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골 이야기가 이제 앞으로 2~3편 정도만 남겨둔 상황이라 아마 늦어도 다음달 초엔 완결이 날 것 같습니다.


'장남의 심중'을 완결냈을 때부터 제본 생각은 있었는데, 도저히 장남은 심중은 손도 못대겠더라구요.


고칠 부분이 너무 많아!!  


제본을 하려면 퇴고를 해야하는데 '장남의 심중'은 손대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장남의 심중' 말고 '여우골 이야기'를 책으로 제본하려고 합니다.





아직 견적도 뽑지 않아서 가격도 미정이에요.. 


이렇게 글을 쓴 건 몇 권 정도 만들어야 할지 수량을 좀 가늠하고 싶어서요..




일단 쪽 수는 얼추 200쪽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가격은 제본소에 견적을 받아봐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당연히!! 특전!으로 


1. 여우골 이야기 번외 2편


2. 장남의 심중 번외 (에필로그 이후 이야기)


이 3편을 넣을 예정입니다. 이미 대략적인 플롯은 짜논 상태..ㅎㅎ


'여우골 이야기' 본편은 아마 오타 수정이나 문장을 다듬는 정도의 수정만 들어갈 거라서 블로그와 크게 달라지진 않을거에요.






그래서.. 문제는 책 수량입니다.  수량을 정해야 견적을 받고 가격을 알 수 있어서..


제 생각으로 5~10권 정도로면 충분할 것 같은데... 얼마나 많은 분들이 원해주실지 몰라서요.


제가 일도 있고 해서 위탁이나 서코에서 직접 파는 것은 무리여서, 구매 의사를 보여주시는 분들께 택배로 보내는 형식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가 중요합니다!


수량 조사를 위해!! 책이 만들어진다면 구매를 원한다! 하시는 분들은 댓글을 남겨주세요. 

(비밀글로 남기셔도 괜찮아요)


한 분이라도 원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책을 만들겠습니다ㅎㅎ 뭐, 저도 제 소설을 책으로 만들고 싶어서 무조건 1권은 만들 예정이지만요..


* 8편입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늦어서 죄송해요!ㅠㅠ


* 커피도 마시지 않았는데, 왜 잠이 안올까요...


* 이번편은 플롯 짜는데도 고생하고 글 쓰는데고 고생했네요...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맑은 하늘 아래, 단아하게 신사 안으로 들어선 요스즈메*의 모습에 오소마츠를 비롯한 모두가 숨을 삼켰다. 

* 요스즈메 : 일본 고치 현과 에미헤 현에 전해내려오는 새 요괴. '밤참새'라고도 한다. [출처:나무위키]

시로무쿠(白無垢)*를 입은 그녀와 하카마와 검은 하오리를 입은 의젓한 모습의 쥬시마츠가 오소마츠의 앞에 섰다. 

*일본 전통 혼례식 때 신부가 입는 기모노 [출처:http://young.hyundai.com/magazine/campus]

이 일대 토지를 다스리는 토지신으로서 오소마츠가 두 사람에게 축복을 내리며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을 선언했다. 


활짝 웃으며 곁에 선 그녀와 손을 맞잡은 쥬시마츠가 정말로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카라마츠 일동도 쥬시마츠에게 다가와 축하의 말을 건넸다. 

언제까지고 어린아이로만 보았던 쥬시마츠가 어느새 훌륭하게 성장해 자신의 배필을 맞이한 것을 오소마츠가 진심으로 축하하며 자애롭게 웃었다. 


“그럼, 쥬시마츠 형에게 깜짝 선물~!!!”

토도마츠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토도마츠의 발언에 모두 놀란 얼굴로 토도마츠를 바라보았다. 

토도마츠는 자신에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것에 만족하며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던졌다. 

긋이 미소를 지은 오소마츠가 손을 들어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던 화차(火車)를 불렀다. 


“쥬시마츠 형에게 ‘신혼여행’을 선물합니다~!!!”

짜잔- 하고 스스로 외치며 토도마츠가 웃었다. 

토도마츠와 함께 인간 마을에 자주 놀러갔던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기쁘게 웃으며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인간들의 풍습이래. 결혼을 하고 나서 부부가 여행을 다녀오는거야.”

멍청히 자신을 바라보는 둘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오소마츠가 친절히 토도마츠를 대신해 설명했다. 

““헤에-“” 하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카라마츠와 쵸로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귓가에 뭐라 속삭이자 카라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을 부릴 수 있는 부채를 꺼내 든 카라마츠가 바람을 일으켜 쥬시마츠와 그녀를 부드럽게 화차에 태웠다. 

부부가 타자마자 화차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오키나와에 있는 토지신에게 미리 말해놨으니까, 실컷 놀다 와~”

오소마츠가 떠오르는 화차를 향해 외치자, 쥬시마츠가 화차에 달린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토도마츠와 이치마츠도 힘차게 손을 흔들며 오늘 막 맺어진 부부를 배웅했다. 


“오소마츠 형, 오키나와에도 아는 신이 있구나…”

쥬시마츠 부부를 태운 화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토도마츠가 고개를 돌려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오소마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뭐,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있는 남쪽 섬이었다. 

그런 먼 곳에 지인이 있다는 것에 토도마츠는 놀라고 있었다. 


“대체 오소마츠 형의 인맥은 얼마나 넓은 걸까?”

“…그러게…”

상상도 되지 않는 오소마츠의 인맥에 혀를 내두루는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기이하단 눈빛으로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2.


통통 어깨를 두드리며 토도마츠가 피곤한 얼굴로 하품을 했다. 

오늘은 쥬시마츠의 결혼식이 있었던만큼 아침 일찍 일어나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았다. 

평소보다 배로 느껴지는 피로감에 뻑뻑한 눈을 꿈뻑이며 토도마츠가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토, 토도마츠!!”

“응?”

다급하게 토도마츠를 부르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토도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카라마츠가 입을 벙긋거리며 토도마츠를 붙잡았다.


“뭐야?”

“그… 잠깐, 괜찮은가?”

“뭐, 괜찮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눈썹을 찌푸리며 토도마츠가 앞서 걷는 카라마츠의 뒤를 따랐다. 

카라마츠의 방에 도착해 서로 마주보고 앉은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저기, 카라마츠 형?”

“…아아…”

“뭔데? 하고 싶은 말이…”

“그러니까아…”

제대로 말을 하지 않고 목소리를 흐리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한계를 느낀 토도마츠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 뭔데!!”

“오늘, 쥬시마츠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한건데…”

“응.”

“그.. 오소마츠에게, 청..혼을 하려고…”

“어???”

생각지도 못했던 카라마츠의 말에 토도마츠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방금 전까지 피곤에 절어 있던 토도마츠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며 반짝반짝 빛났다. 


“언제? 언제 청혼하려고? 아니, 그것보다 대체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둘이 사귄지는 얼마 안 됐잖아?!”

“토, 토도마츠.. 잠깐, 진정해!”

점점 카라마츠에게 가까이 다가와 결국엔 카라마츠의 얼굴 앞까지 근접한 토도마츠를 살며시 밀어내며 카라마츠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카라마츠에게 가까이 앉아있는지 눈치챈 토도마츠가 헛기침을 하며 다시 뒷걸음질해 방석에 엉덩이를 내렸다. 

질문 공세를 멈췄지만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토도마츠를 응시하며 카라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 확실히 오소마츠와 교제하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오소마츠의 곁에 있었던 시간은 기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오소마츠의 곁에 있고 싶다. 오늘 쥬시마츠가 너무나 행복해 보였고. 그래서…”

“오소마츠 형한테 청혼하고 싶어진 거야?!”

“..아아.”

망설이다 대답한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려 살며시 붉어진 얼굴을 감췄다. 

‘푸흥-!!’ 하고 거센 콧바람을 내쉰 토도마츠가 두 손을 모으고 감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카라마츠 형이!! 자기 마음도 깨닫지 못했던 둔탱이 카라마츠 형이!! 스스로 청혼을 하겠다고 하다니~!!!”

“…토도마츠..”

나직이 토도마츠를 부르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토도마츠가 카라마츠를 흘끔 쳐다보았다. 

방금 전 말에 심기가 불편했는지, 카라마츠의 짙은 눈썹 사이의 주름이 깊어져 있었다. 

빙긋- 순수한 미소를 만들어내며 토도마츠가 손을 저었다.


“에이~ 자잘한 건 신경쓰지 마~. 그것보다! 청혼 방법 말이지!!!”

“…아아.”

재빨리 화제를 돌리는 막내의 모습에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대답했다. 

카라마츠의 장지문 너머 밝게 빛나는 등불은 밤이 깊어도 꺼지지 않았다.







3.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주먹을 쥔 손바닥에 땀이 차는 것이 느껴져 한숨을 내쉬었다. 

몇 백년을 살아왔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긴장한 적은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뱉으며 심호흡을 하고 시선을 위로 올렸다. 

아름다운 빨강으로 물든 하늘 아래, 토리이에 홀로 오소마츠가 앉아있었다. 

옛날부터 오소마츠는 항상 저 자리에서 마을을 보살펴왔다. 

절로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와 함께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항상 저렇게 혼자서 고독하게 마을을 보던 오소마츠의 곁에 내가 자리하고 싶었다. 

앞으로 이어질 나날을 오소마츠의 곁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을 다시금 확인하며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담백하게 가자! 괜히 이벤트니 뭐니 하는 것보단 그게 훨씬 나아!”

“..이, 벤트?”

“아, 그런게 있어. 암튼!! 오소마츠 형한테는 잔재주를 피는 것보다 직설적으로! 마음을 전하는게 제일이라고 생각해!!”

밤새 토도마츠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다시 심호흡을 하고 토리이에 발을 내디뎠다. 



“카라마츠”

“뭐, 뭔가!!”

갑작스런 부름에 말을 더듬었다. 

겨우 진정시켰던 심장이 다시 폭주를 시작했다. 

귓가에서 울리는 심장소리에 신음하며 오소마츠를 바라보자 마치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 눈이 내게 꽂혔다. 

가늘게 휜 눈매와 농염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만들어낸 온유한 미소에, 오소마츠의 주변이 빛나는 것 같았다.


“쥬시마츠, 잘 지내고 있으려나~?”

얼마 전, 짝과 함께 여행을 떠난 동생을 걱정하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잘 지내고 있을 거다.”

“그렇겠지~? 뭐, 앞으로 일주일쯤 뒤엔 돌아올 테니까..”

“..외로운가?”

“..조금은?”

“후후-“ 하고 웃는 얼굴이 석양에 비쳐 쓸쓸하게 보였다. 

더 이상 오소마츠의 저런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 

앞으로는 항상 행복하게 웃는 얼굴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온 몸을 조여오는 긴장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위해 심호흡을 했다. 

바싹 마른 입술을 핥아 적시고 한 걸음 더 오소마츠의 곁으로 다가갔다.


“..카라마츠.”

“읏!! 뭐, 뭔가?!”

뒤집어진 목소리에 좌절하며 오소마츠의 곁에 섰다. 

토리이에 앉은 오소마츠가 팡팡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나와 눈을 맞췄다. 

붉은 눈에 온전히 내가 비쳐지고 있었다.


“카라마츠, 너 아까부터 이상해. 뭔가 할 말 있어?”

나는 대체 언제쯤 이 여우신을 속일 수 있을까… 

제대로 숨기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건가… 

고찰하며 한숨 쉬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

“응.”

“나에게 평생 네 옆에 있을 수 있는 자격을 줘.”

“…헤?”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기울이는 오소마츠의 손을 잡았다. 

차가워진 공기에 식은 손을 두 손으로 소중하게 감싸고 다시 말했다.


“나와 가족이 되어 줘.”

“...”

겨우 내 말의 의미가 전해진 것인지 오소마츠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곧 온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황금빛의 귀가 뒤로 처지고 꼬리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오소마츠가 당황하고 있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귀까지 벌겋게 익어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오소마츠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 얇은 허리를 껴안았다. 

품에 안긴 오소마츠의 심장이 내 심장과 함께 거세게 뛰고 있는 것이 느껴져, 달콤한 행복감이 온 몸을 타고 올라왔다. 

오소마츠의 체온과 체취에 뜨거워진 숨을 내쉬며 오소마츠를 부르자, 오소마츠의 귀와 꼬리가 보기좋게 튀어 올랐다.


“오소마츠…”

“…진짜, 너 완전 창피해-“

작게 중얼거리며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오소마츠가 두 손을 올려 내 등을 감쌌다. 

품에 폭 안긴 귀엽고도 아름다운 생명체에 미소지으며, 오소마츠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어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 순간,



“절대 안 된다!!!!!”


굉음과 함께 노성이 온 신사 안에 울렸다. 

나도 오소마츠도 놀라 감싸고 있던 팔을 풀자 눈 앞에 8척은 족히 넘어보이는 커다란 노인이 서 있었다. 

날개도 없이 공중에 떠 있는 모습에, 이 노인 역시 오소마츠와 같은 ‘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할아범?!”

오소마츠의 외침에 노인이 화난 얼굴로 “후-“ 하고 숨을 내뿜었다. 


“이 몸은 인정할 수 없다!!!”

이 때의 나는 그 말로 인하여 내 고난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4.


솔직히 말해서 나는 외로웠다. 

오랜 세월을 거쳐 겨우 카라마츠와 연인이 되었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엔 언젠가 이 관계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항상 자리잡고 있었다.


‘신’과 ‘요괴’. 


그것이 나와 카라마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벽이었다. 

언젠가 카라마츠에게 어울리는 ‘요괴’가 나타난다면, 나와의 관계는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아무리 노력해도 떨쳐낼 수 없었다. 

과거, 인간이었던 카라마츠와도, 내가 ‘신’이고 카라마츠가 ‘인간’이었기에 헤어지게 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할 수 없다고 되뇌이며 포기한 척을 했다. 언젠가 헤어지게 되어도 할 수 없다고. ‘영원’을 바라지 말자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따뜻한 카라마츠의 품에 안겨,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내가 두려워하지 못했던 그 한 마디를, 카라마츠가 먼저 해 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너무 기뻐서 지금 이게 꿈인지 두려워질 정도로… 

찾아보면 분명 카라마츠에게 어울리는 요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를 자신의 짝으로 선택해준 것이 기뻐서, 카라마츠의 단단한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천 너머로 쿵쿵 울리는 카라마츠의 고동 소리에 눈을 감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카라마츠의 품 안은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절대 안 된다!!!!!”

익숙한 노성이 귀에 들어오기 전 까지는…




“대체-, 왜 온거야?”

후르륵- 차를 마시고 있는 할아범을 보며 물었지만, 할아범은 입을 굳게 다물고 쵸로마츠가 내린 차만 홀짝거렸다. 

꿈만 같은 카라마츠의 청혼을 중간에 끼어들어 망쳐놓고, 인정할 수 없다며 쩌렁쩌렁 외쳤던 할아범의 행태에 어이를 잃은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카라마츠도 황당하단 얼굴로 할아범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타이밍인지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토도마츠도 돌아왔고, 할아범을 본 쵸로마츠가 급히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쵸로마츠의 소개에 모두 소스라치게 놀라며 인사를 했고, 카라마츠도 할아범에게 인사를 했으나, 이 망할 할아범은 대체 무슨 속셈인지 카라마츠의 인사만은 받아주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침울해진 카라마츠를 토도마츠에게 맡겨 돌려보내고 할아범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 이후로, 할아범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 


“저~기~?”

찻잔을 내려놓은 할아범을 다시 한 번 부르자, 할아범이 쭉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떴다. 

움찔 놀라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이 몸은 허락할 수 없다!!”

“하아?”

“켄고에게 부탁받은 너를 그런 녀석에게 줄 수 있을까 보냐!!”

“아니, 내가 애기도 아니고! 성인이고! 토지신이고!!”

“안 된다면 안 돼!! 그리고 며칠간 이 곳에 묵을 테니 그리 알아라!!”

““하아?!””

나와 함께 새로운 차를 들고 온 쵸로마츠가 외쳤다. 

동네에서 쉽게 볼 법한 평범한 할아범으로 보여도, 이 할아범은 신들의 두령, ‘대국주’라는 자리에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며칠씩이나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국주님, 그럼 대체 일은…?”

쵸로마츠가 당황한 얼굴로 묻자 할아범이 두 눈을 감고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며칠 정도는 신하들이 알아서 해 줄 것이야! 유능한 녀석들이니.”

천상에 남겨진 신하들의 고생이 뻔히 보여 한숨과 함께 진심으로 그들을 동정했다. 

쵸로마츠도 머리가 아픈지 인상을 잔뜩 쓰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짚고 있었다. 


“그럼, 이 몸은 먼저 잘 터이니.”

“어? 아니, 잠깐! 할아범!!”

내 부름에도 아랑곳 않고 방을 나가는 할아범의 뒷모습에 다시 어이없는 헛웃음이 나왔다. 


“어쩔꺼야?”

할아범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며 쵸로마츠가 물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복이 달아나고 있어-. 

어쩌냐고 물어도 나로서는 뭐라 대답해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무대뽀에 고집불통인 할아범의 마음을 내가 돌릴 수 있을 리 없다. 

아버지도, 항상 지나치게 술을 마시는 할아범을 설득하려 했지만 끝끝내 할아범의 주량을 줄이지 못했다. 

벌러덩 바닥에 누워 별다른 소동없이 할아범이 빨리 돌아가기만을 빌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가자 따각따각 나막신 소리를 내며 토도마츠와 카라마츠가 신사로 올라왔다. 

항상 날아다녔던 카라마츠가 어째서 날개를 접고 토도마츠와 함께 걸어온 것인지, 의아한 얼굴로 다가가자 카라마츠가 나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오, 오소마츠으으으~”

“오소마츠 형, 카라마츠 형 좀 어떻게 해 줘…”

내게 다가와 나를 꼭 껴안는 카라마츠의 등을 토닥이자, 지친 얼굴의 토도마츠가 푹 한숨을 쉬었다. 

