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단편입니다ㅎㅎ


* 25화 이후의 내용입니다.


* 죽음 소재입니다. 내용이 어둡습니다.


* 커플링은 없습니다.






1.


평소보다 이른 귀가 시간,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마주친 쵸로마츠가 눈썹을 내리고 지친 얼굴로 다가왔다. 

오늘 오전 헬로워크에 간다던 쵸로마츠는 육쌍둥이 맞춤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 

적당한 일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일까, 나와 같이 이른 귀가에 이유를 묻자 쵸로마츠가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카라마츠, 요즘.. 오소마츠 형이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와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에 역시 육쌍둥이구나 하고 감탄하며 긍정했다. 

항상 우리들이 나갈 때면 발에 매달려 놀아달라거나, 심심하다며 징징대는 오소마츠 형이 이상하게 요즘 너무나 잠잠했다. 

외출을 하는 우리를 보면 “잘 다녀와-“ 하고 배웅까지 해주는 모습에 이제야 겨우 철이 들었나 싶으면서도 묘하게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불안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나도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들은 쵸로마츠가 더욱 속도를 높였다. 

나와 쵸로마츠 모두 거의 뛰다시피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평일 낮, 파더-는 일, 마미는 파트 타임(아르바이트)에 갔을 시간이다. 

낡아 잘 열리지 않는 현관문을 밀어 젖히고 집 안으로 들어선 순간, 무거운 정적에 숨을 삼켰다.

현관에 놓인 붉은 신발은 분명 오소마츠 형의 것인데,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도, 쵸로마츠도 재빨리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랐다. 

내가 거실을, 쵸로마츠가 2층 방을 확인할 것을 무언으로 전하고 거실문을 열었다. 

텅 빈 거실엔 오늘 오전 우리가 어지르고 간 잡다한 물건들이 널려 있을 뿐이었다. 

오소마츠는 2층에 있는 것인가, 몸을 돌려 거실을 나온 순간 쵸로마츠의 비명소리가 온 집 안에 울려 퍼졌다. 


무언가를 떠올릴 여유는 없었다. 

본능적으로 발을 옮겨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2칸씩 뛰어 올랐다. 

그 사이 거칠어진 숨을 몰아 쉬며 복도를 뛰어 2층 방으로 향했다.


“오, 오소마츠 형!!!!!”

울음 섞인 비명을 지르며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쵸로마츠를 따라 방 안을 살펴 보았다. 

공중에 떠 있는 발에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위로 올렸다. 

붉은 후드의 오소마츠 형이 대롱대롱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쵸로마츠의 울부짖음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아, 왜 불안한 예감은 항상 빗나가지 않는 걸까. 

잔인한 운명이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구나. 


울음소리와 함께 괴로운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2.


선발을 계기로 집을 나와 독립했던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일도 하지 않고 부모의 등골을 빨아먹으며 사는 백수 생활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일하지 않는 인생, 세라뷔-! 


쵸로마츠의 취업도, 우리의 독립도 완전히 없었던 일이 되었다.

육쌍둥이가 함께하는 일상은 그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다. 




자기 전, 보리차를 마신 것이 잘못이었을까, 한밤중 뇌를 울리는 요의에 눈을 떴다. 

천천히 평온한 얼굴로 잠든 동생들을 깨우지 않도록 이불에서 몸을 뺐다. 

이불에서 완전히 빠져 나와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방 안을 둘러보자, 이불 한 가운데 빈 자리가 눈에 띄었다. 

내 자리의 옆의 옆. 오소마츠의 자리라는 것을 깨닫고 방 문을 열어 계단을 내려갔다. 

먼저 요의를 해결하기 위해 1층 화장실에서 급한 용무를 해결 한 후, 거실의 문을 열었다. 

2층에 없다면 분명 거실이나 지붕 위에 있을 것이 뻔했다. 


어두운 거실 안, 마당 쪽의 문을 열어놓은 채, 마루에 오소마츠가 홀로 앉아있었다. 

놀라지 않게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다가가자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어라? 카라마츠~?”

“뭐 하고 있는 건가? 형님.”

옆에 다가가 앉자 오소마츠가 맥주캔을 내밀었다. 

아직 시원한 캔의 입구를 따고 입에 가져갔다. 

맥주잔을 기울이는 나를 바라보며 오소마츠가 무방비하게 웃었다.


“달 구경 하고 있징~”

하늘을 올려다보는 오소마츠의 시선을 따라 위로 고개를 올렸다. 

청아하게 하얀 빛을 내는 보름달이 검은 하늘에 우아하게 떠 있었다. 

확실히, 아름다운 달이었다.


“오늘은 달이 아름답구나.”

“그렇지?”

들고 있는 맥주잔을 내미는 오소마츠형을 따라 맥주잔을 들어 가볍게 부딪혔다. 

마시기 좋게 식은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있잖아, 카라마츠.”

“뭔가?”

빈 맥주잔을 손에서 굴리며 오소마츠가 달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달빛에 비친 오소마츠 형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보였다.

본래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사라진 얼굴은 나와 같은 나이의 육쌍둥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는 또 집을 나갈거야?”

“…”

그리 오래 전이 아닌 기억을 떠올리며,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없었던 일로 하기엔 우리가 독립을 통해 깨닫게 된 사실이 너무나 잔혹했다. 

아무 생각 없이 백수 생활을 이어가기엔 우리는 ‘현실’을 깨닫고 말았다. 

세상에, 사회에 나가야 한다는 ‘현실’을, 우리는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지낼 수는 없겠지…”

그것이 현실이었다. ‘어른’의 대사였다. 

고개를 들어 슬쩍 오소마츠 형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시선은 하늘 위 달을 향해있는 오소마츠 형의 눈이 슬프게 빛났다.


“그 때는,”

“…응?”

겨우 시선을 내려 나를 은은히 바라보는 오소마츠 형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배웅해줘, 형님.”

‘안녕.’ 이라고. 


굳이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전할 수 있는 말을 삼켰다. 

크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오소마츠 형이 맥주잔을 가볍게 눌렀다. 

똑딱똑딱 하고 알루미늄 캔이 눌렸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엄지 손가락으로 맥주캔을 눌렀다 떼며 오소마츠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 횽아는, 혼자는 싫은걸…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고 싶은걸…”

드물게 비치는 오소마츠의 약한 모습에 놀라면서도 마음을 다잡았다. 

독립을 하고 우리는 ‘현실’을 볼 수 있었다. 

변할 수 있었다. 

오소마츠 형도 변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영원히는 무리야.”

간단하게 대답했다. 

사실이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성인이기에, 포기해야 할 것들도 있었다. 

쓸쓸해도, 슬퍼도, 괴로워도 우리는 버려야만 했다.


“그렇겠지-“

오소마츠 형이 나를 응시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슬픔을 감추고 짓는 미소에 가슴이 아팠다. 

오소마츠 형의 미소는 서서히 일그러져 울 것 같은 얼굴로 변했다. 


“그럼, 카라마츠…”

“…아.”

“너만이라도, 내 곁에 있어주면 안돼?”

“…오소마츠.”

“다 떠나버리면 횽아 외로워서 죽어버려~”

“..형님, 우리는 변해야 한다.”

“…”

오소마츠 형의 손에 들린 맥주잔이 날카롭게 울리며 구겨졌다. 

고개를 숙인 오소마츠 형의 얼굴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오소마츠, ‘형’으로서, 세이프존을 떠나 소사이어티-로 나가는 브라더-들을 제대로 배웅해 주라고.”

그것이 ‘형’이 취해야 할 자세다. 


오소마츠 형답지 않게 약한 소리를 하는 ‘형’을 미약하게 질책했다. 

우리가 독립할 때, 오소마츠가 보여준 모습은 ‘형’으로서 전혀 퍼펙트하지 않았다. 

‘형’이라면 응당 집을 떠나는 우리의 등을 밀어주며 잘 가라고 배웅을 해 주어야 했다.


“그럼, 차라리 헤어지기 전에 ―.”

작게 중얼거리는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뭉개져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작게 웅크린 오소마츠 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맥주캔에 찰랑거리는 남은 술을 전부 들이 마시고 몸을 일으켰다.

 

“먼저 돌아가겠다.”

“응- 잘 자~”

오소마츠 형은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달빛을 받아 외롭게 남아있는 오소마츠의 등을 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화감에 눈썹을 찌푸렸다.








3.


이불에서 몸을 일으켜 시계를 확인했다. 

언제나 일어나는 늦은 아침. 옷을 갈아입고 몸단장을 한 후, 거실로 내려가니 모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실에 누워 만화책을 보던 오소마츠 형은 만화책을 바닥에 던지고 우리를 보며 “에- 모두 나가?” 하고 물었다. 

헬스장에 가기 위해 가방을 싸던 토도마츠가 오소마츠 형을 향해 물었다.


“오소마츠 형은 안 나가?”

“돈 없엉-“

“하아~?! 용돈 받은 지 3일 만에!? 역시 쓰레기 장남!!”

“헤헤- 대단하지!!”

“칭찬 아냣!!!!”

어젯밤에 느낀 위화감이 아직도 오장육부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체내에 잔류하는 느낌이 불쾌하면서도 불안해져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았지만, 언제나와 같이 토도마츠와 웃고 떠드는 모습에 괜찮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나 둘, 집을 나가고 어쩌다 보니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나가게 되었다. 

갈색의 굽이 들어간 가죽 구두를 신고 현관문을 열려는 순간, 등 뒤에서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 어제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검지로 코 밑을 문지르며 이를 드러내고 웃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에 숨을 내쉬며 아직도 머리 속을 헤집고 다니던 쓸데없는 걱정을 날렸다. 


형은 평소와 같다. 

변한 것은 없다. 

이상할 것도 없다. 


안심하며 웃고 “다녀오겠다!” 하고 말하며 머리카락을 튕겼다. 

오소마츠 형은 웃으며 배를 잡고 “아, 갈비뼈 부러진다아~ 잘 다녀와~” 하고 손을 흔들었다. 




항상 카라마츠 걸-즈를 기다리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유속이 느린 강물은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면서 다리에 기대고 있는 내 얼굴을 거울처럼 비추었다. 

선글라스를 벗은 얼굴이 강물에 비추고, 그 얼굴을 보니 어젯밤 보았던 오소마츠 형의 괴로운 것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오소마츠 형은 결코 울지 않았다. 

집을 나오기 전 느꼈던 불안이 다시 바닥에서 끈질기게 몸을 타고 올라왔다. 


대체 나는 무엇을 불안해하고 있는 건가? 


자문하면 할수록 오소마츠 형의 얼굴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오늘은 조금 일찍 돌아가기로 했다. 


미안하다, 카라마츠 걸-즈.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kitty-. 나는 내일도 이 곳에서 걸-즈를 기다리고 있겠다. 








4.


매달린 오소마츠 형의 몸을 끌어내려 이미 차갑게 식은 몸을 안고 쵸로마츠가 울부짖었다. 

아무리 불러도 오소마츠 형은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럼, 차라리 헤어지기 전에… 죽는 게 편할까…”



어제, 내가 듣지 못했던.. 아니, 들으려 하지 않았던 오소마츠 형의 말을 떠올렸다. 



왜 나는 오소마츠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왜 더 빨리 오소마츠 형의 슬픔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왜 나는 오소마츠 형의 외로움을 외면했을까,

왜 오소마츠 형의 부탁을 거절했을까,

나는, 왜…



눈물이 시야를 가려 제대로 오소마츠 형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안녕-“ 이라 말하지 못한 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이별을 고했다. 





* 24화의 독립 소동(?)으로 오소마츠를 제외한 동생들은 현실을 깨달았다고 생각합니다. 

  오소마츠만이 남겨져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외톨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 당분간은 야근이 지속될 것 같아서 글이 올라오는 것이 뜸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도 평일에 조금씩 쓰고 있으니, 글이 올라오지 않는 주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5편입니다... 늦어졌네요. 저는 대체 언제쯤 야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 저번편에 이어 이번엔 이치마츠와 만나는 이야기입니다ㅎㅎ


* 소설에 나오는 요괴나 신에 대한 내용은 전부 제 오리지날 설정입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를 땅에 질질 끌고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고양이를 따라 붉은 선혈 방울이 땅을 적셨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으로 보일 정도로 고양이는 심하게 부상당해 가는 숨을 내쉬고 있었다. 

떨리는 발을 마지막으로 옮긴 고양이가 결국 바닥에 쓰러졌다.

온 몸을 떨며 얕은 숨을 내쉬는 고양이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서서히 몸을 잠식해가는 죽음의 기운을 받아들인 고양이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온몸에 힘을 뺐다. 

고요히 정적 속에 서서히 먹혀 들어가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고양이의 귀를 간질였다.


“어라라~, 이런 곳에 쓰러져 있으면 안 된다고~?”


맑은 목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지더니 고양이의 몸은 공중에 들려 따뜻한 온기에 감싸였다. 

조금 전까지 호시탐탐 고양이가 마지막 숨을 내쉬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죽음’의 그림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지친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따뜻한 체온과 상냥한 향기에 한결 숨이 편안해진 고양이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2.


코를 타고 올라와 미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에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자 심한 부상을 입었던 것이 거짓인 것처럼 가벼운 움직임에 놀라 팔을 들어 흔들어 보았다. 


“…어?”

눈 앞에 보이는 인간의 손에 놀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내 몸을 살폈다. 

인간의 손과 인간의 다리가 달려있는 몸에 말을 잃었다. 

더듬더듬 머리를 만져보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머리카락 사이에 쫑긋하니 짐승의 귀가 솟아나 있었다. 

인간의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낯선 감각 가운데 익숙한 감각을 쫓아 귀를 움직여 보았다. 

머리 위에 솟은 짐승의 귀는 무리 없이 앞뒤로 움직였다. 

귀와 함께 꼬리를 흔들어보니, 엉덩이 부분에 나와있는 두 갈래의 꼬리가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너무나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멍청히 확인하고 있자, 스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라 꼬리와 귀가 곤두섰다.


“아, 미안. 놀랐어?”

황금빛 귀와 꼬리를 흔들며 붉은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들어오며 물었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일단 고개를 저었다. 

싱긋- 미소를 짓고 다가온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쟁반을 바닥에 내려 놓고 내가 누워있는 이부자리 곁에 앉았다.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어?”

남자의 질문에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몸은 내가 가장 좋은 상태일 때보다 더 편하게 거동할 수 있었다. 

잠시 나를 바라보며 내 상태를 확인한 남자가 쟁반에 놓여 있던 그릇을 내게 내밀었다.


“자, 먹어. 배 고프지?”

얼떨결에 남자가 건넨 그릇을 받아 들자, 남자가 내게 숟가락을 건넸다. 

혼란에 휩싸인 머리로는 도저히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어수선한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는 가운데 숟가락을 들어 그릇에 담긴 죽을 떠 입으로 가져갔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낯선 이가 주는 음식 따위 먹을 리 없는데, 꿈 속에서 닿았던 온기가 몸에 남아 내 경계심을 무너뜨렸다. 

적당히 간이 되고 잘게 다진 고기가 들어간 죽은 내 입에 꼭 맞았다. 

한 숟가락 입에 집어넣자마자 머리 속을 파고드는 허기에 그릇 안에 담긴 죽을 싹싹 비워 먹었다. 

빈 그릇을 건네 받은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다 먹었구나, 착하네-“

자애로운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남자가 쟁반을 한 켠에 치우고 내게 물었다.


“몸은 괜찮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안심했는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고개를 기울이고 물었다.


“말은 못해? 네코마타니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 아니. 할, 수 있어요…”

남자의 물음에 성급히 대답했다. 

고양이의 몸이었을 때와는 다른 감각으로 목이 울렸다. 

너무나 강한 위화감에 인상을 찌푸리자 남자가 눈썹을 살짝 내리고 말했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이상하지? 신통력을 나눠줬더니 인간형으로 변해서.. 그 몸에 익숙해지면 원할 때는 언제든 다시 고양이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물론 연습을 좀 해야겠지만.”

남자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어 남자를 응시했다. 

드럽게 나를 향한 눈빛은 뭐든 물어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저기,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음, 그러니까- 내가 산책이나 할까 하고 신사를 나왔는데, 네가 신사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쓰러져있더라고. 그래서 일단 신사로 데리고 들어와서 상처도 치료해줄 겸 신통력을 나눠준 거야.”

‘신통력’이라는 단어에 놀라 멍청히 “그럼 토지, 신..?” 하고 중얼거리자 남자가 이를 드러내고 검지로 코 밑을 문지르며 쑥쓰러워했다.


“토지신으로는 안 보이지?”

‘신’치고는 친근한 태도에 놀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에 놀라 남자에게 재빨리 변명했다. 


“아니, 그, 그렇게 안 보인다는 게 아니라..”

“별로 변명 안 해도 괜찮아~. 근데 너야말로 대체 어쩌다 그렇게 다친 거야?”

줄곧 정좌하고 있던 무릎을 풀고 편히 앉아 손을 뒤에 짚고 몸을 기울인 남자가 물었다. 

불과 잠시 전까지 온몸을 관통하고 있던 끔찍한 고통의 기억에 고개를 숙이고 남자의 질문에 대답했다.


“떠돌아 다니다가, 지네요괴를 만나서.. 어떻게든 도망은 쳤지만…”

“흐음~ 그래… 그럼 말이야. 머물 곳이 없다면 여기서 같이 살지 않을래?”

“헷?”

남자의 말에 놀라 고개를 번쩍 들자 다정하게 웃으며 남자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상냥한 손길에 절로 목이 울렸다. 

내 의지에 따르지 않고 절로 울리는 골골 소리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쿡- 하고 따뜻하게 미소 지은 남자가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소마츠야. 오소마츠 형이라고 불러줘~”

“아, 저는 이치마츠, 라고 합니다.”

“응, 이치마츠. 앞으로 잘 부탁해.”

남자의 따뜻한 미소에 이유도 없이 눈물이 떠져 나왔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을 멈추고 내 눈물을 닦아주며 오소마츠 형이 기쁘게 웃었다.





강한 바람과 함께 신사 주변의 나무들이 시끄럽게 흔들렸다. 

여러 그루의 나무가 한꺼번에 흔들리며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에 놀라 귀를 늘어뜨리고 오소마츠 형의 옷자락을 쥐었다. 

피식- 웃은 오소마츠 형이 나를 안아 올려 품에 안고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등은 두드려주었다. 

기분 좋게 통통하고 울리는 토닥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오소마츠 형에게 매달렸다. 


“오소마츠..? 그 녀석은?”


오소마츠 형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와중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오소마츠 형이나 쵸로마츠 형의 목소리보다 훨씬 낮고 걸걸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검고 커다란 날개를 등에 접고 나를 보고 있는 남자는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얼마 전에 주웠어. 새로 우리 식구가 된 이치마츠야~”

“오소마츠의 애는 아닌.. 거지?”

