았다고

퉁퉁 붓고, 멍들은 얼굴을 보고서도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났다

그리고 그날, 대판 싸우고 말았다

다시는 오소마츠 형과 같이 다니지 않을 거라고, 치기 어린 잔인한 말을 내던졌을 때…. 

오소마츠 형은 순간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곧 표정을 일변해 잔뜩 화내며! 그러던가!!” 하고 외쳤다

그렇게 싸운 후로 오소마츠 형은 더는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먼저 말도 걸지 않았다

빈 오소마츠 형의 옆자리는 카라마츠나 이치마츠가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없었기 때문인지, 오소마츠 형은 그 때 이후로 조금 막나가는 버릇이 생겼다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고, 잔뜩 다쳐서 돌아오고…. 

아무리 싸웠다지만, 오기로 말을 걸지 않는 상황이라지만, 매일 다쳐서 오는데 걱정이 안 될 리 없고

괜찮냐는 말을 억지로 삼키고 오소마츠 형에게서 시선을 돌릴 때면 꼭, 시야 끝에 울음을 억지로 참는 오소마츠 형의 얼굴이 걸렸다

그런 얼굴,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멋대로 오소마츠 형을 버린 벌인지

일은 잘 풀리지 않았고, 결국엔 이 꼴이다

육둥이 나란히 동정에 백수

-, 정말 개그도 안 된다고.

 

멈췄던 발을 다시 내디디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차오르기 시작하는 그것을 억지로 무시하며 걸음을 재촉했을 때, ! 어깨가 부딪쳤다.


“아!? 겁나 아프네-! 어이, 형씨! 어딜 보고 다녀!? 아앙?!”

웬 잡놈 하나가 내 멱살을 잡고 언성을 높인다

계집애마냥 높아진 목소리가 갈라지니 정말 들어줄 수가 없다

스멀스멀, 스멀스멀, 검은 것이 결국 가슴을 가득 채우고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 젠장.”

낮게 내뱉고,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잡놈 멱살을 나란히 잡아주었다

착실하게 살려고 했는데-. 

그걸 망친 죗값은 받아야지, 잡놈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빠진 카라마츠의 몸이 잘게 흔들린다

카라마츠 이외 모든 동생들이 외출한 한낮

심심함에 미칠 것 같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등에 매달려 엎드린 채, 다리를 잔망스럽게 흔들었다.


“카~~~츠우~~!! 거울 그만 보고 나랑 놀아줘어~!!”

다리를 흔들다 못해, 아예 카라마츠의 옷을 콱 붙잡고 좌우로 흔들기 시작한 오소마츠에게 맞춰 흔들리는 거울을 꽉 붙잡은 카라마츠가.” 하고 웃음 소리를 흘렸다

오소마츠가 매달려 보채기 시작한지 약 1시간

이 정도면 잠깐 놀아줘도 괜찮을까, 홀로 고개를 끄덕인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부르려 거울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 순간, 카라마츠를 흔들어대던 오소마츠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오소마츠…?”

“안 놀아줄 것 같으니까 파칭코 갈래.”

.”

오소마츠 답지 않은 낮은 목소리. 너무 뜸을 들여 화가 난 것일까, 불안해진 카라마츠가 거실을 나가려는 오소마츠의 손을 황급히 붙잡았다.


“자, 잠깐! 오소마~? 지금! 지금 놀아주려고 했다!”

“됐어. 삔또 상했어.”

“에엩!?”

주욱-, 오소마츠 손을 잡아당기며 놀아주겠다 권해도 카라마츠에게서 고개를 돌린 오소마츠는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갑게 대답했다

거실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자신을 봐주지 않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이유모를 섬뜩함을 느낀 카라마츠가 저도 모르게 오소마츠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프잖아!! 망할 마츠!”

카라마츠에게 잡힌 손을 강하게 휘두르며 버럭 외친 오소마츠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

오소마츠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다다미 바닥에 떨어졌다.

 

?”

