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WHITEPINE입니다.


소설글이 아니라 이런 안내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지금 쓰고 있어서 내일 중으로 올릴 생각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어떤 글에서 제 글에 남겨주신 댓글을 제가 삭제했으며, 해당 글은 비공개로 돌렸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남겨주신 글을 보고, 그 글의 내용은 차치하고 댓글의 분위기나 쓰인 단어가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삭제를 하게 되었습니다만,


어떤 글이던 남겨주신 댓글을 삭제한 것은 옳지 않다 생각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블로그는 제가 즐거운 취미생활을 하기 위하여 운영하는 블로그이고,


남겨주시는 댓글은 모두 소중히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댓글을 통한 (속히 말하는) 키배나 분란을 원치 않기에 댓글과 함께 제가 올린 해당 글도 비공개 처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제 블로그에서 재미있게 글을 읽은신 분들의 인상을 찌푸리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남겨주신 댓글에서 말하고자 하셨던 내용은 저도 충분히 이해하였고,


덕분에 제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한 것은 아닌가 하고 되짚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과 다른 의견을 피력해 주신 것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었고, 자유롭게 댓글과 의견을 남겨주시는 것과 제 의견을 올바르게 비판해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댓글을 남겨주시는 다른 분들과 싸움이 되는 댓글은 정말 죄송하지만 피해주셨으면 합니다.

(혹은 저만 볼 수 있게 비밀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남겨주신 댓글을 삭제하게 된 것은 정말 죄송합니다.


제게 더 남겨주시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다른 분들은 볼 수 없게


'비밀글'이나 '방명록'에 비밀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추가로 남기는 댓글은 비밀글로 하게 되면 댓글을 남겨주신 분도 보지 못하게 되어서, 제 댓글은 항상 공개로 올라간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 여러분, 좋은 카라오소의 날입니다.

 원래 잔업이 많아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현실이 너무 빡세서 힐링할 겸 끄적여봤어요ㅎ


* 처음부터 끝까지 키스만하는 카라오소입니다.


* 단편 「시작은 키스부터」, 「키스의 너머에 있는 것은」의 후편같은 단편입니다ㅎ


* 공미포 2,807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응….”

부드럽게 흘린 한숨은 뜨거운 입술에 먹혔다. 

마른 입술에 닿는 감촉에 묘한 그리움을 느끼며 오소마츠가 살포시 눈을 감았다. 

둘만 남은 육둥이 방. 

초록색 소파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아 만화책을 뒤적이던 손을 자연스럽게 카라마츠에게 감았다. 

제 위에 지워진 동생의 체온에 안심하며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욕망에 입맛을 다신 오소마츠가 살짝 입술을 열었다. 

“훗,” 하고 목을 울리며 웃는 카라마츠의 소리에 눈썹을 찡그린 오소마츠가 재촉하듯 카라마츠의 목에 팔을 감아 당겼다.

맞닿은 뜨거운 입술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살덩어리가 불쑥 들어왔다. 

아이스크림을 핥듯이 입술을 맛보고 침입해 들어온 카라마츠의 혀가 느긋하게 움직였다. 

오소마츠의 입안을 확인하듯이 훝고는 물소리를 울리며 오소마츠의 혀에 게걸스럽게 얽혀온다. 

축축하고 미끈거리는 그것에 기뻐하며 오소마츠가 솔직하게 혀를 뻗었다. 

맛을 느끼는 감각 밖에 없는 그것이 상상할 수 없는 쾌락을 불러왔다. 

입안에서 울리는 물소리와 뒤엉킨 혀가 전해주는 희열에 점막이 저린다. 

약한 전기라도 오른 것처럼 아릿한 입안을 크게 훑은 혀와 함께 쪽, 소리를 내며 입술이 살짝 떨어졌다.


“후—.”

입 맞추는 동안 충분하지 않았던 호흡을 크게 들이마신 오소마츠가 고개를 숙여 뜨겁게 달아오른 뺨을 숨겼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 있을 것은 오소마츠는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억지로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게 만든 그날 이후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와 함께 있을 때의 얼굴이 신경에 걸렸다. 

분명 꼴 사나운 표정을 띄우고 있을 것이다. 

새삼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이자, 머리 위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낮게 울리는 연인의 달콤한 부름에 오소마츠가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가득찬 카라마츠의 얼굴을 본 순간, ‘아—.’ 하고 짧은 탄식을 흘렸다. 

“그 얼굴은 반칙이잖아….” 하고 작게 불평을 던지는 오소마츠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띄운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볼을 감쌌다. 

오소마츠가 입고 있는 후드처럼 빨개진 볼이 사랑스럽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을 그대로 얼굴에 피운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어떻게든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것이 귀엽다. 

이대로 귀여운 얼굴을 바라만보고 있어도 충분하지만, 지금은 그 이상을 원한다. 

다시 한번, “오소마츠.” 하고 연인을 부르자, 그제서야 오소마츠가 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맞췄다. 

짙은 눈동자 속에 오직 자신만이 비치고 있는 것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카라마츠가 다시 입술을 내렸다. 

“우믓,” 하고 입술이 닿을 때마다 갸녀린 신음을 흘리는 연인의 사랑스러움에 작게 키들대며 손을 내려 얇은 허리에 얹었다. 

강하게 오소마츠의 허리를 잡아당기며 얼굴을 돌려 입맞춤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빈틈은 용서하지 않겠단 기세로 다가오는 카라마츠의 열기에 오소마츠가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입이 막혀 괴로운 호흡을 어떻게든 코로 이어가며 입안을 헤매는 혀를 받아들였다. 


입술이, 혀가 녹을 것 같다. 

카라마츠에게 닿아있는 모든 부분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에 파르르 몸을 떤 오소마츠가 왈칵 눈물샘을 터뜨리고 나오는 행복을 흘렸다. 

뺨에 올린 손에 축축한 것이 닿아, 눈을 뜬 카라마츠가 놀라 입술을 뗐다. 

촉촉하게 젖은 오소마츠의 눈가를 닦아주며 눈썹을 늘어뜨린 카라마츠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싫었던 것일까, 어디가 아픈 것일까, 자신이 뭔가 했나. 

짐작도 할 수 없어,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자,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여 눈가에 매달려있던 눈물을 털어냈다.


“응.”

대답조차 되지 않는 오소마츠의 한숨에 카라마츠가 어깨에 주고 있던 힘을 뺐다. 

상냥하게 자신을 쓰다듬는 카라마츠의 손바닥에 응석부리듯이 볼을 비빈 오소마츠가 다시 눈을 감았다.

눈물에 젖은 속눈썹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아직 눈꼬리에 남아있는 물기를 입술로 훔치고, 눈꺼풀 위에, 콧등에, 뺨에 입맞춤을 흘렸다. 

얼굴에 닿는 따뜻한 체온에 오소마츠가 킥킥, 잘게 웃음을 떨어뜨렸다. 

곳곳에 쪽쪽, 키스를 퍼부은 후에야 카라마츠의 입술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새부리가 짧게 닿았다 떨어지는 버드키스를 시작으로 점점 입맞춤이 깊어졌다. 

사탕도 먹지 않았는데 입안이 달다. 

치열을 훑는 열덩어리를 마중나가자 격렬하게 얽혀오는 것이 귀여워, “후-.” 하고 웃음기 섞인 숨을 내쉬었다. 


기분이 좋다. 

너무 좋다.

두려울 정도로 좋다.


자신의 입술이 제대로 얼굴에 붙어있는 건가, 의심이 들 정도로 카라마츠의 온기와 닿아있는 부분에선 쾌락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더 깊숙이 들어오는 혀에 몸을 움찔인 순간, 바닥 너머에서 작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낡은 목조 건물은 방음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귓가에 닿는 동생들의 말소리에 오소마츠가 겨우 집 안에 자신과 카라마츠만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무와 공기에 무너진 말소리는 정확하진 않았고, 확실하게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언제 동생 중 하나가 변덕을 부려 위층으로 올라올지도 모른다. 

문을 열고 키스에 열중해 있는 두 형을 본다면 동생은 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명 기겁할 것이다. 

귓가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신경을 끈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꽤 즐거워 보인다. 좀 더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커다란 손이 귀를 막았다. 

외부의 소리가 차단되어 몸 속에서 새어나오는 소리가 커졌다. 

뜨거운 살덩이가 얽히고 설켜 내는 물소리가 오소마츠의 고막을 지분거렸다. 

잘게 몸을 떨며 신음을 삼키는 오소마츠 위로 무겁게 몸을 덧씌운 카라마츠가 누가 볼세라 오소마츠를 제 품 속으로 숨겼다. 

이쪽에 집중해라, 하고 나무라듯이 깊어진 입맞춤에 오소마츠의 머리가 소파 위에 얹혔다. 

그를 카라마츠가 뒤따라 더 깊숙이 제 혀를 집어넣었다. 

완전히 뒤로 젖힌 오소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긴 카라마츠가 살며시 숨 쉴 틈을 만들어주었다.


“흐햣,”

숨을 내뱉자마자 다시 들이마시기도 전에 카라마츠의 입술이 다가왔다.

뜨거운 입술은 분명 두 사람의 것인데 마치 질척하게 녹아 하나가 된 것 같다. 

여전히 아랫층에는 동생들이 있는데도,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밀어낼 수 없었다.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동생’의 것이 아닌 ‘연인’의 것이라는 사실에 열이 치솟는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숨에 손끝이 떨렸다. 

저를 감싸 안은 듬직한 등에 손을 걸자, 움찔거리는 단단한 근육이 손에 잡혔다.


‘견갑골….’

오소마츠의 허리를 쓸어올리며 옷 속으로 슥- 들어온 손을 따라 등 위로 불룩 튀어나온 뼈가 삐걱인다. 

꿈틀거리는 날개의 흔적 위에 손을 얹고 손바닥 너머로 스며오는 카라마츠의 체온에 흥분이 치밀었다. 

두근대는 심장소리마저 하나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본래 하나로 태어났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을 흘리며 살포시 떨어진 입술 사이로 달아오른 숨을 불어넣었다.


“…오소마츠.”

“응…, 호텔, 갈까?”

온전히 저를 담은 뜨거운 눈동자로, 애달프게 속삭이는 연인의 목소리에 척추가 떨렸다. 

카라마츠의 어깨에 붉은 얼굴을 숨긴 오소마츠의 나직히 내려앉은 목소리에도 무시할 수 없는 열이 있었다. 

연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를 질탕히 치켜올린 카라마츠가 “아….” 하고 연인의 귓가에 가르랑거렸다.





* 그럼 저는 이만~ㅎ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8화입니다!


* 주의) 전투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잔인한 표현이 다소 있습니다.


* 공미포 12,423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빗발치는 화살을 진열을 맞춰 방패를 들어 막아내고, 견제 사격을 한다.

동의 제국과 붉은 왕국, 두 나라에서 사용하는 석궁의 사정거리는 거의 비슷

위력 또한 대동소이했다

동쪽 소국들을 차례로 정복한 제국은 붉은 왕국과 깊은 교류를 하던 철의 나라를 집어삼켰다

철의 왕국에는 일류로 손꼽히는 장인들이 많았고, 철의 왕국을 정벌함과 동시에 제국의 무기는 붉은 왕국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정도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

보병이 들고 있는 창과 검, 그리고 갑주까지

모든 장비, 무기가 비슷한 탓에 전쟁은 한쪽으로 크게 기울지 않고 지지부진한 소모전을 이어갔다

대체 전쟁이 언제 끝나는지, 누구의 승리로 끝날지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의 일

피와 쇠와 비명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는 또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2.

 

한껏 따뜻해진 날씨

겨우내 불이 피워져 있던 거실 벽난로는 텅 비어 있다

햇살을 받아 붉은색의 꽃을 피운 화단을 멍청히 응시했다

오소마츠가 전장으로 떠나고 벌써 3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전장에선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두 손을 모았다


제발, 오소마츠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하루 중에도 수십 번, 오소마츠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해져 호흡이 거칠어지고, 곧 괜찮을 것이라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신에게 기도하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이렇지 않았는데

처음 만나고 오소마츠가 다시 전장에 갔을 때는, 이렇게 걱정하지 않았다

불안하지 않았다

오소마츠를 이토록 그리워하지 않았다


가슴 깊숙이에 커다란 가시가 박힌 것처럼 시시때때로 심장이 아프다

오소마츠에 대한 것을 잠시라고 잊어보려고 해도 가슴에 박힌 가시가 그것을 방해한다

심장이 뛸 때마다, 가시가 마음을 찌른다

이 아픔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지만,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가시는 오소마츠가 아니면 뺄 수 없을 것 같다.


