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위터 친구 레모몬님의 생일 축전으로 쓴 단편입니다! 좀 늦었지만...ㅎㅎ;;


* 레모몬님이 바라시던 글과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런 글입니다.


* 어쩌다보니 약한 장남이 되었습니다.....


* 학생마츠입니다.  육둥이의 학창시절 날조가 있습니다.


* 공미포 10,143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낡은 자물쇠를 요령껏 오른쪽으로 비틀자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렸다

끼이익-, 하고 비명을 지르는 문을 열자 하얀 바닥과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옥상 위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찡그린 오소마츠가 차가운 바닥에 엉덩이를 내렸다. 빨간 보자기에 쌓인 도시락을 바닥에 내려놓고 닫힌 문을 응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라마츠가 비명을 지르는 문을 열고 옥상에 올라왔다

한 손엔 대본을, 다른 한 손엔 도시락을 들고 다가오는 카라마츠에게 가볍게여어-.” 하고 인사를 건넨 오소마츠가 도시락을 열었다

마츠요가 싸준 도시락은 6개 모두 똑같은 반찬이 담겨 있었다

엄마의 손맛이 가득한 계란말이를 입에 넣은 오소마츠가 대본을 읽는 카라마츠를 가만히 응시했다

하나씩 반찬이 없어져 가는 오소마츠의 도시락과 달리 카라마츠의 도시락은 그대로

대본에 열중해 오소마츠에겐 시선도 주지 않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2.

 

미지근한 온수처럼 느껴졌던 초등학교를 졸업한 육둥이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귀가 시간은 더 늦어지고, 교복을 입고, 더 어려워진 수업

모든 것이 변한 가운데 육둥이도 변해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겨우 학교 하나 옮겼을 뿐인데 육둥이를 둘러싼 환경은 급변했다

선생님들은공부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친구들도 마냥 즐겁게 놀지는 않았다

육둥이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혼동한다는 이유로 각 반에 한 명씩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주변의 변화를 따라 육둥이 내부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동등했던 지위는형과 동생으로 나뉘었고 오소마츠에게는장남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겨우장남이라는 단어 하나에 오소마츠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변했다

장남이니까, 장남이 왜, 장남이 해라…, 등등. 오소마츠에게만 특별함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그저 당황스러웠다

그러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부모님조차네가 장남이잖니.” 라는 말을 태연하게 내뱉었다

자신에게 요구대는 기대에 오소마츠는 숨이 막혔다

강요받은 기대에 혼란스러워하며 도망치는 사이에 오소마츠 자신은장남이자이 되었고 다른 녀석들은동생이 되었다

커지는 몸과 변성기를 거쳐 낮아지는 목소리와 함께 동생들은 점점 더 변해갔다

오소마츠로 있으려 하는 오소마츠를 남겨두고 멀어지는 동생들이 낯설었다

가장 가까웠던 쵸로마츠조차 오소마츠의 곁을 떠나자 오소마츠는 혼자가 되었다

항상 여섯이 함께였던 그 자리에 달랑 혼자 남은 오소마츠는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항상 어린 시절만 같을 줄 알았다.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동생들은 각자의 것을 찾아 바빠졌고, 자연스럽게 오소마츠는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니, ‘혼자인 것은 아니었다

활발하고 쾌활한 오소마츠 곁엔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오소마츠의 주변은 항상 떠들썩했다

한시도 조용하지 않은 무리 속에서, 오소마츠는 자신이외톨이임을 느꼈다.

 

 

 

모두 둘러앉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토도마츠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며 카라마츠의 주역 소식을 알렸다

뭘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카라마츠가 주역이 된 것은 순전히 자기 덕분이라며 으스대는 토도마츠에 이어 카라마츠도,” 하고 웃음을 흘렸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소란을 떨며 정말이냐, 거짓말 아니냐, 무슨 역이냐, 질문 세례를 퍼붓는 동생들에게 카라마츠가 하나하나 질문에 답했다

이번 연극은 왕자와 공주가 나오는 전형적인 이야기로 카라마츠는 무려 왕자역을 맡았다

놀라운 이야기에 모두 축하한다는 말을 던지자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짙은 눈썹을 슬쩍 늘어뜨렸다.


그런데 혼자 연습할 곳이 없어서 곤란하다….”

카라마츠의 말에 잽싸게 비엔나소시지를 제 밥그릇에 옮긴 토도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부실에서 같이 연습하면 되잖아?”

그게, 감정을 잡고 대사 연습을 하려면 혼자가 편하다. 그런데 부실은 다른 부원이 있고, 체육관은 운동부가 쓰고 있고, 빈 교실은 선생님께 혼나니까….”

수업이 모두 끝난 후, 빈 교실에 있다가 걸리면 무슨 나쁜 짓을 하는게 아니냐는 추궁을 듣기 쉽상이었다

카라마츠의 고민에 동생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돌려주며 찾아보면 연습할 곳이 있을거라는 무책임한 대답을 했다. “-.” 하고 대답하고 다시 밥을 우물거리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눈을 빛냈다.

 

기회다!’

 

오소마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오소마츠가 터져 나오는 환희를 삼켰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도록 입안 가득 밥을 욱여넣고 먼저 밥상에서 일어난 오소마츠가 주방으로 향했다

평소에도 형제들보다 먹는 속도가 빠른 오소마츠를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주방에 들어가 싱크대에 빈 밥그릇을 내려놓은 오소마츠가 다음 동생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오소마츠 다음으로 밥을 빨리 먹는 것은 카라마츠였다

터벅터벅,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심장이 두방망이 치는 것을 느꼈다

두근두근두근,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누르고 주방 입구를 응시한 오소마츠가 들어오는 카라마츠를 보며 씩- 환한 미소를 피웠다.


카라마츄~.”

? 뭔가? 형님.”

실실 웃으며 다가오는 오소마츠를 경계하듯 눈을 게슴츠레 뜬 카라마츠가 물었다

슬슬 저를 피하는 태도에 흐트러진 미소를 억지로 올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혼자 연습할 수 있는 데를 알고 있는데-.”

. 정말인가?”

! 알고 싶으면 내일 점심시간에 우리 반으로 와!”

카라마츠에게 말을 끝낸 오소마츠가 그 옆을 스쳐 주방을 빠져나왔다

멈추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쿵쿵쿵, 박동하는 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겨우 대화 몇 마디 나누는 것뿐인데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왜 자신이 이렇게나 떨고 있는지, 잘게 떨리는 손끝을 보며 쓴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제 손을 감싸 쥐었다

거부당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카라마츠도 오소마츠를 두고 간 동생 중 하나였다

장남오소마츠의 가장 가까운차남이지만, 쵸로마츠마저 오소마츠의 곁을 떠난 상황에서 카라마츠가 남아있을 리 없었다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은 것이 기뻤다

한숨과 함께 마음을 가라앉히고 변기 레버를 내렸다

낡은 변기에서 쿠르릉- 소리와 함께 물이 내려가는 것을 뒤로하고 오소마츠가 화장실을 나갔다.

 

 

 

점심시간이 되어 교실 문을 바라보던 오소마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를 찾아온 카라마츠를 보자마자카라마츠~~!” 하고 손을 흔들며 달려간 오소마츠가 카라마츠 손을 잡고 복도 저쪽으로 이끌었다

뛰다시피 복도를 가로지르는 오소마츠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옥상은 잠겨 있을 것이 뻔한데 계단을 오르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빨리~.” 하고 저를 재촉하는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할 수 없이 계단을 올랐다.

 

 

예상대로 잠겨있는 자물쇠에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고형님.” 하고 오소마츠를 불렀다

손을 들어기다려봐.” 하고 자물쇠를 손에 쥔 오소마츠가 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자물쇠를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 소리를 내며 열린 자물쇠를 본 카라마츠가 눈을 크게 떴다.


어때~? 대단하지~? 카리스마 레전드 오소마츠님한테 걸리면 이런 건 껌이지~.”

코 밑을 집게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씩- 웃은 오소마츠가 옥상 문을 열고 들어갔다

녹슨 문이 끼이익- 하고 고막을 긁었다

카라마츠는 누가 듣고 올라오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을 안고 오소마츠를 따라 옥상에 발을 내디뎠다

환한 햇빛 아래 선선한 바람이 교복을 뒤집고 지나갔다

푸른 하늘 아래 선 오소마츠가어때?” 하고 카라마츠를 보며 물었다

옥상은 오소마츠가 으스댈 정도로 혼자 연기 연습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인 것은 확실했다.


, 완벽하다.”

그치?”

카라마츠의 대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오소마츠가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열고 바닥에 앉았다

바로 연습할 수 있도록 대본을 들고 온 카라마츠가 그 자리에 앉는 오소마츠를 보며 당황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 형님. 여기서 먹을 건가?”

카라마츠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울컥 치솟는 화를 그대로 드러냈다.


.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돼? 내가 알려준 데잖아.”

오소마츠의 낮은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손까지 휘저으며그런 건 아니다.” 하고 얼버무린 카라마츠가 젓가락을 입에 문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시끄럽지 않겠나? 여기서 대사 연습도 할 생각인데….”

괜찮아.”

카라마츠의 질문에 깔끔하게 대답한 오소마츠가 다시 젓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볼 가득 밥을 넣고 우물거리는 모습이 꼭 다람쥐를 닮았다

괜찮다는 말대로 카라마츠 자신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도시락에 집중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대본을 펼쳤다.

 

이날 이후로, 옥상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단둘만의 공간이 되었다.

 

 

 

 

 

3.

 

마츠요의 도시락을 먹느라 고개를 숙인 오소마츠가 슬쩍 눈을 위로 올렸다

젓가락을 한 손에 든 채, 대본을 읽는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소마츠에게 닿았다

목소리까지 비슷했던 육둥이는 변성기를 거쳐 서로 다른 색을 가진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같은 남자인데도 목소리의 높낮이가 달랐다

카라마츠는 육둥이 중에서도 가장 목소리가 낮았다

남자의 매력을 가진 낮고 멀리 울리는 목소리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굉장히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종종 이치마츠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겠다고 제안하는 카라마츠

한 번도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카라마츠가 부르는 자장가는 분명 부드럽고 은은하면서 상냥하게 자신을 잠의 세계로 보내줄 것이리라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훔쳐 들으며 식사를 끝낸 오소마츠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딸깍, 하고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형님.”

?”

다 먹어라.”

한구석에 피망만 남은 오소마츠의 도시락을 보며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초록색 피망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오소마츠가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 카라마츄~. —.”

저가 남긴 피망을 한꺼번에 들어 올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피망을 내밀었다

—.” 하고 말하며 제 입을 같이 벌린 오소마츠의 모습에 허탈하게 숨을 흘린 카라마츠가.” 하고 입을 벌렸다

입안에 가득 들어오는 피망을 아무렇지도 않게 씹어 넘기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내 꺼 반찬 하나 줬으니까, 너 꺼도 하나 줘!”

뻔뻔하게 연습하느라 손도 대지 않은 카라마츠의 도시락을 보며 오소마츠가 입을 벌렸다.


-.”

입에 넣어달라며 손가락으로 제 입을 가리킨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빤히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을 찌푸리고 어이없다는 얼굴을 잘잘 흔든 카라마츠가 계란말이를 하나 집어 오소마츠 입속에 넣어주었다

푹신푹신한 계란말이의 감촉을 만끽하며 오소마츠가~~.” 하고 행복하게 웃는 것을 본 카라마츠가 픽-, 작은 웃음을 흘렸다.


맛있나? 형님.”

!”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하핫.” 하고 푸근한 미소를 띄웠다

형제들과 있을 때는 보기 힘든 카라마츠의 미소에 오소마츠가.” 하고 옅은 웃음을 뱉었다

카라마츠는 자신의인 오소마츠에게 엄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동생들에게 한없이 상냥한 카라마츠는인 오소마츠에게는 쌀쌀맞았다

나를 싫어하나, 진지하게 생각해볼 정도로 오소마츠에게 차가운 카라마츠가 옥상에 단둘이 있을 때는 완전히 달랐다

옥상에 있을 때만큼은 동생들에게 보여주는 상냥함이 오소마츠에게 향했다

대본을 읽거나 연기 연습을 하다가도 오소마츠가 반응을 보이면 바로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것이 오소마츠는 참을 수 없이 기뻤다

카라마츠뿐 아니라 다른 동생들과도 가끔 단둘이 있을 때는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동생들은 오소마츠가 있든 없든 자기가 할 일을 했다

숙제하거나, 공을 가지고 놀거나, TV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

동생과 둘이 있는데도 오소마츠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그렇지 않았다.

연기 연습을 하거나, 거울을 보는 등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은 같았지만, 카라마츠와 함께 있으면 서로 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대화하지 않아도 쓸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은 유일한동생’, 그것이 카라마츠였다.

 

 

 

쵸로마츠, 간장 좀.”

.”

건네받은 간장을 뿌리고 옆에 내려놓자 쵸로마츠가 젓가락을 멈추고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근데 오소마츠 형.”

~?”

점심시간에 어디 갔었어?”

?”

교과서 빌리러 갔더니 없던데.”

—.”

카라마츠한테도 갔는데, 카라마츠도 없고.”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눈을 굴렸다.

 “그게….” 하고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오소마츠를 수상하단 눈으로 응시한 쵸로마츠가 카라마츠를 보며 물었다.


둘이 같이 어디 가서 먹어?”

쵸로마츠의 질문에 형제 전원의 눈이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게 꽂혔다

저에게 집중된 네 쌍의 눈동자에.” 하고 눈을 깜빡이는 카라마츠를 대신해 오소마츠가 소리를 높였다.


어디서 먹든 무슨 상관이야—.”

오소마츠의 대답에 쵸로마츠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물어본 거잖아.” 하고 짜증 섞인 말을 던진 쵸로마츠가 분주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에 남은 형제들도 더 추궁하지 않고 식사에 집중했다

볼을 살짝 부풀리고 쵸로마츠를 노려본 오소마츠가 다시 젓가락을 고쳐잡자, - 하고 카라마츠의 발이 오소마츠의 발을 건드렸다

눈을 옆으로 옮기자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빙긋- 웃었다

형제가 다 있는 자리에서 옥상에서 보여주었던 미소를 지은 카라마츠 덕분에 오소마츠의 머릿속은 혼란에 빠졌다

언제 웃었냐는 듯이 묵묵히 식사에 돌아간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살짝 입술을 씹었다

카라마츠의 미소에 담긴 의미를 오소마츠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답답한 가슴에 괜히 화를 내며 눈을 돌렸을 때, 맞은편에 앉은 쵸로마츠가 보였다

오소마츠에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밥을 먹는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 숙였다


쵸로마츠의 질문에 솔직하게 옥상에서 먹고 있다고 대답했으면 어땠을까

선배들이 졸업한 지금, 옥상 자물쇠를 따는 법을 아는 건 오소마츠뿐이다

한 번도 올라보지 않은옥상이라는 장소에 흥미를 느낀 동생들을 이끌고 다 함께 옥상에서 점심을 먹을 수도 있었다

능숙하게 자물쇠를 여는 오소마츠를 보며 감탄하는 동생들에게 으스댈 기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자신은 그런 대답을 한 것일까

밥을 씹는 둥 마는 둥 넘기며 머리를 굴려도 알 수 없었다

이유가 어쨌든 모두 다 함께 옥상에서 밥을 먹을 기회는 날아갔다

오소마츠는 옆에 앉은 카라마츠를 힐끗 쳐다보고, 옥상에서 좀 더 단둘이 있을 수 있음에 안도했다.

 

 

 

4교시 종이 치고 가방에서 도시락을 챙겨 교실을 나서려는 오소마츠를 친구 하나가 불러 세웠다

반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하고 걸음을 멈췄다

오소마츠의 도시락을 보며 즐겁게 웃은 친구가 교실 한쪽에 모여있는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츠노~! 오늘은 우리랑 같이 먹자! 저번에 우연히 숨겨진 교실 같은 걸 발견했는데, 재미있는 게 엄청 많아!!”