고생이 많구나, 톳티-… 

토도마츠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고 카라마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카라마츠, 왜 그래?”

“…대국주님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아…”

항상 자신만만하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짙은 눈썹을 축 늘어뜨린 표정이 꼭 벌을 받는 강아지 같았다. 

웃으면 안된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와 할아범의 관계를 내게 들어 잘 알고 있는 카라마츠가 할아범의 말에 풀이 죽는 것은 당연했다. 


“그건 아마 할아범이 그냥 해본 소리…”

“이~ 놈~ 들~!!!!”

카라마츠를 달래려는데 뒤쪽에서 들려오는 할아범에 목소리에 이미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서 들고 왔는지 마당을 쓰는 빗자루를 들고 나와 카라마츠에게 달려든 할아범이 강하게 빗자루를 내리쳤다. 

나와 카라마츠 둘 다 붙어있던 몸을 떼고 뒷걸음 쳐 할아범의 빗자루를 피하자 할아범이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내 앞을 가로막아 섰다.


“내가 네 놈을 인정할 때까지, 네 놈은 오소마츠에게 접근 금지다!!”

“…”

“잠깐, 할아범?!”

할아범의 선언에 경악한 나와, 세상을 모두 잃은 것 같은 카라마츠를 번갈아 보던 토도마츠가 두 팔을 올리고 항복 표시를 하며 저 쪽으로 걸어갔다. 

잠깐 토도마츠!!! 이 냉혈괴물 녀석!! 

이 상황을 어떻게 좀 하라고!! 도우라고!!! 

쵸로마츠에게로 걸어가는 토도마츠를 실컷 노려봐준 후, 할아범의 뒤에서 나왔다.


“할아범!!! 대체 뭐야?!”

“어허!! 접근 금지!”

할아범의 뒤에서 나와 카라마츠에게 다가가려는 내 팔을 잡고 쭉 당기며 할아범이 빗자루의 끝을 카라마츠에게 겨누었다. 

할아범의 저지에 환한 얼굴로 두 팔을 벌려 다가오는 나를 반기려 했던 카라마츠가 다시 울상을 지으며 힘없이 팔을 내렸다. 


“할아범!”

내 외침에도 할아범은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내게 다가오려는 카라마츠와 그것을 막으려는 할아범 사이에 무언(無言)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결과는 당연히 할아범의 승리였다. 

괜히 대국주라는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몇 분간의 신경전 후, 할아범은 가슴을 펴고 승리의 미소를 피운 반면, 카라마츠는 땅바닥에 손을 집고 엎드려 자신의 패배를 처절하게 되씹어야 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거냐… 

쵸로마츠 쪽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쵸로마츠도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토도마츠도 황당하단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치마츠만이 흡족한 얼굴로 카라마츠를 보고 있었다. 


“정! 내게 인정받고 싶다면!!”

할아범의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팟! 하고 공기를 울리며 할아범이 손가락을 뻗어 카라마츠를 가리켰다.


“3일의 시간을 주마! 내가 너를 인정하게 만들어 보아라!”

“에…”

정말로 이 망할 할아범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한숨과 함께 신음하는 나와 달리 카라마츠가 벌떡 일어나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할아범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디를 가는 걸까…”

하늘로 날아간 할아범과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중얼거렸다.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쵸로마츠와 토도마츠와 이치마츠의 시선은 모두 하늘로 향해 있었다. 

토도마츠가 한심하단 눈빛으로 카라마츠를 보며 말했다.


“자기 영지에 간거 아냐? 자기가 어떻게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지 보여주려고 하는 거겠지.”

“아~ 과연.”

토도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납득했다. 

카라마츠… 발상은 좋지만, 할아범은 그런 걸로 넘어갈 상대가 아니라고… 

카라마츠의 앞날이 손바닥 보듯 훤히 보여 한숨을 쉬고, 토도마츠에게 카라마츠를 따라가 살펴봐달라고 부탁했다. 

토도마츠도 잘 풀릴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걱정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사를 떠나 카라스텐구의 영지로 향했다.


“모처럼 받은 청혼인데, 엉망이 됐네.”

“그러게 말이…”

쵸로마츠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다가 아차! 하고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능글능글하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쵸로마츠의 사악한 미소에 자신이 한 실수를 깨닫고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쵸로마츠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후훗-“ 하고 기분 나쁘게 웃으며 “축하해?” 하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쵸로마츠의 웃음에 앞으로 일주일간은 놀림당할 것을 예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5.


하늘을 날아간 카라마츠 형과 달리 도보로 이동할 수 밖에 없는 나는 카라마츠 형보다 훨씬 늦게 카라스텐구의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급하게 뛰어와 흐트러진 숨을 정돈하며 영지 안으로 들어서자 카라마츠 형의 수하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거야 저렇게 바쁠 수 밖에 없다. 신들의 수령인 대국주가 방문한 것이다. 


특특특특급의 손님이다. 

뛰어다니는 젊은 텐구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카라마츠 형이 있을 법한 장소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카라마츠 형의 날개깃하나 보이지 않는다. 

벌써 전부 돌아보고 신사로 돌아갔나? 혀를 차고 마지막으로 카라마츠 형의 집무실을 한 번더 둘러보기로 했다. 


“흐음- 그럭저럭 체계는 잡혀져 있구나.”

얇은 장지문 너머로 들리는 굵은 목소리에 겨우 카라마츠 형과 대국주를 찾아낸 것에 안도했다. 

지금은 들어갈 때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문 옆에 앉아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필사적으로 카라마츠 형은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 마을을 지켰는지, 오소마츠 형이 돌아오고 나서 어떻게 협력해 왔는지, 중간중간 오소마츠 형이 있어준 덕분에 마을이 무사할 수 있었다는 칭찬을 넣어가며 설득하고 있었다. 

카라마츠형치고는 제법 그럴듯한 설득이었다. 

이건… 가능성이 있는거 아니야? 

작은 희망을 품어보았지만, 카라마츠 형의 설득에도 대국주의 대답은 시큰둥했다. 

땅거미가 꺼질 때쯤, 문이 열리고 대국주가 걸어나왔다. 

대국주를 따라 나온 카라마츠 형의 얼굴을 보아서는 설득은 실패한 것 같았다.


“그럼 이 몸은 돌아가겠다.”

“아,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다!”

“…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카라마츠 형의 인사도 듣는둥 마는둥, 대국주는 하늘로 날아올라 금새 모습을 감추었다. 


“완~전 밥맛이네.”

침울해진 카라마츠 형을 위로하기 위해 꺼낸 말이지만 딱히 겉치레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간만에 카라마츠 형이 쓸데없는 미사여구도 붙이지 않고 제대로 된 설득을 했는데, 저런 반응을 할 필요는 없잖아? 기운 빠지게! 

오소마츠 형에게 들어, 어린 오소마츠 형을 보살펴준 건 알고 있지만, 어째 마음에 들지 않는 할아버지다. 

카라마츠 형은 힘없이 웃으며 “토도마츠, 저녁 먹자.” 하고 먼저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축 처진 날개가 아플정도로 불쌍해보였다. 




“카라마츠 형, 내일은 좀 다른 방향으로 나가야 해!!”

밥을 먹으며 맞은편에 앉은 카라마츠 형에게 말했다. 

대국주에게는 카라마츠 형의 업적이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카라마츠 형을 도울 방법을 모색했다. 

밥을 먹으면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은 카라마츠 형이 말했다.


“걱정 마, 토도마츠. 내게 맡겨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카라마츠 형은 조금 전까지 풀이 죽어있었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만만한 카라마츠 형의 얼굴을 보며 스멀스멀 불안이 발을 타고 올라왔다. 

카라마츠 형이 저렇게 단언할 때마다 결국 모든 일의 뒷처리는 내가 하게 되었던 것을 기억해내며 한숨을 쉬었다.


 제발, 내일은 무사히 지나가기를…







6.


글러먹었다. 


눈 앞에서 떠들고 있는 카라마츠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오소마츠 형 조차 제대로 얼굴을 들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다, 정작 가장 중요한 대국주님은 무표정. 


“오소마츠의 눈은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 정말로 아름답고, 그 부드러운 털 결은 버릇이 되어 버릴 정도로 푹신푹신 합니다. 그리고 항상 귀엽다는 말을 속삭여주면 얼굴이 금새 붉어지는데, 볼 때마다 정말로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소마츠 형에 대한 찬양에 오소마츠 형은 제대로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대국주님이 3일이라는 기회를 주셨고, 오늘은 그 둘째 날. 어제 토도마츠에게 들어서 카라마츠가 뭔가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아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카라마츠의 계획은 대국주의 앞에서 오소마츠 형의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오소마츠 형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그리고 자신이 그런 오소마츠 형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정말 끝도 없이 늘어놓는 말들에 절로 손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오소마츠 형은 당연히 고개를 푹 숙이고 지금 이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 

창피하겠지. 

그 증거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오소마츠 형의 귀가 빨갛다. 

황금빛의 귀는 처질대로 처져있고, 항상 살랑거리며 움직이던 꼬리도 힘을 잃고 바닥에 늘어져 있다. 

하아~, 정말로 오늘 미리 이치마츠를 내보내서 정말 다행이다. 

그 녀석이 있었다면 십중팔구 카라마츠 녀석에게 날라차기를 시전했을 것이다. 


“오소마츠의 귀여운 부분은 그뿐이 아닙니다! ….”

그나저나 잘도 저런 낯뜨거운 말을 하는구나. 

오소마츠 형한테는 항상 저런 말투를 쓰는건가? 

힐끔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자 오소마츠 형이 절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와달라는 눈치였지만, 닭살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자연스럽게 오소마츠 형의 눈길을 외면했다. 


무리야. 도와줄 수 있을 리 없잖아, 이 상황에서… 

솔직히 이 상황은 어색하기 이전에 무섭다. 

술술 말을 늘어놓는 카라마츠를 앞에 두고 있는 대국주님은 지극히 무표정으로 턱을 괴고 카라마츠의 말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왜 무표정?! 겁나 무서운데요!!! 

내가 봐왔던 대국주님은 항상 호탕하게 웃으며 오소마츠 형을 굉장히 아끼고, 인자한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표정!! 

두려워하지 않을 리 없다. 

빨리 지금 이 자리를 튀고 싶은 마음은 산처럼 높지만, 나갈 때를 놓쳐버린 나는 계속 오소마츠 형의 옆에 앉아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묻겠다.”

“네.”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리고, 카라마츠의 말을 듣고 있던 대국주님이 입을 열었다. 

카라마츠도 일순 모든 행동을 멈추고 뻣뻣하게 정좌한채 대답했다.


“너는, 만약 오소마츠와 네 식솔이 위험에 처해 있다면 누구를 선택할 거지?”

“..네?”

“오소마츠? 아님 네 동족?”

“아…”

“아니면, 이 마을이 커다란 위험을 맞이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소마츠를 희생해야 한다면, 너는 누구를 선택하겠느냐?”

“…”

“혹은 너와 오소마츠를 따르는 이 녀석들.”

대국주님의 손이 나를 가리켰다. 

굳은 얼굴로 대국주님을 보는 카라마츠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 녀석들과 오소마츠가 위험에 처했고, 둘 중 하나만 구할 수 있다면, 너는 누구를 구하겠느냐?”

“…대국주님.”

“말 돌리려 하지 말고, 대답해라.”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 속에 담긴 압력은 컸다. 

굵고 낮은 대국주님의 목소리는 무겁게 공기를 짓눌렀다. 

이 자리에선 무조건 ‘오소마츠 형’이라고 대답해야지!! 카라마츠!!! 

애원하는 눈으로 카라마츠를 쳐다보았지만 카라마츠는 얼굴을 굳힌채,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어지는 침묵에 대국주님의 눈썹 한쪽이 위로 올라갔다. 


“대답해보래도-“

“…”

대국주님의 재촉에도 카라마츠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 거야, 저녀석!! 

무조건 ‘오소마츠 형’이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카라마츠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할아범-, 유치한 질문 하지 마.”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오소마츠 형이 나서서 말했다. 

대국주님이 못마땅하단 얼굴로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았다. 

명백히 왜 끼어드냐는 눈빛이었다.


“나도 그런 질문을 받으면 쉽게 대답 못한다고. 그리고 나는 충분히 강하니까 구할 필요 없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오소마츠 형이 카라마츠를 대변해 주었다. 

놀란 눈으로 오소마츠 형을 보던 카라마츠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렸다. 


“그럼, 오늘도 실패로구나.”

대국주님이 툭 던지듯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소마츠 형이 “어디 가려고?” 하고 묻자 “산보다!” 하고 대답하며 방을 나섰다. 

“하아- 삐졌네, 저거.” 하고 오소마츠 형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기울였다. 

카라마츠는 또 침울해져서 축 늘어뜨린 날개를 질질 끌며 신사를 나섰다. 

어지간히도 기가 죽은 모습이 측은해 바래다 주려 했지만, 카라마츠가 거절했다. 

카라마츠도 떠난 신사 안, 토리이에 올라가 있는 오소마츠 형을 불렀다.


“왜?”

“기분 안 나빴어?”

“..응?”

오소마츠 형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아까 카라마츠가 대답하지 못한 거.”

보통은 화가 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 

당연히 마을보다도, 우리들보다도 오소마츠 형이 소중한게 당연하다. 

그런데 오소마츠 형이라고 대답하지 않은 것이 오소마츠 형은 기분 나쁘지 않은건가 궁금했다. 

오랜 세월 오소마츠 형의 곁에 있었지만, 오소마츠 형이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기고 교제를 하는 것을 지켜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소마츠 형이 카라마츠에게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아~, 큭큭큭 그게 왜 기분이 나빠?”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가늘게 뜬 오소마츠 형의 표정에 말을 잃었다. 

불그스름하게 물든 뺨과 호를 그리며 휘어진 눈매가 오소마츠 형의 감정을 여실히 비췄다. 


기쁜거구나… 오소마츠 형은.


“나는 무조건 나만 좋아라~하는 건 바라지 않아. 아까도, 카라마츠가 나만큼이나 너희들이나 이 마을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서 기뻤는걸? 연인이란 이유로 나를 제일 우선하는 건, 이 횽아 기쁘지 않다고?”

오랜만에 보여주는 자애로운 미소에 나도 후- 하고 부드럽게 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 오소마츠 형의 표정은 정말로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빛났다. 

그 얼굴을 잊지 말자고, 가슴 깊이 새기며 오소마츠 형의 곁에 섰다. 







7.


터벅터벅 인적이 드문 길을 골라 청산을 향해 걸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하루. 하루 밖에 남지 않았는데,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는다. 

오소마츠는 굳이 대국주님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했지만, 역시 그럴 수는 없다. 


어느 순간, 부모 없이 존재하는 요괴. 

요괴 사이의 교합으로 태어나는 요괴는 의외로 드물다. 

나 역시 부모 없이 눈을 떴다. 

카라스텐구의 마을에서 ‘존재’하게 된 나는, 깨어나자마자 내가 누구고, 자신이 요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렇기에 요괴에게 있어서 ‘부모’라는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굉장히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다. 

대국주님은 비록 오소마츠의 친부모는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오소마츠를 돌봐준 ‘부모’와도 같은 분이다. 

앞으로 남은 생을 오소마츠의 곁에 있고 싶기에, 오소마츠의 부모인 대국주님의 인정도 반드시 받아내고 싶다.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내게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아무리 고추해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대국주님의 눈에는 내 모든 것이 보잘것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대국주님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런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뭔가 결정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는 심증은 드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갈피도 잡히지 않는다. 

마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확실한 형태를 가지지 못한 그것은 무정하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가버린다.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옳은지. 어떻게 해야 대국주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무지(無知)는 나를 깊은 바닥으로 끌어당겨 의심의 늪으로 가라앉힌다.


나는.. 오소마츠의 곁에 있어도 되는 것일까? 

대국주님의 말대로 나는 오소마츠에겐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겐 오소마츠의 배필이 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을 의심하는 어두운 생각들은 나를 더 깊은 늪으로 잡아당겼다.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어느새 청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깜깜해진 주변을 둘러보며 숨을 내쉬고, 날개를 펼쳤다. 


“어이, 개똥마츠.”

카라스텐구의 둥지를 향해 날아오르려는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치마츠..”

“…”

이 늦은 시간까지 마을의 길고양이들과 어울리고 있었는지 이치마츠의 발치에는 여러마리의 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꼬리를 살랑이며 모여있는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한 이치마츠가 내게로 다가왔다. 

항상 나른하게 반쯤 닫고 있는 눈이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이치마츠?”

“…별로, 기 죽을 필요 없잖아?”

“…”

“오소마츠 형의 옆엔, 네가 있는 편이 좋아. 너랑 있을 때의 오소마츠 형이 가장 행복해 보이니까.”

“…”

말을 마치고 뒤돌아 멀어지는 이치마츠의 등을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핫!” 하고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이치마츠가 지금 나를 위로한 것인가? 

항상 나와 오소마츠 사이를 방해하던 이치마츠가? 

뜨거워지는 눈기울에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 

방금 전까지 힘을 잃었던 온 몸에 활기가 맴돌았다. 


그런가, 나는 오소마츠의 곁에 있어도 되는 건가. 

누구보다도 오소마츠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이치마츠의 말이니까.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대국주님을 설득할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대국주님에게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나는 이미 가장 소중한 녀석들에게 인정을 받았지 않은가!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와 대조적으로 피어오른 기쁨의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8.


술잔을 기울이며 술 향을 음미하는 대국주를 오소마츠가 무표정으로 응시했다. 

목넘김이 좋은 달달한 술을 삼키고 입 안에 남은 잔향을 느끼며 눈을 뜬 대국주가 오소마츠를 마주보았다. 

쵸로마츠도 물린, 두 사람만 남은 방 안. 

무섭도록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둘 사이를 메웠다. 

바짝 선 오소마츠의 귀가 머리 위에서 불쾌하게 까딱였다

위로 치솟은 꼬리의 끝이 천천히 흔들리며 오소마츠의 언짢은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무어냐.”

먼저 입을 연 것은 대국주였다. 