카라마츠 형아!!”

두웅-!! 하고 커다란 착지음을 내며 쥬시마츠가 훌쩍 거실 안으로 점프해 들어왔다

활짝 웃으며 손에 든 물 한 컵을 입에 털어 넣더니 귀와 머리에서 물줄기를 뿜어냈다

-, 굉장해, 쥬시마츠

솔직히 놀라며 손뼉을 쳤지만, 쥬시마츠의 얼굴이 애처롭게 일그러졌다

—, 그래. 알고 있어, 쥬시마츠

상냥한 너는 나를 웃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거지

하지만, 미안해

오소마츠가 전장으로 나간 뒤로, 제대로 미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를 걱정하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를 안심시켜주려고 억지로 입술을 끌어올리면 오소마츠의 미소가 떠오른다

계속 가까이에 있었던 그 미소가 더는 옆에 없다고 생각하면 얼굴 근육이 딱딱해져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카라마츠 형아….” 하고 풀죽은 쥬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미안하다, 쥬시마츠.” 하고 사과하자, 쥬시마츠가 붕붕 고개를 힘껏 저으며 다시 밝은 미소를 돌려주었다

씩씩한 쥬시마츠, 나의 자랑스러운 동생

힘차게허슬허슬~ 머슬머슬~!!” 하고 기합을 주며 다른 묘기를 보여주려는 쥬시마츠 뒤로 거실로 뛰어든 토도마츠가 보였다.


카라ㅁ, 공주님!! 큰일 났어!!”

토도마츠? 무슨 일이야?”

사색이 돼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토도마츠를 보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뛰어왔는지 헉헉, 거친 숨을 내뱉으며 울상을 지은 토도마츠가 다가왔다.


푸른 왕국에서 지원해주던 보급이 끊겼대!!”

?”

전장에 보내질 보급이, 없대!!”

“….”

놀라 입이 굳어버렸다. 큰 눈동자를 일그러뜨리고 외친 토도마츠의 말이 머릿속을 배회했다


보급이 끊겼다? 전장에 보내질 보급이…? 

그럼, 오소마츠는?

그럼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을 오소마츠는?


군사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보급이라는 것은 오소마츠에게 들어 알고 있다

적과 싸우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그 힘은 당연히 보급이 충분해야 발휘될 수 있다

전장에는 수만의 병사들과 오소마츠가 있다. 그런데 어째서 보급이.


편지는?”

오지 않았어.”

푸른 왕국의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가 있냐 묻자, 토도마츠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푸른 왕국과 붉은 왕국은 동맹국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동맹을 더 돈독히 만들기 위해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 아니었나?

대체 왜 푸른 왕국은 멋대로 보급을 끊어버린 건가…. 

모자란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올 리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오소마츠가 위험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본심에 토도마츠가 손을 휘두르며 황당하다는 얼굴로 외쳤다.


지금 그걸 걱정할 때야!?”

토도마츠의 말은 지극히 올바른 것이었지만, 이미 내 머릿속은 오소마츠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3.

 

급히 소집된 관리들과 귀족들이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살폈다

푸른 왕국의 보급 중단으로 열린 긴급 어전 회의

왕은 약속된 날짜가 지났는데도 푸른 왕국에서 보급이 올라오지 않았다는 보고에 쾅! 왕좌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응당 보급이 올라와야 하거늘!!”

불과 같은 왕의 분노에 보고서를 읽던 관리가 어깨를 움츠렸다.

함께 보고를 듣던 귀족들과 관리들도 매섭게 분노한 것은 당연했다.


전시에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인지!”

푸른 왕국은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인가!!”

폐하, 지금 당장 푸른 왕국을 치소서!”

감정적으로 외치는 귀족들의 발언에 이치에 밝은 관리들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동의 제국과 전쟁이 한창인 이 시점에 푸른 왕국까지 치는 것은 최악의 수였다

치를 떨며 당장이라도 푸른 왕국에 진격할 것처럼 고함치는 귀족들을 뒤로하고 지혜로운 관리 하나가 왕에게 간언했다.


폐하, 무슨 사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먼저 사신을 보내 일의 정황을 알아본 후, 판단하소서.”

늙은 관리의 말에 왕이 분노를 가라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발이 빠른 자를 푸른 왕국에 보내라 명한 왕이 귀족들을 내려다보며 명했다.


부족한 보급은 국고와 그대들의 재산에서 충당하겠다. 그대들에겐 당연히 필요 이상으로 창고에 쌓아둔 곡식이 있을 터. 나라의 위급 상황에 이 명을 반대할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귀족들과 국고에 남아있는 곡식의 양을 파악하고 전장에 보내라! 절대로 전장의 병사가 굶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또한, 서쪽의 소국에 서신을 보내 도움을 요청한다.”

자신들의 재산을 내놓으라는 왕의 명령에 당연히 귀족들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왕명을 반대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귀족들이 고개를 숙이고, 왕의 명령은 일초도 지체되지 않고 우수한 관리들에 의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푸른 왕국에 보낸 사신은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말을 바삐 달린다면 푸른 왕국에 3일이면 도달할 수 있었다

푸른 왕국에 들렀다가 돌아와도 충분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푸른 왕국에선 그 어떤 소식도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히 귀족들은 더욱 분노해 푸른 왕국을 처단하자며 목소리를 높였고, 관리들도 고개를 저으며 귀족들을 반대하지 않았다

푸른 왕국을 향한 분노는 푸른 왕국 출신인 제 2 왕비와 카라 공주에게 퍼졌다

특히 카라 공주가 푸른 왕국이 보낸 첩자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귀족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이 솟아 있었다

귀족들의 성화와 관리들의 침묵 속에서 왕의 한마디에 동맹이었던 붉은 왕국과 푸른 왕국이 적이 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순간, 어전 회의가 열리고 있는 방 안으로 뛰어들어온 병사가 전장의 소식을 알렸다.

 

 

 

서둘러 별궁으로 발을 옮긴 마츠요가 카라마츠를 보자마자 두 손을 맞잡았다.


일이 이상하게 되었구나….”

푸른 왕국의 보급 중단으로 마츠요와 카라마츠를 감시하는 눈이 생겼다

오소마츠의 명령으로 적은 수의 하녀와 시종들만이 드나들던 별궁에 낯선 하녀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카라마츠가 어디에 있건 카라마츠를 주시하는 하녀들의 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것은 마츠요도 마찬가지였다

카라마츠는 여전히 푸른 왕국의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에 초조해하고 있었다

왜 보급이 끊긴 것인지, 카라마츠도 알지 못했다.

카라마츠의 마음에 가득한 초조와 불안과 걱정은 자신과 동생들과 오소마츠를 향해 있었다

마츠요의 얼굴에 맺힌 깊은 주름에 카라마츠는 죄송스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짙은 눈썹을 늘어뜨리고 괴로운 얼굴로 마츠요에게 사죄하는 카라마츠를 마츠요가 조용히 보듬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가, 절망하는 카라마츠와 마츠요 앞에 마츠요가 부리는 시녀 하나가 뛰어왔다.


왕비님! 전장에서 방금 막 병사가…!”

무슨 일이니.”

벌벌 떨며 불안하게 눈동자를 흔드는 시녀에게 마츠요가 침착하게 물었다

초연히 서 있는 마츠요가 시녀가 전하는 소식에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에드윈 왕자님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입니다!!!”

 

쓰러지는 마츠요를 카라마츠가 급히 지탱했다

시녀들도 달려와 마츠요를 부축해 거실 소파에 마츠요를 눕혔다

시녀들의 간호를 받으며 오소마츠의 이름을 연호하는 마츠요를 보며, 카라마츠가 망연히 허공을 응시했다.

 

 

 

 

 

4.

 

어떻게든 전선을 밀고 들어오려는 적군을 막아내고 막사로 돌아오자, 이치마츠가 울며 내게 뛰어왔다.


쵸로마, 츠 형…, 흐윽….”

이치마츠?!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아냐, 내가 아니, …. 오소마츠 형이…!”

….”

뚝뚝 커다란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이치마츠는 군의관에게 맡기고, 오소마츠 형의 막사로 뛰어들어갔다.


쵸로마츠….”

적기사단과 군의관에게 둘러싸인 오소마츠 형이 나를 보자마자 쓴웃음을 지었다

군의관의 손에 들려있는 오소마츠 형의 왼팔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깊게 파인 상처 사이로 끊임없이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고 오소마츠 형의 갑옷은 온통 피로 젖어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심각한 상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갈며 오소마츠 형에게 다가가이 멍청아!!” 하고 외쳤다. 치솟는 분노로 눈앞이 빨갛다.


이 멍청한 장남 새끼갓!!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크게 다친 거야!! 절대 죽지 말자고 다짐한 거 아니었어!?”

피가 역류해 이성이 부서졌다. 격분해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거르지 않고 오소마츠 형에게 쏟아부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소마츠 형을 잃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다

한참을 오소마츠 형에게 폭언 아닌 폭언을 퍼붓고, 그래도 분이 가시지 않아 씩씩대고 있는 내게 적기사단 중 하나가 사정을 설명했다

적군의 화살에 이치마츠가 타고 있던 말이 당했다

낙마해 그대로 적군의 일격에 죽을 위기였던 이치마츠를 구하려다 오소마츠 형이 다치게 된 거라고

기사의 설명에 분노로 뜨거워진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야가 어지럽다

오소마츠 형다운 이유에 허탈한 웃음을 흘리면서도 분노를 사그라지지 않았다.


다치지 말고 구하라고.”
차갑게 내뱉은 말에 오소마츠 형이 멋쩍게 웃으며그러게.” 하고 가볍게 맞장구쳤다.

헤실- 웃는 얼굴에 더 열이 받아뭐가 좋다고 웃어!?” 하고 화를 냈다.


쵸로마츠….”

나직이 오소마츠 형이 나를 달래려는 순간, 막사 안으로 들어온 이치마츠가 눈물로 너덜너덜해진 얼굴을 하고 오소마츠 형에게 매달렸다.


미안해, 오소마츠 형. 나 때문에……. 내가, 내가 쓰레기라서, 오소마츠 형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수도 없이미안해라는 말을 반복하며 흐느끼는 이치마츠를 오소마츠 형이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그런 말 하지 마, 이치마츄~. 횽아는 이치마츠가 무사해서 기뻐.”

흐으윽~~!!”

오소마츠 형의 다정한 말에 이치마츠가 더 크게 울부짖었다

옆에서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엉망으로 우는 이치마츠를 오소마츠 형이 한 팔로 안고 토닥였다

이치마츠의 흐느낌이 서서히 잦아들 무렵, 오소마츠 형이 보급의 상태를 물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며칠 전부터 들어오는 보급의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동안 비축해둔 것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한계가 멀지 않았다.

큰 한숨을 내쉬고 여전히 보급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렸다

붕대를 힘껏 감는 군의관의 손에 맞춰 오소마츠 형이 인상을 찡그렸다

하얀 붕대가 단단히 감긴 팔을 간신히 내린 오소마츠 형이 제 허리에 매달려있는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치마츠, 레드 버로우에 다녀와.”

“…?”

가서 왜 보급이 줄어든 건지 알아보고, 확보할 수 있는 대로 식량을 끌어모아서 전장으로 가지고 와줘.”

, 싫어!! 오소마츠 형, 다쳤잖아!”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이치마츠를 오소마츠 형이 쓴웃음으로 응시했다. “

이치마츄~.” 하고 오소마츠 형의 다정한 목소리가 이치마츠를 어루만졌다.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건, 이치마츠뿐이야. 부탁할게, 이치마츠. 그리고 엄마도 걱정하고 있을테고.”

…!”

오소마츠 형의 말에 이치마츠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바로 옆에 있는 우리에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게오소마츠 형은, 치사해….” 하고 말을 흐린 이치마츠가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준비를 하겠다며 이치마츠가 막사 밖으로 나가자마자, 우리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던 군의관이 오소마츠 형 앞으로 걸어왔다.