오소마츠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엄지를 들어 올린 친구의 제안에 오소마츠가….” 하고 대답을 흐렸다

다를 때였다면 흥미로운 친구의 제안에 바로 올라탔겠지만, 모처럼 카라마츠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오소마츠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 친구가마츠노?” 하고 오소마츠를 불렀을 때, 드륵- 하고 교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카라마츠…?”

열린 문 너머에서 잔뜩 화난 얼굴로 오소마츠를 노려보던 카라마츠가 성큼성큼 오소마츠의 반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서 뭐 하는 건가, 형님.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다.”

, ?”

-, 동생들하고 먹기로 한 거야? 사이좋다-, 너네.”

카라마츠의 말에 어리둥절해 하는 오소마츠 옆에서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소마츠의 어깨에서 팔을 내렸다

친구가 물러나자마자 오소마츠 손을 잡아끈 카라마츠가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올라 옥상에 오르자마자 카라마츠가 몸을 빙글 돌려 오소마츠에게 다가왔다.


형님, 다리 보여줘.”

, …? 카라마츠, 너 화난 거 아니었어?”

조금 전 교실에서 보여주었던 험한 얼굴을 떠올리며 묻자, 짙은 눈썹을 부드럽게 내린 카라마츠가화 안 났다.” 하고 대답했다.


아니, 너 아까 엄청 심한 얼굴,”

그것보다 아까 체육 시간에 넘어졌지.”

“…보고 있었어?”

눈썹을 찌푸린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적였다.

3교시였던 체육 시간,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하던 오소마츠는 제 발에 걸려 화려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창피함을 억누르며 괜찮다고 말하고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카라마츠는 교실 창문을 통해 전부 보고 있었다

그 화려한 넘어짐을 카라마츠에게 보였다는 창피함에 팔을 들어 얼굴을 숨겼다

귀까지 빨개진 오소마츠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바지 밑단을 잡아 올렸다.


우왓!”

양호실도 안 간 건가….”

검붉은 피딱지가 붙은 상처를 보며 황당하다는 얼굴을 한 카라마츠가 가볍게 오소마츠를 노려보았다.

대단한 상처가 아니기에 양호실 가는 것도 귀찮아 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가만히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오소마츠의 상처를 보고 눈썹을 한껏 찌푸리고는 주머니에서 반창고와 연고를 꺼냈다

조심조심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단단히 붙여주더니 바지까지 다시 내려주고는 만족스럽게 웃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멍청히 응시했다

오소마츠의 시선에 슬쩍 고개를 돌리고, 밥 먹자.” 하면서 도시락을 여는 카라마츠의 행동에 픽- 웃음을 터뜨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 옆에 앉았다.


역시 옥상에 있을 때만큼은 카라마츠가 상냥하다

이대로, 계속 여기에서 둘이 있었으면 좋겠다 소망하며 오소마츠가 도시락을 열었다.

 

 

 

 

 

4.

 

짧아진 해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하굣길. 오늘도 혼자 운동화를 질질 끌며 집으로 향하던 오소마츠가 걸음을 멈췄다

여러 가게가 모여 있는 시장으로 들어가는 한 쌍의 남녀.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학생화 하하 호호 웃으며 걸어가는 남자는 카라마츠였다

까르르 웃는 여학생이 카라마츠의 팔을 툭 건드렸다. 카라마츠도 수줍게 웃으며 여학생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같은 교복을 입고 나란히 걸어가는 카라마츠와 여학생은 사이좋은 연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하고 숨이 막혔다. 폐가 꼭 밧줄을 칭칭 감아 있는 힘껏 조이는 것처럼 꽉 막혀 숨을 쉬기 힘들었다

, 하고 간신히 내뱉은 숨은 시야에서 멀어지는 카라마츠와 함께 오소마츠의 곁을 떠났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뭔가와 함께 눈시울이 뜨거웠다

촉촉해지는 눈가는 소매로 가린 오소마츠가 이를 악물고 울음을 삼킨 채, 집을 향해 땅을 박차고 뛰었다.

 

 

 

멍청히 하늘 위에 유유히 흘러가는 하얀 구름을 올려다보던 오소마츠가 끼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카라마츠와 눈이 맞은 순간, 오소마츠가 작게 혀를 차고 도시락 뚜껑을 덮어 벌떡 일어났다

카라마츠를 스쳐 지나가 옥상을 나가려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붙잡았다.


뭐야. 연습할 거 아냐?”

형님, 요즘 왜 나를 피하는 건가.”

별로 안 피했는데—?”

카라마츠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전에 오소마츠 친구에게 보여주었던 험악한 얼굴을 한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비웃는 투로 말했다.


안 피했거든~? 내가 너가 뭐라고 피하냐? 자의식 과잉이야, 그거~.”

아니-. 피했다. 어제저녁에 일부러 내 옆에 안 앉고, 잠자리도 토도마츠한테 바꿔 달라고 했잖나. 아침에도 내가 기다려달라 했는데 먼저 학교 가고! 내가 뭘,”

뭘 했다고 그러나, 라고 물으려던 카라마츠의 말을 끊은 오소마츠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음산한 미소를 보냈다.


어제 같이 하교하던 애랑 엄~청 뜨겁더라?”

.”

이야~, 몰랐어. 너한테 그런 예~~쁜 여친이 있을 줄은?”

, 건가…. 틀리다, 형님. 그 아이는 같은 연극부 동료다. 어제는 필요한 물품을 사야 된다고 짐꾼으로,”

됐어, 됐어~. 그렇게 변명하지 않아도 괜찮아~.”

형님!”

사랑의 방해꾼인형아는 빠져줄게~.”

자신을이라고 칭한 순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오소마츠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카라마츠가 붙잡고 있는 팔을 크게 흔들었다

! 하고 힘을 주어 단번에 흔들자 카라마츠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대로 카라마츠를 지나쳐 나가려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다시 붙잡았다.


사람 말을 좀 들어라!!”

—, -끄럽네!!! 모처럼이 빠져 주겠다고 하잖아!!”

그게 아니라고 말하잖아!!!”

커진 언성에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오가던 노성이 주먹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츠노 가에서 진수성찬에 들어가는 가라아게를 앞에 두고 육둥이는 조용했다

얼굴과 팔다리 여기저기에 시퍼런 멍을 달고 있는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눈치를 살핀 토도마츠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원인은 모르지만 서로 멍이 들 때까지 싸운 것은 초등학교 때가 마지막이었다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 묵묵히 밥을 입에 넣는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덕분에 마츠노 가의 저녁 식사 시간은 유례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얌전했다.

 

 

아직 잠들어있는 동생들을 한 번 훑어본 오소마츠가 이불에서 몸을 뺐다

등교 시간이 한참 남은 이른 아침. 눈을 비비며 계단을 내려온 오소마츠를 본 마츠요가 놀라 물었다.


어머나,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오소마츠를 보며 싱긋- 미소지은 마츠요가 내주는 밥과 따끈한 된장국을 후루륵 들이킨 오소마츠가 교복으로 갈아입고 마츠조와 함께 현관을 나왔다.

마츠조도 놀라 웬일로 일찍 나가냐 물어왔다

적당히 당번이라는 거짓말을 흘린 오소마츠가 욱신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학교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들어가 책상에 엎드린 오소마츠가 핑- 도는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카라마츠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는 것은 확실히 싫다

아직 오소마츠 자신도 여자친구를 가져본 적이 없는데, 카라마츠가 자신을 앞서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건 다른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마음은, 울화는 그것과는 다른 것 같았다.

카라마츠에게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더는 둘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오소마츠는 무엇보다도 큰 충격이었다

쵸로마츠가 자신의 곁을 떠났을 때보다 더, 훨씬 더 괴롭고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화를 내고 카라마츠와 대판 싸우게 되었다

눈을 감고 엊그제 본 카라마츠와 여학생을 떠올렸다


잘 어울렸다

분하도록 잘 어울렸다


오소마츠는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말리고 홀로 다짐했다

카라마츠에게 여자친구가 생기기 전에, 적어도 남은 이 시간을 즐겁게 보내자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면 카라마츠와 자신의 시간에도 조금의 유예가 있었다


오늘 화해하자, 그렇게 다짐한 오소마츠가 눈을 감았다.

 

 

 

저를 흔드는 친구의 목소리에 눈을 뜨자 어느새 4교시가 끝나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새벽 기상을 한 탓인지 한 번도 깨지 않고 내리 4교시를 잤다

오소마츠의 악명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들도 오소마츠를 깨우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오소마츠는 볼에 남을 자국을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오늘도 동생들과 먹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그렇지—.” 하고 대답을 던지고 교실을 나왔다

초조한 마음에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옥상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오소마츠는 발밑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누가 본 걸까, 아니면 뒤늦게 낡은 자물쇠가 발견된 걸까, 옥상 문을 굳게 막고 있는 자물쇠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열쇠로 여는 것이 아니라 비밀번호를 넣어야 열리는 형태로 완전히 바뀐 자물쇠를 손에 쥔 오소마츠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물쇠를 비틀었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힘을 주어 비틀어도 열리지 않는 자물쇠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유일한 장소였다

옥상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와 단둘이 있을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

카라마츠가 동생들에게도 베풀지 않는 상냥함과 미소를 오소마츠에게 보여주는 곳이었다.


안 그래도 남은 시간이 없는데, 옥상마저 들어갈 수 없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흘러내려 소매를 적셨다

,” 하고 새어 나오는 흐느낌도 삼키지 못하는 오소마츠의 귀에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과연 오소마츠가 와 있을까

어제의 싸움을 재생하며 불안한 마음을 안고 계단을 오른 카라마츠가 옥상 문 앞에 쭈그리고 있는 오소마츠에게 달려갔다

몸을 둥글게 말고 고개를 푹 숙인 오소마츠는 아주 작게 흐느끼고 있었다

눈물을 잘 보이지 않는 오소마츠가 울고 있는 것을 깨달은 카라마츠가 입술을 깨물고 오소마츠의 얼굴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저항하는 힘을 이기고 얼굴을 들어 오소마츠와 눈을 맞춘 카라마츠가 눈물로 흠뻑 젖은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고 슬프게 눈썹을 늘어뜨렸다.


형님, 무슨 일 있었나? 왜 여기서,”

미안, 카라마츠. 연습할 장소 없어졌어.”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옥상 문에 달린 자물쇠를 봤다

광이 나는 새 자물쇠를 본 순간, 오소마츠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카라마츠가 다시 고개를 돌려 오소마츠를 보며괜찮다.” 하고 달랬다

옥상에 들어갈 수 없다면 다른 장소를 찾으면 된다

혼자 연습할 장소가 없는 것은 카라마츠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아니었다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도 오소마츠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찾아보면 연습할 수 있는 장소는 많을 거다.”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는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눈물에 코가 막혀 코맹맹이 소리로 오소마츠가 울먹였다.


옥상에서는, 둘이 있을 수 있었잖아….”

어린아이 투정 같은 말에 카라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오소마츠가 울고 있는 이유가, 자신과 둘이 있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심장을 조였다

—, 하고 몸 전체에 퍼지는 달콤한 아픔에 몸을 부르르 떤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품에 안았다.


또 둘이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으면 된다! 꼭 옥상이 아니더라도, 연습 때문이 아니어도, 나는오소마츠와 같이 있고 싶다!”

“…, ? 계속 같이 있어줄 거야? 여친이 생겨도?”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코를 훌쩍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도 그걸 신경 쓰고 있었나, 하고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두 손을 꽉 잡았다.


물론! 그리고 내게 여친이 생길 일은 없다!”

“…진짜?”

!”

오소마츠의 되물음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겨우 카라마츠의 말을 믿기로 했는지 오소마츠가 눈물 맺힌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울어서 빨개진 코를 하고 배시시 웃는 얼굴에 심장이 크게 뛰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에 깍지를 끼웠다.


그럼 어디를 가야 둘이 있을 수 있을까?”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선배들에게 들었던 비밀장소를 하나하나 떠올리는 오소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빙긋- 웃었다.


같이 찾아보자, 오소마츠.”

!”

카라마츠의 다정한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깍지 낀 손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 놀랍게도 아직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자각하지 못한 카라오소였습니다ㅎㅎ


* 레모몬님 마음에 드실려나 모르겠네요...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1화입니다!  이제 완결까지 앞으로 2편!


* 공미포 10,540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선대 왕을 따라 푸른 왕국에 처음 발을 들인 왕자레온 레날드는 눈앞에 다소곳이 선 여성을 응시했다

붉은 왕국의 왕족을 맞이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그녀 또한 높은 신분이라는 것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무리 지어 소근 거리는 여성들 사이에서도 그녀, 마츠요는 유독 눈에 띄었다

소란스러운 파티장에서도 동떨어진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바라보는 이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긴 머리를 땋아 깔끔하게 올린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숨길 수 없는 총명함을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절로 그녀에게 발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말없이 다가간 동맹국의 왕자에게 마츠요가 은은한 미소와 함께 인사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처음 나눈 인사. 그것이 모든 것이 시작이었다.

 

 

시작은 편지였다. 간단한 안부를 묻는 비밀편지가 붉은 왕국의 왕자와 푸른 왕국의 귀족 영애 사이에서 오갔다

서로 믿을만한 친구에게 편지를 맡겨 이어진 편지 교환은 달이 12번 차고지기를 반복하도록 끊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푸른 왕국에서 건너온 편지에 쓰인결혼이라는 글자에 레온 왕자는 숨이 멎을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장차이 될 자신의 옆에 있어 주길 바랐던 것은 마츠요였다

왕비가 될 정혼자는 이미 있지만, 신분을 우선시해 결정된 자였다

몇 번의 만남을 가졌지만, 레온 왕자는 도저히 그녀에게 정을 주지 못했다

한 나라의이 되는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자, 마음의 안식이 되어주는 자는 분명 마츠요뿐이라고, 직감했다

이대로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억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레온 왕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왕의 집무실로 향했다.

 

 

 

뒷공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여러 계략을 흩뿌린 끝에 레온 왕자는 마츠요를 아내로 맞이했다

속 깊고 다정한 마츠요에게 완전히 빠져버리고 만 것을 그도 자각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자신이인 것도 잊고, 한 사람의 남자가 되었다

마츠요의 남편, '레온'으로 온전히 있을 수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바로 이것이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세쌍둥이가 태어났을 때는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제일 처음 태어난 아이에게 왕국의 가장 위대한 영웅왕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과 사랑스러운 아내

모든 것이 행복한 그 모습은 곧 레온의 곁에서 멀어졌다.

왕이 타국 출신의 제 2 왕비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질투한 제 1 왕비와 그것을 견제하는 귀족들

그들의 차가운 눈초리가 마츠요와 아들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레온은 용서할 수 없었다

혹시나 더러운 음해의 손이 그들에게 뻗어가진 않을까, 마음을 숨겼다

마츠요가 왕실에서 기댈 곳 없이 고립되어도, 1 왕비와 그 왕자들에게 오소마츠 세쌍둥이가 고역을 치러도 도와줄 수 없었다

그들을 아끼는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절대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조금씩 성장해가며 굳건해지는 아들들의 모습에 가슴은 시꺼멓게 타들어 갔다.

 

 

 

 

 

2.

 

부상이 다 나아 출전하겠다는 오소마츠의 말에 레온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도 가겠다.”

왕의 말에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환청을 들은 것인가, 눈썹을 찌푸리고…?” 하고 되묻는 오소마츠에게 레온이 빙그레 웃었다.


이번엔 나도 출전하겠다.”

레온의 말에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님을 깨달은 오소마츠가 작게….” 하고 중얼거렸다

공기에 흘려 퍼지는 작은 소리에 레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츠요와 똑같이 잔주름이 잡힌 미소에 오소마츠가 말을 잃었다.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성큼성큼 오소마츠에게 걸어가 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 레온의 행동에 오소마츠가 놀라 멍청히 자신의 아버지를 응시했다.

