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편입니다!


* 주의) 잔인하고 고어적인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주의) 캐붕이 있을 수 있습니다.


* 공미포 7,925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TV 화면에 흐르는 뉴스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관리국」에 등록한 후로 죽음이란 것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는 것을

센티넬임을 숨기고 일반인으로서 살아왔던 시절엔 죽음따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그리 먼 과거가 아닌데도 그 평화로웠던 나날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매일이 훈련과 출동의 반복. 죽지 않기 위해 훈련을 했고, 출동을 나서면 꼭 누군가가 눈 앞에서 죽어갔다

함께 훈련을 했던 친숙한 얼굴이 출동 다음 날은 보이지 않았다

나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죽음은 내 발치에 똬리를 트고 호시탐탐 나를 덮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무리 토토코라도 해선 안 되는 말이 있어.”

오소마츠 군이야말로 현실을 외면하지 마. ‘다나카의 죽음에는, 카라마츠 군이 관련되어 있어.

“….”

토토코에게서 시선을 돌려 고개를 숙이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초조함에 입술 안쪽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미 몇 번이고 시달린 연한 살은 곧 톡- 하고 터지며 진한 피를 뱉어냈다

입 안에 퍼지는 핏물을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


오소마츠 군.”

토토코는 올곧은 눈으로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강직한 그 눈이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져 가슴이 조였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흘러나올 것 같은 눈물을 억지로 참아내고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카라마츠 군은, 아니 카라마츠 군 뿐만 아니라 쵸로마츠 군과 쥬시마츠 군은 강하게 세뇌되어 있는 상태야.”

“….”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옳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아.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광신도처럼 오로지 「팔콘」에 이득이 되는 일만을 하고 있는 거야.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인명피해조차 무시할 정도로….”

“….”

토토코의 말에 그럴 리 없잖아라고 단언하지 못하는 자신이 혐오스럽다

나는 마음 속 한 구석에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카라마츠와 몇 번이고 부딪치면서, 그 싸늘한 눈초리를 몇 번이고 마주하면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이미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외면하고 싶은 잔인한 진실을….


왜 이렇게 된 걸까? 카라마츠

그렇게나 상냥했던 너는, 이제 없어진 거야

그렇게나 여리고 상냥했던, 귀여운 동생이었던 너를 만날 수 없는 걸까

카라마츠….


“…토토코.”

.”

, 세뇌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줘.”

“…괜찮겠어?”

.”

이 모든 일을, 카라마츠와 다른 녀석들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린 녀석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 자식이 무슨 짓을 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파헤치지 않으면 이성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나 착했던 카라마츠가, 쥬시마츠가 「팔콘」 따위의 범죄 집단을 돕는 이유를…,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알아야 했다

나는 녀석들의 이니까….

 

토토코는 잠시 눈썹을 찌푸리고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팔콘」은 조직 내의 감시계 능력자를 이용해 아직 자각하지 않은 센티넬이나 가이드를 납치해. 자각하지 않은 센티넬이나 가이드는 어리니까 조종하기 쉽거든. 그리고 조직 내에 감금하고 폭력과 약물을 이용해 정신을 망가뜨리고, 정신계 능력자가 세뇌를 반복하는 거야. 세뇌 당한 피해자들은 절대로 「팔콘」을 배신하지 못해. 게다가 피해자에게 수시로 각성제를 투여해서 인위적으로 센티넬의 등급을 올려.”

“…그래.”

꼭 물 속에 빠진 것처럼 팔다리가 둔하게 움직였다

온몸을 흐르는 피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차분해진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좀 더,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라 예상했는데…. 

자신의 감정에 위화감을 느끼며 토토코를 바라보았다.


“…토토코?”

“…, ….”

눈이 마주친 순간, 토토코의 몸이 크게 튀었다

굳은 표정으로 한 발자국 뒤로 떨어져 내게서 거리를 두는 토토코의 모습에 고개를 기울였다

토토코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고 주춤거리더니 할 일이 생각났다며 자리를 떴다.

 

 

 

토토코가 떠나고 텅 빈 방에 남아 고개를 들었다

한 시라도 빨리, 녀석들을 구해야 한다. 설령 싸우는 한이 있더라고


― 녀석들을 상처 입히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개자식의 손아귀에서 녀석들을 구해낼 것을 다짐하고 되뇌었다


―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2.

 

입구가 막힌 은행에서 시작된 커다란 알람 소리가 거리로 울려 퍼졌다

거대한 흙더미에 둘러싸인 은행 밖에 겹겹이 경찰차와 「관리국」 차량이 은행을 둘러쌌다

경찰과 「관리국」은 거리에 서성이던 민간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빠르게 피신시켰다

염동력을 가진 센티넬의 힘으로 입구를 막고 있던 흙더미가 치워지고, 「관리국」 소속 센티넬들이 단번에 은행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곧이어 텅 빈 거리에 굉음을 동반한 폭발로 은행의 입구를 비롯한 전면이 으스러졌다

길가에 불탄 지폐와 건물의 파편이 흩날렸다

오소마츠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종이쪼가리가 되어버린 지폐를 짓밟고 눈 앞에 서 있는 동생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카라마츠.”