응급처치는 했지만, 상처가 깊습니다. 에드윈 왕자님도 레드 버로우에 가셔서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단호한 군의관에 말의 오소마츠 형이 눈썹을 찌푸리며.” 하고 대답했다

꾸벅 허리를 숙이고 막사를 나가는 군의관을 배웅하고 오소마츠 형을 가만히 응시했다

군의관이 저렇게 말할 정도의 부상. 당장 본성으로 돌아가 유능한 주치의에게 치료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전장에 남으려고 하는 오소마츠 형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어쩌려고.”

차가운 목소리에 오소마츠 형이 멋쩍게 웃으며그렇게 화내지 마.”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한쪽 팔을 다쳤다

방패를 들 수 없는 상태로 전장에 나갔다간 순식간에 적의 칼에 뚫리고 말 것이다

고개를 내리고 침묵을 유지하는 모습이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아, 치솟는 짜증을 억누르고 오소마츠 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첩보가 들어왔어. 가까운 시일 내에 대규모 공격이 들어올 거라고. 그때, 전 병력을 지휘하는 내가 없어 봐. 어떻게 될 지는 불 보듯 뻔하지. 적어도, 그걸 막아내고 나서 레드 버로우로 갈 거야.”

고개를 들어 올린 오소마츠 형의 단호한 눈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 망할 형은 이미 결단을 내렸다

고집불통인 이 바보 장남의 결정을 내가 말릴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 대규모 공격이 온다면 오소마츠 형이 필요하다

내가 오소마츠 형을 대신할 수는 없다

왜 하필 이럴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부글부글 짜증이 몰려온다

결국, 화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럴 때 다치냐며, 솟구치는 짜증을 오소마츠 형에게 쏟아부었다

진지에 있는 모든 약을 소진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소마츠 형의 상처를 더 심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오소마츠 형에게 제발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막사를 나왔다.

 

 

 

 

 

5.

 

나를 앞질러간 병사가 레드 버로우에 오소마츠 형의 부상 소식을 알리고 3일 후, 레드 버로우에 발을 들였다

이미 성안은 오소마츠 형의 부상 소식으로 떠들썩했고, 먼저 왕에게 달려가 전장의 근황과 보급 문제를 보고했다

이미 국고와 귀족의 재산으로 모아둔 보급을 준비해두었으니 가져가라는 왕의 말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집무실을 나왔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엄마의 시녀가 왕비님은 별궁에 있다는 말을 전했다

오소마츠 형이 다쳤단 소식으로 분명 엄마도 많이 놀랐겠지.

나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전장에서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을 오소마츠 형을 떠올리고, 기운을 내 별궁으로 향했다

지금 내게 슬퍼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빨리 엄마에게 오소마츠 형이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보급을 전장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

오소마츠 형이 나를 믿는다고 했으니까!

 

 

별궁에 도착하자마자 급히 뛰어나와 나를 맞이한 엄마가 불안한 얼굴로 내 손을 움켜쥐었다.


이치마츠, 오소마츠는…, 괜찮지?”

. 괜찮아요. 큰 부상 아니야.”

그래, 그렇구나. …. 우리 이치마츠는 엄마한테 거짓말 안 하니까.”

당장 죽을 상처는 아니니까, 거짓말한 게 아니라고 스스로 타이르며, 큰 한숨과 함께 쓰러질 듯이 주저앉는 엄마를 지탱했다

서둘러 다가온 시종들과 함께 안심해 잠든 엄마를 침실로 옮겨 눕히고 거실로 나와 바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이곳에서 1 1초도 낭비할 수는 없다

보급이 준비되었다는 시종의 말에 엄마의 시녀에게 말을 전하고 별궁을 나오려다 내 팔을 붙드는 힘에 고개를 돌렸다

내 팔을 강하게 잡고 눈썹을 한껏 찌푸린 카라 공주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실은, 심각한 거 아닌가?”

누구를 묻는 거냐는 질문은 할 필요 없었다

내 팔을 붙잡은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거짓말이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을 정도로 카라 공주가 내뱉은 말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팔을 흔들어 공주의 손을 털어내고 눈을 돌렸다.


괜찮아, 정말로.”

내 눈을 보면서 대답해줘.”

“….”

이치마츠.”

“…하아~.”

내게 박힌 공주의 눈길이 따갑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공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대답하려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이 고릴라 공주는 거짓말임을 알아챌 것이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양손을 들어 올려 항복했다

포기다, 포기.

아직도 나를 빤히 바라보는 카라 공주에게서 슬쩍 얼굴을 돌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는지 카라 공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지더니 더 강하게 내 팔을 붙잡았다.


나도 데려가!!”

?!”

공주가 내뱉은 말에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리며 외쳤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내뱉냐는 눈으로 쳐다보자, 공주가 다시 크게 외쳤다.


나도, 전장에 가겠다!!”

공주의 외침에 나를 배웅하러 나왔던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달려왔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카라 형아, 안됨닷!!”

황당해하며 카라 공주의 등을 때리는 토도마츠와 눈을 크게 뜨고 붕붕 공기가 울리도록 고개를 젓는 쥬시마츠의 만류에도 공주의 결심은 굳건했다.


부탁한다, 이치마츠.”

힘있게 빛나며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카라 공주를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 아래 반짝이는 눈을 마주하자 문득, 전장에 있는 오소마츠 형이 떠올랐다

공주와 함께 가면…, 조금은 힘이 날까….


“…알겠어.”

바라던 대답에 공주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6.

 

토도마츠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카라마츠는 새로 징집된 병사 중 한 명이 되었다

이치마츠의 부관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그 방법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아직 얼굴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카라마츠는 엄연한 푸른 왕국의 공주.

섣불리 얼굴을 드러냈다가 후일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평민 출신으로 신분을 숨기고, ‘(Carl)’이라는 가명을 써, 일반 병사로서 이치마츠와 함께 전장으로 향했다

카라마츠를 감시하던 눈을 속이기 위해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의 대역을 자진했다

똑같은 얼굴이라 다행이라고, 이때만큼 감사히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쥬시마츠까지 나서서 카라마츠의 출진을 지원하자, 토도마츠도 할 수 없이 협력을 약속했다.

카라마츠를 은근히 지켜보던 눈을 최대한 돌리고, 푸른 왕국의 공주님이봄 감기에 걸려 침실에서 나올 수 없다는 소문을 흘렸다.

적어도 카라마츠가 전장에 가 있는 동안은 카라마츠의 부재를 숨길 수 있을 터였다.

이치마츠와 함께 전장으로 가려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고 눈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최대 한 달, 그 안에 돌아오라는 말을 전한 토도마츠가 동생의 얼굴로 돌아가 눈가를 촉촉하게 적셨다.


! 살아서 돌아와!! 다치지 말고! 망할 왕자 데리고 돌아와!!”

말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토도마츠의 당부에 카라마츠가 싱긋- 부드러운 미소를 흘렸다

카라마츠 자신도 전장에서 죽을 생각은 없다

반드시 오소마츠를 데리고 돌아오겠다 약속하고, 자신을 대신해 푸른 드레스를 입은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와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이치마츠를 따라 새로운 병사들이 수도 레드 버로우를 떠났다

점점 멀어지는 레드 버로우를 보며 카라마츠가 숨을 들이마시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오소마츠의 모습을 쫓았다.

 

 

 

해일이 밀려오듯이 들판을 가득 채운 검은 무리가 국경을 향해 밀려왔다

검은 갑옷과 투구를 쓴 동의 제국의 병사들이 땅을 울리며 커다란 함성과 함께 쏟아져 왔다.

진열을 갖춘 붉은 왕국의 병사들과 정면으로 충돌한 적군의 날카로운 퍼런 칼날과 창이 갑옷 사이를 꿰뚫는다.

비명과 피비린내, 칼날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이명처럼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지옥 속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칼날을 쳐낸 카라마츠가 어깨에 멘 동료를 끌어당겼다

동료의 허리에서 붉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 이미 선혈로 짓무른 땅을 적셨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반드시 자기 옆에 붙어있으라던 이치마츠도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오로지 적. 카라마츠의 외침에 적군에게 둘러싸여 있던 아군이 카라마츠에게 모였다

모인 것은 열댓 명 남짓.

게다가 절반이 부상병이다

떼처럼 몰려오는 적군과 대등하게 싸운 카라마츠의 부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뛰어난 실력 때문에 적군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양옆에 있던 아군들이 속속히 적군의 칼날에 쓰러지는 와중에도 카라마츠의 부대만은 적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결과 카라마츠의 부대만이 적진 한가운데에 남아 고립되었다

아직 오소마츠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이치마츠와 함께 전장에 오자마자 시작된 전투에 부대 편성조차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흩날리는 먼지를 헤치고 부상병을 떠안은 채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오로지 그 생각으로 적군을 베어내고, 또 베어냈다

곡식 창고에 달려드는 굶주린 메뚜기떼처럼 카라마츠를 향해 뛰어오는 적군은 끝이 없었다

서로 등을 맞대고 적군을 막아내는 동료들도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순식간에 바로 옆에 살아 숨 쉬고 있던 동료가 적군 사이에서 튀어나온 창끝에 꿰뚫려 마지막 한숨을 내뱉었다

거칠어진 숨소리, 옆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신음, 땅을 박차고 뛰어오는 적군의 발소리

그 모든 것이 한데 모여 검은 망토를 두른 사신의 모습으로 변했다

커다란 낫을 들어 카라마츠의 목에 겨눈 사신이 필사의 저항도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낫을 높이 쳐들었다

사신의 낫이 날아오는 적군의 칼날과 겹쳐졌다

자신의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적군의 칼을 막아내며 카라마츠가 가장 만나고 싶은 이의 이름을 부르짖은 순간, 커다란 함성이 카라마츠와 동료들을 감쌌다.

 

 

말발굽이 힘차게 땅을 박차고 뛰어오며 땅을 울렸다

차락차락, 철 갑옷이 부딪치는 소리와 동시에 한 무리의 기마병이 카라마츠와 동료들을 향해 뛰어왔다

할버드(도끼 모양의 창)를 휘둘러 적군의 머리를 쪼갠 붉은 갑옷의 기사들이 아군을 둘러쌌다

붉은 왕국 제일의 실력가. 에드윈 왕자의 직속 기사단인 적기사단

그들의 붉은 갑옷을 본 동료들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이제 살았다!, 하고 외치는 동료들의 환호 속에서 카라마츠의 눈이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한 기사에게 꽂혔다

투구를 깊이 눌러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자신을 응시하는 깊은 눈동자만큼은 모를 수 없었다.

 

, 오소마츠다.’

 

커다란 방패를 들고 뒤따르는 기사와 함께 카라마츠에게 뛰어온 오소마츠가 손을 내렸다

말을 모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뻗은 오소마츠의 손을 카라마츠가 강하게 붙잡았다

그대로 카라마츠를 말 위로 끌어 올린 오소마츠가 주변을 확인했다

오소마츠의 기사들도 부상병들과 아군을 말에 태운 뒤였다

모든 아군이 말 위에 올라탄 것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후퇴 신호를 보냈다

앞길을 막는 적군과 뒤쫓으려는 적군을 차례로 쳐내며 적기사단이 아군의 진영으로 뛰었다

적기사단의 칼날에 쓰러진 적군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적기사단을 붙잡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오소마츠와 적기사단이 적군 가운데 고립된 아군을 구한 것을 끝으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막을 내렸다

동의 제국이 계획한 대규모 공격은 오소마츠의 지휘 아래 철저하게 무너졌다

수를 셀 수 없는 병사들이 전장에 혼백을 남겼다


피로 질척거리는 땅, 쌓여있는 병사의 시체들이 남은 전장에 침묵이 찾아왔다.

 

 

 

 

 

7.

 

말에서 내리자마자 카라마츠를 끌고 자신의 막사로 들어온 오소마츠가 거칠게 투구를 벗어 던졌다

, 하고 땅에 부딪힌 투구가 울리는 소리에 카라마츠가 숨을 집어삼켰다

카라마츠에게서 등을 돌리고 선 오소마츠의 어깨가 거친 숨소리에 맞춰 흔들렸다.