멍청한 얼굴로 묻는 남자에게 쵸로마츠 형이 바로 끼어들어 외쳤다.


“그럴 리 있겠냐?!!!”

쵸로마츠 형의 외침에 머쓱해졌는지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나막신을 울리며 오소마츠 형에게 다가온 남자가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오소마츠랑 닮은 녀석이네.”

“우응~ 나보다는 너랑 더 많이 닮지 않았어?”

“그런가? 잘 모르겠다만…”

오소마츠 형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뻗었다. 

오소마츠 형보다 더 큰 손은 검은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서서히 내 얼굴로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긴장시키고 경계하며 뻗어온 손을 강하게 내리쳤다.


“윽!?”

“아, 이런…”

붉게 발톱 자국이 난 손을 감싼 남자가 눈을 찌푸렸다. 

오소마츠 형은 난처해하는 얼굴로 한숨지으며 몸을 돌려 남자와 거리를 두었다. 

쵸로마츠 형이 남자에게 다가가 손을 보며 혀를 찼다. 

굳은 얼굴의 쵸로마츠 형과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몰려오는 불안과 두려움에 꼬리가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절로 귀가 뒤로 접혔다. 

오소마츠 형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고개를 들어 오소마츠 형을 올려다보았다. 

말 없이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는 오소마츠 형과 눈을 마주하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으- 죄, 죄송해요..”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눈을 감자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후- 하고 오소마츠 형의 한숨 소리가 들려 어깨가 튀었다.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오소마츠 형의 옷자락을 더 강하게 꽉 붙잡고 몸을 밀착하자 오소마츠 형의 손이 천천히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온유한 눈빛에 오소마츠 형이 화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자 눈물이 멈췄다. 

잔잔한 미소를 띠우고 내 머리에 쪽- 하고 입맞춤을 떨어뜨린 오소마츠 형은 내가 놀라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분하게 속삭였다.


“저 녀석은 텐구 카라마츠야- 나쁜 녀석이 아니니까, 너를 해치거나 하지 않아.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치마츠우~”

토닥토닥 등을 천천히 두드리며 속삭이는 오소마츠 형의 평온한 목소리에 서서히 긴장이 풀렸다. 

규칙적인 토닥임에 오소마츠 형의 온기에 몸을 맡기고 몰려오는 졸음에 눈을 감았다.








3.


“잠들었나?”

할퀸 자국이 남은 손등을 문지르며 카라마츠가 다가왔다. 

편안한 얼굴로 잠든 이치마츠의 얼굴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가 살며시 이치마츠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자, 잠든 이치마츠의 목에서 골골- 하고 소리가 울렸다. 

가만히 평온한 얼굴로 오소마츠의 품에서 잠들어 있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잔잔히 미소를 띄우고 응시했다.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발견한 것은 쵸로마츠 때와 마찬가지로 우연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얕은 숨을 내쉬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네코마타를 데려와 치료를 해준 것은 오소마츠의 변덕이었다. 

오소마츠의 신통력을 받은 네코마타가 오소마츠의 기억에 남아있는 얼굴을 했을 때는 과연 오소마츠여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쵸로마츠와 카라마츠와 닮은 얼굴. 

아직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 완벽하게 똑같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린 네코마타의 얼굴은 분명 카라마츠의 형제임이 분명했다. 




‘이건 대체, 무슨 인연인건지…’


홀로 중얼거리며 네코마타를 간호하는 오소마츠를 쵸로마츠가 기이하다는 듯이 관찰했다. 

오소마츠가 아무리 요괴친화적인 ‘신’이라도 ‘신’이 직접 ‘요괴’를 간병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어린 네코마타가 정신을 찾고 그렇게 심한 부상을 입게 된 경위를 말했을 때, 오소마츠는 차오르는 ‘연민’에 눈 앞의 어린 네코마타를 거두기로 결정했다. 

오소마츠의 제안에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작은 아이가 마치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보여서 더 애틋해지는 오소마츠였다. 

오소마츠의 신통력 덕분에 이치마츠는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완전히 인간의 몸에도 익숙해져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오소마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오소마츠 형” 하고 불러댔다. 

쫄래쫄래 오소마츠의 뒤꽁무니를 쫓아 다니고, 행복하단 얼굴로 오소마츠의 품에 안겨오는 것이 귀여워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마치 제 아이처럼 예뻐하고 귀여워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귀엽구나, 네코마타는…”

이치마츠를 쓰다듬는 손길을 멈추지 않고 작게 중얼거리는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첫만남부터 손등에 발톱자국을 얻고도 카라마츠가 이치마츠를 싫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이치마츠도 갑자기 다가온 카라마츠의 손에 당황한 것일 뿐, 싫어서 카라마츠를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한 때는 형제였던 두 사람의 연에 오소마츠는 그저 기뻤다. 

카라마츠와 쵸로마츠 뿐만 아니라 카라마츠의 또 다른 형제인 이치마츠까지 자신의 곁에 있을 수 있게 해 준 하늘에 감사했다. 




‘부부냐?!’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작은 이치마츠를 품에 안은 오소마츠와 그 옆에서 부드럽게 오소마츠와 이치마츠를 바라보고 있는 카라마츠가 자아내는 분위기에서 한 발자국 멀리 떨어진 쵸로마츠가 속으로 태클을 걸었다. 

쵸로마츠도 갑자기라곤 하나 모처럼 생긴 ‘동생’이 귀엽기는 오소마츠와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카라마츠도 마찬가지. 하지만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와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공기가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를 감싸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눈꼴시운 광경에 쯧- 하고 짜증스런 얼굴로 혀를 찬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런데, 꽤 오랜만에 왔네, 카라마츠.”

“아, 조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사항이 있어서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거의 매일 꼬박꼬박 얼굴을 비추던 카라마츠가 이치마츠가 이 신사에 머물게 되고 완전히 오소마츠를 따르게 되기까지 카라마츠는 찾아오지 않았다. 

카라마츠의 말에 이치마츠의 등을 통통 두드려주던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급한 일이라니 뭔데?”

“아카츠카 마을의 오니(鬼)족에서 연락이 왔었다. 아무래도 꽤 강한 지네 요괴가 아카츠카 마을을 해치고 이쪽으로 향했다는 전언이 와서 마을 경비를 강화하고 경계 체계를 다시 세우느라 바빴다.”

“에~ 그런 일이라면 나한테도 좀 알려달라고~”

오소마츠가 불만스런 얼굴로 꼬리를 휘두르자 카라마츠가 면목없다며 고개를 숙이고 “바빠서 그럴 틈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말하려고 찾아온 거다.” 하고 변명을 붙였다. 

볼을 부풀리고 뚱하게 카라마츠를 쳐다보던 오소마츠가 푹- 한숨을 쉬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뭐, 네가 마을을 지키는 거에는 불만 없지만 말이야… 일단은 그런 건 나한테도 우선적으로 알려 줘.”

“아아, 미안하다. 주의하지.”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미안한 듯 눈썹을 내리고 쓰게 웃으며 사과했다. 

순순히 카라마츠의 사과를 받은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아카츠카 마을에 갔다 오라고 하자, 쵸로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츠카 마을에 가서 오니들에게 지네 요괴의 정보를 자세히 알아오라는 오소마츠의 뜻을 파악한 쵸로마츠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색색 숨을 내쉬며 품에 안겨있는 따뜻한 온기를 꼭 껴안은 오소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4.


“캬앗!!!!”

“우왓!!”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에게 할퀸 손을 거두었다. 

이치마츠와 처음 만난 이후, 다시 매일 신사에 들리며 이치마츠와 친해지려 노력하는 카라마츠였지만 이치마츠는 여전히 카라마츠를 강박적으로 거부했다. 

오늘도 조심스레 뻗은 손등엔 붉은 발톱 자국이 남고 말았다. 

요괴의 빠른 치유력으로 발톱 자국은 남지 않았지만, 벌써 몇 번째의 상처인지 이젠 셀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아, 심심해-“

드르륵- 하고 오소마츠가 자신이 머물고 있는 기와집의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귀와 꼬리의 털을 곤두세우고 카라마츠를 위협하고 있던 이치마츠가 재빨리 오소마츠에게 달려갔다.


“오?”

자신에게 달려온 이치마츠를 보자마자 싱긋 웃으며 이치마츠를 안아 든 오소마츠가 그제야 카라마츠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카라마츠~ 또야?”

떡하니 손등을 문지르고 있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카라마츠가 쓰게 웃으며 “하하..” 하고 마른 웃음을 지었다.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와 친해지려고 노력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이치마츠는 유독 카라마츠를 경계하며 그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놔두면 절로 친해지겠거니 했던 오소마츠도 보다못해 이치마츠에게 왜 카라마츠를 싫어하냐고 물었지만, 이치마츠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형제였는데 말이야…’

오소마츠의 품에 안긴 채, 카라마츠를 보며 으르렁거리고 있는 이치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치마츠와 같이 전생에 카라마츠와 형제였던 쵸로마츠는 카라마츠와 친하게 지내고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도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왜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잘 지내지 못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치마츠의 틈을 주지 않는 거부에 울상이 된 카라마츠가 이치마츠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에 무심코 픽- 하고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따라오는 카라마츠의 따가운 눈빛에 고개를 돌렸다. 


“아, 쵸로마츠.”

구세주와 같이 좋은 때를 맞춰 돌아온 쵸로마츠에게 속으로 감사 인사를 보내며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무겁게 한숨을 쉬며 오소마츠에게 다가온 쵸로마츠가 진지한 표정으로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카라마츠, 혹시 오니들에게서 뭐라고 전언이 왔는지 알 수 있을까?”

“전언자체는 꽤 짧았다. 위험한 지네 요괴가 나타났으며 여우골로 향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정도였다.”

“그런가…”

인상을 찡그린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왜?” 하고 묻자, 쵸로마츠가 아카츠카 마을의 오니들에게 들은 정보들을 간결하게 정리해 말했다.


“아무래도 아카츠카 마을에서 큰 부상을 입고 이곳으로 오는 와중에 만나는 마을마다 덮치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아카츠카 마을하고 우리 마을은 제법 큰 마을이고 토지신과 그 마을을 지키는 요괴무리가 있으니까 다행이지만, 그 밖에 작은 마을들은 꽤 손해가 큰 모양이야. 요괴고 인간이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서 몸집도 불린 것 같고. 이 마을에 온다면 꽤 위험할지도.”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얼굴이 굳었다. 

오소마츠가 나직이 카라마츠를 부르자 카라마츠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며 “마을의 경계를 더 강화하겠다.” 하고 말하며 신사를 떠났다. 

오소마츠도 신사와 마을의 결계를 더 강화하기 위해 산의 정기를 모으며, 제 품 안에 꽉 안겨있는 이치마츠의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 이치마츠. 무서워할 필요 없어.”

이치마츠의 접힌 귀가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을 본 오소마츠가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우골로 향하고 있는 지네 요괴는 십중팔구 이치마츠를 공격한 녀석이 분명했다. 

‘지네 요괴’란 단어에 바로 꼬리를 말고 오소마츠의 품에 얼굴을 묻은 이치마츠를 달래며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분간은 답답해도 이 신사에서 나가면 안 된다?”

오소마츠의 말에 이치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의 불안한 얼굴에 오소마츠가 “착하네- 우리 이치마츄는~” 하고 상냥하게 속삭이며 이치마츠의 머리에 입술을 떨어뜨렸다. 








5.


강화된 결계와 삼엄해진 카라스 텐구들의 경계에 쵸로마츠가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커다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오소마츠의 결계는 그 강도를 더욱 견고히 하여 개미 한 마리 들어올 수 없도록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카라마츠의 텐구들도 한 시간 간격을 두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을을 순찰하고 있었다. 

천상에서 내려온 사자의 편지를 들고 오소마츠에게 찾아가는 쵸로마츠가 혀를 찼다.


‘하필이면 이럴 때.’

천상에서 내려온 편지는 대국주가 오소마츠를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계와 텐구들의 경계로 큰 걱정은 없지만, 오소마츠가 이 땅을 떠난다면 결계도 그 영향을 받아 약해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편지를 보낸 상대가 나빴다. 


신들의 장(長), 대국주. 

오소마츠는 그 오랜 인연으로 스스럼 없이 대하고 있다지만, 쵸로마츠와 같은 일개 요괴나 이 땅을 다스리는 토지신들이 보기에 대국주는 감히 말조차 붙일 수 없는 높은 존재와 같았다. 

오소마츠의 방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벌컥 열어젖힌 쵸로마츠가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가 오소마츠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쵸로마츠의 표정을 보아 급한 용건임을 짐작한 오소마츠가 잔말 없이 편지를 받아 읽어 내려갔다. 


“갈 거야?”

편지를 다 읽고 도로 접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물었다. 오소마츠가 가느다란 미소를 입가에 매달고 고개를 들었다.


“가야지. 할아범도 아마 지금 우리 사정을 알고 있을 텐데도 이렇게 편지를 보내 부를 정도로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고.”

항상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거울로 지상을 내려다보는 대국주가 오소마츠와 이 마을이 처한 사정을 모를 리는 없었다. 

여우불로 편지를 불태운 오소마츠가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자고 있는 이치마츠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멍한 얼굴로 반쯤 눈을 뜬 이치마츠를 보며 빙긋 웃은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치마츄~, 형아들이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와야 하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신사에서 나가면 안 된다?”

“..우응…”

졸린 눈을 비비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이치마츠가 다시 몸을 둥글게 말고 눈을 감았다. 

도로 잠의 세계로 빠져든 이치마츠에게 어깨에 얼치고 있던 겉옷을 덮어준 오소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별다른 채비도 없이, 쵸로마츠와 함께 오소마츠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주인 없는 신사에는 순식간에 정적이 휩싸였다.





“냐-“

작게 들려오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이치마츠의 귀가 쫑긋거렸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이치마츠가 귀를 움직이며 주위를 살폈다.


“냐아-“

다시 가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이치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꺼질 듯 작게 들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급히 발을 굴려 기와집을 나와 신사 마당에 도착한 이치마츠가 다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냐-“

신사의 입구, 붉은 토리이 기둥에 몸을 숨기고 있는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이치마츠를 불렀다. 

본래 하얀 빛을 띠고 있어야 할 고양이의 털빛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심한 부상을 입은 것 같은 고양이는 다시 한번 가냘프게 이치마츠를 부르곤 신사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잠결에 들은 오소마츠의 말을 떠올리며 망설이는 이치마츠를 다시 한 번 고양이가 애타게 불렀다. 

동족의 도와달라는 간절한 요청을 무시할 수 없는 상냥한 이치마츠가 두 눈을 꼭 감고 결심을 다지며 토리이를 지나 고양이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빨리 붙잡아 신사로 데려가면 반드시 오소마츠가 치료를 해 줄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고양이를 따라간 이치마츠는 어느새 오소마츠의 결계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크히히히힛, 겨우 잡았다.”

고양이를 따라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검은 그림자에 이치마츠가 걸음을 멈췄다. 

귀에 익은 차가운 목소리와 의식하지 않아도 풀풀 풍기는 짙은 비린내에 숨을 삼키고 이치마츠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안녕~? 고양아~? 잘도 숨어 있었구나? 이런 골치 아픈 결계 속에.”

이치마츠를 이끌었던 하얀 고양이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곧바로 온 몸의 구멍에서 검은 피를 흘리는 고양이의 몸에서 검은 그림자가 빠져 나와 지네의 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신을 유인하기 위하여 고양이의 시체를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은 이치마츠가 덜덜 떨며 뒷걸음질쳤다.


“어이쿠~ 어딜 가려고?”

긴 꼬리로 이치마츠의 퇴로를 막은 지네가 징그러울 정도로 얼굴을 구기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수 많은 다리가 다다닥 거리며 땅을 찼다. 서서히 다가오는 거대한 지네의 발을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이치마츠가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두려움에 땅에 달라붙은 발은 움직이지 않았고, 공포로 물든 머리 속은 도망치라는 명령조차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되어 있었다. 

독을 머금은 날카로운 지네의 발이 날아오자 이치마츠가 두 눈을 꼭 감았다.


“이치마츠!!!!!”

카라마츠의 목소리와 함께 이치마츠가 예감하고 있던 고통이 빗나갔다. 

눈물 젖은 두 눈을 뜨자 커다란 카라마츠의 날개가 이치마츠를 감싸고 있었다. 

시야 가득 채운 검은 날개에 이치마츠가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의 시선이 마주쳤다. 얼굴을 풀고 온화하게 웃으며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다친 곳은 없나?”

얼떨결에 이치마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라마츠가 작게 “다행이다.” 하고 속삭이며 거친 숨을 내쉬며 쓰러졌다. 

항상 윤기가 흐르며 강하게 하늘을 가르며 퍼덕였던 카라마츠의 날개가 서서히 부식되어 바스라졌다. 

신음하며 쓰러진 카라마츠의 몸이 서서히 식어가는 것에 이치마츠가 눈물을 흘리며 카라마츠의 몸을 흔들었다. 


눈 좀 떠보라고, 정신 차리라고 애타게 외쳐도 카라마츠는 제대로 된 대답도 돌려주지 못한 채, 의식을 잃어갔다. 



“강한 텐구라고 들었는데, 별거 아니였네.”

핫- 하고 콧웃음치며 꼬리를 치켜든 지네가 이치마츠에게 다가갔다. 

피에 물든 지네의 다리에서 자주빛의 독 한 방울이 떨어져 바닥을 부식시켰다. 

자신을 감싸고 지네의 독에 당한 것을 겨우 알아챈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감싸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두려움은 이미 저 멀리로 사라졌다. 온 몸의 털을 세우고 위협하는 이치마츠를 지네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내려다보았다. 


날카롭게 웃으며 지네가 다시 독을 머금은 다리를 휘두르려는 순간, 강한 영압을 담은 낮은 목소리가 공기를 꿰뚫고 지네를 억압했다.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자 표표한 얼굴로 지네를 바라보고 있는 오소마츠가 여우불을 손에 피우고 떠 있었다.



“우리 얘들을 괴롭히면 안 되잖아~?”

평소와 같은 장난스러운 말투에 담긴 목소리는 지극히 낮고 침착했다. 오소마츠가 와 주었다는 안도감에 피로감이 이치마츠의 몸을 덮쳤다. 풀썩 힘을 잃고 쓰러진 이치마츠의 귓가에 지네 요괴의 비명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6.


“우와…”


재도 남지 않은 발화 현장을 보며 쵸로마츠가 멍청히 목소리를 내뱉었다. 

산채로 여우불에 구워진 지네는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흔적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소멸했다. 

까맣게 그을름을 남긴 땅과 나무 줄기만이 그 곳에 뭔가가 타올랐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서둘러 천상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이치마츠가 신사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오소마츠는 바로 신사를 뛰쳐나가 마을을 둘러보았다. 