 

 

 

마츠요와의 일을 담담히 고백하는 레온의 옆에서 오소마츠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마냥 무뚝뚝하고 권위적이며 자신들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토해내는 말은 놀라웠다

정략결혼이라고만 생각했던 마츠요와의 혼인이 본인들이 바라서 한 것이라는 사실에 오소마츠는 가장 밑바닥에 깔아놓은 생각이 뒤집히는 광경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전장으로 향하는 길, 아무 생각도 비치지 않고 앞길을 응시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쓴웃음을 흘린 레온이 나지막이 참회를 떨어뜨렸다.


지금까지, 미안하구나.”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온용서해달라는 말을 집어삼킨 레온이 눈을 감았다

이런 말 한마디로 오소마츠의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레온이 오소마츠와 마츠요를 방치한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죄인처럼 눈을 내리고 어깨를 늘어뜨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항상 귀족들 앞에서 당당하고 웅장했던 그 모습이 한없이 나약해 보였다

말 고삐를 조용히 당겨 레온의 옆에 더 가까이 붙은 오소마츠가 자신을 향한 왕의 눈길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3.

 

거실에 앉아 창밖을 보며 전장에서 올 소식을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매 순간 오소마츠가 무사하기를 기도한다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아무런 부상 없이 돌아올 수 있기를

서로 마음을 확인한 뒤로 더 애틋해진 이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오소마츠를 불러냈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겼을까, 다치진 않았을까, 모든 것이 두려워지진 않았을까

수없이 생각하고 걱정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창가에 매달려 하염없이 밖을 보는 내게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토도마츠가 다가왔다.


카라마츠 형, 유리에 구멍 뚫리겠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괜찮을 거야, 오소마츠 형은.”

….”

토도마츠의 핀잔 섞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토도마츠의 말대로일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생각은 걱정의 꼬리를 놓지 않았다

오소마츠가 전장으로 떠난 지 한 달.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최악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가슴을 옥죄었다.


그리고 이제 그 불편한 드레스 벗어도 되잖아?”

화제를 돌리려는지 입고 있는 푸른 드레스를 눈짓하며 토도마츠가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에게 자신의 신분을 전부 들킨 그 날 이후로, 적어도 별궁 안에서는 드레스를 입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오소마츠 앞에서공주가 아니라카라마츠로서 있을 수 있으니까.


아니, 입고 있겠다. 나는 이제카라 공주는 아니지만, 오소마츠의약혼자니까.”

토도마츠를 보며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 드레스는 이제 내 신분을 가리는 방패가 아니다

자신이 오소마츠의 곁에 있을 것이라 다짐한 증거였다

가슴께를 쓸어내리며 오소마츠의 미소를 떠올리자 심장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 빨리, 오소마츠가 보고 싶다.

 

자신도 참 창피한 것을 생각하는구나, 쓰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열고 들어온 쥬시마츠가 거실로 뛰어들어왔다

마당을 쓸던 빗자루를 손에 쥔 채로 들어온 쥬시마츠가 얼굴 가득 밝은 미소를 활짝 피웠다.


카라마츠 형아!! 오소마츠 형아가 돌아온다고 함닷!!!”

쥬시마츠의 말에 벌떡 일어나자 소파가 덜컹, 신음을 질렀다.


, 정말인가!? 쥬시마츠!!”

!!”

거세게 고개를 끄덕이는 쥬시마츠를 보며 새어 나오는 미소와 환희에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 전까지 의식하지 않았던 심장이 시끄럽다

고막에 울리는 쿵쿵 소리에 잘게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오소마츠가 돌아온다

오소마츠가!! 


토도마츠도 놀란 얼굴로 쥬시마츠에게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시녀들의 대화를 엿들은 바론 동의 제국에서 먼저 휴전을 제안했다는 것 같았다

전장에서 바로 체결된 휴전 협정으로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이치마츠가 이곳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말에 두 손을 모았다

기쁘다. 오소마츠를 다시 보는 것이 정말로 너무나 기쁘다

혹시 또 어디 다친 것은 아닐까. 또 아픔을 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앞에 아른거리던 오소마츠의 얼굴이 확실한 색을 가지고 손 위에 내려앉았다.

 

 

 

별궁으로 친히 찾아오신 마츠요님과 함께 오소마츠를 맞이했다

갑옷을 벗고 평복 차림으로 말에서 내린 오소마츠가 그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다가왔다.


오소마츠…!”

! 다녀왔어, 카라마츠.”

어서 와!”

양팔을 벌리고 다가와 내 어깨에 턱을 올리는 오소마츠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구엑.” 하고 오소마츠가 이상한 소리를 냈지만 오소마츠의 체온이 바로 곁에 있는 것이 기뻐 팔을 풀지 않았다

오소마츠의 온기와 체취와 귓가에 울리는 숨소리, 모든 것이 행복을 불러일으켰다

오소마츠의 단단한 어깨에 볼을 비비며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안심에 작게 한숨을 내쉬자마자, 정면에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쵸로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해 오소마츠를 밀어내듯이 떨어뜨리고 다소곳하게 손을 모았지만 이미 늦은 것은 당연지사

.” 하고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리는 이치마츠에 이어 쵸로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이 녀석들 다 알고 있으니까.”

저도 모르게 긴장해 쭈뼛거리는 나를 보며 픽-,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오소마츠의 말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오소마츠는로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른다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에게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 괜찮은가? 내가 이대로…, 오소마츠 곁에 있어도.”

가만두지 못하는 손을 치마폭에 숨기고 묻자, 눈썹을 슬쩍 찌푸린 쵸로마츠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 바보 장남은 옆에서 잡아줄 녀석이 필요하고…. 나는 딱히 반대 안 해.”

나도, 오소마츠 형이 좋다면 상관없어.”

무심한 듯이 내뱉은 말이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의 상냥함과 오소마츠를 향한 가족애는 피부로 느껴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오소마츠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두 사람의 허락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흐려지는 시야에 걸린 오소마츠의 발이 희미한 웃음을 흘렸다.


또 우는 거야~? 카라마츠는 울보네—.”

장난스럽게 닿아오는 상냥한 말이 쭉-, 그리워했던 오소마츠의 목소리여서 결국 눈물이 터졌다.

 

 

 

 

 

4.

 

전장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일상. 부상자를 확인하지 않고, 남은 무기를 세지 않는 아침이 도저히 익숙하지 않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이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서재에서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하나 집어 든 쵸로마츠가 터벅터벅 거실로 발을 옮겼다

쇠붙이가 부딪히는 이명이 귓불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이치마츠처럼 약이라도 삼키고 자는 편이 좋을까, 홀로 물으며 거실로 몸을 틀자마자 쵸로마츠가 작게 혀를 찼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무슨 대화를 하는지 퍽 얼굴이 밝다

본래 잘 웃는 편이었지만, 카라마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오소마츠의 입꼬리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저렇게 좋을까.”

분한 마음을 담아 낮게 읊조렸다

자신은 전쟁으로 진심으로 사랑했던 연인과 생이별을 했건만, 팔자 좋게 노닥거리는 꼴을 보니 속이 편하지 않았다

전쟁 전, 자유롭게 연인과 만나 마을을 거닐던 기억이 눈동자 뒤를 스쳤다

이제는 다시 올 수 없는 그 순간을 머릿속 깊이 새기며 쵸로마츠가 몸을 돌리자, 뒤에 서 있던 토도마츠가 움찔 놀라며 작은 비명을 질렀다.


우왓! 깜짝이야! 갑자기 뒤돌면 어떻게 해, 쵸로마츠 형!”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을이라 칭하는 토도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어이없는 한숨을 흘렸다

오소마츠가 자신을이라 불러도 좋다는 허가를 낸 뒤로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는 오소마츠뿐 아니라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에게도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묘하게 닮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해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 자신을이라 부르는 것이 영 적응되지 않았다

토도마츠의 따가운 눈길에 머리를 긁적이며 적당히미안해.” 하고 사과를 던진 쵸로마츠가 방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췄다.


혹시 오늘 이치마츠 봤어?”

아침 식사 이후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동생의 행방을 묻자 토도마츠가—.” 하고 목소리를 흐리며 눈을 굴렸다.


이치마츠 형은…, 분명히…. 쥬시마츠 형이랑 같이 산책하러 나갔어.”

쥬시마츠랑?”

.”

그 둘도 친하네….”

토도마츠의 말에 망연히 눈을 돌린 쵸로마츠가 시야에 들어온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모습에 칫, 하고 혀를 찼다.

 

 

 

따뜻해진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산 위에 올라 성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올라왔을 때는 이파리는 찾아볼 수 없이, 하얀 뼈대만 남았던 나무들이 풍성하게 부풀었다

푸른 잎 사이를 뚫고 오소마츠에게 다가온 동물들이 그 옆에 선 카라마츠에게 눈을 돌렸다

이미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서일까,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카라마츠에게 걸어가 얼굴을 비볐다

풀밭에 엉덩이를 내린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주변을 동물들이 에워쌌다

카라마츠 옆으로 뛰어간 토끼가 가볍게 발을 쿵쿵 구르자 오소마츠가 킥킥 웃으며 하얀 눈토끼를 들어 카라마츠의 무릎 위에 올려주었다

바라던 것이 이루어진 탓에 코를 킁킁거리며 카라마츠의 무릎을 순회한 토끼가 편안한 자세로 카라마츠의 무릎에 앉았다

부드러운 털을 어루만지자 토끼가 만족스럽게 눈을 감았다

가장 힘들 때,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친구들이 있는 이 장소

금방 손이 겹쳐질 정도로 가까이에 앉은 카라마츠를 바라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가장 좋아했던 장소가 더욱 좋아질 것 같다, 독백하며 뺨을 스치는 바람에 눈을 감았다.

 

 

 

오소마츠와 동생들이 별궁으로 돌아온 이후, 마츠요의 별궁 출입이 잦아졌다

자연스럽게 카라마츠와 함께 차를 마시는 다과회도 그 횟수가 늘었다

아들들이 잘 있는지 확인한 후에 마츠요는 항상 카라마츠를 찾았다

같은 푸른 나라 출신으로공주가 되어 이국땅인 붉은 왕국에 와, 오소마츠의 곁에 남기로 한 카라마츠가 마츠요는 퍽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은 꼭 젊을 적 자신과 레온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마음에 담은 이를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 것이 귀여워, 마츠요는 몰래 어린 사랑을 응원했다

오늘도 함께 차를 마시며 무슨 이야기를 할까, 오소마츠도 같이 올까, 즐거운 상상을 펼치며 마츠요가 별궁으로 발을 옮겼다.

 

 

마츠요가 올 시간이 되자 카라마츠의 손이 더욱 바빠졌다

오늘은 특별히 마츠요에게 직접 만든 쿠키를 올리고 싶었던 마음에 성급하게 요리를 시작한 자신을 가볍게 질책하며 카라마츠가 한 번 더 오븐 안을 들여다보았다

붉은 열기 속에서 쿠키가 노릇노릇 구워지는 모습에 작게 안도하며 1초라도 빨리 완성되길 빌었다

카라마츠의 바람을 신이 들어주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오븐에서 노릇노릇 구워진 달콤한 쿠키가 빠져나왔다

두꺼운 천장갑을 벗고 아직 김이 나는 쿠키를 조심스럽게 접시로 옮기자마자, - 어깨에 올려진 머리가 무거웠다.


오소마츠.”

—?”

카라마츠의 어깨에 턱을 걸치고 접시에 가지런히 올려진 쿠키를 빤히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씩-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맛있겠네—. ——.”

무슨 말을 하나 싶어 눈을 흘기자 오소마츠가 쩍하니 입을 벌렸다

크게 입을 벌리고 힐끗 카라마츠를 쳐다보는 모습에 카라마츠가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빨리이~. ——.”

재촉하듯 카라마츠의 허리에 손을 얹은 오소마츠가 다시 입을 벌렸다

머리 위로 식은땀이 튀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쿠키 하나를 집어 들었다.


, 아직 뜨겁다.”

.”

초코칩이 박힌 쿠키 하나를 쑥- 오소마츠의 입안에 넣어주자, 오소마츠가 방실 웃으며 입을 다물고 우물우물 입을 바삐 움직였다.


, 맛있어!!”

꿀꺽, 목을 울리며 쿠키를 넘긴 오소마츠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거짓 하나 없는 말에 카라마츠도 오소마츠를 따라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렸다.

 

 

 

레이스가 살랑거리는 얇은 잠옷으로 갈아입은 카라마츠가 침실 입구에 섰다

먼저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오소마츠가 나직이 카라마츠를 부르며 손을 흔들자, 온 방에 울리도록 크게 심호흡을 한 카라마츠가 천천히 침대로 다가갔다

코앞까지 걸어온 카라마츠를 홱- 끌어당겨 무릎에 앉힌 오소마츠가 그대로 카라마츠를 힘껏 껴안았다

피부로 느껴지는 심장 박동이 자장가 같았다

눈을 감고 두근대는 소리에 맞춰 숨을 내뱉은 오소마츠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벌겋게 익은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치자 오소마츠가 훗-, 바람 들어간 웃음을 흘리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심장, 엄청 두근대—.”

,”

나도, 두근거려.”

귓가에 울리는 것이 누구의 심장인지 더는 구분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의 속삭임에 얼굴은 더욱 뜨거워지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침과 함께 숨을 삼키고 오소마츠에게 매달린 카라마츠가 귓가에 속삭이는 오소마츠의 갈라진 목소리에 몸을 크게 떨었다.


카라마츠, 자국 남겨도 돼?”

허리에 감긴 오소마츠의 팔이 들썩였다

속삭임에 놀라 가볍게 몸을 떼자 오소마츠의 눈이 따라왔다

어린아이가 간식을 조르듯 애원하는 눈빛에 카라마츠가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은 곧 터질 것 같고 얼굴은 뜨거워 계란을 올려놓으면 익을 것 같았다

“NO.”라고 말해야 하는데 떨리는 입술은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보이지 않는 곳이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전한 카라마츠가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숙였다

심장을 손에 쥐고 마구잡이로 쭈물거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뭉클거리는 마음에 이를 악문 오소마츠가 천천히 훤히 드러난 피부에 입술을 내렸다

머리에 들어 있는 지식을 찾아내 따라 해도 붉은 징표를 남기는 것은 힘들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간신히 자신의 색을 카라마츠에게 남긴 오소마츠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카라마츠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여워.”

오소마츠의 혼잣말에 카라마츠가 떨리는 숨을 삼키고 눈을 꽉 감았다.

 

 

 

 

 

5.

 

책상 위에 줄어들 줄 모르고 쌓여만 가는 서류를 보며 오소마츠가 펜을 던졌다

으아아아~~.” 하고 한심한 신음을 내며 의자를 뒤로 젖힌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고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렸다.


어이.”

일이 안 끝나~~~. 하기 싫어~~~.”

끼익 끼익, 의자를 흔들며 툴툴거리기 시작한 오소마츠를 차갑게 노려본 쵸로마츠가 노골적으로 혀를 찼다.


망할 장남, 얀마.”

쵸로마츠의 싸늘한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턱을 괸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빤히 응시하며 다시 불평을 늘어놓았다.


왜 안 끝나는 거야? 빨리 돌아가고 싶은데. 카라마츠 보고 싶은데? 너무하지 않음~?”

몰라, 이 자식아. 내가 알까보냐!!”

아니, 들어봐. 쵸로 씌~. 솔직히 말해서 요즘 더 귀여워졌다고. 손만 잡아도 얼굴 완전 빨개진다고? 에헤헤-.’ 하고 웃는다고? 귀엽지 않아? 동정한테 그 웃음은 위험하지 않아? 동정 희롱이야 완전히!!”

시끄러-!!! 일이나 해!!”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냐~. 레이카한테 차여서 그래?”

—.”