스스로 빈 술잔에 다시 술을 채우며 대국주가 태연하게 묻는 것에 기어이 오소마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금 심한 거 아니야?”

서두도 없이 다짜고짜 오소마츠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항상 나긋나긋했던 오소마츠의 목소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화를 억누른 침중한 목소리에 대국주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반대 같은 거 하지 않았잖아.”

오소마츠의 말에 대국주가 턱을 굈다. “푸후~” 하고 술 냄새 섞인 숨을 내쉰 대국주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그 녀석과 교제를 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았지. 하지만, ‘부부’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왜?”

대국주의 말에 오소마츠가 처량히 귀를 내렸다. 

부모와도 같은 대국주에게 카라마츠와의 사이를 인정받고 싶은 것은 오소마츠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세월 함께 한 대국주의 마음을 지금만큼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오소마츠는 그저 답답하고 슬펐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카라마츠를, 대국주가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 그저 슬펐다. 

눈썹을 내리고 괴로운 얼굴로 꼬리도, 귀도 힘을 잃고 처져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보여 대국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소마츠의 앞에 앉았다. 

자신의 앞에 다가온 대국주를 오소마츠가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촉촉하게 오소마츠의 눈을 적신 눈물에 대국주의 얼굴이 비쳤다. 

거친 손을 올려 오소마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대국주가 눈을 내리깔았다.


“나라고 마음이 편할성 싶으냐. 너와 그 아이의 ‘연(緣)’은 이 할아비도 잘 알고 있다.”

“그럼 왜..!”

“…”

대답을 돌려주지 않고,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는 대국주의 손을 거부하지 않은 채, 오소마츠가 고개를 숙였다. 





대국주라는 자리는 자유시간도 허락치 않을 정도로 바쁜 직책이었다. 

매일 올라오는 서류들, 신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다툼의 중재, 신들이 사는 천상의 지배. 바쁘지 않은 날이 없는 그런 나날. 오랜 세월, 그런 나날에 익숙해진 대국주는 해도 뜨기 전에 눈을 떴다. 

어젯밤, 결국 오소마츠가 울음을 터뜨린 것이 걸려, 마음에 남은 가시에 텁텁함을 느끼며 몸을 일으킨 대국주가 방을 나섰다. 

대화가 끝나고 대국주의 납득했는지, 오소마츠는 더 이상 대국주가 카라마츠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할 일이 생겼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던 오소마츠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어찌 달래면 좋단 말이냐-‘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산 대국주이건만, 작은 여우 하나 달랠 재주가 없는 것에 스스로 한탄하며 마당에 나선 대국주가 숨을 삼켰다. 

이제야 겨우 산 너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한 해가 신사의 앞마당을 밝게 비췄다. 

따스한 햇빛에 비쳐 등색(橙色)으로 물든 토리이 위에 망연히 앉아있는 하나의 인영. 

뭐라 말을 걸어야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대국주가 토리이를 향해 걷던 걸음을 멈췄다. 

적막한 신사 안을 울리는 힘찬 날갯짓 소리에 대국주가 재빨리 신사 안의 사당으로 몸을 숨겼다. 

작은 목소리로 주술을 외워 바람의 방향을 바꾼 대국주가 토리이 위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오소마츠, 계속 이 자리에 있었나.”

“응. 조금…”

“어젯밤의 그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기운이었다.”

“응~, 그대도 여긴 ‘내 마을’이니까…”

“…그런가. 그래도 너무 무리 하지 말아줘.”

“하핫, 생각해 보고~”

“..나 참.”

둘의 대화를 엿들으며 대국주가 어제 스쳐지나가듯 느껴진 부정한 기운을 떠올렸다. 

제법 강한 기운이었지만, 이 마을에 들어오려는 기색은 없었다. 

오소마츠가 세운 강대한 결계는 그런 기운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을에 해도 가하지 않고 지나가기만 했던, 별 것 아니었던 작은 일.

하지만 오소마츠는 아무래도 불안했던 것이다. 대국주와의 대화도 마무리짓고 바로 토리이에 올라 밤새 결계를 지킬 정도로, 오소마츠는 이 마을을 지키고 싶었다. 

아무리 스쳐지나가는 것이라해도 오소마츠는 방심하고 싶지 않았다. 


서서히 햇빛을 받아 어둠이 사라져가는 마을을 보는 오소마츠가 뻑뻑한 눈을 문질렀다. 

따각- 하고 울린 나막신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바로 곁에 카라마츠의 체온이 느껴졌다. 

오소마츠의 옆에 앉은 카라마츠가 검은 날개를 활짝 펼쳐 오소마츠를 감쌌다. 

피식- 부드럽게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말없이 카라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자연스럽게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머리 위에 솟은 보들보들한 귀에 입맞추며 작게 속삭였다.


“조금만 눈 붙여둬.”

“..응.”

카라마츠의 낮은 목소리에 긴장을 풀고 편안히 숨을 내뱉은 오소마츠가 눈을 감았다. 

수마에 이끌리듯 금새 잠들은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날개로 감싸 안았다. 

조류의 높은 체온에 감사하며 카라마츠가 서서히 따뜻해지는 오소마츠의 체온에 안심하고, 오소마츠의 손을 잡았다. 

밤새 토리이 위에 앉아있었던 오소마츠의 손은 얼음장처럼 찼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자신보다 조금 작은 오소마츠의 손을 주무르며 카라마츠가 숨을 내뱉었다. 


이런 작은 일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은데, 오소마츠는 지나치게 마을의 안전에 집착했다. 

평소에는 카라마츠가 이끄는 카라스텐구에게 맡기고 있으면서, 조금이라도 마을에 위험이 닥칠라치면 오소마츠는 홀로 마을을 지키려했다. 

어느정도 체온이 돌아온 오소마츠의 손을 깍지 끼고, 카라마츠가 두 눈을 감았다. 


이런 위태로운 ‘신’을 부디, 자신이 지킬 수 있기를 빌며.





토리이 위에 햇빛을 받으며 앉아있는 두 사람의 인영을 본 대국주가 몸을 돌려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9.


“오늘 돌아가야겠다.”

대국주의 말에 일순 모두의 젓가락이 멈췄다. 

당사자인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를 비롯해, 아침부터 사라진 카라마츠를 찾아 신사로 찾아온 토도마츠도 말을 잃고 대국주를 바라보았다. 

쵸로마츠는 노골적으로 눈썹을 찌푸리고 “허,” 하고 헛웃음을 내뱉곤, 바로 뒤에서 살기를 내뿜고 있는 이치마츠를 달랬다. 


“멋대로 와서 인정 못하느니 뭐니 하시더니, 이젠 또 멋대로 돌아가겠다구요?! 3일 준다면서요!! 오늘이 3일째입니다만!?”

“쾅!” 소리가 나도록 상을 치며 일어난 토도마츠를 따라 모두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토도마츠의 항의에 동의하는지 이치마츠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쵸로마츠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는 서둘러 토도마츠에게 뛰어가 대국주에게 삿대질까지하고 있는 토도마츠의 손을 내리며 반강제로 토도마츠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별로 개똥마츠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이해하지만, 가장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

토도마츠에 이어 대국주에게 항의하듯 내뱉는 이치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넌 또 왜?!’ 하는 얼굴로 이치마츠의 입을 막았다. 

감히 요괴따위가 대국주에게 진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급에 따라서는 대국주와 같은 ‘신’이어도 대국주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아무리 오소마츠가 편하게 대한다고 해도, 눈 앞에 앉아있는 인물은 신들의 두령, ‘대국주’였다. 

그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는 쵸로마츠였기에 필사적으로 동생들의 발언을 막았던 것이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는지 입을 열려는 토도마츠와 이치마츠의 입을 아예 부여잡은 쵸로마츠가 치솟는 위액을 간신히 삼키며 식은땀을 흘렸다. 


“오소마츠.”

대국주의 목소리에 괜히 심장이 떨리는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멈췄던 손을 움직여 상에 젓가락을 내려놓은 오소마츠가 처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응.”

“잠시, 둘만 있게 해 주겠느냐?”

카라마츠를 응시하는 대국주를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쵸로마츠, 이치마츠, 토도마츠.” 하고 셋을 불렀다.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면서도 토도마츠와 이치마츠가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쵸로마츠도 자리에서 일어나 오소마츠를 따라 방을 나섰다. 

대국주와 카라마츠, 넓은 방 안에 오직 둘만 남았다.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

“…글쎄.”

“토도마츠, 그만 둬. 그리고 이치마츠, 태연한 척해도 귀! 완전히 서 있거든?! 엿들으려고 하지 마!! 둘 다!!”

방 문에 귀를 대고 온 신경을 청각에 집중하고 있는 토도마츠와 흥미없다는 얼굴로 머리 위에 솟은 고양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이치마츠를 쵸로마츠가 말렸다. 

토도마츠와 이치마츠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집을 나가는 쵸로마츠를 따라 오소마츠도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 선 넷은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거야아?!!”

“..몰라.”

토도마츠의 부르짖음에 쵸로마츠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벌써 카라마츠와 대국주만 남겨둔지 한 시간이 지났다. 

식사 도중에 나와 고픈 배를 붙잡고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신사의 입구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오소마츠의 옆에 선 이치마츠가 오소마츠를 따라 시선을 내렸다. 

커다란 호수를 끼고, 청산과 여우산에 둘러쌓인 아름다운 마을. 

마을과 햇빛에 반짝이는 호수가 이뤄내는 장관에서 시선을 돌린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보며 웃었다.


“왜? 이치마츄~?”

“…오소마츠 형, 괜찮아?”

동생의 걱정에 오소마츠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말없이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은 오소마츠의 귀가 움찔거렸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린 문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했다. 

머리를 긁적이며 나온 대국주가 “식사 중간에 미안혔다.” 하고 웃으며 나왔다. 

그 뒤를 따라 나온 카라마츠에게 토도마츠가 달려갔다.


“카라마츠 형, 대체 무슨 말을 했어??”

“…아, 그게…”

매가 사냥감에게 달려들듯, 카라마츠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겠다는 태세로 토도마츠가 눈을 빛냈다. 

똑바로 박히는 토도마츠의 눈빛에 이리저리 눈을 굴려가며 시선을 피하는 카라마츠를 대신해 대국주의 호통이 신사에 울렸다.


“이 놈!! 그런 건 네가 알 것 없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커다란 목소리에 귀를 막고 얼굴을 찌푸린 토도마츠가 “피-“ 하고 물러났다. 

이치마츠와 함께 대국주에게 다가간 오소마츠를 보며 빙긋이 웃은 대국주가 말했다.


“이리 오거라.”

한 손엔 오소마츠의 손을, 다른 한 손엔 카라마츠의 손을 잡은 대국주가 주술을 외우며 둘의 손을 이었다. 

희미하게 빛나는 붉은 실이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손가락에서 나와 공중에서 매듭으로 이어졌다. 

대국주의 축복과 함께 다시 공중으로 사라진 붉은 실을 빤히 바라본 토도마츠가 저도 모르게 “와…” 하고 감탄했다. 


“하, 할아범.”

“..이걸로 너희 둘은 내 공인을 받은 엄연한 배필이 되었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을 가진.”

대국주의 상냥한 음성에 오소마츠의 귀가 떨렸다. 

자상한 얼굴로 오소마츠의 머리를 두어번 두드린 대국주가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럼 가보마. 천상엔 좀 자주 오너라.”

“..응.”

대국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순식간에 대국주의 몸이 하늘로 떠올라 사라졌다. 


“태풍이 지나간 것 같아…”

중얼거리며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와 오소마츠에게로 다가갔다. 

이제는 사라져 보이지 않을 붉은 실에 엮인 둘의 손을 보며 토도마츠가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이걸로 정식으로 부부가 된거야?”

“그건 아직이군.”

“어? 그래??”

카라마츠의 대답에 쵸로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쵸로마츠의 뒤에 서서 가만히 카라마츠를 바라보고 있는 이치마츠를 발견한 카라마츠가 크게 몸을 떨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 바라보는 토도마츠를 보고 웃으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다. 

카라마츠도 잔잔한 미소로 화답하며 오소마츠의 손을 꽉 잡았다.


“지금은 약혼한 상태려나~?”

오소마츠가 수줍게 웃으며 코 밑을 문질렀다. 

마주 잡은 손 너머로 전해지는 서로의 온기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서로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10.


이건,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기분이다. 

내 평생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은 몰랐는데… 


오랜 벗이 남기고 간 작은 여우.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작고 빼빼마른 평범한 여우였건만. 

어느새 이리도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는지. 

그 순수함과 상냥함에 어느새 빠져버리고만 것이겠지. 

외로움을 잘 타면서도 남을 의식해 잘 티를 내지 않는 애처로운 아이. 

그렇기에 더 사랑스러운 아이. 

이 늙은 것보다 더 인간을 사랑하고, 제 마을을 사랑하는 귀여운 아이. 


그런 아이를 언 놈이 데려간다고 하면 반대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허어, 참. 계획이 전부 틀어져 버렸어. 

지금 수호하는 그 마을이 사라진다면 도로 천상에 불러 곁에 둘 계획이었건만. 

그 아이가 반려라 인정한 도도메키도 함께 데려오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렇게나 가족을 늘려놓았다니. 

오소마츠가 외로워하지 않아도 되어 좋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인가. 

그래도 오소마츠가 선택한 아이이니, 부모로서 축복하여 주자고 생각하고 내려간 것인데.. 

막상 눈 앞에 두고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은 어찌할 수가 없구먼. 

그야, 귀하디 귀한 우리 오소마츠를 데려가는 놈이라고? 마음에 들 리가 없지. 암. 

켄고도 살아있었다면 분명, 저런 덜 떨어진 녀석, 반대했을 것이 분명해. 


백보양보해서, 그래, 그 비실비실해 보이는 텐구 녀석의 혼이 오소마츠와 깊은 연으로 이어져 있다고 해도, 오소마츠가 줄곧 그리워했던 그 인간아이의 환생이라고 해도 말이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단 말이지. 

오히려 ‘그 인간 아이’였기에 내려갔던 것인데… 

오소마츠는 분명 그 인간 아이를 평생 그리워할 것이고, ‘신’과 ‘요괴’라는 벽은 넘기 힘드니. 


요괴보다 더 긴 시간을 살아가는 ‘신’이기에 걱정했던 것이야. 

혹시라도 그 텐구의, 오소마츠를 향한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연인이라면 마음이 식어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부부는 그것이 불가하니. 

불안했던거여, 오소마츠의 마음을 배신하지는 않을까. 

오소마츠가 텐구에게 버려지지 않을까, 오소마츠의 마음을 텐구 자식이 져버리진 않을까. 

그 아이’를 향한 오소마츠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알기에 그리 했거늘, 이 늙은이의 기우였던 것이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모르겠구먼. 



“제 마음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변한 적 없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건방진 텐구 녀석.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 얼굴을 봐서 이번은 눈 감아 줄까.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알지만, 역시 싫구만. 




뭐, 또 조만간 내려가 골려줄까.





* 여우골 8편은 아마 다음주 주중에 나올 것 같습니다. 주말엔 크리스마스 단편 쓰느라 바쁠 것 같아요...ㅎㅎ


* 크리스마스에는 카라오소 단편을 올릴 예정입니다. 기대해주세요. 제가 제 때 올릴 수 있게..ㅎㅎ;;;


* 이제 여우골 이야기도 얼마 안남았네요. 10편이나 11편에서 완결할 예정입니다ㅎ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편입니다. 


* 오소른인데 이치마츠가 분발해주었습니다... 거의 이치오소 삘이네요..


* 학생마츠 + 육둥이의 학창시절 날조 있습니다.



*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 (2일 차)


모두가 사용하는 교실이라지만, 교사들도 사용하는데 왜 청소는 학생들이 해야 하는가… 

청소당번을 땡땡이치고 뒤뜰을 걸으며 오소마츠가 중얼거렸다. 

수업은 그나마 어찌어찌 참을 수 있어도, 청소까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두 번째 고교생활. 귀찮은 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어슬렁거리며 청소가 끝날 때까지 시간을 때울 방법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오소마츠의 시야에 푸른 후드가 잡혔다.


“카라마츠~”

경쾌하게 땅을 울리며 뛰어가자 쓰레기통을 들고 소각장으로 가던 카라마츠가 걸음을 멈추고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오늘 청소 당번이지 않았나?”

“응? 그랬던가? 카라마츠도 청소?”

“아아, 이것만 버리면 끝난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 카라마츠를 따라 오소마츠가 함께 걸었다. 

자신보다 동생인 오소마츠에게 지극히 상냥한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청소 당번을 땡땡이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도 나무라지 않았다.

제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장난스럽게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기쁜 미소를 지은 카라마츠가 쓰레기통에 든 쓰레기를 소각장에 부었다. 

한결 가벼워진 쓰레기통을 한 손에 들고 오소마츠에게 “가자.” 고 불렀지만, 오소마츠의 시선은 카라마츠의 건너편에 있었다. 


“오소마츠?”

오소마츠를 부르며 오소마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카라마츠가 인상을 구겼다. 

어제 이치마츠에게 시비를 걸었던 패거리가 소각장 구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소각장 근처에서 담배를 피는 것은 위험하다고 분명 선생님들도 주의했던 일인데…’

눈을 흘기며 카라마츠가 한숨을 쉬고 오소마츠의 손을 잡아 끌었다. 

저런 건 무시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오소마츠도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순순히 카라마츠를 따라 몸을 돌렸다.


“..어이, 뭘 그리 꼬나보냐?”


‘아차…’

카라마츠가 혀를 차며 우르르 다가오는 인기척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제 쥬시마츠에게 맞은 5명에 4명이 더 있었다. 

총 9명의 양아치가 순식간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를 둘러쌌다. 

노골적으로 험악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불량배의 무리에 카라마츠가 몸을 움츠렸다. 

자신은 여섯 명의 형제 중 약한 편에 속했다. 

힘은 셌지만, 형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싸움 경험이 모자랐다. 