천리안을 가지고 있는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쵸로마츠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에게로 날아간 오소마츠는 눈 앞에 펼쳐진 참상에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눈 앞에 둔 쵸로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신’은 ‘신’이구나…”

작은 마을들을 습격해 힘을 기른 지네는 쵸로마츠나 카라마츠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는 상태였다. 

카라마츠의 텐구 무리가 한꺼번에 덤벼도 처리할 수 있을까 말까한 상대를 오소마츠는 간단하게 불태워 버렸다. 

‘신’의 힘에 감탄사를 뱉으며 주변 상황을 확인한 쵸로마츠가 다시 신사로 향했다.





“좀 어때?”

카라마츠와 이치마츠가 누워있는 이불 머리맡에 앉아있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다가갔다. 

어두운 얼굴로 슬쩍 쵸로마츠를 쳐다본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감싸준 덕분에 별다른 상처는 없어. 카라마츠는 지네 독에 당해서 날개가 좀 상했지만, 신통력으로 치료했고. 아직 몸에 독이 남아있긴 하지만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거야.”

부드럽게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본 쵸로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딱히 오소마츠의 잘못이 아닌데도 모든 것이 제 죄인양 괴로워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쵸로마츠는 그저 안타까웠다. 


결계도 강화했고, 카라마츠의 경계도 있었다. 

지네가 고양이로 이치마츠를 꿸 거라는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천상의 부름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오히려 반나절만에 모든 일을 처리하고 내려온 오소마츠가 대단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부상도, 이치마츠의 일도 모두 제 탓이라고 생각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항상 천상에서 유유자적한 오소마츠의 모습만을 보아왔던 쵸로마츠는 이럴 때 어떻게 오소마츠를 위로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툭 하고 오소마츠의 어깨를 두드리며 “너무 무리하지 마, 오소마츠 형.” 이라고 위로하는 것이 쵸로마츠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텐구들에게 현 상황을 전하기 위해 방을 나선 쵸로마츠를 배웅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숙였다.








7.


또, 카라마츠를 잃을 뻔했다.


“하아~~”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조금만 방심하면 무심코 울 것만 같았다. 



겨우 만났는데. 

쵸로마츠도, 이치마츠도 만나게 되었는데. 

귀여운 이치마츠가 나를 따라주었는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질 뻔했다는 사실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할아범의 부름 따위 무시하는게 좋았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왜 나는 이 땅을 떠나버린 거지? 

왜 이치마츠를 홀로 남겨둔 거지? 


후회가 온 몸을 감싸안고 강하게 조여왔다. 

하마터면 이 행복을 잃을 뻔했다. 


모두 내 탓이다. 

전부 내가 잘못한 것이다.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내겐 눈물을 흘릴 자격도 남아있지 않았다. 


뭐가, 토지신인가. 내 땅에 발을 들인 요괴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를 상처입혔으면서. 


숨을 내쉬는 것도 고통스러워 몸을 낮게 숙이자 제 멋대로 몸이 떨렸다. 

우우- 하고 말이 되지 못한 신음이 절로 터져나왔다. 참고 있는데도 새어나오는 울분이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에게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오소마츠?”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귀를 움찔였기만 고개를 들 용기는 나지 않았다. 

나는 뭐라 비난을 들을까. 닥쳐올 카라마츠의 비난이 두려워 풍성한 꼬리로 몸을 감싸안고 떨림을 숨겼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오소마츠.”

평소와 달리 힘을 잃은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결국 참고 있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 앞의 다다미 바닥이 순식간에 뿌옇게 흐려졌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터져나오려는 신음을 입을 악다물고 삼켰다. 


“오소마츠, 얼굴을 들어줘. 부탁이다…”

떨고 있는 머리에 부드럽게 손을 올려놓고 속삭이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카라마츠와 얼굴을 마주한 순간, 강한 팔에 안겨 포근한 온기에 감싸였다.


“오소마츠, 울지 말아줘.”

상냥한 카라마츠의 음성이 귀를 울렸다. 

내 걱정과 달리 화내지 않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참고 있던 신음까지 터져버리고 말았다.


“읏, 후으…. 카, 카라마츠으… 무, 사해서 다행이다아…”

울음을 터뜨리며 카라마츠의 등에 팔을 둘렀다. 

독에 당해 차가워져가던 신체가 다시 온기를 되찿은 것에 진심으로 안도했다. 

나를 감싸안은 팔에 더 힘을 주고 강하게 껴안은 카라마츠가 한숨과 함께 속삭였다.


“아아, 오소마츠 덕분이다.”

“…”


아냐, 카라마츠. 나 때문에 네가 다치고 말았어.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속내를 삼키고 눈을 뜨자, 항상 활력이 넘치던 카라마츠의 날개가 너덜너덜해져 축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정말로 나는 카라마츠를 잃을 뻔 했다는 사실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나는 대체 뭐라고 너에게 사과하면 좋을까. 

제대로 된 말도 찾지 못하고 나는 그저 “미안해, 미안해. 카라마츠…” 하고 몇 번이고 사과의 말을 반복했다.


“아니야, 오소마츠. 네 잘못이 아니다. 그 무엇 하나도 네 탓이 아니야.”

나를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내 얼굴을 마주한 카라마츠가 뺨을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웃었다. 


“그, 그치만…”

“오소마츠,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사과했던 만큼 반복해서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며 나를 껴안은 카라마츠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히려 오소마츠가 없었다면 나와 이치마츠는 이렇게 무사할 수 없었다. 고마워, 오소마츠. 정말로 감사하고 있다.”

카라마츠의 진심어린 말에 눈을 감고 카라마츠의 등에 팔을 둘렀다.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죄책감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몇 번이고 되새기며 카라마츠의 온기를 잃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한참이 지나 겨우 울음이 그치고 나서야, 카라마츠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 웃어줄 수 있었다.








8.


카라마츠가 다쳤다고 하면 또 시끄럽게 호들갑을 떨며 오소마츠 형을 욕할 텐구들임을 알기에, 카라마츠의 측근인 치비타에게만 카라마츠의 상태를 알렸다. 

굳은 얼굴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치비타에게 곧 나을 것이라고 전한 뒤, 신사로 발을 돌렸다. 

아직도 죄책감에 눌려 무너지고 있지는 않을까, 오소마츠 형이 걱정되어 서둘러 신사로 돌아오자마자 카라마츠와 이치마츠가 있을 방으로 향했다.



“아니야, 오소마츠. 네 잘못이 아니다. 그 무엇 하나도 네 탓이 아니야.”

“그, 그치만…”

“오소마츠, 네 잘못이 아니야.”



얇은 장지문 너머로 들려오는 카라마츠와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나는 할 수 없었던 위로를 카라마츠가 내 몫까지 오소마츠 형에게 전하고 있었다. 

한결 누그러진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겨우 안심해 방에서 몸을 돌렸다. 

카라마츠가 깨어났으니 뭔가 먹을 것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오소마츠 형이 알려주었던 요리법을 떠올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쵸로마츠…”

죽을 들고 방에 들어가자 오소마츠 형이 지친 얼굴로 웃었다. 

지쳐 보이긴 했지만, 더 이상 괴로워보이지 않는 표정에 다시 안도하며 죽이 든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먹을 수 있겠냐 물으며 그릇을 내밀자 카라마츠가 씩씩하게 웃으며 그릇을 받아 들었다. 

부상을 입었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그릇을 비운 카라마츠가 천천히 날개를 퍼덕였다. 

아까보다는 나아보이는 상태에 오소마츠 형이 작게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약 반나절이라는 시간 동안 신사에 머물며 오소마츠 형의 신통력과 산의 정기를 받은 카라마츠는 체내에 남아있던 지네의 독을 완벽하게 이겨내고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텐구들을 달래기위해 서둘러 청산으로 향했다. 

아직도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는 오소마츠 형에게 다정히 웃으며 내일 또 오겠다는 말을 하고 날아오른 카라마츠를 오소마츠 형이 배웅하고 돌아오자 이치마츠가 눈을 뜨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쌍할 정도로 축 늘어진 귀와 꼬리를 안고 이치마츠가 오소마츠 형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항상 오소마츠 형에게 달려들었으면서, 이불에 앉아 오소마츠 형과 거리를 두고 뚝뚝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리는 이치마츠와 오소마츠 형이 겹쳐 보였다. 


아아, 왜 모두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저 때가 나빴을 뿐인데. 


작게 혀를 차며 이치마츠에게 다가갔지만, 이치마츠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고개를 들어 방문에 서 있는 오소마츠 형을 쳐다보았다. 

내 눈총에 오소마츠 형이 쓰게 웃으며 다가와 “미안.” 하고 입을 뻥끗뻥끗 움직였다. 

후- 하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오소마츠 형이 이치마츠를 품에 안았다.


“이치마츠으~ 그렇게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형아는 우리 이치마츄가 무사해서 무~지 기뻐.”

이치마츠의 머리와 이마에 입술을 떨어뜨리며 맑은 눈망울에 맺힌 눈물을 닦아준 오소마츠 형이 속삭였다. 

겨우 말을 멈추고 고개를 든 이치마츠를 오소마츠 형이 정겨이 바라보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지키려고 했지? 우리 대견한 이치마츄~~ 대단하다~”

이치마츠의 머리에 얼굴을 부비며 오소마츠 형이 이치마츠를 어루만졌다. 

어느새 울음을 그친 이치마츠가 조용히 오소마츠 형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이치마츠의 꼬리가 천천히 살랑이는 것을 보고 조용히 몸을 일으켜 방을 나왔다. 

오소마츠 형이 곁에 있다면 이치마츠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번엔 이치마츠가 먹을 죽을 준비하러 다시 주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9.


“나의 작은 이치마~츠~?”

카라마츠가 두 팔을 벌리고 다가가자 이치마츠가 “캬앗!!” 하고 털을 세우고 위협했다. 

카라마츠가 주춤하고 발을 멈추자 이치마츠의 털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서로를 응시하며 카라마츠와 이치마츠 사이에 묘한 침묵이 맴돌았다. 

슬금슬금 발을 옮겨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다가갔다. 

인상을 쓰고 카라마츠의 행동을 주시하는 이치마츠는 딱히 공격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심스레 이치마츠에게 뻗은 카라마츠의 손이 무사히 이치마츠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잔뜩 인상을 쓰고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공격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 

자신을 지켜준 것에 대한 보답인걸까 턱을 괴고 보고 생각하며 미묘한 공기를 풍기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라? 이제 친해진 거야?”

토리이에서 내려와 즐겁게 묻는 오소마츠 형에게 이치마츠가 달려왔다. 

땅을 박차고 바로 오소마츠 형의 품에 뛰어든 이치마츠를 오소마츠 형이 가볍게 받았다. 

지네에게 습격을 당하고 나서 이치마츠의 어리광은 확연히 늘어났다. 

오소마츠 형도 이치마츠가 자신을 따르는 것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아니, 오히려 엄청 기뻐보였다. 


헤실헤실 웃으며 품에 안긴 이치마츠를 쓰다듬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소마츠 형과 이치마츠가 풍기는 분위기에 누그러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카라마츠도 완전히 풀어진 얼굴로 오소마츠 형에게 다가갔다.


“캬앗!!!”

“엩?!”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형에게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이치마츠가 온 몸을 부풀리고 카라마츠를 위협했다. 

방금 전까지 순순히 카라마츠의 손을 받아들였으면서 바로 태도를 바꾼 이치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울상을 지었다. 

오소마츠 형도 이치마츠의 태도에 쓰게 웃으며 “아직 친해진 건 아니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이치마츠를 안아든 채 오소마츠 형이 토리이 위로 뛰어 올랐다. 

위로 올라간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며 내게 가까이 다가온 카라마츠가 내 옆에 주저 앉았다.


“대체 뭐가 문제인가…”

눈썹을 늘어뜨리고 한탄하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건가 싶어 절로 한숨이 나왔다. 

카라마츠가 뭔가 알고 있는 건가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해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 형은 2번이나 이치마츠를 구해줬잖아?”

“응? 아, 그렇군. 처음 만났을 때와, 지네 때 말인가?”

“응. 그러니까, 오소마츠 형을 완전히 ‘엄마’처럼 따르는 것 같아.”

“아, 그건 보면 안다.”

“그러니까, 저 녀석은 오소마츠 형이 너무 좋은거야. 나랑 있다가도 오소마츠 형이 보이면 바로 쪼르르 달려가거든.”

“아아…”

“그러니까, 오소마츠 형한테 다가오는 사람은 전부 녀석에겐 적인거지.”

“…헤?”

“카라마츠, 너가 오소마츠 형에게 다가가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이야기야.”

“에엣!?”

황당하단 얼굴로 외친 카라마츠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럴수가…” 하고 한탄하는 카라마츠는 오소마츠 형과 거리를 둔다는 선택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일부러 이치마츠와 친해질 방법을 알려줬는데도 카라마츠는 그 이후로도 오소마츠 형과 가까이 지냈다. 

덕분에 매일 이치마츠에게 위협받고 공격받는 나날이 이어졌다.





“죽인다, 개똥마츠.”

“엩?!”

완전히 성인의 몸이 되어서도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위협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체가 되어 그렇게 따랐던 오소마츠 형과도 조금 거리를 두게 되어도, 이치마츠는 여전히 오소마츠 형의 곁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라는 동생이 생긴 뒤로는 제법 ‘형’으로서 행동하고 철이 든 것 같았지만, 카라마츠에 한해서는 어릴 적과 같은 태도를 취했다. 

덕분에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있을 때는 오소마츠 형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 형을 뒤에 세우고 카라마츠를 위협하고 있는 이치마츠와 억울하단 얼굴로 이치마츠를 바라보고 있는 카라마츠, 그리고 그 셋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둘이서 놀고 있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의 모습을 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에 피식- 웃으며 이치마츠를 말리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엉망진창에 결코 어울리지 않아 보여도 우리는 누가 뭐라해도 끊을 수 없는 ‘가족’이었다.






* 요즘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네요.. 모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원래는 이번주에 2편 이상 올릴 생각이었지만, 야근에게 발목이 잡혔습니다... 당분간은 주 1편 이상은 올리기 힘들 것 같아요...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랜만이에요.. 거의 2주만...허허허...


* 변명을 좀 하자면 저번주와 이번주 모두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바빴습니다... 야근은 무려 11시, 12시까지 하느라 집에 돌아오면 씻고 폭풍잠의 반복...ㅠㅠ


* 내일도 열심히 써서 한 편더 올릴 예정입니다.. 힘낼게요..


* 소설에 나오는 신과 요괴에 관한 부분은 전부 제 오리지날 설정입니다. 일본 신화는 검색을 통해 조금 알아본 정도입니다.


*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교제를 시작한 시점의 이야기 입니다. 시리즈라 각 편의 시간대가 서로 다릅니다ㅎ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꺼져, 개똥마츠.”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험악하게 목소리를 깔고 협박하는 이치마츠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졌다. 

쯧! 하고 소리가 울릴 정도로 혀를 찬 이치마츠가 위협적으로 꼬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자기 영역에 침범을 허락하지 않는 날카로운 태도에 식은땀이 삐질 흘러나왔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물러날 수 없는 처지에 난감했다. 

그대로 신사 입구에서 어정쩡하니 머무른 지 벌써 20분은 지났다. 



“아, 정말- 이치마츠 형, 빨리 와보라니까아~!!”

“이치마츠 형아~!!”

신사 마당에 서 있던 동생들의 부름에 이치마츠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흘겨보곤 몸을 돌려 동생들에게로 다가갔다. 

겨우 이치마츠의 무시무시한 눈빛에서 풀려나 한숨을 내쉬며 몸에 두르고 있던 긴장을 풀었다. 

신사 마당 한 가운데에 모인 동생들은 3척(약 91cm) 정도의 높이로 쌓인 낙옆산을 둘러싸고 뭔가를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동생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며 낙엽 속에서 뭔가를 꺼낸 오소마츠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황금빛 귀와 꼬리가 기분 좋게 흔들렸다.


“카라마츠~!!”

오소마츠와 마찬가지로 손을 들어 답해주자 오소마츠가 활짝 웃었다. 

마치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천진난만한 웃음에 얼굴 가득 미소가 피어났다. 

신사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대체 오소마츠와 동생들이 뭘 하고 있는지 가만히 관찰했다. 

낙엽을 파내고 있던 오소마츠가 뭔가를 생각해 냈는지, 황금색 귀가 쫑긋 하고 움직였다. 

고개를 든 오소마츠가 옆에 서 있던 쵸로마츠를 보며 입을 열었다.


“쵸로~, ‘이거’”

“아, 응.”

오소마츠가 내민 검고 작은 뭉치를 받아 든 쵸로마츠가 망설임 없이 내게로 걸어왔다.


“자, 카라마츠.”

“오오.. 이게 뭔가?”

“군고구마.”

“군고구마?”

새까맣게 탄 검은 물체에 고개를 갸웃하며 받아 들었다. 

뜨끈뜨끈하니 열기를 내뿜고 있는 검은 물체에게서 확 퍼지는 탄내 가운데 묘하게 달콤한 냄새가 묻어 나왔다. 

한 손으로 쥐어질 정도로 작고 검은 물체는 딱딱하지도 않고 약간 물렁거렸다. 

이 검은 물체를 어떻게 하라는 건지 쵸로마츠에게 물으려고 고개를 들자, 저 멀리서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엄~~청 맛있어, 카라마츠!!”

내 손에 들린 것과 같은 검은 물체를 든 오소마츠가 씩- 웃었다. 

곁에 쪼그려 앉은 동생들도 모두 하나같이 검은 물체를 손에 들고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오소마츠가 검은 물체의 껍질을 벗겨냈다. 

검게 탄 껍질이 벗겨지자 노란 속이 드러났다. 

혀로 입술을 핥고 입맛을 다신 오소마츠가 크게 노란 속을 베어 물었다. 


“으이구, 저 바보가.”

나처럼 오소마츠를 바라보고 있던 쵸로마츠가 작게 신음하더니 신사 구석에 놓인 작은 우물로 다가가 물을 떴다. 

쵸로마츠가 물을 뜨자마자 오소마츠가 얼굴을 찡그리고 입을 열어 하후하후- 하고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으아~~ 뜨거~~~!”

“자, 여기 찬물. 그렇게 크게 베어 먹으니까 데이지!”

잔소리를 덧붙이며 오소마츠에게 다가간 쵸로마츠가 방금 전 막 뜬 우물물을 건넸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킨 오소마츠가 신음하며 작은 혀를 내밀었다.


“혀 데어어~~~”

“하여간에. 조심해서 먹어, 오소마츠 형.”

“웅~~”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곤 다시 먹기에 열중했다. 

동생들과 얼굴을 맞대고 모여 뜨거워 입을 열었다 닫으면서도 맛있게 먹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피식 웃고는 다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신’과 그 보좌라는 상하관계와 대조적으로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지극히 친근했다. 

오소마츠가 사고를 치기도 전에 알아차리고 오소마츠를 챙겨주는 쵸로마츠의 모습은 마치 어린 자식을 보는 부모와도 같았다. 