눈물이, 오소마츠의 눈에서 나온 것을 깨달은 카라마츠가 눈을 크게 뜨며 손의 힘을 풀었다

느슨해진 카라마츠의 손을 강하게 뿌려치고, 소매로 벅벅 눈가를 문지른 오소마츠가 잽싸게 몸을 돌려 거실을 뛰쳐나갔다

! 하고 닫힌 현관문의 소리에 카라마츠가 숨을 삼키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6.

 

“오소마츠!!!”

집을 뛰쳐나간 오소마츠를 쫓아 급히 현관문을 열어젖힌 카라마츠 앞에우왓!” 하고 쵸로마츠가 놀라 뒷걸음질쳤다

항상 단정히 목 끝까지 단추를 잠궈 입던 체크무늬 초록색 셔츠가 엉망으로 구겨져있고, 단추는 두세 개 날아가있다

얼굴과 옷 군데군데 흙먼지가 묻어있는 쵸로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놀라에엑!?” 하고 비명을 지르며 눈을 깜빡였다.


“뭐야, 왜 사람을 보고 그렇게 놀라.”

“아, 아아아니. , 모습은 대체….”

“아-. 잠깐 잡놈들한테 걸려서.”

“자, 잡놈?!”

“근데 왜 오소마츠 형을 부르면서 나와? 뭔 일 있었어? 그 망할 장남이 또 돈 가지고 튀었어?”

쵸로마츠의 답지 않은 대답에 혼란스러워하던 카라마츠가 쵸로마츠가 내뱉은오소마츠란 단어에 정신을 차리고 쵸로마츠의 어깨를 붙잡았다.


“쵸로마츠! 혹시 오소마츠가 어디로 뛰어갔는지 봤나?”

“어? . 저기 공원 쪽으로….”

“고맙다!!”

“아니, 잠깐 잠깐!!”

쵸로마츠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원 쪽으로 뛰어가려는 카라마츠를 쵸로마츠가 붙잡았다

항상 아래로 늘어뜨린 눈썹을 세워 잔뜩 찌푸린 쵸로마츠가 카라마츠를 날카롭게 응시하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게…, 갑자기 오소마츠가 눈물을 흘려서.”

“하? 그 망할 장남이 울 리 없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로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는데 울더니 혼자 뛰쳐나가 버렸다.”

“아무 이유도 없는데 갑자기 왜…,”

카라마츠의 설명에 고개를 기울인 쵸로마츠가 말을 흐렸다

문득 떠오른 어린 시절의 기억에 쵸로마츠의 말문이 막혔다.

 

 

어릴 적, 아직 오소마츠와 함께 악동짓을 하던 시절. 오소마츠를이 아닌오소마츠라고 부르던 그 시절에

어느 날, 함께 사고를 치고 뒤를 쫓는 어른들에게서 도망치던 날

오소마츠를 따라 뜀박질하던 쵸로마츠가 거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촤악-, 엄청난 마찰음을 내며 보도블록에 온몸을 쓸린 쵸로마츠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곳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무릎을 확인했다

지끈거리는 아픔에 왈칵 눈물이 솟았지만, 어린애도 아니고 넘어진 정도로 울면 꼴사납다는 생각에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훌쩍-, 콧물과 함께 눈물을 들이마신 쵸로마츠 앞에 오소마츠가 쭈그리고 앉아 눈을 맞췄다.


왜 오소마츠가 울어?”

“그야, 쵸로마츠가 안 우니까….”

무슨 조화일지는 몰라도, 어쩌면 일란성 쌍둥이의 텔레파시 같은 것일지 모르지만,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대신해 울고 있었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은 오소마츠의 볼을 타고 떨어졌다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는 오소마츠를 마주본 쵸로마츠도 결국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쵸로마츠가 서럽게 울기 시작하자 오소마츠는 거짓말처럼 눈물을 그쳤다.

 

 

잊고 있었던 과거를 꺼낸 쵸로마츠가 빠득-, 이를 갈았다.


“그 망할 장남 자식이…!”

쵸로마츠의 조용한 분노에 카라마츠가 흠칫, 몸을 떨었다

, 브라더-…?” 하고 자신을 부르는 카라마츠를 매섭게 노려본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덥썩 잡았다.