말을 툭 던지고 순순히 서류에 눈을 돌린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이마에 솟은 핏대를 짓눌렀다

이쪽은 전쟁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간 연인과 연락하나 닿지 않아 심란하건만…. 

뭐가 좋다고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꽁냥대는 모습을 봐야 하는 건지, 쵸로마츠가 크디큰 한숨을 내쉬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일이 겨우 끝나고,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있어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핀 오소마츠가 처리된 서류의 전달을 쵸로마츠에게 맡기고 본궁을 나왔다

발을 재촉해 별궁에 도착하자마자 카라마츠를 찾은 오소마츠가 씩- 웃으며 코 밑을 문질렀다.


카라마츠! 지금부터 대련 안 할래?”

! 좋다!”

공주인 것을 연기할 필요가 없어진 카라마츠가 드레스 차림인 것도 잊고 오소마츠에게 뛰어갔다

그대로 오소마츠와 수련장으로 가려는 카라마츠를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붙잡아 남성복으로 갈아입혔다.

드레스보다 한결 움직이기 편해진 남성복에 만족한 카라마츠가 망설이지 않고 오소마츠를 따라나섰다

저녁 식사 시간을 훌쩍 지난 시각, 수련장에 기사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작은 등불 하나에 의지해 대련용 뭉툭한 검을 나눠 쥔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기합 소리와 함께 오로지 서로의 얼굴을 시야에 담고 돌진했다. -, 하고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수십 번 고요한 공기를 가른 후에야 승패가 갈렸다.


—, 피곤해.”

검을 한쪽에 던져놓고 수련장 한쪽에 마련된 벤치에 기댄 오소마츠가 옆에 앉은 카라마츠를 보며 말했다.


카라마츠, 무릎 좀 빌려줘.”

!?”

카라마츠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몸을 눕힌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무릎에 머리를 올리고 눈을 감았다

주홍빛 등불 하나에 비친 오소마츠의 얼굴 군데군데 어둠이 내려앉았다

눈가에 깊숙이 자리 잡은 그늘에 손을 뻗은 카라마츠가 살포시 오소마츠의 눈 위에 제 손을 얹었다.


, 힘든가?”

“‘이 될 준비를 하는 거니까, 힘들지.”

잠깐 쉬어라.”

.”

카라마츠의 부드러운 음성을 따라 오소마츠가 툭, 이성을 놓았다

곁에 있는 카라마츠의 상냥함을 쫓아 잠의 세계로 빠져든 오소마츠가 규칙적인 숨을 내뱉으며 몸의 힘을 뺐다

오소마츠의 눈 위에 얹은 손을 치우지 않고 빈손으로 오소마츠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은 카라마츠가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오소마츠가 편히 쉴 수 있기를 빌며 눈을 감고 별이 박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평화롭구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정도만. 이 정도의 평화가 이어지길 바라며 카라마츠도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6.

 

동의 제국에서 입수한 정보를 발표하자마자 귀족들의 얼굴이 색색으로 변했다

관료들도 간신히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왕좌에 앉은 레온이 턱을 쓸며 귀족들과 관료들을 훑어보았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쉰 레온이 소리를 냈다.


동의 제국 황제가 위독하다는 정보가 사실이라면 전쟁이 곧 끝날 수도 있겠군.”

왕의 말이 끝나자 침묵이 이어졌다. 회의실을 감도는 정적 속에 동감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제국의 휴전 제안

정보가 사실이라면 제국이 먼저 휴전을 청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동의 제국 황제가 위독하다는 것은 마냥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황제의 뒤를 누가 이을 것인가. 그것이 중요했다


동의 제국 황제 아래 아들은 2. 그중 호전적이고 전쟁광으로 소문난 둘째 황자는 이미 엘린 이전에 전장에서 마지막 숨을 흘렸다

남은 것은 전쟁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던 첫째 황자.

그가 아무 탈 없이 황제의 뒤를 잇는다면 전쟁이 끝날 것이란 말도 섣불리 꺼낸 예측이 아닐 것이다

레온은 침묵을 유지하는 귀족들을 보며 모두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말을 던졌다.


전쟁이 다시 일어나기 전, 바로 지금 왕위를 넘기는 것이 좋겠지.”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레온이 방금 내뱉은 말을 되씹었다

왕위를 넘긴다.’는 말은 즉, 오소마츠가 왕이 된다는 것이었다

시간을 들여 빠르게 상황을 계산한 귀족들이 입을 모아 반대했다

레온이 아직 살아있는데 왕자에게 왕위를 넘기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귀족들의 거센 항의에도선례가 없으면 만들면 되지 않는가.” 하고 서늘한 미소를 흘린 레온이 아직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관료들을 향해 외쳤다.


당장 대관식 준비를 시작해라!”

 

 

 

레온의 개인실, 사실상 왕실 외엔 출입할 수 없는 방에 오소마츠가 자신의 아버지를 마주 보고 섰다

침실까지 들고 온 서류를 훑던 레온이 가만히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왜 왕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냐많은 이들이 탐내는 자리이다.”

레온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큰 숨을 빨아들이고 천천히 목소리를 냈다.


제게 왕이 될 정도의 책임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녀석들만 지킬 수 있다면 만족하고. 그리고…, 카라마츠 외에 다른 왕비도 받고 싶지 않습니다.”

힘겹게 이유를 나열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레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네겐 왕이 될 자격도 자질도 있다. 네 동생들을 지키고 싶다면 더더욱 왕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 1 왕비와 같은 자가 더는 없을 거로 생각하느냐? 그리고, 왕비는 안 받으면 그만이지.”

레온의 말에 오소마츠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되물었다.


후사는요…?”

의 가장 중요한 의무 중 하나

그것은 다음 왕위를 이을 후사를 보는 것이었다

혹독한 겨울, 아이들이 살아남기 힘든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왕비를 2명 맞이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레온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는 오소마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네 동생들이 있지 않느냐.”

레온의 대답에 오소마츠가 입을 벌렸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현왕이 내뱉을만한 말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상식을 뛰어넘는 레온의 태도에 오소마츠가 말을 잃었다.


“…그래도 괜찮은 건가요.”

물론.”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레온은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리고 어이없는 한숨을 내뱉은 오소마츠를 향해 레온이 다시 물었다.


이제 왕이 될 마음이 생겼나?”

—, …. ….”

영 심통치 않은 대답이었지만 오소마츠가 각오를 다진 것은 알 수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는 오소마츠를 보며 레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걸어갔다.


다음 왕좌에 오르는 것은 너다. 오소마츠.”

어느새 자신과 눈을 마주할 수 있을 정도로 장성한 아들의 단단한 어깨에 손을 올린 레온이 빙그레 웃었다

짙은 색의 눈동자에는 마츠요와 같은 빛이 숨겨져 있었다

마음을 다해 오소마츠를 부른 왕의 손이 천천히 오소마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애정을 표현하기 위한 손길은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오소마츠는 그 거친 손길이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7.

 

별궁에 도착하자마자 어서 오라며 웃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침실로 향했다

말없이 계단을 오르는 우리를 보며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 고개를 기울이는 것이 보였지만, 저 녀석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나중 일이다. 

어리둥절해 하면서 얌전히 나를 따라 침실로 들어온 카라마츠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소마츠? 무슨 일 있나?”

걱정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고 묻는 카라마츠를 침대에 앉히고 그 옆에 앉았다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슬쩍 들어 올리자 긴장했는지 카라마츠의 몸이 뻣뻣해졌다.


카라마츠…. , 대관식을 치르게 될 거야.”

자신의 말에 카라마츠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것이 보였다

이다음에 자신이 할 말이 얼마나 카라마츠에게 괴로운 일이 될지, 충분히 예상하고 있으면서 말을 잇는 자신의 입을 멈출 수 없었다.


이기적인 부탁이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

카라마츠, 내게 따라와 줘.

타국 출신의 공주, 게다가 남자

이대로 카라마츠를 곁에 둔 채로 무사히 왕좌에 오를 정도로이라는 자리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후사를 볼 수 없는 왕비를 트집 잡는 귀족들은 모두 제 여식을 왕비로 삼길 바랄 것이고, 카라마츠에게도 계략의 손이 뻗어올지도 모른다

내가, 우리가 제 1 왕비에게서 힘겨운 시간을 보낸 것처럼 카라마츠도 사람을 순순히 믿어서는 안 되는 자리에 오른다.

그런데도 내 곁에 있어 달라고, 지극히 이기적인 부탁을 카라마츠에게 하고 있다

덤덤하게 전하려 했던 목소리는 멋대로 떨리고 표정은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는다.

카라마츠는 멍청히 내 눈을 응시하며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크게 뜬 눈은 가늘어져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카라마츠….”

, 물론이다! 오소마츠. 이 카라마츠님이 쭉—, 곁에 있어주지!”

“….”

뭔지 모를 손짓으로 앞머리를 튕기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카라마츠를 보니 갈비뼈가 위험했다

절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어떻게든 흘러 넘기고 카라마츠의 손에 자신의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단단히 연결한 손에 가볍게 키스하고 카라마츠의 이마에 콩, 제 머리를 박았다.


고마워.”


내 이기심을 받아줘서 고마워.


소리내 전하지 않은 말도 닿았는지 카라마츠가 온화하게 웃으며.” 하고 대답했다

곁에 있겠다고 대답해준 그 입이 사랑스러워서 자신의 입술을 겹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한 달 하고 또 반이 지나고, 사제의 손에 들린 왕관이 오소마츠의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붉은 왕국이라 불리는 아카츠리아의 제9대 왕, 에드윈 2세의 탄생이었다.

 

성에 모여 새로운 왕에게 충성과 축복을 바라는 국민들을 보며 손을 흔드는 에드윈 2세의 옆엔 푸른 드레스를 입고 베일을 쓴 그의 왕비가 함께하고 있었다.





* 이제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네요ㅎ

 동시에 쵸로마츠에게 염장질을 하는 오소카라였습니다ㅎ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WHITEPINE입니다.


공지글 비슷한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ㅎ


다름이아니라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은 기쁜 소식이 있어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무려 내년!!


7월 21일!!


카라오소 온리전이 열립니다~~!!!!




그리고 저는 부스 참가합니다.




카라오소 온리전에서 제가 낼 회지는 3권이고 


1. 히라카라 +세라오소


2. 신부카라 + 데비오소


3. 니트카라 + 니트오소


입니다.




아직 컨셉만 정해졌고, 플롯 구상단계에 있습니다만,


큰일이 없다면 위 3권의 회지를 카라오소 온리에서 판매할 예정입니다.


3권 모두 전연령이에요!




이벤트 전에 통판 수요도 조사해서 이벤트 후, 통판도 진행할 예정입니ㅏㄷ.


물론 그 전에 샘플도 올릴 거구요.


아직 책의 페이지수나 가격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일단 제가 카라오소 온리전에 나간다는 것만 알려드립니다ㅎ



저 말고도 존잘님이 많이 나오십니다.


꼭 오세요 +_+




아래는 부스 참가 리스트입니다. (저는 반부스로 참가합니다^^)






카라오소 온리 엄청 기대되네요.


저는 첫 부스 참가라 더 떨리고 그럽니다ㅎㅎ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도 온리전에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만 여기서 인사를 드리고 저는 또 밀린 소설을 쓰러 가보겠습니다ㅎ


* 떡밥 회수편입니다.


* 공미포 12,493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중단되었던 보급품, 그리고 앞으로도 차질 없이 보급을 지원하겠다는 푸른 왕국 왕의 약속까지 받아 돌아온 오소마츠를 왕은 크게 칭찬했다

이런 시기에 적국이 될 수도 있는 푸른 왕국에 왕자를 보낸 것을 비난하던 귀족들도, 은근히 오소마츠가 실패하기를 바랐던 귀족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

관료들과 귀족들을 줄 세운 어전 회의에서도 오소마츠를 칭찬하는 왕의 목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과찬이라며 예의를 갖추어 왕에게 인사하는 오소마츠의 시야에 빈자리가 들어왔다

직위에 맞춰 정렬한 귀족들의 수뇌, 쥬드 공작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오소마츠는 남몰래 헛웃음을 흘리며 쥬드 공작을 동정했다

쥬드 공작의 시녀를 잡은 오소마츠가 돌아옴과 동시에 쥬드 공작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감히 왕자를 음해한 죄. 그리고 붉은 왕국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어지럽힌 죄

무시할 수 없는 중죄가 겹쳐 쥬드 공작은공작가임에도 비참하게 병사들의 손에 끌려 감옥에 던져졌다

붉은 왕국이 건국되었을 때부터공작이라는 칭호를 유지했던 명망 높은쥬드() 역시 귀족의 신분을 박탈당하고 평민이 되었다

직위를 잃은 쥬드 공작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쥬드 공작의 뒤꽁무니만 따르던 귀족들은 생판 남을 보는 눈으로 쥬드 공작을 외면했다

외척이 힘을 잃자 자연히 제1 왕비 또한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아비인 쥬드 공작은 감옥행, 평민이 된쥬드가에서 더는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제1 왕비는 두 번 다시 그 세도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왕의 칭찬으로 점철된 허울뿐인 어전회의가 끝나고, 왕과 마츠요에게 간단한 귀환 인사를 마친 오소마츠가 어두운 얼굴로 별궁으로 발을 옮겼다

앞서 붉은 왕국에 돌아가 상황을 보던 측근에게 이미 모든 것을 들은 후. 쥬시마츠도, 토도마츠도 없이 홀로 별궁에 남아있을 카라마츠를 그리며 오소마츠가 쓴웃음과 함께 눈썹을 찌푸렸다.

 

 

 

 

 

2.

 

등불 하나 없는 침실 안은 어둠이 가득했다

달이 얼굴을 가린 하늘은 야속하게도 은근한 빛줄기 하나 보내주지 않았다

새까만 방안에 발을 들인 오소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활짝 열린 발코니에 기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카라마츠가 발소리에 몸을 돌렸다

발코니 난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걸어간 카라마츠가 드레스 양쪽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왕자님, 무사히 귀환하신 것, 그리고 교섭을 훌륭히 성사시킨 것을 축하드립니다.”

드레스를 들어 올리고 허리를 숙여 예의를 갖춰 인사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이어질 카라마츠의 말을 예상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부르기도 전에 선수를 친 카라마츠가 목소리를 냈다.


“…약혼을, 취소해주세요.

고개를 숙여 오소마츠와 눈도 마주하지 않고 내뱉은 카라마츠의 말에 공중에 뻗은 손을 힘없이 내린 오소마츠가 눈을 내리깔았다

당장이라도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싶었다

치미는 울화를 단단히 쥔 주먹으로 억누르고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

왕자님은 이제 왕위 계승자로서 더-, 앞으로 나아갈 분입니다. 붉은 왕국의 다음 이 되실 분입니다. 저에겐, 왕자님의 옆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예측했던 말과 똑같아 오소마츠가 헛웃음을 흘렸다.


무슨 자격?”

그딴 게 뭐가 필요하냐는 말을 감추고 묻자, 카라마츠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남자니까요.”

그것뿐? 또 없어? ‘공주님’.”

나직이 내뱉은 오소마츠의 말에 흐릿한 조롱이 섞였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눈꺼풀 뒤로 감춘 카라마츠가 입술을 씹었다

정적 속에서 귀에 닿는 것은 오소마츠와 자신의 숨소리뿐이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감싼 카라마츠가 결국 무너졌다

털썩, 무릎을 꿇고 뜨거운 눈물을 글썽이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천천히 다가갔다.


 

말해.”

 


한 마디가 심장에 박혔다

그동안 오소마츠가 들려주었던 다정한 목소리, 가슴을 간질이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니다

아무런 감정도 묻어나오지 않는 차가운 말투에 기어이 카라마츠의 볼을 타고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카라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카라마츠를 지그시 내려다보던 오소마츠가 손을 뻗었다

눈물로 축축이 젖은 볼을 타고 내려가 카라마츠의 턱에 손가락을 걸어 그대로 들어 올린다

어둠 속에서 빛날 리 없는 눈물이 반짝였다

동그란 눈동자 가득 눈물을 머금고 행여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할까 덜덜 떨리는 입술을 깨문 카라마츠와 눈을 맞췄다

그렇게나 나긋나긋하게 자신을 응시하던 짙은 진갈색의 눈동자가 거울과 같은 무기질처럼 카라마츠를 담았다.