오소마츠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쵸로마츠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한두 해 함께 한 정도로는 형성될 수 없는 그런 편안한 분위기가 둘 사이에서는 흐르고 있었다. 

오소마츠가 처음 이 마을에 토지신으로 내려왔을 때도,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곁에 있었다. 

분명 내가 오소마츠를 알아온 세월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곁에 있었을 터였다.


“뭘 그리 생각해?”

“아! 아니… 아무것도.”

진득하게 나를 내려다보며 묻는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고개를 휘저으며 대답했다. 

질투 같은 치졸한 것은 대장부가 할 것이 아니었다. 

살며시 고개를 들었던 불쾌한 생각을 뽑아내 날려버리고 쵸로마츠에게 미소 지었다.


“이치마츠 말이야..”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와 동생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항상 제 할말은 반드시 하고 마는 쵸로마츠 답지 않게 말 끝을 흐렸다. 

고개를 돌려 쵸로마츠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얼굴로 먹는 일에 집중해있는 오소마츠와 동생들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시야 가득 담겼다.


“혼란스러운 것 같아서..”

“…? 뭐가 말인가?”

“너랑 오소마츠 형이 이제 와서 교제한다는 게.”

“..엣?!”

쵸로마츠가 천천히 내게로 눈을 돌렸다. 푹- 한숨을 내쉬더니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쵸로마츠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당분간 이치마츠가 괴롭혀도 참아.”

“에, 엩?!”

내 황당한 외침에 쵸로마츠가 내 눈을 외면하고 고개를 돌렸다

오늘따라 묘하게 시비가 길어진다 싶었던 이유가 그건가. 

이치마츠는 쥬시마츠나 토도마츠와 다르게 오소마츠에게 처음 발견되었고, 오소마츠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으니, 나는 눈엣가시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젠 그보다 더 심해진다니. 

대체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몰려오는 불안에 등이 오싹했다. 

음침하게 가라앉는 기분을 억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쵸로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쵸로마츠는 언제 오소마츠와 처음 만났나?”

“처음…?”

“아아.”

“어, 그러니까…”

쵸로마츠는 고개를 기울이고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기억을 더듬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쵸로마츠가 입을 열었다.








2.

나랑 오소마츠 형이 처음 만난 건, 오소마츠 형이 이 마을에 토지신으로 내려오기 한 150년 전 정도야. 

보통 요괴들 중에 자기가 어떻게 생을 시작했는지 모르는 녀석들이 있잖아. 

나도 그런 부류였어. 인간이었다가 어느 순간 요괴가 되어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은 전부 사라지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깊은 숲 속에 혼자 서 있더라고. 

그 때 내가 알 수 있던 건 ‘쵸로마츠’라는 내 이름과 내가 ‘도도메키’라는 요괴라는 것 뿐이었어. 

아무튼 그렇게 홀로 태어나서 숲 속에서 지내다가 내가 머무르고 있는 산 속을 지나는 인간들을 놀래 주기 시작했어. 

처음엔 철 없는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인간들이 도망가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짐을 던지고 도망가더라고. 

그래서 그 후로는 자주 산길을 지나는 인간들에게 겁을 주고, 재물을 빼앗았어. 

가끔 인간 마을에 내려가서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그렇게 100년 정도를 살고 나니, 나는 완전히 자만에 빠져서 그만 내가 속해있는 토지신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어. 

내가 머무르고 있는 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제법 큰 영지를 가진 영주가 있었는데, 그 집의 가보를 내가 훔쳤거든. 

근데 알고 보니 그 영주의 가문이 대대로 토지신을 모시는 가문이더라고. 

가보도 토지신에게 하사 받은 거였고. 안 그래도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는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토지신은 노발대발해서 바로 나를 뒤쫓아왔고, 나를 죽이려고 했어. 

나도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지만, 요괴와 신이 상대가 될 리 없잖아? 

이 오른쪽 눈도 그때 다친 거야.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서 이제 정말로 죽겠구나 싶었는데, 그 때 오소마츠 형이 나타났어. 

나와 토지신 사이에 껴들어서 나를 보호하며 토지신을 가로막고는 열심히 나를 변호하더라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난 토지신도 오소마츠 형에 말에 납득한 건지 내게 다시는 그의 토지에 발을 들이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어. 

그 때는 나도 대체 무슨 상황인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몰랐지. 

완전히 멍청한 얼굴로 땅에 주저 앉아 있는 나를 오소마츠 형이 일으키고 신통력으로 상처들을 모두 치료해 줬어. 


아, 이 눈? 

이 눈은 토지신에게 완전히 도려져서 아무리 오소마츠 형이라도 완전히 치료하는 건 무리였다나. 

그 토지신이 오소마츠 형보다 격이 높았거든. 

그렇게 토지신에게 받은 상처도 순식간에 나은 나한테 오소마츠 형이 말하더라고.



“나랑 같이 가자.”


한낱 요괴인 내가 어떻게 ‘신’의 말을 거절할 수 있겠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지. 오소마츠 형은 그대로 내 손을 잡고 천상으로 올라갔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땅에서 발이 떨어지고, 공중에 몸이 붕- 뜨는데 기분 참 이상하더라. 무섭기도 했고. 

오소마츠 형 집은 천상에서는 그렇게 큰 집은 아니었어. 

뭐, 오소마츠 형의 ‘신격’이 그렇게 높은 게 아니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래도 ‘대국주’의 총애를 받는 신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는 만큼, 신격이 낮다고 업신여겨지는 일은 없었어. 

오소마츠 형 집에서 머물면서 조금 놀랐어. 저 망할 신을 딱 봐도 무지막지하게 게을러 보이잖아?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제 집은 항상 깨끗하게 청소하고 지내는데다, 매일 3끼 식사를 제 손으로 만들어 먹더라. 

보통 ‘신’은 식사를 하지 않잖아? 

밥을 먹는다는 거에 한 번 놀라고, 그 많은 반찬을 전부 자기가 직접 만드는 거에 두 번 놀랐어. 

내가 천상에서 오소마츠 형 집에 머물며 한 일은 지금하고 비슷해. 

대국주가 가끔 일거리를 던져주면 오소마츠 형이 그 일을 할 때 옆에서 보조해주는 역할이었어. 


근데 지 집은 깨끗하게 청소하면서 정작 자기가 일을 하는 방은 서류와 음식물 찌꺼기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니까!! 

드러워서, 정말. 게다가 일처리도 엄~청 설렁설렁 대충대충 하는데, 그 재수없는 귀를 확- 잡아다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싶었다고, 제대로 좀 일하라고. 

그래도 그때는 아직 오소마츠 형이랑 같이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았고, 토지신에게 죽임 당할 뻔한 기억 때문에 ‘신’이란 존재가 무서웠어. 

그냥 내 속만 타 들어 가는 거지. 

그렇게 불평 불만을 참고만 있다가 기어이 터진 사건이 있었어. 

그 날도 잔뜩 어질러진 오소마츠 형의 방을 청소하는데 서류 사이에서 춘화(春畵) 한 장이 나온 거야. 

당연히 엄~~청 당황했지. 

대체 이게 왜 서류 사이에 끼어져 있는지도 몰랐고, ‘신’이 머무르고 사용하는 방 안에서 나왔다는게 믿겨지지 않아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거 백이면 백, 저 망할 신 거였어. 

만물의 이치에 통달한 녀석이 대체 왜 그런 걸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응?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그게 하필이면 그 때, 정말 절묘하게 오소마츠 형이 돌아온 거야. 

오소마츠 형이 잠깐 집을 비웠을 때, 방을 치우고 있었거든. 

오소마츠 형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춘화를 들고 있는 걸 보더니 정말 밉상으로 웃으면서 말했어.


“자리 비켜줄까? 딸딸마츠.”

완~전히 놀려먹을 태도였어, 그건. 

거기에 제대로 빡쳐서 무지 대들었지. 

그때 내가 대체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 안 나. 

정말 엄청 열 받아서 있는 말 없는 말 다 해댔다는 것만 기억나지. 

그렇게 퍼붓고 나서 정신이 드니까 진짜 체온이 싹 내려가더라. 

내가 대체 지금 ‘신’에게 뭐라고 한 건지, 이대로 죽임 당해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 

식은땀이 줄줄 나더라. 고위급은 아니어도 ‘요괴’인 내가 손도 못 댈 정도로 높은 게 ‘신’이잖아? 

게다가 대국주의 총애를 받는 ‘신’. 

이대로 나는 죽는구나 하고 얼어버린 나를 보면서 오소마츠 형은 배까지 잡고 바닥을 구르며 쳐 웃더라? 

아주 그냥 바닥에 쌓인 서류 위를 데굴데굴 굴러 댕기면서 한참을 웃더니, 일어나서 그러더라고.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 ‘신’이라고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그리고 호칭도 ‘오소마츠 형’으로 좋으니까. 편하게 불러~ 쵸로씌~~”

내가 ‘신’에게 망언을 했는데도 그런 태도니까 당연히 나는 완전히 벙쪄서 멍청히 서 있었지. 

근데 또 그 앞에서 손을 흔들면서 개소리를 지껄이더라고. 

순간 치솟는 짜증에 머리에 한 방 갈겨주고 나서야 좀 진정되더라. 

그래서 그 때 이후로는 ‘오소마츠 형’이라고 부르면서 지냈어. 

오소마츠 형이 다른 ‘신’들과는 다르다는 걸 계속 봐 와서 알고 있었고, 딱히 오소마츠 형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형’이라는 호칭은 나도 제법 마음에 들었어.

그렇게 같이 지낸 세월이 벌써 300년 정도 된 것 같네.








3.

이야기를 마친 쵸로마츠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분명 나와 그 색은 달라고 그 눈빛 속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짧지 않은 세월을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두 사람과 함께 보내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두 사람은 나와 만나기 전부터 함께 지내왔으며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며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깊이 깨닫게 되었다. 

매일 싸우고,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잔소리를 퍼부어도 두 사람 사이에서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과 같은 유대가 있었다. 


오랜 세월, 시간과 정성으로 세워진 그 성은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되어 나를 가로막았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쌓아온 ‘시간’의 벽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넘을 수 없었다.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자기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잔잔한 미소를 피우고 있는 쵸로마츠의 모습에 쓰게 웃으며 눈을 돌렸다. 

속 좁고 어리석은 못난 나는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가족’으로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쵸로마츠에게 질투해 버리고 만다. 

쵸로마츠도 소중한 나의 친우이건만. 

자신의 치졸함에 옅게 한숨을 내쉬자, 요란한 발소리를 울리며 오소마츠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사랑스럽게 웃으며 다가온 오소마츠의 꼬리가 기분 좋게 좌우로 살랑거리고 있었다. 

우리 앞에 멈춰 선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대답했다.


“나랑 오소마츠 형이 처음 만났던 이야기.”

“그 이야기는 새삼 왜?”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슥 나를 바라보았다. 

쵸로마츠가 보내는 무언의 지시에 오소마츠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사이가 좋아서 문득 궁금해졌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후~응. 뭐, 나랑 쵸로가 사이 좋은 거야, 천상에서도 소문날 정도로 유명하니까!! 쵸로는 내 ‘반려(伴侶)’이기도 하고!”

“정말이지. 그런 말을 잘도 맨정신으로 한다니까. 오소마츠 형은.”

“왜에~! 뭐가~~”

씩- 장난스럽게 웃는 오소마츠의 곁에서 쵸로마츠가 부끄러운지 겸연쩍게 미소 지었다. 

두 사람 사이의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가슴을 찌르던 고통은 더 커져 내 마음을 옭아맸다. 

그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도 내가 태어난 시기까지 고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무리 바래도 쵸로마츠 보다 먼저 오소마츠를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함께해온 ‘세월’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카라마츠? 왜 그래?”

오소마츠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걱정이 역력히 묻어 나오는 낯빛에 찡그리고 있던 눈썹이 누그러졌다. 

피식 새어 나오는 숨을 내쉬며 오소마츠의 머리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길을 따라서 떨리는 귀와 꼬리가 사랑스러웠다.


“카라마츠?”

부드러운 눈빛으로 오소마츠가 나를 불렀다. 

여전히 걱정되는 얼굴로 나를 응시하는 오소마츠에게 웃어 보인 후, 접어두었던 날개를 펼쳤다.


“이제 돌아가 봐야 될 것 같다.”

“어? 벌써?”

“…”

귀와 꼬리를 늘어뜨리고 서운함을 감추지 않으며 묻는 오소마츠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한 후, 쵸로마츠에게 시선을 옮겼다. 

고요히 내 시선을 마주한 쵸로마츠가 짧게 “잘 가.” 하고 인사를 건넸다. 

쓴웃음을 감추고 고개를 끄덕인 후, 아쉬워하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 크게 날개를 퍼덕였다.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몸이 공중에 떴다. 

하늘에 올라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배웅하는 오소마츠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여우산의 맞은편, 청산으로 향하는 날갯짓이 오늘 따라 무거웠다.








4.

정말로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다. 


대국주 할아범의 집에 놀러 갔다가 좋은 술을 가져오겠다고 자리를 비운 할아범의 거울을 본 것은. 할아범의 보물 중 하나인 그 작은 손거울은 지상의 인간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염라대왕이 가지고 있는 거울과 한 쌍인 그 작은 거울에는 어둑할 정도로 깊은 산 속이 비치고 있었다. 

카라마츠와 헤어진 이후, 지상은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던 나는 그 날도 아무 생각 없이 거울에서 시선을 돌렸다. 

카라마츠가 없는 인간 세상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빛을 잃은 등과 같았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 커다란 방 안 곳곳을 훑어보다가 거울을 시쳐 지나가는 시야 속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순간 내가 잘못 본 것인가 놀라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깊은 산 속, 기억에 남아있는 카라마츠의 얼굴이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사고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도 전에 나는 거울 속으로 몸을 던졌다. 

거울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가자마자 울창한 나무들 위로 떠올랐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거울에 비친 숲 속이 어디인지 필사적으로 찾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카라마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희미하게 타 들어가던 희망은 사라져가고 안타까움과 슬픔이 내 몸을 지배했다. 

주먹을 꽉 쥐고 내가 잘못 본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천상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내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나무들 사이에서 잔뜩 성난 호통이 들려왔다.


“네 놈이 그런 짓을 하고도 내게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더냐!!!”


쩌렁쩌렁한 ‘신’의 외침이 온 산을 울렸다. 

산짐승도 산의 주인도 두려움에 떨면서 몸을 움츠리는 것이 보였다. 

산의 정기는 찌릿찌릿하게 날이 선 공기처럼 주변 만물들을 긴장시켰다. 

혹시 하는 마음에 호통이 들려오는 곳으로 가까이 가자 거울에서 보았던 카라마츠의 얼굴이 들어왔다. 


닮았지만 똑같지는 않은 비슷한 얼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카라마츠가 아니라고. 


카라마츠와 헤어진 이후로, 이미 인간 세상에서는 100년도 넘는 오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약하고 평범한 인간인 카라마츠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 없다. 

게다가 살아 있다 해도 할아범처럼 쭈글쭈글하게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겠지. 

씁쓸하게 퍼지는 허무함에 거울에 비쳤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카라마츠는 아니지만 본 기억이 있는 얼굴이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저 얼굴이 누구인지 완전히 기억해낸 내가 재빨리 그 녀석의 앞으로 뛰어들어갔다. 

이 땅의 토지신으로 보이는 ‘신’은 잔뜩 얼굴을 구기고 갑자기 사이에 달려든 나를 응시했다. 

높게 들어 천벌을 내리려 했던 손을 천천히 내려 나를 가리키며 위압적으로 말했다.


“너는 누구냐. 감히 ‘신’의 엄벌을 받고 싶은 게냐? 당장 비켜라.”

“에이~, 같은 ‘신’끼리 친하게 지내자고~ 형씨~”

“’신’? 네 놈이 ‘신’이라고?”

“아직 짐승의 모습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래 보여도 토지신도 지낸 적 있다고?”

“그래서? 내 앞을 가로막은 이유를 말해보실까? 짐승신.”

‘짐승신’이라니. 어떻게 보나 깔보는 태도로 거만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토지신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이 무슨 잘못은 한 지는 모르겠는데, 조금 진정해~? 산이며, 이 토지며, 정기가 말이 아니라고?”

“네 놈과는 상관 없는 일.”

콧방귀를 끼며 대답한 토지신은 다시 손을 들며 내게 “비켜라.” 하고 명령조로 말했다. 

이야~ 저렇게 명령조로 들은 거 오랜만이네~.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토지신은 분명 나보다 고위급의 신이었다. 

아무리 내가 ‘신’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저 토지신의 힘에는 당할 수 없다. 

‘급’의 차이를 절실하게 느끼며 입꼬리를 올렸다. 

보통 ‘신’이라면 여기서 꼬리를 말고 도망치겠지만, 내게는 믿을 만한 빵빵한 뒤가 있단 말이지-.


“천벌대신에, 이 녀석을 내가 데려가면 안 될까?”

“뭐라?”

“내 곁에서 내 일을 보조할 조수가 필요했던 참이거든. 그러니까 이 녀석 내가 데려갈게.”

토지신의 눈썹이 거나하게 위로 솟았다. 

마음에 안 들겠지. 

제 손으로 직접 벌을 주려고 했으니. 

‘신’이라는 존재는 왜 이리도 자존심이 높은지 절로 나오려는 한숨을 참아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대국주님께 그렇게 말해 놓을 테니까.”

“!!”

“안 그래도 요즘 보좌를 좀 구해라~ 하고 잔소리가 심하시거든.”

웃으며 일부러 내 꼬리와 귀를 크게 흔들었다. 

천상에서도 유명한 내 소문은 분명 지상까지 퍼져 있을 터였다. 

신들이 모두 모이는 ‘신들의 연회’에서 특별히 나를 소개한 할아범 덕분에 내 얼굴을 몰라도 대국주가 아끼는 여우신이 있다는 것은 ‘신’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토지신은 내가 ‘그’ 여우신이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웃는 면상으로 받아 쳐주자 토지신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알겠다. 데려가도 좋다. 단, 두 번 다시 그 망할 것이 내 땅을 밟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제 할말만 남기도 토지신은 바람을 일으켜 사라졌다. 

할아범 덕분에 위기를 모면해 속으로 감사 인사를 보내며 줄곧 내 뒤쪽에서 주저앉아 있는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필사적으로 토지신을 피해 숲 속을 달리느라 엉망이 된 녹색 기모노와 팔과 다리에 감싸고 있는 붕대는 붉은 피가 묻어나 있었다. 

무엇보다 오른눈이 완전히 도려내어져 검붉은 핏물이 안구를 잃은 눈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꼴이 말이 아니구나-. 

한탄하며 손을 뻗었다. 

녀석은 몸을 움찔거리며 내 손을 피하며 뒷걸음쳤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녀석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 상처, 치료해줄게.”