어느정도의 세기로 사람을 때려야 하는지 알지 못해 싸움이라도 했다 하면 카라마츠는 항상 제일 먼저 두들겨 맞는 편이었다. 

그런 자신의 앞에 9명의 불량배는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게다가 옆에는 육쌍둥이 최약체, 막내 오소마츠가 있는 것이다. 

현 상황으로는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도 벅찬 카라마츠는 간절히 누군가가 오기를 빌었다. 




“…”

어쩜 양아치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지.. 

오소마츠가 작게 혀를 차며, 눈 앞에 서 있는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막내인 오소마츠를 보호하려 팔을 뻗고 양아치들의 매서운 눈빛을 받고 있는 카라마츠의 손과 다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차남 카라마츠는 자신의 장점인 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오소마츠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했는데. 

아무래도 이곳의 오남 카라마츠는 싸움 경험도 별로 없는 약체라는 것을 오소마츠는 알 수 있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래도 나름 ‘형’이라고 오소마츠의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대견했다. 


‘이거, 내가 나서야겠네-‘

작게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도발적으로 웃으며 양아치들의 리더로 보이는 모히칸 머리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 고양이들한테 사과 안 한 선배네-“

“오, 오소마아츠?!”

양아치들의 얼굴이 더욱 험악해짐과 동시에 당황한 얼굴의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려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안심하라는 뜻을 담아 빙긋 미소를 지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제치고 나와 모히칸 머리의 앞에 섰다.


“뭐, 해보자고?”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오소마츠의 어깨를 건드리는 모히칸 머리를 보며 오소마츠가 작게 혀를 내둘렀다.


‘그러니까-, 그런 말은 사망 플래그라고?’

모히칸 머리의 미래를 잘 알고 있는 오소마츠가 연민의 눈으로 모히칸 머리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 함 해보자. 새끼야..”

말을 끝냄과 동시에 오소마츠가 모히칸 머리의 명치에 주먹을 박고,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몸을 굽히고 있는 모히칸 머리의 정수리에 다리를 꽂았다. 

가벼운 뇌진탕을 일으킬 수 있는 위력에 모히칸 머리는 그대로 땅에 머리를 처박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당황한 양아치들의 적의에 가득 찬 눈이 일제히 오소마츠에게 박혔다. 

즐겁게 웃으며 손을 까딱여 ‘와 봐.’ 하고 중얼거린 오소마츠를 향해 8명의 양아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 뒤는 오소마츠가 예상한대로. 과거 ‘붉은 오니(귀신)’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강했던 오소마츠는 이성을 잃고 달려든 양아치들을 가볍게 제압했다. 

날아드는 주먹과 발을 요리조리 피하며 정확하게 인간의 급소만을 가격했다. 

오소마츠의 일격은 맞은 양아치들을 풀썩풀썩 바닥에 쓰러졌고, 싸움이 끝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 소마, 츠…?”

쓰러진 양아치들의 사이에서 태연한 얼굴로 팡팡 교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오소마츠를 향해 카라마츠가 다가왔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다는 멍청한 얼굴로 다가온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푸힛!! 너 그 얼굴 뭐야!!” 하고 웃었다. 

자신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순식간에 9명을 때려 눕힌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항상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형들에게 예쁨 받고, 어리광 부리는 막내의 모습만 보아왔던 것이다. 

형제들 사이에서도 최약체로 여겨지는 오소마츠가 설마 양아치를 때려눕힐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수줍에 웃었다. 

검지로 코 밑을 문지르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너, 연극부잖아. 괜히 싸움했다가 짤리면 안 되잖아~? 그래서 이 오소마츠님이 나서준 거쥐~!!”

“오, 오소마츠으으으”

금새 눈물을 글썽이는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오소마츠가 버려져 있던 빈 쓰레기통을 들었다. 


“자, 갑시당~”

한 손엔 쓰레기통, 한 손엔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오소마츠가 앞서 걸었다. 

카라마츠가 감동한 얼굴로 오소마츠의 뒤를 따라 걸으며 눈을 반짝이는 것을 오소마츠를 눈치채지 못했다.



“오소마츠, 함께 돌아가자.”

종례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선 오소마츠에게 걸어온 카라마츠가 손을 내밀었다. 

멍하니 카라마츠의 손을 보던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이치마츠 형도, 쥬시마츠 형도 뭔가 일이 있다고 해서.”

“어? 카라마츠, 오늘 부활은?”

“오늘은 쉬는 날이다.”

“그래? 그럼 같이 가자~”

빙긋 웃으며 오소마츠가 망설임 없이 카라마츠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이젠 어느 정도 손을 잡고 걷는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자신에게 헛웃음을 흘리며 오소마츠가 가방을 멨다. 



“오소마츠, 고마워…”

“어? 뭐가?”

카라마츠의 감사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석양에 비쳐 그늘진 카라마츠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 카라마츠의 앞으로 걸어간 오소마츠가 가만히 카라마츠의 얼굴을 살폈다. 

붉은 석양을 머금은 카라마츠의 얼굴이 살짝 붉었다.


“이렇게 약한 ‘형’을 지켜줘서 고마워.”

“…”

기쁜 것 같으면서도 슬퍼 보이는 카라마츠의 미소에 오소마츠가 숨을 들이마셨다. 


‘왜 그런 얼굴…’

어쩌면 ‘형’으로서 오소마츠를 지키고 싶었던 카라마츠의 마음을 무시한 것일까, 괜한 짓을 했나 반성하며 오소마츠가 손을 뻗어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카라마츠는 훌륭한 형이야? 그런 형이니까 나도 지키고 싶었어.”

진심을 담아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소마츠의 마음이 전해진 것인지 카라마츠가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기쁘게 웃었다. 

다시 손을 마주 잡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쩐지 즐겁게 느껴졌다.







6. (3일 차)


고등학교 2학년 때의 반 구성은 오소마츠와 이치마츠가 4반, 쥬시마츠가 5반,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7반, 쵸로마츠가 1반이었다. 

2학년 교실 중, 1반은 층이 달랐기에 오소마츠도, 다른 형제들도 쵸로마츠의 반에 놀러 간 경험은 적었다. 

모처럼 다시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오랜만에 쵸로마츠의 반에 놀러 갈 생각으로 아침 조회가 끝나자 마자 오소마츠가 계단을 내려갔다. 

쵸로마츠의 반에 도착해, 쵸로마츠를 부르려 손을 번쩍 든 순간, 쵸로마츠의 앞에 모여있는 인파에 오소마츠가 귀를 기울였다.


“학급위원씨~. 오늘도 선생님 말 잘 들으셨어요?”

“공부도 못하면서 잘도 학급위원이 됐네-“

“돈 꽂아준 거 아냐?”

“야, 크크크. 그건 좀 아니다.”

노골적으로 쵸로마츠를 조롱하는 무리에 오소마츠가 인상을 찡그렸다. 

성큼성큼 쵸로마츠의 반으로 들어간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교복의 무리에게 다가가 외쳤다.


“뭐야, 너네! 우리 쵸로마츠한테 무슨 볼 일?”

“아?”

한 명의 어깨를 잡고 돌리며 오소마츠가 묻자, 어깨를 잡힌 남학생이 바로 사납게 얼굴을 구기며 오소마츠의 손을 쳐냈다. 


“오, 오소마츠?!”

쵸로마츠가 놀란 얼굴로 오소마츠를 막으려 했지만, 쵸로마츠를 둘러싸고 있던 무리가 더 빨랐다. 

쵸로마츠를 내버려두고 오소마츠를 둘러싸고 오소마츠의 어깨나 머리를 툭툭 치기 시작한 남학생들에게 오소마츠가 매섭게 쏘아보았다.


“너는 뭔데 나대냐?”

“아?”

무리의 시비조에 오소마츠도 낮게 목소리를 깔고 주먹을 쥐었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 반에 남아있던 학생들 모두 오소마츠와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무슨 일~?”

깡! 하고 금속 배트가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쥬시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를 가든 항상 야구 배트를 들고 다니는 쥬시마츠는 동생들을 괴롭히는 녀석들을 무자비하게 팬다는 소문과 함께 소위 노는 녀석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높았다. 

당연히 쥬시마츠의 악명을 알고 있는 무리가 슬슬 뒷걸음질치며 오소마츠를 보고 “두고 보자!” 하고 외쳤다. 


‘쥬시마츠가 무서워 뒤꽁무니 빼고 도망치는 주제에!’

콧방귀를 끼며 어이없다는 얼굴을 한 오소마츠가 바로 쵸로마츠에게 다가갔다. 

당황한 얼굴로 쵸로마츠가 다가온 오소마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위험하잖아!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래!!”

문제 없다고 대답하려던 입을 멈추고 오소마츠가 떠올렸다. 

이 세계에서 막내인 자신은 형제들 사이에서 최약체로 인지되고 있는 것이다. 


‘귀찮네…’

눈을 감고 한숨을 쉰 오소마츠가 떨리는 눈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쵸로마츠에게 밝게 미소지어 주었다. 


“괜찮아~, 쵸로마츠도 있고! 쥬시마츠도 와 줬고!”

“..하~~, 정말이지…”

오소마츠의 미소에 겨우 마음이 놓였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쵸로마츠가 처진 눈썹을 찌푸렸다.




쵸로마츠가 묘하게 반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오소마츠는 쉬는 시간마다 쵸로마츠의 반에 찾아갔다. 

자신의 친구들을 대동하고서. 

장남이었을 때도, 그리고 막내인 지금도 오소마츠는 반의 인기인이었다. 

타고난 친화력과 솔직함은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형제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같은 반의 친구들을 우르르 이끌고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는 오소마츠를 쵸로마츠가 곤란하단 얼굴을 하면서도 반겨주었다. 

아침에 오소마츠에게 시비를 걸었던 무리는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는 오소마츠 친구들에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다. 

쵸로마츠와 함께 웃고 떠들다보니 쵸로마츠도 불편한 기색을 완전히 지우고 오소마츠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너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오소마츠의 친구가 쵸로마츠의 어깨를 툭 치며 즐겁게 웃었다. 

쵸로마츠도 홍조를 피우며 기쁘게 웃는 것을 보고 오소마츠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종례를 마치고 반으로 찾아온 쥬시마츠와 이치마츠에게 오늘은 쵸로마츠와 하교하겠다고 하자, 쥬시마츠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휘파람을 불며 쵸로마츠의 반으로 내려간 오소마츠가 손을 휘적이며 쵸로마츠를 불렀다.


“쵸~로~씌~~! 같이 가자~~!!”

“에..?!”

오소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놀란 얼굴로 가방을 챙겨 복도로 나왔다. 

오소마츠의 마중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에헤헤~” 하고 웃으며 코 밑을 문지른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손을 잡고 막무가내로 이끌었다. 

오늘 학생회가 있는지 없는지 오소마츠는 알 수 없었고, 상관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쵸로마츠와 함께 하교하고 싶은 오소마츠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다. 

다행히 오늘은 학생회가 없는지 쵸로마츠도 당황하긴 했지만, 저항은 하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길, 앞서 걷던 오소마츠가 발을 멈추고 뒤따라오던 쵸로마츠를 향해 몸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쵸로마츠가 가만히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쵸로마츠~”

다정하게 쵸로마츠를 부르며 오소마츠가 가까이 다가가 쵸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쵸로마츠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요~. 내가 잘 알고 있는걸~. 학급위원도, ‘형’ 노릇도 힘내고 있고~ 완전 멋져~”

칭찬을 늘어놓는 오소마츠의 눈이 가늘어졌다. 

부드럽게 웃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바라본 쵸로마츠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마른 땅에 눈물 방울이 한 방울 떨어졌다. 


“…우응…”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쵸로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쵸로마츠가 실컷 울고 눈물을 멈출 때까지, 오소마츠의 쓰다듬은 멈추지 않았다.







7. (4일 차)


점심시간, 다 함께 도시락을 먹고 옥상에서 내려온 육둥이는 각자 제 반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오소마츠, 잠깐 나 들릴 곳이 있어.”

“어? 어디?”

“…따라오면 안 돼.”

말을 마친 이치마츠가 구겨 신은 실내화를 질질 끌며 복도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교실에 도착해 빈 도시락 통을 책상에 내려놓은 오소마츠가 히쭉 웃었다.


‘따라오지 말라고 하면, 따라가는 게 정석이지!’

5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빠르게 반을 빠져 나온 오소마츠는 온 학교를 돌아다니며 이치마츠가 갈 법한 곳을 돌아다녔다. 

고양이가 모이는 뒤뜰, 뒷마당, 체육관 뒤쪽, 옥상. 어디를 가도 이치마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딜 간 거야? 이제 곧 5교시 시작한다고?”

중얼거리며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던 오소마츠가 재빨리 학교 벽에 붙었다. 

소각장의 구석, 불량배 무리가 담배를 피던 곳에 이치마츠가 서 있었다. 

게다가 이치마츠 혼자가 아니었다. 

지난 날, 쵸로마츠에게 시비를 걸었던 무리가 이치마츠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응? 무슨 상황?’

벽에 몸을 숨기고 얼굴만 빼꼼 내밀어 상황을 지켜본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치마츠가 뭐라 말을 하자, 불량배 무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분명 또 죽인다, 쓰레기다 어쩐다 하고 협박하고 있는 거군…’

이치마츠의 집요한 협박을 직접 체험했던 오소마츠가 불량배들을 동정하며 쓰게 웃었다. 

이치마츠의 손짓에 신속한 몸놀림으로 일어나 뛰어나간 불량배 무리들은 오소마츠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푹- 한숨을 쉰 이치마츠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소각장을 나섰다.


“이~치~마~츄~”

“으힉!! 오소, 마츠?! 너!! 따라오지 말랬는데!!”

“이히히~~ 근데, 저 녀석들은 왜?”

이치마츠의 팔에 팔을 끼워 팔짱을 하고 걸으며 오소마츠가 물었다. 

빤히 자신을 보는 오소마츠의 눈길에 이치마츠의 얼굴이 살며시 붉어졌다. 

홍조를 감추려 고개를 돌린 이치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쵸로마츠를 괴롭혔으니까…”

“아…”

예상치 못한 대답에 오소마츠가 놀라 입을 떡 벌렸다. 


‘에… 어쩌면 이치마츠, 나보다 더 ‘형’다운 거 아냐?!’

내심 자신의 ‘형’으로서의 입지에 불안해하며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형’이 된 여파인지 어쩐지 이치마츠의 얼굴이 늠름해 보였다. 

피식- 웃음을 흘리는 오소마츠를 이치마츠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대체 뭐가 아쉬워서 나는 동갑의 사내놈들과 손을 잡고 걸어야하는가…’

오늘도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와 나란히 손을 잡고 귀가하며 오소마츠가 독백했다. 

오소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는 사이에 집에 도착한 세 사람은 잠겨져 있는 문을 눈치채고 주머니에서 키를 꺼냈다. 

쥬시마츠가 문을 열고 제일 먼저 들어가자마자 옷을 벗어 던지고는 순식간에 야구복으로 갈아입었다. 


“나, 야구!!!”

그 한마디를 남기고 쥬시마츠는 현관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방 안에는 쥬시마츠가 마치 뱀 허물처럼 벗어놓은 교복이 널려져 있었다. 

“에휴-“ 하고 한숨을 쉰 이치마츠가 가지런히 쥬시마츠의 교복을 개어놓고는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내려갔다. 

오소마츠도 붉은 후드로 갈아입고 거실로 내려갔지만 이치마츠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 나 버려두고 어디 간 거~?’

거실을 나와 이치마츠의 모습을 찾아 오소마츠가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현관에 아직 이치마츠의 신발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밖으로 나간 것 같지는 않았다. 

복도를 터벅터벅 걷던 오소마츠가 주방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주방으로 발을 옮겼다.

주방에 펼쳐진 광경에 오소마츠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백수에 집에 틀어박혀 있는 ‘그’ 이치마츠가 스스로 청소를 하고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에에에에?! 이치마츠 맞아?!!?’

놀란 얼굴로 다가가자 이치마츠가 오소마츠를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왜? 무슨 일 있어?”

“어… 아니, 왜 설거지하고 있어?”

“아, 저기, 메모…”

말을 마친 이치마츠가 다시 고개를 돌려 설거지에 집중했다. 

이치마츠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식탁 위에 놓인 쪽지가 보였다. 

잠시 밖에 나갔다 올 테니 청소와 설거지를 부탁한다는 마츠요의 메모였다. 


‘그러고 보니, 거실도 깨끗했어…’

오소마츠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이치마츠가 거실을 청소했는지, 오소마츠가 내려왔을 때 거실은 굉장히 깨끗했다. 

사내놈 여섯 명이 살고 있는 집이다. 

여섯 명이 모이는 거실은 항상 더러웠고, 구석에는 먼지가 쌓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청소의 속도도 그렇고 깔끔함에 감탄하며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의 등을 바라보았다. 

싱크대에 홀로 서서 묵묵히 식기를 씻고 있는 모습을 보던 오소마츠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이치마츠의 곁에 가 섰다. 


“오소마츠?”

“나도 도울게. 둘이 하면 빨리 끝나고.”

이치마츠가 세제로 씻은 식기를 물에 헹구며 오소마츠가 웃었다. 

이치마츠가 멍한 얼굴로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아니, 나 혼자서도 괜찮아. 나가서 놀아.”

“응~? 그치만 이치마츄는 혼자 있는 거 싫어하잖아.”

“…”

무방비하게 웃는 오소마츠의 미소의 이치마츠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오소마츠의 체온이 묘하게 의식되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치마츠의 초조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소마츠는 뭐가 즐겁다고 아예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식기를 헹구기 시작했다. 


“끝~~!!”

걷었던 소매를 내리고 오소마츠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행주에 적당히 손을 닦은 이치마츠가 피식 웃자,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보며 손을 내렸다.


“헷?!”

상냥하게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소마츠가 은은하게 미소지었다.


“우리 이치마츄는 동생도 돌봐주고, 집안일도 하고~ 수고가 많네~! 착한 횽아에겐 참 잘했어요 도장이야!!”