오소ㅁ,”

무슨 생각이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길 왔어?”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덮어씌운 오소마츠의 차가운 어조에 카라마츠가 허공에 뻗은 손을 집어넣었다

카라마츠를 응시하는 오소마츠의 눈동자에 분노가 일렁였다

머릿속이 뜨거워져 제대로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처음 본 오소마츠의 진정한 분노에 카라마츠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하아-, 하고 뜨거운 숨을 내뱉은 오소마츠가 눈가에 차오르는 열기에 입술을 깨물었다


잃어버릴 뻔했다

카라마츠를, 영영

이 잔인한 전장에서, 사람의 목숨 하나 너무나 가볍게 집어삼키는 이 차가운 전장에서, 카라마츠를 잃을 뻔했다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면, 오소마츠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카라마츠를

하루가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병사들을 떠올린 오소마츠가 이를 갈았다

자신의 최측근인 적기사단조차 전장에 서린 사신에게 목숨을 갉아 먹혔다

쌓여있는 시체들의 산에서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병사들이 대체 몇이던가

하마터면, 카라마츠도 그 속에, 수습조차 하지 못한 시체들의 산 속에 묻힐 뻔했다는 사실이 오소마츠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분노로 눈앞이 새빨갰다

사람이 이 정도로 화낼 수 있구나, 하고 머리 한쪽의 냉정한 자신이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머릿속이 하얗게 될 때까지 분노한 적이 있었나

손톱이 박히도록 강하게 쥔 주먹을 간이 테이블에 내리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분노에 휩쓸린 뇌는 단단한 나무와 부딪쳐 욱신거리는 감각조차 느끼지 못했다

오소마츠의 떨리는 목소리가 바닥에 가라앉았다.


죽을 뻔했어. 알고 있어?”

“….”

왜 여기 온 거야? 무슨 생각? 나나 쵸로마츠나 이치마츠가 멀쩡히 돌아다니니까, 전쟁이 쉬워 보였어? 그래서 온 거?”

“….”

무슨 생각으로 온 거냐고!!”

네가!! 오소마츠가, 다쳤다고 하니까!!!”

대답을 재촉하는 오소마츠의 외침에 닫고 있던 입을 연 카라마츠가 분통을 터뜨렸다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외쳤다

목소리는 말을 이어갈수록 격앙된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기다렸다!! 기다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빌면서! 몇 번이고 기도하면서!! 그런데, 네가 다쳤다는 소식이 전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네가, 네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오소마츠가 다쳤는데, 그 옆에 있을 수 없는 게 싫었다!!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으면서!!”

“….”

눈물을 뚝뚝 흘리며 외치는 카라마츠를 보며 이번엔 오소마츠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볼을 적시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먹먹하게 폐를 조이는 숨을 몰아 내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눈썹을 늘어뜨렸다.


, 괜찮은 건가…? 심한 건가? 아프지 않아? 오소마츠.”

조금 전 그렇게 흥분해 목소리를 높였으면서, 애달픈 목소리로 자신을 걱정하는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깊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올렸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분노는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울고 싶은 기분을 어떻게든 억누르고 눈을 감은 오소마츠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릎을 굽혀 쪼그린 오소마츠를 보며 당황해오소마츠!? 어디 아픈 건가!?” 하고 걱정해 다가오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은 오소마츠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공주님. 지금, 푸른 왕국 때문에 보급이 끊긴 건 알고 있어?”

“…알고 있다.”

대뜸 묻는 오소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똑바로 카라마츠의 눈을 응시한 오소마츠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것 때문에 왕국이 분노하고 있는 건?”

“…알고 있다.”

여차하면 푸른 왕국과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건?”

“….”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만약의 가능성을 내뱉은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대답을 멈췄다

정적 속에서 제 손을 굳게 잡은 오소마츠의 손을 내려다본 카라마츠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알고, 있다.”

카라마츠의 대답에 오소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카라마츠의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얽었다

깍지 낀 손을 강하게 움켜쥔 오소마츠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런데 왜, 여기 온 거야?”

“….”

잔잔히 낮게 울리는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어쩐지 간지러웠다.

귓가에 울리는 오소마츠의 짙은 목소리를 흔들어 털어낸 카라마츠가 대답을 망설이며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사방이 막힌 닫힌 천막 안에서 카라마츠의 시선이 머물 곳은 없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숨기고 방황하는 카라마츠의 시선을 조용히 오소마츠가 이끌었다

손을 이은 채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오소마츠가 제 손을 놓아줄 리 없었다

대답을 미루며 한참을 침묵한 카라마츠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 니까.”

카라마츠의 대답에 오소마츠가 빙그레-, 잔잔한 미소를 띄웠다

기대했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이걸로 충분하다.

적어도, 카라마츠가 조국인 푸른 왕국보다, 친구인 자신을 우선해주었다는 것에 만족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은 채 몸을 일으켰다

오소마츠를 따라 무릎을 핀 카라마츠를 보며 살짝 눈썹을 찡긋거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우왓!” 하고 한심한 비명을 흘리며 팔 안에 들어온 카라마츠를 있는 힘껏 껴안은 오소마츠가하아~.”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갑옷이 막고 있는데도, 철갑 너머 카라마츠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품에 안은 카라마츠의 체온에 이로 말할 수 없는 평온을 느끼며 오소마츠가 두 눈을 감았다.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카라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속삭이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두근대는 심장 소리가 오소마츠에게 들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크다

꼭 금방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에 안달하며 카라마츠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의 팔이, 강하게 자신을 안고 있는 것에 안심하며 눈을 감았다

오소마츠가 살아있어 다행이다, 고 카라마츠 역시 오소마츠와 같은 것을 생각하며 오소마츠의 등에 팔을 감았다.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이치마츠가 펄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일어나지도 못하는 이치마츠를 끌어올려 억지로 세운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었다

정작 카라마츠를 전장으로 데려온 것은 자신인데도 일절 한마디 하지 않는 쵸로마츠를 이치마츠가 매달려 말렸다

겨우 쵸로마츠의 잔소리가 멎어 들었을 때, 이치마츠가 쭈뼛거리며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오소마츠 형, , 미안해….”

자기 옆에 카라마츠를 붙여 놓는다면 큰일은 없겠다고 안이하게 생각한 자신을 비난하며 사과하는 이치마츠의 머리를 오소마츠가 크게 쓰다듬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결국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며 허탈하게 웃은 오소마츠가됐어, 이제.” 하고 이치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통- 쳤다.

 

 

제국의 대대적인 공격이 실패한 후, 제국의 공격은 소극적으로 변했다

간헐적인 도발이 들어올 뿐, 본격적인 병사들의 진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첩자도 앞으로 큰 공격은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 보고했다

상처가 완화될 때까지 카라마츠와 함께 막사에 반강제로 가둬놓은 쵸로마츠가 첩자의 보고를 정리해 오소마츠에게 건넸다.


당분간은 우리끼리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갔다 와.”

보고서를 훑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단호히 말했다

- 시선을 올린 오소마츠가 장난스럽게 웃으며에이~, 그런 말 하지 말구~, 쵸로씌.” 하고 대답하자마자 쵸로마츠의 매서운 주먹이 오소마츠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아파!! 환자한테 손 올렸어요, 이 사람!?”

닥치고, 가서 제대로 치료 받고 와. 이 바보 고릴라 공주도 놓고 오고!!”

.”

여전히 붕대로 돌돌 말린 팔을 가리키며 화를 낸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시선을 옮기며 외쳤다

갑자기 지명된 것에 놀란 카라마츠가 눈을 깜빡이며 쵸로마츠의 손가락을 따라 오소마츠의 왼팔로 눈을 돌렸다

줄곧 옷에 가려져 있어 눈치채지 못했지만, 오소마츠의 팔에 감긴 붕대가 노랬다

분명 하얀색이어야 할 그것은 상처에서 흘러내진 진물을 듬뿍 머금은 채로 굳어, 뻣뻣하고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소매를 내려 붕대를 감춘 오소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쵸로마츠를 응시했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사이에서 무언의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몇 분간의 침묵을 끝내고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오소마츠였다.


-겠어! 알겠다구~.”

두 손을 들어 항복 표시를 한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씩-, 장난스럽게 웃었다.


, 부탁해. 쵸로마츠.”

맡겨둬, 오소마츠.”

 

3일 후, 준비를 마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가 나란히 레드 버로우를 향해 말을 달렸다.






* 공주라고 가만히 앉아서 왕자님이 무사히 오길 기다리는 건 싫어서, 행동파 카라마츠가 나왔습니다ㅎㅎ


* 이번 화를 쓰면서 깨달았는데, 저번 화에서 끊기 신공을 발휘해 오소마츠가 다쳤단 부분에서 끊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소설을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그런 잔인한 일(?)을 할 수는 없죠ㅎㅎ


* 저번 화에서 말하는 걸 잊었는데, 6화랑 7화에 제가 떡밥을 좀 뿌려두었습니다. 

  무슨 떡밥인지는 비밀입니다ㅎ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잔업하다 마무리해서 올립니다ㅎ


* 비상금전쟁의 마법사AU 입니다ㅎ


* 공미포 13,722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4. 거짓말 (카라오소)   하늘밤 님 신청 키워드.



1.

 

푸른 비닐에 덮인 용이 하늘 위 구름에서 튀어나와뀨이-!” 하고 울었다

조종간을 설치해 개조한 빗자루에 탄 남자가 용의 부름에 후후-, 웃음을 흘렸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구름 사이를 오가며 즐겁게 비행을 하던 용이 급히 고도를 낮춰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애정을 숨기지 않고 뀨이, 뀨이 울어대며 남자의 볼에 얼굴을 비비는 용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남자가 제 무릎 위에 용을 앉혔다

구름 위에서 놀아 지쳤는지 용은 금세 색색 규칙적인 숨을 내쉬며 잠들었다

용이 깨지 않도록 빗자루의 속도를 낮춰 부드럽게 비행하며 용의 등을 상냥하게 어루만진 남자가 쓴웃음과 함께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고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3년만인가….”

그리운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린 남자가 다시 푸른 용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때……. 오소마츠, 네 거짓말을 알아챘다면….”

후회가 묻어나오는 목소리가 낮게 퍼졌지만, 용은 꿈쩍도 하지 않고 고른 숨을 내뱉으며 꿈나라를 여행했다

침까지 흘리며 잠든 용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흐르는 침을 닦아낸 남자가 고향을 향해 빗자루를 몰았다.

 

 

 

 

 

2.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눈에 익은 건물들 사이로 빗자루를 몰아 도시 외곽, 아늑한 스위트 홈에 도착해 빗자루에서 뛰어내리자, 커다란 캔버스를 들고 외출을 하려던 쥬시마츠와 마주쳤다.


카라마츠 형아——!!!”

쥬시마-!”

캔버스를 땅에 던지고 맹렬하게 나를 향해 달려오는 쥬시마츠를 간신히 받아내 기쁨의 포옹을 나누었다.


스케치하러 가는 건가?”

! 강가에!”

그렇군. 나이스한 페이팅-. 기대하고 있겠다.”

아이아이!!”

힘차게 대답한 쥬시마츠가 손을 팟! 들어 흔들고 다시 캔버스와 그림 도구들을 들고 강가로 향했다

마당 한쪽에 마련된 보관실에 빗자루를 넣어두고 현관문을 열었다

끼이익- 하고 낡은 문이 내는 소리가 귓가에 음악처럼 울린다

오래된 목조 건물에서 나오는 축축하지만 향긋한 나무 냄새가 가득한 집 안에 발을 들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방에도 거실에도 형제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며 시간을 확인하고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에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평일 낮

형제들 모두 일터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거실 소파에 내려놓고 텃밭으로 나갔다

반반의 확률이었지만, 자신의 예상대로 토도마츠가 텃밭에 있었다

여행하며 자주 보았던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심어진 밭을 조심스럽게 넘어 커다란 모종삽을 이리저리 움직여 땅을 뒤집고 있는 토도마츠의 뒤로 다가갔다.


토도마츠.”

으왓!! 깜짝야!! ? 카라마츠 형? 언제 돌아왔어?”

방금 돌아왔다.”

-, 그렇구나. 어서 와. 반년 만에 돌아온 건가?”