슬쩍 고개를 끄덕인 녀석의 눈에는 여전히 공포가 서려있었다. 

아무리 죄를 지었다곤 해도 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을 필요는 없잖아. 

한탄하며 산의 정기를 모아 온 몸의 상처를 치료했다. 

하지만 오른쪽 눈만은 나보다 고위신이 직접 도려낸 상처로 출혈은 막아낼 수 있어도 이미 잃은 눈을 되찾는 것은 할 수 없었다. 

내가 입고 있는 기모노의 소매를 찢어 공허하게 비어버린 오른쪽 눈을 감쌌다. 

안구가 없는 감각이 이상하고 어색한지 녀석은 눈썹을 찌푸리고 말 없이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나랑 같이 가자.”

머뭇거리며 내가 내민 손을 붙잡은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녀석을 데리고 천상으로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할아범의 잔소리였다.





군고구마를 손에 들고 기쁘게 웃으며 맛있게 먹는 녀석들을 보며 절로 미소가 나왔다. 

이치마츠는 말 없이 군고구마를 두 손으로 꼭 잡고 한 입, 한 입 베어먹고 있었다. 

무표정이었지만, 묘하게 풀어진 얼굴과 기쁘게 흔들리는 꼬리를 보아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고 호들갑 떨며 고구마를 먹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였던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워진 주변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녀석들은 한편으로 밀어두고 고개를 돌려 함께 대화하고 있는 쵸로마츠와 카라마츠쪽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쵸로마츠가 보기 드문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든 행동으로 옮기는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않고 바로 쵸로마츠 쪽으로 다가갔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다가가 묻자 쵸로마츠가 우리가 처음 만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내 물음에, 궁금해져서 물어봤다고 대답하는 카라마츠의 얼굴이 어두웠다. 

쓴웃음을 지은 채, 나와 쵸로마츠를 바라보는 카라마츠를 보니 또 뭔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풀이 죽어있는 이유를 물어보기도 전에 카라마츠는 날개를 피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저 멀리 멀어져 가는 카라마츠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소마츠 형은 말이야..”

“응?”

카라마츠가 사라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쵸로마츠가 입을 열었다.


“왜 우리들을 곁에 두는 거야?”

“응? 응?”

대체 뭘 물어보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반응에 눈썹을 찌푸린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려 아직도 신사 마당에서 군고구마에 열중해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요괴잖아. ‘신’인 오소마츠 형이 왜 우리랑 같이 지내는 건가, 싶어서.”

별걸 다 묻는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내 웃음에 쵸로마츠의 미간에 패인 주름이 더 짙어졌다. 

그 얼굴이 웃겨 큭큭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인연(因緣)’이라는 건 말이야-“

“아? 인연?”

쵸로마츠는 뜬금없는 내 말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나를 쳐다보았다. 

멍청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쵸로마츠에게 미소 지은 후, 신사 마당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연’이라는 건, ‘신’이라도 손 댈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거야. 누가 누굴 만나고, 누구와 이어지고, 누구와 헤어질 지, ‘신’인 우리조차 모든 걸 파악할 수 없어.”

어릴 적, 인간이었던 내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마치고 여우요괴가 되었을 때, 나를 거두어준 요괴신 아버지가 한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갓 요괴가 되어 혼란스러운 나를 어루만져주며 “이것도 다 인연이란다. 아가-“ 하고 속삭여 주셨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옆에 서 있는 쵸로마츠를 보았다.


“우리는 인연을 막거나 거스를 수 없어. ‘신’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인연이 향하는 그 앞길을 평탄하게 만들어주거나, 인연의 시기를 앞당기거나 늦추는 정도야.”

“…”

조용히 입을 다물고 내 말을 듣고 있는 쵸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인간 시절, 그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었던 애정을 넘치도록 부어준 여우신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 날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너무나 억울하고 슬퍼서 밤낮을 쉬지 않고 울던 나를 달래주었던 것은 대국주 할아범이었다. 

왜 이렇게 빨리 돌아가셔야 하냐고, 원망하고 슬퍼하고 운명이란 것을 저주하던 나를 달래며, 할아범은 슬프게 웃었다. 


그것이 ‘인연’이라고. 또 새로운 ‘인연’이 분명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나를 달래주었다. 

대국주 할아범의 말대로 나는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당돌하고 무례하고 사랑스러운 카라마츠를 만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끊어졌다고 생각한 인연은 다시 나를 이 녀석들과 만나게 해 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너희가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하다고?”

“무, 무, 무무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말에 쵸로마츠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익었다. 

가을 하늘에 흩날리는 빨간 단풍처럼 탐스럽게 익은 얼굴을 소매로 숨기고 말까지 더듬으며 화를 내는 쵸로마츠의 모습에 결국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카라마츠의 파편으로만 생각했던 녀석이었는데. 

함께 지내는 동안, 어느새 나는 쵸로마츠에게 ‘가족애’를 가지게 되었다. 

카라마츠와는 다르지만, 나를 ‘형’이라 불러주며 정말로 친형제처럼 대해주는 쵸로마츠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굳이 말하지 않는 부분까지도 눈치채고 이해해주는 기특한 녀석, 내 반신(半身), 나의 반려(伴侶)

그리고 쵸로마츠에서 시작된 인연의 끈은 카라마츠와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까지 엮어서 내 앞으로 가져다 주었다. 

카라마츠를 다시 만나게 해 주었다. 오랜 시간, 혼자였던 내게 ‘가족’을 만들어 주었다.


인연(因緣)이라는 녀석에게, 마음 깊이 차오르는 감사를 읊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5.

침실에 들어가 미리 깔려 있는 이불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망치듯 신사를 나와 돌아온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 이상 그곳에 있다가는 이 어두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낼 것 같아 두려웠다. 


오소마츠를 향한 내 마음을 자각하고 난 이후로 계속 신경 쓰였던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의 관계. 

내 의심이 창피할 정도로 둘의 관계는 ‘가족’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형제’로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순백한 관계.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나 쵸로마츠를… 


딱히 의심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쵸로마츠도 오소마츠 못지 않게 소중한 친우다. 

하지만 뭔가 가슴 깊은 곳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쵸로마츠는 나보다 더 먼저 오소마츠의 심중을 눈치채는 일이 많다. 

텐구 무리를 이끌기 위해 청산에 머물고 있는 나보다 더 오소마츠와 함께 있는 시간도 길다. 

오소마츠를 알고 지냈던 세월도 길다. 


분명 내가 모르는 오소마츠를, 쵸로마츠는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쵸로마츠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신뢰의 눈빛. 


알고 싶다. 

오소마츠의 모든 것을. 


할 수만 있다면 오소마츠가 태어난 시기로 돌아가 오소마츠의 성장을 모두 이 두 눈에 담고 싶다. 

오소마츠의 생각과 다양한 표정을 전부 보고 싶다. 오직 나만이 오소마츠의 전부를 알고 있기를 원했다. 

이런 치졸한 욕망이 그 크기를 더해갈수록 쵸로마츠를 향한 질투와 죄책감도 커져갔다. 

완전히 가라앉은 기분을 다시 끌어올릴 기운은 없었다. 

따끔따끔하니 아픈 가슴을 안고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 생각으로 방 안을 밝히고 있는 등불로 다가갔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몸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굳게 닫힌 문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분명 방에 오기 전, 젊은 텐구들과 치비타에게 언질을 주어 이 시간에 내 방에 오는 이는 없을 터였다. 

급한 용무로 젊은 텐구가 부득이하게 찾아왔을 가능성도 있어 한숨을 내쉬고 들어오라고 목소리를 냈다. 


“…!! 오, 오소마츠?!”

스륵- 하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오소마츠가 머리를 쑥 내밀었다. 

평소 신사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오소마츠가 텐구의 영지에 있다는 것에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오소마츠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는 젊은 텐구들이 있는데, 대체 어떻게 이곳까지 온 것인지 믿겨지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놀라 입도 다물지 못하는 나를 보며 오소마츠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내게 다가오는 오소마츠에게 묻자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아니?” 하고 태평하게 대답했다. 

그럼 대체 왜 찾아온 건지 물으려는 내 어깨를 붙잡은 오소마츠가 내 어깨를 지긋이 눌렀다. 

오소마츠의 손에 맞추어 몸을 낮추어 이부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내 어깨에 얹은 손을 치우지 않고 나를 마주보고 앉은 오소마츠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등불에 비친 얼굴이 묘하게 요염했다. 


“오, 오소마~츠?”

“응~?”

“정말로 무슨 일이야…”

눈썹을 찌푸리고 묻자 오소마츠의 꼬리가 너울거렸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을 때의 행동이었다. 

꼬리를 보고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자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한 번 더 물으려던 입을 다물고 가만히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오소마츠의 붉은 눈이 등불에 반짝였다. 

문득 휴- 하고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카라마츠으~”

“뭔가.”

“네가 말했지? 나한테. 혼자 떠안지 말라고. 정말로 사소한 일이라도 좋으니까 숨기지 말고 얘기해 달라고.”

“…”

뭐든 혼자 짊어지려는 오소마츠가 너무나 애처롭고, 애틋해 조금이라도 나를 의지해주길 원해서 내가 했던 말이었다. 

교제를 시작하며 내가 했던 말을 오소마츠가 되돌려주며 내 목에 제 팔을 둘렀다. 

가까워진 얼굴에 오소마츠의 붉은 눈동자 가득 내가 비춰지고 있었다.


“카라마츠, 무슨 생각했어?”

“…”

부드럽고 상냥하게 묻는 목소리에 절로 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몇 백 년이 지난다 한들 나는 오소마츠를 이길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숨기려고 해도 내 모든 것은 오소마츠의 손 안에 있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오소마츠에게 싱긋 웃으며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강하게 껴안았다.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오소마츠의 온기에 푹 숨을 내쉬며 오소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코 끝을 간질이는 오소마츠의 향긋한 체취를 빨아들이며 눈을 감고 있자 오소마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온 몸을 감싸는 오소마츠의 체온과 향기에, 그리고 품 안에 들어온 오소마츠의 신체에 더 없이 안심했다.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며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나는 쵸로마츠가 부러웠다.”

“어? 쵸로가? 왜?”

오소마츠의 꼬리가 크게 살랑거리며 흔들렸다. 

내 등에 제 손을 두르고 토닥이던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소마츠의 어깨에서 얼굴을 떼고 나를 보고 있는 오소마츠의 눈을 마주했다. 

부드러워 보이는 복슬복슬한 귀가 온전히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온 감각을 내게 모으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피식 웃음을 흘리며 사랑스러운 뺨을 어루만지자 오소마츠가 기분 좋게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손에 제 볼을 갖다 댔다.


“쵸로마츠는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오소마츠와 함께 해 왔다. 분명 내가 모르는 오소마츠의 모습을 많이 알고 있겠지. 오소마츠도 쵸로마츠를 신뢰하고 있고. 나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함께 쌓아온 세월이 너무나 부러웠어. 쵸로마츠가 너무나 부러웠다.”

맑은 눈을 크게 뜨고 내 말을 들은 오소마츠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내 등에 팔을 두르고 나를 꼭 안아왔다. 

오소마츠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바보네- 카라마츄는~. 그런 거 신경 쓸 필요 없는데.”

몸을 떼고 나를 똑바로 바라본 오소마츠가 내 머리를 쓸어 올렸다. 

앞머리에 가려져 있던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춘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귀를 쫑긋거렸다. 

남실거리는 꼬리가 오소마츠의 허리를 안고 있는 내 팔을 간질였다.


“카라마츠는 내가 쵸로에게 보여주지 않는 ‘’를 알고 있잖아?”

말을 마친 오소마츠가 눈을 반쯤 감고 내게 다가왔다. 따뜻한 체온과 말랑말랑한 감촉이 입술에 전해졌다. 

잠시 맞닿은 입술은 아쉬움을 남기고 곧 떨어졌다. 

나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한숨이 한층 뜨거워져 있어, 덩달아 내 체온도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뺨을 붉게 물들이고 나를 보는 오소마츠의 눈이 호를 그리며 가늘어졌다.


“이렇게 야-한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아무 생각 없이 기댈 수 있는 것도 카라마츠 뿐이야?”

“..오소마츠..”

오소마츠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내 손을 마주잡고 웃는 오소마츠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오소마츠의 말 한 마디에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검고 어두운 죄책감과 질투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갔다. 

콩! 하고 내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고 얼굴을 붙인 오소마츠가 조용히 속삭였다.


“확실히 쵸로는 내 ‘반려’지만…”

“…”

“카라마츠는 내 ‘배필(配匹)’이니까.”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있던 확신을 주며 오소마츠가 수줍게 웃었다. 

존재했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내 안의 어둠은 완전히 사라지고, 가슴 가득 행복이 차 올랐다. 

방심하면 바로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고 오소마츠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눈을 감고 내 손길을 받아들이는 오소마츠를 끌어당겨 그 보드라운 입술에 입맞췄다. 

맞닿은 입술은 기다렸다는 듯, 그 틈을 허락해 주었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뜨거운 오소마츠의 입 속을 마음껏 탐했다. 

입 안의 성감대를 자극할 때마다 달콤한 한숨을 내쉬며 눈썹을 찌푸리는 모습이 아름답고 고혹적이었다. 

쪽- 하고 물기 어린 소음을 내며 입술이 떨어졌다. 뜨거운 한숨을 내쉬는 오소마츠의 얼굴이 요염했다. 


“오소마츠.”

“응-?”

“오늘은 여기서 머물지 않겠나?”

“…우응, 하, 아…”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입술을 가까이 대자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입을 열어 주었다.

조급하게 얽혀오는 뜨거운 혀가 사랑스러워 몇 번이고 입맞춤을 반복하며 뜨거운 숨을 교환했다. 


“…하아-“

멍한 얼굴로 입술을 뗀 오소마츠의 입가에 흘러내린 타액을 닦아주자 오소마츠가 그 특유의 장난기 묻어 나오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나 여기서 자고 가면 분명 텐구들한테 뭐라 들을 것 같은데-“

“그렇, 지는 않을거다..”

앞날을 보듯 뻔한 젊은 텐구들의 반발을 떠올리며 쓰게 웃자 오소마츠가 내 목에 팔을 두르고 더 몸을 밀착했다.


“내일은 텐구들 일어나기 전에 일찍 일어나야겠네-“

싱긋 웃으며 이불에 몸을 누이는 오소마츠를 따라 몸을 숙였다. 


완전히 이불에 누운 오소마츠가 손가락을 들어 작은 바람을 일으켜 작은 등불을 끄자, 방 안은 그대로 어둠에 감싸였다.






* 수능이다 시위다 요즘 사건이 많네요.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모두 중심을 잡고 매일을 멋지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수능 보신 수험생분들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내일 안으로 열심히 써서 다음편도 올릴게요.. 올릴수 있을 거에요.. 아마도...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말에도 일이 많아 짧은 단편 하나만 올리는 저를 용서해주세요..ㅎㅎ


* 24화 기반입니다.


* 오소마츠가 흑화했습니다. 검은 후드를 입은 오소마츠가 나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텅 빈 집안, 고요한 적막만이 공기를 감싸고 무겁게 내려앉았다. 

2층 방에 홀로 앉아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오소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목적도 없이 거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거실로 향하는 복도에 우뚝 선 오소마츠가 현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슴 깊이 일렁이는 바람이 담긴 눈길로 현관을 바라보았지만, 그 눈에 바라는 인영이 비추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로 거실로 들어서려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놀란 얼굴로 현관문을 바라보는 오소마츠가 망설이며 움직임을 멈췄다. 


-딩동-


다시 한 번 초인종이 울렸다. 부모님은 모두 외출했다. 

오소마츠 혼자만 남은 집 안. 돌아올 사람은 없다. 


-딩동-


한 번 더 초인종이 울렸다. 불투명한 유리에 비친 희미한 인영이 동생들이길 바라는 자신에게 자조적인 웃음을 던진 오소마츠가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겨 거실로 향했다. 

이런 평일 낮에 찾아오는 방문객이라면 신문 권유나 방문 판매 정도일 것이다. 

아무도 없는 척을 하고 기다리면 알아서 돌아갈 치들이었다. 

오소마츠의 손이 거실 문을 열어젖힘과 동시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풀썩 현관에 쓰러졌다. 

굉음에 놀라 몸을 돌린 오소마츠 앞에 가장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형태를 갖추고 서 있었다. 

서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억에 오소마츠가 떨리는 주먹을 굳게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이따위 늙은이를 두려워할 정도로 어리지 않은 오소마츠가 자신에게 뻗어오는 손을 붙잡아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한창 때인 청년의 주먹, 게다가 오소마츠는 학창시절 제법 싸움 좀 한다는 부류에 속했다.

오소마츠가 날린 주먹은 그대로 남자의 얼굴에 직격했고, 남자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숨을 몰아 쉬며 오소마츠가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대로 기절을 했는지 남자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서 오소마츠가 현관에 위치한 전화기의 수화기를 든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재빨리 몸을 돌렸다.


“..읏, 아!!!”

비릿한 웃음을 흘리는 남자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오소마츠가 정신을 잃었다. 

남자의 손에 들린 테이저(전기충격기)가 파직하고 스파크를 만들었다. 

현관에 그대로 쓰러진 오소마츠를 내려다보며 남자는 형용할 수 없는 음산한 미소를 얼굴 가득 피웠다.








2.

힘겹게 눈을 뜨자 그곳엔 오직 어둠만이 있었다. 

한 밤 중에 눈을 떠버린 것일까 싶어 몸을 뒤척이려 했으나 온 몸을 감싸고 있는 위화감과 함께 손도 발도 꼼짝하지 않았다. 

가위에 눌린 걸까 생각하며 다시 몸을 움직이자, 의자에 앉아 있었던 몸이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무리 내가 잠을 잘 잔다고 해도 의자에 앉은 채 졸지는 않는다. 

몰려오는 혼란스러움에 기억을 더듬은 순간, 가장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사내를 떠올렸다. 

싹- 얼굴의 피가 순식간에 발 끝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급박함에 입을 연 순간, 팟! 하고 천장에 매달린 전등 하나가 켜졌다.


천장에 매달린 전등은 길게 늘어져있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큰 원을 돌고 있었다. 

어둠 가득한 방 안은 흔들리는 전등이 비추는 빛이 유일했다. 

갑작스러운 빛에 부신 눈을 꾹 감고 있으니 곧,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삼키며 뜨고 싶지 않은 눈을 뜨자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개자식.”

절로 나오는 욕을 내뱉은 순간, 구둣발은 그대로 내 얼굴을 찼다. 

욱! 하고 나오는 신음에 고통을 참아내려 온 몸을 비틀었다. 

떨리는 몸과 입 안에 퍼지는 피 맛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들었다.


“어른한테 말버릇하고는. 너는 여전히 입이 거칠구나, 오소마츠.”

“닥쳐.”