희미하게 홍조가 핀 얼굴로 웃는 오소마츠 덕분에 이치마츠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의식의 끈을 잡고 있는 것을 오소마츠는 몰랐다.







8. (5일 차)


다시 다니는 고등학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오소마츠는 오늘도 몰래 수업을 빠져 나왔다. 

땡땡이 치고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장소를 모두 꿰고 있는 오소마츠는 기억을 더듬어 학교 뒤뜰에 숨겨진 벤치로 향했다.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진 정원이 있는 뒤뜰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벤치가 우두커니 세워져 있었다. 

그야말로 누가 발견하기라도 할까 꽁꽁 숨겨놓은 것처럼 비밀스러운 벤치. 

학교 탐험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후로, 오소마츠가 자주 땡땡이에 이용하고 있는 장소였다. 


“어라?”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벤치에 앉아있는 걸로 보이는 인영에 오소마츠가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돌리려 했다. 

쩐지 낯익은 느낌에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인영의 주인은 쥬시마츠였다. 

항상 밝고 환하게 웃던 쥬시마츠의 얼굴이 어두웠다. 


“쥬시마츠.”

“아!”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오소마츠가 쥬시마츠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 

차가운 나무의 냉기가 얇은 천 너머로 전해져,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소마츠를 보며 쥬시마츠가 웃었다. 

평소와 다르게 힘이 없는 미소에 오소마츠가 눈썹을 찡그리고 차분하게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이~”

쥬시마츠가 고개를 저으며 빙긋- 웃었다. 

아니, 웃으려고 했지만, 어느새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소매를 길게 늘려 쥬시마츠의 눈물을 닦아준 오소마츠가 다시 물었다.


“이 오소마츠님께 전부 털어놓으라고?”

“후핫..!”

손을 허리에 얹고 당당히 가슴을 내밀며 거만한 표정을 짓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쥬시마츠가 빈 웃음을 흘렸다. 

억지 웃음을 지운 쥬시마츠가 고개를 푹 숙이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 전에, 강가에서 야구하다가 만난 여자아이가 있는데. 많이 많~이 친해졌는데, 내일 전학간다고 해서… 그런데 나, 내일 카라마츠 연극 연습 보러 가겠다고 약속, 했으니까…”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는 쥬시마츠의 목소리가 떨렸다. 

조금씩 들썩이는 쥬시마츠의 등을 토닥이며 오소마츠가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있잖아, 뭐든지 자기 자신한테는 솔직한 게 제일이야? 하고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하면 되잖아?”

“…”

오소마츠의 말에 쥬시마츠가 놀란 얼굴로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울리는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에 오소마츠가 쥬시마츠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쥬시마츠의 손을 잡고 오소마츠가 향한 곳은 카라마츠의 반이었다.


“에? 오소마츠? ..랑 쥬시마츠 형.”

“..카라마츠!”

“응?”

“나, 내일 네 연극 연습 못 갈 것 같아!!”

“에엣?!”

“미안!!”

말을 마친 쥬시마츠가 학교를 뛰쳐나갔다. 

쥬시마츠의 ‘그녀’는 쥬시마츠와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옆 마을에 있는 ‘그녀’의 학교까지 쥬시마츠는 자신의 빠른 발을 믿고 달려나갔다. 

남겨진 카라마츠가 어느새 울상이 된 얼굴로 훌쩍였다.


“우우우.. 와, 준다고 해놓고…”

“중요한 사정이 있다니까~ 내가 갈 테니까.”

“..오소마츠가?!”

“응.”

“저, 정말로?”

언제 울었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묻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환하게, 기쁘게 웃으며 카라마츠가 “그럼 꼭 와줘야 한다!!!” 하고 외쳤다.







9. (6일 차)


“오소마츠, 이번엔 이것도 입어 봐!!” 

이번엔 감색의 가디건과 적갈색의 면바지를 손에 든 토도마츠가 눈을 빛냈다. 

벌써 몇 시간 째, 오소마츠는 토도마츠가 건네는 옷을 몇 번이고 갈아입었다.


‘대체 무슨 돈이 나서 이 많은 옷들을 산 건지…‘

바닥에 널린 옷들을 보며 오소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귀찮은데 거기에 더해 오소마츠가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토도마츠는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맹렬히 눌러 오소마츠의 사진을 찍어댔다. 

오소마츠로서는 대체 이게 무슨 재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야~ 역시 우리 막내는 귀엽네~”

오소마츠의 사진을 보며 흡족하게 웃은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토도마츠가 사진을 확인하고 “이거 보여주면 다들 좋아할 거야~” 하고 웃는 모습을 오소마츠가 미묘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 세계에서 막내가 된 후로, 동생들의 변화된 모습에 놀랐지만, 어쩐지 토도마츠는 그렇게 많이 변한 것 같지 않았다. 

막내 토도마츠처럼 약삭빠르고 계산적인 드라이 몬스터, 그대로였다. 

막내에서 장남으로 가장 포지션의 변화가 큰데도 토도마츠 개인은 그다지 변하지 않은 것이 오소마츠는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그나마 변한 곳이 있다면 장남인 오소마츠가 막내 토도마츠를 예뻐하는 것보다 더 막내 오소마츠를 귀여워하는 것뿐이다. 


‘어째 무리하고 있는 거 아냐? 저 녀석…’

동생들의 선망 어린 시선을 받으며, 가장 강하다는 인식을 받고 있는 장남 토도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배꼽이 빠져라 웃은 카라마츠의 연극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 오소마츠의 앞에 검은 무리가 나타났다. 

재빨리 몸을 숨겨 오소마츠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친 무리는 족히 10명은 넘어 보였다. 

모두 한 곳을 향해 가는 모습에 이상한 감을 느낀 오소마츠가 조용히 뒤를 따랐다. 

아니나다를까 양아치 무리는 뒤뜰에 있던 토도마츠를 둘러싸고 섰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드리지 않아 답답했던 오소마츠가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고 양아치 무리의 뒤로 다가갔다.


“네가 아무리 우리 약점을 잡고 있어도, 한번에 덤벼서 말도 못하게 만들면 돼!”

“지금까지 잘도 우리를 협박해 왔겠다?”

“오늘은 네 동생들도 없다고?”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토도마츠의 멱살을 잡은 모히칸 머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멱살을 잡힌 상황에서도 토도마츠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비웃었다.


“에? 뭐야? 결국 폭력? 너네 정~말 촌스럽구나?”

태연하게 말했지만, 토도마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의연한 얼굴은 만들어냈을지라도 오소마츠는 토도마츠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아, 저 바보-‘

쯧! 하고 혀를 찬 오소마츠가 바로 토도마츠의 멱살을 잡고 있는 모히칸 머리에게 달려들었다. 

세월이 흘러 조금 녹슬기는 했어도 오소마츠의 싸움 실력은 열 명의 양아치를 쓰러뜨리는데 충분했다. 

중학교 때부터 육쌍둥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시비를 걸어오는 불량배들을 손수 모두 처리한 오소마츠였다. 

싸움 경험은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풍부했던 것이다. 

능숙하게 움직여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급소를 찌르고 찼다. 

목, 단전, 명치, 귀, 턱을 치자 양아치들이 하나 둘 바닥에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모히칸 머리의 사타구니를 차자 거품을 물고 쓰러지며 모히칸 머리가 “비겁하다!!” 하고 외쳤다.


“비겁한 게 누군데? 1대 10으로 덤비는 너네가 훨~씬 비겁하거든?”

콧방귀를 끼며 손을 탁탁 턴 오소마츠가 멍한 얼굴로 서 있는 토도마츠에게 다가갔다.


“어디 다친 데 없어?”

“…”

“어이? 토도마츠~”

“아, 어? 헤?”

카라마츠의 앞에서 양아치들을 쓰러트렸을 때와 같은 반응에 오소마츠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잡고 박장대소하는 오소마츠를 무슨 외계인 바라보듯 보며 토도마츠가 “말도 안 돼…” 하고 중얼거렸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겨우 웃음을 멈춘 오소마츠가 아직도 멍청히 서 있는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난 그렇게 약하지 않아? 무리해서 지키려 하지 않아도 돼.”

수줍게 웃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토도마츠가 말을 잃었다. 

토도마츠의 얼굴에 다시 터진 웃음을 참으며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장하네- 우리 장남님은~”

“..너!!”

오소마츠의 칭찬에 토도마츠가 순식간에 딸기처럼 얼굴을 붉히고 입을 연 순간, 네 명의 형제들이 나타났다.


“우왓! 이게 뭐야?”

“싸움? 싸움 났슴까아~?”

“헤에… 이거 토도마츠 형이?”

“역시, 대단하다!! 브라더!!”

우르르 몰려온 동생들을 보며 토도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양아치들을 쓰러뜨린 것은 자신이 아니고 오소마츠라고 말하려고 해도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굳게 닫혀 떨어지지 않는 입을 힘겹게 열어 오소마츠가 구해줬다고 말하려는데 오소마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응, 나한테 시비 거는 녀석들 전~부 토도마츠 형이 처리해줬어!”

해맑게 웃는 오소마츠의 말에 동생들 모두 경의에 가득 찬 시선으로 토도마츠를 올려보았다. 

토도마츠도 놀란 눈으로 오소마츠를 봤지만, 오소마츠는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돌려 토도마츠의 시선을 외면했다. 

오소마츠의 배려와 자신을 대단하다고 칭찬을 쏟아내는 동생들을 보며 토도마츠가 멋쩍게 웃었다.




처음으로 여섯 명이 함께 귀가하는 하교길. 

오소마츠가 조용히 쥬시마츠에게 다가가자 쥬시마츠가 빙긋- 웃어 보였다. 

‘그녀’의 배웅은 잘 하고 돌아온 것 같았다. 

안심했다는 미소로 오소마츠가 화답하자 쥬시마츠가 더 밝게 웃으며 오소마츠의 손을 꽉 쥐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함께 목욕탕에 갔다 와, 파자마로 갈아입었다. 

방 안 가득 펼쳐진 여섯 명분의 이불에 모두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오소마츠도 서서히 감겨오는 눈꺼풀에 저항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사락- 하고 이불이 내는 소리와 함께 작게 토도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고마워. 오소마츠.”

눈을 떠 옆을 보자 토도마츠가 살며시 붉어진 얼굴로 오소마츠를 응시하고 있었다. 


‘역시 이 녀석은 안 변했네.’

절로 묻어 나오는 동생의 어리광에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었다. 

오소마츠의 미소에 만족했는지 토도마츠가 눈을 감고 “잘 자.” 하고 말했다. 

오소마츠도 “잘 자.” 하고 대답해주고 편안한 기분을 만끽하며 눈을 감았다.



‘아- 역시, 장남이 더 좋을지도…’


귀여운 동생들을 돌보는 것이 제법 즐겁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오소마츠가 독백하며 잠의 세계로 떠났다.







10.


눈을 뜨자 항상 봐왔던 나무 천장이 아닌 하얀 천장이 보였다. 

아직도 졸음에 취한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도, 바닥도, 천장도 하얀 방.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 왜 병원?”

기억을 더듬으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기억은…


“응? 나 잠깐 막내가 됐었지…?”

스스로도 자신의 기억에 자신이 없는 오소마츠가 다시 고개를 반대편으로 기울였다.


“응…?? 분명 날아온 야구공에 맞아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오소마츠가 무의식적으로 머리에 손을 댄 순간, 두개골을 울리는 통증에 바로 손을 뗐다.


“아얏!! 에? 뭐야? 붕대??”

살며시 손가락만 가져다 대어 머리에 감겨져 있는 천의 감촉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얼굴을 찌푸렸다. 


“오, 오소마츠!!!!”

드르륵- 하고 열린 병실 문 너머 서 있던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곁으로 달려왔다. 

카라마츠의 뒤를 이어 쵸로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오소마츠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달려와 오소마츠에게 매달렸다.


“우우우-, 오소마츠으으으~~ 다시는 눈을 안 뜨는 건가 싶었다아아아!!!”

“…”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오소마츠의 팔에 비비며 카라마츠가 외쳤다. 

그 반대편엔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팔을 안고 무언으로 울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아!!! 부활했다!!”

“오, 오소마츠 형…”

오소마츠의 허리에는 쥬시마츠와 이치마츠가 매달렸다. 

항상 웃는 얼굴이던 쥬시마츠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치마츠는 평소보다 한층 더 우울해진 분위기를 풍기며 오소마츠의 배에 얼굴을 묻었다. 


“정말!! 겨우 가벼운 뇌진탕 정도로 6일이나 정신 잃지 말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오소마츠의 곁에 앉은 토도마츠가 잔소리를 퍼부었다. 

걱정했다는 막내의 말에 오소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자, 참고 있었는지 카라마츠보다 더 심하게 울며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매달렸다.


“뭐야, 너네. 나 필요 없는 거 아니였어?”

짓궂게 웃으며 말하는 오소마츠에게 한데 매달린 동생들이 외쳤다.


“““““오소마츠 형이 없으면 싫어-!!!!”””””

“푸핫!!”

눈물이고 콧물이고 쏟아내며 우는 동생들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오소마츠가 기쁘게 동생들을 달랬다. 




“엄마.”

“응~? 뭐니?”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동생들을 다시 집에 돌려보내고 교대로 오소마츠의 옆에 앉은 마츠요에게 오소마츠가 물었다.


“엄마는 내가 장남이어서 싫었던 적 있어?”

깔끔하게 깎은 사과를 포크에 찍어 오소마츠에게 건네주며 마츠요가 “으음~” 하고 신음했다. 

아삭아삭 사과를 베어 먹으며 오소마츠가 마츠요의 대답을 기다렸다.


“너희가 태어났을 때 말이야~.”

“…응?”

“육쌍둥이니까 엄마 뱃속이 어지간히 좁았는지 너희 모두 미숙아로 태어났어. 그런데 그 중에서도 네가 가장 몸무게가 적게 나가서 엄마는 무척 걱정했었어.”

“어? 그래? 내가?”

잔잔한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인 마츠요가 말을 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아마 너에게만 영양이 적게 분배된 것 같다고. 엄마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네가 동생들에게 영양을 양보했구나- 하고 생각했어.”

“…엑, 그건 오바야?”

“그래? 그래도 엄마는 그렇게 자상하고 상냥하고 동생들을 생각하는 오소마츠가 장남이라 기쁘단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마츠요의 부드러운 음성에 오소마츠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렸다. 

“후후-“ 하고 웃으며 남은 사과를 깎는 마츠요를 보며 오소마츠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나도 내가 장남이라 기뻐.”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우골 8편은 아마 내일? 오늘? 중으로 올릴 수 있을 거에요...ㅎㅎ



* 6일간- 이라고 제목은 되어있지만, 딱히 시리즈는 아니므로 전편과 이어지진 않아요ㅎ


* 오래전부터 쓰고 싶어 플롯까지 짜 논 소설이었는데, 이제야 올리네요.. 역시 저의 게으름은...


* 학생마츠입니다. 게다가 육둥이의 학창시절 날조 있습니다ㅎ.



*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육쌍둥이의 리더, 마츠노가 장남, 빌어먹을 썩은 정권의 왕 오소마츠, 

왕의 폭정에 참고 참다 한계가 달한 동생들이 폭발하고 말았다. 

단단히 화가 난 동생들은 일제히 오소마츠를 몰아 쏘아붙였다.


“이 망할 장남!!!! 나가 죽어라!!”

“형님, 아니 오소마츠. 정말이지 너란 녀석은… 생각이 있긴 한 건가?”

“히힛, 나보다 더한 쓰레기가 여기 있었네-. 개쓰레기 오소마츠 형.”

“원 아웃, 투 아웃, 쓰리 아웃!! 체인-지!!!!!!”

“진짜 오소마츠 형은 대체 왜 사는 거야? 살 가치 없지 않아??”


동생들의 폭언에 오소마츠가 황당하단 얼굴로 발을 굴렀다. 

잔뜩 화가 난 동생들을 하나하나 노려보며 오소마츠가 “웃기지 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리고 사과 했잖아!!!” 하고 외치자마자,


“““““너 같은 장남 필요 없어!!!!!”””””


하고 동생들이 목소리를 모아 집 안이 떠내려가도록 외쳤다. 

오소마츠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동생들을 밀어 제치고 거실을 나왔다. 

거칠게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연 오소마츠가 동생들을 향해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나가준다!!! 꺼져주면 될 거 아냐!!!!!”

‘쾅!!!’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현관문을 닫은 오소마츠가 후드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었다. 

입을 비죽 내밀고 투덜대며 오소마츠가 지갑 안을 확인했다. 

어제 경마에서 다 날린 터라 지갑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푹-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오소마츠는 집 근처 강둑으로 향했다.


“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카라마츠 지갑에서 돈 좀 빌리고, 쵸로마츠 CD 살~짝 밟아서 깨뜨리고, 이치마츠 멸치 맛 좀 보고, 쥬시마츠 야구 글러브 아주 약~간 망가뜨리고, 토도마츠 미팅 좀 망쳤다고 그렇게까지 화 낼 필요 있음?? 장남님을 완전히 무시하고 말이야!! 나도 장남하고 싶지 않았다고! 애초에 육쌍둥이인데 장남이 뭐야! 나도 어리광부리고 예쁨 받는 막내가 훨~~씬 좋았다고!!”

길가에 놓인 빈 깡통을 저 멀리로 차며 화풀이를 하는 오소마츠의 귀에 낯선 남자의 “위험해!!!!” 하는 외침이 들렸다.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오소마츠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야구공에 눈을 깜빡였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야구공을 주시하며 ‘아, 죽겠네.’ 하고 태평하게 생각을 마친 오소마츠가 머리에 느껴지는 격통에 정신을 잃었다.







2.


“..마츠!!”

“..우응~~”

“오소마츠!! 일어나!!”

귓가에 울리는 익숙한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인상을 쓰며 덮고 있는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다. 

