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편입니다!!!

* 이번편도 어째 길어졌네요...ㅎㅎㅎ

* 앞으로 완결까지 1편 남았습니다!!

* 모브시점이 좀 들어가있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바쁘게 서류를 넘기는 카라마츠 형의 옆에 앉아 차를 마셨다. 

후륵 하고 넘긴 차에서 은은한 꽃향기가 살며시 코를 간질였다. 

옆마을인 아카츠카 마을에서 쵸로마츠 형이 받아온 허브차는 역시 맛있었다. 

쵸로마츠 형이 추천할만 했다. 허브차에 진정 효과가 있는 것을 떠올리고, 빈 잔에 차를 부어 카라마츠 형의 책상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서류에서 시선을 돌려 찻잔에 눈길을 준 카라마츠 형이 “고맙다.” 하고 작게 속삭였다. 

익숙하게 서류를 넘기는 카라마츠 형의 옆에 높이 쌓인 서류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청산과 이 마을 전체를 다스리고 있는 텐구의 수장인만큼 카라마츠 형이 처리해야 할 일은 많았다. 

청산과 그 주변에 거주하는 요괴들의 자잘한 다툼부터 아카츠카 마을에 사는 요괴들과의 교류와 고의치 않게 요괴들이 인간들에게 미친 영향의 뒷처리까지… 

그야말로 산떠미처럼 쌓인 서류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어느새 마지막 한 장만을 남겨놓았다. 

마지막 서류를 치비타에게 넘긴 카라마츠 형이 좌식의자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를 쓸어올리며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카라마츠 형에게 기회를 노려 말을 걸었다.


“있지, 카라마츠 형.”

“응? 뭔가, 토도마츠?”

“오소마츠 형이랑 혼례는 언제 올려?”

“에, 엣?!”

“대국주님이 다녀간지 벌써 1년이 지났다고?”

“아…”

오소마츠 형과 혼례라는 단어에 금새 얼굴을 붉히는 카라마츠 형이 대답하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모처럼 대국주님께도 인정받아 부부의 연까지 맺었는데, 1년이 지나도록 혼례의 ‘혼’자도 나오지 않으니… 

이대로 카라마츠 형과 오소마츠 형에게 맡겨둘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둘이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건 우리 여섯만 알고 있는 사실로, 최근 카라마츠 형에게 조금씩 맞선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지만, 옆에서 보고 있는 입장으로서는 답답해 미칠 것 같다. 

고개를 돌려 대답을 피하는 카라마츠 형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응~?” 하고 묻자, 카라마츠 형이 곤란한지 눈썹을 늘어뜨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카라마츠님이 그런 여우와 혼례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런 말은 삼가주세요, 토도마츠님!!”

아직 방에서 나가지 않은 젊은 텐구에 외침에 나도 카라마츠 형도 몸을 움찔였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있었지… 

오소마츠 형이 이 토지의 토지신으로 내려온지 벌써 백년이 지났는데, 이 골때리는 텐구들은 여전히 오소마츠 형을 싫어하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렇게까지 싫어할 수 있는지… 


“그런 여우라니, 오소마츠 형은 이 일대의 토지신이야? 일단은…”

“그런 것, 카라마츠님의 발톱 끝에도 미치지 않는 여우 따위!”

젋은 텐구의 한 마디에 이어 방에 들어온 다른 텐구들도 저마다 한 마디 덧붙였다. 

대체로 오소마츠 형은 인정할 수 없다느니, 그런 여우 필요없다느니, 여우 때문에 카라마츠 형의 활약이 가려진다느니, 뭐 그런 말뿐이었다. 

오소마츠 형과 만난 적 있는 치비타만이 발끈하는 젊은 텐구들을 말리려 노력했지만, 머리에 피가 몰렸는지 제멋대로 발언하는 텐구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대로는 끝이 안나니 적당히 말을 넘기자고 생각해 입을 연 순간, “쾅!!” 하고 커다란 소음이 방 안에 울렸다. 


“에…?”

모두의 입이 멈추고 놀란 얼굴로 내 뒤로 시선을 고정했다. 

고개를 돌리자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친 카라마츠 형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텐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항상 텐구들의 불평에도 무표정으로 “그 정도만 해라.” 하고 넘겼던 카라마츠 형의 진심으로 화난 얼굴에 숨을 삼켰다.


“오소마츠의 무엇을 보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가. 가끔씩 그 좁은 시야와 편협한 편견에 토악질이 날 것 같다.”

“…에.”

거친 단어까지 써가며 고요히 분노하는 카라마츠 형의 모습에 텐구들 모두 숨을 멈췄다. 

주어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 방에 있는 텐구들뿐아니라 영지의 모든 텐구들에게 하는 말임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굳어버린 텐구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 형이 몸을 일으켜 젊은 텐구들을 지나쳐 그대로 방을 나섰다. 

모두 꽤나 놀랐는지 카라마츠 형이 나가고 한참이 지나도 꼼짝도 못하고 앉아있었다. 

나 역시 카라마츠 형이 저렇게까지 화가 난 모습은 처음 봐 뭘 어쩌야할지 알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토도마츠, 카라마츠 좀 보고 와줘라.”

존경하는 수장에게 혼나 어깨를 푹 숙이고 침울해진 텐구들을 추스리던 치비타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와 카라마츠 형의 개인실로 향했다. 

아마도 카라마츠 형은 그 동안 참았던 것에 한계가 온 것 같다. 

지금까지 영지 내의 텐구들은 오소마츠 형 이야기만 나왔다하면 눈에 불을 키고 험담하기 바빴다. 

만약 방금 전 그 자리에 오소마츠 형 신자인 쵸로마츠 형이나 이치마츠 형이 있었다면 분명 엄청난 일이 일어 났겠지. 

카라마츠 형의 방 앞에 도착해 콩콩 노크를 하고 “토도마츠야.” 하고 말하자 “들어와.”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 형.”

스르륵- 문을 닫고 들어가자 카라마츠 형은 조용히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올린 카라마츠 형이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갑자기 화를 내서.”

“아니, 카라마츠 형이 아니었다면 내가 먼저 화냈을거야.”

내 대답에 카라마츠 형이 고개를 들고 쓰게 웃었다. 

나를 달래려고 지은 미소였지만, 여전히 마음이 풀린 것 같지는 않았다. 

나로는 카라마츠 형의 기분을 풀어줄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빨리 혼례 올리라고.” 하고 한 마디 남기고 방을 나와 신사로 향했다. 

쵸로마츠 형과 이치마츠 형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고, 카라마츠 형의 기분을 달래줄 수 있는 건 오소마츠 형뿐이니까.





2.


오소마츠 형이 카라마츠 형을 달래주기 위해 청산으로 향해있는 틈을 타, 모두를 모았다.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 형이 혼례를 올리기 전에 그 앞을 막고 있는 유일한 장애물을 우리가 치워주고 싶었다. 

일전 인간이 되고 싶다며 소동을 일으켰던 내가 오소마츠 형과 카라마츠 형에게 항상 미안했다. 

그러니까 이번 일만큼은 내가 도와주고 싶었다. 

대국주님도 넘고, 토토코님도 뭐 일단은 넘었으니까. 

이제 남은 텐구들이란 산을 넘을 수 있게 우리가 등을 밀어주지 않으면!


“텐구들이 오소마츠 형을 인정하게 해주자 작전!!!”

“뭐야, 그 촌스러운 작전명은.”

“시끄러워, 쵸로마츠 형.”

당연하다는듯 태클을 걸어오는 쵸로마츠 형을 막고 앉아 모두 함게 머리를 맞대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과연 예상했던대로 오소마츠 형 신자인 쵸로마츠 형과 이치마츠 형의 기분이 잔뜩 가라앉았다.


“그딴 텐구들한테 굳이 인정 받지 않아도 괜찮지 않아?”

“그것보다 그딴 텐구들 전부 없애버리면 되지 않아?”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쵸로마츠 형과 발톱을 세우는 이치마츠 형을 간신히 진정시킨 후, 먼저 입을 열었다.


“텐구들에게 오소마츠 형의 ‘신’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어때? 그럼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겠어?”

“글쎄. 백년이 지나도록 오소마츠 형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지금와서 신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뭐가 변하겠어?”

내 말에 쵸로마츠 형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치마츠 형은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쯧! 하고 혀를 찼다. 

쥬시마츠 형까지 “우응~” 하고 머리를 갸웃거렸지만,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개똥마츠가 없는 틈을 타서 오소마츠 형이 이 마을을 멋지게 지켜내면 되는 거 아니야?”

“그거 괜찮은데?”

이치마츠 형의 말에 쵸로마츠 형이 손가락을 들어 수긍했다. 

카라마츠 형의 부재에 당황하고 있을 텐구들을 오소마츠 형이 훌륭하게 이끌면 인정할 수 밖에 없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쵸로마츠 형을 황당하단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거 내가 방금 말한 거니까?!

 정말이지, 이 오소마츠 형 신자들은 도움이 안 된다.


“아니, 겨우 그걸로 될 리가 없다고 방금 쵸로마츠 형이…”

“응! 찬성!!”

“쥬시마츠 혀엉?!”

내가 반대의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쥬시마츠 형이 활짝 웃으며 양팔을 들고 찬성했다. 

아니, 겨우 그걸로 괜찮아?! 

백년이 넘는 원한이라고?? 

다들 알고 있는거야?! 

필사적으로 이것저것 이유를 들어가면 먹힐리 없다고 외쳤지만, 형들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멋대로 구체적인 작전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아~~ 진짜!! 이제 난 모르니까!!




“그럼 카라마츠 형을 어떻게 빼내지?”

“패면 되잖아?”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하는 이치마츠 형에게 딴지를 걸고, 쵸로마츠 형에게 다시 물었다. 

쵸로마츠 형도 머리를 잡고 여러 궁리를 짜냈으나, 딱히 이렇다 할 만한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아!! 대국주님께 부탁해서 카라마츠 형 좀 잠깐 붙잡고 있어 달라고 하는건?”

“대국주님이 그렇게 한가한 분이 아니야!!!”

모처럼 명안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쵸로마츠 형의 태클에 막히고 말았다. 


“그러니까 패자니깐?”

“이치마츠 형은 조금 입 다물고 있어.”

“카라마츠 형아가 아파서 일을 못하는 건 어때~?”

“좋은 방법이긴한데 쥬시마츠 형, 나 백년이 흐르는 동안 카라마츠 형이 그 흔한 감기 한 번 걸리는 거 못봤어?”

“아하하, 쓸데없이 튼튼하구나, 카라마츠 형은!!”

“쥬시마츠 형, 그거 칭찬이야, 욕이야?”

쥬시마츠 형의 제안도 결국 각하. 정말로 이 이상 수가 없을까 절망하고 있는 우리들 사이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엄~청난 요리를 해서 그 새대가리에게 주면 어때?”

“아니, 아까 토도마츠 군 제안대로 내가 천상으로 부르면 어떠냐?”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에 우리 모두 끼기긱 하고 굳은 목을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평범하게 대국주님과 토토코님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여! 오랜만이구나.”

“안녕, 또 놀러왔어~”

인기척도 없이 대화에 난입해, 한 손을 들어 가볍게 인사하는 대국주님과 토토코님의 등장에 쵸로마츠 형이 사색이 되어 벌떡 일어났다. 

우리도 호흡을 잊고 망연히 둘을 응시했다.


“대, 대국주니임~?!?!?!! 일은 어쩌시구요?!”

“몰래 빠져 나왔다!!”

“어이!!!!”

쵸로마츠 형의 물음에 즉답하는 대국주님께 무의식적으로 태클을 건 쵸로마츠 형이 거칠게 숨을 내쉬며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죄송했습니다!!” 하고 비는 쵸로마츠 형에게 호탕하게 웃으며 대국주님이 “아니, 괜찮다~ 너는 여전히 건강하구나~” 하고 말했다. 


“있잖아, 토토코의 제안이 제일 좋지 않아?”

대국주님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토토코님이 말했다. 

..토토코님의 제안? 


“요리를 먹인다구요?”

“그래! 토토코, 먹으면 바로 식중독 일으키는 음식 만들 수 있어!!”

먹으면 바로 식중독이라니.. 그거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너무 황당해 내가 말을 잃고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이, 이치마츠 형이 토토코님께 가까이 가 붙었다.


“나 찬성!”

“이치마츠 형?!”

“나도!”

“쥬시마츠 형?!”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토토코님 쪽에 붙은 이치마츠 형과 쥬시마츠 형이 손을 들었다. 

이치마츠 형은 작전 따위 생각지않고 그저 카라마츠 형을 괴롭힐 수 있다면 좋은 것 같았다. 

눈 앞에 펼쳐진 어이없는 상황에 쵸로마츠 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쵸로마츠 형도 제멋대로인 대국주님을 상대하느라 바쁜 것 같았다. 


“하아… 그래서 뭘 어쩐다구요?”

아~ 이젠 진짜 나도 모르겠다. 포기의 한숨과 함께 묻자 토토코님이 눈을 빛내며 구체적인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3.


“자.”

토토코가 내민 쿠키를 받아든 토도마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방에서 조리하는 것을 지켜본 토도마츠는 못 볼 것을 본 얼굴로 쿠키를 바라보았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쿠키를 보면 조금 전까지 초록색의 끔찍한 오라를 뿜어내는 정체 불명의 물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이거, 식중독 전에 죽지 않을까…’

불안한 눈빛으로 쿠키를 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토도마츠의 등을 툭 친 토토코가 고개를 기울였다.


“안 가 봐?”

“아…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응~, 다녀 와~”

‘될 대로 되라.’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토도마츠가 토토코의 쿠키를 들고 신사를 나와 청산으로 향했다. 




“카라마츠 형, 있어?”

카라마츠의 방 문을 슬쩍 열고 안을 엿본 토도마츠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기분이 풀렸는지 편안한 얼굴로 곰방대를 피우고 있던 카라마츠가 토도마츠를 반겼다. 

방 안을 두리번거리던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의 행방을 묻자, 방금 전 돌아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분 좋게 웃는 카라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오소마츠 형 밖에 없다니까. 카라마츠 형을 달래주는 건.’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앉은 토도마츠가 품에 품고 있던 상자를 내밀었다. 

토토코가 만든 쿠키를 내밀며 토도마츠가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있지, 이거. 인간 마을에서 사 온 건데,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가게 꺼야.”

“아, 고맙다. 이따 먹지.”

“아니! 지금 먹어보면 어때? 일하고 나면 당분이 부족해지잖아?!”

“..? 그래 알겠다. 그럼, 하나만.”

토도마츠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카라마츠는 아무런 의심 없이 쿠키 하나를 집어들어 입에 넣었다. 

바삭바삭 쿠키를 씹는 소리가 들렸다. 꿀꺽- 쿠키를 삼킨 카라마츠가 빙긋이 웃으며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맛있다. 고마워, 토도마츠.”

“으, 응…”

쿠키를 먹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카라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꺼림칙했던 작전이었던만큼, 쿠키가 카라마츠에게 통하지 않는 것에 안도했다.

작전 실패라고 생각하며 토도마츠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 문에 손을 댔을 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가 쓰러졌다.


“카라마츠 형?!?!!!”

놀라 토도마츠가 재빨리 다가가 보자, 얼굴이 파래진 카라마츠가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효과인데도 너무나도 빨리 효과나 나온 것에 당황하며 토도마츠가 급히 텐구들을 불렀다.




“있잖아, 겨우 과자 하나로 이렇게 돼?”

끙끙대며 이불에 누운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에게 물었다. 

카라마츠가 쓰러져 영지 안의 텐구들은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다. 

호들갑을 떨며 독에 당한 건 아닌가, 누가 고의로 카라마츠를 독살하려 했다며 눈에 핏발을 세우는 텐구들을 보며 토도마츠가 일이 커진 것에 두통을 느꼈다. 

확실히 단순한 식중독이라 하기엔 카라마츠가 너무 괴로워했다. 

어딘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걱정한 토도마츠가 결국 오소마츠를 불러왔다. 

텐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영지에 찾아온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이마에 살포시 손을 올리고 신통력을 흘려보냈다. 

방 안의 공기가 정화됨과 동시에 괴롭게 찌푸리고 있던 카라마츠의 얼굴이 한결 풀렸다. 

거칠었던 숨도 조금 안정되어 누워있는 카라마츠는 그대로 잠든 것 같았다. 

고른 숨소리를 내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에게 물자, 토도마츠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 글쎄.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잘…”

“그 과자 한 번 보여줘 봐.”

“없어!! 카라마츠 형이 쓰러지고 상한 건가 싶어서 바로 버렸어.”

“…인간이 만든 과자로 아픈 거면, 내 신통력으로 바로 낫는데 말이지…”

후- 하고 숨을 내쉬며 토도마츠의 말을 의심하지 않은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신통력을 흘려보내도 카라마츠의 증상을 완화할 뿐이지, 병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 

오소마츠는 단순한 식중독에 자신의 신통력이 통하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며 한숨을 쉬었다. 


“저기, 오소마츠 형.”

“응?”

토도마츠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토도마츠를 자신의 손가락을 매만지며 말을 망설이더니 곧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카라마츠 형이 아픈 동안.. 여기서 머물면서 일 좀 도와주지 않을래? 마을을 지키는데 카라마츠 형이 없으면 곤란하고…”

“아, 그것도 그러네… 우응~ 할 수 없지, 알았어.”

싫다고 할 줄 알았던 오소마츠가 너무나 흔쾌히 수락한 것에 토도마츠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항상 신사에서 빈둥거리며, 일하기 싫다고 칭얼대고, 처리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항상 쵸로마츠에게 잔소리 듣는 오소마츠 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토도마츠가 다시 “정말로 해줄 거야?” 하고 재차 묻자 오소마츠가 웃으며 “응!” 하고 가볍게 대답했다. 


그 날 이후, 일주일간 오소마츠의 ‘카라마츠 대리역’이 시작되었다.





4.


“응, 그럼 이건 이대로 해 줘.”

여우가 넘기는 서류를 받아 치비타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도마츠님이 인간 마을에서 사온 음식이 상해 있던 탓에, '식중독'이라는 병에 걸린 카라마츠님을 대신해 여우는 제 분수도 알지 못하고 서류를 하나하나 처리해 나갔다. 

태연한 얼굴로 카라마츠님의 자리에 앉아 글을 읽어 내려가는 모습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항상 신사에 처박혀 놀기만했던 자가 대체 뭘 알며, 뭘 할 수 있을지. 

제 주제도 모르고 감히 카라마츠님의 대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 우스울 따름이다. 

당연히 다른 텐구들도 여우가 카라마츠님의 대리를 하는 것에 반대했지만, 치비타님과 토도마츠님의 명령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보좌를 한다며 멋대로 영지에 처들어온 저 도도메키와 네코마타도 눈엣가시다. 

여우가 무슨 할 일이 있다고 보좌가 필요하단 말인가. 상식을 넘는 여우의 행패에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쇼, 여우님은 오늘 저녁으로 뭐가 드시고 싶다고 하셨어?”

회의를 마치고 복도를 걷고있자, 음식 당담인 친우 신바가 말을 걸었다. 


“하? 그런 것 알까보냐!”

“뭐야~, 그럼 직접 물어야겠네.”

머리를 긁적이며 넉살좋게 웃은 신바가 여우가 있는 방으로 발을 돌렸다. 

대체 저 녀석은 얼마나 넋이 빠졌길래 그 여우를 좋게 대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영지의 텐구들 모두가 여우를 적대하고 있는데, 단 한 번 여우가 동생을 구해준 적이 있다고 해서 저렇게 호의로 대해도 되는 건가? 

애초에 그 한 번도 여우가 변덕으로 도와준 것이 분명하다. 


“쯧, 속 없는 녀석.”

너무 순진한 신바는 여우의 교활함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어리석은 친우를 동정하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앞으로 5일. 

여우는 계속 영지에 머물겠지. 당장 내일이 오지 않거나, 내일 바로 카라마츠님이 낫기를 빌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외로 여우는 능숙하게 서류를 처리했다. 

카라마츠님만큼이나 빠른 처리 속도에 텐구들 모두 놀랐다. 

심지어 여우와 함께 영지에 온 도도메키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거짓말이지… 평소에 좀 이렇게 해라…” 하고 중얼거렸다. 

쌓인 서류는 순조롭게 줄어들어 오전 중에 처리해야 할 서류는 모두 확인을 받을 수 있었다.


“우햐~ 힘드네~”

제 손으로 어깨를 두드리며 여우가 기지개를 폈다. 

옆에 앉은 도도메키에게 웃으며 “점심은 뭘까?” 하고 묻는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카라마츠님은 서류를 모두 처리한 후, 미소지은 얼굴로 우리에게 “모두 수고했다.” 하고 우리의 노고를 치하해 주셨는데, 도대체 저 여우는 품위라곤 찾을 수 없다. 

가볍게 손을 흔들며 처리된 서류를 들고 나가는 치비타님에게 “치비타~, 수고~” 하고 외쳤다. 


“오, 너희도 수고했어~”

방을 나서며 웃은 여우가 말했다. 모두 언짢은 얼굴로 눈썹을 찌푸렸다. 

여우답게 가벼운 언동은 하나하나 눈에 거슬렸다. 

방을 나서는 여우의 뒤를 신바가 따랐다. 

미처 닫히지 않은 문틈으로 신바가 여우에게 말을 거는 것이 보였다. 

뭐라 말하는 신바를 향해 여우가 웃었다. 

신바도 여우를 따라 웃는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뭐가 좋다고 여우와 친하게 지내려는 건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이지만, 신바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좀 더 진실된 모습을 보는게 어때?”

식사를 하며 어린아이도 아는 식사예절을 지키지 않는 여우를 노려보고 있는 나를 향해 신바가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이야?”

“오소마츠님 말이야. 너무 편견에 사로잡혀서 보지 말라고.”

“..저딴 여우에게 ‘님’자 붙일 필요 없잖아.”

“그러니까~, 그런 거 말이야! 그런 시각으로 보니까 카라마츠님도 화내셨던 거고.”

정곡을 찌르는 신바의 말에 말없이 밥을 입에 옮겼다.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푹 한숨을 내쉰 신바도 식사에 집중했다. 

대체 무슨 편견이 있다는 말인지. 

저 여우는 카라마츠님이 수호하고 있는 이 마을에 내려와 다 된 밥에 숟가락 하나 얻은 교활한 놈이다.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라마츠님의 호의를 받아 제멋대로 활개를 치고 다니는 놈이다. 

이 마을은 순전히 카라마츠님의 노력으로 지켜지고 있는데, 

토지신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영광으로 빼앗아가고 있는 여우를 무슨 수로 좋게 보라는 건지. 

혀를 차며 입 안에 넣은 밥을 씹었다. 

항상 카라마츠님의 정결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식사시간이 이렇게나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저녁에 처리해야 할 일을 들고 방으로 향하는 복도. 넓게 펼쳐진 마당 한 가운데 여우의 꼬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 텐구들의 영지에 처들어와 제 집처럼 드나드는 걸로 모자라, 마당까지 나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조심히 발소리를 죽이고 마당으로 나가자 마당에 세워진 바위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어린 텐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우님! 여우님! 이것도요!!”

아이가 고사리 같은 어린 손으로 딴 기다란 풀을 건네자 여우가 웃으며 재주좋게 풀을 엮어 동물 모양을 만들었다. 

강아지로 보이는 풀더미를 받아든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작은 날개를 파닥였다. 

아직 완전히 날개가 자라지 않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일은 없었지만, 아이는 그저 기쁜 것 같았다. 


“여우님! 나도!!”

또 다른 아이가 풀을 내밀었다. 여우는 풀을 받아들어 다시 뭔가를 엮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여우의 손에 들린 풀을 보고 있는 아이의 옆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신바의 동생 토마도 아이들에 섞여 여우를 보고 있었다.


“자.”

“우와!! 고양이다!!”

“여우님…”

고양이 모양의 풀을 건네받아든 아이가 손을 높이 들고 환호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하는 아이의 곁에서 떠난 토마가 여우의 옷자락을 쥐고 당겼다.


“응~? 왜 그래~?”

여우가 몸을 숙여 토마와 눈을 맞추자, 토마가 수줍게 웃으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나, 어부바!!”

“후후후, 토마는 어리광쟁이네~”

여우는 토마의 작은 몸을 들어올려 품에 안은 채, 일어났다. 

아이보다 훨씬 높아신 시야에 토마가 “우와~” 하고 감탄했다. 

등에 솟은 작은 날개가 손상되지 않도록 토마의 엉덩이를 받친 여우가 꼬리를 살랑거렸다. 

아주 약간, 여우를 의심했던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다시 복도에 올랐다. 

여우가 있는 쪽은 여전히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분주했다. 

신바가 말했던 것이 이런 것이었나? 

어쩐지 가슴 한켠에 작은 가시가 박힌 것처럼 신경이 쓰여 인상을 찌푸렸다.





5.


여우가 카라마츠님의 대리를 하고 3일이 되었다. 

오전의 회의와 서류 처리는 막힘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원로들의 호통에도 기죽지 않고 제 할말을 하며 회의를 이끄는 여우의 모습에 다시 봤다는 텐구들의 평이 늘었다. 