 

—, 말해.”

 

도망치는 것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눈빛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체온도 어디로 날아가 몸이 찼다. 오지 않기를 바랐던 순간이 결국 오고 말았다

겨우-, 받아들인 마음을 제 손으로 깨부수는 일이 될지라도 카라마츠는 고백해야만 했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어도.

 

나는,”

“….”

입을 연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초연히 바라보았다

힘겹게 첫마디를 뗀 카라마츠가 다시 차오르는 숨에 가쁘게 가슴을 부풀리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공주가 아니다!! 귀족조차 아닌, 평민이다…. 나는, 나는…. 푸른 왕국의 유일무이한 왕자, 카즈야 왕자님의…" 


". ‘그림자 무사’, ….”

 

 

 

 

 

3.

 

푸른 왕국의 왕은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다

왕비와의 금실도 좋았고, 수많은 후궁도 있었건만 아이는 쉬이 볼 수 없었다

그러다 노년, 오랫동안 바라고 바랐던아들이 태어났다

그 위로도, 그 아래로도 없었던 아이는 푸른 왕국의유일한 왕자로서 소중하게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왕의 뒤를 이을 왕자가 단 한 명이라는 것은 큰 불안이었고, 왕은 왕실의 먼 친척인마츠노가문의 아들 하나를 카즈야 왕자의그림자 무사로 삼았다

왕자에게 위험한 일이나 혹시 있을 음해를 방지하고자그림자 무사로 키워진 카라마츠는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자랐다

아비인 마츠조의 애정을 마음껏 누리기도 전에그림자 무사가 되어 가족과 떨어져 생활했다

온갖 무술을 연마하고 언제나 왕자의 곁에 있었다

카라마츠에게 자신만의 사생활은 당연히 허락되지 않았고, 그 생명의 이유조차 왕자를 위한 것이었다

왕자를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 그것이그림자 무사였다.

 

 

 

붉은 왕국과의 동맹 강화를 이유로 정략결혼이 약속되자, 푸른 왕국의 노왕은 근심에 휩싸였다

유일한 적자이자 왕자인 카즈야를 보낼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어중간한 왕가 여식을 보냈다가는 붉은 왕국을 능멸하는 꼴이 된다

푸른 왕국보다 강대국인 붉은 왕국이 혹여 푸른 왕국으로 쳐들어온다면 푸른 왕국이 멸망할 것이 확실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을 거듭한 노왕은 위험한 도박을 하기로 했다

그림자 무사카라마츠는 카즈야 왕자의쌍둥이 공주카라가 되었다

카라마츠가카라 공주로서 붉은 왕국으로 떠나기 전, 노왕은 카라마츠를 불러 신신당부했다

반드시 이것만은 지키라고 말해준 그것들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모두가 알고 있던 것이었다.

 

카라마츠는카라 공주로서 붉은 왕국에 보내졌다

동맹을 위한 정략결혼. 동맹 강화의 명분이 필요한 두 왕국에게카라 공주가 남자인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카라마츠의 첫 번째 약혼자, 엘린도카라 공주가 남자라는 것을 알고 탑에 보낼 뿐,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붉은 왕국에서 카라마츠는 24시간, 1 365일을카라 공주로 살아왔다

철저하게 카라마츠인 자신을 죽이고카라 공주를 연기했다

그것은 카라마츠가 귀족도, 왕족도 아닌 평민에그림자 무사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푸른 왕국의 노왕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카라마츠가그림자 무사인 것을 들켜선 안 된다고. 


그림자 무사를 보낸 것이 알려진다면 붉은 왕국은 분명 분노할 것이다

카라마츠는 카라마츠대로 붉은 왕국의 왕실을 기만한 죄로 목이 날아갈 것이 분명했다

조국인 푸른 왕국을 위해서도,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도 카라마츠는 자신의 정체를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됐다.

 

항상 온몸을 불편한 드레스로 감싸고 자신이카라 공주임을 되새겼다

몸가짐 하나도 조심했다. 사소한 말실수도 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긴장했다

카라마츠는 지금까지 철저하게 카라마츠인 자신을 죽여야 했다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을.

 

 

 

 

 

4.

 

—, 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때늦은 후회를 해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푸른 왕국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카즈야 왕자님을 위해서 반드시 정체를 숨겨야 했다

스스로 자신이그림자 무사였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은 없어야 했는데…. 

어두운 바닥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짓밟고 선 오소마츠가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 시야를 흐리고 있는 눈물을 떨어뜨리지 못한다

경멸하겠지. 지금까지 오소마츠를 속였던 나를…. 

오소마츠는 이런 나를친구라며 받아주었는데….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면 분명 오소마츠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카라 공주로서 오소마츠의 곁에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단 얼굴로 마츠요님과 차나 홀짝이며, 때때로 오소마츠의 훈련에 어울리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될 수 있었던, 실현될 수 있는 미래가 독이 되어 숨통을 조였다

푸른 왕국에도, 나에게도, 오소마츠에게도 가장 이상적이었던 미래가 언제부터 고통이 되어버렸을까

모든 것이 잘 흘러갈 수 있었다

왕이 된 오소마츠는 제2 왕비를 얻어 후사를 잇고, 나는 왕실에서 동떨어져 오소마츠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마음만 없었다면…!!

 

 


어째서 나는, 오소마츠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같은 남자에 자신의 신분도 숨기고 있으면서. 오소마츠가 보여주는 상냥함이 기뻤다

자신에게 닿는 따뜻한 손길이 행복했다

오소마츠의 부드러운 눈빛이 나를 담았을 때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분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 장난기 가득한 미소와 함께 나를 부르면 둥실 솟아올랐던 기분은 순식간에 땅속 깊이 처박혔다

오소마츠는 나를공주라고 불렀다

이름조차 거짓된 나를, 오소마츠가 불러줄 때마다 슬퍼서…. 가슴이 아파서…. 불안해졌다

이대로 나는, 오소마츠의 곁에 있어도 되는 건가

오소마츠가 왕이 된다면, ‘공주는 거짓된 신분일 뿐, 실제로 평민인 내가 오소마츠의 곁에 있어선 안 된다

두려움과 불안은 물을 빨아들인 스펀지처럼 점점 더 커졌다

푸른 왕국을 생각하면, 카즈야 왕자님을 생각하면, 자신의 목숨을 생각하면 절대 해선 안 되는 고백

오소마츠에게 보여주는 내 모든 것이거짓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카라 공주가 아닌카라마츠’, 나 자신을 봐주길 원했다

자신의 목이 날아갈 것을 알면서도 더는 오소마츠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울며 가기 싫다 고개를 흔드는 토도마츠를 쥬시마츠에게 맡겨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이유

모든 것을 밝히기 위해, 속죄하기 위해.

 

더는, 사랑하는 오소마츠를 속이고 싶지 않기에.

 

 

 

 

 

5.

 

 

 

죽음을 각오하고 모든 것을 털어놓은 카라마츠를 눈에 담은 오소마츠가 굳게 다물고 있었던 입을 열었다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경멸일까, 분노일까, 증오일까…. 

오소마츠의 입술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카라마츠가 눈물을 삼켰다

오소마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엇이든 자신은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다짐하는 카라마츠의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닿았다.

 


고릴라 공주님,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어?”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눈을 크게 떴다

조금 전 보여주었던 냉정한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자신의 착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결 부드러워진 오소마츠의 눈빛이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지금까지 평생을 제1 왕비와 공작가에 빌붙는 귀족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온 나야. 누구보다 먼저 정보를 손에 넣어서, 온갖 수작으로부터 엄마와 녀석들을 지켰던 나는 너무 얕봤어. 게다가-, 바보 공주님. 너는 당연히 알아야 할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구. 사교댄스는 어느 나라든 왕실의 기본. 너는 한 번도 춰본 적 없다고 했지. 체스와 사냥도…. 너는 왕족이 흔히 즐기는 취미를 전부 처음 해본다고 했지. 게다가 일부러 훈련하지 않으면 생길 리 없는 굳은살투성이 손까지. 푸른 왕국은 군사가 그리 발달하지 않았는데, 정략결혼이 약속된 왕족이 굳은살이 생길 때까지 훈련을 할 리 없지.”

“….”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끝날 때마다 카라마츠의 얼굴은 핏기를 잃었다

잘 숨겼다고 생각했었다

푸른 왕국의카라 공주로서, 행동하고 있었다고

오소마츠가 진작에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망연히 입을 벌리고 힘을 잃은 카라마츠를 보며 피식- 옅은 미소를 흘린 오소마츠가 몸을 숙여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 공주.”

“….”

푸른 왕국의공주로 나를 속이려 했던 네 앙큼한 계략이 모두 드러난 지금. 딱 하나, 네 계략을 성공시킬 수 있는 변수를 알려주지.”

미소로 가늘어진 눈빛이 다정하게 카라마츠를 감쌌다

자신을 향한 오소마츠의 미소는 착각이 아니었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몸을 한층 더 낮춰 카라마츠와 시선을 맞춘 오소마츠가 작게 속삭였다.

 

 

왕자도, 너를 사랑하게 되었어.”

 

 

 

자신의 귓가에 속삭인 오소마츠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멈춰버린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오소마츠의 입술이 카라마츠의 입을 덮었다

한계까지 커진 눈동자엔 밤의 어둠만이 담겼다. 뜨겁고 마른 입술에 묻은 눈물을 핥으며 오소마츠가 씩- 웃었다

멍청히 오소마츠를 응시하는 카라마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는 오소마츠의 눈가가 붉었다

오소마츠 또한 울고 있는 것이라 이해한 순간 카라마츠의 손가락이 오소마츠의 눈가에 닿았다

시리도록 벌겋게 물든 눈가를 감쌌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마른 눈가가 뜨거웠다

오소마츠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우는구나.’ 하고 독백하는 카라마츠의 손을 오소마츠가 맞잡았다.


네 진짜 이름을 알려줘.”

금방 눈물을 쏟을 것처럼 일렁이는 눈동자를 가늘게 휘고 묻는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기쁨일까, 슬픔일까. 자신의 감정인데도 알 수 없다.


“…카라마츠.”

카라마츠.”

오소마츠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온 순간, 카라마츠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전류에 몸을 떨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기쁨

지금 이 순간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너무 커서 그대로 집어 삼켜질 것 같은 어리석은 두려움에 눈물을 쏟으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오소마츠, 오소마츳!!”

후힛—, 우리 공주님은 울보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를 늘이며 자신에게 안겨오는 카라마츠의 눈가에 입술을 내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품에 가득 안았다.


카라마츠, 너에 대해서 알려줘. 전부-.”

귓가에 울리는 눈물에 젖은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어깨에 닿는 카라마츠의 얼굴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을 느낀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었다

벅차오르는 마음은 삼킬 수 없이 크게 부풀어 올라 터져 크게 퍼졌다.


사랑한다, 오소마츠!!”

우렁차게 울리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후핫!” 하고 함박웃음을 피웠다.


나도, 사랑해-. 카라마츠.”

행복에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한 입술은 곧 카라마츠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

혼란으로 가득 차 키스를 했단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처음과 달리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오소마츠의 온기에 눈을 감았다

두 개의 심장이 꼭 쌍둥이처럼 함께 박동했다

귓가에 울리는 고동소리와 함께 입술을 뗐다


연인이 된 후의 첫 키스는 눈물 맛이 났다.

 

 

 

 

 

6.

 

눈물을 너무 많이 흘린 탓일까,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휘청거린 것을 끝으로 기억이 끊겼다

눈을 뜨자 온통 검었던 방안 가득히 노란 햇빛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세 번 눈을 깜빡이고 몸을 일으켰다

입고 있는 것은 하늘색 파자마

늘 입고 자는 잠옷을 입고 있다

어젯밤의 그것은 꿈이었던 건가…. 


허탈함과 함께 간지럽게 입술에 남아있는 감촉을 되짚었다

, 이었지만 너무나 생생해서 꼭 실제로 일어난 일 같다

내 마음은 내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이런 꿈까지 꿀 정도로 커져 버린 건가…. 

보답받지 못할 마음이 안쓰러워 쓴웃음을 보내고 침대에서 내려오려 발을 꺼낸 순간, 노크와 함께 오소마츠가 침실로 들어왔다.


, 카라마츠. 일어났어?”

.”

?”

아무렇지도 않게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오소마츠를 빤히 바라보았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왜 그래?” 하고 묻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이젠 꿈에 이어 환청까지 듣는 것인가, 눈썹을 찌푸렸다.


카라마츠~? -.”

? ?! , , 지금 나를카라마츠라고 부른 건가?”

~? 그럼카라마츠카라마츠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깍지 낀 손을 뒤로 돌리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오소마츠가 어젯밤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단숨에 얼굴이 뜨거워져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면 좋을지 모르겠다

입술에 남은 감촉도 꿈이 아니란 것을 깨닫자마자 피부에 딱 달라붙어 사라지지 않는다

머리 위에서 김이라도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달아오른 얼굴을 차마 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만 굴리고 있을 때, 시야에 오소마츠의 구두코가 들어왔다.


라마츠~!”

우홋!?”

푸핫!! 뭐야, ‘우홋이라니~!! 진짜 고릴라 공주야?”

볼을 감싸고 홱 위로 들어 올리는 오소마츠의 손에 놀라 새어 나온 비명에 오소마츠가 한참을 웃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쓱- 닦아내더니 싱글거리는 얼굴로 가만히 나를 응시한다.


, 뭔가.”

~? 아니~. 내 연인은 참 귀엽네~, 하고 생각해서 말이야.”

, !?”

—, 정말. 귀여워.”

오소마츠의 입에서 나온연인이란 단어에 말을 잇지 못하고 뻐끔거리는 입을 오소마츠가 즐겁게 바라보았다

쿡쿡, 웃음을 흘리며 한 걸음 더 내게 가까이 다가온 오소마츠가 살며시 내 손을 잡아 입가로 들어 올렸다

, 하고 손등에 입 맞춘 오소마츠가 능글맞게 웃으며 내 옆에 털썩 엉덩이를 내렸다.


좀 괜찮아? 어제 갑자기 기절해서 엄청 놀랐다고.”

, 아아—. . 괜찮다.”

그래.”

, 오소마~!? 전보다 더 눈빛이 위험해지지 않았나!? 

전에도 분명 살가운 눈길이긴 했지만!! 

둘의 관계가친구였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정한 눈빛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 오소마츠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카라마츠.”

! !”

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

오소마츠의 부름에 몸에 바짝 힘을 주고 대답하는 나를 보며 오소마츠가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곤란하다

지금도, 오소마츠의 체온이 옆에 느껴지는 것만으로…. 

그리고 오소마츠가 나를카라마츠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카라마츠, 있잖아—.”

어떻게든 심장을 진정시키려 미묘하게 오소마츠의 시선을 피해 대답했다

빤히 나를 보는 오소마츠의 눈길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구멍! 구멍 나겠다, 오소마츠으

아무리 내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진길티- 보이라지만, 그렇게 열렬하게 바라보면 좀 곤란하다

내가 제대로 눈을 마주할 때까지 고집스럽게 눈을 돌리지 않는 오소마츠에게 결국 항복을 선언하고 천천히 눈을 돌렸다

아름다운 붉은 빛이 묻어나오는 진갈색 눈동자를 마주하자마자 어젯밤의 일이 생각나 절로 신음이 나왔다.


어젯밤, 말했지? 전부 알려달라고.”

?”

벌써 잊어버렸어~? 바보네.”

!?”

내가 말했잖아. 너에 대한 것 전부-, 알려달라고.”