“빨리 망할 장남 찾으러 가자!”

“오, 오우!!”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거세게 끄덕였다

강하게 땅을 박차고 뛰기 시작한 발소리가 서서히 현관에서 멀어졌다.

 

 

파칭코, 경마장, 공원, 치비타네 가게

그 어느 곳에도 오소마츠는 없었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오소마츠를 생각하며 초조하게 입술을 깨문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와 함께 큰길가 번화가로 향했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 필사적으로 오소마츠의 붉은 후드를 찾는다

조금이라도 비슷해 보이는 사람을 붙잡고, 오소마츠가 아니란 것을 확인하고 사과하기를 몇 번

실패가 늘수록 초조함은 배가 되어 무겁게 카라마츠와 쵸로마츠의 가슴을 짓눌렀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오소마츠를 찾고 있는 카라마츠의 시야에 익숙한 삼색 후드가 보였다.


“브라더-!!”

“칫.”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카라마츠를 보며 낮게 혀를 찬 이치마츠가저리 꺼져, 망할 마츠!” 하고 으르렁거렸다

다른 때라면 이치마츠의 협박에 몸을 떨며, 미안하다….” 하고 뒷걸음질 칠 카라마츠가 스스럼없이 셋에게 다가갔다.


“토도마츠, 혹시 오소마츠 못 봤나?”

“오소마츠 형? 못 봤는데…?”

카라마츠의 질문에 토도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쥬시마츠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젓고 질문을 이치마츠에게 돌렸다.


“이치마츠 형아! 형아는 오소마츠 형아 봤슴까?”

“아니, 나도 못 봤어.”

이치마츠의 대답에 절망어린 표정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린 카라마츠가그런가….”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알겠다. 시간을 뺏어 미안하다. 브라더-.”

“야, 개똥마츠. 오소마츠 형이 어쨌는데….”

“그게-.”

“카라마츠! 오소마츠 형 찾았어?”

번화가 반대편에서 오소마츠를 찾던 쵸로마츠가 카라마츠를 발견하고 뛰어왔다

카라마츠와 함께 있는 세 동생의 모습에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와 마찬가지로 오소마츠의 행방을 물었다

모른다고 대답한 셋에게그래.” 하고 짧게 대답한 쵸로마츠가근데 웬일로 셋이 모여있어?” 하고 물었다

쥬시마츠와 쇼핑하다가 골목에서 나온 이치마츠와 마주쳤다고 대답한 토도마츠가 안달난 표정으로 인파 속을 확인하는 쵸로마츠를 붙잡았다.


“뭔데 그래?”

“망할 장남 자식이 혼자 어디 처박혀 울러 갔어.”

“하? 울러 갔다고?”

“어!”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되묻는 토도마츠에게 짜증 섞인 대답을 한 쵸로마츠가 다시 인파 속으로 헤집고 들어갔다

필사적이 되어 오소마츠를 찾는 쵸로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혼자 울러 간 게 뭐가 문제야?”

“그게…,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울기 시작했다고 말했더니.”

“갑자기?”

“아….”

카라마츠의 설명에 고양이 눈을 하고 쵸로마츠를 응시하던 쥬시마츠가 당황한 얼굴로 쵸로마츠를 따라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 쥬시마츠 형!?” 하고 부르는 토도마츠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큰 소리로오소마츠 형아-!!!” 하고 외치는 쥬시마츠의 모습에 이치마츠가.” 하고 신음했다.


“어? 뭐야? 이치마츠 형?”

심상치 않은 감탄사에 토도마츠가 설명을 재촉했다

우물우물, 대답하길 망설이던 이치마츠가 작게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아마, 우리 대신 울러 간 거 아닐까….”

“우리, 대신….”

“그런가.”

이치마츠의 말에 토도마츠는 고개를 기울였고, 카라마츠는 이해되었다는 얼굴로 쵸로마츠와 쥬시마츠를 따라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하아!? 그게 무슨 말?”

“일단, 오소마츠 형을 찾는 게 먼저.”