게다가 집을 관리하고 음식을 담당하는 식솔들 사이에서도 어쩐지 여우의 평가가 높았다. 

요리를 관리하는 신바의 영향인걸까. 점점 여우에게 호의를 가지는 텐구들이 늘어났다. 

여우에 홀리기라도 한 것인지… 

나만큼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여우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다짐하며 식탁을 치웠다. 

오전의 업무는 모두 끝났다. 

이제 각자 맡은 일을 하다가 저녁에 있을 회의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일정은 끝이 난다. 

잠시 쉴까… 

방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고 있으니 저편에서 토도마츠님이 걸어왔다.


“토도마츠님, 어디 가시나요?”

“아, 응! 잠깐 마을에.”

“또 인간 마을에 내려가시는 겁니까? 위험합니다. 제가 동행할까요?”

“아니, 그렇게 위험하지 않으니까.”

손을 흔들며 거절하곤 다시 현관을 향해 걸어가는 토도마츠님이 걸음을 멈추었다. 

직각으로 꺾인 복도 모퉁이에 가만히 서 있는 토도마츠님의 모습에 나도 발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오소마츠 형!”

“토도마츠, 어디 나가?”

“응! 마을에!”

“그래, 그럼 조심히 다녀와.”

토도마츠님의 앞으로 다가간 여우가 웃으며 토도마츠님의 이마에 입맞추었다. 

대체 뭘 하는 거야?!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보니 여우의 신력이 토도마츠님에게 옮겨져 얇은 결계를 만드는 것이 보였다. 

토도마츠님의 온 몸을 감싼 얇은 결계는 연약해보였지만, 제법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계에 감싸인 몸을 이리저리 둘러본 토도마츠님이 방긋 웃으며 “고마워, 오소마츠형~ 그럼 다녀올게.” 하고 복도를 걸어나갔다. 

여우가 카라마츠님과 카라마츠님의 동생인 토도마츠님, 쥬시마츠님과 친분이 있다는 것은 여우가 카라마츠님의 대리를 한 첫날 알게 되었다. 

너무나 친근하게 여우를 ‘형’이라 부르는 토도마츠님과 쥬시마츠님에 모두 놀랐었다. 

종족이 다른 요괴인데도 거리낌 없이 대하는 여우의 모습에 놀랐다. 

그리고 지금도, 겨우 인간 마을에 놀러가는 것뿐인데, 자신의 신력을 사용해가며 토도마츠님에게 결계를 만들어 주었다. 

겉으로만 친근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응? 무슨 일 있어? 쇼-군.”

“엣?! 아니, 없…습니다.”

갑자기 이름을 불려 놀라 어깨를 떨었다.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여우가 앞으로 다가왔다. 

빤히 내 얼굴을 보며 눈썹을 찌푸린 여우가 내 이마에 손을 대었다.


“어? 열 있나?”

“읏?!”

따뜻한 손의 온기에 놀라 뒷걸음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뭘 의심없이 다가오는 건가?! 이 여우는!! 

여우를 노려보자 여우가 호쾌하게 “응! 건강하네~” 하고 말하며 실없이 웃었다. 

여우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 복도를 걸어나갔다. 

여우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한숨을 쉬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대체 왜 온 몸에 힘을 주고 긴장을 하고 있었던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으니 여우의 말대로 조금 뜨거웠다. 




저녁 회의를 마치고, 깊은 숨을 내쉬는 내 옆에 신바가 섰다. 

“뭐야.” 하고 물으니, 신바는 아무말 없이 웃으며 내 등을 툭툭 쳤다.


“뭐야?”

“이제야 이 형님 말을 듣는구나!”

“하?”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물으니 신바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오소마츠님에 대해서 내가 한 말! 아까 오소마츠님 보는 눈이 조금 부드러워졌던데?”

“…웃기는 소리 하지마.”

“얼레? 아냐?”

“내가 그 여우를 왜.”

콧웃음치며 짜증을 내가 신바가 머리를 긁적이며 “이상하다? 나한텐 그렇게 보였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여우가 오소나서 실없는 소리를 하게 된 신바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자신의 방으로 발을 옮기려는 순간, 뒤에서 치비타님이 나를 불렀다.


“어이, 쇼!”

“네!”

치비타님의 부름에 뒤돌아 뛰어가자, 치비타님이 한 장의 서류를 맡겼다.


“이거, 급한 건데 지금에야 들어와서. 오소마츠에게 건네줘. 아마 지금쯤 카라마츠 녀석의 방에 있을 거야.”

“..네.”

이제 겨우 회의가 끝나 오늘은 더 이상 여우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명에 힘없이 대답하며 서류를 받아들었다. 

아직도 떠나지 않고 옆에 서 있던 신바가 “내가 대신 가줄까?” 하고 물었지만 거절했다. 

여우를 다시 보는 것은 싫지만, 카라마츠님의 방에 있다면 카라마츠님을 뵐 수 있을 터였다. 

카라마츠님의 상태가 얼마나 호전되었는지 알고 싶어 신바의 제안을 거절하고 카라마츠님의 방으로 향했다. 




“..괜찮아?”

얇은 장지문 너머 여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급한 서류이니 바로 문을 열고 건네주면 되는데도, 문 앞에 무릎을 꿇고 귀를 기울였다. 

여우의 목소리에 이어 카라마츠님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아아, 미안. 오소마츠.”

“별로, 괜찮아. 신경쓰지 말고 얼른 회복하기나 해.”

“그래도.. 내 일까지 맡게 만들어서 미안.”

“신경쓰지 말라니까. 내가 맡지 않으면 또 이것저것 걱정해서 제대로 쉴 수 없잖아.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고맙다. 빨리 털고 일어날게.”

“응, 부탁해~”


..문고리에 얹은 손을 뗄수가 없었다.

항상 들어왔던 카라마츠님의 목소리였기만, 어딘가 달랐다. 

낮고 무게있는 평소의 목소리가 아닌, 어딘가 따뜻한, 부드러운 목소리. 처음 듣는 카라마츠님의 목소리와 그와 조화를 이룬 장난기 섞인 상냥한 여우의 목소리가 귀에 울리며 맴돌았다. 

지금 자신이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걸까? 

고개를 숙이자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 보였다. 

있는 힘껏 머리를 흔들어 아직도 멍한 정신을 억지로 깨웠다. 

문고리에 얹고 있던 손을 내리고 심호흡을 한 뒤, 가볍게 장지문을 두드렸다.


“카라마츠님, 쇼입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서류가 남아 찾아뵈었습니다.”

“..아, 들어와라.”

카라마츠님의 목소리에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며시 문을 열었다. 

이불에 앉은 카라마츠님의 옆엔 여우가 앉아있었다. 

카라마츠님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린 후, 여우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를 받아든 여우가 조용히 서류를 읽더니, 카라마츠님의 앞에 가져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서류의 일을 물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카라마츠님이 서류를 보며 여우의 이야기를 듣곤 은은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우도 카라마츠님을 향해 살포시 미소짓곤, 내게 다시 서류를 내밀었다.


“응, 이대로 처리하면 된다고 치비타에게 알려줘.”

“네!”

“참, 그리고.”

“네?”

서류를 받자마자 나가려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우는 나를 보며 빙긋- 웃곤, “쇼, 몸은 좀 괜찮아? 아까 열 있었잖아.” 하고 물었다. 

이유도 없이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져 “괜찮습니다!” 하고 급히 대답을 하고 도망치듯 방을 나왔다. 

불을 쬔 것처럼 한없이 뜨거워지는 얼굴에 당혹감을 느끼며 차가운 복도를 언제까지고 뛰었다.





6.


상태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어제는 대체 왜,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웠던걸까. 

잠을 자려 이불에 누워도 떠오르는 것은 여우의 얼굴로, 밤새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카라마츠님의 방을 나오기 전, 여우가 보여주었던 그 ‘미소’가 무슨 짓을 해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여우의 미소가 흰 종이에 떨어진 한 방울 먹물처럼, 그 존재를 과시하며 천천히 그리고 착실하게 머릿속을 좀먹어가고 있다. 

잠을 자지 못해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드물게 아침 회의가 없다. 

자신의 자리에 앉아 식탁을 내려보았다. 먹음직스럽게 상 가득 펼쳐진 음식들을 보아도 딱히 식욕이 들지 않았다. 

정말로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혼란과 당혹감을 넘어, 스스로의 사고에 지쳐버렸다. 


“하아…”

“어이, 쇼. 땅 꺼지겠다.”

“신바. 난 아마 내일 죽을지도 모르겠다.”

“하?”

“아니, 오늘 안으로 죽을지도.”

“무슨 소리야?”

어이없다는 얼굴로 한쪽 눈썹을 찌푸린 신바가 젓가락을 들었다. 

이 이상 말을 늘어놓아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세월의 사귐으로 알고 있기에, 신바를 따라 젓가락을 들었다. 

밥을 떠 입에 넣고 반찬을 하나 집어들어 입에 넣었다. 


‘맛있어?!’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이 방에 있는 모든 텐구들의 마음 속 외침이 들린 것 같았다. 

모두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젓가락을 입에 문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옆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모습에 절로 푸핫!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목으로 넘기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맛을 음미하고 씹어 넘긴 후, 미소시루를 마셨을 때 또다시 모든 텐구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바…”

“응?”

“너, 하루만에 이렇게까지 요리실력이 늘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 아니, 이거 내가 한 거 아니야.”

마침 옆에 요리담당인 신바가 있었기에 묻자, 신바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신바가 하지 않았다면 대체 누가? 

궁금증에 휩싸여 빤히 바라보자 씨익- 장난기가 묻어나오는 미소를 지은 신바가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요리는 오소마츠님이 직접 하신거야!!

“!!!”

온 방안에 울려 퍼지는 신바의 충격적인 말에 말을 잃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놀라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자가 있는가 한편, 저도 모르게 날개를 활짝 펼쳐 양옆의 텐구들을 쓰러뜨린 자도 있고, 모든 행동을 멈추고 젓가락을 떨어뜨린 자도 있었다. 

백년 가까이 살았지만, 지금까지 먹었던 미소시루 중에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깊은 맛. 

말을 잃은 채, 신바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능글능글한 얼굴로 웃고 있는 신바와 눈이 마주쳤다.


“어때? 오소마츠님의 손요리의 맛은?”

마치 자기가 직접한 요리마냥 자랑스럽게 웃으며 묻는 신바를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신바의 얼굴을 보아 또 실없는 소리를 할 것 같았다.


“오소마츠님, 대단하지?”

역시 실없는 소리다. 콧웃음치며 “별로.” 하고 대답한 후, 다시 젓가락을 분주히 움직였다. 

평소엔 밥 한공기로 배가 부른데도, 오늘 아침은 3공기나 먹고 말았다. 

그것은 다른 텐구도 마찬가지여서 식사시간이 끝나자, 방을 나서는 텐구들은 모두 괴로운 얼굴로 지나치게 부른 배를 붙잡고 문을 나서야했다.




카라마츠님이 안 계신데도, 여우에 의해 오늘자 일도 막힘없이 해결되었다. 

저녁 최종 회의도 무사히 끝이 나, 방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다가 시야 한구석에 걸린 황금색에 걸음을 멈췄다. 

황금빛을 쫓아 고개를 돌리니 여우가 마당 한켠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에 들어서 짧아진 낮은 아직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하늘에 검은 먹물을 부었다. 

깜깜한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여우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올렸다. 

 보고 있는걸까? 

한참을 바라보아도 반짝이는 별과 고고히 땅을 비추고 있는 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썹을 올리며 다시 방으로 향하려는 순간, 파닥거리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한 마리의 까마귀가 마당을 향해 날아왔다. 

여우가 까마귀를 향해 팔을 뻗자, 까마귀가 날갯짓을 빠르게 반복하며 속도를 줄여 여우의 팔에 앉았다. 

부드럽게 까마귀를 쓰다듬으며 팔을 접어 까마귀와 눈을 맞춘 여우가 완온이 웃으며 까마귀에게 뭐라 속삭였다. 

까마귀가 여우의 말에 날개를 퍼덕이며 화답했다. 이윽고 까마귀는 다시 까만 밤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까마귀가 날아간 곳을 응시하던 여우가 몸을 돌렸고, 여우를 바라보고 있던 나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

“응? 쇼? 무슨 일 있어?”

“아, 니요. 없습니다. 오소마츠님, 방금 그 녀석은?”

카라스(까마귀)텐구의 영지답게 영지 안에는 까마귀들이 많았다. 

그들 역시 우리의 식솔이었고, 부하였다. 

매일 얼굴을 맞대는 이 산의 까마귀들의 얼굴을 전부 알고 있는 나는 방금 전 까마귀가 우리 영지에 살고 있는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물음에 여우는 귀를 까닥이며 해족이 웃으며 대답했다.


“쿠로야~ 내 사역마인. 카라마츠도 없으니까 마을 안을 한번 쭉 돌아보고 오라고 시켰어.”

“혹시 매일 그렇게 까마귀를 시켜서 마을을 확인하셨나요?”

“응? 응.”

내 질문에 여우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우에게 있어서 내 질문은 지극히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항상 신사에 틀어박혀 놀고 먹으며, 모든 일은 우리에게 맞기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진실이었다면, 이렇게 카라마츠님을 대신해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없겠지. 

결국 내가 그동안 여우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이 단순한 선입견에, 치졸한 오만이었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스스로가 너무나 부끄러워져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고개 숙여 숨기고 오소마츠님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지금까지 내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봤는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얼굴로 여우는 해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마당을 빠져나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뜨거워진 얼굴에 한숨을 내쉬었다. 

부끄럽다. 카라마츠님의 말도, 신바의 말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자신의 속좁음에 치가 떨린다. 

자신의 생각에 한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진실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항상 색안경을 끼고 오소마츠님을 대했던 과거의 자신을 때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역시 오늘밤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7.


커다란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영지 내의 누각 하나가 불에 휩싸였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모두 말을 잃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이 까맣게 덮일 정도로 많은 수의 텐구들이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부로 이곳은 이 몸, 쿠라마텐구의 승정방의 땅이다! 당장 내 땅에서 모두 떠나라!!”

쩌렁쩌렁하게 산을 울리는 외침에 방금 전의 불 공격이 선전포고라는 것을 이해했다. 

나와 같은 젊은 텐구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텐구들 사이의 ‘세력 싸움’이 지금 시작된 것이다. 

쿠라마텐구라면 텐구들 사이에서도 그 힘과 세력이 가장 강한 텐구 일족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우리에게 승기는 없었다. 

하지만, 건방지게 우리의 터전을 빼앗으려는 적의 등장에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일제히 날아올랐다. 

공중에 날아오른 텐구들 사이에 치비타님이 선두에 섰다. 


“모두 공격!!!”

치비타님의 외침에 모두 힘차게 날개를 움직여 쿠라마텐구들에게 돌진했다. 

순식간에 하늘은 까맣게 뒤덮여 혼란의 장이 되었다. 

우리보다 몸집이 큰 쿠라마텐구를 무찌르기 위해 쿠라마텐구에게 여러명의 젊은 텐구들이 달라붙었다. 

제대로 무기도 챙기지 못한 우리와 달리 단단히 무장을 한 쿠라마텐구들의 손에 하나 둘씩 우리들은 땅으로 추락했다. 

다른 일족에 비해 이제 겨우 백년, 이백년 정도의 젊은 텐구들로 이루어진 우리 일족은 무참하게 쿠라마텐구의 공격을 받아 떨어져갔다. 


“크악!”

신바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정신을 잃은 신바가 빠른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재빨리 싸우고 있던 쿠라마텐구를 밀치고 신바에게로 날아갔다. 

신바의 몸이 땅에 떨어져 부서지기 직전에 겨우 손을 잡아 낚아채, 천천히 땅에 눕혔다.

다시 교전 중인 하늘로 내려가려했지만, 급하게 낙하한 탓에 날개가 떨리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제야 온 몸의 상처들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이제 쿠라마텐구들 밖에 남지 않았다. 

영지 곳곳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동료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럴 때, 카라마츠님이 계셨다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용케 결계를 깼네.”

땅을 주먹으로 치며 오열하고 있는 내 귀에 한 줄기 구원과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자 오소마츠님이 서서 기세등등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쿠라마텐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딴 결계, 이 대텐구 카즈나리님이 깨지 못할리 없지!! 약해 빠진 결계더군~? 흐물흐물하던데?”

“…호오?”

공중에 가득 여우불을 만들며 오소마츠님이 얼굴을 찌푸리고 웃었다. 

여우불에 긴장을 세우고 전투 태세를 갖춘 쿠라마텐구들이 습격하기도 전에, 자비없이 여우불은 쿠라마텐구들을 감쌌다. 

커다란 불길에 휩싸인 쿠라마텐구들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온 산에 울렸다. 


“이 놈!! 잘도 내 부하들을!!!”

“먼저 공격한게 누군데?!”

8척은 족히 넘어보이는 이지창*을 휘두르며 자신을 대텐구라 지칭한 쿠라마텐구가 오소마츠님께 날아들었다. 

*이지창 : 갈퀴가 2개 있는 창. 갈퀴가 3개 있으면 삼지창.

여유있게 뻗어오는 창을 피한 오소마츠님이 다시 대량의 여우불을 만들어 일제히 텐구에게 꽂았다.

커다란 굉음과 파랬던 하늘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 정도로 커다란 불길이 일었다.


“하하하!! 간지럽구나!!”

“…쯧!”

불길이 사그라들었지만, 쿠라마텐구는 여전히 하늘 위에 서 있었다. 

 있는 옷이 군데군데 그을었지만, 쿠라마텐구는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을 것 같았다. 

낮게 혀를 찬 오소마츠님이 다시 여우불을 만들었다.


“그딴 불꽃! 몇 백개를 만들어내도 소용 없다!!”

쿠라마텐구가 이지창을 휘두르자 거센 바람이 불어 오소마츠님의 여우불을 흔들었다. 

여전히 타오르고는 있지만, 바람에 여우불의 기세가 한결 작아졌다. 

작아진 자신의 여우불을 보며 부들부들 몸을 떤 오소마츠님의 얼굴이 돌변했다.


“열 받아…”

“우하하하하, 이걸로 마지막이다!!”

오소마츠님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든 쿠라마텐구가 불쑥 멈추어 멍청히 오소마츠님을 바라보았다. 

환한 빛이 오소마츠님의 신체를 감싸더니 이내 황금빛의 4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가 나타났다. 

찬란한 그 모습에 오소마츠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소마츠님이 여우의 모습이 됨과 동시에 오소마츠님 주변에 떠 있던 여우불의 크기가 커졌다. 

본래 크기의 2배, 아니 3배로 커진 여우불이 활활 붉게 타오르며 오소마츠님의 주변을 떠다녔다. 

여우불의 크기에 놀란 쿠라마텐구가 숨을 들이마셨다.


“..자, 잠깐!!”

“…”

입가를 씰룩거리며 손을 든 쿠라마텐구를 향해 커다란 여우불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온 산과 땅을 울리는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커다란 불기둥이 산을 통째로 집어 삼킬 것처럼 타올랐다. 

한참을 타오른 불기둥이 서서히 사그라질 즈음, 완전히 검게 그을린 쿠라마텐구가 땅으로 추락했다. 


“휴…”

한숨을 내쉬며 하늘에서 내려온 오소마츠님은 즉시 영지 아래 땅의 지맥에 자신의 신기를 흘려넣었다. 

땅에 쓰러진 텐구들의 아래에 지맥을 타고 흐른 오소마츠님의 신력이 발해 순식간에 텐구들의 상처를 치료해갔다. 

중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신바도 곧 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리가, 이긴, 건가..?”

묻는 신바에게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얼굴을 보고 피식 웃은 신바가 “다행이다..” 하고 말을 마치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것처럼 쓰러진 신바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모든 상처가 사라진 것에 안도하며 신바를 안아 들었다. 

나와 같이 그나마 상처가 가벼웠던 텐구들도 벌떡 일어나 아직 정신을 잃은 텐구들을 집 안으로 옮겼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습격은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엉망이 된 영지의 마당을 보수하고 불에 탄 누각의 뒷처리도 빠르게 이루어져 두 시진(약 2시간)이 지났을 무렵엔 습격이 있었다는 흔적은 말끔히 사라졌다. 



“모두 괜찮아?”

한 방에 모여있는 부상자들을 둘러보며 오소마츠님이 물었다. 

쿠라마텐구를 몰아내느라 많은 힘을 소진한 탓인지 인간의 모습이 아닌 여우 본연의 모습을 한 오소마츠님의 질문에 모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맥에 흘려준 오소마츠님의 신력 덕분에 중상은 모두 나았다. 

우리의 몸에 남은 것은 자잘한 생채기 정도로 하루 이틀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진 상처들이었다. 

다시 쭉 우리를 둘러보며 푹-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님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달달하게 퍼지는 오소마츠님의 음성에 몸이 떨렸다. 우리를 향한 오소마츠님의 부드러운 시선이 온 몸을 감싸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카라마츠님과 함께 있었을 때, 오소마츠님이 보여준 그 미소가 다시 떠오르며 눈 앞에 서있는 황금빛의 고고하고 아름다운 여우를 언제까지고 바라보았다.





8.


쾅!! 하고 온 땅을 울리는 폭발음과 하늘까지 솟은 불기둥에, 머릿속의 이성이란 녀석이 “때려쳐라! 때려쳐!!” 하고 외치며 뛰쳐 나갔다. 

멍청히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다 옆에서 들려오는 “오, 오소마츠 녀석. 단단히 화가 났구만!!” 하고 태평한 목소리에 신음했다.


“아니!!! 해도 너무하잖아요!!!! 대국주님~~!!!!!!”

내 외침에도 대국주님은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왜 이렇게 된건지 정리했다. 

토토코의 음식-음식이라는 이름의 독극물- 덕분에 오소마츠 형이 카라마츠를 대신하게 되었다. 

건 작전대로. 그리고 오소마츠 형은 웬일로 성실하게 일해서 텐구들 사이에서의 평가도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토도마츠가 “좀 더 확실한 자극이 필요해!” 하고 말을 꺼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대국주님이 오랜 지인인 대텐구님께 연락해서…


“전부 토도마츠 네 탓이냐아아아!!!!”

“왜 내 탓?! 나도 설마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고!!!!”

토도마츠의 멱살을 잡고 흔들자, 토도마츠도 울상이 된 얼굴로 외쳤다. 

미리 대텐구가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토도마츠는 청산의 맞은편, 우리 신사에서 느긋하게 우리와 함께 청산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내 부르짖음에 토도마츠도 얼굴을 흔들며 울먹였다. 

완전히 수라장이 된 우리 둘을 말없이 바라보던 이치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쥬시마츠는 쥬시마츠대로 활짝 웃으며 “아하하!! 다 불탔네!!” 하고 밝게 외쳤다. 

대국주님이 미리 결계를 쳐놓아 인간 마을에 피해는 가지 않았지만!!! 


“진짜로.. 이 이상 일을 벌리지 말아 주세요…”

토도마츠에게 아무리 역정을 내도 이미 벌어진 일.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국주님게 부탁드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오냐, 오냐.” 하는 가벼운 대답뿐이었다. 

이 망할 할아범. 대국주만 아니면 이 자리에서 당장..!! 

뿌득뿌득 이를 갈고 있는 내 어깨에 통- 손을 올려놓은 이치마츠가 “진정해. 쵸로마츠 형.” 하고 말했다. 

이치마츠의 머리 위에 솟은 한 쌍의 귀가 축 처진 것을 보고 천천히 심호흡을 해 마음을 진정시켰다. 

완전히 혼란 상태가 되어 머리를 싸매고 주저앉아 떨고 있는 토도마츠를 달랜 뒤, 대국주님께 뭐라 불평을 하려 입을 연 순간, 대국주님 만큼이나 대책없이 유쾌한 목소리가 신사에 울렸다.


“이햐하하하하하!!! 저 놈 제법이고만!!!”

종이 식신으로 만들어낸 쿠라마텐구들과 함께 청산으로 위풍당당하게 날아갔던 대텐구님이 완전히 숯검댕이가 되어 돌아왔다. 

아아아, 오소마츠 형. 적당히 좀 하지!!!!! 

완전히 까매진 옷에 울상을 지으며 “죄송합니다. 저희 바보 토지신이…” 하고 사죄드리자, 방긋 웃은 대텐구님은 호쾌하게 “괜찮네!!” 하며 웃었다. 

어느새 대국주님까지 대텐구님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고는 뭐가 그리 신난지 아주 턱이 빠져라 웃었다.


“이야~, 저 놈 여우로 썩히긴 아까운 놈이고만!!”

“그렇지!!! 우리 아들내미가 좀 대단하긴 해!!”

“게다가 생긴것도 얄상하니 이뿌더만!!!”

“그렇지~?!”

뭐야, 저 바보 아버지와 그의 유쾌한 친구 같은 대화는… 

바보 같은 이야기꽃을 피운 대국주님과 대텐구님은 순식간에 신사 마당에 술판을 펼쳤다. 

부어라 마셔라 하고 술을 들이붓는 둘을 보며 몸을 떨었다.


“그래!! 저 놈을 우리 아들내미랑 혼인시키면 어떨까?! 내 뒤를 이을 녀석인데 말이야!!”