뜨끈뜨끈하고 포근한 이불 안을 아직 벗어나고 싶지 않은 오소마츠와 이불을 잡아 당기며 오소마츠를 깨우려는 쵸로마츠 사이에 작은 공방이 일어났다. 


“일어~낫!!!!”

큰 외침과 함께 쵸로마츠가 이불을 저 멀리로 들어 올려 던졌다. 

이불이 주는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오소마츠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겨우 눈을 떴다. 

추위에 팔짱을 끼고 덜덜 떨며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아침 8시. 방 안은 햇빛으로 환했다. 

평소 점심때까지 자는 오소마츠는 몰려오는 피로에 눈을 비비며 쵸로마츠에게 불평을 쏟아냈다


“뭐야, 쵸로씨.. 왜 이렇게 일찍 깨우는데.. 아직 8시라고? 후아~~암…”

목젖이 다 보일 정도로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한 오소마츠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오소마츠 앞에 선 쵸로마츠가 황당하단 얼굴을 하고선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학교 가야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형’ 안 붙일래?!”

“…응?”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위화감을 느끼며 곧추섰다. 

분주히 이불을 정리하는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방금 전 쵸로마츠가 한 말을 되새겼다.


‘..응? 형?? 누가?? 아니, 그 전에 어제 화난 건 다 풀렸나??’

어제 오소마츠에게 불같이 화를 냈던 쵸로마츠와 동생들을 떠올리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동생들이 그렇게 화를 내면 적어도 일주일은 화를 풀지 않았다. 

단 하루 만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어? 교복..?’

쵸로마츠가 갈아입으라고 건넨 검은 가쿠란*에 오소마츠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수없이 떠올랐다. 

*가쿠란 : 일본의 남학생 교복 

그제야 쵸로마츠가 교복차림인 것을 눈치챈 오소마츠가 다시 “…응??”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멀뚱히 교복을 손에 들고 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답답하단 얼굴로 다가와 빨리 갈아입으라 잔소리를 하며 오소마츠의 잠옷을 벗겨주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쵸로마츠의 손길에 몸을 맡긴 오소마츠가 순순히 잠옷을 벗고 쵸로마츠가 입혀주는 교복을 입었다. 

쵸로마츠는 책장에 꽂힌 교과서를 손수 오소마츠의 가방에 넣어주곤,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쵸로마츠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 거실에 들어가자, 거실 한 가운데 놓인 테이블엔 남은 동생들이 교복을 입고 앉아있었다.


“..쵸로마츠, 이거 몰래 카메라야? 나 골려 줄려고 준비한 거야?”

도저히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오소마츠가 먼저 자리에 앉은 쵸로마츠를 향해 물었다. 

오소마츠의 말에 쵸로마츠를 비롯한 다섯 명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너… 그리고 아까부터 자꾸 ‘형’ 안 붙일래?”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하며 황당하단 말투로 말했다. 

그 옆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던 토도마츠가 웃으며 한 말에 오소마츠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우리 막내가 아직 덜 깼나 보네~”

멍청히 거실 입구에 서서 토도마츠의 충격적인 한 마디를 되씹고 있는 오소마츠를 향해 토도마츠가 의아하단 얼굴로 다시 카운터를 날렸다.


“얼른 이리 와 앉아~ 우리 막내씨~”

절대로 연기로는 보이지 않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토도마츠의 태도에 이끌려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와 쵸로마츠 사이에 앉았다. 

어머니 마츠요가 차려주는 밥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오소마츠가 뭔가를 달관한 얼굴로 납득했다.


‘응. 개그 애니니까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겠지.’

머리 속에서 쵸로마츠가 나타나 “메타 발언 하지 마!!” 하고 태클을 걸었지만, 깡그리 무시한 오소마츠는 젓가락을 들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을 입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쵸로마츠와 맞은편에 앉은 카라마츠가 맛있는 반찬을 오소마츠의 밥그릇에 올려주는 모습에 오소마츠는 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3. (1일 차)


졸업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그리움이 느껴지는 아카츠카 고교. 그 교문 앞에 선 오소마츠가 입을 벌리고 학교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 나이가 되어서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될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아무리 납득했다지만, 기가 막힌 상황에,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오소마츠가 형제들을 따라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그리워라…’

어수선한 복도, 서로 웃고 떠드는 학생들, 학생들의 인사를 받으며 지나가는 선생님들의 광경에 오소마츠가 웃었다. 

너무 낡아 삐걱거리는 나무 복도도 항상 뭔가에 걸려 잘 열리지 않는 문들도 기억에 남아있는 그대로였다. 

학교에 들어와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진 동생들의 모습을 찾으며 오소마츠가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근데 나 지금 몇 학년?’

교복의 칼라에 학년을 나타내는 브로치가 달려있어야 하지만 오소마츠의 교복에는 명찰조차 달려있지 않았다. 

붉은 후드에 검은 가쿠란을 걸친 오소마츠가 어슬렁 어슬렁 복도를 헤매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손을 잡혔다.


“우왓!!”

“아, 놀랐어? 미안.”

뒤를 돌아보자 이치마츠가 미안하단 얼굴로 사과하며 오소마츠의 손을 이끌었다. 


“정말로 아직 덜 깼어? 조회 시작하기 전에 반에 가자…”

쵸로마츠처럼 눈썹을 아래로 늘이고 다정하게 말하는 이치마츠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에게 이끌려 향한 곳은 2-4반. 

기억에 남아 있는 교실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작게 안심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면, 이치마츠와 같은 반이었다. 

이치마츠는 교실에 들어가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반 친구들에게 가볍게 인사한 후, 창가 뒷자리로 걸어갔다. 


“자, 그 상태면 자기 자리도 잊어버렸지?”

피식- 웃으며 오소마츠를 맨 뒷자리에 앉힌 이치마츠가 그 앞자리에 앉았다. 

기억에 남아있는 고교 시절의 이치마츠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오소마츠는 당황했다. 

자신의 기억에 남아있는 사남(四男) 이치마츠는 항상 구석자리에 앉아 어둠의 오라를 풀풀 풍기며, 반 친구들과 동떨어져 지냈었다. 

그나마 반으로 찾아오는 쥬시마츠나 같은 반이었던 오소마츠 자신과만 대화를 나누었던 아웃사이더. 

그것이 오소마츠의 기억 속에 있는 이치마츠였다. 그런데 이 세계의 이치마츠는 전혀 달랐다. 

반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하고, 전혀 어두운 기운을 내지 않았다. 

조금 내성적인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치마츠의 친구들로 보이는 학우들은 모두 그런 이치마츠를 배려해주고 있었다. 


“응? 왜?”

가만히 이치마츠를 보고 있는 오소마츠의 눈길에 이치마츠가 친구들과의 대화를 멈추고 부드럽게 웃으며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전혀 다른 이치마츠의 모습에 아예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모습에 뭔가를 물으려는 순간 담임이 들어와 조회를 시작했다. 

석연치 않은 얼굴로 이치마츠가 몸을 돌려 교탁을 바라보았다. 

조회가 끝나고 바로 시작된 1교시. 오소마츠는 필사적으로 졸음과 사투를 벌였다.


‘왜! 하필이면! 수학이 1교시이이이~?!!!’

속으로 절규하며 오소마츠가 봐도 이해되지 않는 수식들을 노려보았다. 

선생님은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며 칠판을 하얗게 채우고 있었지만, 오소마츠는 그 무엇 하나 이해되지 않았다. 

본래 지금 이 시간이라면 백수 오소마츠는 아직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실이 끊기듯, ‘툭’ 하고 인내심이 끊겨버린 오소마츠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눈을 감고 선생님의 설명을 자장가 삼아 책상에 머리를 괸 오소마츠는 금새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오소마츠.”

어깨를 흔들며 깨우는 이치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뺨에 붙은 수학 교과서의 페이지가 시원스레 지익-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오소마츠가 뺨에 붙은 교과서를 떼어내자 이치마츠가 “풋!” 하고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어지간히도 오소마츠의 모습이 웃겼는지 아예 몸을 굽히고 끅끅대며 웃는 이치마츠를 오소마츠가 볼을 부풀리고 흘겨보았다. 


“다음 시간, 국어야.”

겨우 웃음을 멈춘 이치마츠가 눈가에 희미하게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오소마츠가 가방에서 국어 교과서를 꺼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한번도 스스로 가방을 챙긴 적 없는 오소마츠는 항상 학교 책상의 서랍에 모든 교과서를 두고 다녔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는 아침에 쵸로마츠가 챙겨준 교과서가 반듯하게 가방에 들어가 있었다. 

오소마츠는 가방을 내려다보며 황당하단 웃음을 흘렸다.



그 이후로도 이치마츠의 돌봄은 멈추지 않았다. 

국어 시간에 오소마츠가 걸렸을 때는 작게 읽어야 할 부분을 알려주고, 교실을 이동해야 할 때는 오소마츠의 짐을 들고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함께 이동했다. 

일일이 막내인 자신을 챙기는 이치마츠의 ‘형’의 면모가 오소마츠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대견했다. 

항상 자신은 쓰레기니, 살 가치가 없다느니 중얼거리며 우울해하는 이치마츠와 달리 살갑게 사람을 대하며 동생까지 착실히 챙기는 성실한 모습이 은근히 기뻤다. 

이치마츠의 그런 기특한 모습이 더 보고 싶어진 오소마츠는 아예 이치마츠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상냥하게 웃으며 오소마츠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이치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도 기쁘게 웃었다.







4.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오소마츠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등학교 3년간,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점심시간! 

눈을 반짝이며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 옥상으로 올려가려던 오소마츠의 어깨를 이치마츠가 두드렸다. 

오소마츠와 마찬가지로 도시락을 챙기고 옥상으로 올라가려던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잠깐 들릴 데가 있으니까 먼저 옥상에 올라가서 형들이랑 밥 먹고 있어.”

말을 마치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반대편 복도로 걸어가는 이치마츠의 등을 가만히 바라본 오소마츠가 발을 옮겨 조용히 이치마츠의 뒤를 따랐다.



“왜 따라왔어?”

“그냥~”

당황스러워하는 얼굴로 묻는 이치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 무방비하게 웃으며 검지로 코 밑을 문질렀다. 

몰려든 고양이들에게 밥을 다 챙겨준 이치마츠가 손을 탁탁 털며 일어났다.

줄무늬 모양의 털을 가진 고양이, 새하얀 고양이, 삼색 고양이 등등 많은 고양이들이 학교의 뒤뜰에서 이치마츠가 챙겨준 밥을 먹고 있었다. 

모두 길고양이인지 때묻은 털빛은 탁했고, 꼬리가 잘린 고양이도 있었다. 

자신의 발치에서 밥을 다 먹고 느긋하게 누워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물었다.


“이렇게 매일 밥 챙겨주는 거야?”

“어? 아, 응…”

쑥스러운지 고개를 돌리고 작게 대답을 하는 이치마츠의 모습이 기특하고 귀여워서 오소마츠는 저도 모르게 이치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오소마츠의 손길에 놀란 얼굴로 이치마츠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착하네- 우리 이치마츄는~~”

싱글벙글, 정말로 기쁜 얼굴로 웃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이치마츠는 형의 머리를 쓰다듬는 동생에게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얼굴을 붉혔다. 

막내인 오소마츠에게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적은 많아도 쓰다듬을 받은 적은 없었다. 

오소마츠는 묘하게 익숙한 손길로 이치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상냥한 손길에 편안한 기분이 들어 이치마츠는 눈을 감고 오소마츠의 손길을 만끽했다. 

‘고양이가 이런 기분일까?’ 하고 멍하니 생각하며 안정된 한숨을 흘린 이치마츠의 귓가에 날카로운 고양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어이어이, 누가 멋대로 밥을 줘도 된다고 했어?”

한눈에 봐도 불량배로 보이는 양아치무리가 오소마츠와 이치마츠의 앞에 섰다. 

퉷! 하고 화단에 침을 뱉으며 다가온 불량배 한 명이 이치마츠의 눈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몸은 고양이가 겁~~나게 싫거든? 내 눈앞에 이딴 것들 좀 데려오지 말라고!!!” 

“꺄옹!!”

얌전히 밥을 먹고 있는 고양이의 배를 차며 양아치가 험악한 얼굴로 이치마츠의 멱살을 잡았다. 

발에 치인 고양이는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나 이치마츠를 위협하는 양아치를 향해 거세게 울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미간을 찌푸린 양아치가 다시 고양이를 향해 발을 들어올린 순간이었다.


“뺘샤~!!!!”

오소마츠의 날라차기는 양아치의 명치에 적중해, 양아치는 배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하며 땅에 뒹굴었다. 

양아치를 한 방에 날려버리고 이치마츠의 앞에 서서 이치마츠를 지키려는 오소마츠를 이치마츠가 믿겨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우리 착한 이치마츄~한테 괜히 시비 걸지 말고 좀 꺼져주시겠어요?? 아, 꺼지기 전에 고양이한테도 사과 부탁드림돠~”

평소와 다름없이 싱글싱글 웃으며 내뱉는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말투와 달리 낮고 차가웠다. 

발차기 한 방에 쓰러진 동료에 당황한 불량배들은 잠시 우왕좌왕하더니 오소마츠를 노려보며 한 발자국씩 가까이 다가왔다.


“어라라~, 사과할 마음이 없으신 것 같네요~?”

입꼬리를 올리며 마치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앞으로 나선 오소마츠를 이치마츠가 막아섰다.


“헷?”

다른 때였다면 얌전히 “쓰레기는 물러나겠습니다-.” 하고 얄미운 소리를 하며 오소마츠의 뒤에 있어야 할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앞에 서서 날아오는 불량배의 주먹을 막았다. 

특유의 날랜 몸놀림으로 불량배의 주먹을 피해 이치마츠가 주먹을 날렸다. 

인간의 급소 중 하나인 턱에 이치마츠의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불량배는 그대로 기절해 큰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단 한방. 

단 한방을 맞고 쓰러진 두 명의 동료들에 불량배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아! 있다!!”

불량배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기운찬 목소리. 이치마츠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지며 손을 흔들며 목소리의 주인을 불렀다.


“쥬시마츠 형!!!”

“아이아이!!! 지금 갈께!!”

이치마츠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한 쥬시마츠가 싱긋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배트를 고쳐 잡았다. 


“원 스트라익!!”

“쿠헉!!”

“투 스트라익!!”

“으악!!”

“쓰리 스트라익! 아웃-!!!”

“크아악!!”

정체불명의 야구 용어를 외치며 무자비하게 배트를 휘두른 쥬시마츠의 손에 불량배 세 명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신음을 내며 바닥에 쓰러진 다섯 명의 불량배들을 밟고 쥬시마츠가 이치마츠와 오소마츠에게 다가왔다.


“밥 먹으러 가자!”

밝게 웃으며 이치마츠와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는 쥬시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는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하고 자문했다. 

오소마츠와 이치마츠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려는 쥬시마츠의 앞에 우르르 남은 세 명의 형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오소마츠으으으!? 괜찮은 건가?!!”

호들갑을 떨며 불량배들을 밟고 뛰어온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얼굴과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더듬거리며 몸을 확인하는 카라마츠의 손길이 간지러웠는지 “푸핫! 괘, 괜찮아!! 그, 그만! 큭큭” 하고 오소마츠가 웃었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오소마츠의 얼굴에 안심했는지 “휴-“ 하고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다정하게 웃었다. 


“하여간에 너는 하루라도 사고를 안치면 몸이 근질근질하냐?”

‘딱!’ 하고 오소마츠의 머리에 꿀밤을 먹인 쵸로마츠가 허리에 손을 얻고 잔소리를 했다. 

길어지는 쵸로마츠의 잔소리에 오소마츠가 귀를 막고 고개를 돌리며 “아, 눼- 눼.” 하고 대답했다. 

당연히, 오소마츠의 머리에는 혹이 하나 더 생겼다. 

동생들의 모습을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토도마츠가 쓰러져있는 불량배들에게 다가갔다.


“있잖아- 한번만 더 우리 동생들을 건드리면… 너네 비밀 온 학교에 퍼뜨릴 테니까-“

소근소근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는 토도마츠의 말에 불량배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거세게 고개를 끄덕인 불량배들에게 토도마츠가 웃으며 “그럼 우린 갈게-“ 하고 말하고 몸을 돌려 동생들을 향해 다가왔다. 

우연히 토도마츠와 가장 가까이에 있어 토도마츠가 하는 말을 들은 오소마츠가 속으로 불량배들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드라이 몬스터 토도마츠는 항상 막내라는 자신의 포지션을 이용해 형들의 약점을 잡아 그것을 빌미로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특기였다. 

게다가 상황을 항상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유도하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은 살살 구슬려 반드시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인심장악술의 토도마츠! 쵸로마츠가 붙인 토도마츠의 별명이었다. 


‘뭐, 요즘엔 대체로 “톳티-“라고 불리지만…’

앞서 걸어가는 토도마츠를 보며 ‘막내 토도마츠’를 떠올린 오소마츠가 쓰게 웃었다. 

무슨 연유로 이 세계로 넘어온 것인지는 몰라도, 이곳에서의 ‘막내’는 토도마츠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방금 전, 이치마츠가 오소마츠를 지켜주려고 했던 것도 오소마츠가 ‘막내’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장남보다 막내가 훨~씬 좋잖아.’

깍지 낀 손을 뒤로 넘기며 오소마츠가 작게 한탄했다. 




맑은 하늘 아래, 똑같은 얼굴이 여섯, 그리고 똑같은 도시락이 또 여섯. 

함께 옥상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중,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체 왜 뒷뜰에 있었어? 바로 옥상으로 안 오고.”

“아-, 고양이 밥 주느라.”

“후응~”

“이치마츠가 고양이를 지켜줬어! 엄청 멋있었어! 그치? 이치마츄~”

“헷?! 아니, 나는…”

오소마츠가 웃으며 칭찬하고, 그 어깨에 기대가 이치마츠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치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었다. 


“엣! 그랬어!? 이치마츠 대단하잖아!! 우리 중에서는 약한 편인데.”

토도마츠가 계란말이를 입으로 옮기며 말했다. 