기억에 남아있는 그 거만하고 작위적인 미소를 띤 얼굴로 개자식은 턱을 쓸었다. 

내 말대꾸가 맘에 안 들었는지 개자식은 한 번 더 발을 들어 내 복부를 가격했다. 

다시 터져 나오는 신음과 목을 타고 올라오는 위액의 신맛이 입 안에 감돌았다.

치솟는 토기를 억지로 삼키며 쿨럭 거리자 터진 입 안에서 피가 함께 바닥을 적셨다.


“이런, 쯧쯧쯧. 입 안이 터졌구나.”

“..이 손 치워..”

거칠고 주름진 손이 내 턱을 잡고 들어 입 안을 살폈다. 

고개를 저어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강한 힘으로 잡힌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치를 떨며 얼굴을 구기고 발버둥치는 나를 개자식은 만족스럽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 군, 너도 참 기구한 녀석이야.”

“..닥치랬지, 개자식아.”

“그렇게나 동생들을 건드리지 말라며 내게 갖은 고생은 다 당해놓고.”

“닥쳐!!”

“결국엔 이렇게 혼자가 되다니.”

“이, 개새끼야! 닥치라고!!”

너는 이제 동생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거야.”

“닥치라고..!!!”

“불쌍하게도 오소마츠 군, 버려졌구나. 동생들에게..”

“닥, 치..라고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제 멋대로 흘러내리기 시작한 눈물이 얼굴을 적셨다. 

욕설을 내뱉으려고 벌린 입에서는 흐느낌이 멈추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두려움에 떨던 몸이 몰려오는 슬픔과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떨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 믿고 싶지 않았던 진실. 


그 모든 것을 잔인하게 귓가에 속삭이며 개자식은 황홀하단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멈추지 않는 흐느낌에 입술을 깨물고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저딴 개새끼에게 한심하게 우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떨리는 몸을 억지로 웅크리고 울음을 참아보려 했으나, 

한 몸이었던 동생들을 잃은 슬픔은 내 몸을 장악하고 놔주지 않았다. 

제 몸의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갔는데, 슬퍼하지 않을 인간이 있을까. 

이제 내 옆에 서 있을 개새끼도 잊은 채, 그저 몰려오는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나는 내 몸을 옥죄고 있던 밧줄이 풀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봐, 오소마츠 군.”

방금 전까지와 180도 다른, 부드러운 음성으로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자유로워진 팔 다리를 눈치채고 어떻게 도망을 쳐야 좋을지 궁리하며 몸을 굽혀 나와 눈을 맞춘 개새끼를 노려보았다.


“나는 가 필요해.”

“…”

“네 다른 동생들이 아닌 오직 네가. ‘오소마츠’가 말이야.”

“…”

동생들이 널 버렸다면 너도 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

“자, 나에게 와. 오소마츠.”


감미로운 음성으로 내 귓가에 속삭이는 토고를 응시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입 안에는 비릿한 철의 맛이 남아있었다.








3.

이력서의 빈칸에 하나하나 자신의 이력을 써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런 스펙도 없는 내가 과연 취업할 수 있을지 불안이 몰려왔지만, 바로 고개를 저어 나쁜 생각들은 날려버리기로 했다. 

일순 아직 집에 남아있을 오소마츠가 떠올랐다. 

모두 변하기 위해 집을 떠난 우리들과 변하지 못하고 집에 남은 오소마츠. 취업을 서두르는 이유는 물론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위함도 있었지만, 오소마츠를 걱정하는 이유도 있었다. 


한결같이 우리를 이끌어주고 함께 해왔던 오소마츠. 

네가 변할 수 없다면 변하지 않은 채여도 괜찮다. 

내가 변해서 너를 부양하면 되니까. 


오소마츠를 떠올려 무거워지는 마음을 안고 다시 이력서의 빈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캇, 카라마츳..!!!”

쾅 하고 문이 열리는 소음과 함께 치비타가 다리를 질질 끌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만신창이가 된 몸에 놀라 현관으로 뛰어가 치비타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가 앉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으며 약상자를 찾는 내 손을 붙잡은 치비타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날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빌어먹을 자식아!! 토고가, 토고 그 자식이 돌아왔어!!!!!”

영원히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던 자의 이름에 홀린 듯 약상자를 놓고 집으로 달려갔다. 



오소마츠, 

오소마츠. 

제발, 제발 무사해 줘!!


쵸로마츠보다 더 빠르게 발을 굴려 전속력으로 집으로 뛰어갔지만,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나를 절망으로 떨어뜨렸다. 


엉망이 된 현관,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 집 앞에 서 있는 경찰차. 


절망으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붙잡고 망연히 집 앞에서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는 부모님에게 다가갔다. 

나를 발견한 어머니가 내게 다가와 나를 붙잡고 우셨다.


“카라마츠… 오소마츠가, 오소마츠가아~!!!!”

제 몸도 가누지 못하고 흐느끼는 어머니를 부축하며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거짓말이지?

오소마츠?

빨리 우리 앞에 나타나서 거짓말이라고 해줘.

서프라이즈~ 하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나타나 줘.

거짓말이지? 오소마츠? 

네가 없다니 거짓말이지?





그로부터 3일이 지나도 오소마츠는 나타나지 않았다. 

가출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경찰은 더 이상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무리 어린 시절 강도에게 협박당한 일을 말해줘도 경찰은 그저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방 안에 틀어박히셨다. 

불안한 오소마츠를 놔두고 장을 보러 나간 자신을 끝없이 자책하는 어머니와 일을 나가면서도 슬픔에 잠긴 얼굴을 지우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나와 치비타에게 연락을 받고 집에 모인 동생들 모두, 살아갈 기력을 잃은 채, 망연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 죽은 거야?”

토도마츠가 불안한 얼굴로 우리들에게 물었다. 

토도마츠의 질문에 모두 얼굴을 구기고 그럴 리 없다고 외쳤다. 

이미 커다란 눈물이 맺힌 눈으로 토도마츠가 나를 바라보았다.


“카, 카라마츠 혀엉~”

결국 뺨을 타고 흘러내린 동생의 눈물을 닦아주며 방약무인에 제 멋대로 살기 좋아하는 오소마츠가 죽었을 리 없다고 말했다. 

내 말에 조금은 안심한 표정을 지은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고 고개를 들었다. 

오소마츠가 가출을 했을 리 없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이미 철수한 경찰은 의지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꼈다. 

몸을 일으킨 나를 따라 동생들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우리가 오소마츠를 찾자.”

한 줄기 구원과도 같은 실날 같은 희망을 붙잡고 우리들은 일어섰다. 

사방으로 뛰쳐나간 우리는 아카츠카 마을 뿐만 아니라 그 옆 마을, 그 옆 옆 마을까지 샅샅이 뒤졌다. 

실종된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교통비니 뭐니 해서 제법 돈이 들었다. 

휴가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던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는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오소마츠를 찾기 위해서 일을 해 받은 월급을 전부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이치마츠는 고양이들을 이용해 오소마츠를 찾기 시작했고, 쥬시마츠는 냄새를 잘 맡는 자신의 코를 이용해 이치마츠와 페어를 짜서 함께 움직였다. 

나는 나대로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며 오소마츠의 행방을 쫓았다. 

아무리 꽁꽁 숨어도 우리는 오소마츠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나는 놓지 않았다. 

여섯이서 하나인 우리들은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기에 반드시 오소마츠를 찾아내 다시 집으로 함께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어리석은 나는 그렇게 안이한 생각을 품고 오소마츠를 찾아다녔다.





세월은 우리들의 사정 따위 개의치 않고 무심하게 흘렀다. 

벌써 오소마츠가 사라진 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서서히 지쳐가는 동생들의 얼굴에서는 절망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여전히 어머니는 방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으시고, 아버지는 이제 우리와 대화도 일체 하지 않고 그저 일을 하는 일벌레가 되어 버렸다.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는 자신의 직장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어 진급을 했지만, 전혀 기뻐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이치마츠는 어느새 오소마츠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같이 방에 틀어박히고 말았다. 

제일 마지막에 자신이 떠났다는 것에 큰 죄책감을 안고 있는지 매일매일 오소마츠가 남긴 흔적들을 품에 안고 울었다. 

이치마츠를 달래기 위해 쥬시마츠가 이치마츠의 곁에 붙어있어 결국 지금까지 오소마츠를 찾아다니는 것은 나 혼자가 되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오소마츠를 닮은 사람을 목격했다는 정보에 매달려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오소마츠는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몇 년이 지나도 오소마츠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애써 부정하며 발을 옮겼다.




“..오, 소마츠?”

“…”

“오소마츠!!!”

목격 정보를 따라 아카츠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마을. 시골이나 다름없는 작은 마을의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검은 후드를 입은 익숙한 인영에 바로 뛰쳐나갔다. 

놓칠 새라 팔을 꽉 잡고 오소마츠를 부르자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그리웠던 얼굴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게 잡힌 팔이 아픈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오소마츠가 자신의 팔을 가리켰다.


“카라마츠, 이거 아픈데.”

“지금까지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빨리 집으로 함께 돌아가자!! 오소마츠!”

오소마츠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곧 칫 하고 혀를 찼다. 

예상치 못한 오소마츠의 반응에 오소마츠를 찾았다던 기쁨이 서서히 옅어졌다. 

불안함에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오소마츠를 부르자 오소마츠가 처음 보는 차가운 눈길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안 돌아가.”

“..오, 소마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돌아가야지..”

“있잖아, 카라마츠으~ 나 벌써 1년이나 집에 안 들어갔다고? 그럼 얼추 무슨 뜻인지 알지 않아?”

짜증 섞인 목소리로 혀를 차며 말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오소마츠는 그 토고, 그 자식에게 붙잡혀서 돌아오지 못한 거잖아… 지금 빨리 같이 돌아가면..!”

“그러니까~!!!”

내 말을 끊은 오소마츠가 노골적으로 짜증을 드러내며 말했다. 

자신은 토고에게 붙잡히지 않았으며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자신의 의지라고 말하는 오소마츠가 너무나 낯설었다. 

붙잡은 오소마츠의 팔을 더 힘주어 잡고 오소마츠를 불렀다. 

그럴 리 없다고, 오소마츠는 지금 혼란스러워서 제정신이 아닐 것이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오소마츠의 팔을 잡아 끌었다.


“돌아가자, 오소마츠.”

“아팟! 카라마츠, 그러니까 난 안 돌아간다고.”

“오소마츠!!!”

돌아가지 않겠다고 싸늘한 얼굴로 가장 절망적인 말을 하는 오소마츠가 원망스러웠다. 

차갑게 나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길이 내 가슴에 단도를 찔러 넣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참지 못한 나는 오소마츠의 팔을 붙잡은 채, 주먹을 휘둘렀다. 

퍽! 소리와 함께 내게 팔을 잡혀 주먹을 피하지 못한 오소마츠의 얼굴이 돌아갔다. 

겨우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자마자 숨이 멎었다. 

피가 묻은 주먹을 피고 오소마츠에게 뻗었지만, 내 손을 거칠게 내친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주먹에 맞아 붉어진 뺨과 피 섞인 침을 바닥에 뱉은 오소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비웃었다. 

겨우 이정도? 라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붙인 오소마츠가 비릿하게 웃었다.



“있잖아. 왜 나를 그렇게 데려가려고 해? 나를 버린 건 너잖아.”

“..무, 무슨.”

“먼저 나를 버려놓고,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가자?”

“..오소마츠, 그런 게 아니ㅇ.”

“웃기지 마. 봐주는 것도 정도가 있어.”

“오소마츠,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뭐가 아닌데? 제 멋대로 버려놓고 이제 와서 찾으려 하지 마. 쓰레기 새끼야.”


처음 듣는 차가운 목소리와 싸늘한 눈빛이 나를 향해 있다는 것에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힘이 풀려버린 팔은 너무나 쉽게 오소마츠의 팔을 놓아버렸다. 

팟! 하고 내 팔을 떨쳐낸 오소마츠가 기분 나쁘다는 듯 붙잡혔던 제 팔을 털어내고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말없이 내게서 시선을 옮긴 오소마츠가 몸을 돌렸다. 

나를 떠나 멀어지기 시작한 오소마츠를 붙잡아야 한다고 깨달았지만, 이미 오소마츠는 인파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손에 남아있는 오소마츠의 감촉에 주먹 쥐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흐느끼며 


나는 이제 다시는 오소마츠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 중간에 오소마츠가 토고를 개새끼, 개자식이라고 부르다가 토고라고 부른 것은 토고의 설득에 넘어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ㅎ..


* 흑화한 오소마츠는 처음 써봐서..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 그럼 저는 밀린 일을 하러 이만....ㅠㅠ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3편입니다ㅎㅎ


* 텐구 카라마츠와 천호 오소마츠가 처음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 소설에서 묘사된 '신'이나 '요괴'에 대한 설명들은 전부 제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저는 일본요괴나 신화에 대해 밝지 않아서..ㅎ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대국주가 부르신다며 방문을 열고 들어온 쵸로마츠가 바로 이불을 빼앗았다. 

이불 안의 따뜻한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꼬리를 온 몸에 감싸고 몸을 웅크리니 짜증을 숨기지 않고 팍팍 드러내며 쵸로마츠가 잔소리를 시작했다. 

대충 잔소리에 대답하며 겨우 몸을 일으키자 퍽! 소리가 나도록 등을 맞았다.


“아파아~~~~!!”

“얼른 일어나서 대국주님께 가!!!!”

분명 벌겋게 손바닥 자국이 남았을 등을 문지르며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쵸로마츠가 설렁설렁 걸어가는 나를 향해 “얼른 가!!”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저 녀석은 아무리 알고 지낸 세월이 오래 되었다지만 엄연히 요괴인 자신보다 위의 존재인 나를 너무 막 대한다. 

내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대국주의 집에 도착하자 내신이 대국주의 방으로 안내했다. 

쓸데없이 거대한 방문을 밀어젖히고 들어가자 할아범이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무슨 일로 불렀어? 할아범-“

할아범의 앞에 준비된 방석에 가 앉자마자 할아범이 씩- 웃었다. 

묘하게 능글거리는 것이 분명 속셈이 있는 웃음이었다. 

저 너구리 같은 할아범은 항상 이상한 수를 써서 나를 골탕먹이는 것을 좋아했다. 

정말로 저러는데도 대국주라니, 나를 비롯한 ‘신’들이 너무나 불쌍하다.


“실은 이번에 토지신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 말이다~”

“안 가.”

할아범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과 함께 망설이지 않고 즉답했다. 

할아범은 살짝 눈썹을 찡그리더니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거, 너무 즉답하지 말고 고민 정도는 해 보는 게 어떠냐? 다른 녀석들이 탐낼 정도로 큰 마을과 정기로 가득한 곳이라고?”

“나는 이제 지상에는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잖아, 할아범~ 그렇게 탐내는 녀석들이 많다면 나 말고 가겠다고 할 녀석 많겠네. 그 녀석들 시켜~”

이전 토지신을 맡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대답했다. 다시는 그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내가 사랑해도 인간들은 내 사랑을 쉬이 알아주지 않는데다 너무나 쉽게 나를 잊었다. 

그런 가슴 아픔 경험은 두 번 다시는 사양이다. 

물론 아직 인간들은 사랑스럽고 토지신으로서 그들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남아있지만, 다른 마을을 맡게 된다면 분명 나는 카라마츠의 마을과 비교하게 될 것이다. 

사랑스러운 카라마츠의 마을만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는 토지신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터였다. 

그리고 그 다짐을 할아범도 분명 알고 있었다.


“네 놈이 천상에서 일도 안하고 뒹굴 거리는 꼴이 보기 싫어서 너를 보내려는 거 아니냐!”

짐짓 화난 척을 하며 콩! 하고 앉은뱅이책상에 주먹을 가볍게 내리친 할아범이 말했다. 

푹- 하고 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격식을 갖추어 정좌하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무릎을 꿇고 있느라 수고한 다리를 주무르며 할아범에게 불평하자 할아범이 능청스레 어깨를 올리며 고개를 돌리고 중얼거렸다.


“안 가면 네가 후회할 텐데~? 그게 아니면 이제 토지를 맡을 자신이 없는 게냐?”

할아범의 도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입을 가리고 비웃는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할아범의 태도에 살며~시 짜증이 머리를 들었다. 

불쾌한 기분에 꼬리가 제멋대로 이리저리 좌우로 흔들렸다. 


“할아범~? 무~슨 말을 하는 걸까나아~?”

“그래, 매일 제 집에서 노니 그 신통력이 다른 녀석들보다 떨어지는 것은 할 수 없지. 그럼 너보다 더 강한 녀석으로 골라야겠구나.”


아, 왔다.

짜증이 왔어. 

진짜 저 할아범은 대체 갑자기 불러놓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최강인 오소마츠님보다 더 강한 녀석이 있을 리 없잖아. 


“알았어. 가면 되잖아!”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뿌연 안개가 낀 것마냥 멍한 머리와 제 할 일을 잊고 나태하게 놀고 있는 이성덕분에 할아범의 빤히 보이는 도발에 넘어간 나는 크게 외치며 몸을 일으키고 할아범의 방을 나왔다. 




그리고 나중에 집에 도착해 죽을 정도로 후회했다.








2.

모월 모일. 


망할 할아범의 빠른 일처리 덕분에 나는 토지신을 맡겠다고 실수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으로 토지신으로 임명 받았다. 

오늘은 내가 부임 받은 토지에 내려가는 날. 

몸을 정결히 씻고 정화한 후, 불편하고 몸에 달라붙는 예복을 갖추어 입은 내 모습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절대로 다른 마을을 다스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

그렇게 값싼 도발에 넘어가다니.

정말로 그 때는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틀림없다.

화차(火車)가 도착했다며 방에 들어온 쵸로마츠가 위 아래로 내 모습을 훑어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다가와 내 옷깃을 정돈해 주었다.


“토지신으로 내려가는 녀석이 얼굴이 뭐 그래?”

내 얼굴을 보며 처진 눈썹을 찌푸리고 쵸로마츠가 물었다. 

절로 나오는 한숨과 함께 귀와 꼬리가 축 늘어졌다. 내려가고 싶지 않다. 

인간 세상에 내려가면 분명 아직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는 카라마츠를 떠올리고 말 것이다. 

아직 카라마츠를 향한 내 감정은 퇴색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어 몰려올 그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예복 때문에 불편한 걸음걸이로 뒤뚱뒤뚱 걸어 화차에 올랐다. 

천상에서의 남은 일처리를 마치고 따라 내려가겠다는 쵸로마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화차는 천상을 떠나 지상으로 향했다. 

흔들리지 않고 부드럽게 하늘을 날고 있는 화차의 안에서 다시금 자신의 실수를 곱씹고 후회했다. 




지상에 도착해 큰 소음을 내지 않고 화차가 신사에 그 바퀴를 내렸다. 

떨리는 가슴에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태연한 얼굴을 만들고 화차에서 내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에..”