그렇지.”

갑자기 등을 두드려 화들짝 놀란 토도마츠가 나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오랜만이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웃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아직 일이 남은 토도마츠에게 형제들의 위치를 묻고, 집에서 일터가 제일 가까운 이치마츠를 만나러 가방을 챙겨 집을 나왔다

약사인 이치마츠가 있는 약국은 집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게 안은 대낮인데도 어둡고 매캐한 약 냄새가 진동했다

계산대에 이치마츠가 보이지 않아,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냄비에 대형 주걱을 넣어 휘적휘적 약을 만들던 이치마츠가 안으로 들어온 나를 보고-.” 하고 혀를 찼다.


오랜만에 본 건데, 혀를 차는 건 너무하지 않나? 브라더-.”

-, 그래. 어서 와.”

일편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형식적인 환영 인사를 건넨 이치마츠에게 가방에서 물약을 꺼내 건넸다.


약이 다 떨어져서 말이야. 또 만들어 주지 않겠나?”

진통제야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이번엔 얼마나 필요한데?”

“3년 치.”

“3?! ? 개똥마츠, 3년이나 안 돌아올 셈?!”

아하하. 일이 좀 그렇게 됐다.”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추궁하는 눈빛으로 날카롭게 나를 응시하는 이치마츠에게 적당히 대답을 흘리고,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후다닥 가게를 나왔다

하늘은 청명. 그야말로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이 좋은 날씨에 콩나물 보이처럼 연구실에 처박혀 있을 사랑스러운 하니-를 만나서 그리운 학교로 발을 돌렸다.

 

 

 

나라 안에서 제일 유명한 마법 학교

우리 육둥이가 졸업한 모교인 그곳에 우리의 장남이자 나의 연인이 교사로 재직 중이다

익숙한 교문을 넘어 오소마츠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지만 몇 번을 두드려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문을 열어보았지만, 너무나 가볍게 열린 문 너머 연구실에는 책만 가득 쌓여있을 뿐 오소마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외출한다면 문 정도는 잠가라, 오소마츠.”

주의성 없는 연인에게 혼잣말로 핀잔을 주고 문을 닫고 학교를 나왔다

오소마츠가 있을 법한 곳은 도박장이나 경마장.

급한 볼일은 없으니 일단 쵸로마츠를 만나러 갈까. 고개를 끄덕이고 서고로 향했다

서고에서 제일 중요한 책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쵸로마츠를 만나서 서고 가장 깊숙이 있는 섹션으로 들어갔다

일급비밀로 취급되는 책들은 자격증이 없으면 볼 수 없지만, 드래곤 연구가로서 미리 자격증을 따놓은 나는 프리 패스가 가능하다

빛이 들어오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은근한 간접 조명만을 띄워놓은 서고 안쪽에 커다란 열쇠를 타고 둥둥 떠다니며 저- 위로 솟은 책꽂이에 책을 정리하고 있는 쵸로마츠를 발견했다.


쵸로마츠-!”

? 카라마츠?”

-, 오랜만이다.”

내 부름에 쵸로마츠가 놀란 얼굴로 휙 내려왔다. 반년 만에 본 동생의 얼굴이 순수하게 기뻐 활짝 웃으며 잘 지냈냐며 근황을 주고받자마자 쵸로마츠 뒤쪽에서 사랑해 마지않는 허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쵸로~. 이 책 말고 또…,”

오소마츠!!”

어엣!? 카라마츠? 언제 돌아왔어!?”

조금 전에 돌아왔다. 마이 하니-~~!!!”

우왁!!”

투명한 거대 구슬에 걸터앉아 책 하나를 들고 쵸로마츠에게 다가오던 사랑스러운 오소마츠에게 달려들었다

가녀린 몸을 품에 꽉 안고 그토록 그리웠던 오소마츠의 체온을 만끽하고 있자, 오소마츠가 괴로운 듯이 버둥거리며 내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쵸로마츠의 험악한 표정도 있고 해, 아쉬움을 남기고 오소마츠를 놓아주자 오소마츠가 헤실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오소마츠의 손

따뜻하고 부드러운 상냥한 손길에 눈을 지그시 감고 감동의 눈물을 들이마셨다.


잘 지냈어? 카라마츠?”

-. 오소마츠야말로, 잘 지냈나?”

나야 항상 똑같지~. 그리고, 다리는 좀, 어때?”

가끔 욱씬거리지만 이치마츠의 약이 잘 들어 괜찮다.”

“…그래.”

사라진 오른 다리에 오소마츠의 체온이 닿았다

직접 피부로 그 온기를 느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소마츠의 손에 닿는 것은 따뜻함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금속뿐

딱딱하고 은색으로 빛나는 의족을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얼굴에 슬픔이 드리워진 것이 싫어 서둘러 화제를 바꿔 여행에서 보았던 진귀한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에 금세 어두운 얼굴을 버리고 생긋- 미소를 보여주는 오소마츠가 더욱 사랑스러워서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렸다

단 일 초라도 오소마츠와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 이야기하는 내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있자, 쵸로마츠의 호통과 잔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3.

 

달력을 확인하고 여행하며 항상 품에 넣고 다녔던 수첩을 꺼내 펼쳤다

용의 대이동’. 번식기를 맞아 전 세계에 퍼져있는 드래곤이 인간은 찾을 수 없는 둥지로 돌아가는 시기이다

푸른 하늘을 수천만 마리의 드래곤이 가득 채우고 웅장한 날갯짓 소리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널리 퍼뜨리며 무리 지어 날아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장관임이 틀림없다.

게다가 장수를 하는 드래곤의 특징 때문인지대이동 100년에 한 번 일어난다.

운 좋게도 올해대이동이 있을 것이라 관측되었고, 하늘의 복이 내렸는지 고향인 아카츠리아가대이동을 하는 드래곤들이 지나가는 길목이라고 한다


100년에 한 번 있는대이동’.

그것을 놓친다면 드래곤 연구가라는 이 카라마츠의 이름이 울 것이다. 한 번 더 달력을 확인하고 날짜를 정해 관찰 준비를 할 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반년간 여행으로 알게 된 드래곤에 관한 지식을 정리해 국가에 제출할 연구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국가가 인정하는 연구원은 매해 예정된 예산을 받고 그에 필적하는 연구 결과를 내야 한다

드래곤이라는 것은 아직 미지의 생물이기 때문에 내 연구는 제법 인기가 많은 축에 속한다

반년간 온갖 고생을 함께 해온 가방에서 부서지지 않도록 잘 밀봉해두었던 드래곤의 비늘과 발톱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지금까지 수첩에 적어놓았던 내용을 보고서로 옮기려면 밤샘을 각오해야 하겠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반듯한 양피지를 펼쳐, 깃펜에 잉크를 묻혀 정성스럽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 카라마츠.”

큰 수정구에 올라탄 오소마츠가 커피잔을 책상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온종일 마을 안을 돌아다니느라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동생들이 모두 잠든 늦은 시간

나와 함께 깨어있는 오소마츠가 건네준 커피의 향긋함에 마음이 녹는 것을 느꼈다.


고맙다, 오소마츠. 오소마츠는 안 졸린가?”

~, 아직 할 일이 남아서.”

그런가. 그럼 함께 열정적인 나이트를 보낼 수 있겠군!”

푸핫! 열정적인 나이트는 뭐야~. 너나 나나 일하느라 밤새는 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오소마츠의 웃음만 터뜨리고 말았다.

큭큭거리며 즐겁게 웃는 오소마츠의 얼굴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제 손에 들린 커피를 후루룩 마신 오소마츠가 빈 컵을 들고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공중에 떠 있는 수정구가 오소마츠의 의지에 맞춰 주방으로 이동했다.


카라마츠, 너도 한 잔 더 마실 거야?”

주방에서 들려오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커피잔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덜 마신 커피가 반쯤 남아있어 괜찮다 대답하고 다시 보고서를 써 내려갔다.

둥둥, 오소마츠가 탄 수정구가 다시 거실로 나왔을 때, 벌컥 문이 열리고 쵸로마츠가 피곤한 얼굴로 집에 들어왔다.


어서 와~, 쵸로마츠.”

웰컴 홈-! 브라더-.”

. 다녀왔어…. , 오소마츠 형.”

~?”
신청했던 도서 열람, 허가 났어.”

!? 진짜!!”

. 여기. 가져왔으니까 혹시나 잊어먹지 마.”

~, 땡큐땡큐!”

쵸로마츠가 내민 낡고 너덜거리는 책을 소중히 안아 든 오소마츠가 천사와 같은 미소로 쵸로마츠에게 인사했다

쵸로마츠는 적잖이 피곤한지 손을 흔들며 대충 대답하고는 곧바로 침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거실에 놓인 6인용 테이블 위에 쵸로마츠가 가져온 책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오소마츠가 양피지 다발을 가지고 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할 일이라는 게 그건가?”

. , 알아볼 게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는 오소마츠의 손 아래, 펼쳐진 책을 슬쩍 들여다보았지만 나는 읽지 못하는 고대문자로 쓰여 있었다.

학창시절 이론 수업은 항상 낙제했던 오소마츠가 고대 문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내심 놀라며 다시 보고서로 시선을 돌렸다.

째깍째깍, 시계의 초침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보고서에 집중했다가 고개를 들자 어느새 3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창밖은 완전히 깜깜해졌고, 집 안팎은 새벽의 고요함이 가득했다

새벽에 들어가 약간 쌀쌀해진 공기에 부르르 떨며 히터를 켜야겠다고 생각해 몸을 일으키자 맞은편에서 책을 읽고 있던 오소마츠가 눈을 들었다.


? 뭐하게?”

잠깐 히터를 켜야겠다 싶어서….”

, 그럼 내가 할게. 카라마츠는 움직이지 마.”

고맙다.”

내 다리를 배려한 것인지 오소마츠가 싱긋- 웃으며 수정구를 탄 채로 거실을 떠났다

주방 뒤쪽에 있는 히터를 마법으로 켜고 다시 거실로 돌아오는 오소마츠를 보며 아주 작은 위화감을 느꼈다

그게 뭘까, 곰곰이 생각하며 오소마츠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문득 오소마츠가 줄곧 수정구에 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서고에서도, 집 안에서도 오소마츠는 필요 이상으로 수정구에 탄 채로 이동하고 있지 않은가?

머릿속을 스치는 의문에 눈썹을 찌푸리고 오소마츠를 불렀다

또 뭔가 숨기고 있다는 의심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는 스스로 놀랄 정도로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 뭐야.”

혹시, 걷는 것이 힘든 건가?”

?”

계속 그 수정구에 타고 있다. 서고에 있을 때부터 줄곧. 다리가 아픈 건가? 아니면 움직이기가 힘든가?”

푸핫, 완전 건강체인 내가 그럴 리 없잖아~. 이건 그냥 걷기 귀찮을 뿐이야~.”

“….”

정말이라구? , .”

내 의심을 빨리 떨쳐버리려는 것처럼 오소마츠가 과장되게 수정구에서 뛰어내려 내 앞까지 걸어왔다

걷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이상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내 앞에 서서 부드럽게 웃는 얼굴이 이상하게 묘한 불안을 더 부추겼다

알 수 없는 초조함에 한숨을 흘리며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아 강하게 끌어당겼다

의자에 앉은 내 위로 겹쳐진 오소마츠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고 얇은 천 너머로 느껴지는 오소마츠의 심장 박동 소리에 안심하며 나직이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말해야 한다.”

. 알고 있어.”

반드시다!”

.”
몇 번이고 당부하는 나를 보며 오소마츠가 빙그레 웃고는 상냥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불쾌한 기분에 눈썹을 늘어뜨린 내 얼굴을 보며 피식-, 잔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살짝 고개를 내려 내게 입 맞췄다

, 하고 떨어진 입술이 아쉬워 오소마츠의 머리 뒤로 손을 감아 끌어당겼다

말랑말랑한 입술이 제대로 체온을 지니고 있는 것에 안도하면서 오소마츠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가자, 뜨끈한 살덩이가 내 혀에 닿았다

반년간의 공백을 채우고 싶어 숨을 쉴 틈도 주지 않고 오소마츠의 혀를 강하게 얽어맸다

뜨거운 숨이 하나가 되고, 오소마츠의 신음조차 삼켜버리고 부드럽고 뜨거운 몸을 품에 안았다.