“어허~, 안 돼지!! 우리 아들내미한텐 이미 짝이 있으이!!”

“에이~ 그런 것, 끊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안 된대도~”

“우햐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카라마츠가 들으면 등골이 오싹할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저 둘은 무시하고, 청산을 바라보고 있는 토토코에게 시선을 돌렸다. 

토도마츠의 옆에 가만히 서 있는 토토코도 딱히 뭔가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았다. 

“이치마츠, 오소마츠 형에게 가보자.”

“응.”

“나도!! 나도 가겠슴다!!”

이치마츠를 부르자 쥬시마츠도 팔을 들어 힘차게 흔들며 외쳤다. 

가라앉을줄 모르는 쥬시마츠의 활발함에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도마츠에게도 시선을 주었지만, 토토코와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건지 이쪽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뭐, 놔두면 알아서 돌아올 녀석이니 지금은 놔두자. 붉게 물든 하늘은 다시 푸른 쪽빛을 띠고 있었다. 

푸르고 넓은 하늘 아래 우뚝 서 있는 청산을 향해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9.


대텐구가 습격한 이후, 텐구들 사이에서의 오소마츠의 평가는 일변했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대리를 하는 동안 서서히 늘어난 오소마츠를 향한 호의가 순식간에 치솟아, 영지내의 모든 텐구들은 오소마츠를 진정으로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텐구의 칩임에 아직 다 낫지 않은 몸을 일으켜 싸우려는 카라마츠는 말리느라 늦은 오소마츠는 멋지게 대텐구를 몰아냈고, 부상당한 텐구들의 상처를 모두 치료해 주었다. 

오히려 평판이 좋아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 

텐구의 침입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질 즈음엔 카라마츠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시 카라마츠가 수장의 자리에 복귀하는 것을 축하하고, 대텐구를 완전히 몰아낸 것을 자축하는 파티 한 가운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가 몰려드는 텐구들의 감사 인사를 받느라 한창이었다. 

저마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앞으로 다가와 카라마츠에겐 완쾌의 축하를, 오소마츠에겐 감사의 인사를 하는 통에 오소마츠는 정신이 없었다. 

한꺼번에 몰려와서 한번에 인사하면 좋으련만, 텐구들은 하나같이 딱딱한 격식을 차리며 오소마츠에게서 한 발자국 거리를 두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줄을 이은 텐구들의 인사가 반복될수록 오소마츠의 얼굴에선 지루함이 서서히 꽃폈다. 

카라마츠도 오소마츠의 표정을 살피고 쓰게 웃으며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오소마츠, 조금만 더 참으면 끝난다.”

“응~, 빨리 끝내고 놀고 싶은데~”

오소마츠를 자신 쪽으로 끌어 당겨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인 카라마츠를 보며 미소지은 오소마츠가 작게 투덜거렸다. 


“오소마츠 형.”

“아, 쵸로마츠!!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잠깐, 신사에 놓고 온 게 있어서…”

“그래? 토도마츠는?”

“곧 올거야.”

오소마츠의 곁으로 다가간 쵸로마츠가 그 옆에 섰다. 

오소마츠의 보좌인 자신의 지정자리인 오소마츠의 옆에 선 쵸로마츠가 아직도 길게 줄지어 선 텐구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욕할 때는 언제고…’

백년이 넘어가도록 오소마츠를 험담하기 바빳던 텐구들이 대텐구의 침입 한번에 얼굴을 싹 바꾸고 오소마츠에게 감사를 퍼붓는 것이 쵸로마츠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린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쓴웃음을 짓는 동안, 고양이로 몸을 바꾼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치마츄~, 어서 와.”

“응, 다녀왔어. 오소마츠 형.”

제 품에 안긴 이치마츠를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이치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골골 울었다. 

이치마츠의 접근에 딱딱하게 굳었던 카라마츠가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는 이치마츠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도 흘깃 카라마츠에게 눈길을 주었으니,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은 채 오소마츠의 품 안에 가만히 안겨있었다.

 

‘카라마츠가 아팠다고 봐주는 건가?’

항상 카라마츠만 보면 으르렁거렸던 이치마츠가 조용한 것에 놀라며 쵸로마츠가 중얼거렸다. 

토토코의 괴상무시한 음식으로 꼬박 일주일 가까이 앓아누웠던 카라마츠를, 티는 내지 않았지만 이치마츠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피식- 하고 솔직하지 못한 동생을 보며 웃음을 흘린 쵸로마츠의 옆에 토도마츠가 섰다.


“우왓! 깜짝이야.”

“헤헤헤.”

“언제 왔어?”

“아까~”

쵸로마츠의 옆에 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게 인사하고 있는 텐구들을 응시한 토도마츠가 쵸로마츠에게 쥬시마츠의 행방을 물었다. 

쵸로마츠는 음식이 가득 쌓인 상 앞에서 흡사 아귀(餓鬼)처럼 음식을 흡입하는 쥬시마츠를 가리켰다. 

쥬시마츠의 옆에 서서 빙긋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토도마츠도 밝게 웃었다. 


“아, 쇼!”

“감사합니다, 오소마츠님. 오소마츠님 덕분에..”

“응, 그런건 됐으니까! 상처는 다 나았어?”

“네! 오소마츠님 덕분에!”

“그래~ 다행이네~”

“..네.”

꼬리를 살랑이며 눈 앞에 선 텐구의 안부를 묻는 오소마츠가 다정하게 웃었다. 

바로 눈 앞에서 오소마츠의 미소를 본 쇼는 잔뜩 붉어진 얼굴을 숨기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가 그리 반가운지 오소마츠가 쇼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묻는 동안, 쇼는 오소마츠와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천천히 대답했다. 

귀까지 빨개진 텐구를 보며 토도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이거 또 오소마츠 형 신자 하나 생기겠네.’ 

오소마츠가 묻는 질문에 모두 대답한 쇼가 재빨리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를 피했다. 

멀어져가는 쇼의 등을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좌우로 힘차게 흔들거리던 오소마츠의 꼬리가 천천히 그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바닥에 축- 늘어졌다.


“쇼, 내가 싫은가?”

“아니, 그 반댈걸?”

“반대?”

순진한 얼굴로 묻는 오소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쓴웃음을 짓고는 화제를 바꿔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이제 오소마츠 형도 텐구들에게 인정받았겠다. 혼례는 언제 올릴꺼야?”

“톳, 토도마츠!?”

“아, 그러고보니 아직 혼례 안 올렸네…”

토도마츠의 말에 당황한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망연히 중얼거렸다. 

오소마츠의 말에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벙긋거렸다. 

황당하단 두 동생을 보며 오소마츠가 빵긋 웃었다.


“까먹고 있었어~ 에헷~”

“‘에헷~’이 아니야 이 망할 신!!!!”

혀를 내밀고 웃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친 쵸로마츠가 머리를 잡았다. 

쵸로마츠에게 맞아 생긴 혹을 문지르며 오소마츠가 “아프잖아!! 이 딸딸마츠!!!” 하고 외쳤지만, 쵸로마츠의 싸늘한 눈빛만이 돌아왔다.


“우와, 쵸로마츠 저 녀석. 신을 노려보다니 있을 수 없다고~”

“오소마츠도 잘한 건 없다.”

입을 삐죽 내밀고 툴툴대는 오소마츠에게 다가간 카라마츠가 혹이 난 머리를 문질러주며 말했다. 

“에~” 하고 볼을 부풀리는 오소마츠를 보며 빙긋 웃은 카라마츠가 다시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고 끌어당겼다. 

저항없이 카라마츠의 품에 안긴 오소마츠의 꼬리가 다시 너울댔다.


“혼례를 올리고나면 오소마츠 형은 어디서 지내? 신사? 여기?”

문득 생각났다는 얼굴로 토도마츠가 물었다. 오소마츠는 “음-“ 하고 잠시 고민하더니 생글 웃으며 “당연히 여기지!” 하고 대답했다. 


“아니, 안 ㄷ…”

“안 된다!”

“엥?”

손을 들어 반대하려던 쵸로마츠를 막고 카라마츠가 외쳤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카라마츠의 반대에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왜?? 오소마츠 형하고 같이 살 수 있다고? 카라마츠 형.”

토도마츠가 크게 뜬 눈을 깜빡이며 묻자 카라마츠가 시선을 돌려 누군가를 흘겨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된다. 차라리 내가 신사에게 같이 지내는 건 어때?”

“아? 죽인다 개똥마츠.”

카라마츠의 제안에 즉각 이치마츠가 대답했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이치마츠가 오붓하게 지내고 있는 신사에 카라마츠가 들어온다니. 죽어도 싫다는 얼굴로 카라마츠를 노려보며 이치마츠가 입을 열었다.


“그냥 이대로 지내면 되잖아.”

“뭐, 그렇네~”

이치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는 당황해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토도마츠를 이끌고 음식이 잔뜩 차려진 상으로 달려갔다. 

대텐구를 몰아내는데 너무 많은 힘을 소비한 탓에 배가 고팠다. 

산의 정기로도 충분히 힘을 채워지지만, 식사에 맛을 들인 오소마츠는 밥을 먹지 않으면 제대로 힘이 돌아온 것 같지 않았다. 

음식을 향해 눈을 빛내며 달려나가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왜 반대하는데?”

“…오소마츠를…”

“응?”

카라마츠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쵸로마츠는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의 시선이 꽂힌 자에게 눈길을 주었다. 

카라마츠의 시선 끝엔 방금 전, 새빨개진 얼굴로 오소마츠의 질문에 대답했던 젊은 텐구가 있었다. 

행복하단 얼굴로 음식을 입에 넣는 오소마츠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젊은 텐구를 보며 쯧! 하고 혀를 찬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다가가며 한 마디를 흘렸다.


“오소마츠를 좋아하는 녀석이 있는 이 곳에, 오소마츠를 이 이상 머물게 할 생각은 없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자신의 동료, 식솔들에게도 독점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헛웃음을 흘렸다. 

텐구들 사이에서는 인망 높고 존경받는 수장이지만, 속내는 오소마츠를 향한 어린애와 같은 독점욕으로 점철된 사내라는 것을 모르는 텐구들에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며 쵸로마츠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게 노을로 물든 하늘은 어제와 같이 너무나 평화롭게 여우골 위에 떠 있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제 완결편 하나 남았네요^^




2016년 블로그 결산이라는 기능이 있는걸 이제야 봐서 한번 해봤습니다!!


댓글 수 상위 3% 나왔네요!!


제 블로그에 들려주시고 또 꾸준히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자기만족으로 시작한 블로그였는데, 제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많아서 정말로 감사했고, 

즐겁게 글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벌써 2017년이 된지 10일이나 지났지만ㅎㅎㅎ

2016년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올릴 생각이니 많이 찾아주세요!!


그리고 제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티스토리 아이디가 없어도 댓글을 달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귀찮지 않으시다면, 시간이 되신다면 댓글 남겨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2017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S. 여우골 10편은 늦어도 토요일까지는 올리겠습니다!


* 오랜만에 여우골이네요ㅎㅎ


* 9편입니다! 이제 완결까지 2편 남았네요!!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굵은 눈송이가 하나둘 마당에 내려앉아 쌓였다

서서히 하얀색으로 덮여가는 마당을 보며 입김을 내뿜은 쵸로마츠가 찬 공기가 들어오지 않게 문을 꽉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알 길이 없는 코타츠에 몸을 묻은 오소마츠가 느긋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기분 좋게 쳐진 황금빛의 귀가 살며시 움찔거리며 쵸로마츠가 내는 발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오소마츠의 맞은편에 앉아 차를 후르륵 마시며 쵸로마츠가 편안하게 숨을 내쉬었다.


올해도 다 갔네~”

그러게-”

쵸로마츠의 말에 맞장구치며 오소마츠가 눈을 감았다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것 같은 나긋한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쵸로마츠가 피식- 웃었다

오소마츠의 양 옆에 자리를 잡은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토도마츠가 인간 마을에서 사온 과자를 집어 먹으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펑펑 내리는 눈은 한동안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아예 높이 쌓이면 좋겠다.”

본래 추운 지방에서 살고 있었던 탓인지, 체질 덕인지 코타츠에 들어가지 않고도 멀쩡하게 앉아있는 토도마츠가 중얼거렸다

토도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

쌓이면 처리가 귀찮아. 지붕 위에 쌓인 눈도 올라가서 치워야 하고…”

우와~ 쵸로마츠 형. 완전 재미없어…”

쵸로마츠의 말에 이번엔 토도마츠가 얼굴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 하고 짜증을 내는 쵸로마츠를 뒤로하고 이치마츠가 몸을 일으켜 순식간에 고양이로 변모했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오소마츠의 무릎 위로 파고 든 이치마츠를 오소마츠가 빙그레 웃으며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눈을 감고 골골거리며 오소마츠의 손길을 만끽하면서도 이치마츠는 슬쩍슬쩍 눈을 떠 오소마츠의 옆에 앉은 카라마츠를 견제했다

다른 동물보다 체온이 높은 새에 근본을 두고 있는 카라마츠는 토도마츠와 마찬가지로 코타츠에 들어가지 않고, 방석에 앉아있었다

옆에 놓인 귤 바구니에서 귤을 하나씩 까서 오소마츠의 입가에 대주는 카라마츠가 이치마츠가 뿜어내는 검은 오라에 몸을 움찔였다

, 치마츠도 먹을 건가?” 하고 말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더 사나워진 이치마츠의 째림뿐이었다

물을 삼키고 오소마츠에게서 한 발자국 멀리 떨어진 카라마츠가 날개를 축 늘어뜨렸다

치마츠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진 못해도 일일이 귤을 까서 오소마츠에게 먹여주는 카라마츠를 질렸다는 눈으로 보며 쵸로마츠가 차를 마셨다

문득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새끼 손가락에 비친 붉은 실의 흔적에 -” 하고 작은 숨을 내쉬었다

대국주가 불시에 방문해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저 옛날의 일인 것 같이 멀게 느껴졌다

다행히 카라마츠를 인정해준 대국주가 둘의 연을 엮어 부부로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부부의 연을 맺게 되고, 계절 하나가 지났건만 둘은 혼례를 올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 오소마츠 형이 행복하면 되었나.’

빈 찻잔을 코타츠에 살며시 내려놓으며 쵸로마츠가 눈을 감았다

추운 겨울날,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는 이 순간을 만끽하며 쵸로마츠가 창고에서 귤을 더 가져오기 위해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

거대한 소리를 내며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스멀스멀 찬 공기가 방안을 침투해 들어왔다

고요한 방 안에 급작스럽게 크게 울린 문소리에 이치마츠가 팔짝 뛰어 오소마츠의 무릎에서 카라마츠의 어깨로 올라탔다

모두의 이목이 열린 문으로 집중된 가운데, 옅은 홍색의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잔뜩 성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성의 신원을 확인한 쵸로마츠가 다시 한바탕 몰아칠 파란을 예감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2.


오소마츠 군, 바보오오오오~!!!!!!”

거나하게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은 토토코를 오소마츠가 난처한 얼굴로 달래었다

난데없이 벌컥 문을 열고 나타나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기 시작한 토토코를 보며 쵸로마츠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알아서 분위기를 파악한 동생들은 모두 방을 나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오소마츠는 뻘뻘 땀을 흘려가며 울고 있는 토토코를 어르고 달랬지만, 토토코는 여전히 굵은 눈물 방울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여우 중의 여우라니까, 정말로..’

애처로울 정도로 큰 소리로 통곡하는 토토코를 보며 쵸로마츠가 냉정히 생각했다

여우란 것이 교활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쵸로마츠가 알고 있는 여우 중에서는 토토코가 가장 여우다웠다

지금도, 저렇게 서럽게 울고 있지만 본심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넘어진 귤 바구니를 주워 정리한 쵸로마츠가 토토코에게 다가갔다

차분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쵸로마츠와 눈이 마주친 토토코가 우는 소리를 더 높였다.


오소마츠 군은, , 이제 나 같은, 거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이이이!!!”

아니야, 토토코~ 그럴 리 없잖아~”

그럼 왜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해준거야아아아아아~~~~!!!!!”

눈물을 닦아주려는 오소마츠의 손을 뿌리치고 엉엉 울며 토토코가 외쳤다.


이젠, 나 같은 거~~!!!”

아니라니까~~ 토토코가 바쁜 거 아니까, 나중에 한가해지면 찾아가려고 했어!!”

귀를 늘어뜨리고 변명하는 오소마츠를 가만히 본 토토코가 그제야 서서히 울음을 멈추었다.


, , 정말로?”

그래! 내가 토토코를 잊을 리 없잖아!”

그럼 왜 약혼했다고 말 안 해주는데에에에에!!!! 방금 전에 대국주님에게 들어서 알았다고!!!”

퍽퍽- 오소마츠의 어깻죽지를 치며 이제 나는 안중에도 없지?!!!” 하고 따지는 토토코와 미안한 얼굴로 말없이 주먹을 맞고 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매로 토토코의 눈물을 닦아준 오소마츠가 미안해~~” 하고 사과하자, 겨우 울음을 그친 토토코가 불을 부풀렸다.


정말로 미안하다고 생각하는거지!”

당연하지.”

그럼, 알겠어. 나 당분간 여기서 있을래!!”

“..에에

뭐야?! 안 돼!?”

아니! !! ~전 괜찮아!! 얼마든지 있다 가!!”

눈물로 촉촉해진 눈을 가늘게 뜨고 오소마츠를 흘겨보는 토토코의 날카로운 말에 오소마츠가 식은땀을 흘리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토토코와 오소마츠의 대화를 들으며 손님방을 하나 준비할 생각에 푹- 큰 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몸을 돌렸다.


“…, 라마츠..?”

“….”

너무나 조용하게 서 있어, 눈이 마주치는 지금 이 순간까지 이 방안에 카라마츠가 있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쵸로마츠가 사색이 되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토토코와 오소마츠를 보는 카라마츠는 고요히 분노하고 있었다

카라마츠의 주먹에서 힘없이 뭉그러져 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귤이 눈물처럼 즙을 흘렸다

다다미 바닥에 떨어지는 귤즙을 보는 쵸로마츠에게 다시 두통이 찾아왔다.


카라마츠, .”

…”

그거 너가 치우고 가.”

, 미안하다. 쵸로마츠.”

사과는 됐으니까.”

…”

쵸로마츠가 내민 걸레를 받아들고 바닥을 닦으며 카라마츠가 물었다.


그런데, 쵸로마츠. 저 여잔?”

, 오소마츠 형의 친구. 소꿉친구래. 오소마츠 형보다 먼저 천호가 되어서 아마테라스*님의 천궁에 있었어. 그러다가 오소마츠 형이 여기 토지신으로 내려올 때 저승의 이자나미**님 궁으로 옮겨갔다고 들었는데…”

*아마테라스 : 일본 창세신화의 주신. 태양신이다. 이자나기의 왼쪽 눈에서 내어났다고 한다. [출처 나무위키]

**이자나미 : 이자나기의 누이이자 쌍둥이 남매, 동시에 아내로 이자나기와 함께 하계로 내려와 일본을 낳았다. 그 후에 수 많은 신을 낳고, 불의 신인 히노카구즈치를 낳다가 불타죽는다. [출처 나무위키]

일부러 감정이 담기지 않도록 무심하게 대답했건만, 카라마츠는 쵸로마츠의 말을 경청하며 토토코를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걸레질도 닦는둥 마는둥, 카라마츠의 시선은 토토코에게 고정되었다

홀연히 나타나 평화로운 가족의 한때를 망친 것에 그치지 않고, 오소마츠에게 매달리는 것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상냥하게 웃으며 토토코의 머리를 어루만져주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의 심기가 더 사나워졌다

오소마츠가 자신이나, 쵸로마츠, 동생들이 아닌 타인을 상냥하게 어루만지고 달래는 것이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찌할 수 없는 불쾌감을 억누르며 다다미를 닦은 카라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토토코~, 마을 구경 할래!”

? 밖에 눈 오는데?”

그래도!! 할 거야!”

~, 할 수 없네.”

한숨과 함께 쓴웃음을 지으며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향해 잠깐 나갔다가 올게.” 하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외투를 들고 나와 오소마츠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 나도 함께 가겠다.”

카라마츠가 오소마츠가 겉옷을 입는 모습을 보고 말했지만, 오소마츠는 잠시 시선을 돌려 토토코를 보곤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추운데 집에서 기다려.”

싱긋- 웃는 오소마츠의 미소에 카라마츠가 반박도 하지 못하고 말을 잃었다

방을 나서는 두 인영을 시선으로 쫓으며 카라마츠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단 둘이서, 뭘 하려고..?”

피가 나도록 힘주어 쥔 주먹이 새하얬다

쵸로마츠와 카라마츠만 남은 조용한 방 안,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카라마츠의 중얼거림을 들은 쵸로마츠는 전력으로 무시하자고 생각했다.


끼어들면 귀찮아질 것 같으니까…’

방금 전까지만해도 북적거렸던 방 안은 텅 비어, 방 안 기온마저도 내려간 것 같았다

어수선하게 널린 물건들을 치우며 오소마츠가 사라진 방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카라마츠를 본 쵸로마츠가 한숨을 쉬었다.

 

 

 


 

3.


저건?! 저건 뭐야??”

팔짱을 낀 내 팔을 잡아 이끌며, 여기저기 돌아보는 토토코에게 적당히 대답했다

나보다 먼저 천호가 되어 줄곧 천상에서 머물렀던 토토코는 인간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편은 아니었다

늦은 밤인데도 환한 거리와 걸어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많이 발전했구나…” 하고 중얼거리는 토토코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해 보이는 것 같았다

인간으로 둔갑해 꼬리와 귀를 숨기고는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들떠있는 토토코와 함께 인간들 사이에 있는 것은 어쩐지 불안했다

금방이라도 말도 안되는 이유로 신통력을 사용하지 않을까,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은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소마츠 군..?”

말이 없는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기울인 토토코가 팔짱을 낀 손에 힘을 주었다

- 내 팔을 붙잡은 소꿉친구의 어리광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와,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고운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었다

꼬리를 숨기고 있지 않다면 분명 신나게 좌우로 흔들어대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내가 토지신으로 내려오고 백년이 넘게 흐르는 동안, 저승에서 일했던 토토코와는 만나지 못했다

신들의 연회때도, 저승은 항상 바쁜 곳이기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소꿉친구의 얼굴이 반갑지 않을 리 없다

기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천상에서 함께 어울려 놀 때마다 토토코는 여러 사건을 몰고 다녔다

내가 전형적인 장난꾸러기에 사고뭉치였다면, 토토코는 은근하게 여러 일들을 벌리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덮어 씌우곤 했다

나와는 달리, 정통 여우의 피를 이은 토토코는 사람을 유혹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참상을 재미있다는 얼굴로 감상하곤 했다

조금 고약하긴 해도, 인간을 유혹한다는 점에서 여우로서의 자질이 충분했던 토토코가 마음먹고 천호를 목표로 수행을 시작해, 나보다 먼저 천호가 된 것에 주변 어른들 모두 놀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토토코가 나보다 먼저 천호의 길에 오른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토토코가, 겉으로는 이렇게 제멋대로인 것 같아도, 타인의 눈이 없는 곳에서 무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장점이 무색하게 토토코에겐 지독한 단점도 있었다.

 


상대가 요괴든 인간이든, 얼굴의 생김새를 따지는 토토코이다

카라마츠 정도의 요괴라면, 힘도 세고 얼굴도 괜찮으니 탐내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까도 우는 척을 하면서 계속 카라마츠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토토코에게 카라마츠를 뺏기는 것이 아닐까 초조해졌다

한시라도 빨리 카라마츠와 토토코를 떨어뜨려 놓고 싶은 마음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신인데도, 자기 마음 하나 추스리지를 못하니…”

? 오소마츠 군, 뭔가 말했어?”

아니, 아무것도 아냐…”

고개를 저으며 미소짓자 토토코가 빤히 나를 보더니 곧 시선을 돌렸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거리의 조명들과 장식들을 보며 토토코가 멀거니 섰다.


있잖아, 왜 저렇게 화려하게 꾸며 놓은 거야?”

, 그러니까겨울에 있는 특별한 날을 위해서?”

특별한 날..?”

인간 마을에 자주 놀러가는 토도마츠가 말해주었던 기억을 더듬어 대답했다

무슨 위대한 사람이 태어난 날이었던가.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겨울 중 하루를 쉬며 다 함께 축복을 나누는 날이라고 들었다

기억나는대로 가르쳐주자 토토코가 흐응~” 하고 김새는 소리를 냈다.


!”

?”

흥미를 잃은 얼굴로 지나가는 인간들을 보던 토토코가 손가락을 뻗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 하얀 뭔가를 들고 지나가는 인간이 있었다.


저거 뭘까? 토토코 저거 가질래!!”

!”

빙긋이 천진난만하게 웃은 토토코가 손가락을 우아하게 휘저었다

순식간에 여우에 홀린 인간은 묵묵히 토토코에게 걸어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기쁘게 웃으며 하얀 것을 받은 토토코가 다시 손을 흔들었다

걸어가던 방향 그대로 앞으로 걸어나간 인간은 수많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토토코…”

? 이거 맛있다!! 오소마츠 군도 먹어 봐!!”