작게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왔다. 

깔끔하게 정리된 붉은 신사의 입구에 카라스텐구가 길의 양 쪽에 일렬로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의 영역인 신사에 이렇게 많은 수의 요괴가 있다는 것에 놀라 턱이 떨어졌다. 

유사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신’과 ‘요괴’는 그다지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는 불가침의 암묵적인 규칙 아래, 요괴는 자신이 머무는 토지신에게 간섭하지 않고 신도 요괴가 사악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토지에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그런데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런 내 상식을 추월했다. 

처음 토지신을 맞이하는 마을이라지만, ‘요괴’인 카라스텐구가 ‘신’을 환영하기 위해 신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지렁이가 들으면 웃으며 기어갈 정도의 어이없는 일이었다. 


얼떨떨한 심정을 숨기고 마른침을 삼키며 텐구들이 늘어선 길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신사 안쪽으로 들어가는 나를 따라 텐구들의 눈이 움직였다. 

감시자의 눈처럼 매서운 눈초리 수십 개가 나를 향해있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신사의 사당 앞에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텐구들을 쭉 훑어보았다. 

모두 하나같이 늠름한 사내의 모습을 한 텐구들은 어딘가 지쳐 보였다. 

깔끔하지만 자세히 보면 낡은 옷을 입고 그 어깨에 달린 단단한 날개들은 윤기를 잃고 퍼석퍼석해 보였다. 

내 눈빛을 하나하나 받아 치는 텐구들은 그 특유의 거만한 넘치는 눈빛으로 나를 속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방진 녀석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뻔뻔히 ‘신’을 노려보는 겁 없는 태도에 너털웃음이 나왔다.


“이야~ 이렇게 환영식까지 마련해 주다니 고마운 걸~”

태연하게 웃는 얼굴로 도발하듯 말하자 텐구들이 일제히 눈을 부라리며 험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한 몸처럼 일제히 움직이는 모습에 우스워 웃음이 나오려는 입을 소매로 가렸다. 

기분 좋게 녀석들의 눈길을 받아주며 무슨 이유로 이렇게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인지 물으려 입을 연 순간, 푸른 창공 가득히 푸드덕거리는 거센 소리와 함께 다른 텐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큰 날개를 가진 텐구가 신사에 내려앉았다.

나를 향해있던 텐구들의 눈빛이 모두 새로이 신사에 도착한 텐구에게로 쏠렸다. 

몇몇 텐구는 새로 등장한 텐구에게 달려가 존경에 가득 찬 눈빛으로 텐구를 올려다보며 말을 걸고 있었다. 


흐음~ 저 녀석이 수장인가? 


후에 등장한 텐구는 역광으로 검게 보이는 실루엣으로 보아 다른 텐구들보다 한 층 큰 덩치와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따각따각 나막신이 신사의 돌 바닥에 부딪쳐 청량한 울음을 자아냈다. 길을 터주는 텐구들 사이를 걸어 내 앞에 선 텐구가 고개를 들었다.


“…!!”

맑은 유리처럼 빛나는 푸른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숨을 쉬는 것을 잊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사랑스러운 아이, 카라마츠의 얼굴이 바로 내 눈앞에 서 있었다.



“환영한다. 「신」이여. 나는 이 마을에 터전을 잡은 카라스텐구의 수장(首長), 카라마츠다.”



“「신」님!!”


신사를 가득 채우고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과거로 쓸려간 것처럼 그리웠던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빙긋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그 부드러운 눈빛과 손길이 기억에서 빠져 나와 내 몸을 더듬었다. 



그 그리운 아이가, 

카라마츠가,

지금 내 눈 앞에 있다…



쿵쿵대며 크게 박동하는 심장이 고막을 울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숙였다. 

새삼스레 다시 몇백 년도 지난 기억이 나를 옭아맸다. 


아, 그립다. 

카라마츠가, 그립다.


입술을 깨물고 필사적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하는 사이, 다시 텐구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괘, 괜찮은가?”

기특하게도 나를 걱정하는 음색에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소매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들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얼굴이 티끌 하나 변하지 않고 온전히 내 앞에 존재했다. 


“그래, 수장씨. 어째서 이렇게 많은 텐구들이 신사에 몰려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까?”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기도하며 물었다. 다행히 떨리지 않고 맑은 목소리가 나와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텐구의 수장’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이 마을을 수호해 왔으며 천상에 토지신을 내려달라고 요청한 것도 자신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천상에서 내려온 토지신을 환영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여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요괴가 ‘신’을 환영이라…


요괴와 신 사이에 통용되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깨부수는 행위에, ‘신’인 나를 경솔하게 대하던 카라마츠가 떠올라 빙긋- 미소가 피어 올랐다.


“그럼 앞으로 너희들은 계속 하던 대로 이 마을을 수호하면 돼.”

“…!”

내 말에 놀란 얼굴을 한 텐구의 수장을 뒤로 하고 신사의 입구에 놓인 붉은 토리이 위에 올랐다. 

환하게 비치는 햇빛을 받아 커다란 마을이 반짝였다. 커다란 호수와 익숙한 지형에 가슴이 포근해지면 꽉- 하고 조였다. 



아아, ‘그 마을’이다.

카라마츠의 마을이다.


내가 다스렸던 그 마을이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마을이다. 



이미 저 커다란 호수의 바닥에 가라앉은 옛 마을을 품고, 새로운 마을이 빛을 받아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가슴 가득 피어 오르는 따스함에 미소 지었다. 

망할 대국주 할아범이 내 다짐을 알고 있으면서도 싸구려 도발을 해가며 이곳으로 보내려 한 이유를 깨달았다. 

다시는 ‘다른’ 마을을 다스리지 않겠다고 한 나에게 ‘같은’ 마을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해준 할아범의 배려에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얼굴을 간질이는 바람에 따라서 꼬리를 느긋하게 흔들었다. 

지형은 다소 변했어도 이곳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생기 넘치게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나의 사랑스러운 마을이다.


천리안으로 쭉 마을을 훑어보자 군데군데 보이지 않는 구석에 악한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힘을 모아 마을 전체에 결계를 피고 산의 정기를 정화했다. 

하는 김에 뒤쪽에 서 있을 텐구들에게도 맑은 정기를 나누어 주었다. 

‘내 마을’을 수호하는 녀석들이 약하면 곤란하니까. 결계와 정화로 힘의 절반이 날아갔다. 

무겁게 팔 다리를 짓누르는 피로감에 쓰게 웃었다. 

확실히 너무 놀았던 걸지도. 

과거엔 이 정도에 지칠 정도는 아니었는데, 전성기가 지나버린 몸은 이 마을을 수호하기에는 조금 힘이 부칠지도 모르겠다. 

다시 힘을 기를 방도를 궁리하며 토리이에서 내려왔다. 


멍청히 나를 보고 있는 텐구들 사이로 푸른 눈을 가진 수장에게 다가갔다. 

웃으며 손을 내밀자 텐구는 고개를 갸웃하며 내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악수도 모르는 건가?


“악수하자고?”

“아, 아아...”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한 텐구가 큰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카라마츠처럼 크고 딱딱한 손. 결코 부드럽다고 할 수 없는 그 손은 굉장히 따뜻해서 놓고 싶지 않은 그런 상냥한 손이었다. 

분명 토지신이 없는 이 마을을 지키느라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과거 내가 다스렸던 때보다 훨씬 더 커진 마을은 내가 봐도 수호하기 힘들어 보였다. 

수고했다는 노고의 위로를 담아 손을 두어 번 위아래로 흔들고 놓았다. 여전히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는 텐구에게 말했다.


“나는 오소마츠. 잘 부탁해.”

“아아.. 아까도 말했듯, 나는 텐구의 수장 카라마츠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해~”

싱긋 웃으며 말하자 텐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처럼 깊은 눈동자의 심연에서 맑게 빛나고 있는 영혼이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자신의 수하들을 이끌고 신사 맞은편의 산으로 돌아가는 텐구를 배웅했다. 





맑고 깨끗하고 올곧은 그 영혼은 분명, 


카라마츠의 것이었다. 








3.

“예?!! 어째서 그럴 필요가 있는 거죠?!”

예상했던 대로 거세게 반발하는 젊은 텐구들의 목소리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를 잡고 줄을 맞추어 앉아있는 젊은 텐구들을 바라보았다.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회의. 오늘의 안건은 ‘토지신’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들의 힘 만으로는 도저히 이 큰 마을을 수호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토지신을 부르자는 제안을 했지만, 카라마츠의 오랜 친구 치비타를 제외한 다른 텐구들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요괴들 중에서도 자존심이 높다고 소문난 것이 텐구이다. 

우리들의 힘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텐구인 나도 잘 알고 있다. 푹- 다시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아무리 우리가 힘을 쓴다고 해도, 토지신이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은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요괴’인 우리의 수호와 ‘신’의 수호가 그 성질이 다른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신’의 수호가 없다면 결국엔 어떻게 되는지 모두 이미 체험한 바.”

과거를 언급하자 바로 텐구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전, 이 ‘여우골’이라고 불리는 마을에 지냈을 무렵, 여우골보다 더 크고 번창했던 마을은 아무리 우리들이 온 열의를 다하여 수호하여도 조금씩 부정한 기운에 침식되어 갔다. 

토지신이 없는 토지의 정기는 서서히 검게 물들여졌고, 결국 우리의 수호가 빈틈을 보이자마자 온갖 악귀와 악령에 점령당한 마을은 인간도, 요괴도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 후로 얼마나 오랜 세월을 전국을 떠돌며 힘겹게 살아왔는지, 이 회의에 참석한 녀석들은 모두 알고 있을 터였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고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는 젊은 텐구들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치비타에게 천상에 보낼 서신을 부탁하고 회의를 종료했다. 

비통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린 젊은 텐구들은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방을 나섰다. 




“그렇다곤 해도, 마음에 안 드는 건 어쩔 수 없어, 쨔샤.”

젊은 텐구들이 모두 물러난 방 안. 홀로 남은 치비타가 서신을 작성하며 주먹으로 코를 문댔다. 

작성이 끝나 건네 받은 서신을 읽으며 혹 예의에 어긋나는 문장은 없는지 확인하여 다시 치비타에게 건넸다. 

회의에서 나를 생각해 굳이 반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치비타도 토지신을 들인다는 것에는 거부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오랜 친구의 한마디에 쓴웃음이 나왔다. ‘텐구’라는 종족은 요괴들 사이에서도 급이 제법 높은 종족이다. 

푸른 하늘을 지배하며 선천적으로 높은 요력을 타고 나는 우리들에게는 타 종족을 배척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자존심 따위를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터전을 잃는 것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등받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치비타에게 말했다. 


“그래도 신의 가호가 있다면 저번과 같이 터전을 잃지는 않을 테니까..”

“너도 참 대단한 녀석이야- 쨔샤.”

웃으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말의 의도를 이해한 오랜 친구가 방을 떠났다. 

은은하게 빛나는 작은 등불이 어둠에 감싸인 방 안을 밝게 비추었다.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흔들리며 그 빛을 계속 발하는 작은 등불을 보며 눈을 감았다. 




분주히 움직이며 젊은 텐구들이 신사를 청소했다. 

먼지를 쓸고 닦고 비록 신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힘으로 산의 정기도 정화했다. 

아무리 이 신사를 마을의 인간들이 잘 관리했다고는 하나 주인이 없던 빈 신사는 처참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수리해야 할 부분들을 하나하나 고치며 시간에 맞출 수 있기를 빌었다. 

얼마 전, 우리가 보낸 천상에 보낸 서신에 대한 답장이 내려왔다. 


모월 모일 ‘신’이 내려갈 테니 준비하라는 편지의 내용에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신의 가호가 있다면 지금보다 더 곤고히 마을을 수호할 수 있을 것이고, 어렵게 찾은 터전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얼추 청소가 끝나자 직접 돌아다니며 신사의 상태를 확인했다. 

어떤 신이 내려올 지는 모르겠으나 괜히 트집을 잡히고 싶지는 않았다. 

‘신’이라는 것은 가끔 ‘텐구’ 이상으로 요괴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본래 ‘신’과 ‘요괴’는 기름과 물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 터전을 위해서는 오늘 내려오는 신과 양호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신사의 청소는 양호한 관계를 위한 첫 단계였다. 

신사 곳곳을 돌아다니며 확인하면서 마주친 젊은 텐구들은 모두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신’을 위해서 청소를 하는 것이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다. 


모든 수리와 청소를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곧 신이 내려올 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젊은 텐구들을 두 줄로 세웠다.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묵묵히 내 말에 따라주는 젊은 텐구들에게 쓰게 웃은 뒤, 날개를 펴 하늘로 올랐다. 

어떤 신이 내려올지 내 두 눈으로 확실히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날아오른 뒤, 바로 하늘 저편에서 화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신의 도래에 젊은 텐구들 모두 입을 벌리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밝게 빛나는 화차는 조심스럽게 신사에 내려앉았다. 

곧 화차에서 붉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사에 발을 딛고 고개를 든 ‘신’의 모습에 젊은 텐구들은 모두 적의에 가득 찬 시선을 보냈다. 

신’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몇 번을 다그쳐도 텐구들에게 깊게 박혀있는 기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젊은 텐구들의 모습에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면서도 ‘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궁금했다. 

붉은 기모노를 입은 신은 황금색의 꼬리와 귀를 흔들며 텐구들 사이로 걸어가 사당의 앞에 섰다. 

빙글 몸을 돌려 텐구들을 바라본 신이 빙긋 웃었다. 


“이야~ 이렇게 환영식까지 마련해 주다니 고마운 걸~”

장난기가 묻어 나오는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뜻 밖의 신의 말에 젊은 텐구들은 모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보통의 ‘신’이라면 자신을 노려보는 텐구들에게 무례하다며 호통을 치고도 남았을 텐데… 

걱정과 달리 말이 통하는 ‘신’이라는 생각에 날개를 크게 퍼덕여 모습을 드러내고 신사로 내려갔다. 

몇몇 텐구가 다가와 나를 반겼다. 손을 들어 그들은 잠시 물리고 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름답다..


신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저항할 수도 없는 ‘신’의 기운에 말을 잃었다. 

붉은 기모노가 은근하게 얇은 몸을 감싸고 그 뒤에서 윤기가 흐르는 황금색의 꼬리가 살랑거렸다. 

탁한 빛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유리 같은 붉은 눈동자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무엇에 놀랐는지 신은 그의 꼬리와 귀를 크게 움찔거리며 크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환영한다. 「신」이여. 나는 이 마을에 터전을 잡은 카라스텐구의 수장(首長), 카라마츠다.”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자 신의 붉은 눈동자에 슬픔이 서렸다. 

가늘게 뜬 눈이 촉촉히 빛났다. 

대체 무엇 때문에 저런 얼굴을 하는 걸까. 

신의 아름다운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는 모습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괘, 괜찮은가?”

걱정되어 묻자 신이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소매로 눈가를 훔치고 고개를 든 신이 온화하게 웃었다. 


“그래, 수장씨. 어째서 이렇게 많은 텐구들이 신사에 몰려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까?”

신의 목소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헛기침을 하며 목을 다듬고 바로 입을 열어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어떻게 이 마을에 살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이 마을을 수호해 왔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천상에 토지신을 요청했다는 것도 모두. 마지막으로 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는 말을 하자 신이 복잡한 얼굴로 내 뒤에 서 있는 젊은 텐구들을 훑어보았다. 

쭉- 자신을 향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눈길을 하고 있는 텐구들에게 은은하게 웃은 신은 곧 입을 열어 그 청아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럼 앞으로 너희들은 계속 하던 대로 이 마을을 수호하면 돼.”

“…!”

‘신’의 말에 놀라 입이 벌어졌다. 

신은 자신을 향한 젊은 텐구들의 눈길을 그대로 받으며 유유히 걸어 토리이 앞으로 다가갔다. 

훌쩍 몸을 띄워 토리이 위로 올라가 마을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토리이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의 인영.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고고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너무나 고독해 보였다. 

대체 어떤 얼굴로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알고 싶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곁에 다가가고 싶다는 욕구에 당혹스러웠다. 

망연히 서서 ‘신’을 올려다보고 있자, 신은 곧 손을 들어 온 마을을 감싸는 결계를 만들어 냈다. 

순식간에 투명한 막이 마을을 감싸고 마을 곳곳에 숨어있던 사악한 기운을 몰아냈다. 

한층 더 맑아진 산의 정기가 마을과 우리들을 둘러쌌다. 온 몸을 타고 부드럽게 매만지는 따스한 기운에 눈을 더 크게 떴다. 

젊은 텐구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신’은 지금 자신의 정기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온 몸을 감싼 기운은 곧 내 몸에 ‘힘’을 주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힘에 날개를 펼쳐 보았다. 

검고 큰 날개에 윤기가 흐르고 힘찬 날개짓에 일순 큰 바람이 일었다. 신은 다시 토리이에서 뛰어내려 내 앞으로 다가왔다. 

손을 내 앞에 내민 신의 행동에 당황에 빤히 그 손을 내려보고 있자 신이 입을 열었다. 


“악수하자고?”

“아, 아아…”

신의 작은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작고 부드러운 손이 내 손을 강하게 쥐었다가 놓았다. 손에 남아있는 온기에 묘하게 안타까워졌다. 


“나는 오소마츠. 잘 부탁해.”

싱긋-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멀거니 그 미소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아.. 아까도 말했듯, 나는 텐구의 수장 카라마츠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해~”

얼떨결에 대답한 내 말에 신이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곧 활짝 웃었다. 

젊은 텐구들을 이끌고 다시 청산으로 돌아가는 우리들을 ‘신’은 신사에 홀로 서서 배웅했다. 

우리를 향한 ‘신’의 눈빛을 본 순간, 꾹- 하고 심장이 조이는 감각에 가슴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건강하기 그지 없는 몸이다. 

심장이 아플 이유가 없는데도 지속적으로 심장을 조여오는 달콤쌉싸름한 이유 모를 고통에 나도 모르게 눈썹이 찌푸려졌다.








4.

영지에 발을 내딛자마자 젊은 텐구들의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하필이면 그런 하급신을..!!”

“인간형이라고는 하나 짐승의 귀와 꼬리가 붙어 있는 하급신을 내려주다니!”

“천상이 우리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증거야!!”

“우리가 얼마나 힘겹게 이 마을을 수호해 왔는데, 이제 와서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얻겠다는 심보지!”

“우리에게 잡일을 맡기겠다니 결국 지는 띵까띵까 놀면서 인간들의 숭배나 받겠다는 소리 아니야?!”

성난 표정으로 제 멋대로 떠들기 시작한 젊은 텐구들의 어리석음에 얼굴이 굳었다. 

서서히 내려앉는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치비타가 젊은 텐구들을 다그치며 불만을 잠재우려 했으나, 쉬이 젊은 텐구들의 원망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만!”