 

 

 

 

 

4.

 

벌써 그 책을 다 봤다고?”

쵸로마츠의 놀란 말투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 가져다준 책은 고대 문자로 쓰여 있어 해독에 애를 먹었지만, 카라마츠와 함께 밤을 새며 필요한 정보는 다 빼낼 수 있었다

낡은 책이 부서지기라도 할까 조심스럽게 책을 건네받은 쵸로마츠가 서고에 들어가 책꽂이에 책을 꽂고 돌아왔다

연구 목적으로 학교장에게서 받은 열람권을 쵸로마츠에게 건네며 또 다른 책을 부탁했다.

고대부터 전해져 오는 드래곤의 설화나 신화와 같은 이야기를 정리한 「드래곤 신화」.

대체 무슨 연구를 하는 거냐며 세모꼴의 입술을 비틀면서도 얌전히 책을 찾아준 쵸로마츠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학교로 돌아왔다

스멀스멀 뇌로 올라오는 감각에 서둘러 자신의 연구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더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책을 책상에 내던지고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신음을 토했다.


, 하앗!!”


뜨겁다, 뜨겁다, 뜨겁다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서 견딜 수 없다


피부를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천의 질감조차 참을 수가 없어서 장갑을 찢어버릴 기세로 벗어 던졌다

부츠도, 거슬린다

아프다

종아리까지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가죽조차 끔찍한 통증을 유발하는 기폭제가 된다

자신의 피부가 아닌 이질의 물체를 벗어 던지고, 인간의 체온 이상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손과 발을 감싸 쥐었다.


, ! 이제, 시간이 없어…. 빨리….”

끝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조용히 되뇌였다

이대로 한계가 온다면, 그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나 자신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할 것이다

그런 일만은,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하루빨리 손을 써야 한다는 것을 몇 번이고 다짐하면서 입술을 깨물고 온몸을 휘감는 고통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5.

 

아침에 눈을 뜨고 오소마츠가 이미 출근한 것에 감사했다

매일 아침 칼로 다리를 찌르는 것 같은 통증에 눈을 뜬다. 이치마츠의 약을 마시면 어느 정도 고통이 격감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리를 주물러보거나, 마법을 걸거나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고통이 느껴지는 것은 이미 내 몸에서 사라진 오른쪽 다리.

의족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존재하지 않는 오른쪽 다리의 신경이 타는 것처럼 뜨겁고 고통스럽다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아내며 이치마츠의 약이 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기다렸다

1시간 정도 흐르고 나서야 통증이 가라앉았고, 내 얼굴과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누구에게 들키지 않게 재빨리 샤워를 마치고 이치마츠의 약국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보자마자 눈썹을 실룩인 이치마츠가 손짓으로 나를 부르고 가게 뒤쪽으로 들어갔다.


요즘 통증은 어때?”

종종 있지만, 약을 먹으면 괜찮아진다.”

약을 먹어도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아아-, 그렇군.”

통증이 오는 빈도는?”

“…그건 예전과 동일하다.”

원래 말이야, 내가 주는 진통제는 통증을 완전히 없애주는 거거든. 근데 개똥마츠, 너한테는 잘 듣지 않는 것 같으니까 조성을 바꾸자.”

-, 그런가.”

. 지금 주고 있는 약에는 중독성을 가진 재료도 들어가니까…. 3년 치를 한꺼번에 처방해주는 건 위험하고.”

아아. 신경 써줘서 고맙다.”

“…근데, 3년이나 떠난다는 거 오소마츠 형한텐 말했어?”

아직….”

“3년이라니…, 나중에는 영영 안 돌아올 셈?”

양피지에 새로운 약의 조성을 적던 손을 멈추고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는 이치마츠에게 고개를 거세게 흔들며 부정했다

그럴 리 없다.

내가 있을 곳은 오소마츠의 옆이니까

돌아오지 않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이 다리를 볼 때마다 오소마츠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괴롭다.

오소마츠의 탓이 아닌데, 모두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오소마츠를 조금이라도 기쁘게 만들어주고 싶다

그렇기에


겨우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이 고통을 없앨 방법을….”

단순한 환상통 아냐?”

논논, 그게 아니다. 이 다리는…, 고대 용의 저주…, 라고 할 수 있겠지.”

저주…….”

그렇기에 이치마츠의 약이 잘 들지 않는 거로 생각한다. 용의 저주라면 반드시 저주를 푸는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 이번 여행으로 이 저주를 풀게 된다면! 아무런 고통 없이 자유롭게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오소마츠도 다시 나를 보며 예전처럼 웃어줄 수 있겠지. 그러면 또 함께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확신에 가득 차 외쳤지만, 이치마츠는 못 미덥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마지막 여행이 그 모양이었는데…, 오소마츠 형이 같이 갈 거로 생각해?” 하고 진심으로 묻는 이치마츠의 말에당연하다!”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내뱉은 말이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그 말에 스스로도 자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학교에 내기 위해 교문으로 들어섰다

국가 연구원이라는 것은 행정상 마법 학교에 소속되어 있다

그리운 교장실에 발을 들여 커다란 줄무늬 팬티를 입고 있는 학교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고 나와 오소마츠의 연구실로 향했다

오늘 아침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오소마츠가 부족하다

빨리 오소마츠의 큐트한 페이스를 보고 싶어 발을 서두르던 와중에 오소마츠의 연구실에서 나오는 쵸로마츠와 마주쳤다.


쵸로마츠!”

카라마츠…. 오소마츠 형 보러 온 거야.”

.”

오소마츠 형 지금 없어. 외출한 것 같아.”

……, 그런가.”

나는 오소마츠 형이 요청한 책 가져다주러 온 거야. 하여간 그렇게 말을 해도 문단속 안 한다니까!”

하하하, 오소마츠 답지 않나.”

“…카라마츠, 잠깐 시간 괜찮아?”

시간은 많다만…?”

눈썹을 찌푸리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며 묻는 쵸로마츠에게 대답하자, 쵸로마츠가 내 손을 잡고 학교를 빠져나와 마을 구석에 있는 허름한 카페로 들어갔다

마녀가 운영하는 카페는 보완 마법이 철저하게 걸려 있는 곳으로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회의나 이야기를 하는데 최적의 장소였다

나라에서 제법 유명한 마법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홀을 지나, 가게 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은 쵸로마츠가 음파 차단 마법을 걸고 낮게 속삭였다.


요즘 오소마츠 형이 이상해.”

“…이상해?”

안 읽던 책을 찾아보더니, 얼마 전에는 데카판 교장에게 교사직을 사퇴한다고 했대.”

!?”

요즘 묘하게 예민한 것도 그렇고…. 분명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는데, 물어봐도 말을 안 해. 우리나 카라마츠, 너한테도 숨기고 있는 걸 보면 십중팔구 네 다리 문제야.”

쵸로마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밤을 새울 때, 수정구에서 내려오지 않는 오소마츠에게 위화감을 느낀 것을 떠올리고 눈썹을 찌푸렸다

오소마츠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지만, 역시 그 말은 거짓말이었나…. 

과거의 파트너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쵸로마츠에게 알겠다고 대답한 후, 오소마츠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6.

 

카페에서 쵸로마츠와 대화를 나눈 후,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찾아 헤맸다

마을 안에 오소마츠가 있을 법한 장소를 전부 뒤졌는데도 오소마츠의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지만, 역시나 오소마츠는 보이지 않았다

온종일 마을 곳곳을 돌아다녀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이자 오소마츠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 후로 아침에 일어나면 오소마츠는 이미 출근, 직장에 찾아가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고, 모두가 잠든 밤늦은 시각에야 귀가했다

3, 4일 오소마츠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카라마츠뿐만이 아니었다

쵸로마츠의 걱정은 자연스럽게 더욱 깊어졌고, 동생들 역시 오소마츠를 염려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이 아니라 동생들에게도 걱정을 끼치는 것에 단단히 화가 난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에게 졸음을 쫓는 약을 받아 벌컥 마시곤 오소마츠의 침실에서 오소마츠의 귀가를 기다렸다.

 

 

덜컥, 침실문이 열리자 카라마츠가 마른침을 삼키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친 한숨을 내쉬며 침실 안으로 들어온 오소마츠의 손을 단단히 잡아 도망치지 못하게 하자 오소마츠가 놀란 얼굴로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카라마츠!? 너 왜 여기 있어?”

오소마츠, 뭘 꾸미고 있나.”

? 아무것도? 잠깐, 아프다고! !!”

거짓말하지 마. 분명히 내게 숨기고 있는 게 있잖아. 그러니까, 요 며칠 나를 피하는 거지.”

아니래도…! 일이 바빠서 그런 거야!!”

교사직을 사퇴할 정도로 바쁜 일인가?”

, 그걸 어떻게…!”

말해, 오소마츠. 약속했잖아, 무슨 일이 있다면 말하겠다고. 왜 나를 피하는 건가!!!”

-, , 하는 건 너잖아!!”

?”

오소마츠의 울부짖음에 카라마츠가 분노를 거두고 멍청히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잡힌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이를 악문 오소마츠가 원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집에 잘 돌아오지도 않고! 한 번 여행가면 1년에 한 번 돌아올까 말까!! 게다가 이번엔 3년이나 떠날 생각이라면서! 그런 주제에…. 피하는 건, 너잖아! 내가 싫어졌으면 말을 하라구!”

아냐, 틀리다! 오소마츠, 그게 아니야.”

뭐가 아닌데!!”

오소마츠의 울먹임에 카라마츠가 당황하며 손을 뻗어 오소마츠의 얼굴을 감쌌지만, 얼굴을 흔들어 카라마츠의 손을 쳐낸 오소마츠가 고개를 숙였다.

이제 놔 줘….” 하고 힘겹게 내뱉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아냐, 오소마츠. 그게 아니다. 나는, 네가 괴롭지 않기를 바라서…. 너는 항상 내 다리를 보면서 슬퍼하니까, 네가 슬픈 얼굴을 짓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미안해, 오소마츠. 너를, 외롭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믿어줘.”

카라마츠의 뜨거운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훌쩍임을 멈추고 카라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살포시 카라마츠의 등에 팔을 두른 오소마츠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다리…, 아파?”

“…약간. 하지만 이치마츠의 약이 있으니까 견딜 만 하다.”

카라마츠의 솔직한 대답에 오소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그래….” 하고 작게 속삭였다

어딘가 애처롭게 떨리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는 자주 집에 돌아오지 않은 자신을 질책하며 욱신거리는 심장을 달랬다.


오소마츠, 같이 여행 가자. 이번대이동, 같이 떠나자. 다리의 통증을 없앨 방법을 찾은 후에 함께 가자고 하려 했지만, 오소마츠를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같이 가자.”

“….”

오소마츠?”

카라마츠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오소마츠가 젖은 한숨을 내쉬었다

품 안에서 꿈틀거리는 오소마츠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뜨거워진 것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재빨리 오소마츠를 품속에서 떼어내어 얼굴을 살폈다

열이 올라 붉어진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하다

손이 아픈지 눈에 띄게 파들파들 떨며 입술을 깨물고 신음을 참아내는 모습에 카라마츠는 순식간에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 들었다

새파래진 얼굴로 당황해 오소마츠의 얼굴을 감싸고 이름을 불렀지만, 고통을 참는 것에 모든 정신을 쏟고 있는 오소마츠는 대답을 돌려줄 수 없었다.


오소마츠!? 오소마츠!!”

, …! 크웃!”

오소마츠!!”

-, !”

오소마츠!”

, 찮아!”

어디가 아픈 건가!! 지금 당장 이치마츠에게 가서!”

기다, ! 괜찮으니까….”

이치마츠에게 약을 받아오려는 카라마츠의 옷자락을 붙잡은 오소마츠가 벌벌 떨리는 몸을 웅크렸다.


오소마츠!”

마법, 아까 새로 만든 마법을 시험해서 그래…. 이건, 부작용, 이니까….”

새로운 마법이라니! 스스로 시험해 본 건가!!”

, ….”

이 멍청이가!!”