, 이게 토도마츠가 말한 소프트콘이라는 건가…”

토토코가 내민 하얀 것을 핥으니 차가우면서도 달콤한 맛이 났다

라또니 바닐라니 근원을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늘어놓던 토도마츠의 말이 기억나 작게 중얼거렸다

내 말도 듣지 않고 손에 들린 하얀 것에 열중한 토토코를 보며 작게 한숨을 지었다

한번 마음에 든 것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고 마는 것이 토토코의 성정이다

근심하나 없이 정말로 행복하게 웃는 토토코를 보며 부디 카라마츠가 토토코의 마음에 들지 않기를 바랬다

그리고 토토코가 원하는 것은 뭐든 해 주어서 빨리 돌려보내자고 다짐했다.

 

 


 

 

4.


환한 불빛 아래, 인간으로 둔갑한 토도마츠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큰둥한 얼굴의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그 뒤를 따랐다.


크리스마스가 지났는데도 장식이 남아있네!”

가로수에 둘러진 장식에 토도마츠가 웃으며 말했다. 무심한 얼굴로 귀를 후빈 이치마츠가 잔뜩 들떠있는 토도마츠를 불렀다.


토도마츠, 이제 돌아가자. 그 여자도 이젠 돌아갔겠지.”

-, 싫어! 좀 더 있다가 갈래!”

인간 마을엔 벌써 수십 번도 왔잖아.”

- 한숨을 쉬며 미간을 찌푸리는 이치마츠와 달리 토도마츠는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거리를 보고 있었다

자정이 다 된 늦은 시간이건만, 거리를 메운 인파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스쳐지나가는 인간들에게서 각양각색의 향기가 퍼져 코가 예민한 이치마츠의 성질을 자극했다

혀를 차고 혼자라도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는 이치마츠의 곁을 한 인간이 스쳐 지나갔다

- 하고 비강을 타고 올라오는 강한 향기에 얼굴을 구긴 이치마츠가 구역질을 했다.


우엑-, 지독해.”

향수를 너무 많이 뿌렸나봐, 저 여자.”

향수? , 코 아파.”

그러고보니 아까 온 그 여우요괴도 향수 뿌린 것 같았어. 은은한 꽃 냄새가…”

, 나 알아!! 장미 냄새야! 토도마츠가 알려줬던 거!!”

어느날, 마을의 꽃집을 지나가다 꽃에 관심을 보인 쥬시마츠에게 토도마츠가 일일이 꽃의 종류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알록달록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을 하나하나 머리에 새긴 쥬시마츠가 손을 들고 외쳤다

토도마츠가 싱긋- 웃으며 ~ 쥬시마츠 형은 잘 기억하고 있네~” 하고 오소마츠를 따라 쥬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둘을 여전히 얼굴을 찌푸린채 코를 막고 있는 이치마츠가 바라보았다.


근데 정말로 그 여우요괴는 누굴까? 오소마츠 형 지인 같았는데혹시, 오소마츠 형의 옛 여친이라던가…”

글쎄,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토도마츠의 말에 이치마츠가 고개를 돌려 신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찾아온 그 여우요괴가 누구건,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사이에 끼어들 수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신사 너머로 펼쳐진 까만 밤하늘을 보자, 절로 나오는 하품에 이치마츠가 고개를 숙였다

이치마츠가 슬슬 돌아가자고 말을 꺼내려는 순간, 광장 전체에 커다란 종소리가 울렸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맑은 종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지며 시간을 알렸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도 저마다 손목을 들여다보더니 바삐 발을 움직였다

소란스러워진 인파를 보며 토도마츠도 이치마츠에게 다가갔다

셋이 함께 신사쪽으로 몸을 돌려 걸으려는데, 낯선 목소리가 토도마츠를 불렀다.


, 토도마츠!”

“.., 아츠시 군!”

토도마츠가 얼굴을 활짝 피고 웃었다. ‘아츠시라고 불린 인간 남성이 토도마츠 일행에게 다가왔다

기쁘게 웃으며 아츠시를 바라보는 토도마츠를, 이치마츠가 가만히 응시했다

아츠시는 토도마츠와 함께 인간 마을을 돌아다니던 중에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토도마츠의 인간 친구 중 한 명이었다

고양이로 변해 이 마을 곳곳을 누비는 이치마츠도 홀로 몇 번 본 적 있는 인간이다

별다른 특별함도 없이 제 삶을 적극적으로 영위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가진 인간이라고 이치마츠는 생각했다

인간다운 인간 중의 하나였기에, 토도마츠도 아츠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들어 불안한 기색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토도마츠가 아츠시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어쩐지 카라마츠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빛과 닮아있는 것에, 가슴 깊은 곳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껄끄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치마츠가 옆을 보니 쥬시마츠도 어쩐지 불안한 눈길로 토도마츠를 보고 있었다.


아츠시, 누구야?”

낯선 여자의 목소리에 토도마츠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아츠시의 어깨 너머로 얼굴을 내민 여성이 아츠시를 보자, 아츠시가 웃으며 친구야.” 하고 대답했다

~” 하고 무미건조한 감탄사를 내며 앞으로 나온 여성이 애교를 담아 웃으며 인사했다

쓴웃음을 지으며 토도마츠도 인사하자 여성은 보란듯이 아츠시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웠다.


토도마츠, 어디 가는 길이야?”

, 이제 집으로 가려고.. 아츠시 군은?”

나는 이제부터 2차 가려고. 오늘 동창회였거든.”

그렇구나~”

속마음을 숨기고 생글생글 웃으며 토도마츠가 말했다

안면에 미소를 피운 토도마츠를 향해 아츠시가 다시 뭐라 말을 걸려는 순간, 아츠시의 팔에 매달린 여성이 끼어들어 먼저 물었다.


토도마츠 군은 어디 고등학교 나왔어?”

“…?”

나 마당발이라~ 이 근처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전부 알고 있거든~ 근데 토도마츠 군은 오늘 처음 봐서.”

질문에 절대 악의가 없다는 의도를 담아 웃는 여성을 보며 토도마츠의 미소가 흔들렸다

요괴인 토도마츠가 학교를 나왔을 리 없다

대체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머리 속이 어지러웠다

등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토도마츠가 대답을 망설이자 여성이 고개를 기울이며 다시 물었다.


?”

…”

어이, 그만해. 미안, 토도마츠. 다음에 또 보자.”

토도마츠가 곤란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아츠시에 의해 대화는 끊어졌다

앙탈을 부리는 여성을 두고 토도마츠에게 손을 흔든 아츠시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에게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다가왔다.


토도마츠.”

이치마츠의 목소리에 토도마츠가 몸을 돌렸다. 분명 미소를 짓고 있는데도 어째선지 슬퍼보이는 얼굴에 이치마츠가 눈을 돌렸다.

 

 


하얀 입김을 내며 차가운 공기에 몸을 떤 이치마츠가 빨리 신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슬쩍 앞서 걷는 토도마츠의 뒷모습을 본 이치마츠의 가슴이 꾹- 하고 아팠다.


묘한 일을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고양이여서일까, 오소마츠와 함께 있는 동안 감각이 예민해져서일까, 토도마츠를 볼 때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에 이치마츠가 주머니에 넣고 있는 손을 주먹 쥐었다.


인간이 되고 싶다아…”

토도마츠의 목소리에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걸음을 멈추었다

비로소 자신이 목소리를 내 말했다는 것을 깨달은 토도마츠가 당황한 얼굴로 몸을 돌려 두 형을 바라보았다

혼란스러운 토도마츠의 표정을 보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얼굴로 애처롭게 구겨졌다.


, 아니야!! 거짓말이니까!”

거세게 고개를 흔들며 변명하는 토도마츠를 애잔하게 바라본 쥬시마츠가 토도마츠에게 다가갔다.


우리에겐 숨기지 않아도 괜찮아! 토도마츠!”

빵긋 웃으며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는 쥬시마츠의 손길에 토도마츠의 눈가가 붉어졌다

고개를 푹 숙인 토도마츠에게 이치마츠도 가까이 다가가 처량하게 처진 어깨에 손을 올렸다

따뜻한 두 형의 손에서 넘어오는 체온에, 토도마츠의 울먹임이 조금씩 커져갔다.


, 우우이치마츠 형~, 쥬시마츠 형~”

눈물을 흘리는 토도마츠를 쥬시마츠가 말없이 껴안았다

토닥토닥 잘게 떨리는 등을 두드리며 쥬시마츠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 괜찮아. 토도마츠~”

상냥한 쥬시마츠의 목소리에 토도마츠가 흐느낌을 멈추었다

쥬시마츠의 품에서 고개를 들자, 다정하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쥬시마츠와 이치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긴 소매로 토도마츠의 눈물을 닦아준 쥬시마츠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토도마츠, 인간이 되고 싶어~?”

…”

작은 목소리를 쥐어짜듯 대답한 토도마츠의 머리를 이치마츠가 천천히 쓰다듬었다.

 

 


 

 

5.


아침을 밝히는 해님이 하늘 높이로 올라가기도 전, 채비를 마치고 방을 나섰다

밤새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어 이불에서 뒤척거리며 밤을 지새웠다

영지의 식솔들 모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른 시간, 조용히 현관을 나와 날개를 펼쳤다

새벽 공기가 날개의 온기를 빼앗으려 다가왔다. 힘차게 날개를 펄럭여 새벽 공기를 몰아내고 아직 어두운 하늘로 날아올랐다.

 


 

붉은 토리이 가까이서 날개를 접어 신사 마당에 착지했다

그새 새벽 이슬이 맺힌 날개를 정리하고 신사로 한 발자국 들어서자, 귀에 거슬리는 높은 음의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어머나, 이렇게 일찍 남의 집에 오면 실례라는 것도 모르는 걸까나- 까마귀씨는~ , 새대가리라서 모르는구나~”

타박타박 나막신을 울리며 다가온 여우의 모습에 쯧- 하고 혀를 찼다.


“’남의 집이라네 집도 아닌데 주인 행세인가?”

“…오소마츠 군의 집은 내 집이기도 하다고?”

호오~? 그거 처음 듣는군.”

얇게 뜬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 여우가 요망하게 웃으며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코 앞까지 다가와 붉은 입술을 제 혀로 핥은 여우가 요사스러운 손짓으로 내 어깨를 어루만졌다.


있잖아~ 오소마츠 군 말고 나는 어때? 오소마츠 군은 수컷이잖아? 같은 수컷끼리 무슨 재미가 있어? 나한테 와~ 당신 정도면 받아줄 테니까~”

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간드러지게 울리는 여우의 목소리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오소마츠는 저렇게나 귀여운데, 여우란 것들은 왜 이리도 간사한지… 

다시 쯧- 하고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 당장 있는 힘껏 밀어내고 싶지만, 오소마츠의 오랜 친구인데다가 암컷이다

자신보다 약한 암컷에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내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외면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여우가 -“ 하고 짜증을 내며 내게서 떨어져나갔다.


토토코?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왜 나와있어?”

이른 아침에 일어난 탓인지 아직 졸음이 묻어나오는 오소마츠의 잠긴 목소리에 눈가가 풀렸다

조금 전까지 온 몸을 감싸고 있던 불쾌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몸의 힘이 풀려 편안하게 이완되었다

당장 오소마츠에게 달려가 그 사랑스런 몸을 품에 안고 아침 인사를 속삭이고 싶었건만, 나를 제치고 오소마츠에게 달려간 요괴가 오소마츠의 곁에 섰다.


오소마츠 군, 토토코가 오늘 아침 식사 만들어줄게~”

? 아침식사?”

! 오소마츠 군, 유부우동 좋아하지? 토토코~ 유부우동 잘 만들게 되었으니까!”

…”

잠버릇이 남아 삐죽이 서 있는 오소마츠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여우가 방긋이 웃었다

오랜 친구의 말에 오소마츠도 크게 거부하지 않고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씨익- 하고 나를 흘끗 보며 웃는 여우의 미소에 치솟는 화를 억눌렀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오소마츠에게 다가가자 오소마츠가 베시시 웃으며 카라마츠~, 좋은 아침.” 하고 인사해왔다

아침 해가 뜨기도 전인데도, 오소마츠의 빛나는 미소에 가슴이 꾹- 저려왔다

부드럽게 웃으며 아아.” 하고 대답하자, 오소마츠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말했다.


너도 같이 밥 먹자.”

, 아아…”

오늘은 내가 해주지 못하지만…”

미안하다는 얼굴로 귀를 늘어뜨린 오소마츠에게 다가가 그 귀여운 이마에 입맞추었다

괜찮아.” 하고 귓가에 속삭이니, 슬며시 몸을 떨어뜨리며 웃는 오소마츠의 귀가 붉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대로 오소마츠를 데려가 둘만의 식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여우가 다가와 오소마츠의 팔을 잡았다.


오소마츠 군~, 빨리! 요리먹어줄 거지?”

, .”

여우에게 속절없이 이끌려 오소마츠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 하고 깊은 숨을 내쉬며 어떻게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방금 전, 저 요망한 여우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요리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한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굳이 식사를 하지 않아도, 산과 토지의 정기로 살아갈 수 있는 오소마츠가 식사를 하는 이유, 오소마츠에게 있어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하고 그 요리를 나와 쵸로마츠, 그리고 이치마츠를 비롯한 동생들에게 대접하는 이유를 저 여우도 알고 있는 것이다

오소마츠가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하는 것이 과거의 영향이라는 것을, ‘한 인간이 남긴 흔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요리를 해 주겠다는 말을 한 것이겠지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그 말은 나에대한 도전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카라마츠, 진정해.”

“..쵸로마츠…”

- 하고 어깨를 치는 손에 뒤돌아보니, 소매에 팔을 끼고 주홍빛의 목도리를 한 쵸로마츠가 나를 보고 있었다

자신이 여우에게 질투를 하고 있는 모습을 전부 본 것인가 생각하니 어쩐지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리고 쵸로마츠의 시선을 외면하며 물었다.


있었나…”

. 너 얼굴 엄청나니까, 좀 진정시키고 들어와.”

나를 지나쳐 현관으로 들어서며 쵸로마츠가 말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쵸로마츠가 하- 하고 한숨을 쉬며 집 안으로 사라졌다

다시 심호흡을 하고 얼굴을 고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화내지 말자고, 불가능한 것을 뻔히 아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하며 오소마츠의 집의 현관문을 열었다.

 

 


, 오소마츠 군~ 아앙~”

, 스스로 먹을게.. 토토코..”

안 돼! , 아앙~”

“…아앙

! 맛있어?”

, 맛있네.”

기쁜다는 얼굴로 작은 얼굴이 쥐어터져라 미소를 짓고 있는 여우를 보며 오소마츠가 빙긋 웃었다

오소마츠의 맛있다는 말에 여우가 다시 유부우동 한 가닥을 수저에 얻어 오소마츠의 입가로 가져댔다

그 옆에서 쵸로마츠가 불안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괜찮다고, 쵸로마츠

나는 이정도 일에 화를 낼 정도로 속 좁은 남자가 아니다

물론 마음 깊숙이에서 부글부글 끓는 것은 있지만, 그것을 밖으로 표출할 정도로 어리진 않다

이것이 질투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이상, 내가 화를 낼 일은 없다

오소마츠의 앞에서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 필사적으로 끓고 있는 감정에 뚜껑을 덮었다

안그래도 인 오소마츠와 요괴인 나 사이에는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게다가 천호인 오소마츠는 나보다 몇 백년의 시간을 더 살아왔다

오소마츠의 옆에서 오소마츠를 지켜주겠다고 맹세한 그날부터, 나는 조금이라도 오소마츠와 대등해지자고 다짐했다

그렇기에 여기서 질투라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노발대발한다면 모처럼 쌓아올린 오소마츠와의 대등한 관계를 잃을 수 있다

무엇이든 어른스럽게 대처하지 않으면 인 오소마츠와 나란히 서 있을 자격이 없다

지금도 손에 쥐고 있는 젓가락을 부러뜨릴 정도로 화는 나지만, 참아야 한다

- 하고 폐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부러진 젓가락을 조용히 내려놓고 새 젓가락을 들었다

내 앞에 앉은 쵸로마츠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말없이 고개를 돌려 무시했다

오소마츠와의 메울 수 없는 연륜의 차이를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해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을 무시하며 수행하는 마음으로 유부우동의 국물을 들이켰다.

 

 


 

 

6.


아침식사를 마치고, 카라마츠의 영지에서 날라온 심부름꾼의 등장에 카라마츠가 급히 신사를 떠났다

아무래도 아침 일찍 몰래 신사로 와, 눈을 뜬 카라마츠 영지에선 사라진 카라마츠를 찾아 대소동이 일어났다는 듯 하다

할일을 마치고 다시 오겠다며 날아간 카라마츠를 바라본 오소마츠 형도 곧 잠깐, 나도 다녀올게-” 하고 말하며, 카라마츠의 영지로 향했다

아침부터 카라마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오소마츠 형도 눈치채고 있었겠지

오소마츠 형이 날아가는 것을 배웅하고 방으로 들어와 남아있는 식기를 정리했다

토토코의 행태를 보고도 화를 참아낸 것은 장하지만, 젓가락을 세쌍이나 부러뜨러서야 이윤이 남지 않는다.


하아~”

오늘들어 대체 몇 번째 한숨인지 셀 수도 없다. 

아직 아침식사를 막 끝낸 이른 시간이건만, 한숨의 수는 열을 넘었다

이 모든게 단 하나의 여우 때문이라는게 또 열받는 부분이다

식기를 치워 주방에 놓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자 어떻게 잡았는지 고양이로 변한 이치마츠를 데리고 놀고 있는 토토코가 물었다.


있잖아~, 오소마츠 군은 어디? 이거 잡는 사이에 어디로 사라졌는데…”

고양이 모습의 이치마츠의 팔을 쭉 잡아당기며 이거라고 말한 토토코에게 잠깐 카라마츠 영지에 갔어.” 하고 대답했다

후응~”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내린 토토코가 이치마츠의 등을 쓰다듬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하고 있어도 화가 난 것은 숨길 수 없는지 이치마츠를 쓰다듬는 손길이 거칠었다

털가죽이 쓰다듬는 손을 따라 밀려나갈 정도로 쎄게 쓰다듬어져, 항상 무표정했던 이치마츠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저 녀석, 언제는 아픈게 좋다더니, 그것도 상대를 가리는 건가

구우우-“ 하고 낮게 울며 아픔을 참아내던 이치마츠가 결국 토토코의 손을 뿌리치고 방 밖으로 줄행랑쳤다

방문 너머로 사라지는 이치마츠의 꼬리를 응시하던 토토코가 고개를 들었다.


있지-, 그 까마귀. 정말로 오소마츠 군의 곁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명백한 적의를 담은 목소리에 가만히 토토코를 응시했다

오소마츠 형과 같은 천호인 토토코에게, 일개 요괴에 불과한 내가 똑바로 그녀를 내려다보는 것은 통상적으로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소마츠 형과 함께 천상에 머무를 때, 몇 번 만나 안면이 있는데다 오소마츠 형과 친구라는 점에서 나는 토토코를 오소마츠 형과 마찬가지로 대했다

토토코도 굳이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소마츠 형에게 토토코에 대한 것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고, 토토코도 오소마츠 형의 옆에서 온갖 시중을 드는 나를 적대하지 않았으니까.


“…저 녀석은, 머리가 텅 비고, 가끔은 안쓰러워도 오소마츠 형만을 보고 노력하는 녀석이야. 내가 보기에 오소마츠 형의 옆에 있을 수 있는 녀석은 카라마츠 말고는 없어.”

뭐야, 그게.”

한없이 낮아진 목소리에 흠칫 몸이 떨렸다

아무리 편하게 지내도, 토토코는 천호였다

신에 필적하는 영력에 절로 맹수를 눈 앞에 둔 먹잇감처럼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요염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몸을 일으킨 토토코가 그대로 방을 나갔다.


, 저 상태면.. 어지간히도 화가 난 것 같은데…”

오소마츠 형에게 토토코의 악행을 들어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부디, 저 화가 또 다른 사건을 부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7.


아침 일찍 사라졌다던 카라마츠 형이 돌아오자, 텐구들이 바삐 움직였다

오전 중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들고 분주히 움직여 카라마츠 형의 방으로 들고가는 텐구들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묵묵히 텐구들이 가져오는 서류들을 들여다보는 카라마츠 형의 얼굴이 평소보다 어두운 것을 눈치채고 다가가 살며시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별로,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재미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제 토토코라고 하는 여우가 온 뒤로 줄곧 기분이 나빠보였으니 오늘도 그 여우의 탓이겠거니 추측하며 인간 마을에 놀러가겠다는 말을 하자 고개를 든 카라마츠 형이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요즘, 너무 자주 인간 마을에 내려가는 거 아닌가? 위험하다, 토도마츠…”

짙은 눈썹을 늘어뜨리고 걱정하는 투로 말하는 카라마츠 형에게 웃어보이며 괜찮아~ 적당히 조심하고 있고.” 하고 대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항상 조심해라.” 하고 나를 배웅한 카라마츠 형이 다시 언짢은 얼굴로 서류를 바라보았다

저러다 미간에 주름 남겠다

가볍게 한숨 쉬며 카라마츠 형의 방을 나와 대문을 향해 걸었다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본격적으로 추워진 날씨에 복도를 지나다니는 텐구들의 옷차림이 두꺼웠다

설산에서 자란 나에게는 이정도 추위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일단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인간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대문을 나와 인간 마을로 내려가려는데 따뜻한 기운과 함께 오소마츠 형이 대문에 내려 앉았다.


오소마츠 형,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영지의 텐구들이 오소마츠 형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는 오소마츠 형이 카라마츠 형의 영지에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웬일로 신사에서 나와 청산에 온 것에 놀라 묻자 오소마츠 형이 멋쩍게 웃으며 볼을 긁었다.


.. 카라마츠는?”

, 방에. 좀 기분 나빠 보였어.”

역시…”

“..나는 인간 마을에 놀러갔다올게!”

! 토도마츠.”

?”

나를 불러세우는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자, 오소마츠 형이 웃으며 내 머리에 입맞추었다

오소마츠 형의 다정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더니 이내 단단한 결계를 만들었다.


조심해.”

!”

과보호라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며 대문을 떠났다

카라마츠 형의 기분이 안좋았던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오소마츠 형이 찾아왔으니 괜찮을 것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청산을 내려오자, 검은 고양이의 모습을 한 이치마츠 형과 마주쳤다.


이치마츠 형!”

, 토도마츠.”

아침 인사를 건네자 이치마츠 형도 인사하며 훌쩍 뛰어올라 내 어깨에 올라탔다

평소 부스스한 이치마츠 형의 머리가 오늘따라 더 엉망이었다.


머리를 왜 그래?”

, 아침부터 그 여우한테 붙잡혀서…”

에구, 고생이었겠네.”

발을 핥아 머리털을 정리하는 이치마츠 형을 동정하며 걸음을 옮겼다

내 어깨에서 재주좋게 균형을 잡으며 내려오지 않는 이치마츠 형이 물었다.


그런데 어디 가? 쥬시마츠는 어쩌고?”

쥬시마츠 형은 한창 신혼이잖아. 데리고 나오기 미안해. 그리고 지금은 인간 마을에 놀러 가는 거야! 아츠시 군하고 약속했거든.”

“…나도 데려가.”

~”

혼자는 위험해.”

정말, 오소마츠 형도 그렇고 카라마츠 형도 그렇고. 뭐가 그렇게 위험하다는 거야? 나도 이제 다 컸다고!”

“…”

얼굴을 찌푸리고 어깨에 탄 이치마츠 형을 보니 고양이의 얼굴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이치마츠 형의 눈과 마주쳤다

입을 굳게 다물고 나를 보고 있는 이치마츠 형의 얼굴에 그 이상 화도 내지 못하고 거리를 걸었다

정말이지 과보호다. 오소마츠 형도, 카라마츠 형도, 그리고 이치마츠 형도.


 

 

시장 거리에 들어서자 떠들썩한 인간들의 목소리가 거리 가득 울렸다.


쌉니다!! 오늘 하우스 딸기가 싸요!!”

오늘 특별 세일~!! 연말, 커다란 TV 하나 장만하세요~!!”

그래서~”

, 정말로~?”