토도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기억에 남아있는 이치마츠도 그렇고, 아까 본 이치마츠도 그렇고 결코 약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순식간에 턱에 주먹을 날려 상대를 기절시키는 실력은 수준급에 해당했다. 

육둥이 중, 학창시절 가장 싸움을 많이 했던 오소마츠는 알 수 있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토도마츠에게 오소마츠가 물었다.


“그럼 우리 중에 누가 제일 강하고, 누가 제일 약해?”

“에? 그거 네가 물어보는 거야?”

토도마츠가 웃으며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뭔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토도마츠에 약간 기분이 나빴지만, 내색하지 않고 오소마츠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누가 제일 강한데?”

“그야-, 토도마츠 형이지.”

오소마츠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쵸로마츠가 토도마츠 대신 대답했다. 

쵸로마츠의 대답에 오소마츠는 적잖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토도마츠는 학창시절 항상 여자아이들과 놀러다니며 싸움은 제일 약했던 막내였다. 

놀란 오소마츠가 “그래?” 하고 되묻자, 모두 당연하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옆에 앉아있는 토도마츠는 호리호리하니 약해 보였다. 

그런데도 모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토도마츠가 제일 강하다고 말해와 오소마츠는 혼란스러웠다. 


“그럼 제일 약한 사람은?”

“”“““너잖아!!”””””

일동이 합심해 외쳤다. 

오소마츠를 제외하고 모두 한 목소리로 외쳐오는 것에 오소마츠는 다시 당황했다.


‘내가 제일 약하다고?! 이 카리스마 레전드님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현실에 오소마츠가 쥐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눈에 띄게 동요하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괜찮은가?” 하고 걱정했지만, 카라마츠의 목소리는 오소마츠의 귀에 닿지 못했다.




“겨우 끝났~다!!!!”

종례가 끝나고 오소마츠가 기지개를 펴서 탄식했다. 

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지루한 고등학교 수업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들어야 하는지… 

푹 한숨을 쉬는 오소마츠 앞에 이치마츠가 섰다.


“가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오소마츠의 가방을 챙겨 들고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을 잡았다. 

반나절 동안 이치마츠의 스킨쉽에는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자신이 막내라는 사실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오소마츠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을 나가려는 순간, 커다란 발소리를 복도 가득 울리며 쥬시마츠가 나타났다.


“렛츠 고 홈!!”

“쥬시마츠 형, 부탁이니까 카라마츠 따라 하지 마…”

아예 카라마츠의 목소리까지 따라 해 외치는 쥬시마츠에게 이치마츠가 작게 부탁했다. 

쥬시마츠는 활기차게 웃으며 “옷케-!!” 하고 대답했다. 

이치마츠가 머리를 감싸며 “그러니까…따라 하지 말라고…” 하고 주저앉은 것은 당연했다. 

귀여운 동생들의 모습을 오소마츠가 바라보고 있는데, 교실 안으로 또 다른 형제가 들어왔다.


““오소마츠.””

동시에 오소마츠를 부른 카라마츠와 쵸로마츠가 서로를 견제하듯 노려보며 다가왔다. 

오소마츠가 가방도 메지 않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응? 가방은?”

“오늘은 부활(부활동)이 있다…”

“나는 학생회…”

“아… 잘 갔다 와~”

침울한 얼굴로 한숨 쉬듯 내뱉은 카라마츠와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보며 빙그레 웃고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따 집에서 보자. 오소마츠.”

“괜히 딴 길로 새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

정말로 오소마츠와 함께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슬픈지 비통한 얼굴로 오소마츠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넨 카라마츠가 눈물을 머금고 교실을 나섰다. 

쵸로마츠도 다시 한 번 오소마츠에게 얌전히 집으로 가라는 잔소리를 하고는 교실을 빠져 나갔다. 

교실을 나간 두 사람과 교체하듯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다가와 오소마츠의 손을 한 쪽씩 잡고 말했다.


““가자.””

다정하게 웃으며 오소마츠를 부드럽게 끌어당기는 두 사람의 손길에 오소마츠가 피식- 웃으며 뒤를 따라 걸었다. 



남자 고등학생 셋이서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가는 광경은 과연 유쾌하지 않았다. 

즐겁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오소마츠와 잡은 손을 흔드는 쥬시마츠와 조용히 오소마츠의 손을 놓칠세라 꼬옥- 붙잡고 걷는 이치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몰려오는 혼란에 눈을 감았다.


‘응? 어라? 애초에 막내가 이런 거였나…? 토도마츠가 막내였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아침부터 느낀 위화감은 오소마츠가 막내라는 사실만은 아니었다. 

토도마츠와 막내였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섯 명의 ‘형’들은 ‘막내’인 오소마츠를 아꼈다. 

너무 아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차이가..?’

토도마츠가 막내였을 때를 필사적으로 떠올리며 지금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생각하던 오소마츠가 공복감을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 

평소 잘 사용하지도 않던 머리를 너무 굴렸는지 혈당이 떨어져 머리가 아팠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편의점을 발견한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에게 말했다.


“나, 잠깐 고기만두 좀 사고 올게!”

말을 마친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손을 놓으려는데, 이치마츠가 눈썹을 찌푸리며 오소마츠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이치마츠의 행동에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고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어… 이치마츄? 나 잠깐 편의점…”

“같이 가. 항상 같이 갔잖아.”

“..헤?”

말을 마친 이치마츠가 앞장서서 편의점을 향해 걸어갔다. 

쥬시마츠도 오소마츠와 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은 채, 이치마츠를 따라 걸었다. 

오소마츠도 할 수 없이 둘을 따라 편의점으로 걸어가며 다시 한 번 ‘막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찰했다.



“150엔입니다.”

편의점 점원 언니의 낭랑한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웃으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분명 아침에 지갑에서 200엔 정도를 꺼내 주머니에 넣었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뒤에 서 있던 쥬시마츠가 150엔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쥬시마츠의 돈을 받은 점원 언니가 웃으며 따끈따끈한 고기만두를 내밀었다. 

고기만두를 받아 들고 편의점을 나온 오소마츠가 쥬시마츠를 보며 말했다.


“내 돈으로 사려고 했는데…”

“? 항상 형아가 사 주잖아?”

쥬시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오소마츠는 다시 한번 ‘에-, 막내가 이랬나?????’ 하고 자문했다. 

오소마츠가 고기만두를 들고 있어 손을 잇지는 못했지만, 셋은 나란히 걸으며 고기만두를 나눠먹었다. 

행복하단 얼굴로 오소마츠가 나눠준 고기만두를 먹는 쥬시마츠와 이치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는 ‘막내가 좋긴 하구나…’ 하고 생각하며 웃었다.




육둥이가 모두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오소마츠는 겨우 오늘 깨달은 사실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먼저, 오소마츠 자신은 ‘막내’라는 사실이었다. 

항상 오소마츠에게는 쌀쌀맞았던 차남 카라마츠는 바로 아래 동생인 오소마츠를 심하게 챙겼다. 

‘너 누구냐?!’ 하고 생각할 정도로 일일이 오소마츠를 챙겨주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쵸로마츠도 어린 시절의 파트너이기도 하고, 막내인 오소마츠를 아꼈다. 

어린 시절처럼, 오소마츠’형’이 아닌 ‘오소마츠’로 불리는 것이 기쁘면서도, 형제들의 보살핌이 어쩐지 간질간질했다. 

오소마츠가 막내가 되면서 자동적으로 형제의 순서는 반대가 되어 있었다. 

토도마츠가 장남, 쥬시마츠가 차남, 이치마츠가 삼남… 


그에 따라 형제들 간의 관계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항상 약삭빠르고 형들에게 어리광 부렸던 토도마츠는 장남이라는 포지션을 아주 잘~ 이용하고 있었다. 

물 떠와라, 리모콘 가져와라, 장남 명령이다, 하며 가만히 앉아 동생들을 시키는 토도마츠를 보며 오소마츠는 혹 자신도 저런 모습이지 않았나 조금 반성했다. 

쥬시마츠는 그다지 변화는 없었지만, 이치마츠와 쵸로마츠를 챙기는 등 ‘형’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치마츠였다. 

항상 카라마츠를 차고, 때리고 했었으면서, ‘형’이 된 이 세계에서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만큼이나 아꼈다. 

카라마츠도 이치마츠를 무서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다가가 이치마츠가 품에 안고 있는 고양이를 안아봐도 되냐고 어리광을 부렸다. 

‘형’이 된 동생들이 다소 의젓해진 모습을 보였다면,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동생’이 되고 응석이 늘어났다. 

이치마츠에게 고양이를 만지게 해달라고 조르고, 엄마에게 저녁식사에는 무슨 반찬을 해달라 응석을 부렸다. 


“내일 같이 가줘~”

“음~, 내일은 여자애들이랑 같이 새로 생긴 카페에 가기로 했는데~”

“나, 오랜만에 학생회 쉬는 거란 말이야! 같이 가줘~ 혼자 가기 싫다고~”

“우리 쵸로마츠는 혼자서는 서점도 못가요~?”

“외롭다고!!”

“아, 알겠어. 같이 가줄게.”

“정말로?! 만세!!”

눈 앞에서 토도마츠의 팔을 잡고 흔들며 함께 서점을 가달라고 조르는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헛웃음을 흘렸다. 

아예 딴 사람이 되어버린 동생들을 보며 오소마츠는 황당하면서도 신기했다. 

순서가 바뀐 것만으로 사람의 인격이 이렇게나 변할 수 있는 건가 되물으며 오소마츠는 모처럼 막내가 된 지금을 즐기기로 했다. 





* 오소마츠가 막내가 된다면, 분명 형들에게 엄청 예쁨받지 않을까요? 


* 오소른이라고 생각하고 썼는데 어째 이치마츠의 분량이 많습니다ㅎㅎ..


* 하편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7편입니다! 다행히 늦지 않았네요ㅎ


* 이번편은 쉬어가는 느낌의 편입니다. 느긋하게 즐겨주세요ㅎ


* 작중에 등장하는 요괴나 신의 설정은 전부 제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이치마츠가 가족이 되고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작은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던 이치마츠는 훌륭히 자라 성체가 되었고, 자유자재로 고양이와 인간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도록 되었다. 

어릴 적엔 그렇게나 오소마츠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이치마츠는 이제 스스로 마을의 고양이들과 놀러다니며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오소마츠와 함께 토리이 위에 앉아, 고양이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마을을 살피는 이치마츠의 뒷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쵸로마츠가 바라보았다. 


느긋하게 해가 청산 저편으로 저물어가는 하늘에 검은 그림자가 생겨났다. 

서서히 그 그림자가 신사로 다가옴에 따라 쵸로마츠가 신사 입구로 걸어나가 마중을 나왔다.


“카라마츠~!”

신사 입구의 토리이 위에 앉은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보다 먼저 손을 흔들며 카라마츠를 맞이했다. 

카라마츠도 신사에 발을 딛고 오소마츠에게 가볍게 인사한 뒤, 쵸로마츠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아니, 딱히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다.”

쵸로마츠의 물음에 대답하며 흘끔 오소마츠가 앉아있는 토리이를 바라보는 카라마츠를 쵸로마츠가 가늘게 뜬 눈으로 응시했다. 

이 바보 카라스텐구는 이렇게나 빤히 드러나는데도 아직도 오소마츠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다니, 한심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카라마츠우~”

반갑게 웃으며 토리이에서 내려온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가왔다. 

카라마츠도 얼굴을 활짝 피고 미소를 지으며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카라마츠가 수줍게 웃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팔을 뻗은 순간, 커다란 뭔가가 카라마츠를 덮쳤다. 

순식간에 오소마츠에게서 내쳐진 카라마츠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저리 꺼져! 개똥마츠!”

이치마츠가 오소마츠를 지키고 서서 카라마츠를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이치마츠의 소행이라는 것을 깨달은 카라마츠가 한숨을 푹 내쉬고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성체가 되고 많이 철이 든 이치마츠였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카라마츠를 향한 태도였다. 

여전히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싫어했다. 

억울하단 얼굴로 이치마츠에게 다가간 카라마츠를 이치마츠가 귀를 곤두 세우고 위협했다.


“너도 매번 당하면서 학습이란 걸 좀 해…”

오소마츠에게 다다가고 싶어하면서도 이치마츠의 경계에 울상을 짓는 카라마츠를 말리며 쵸로마츠가 중얼거렸다. 




오늘도 거하게 남은 손등의 발톱자국을 쓰다듬으며 카라마츠가 청산을 향해 날아갔다. 

앞으로는 이치마츠가 없는 때를 골라 찾아가자고 다짐하며 카라마츠가 시선을 내린 순간, 함께 쓰러져 있는 두 개의 인영이 눈에 비쳤다. 

본래 호기심이 많은 까마귀에 근본을 둔 카라마츠는 본능에 따라 날개를 접고 땅으로 내려왔다. 

과거 이치마츠와 같은 정도의 어린 요괴 둘이 손을 잡고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살펴보니 어쩐지 카라마츠 자신과 닮은 얼굴에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조심스럽게 두 아이를 안아 들었다. 

늘어난 무게에 더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며 카라마츠가 영지를 향해 날아올랐다.







2.


“얘들아~!! 놀자~!!”

친구의 집 앞에서 목청껏 외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나오려고 준비하고 있는 건가? 


곧 나올 것이라 믿고 한참을 문 앞에서 기다렸지만, 친구는 해가 질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걸까? 


고개를 기울이고 문 앞을 떠나 집으로 걸어갔다. 

오늘도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방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물고기를 잔~뜩 잡아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엄마와 아빠는 벌써 일주일이 세번이나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무도 없는 빈 집은 조금 외롭다. ‘구우우-‘ 하고 울리는 뱃고동에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을 깨닫고 산으로 향했다. 

산에는 먹을게 많다.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열매도 있고, 땅을 잘 보면 구워 먹으면 맛있는 도마뱀도 많다. 

요즘은 갑자기 많이 없어졌지만… 


온 산을 헤집고 다니며 잡은 도마뱀 두 마리와 나무 열매 3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주친 마을 어른들에게 엄마에게 배운대로 인사했지만,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엄마가 돌아오면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다시 물어봐야겠다. 

방 중앙에 있는 화로에 불을 붙이고 도마뱀을 꼬치에 꿰어 화롯가에 올려놓았다. 

노릇노릇 구워진 도마뱀을 맛있게 먹으며 내일은 누구집에 놀러갈지 생각했다. 

오늘 찾아간 쇼타도, 어제 찾아간 소라도, 엊그제 찾아간 토마도 아픈건지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그럼 내일은 산에 있는 작은 신사에 가자!! 

모두의 감기가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신님에게 기도하자! 

내일 열심히 기도하면 내일 내일은 다 같이 놀 수 있을거야!! 

그러면 같이 산에 올라가서 도마뱀을 잡자! 


화롯가의 불을 끄고 이불을 깔아 누워 다 함께 놀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낙엽이 재미있어 언제까지고 밟고 있다보니 어느새 주변이 어두워진 것을 눈치챘다. 

신님에게 모두가 건강해지도록 소원도 빌었고, 돌아갈까!! 

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산을 내려와 마을을 향해 뛰었다. 

마을 입구가 보일 즘, 입구에 서 있는 한 아이를 발견했다. 


못 보던 얼굴!! 


“안녕!!”

“우왓!! 아, 안녕하세요…”

아이가 입고 있는 하얀 옷은 군데군데 먼지가 묻어 더러워져 있었다. 


나처럼 산에서 놀고 온 걸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쥬시마츠야!” 하고 인사하자, 아이도 “아, 토도마츠라고 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새 친구!! 내일은 토도마츠랑 놀자!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구우우-“ 하고 배가 울리는 소리가 났다. 

응? 근데 내가 아니야?? 

토도마츠가 배를 잡고 얼굴을 빨갛게 하고 있었다.

 어? 얼굴이 빨갛다는 건… 감긴가?! 

그럼 빨리 따뜻하게 해 줘야 돼!!


“우리 집으로 빨리 가자!!”

“에, 에?!”

토도마츠 손을 잡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뒤에서 “그만 멈춰 줘어어어어어어!!!” 하고 신음소리가 들렸지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빨리 뛰어서 마을 끝에 있는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롯불을 피웠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몸을 따뜻하게 해 줘야 한다고 엄마가 그랬어!! 

불을 피우자 토도마츠가 불에서 저 멀찍이로 떨어져 앉았다. 

몸을 따뜻하게 하려면 불가에 있어야 해? 

손을 잡아 끌자 고개를 휘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우응-, 그러면 감기가 빨리 안 낳는다고? 

그런데 또 “구우우-“ 하고 소리가 났다. 

아!! 토도마츠 배에서 나는 소리구나!! 이제야 알겠다.

 토도마츠에게 줄 도마뱀을 꼬치에 꿰어 불에 구워서 내밀었더니 토도마츠가 머뭇거리며 받았다. 


“맛있어!!”

“아, 응… 고마워.”

뜨거운지 천천히 도마뱀을 뜯어먹는 토도마츠를 따라 나도 도마뱀을 먹었다. 


응! 역시 맛있어!!

갈 곳이 없다는 토도마츠의 말에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어쩌면 같이 지낼 수 있을지도!! 그러면 좋겠다-!! 


오랜만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만족해하며 눈을 감았다. 




“똑, 똑”

어? 이 시간에 누구-? 

문을 열었더니,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할아버지 뿐만 아니라 마을의 어른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어라? 오늘은 무슨 날이야?? 축제인가? 나도 불러주려고 온 거야?


“쥬시마츠, 오늘 낯선 이가 마을에 들어온 것 같은데…”

“응! 토도마츠!! 감기 걸린 것 같아서, 내가 데려왔어!!”

“타인을 마을에 들이면 어쩌자는게냐?!!!”

“에…”


어? 그치만, 토도마츠는 내 친구야? 데려오면 안 되는 거야? 

잘 모르겠어… 


할아버지는 짚고 있는 지팡이를 흔들며 막 화를 냈다. 어른들도 모두 화를 냈다. 