….”

오소마츠의 말에 이끌려 어젯밤의 약속을 떠올렸다

분명 오소마츠에게 사랑을 외치기 직전에 나눈 약속

그 어느 것에도 눈을 두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담고 있는 오소마츠에게 있는 힘껏 웃어 보이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물론! 궁금한 건 뭐든지 물어봐라! 이 길티- 가이 카라마츠가 전부 알려주지!”

, 공주연기할 때랑 성격이 좀 다르네.”

…. , 공주일 때가 좋은가?”

~? 아니—. 지금이 더 좋아. 재미있고.”

재미….”

그럼 나 물어보고 싶은 거 지금 다 물어본다?”

, 물론! 뭐든지!”

 

 

오소마츠는 정말로 많은 것을 물었고,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취미, 좋아하는 음식, 혈액형 등등 아주 사소한 것부터 아버지와는 서먹한 관계인 것, 어릴 적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그림자 무사가 되어 많은 훈련을 한 것, 왕의 명령으로 붉은 왕국에 오게 된 것, 동생들도 나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며 따라온 것 등등 20년이 넘는 내 일생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오소마츠는 내가 하는 말 하나에 집중해 시선을 맞춘 채, 전부 들어주었다

그리고 오소마츠도 어릴 적 있었던 일들을 말해 주었다.

마츠요님과 성 밖으로 자주 놀러 나갔다는 것, 마츠요님이 자신을 지키다 크게 다쳤던 것, 귀족들의 음모로 많이 다쳤던 것, 기대가 부담되어 최대한 조용히 지내왔던 것, 전쟁만 아니었으면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싶었다는 것 등등

식사도 잊고, 땅거미가 떨어져도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겨우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때, 방안은 또다시 어둠에 잠긴 후였다

오소마츠도 방안을 둘러보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렇게 시간이 지난줄 몰랐다며 코밑을 문지르고 멋쩍게 웃는 오소마츠에게 대답하고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다급히 오소마츠의 팔을 잡았다.


! 팔은 다 나은 건가?”

? 아아. , 다 나았어.”

팔에 감겨 있던 하얀 붕대가 사라진 것을 이제야 눈치챘다

내 시선이 박힌 팔을 가볍게 들어 올린 오소마츠가 하얀 새살이 돋은 상처를 보여주었다

여린 살이 꽉 채운 상처는 확실히 나아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푸른 왕국 갔다 오는 사이에 다 나았지~.”

환한 미소를 띤 오소마츠를 보며 작게 안도했다

아무런 문제 없이 팔을 움직이는 것을 보면 통증도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상처가 제일 심했던 상태를 보았기에 좀처럼 그 모습을 떨쳐낼 수 없었다

오소마츠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으니까

의심스러운 눈을 거두지 않고 오소마츠의 팔을 가만히 응시하자 오소마츠가 눈을 굴리더니 곧!” 하고 소리를 냈다.


뭔가?”

슬슬 도착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뭐가 도착한다는 건가, 라고 물을 틈도 없이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카라마츠가 만나고 싶어 할 사람.”

묻지 않은 질문에 대답한 오소마츠가 침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에 멈춰 서서 창밖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입꼬리를 높였다.


때맞춰 왔네-!”

?”

유쾌하게 외치면 거실을 뛰어나가 현관 앞으로 다가가는 오소마츠를 눈으로 좇았다

문을 열기 전, 나를 보며 씨익- 장난스러운 미소를 흘린 오소마츠가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카라마츠 형!”

카라마츠 형아-!!”

열린 문을 열어젖히고 달음박질로 들어온 쥬시마츠가 펄쩍 뛰어 안겼다

허리에 다리를 감고 상체에 매달린 쥬시마츠의 무게에 휘청이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섰다.


카라마츠 형아-!! 역시 괜찮았다! !”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쥬시마츠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이어 다가온 토도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볼을 긁었다.


별로 안 믿은 건 아니라구, 쥬시마츠 형. 그리고 카라마츠 형.”

?”

저기에….”

스륵- 몸을 타고 내려온 쥬시마츠가 토도마츠와 함께 고갯짓했다

둘에 가려 보이지 않는 현관에 오소마츠가 누군가와 인사하고 있었다

별궁에 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데, 오소마츠가 저렇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넬 정도의 사람이 온 적은 없었다

부드럽게 웃는 토도마츠가 몸을 비켰다

서서히 드러난 현관에, 오소마츠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한 순간 놀라 턱이 떨어졌다.


“…아버지?”

오랜만이구나, 카라마츠.”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이라도 보내라며 자리를 비켜주려던 오소마츠가 마침 도착한 왕의 시종을 따라 본궁으로 향하고, 정말 오랜만에 일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돌아온 것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아버지까지 이곳에 있는지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종횡했다

4명이 있는데 거실은 조용했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눈을 돌리자 토도마츠가 싱긋-, 눈웃음을 보내고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카라마츠 형 말대로 붉은 왕국을 빠져나갔을 때, 아빠랑 만났어.”

!? 푸른 왕국이 아니라…?”

토도마츠의 말에 놀라 되묻자 고개를 끄덕인 토도마츠가 아버지를 재촉하듯 응시했다

눈썹을 늘어뜨리고 머리를 긁적이던 아버지가 입맛을 다시고 내게 시선을 맞췄다.


에드윈, 아니 오소마츠 왕자님이 푸른 왕국에 있을 때, 나를 찾아오셨다.”

“…오소마츠, …?”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오소마츠가 나온 것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

쓴웃음을 삼키고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든 아버지가 나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 아비가, 너를 고생하게 했구나. 미안하다. 그래도 이렇게 건강해 보이니 안심이야.”

“…아버지.”

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붉은 왕국에 너를 보내는 것을 반대할 수 없었다. 우리마츠노가문은 대대로 왕가에 충성을 맹세했었으니까. 네가 가야만 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못난 아비를 오소마츠 왕자님이 일부러 찾아오셨더구나. 아들을 버린 나라에 충성할 이유가 남았냐고, 화를 내셨다. 그제야 겨우 깨달았단다. 내가 너를 사지로 몰았다는 것을…. 카라마츠, 이 아비는 입이 백 개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미 늦었지만, 네게 미안하다는 말은 하고 싶구나. 정말로 미안하다, 아들아.”

말을 마친 아버지가 머리를 숙였다. 그렇지 않다고,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옆에 앉아있던 토도마츠가 건네는 손수건을 받아든 후에야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둘러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치고 아직도 머리를 숙이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내게 뜬구름과 같았다

왕가의 오랜 충신이자 심복인마츠노가문을 이끄는 수장인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동생들이 태어나고 어머니가 세상을 뜬 직후,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나는 본가를 떠났다

훌륭한그림자 무사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반복했고 아버지와의 시간은 더욱 줄어들었다.

한 번도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의아버지이기 이전에마츠노 가의 가장이었다

항상 냉철하고 확실하게 왕가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완전무결할 것으로 생각했던 아버지의 약한 모습에 가슴 깊은 곳에 박혀있던 돌 하나 툭-, 떨어져 나갔다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했다

나도, 아버지도 단지 어리석었던 것뿐이었기에


오소마츠를 따라 푸른 왕국을 버린 아버지에게 오소마츠가 머물 곳을 마련해 준 모양이었다

오소마츠와 미행을 갔던 성 아래 마을 한쪽에 작은 집 하나를 얻어준 오소마츠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는 말을 끝으로 아버지가 몸을 일으켰다.

종종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아버지가 떠나자 교대하듯이 오소마츠가 별궁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많이 했어?”

아아.”

오소마츠의 배려에 진득이 퍼지는 감동에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어느새 다가온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음흉한 미소를 띠고 둘에게 손짓했다.


너네~, 내가 카라마츠를 어떻게 할 거로 생각했지?”

, 아니요….”

생각 안 했슴닷!!”

오소마츠의 짓궂은 질문에 토도마츠가 대답을 흘렸다

손을 번쩍 들어 씩씩하게 대답하는 쥬시마츠의 머리를 크게 쓰다듬은 오소마츠가 허리에 손을 얹고좋아-!” 하고 씩- 웃었다.


앞으로 나를오소마츠 형이라고 부르도록!”

오소마츠 형아-!”

알겠습니다. 오소마츠 형.”

.”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오소마츠를이라 부르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밝게 웃었다

오소마츠도 이를 드러내고 기쁘게 웃으며 코밑을 문질렀다

오소마츠의 귓불이 슬며시 붉어진 것은 나만이 알 수 있었다.

 

 

 

 

 

7.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실에 들어선 카라마츠가 발을 멈췄다

잔잔한 어둠 속에 푸른 달빛이 시야를 밝혀주고 있었다

침실에 놓인 커다란 침대로 천천히 다가간 카라마츠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망설이는 발은 침대를 한 바퀴 돌더니 처음 이 방에서 잤을 때 누웠던 소파로 향했다

사람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소파를 말없이 내려다보던 카라마츠가 한껏 눈썹을 늘어뜨리고 고민에 빠졌다.


, 침대는 역시 위험하지 않은가. 여기선 소파에서 자는 게…. 아냐, 오소마츠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할 거다. 지금처럼 같이 침대에서 자도…. , 그치만 지금까지는 친구였으니까 괜찮았지만….’

눈앞이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는 것 같은 착각에 흔들리는 몸을 소파에 내린 카라마츠가 이번엔 눈썹을 한껏 찌푸렸다.

 

오소마츠와 연인이 된 지금, 나는 대체 어디서 자야 하는가!!!’

 

다가오는 발소리에 타임 리미트가 가까워진 것을 깨닫고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카라마츠가 미처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벌컥 열리는 문소리에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 오소마츠….”

? 카라마츠, 거기서 뭐 해? 안 자?”

태연하게 침대로 걸어가이리로, 이리로하고 손짓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괜스레 김이 빠진 카라마츠가 터벅터벅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먼저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오소마츠의 맞은편, 항상 자신이 눕는 자리에 엉덩이를 내린 카라마츠를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조용히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

? 뭔가.”

오소마츠를 향해 고개를 든 카라마츠와 마주 보며 오소마츠가 입을 벙긋거렸다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이 뒤에 숨어있다 것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진득하게 앉아 오소마츠의 말을 기다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목소리를 내는 것에 성공한 오소마츠가 큰 한숨을 먼저 흘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3일 후에, 가야 해….”

간다는 말에 카라마츠는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 하고 귓가에 울리는 소리는 분명 심장이 떨어지며 낸 비명일 것이다

조금 전 오소마츠처럼 입을 뻐끔뻐끔, 소리로 옮겨지지 않은 경악을 흘린 카라마츠가 고개를 푹 숙였다

막고 싶었지만, 막을 이유가 없었다

여전히 붉은 왕국은 동의 제국과 전쟁 중이었고, 오소마츠는 모든 병사를 통솔하는 자리에 있었다

부상으로 잠시 돌아왔지만, 그 부상이 다 나은 지금 오소마츠를 막을 구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행복했는데, 설렜는데, 아득히 멀리에 있던사랑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는데…. 

소리 없이 절망하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아 끌어당긴 오소마츠가 완온히 웃었다

불안하게 떨리는 카라마츠와 눈을 맞추고 손을 거듭 맞잡은 오소마츠가 맞잡은 손을 제 가슴께에 올렸다.


안 다치고 돌아올게. .”

“….”

다쳤다가 네가 또 전장에 오면 안 되니까.”

“…약속이다.”

.”

불편한 기운을 삐죽이고 새끼손가락을 내민 카라마츠의 불안이 조금이라도 사라지길 빌며 오소마츠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생채기 하나 없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몇 번이고 받아내고서야 카라마츠가 잠자리에 들었다.

 

 

 

3일 후, 출전 준비를 마친 오소마츠가 별궁 앞에서 자신을 배웅하는 카라마츠에게 미소지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고수호의 키스를 마친 카라마츠가 갑주를 입고 말에 오르는 오소마츠는 망연히 쳐다보았다.

 

말을 달린 오소마츠가 본성의 입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왕 앞에 멈췄다

오소마츠와 마찬가지로 붉은빛이 나는 갑주를 온몸에 두른 왕이 성 앞에 열을 맞춰 선 병사들을 확인했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병사들 사이에 흘렀다

왕자의 출진이 아닌 왕의 출진. 그것이 병사들을 한층 더 긴장하게 했다


언제 떠날 것인지 날짜를 보고하러 들어온 오소마츠에게 왕은 자신 역시 전장에 나갈 것을 전했다

왕의 청천벽력과 같은 말에 놀란 것은 오소마츠뿐이 아니었다.

긴급히 열린 어전 회의에서 왕의 말에 경악한 관료들과 귀족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실소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모든 이가 목청을 높여 반대했지만, 왕의 결심은 이미 확고했다

왕이 반강제로 이끌어낸 귀족들과 관료들의 수락에 씩- 미소를 지은 것을 오소마츠는 놓치지 않았다

카라마츠가 보았다면 오소마츠의 장난기 가득한 특유의 미소가 아버지인 왕에게 이어받은 것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왕과 함께 출진하는 기사 단장에게 병사들의 인솔을 맡긴 왕이 입구에서 자신을 마중 나온 마츠요에게 걸어갔다

쥬드 공작의 중죄로 제1 왕비가 근신 중이었기에 제2 왕비가 나온 것이라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마츠요가 마중 나온 것은 왕이 그렇게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오소마츠는 병사들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왕이 마츠요를 품에 안고 간결하면서도 뜨거운수호의 키스를 나누었을 때, 오소마츠가 숨을 멈췄다

전장으로 떠나는 먼 길을 준비하던 병사들도, 기사들도 멍청히 왕과 마츠요가 만들어내는 둘만의 세상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숨죽여 왕을 기다리는 가운데, 조심해서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왕이 말에 올랐다

말고삐를 잡고 있던 손에서 고삐가 떨어진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놀란 오소마츠에게 왕이 유쾌한 웃음을 던지고출발한다.” 하고 명령했다

고삐가 풀어졌지만, 여전히 오소마츠의 옆을 지키고 있던 애마에 오른 오소마츠가 멍청한 얼굴을 지우지 못하고 왕의 뒤를 따랐다.





* 나름 이번 장편에서 가장 중요한 반전이 나왔습니다만,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ㅎ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9화입니다!! 떡밥 뿌리기 마지막이네요ㅎ


* 공미포 11,046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레드 버로우에 도착한 마차에서 기사 두 명이 나왔다

한쪽 팔에 부목과 붕대를 감아 목에 걸은 천으로 지지하고 있는 오소마츠가 마차에서 뛰어내리자 뒤따른 카라마츠가!” 하고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뱉었다.


오소마츠, 조금 더 조심해라! 팔이….”

눈살을 찌푸리고 보호대에 얹은 팔을 응시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미소를 흘렸다.


괜찮아~. 이 정도는.”

제 대답에 불만스러운 얼굴로 노려보는 카라마츠의 머리에 가볍게 손을 올려 쓰다듬은 오소마츠가 본궁으로 향했다

먼저 왕과 마츠요에게 인사 및 보고를 마치고 오겠다는 오소마츠를 배웅한 카라마츠가 갑주를 입은 기사 차림으로 별궁으로 향했다

적군의 피를 먹은 갑옷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죽은 자의 검은 손이 갑주를 타고 올라와 목을 조르는 것 같아 당장 철컥거리는 갑옷을 벗어 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별궁으로 향하는 발을 서둘렀다.

 

 

…!”

카라마츠를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형을 부르려 했던 토도마츠가 제 손으로 입을 막고 카라마츠를 침실로 이끌었다

침실에 들어가자마자 카라마츠를 대신해 푸른 드레스를 입고 침대에 누워있던 쥬시마츠가 벌떡 일어나 카라마츠에게 뛰어왔다.


형아~~~!!!”

, 쥬시마~!? 잠깐 스타압-!!!”