꺄하하하하~”

손님을 모으는 상인들의 목소리,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떠들고 지나가는 여학생들,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으며 걸어가는 청년 무리들

인간들의 큰 목소리가 거북하다고 이치마츠 형은 말했지만, 나는 인간들의 소리를 좋아한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큰 목소리로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도 모두 활기가 넘쳐 흐르고 있다

우리 요괴들은 장생한다고는 하나, 매일매일이 너무나 똑같다

항상 같은 무료한 삶을 반복하며 변화를 두려워하고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우리와 다르게 인간들은 그 짧은 삶을 너무나 힘차게 보낸다

생동하는 인간들의 표정과 항상 변화하고 활기찬 인간들이 너무나 부럽다

수 많은 인간들과 마을의 중심에 높게 솟은 빌딩들, 그리고 지나가는 수많은 자동차들. 너무나 짧은 단기간에 인간들은 요괴들보다 더 화려하고 편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종족이 다양하고, 서로의 종족이 다르거나 같은 종족이어도 자신들과 다르면 적대하고 차별하는 요괴들과 달리 인간들은 모두 같은 종족 아래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그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설녀이면서 남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나도, 인간이 되면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고 저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이 되고 싶다. 인간이 되어 저 안에서 살아가고 싶다

어쩌면 천호인 오소마츠 형이라면 요괴를 인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부탁을 할 수는 없다

요괴는 보통 인간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품지 않는다

만약, 내가 이런 소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오소마츠 형이 알게 된다면, 내가 다른 요괴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를 경멸할지도 모른다


싫다

오소마츠 형에게 경멸을 당한다니, 상상을 한 것만으로도 온 몸이 무겁게 짓눌려 끝이 없는 깊은 바다에 가라앉을 것만 같다

어두운 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흔들어내고 뛰어 시장 거리를 벗어났다

시장 거리를 벗어나면 곧 다다르는 광장으로 서둘러 발을 옮겼다.

 


 

광장의 분수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츠시 군의 모습을 확인한 후, 어깨에 올라가 있는 이치마츠 형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럼 나 놀다 올 테니까.”

잠깐, 토도마츠..!!”

이치마츠 형의 부름을 무시하고 아츠시 군에게 뛰어갔다

손을 흔들며 뛰어가자 아츠시 군도 웃으며 나를 맞이해주었다.


오늘은 많이 춥네-”

, . 그러네.”

내 옆에 나란히 걸으며 하늘을 보고 입김을 내뿜는 아츠시 군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치며 웃었다

영화관으로 가는 길, 게임 이야기나 키우고 있는 고양이 이야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아츠시 군을 보며 웃었다

인간으로 둔갑해 만난 많은 인간들 중, 아츠시 군만이 유일하게 나를 다른 이와 다름없이 평범하게 대해 주었다

인간으로 둔갑해 만난 인간들은 모두 내 여성스러움을 지적했다

오소마츠 형도, 카라마츠 형도 지적해주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여성스러운 성격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남자가 왜 그러냐며 이상하단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들 사이에서 잔뜩 움츠려 든 내게 아츠시 군은 구원과도 같았다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친절한 아츠시 군이 좋았다

매일 만나고 싶었지만, 직장에 다니는 아츠시 군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주말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아츠시 군의 말 한 마디라도 놓칠새라 아츠시 군의 목소리에 집중해 경청했다

카라마츠 형만큼은 아니지만, 낮고 부드러운 아츠시 군의 목소리는 굉장히 듣기 좋아, 언제까지라도 듣고 싶었다

영화관에 도착해 미리 예매한 영화표를 뽑으려 줄 서 있을 때, 우리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 아츠시 군!”

뒤돌아 보니, 저번에 봤던 아츠시 군의 동창이라던 인간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얇은 옷을 입은 여자가 자연스럽게 아츠시 군의 손을 잡았다.


우연이네~ 여기서 다 보고~ 영화보러 온 거야?”

. 토도마츠 군이랑.”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내게 인사를 마친 여자가 아츠시 군의 손을 잡은 것으로도 모자라 좌우로 가볍게 흔들며 애교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무슨 영화 봐~?”

“’화성침공’.”

그렇구나~ 나는 로맨틱 다이어리!”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여자와 맞잡은 아츠시 군의 손을 응시했다

설녀(유키온나)인 나는 인간으로 둔갑했어도 혹시나 힘이 새어나가서 아츠시 군을 얼려버리진 않을까 손을 잡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데

항상 조심해서 살이 맞닿지 않도록 신경쓰고 있는데…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렇게 손을 잡고 가볍게 다가가는 것이 가능하다

여자와 마주보며 웃는 아츠시 군을 보며 역시 인간이 되고 싶다고 다시금 소원했다.

 

 

 

영화가 끝나고 아츠시 군은 우연히 만난 그 동창 인간과 함께 떠났다

다음주에 또 만날 약속을 하긴 했지만, 마음 속은 너무나 허전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청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인간이 되고 싶다.

저렇게 활기차고 즐거워 보이는 인간의 삶을 살고 싶다. 아츠시 군과 함께 있고 싶다

아츠시 군과 함께 살고, 그 곁에서 평생을 보내고 싶다. 바라도 이뤄질 리 없는 소망들에 괜시리 눈물이 나왔다

걸음을 멈추고 흐르기 시작한 눈가를 소매로 가렸다. 축축하게 소매가 젖어가는 것이 또 서러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하고 입술을 깨물고 울분을 삼켰다. 팔을 내리자 흐린 시야 가운데 한 인영이 보였다.


"“…”"

오소마츠 형의 친구라고 했던 여우가 나를 보며 작게 신음했다

골목길에서 나온 여우는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도 하지 않은 채였다

머리 위에 쫑긋 튀어나온 귀와 보드라울 것 같이 부푼 4개의 꼬리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꿰뚫고 지나갔다.


오소마츠 형의 소꿉친구.

여우.

4개의 꼬리.

혹시, 이 여우도 천호님 인게 아닐까?


저기! 혹시 천호님이세요?”

그런데..?”

여우, 아니 천호님의 대답에 가슴 가득 환희가 차올랐다

천호님께 가까이 다가가 바래왔던 질문을 했다.


혹시,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인간으로? 그래, 좋아!”

, 정말로요!?”

그래.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천호님이 얼굴 가득 미소를 피우고 내 손을 잡았다.


그럼 인간의 눈이 없는 곳으로 가자.”

!!”

천호님의 말에 청산 깊은 곳으로 발을 돌렸다

여우의 모습으로 나를 뒤따라오는 천호님을 확인하고 두근대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인간이 된다!! 나는 오늘 인간이 될 수 있다!!!

 

 


 

 

8.


아츠시라고 하는 인간에게 달려가는 토도마츠를 지켜보며 묘하게 사라지지 않는 불안에 발을 돌릴 수 없었다

마냥 행복하단 얼굴로 인간의 옆에서 웃고 있는 토도마츠를 보면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인간 따위가 뭐가 좋다고, 인간이 되고 싶다는 걸까.


           제발 부탁이야. 다른 형들에겐 비밀로 해줘!!”


저도 모르게 인간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하고, 한바탕 울고 난 뒤 토도마츠가 나와 쥬시마츠에게 부탁했던 그 말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대체 왜 우리 요괴들보다 명도 짧은 인간이 되고 싶은 걸까

요괴보다 더 잔인하고 잔혹한 인간이. 오소마츠 형의 신력을 받아 네코마타가 되지 전의 나는 떠돌이 고양이였다

내게 인간은 두려움과 증오의 대상이었다

굶주림에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으면 어느새 인간이 다가와 큰 외침과 함께 나를 발로 찼다

공원의 어린아이들은 단순히 재미있다는 이유로 나를 붙잡고 치덕치덕 매만졌다

장난으로 내게 돌을 던지는 녀석들도 있었다. 어린 토도마츠는 아직 너무 순수해서 인간의 무서움을 알지 못한다

고개를 들어 시야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토도마츠의 뒤를 조용히 따른다

풀숲에 몸을 숨겨가며 토도마츠의 뒤를 따랐지만, 걱정할만한 일은 다행히 없었다

이대로 청산에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신사로 돌아가자고 그렇게 생각했을 때,

 

혹시,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인간으로? 그래, 좋아!”

…?

갑자기 나타난 여우와 함께 토도마츠가 청산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위험하다

타고난 본능이 위험하다고 맹렬히 외치고 있다

토도마츠가 향한 곳을 확인한 후, 맹렬한 기세로 산을 탔다

얼굴을 스치는 나뭇가지에 뺨이 베이고 생채기가 났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말려야 한다

토도마츠를 이대로 어이없이 잃을 수는 없다.

 



굳게 닫힌 쓸데없이 큰 대문을 훌쩍 넘어, 복도를 달려 카라마츠 형의 방으로 돌입했다

오소마츠 형을 무릎에 앉히고 그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던 카라마츠가 갑자기 열린 문에 흐아?” 하고 바보 같은 신음소리를 냈다

아무리 약혼한 사이라지만, 뭘 당당히 오소마츠 형과 붙어 있는 거야? 짜증이 확 솟았지만, 일단 꾹꾹 눌러담고 오소마츠 형을 불렀다.


오소마츠 형!! 토도마츠가!!”

어디야?”

자세한 사정을 말할 여유도 없다. 오소마츠 형의 팔을 잡고 이끌자,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한 오소마츠 형이 나를 따라 뛰며 물었다

토도마츠가 향했던 방향으로 오소마츠 형을 끌고 가자 오소마츠 형을 따라나온 카라마츠 형이 토도마츠의 기운을 잡아냈다.


이쪽이다!!”

카라마츠 형을 따라서 오소마츠 형과 함께 달렸다. 제발 늦지 않기를 빌며 필사적으로 달리자 토도마츠의 분홍색의 후드가 보였다

내가 토도마츠를 외치기도 전에, 앞서가던 카라마츠 형보다 더 빨리 토도마츠에게 달려간 오소마츠 형이 여우의 손을 잡고 외쳤다.


무슨 짓이야!!!!!”

“…, 소마츠 형…”

오소마츠 형의 외침에 놀랐는지, 여우의 손에 담겼던 커다란 힘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오소마츠 형의 노성에 토도마츠의 눈이 흔들렸다

여우도 놀란 얼굴로 크게 뜬 눈으로 오소마츠 형을 쳐다보았다.


토토코!! 아무리 너라도 정도가 있어!!! 무슨 생각으로 토도마츠를 인간으로 만들려고 한거야!!!!”

!! , 오소마츠 군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오소마츠 형의 성난 목소리에 맞서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낸 여우가 오소마츠 형의 손을 뿌리치고 뛰쳐나갔다

카라마츠 형이 여우의 뒤를 따라 날아가고, 남은 오소마츠 형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토도마츠를 응시했다.


“…”

제 잘못을 아는지 토도마츠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숙여 우리와 시선도 맞추지 않았다

하아~” 하고 오소마츠 형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토도마츠.”

지극히 다정한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토도마츠의 어깨가 튀었다

처음 보는 오소마츠 형의 진심으로 화난 얼굴에, 토도마츠를 혼낼 것이라고 예상했던 나는 가라앉은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소리를 죽이고 섰다.


토도마츠.”

“…뭐야.”

“..왜 토토코에게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어?”

돌려 묻지 않고 바로 직설적으로 묻는 오소마츠 형의 질문에 토도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눈물 방울이 토도마츠의 눈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오소마츠 형은!! 모르겠지!! 내가, 내가 얼마나 인간이 되고 싶었는지!!!”

“…”

나는, 인간이 되서! 저 인간 마을에서 인간들과 함께 살고 싶었어!! 차별도 당하지 않고, 누구나가 평등하게 대해주는 인간 마을에서!!”

“…”

인간에 대해 좋은 인상만 가지고 있는 토도마츠의 어리석은 외침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인간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나와 오랜 시간 인간을 지켜봤던 오소마츠 형에겐 토도마츠의 외침이 그저 어리석은 아이의 칭얼거림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토도마츠.”

뚝뚝 볼을 타고 흐르는 닭똥 같은 토도마츠의 눈물을 손가락을 뻗어 닦아주며 오소마츠 형이 토도마츠의 손을 잡았다.


토도마츠, 내가 너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너무나 간단해. 하지만, 인간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짧은 삶을 살아야 해.”

그런건…!!”

조금만 더 들어봐.”

“…”

그리고 인간이 되면 더 이상 우리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어.”

“…!!”

오소마츠 형의 발언에 토도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소마츠 형을 올려다보았다

부드럽게 웃으며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은 오소마츠 형이 말을 이었다.


네가 인간을 좋아하고 지금 만나고 있는 인간들을 맘에 들어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어. 그 아이들이 인간이고 네가 요괴인 이상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하고, 너는 그게 싫다는 것도. 하지만, 인간과 요괴여도 인연은 이어져. 이별이 슬퍼도 그것은 잠깐으로 인연이 이어진다면 또 만날 수 있어. 그리고 요괴만큼이나 인간도 이기적이고 나쁜 면이 많아. 토도마츠.. 너는 지금 너무 인간의 좋은 부분만 보고 있어.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인간에 대해 잘 알고 난 후에 다시 결정해도 늦지 않아. 나는, 아직 우리 막내랑 더 같이 지내고 싶어. 조금만, 조금만 더 유예를 두지 않을래? 나도, 이치마츠도 아직 너를 잃고 싶지 않아…”

오소마츠 형의 얼굴이 괴로운듯 일그러졌다

오늘 처음으로 오소마츠 형의 화난 얼굴을 보고, 슬퍼하는 얼굴도 보았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오소마츠 형의 눈가는 토도마츠만큼이나 촉촉히 젖어들었다

토도마츠의 손을 꼭- 잡고 토도마츠와 이마를 맞댄 오소마츠 형이 아름답게 웃었다

슬픈 것 같으면서도 온화한, 묘한 미소에 가슴이 조였다

좀 더 내가 토도마츠를 잘 살피고, 토도마츠가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을 오소마츠 형에게 알렸다면, 오소마츠 형이 저런 얼굴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참을 수 없은 죄책감이 가슴을 옭죄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이런데 토도마츠라고 멀쩡할 리 없었다

아까보다도 더 왕연히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 토도마츠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미안해. 오소마츠 형미안해…”

토도마츠의 대답에 겨우 안심했단 얼굴로 오소마츠 형이 토도마츠를 껴안았다

오소마츠 형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토도마츠는 한참을 서글프게 울었다

인간이 되고 싶었던 그 마음과, 일순간의 희망과, 자신의 안일함에 대한 분노가 토도마츠를 울게 만들었다

말없이 토도마츠에게 다가가 오소마츠에게 안겨 있는 토도마츠를 꼭 안아주었다.

쉴 새 없이 떨리는 동생의 작은 몸을 꼭 껴안고, 내 체온이 조금이라도 토도마츠의 마음을 달래주기를 바라며 뜨거워지는 눈시울에 눈을 감았다.

 

 

 


 

9.


무성하게 뻗은 나뭇가지들을 제치고 전속력으로 날아 여우의 팔을 붙잡았다

붙잡힌 팔에 뒤돈 여우의 얼굴엔 눈물이 가득했다

젖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내게 잡힌 팔을 흔들며 여우가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거 놔!!!!”

“…”

이거 놓으라니까!!!! 말 안 들려?!! 요괴 주제에 천호님의 팔을 함부로 잡지 말라고!!!”

외치며 팔을 흔드는 여우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자, 제 풀에 지친 여우가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정말로, 대체 뭐야아아아!! 뭐냐고!! 나는, 오소마츠 군을 다시 되찾고 싶었을 뿐인데에에에에~~!!!!!”

무릎을 모아 주저앉은 채, 얼굴을 묻은 여우가 산이 떠내려가라 울었다

몇 백년을 살았지만, 영지의 어린 텐구보다 더 큰 목소리로 우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귀가 떨어져나가라 울리는 울음 소리에 눈썹을 찌푸리면서 손으로 귀를 막고 여우의 옆에 앉았다.


애초에, 네가 전부 나빠!!!”

- 하고 고개를 든 여우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대체 내게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인가

어이가 없어 망연히 여우를 보니 여우는 제멋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오소마츠 군을 뺏어가지만 않았어도!!! 오소마츠 군은, 토토코의 유일한 친구인데!!! 토토코가 어릴 때부터 토토코 옆에 있어주고, 토토코가 뭘 해도 괜찮다고 해 줬는데!!!! 오소마츠 군이 천호가 된다고 해서, 토토코도 같이 있고 싶으니까 천호가 됐는데!! 이게 뭐야!! 바빠서 오소마츠 군하고 놀지도 못하고!!! 그러는 사이 이런 바보 같은 새대가리가 오소마츠 군을 뺏어가고!!! 오소마츠 군 옆에 있는 요괴들을 전부 인간으로 만들면, 곧 다시 천상으로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뭐에 분노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억울하단 얼굴로 여우가 외쳤다

한참을 외치고 다시 무릎에 얼굴을 묻은 여우가 또 흐느끼기 시작했다.


“..언제든, 오소마츠를 보러 여우골에 와라.”

“…?”

오소마츠는 토지신이니 이곳을 잘 벗어나지 않으니까. 네가 시간이 될 때, 얼마든지 찾아와도 좋다.”

“…”

하지만, 또 나와 오소마츠의 동생들에게 손을 댄다면 다시는 너를 용서하지 않을거다. 그건 오소마츠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오소마츠는 내 것이다. 너를 비롯해 그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아. 그것만 기억하고 있다면, 오소마츠를 만나러 와도 좋아.”

“…”

코를 훌쩍이며 내 말을 들은 여우가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짜증나. 왜 오소마츠 군은 너 같은 거랑…”

아까보단 침착해진 여우의 목소리에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 후로, 신사에 있을 오소마츠에게 가자고 했지만, 절대 가지 않겠다고 앉아서 버티는 여우를 끌고 가느라 쓸데 없는 힘을 쓰고 말았다.

 

 


 

 

10.


“…토토코.”

오소마츠의 부름에 카라마츠와 함께 신사로 돌아온 토토코가 몸을 움츠렸다

토도마츠는 이치마츠가 진정시켜 쥬시마츠와 함께 카라마츠의 영지로 데리고 돌아갔다

쵸로마츠에겐 오소마츠가 사정을 설명해 이치마츠와 함께 카라마츠의 영지로 보내 신사에는 오소마츠만이 남아 있었다

오소마츠에게 이름을 불려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 토토코를 카라마츠가 밀었지만, 토토코는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 한숨을 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와 눈을 맞췄다

부드럽게 웃으며 카라마츠의 눈길에 고개를 끄덕인 오소마츠가 토토코에게 다가갔다.


“토토코. 돌아가버린건가 걱정했어.”

“…, 토토코한테 화 안났어?”

아깐 화 났지만, 지금은 화 안 났어.”

“..정말로?”

. 근데 만약 또 내 동생들에게 그러면 정말로 화 낼거야.”

, 안 할게!! 약속해!!”

다짐하며 오소마츠를 올려다보는 토토코의 머리를 오소마츠가 상냥히 쓰다듬었다

, 그럼 됐어.” 하고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토토코가 또 와도 돼..?” 하고 물었다

이를 드러내고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코 밑을 문지른 오소마츠가 즉답했다.


물론!!”

기쁘게 웃으며 ! 또 올게!!” 하고 대답한 토토코가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여우골에오고나서 계속 카라마츠를 향했던 적의가 조금은 누그러진 눈빛으로 토토코가 손가락을 들어 카라마츠를 손가락질했다.


결코 널 인정한 건 아니니까!!!”

그 한 마디를 하고, 오소마츠에게 그럼, 토토코 갈게.” 하고 작별 인사를 마친 토토코가 살며시 발꿈치를 들어 오소마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덧대었다

오소마츠의 입술에 남은 토토코의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토토코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사라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랜 친구를 배웅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내리자, 귀신과도 같은 형상으로 오소마츠를 노려보고 있는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우왓!! , 뭐야. 그 얼굴은?!”

오소마츠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11.


정말이지 방심할 수 없는 여우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겨우 떠나나 싶었더니, 사랑스런 오소마츠의 입술에 나 이외의 타인이 닿다니

그 순간만큼은 꾹꾹 눌렀던 분노가 터져버렸다

어른스럽게 참으려 했지만, 무엇이든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지나친 분노는 오히려 이성을 갉아먹었다

대체 어디를 가는 거냐고 묻는 오소마츠를 끌고 신사의 가장 안쪽 방, 오소마츠의 침실에 들어갔다.


카라마츠?”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오소마츠를 품에 안았다. 내 등에 팔을 둘러 마주 안으며 오소마츠가 가만히 나를 불렀다

감미로운 오소마츠의 목소리를 만끽하며 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의 체온이 내 품 안에 가득해, 가슴 깊이 차오르는 충족감에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오소마츠의 모든 것은 전부 내 것이다. 그런데, 그 요망한 여우의 때가 묻고 말았다

다시금 치솟는 분노에 치를 떨며 오소마츠의 입술을 맛보았다.


으응?!”

놀라 움찔이는 오소마츠의 몸을 꽉 안고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오소마츠의 입술에 입술을 덮어 소리를 막았다

오소마츠의 숨이 가까이에 닿았다. 쪽쪽 몇 번이고 입술을 가볍게 떼었다가 다시 붙였다

서서히 오소마츠의 체온이 올라가는 것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후- 하고 웃음이 흘렀다.


, …”

맞닿은 입술을 살며시 열며 오소마츠가 내 목에 팔을 감았다. , 정말로 사랑스럽다

열린 입술 사이로 천천히 혀를 넣어 오소마츠의 치열을 훑었다

단단한 이빨 가운데 툭 튀어나온 귀여운 송곳니를 건드리자 오소마츠의 목에서 신음이 새었다.


, …”

송곳니를 지나 입 속 어금니를 핥고 애타게 뻗어오는 오소마츠의 혀를 얽었다

- 하는 소리와 함께 젖은 입술이 내는 소리에 오소마츠의 얼굴이 붉어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오소마츠의 얼굴에 도취되었다


, 이렇게 아름다운 이가 내 연인이라는 것에 하늘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오소마츠의 허리를 더 세게 감았다

밀착된 신체에서 느껴지는 체온과 오소마츠의 가는 몸에 흥분이 고조되어 깊은 숨을 내쉬며 입술을 떼었다.


후아…”

젖은 숨을 내쉬며 내 가슴에 손을 얹은 오소마츠가 스륵- 눈만을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기습 그만 둬~?”

“..멋대로 그 여우에게 입술을 빼앗긴 오소마츠 탓이다.”

~, 그거 어릴 때부터 해 온 인사인걸…”

“…어릴 때부터..?”

“..? …”

그럼 몇 백년이나 그런 인사를 한 건가?”

, 그렇지..”

그렇군그럼…”

!?”

다시 오소마츠의 입술에 입맞추며 각도를 바꾸어 더 깊이 혀를 밀어넣었다

품에 오소마츠를 안은 채, 바닥에 밀어 넘어뜨리자,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입술을 떼었다.


, 뭐야!?”

그 여우와 입맞춘 수 만큼, 다시 덮씌울까 생각해서.”

하아!? 몇 번인줄 알고 그러..

오소마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입술을 막았다. - 하고 질척거리는 소리를 울리며 오소마츠의 혀를 빨았다

으으응!!” 하고 오소마츠가 항의했으나, 그 소리는 입술에 막혀 뭉개졌다.


후아!! , 잠깐만…!”

입술을 떼자마자 나를 밀어내려는 오소마츠의 턱을 잡고 올려 다시 입맞춘다

이젠 울먹거리기 시작한 오소마츠의 눈이 눈물에 젖어 보석처럼 빛났다

아름답게 젖은 붉은 두 눈이 신음과 함께 쾌락에 녹기 시작했다

빙긋이 웃으며 구개를 핥자, 오소마츠의 몸이 크게 떨렸다

오소마츠의 눈가에 맺힌 눈물 빨고 이마에 입맞추자 오소마츠가 으후후하고 웃었다

평생 이대로 내 품 안에 가두고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오소마츠의 붉어진 귀를 살짝 깨물자 오소마츠의 신음 소리가 커졌다.


으햐!?”

, 귀여워…”

, !! 카라마츠으~, 귓가에, 속삭이지 마!!”

~?”

그러니까~, , 으응~!! , 아응!!”

귓바퀴를 살짝 깨물고 뜨거운 혀로 핥자 오소마츠는 말을 잊지 못하고 신음했다

귓바퀴에 살며시 입맞추고 귀에 혀를 밀어넣자 내 옷을 쥐고 있던 오소마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질척거리는 젖은 소리를 울리며 오소마츠의 귀를 희롱하고 혀를 거두자, 오소마츠가 녹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우…”

오소마츠.”

…”

오소마츠를 부르자, 완전히 쾌락에 함락된 얼굴로 얌전히 입술을 열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그 입술에 다시 뜨거운 한숨을 흘리며 방 안을 밝히고 있던 등불을 껐다.





* 특별히 이번편은 길었네요...

* 다음편은 이번주 주중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말에 열심히 썼지만.. 역부족이었네요..허허...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늦었습니다...ㅎㅎㅎ;; 2017년 새해가 밝았네요..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매일 단편 하나씩 올리겠다는 프로젝트(?)의 마지막! 오소른입니다.


* 분명 플롯은 몇 줄 안되었는데, 쓰다보면 늘어나는 마법~ㅎㅎ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마츠노 오소마츠, 마츠노가 육쌍둥이의 한 명인 그.

그는 다섯 명의 동생들에게 있어서 명실상부한 마츠노가의 장남이자, 그들의 리더이자 이었다.






2.


모두 일이 있어 저녁 늦게 돌아올 거라고 말하며 나가고 오소마츠 형과 나만 남았다.

나도 오늘은 냐-짱 라이브 원정이 있으니, 밤 늦게 들어오던가 아예 외박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엄마에게 알린 후,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왔다. 

오늘도 냐-짱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가벼운 발을 옮기며 가까운 역으로 향하던 찰나, 놓고 온 물건이 생각났다. 

몇 번이고 꼼꼼히 짐을 확인했는데, 왜 또 놓고 온 것이 있는지 한탄하며 다시 발을 돌렸다. 