결국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불평을 토로하던 젊은 텐구들이 모두 몸을 움츠리고 두려움이 서린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어리석음에 질려 나도 모르게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며 이마를 짚었다. 

푹- 나오는 한숨을 감추지 않고 손을 들자 젊은 텐구들이 재빨리 방을 빠져나갔다. 

이전의 거처에서부터 나를 따르고 충성을 바친 텐구들이었다. 

나에게 분에 넘치는 존경을 보이는 텐구들이지만 이럴 때마다 드러나는 텐구의 치졸한 자존심과 그 생각의 짧음에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털썩 자리에 누워 어릴 적 겪었던 ‘신’에 대해 생각했다. 


어린 시절 살았던 마을에는 ‘신’이 있었다. 

요괴를 극히 혐오하는 그는 마을에 머물고 있는 우리를 핍박하고 무시했다. 

‘신’의 만행에 참지 못하고 마을을 뛰쳐나가는 자들도 있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내게 ‘신’이란 그런 존재였다. 

‘신’의 필요성을 느끼고 어떤 신이 와도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있던 나에게 ‘오소마츠’는 정말로 뜻 밖의 인물이었다. 


오소마츠의 검은 머리칼 위에서 살랑이던 황금색 귀와 유유히 하늘거리던 4개의 꼬리. 

본디 ‘신’이라는 존재는 그 힘이 강대할수록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짐승의 귀와 꼬리는 처음부터 ‘신’으로 태어난 자가 아닌, 짐승에서 오랜 수련을 통해 ‘신’이 된 자들의 상징이었다. 

그런 신들은 완벽한 인간의 형태를 지닌 신보다 급이 낮은 하급신이었다. 

그런데 오늘 보여준 오소마츠의 힘은 결코 하급신의 힘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결코 작지 않은 온 마을을 감싼 결계는 그 어떤 악귀가 와도 뚫지 못할 정도로 단단하고 견고했다. 

결계뿐만 아니라 마을을 둘러싼 산의 정기까지 정화하고 우리들에게 그 정기를 나누어 주었다. 

그런 힘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나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큰 힘이었다. 

몸을 감쌌던 맑은 정기와 함께 범접할 수 없는 큰 힘의 차이에 나도 모르게 온 몸이 떨렸다. 

그렇게 작고 여린 몸을 하고 있으면서 그런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우리의 편의를 봐 준 것에도 놀랐다. 



“그럼 앞으로 너희들은 계속 하던 대로 이 마을을 수호하면 돼.”


완전한 존재인 ‘신’이 ‘요괴’인 우리들을 배려해 준 것이다. 

줄곧 우리가 이 마을을 수호해왔던 것을 인정하고 우리의 행위에 특별히 제제를 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오소마츠는 그 말을 한 것이다. 

우리들에게 행동의 자유를 보장해 준 것이다. 


그리고 악수까지. 

그 작은 손을 잡았던 자신의 손을 들어 쳐다보았다. 

따스했던 그 손은 어쩐지 안심이 되는 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신’은 결코 ‘요괴’에게 닿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를 불결하다며 경멸하고 멀리하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신’의 모습이었다.

 오소마츠처럼 웃는 얼굴로 먼저 악수를 청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봐 왔던 ‘신’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오소마츠가 더 알고 싶었다. 

신사에 홀로 서서 우리들을 배웅하던 오소마츠의 모습을 본 이후로 사라지지 않는 이 가슴의 고통의 이유도 알고 싶었다. 

내일 한번 더 오소마츠를 만나러 갈 것을 홀로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6.

신사의 돌바닥에 나막신이 따각 하고 울리며 소음을 냈다. 

신사에 도착해 날개를 접고 한결 정결해진 신사의 기운에 미소 지으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사당은 오소마츠의 신통력에 의해 사람이 살 수 있는 커다란 저택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서 있었다. 

저택을 올려다보며 오소마츠를 어떻게 불러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사이, 문이 쾅! 하고 열리며 오소마츠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거대하게 혹이 솟은 머리를 감싸고 울상이 된 얼굴로 저택에서 뛰쳐나온 오소마츠가 몸을 돌려 크게 외쳤다.


“아프잖아!! 쵸로따르스키이!!!!”

“누가 쵸로따르스키냐?!”

오소마츠의 노성에 맞서며 저택에서 나온 요괴의 큰 목소리에 놀라 입을 벌렸다. 

온 몸에 붕대를 감고 녹색의 기모노를 입은 요괴는 어째선지 나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요괴면서 ‘신’인 오소마츠에게 성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요괴를 빤히 쳐다보자 내 시선을 눈치챈 요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서 있는 우리 둘의 사이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소마츠가 웃으며 껴들었다.


“어이어이, 그렇게 서로 찐-하게 쳐다보다니~ 첫눈에 반했어~?”

오소마츠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녹색의 기모노를 입은 요괴가 얼굴을 구기며 오소마츠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오소마츠의 볼을 꼬집었다.


“아파아파아파~!!!”

솔직하게 아파하는 오소마츠를 험악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녹색의 요괴가 말했다.


“됐고, 얼른 밀린 일이나 해.”

“우우~ 아파라~~”

요괴가 잡고 있던 볼을 놓아주자 슬슬 볼을 쓰다듬으며 오소마츠가 입을 비죽 내밀었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불평하고 있는 오소마츠를 노려본 녹색의 요괴가 놀라 굳은 채, 서 있는 나에게에게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 망할 신의 보좌로 온 쵸로마츠라고 합니다.”

“…테, 텐구의 수장, 카라마츠라고 합니다.”

정중하게 인사하며 존댓말을 하는 녹색의 요괴에게 이끌려 존댓말로 대답했다. 

인사를 마치자 마자 쵸로마츠가 슬금슬금 도망치려는 오소마츠의 꼬리를 꽉 붙잡았다. 

오소마츠의 황금색 귀가 곤두서고 털이 바짝 일어났다.

울상이 된 얼굴로 뒤돌아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외쳤다.


“아파!!!”

“도망치지 마!!! 손님 오셨잖아!”

쵸로마츠의 짜증 섞인 음성에 오소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더니 “네이네이~”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어제와 같이 장난기 묻어 나오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오소마츠가 내게 인사했다.


“어서 와, 텐구님~ 그런데 무슨 일?”

“아, 아니… 그…”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 오소마츠의 질문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말을 더듬었다. 

솔직하게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해야 할까.. 

온 몸을 감싼 긴장에 침을 삼키고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오소마츠가 피식- 웃음을 흘리곤 꼬리를 흔들었다.


“밥 먹고 갈래?”

“..밥?”

“응.”

오소마츠의 제안에 놀라 되물었다. 


‘밥’이라니. 

신은 정기와 인간들의 신앙으로 살아간다. 

특별히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는 신의 입에서 나온 낯선 단어에 놀란 나를 당연하다는 얼굴로 바라본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와 동조했다.


“그래, 모처럼 왔으니 먹고 가.”

“아, 아아..”

얼떨결에 대답하자 바로 저택 안으로 안내 받았다. 

넓은 저택의 안은 반짝거리며 잘 정돈되어 있었다. 

바로 큰 방으로 안내 받아 자리에 앉자 커다란 상이 둥실 둥실 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상 가득 펼쳐진 먹음직스러운 음식의 향연에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처음 보는 음식까지 차려진 상에 앉은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젓가락을 들고 웃었다.

“잘 먹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따라 인사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고슬고슬 김을 내며 맛있는 밥과 함께 반찬 하나하나가 모두 진미였다. 

미각으로 충족되는 행복감에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자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빙긋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느긋이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오소마츠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진짜로 왜 찾아왔어?”

“아, 아니.. 그 감사를 말하고 싶어서.”

“감사?”

“오소마츠가 와 준 덕분에 산의 정기가 더 맑아진 것을 물론이고 우리들만으로는 막을 수 없었던 사악한 기운까지 모두 몰아낼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들의 일도 자유로이 할 수 있도록 해 준 것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정기를 맑게 하고 마을을 수호하는 것은 응당 내가 할 일이고, 너희가 마을을 수호하면 그만큼 내 일이 줄어드니까 그렇게 한 것뿐이야. 그렇게 감사를 들을 정도의 일이 아닌걸.”

오소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담뱃대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묘하게 요염해보여 고개를 흔들고 번뇌를 떨쳐냈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오소마츠에게 미소 짓자 오소마츠의 귀가 움찔 떨렸다.


“어찌되었던 감사하고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 많은 교류를 하고 싶어서..”

내 말의 어디가 웃겼던 걸까 갑자기 오소마츠가 몸을 숙이고 큭큭 거리며 어깨를 떨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든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


“언제든 네가 원하면 찾아와.”

원했던 것 이상의 대답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 오소마츠가 다시 배를 잡고 웃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그저 가만히 오소마츠를 바라보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7.

“갔어?”

이미 저 편의 산으로 날아간 카라마츠를 배웅하는 내 뒤로 다가온 쵸로마츠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자 쵸로마츠가 눈썹을 올리고 의아하단 얼굴로 물었다.


“원래 텐구는 타 종족에게 저렇게 호의적이지 않은데 말이야..”

쵸로마츠의 말에 어제 나를 환영한다며 모인 텐구 무리의 적의 가득한 눈길을 떠올리고 웃었다. 

보통은 그런 눈빛을 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저 바보 같은 녀석은 정면으로 호의를 숨기지 않고 오늘도 신사에 찾아와준 것이다. 

웃음을 흘리는 나를 보며 쵸로마츠가 인상을 구겼다. 

씩- 웃으며 쵸로마츠에게 텐구의 인상을 묻자 제법 호평을 하며 쵸로마츠가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은 녀석 같은데?”

한때는 형제였던 두 녀석이 처음 뵙겠다며 인사를 하는 것을 지켜보니 어쩐지 가슴이 애달프면서도 웃겨서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던 것을 떠올렸다. 

형제였던 기억은 없지만 서로가 마음에 든 눈치였다. 


이렇게 짓궂은 인연이 또 있을까. 

이런 형태로 다시 카라마츠를 만나게 해 준 것에 감사하면서도 조금은 원망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녀석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를 향한 눈빛에는 맹목적인 호감이 담겨 있었다. 

부드럽고 열정적으로 나를 향한 그 눈길이 싫지 않으면서도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조금 슬퍼졌다. 




카라마츠를 배웅하고 집으로 들어서자 마자 식신을 시켜 집 안을 청소했다. 

예전 같으면 사용하지 않는 방에 먼지가 쌓이건 어쩌건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쓰게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가 남은 재료를 다듬어 정리했다. 

이제 완전히 나에게 주방일을 맡긴 쵸로마츠는 방으로 들어가 오늘 안으로 처리해야 할 서류를 정리했다. 

항상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는 주방을 한번 바라보며 아직도 남아있는 카라마츠의 흔적에 새삼 슬픔이 몰려왔다. 


식사를 하는 것도, 집을 깔끔하게 하는 것도 예전의 나라면 신경 쓰지 않았다. 

천 년이 넘는 삶 중에서 카라마츠와 함께 한 세월은 고작 1년. 

그 1년이 예전의 나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나를 변화시켰다. 

산의 정기()로 대신했던 식사는 이제 꼬박꼬박 챙겨먹는 것으로 모자라 내가 직접 요리를 하게 되었고, 어지럽게 물건이 널린 방을 보면 반드시 청소를 했다. 



그 짧은 시간, 카라마츠는 확실하게 내 안에 자신의 존재를 새기고 떠났다. 





자주 찾아오겠다고 말한 텐구 카라마츠는 그 날 이후, 매일 신사를 찾았다. 

찾아오는 시간은 매일 달랐지만, 꼬박꼬박 하루에 한번은 잠깐이라도 얼굴을 내밀었다. 

대체 언제 의기투합했는지 카라마츠는 금새 쵸로마츠와 친해져 신사를 찾아올 때마다 쵸로마츠와 대화꽃을 피우고 웃었다. 

시원스레 웃는 얼굴에 다시 과거가 기억나 안타깝게 가슴을 조이는 고통에 텐구 카라마츠와 쵸로마츠가 대화를 하고 있으면 바로 자리를 피했다. 

카라마츠의 영혼을 이어받은 그 텐구가 곁에 있는 것이 기쁘면서도 괴로워서 나는 아직도 텐구 카라마츠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오소마츠.”

쵸로마츠가 남긴 서류를 펄럭이며 넘기고 있으니 방문을 열고 텐구가 들어왔다. 

부드럽게 나를 부르는 낮은 음성에 몸이 절로 뛰었다. 

내게 다가와 맞은편에 앉으면 “미안하군,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다.” 하며 사과하는 텐구에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 어색해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바라보고 있으니 내 앞에서 엄청나게 나를 응시하는 눈길에 정수리가 따가웠다. 

고개를 들고 미소 띤 얼굴로 왜 찾아왔냐고 물으니 텐구가 쓴웃음을 건네며 물었다.


“우리 영지의 텐구들에게 너와 교류할 필요가 없다고 들어서.. 오소마츠, 네 생각에도 ‘요괴’인 나와 ‘신’인 네가 가깝게 지내는 것이 이상한가?”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을 건네며 짙은 눈썹을 찌푸리는 텐구의 모습에 고개를 기울였다. 

왜 지금 와서 그런 것을 묻는 걸까? 가만히 눈을 마주하고 있자 텐구가 살짝 눈을 피하며 다시 물었다.


“그.. 내가 찾아오는 것이 민폐..인가?”

“어? 아니?”

망설이며 묻는 질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와서 그런 것을 묻는 건가? 

솔직하게 별로 민폐도 아니고 부담도 아니라고 대답하자 텐구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한숨에 웃음을 섞어 내뱉고 입을 열었다.


“네가 오면 쵸로마츠도 반가워 하고. 상관 없어, 얼마든지 찾아와도.”

“오소마츠는?”

“..나?”

내 말에 다시 눈썹을 찌푸린 텐구가 물었다.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내 눈 앞에 앉아있는 텐구를 응시했다. 

카라마츠와 같은 맑은 영혼이 그대로 비치는 푸른 눈동자. 

아무리 저항해도 저 눈동자를 무시하는 것은 할 수 없었다.


“나도 별로 민폐라고 생각 안 해.”

“하지만..”

“응?”

“..오소마츠는 내가 찾아오면 나를 피하지 않나?”

“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정확히 짚고 물어오는 텐구의 목소리에 얼이 빠져 대답을 망설였다. 

내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텐구의 얼굴에 짙게 그늘이 드리웠다. 재빨리 손사래를 치며 다급히 말했다.


“아니!! 그게! 그건, 그러니까아…”

“오소마츠, 혹시 내가 그.. 탐탁지 않은가?”

“그게 아냐!! 그게 아니라… 우응~ 별로 피하려는 생각은 없었어? 정말로.”

“정, 말인가?”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오소마츠는, 한 번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으니까.”

텐구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맑은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바라보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굳게 입을 다물어버린 나는 고개를 숙이고 손에 쥐고 있던 붓을 놓았다.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방 안에 울렸다.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이 나를 누르고 목을 조여왔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에 가슴이 아파 가슴께의 옷자락을 쥐고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 텐구를 바라보자 조금은 슬픈 얼굴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대답을 재촉하는 방법도 똑같은 거냐고..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인간 카라마츠.

나의 소중한, 사랑스러운 카라마츠.

그리고 내 눈앞에 앉아있는 그와 같은 영혼을 지니고, 같은 얼굴을 한 텐구 카라마츠.



머리 속을 휘감는 혼란스러움에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한 채, 그저 한숨 섞인 숨만은 내뱉었다. 

같은 영혼을 지니고 아무리 얼굴과 행동이 닮았다고 해도, 눈 앞의 카라마츠는 나의 카라마츠는 아니다. 

눈 앞의 카라마츠가 그 카라마츠이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과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외치고 있는 이성과 과거를 기억해내는 그리움이 뒤섞여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오소마츠.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건가?”

고요히 나를 바라보며 슬픈 눈빛으로 묻는 텐구에게 고개를 저었다. 

이 텐구에겐 죄가 없었다. 

단지 내 머리와 마음이 눈 앞의 텐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실은, 예전에 사랑하는 아이가 있었어.”

“..엩?”

“그런데 너는 그 아이와 너무나 닮아서, 조금 대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야.”

“…”

“너와 그 아이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어. 단지, 너무 닮아서 당황스러울 뿐이야. 그러니까…”

“…”

“조금만, 내게 시간을 주지 않을래? 제대로 너를 ‘카라마츠’라고 부를 수 있을 때까지.”

진실을 섞어 마음을 전하자 텐구는 잔잔한 미소를 피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싫어서 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 것처럼 보였다. 

어린 얼굴에 피어 오른 부드러운 미소에 절로 손이 올라가 텐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엩?!”

“착하다~”

놀라 눈을 크게 뜨는 텐구의 모습이 귀여워 웃으며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텐구는 이내 놀란 얼굴을 거두고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8.

“그러고 보니, 카라마츠~”

“뭔가?”

사당에 나란히 앉아 청산 너머 넓은 하늘에 펼쳐진 석양을 함께 바라보며 카라마츠가 물었다. 

턱을 괴고 있는 얼굴을 살짝 돌려 옆에 앉은 카라마츠와 눈을 마주했다.


“너는 내가 내려온 거에 불만 없었어?”

“오소마츠에게? 불만?”

“우응~ 나 하급신이니까.. 좀 더 강한 신을 내려주길 바랬다던가.. 뭐 그런 거~”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 카라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푸른 눈동자가 상냥하게 나를 비추며 내 머리에 얹은 큰 손이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우 신사니까 여우신이 내려온 것일까-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만?”

“..정말로 그것뿐?!”

“아아..”

“진짜냐..”

보통은 불평한다고? 

모처럼 내려온 토지신이 짐승의 귀와 꼬리를 가진 하급신이면… 

투명하게 빛나며 거짓을 보이지 않는 카라마츠의 태도에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녀석은 이런 녀석이었다. 

전생에 인간이었을 때도, 신인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막 대하더니, 지금도 이 모양이라니.. 


피식- 웃으며 짓궂은 생각이 들어 꼬리를 즐겁게 너울거리며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너, 처음엔 나를 싫어하지 않았어?”

“에? 내가?”

“우응~ 뭔가, 처음 만났을 때, 굉장히 무뚝뚝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아, 그것은..”

“응?”

눈썹을 찌푸리고 내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린 카라마츠가 흠, 흠 하고 헛기침을 한 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소마츠가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하아?!?! 바, 바보 아냣?!”

빈틈을 찌르고 들어오는 부끄러운 발언에 순식간에 얼굴이 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뻐끔뻐끔 입을 벌리고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며 카라마츠가 부드럽게 웃었다. 





* 실은 평일에 꾸준히 써서 약 80% 까지 완료했었습니다만, 오늘 읽어보니 너무 재미가 없어서 싹 갈아엎느라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 내일 중으로 단편 하나 이상!! 올리겠습니다. 모처럼 일이 적은 휴일이기에!!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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