카라마츠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달려든 쥬시마츠가 펄쩍 뛰었다

쿠당!,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카라마츠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딱딱한 바닥에 사정없이 부딪힌 뒤통수에서 퍼지는 고통에으으….” 하고 신음한 카라마츠가 눈을 뜨고 제 위에 올라탄 동생을 바라보았다.


어서옵쇼!!”

-, 다녀왔다. 쥬시마츠.”

활짝 웃는 얼굴에서 떨어지는 반가움에 카라마츠가 아픔도 잊고 빙긋- 웃었다

뒤따른 토도마츠의 재촉에 재빨리 드레스로 갈아입은 카라마츠가 옷장 구석으로 들어가는 갑주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은색의 철갑이 사라지자 그제야 그 지옥에서 벗어나 집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온몸을 감쌌다

동생들 몰래 작게 안도하며 오랜만에 입은 드레스에 묘한 위화감을 삼키고 침실로 나오자, 마침 별궁에 도착한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본궁에서 대기하고 있던 의사와 함께 별궁에 돌아온 오소마츠가 거실로 들어가는 것을 눈으로 쫓은 카라마츠가 서둘러 계단을 내려왔다

팔에 감아두었던 붕대를 풀자 검붉은 상처 주변으로 노랗게 굳은 진물이 각질처럼 후두두 떨어져 내렸다

콧등에 내려앉은 안경을 끌어 올리며 눈썹을 찌푸린 의사가 오래된 가죽 가방을 열어 식염수를 꺼내 상처에 들이붓자 하얗게 핏기가 사라진 상처가 훤히 드러났다

피부를 크게 갈라 붉은 근육까지 드러난 상처에 카라마츠가 숨을 삼켰다

부상이 가볍지 않다는 것은 이치마츠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오소마츠가 제대로 왼팔을 쓸 수 없는 것도 보았다

항상 붕대가 감긴 팔을 봐 왔던 카라마츠는 처음 보는 상처의 심각함에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저 정도였나…. 저 정도인데도, 오소마츠는 웃었던 건가….’

오소마츠가 참아왔을 고통이, 꼭 자신의 팔로 옮겨온 것 같아서 숨이 가라앉았다.

카라마츠 앞에서 오소마츠는 한 번도 아픔으로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쵸로마츠나 이치마츠 앞에서도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혼자서 아픔을, 고통을 삼켜왔을 오소마츠를 바라본 카라마츠가 이 모든 것을 눈치채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환부를 소독한 의사의 손에 바늘이 들렸다

불로 바늘을 소독해왕자님, 조금 참아주세요.” 하고 간결하게 말한 의사가 날렵한 손놀림으로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다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오소마츠가 이를 악물로 고통을 견뎠다

어렵게 숨을 흘리며 조금씩 닫히는 상처를 내려다보는 오소마츠의 옆으로 가려는 카라마츠의 팔을 토도마츠가 잡아당겼다

옷을 갈아입자마자 오소마츠를 걱정해 침실을 뛰어나간 카라마츠를 뒤쫓아 내려온 토도마츠가 자못 심각한 얼굴로 카라마츠를 주방으로 끌고 갔다.


카라마츠 형, 지금 상황 알고는 있어!?”

아무도 없는 주방에 단둘이 있는데도 최대한 볼륨을 줄이고 입가에 손을 가져대 속삭이는 토도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산뜻한 얼굴로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는 카라마츠를 보며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쿵쿵 두드린 토도마츠가 카라마츠를 홱 가까이 잡아당겼다.


지금 왕궁 분위기 장난 아니란 말이야!! 푸른 왕국에 보냈던 사신이 돌아왔는데, 나라 사정으로 더는 보급을 지원해줄 수 없다고 했단 말이야!!”

“….”

당연히 분위기는 최악-! 우리뿐만 아니라 마츠요 왕비님을 향한 시선도 곱지 않고…! 계속 친하게 지내던 시녀나 시종들도 우리를 피한다구!!”

“…, 런가….”

토도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자포자기와 비슷한 마음으로 카라마츠가 토도마츠에게 물었다.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는….”

없어….”

카라마츠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토도마츠가 입술을 씹으려 고개를 저었다.

—.” 하고 한숨을 내쉬며 눈썹을 늘어뜨린 카라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괴로운 얼굴로 카라마츠의 어깨를 붙잡았다.


카라마츠 형, 어떡해…? 이대로 가다간, 카라마츠 형이…!”

울먹이는 토도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초연히 웃으며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토도마츠의 울먹이는 말대로 목숨이 위험한 상황인데도 카라마츠의 마음에 불안은 생기지 않았다

왜일까, 자문하며 눈을 내린 카라마츠의 귀에 다정한 목소리가 닿았다.


걱정하지 마.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니까.”

언제 주방에 들어왔는지 인기척도 내지 않고 다가온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오소마츠의 등장에 자신의 실언을 되짚고 사색이 된 토도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통통 두드린 오소마츠가 멍청히 자신을 응시하는 카라마츠와 눈을 맞췄다

잔잔히 자신을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입가에 맺힌 은은한 미소에 시선이 빨려 들어간다

토도마츠의 머리에서 떠난 손은 카라마츠에게 닿지 않고 곧바로 별궁 밖으로 향했다

본성으로 걸어가는 오소마츠의 등을 배웅하며 카라마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왕의 집무실에 노크하고 들어선 오소마츠가 저를 보며 안경을 벗는 왕 앞에 섰다.


치료는 끝난 건가?”

붕대를 칭칭 감은 왼팔을 보며 걱정스럽게 묻는 왕의 말에 .” 하고 간단히 대답한 오소마츠가 작게 한숨을 쉬고 어렵게 입을 뗐다.


푸른 왕국에, 다녀오겠습니다.”

오소마츠의 말에 왕의 눈빛이 단번에 온도를 잃었다

차가운 눈으로 오소마츠를 응시하며 톡톡, 책상에 손가락을 두드린 왕이 물었다.


네가 가서 뭘 어쩔 생각이냐.”

다시 보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소마츠의 단언에 왕이 턱을 쓸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 말 없이 턱을 쓸어올리는 것은 왕이 사색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얼마나 많은 변수와 위험이 있을까, 왕은 하나하나 수를 셌다


막 전장에서 돌아온 왕세자

부상까지 입은 왕세자를 적국이 될지도 모르는 푸른 왕국에 보낸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일이 잘 풀릴지 어쩔지 모르는 지금 왕세자를 보낸다고 양상이 변할 것 같지도 않다

손을 멈추고 눈을 들어 오소마츠의 눈빛을 확인한 왕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한치 앞일도 알지 못하면서 무작정 일을 벌이려 하는 꼴이 꼭 젊을 적의 자신을 닮았다

수십 년 전, 어리석으면서도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던 자신을 기억하고 세월에 변해버린 지금의 자신을 비교하며 쓴웃음을 삼킨 왕이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반드시, 보급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와라.”

“…!”

허락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오소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대답했다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마치고 방을 나온 오소마츠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반드시…!’

크게 심호흡해 냉정하게 생각을 정리한 오소마츠가 발을 옮겼다.

 

 

 

 

 

2.

 

푸른 왕국이라 불리는 후지오 국

나라의 유일무이한 왕자, 카즈야가 책상 위에 펼친 지도를 보며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대륙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동의 제국과 그 옆에서 국경을 나누고 있는 푸른 왕국과 붉은 왕국

서쪽에 있는 수많은 소국(小國)들을 보며 치솟는 즐거움을 삼키고 짐짓 근엄한 표정을 흉내 낸 카즈야의 옆에 붉은 입술의 미녀가 다가왔다

카즈야의 어깨를 우아한 손짓으로 쓸어내린 미녀가 붉은 입술을 얇게 피고 요염한 미소를 흘렸다.


그 말이 모두 사실이겠지?”

카즈야의 물음에 미녀가 생긋-, 눈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왕자님. 동의 제국의 위대하신 황제 제롬 1세 폐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저희에게 협력하신다면 이 땅을, 전부 푸른 왕국에 드리죠.”

펼쳐진 지도 한쪽을 가리키며 가살스럽게 웃은 미녀가 지그시 카즈야를 응시했다

미녀가 가리킨 곳은 붉은 왕국에서도 가장 자원이 풍부한 곳

얼마나 많은지 파악도 하지 못하는 붉은 철이 대량으로 묻혀 있는 곳이었다

재료가 풍부한 곳에 장인들도 몰린다

붉은 왕국에서 수도인 레드 버로우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를 미녀는 너무나 간단하게 말했다

항상 붉은 왕국의기술력을 샘냈던 카즈야의 입가에 참지 못한 미소가 배었다

좋아.” 하고 혼잣말로 고개를 끄덕인 카즈야가 성 한쪽에 쌓인 보급품을 옮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궁의 수많은 시종이 본래 붉은 왕국에 보내야 할 보급품을 창고에 쌓았다

세개나 되는 창고에 빼곡히 찬 보급품을 보며 카즈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차라리 이 보급품을 제국에 보내는 게 어떨까? 그러면 더 많은 땅을 줄지도 몰라.’

전쟁이 끝난 후, 붉은 왕국을 짓누르고 강대국이 될 미래의 푸른 왕국을 생각하며 삐져나오는 간특한 미소를 뒤로하고 카즈야가 넓은 궁 안에 드리운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푸른 왕국의 왕자이자 다음 왕이 될 왕세자, 카즈야는 야심이 큰 자였다

어릴 적부터왕이 될 자로 교육받으며 자란 그는 노쇠한 현왕을 대신해 국정을 운영할 정도로 우수한 자였다

무슨 일이든 두 번, 세 번 생각한 후에 명령을 내리는 카즈야를 향한 신하들과 국민들의 신뢰는 두터웠다

실제로 카즈야가 왕을 대신해 국정을 맡은 뒤로 푸른 왕국의 정치는 안정권에 들어갔다

농사는 풍년을 거듭했고, 서로 헐뜯고 싸우던 정치가들은 사라지고, 나약한 농부들을 괴롭히던 부패한 대지주들도 그 세력을 잃었다

그야말로 현왕보다 더 훌륭하게 왕국을 이끄는, 모든 이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자가 카즈야였다.

단 한 가지 단점을 제외한다면.

 


카즈야의 스승을 그를욕심에 눈이 멀어 때때로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고 평했다

무슨 일이든 신중을 거듭하는 카즈야가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그를 빛내는 장점은 전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남은 것은 욕망에 먼 눈뿐

하찮은 것까지 따져 멀리 바라보던 총명한 눈은 바로 앞밖에 보지 못했다

언젠가, 그 단점이 카즈야와 푸른 왕국을 망칠 수도 있다고, 그의 스승은 예감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무섭게 들어맞았다

신원조차 확실하지 않은, 동의 제국의 첩자라 자처한 미녀에게 넘어간 카즈야는 붉은 왕국으로 보내던 보급을 끊었다

붉은 왕국보다 더 강한 대국이 될 수 있다는 첩자의 유혹은 카즈야의 심중을 찔렀다

줄곧 푸른 왕국과 붉은 왕국의 관계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카즈야였다

두 왕국은 서로를 동맹이라 칭했지만, 명백한 상하관계가 존재했다

붉은 왕국에 수출하는 푸른 왕국의 물품에는 관세가 붙었지만, 붉은 왕국에서 들어오는 물품은 관세가 없었다

두 왕국이 한자리에 모일 때도 상석은 항상 붉은 왕국의 것이었다

붉은 왕국의 왕이 바뀌면 푸른 왕국의 왕은 신하라도 되는 양 붉은 왕국에 인사해야 했고, 푸른 왕국의 여성 왕족은 붉은 왕국에 인질 아닌 인질로서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즈야가 보기엔 푸른 왕국 또한 대국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붉은 왕국과 비교하여 그 무엇하나 손색없는 하나의 왕국이었다

남모르게 그런 생각을 품던 카즈야가 동의 제국에서 온 첩자의 말에 귀 기울인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붉은 왕국의 보급을 끊어 제국을 돕는다면, 전쟁이 끝난 후 붉은 왕국의 땅을 주겠다.

 

그 말에 카즈야는 환희했다. 드디어 붉은 왕국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절묘한 수가 손에 들어왔다

지금의 붉은 왕국보다 더 위세를 떨치는 푸른 왕국의 미래를 그리며 첩자의 손을 잡았다

야망에 취해 명석함을 잃은 왕자는, 어중간한 자가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려 저지르고 마는 몰락의 길에 발을 올렸다.

 

 

 

 

 

3.

 

푸른 왕국에 도착한 우리를 반기는 것은 푸른 왕국의 유일한 왕자라 자신을 소개한카즈야라는 자였다

국빈이 머무는 방에 안내하며 묻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는 왕자가 실쭉 웃었다

흉년이 들어, 먹고 살기 위해 부득이하게 보급을 끊고 말았다는 말에 목구멍 위로 올라오는 비웃음을 삼켰다

붉은 왕국에서 이곳으로 오며 지나친 많은 농경지에는 줄기가 휘어 부러질 정도로 많은 과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흉년은 불가하고 대풍년이 분명한 그 광경은 대체 어떻게 변명할 생각인지….


국경 지역은 풍년이었습니다만….”

, 일부 지역만 풍년이 들었습니다대다수의 농경지는 흉년이 들었지요. 풍년이 든 지역의 곡식으로 간신히 배를 곪지 않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왕자의 말에 입 밖으로 새어 나오려는 조소를 숨기고 숨을 내뱉었다

왕자의 간사한 미소에 울컥 치미는 화를 억누르고 왕을 만나고 싶다는 말을 꺼내자, 왕자의 얼굴이 일순 변했다.


…, 죄송합니다. 아바마마는 중환을 앓고 있어 만남을 금하고 계십니다. 미숙하지만 제가 모든 국정을 맡고 있으니, 제게 말씀해주세요.”

이런 전하가 위독하시단 소식은 듣지 못했군요. 그렇다면 잠깐이라도 존안을 뵙고 쾌차를 빌어드리고 싶습니다만.”

죄송합니다. 모처럼 와주셨는데, 불가할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왕자가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방을 떠났다

거칠게 정돈된 머리를 벅벅 긁고 고개를 위로 들렸다

높게 솟은 천장에 매달린 검은 그림자를 향해거기 있지?” 하고 말을 걸자마자 획-, 작은 사람 하나가 떨어졌다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감싸고 발소리를 죽이고 어둠 속에서 행동한다는 푸른 왕국의 암부

그중에서도 뛰어난 실력자로 뽑히는치비타란 자가 눈앞에 섰다.


정말로 네가그 녀석의 친구냐? 짜샤.”

일단 나 붉은 왕국의 왕자인데 말이지…. 

상대방의 신분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반 토막 내는 모양이 딱 공주를 닮았다

붉은 왕국에 있을 카라 공주를 떠올리며 피식-, 마른 웃음을 흘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 녀석을 도와줄 수 있는 거냐?”

물론. 치비타, 네가 협력만 해 준다면.”

원래 이런 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그 녀석을 위해 도와주지, 젠장.”

-, 땡큐.”

작은 손으로 주먹을 만들어 코를 짓이겨 올린 치비타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그래서? 뭘 해주면 되는데?” 하고 물었다.

왕궁 내에 머무는 자 중에서 특히 수상한 자를 찾아봐 줘.”

굳이 길게 풀지 않은 말 속에 숨은 의미를 파악했는지 한쪽 눈썹을 들썩인 치비타가파하~.”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알겠다.” 하고 짧은 대답을 뒤로하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카라 공주의 소꿉친구인 치비타와 미리 접촉해 다행이었다

푸른 왕국에 처음 오는 내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정보이다

암부라면 그 누구에게도 들킬 일 없이 필요한 정보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치비타가 떠나고 방 주변에 그 어떤 인기척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함께 푸른 왕국에 온 기사와 시종들을 모았다

몰래 궁을 빠져나가 사람을 찾을 이를 뽑고,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했다.