다행이 조금 일찍 나왔으니, 다시 집에 들렸다가 나와도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바로 2층방으로 올랐다. 마루를 지나며 슬쩍 본 주방에 엄마는 있지 않았다. 

잠깐 어디 나가신 건가 유추하며 잊은 물건을 챙겨 다시 1층으로 내려온 내 귀에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다른 어쩐지 톤이 높고 간드러진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거실의 열린 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엄마~, 심심해애애애~”

“그래, 그래. 이것만 다 개고 놀아줄게~

장난으로 토도마츠의 귀여운 척을 흉내 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놀라 비명을 지르려는 입을 두 손 들어 막았다. 

엄마에게 매달려 엎드리고 발을 구르고 있는 오소마츠 형은, 거실에 앉아 옷을 개고 있는 엄마의 등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한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 톤과 행동에 눈을 비비고 볼을 살짝 꼬집어 보았다. 

얼얼하니 아려오는 볼이 지금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우응~~~”

“응! 다 끝났다. 우리 오소마츄~는 뭐하고 놀고 싶은까~?”

“응~, 엄마 이제 일 없어?”

“오늘은 다나카 씨가 대타 해주기로 했어.”

“…그럼 트럼프..”

“그래, 같이 트럼프 하자.”


오소마츠 형이 항상 이치마츠를 ‘이치마츄~’ 하고 불렀던 게 엄마한테서 나온 거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

어쩐지 보아서는 안 되는 심연을 본 것만 같은 꺼림칙한 기분에 나는 천천히 뒷걸음쳐 현관으로 나왔다. 



한번도 본 적 없다. 

저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오소마츠 형은. 항상 우리에게 매달려 “놀아줘~” 하고 떼쓰던 모습과도 달랐다. 

안심한 얼굴에, 완전히 모든 긴장을 풀고 철저하게 엄마만을 신뢰한다는 눈빛이었다. 

달콤하게 상대방을 부르는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도 처음 들었다.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은 우리의 ‘’이 아닌, 엄마의 ‘아들’인 오소마츠였다. 


우리에게 있어 오소마츠 형은.. 

항상 우리를 앞서 이끌고, 동생인 우리들을 알게 모르게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우리 육둥이를 이끄는 ‘리더’였고, 내 ‘파트너’였다. 

내가 알고 있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과 방금 전 본 오소마츠 형의 모습에서 참을 수 없는 괴리를 느껴, 나도 모르게 전속력으로 뛰어 집에서 멀어졌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 두렵고, 꺼림칙했는지 깨닫지 못한 채로…






3.


재잘대는 여자애들과 함께 중심가를 걸어나갔다. 

예쁜 옷이나 아기자기한 팬시를 파는 가게마다 들러 귀엽다는 말을 연발하는 여자아이들 사이에 껴서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오늘 저녁에 있을 미팅에 함께 갈 생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절로 나오려는 콧노래를 참으며 가게 윈도우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애들 뒤에 서 있는데, 시야에 붉은 후드가 잡혔다.


“윽.”

지난날, 여자애들과 함께 있을 때 만난 오소마츠 형이 계속 자기도 미팅에 데려가 달라고 매달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제발 나를 알아보지 말고 그대로 지나가기를 바라며 슬쩍 눈을 돌렸는데, 붉은 후드 옆에 항상 보던 앞치마 차림의 엄마가 붙어있었다. 

집이 아닌 밖에서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처음 봐, 몸을 숨기는 것도 잊고 빤히 둘을 쳐다보았다. 

장을 보고 왔는지 오소마츠 형과 엄마의 손엔 커다란 장바구니가 들려있었다. 

장바구니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대파조각을 보며 오늘 저녁이 전골이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전골을 할 때가 아니면 대파를 잘 쓰지 않으니까. 


뭐라 대화를 하고 있는지 오소마츠 형은 쉴새 없이 입을 움직였고, 그에 맞추어 엄마가 호호호 하고 웃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사이 좋은 모자(母子)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조금 얼이 빠졌다. 

서서히 오소마츠 형과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져, 나도 모르게 여자애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뭔가에 홀린 듯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에?”

10 걸음 정도 뒤에서 내가 둘을 쫓는 동안, 대화가 끊긴 엄마와 오소마츠 형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장바구니를 들고 있지 않은 손을 서로 맞잡았다. 

말없이 길을 걷던 엄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 오른편에 있는 가게의 윈도우를 빤히 보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 멀리 떨어져 들을 수 없었기에, 들키지 않도록 천천히 앞으로 전진했다.


“어? 별로 필요 없어~”

“너도 참, 후드 밖에 안 입잖니.”

“그렇게 자주 밖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이거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엄마가 한숨과 함께 가게의 윈도우에 전시된 옷을 빤히 바라보았다. 

붉은색의 체크무늬 셔츠에 베이지색에 파란색의 스트레이트 포인트가 들어간 니트. 

내가 봐도 제법 괜찮은 느낌의 옷이 윈도우에 서 있는 마네킹에 입혀져 있었다. 

오소마츠 형과 맞잖은 손을 흔들며 엄마는 계속 “어떠니? 응?” 하고 물었고, 오소마츠 형은 시큰둥한 얼굴로 “괜찮아~” 하고 마다했다. 

결국 포기한 엄마가 옆에 놓아두었던 장바구니를 드는 것을 신호로 두 사람은 다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멀어지는 두 사람의 등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엄마가! 그 엄마가! 

먼저 옷을 사주겠다는 말을 하다니. 


옷에 욕심이 많았던 나는 중,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에게 몇 번이고 옷을 사달라고 졸랐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네 용돈으로 사렴.” 이었다. 

엄마가 사오는 옷은 항상 육둥이 맞춤 옷뿐이었다. 


그랬던 엄마가 먼저 옷을 사주겠다고 하다니… 

그것도 오소마츠 형에게!! 


엄마가 먼저 오소마츠 형에게 옷을 사주겠다고 제안하고, 저렇게 사이좋게 장을 볼 정도로 친했던가? 

아무리 기억을 쥐어짜봐도 오소마츠 형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었지, 엄마와 저런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오소마츠 형은 항상 쵸로마츠 형에게 짓궂은 장난을 하고, 동생들에게 어리광부리고, 파칭코 좋아하는 쓰레기에, 항상 자신이 ‘’임을 주장하던 사람이었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누군가에게 어리광부리는 오소마츠 형을 나는 모른다. 

그 자리에서 멈춰선 채, 한참을 오소마츠 형과 엄마가 사라진 방향을 보고 있던 나는 같이 있었던 여자애들의 목소리에 겨우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4.


“너네 오늘 늦는다며?”

전골을 먹으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오소마츠를 제외한 형제들 모두 오늘은 늦는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 말대로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는 카라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와 달리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는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어 일찍 들어왔다. 

오소마츠의 질문에 묵묵히 대답도 하지 않고 국자를 떠 건더기를 떠먹는 쵸로마츠와 잘 익은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는 토도마츠가 시선을 외면했다.


“어~이?”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오소마츠가 다시 둘을 불렀다. 

흘끔 오소마츠를 노려본 두 사람은 푹- 하고 묘한 한숨을 쉬더니 오소마츠의 물음에 대답했다.


“별로, 오늘 라이브 취소 됐어.”

“나도 오늘 여자애들이 바쁘다고 해서.”

“후응~”

““물어봤으면 좀 들어!!!!””

이미 흥미를 잃었는지, 두 사람의 대답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새우를 맛있게 빨아먹는 오소마츠를 향해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외쳤다. 

생글생글 웃으며 “먄, 먄~” 하고 대충 사과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오소마츠 뒤쪽의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마츠요를 슬쩍 쳐다보았다.


“왜 그러니?”

계속 세 사람을 보고 있었던 마츠요와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시선이 맞자마자 놀라 어깨를 흠칫 떠는 두 사람을 향해 마츠요가 다정하게 웃으며 물었다.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는 이유 모를 압박감을 느끼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빙긋- 웃은 마츠요가 “맛있게 먹으렴~” 하고 말을 마친 후, 식사에 열중했다. 

오소마츠와 마츠요를 번갈아 응시하던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도 하는 수 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하지만 맛있는 밥을 먹어도 가슴 속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불쾌감을 지울 수 없었다.






5.


자명종이 울리기도 전, 팟! 하고 눈을 뜬 쥬시마츠가 기지개를 피며 몸을 일으켰다. 

마츠요가 엽서 응모에 당첨되었다는 야구 경기 관람권의 경기가 오늘이었다. 

마침 쥬시마츠가 좋아하는 팀의 경기. 절대 놓칠 수 없다는 결의를 담아 쥬시마츠가 평소보다 훨씬 일찍 눈을 떴다. 

아카츠카구(區)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경기장에서 이루어지는 경기이기에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일찍 열차를 타야 했다. 

시계를 확인해, 마츠요가 이미 일어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쥬시마츠가 계단을 내려왔다. 

주방에 있는 마츠요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자 마츠요도 인사를 하며 쥬시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어제 미리 말해놓은 덕분에 이미 준비가 끝난 도시락을 보며 쥬시마츠가 활짝 웃었다. 

아침 준비도 다 되었느니, 아침밥 먹고 출발하라는 마츠요의 말에 힘껏 고개를 끄덕인 쥬시마츠가 거실로 향했다. 

곧 관람하게 될 야구 경기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콧노래를 부르며 식사를 기다리고 있던 쥬시마츠의 귀에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 7시, 오소마츠를 비롯한 다른 형제들은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을 시간이었다. 

코를 골며 위층에서 자고 있을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며 쥬시마츠가 귀를 기울였다. 

거실 안을 돌아다니며 어디서 목소리가 들려오는지 확인한 쥬시마츠가 의아한 얼굴로 거실 옆에 위치한 안방의 문을 살짝 열었다. 


“아빠, 오늘 늦어?”

“음.. 아니, 늦을 것 같지는 않구나.”

“정말?”

“그래. 그럼 오늘 ‘이거’ 갈까?”

오소마츠가 들고 있는 양복 재킷에 팔을 끼우고 옷을 정돈한 마츠조가 씨익-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띠고 손을 돌렸다. 

오소마츠가 파칭코를 나타내는 손동작을 그대로 하는 마츠조에게 씽긋- 같은 미소를 지어 화답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양말은?” 하고 묻는 마츠조가 바닥을 둘러보자 오소마츠가 안방의 장롱 서랍에서 검은 양말 한 켤레를 꺼내 건넸다. 

바닥에 앉아 양말을 신는 마츠조를 향해 오소마츠가 말했다.


“아빠, 나 용돈 쫌만~”

“저번에 준 건 어쩌고?”

“엄마랑 장 보는데 보탰어. 생활비 좀 더 달래, 엄마가.”

“아빠 비상금 할 돈도 없다, 이 녀석아. 자.”

자, 하는 가벼운 대답과 함께 양복 재킷에서 지폐를 꺼낸 마츠조가 오소마츠에게 건넸다. 

눈에 엔(¥)자를 한 오소마츠가 기쁘게 지폐를 받았다. 

“아빠 땡큐~” 하고 웃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츠조가 “오냐~” 하고 대답했다. 


“…”

마치 침대 밑의 괴물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쥬시마츠가 슬금슬금 안방 문에서 멀어졌다. 

거실 안을 빙빙 돌며 긴 소매로 입을 가린 쥬시마츠가 기억을 더듬었다. 

다른 형제들이 마츠조에게 용돈 좀 달라고 졸라도 마츠조는 항상 엄한 얼굴로 “그런 건 엄마한테 받아!!” 하고 매달리는 형제들을 내쳤다. 

그 이후에도 몇 번, 졸라대는 형제들에게 화를 내며 혼냈던 마츠조 덕분에 육둥이의 용돈은 전부 마츠요가 일임하고 있었다. 

크게 혼난 뒤로, 마츠조에게 감히 용돈 이야기를 꺼내는 형제는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가볍게 오소마츠에게 용돈을 주는 마츠조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소마츠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나 마츠조의 출근 준비를 돕다니… 

쥬시마츠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모습을 보게 되어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방금 전까지 야구로 가득 찼던 머리 속은 어느새 오소마츠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했다. 

쥬시마츠에게 있어서 오소마츠는 항상 ‘’이었다. 

어릴 적엔 육둥이를 이끄는 리더였고, 학창시절엔 따돌림 당하는 동생들을 보호해주는 멋있는 ‘’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망설이는 쥬시마츠의 등을 밀어주는 듬직한 ‘장남’이었던 오소마츠. 


쥬시마츠가 알고 있는 오소마츠는 저렇게 쉽고 자연스럽게 어리광을 부리고, 부드럽게 녹은 미소를 짓는 남자가 아니었다. 

거실 안을 빙빙 도는 쥬시마츠는 마츠요가 식사를 가지고 와서야 도는 것을 멈추었다. 

쥬시마츠가 식사를 마치고 현관을 나설 때까지, 오소마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6.


이미 해는 저 산 너머로 지고 하늘은 어둠이 가득했다. 

발치에서 우는 고양이들을 한 번씩 쓰다듬어준 후, 후드 주머니에 손을 끼고 골목을 나왔다. 

턱에 걸치고 있던 마스트를 다시 올려 입가를 가리고, 차가운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슬슬 저녁시간이다. 늦으면 맛있는 반찬은 전부 사라지는 마츠노가의 규칙에 따라 서둘러 돌아가야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기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골목 골목을 지나, 집으로 향하는 큰 길가로 나와 걷는데, 익숙한 빨강색이 눈에 띄었다. 

헐렁해진 붉은 후드와 그 옆의 아이보리색 니트. 오소마츠 형과 아빠였다. 

이제 곧 저녁식사 시간인데,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집이 아니었다. 

대체 어디를 가는 것인지, 호기심에 발소리를 죽이고 둘의 뒤를 따랐다. 



“…엣”

화려하게 빛나는 간판 아래, 오소마츠 형과 아빠가 파칭코로 들어갔다. 

오소마츠 형은 그렇다 치고, 아빠까지 파칭코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 보았다. 

절로 입가로 새어 나오는 황당한 신음에 마른침을 삼키고 나도 파칭코로 들어갔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기계 앞에 앉아 두 사람을 관찰했다. 

나란히 앉은 오소마츠 형과 아빠는 서로 대화하며 웃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이 팔로 툭툭 아빠를 건드리면 아빠도 호탕하게 웃으며 오소마츠 형의 옆구리를 찌르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 친구와도 같은 자연스럽고 친근한 분위기에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 눈을 돌렸다. 

항상 놀아달라며 우리에게 매달리고 어리광을 부리던 오소마츠 형은 한번도 저런 얼굴을 하지 않았다.


“오오!!”

“오! 아빠 대박났네?!”

“이 몸 정도면 이 정도는 나와 줘야지!!! 그래! 이걸로 한 잔 하고 갈까?”

“이예~!!!”

정신 없는 큰 소리와 함께 아빠의 기계에서 쇠구슬이 쏟아져 나왔다. 

오소마츠 형처럼 씩-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입가에 올린 손을 기울이는 아빠와, 아빠처럼 호탕하게 웃으며 만세를 부르는 오소마츠 형. 

아이와도 같은 오소마츠 형의 웃음을 보며, 어린 날의 오소마츠 형을 떠올렸다. 


내게 있어서 오소마츠 형은 언제나 ‘’이었다. 

말주변도 없고 숫기도 없는 나를 항상 먼저 이끌어주고, 내가 하지 못한 말을 헤아려 들어주는 그런 상냥한 형이었다. 

물론 평소에는 나보다 더한 쓰레기에 바보였지만, 여차할 때는 ‘형’으로서 나서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친구와 싸웠을 때도, 내 의지를 존중해 주었다. 

이젠 희미한 기억 속의 ‘오소마츠’ 였을 때의 얼굴을 떠올리고, 어쩐지 가슴 가득 차오르는 쓸쓸함에 고개를 돌리고 파칭코를 나왔다. 

나오며 뒤돌아보니 아빠와 오소마츠 형은 완전히 의기투합해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천진난만하게 웃는 즐거운 얼굴로.






7.


반찬이 담긴 그릇들 사이로 분주하게 오가는 젓가락들 사이로 멈춰있는 두 쌍의 젓가락.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가만히 오소마츠를 보고 있는 쥬시마츠와 이치마츠를 나머지 형제들이 바라보았다. 

따가운 둘의 눈빛을 받은 오소마츠가 밥그릇에서 시선을 올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니, 아무것도.”

"..."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이치마츠가 고개를 숙이고 젓가락을 입에 넣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이치마츠는 그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쥬시마츠도 항상 활짝 벌리고 있던 입을 꾹- 다물고, 오소마츠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평소와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상태에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렸지만, 굳이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항상 소란스러웠던 마츠노가의 아침식사가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했다.






8.


오소마츠와 싸웠다. 너무나도 한심한 이유로. 

냉장고에 남은 푸딩을 누가 먹을 것인가, 라는 바보 같은 이유로 주먹질까지 하게 되다니… 

애초에 오소마츠는 ‘형’이면서 양보라는 것을 모른다. 

멋진 남자라면 당연히 ‘양보’의 미덕을 갖추고 있어야 하건만… 

집을 나올 때는 씩씩거리며 나왔지만, 강가에 도착하는 사이, 머리는 어느 정도 냉정해졌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런 사소한 이유로 싸우다니, 스스로도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단지, 오소마츠와 엮이면 항상 마음 속의 브레이크가 잘 걸리지 않는 것 같다. 

푹- 한숨을 쉬고 발을 돌렸다. 

이런 사소한 이유, 빨리 사과해 버리는 것이 좋다. 

멋진 남자는 넓은 도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잘못이 없어도 먼저 사과하는 나는 최고로 쿨(cool)- 하지 않은가! 



집에 도착해 거실 문을 열었지만, 오소마츠는 보이지 않았다. 

나를 따라 나간 것일까 하고 다시 현관을 확인했다. 

방금 내가 벗어놓은 가지런한 구두와 오소마츠의 붉은 운동화가 제멋대로 내팽개쳐져 있었다. 

저 운동화 외에 오소마츠가 가지고 있는 신발은 없으니 집 안에 있는 것은 확실했다. 

2층에 있는 것일까, 계단 쪽으로 걸어가는 중에 주방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엄마~”

“응~, 오늘은 또 왜 이럴까~?”

“우응~~”

싱크대에 선 마미의 뒤에서 마미를 껴안은 오소마츠가 칭얼대는 소리를 냈다. 

마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오소마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마미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오소마츠, 그건 백허그가 아닌가… 

그런 건 마미가 아니라 러버(lover)에게 해야… 

아니, 그게 아니라!! 으응?!?! 오소마~츠??



“…”

“무슨 일 있었어?”

“응~, 카라마츠랑 좀…”

“또 싸웠어? 정말, 너희 둘은 유난히 자주 싸우는 구나.”

“..카라마츠가 나빠.”

“후후후, 그래그래~”

뚱- 하니 볼을 부풀리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마미가 남은 설거지를 끝냈다. 

가볍게 손을 턴 마미가 앞치마를 풀고 오소마츠의 머리를 쓸어 올려주었다. 


“저녁은 뭐가 좋아?”

“..야키소바.”

“그럼 같이 장 보고 올까?”

“..응. 그럼, 가라아게도..”

“후후후, 그래~”

옷을 정돈하고 주방 한 켠에 놓인 장바구니를 챙긴 엄마가 오소마츠 형의 손을 잡았다. 

엄마의 미소에 오소마츠 형의 삐진 얼굴로 스르륵 녹아 내렸다. 

가늘게 뜬 오소마츠 형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너무나 편안한 미소로 오소마츠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을 나오려는 움직임에 재빨리 2층 층계로 몸을 숨겼다. 

둘은 나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대로 현관으로 걸어 나갔다. 

서로 마주잡은 손을 앞뒤로 흔드는 오소마츠 형과 오소마츠 형을 보며 자상한 미소를 지은 엄마가 현관을 나갔다. 

딸깍- 하고 현관의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가 났다. 


방금 전의 그건, 정말로 오소마츠 형인 건가? 

누군가 다른 형제가 오소마츠 형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애교가 많은 토도마츠나, 아니면 항상 밝고 활짝 웃고 다니는 쥬시마츠가.. 

오소마츠 형의 흉내를 낸 것은… 


항상, 내가 가장 ‘형’을 필요로 할 때, 언제나 오소마츠 형은 내게 와 주었다. 

내 고민 상담도 무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지겹도록 본 것은 오소마츠 형의 ‘’의 얼굴. 

저런, 편안한 얼굴은 어릴 적에도 본 적이 없다. 

두 사람이 떠난, 빈 현관을 언제까지고 바라보며 숨을 내쉬었다.






9.


쵸로마츠의 요청에 따라, 제 2017회 동생 회의가 열렸다.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은 쵸로마츠가 앉아있는 형제들을 쭉 훑어보며 외쳤다.


“부모님의 부당한 편애에 대해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앉아있던 네 명의 형제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손을 들어 모두의 환호를 가라앉히고 쵸로마츠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요 며칠 목격한 행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의견 있는 분?”

쵸로마츠의 질문에도 그 누구도 섣불리 손을 들지 않았다. 

솔직히 대처 운운하지 이전에 쵸로마츠를 비롯한 형제들 모두 당황하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어리광과 동생들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부모님의 편애에 당혹감 밖에 느끼지 못했다. 

여러모로 충격을 받아 아직도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로 모두 머리 속이 어지러운 상태였다. 

모두가 머리를 끌어안고 끙끙대는 사이, 손을 든 토도마츠가 먼저 발언했다.


“근데 말이야, 대체 뭐야? 오소마츠 형의 그 태도!! 막내인 나를 제쳐두고 엄마, 아빠한테 그런 애교를 부린다는 게!!”

토도마츠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토도마츠의 막내 운운은 놔두더라도, 부모님을 향한 오소마츠의 어리광에는 모두 놀랐다. 

장남인 오소마츠는 동생들에게 항상 ‘형’의 모습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좀, 놀랐어..”

“오소마츠 형아의 그런 얼굴은 처음 봤슴다!!”

“..나도…”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말을 이어 쵸로마츠도 어쩐지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육둥이의 리더인 오소마츠의 파트너라는 것에 은근히 우월감을 느끼고 있던 쵸로마츠였다. 

오소마츠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자신도 몰랐던 오소마츠의 일면에, 쵸로마츠는 다른 형제들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린 쵸로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 얼굴은, 내게만 보여주었으면 좋겠는데…”

카라마츠를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카라마츠에게 박혔다.

정작 당사자인 카라마츠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동생들이 자신을 보며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잠깐의 간격을 두고 이치마츠가 먼저 일어나 전심전력으로 카라마츠를 차 넘어뜨렸다.


“좀, 닥쳐라. 개똥마츠.”

“아, 아얏!! 자, 잠깐, 잇, 이치마츠으으으으!!!!”

“…”

카라마츠의 애원에도 이치마츠의 폭력은 계속되었고, 이어서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도 말없이 일어나 쓰러져있는 카라마츠를 밟기 시작했다. 

신나게 밟히고 있는 카라마츠를, 쵸로마츠가 한심하단 얼굴로 응시했다. 

가만히 서서 동생들을 말리지 않는 쵸로마츠도 동생들과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부모의 편애는 사실상 어찌되어도 좋았다. 걸리는 것은 오소마츠의 어리광이었다. 

철이 든 이후로는 항상 ‘’의 얼굴을 했던 오소마츠가, 부모에게 보여준 그 얼굴은 동생들이 보아왔던 그 어떤 얼굴보다 더 새침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온 몸의 긴장을 풀고 이완된 얼굴은 부드럽게 풀려 오소마츠의 매력을 한층 더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부모를 향한 오소마츠의 어리광을 부리는 달달한 목소리와 자연스럽게 붙어오는 스킨쉽은 동생들이 항상 바래왔던 꿈과도 같았다. 

모두가 카라마츠의 말에 동의하고, 그렇게 바라고 있었지만 섣불리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것을 카라마츠는 시원스레 말해버렸다. 

그 말에 동의함과 동시에 어쩐지 심중을 찌르는 날카로운 한 마디에 기분이 언짢아진 동생들은 전적으로 카라마츠를 탓하며 폭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카라마츠가 기절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된 동생들의 마음 속엔 모두 같은 열망이 피었다.



오소마츠 형의 어리광을 보고 말겠다는 열망이.






10.


“오소마츠 형아!!”

거실에 엎드려 만화를 보고 있는 오소마츠를 향해 쥬시마츠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치마츠가 안고 있던 고양이가 쥬시마츠의 외침에 놀라 온 몸에 털을 세우고 열린 창문으로 도망쳤다. 

아쉬워하는 얼굴로 창문 너머로 도망친 고양이를 보는 이치마츠와 오소마츠가 쥬시마츠를 응시했다.


“어, 어… 왜?”

너무나도 큰 외침이었기에 얼떨떨한 얼굴로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물었다. 

어디서 꺼냈는지 야구 방망이를 든 쥬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다가가 그 손을 잡았다.


“같이 야구하러 가자!!”

“아, 그래…”

눈을 크게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오소마츠를 보며 쥬시마츠가 활짝 웃었다. 

“에, 잠깐..!!” 하고 외치는 이치마츠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쥬시마츠는 오소마츠를 끌고 집을 나섰다. 