오소마츠에게 날카롭게 호통친 카라마츠가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만약을 대비해 항상 들고 다니는 이치마츠의 진통제가 든 약병의 뚜껑을 이로 열어 오소마츠의 입을 억지로 벌려 그 안에 쏟아부었다

콜록대며 어떻게든 약을 다 마신 오소마츠가 쓰러질 것처럼 몸을 기울였다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려는 오소마츠의 몸을 안아 침대에 눕히고 차가운 물수건을 가져와 오소마츠의 이마에 올렸다

열이 너무 높다

해열제도 가져와야 하나 고민하는 카라마츠를 붙잡은 오소마츠가옆에 있어 줘.” 하고 부탁했다

사랑스러운 연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빨리 오소마츠의 몸이 괜찮아지기를 빌며 오소마츠의 옆에 누웠다.


카라마츠.”

, 괜찮나?”

…, 있지. ‘대이동끝나면 같이 여행 가자.”

정말인가!?”

….”

! 약속이다!”

. 약속.”

식은땀으로 젖을 얼굴을 끌어올려 잔잔한 미소를 보낸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거친 손을 꽉 잡았다

조금 전보다 나아진 건지 오소마츠의 호흡이 안정된 것을 확인한 카라마츠가 이불을 끌어 올려 어깨까지 덮어주고, 오소마츠의 손을 잡은 채 눈을 감았다.

 

 

고요한 새벽 안개가 새어 들어온 방 안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은 채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툭-, 이불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냈다.

꿈속에서도 제 걱정을 하는지 잔뜩 찌푸린 카라마츠의 눈썹을 꾹꾹 눌러 펴주고, 부드럽게 얼굴을 어루만진 오소마츠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오열을 삼키고 몸을 웅크렸다.


미안해, 카라마츠…. 거짓말해서, 미안해.”

흐느낌은 차가운 새벽 공기에 퍼져 낮게 가라앉았다

젖은 소매로 눈물을 훔친 오소마츠가 천천히 카라마츠와 마주 잡은 손을 풀고 침대를 떠났다.

 

 

 

 

 

7.

 

용의 대이동

관측 장비를 언덕에 늘어놓고 하늘을 보며 용을 기다리는 카라마츠 옆에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자리했다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까먹으며 느긋하게대이동을 기다리고 있는 동생들과 달리 카라마츠는 아직 비어 있는 오소마츠의 자리를 보며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쵸로마츠, 오소마츠는?”

글쎄-. 일이 있어서 좀 늦어진다는 말은 했는데….”

지금 부르러 갔다 오겠다.”

?”

쥬시마츠!”

아이!!”

“‘대이동이 시작된다면 이 장비를 드래곤에 고정해주지 않겠나?”

알겠씀닷!!”

쥬시마츠의 씩씩한 대답에 씩- 미소를 올린 카라마츠가 쥬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고 집을 향해 뛰었다

오소마츠의 사퇴서가 수리되어 백수가 된 오소마츠는 집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제도 아침 일찍 어딘가로 나가 얼굴을 보지 못한 오소마츠를 걱정하며 카라마츠가 전력으로 뛰어 언덕을 내려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의수와 이어진 허벅지가 욱신거리는 것을 참고 오소마츠의 방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학교에 있는 연구실에서 온갖 연구 자료를 다 옮겨와, 책이 빼곡히 들어찬 방 안에 쓰러져 있는 오소마츠를 본 순간 카라마츠는 호흡이 멎는 것 같았다.


오소마츠!!!”

놀라 뛰어간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헉헉, 거친 숨을 내뱉는 오소마츠는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당장 의사에게 데려가기 위해 오소마츠를 안아 올리려는 찰나, 오소마츠가 소매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내 카라마츠의 손가락을 베었다.


!?”

, 성공.”

크게 베인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책상 위에 올려놓은 삼각 비커에 카라마츠의 피를 받은 오소마츠가 푸른 약물과 카라마츠의 피를 섞었다.


, 소마츠!?”

. 이걸로 완성.”

카라마츠의 부름이 들리지 않는지 책상에 기대 힘겹게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말릴 새도 없이 푸른 약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비커에 들어있던 푸른 약물이 전부 오소마츠의 체내로 들어가고, 오소마츠가 곧바로 심하게 몸을 떨며 괴로운 신음을 토해냈다

힘이 빠진 손에서 빈 비커가 떨어져 산산이 조각났다.

뜨거운 숨을 가쁘게 내뱉으며 몸을 웅크린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끌어안았다.


대체 뭘 마신 건가!!”

경악하는 카라마츠에게 씩-, 장난스러운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괴로워하는 와중에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의 입술에 제 입술을 눌렀다.


, 소마츠…?”

심상치 않은 오소마츠의 행동에 카라마츠가 눈을 동그랗게뜨자마자, 오소마츠가크핫!!” 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제 손을 감싸고 있는 장갑을 벗어 던졌다.


오소, 마츠…, ….”

오소마츠의 하얀 피부를 좀먹으며 서서히 올라오는 푸른 비늘

용을 가까이서 봐온 카라마츠라면 그 비늘이 용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카라마츠의 망연자실한 신음도 들리지 않는지 오소마츠는 부츠와 옷을 차례로 벗어던졌다

다리에도, 그리고 얇은 허리와 등에도, 푸른 비늘이 서서히 오소마츠의 몸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오소마츠!!”

오소마츠의 비명에 카라마츠가 눈물을 글썽이며 오소마츠를 감쌌지만, 오소마츠의 몸을 타고 올라오는 비늘은 무자비하게 오소마츠의 몸을 모두 침식했고, 고통스럽게 몸을 웅크린 오소마츠는 곧 푸른 비늘을 가진, 한 마리의 작은 아기용이 되었다.


“…오소마츠….”

망연하게 연인의 이름을 불러도 아기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작게 웅크린 몸을 기지개 피고 일어난 용은 카라마츠를 보며 고개를 기울이고뀨우-?” 하고 울었다.

 

 

 

 

 

8.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형제이자 연인이었다

육둥이 다 함께 마법 학교를 졸업하고 오소마츠는 교사가, 카라마츠는 드래곤 연구가가 되었다

직업 특성상 전국을 돌아다니는 카라마츠는 연인인 오소마츠를 위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고향에 들렀다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돌아오는 카라마츠와 오소마츠의 깨가 쏟아지는 모습에 동생들이 질려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때,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여행을 제안했다

드래곤 연구로 고향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가야 했던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와 오래 떨어져 있기 싫다며 오소마츠와 함께 가자며 손을 내밀었다

마침 쌓아둔 휴가와 더불어 방학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오소마츠는 흔쾌히 카라마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동생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한 쌍의 연인이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처음 몇 주는 신혼여행이나 다름없었다

둘이 함께라면 노숙도 너무나 즐거웠다

아침부터 밤까지 자신의 연인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카라마츠도 오소마츠도 너무나 들떠 있었다

그렇게 목적지에 거의 도달했을 때, 우연히 고대 용의 무덤에 들리게 되었다

고대 용이 잠들어있다는 전설 속의 장소

날카롭게 깎아진 절벽 사이에 고대 용의 둥지가 보존되어 있고, 그 뒤엔 커다란 산이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절벽 곳곳엔 어린 용들이 만들어놓은 둥지가 보였다

용의 둥지를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는 흔치 않기에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는 둥기 근처에 몸을 숨기고 용을 관찰했다

조용히, 용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 관찰을 하는 두 사람의 시야에용 밀렵꾼이 보였다

엄연한 불법인 살상 무기를 가지고 용을 하나둘 잡아끌고 가려는 밀렵꾼들의 횡포에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수풀 속에 숨기고 있던 몸을 일으켜 전투를 시작했다

마법 학교에서도 마법에 관한 재능은 특출났던 오소마츠의 지원 아래, 카라마츠가 밀렵꾼들을 물리적으로 짓이겨 밧줄로 옭아맸을 때,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요동치는 지면에 휘청거리던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지지하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 절벽 뒤에 서 있던 커다란 산이 움직였다.

 

 

산인 줄 알았던 그것은, 잠든 고대 용이었다.

밀렵꾼들에게 끌려가던 어린 용들의 울부짖음과 밀렵꾼들과 오소마츠, 카라마츠의 전투로 생긴 소음에 고대 용이 눈을 뜨고 말았다

도망칠 기세도 없이 고대 용의 브레스(breath)에 밀렵꾼들은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신을 깨운 것에 크게 분노한 용은 인간들의 선악따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분노한 채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게 브레스를 날렸다

재빨리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감싸고 보호막을 만들지 않았다면, 둘 역시 밀렵꾼들과 마찬가지고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을 것이다

고대 용은 하찮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 오소마츠가 제 브레스를 막아낸 것에 더욱 분노해 온 나라가 울리도록 큰 울음과 함께 붉은 불덩이를 쏘아냈다

한 번 더, 오소마츠가 필사적으로 막아냈지만, 고대 용의 힘 앞에 오소마츠의 마법은 너무나 나약했다

오소마츠를 감쌌던 카라마츠는 한쪽 다리를 잃으며 정신을 잃었다

모든 마력을 소진해 기진맥진해진 오소마츠 역시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

아주 약간 남아있는 마력 찌꺼기를 모아 카라마츠의 다리를 치료한 오소마츠가 제 앞에 얼굴을 들이민 고대 용과 마주했다.


『감히 내 잠을 깨운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너희에게 「용의 저주」를 내린다.


고대 용의 근엄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꼭 음량을 최대로 높인 스피커가 머릿속에 있는 것처럼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소리 울림에 뇌가 흔들리고, 오소마츠도 정신을 잃고 말았다.

 

 

뒤늦게 구조대에 의해 발견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카라마츠는 오른쪽 다리를 영영 되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용의 저주」로 잃은 다리에서 끔찍한 고통을 떠안게 된 카라마츠

오소마츠는 자신 역시 「용의 저주」를 받았으면서 카라마츠의 저주를 풀 방법을 백방으로 찾았다.

서고에 있는 오랜 서적을 뒤지고, 용과 관련된 모든 전설, 신화, , 쓸모없는 소문까지 모았다

하지만, 결국 「용의 저주」는 절대 풀 수 없는 강력한 저주라는 결론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용의 저주」는 풀 수 없다….

― 그렇다면 하다못해, 카라마츠의 저주를 내게 옮길 수는 없을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매달려 다시 자료를 뒤지기 시작한 오소마츠는 특정 약물로 저주를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두 사람분의 저주를 자신에게 옮기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오소마츠의 결심은 꺾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적어도 카라마츠만이라도 저주를 풀어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 설사, 자신이 그 대가로이 되어 버린다고 해도.

 

 

 

 

 

9.

 

오소마츠는 푸른 용이 되었다

인간일 때의 기억조차 존재하지 않는지, 푸른 용은 카라마츠와 동생들은 낯설어했다

완전한 용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그동안 관찰하고 기록했던 그대로의이 되어버렸다

불을 뿜고, 인간보다 늦게 성장하며, 더 오래 장수하는 종족

드래곤이 일정 나이가 되면 인간의 모습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카라마츠의 생명불이 꺼진 후의 일이다

오소마츠가 용이 된 충격으로 휘청이는 동생들을 뒤로하고, 카라마츠는 용과 함께 고향을 빠져나왔다

다시 전국을 여행하며 용이 된 인간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방법을 찾아 헤맸다

「용의 저주」가 사라진 다리는 더는 아프지 않았지만, 카라마츠는 도저히 기뻐할 수 없었다

다행히 오소마츠였던 푸른 용은 카라마츠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곧 전국에 푸른 용을 데리고 다니는 드래곤 연구가의 소문이 퍼졌다.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고향 마을을 보며, 카라마츠가 제 어깨에 올라탄 푸른 용을 쓰다듬었다

3년 만에 만난 형제들은 푸른 용을 보며 무슨 말을 할까, 쓴웃음을 흘리며 푸른 용과 눈을 맞춘 카라마츠가 붉게 빛나는 그 눈을 응시하며 허탈한 웃음과 함께 속삭였다.

 

적어도, ‘함께 여행하자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오소마츠.”

 

쓸쓸히 내뱉은 말의 의미를 푸른 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고 눈을 깜빡였다.





* 오소마츠가 계속 수정구에 타고 있었던 이유는 저주 때문에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ㅎ


* 다음 50제는 또 주말에 올리겠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카라오소 단편입니다.