“어? 어어…. 알겠어.”

제 손을 잡고 이끄는 이치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아직도 모르겠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이서 함께 한 시간이 넘도록 번화가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오소마츠는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다 같이 찾아도 효율이 떨어져! 흩어져서 찾자!”

쵸로마츠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왜 오소마츠를 찾아야하는지 이유를 모르던 토도마츠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쵸로마츠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섯 동생을 번화가를 벗어나 뿔뿔이 흩어졌다.

 

 

번화가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있는 대형 쇼핑몰

그 옥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오른 토도마츠가 올라가는 층수를 보며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어릴 때부터, 토도마츠가 풀이 죽었을 때 항상 오소마츠가 데려와 주었던 곳.

쇼핑몰 옥상의 놀이터

여러 놀이기구가 있고, 솜사탕이나 팝콘을 파는 노점상이 있는 옥상에 토도마츠가 뛰어 들어갔다.

가면을 쓴 히어로들의 연극이 한창인 야외 무대를 지나, 노점상 앞과 놀이기구를 살폈다

좁은 옥상을 수십 번 돌아도 오소마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와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삼킨 토도마츠가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어느 날, 함께 야구를 하다 비를 피했던 곳

강둑을 내려간 쥬시마츠가 사람이 오가는 다리 아래 그늘로 들어갔다

여름에 잠깐 지나가는 게릴라성 호우를 피하며 도란도란 잡담을 나누었던 자리엔 땅의 냉기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빗줄기와 번쩍이는 번개, 우르릉 하늘이 깨질 것처럼 울리는 천둥 소리에 몸을 움츠린 쥬시마츠를 웃으며 달래주었던 오소마츠는 그곳에 없었다

멍청히 아무도 없는 땅을 응시하는 눈이 흔들렸다

야구로 뜨거워진 몸을 식히고 잠시 햇빛을 피해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던 최고의 장소

쥬시마츠가 가장 아끼는 그 장소에 오소마츠가 없다는 사실이 왜 이리도 불안하게 느껴지는지 쥬시마츠는 알지 못했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끼고, 가슴이 부풀도록 숨을 잔뜩 들이마신 쥬시마츠가 다시 바쁘게 땅을 박차고 뛰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 사람들이 오가는 분수대가 있는 중앙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의 구석.

제법 넓은 공원 안은 인적이 드문 곳도 많았다.

두리번 거리며 공원을 떠들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핀 이치마츠가 오소마츠가 없는 것에 눈썹을 찌푸리고, 가지런히 깔린 보도블럭을 벗어났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 그 옆에 우거진 수풀

잔디와 길가를 가르는 낮은 울타리를 넘어 수풀 속으로 들어간 이치마츠가 기억을 더듬어가며 발을 옮겼다

학창 시절, 우연히 버려진 고양이를 발견해 이곳에 숨겼다

매일 용돈을 쪼개 고양이 밥을 샀다

그러다 어느 날, 오소마츠에게 들키고 말았다

항상 늦게 귀가한다고 이치마츠를 나무랐던 부모님에게 이를 줄 알았지만, 오소마츠는 제 용돈도 보태 고양이를 함께 돌봐주었다

이치마츠의 늦은 귀가는 오소마츠가 여기저기 끌고 다녔단 변명이 생겼고, 어린 고양이들이 자라 성체가 될 때까지 둘의 비밀스러운 양육이 이어졌다.

그리운 추억에 젖어 눈가가 촉촉히 젖었다

어린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퍼졌던 수풀 뒤엔 풀벌레 소리만이 가득했다

아무도 없는 수풀 속. - 한숨을 내쉰 이치마츠가 뜨거워지는 눈을 숨기고 수풀을 나왔다.