생글생글 웃으며 오소마츠와 맞잡은 손을 흔드는 쥬시마츠는 항상 가던 강둑이 아닌 도심의 번화가로 향했다. 

야구를 하자는 말에 당연히 강둑으로 갈 것이라 생각했던 오소마츠가 번화가로 향하는 발걸음에 고개를 기울이며 쥬시마츠를 불렀다. 


“쥬시마츠?”

“응~?”

“야구하러 가는 거 아니야?”

“응, 그거! 핑계!!”

“…핑, 계?”

어리둥절한 얼굴로 오소마츠가 되묻자 쥬시마츠는 말 없이 빙긋- 웃었다. 

대답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쥬시마츠에게 끌려가며 오소마츠가 “에에…” 하고 신음했다. 

번화가에 도착하자마자 손을 높이 펼친 쥬시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외쳤다.


“오늘은 오소마츠 형아가 가지고 싶어하는 거 다~ 사줄게요!!!”

“어?? 너한테 무슨 돈이 있어서…”

“있어!! 주식으로!!”

“하? 주시익~? 아니, 네가 무슨 수로.. 아니, 그만 두자…”

뭔가를 떠올렸는지 쥬시마츠는 알 수 없었기만, 어쩐지 달관한 얼굴의 오소마츠는 목구멍까지 치솟는 질문들을 억지로 삼켰다. 

오소마츠를 보며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별일 아니라고 결론지은 쥬시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을 이끌고 대형 쇼핑몰로 향했다. 



의류코너, 화장품코너, 팬시코너, 여러 코너들을 돌며 쥬시마츠는 끊임없이 오소마츠에게 “이거 가지고 싶어요? 오소마츠 형아!” 하고 물었다. 

대체 이 녀석이 왜 이러나 하는 얼굴로 오소마츠는 모든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시간은 지나고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건만, 오소마츠의 수중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쇼핑몰의 로비에 마련된 휴식공간에 앉은 쥬시마츠가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하아….”

“에에…”

“오소마츠 형아는 내가 사주는 게 싫슴까?”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묻는 쥬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었다. 

이내 당혹스러운 얼굴을 지우고 피식-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쥬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 별로 그런 게 아니라. 이렇게 갑자기 사준다고 해도 가지고 싶은 게 안 떠오르고… 그래도 나한테 뭘 사준다고 해서 고마워~ 쥬시마츠.”

볼을 붉히고 수줍게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쥬시마츠는 가슴이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든 오소마츠에게 원하는 것을 사주고 싶다는 마음이 박차를 가했다. 

기합을 주고 벌떡 일어난 쥬시마츠가 오소마츠를 보며 빙긋 웃고는 “그럼 다시 돌아보자!!” 하고 힘차게 외쳤다. 

오소마츠도 쥬시마츠를 따라 빙그레 웃고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쇼핑몰을 도니 오소마츠가 멈추는 곳이 생겼다. 

가게 밖에서 상품을 유심히 살피던 오소마츠가 들어선 가게는 옷 가게였다. 

망설임 없이 분홍색 스웨터와 제법 멋있어 보이는 까만 썬글라스를 고른 오소마츠가 쥬시마츠에게 웃으며 “이거!” 하고 외쳤다. 

처음으로 오소마츠가 쥬시마츠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 기뻐 쥬시마츠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가격을 지불했다. 

그 이후에 들른 게임센터에서 오소마츠가 인형뽑기에서 그 실력을 발휘해 보랏빛 고양이 인형과 초록색 고양이 인형을 뽑았다. 

물론 그 돈은 쥬시마츠가 지불했다. 

이어서 잡화 코너에 들어선 오소마츠는 제법 질이 좋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야구 글러브를 골랐다. 

무슨 조화인지 야구 글러브를 끝으로 쥬시마츠가 가지고 있던 돈은 동이 났다. 

포장해 주겠다는 점원의 말에 부탁한다고 대답한 오소마츠가 예쁘게 포장된 야구 글러브를 들고 나와 쥬시마츠에게 내밀었다.


“에?”

“이거, 선물. 뭐, 쥬시마츠가 돈 냈으니까, 선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쑥스러운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코 밑을 문지르는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쥬시마츠가 야구 글러브를 받아 들었다. 

그제야 지금까지 오소마츠가 산 물건들은 전부 동생들을 위한 선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쥬시마츠가 오소마츠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러면, 오소마츠 형아 꺼가 없어!!!”

항상 밝게 웃던 얼굴을 찌푸리고 눈썹을 늘어뜨린 쥬시마츠가 애타게 외쳤다. 

쥬시마츠의 슬픈 표정에 오소마츠가 당황하며 쥬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없어도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쥬시마츠는 참을 수 없는 뭔가를 느꼈다. 

마치 해일처럼 온 마음을 휩쓸고 들어온 감정은 쉽사리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것이었다. 

슬픈 것 같으면서도, 기쁜 것 같은, 복잡한 감정에 혼란스러워져 머리 속이 어지러웠다. 

돈은 이미 바닥나서 지금부터 오소마츠의 선물을 살 수도 없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오소마츠를 보며 쥬시마츠는 ‘아, 역시 오소마츠 ‘’이다…’ 하고 독백하며 쓰게 웃었다. 






11.


골목 사이를 걸어 나오면 나오는 넓은 공터. 

아무도 모르는 이 장소는 이 마을의 고양이들의 아지트였다. 

발 밑에 가득 모여 저마다 “야옹~” 하고 우는 고양이들을 보며 오소마츠가 눈을 크게 떴다. 

길을 걷다 보면 기껏해야 한두 마리 보이는 길고양이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여 있는 것을 오소마츠는 처음 보았다. 


“어때? 귀엽지?”

고양이들 사이에 파묻혀 능숙하게 고양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을 쓰다듬는 이치마츠가 씨익- 웃었다. 

항상 흥미 없다는 듯 빛을 잃은 채였던 이치마츠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린 오소마츠가 발치에 모여든 고양이들에게 몸을 숙여 쓰다듬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앞에 모여 쓰다듬어주기를 기다리는 고양이들은 정말로 귀여웠다. 

부드럽게 눈을 풀고 고양이들의 재롱을 보는 오소마츠 곁에 이치마츠가 다가왔다.


“요즘, 오소마츠 형. 뭔가 지쳐 보였으니까.”

“응… 고마워, 이치마츠.”

자상한 목소리고 감사인사를 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이치마츠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빠와 마치 친구처럼 지냈던 오소마츠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치마츠가 용기를 내 오소마츠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단 한번도 스스로 해 본적 없는 어깨동무에 이치마츠가 얼굴을 붉혔다. 

자신의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에 놀라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후후” 하고 웃었다. 

잔뜩 붉어진 얼굴에 딱딱하게 굳은 이치마츠의 표정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웃겼다. 

배를 잡고 한참을 큭큭거린 오소마츠가 자신의 팔을 들어 이치마츠의 어깨에 올렸다.


“이열~, 이치마츄 군~? 오늘따라 적극적인데~?”

“..후, 후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항상 적극적이라고? 오소마츠 군.”

“큭큭큭큭…”

창피함에 덜덜 떨면서도 자신의 농담에 맞장구를 치는 이치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웃느라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이치마츠는 오만가지 생각에 시달렸다.



‘잘못한 건가? 이게 아닌가? 친구끼리라면 이러는 게 맞는 거지? 내가 친구가 있어봐야 알지!!!! 아아아아!!! 잘못한 건가?? 잘못한 건가?!?! 오소마츠 형 전혀 얼굴 안 드는데?! 고양이 작전은 실패인가?! 아니야, 방금 전까지는 분위기 좋았다고!! 큭, 맞장구 치는 게 이상했나? 대체 뭐가 문제야아아아아!! 내가 잘한 거야? 아님, 잘못한 거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격렬하게 (속으로) 후회중인 이치마츠 주위로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야옹~” 하고 걱정하는 것 같이 우는 고양이들을 보며 이치마츠가 눈가에 찔끔 맺힌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한 탓에 지쳐버린 이치마츠는 이제 ‘될 대로 되라.’ 라는 심정으로 오소마츠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치마츄~. 진짜 최고, 너. 오랜만에 엄청 웃었다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면서도 큭큭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오소마츠를 보며 이치마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실패가 아니라는 것에 오소마츠 몰래 주먹을 꽉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이치마츠였다. 

다 웃었는지, 앞에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는 오소마츠가 고개를 홱 돌려 이치마츠를 보았다.

‘고양이와 함께 있는 오소마츠 형, 진심 천사!!’ 하고 몰래 오소마츠를 응시하고 있던 이치마츠가 갑자기 고개를 돌린 오소마츠와 눈이 마주쳐 움찔! 어깨를 떨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오소마츠의 눈을 마주한 이치마츠를 보고 오소마츠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너, 그, 그 얼굴 뭐야. 아하하하하하!!”

팡팡! 땅까지 쳐가며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웃는 얼굴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저도 모르게 이상한 얼굴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이치마츠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상한 표정 때문에 무리가 갔는지 땡겨 오는 얼굴 근육을 문지르며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웃음이 그치지를 기다렸다.


“아~, 배꼽 빠지게 웃었네.”

“..다 웃었으면 이제 갈까? 어두워지고 있어.”

“응, 그럴까?”

오소마츠가 동의하며 이치마츠의 어깨에 걸치고 있던 팔을 풀었다. 

묵직했던 무게가 사라짐과 함께 목을 감싸고 있던 온기가 사라지는 것에 아쉬워하며 이치마츠도 팔을 풀었다. 

골목을 나와 큰 길로 들어서자 순식간에 인파가 불어났다. 조심해서 걷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힐 것만 같았다. 

사람이 많은 것은 어쩐지 거북한 이치마츠가 잔뜩 어깨를 움츠렸다. 

이치마츠의 옆에서 걷는 오소마츠도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앞으로 걸었다. 


‘아, 이거 어쩌면 기회?’

문득 TV에서 봤던 장면을 떠올린 이치마츠가 후드 주머니에 손을 끼고 있던 팔을 흔들었다.


“오소마츠 형.”

“응?”

오소마츠를 부르고 한 번 더 팔을 흔들자, 그 뜻을 알아차린 오소마츠가 “푸핫!” 하고 웃으며 이치마츠의 팔에 자신의 팔을 꼈다. 

이른바 연인들이 자주 하는 ‘팔짱 끼고 걷는 자세’가 되어, 만족스럽게 웃는 이치마츠를 보고 오소마츠가 다시 잘게 웃음을 흘렸다. 

집을 향해 걷는 길, 사람이 많아도 거북한 기분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오소마츠의 체온에 이치마츠는 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헛된 소망을 빌 정도로, 이치마츠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아.”

“응?”

뒤에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에 오소마츠와 이치마츠가 몸을 돌렸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이치마츠가 시비를 걸었던 커플이 이치마츠를 향해 다가왔다. 

그 이후로 가끔 이렇게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의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이치마츠에게 다가온 커플도 이치마츠와 오소마츠처럼 팔짱을 끼고 있었다.


“어디 가는 길이세요?”

커플의 여성이 묻자 이치마츠가 작은 목소리로 “집에…” 하고 대답했다.


“요즘, 날씨가 춥죠? 그렇게 입으면 감기 걸리세요.”

“저희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 역에 가는 길이에요.”

목도리를 두리고 이치마츠의 얇은 차림을 본 여성이 걱정이 담긴 한 마디를 던졌다. 

이어 커플의 남성이 자신들도 집으로 가는 길이라며 웃었다. 

함께 걸어가며 몇 마디 말을 나누고, 역 앞 사거리에서 헤어진 커플은 이치마츠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치마츠도 작게 손을 흔들어 배웅하고 다시 집을 향해 걸었다.


“이야~ 우리 이치마츄~, 횽아 걱정했는데, 제대로 친구도 사귀고.”

“에? 아니, 저건 친구가 아니라…”

“응~? 우리 이치마츄~ 완~전 사교적이네~~ 횽아 기뻥~”

오소마츠가 씩- 웃으며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치마츠는 타인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서투르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고, 게다가 자신은 칭찬을 받을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도 역시 칭찬을 받고 싶다는 열망은 지울 수 없었다. 

타인에게 칭찬을 받으면 땅에서 발이 떨어져 공중에 뜨는 것 같이 기뻤다. 

그것이 이치마츠가 가장 좋아하는 오소마츠의 칭찬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오소마츠의 진심으로 기쁜 얼굴과 칭찬 세례를 받으며 이치마츠는 기쁜 한편, 어쩐지 가슴 깊이 느껴지는 씁쓸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도, 이치마츠에게 있어 오소마츠는 ‘’ 이었다.






12.


가게 안의 옷들을 뒤적이며 유심히 옷을 바라본 토도마츠가 마음을 정했는지, 붉은색의 코트를 집어 들었다. 

과거 유행했던 일명 떡볶이 코트. 기장과 옷의 폭을 확인한 토도마츠가 코트를 오소마츠에게 내밀며 말했다.


“자, 오소마츠 형. 입어 봐.”

“에~, 이런 거 필요 없는데…”

“됐으니까! 얼른!”

토도마츠의 재촉에 오소마츠가 “네이네이~” 하고 대답하며 코트를 받아 들고 팔을 꼈다. 

토도마츠의 예상대로 코트는 오소마츠에게 굉장히 어울렸다. 

오소마츠의 앳된 얼굴과 시너지를 이루어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어린 매력이 나왔다. 

가게 안 점원들도 감탄하며 “잘 어울리세요~” 하고 손뼉을 쳤다. 

토도마츠도 오소마츠에게 “형, 한번 돌아 봐.” 하고 요구하며, 한 바퀴 빙글- 도는 오소마츠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사복을 위해 모아두었던 돈으로 망설임 없이 결제한 토도마츠가 점원이 싸준 종이백을 들고 가게를 나왔다.


“나, 옷 별로 필요 없다니까?”

“안 돼! 오소마츠 형, 겨울 외투는 엄마가 묶음으로 사온 한텐* 뿐이잖아!”

*한텐(袢纏) : 일본의 전통적인 겨울 코드 [출처-위키백과]. 애니에 육둥이가 겨울 겉옷으로 입는 외투.

토도마츠의 외침에 푹- 한숨을 쉰 오소마츠가 “알겠어~, 고마워~” 하고 웃었다. 

적당한 대답에 살짝 오소마츠를 흘겨보면서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의 팔에 팔짱을 꼈다. 

옷 가게와 화장품 가게가 늘어선 번화가를 함께 걸으며 토도마츠가 가게의 커다란 윈도우에 비친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같은 키여도 이치마츠와 달리 곧게 뻗은 등과 토도마츠보다 미묘하게 넓은 어깨에 토도마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소마츠 형은 체형적으로 옷 맵시가 사니까, 좀 더 멋지게 입고 다니면 좋은데 말이야~”

“응~? 드라이 몬스터가 웬일로 칭찬을 다 해?”

“별로, 사실이니까.”

오소마츠의 놀림에 새침하게 고개를 돌린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의 팔을 이끌었다.


“저기! 저기 들리자!”

새로 생겼다는 팥빙수 가게로 오소마츠를 이끈 토도마츠가 눈을 빛냈다. 

항상 길게 늘어져 있던 길이 오늘따라 짧았다. 

줄의 끝에 선 토도마츠를 따라 멈춘 오소마츠가 줄의 앞을 보며 물었다.


“뭐야? 이 줄은..”

“팥빙수 가게!”

“빙수~? 겨울이야, 지금…”

“겨울 상관 없이 맛있다고! 이 가게는!!”

토도마츠의 성화에 오소마츠도 포기하고 얌전히 줄을 섰다. 

가게에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오소마츠와 토도마츠는 손장난을 하고, 쵸로마츠의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었다. 

그러는 동안 착실하게 줄은 줄어들어 어느새 오소마츠와 토도마츠의 차례가 되었다. 

오소마츠가 단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토도마츠는 아이스크림이 잔뜩 올라간 빙수를 주문했다. 

잠시 기다려달라는 점원의 말에 자리를 잡고 앉자, 오소마츠가 이리저리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나무로 인테리어를 해 편안한 분위기와 빵빵한 난방에 오소마츠가 빙그레 웃었다.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치는 토도마츠가 “어때? 좋지?” 하고 묻자 오소마츠가 “응.” 하고 대답했다. 

마침 진동벨이 울려, 토도마츠가 주문한 팥빙수를 들고 왔다. 

빙수 높이 올라간 아이스크림의 크기에 오소마츠가 입을 떡 벌렸다. 

나누어준 작은 스푼 하나를 오소마츠에게 건넨 토도마츠가 “자, 먹자!” 하고 웃었다. 

달달한 아이스크림의 맛에 오소마츠가 행복하단 얼굴로 팥빙수를 퍽퍽 파먹는 모습을 가만히 보며 토도마츠가 빙그레 웃었다. 

모처럼 여기까지 끌고 온 보람이 있었다. 


“오소마츠 형, 묻었어.”

오소마츠의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손가락으로 닦아주며 토도마츠가 상냥하게 웃었다. 

평소의 드라이 몬스터같지 않은 토도마츠의 모습이 낯선지 오소마츠가 “오, 오오.. 고마워.” 하고 대답하며 멋쩍게 웃었다. 

쑥스럽게 웃는 오소마츠의 미소를 지금 당장 찍고 싶다는 욕망을 간신히 억누르며 토도마츠가 턱을 괴고 오소마츠의 모든 순간을 눈에 담았다.

 


팥빙수 가게를 나와 다음은 어딜 갈까- 묻는 토도마츠는 여전히 오소마츠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토도마츠의 물음에 적당히 대답하고, 대화하는 오소마츠는 웃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미소에 안심의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 앞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다.


“어? 톳티-“

“아… 안녕.”

항상 어울려 다니던 여자아이들 중의 한 명이었다. 

어디를 가는지 풀 메이크업에 옷차림도 제법 기합을 준 것을 알아차린 토도마츠가 웃는 얼굴로 물었다.


“어디 가?”

“응~ 잠깐, 애들이랑 만나기로 해서! 그래! 토도마츠도 같이 가자!!”

여자아이의 말투로 보아 미팅에 나간다는 것을 눈치챈 토도마츠가 곤란하단 얼굴로 오소마츠를 쳐다보았다. 

토도마츠와 눈이 마주친 오소마츠가 빙긋- 웃더니 앞에 선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아, 안녕하세요… 어? 같은 얼굴?”

“응! 나 토도마츠의 쌍둥이 형이야!”

“아~ 그러시구나!”

“토도마츠, 옷 센스 꽤 괜찮지? 오늘도 나 옷 골라주고 있었어~ 진짜, 착한 녀석이라니까-“

“아, 정말요? 토도마츠가 확실히 옷을 잘 입긴 해요.”

“그치? 나중에 여친 생기면 횽아 버리고 여친하고만 다닐 것 같지?”

“네? 후후후”

자연스럽게 농담에 칭찬을 섞는 오소마츠를 토도마츠가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토도마츠가 눈 앞의 여자아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린 건지 오소마츠는 계속해서 은근슬쩍 토도마츠의 칭찬을 이어갔다. 

오소마츠의 친화력으로 여자아이도 딱히 불쾌해하지 않고 오소마츠의 말을 들으며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었다. 


“그럼, 이 녀석 좀 부탁해~”

툭, 하고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 하고 정신을 차린 토도마츠가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토도마츠도 모르는 사이에 토도마츠도 함께 미팅에 간다는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슥- 토도마츠와 끼고 있던 팔짱을 푼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와~”

“안녕히 계세요. 톳티- 가자~”

빙긋- 웃으며 오소마츠에게 가볍게 인사한 여자아이가 토도마츠의 팔에 팔짱을 끼웠다.

가까워진 거리에 은근한 꽃향기가 났다. 여자와 가까워진 것에 당황하면서 토도마츠가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흔든 오소마츠가 곧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집을 향해 걸었다. 

여자아이에게 이끌리다시피 걸어가며 토도마츠가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을 바란 게 아니었는데…’






13.


“백수 1호~, 설거지 좀 해 놓으렴~”

마츠요의 목소리가 마루에 울렸다. 

거실에 누워 TV를 보던 오소마츠가 “하아~” 하고 한숨을 쉬더니 몸을 일으켰다. 

거실을 나가 주방으로 향하는 오소마츠 곁에 쵸로마츠가 섰다.


“응? 쵸로마츠?”

“뭐야.”

“너는 왜 와?”

“같이 하면 빨리 끝나니까.”

주방에 들어선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엔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함께 하자는 쵸로마츠의 제안에 어리둥절한 오소마츠였다.

딱히 도와주겠다는 것을 거절할 이유도 없어 오소마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쵸로마츠에게 붉은 앞치마를 내밀었다.


“자, 혹시 음식 찌꺼기 튈 수 있으니까.”

“응. 고마워.”

쵸로마츠가 살짝 결벽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낸 오소마츠가 내민 앞치마를 쵸로마츠가 허리에 멨다. 

곧이어 딸깍딸깍 도자기 밥그릇이 부딪치는 소리가 주방에 울렸다. 

오소마츠가 세제를 묻힌 수세미로 닦은 접시를 쵸로마츠에게 건네주면 쵸로마츠가 깨끗이 헹궈 식기 건조대에 놓았다. 

쵸로마츠의 말대로 둘이 한 설거지는 금새 끝나 반짝이는 싱크대만이 남았다. 

앞치마를 풀어 원래 있던 곳에 놓은 쵸로마츠가 냉장고에서 어제 사 놓은 푸딩을 꺼냈다.


“응.”

“오~! 푸딩~”

쵸로마츠가 내민 초코푸딩을 받아 들고 활짝 웃은 오소마츠가 수저통에서 작은 스푼을 꺼냈다. 

그대로 푸딩을 들고 거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은 오소마츠의 옆에 쵸로마츠도 앉았다. 

어제 헬로워크에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사온 푸딩이었다. 

일부러 2개를 사, 그 중 하나는 오소마츠가 좋아하는 초코로 샀다. 

혀로 마른 입술을 적시며 푸딩 뚜껑을 여는 오소마츠를 쵸로마츠가 가만히 바라보았다. 

쵸로마츠의 시선도 눈치채지 못한 오소마츠는 큼직하게 푸딩을 떠 입에 넣었다. 

“음~” 하는 감탄사와 함께 눈을 감고 푸딩의 맛을 음미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기쁘게 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자기 몫의 푸딩을 열었다. 

금새 푸딩은 사라지고 플라스틱 통만이 남았다. 


원형 테이블 위에 푸딩 통을 그대로 올려놓은 채, 치울 생각을 하지 않는 오소마츠를 살며시 노려봐준 후, 쵸로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자기 것과 오소마츠 것, 두 개의 플라스틱 통을 들고 나와 재활용 쓰레기 봉투에 넣고 작은 스푼은 싱크대에 넣었다. 

쵸로마츠가 주방에서 막 나왔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어느새 거실에서 나온 오소마츠가 현관에 놓인 조금 낡은 디자인의 검은 수화기를 들었다. 


“응~, 알겠어.”

간단한 대답과 함께 전화를 끊은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지나 들어간 주방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나왔다.


“엄마?”

“응, 늦어지니까 장 봐 놓으라고.”

신발을 신는 오소마츠에게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오소마츠가 현관에 섰다. 

현관문을 열려는 오소마츠를 쵸로마츠가 불러 세웠다.


“잠깐, 같이 가.”

“엥?”

신발장에서 자신의 신발을 꺼내는 쵸로마츠를 오소마츠가 멍하니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쵸로마츠가 먼저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낸 적은 없었다.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하고 생각하며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기다렸다. 



대화도 없이 마을의 대형 마트를 향해 걸어가는 길. 

쵸로마츠는 옆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대체 언제부터 오소마츠가 집안일을 도왔는지는 알 수 없다. 

모두 한결 같은 육둥이는 마츠요의 심부름을 무시하거나 남에게 미뤄왔다. 

마츠요가 뭘 하나 시킬라치면 가위 바위 보나 묵찌빠까지 동원해 서로 하지 않으려 난리였다. 


‘오소마츠 형 혼자 있을 때는 이렇게 엄마를 도와줬던 건가…’

스스로 반성하며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에 들린 장바구니를 보았다. 

쵸로마츠도 있었건만, 오소마츠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장바구니는 자기가 들고 장을 보러 나가려고 했다. 

이전, 마츠요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다시 떠올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쵸로마츠~, 한숨 쉬면 복 날아간다~?”

“…그런 거 미신이야.”

“아하하, 뭐 그렇겠지만~”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대답에 즐겁게 웃으며 어깨에 메고 있던 장바구니를 고쳐 멨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어리광을 보고 말겠다고 다짐했을 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항상 놀아달라, 같이 있어달라 조르는 오소마츠이기에 함께 있어주고 조금만 놀아주면 금새 어리광을 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동생들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어릴 적 파트너인 자신에게는 금새 어리광을 부리지 않을까 그리 낙관했었다. 

그런데 막상 오소마츠와 함께 있으니, 뭘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조금 전도, 단 둘만이 거실에 있었지만 서로 대화가 오가는 일은 없었다. 

오소마츠는 언제나 그랬듯 TV를 보고 있었고, 쵸로마츠도 구인 잡지를 보고 있었다. 