  지금 50제도 열심히 쓰고 있어요ㅎ


* 육둥이 학창시절 날조가 있습니다. 

  카라마츠가 중,고등학교 때 연극부라는 설정입니다.


* 처음부터 끝까지 카라마츠 시점입니다.

  카라마츠가 별로 아프지 않아요...


* 공미포 4,294자.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카라마츠 형, 이번에 주역 땄어?”

저녁 식사 도중 툭 내던지듯이 묻는 토도마츠의 말에 모두의 젓가락이 멈췄다

그러고 보니….” 하고 문득 깨달은 듯이 중얼거린 쵸로마츠에 이어, “-, 개똥마츠가 주역일 리 없잖아.” 하고 이치마츠가 혀를 찼다

카라마츠 형아-, 왕자님임까~?” 하고 묻는 쥬시마츠에게 허탈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쉽게도 학교의 무대는 이 카라마츠 님에겐 너무 작았던 모양이다, 브라더-!”

힘준 눈썹을 늘어뜨리고 셰익스피어가 감탄할 만한 연기를 펼치자, 형제들의 한마디가 뒤따랐다.


모처럼 내가 또 대본에 똥을 바르는 수를 알려줬는데도 주역을 못 땄단 말이야?”

그럼 굳이 연극 보러 갈 필요는 없겠네.”

나 참-, 하고 한숨을 내쉬는 토도마츠에 이어 다시 젓가락을 움직인 쵸로마츠가 응응,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이미 이 대화에 관심이 꺼졌는지 멋대로 가장 맛있는 반찬을 대량으로 집어가고 있었다

재빠르게 고기를 집어가는 두 쌍의 젓가락을 오소마츠가 화려한 젓가락 놀림으로 막아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도 동생의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끼어드는 오소마츠가 조금 전 대화에서 침묵하던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모두 자기 몫의 반찬을 빼앗기지 않으려 분주하게 젓가락을 움직이는 가운데 나와 눈이 맞은 오소마츠가 씩-,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배역이 발표된 그 날, 나는 주역에 발탁되었다. 흔해 빠진 왕자와 공주 이야기의 왕자

세상모르고, 그저 공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악한 드래곤과 결투를 벌이는 그런 전형적인 왕자이다

연극부에 들어가 1년 반

졸업을 앞둔 3학년 마지막 축제에서 나는 무대에 주역으로 오르게 되었다

3년 만에 맡은 주역에 들뜬 마음을 안고 오소마츠가 자주 시간을 때우는 학교 옥상으로 뛰었다

아빠 몰래 빼낸 담배를 물고 멍청한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고 누워있던 오소마츠에게 주역이 된 것을 알리자, 오소마츠가 환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물우물, 식사하는 것에 집중하는 형제들을 둘러보았다

한 달 뒤 열릴 축제. 형제들은 연극부의 연극을 보러 올 것 같지 않았다

쵸로마츠는 축제 준비 위원회에 들어가 축제 당일까지 바쁠 것이고, 내가 나오지 않는 연극을 보러 시간을 쓰진 않을 것이다

토도마츠는 여자 사람 친구들과 온 학교를 누비고 다닐 것이고,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마이 웨이로 축제를 즐기겠지

사람이 많은 것을 싫어하는 이치마츠는 분명 학교 어딘가에 숨어있거나 일찍 집에 돌아올 것이다

쥬시마츠는 이치마츠와 함께 붙어있을 것이고, 이치마츠가 연극을 보러 올 리 없으니 두 사람도 세이프

, 축제 당일에 연극을 보러 올 형제는 오소마츠 이외 없다는 소리다

바라던 그대로 굴러가는 상황에 넘쳐 흘러나오는 미소를 억누렀다.

 

 

 

 

 

2.

 

우리에게 무르고 따뜻했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복을 입은 우리들은 냉혹한 세상의 축소판인 중학교에 들어가육둥이라는 것을 버리기 시작했다

하나둘, ‘육둥이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해, ‘개성을 가지게 되었다

색이 다른 옷을 입지 않으면 그 누구도 구분하지 못했던 우리가, 서서히 남들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달라졌다

자신만의 색,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기 시작해육둥이의 울타리를 넘어 나아가기 시작하는 형제들을 보며 남겨진 나는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나도 형제들을 따라 빨리 개성을 가지지 않으면. 그 생각이 가득해서 뒤돌아보지 못하고 무작정 울타리를 뛰어나왔다

한참을 헤매도 나만의, ‘카라마츠만의 개성을 찾을 수 없었다

육둥이가 아닌 자신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나는 대체 뭐지

카라마츠란 인간은 뭐지


어리석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갔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내가 간신히 도달한 곳은 바로 연극부였다

수많은 극본을 읽고, 연극부 친구의 추천으로 오자키라는 가수를 알게 되어 기타와 노래에 빠지게 되었다

가죽 재킷을 동경하게 된 것도 이때

연기에 빠지고, 오자키에 빠져 드디어카라마츠만의 개성을 찾았을 때, 문득 뒤를 돌아보면 오소마츠가 그곳에 있었다

모두 떠나간육둥이울타리 속에서 오소마츠는 어릴 적 모습 그대로 우리를 향해 웃고 있었다

변하지 않은 오소마츠. ‘육둥이모습 그대로 자라나는 오소마츠를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아니 우리는육둥이를 벗어나야만 한다고 맹신했다.

개성을 찾아개인이 되어야만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소마츠는 그 모든 생각을 비웃듯이오소마츠그대로 성장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던육둥이의 모습을 간직한 오소마츠. ‘카라마츠로서의 개성을 추구하다 

육둥이의 모습을 잃어버린 나와 달리 오소마츠는오소마츠로서 존재했다.

 

그것을 알아챘을 때의 충격은 이로 말할 수 없다.

 

오소마츠는 보여주고 있었다

육둥이로서, ‘오소마츠로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카라마츠를 손에 넣기 위해육둥이를 버린 나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그런 방법을.

 

 

그런데 왜 우리 주변은오소마츠를 가만 놔두지 않는 걸까…. 

형제들과 부모님, 선생님, 주변 이웃들까지 모두-, 오소마츠에게장남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무개성이라며 오소마츠를 폄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남이라는 옷을 덧씌우려는 가족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오소마츠는오소마츠

왜 그것을 부정하려 안달인가


안타까운 마음에 형제들을 막아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가족의 등쌀에 어느새 오소마츠는오소마츠는 장남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평등이 아닌 차등을 받아들인 형제들에 의해, 오소마츠는장남이 되었다

이라는 육둥이에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지고, 위아래가 결정되었다

오소마츠도횽아’, ‘장남이라는 단어를 당연하게 내뱉게 되었다

처음, 오소마츠가 자신을이라 칭했을 때의 절망감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울타리 안에 새초롬히 앉아있던 오소마츠가 더럽혀졌다

그 분노가 마음을 가득 채웠다. 울타리를 나간 주제에, 흙발로 울타리를 짓밟고 들어온 형제들이 오소마츠에게 제멋대로 손때를 묻혔다.

바보에 쓰레기에 하반신이 본체인 듯한 오소마츠에게장남을 부여해 그것이 진리인 양 수긍하는 형제들이 미웠다

겨우카라마츠가 아닌육둥이로 돌아가려 했던 나의 이정표이자 목표였던 오소마츠가 속수무책으로 형제들의 손에 바뀌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다행히오소마츠는 완전히 변한 게 아니었고, 때때로 보여주는오소마츠의 모습에 가슴 가득히 퍼지는 기쁨과 감동에 눈물 흘렸다.

 

 

 

 

 

3.

 

중학교 2학년, 단역으로 처음 무대에 오른 그날

나는카라마츠가 아닌육둥이가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들었던카라마츠가 아닌 무대 위의 인물이 된 나.

다른 이를 연기하는 순간에 비로소육둥이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텅 빈(카라) 나는 대본에 쓰인 역할이 무엇이든 그대로 담아낼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나는 진정한육둥이이자카라마츠가 될 수 있었다

무대 위는 온전히만의 공간이 되었다

억지로 개성을 만든카라마츠가 아닌’. 힘겹게 찾은 진정한 나를, 형제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타인들은 모른다

무대 위에 오른 내가 이야기 속 하나의 인물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형제들은 다르다

우리는육둥이였던 시절이 있었다


네가 나고, 내가 너


그 시절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형제들이라면 무대 위에 오른 내가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개성을 가진카라마츠가 아니란 사실을, 진정한가 존재한단 것을 형제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중학교 3학년, 처음으로 주역을 맡아 학교 축제 때 연기를 펼치게 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오소마츠에게만 말을 걸었다

형제들에게를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오소마츠는 예외였다

나를카라마츠가 아닌로서 봐주는 오소마츠에게 내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오소마츠는 왜 동생들은 부르지 않냐며 추궁할 거란 내 예상과 달리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축젯날, 오소마츠는 동생들에게 말하지 않고 내 연기를 보러 와 주었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 뒤로 일부러 찾아와 내 연기를 칭찬해 주었을 때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단 한 마디

단순한 칭찬의 말이 또 듣고 싶어,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연극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으로 주역을 맡게 된 것을 형제들은 모른다.

 

 

 

축제를 한 달 앞두고 열띤 연습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고등학생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연기를 시작한다

나도, 텅 빈 내 안에왕자님을 부어 넣었다

이상적인 왕자님. 대본에 적힌 그대로의 왕자님을 연기한다

연극부 부장이나 대본을 쓴 각본가의 조언을 새겨듣고, 그들이 원하는 왕자님을 그대로 담아냈다

만족스럽게 웃는 부장과 각본가의 얼굴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들이 보는 것은라는 그릇에 담긴 내용물

그것을 담고 있는 텅 빈 그릇인게 집중할 이는 없다


― 단 한 사람을 제외하면.

 

 


축제 일주일 전, 강당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강당은 당연히 활짝 열려있고, 누구든 연습을 보려고 하면 자유롭게 강당에 들어올 수 있다

무대 위에서 힘차게왕자님의 대사를 외치며 시선을 관중 쪽으로 돌렸을 때, 시리도록 빨간 후드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 교복과 대조적인, 눈에 띄는 빨강

실내화 뒤축을 구겨 신고,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손을 꽂아 넣은 오소마츠가, 그곳에 있었다

본 공연도 아닌 연습일 뿐인데, 오소마츠가 보러 와 준 것만으로 참을 수 없는 희열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올라와 몸을 부들 떨었다


그래, 오소마츠는 이해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내가 연기하는, 담아내고 있는뿐만 아니라 그것을 담아내고 있는라는 그릇을 함께 봐주는 것은 오직 오소마츠뿐이다

오소마츠 이외 누구에게도라는 그릇을 보여줄 생각은 없다

조명이 환하게 비치고 있는 무대 위와 나직이 어둠이 드리운 관객석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소마츠가 너무나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즐겁다. 기쁘다.

를 드러내는 것이 이토록 환희에 가득 찬 일이었던가.

 


연습이 끝난 후, 서둘러 무대를 정돈하고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강당을 빠져나오자 오소마츠가 발치에 놓인 돌을 차며 교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뛰어가면 오소마츠가 나를 발견하고 장난스러운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같이 돌아가자, 카라마츠.”

.”

오소마츠 앞에서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치 않은 있는 그대로의카라마츠가 되어버린다

오소마츠의 입에서, 그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기쁘다

자신의 이름이카라마츠인 것이 신의 축복으로 여겨질 정도다

함께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눈다

오소마츠는 연극 연습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것이 또 어째선지 기뻐서 집의 지붕이 보일 즈음, 옆에서 덜렁이는 오소마츠의 손에 살며시 손가락을 걸었다.


오소마츠, 축제 때도 보러 와줘.”

“……. 당연하지.”

틈을 두고 씩- 웃으며 대답한 오소마츠가 제 코 밑을 문질렀다

오소마츠의 대답에 예상보다 더 축제가 기다려지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왕자님은, 단 한 사람의 관객을 위한 연기


― 이 생명이 꺼지는 날까지, 내 연기는 오직 오소마츠를 위한 것이다.





* 제가 썼는데도 뭔말하는지 모르겠네요...


* 50제는 오늘 밤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빼빼로데이(오소오소데이)를 챙기지 못한 여한을 여기서 풀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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