 

동네의 뒷산. 너무 높지 않아 정상까지 오르는데 겨우 10분이 걸리는 낮은 산

그 중턱에 쵸로마츠와 오소마츠가 만든 비밀기지가 있었다

항상 여섯이서 함께 다니고, 무엇이든 여섯이서 나누는 것에 염증을 느꼈던 시절

다른 형제에겐 비밀로 하고 단 둘이서 만든 비밀기지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등산로를 벗어나 동물이 이용하는 좁은 길을 따라 비밀기지에 도착한 쵸로마츠가 바닥에 널려있는 흙투성이 딱지를 집어들었다

딱지에 인쇄된 슈퍼 영웅은 다 바래 잉크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쵸로마츠가 가져왔던 장난감 자동차도, 오소마츠가 가져왔던 만화책도 다 그 자리에 있었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마지막에 이곳에 왔던 그 날 그대로

주인에게 버려진 만화책과 장난감들을 하나씩 매만지며 그 자리에 주저앉은 쵸로마츠가 작게 울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온 동네를 돌아도 오소마츠는 보이지 않았다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잔뜩 인상을 찌푸린 카라마츠가 집으로 발을 돌렸다

혹시 집에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말의 희망을 품고 현관문을 열었지만, 현관에 놓인 신발은 부모님의 것뿐이었다

낮게 신음하며 아랫입술을 깨물고 신발을 벗었다

복도에 오르자마자 다녀왔냐고 외치는 마츠요의 목소리에 대충 대답하고 계단을 올랐다

2층의 복도. 그 위에 있는 다락으로 통하는 계단을 펼쳤다

언제나 평등했던 육둥이가형’과동생으로 나뉘기 시작했을 때,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이라는 이름으로 양보를 강요받았다

먹고 싶었던 간식을 동생에게, 놀고 싶었던 장난감도 동생에게

싸움을 해도인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더 많이 혼났다

어린 마음에 그런 차별이 너무나 분해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동맹을 맺었다

우리 사이는, 동생없기. 그렇게 손가락을 걸고, 때때로 맛있는 음식을 손에 넣으면 다락에 올라 둘이서 나눠먹었다

오소마츠가 친구에게 빌려온 만화책도 동생들과 돌려보기 전에 다락에서 둘이 제일 먼저 보았다

끼익, 하고 불안하게 울리는 접이식 계단을 올라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다락에 얼굴을 밀어넣다

뽀얗게 쌓인 먼지 사이로 보이는 것은 쥬시마츠의 책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짙은 눈썹이 힘없이 아래로 처졌다

아무도 없는 다락에서 괴롭게 시선을 돌린 카라마츠가 다시 계단을 접어 올렸다.

 

 

 

 

 

7.

 

없다. 어디에도 없다. 추억의 장소에도, 자주 찾아가던 곳에도, 육둥이가 함께 다니던 술집에도

그 어디에도 오소마츠는 보이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나온 카라마츠의 시야에 아무런 소득 없이 걸어오는 네 개의 그림자가 걸렸다

빨강이 없는 그림자는 눈시리도록 슬퍼 보였다

집 앞에 모인 다섯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진득하게 내려앉았다

이렇게나 찾았는데, 결국 그 누구도 오소마츠를 찾기 못했다.

문득, 다섯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스쳤다


어릴 적, 함께 했던 숨바꼭질. 오소마츠가 숨으면 그 누구도 찾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가 심장을 꽉 조였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 공포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영영 오소마츠를 찾지 못하는 것 아닐까, 하는 공포

오소마츠를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두려움

그 끔찍한 감정이 다시 다섯을 옭맸다

커다란 뱀처럼 다리부터 감고 올라와 온몸을 강하게 조이는 공포에 입술이 덜덜 떨렸다

새파래진 형제들의 얼굴을 본 카라마츠가 크게 외쳤다.


“우는 거다!!”

““““?””””

카라마츠의 외침에 모두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얼굴로 응시했다

카라마츠는 손바닥에 손톱이 박히도록 강하게 쥔 주먹을 풀고, 팔을 크게 펼쳐 형제들에게 호소했다.


“어릴 때부터 그랬잖아? 우리가 울면, 누가 와 주었다고 생각하나!

“““…!!”””

“으, -, 으아아아아아-!!!”

카라마츠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뜬 형제들 사이에서 쥬시마츠가 즉각 울음을 터뜨렸다

뚝뚝, 커다란 눈물을 떨어뜨리는 쥬시마츠를 본 남은 형제들의 눈이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흐, 으으아아아앙!!”