“빨리 내쫓아 버려!!”

할아버지가 말했다. 

어른들이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싫어! 토도마츠를 보내다니!! 

집 문을 꽉 닫고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어른들의 힘은 나보다 훨씬 셌다. 

우르르 몰려 들어온 어른들은 아직 자고 있는 토도마츠를 억지로 깨워 끌고 나갔다.


“안 돼!!! 데려가지 말아주세요!!”

어른들을 따라가면서 외쳤지만, 어른들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왜 데려가는 거야? 왜 있으면 안 돼? 겨우 생긴 친구인데!!


마을 입구에 토도마츠를 던진 어른들이 토도마츠에게 다시는 얼씬도 하지 말라며 땅에 침을 뱉었다. 

토도마츠도 아직 어린데, 왜 그렇게 심하게 하는 거야? 

어른은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는데!! 


토도마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마을을 떠나 걸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지는 토도마츠의 등에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어른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왜 토도마츠를 내쫓아야 하는 거냐고 물었지만,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 토도마츠가… 점점 더 멀어진다. 

이제 만날 수 없어? 

그런 거… 싫은데!!! 


마을을 나와 토도마츠를 향해 뛰었다. 

내가 뛰면 아무도 쫓아오지 못 해. 전속력으로 토도마츠에게 뛰어가 토도마츠를 붙잡았다.


“잠깐!! 토도마츳!!”

“어? 쥬시마츠? 왜 왔어?”

“가지 마!! 나랑 같이 살자!”

“…안 돼. 나는 이방인이니까, 그 마을에서 살 수 없어…”

그치만, 토도마츠 엄청 지쳐보이는 걸… 


“그럼 나도 갈래!!”

“에..?”

“나도 토도마츠랑 같이 갈래!!”

“어? 그치만 쥬시마츠는 마을에서…”

“괜찮아!! 어른들 모두 나 싫어하는 걸…”

“…그럼 같이 가자.”

“응!!”

토도마츠가 내민 손을 잡고 웃으니까 토도마츠가 웃어줬다. 

둘이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토도마츠도 마을에서 미움을 받다가 쫓겨났다고 했다. 

그리고 토도마츠가 나보다 어렸다! 

나는 벌써 30년은 살았는데, 토도마츠는 20년 밖에 안 살았다고 했다. 


그럼 내가 형아네!!! 그렇게 말했더니 토도마츠가 웃으며 나를 “쥬시마츠 형아-!” 하고 불러 주었다. 

엄~~청 기뻤다. 우리는 둘이서 같이 살 수 있는 곳을 빨리 찾기를 바라며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3.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고 나서야, 인간들 사이에서 유키온나(설녀(雪女))라는 요괴가 제법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 유키온나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 대체 무슨 반응을 할까? 

항상 눈이 내리는 북쪽의 높은 산에 우리 마을이 있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그래도 제법 살아갈 만한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난 유일한 유키오토코(설남(雪男))이었다. 

보통 유키오토코라하면 온 몸에 흰털이 나 있는 짐승과도 같은 모습을 한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키온나 누나들처럼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언뜻보면 인간으로 착각할 정도로 나는 인간과 닮아 있었다. 

인간에 비해 굉장히 차가운 체온만이 내가 유키오토코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마을 내에서 내 존재는 굉장히 간단했다. 


‘변종’. 


그것이 마을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유키오토코면서 유키온나와 비슷한 외견, 사납지 않은 성격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는 이미 부모도 없이 마을 구석에 자리한 비루한 초가집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따돌리기는 해도, 신체적인 괴롭힘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인간 마을로 몰래 내려갔던 한 마을 사람이 무시무시한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이다. 

우리 마을에 인접한 인간 마을에서 매년 발생하는 냉해*로 유키온나 사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냉해 : 여름철의 이상 저온이나 일조량 부족으로 농작물이 자라는 도중에 입는 피해.

우리 유키온나는 주변의 온도를 낮추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냉해가 우리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들은 절대적으로 우리의 탓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즉시 마을의 어른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다. 

먹을 것을 찾아 늦은 밤까지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나는 우연히 마을 사람들의 회의를 엿듣게 되었다.


“그럼.. 역시 그 아이를 미끼로 써서…”

“인간들을 유인하게 한 뒤에 우리는 옆 산에 있는 마을로 피신을 하는게…”

“음.. 역시 그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작은 목소리로 소근대는 마을 사람들의 대화에 충격을 받은 나는 옷자락을 꽉 쥐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그 아이’는 분명 나를 말하는 것이다. 

나를 미끼로 써서 인간들을 유인하도록 한 뒤에 자신들은 안전한 옆 마을로 피신하겠다는 대화를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잔인함에 치가 떨렸다. 

계속 이 마을에 있으면 영락없이 미끼가 되어 죽을 것이다. 

각오를 다지고 집에 들어가 간단한 짐을 꾸려 마을을 나왔다. 

평생 마을에서 살아온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여행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가만히 앉아서 미끼가 되어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처음 떠난 여행길은 내 생각보다 더 고되었다. 

인간들을 피해 험한 산길만을 돌아다니다보니 싸온 음식은 금새 바닥나고 나는 거의 매일을 굶주린 채, 걸어다녀야 했다. 

어쩌다 운 좋게 인간마을을 발견하면 몰래 그 마을에 숨어들어 음식을 훔쳤다. 

하지만 그 시대의 인간 마을은 서로 몰려있지 않았기에 나는 대부분의 날을 굶주려야 했다. 

쥬시마츠 형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도 나는 배가 고픈 상태였다. 

그 마을이 인간들의 마을이 아닌 요괴들의 마을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이라도 음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웃거리고 있을 때, 쥬시마츠 형이 나타났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나를 집에 들이고 음식(도마뱀이었지만…)까지 내어준 상냥한 쥬시마츠 형. 

이대로 이 마을에서 쥬시마츠 형과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이방인을 허용하지 않는 요괴들은 나를 내쫓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쥬시마츠 형 덕분에 주린 배도 채웠고, 오랜만에 푹신푹신한 이불에서 잤으니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터벅터벅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커다란 발소리와 함께 쥬시마츠 형이 나를 붙잡았다.

함께 살자는 쥬시마츠 형의 제안을 거절하고 떠나려는데, 놀랍게도 쥬시마츠 형이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언뜻 봤을 때, 쥬시마츠 형도 나와 마찬가지로 마을에서 안 좋은 대우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힘든 여행길에 동료가 생긴 것이 기뻐서 어딜가나 쥬시마츠 형의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쥬시마츠 형은 뭔가를 찾아내는 일을 잘해서 쥬시마츠 형과 함께 여행하면서 굶는 일은 크게 줄었다. 

그래도 머물 곳이 없는 것은 어린 우리들에게 너무나 힘겨웠다. 

몇 년이고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이방인인 우리를 받아주는 마을은 없었다. 

서서히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랐다. 쥬시마츠 형도 지쳤는지, 그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도착한 마을이 인간들의 마을이라는 것에 절망한 우리는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꼭 잡은 손에서 서서히 쥬시마츠 형의 체온이 낮아지는 것을 느끼며 의식이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을 잃기 바로 직전, 새의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4.


치비타에게 일을 모두 끝냈다는 확인을 받고 겨우 집무실을 빠져 나왔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이미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신사에 도착할 즈음엔 저녁 식사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게되면 오랜만에 오소마츠의 요리를 맛 볼 수 있게 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일이 늦게 끝난 것도 왠지 고마웠다. 

복도를 따라 걸어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는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불렀다. 

우리 영지에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몰라볼 정도로 건강해진 둘은 우렁차게 발소리를 울리며 내 앞으로 뛰어왔다.


“카라마츠 형아! 밥! 밥임까아~?!”

“카라마츠 형! 벌써 밥 먹을 시간?”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나를 ‘형’이라 불러주는 두 아이의 모습에 절로 신음이 나왔다. 

이 얼마나 귀여운 아이들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도 이 아이들 앞에서는 그 빛을 잃을게 분명했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의 순수함과 귀여움을 찬양하고 있으니 옷자락이 아래로 쭉 당겨졌다.


“카라마츠 형, 또 뭔가 이상한거 생각하고 있지!”

토도마츠가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이상한 거라니 대체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웃어보인 후, 몸을 숙여 두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오늘은 함께 갈 곳이 있다.”

“어? 어디?”

“어디임까아~?”

“이 마을을 수호해주는 토지신의 신사다.”

““토지신?””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눈을 댕그랗게 뜨고 되묻는 아이들을 안고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 전에도 몇 번, 내게 안기어 하늘에 날아본 적이 있는 아이들은 밝게 웃으며 발 아래의 경치를 쳐다보았다. 

너무 빠르지 않게 천천히 날개를 퍼덕여 부드럽게 활공해, 청산의 맞은편 여우 신사로 향했다. 

날개를 퍼덕이며 신사에 발을 딛고 품에 안겨 있던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내려놓았다. 

두리번 거리며 커다란 신사를 둘러보는 두 사람에게 오소마츠가 다가갔다.


“요! 꼬맹이들!”

““..누구세요?””

“나는 오소마츠 형아야!!”

““오소마츠 형아?””

“그래~!”

살갑게 웃으며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낯선 이의 등장에 몸을 움추리고 있던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금새 경계를 풀고 방긋 웃었다.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오소마츠는 초면인데도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를 예뻐했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도 자신들을 향한 오소마츠의 호의에 스스럼 없이 다가가 오소마츠를 ‘오소마츠 형’이라 부르며 따랐다. 

자신의 뒤를 졸졸 따르는 두 아이의 모습에 과거 이치마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는지 오소마츠의 얼굴이 부드럽게 이완했다. 

오소마츠를 향해 손을 뻗은 토도마츠와 쥬시마츠의 손을 마주 잡은 오소마츠가 두 아이의 머리에 입맞추며 축복을 내렸다. 

정말로 가족과 같은 셋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고 있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다. 

쵸로마츠도 팔짱을 끼고 내 곁에 서서 가만히 오소마츠와 두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이, 개똥마츠, 비켜!”

“우왓!! 이치마츠.. 돌아온 건가.”

“아?”

“힉-“

뒤쪽에서 들려오는 험악한 목소리에 바로 몸을 돌렸다. 

신사 계단을 올라온 이치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어서 와.” 하고 인사했다. 

“응.” 이라고 짧게 대답한 이치마츠가 신사 마당에 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물었다.


“저 녀석들은?”

“저번에 말했던, 카라마츠가 주워온 녀석들.”

“아…”

쵸로마츠가 나를 대신해 대답하자 이치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소마츠에게로 걸어갔다. 

오소마츠도 이치마츠가 다가오는 것을 깨닫고 손을 흔들어 맞이했다.


“이 녀석은 이치마츠 형아야~”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동시에 이치마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린 아이의 눈길에 놀란 이치마츠가 귀를 곤두세우고 뻘쭘히 섰다.


““이치마츠 형아~!!””

활짝 웃으며 이치마츠에게 다가가는 두 아이를 이치마츠가 당황하며 받았다. 

갑자기 생긴 동생의 존재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두 아이를 대하는 이치마츠의 태도가 어쩐지 뻣뻣했다. 

두 아이를 이치마츠에게 맞기고 오소마츠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야~ 귀엽네-. 이치마츠 어렸을 때 같아.”

“그러네.”

오소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확실히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를 돌보며 왜 오소마츠가 그렇게나 이치마츠를 싸고 도는지 알 수 있었다. 

저 귀엽고 작은 여린 생명이 자신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이 세상에 대신할 것 없는 엄청난 축복이었다. 

매일 성장하며 뛰노는 어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제멋대로 웃고, 신사 내를 뛰어다니는 두 아이를 돌보느라 이치마츠가 진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쵸로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형’이라고 노력하네, 저 녀석..”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한 쥬시마츠를 재빨리 붙잡아 다시 일으켜주는 이치마츠를 보며 오소마츠도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저 녀석들은 계속 카라마츠 영지에서 머무는 거야?”

고개를 돌려 내게 묻는 오소마츠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아, 우리 영지에서 지내는 거에 익숙해졌고, 또 주거 환경을 바꾸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으니까. 대신에 자주 데려오겠다.”

“그래-, 자주 데려와. 이치마츠도 기뻐할 거야.”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오소마츠가 어쩐지 아이를 둔 부모와 같이 보여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소마츠를 향해 나도 웃은 순간, 아니나다를까 이치마츠의 신발이 날아와 머리에 꽂혔다.


“아욱!!”

“오소마츠 형한테 접근하지 마, 개똥마츠!!”







5.


“드디어…”

“드디어…”

“카라마츠 형아!! 축하함다!!!!”

“…죽인다, 개똥마츠…”

수줍게 웃으며 카라마츠와의 관계를 밝힌 오소마츠를 향해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와 손을 맞잡고 있는 카라마츠를 향해 쥬시마츠가 활짝 웃으며 진심을 담은 축하를 건넸고, 이치마츠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카라마츠를 노려보았다.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며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하고 있는 카라마츠를 지나쳐 오소마츠에게 다가간 이치마츠가 오소마츠를 꼭- 안고 죽일듯이 카라마츠를 노려보았다. 

오소마츠와 맞잡고 있는 카라마츠의 손을 내치지 않은 것은 이치마츠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오소마츠와 손을 맞잡고 있으면서도 이치마츠를 피해 최대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카라마츠는 그저 진땀을 흘리며 억울하단 얼굴로 오소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했던 그림에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헛웃음을 흘렸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이어지기를 누구보다 강하게 바랬던 둘이었다.


“이제야 좀 걱정없이 발 뻗고 자겠네-“

“헤에, 토도마츠 그렇게 걱정했었어? 웬일이래~? 냉혈괴물이…”

“나도 나름대로 걱정했다고!? 게다가 ‘냉혈괴물’이라니 뭐야!!”

토도마츠를 곁눈질하며 오소마츠와 닮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쵸로마츠가 문득 뭔가를 떠올리고 주먹을 쳤다.


“그러고보니, 그 바케네코는 어떻게 됐어?”

“아-, 카라마츠 형이 반응이 없으니까… 얼마 전에 싹 포기하고 돌아갔어.”

“진짜로 불쌍할 정도로, 카라마츠 반응 없었지…”

“카라마츠 형 눈엔 오소마츠 형만 보이니까…”

아직도 대치상태 중인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를 바라보며, 반눈으로 대화하는 쵸로마츠와 토도마츠였다.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대화하는 동안, 기어이 이치마츠의 인내심이 한계를 보였는지 카라마츠의 복부에 멋지게 이치마츠의 주먹이 꽂혔다. 

말릴법도 하건만 오소마츠는 그저 하하 웃으며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저 멀찍이 카라마츠를 쫓아낸 이치마츠가 고양이로 모습을 바꾸어 오소마츠에게 뛰어들자,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웃으며 이치마츠를 품에 안고 천천히 머리와 등을 쓰다듬었다. 

골골거리는 소리를 감추지 않고 이치마츠가 눈을 감고 편안하게 오소마츠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이치마츠에게 맞은 복부를 쓰다듬으며 깊은 한숨을 쉬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쥬시마츠가 두드렸다.


“응? 뭔가? 쥬시마츠.”

“카라마츠 형아, 진~짜로!! 축하함다!!”

“아아, 고맙다.”

명랑하게 웃는 얼굴로 다시 한번 축하를 전하는 쥬시마츠의 머리를 카라마츠가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카라마츠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오소마츠를 향한 연정을 먼저 눈치챈 자상한 동생은 카라마츠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릴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겨우 카라마츠가 자신의 마음을 인지하고 오소마츠에게 전해, 그 결실을 맺은 것에 쥬시마츠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런 쥬시마츠의 마음을 알고 있는 카라마츠도 온 마음을 다해 쥬시마츠에게 미소지어 주었다. 


“아, 맞다!! 오늘 인간 마을에 놀러 가기로 했잖아!! 쥬시마츠 형! 이치마츠 형!!”

쵸로마츠와 대화를 하던 토도마츠가 시간을 확인하고 손을 흔들며 외쳤다. 

카라마츠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자 쥬시마츠도 빙긋 웃으며 카라마츠의 곁을 떠나 토도마츠에게 달려갔다. 

이치마츠도 오소마츠가 “이치마츠, 조심해서 놀다 와-“ 하고 배웅하자, 고양이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토도마츠에게 걸어갔다. 

함께 웃으며 신사의 계단을 내려가 인간 마을로 내려가는 동생들의 모습을 오소마츠가 조용히 바라보았다. 


“축하해. 카라마츠.”

카라마츠의 등을 툭 두드리며 쵸로마츠가 덤덤하게 말했다. 

카라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고맙다고 대답하자마자 쵸로마츠의 입가가 섬뜩하게 휘었다.


“만에 하나라도 오소마츠 형을 울리지 말라고-?”

“쵸, 쵸로마츠… 눈이 웃고 있지 않다…”

이치마츠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압력을 내뿜는 쵸로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설설 뒷걸음쳤다. 

그 누구보다 오소마츠와 함께 한 시간이 긴 쵸로마츠였다. 

가장 오소마츠를 이해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쵸로마츠이기에 카라마츠와의 교제에 기쁘면서도, 어쩐지 오소마츠 형을 뺏기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쵸로마츠에게 있어 그 누구보다 소중한 오소마츠 형이다. 

그것을 다시금 카라마츠에게 전하며 쵸로마츠가 다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오소마츠가 동생들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에 새삼 놀라며 카라마츠가 고맙다고 화답했다. 




붉은 토리이에 올라 천리안을 이용해 인간들 사이에 녹아들어 놀고 있는 동생들을 보며 오소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 소중한 반려 쵸로마츠와, 배필 카라마츠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타오르듯 무르익은 낙엽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오소마츠가 눈을 감고 기쁘게 중얼거렸다.


“이야- 평화롭네~”





* 이번편으로 육둥이가 모두 만나게 되었습니다!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도 동생들에게 인정받게 되었네요ㅎ


* 다음편은 다음주(새벽이 되었으니 이번주네요...) 주말에 올릴 예정입니다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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