 

 

 

푸른 왕국에 도착해 3. 치비타를 기다리며 국빈이 머무는 방에서 얌전히 지낸 시간의 끝이 찾아왔다

대체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어둠 속에서 내 앞에 나타난 치비타가 작은 종이에 그려진 초상화를 건넸다.


이 녀석이 수상해. 못 보던 얼굴이거든.”

초상화에 그려진 것은 지극히 서양적인 얼굴을 가진 미녀

검은 머리가 일반적인 푸른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금발 머리의 미녀였다.


고마워.”

그리고, 추가로 말이야….”

?”

초상화를 챙긴 나를 붙잡는 치비타의 말에 눈을 들었다

눈썹을 팩 찌푸리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치비타가어휴~.” 하고 한숨을 내쉬고 망설이던 입을 열었다.


궁 안쪽에 있는 창고에 보통은 사람이 많이 없거든. 근데 요즘 묘하게 드나드는 녀석이 많아져서…, 가 보니까…. 보급이 전부 거기에 저장되어 있었어.”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 혹시나 나한테 들었단 말 하지 말라구!”

당연하지.”

치비타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이며 맹세했다.

못 미덥다는 눈을 하고 한참을 나를 응시하던 치비타가 “‘그 녀석을 위해서, 믿어줄게….” 하고 중얼거리며 몸을 숨겼다.

이어 들어온 시종의왕은 종종 뒤뜰을 산책한다는 정보에 입꼬리를 씩- 올렸다. 잡았다, 증거를.


그리고 뭐-중환에 걸려서~’! 멀쩡하잖아!!

늙었다는 핑계로 나랏일은 왕자에게 넘기고 유유자적 노후를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한 푸른 왕국의 현왕을 씹으며 모두의 머리를 모았다

수중에 들어온 이 정보를 어떻게 쓸 것인가. 자칫 이것들을 왕자 앞에 내밀었다가, ‘창고에 있는 곡식은 전부 구휼미이며 줄곧 국빈 숙소에 있던 우리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냐고 추궁당하기에 십상이다

가장 머리가 뛰어난 기사와 함께할 수 있는 수를 전부 꺼낸 결과는…, 처참했다.

 

 

 

국빈의 방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감시하던 병사는 겨우 다섯

기사들이 나서서 조용히 병사들을 잠재우고 국빈의 방을 떠났다

치비타에게 미리 받은 지도를 확인하고 몰래 담을 넘어 궁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후궁으로 향했다.

 

 

왕자님, 여기서부턴 혼자 들어가셔야 합니다.”

.”

후궁 담 아래에 멈춰 위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불편하다. 정말 매~우 불편하다

공주는 잘도 이런 걸 입고 생활했구나

옆에서 함께 하던 기사, 브루노가.” 하고 웃는 것을 힘껏 노려봐주었다.

어느 나라건 후궁에 출입이 가능한 남자는 오직 왕뿐

타국의 왕자인 내가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잘 어울리네요. 에드윈 왕자님.”

브루노, 입 닫아.”

진짜 후궁하셔도 되겠어요.”

입 닫으랬다.”

브루노의 놀림을 뒤로하고, 있는 힘껏 치마폭을 끌어 올렸다

푸른 왕국의 전통 여성복

붉은 원단에 화려한 무늬가 수놓은 옷은 감촉도 모양도 아름다웠지만, 치마폭이 좁아 걷기가 힘들었다

브루노와 다른 녀석들에게 들어 던지다시피 해 담장을 겨우 넘겨 왕이 있다고 들은 애첩의 방으로 뛰었다.

 

 

벌컥, 수많은 문을 뚫고 들어가자 은근한 향초의 내음과 함께 화들짝 놀란 왕이 재빨리 옷을 여몄다.


누구냐!! 감히,”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저는 붉은 왕국의 제 1 왕자, 에드윈 윈스턴 본(Von) 필리스입니다. 전하를 뵙기 위해 이런 차림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왕(老王)의 호통을 끊고 서둘러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예상치 못한 내 등장에 노왕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동맹국의 왕자란 자가 예의 하나 모른단 말이오!? 어찌하여 이곳에 온 것인지, 왔다면 제대로 내게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노왕의 언성에 입을 다물었다. 역시 이 왕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자기 아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노왕의 곁에 있던 애첩이 등불을 켰다.

깜깜했던 방안이 순식간에 밝아지고 노왕의 얼굴이 뚜렷이 보였다.


“…그대는, 혹시 그대의 어머니는…. 마츠요가 아니오?”

“…. 그렇습니다.”

내 얼굴을 본 노왕이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무엇에 놀랐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다 대답하자, 노왕이허어~.” 하고 탄식을 흘렸다.


그래. 대체 무슨 일이기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그런 꼴을 하고 후궁까지 들어온단 말이오.”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묻는 왕의 태도에 내심 놀라며 입을 열어 대답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은 3일 전입니다. 전하를 만나고자 하였지만, 카즈야 왕자님께서 중환을 이유로 전하를 만날 수 없다 하였습니다.”

“3일 전…? 지금 3일 전에 왔다 하였소?”

.”

허나…, 짐은 아무런 보고도 듣지 못하였소….”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린 노왕이 눈을 들었다

주름 속에 파묻힌 눈동자는 세월도 바꾸지 못한 빛이 담겨 있었다.


자리를 옮기세.”

앞으로 이어질 대화가 심상치 않을 것을 눈치챈 노왕이 몸을 일으켰다

애첩의 부축을 거부하고 제힘으로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킨 노왕이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후궁을 빠져 나갔다.

 

 

노왕과 함께 집무실로 자리를 옮겨, 입고 있던 후궁의 옷을 갈아입고 왕의 앞에 섰다

노왕 역시 가벼운 옷을 벗고 중후한 정복으로 갈아입고 옥좌에 앉았다.


무슨 일로 왔는지 상세히 설명하시오.”

노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모든 것을 설명했다

보급이 갑자기 끊긴 일, 사신을 보냈으나 소용이 없었던 것, 오면서 과실이 가득한 농토를 보았는데도 흉년이라는 변명을 한 것, 창고에 가득 보급품이 쌓여 있는 것 등등

하나하나 설명할 때마다 왕의 얼굴이 점점 새파래졌다

그래,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겠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붉은 왕국이라는 강대국과의 동맹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노왕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그런 일을…, 짐은 명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카즈야 왕자님이 독단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소리가 됩니다.”

“…당장, 카즈야를 불러라.”
노왕의 낮은 목소리에 사람이 나갔다가 곧 왕자가 불려 들어왔다.


에드윈 왕자의 말이 전부 사실이냐?”

다짜고짜 묻는 노왕의 질문과 노왕과 함께 있는 나를 본 왕자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 그것이….”

사실인 모양이구나.”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며 왕자를 보며 푹-, 한숨을 내쉰 노왕이 고개를 돌렸다.


저는 직접 왕자님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어찌하여 흉년인데도 창고에 곡식이 가득하며, 보급 문제와 같은 중대사를 전하가 알고 있지 않은지, 왜 중환이라는 변명으로 전하를 만날 수 없게 만들었는지.”

“….”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왕자를 차갑게 내려다보던 노왕의 곁에 늙은 신하 하나가 다가왔다

왕의 귓가에 뭐라 말을 고한 신하가 뒤로 물러나자 왕이 주먹으로 팔걸이를 쾅! 내리쳤다.


어찌하여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단 말이냐!! 동의 제국의 첩자와 내통해!? 동의 제국은 우리의 적국이거늘!!”

노왕의 노성에 단번에 모든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과연. 그런 것인가

왕자의 어리석음에 헛웃음이 나와 감출 수 없었다

왕자는 더욱 몸을 움츠리고, 그것이….” 하고 기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노왕은 더욱 언성을 높여 격노했다.


제국이 어떤 나라인지 모르느냐!? 자신을황제라 칭하는 그자가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동쪽의 소수 민족을 모두 억누르고 정벌해 자신의 나라로 끌어들인 것을 보아도 모르겠느냐! 아카츠리아(붉은 왕국)의 땅을, 우리에게 줄 리 없다는 것을!! 아카츠리아(붉은 왕국)이 동의 제국에 손에 으스러진 후에, 그다음은 우리 차례라는 것을 어찌 판단하지 못하느냐!!!”

“….”

불화와 같은 호통이 끝나고 큰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은 노왕이 늙은 신하에게 손짓했다.


당장 붉은 왕국에 보급을 보내라. 지금껏 보내지 못한 것과 앞으로 보낼 것 전부! 그리고 서신을 하나 써야겠다. 붓과 벼루를 준비해라.”

.”

왕의 명을 받아 허리를 숙이고 신하가 발을 서둘렀다

노왕은 신하 하나를 또 불러 왕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왕자는 이 책임을 물어 동궁에 연금한다. 동궁에 드나드는 모든 이는 짐에게 보고한 후, 허락을 받고 출입하도록. 또한, 왕자에게 넘겼던 국정 또한 다시 짐이 맡겠다.”

, 아바마마!!”

시끄럽다! 너는 네가 한 잘못을 곱씹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라!!”

노왕에게 선처를 요구하며 울부짖는 왕자를 두 신하가 질질 끌고 집무실을 나갔다

점점 멀어지는 왕자의 울음에 노왕이 괴로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할 말이 없소. 일이 이렇게 되어…. 하나뿐인 아들이라 고집을 전부 받아준 결과가 저것이오….”

흰 눈썹을 늘어뜨리고 나를 바라보는 왕의 얼굴에 측은함이 솟았다가, 이 일로 고생했을 엄마와 공주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을 다잡았다

아닙니다.” 하고 짧게 대답하고 고개를 들었다.


이번 일은카라 공주님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 그렇군….”

노왕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꺼낸 말에 노왕의 몸이 움찔 떨렸다

표정을 보아 지금 말이 나올 때까지 카라 공주에 대한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정말 더럽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아무 죄도 없는 녀석을 사지에 몰아넣고, 그 사실조차 잊고 후궁의 뒤꽁무늬나 쫓으며 편안하게 살고 있었다는 것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치가 떨렸다

굳은 노왕의 얼굴을 보며 활짝 미소를 피우고 말을 이었다.


아카츠리아와 후지오 국은 굳건한 동맹국입니다. 허나 카즈야 왕자님께서 불만을 가진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 전쟁은 후지오 국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여, 전쟁이 끝난다면 아카츠리아와 후지오 국, 두 나라가 평등한 진정한 동맹을 맺을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 고맙소.”

예를 갖춰 손을 올려 인사를 올리는 노왕이 뭔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냐는 투로 물었다

기다리고 있던 질문에 씨익- 웃으며 준비해준 말을 꺼냈다.


그 동의 제국에서 보낸 첩자란 자를 넘겨주시지 않겠습니까?”

물론, 바라신다면 기꺼이 드리겠소.”

노왕의 협력에 감사하며 말을 재빨리 마치고 집무실을 나왔다.

 

 

국빈의 방에 돌아와 떠날 채비를 마친 우리 앞에 나온 것은 자신을 동의 제국 첩자라 칭한여자’. 

치비타가 잡아 온 여자를 건네받아 구속하자 예상했던 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행여 이상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재갈을 물리고 무릎 꿇렸다.


동의 제국 첩자는 무슨, 쥬드 공작의 시녀인가.”

내 말에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요주의 대상인 쥬드 공작의 측근, 시녀, 시종은 모두 파악하고 있다

그 누가 어디서 날 공격할지 모르니까

특히 쥬드 공작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자는 더욱이 위험하다

고아 출신에 더러운 뒷골목을 헤매가 쥬드 공작에게 주워져 충실한 시녀가 된 그녀는 적의로 가득 찬 눈을 내게 고정했다

자해 할 수 없도록 온몸을 구속하고 눈가리개를 해 마차에 태웠다



함께 온 자들과 마차에 올라 서둘러 붉은 왕국으로 향하는 길

우리 중 가장 머리가 우수한 녀석인미카가 운을 뗐다.


분명 쥬드 공작은 전장에서 에드윈 왕자가 죽길 바란 거겠지. 일부러 보급을 끊어 상황을 악화시킨 거야. 그렇다고 전쟁에서 지면 곤란하니까 적당한 시기에 보급할 수 있게 푸른 왕국에 사람을 남겨놓은 거겠지.”

미카는 나를 보며 자신의 붉은 긴 머리를 매만졌다

주근깨가 박힌 콧잔등을 문지르며 한 번 더 생각을 정리한 뒤, 미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보급이 끊긴 것에 푸른 왕국에 책임을 물게 한다면 마츠요 왕비님의 입지도 좁아질 것이고, 에드윈 왕자님도 힘을 잃을 테니까. 게다가 동의 제국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하면 자신은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고 말이야.”

미카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마차 뒤를 따르는 수십 대의 수레에 쌓인 보급품이 보였다

레드 버로우를 떠나기 전 단언한 대로, 보급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 엄마가 곤란할 일은 없을 것이다

레드 버로우로 향하는 길을 응시하며 머리 한쪽에 남은 공주를 생각했다


공주와 나도 이제….

 

 

 

 

 

4.

 

오소마츠가 보급 문제를 해결하고 레드 버로우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에 카라마츠가 숨을 삼켰다

불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꽉 끌어안고 그 온기를 나눈 카라마츠가 빙긋이 웃었다.


너희들은 떠나.

카라마츠 형!!”

카라마츠 형아!!”

카라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쥬시마츠도 싫다는 얼굴로 카라마츠의 옷을 잡고 매달렸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동생들을, 아무 죄도 없는 동생들을 자신과 함께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카라마츠는 제게 뻗은 동생들의 손을 감싸쥐고 부드럽게 웃으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쥬시마츠, 토도마츠. 난 괜찮아. 그러니까-.”

싫어!!”

카라마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토도마츠가 울분에 차 외쳤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함께 도망치자고 매달리는 토도마츠의 머리를 상냥히 쓰다듬은 카라마츠가 눈물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쥬시마츠와 눈을 맞췄다.


쥬시마츠, 토도마츠랑 같이 빨리 가. 지금 당장.”

“……아이아이!”

쥬시마츠 형!?”

지그시 눈빛을 교환한 쥬시마츠가 씩씩하게 대답하며 토도마츠를 어깨에 맸다

멀어지는 카라마츠의 품을 향해 버둥거리며 싫다고 우는 토도마츠를 데리고 별궁을 빠져나간 쥬시마츠가 말을 끌고 성을 빠져나갔다

오소마츠와 함께 몰래 성 아래 마을로 나갔을 때 지났던 뒷문을 통과해 저 멀리 숲속으로 사라지는 동생들을 배웅한 카라마츠가 쓴웃음을 흘리고 별궁에 돌아왔다

자신의 동생들까지 개죽음당하게 할 수는 없었다

고향인 푸른 왕국엔 돌아갈 수 없어도,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라면 어디에서도 잘 살 것이라 믿으며 카라마츠가 두 손을 모았다.

 

 

 

멀어지는 레드 버로우를 보며 수십 번 말을 돌리려는 토도마츠를 쥬시마츠가 가로막았다

이대로 카라마츠가 죽을지도 모른다며 우는 토도마츠를 달랜 쥬시마츠가 밝게 웃었다

눈가에 눈물을 매단 채로, 활짝 웃는 쥬시마츠를 토도마츠가 망연히 응시했다.


괜찮아-!! 톳티-! 오소마츠 형아가, 카라마츠 형아를 지켜줄 거야!”

확신에 찬 쥬시마츠의 목소리에 토도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물론 존재했다

토도마츠를 한없이 희망적인 자신의 형에게 할 말을 찾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해야 쥬시마츠의 마음을 돌려 카라마츠에게 갈 수 있을까 헤매는 토도마츠의 귀에 쥬시마츠의 짧은 신음이 닿았다.


!”

저편에서 걸어오는 말 한 마리. 그 위에 탄 이의 얼굴을 확인한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호흡도 잊고 멍청히 그 자리에 섰다.






* 이걸로 준비한 떡밥은 다 뿌렸습니다ㅎㅎ

 다음화를 기대해주세요!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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