“크, 흐읏, -.”

“흐, 흐으으으….”

“하핫! 퍼펙트다, 브라더-…. .”

쥬시마츠를 따라 토도마츠, 이치마츠, 쵸로마츠가 울음을 터뜨렸다

엉엉 울기 시작한 형제들을 보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활짝 웃은 카라마츠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래, 오소마츠는 언제나 찾아내주었다

동생들이 울고 있으면

천리안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꽁꽁 숨어 울고 있어도, 반드시 찾아와주었다.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와 크게 싸우고 서로 말도 걸지 않았을 때, 사과하고 싶은데 쓸데없는 오기 때문에 사과하지 못하고 계속 카라마츠에게 무시당했던 그때

자신이 한심하고 솔직하게 사과하지 못하는 것이 분해서 모두가 잠든 새벽에 혼자 이불 속에서 훌쩍 거리고 있을 때, 오소마츠가 슬쩍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일은 솔직히 사과해.” 하고 토도마츠를 쓰다듬어준 그 손길에, 서럽게 울던 눈물이 뚝 그쳤다.

 

친했던 동급생. 야구부에 속해 있으면서 쥬시마츠만큼이나 야구를 좋아했던, 정말 정말 좋아했던 친구

그 친구가 집안 사정으로 멀리 전학을 가야 했을 때, 너무나 좋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깔끔하게 배웅을 했는데도, 슬펐다

학교에 가도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잘 믿겨지지 않아서, ‘왜 학교에 가야 하나하는 어리석은 의문까지 들어서, 학교를 땡땡이 친 그날

이치마츠가 자주 돌아다니는 동네의 어두운 골목길을 발이 이끄는 대로 걸어, 자신도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 도착했을 때, 참고 있던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아무도 없는 뒷골목에서 마음껏 소리 높여 울부짖고 있을 때, 너무나 가벼운 어조로여기 있었네~, 쥬시마츠.” 하고 다가온 오소마츠는, 쥬시마츠의 옆에 엉덩이를 내리고 앉아 쥬시마츠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함께 앉아있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웃의 계략으로, 쥐약을 먹은 고양이가 죽었던 적이 있었다

차갑게 식은 친구를 안아들고 뒷산에 묻어주었다

다음 생에는 고양이로 태어나지 말라고, 그렇게 빌어주고 산을 내려와 흙투성이 슬리퍼를 내려다본 순간,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대낮에,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길거리. 홀로 멈춰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울고 있는 이치마츠를 모두가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소리 죽여 맑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치마츠 앞에 붉은 운동화가 멈췄다

고개를 들어올리자, 활짝 웃은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무슨 일 있었어~?” 하고 장난스럽게 묻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 상냥해서, 이치마츠는 친구의 명복을 빌며 오소마츠의 품에 안겨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반듯하게 살자. 성실해지자. 그렇게 다짐했다

그것을 위해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 그대로 좋은 대학에 들어갈 것을 목표로 삼았다.

고등학교 입시가 결정되는 마지막 시험

이 이상 열심히 할 수 없을 정도로 공부했다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려가며 암기하고, 문제를 풀고, 수식을 외웠다

초등학교 6, 중학교 3년을 통틀어서 가장 열심히 공부했고, 기대되는 시험 점수도 사상 최고일 것이라 자만했었다

그런데 무슨 벌을 받은 것일까, 시험 전날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제대로 일어서기도 힘든 몸을 채찍질해 학교에 도착해 시험을 보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노력해도 너는 안된다고, 위대하신 누군가가 말하는 것 같아서,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출입금지가 된 학교 옥상. 악동 시절에 익힌 재주로 능숙하게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 문을 등지고 앉아 울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을 때, 덜컹- 열리는 문에 뒤통수를 부딪치고 넘어졌다

뭐하냐, 여기서~.” 하고 한심하다는 듯이 내뱉은 오소마츠가 문을 닫고 쵸로마츠 옆에 앉았다

흘끔, 쵸로마츠를 훔쳐본 오소마츠가 배시시-, 솔직한 웃음과 함께 쵸로마츠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니, 대단하네-. 난 그렇게 못해.” 하고 엄지를 척 들어올리는 오소마츠의 어깨에 쵸로마츠가 얼굴을 묻었다

서서히 젖어들어가는 어깨에 쓴웃음을 지은 오소마츠는 쵸로마츠가 눈물을 멈출 때까지 쭉-, 그 자리에 있었다.