어찌어찌 설거지를 돕기는 했지만, 그 이후 푸딩을 먹으면서도 여전히 대화는 없었다. 

지금도 함께 마트로 가고 있지만 대화는 없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주제를 골라보아도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심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쵸로마츠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쵸로마츠의 한숨 소리에 오소마츠가 흘끔 쳐다보긴 했지만, 아까처럼 말을 걸지는 않았다. 

둘 사이에 감도는 어색한 침묵에 인상을 찌푸린 쵸로마츠의 시야에 익숙한 얼굴이 걸렸다.


“아! 마츠노!! 연락했었는데!!”

“오늘 냐-짱 라이브 있는 거 잊었어?”

“아…”

항상 냐-짱의 라이브장에서 어울리는 친구들이었다. 

오늘도 냐-짱의 상품들도 잔뜩 꾸미고 허리춤에는 냐-짱의 얼굴이 프린트된 부채를 든 친구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쵸로마츠를 재촉했다. 

친구들의 말에 오늘 중요한 냐-짱의 라이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 쵸로마츠가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하려는 순간,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다녀 와~”

“엣!?”

쵸로마츠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오소마츠는 손을 흔들며 저편으로 멀어졌다. 

지금 오소마츠를 쫓아가도 다시 그 어색한 침묵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감에 쵸로마츠가 푹- 숨을 내쉬고 친구들을 따라 나섰다.






14.


“후아암~”

크게 하품을 하고, 잠버릇이 남은 머리를 긁적이며 오소마츠가 거실로 들어왔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외출했고, 남아있던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윙크하며 말했다.


“굿 모닝이다! 브라더-. 점심 먹을 건가?”

“응~”

카라마츠의 물음에 대답하며 오소마츠가 아직 졸린 눈을 비볐다. 

거실 중앙의 원형 식탁에 앉은 오소마츠를 보며 피식- 웃은 카라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뭐가 먹고 싶은가? 뭐든 말만 해라!!”

“응? 오늘 엄마는?”

“오늘은 일찍 나가셨다.”

“아~. 근데 카라마츠, 네가 점심 만드는 거야?”

“아아!”

오소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에~” 하고 감정이 실리지 않은 감탄을 내뱉은 오소마츠가 곰곰히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하더니 이내 “그럼 가라아게.” 하고 대답했다. 

“아아, 알겠다!” 하고 외친 카라마츠가 거실을 나가 주방으로 향했다. 요리는 카라마츠가 자신 있는 분야였다. 

한 때, 요리를 하는 남자가 멋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매일 마츠요의 특훈을 받으며 요리 실력을 키워왔다. 

아직까지 자신의 수제 요리를 먹어줄 카라마츠 걸-은 찾지 못했지만,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팔을 걷어붙이고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확인한 카라마츠가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시작했다. 

거실에서 나와 주방의 식탁에 앉은 오소마츠가 턱을 괴고 카라마츠를 지켜보았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달걀을 깨고 풀어 튀김 옷을 만드는 카라마츠를 보던 오소마츠가 돌연 의자에서 일어나 카라마츠 옆에 섰다.


“카라마츠, 오므라이스 좋아하지?”

“응? 아아, 뭐 좋아하는 편이다만.”

“응.”

가볍게 대답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와 마찬가지로 팔을 걷어붙이더니 새 그릇을 꺼내 계란을 풀었다. 

카라마츠만큼이나 익숙한 손놀림으로 금새 계란을 프라이팬에 부은 오소마츠가 약한 불로 천천히 계란을 익혔다. 

오소마츠의 능숙함에 놀라 빤히 쳐다보던 카라마츠와 오소마츠의 눈이 마주쳤다.


“응?”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소마츠에게 쓰게 웃으며 시선을 돌린 카라마츠가 고기를 다듬고,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겼다. 

바사사사- 하고 기름이 끓는 소리와 튀김이 튀겨지는 소리가 주방에 울렸다. 

긴 튀김용 젓가락으로 솜씨 좋게 가라아게를 건져내어 접시에 올리자, 그에 맞추어 오소마츠도 완성된 오므라이스를 식탁에 올렸다. 

오므라이스와 가라아게. 매치는 되지 않아도 제법 먹음직한 식사가 완성되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라아게를 맨 손으로 집어 든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입가에 가라아게를 내밀었다.


“자, 아앙~”

“…윽”

해 웃으며 오소마츠가 내민 가라아게를 받아 먹은 카라마츠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카라마츠가 느끼는 감정을 알 리 없는 오소마츠는 “울 정도로 맛있어?” 하고 물으며, 또 가라아게 하나를 맨 손으로 집에 입에 넣었다. 


“응, 맛있네~”

함빡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모든 이성을 총 동원하여 오소마츠를 덮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른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따라 식탁에 앉았다. 

오소마츠가 만든 오므라이스는 적당히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워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행복한 얼굴로 서로 만든 오므라이스와 가라아게를 먹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어리광을 보겠다는 자신의 작전이 실패했다는 것에 쓰게 웃었다. 






15.


긴급 동생회의. 그렇게 쓰여진 화이트 보드 아래, 다섯 명의 동생들은 무릎을 꿇고 절망하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어리광을 보겠다는 일념 하에 벌써 여러 날 시도를 했지만, 수확은 제로. 수 많은 시도 끝에 겨우 동생들은 깨달았다.


‘‘‘‘‘우리가 ‘동생’인 이상, 무슨 짓을 해도 오소마츠 ‘형’의 어리광은 볼 수 없어!!!!!’’’’’


그렇게 절망하고 있는 동생들의 귀에 “쿠당-“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모두 고개를 들어 소음이 난 방향을 보자, 무표정의 마츠요와 마츠조가 거만하게 서서 동생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엄마?!”

토도마츠가 놀라 외치자 마츠요가 “흠, 흠.” 하고 목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너희 백수들이 바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엄마, 몰랐다.”

“너희는 멀었구나-“

마츠요의 말을 이어 마츠조도 눈을 감고 손을 올려 쯧쯧! 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과연 부부! 라고 할 정도로 최고의 연계로 동생들의 마음을 후비는 말을 던지고는 마츠요와 마츠조가 씩 웃었다. 

오소마츠가 나쁜 계략을 짤 때의 얼굴과 닮은 그 미소에 동생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동생들의 안 좋은 예감은 적중해, 마츠요와 마츠조가 내뱉은 다음 말은 동생들의 경악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제대로 취직해서 어엿한 한 사람이 된 녀석(백수)에게 오소마츠를 맡길 테니까-””

그 말에 동생들 모두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마츠요의 무릎을 베고 새근새근 잠든 오소마츠의 머리를 마츠조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초산에 육둥이라는 커다란 행복을 받은 둘은 이렇게 여섯 명이 무사히 성인이 되어 준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본래는 한 아기만 들어가는 작은 아기방에, 여섯 명이 꾸역꾸역 들어가 열 달을 버텼다. 

마츠요의 노력도 있었지만, 아기들이 서로 배려하지 않았다면 모두 무사히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태어난 작은 여섯 명의 생명들을 보며 마츠요와 마츠조는 다짐했다. 

순서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하게 대하자고. 마츠요와 마츠조는 언제까지나 여섯 명의 순서를 따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 교육방침 아래, 육둥이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며 동등한 관계를 가지고 성장했다. 

그것이 조금 지나쳐 ‘내가 너희고, 너희가 나’ 라는 이상한 모토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그렇게 동등한 여섯 명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변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아 서로를 ‘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각자 ‘동생’이자 ‘형’이 되어 동등한 관계를 부수고 새로운 서열 체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맞추어 성격을 변화시켰다. 

막내인 토도마츠는 애교가 많고 조금은 약삭빠른 성격으로, 쥬시마츠는 동생은 잘 돌보지만 어딘지 나사가 하나 빠진 성격으로, 이치마츠는 형들의 무엇은 본 것인지 조금 어두워졌고, 쵸로마츠는 위의 두 명이 쓸모 없다며 착실한 성격으로 변했다. 

카라마츠는 대체 뭐에 영향을 받았는지 안쓰러운 성격으로 변했지만 그래도 동생들을 아꼈다. 


그렇게 변하기 시작한 육둥이 가운데, 마츠요와 마츠조의 마음에 가장 걱정되었던 것이 ‘장남’ 오소마츠였다. 

카라마츠에겐 오소마츠가 있고, 쵸로마츠에겐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있다. 

막내 토도마츠에 이르면 다섯 명의 ‘형’이 있어 의지하고 마음껏 어리광 부릴 수 있다. 

하지만 ‘첫째’인 오소마츠는 어느 때부터 스스로 모든 것을 끌어안게 되었다. 

어릴 적엔 동등한 관계였던 동생들이 자신을 ‘형’이라 부르며 다르게 대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싫어하면서도 받아들였다. 

주변의 사람들의 묘한 압박과 불합리한 대우도 말없이 참아냈다. 

육둥이, 동갑인데도 홀로 ‘형’이라는 입장의 모든 단점을 받아들이고 참아내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마츠요와 마츠조로서는 너무나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그 누구보다 동생을 아끼는 오소마츠가 많은 것을 참아내는 모습을 보면, 여섯 명을 공평하게 대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오소마츠를 더 챙기게 되었다. 

동생들에게 부리지 못하는 어리광을 전적으로 받아주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부모인 자신들만은 오소마츠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어 주고 싶었다. 

오소마츠도 그런 마츠요와 마츠조의 마음을 아는지, 부담 없이 마음껏 어리광 부렸다. 

성인인데도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오소마츠를 보며 자상한 미소를 피운 마츠요와 마츠조가 의욕이 충만해져 파이팅하고 있는 동생들의 외침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오소마츠의 어리광은 양보할 수 없지.”

“그럼요, 오소마츠가 마음 놓고 어리광 부리고, 그걸 받아주는 이 포지션은 양보할 수 없는 걸요.”


오소마츠를 보며 말하는 마츠요와 마츠조의 목소리는 지극히 다정하고 상냥해서, 동생들 중 누군가가 그것을 들었다면 “대체 누구 목소리?” 하고 놀랐을 것이다.






* 아들이 많은 집은 아들 중 한 명이 딸 노릇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어 나온 단편입니다ㅎㅎ

  톳티-는 막내이긴 해도 딸 역할은 안 할 것 같아요. 한다면 역시 오소마츠?ㅎㅎ


* 여우골 이야기는 아마 이번주 주중에 한편, 주말에 한편 나올 것 같습니다.  이제 완결까지 2편 남았네요ㅎ


* 이번편은 특히 길었네요.. 공미포 20,808자...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럼 2017년 모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토도오소입니다! 처음 써보네요..


* 이번편도 분량이 다른 편보다 적어요ㅎㅎ;;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벽에 걸린 달력을 흘끔 쳐다본 토도마츠가 다시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토도마츠의 손은 멈추지 않고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그 화면은 꺼져 있었다. 

말을 할까,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가도 곧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몰라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째깍째깍하고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만 울리는 조용한 거실 안. 거실 안에 있는 것은 토도마츠와 오소마츠, 둘 뿐이었다. 

마른침을 삼키고 각오를 다진 토도마츠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벌써 연말이네~ 오소마츠 형.”

“응? 아, 그러네-“

건성으로 대답하며 만화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오소마츠를 향해 토도마츠가 말을 이었다.


“올해도 등산해서 일출 보고 올 거야~”

“헤에~”

여전히 오소마츠는 만화만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짜증이 일었지만, 꾹- 참은 토도마츠가 헛기침을 한 후에, 계속 망설였던 한 마디를 했다.


“그, 같이 갈래? 오소마츠 형도.”

“...헤, 에?”

이번에도 대충 대답하려 했던 오소마츠가 말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놀란 얼굴로 토도마츠를 쳐다보는 오소마츠에게 토도마츠가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장비는 내가 쓰던 거 빌려줄 테니까.”

“…에~, 드라이 몬스터가 웬일이야? 뭐 잘못 먹었어?”

“아니거든?!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의아한 얼굴로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묻는 오소마츠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 토도마츠가 볼을 부풀렸다. 

가만히, 토도마츠를 응시하던 오소마츠가 다시 고개를 숙여 만화에 시선을 옮기며 대답했다.


“그래, 같이 가자.”

“…어? 정말로?”

“응~”

“대충 대답하지 말고!!”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오소마츠가 “간대도~” 하고 대답했다. 

푹- 한숨을 쉬며 다시 스마트폰을 보는 토도마츠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피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차 시간을 확인하는 토도마츠를 보며 오소마츠도 잔잔히 웃었다.






2.


새벽, 아직 동이 트려면 한참 남은 시간. 

당연히 깊이 잠들어있는 형제들 사이에서 슬며시 빠져나온 오소마츠와 토도마츠가 거실로 내려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헌 것이라 말했지만, 실은 토도마츠가 새로 준비한 붉은색의 등산복을 입은 오소마츠가 커다란 배낭을 멨다. 

오소마츠 보다 먼저 옷을 다 갈아입은 토도마츠가 현관에 섰다. 

등산화를 신고 있으니, 오소마츠가 곁에 다가와 섰다. 

토도마츠를 따라 오소마츠도 등산화를 다 신은 것을 확인한 토도마츠가 현관문을 열었다. 

드르륵 열리는 문과 함께 뼈가 저리도록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두꺼운 등산복도 파고 들고 들어오는 찬 기온에 부르르 몸을 떨며 토도마츠가 나와 “하아~” 하고 숨을 불었다. 

하얀 입김이 공중에 퍼져 사라졌다. 


“우와~ 춥다!!”

팔짱을 끼고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른 오소마츠가 얼굴을 찡그렸다. 

순식간에 코 끝이 빨개졌다. 빨개진 코를 서로 바라보고 웃음을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멀어지는 집과, 텅 빈 거리가 묘한 카타르시스를 가져왔다. 

가라앉은 찬 공기는 고요히 마을을 감싸고 있었고, 산 속의 새도, 옆집의 강아지도 울지 않는 적막함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터벅터벅 정적을 깨고 두 사람의 발소리가 울렸다. 

“하아~” 하고 깊은 숨을 내쉬며, 토도마츠와 오소마츠가 큰길가로 나왔다. 

도로에도 자동차는 한 대도 없었다. 

점등시간이 되어 노란불이 깜빡이는 신호등과 문이 닫힌 가게들. 

4차선 도로가 있는 마을의 중심가를 걷고 있는 사람은 오직 토도마츠와 오소마츠 두 사람뿐이었다.


‘세상에 둘만 남은 것 같아.’

공중에 뿜어졌다 사라지는 흰 입김을 보며 토도마츠가 피식 웃었다. 

꽁꽁 싸매고 있는 목도리에 가려 미소 띤 입가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 부끄럽네…’

자신이 한 생각에 어쩐지 창피해진 토도마츠가 쓴웃음을 지으며 걸었다. 

뒤따르는 오소마츠의 발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토도마츠에게 오소마츠의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 둘만 남은 것 같네!!”

오소마츠의 말에 놀랐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 

‘같은 생각을 했구나.’ 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토도마츠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신기하다는 얼굴로 온 도로를 두리번거리는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었다.


“뭐 훔쳐가도 모르겠다!”

“범죄는 하지 말아 줘, 오소마츠 형.”

오소마츠다운 한 마디에 쿡쿡 웃음을 흘리며 토도마츠가 상냥히 태클을 걸고, 걸음을 재촉했다. 




시외를 도는 열차, 1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달려 도착한 역에 내린 둘은 셔틀 버스에 올랐다. 

역에서 출발해 또 버스로 30분. 고요하게 서 있는 산을 올려다본 오소마츠가 절로 “우와…” 하고 감탄했다. 

토도마츠가 찾아낸 명소.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많이 알려지지도 않아 사람이 많이 몰리지도 않는, 일출을 보기에는 최적의 장소. 

산을 오르기 전, 장비를 확인하고 등산화의 끈을 질끈 동여맨 토도마츠가 멀거니 산을 올려다보고 있는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형, 출발 하자.”

“응~, 이거 정말로 오르는 거야?”

“당연하잖아.”

감탄과 함께 한숨을 내쉬는 오소마츠를 재촉해 토도마츠가 먼저 산을 올랐다. 

등산을 생전 해 본적도 없고, 이번 산행이 초행인 오소마츠는 당연히 얼마 오르지 않아 “힘드러~” 하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볼을 부풀리고 툴툴대는 오소마츠를 어르고 달래어 겨우 삼분의 일 지점에 도착했다. 

헉헉 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 쉬는 오소마츠와 준비된 휴식 공간에 앉은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의 빨개진 볼을 바라보았다. 

추운 겨울, 가뜩이나 낮은 기온에 산 위는 지상보다 더 기온이 낮았다. 

매서운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산을 오른 오소마츠의 볼이 시릴 정도로 빨갰다. 

짐에서 보온병을 꺼낸 토도마츠가 뚜껑에 코코아를 따라 오소마츠에게 건넸다. 


“응? 뭐야?”

“코코아.”

“오~! 땡큐땡큐~”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코코아를 받아 든 오소마츠가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코코아를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토도마츠도 함께 가져온 여분의 컵에도 코코아를 따랐다. 

코코아를 마시자 얼어붙었던 몸 속이 녹는 것 같았다. 

절로 나오는 “하아~” 하는 한숨과 함께 주변의 숲을 둘러보는 토도마츠에게 오소마츠가 물었다.


“토도마츠, 항상 여기서 쉬어?”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가 산을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며 오소마츠가 물었다. 

토도마츠가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고 물음에 대답했다.


“아니, 좀 더 올라가서. 반 정도 올라서 쉬어, 보통은. 근데 이번엔 오소마츠 형도 있으니까.”

“에…”

“형은 등산 초보잖아. 괜히 무리하지 마.”

“뭐야, 등산 초보라니…”

‘부-‘ 하고 볼을 부풀리고 토도마츠를 노려보는 오소마츠의 시선을 외면한 토도마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다 쉬었지?”

토도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토도마츠를 쏘아보던 눈길을 거두었다.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해, 토도마츠가 시간을 확인했다. 

곧 일출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오소마츠에게 알리자, 힘들다고 불평하는 말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착실히 토도마츠를 따라 무거운 발을 옮겼다. 

멈추지 않고 산을 올라도 이미 여러 번 산을 올랐던 토도마츠와 오늘 처음 산을 오르는 오소마츠 사이에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반 걸음 뒤에서 토도마츠를 쫓던 오소마츠가 서서히 멀어져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 3m 정도의 거리가 생겼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뒤돌아 오소마츠의 위치를 확인한 토도마츠가 멈춰 섰다. 

토도마츠 뒤에서 산을 오르던 등산객들에게 길을 양보한 뒤, 오소마츠가 오를 때까지 기다린 토도마츠 앞에 오소마츠가 섰다.


“헉, 헉, 안 기, 다려도, 되는, 데…”

제대로 말도 끝내지 못할 정도로 숨을 헐떡이는 오소마츠를 보고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을 잡았다.

앞으로 이어질 산길은 좁아지고 험해져, 토도마츠도 힘들게 오르는 길이었다. 

마주잡은 손을 놓치지 않도록 꼭 쥐고, 토도마츠가 다시 산을 올랐다. 

토도마츠는 등산 스틱을 한 손에 잡고, 오소마츠를 이끌며 산을 오르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3.


반신반의였다. 

거절한다면 장난이었다고 얼버무릴 수 있도록, 일부러 가볍게 물은 질문. 

오소마츠가 흔쾌히 받아들인 것에 토도마츠는 적잖이 놀랐다.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운동은 더더욱 싫어하는 오소마츠가 등산에 따라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소마츠의 가겠다는 대답에 놀랐지만, 토도마츠로서는 기쁨이 더 컸다. 


오소마츠와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 욕망에 오소마츠가 거절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망설이며 말을 걸었다. 

여섯 명의 형제. 

단 둘이 있고 싶어도, 둘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적었다. 

사람이 우글거리는 집 안에서 나와, 지금 이 순간 오소마츠와 함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처음 시작도 오소마츠 때문이었다. 

산을 오르면 마음이 정리되고 상쾌해진다는 친구의 말에 처음 동네의 작은 산을 올랐다. 

그 당시에는 제대로 운동도 하지 않아, 별로 높지도 않은 산을 헉헉대며 올랐다.

땀이 흐르고, 산소를 요구하는 폐와 무거워지는 다리.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산을 오르는 동안은 오소마츠에 대한 것도, 자신의 마음에 대한 것도, 상식을 벗어난 사랑에 대한 죄책감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점점 더 높은 산을 찾아 다니며 등산을 했다.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집 안에서 항상 답답했던 마음이, 산을 오르면 시원하게 뚫렸다. 

한 발, 한 발 추를 단 것처럼 무거운 발을 억지로 들어올려 산을 오르면서 잊을 수 있다고, 이 마음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산을 오르면 사라지는 오소마츠에 대한 생각에 그렇게 자신을 가진 순간, 산 정상에 올라 펼쳐진 장관을 보면 제일 먼저 오소마츠가 떠올랐다. 


이 멋진 풍경을 오소마츠와 함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자신에게 절망하며 울었다. 






4.


어느새 도착한 산 정상.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주저앉은 오소마츠에게 다시 코코아를 건네고 선 토도마츠가 눈 앞에 펼쳐진 넓은 숲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산 위에는 어둠이 내려 앉았다. 

토도마츠처럼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 싸온 따뜻한 음료를 후룩거리며 마시고 있었다. 


‘작년은, 나 혼자 왔는데…’

무리 지어 있는 다른 등산객들을 보며, 토도마츠가 숨을 내쉬었다. 

작년도, 토도마츠는 이 산에 올랐다. 

새벽에 형제들 몰래 이불에서 빠져 나온 토도마츠를 오소마츠가 불렀다.


“토도마츠으~”

잠에 취해 내려앉은 목소리로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내려온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뭐해?”

“등산 준비. 일출 보고 오려고.”

“아, 그래.”

대답을 마치고 다시 2층 방으로 올라갈 것이라 생각했던 오소마츠는 겉옷을 어깨에 두르고 토도마츠가 등산 준비를 하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옷을 다 입고 등산화를 신고 있는 토도마츠를 따라 현관으로 나온 오소마츠가 크게 하품을 하며 토도마츠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후암~, 잘 갔다 와.”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오소마츠에게 “다녀올게.” 하고 대답하고 현관을 나와, 기차역을 향해 걸어가는 길. 

해일처럼 몰려오는 지독한 ‘외로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떨어지는 눈물에 고개를 숙이고 텅 빈 거리를 걸으며 자신이 혼자라는 것이 사무치게 슬펐다. 

내년에는 거절당해도 제안 정도는 해보자고, 그렇게 생각했다. 


홀로 걷는 이 텅 빈 거리에, 오소마츠가 옆에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5.


“와아~!!!!!”

눈을 빛내며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오소마츠를 옆에 두고 토도마츠도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짙게 내려앉은 안개를 녹이며 하늘 가득한 어둠을 몰아낸, 새해를 알리는 해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환한 햇빛을 받아 빛나는 숲과 산맥이 평생에 한 번만 볼 수 있는 장관을 연출했다. 

어느새 추위도 잊고 산 아래의 절경과 떠오르는 해를 보는 오소마츠의 옆얼굴에 시선을 옮긴 토도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는 오소마츠와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따뜻해지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웃었다. 


붉게 타오르며 얼굴을 내밀은 해는 곧 하늘 높이 떠 노란 빛을 온 세상에 내려주었다. 

하나 둘씩 다시 산을 내려가는 등산객들을 따라 토도마츠도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등산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산을 내려가는 것이 더 위험했다. 

안개가 녹아 젖은 산길은 조금만 헛디디면 미끄러지는 위험한 길이었다.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이리저리 뛰어가며 능숙하게 산을 내려가는 오소마츠는 조금 전까지 힘들다고 칭얼대던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작년에 산을 내려가다 미끄러진 경험이 있는 토도마츠는 발걸음 하나라도 조심스럽게 내디디었다. 

올라갈 때와 반대로 토도마츠보다 앞서 내려가던 오소마츠가 걸음을 멈추고 토도마츠를 기다렸다. 

토도마츠가 내려오는 모습을 빤히 응시하던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의 손을 잡았다. 


“조심해, 토도마츠.”

“응, 고마워. 오소마츠 형.”

마주잡은 손에 기쁘게 웃으며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와 함께 산을 내려왔다.




산 아래에 있는 맛집에서 가볍게 아침을 해결한 후, 집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집 근처 기차역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길. 

갈 때와는 달리, 아침이 밝은 마을은 하루를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했다. 

여전히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앞서 걷던 오소마츠가 뱅글- 몸을 돌려 토도마츠를 바라보았다.


“토도마츠, 고마워.”

토도마츠는 무엇이 고마운지 묻는 촌스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 

바로 목 위까지 올라온 “뭐가?” 하는 질문을 삼킨 토도마츠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소매로 닦아냈다. 

부드러운 미소로 토도마츠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준 오소마츠가 상냥하게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드르륵’ 열리는 현관문 너머로 들어가며, 토도마츠는 둘 만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형제’로 돌아간 두 사람을 마츠요가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은 오소른을 올릴 예정입니다^^


* 내일은 2016년의 마지막 날이네요. 정말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라지는 것 같네요..

  한 해의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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