 

이치마츠에게 시끄럽다는 구박을 들어가며 연기 연습을 이어갔다

문화제에서 보일 연극의 주연을 따기 위해서

실력자가 넘쳐나는 연극부에서 한 번이라도 자랑할만한 배역을 맡아보고 싶었던 카라마츠는 집과 학교,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본을 펼쳐 들었다

발성을 신경쓰면서, 대사는 전부 머릿속에 집어넣고, 손짓 하나, 어미 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중학교 3학년, 마지막 문화제에서 형제들에게 무대 위에서 빛나는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야말로 열심히 연습했다

하지만 카라마츠가 들어간 연극부에는 그보다 실력이 출중한 자들이 너무 많았다

아쉽게 주인공역을 놓친 카라마츠는 결과를 인정하면서도 분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조용히 서러움을 죽이고 있을 때, 벌컥 문이 열리고 오소마츠가 들어왔다

.” 하고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넨 오소마츠는 말없이 카라마츠 앞에 쭈그리고 앉아 가만히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거친 손을 들어 벅벅 조잡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그것이 오소마츠의 위로라는 것을 깨달은 카라마츠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엉엉, 어린 아이처럼 성인 남성 다섯이 목청 높여 울었다

장남의, 형의 부재가 슬퍼, 커다란 눈물을 뚝뚝 흘렸다.

 

 

 

 

 

8.

 

산 너머로 넘어가는 해가 길게 그림자를 늘였다

집을 향해 걸어오는 붉은 후드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살짝 부어오른 눈을 비비며 집을 향하던 걸음이, 집 앞에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에 속도를 붙인다

서둘러 뛰어가자, 아니나다를까 동생 다섯이 나란히 집 앞에서 울고 있는 광경에 오소마츠는에에?!” 하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 너희 무슨 일이야!?” 하고 뛰어온 오소마츠의 모습에 다시 울컥-, 눈물을 쏟아낸 동생들이 오소마츠를 감싸듯 껴안아 둘러싸고흐으~.” 하고 울음을 흐렸다

또 오소마츠가 훌쩍 어디로 가버리지 못하게 붉은 후드를 꽉 붙잡고 오소마츠의 체온에 제 슬픔을 달랬다

운 이유도 말하지 않고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동생들을 보며 쓴웃음을 피운 오소마츠가 둥근 머리를 하나하나 쓰다듬어주며 동생들을 달랬다.

 

 

 

울고 싶은 일이 있다면 더는 참지 않는다. 그것이 동생들 사이의 암묵의 규칙이 되었다

또 울음을 참는다면, 오소마츠가 대신해 울며 혼자 사라질 테니까

오소마츠가 또다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버릴 것이 두려워, 금방 울음을 터뜨리는 동생들을 달래는 오소마츠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었다.


“정말, 너넨 횽아가 없으면 안 되겠네-!”

그렇게 말하는 오소마츠의 얼굴엔 수줍은 미소가 활짝 피어 있었다

-, 이 미소를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하며 다시는 오소마츠를 혼자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가 동생들의 마음 속에 피어났다.






* 소설 본편에서 카라마츠가 울음을 참지 않는 이유는 카라마츠가 울보니까 입니다ㅎㅎ

 카라마츠는 힘든 일이 있으면 그냥 울 것 같아요. 아니면 오소마츠 앞에서 울던가.

 그래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대신해 울어주지 않습니다ㅎ (여기서 나오는 장형마츠 분자의 망상)


* 이번주 주말엔 왕자공주가 올라옵니다~! 50제는 주말이나 주중 관계 없이 자유 연재할 것 같아요^^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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