센티넬과 센티넬의 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된 은행 안에서 사람의 비명소리와 물체가 일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절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소음조차 차단한 채, 오소마츠가 자신의 동생을 불렀다

공기 중에서 수분을 모아 이미 거대한 물덩어리를 만든 카라마츠가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은 차가운 눈으로 오소마츠를 마주보았다

제 형의 부름에도 카라마츠는 대답조차 들려주지 않았다

일렁이는 물덩어리가 순식간에 날카로운 얼음 조각으로 변했을 때, 오소마츠는 재빠르게 자신의 손에 불꽃을 피웠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고드름을 피하며 오소마츠가 불덩이를 날리면 카라마츠가 재빨리 물의 장벽을 펼쳤다

어느새 주변의 혼란에 녹아 든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서로를 으로 인식한 채, 격렬한 전투를 이끌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뒤에서 「관리국」의 센티넬들이 맹공격을 펼쳤다

카라마츠의 뒤에선 「팔콘」의 센티넬들은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자신들의 잔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거대한 두 세력이 충돌하는 가운데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있었다.

 

카라마츠!! 이쪽으로 돌아와!!”

카라마츠가 날린 얼음을 피하며 오소마츠가 간절히 외쳤다

이미 몇 번이고 외쳤던 부탁은 여전히 카라마츠의 귀에 닿지 않았다

지겹다는 얼굴로 콧방귀를 뀐 카라마츠가 다시 공격을 준비하며 말했다.


아직도 그 소리인가? 한심하기 짝이 없군.”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전열을 다듬어 다시 공격을 하기도 전에 커다란 불꽃을 일으켜 카라마츠에게 돌진했다

제가 공격하기도 전에 다가오는 오소마츠의 공격에 카라마츠가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코 앞까지 다가온 오소마츠의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카라마츠가 이를 뿌득- 갈며 오소마츠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불끈 쥔 주먹에 새빨간 불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숨을 들이마셨다.


정 이 횽아 말을 안 듣겠다면, 힘으로라도 널 데려올 거야.”

붉은빛이 오소마츠의 눈동자에서 남실댔다

오소마츠는 스스로를 막고 있던 망설임을 버릴 것을 각오했다

무의식 중에 그어둔 제한선을 넘어서는 것을 오소마츠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소마츠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버렸는지 알 리 없는 카라마츠는 어이없는 비웃음과 함께 고개를 기울였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로 한심하군. 게다가 제 뜻대로 안 되니 협박하는 건가? …정말이지 구제불능이군.”

카라마츠는 서늘한 눈초리로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어리석고 한심한 눈 앞의 적을 완전히 말살하기 위해 전력을 모은 카라마츠의 옆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물덩어리가 흔들리며 물결쳤다

울렁거리는 물덩이에서 총알처럼 작은 물방울들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 소리를 울리며 바닥에 부딪친 물방울은 대리석 바닥에 깊숙한 흔적을 만들고 사라졌다

마치 진짜 총에서 발사된 총알처럼 가공할 위력을 가진 물방울을 헤집고 오소마츠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보호막처럼 온몸을 새빨간 화염으로 감싸고 카라마츠에게 뛰어든 오소마츠가 망설이지 않고 일순 생겨난 카라마츠의 틈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허점을 찌르는 불길을 카라마츠는 피하지 못했다. “크흑!” 하고 고통스러운 신음이 앙다문 이 사이로 새어 나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급소는 피했지만, 오소마츠의 불꽃에 닿은 카라마츠의 왼쪽 팔은 검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탄내를 풍겼다

너덜너덜해진 검은 후드가 짙게 물들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피부가 피와 함께 질척한 덩어리를 이루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질퍽하게 땅에 떨어진 살의 파편과 공기에 노출된 붉은 살갗이 주는 고통에 카라마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심각한 화상을 입은 카라마츠의 팔을 본 순간, 또 다시 공격 하려던 오소마츠의 발이 멈췄다

이미 각오했던 상황임에도 오소마츠는 입술을 깨물며 망설임에 붙잡혔다.


한 번만 더 공격하면, 카라마츠를 쓰러뜨리면 다시 되돌릴 수 있는데…. 

머리 한 구석에서 어린 카라마츠가 울며 오소마츠의 발길을 붙들었다

아프다고, 괴롭다고, 울부짖는 어린 카라마츠의 환상에 오소마츠가 이를 갈았다.


공격해!! 공격 하라고!!!’

자신을 매도해보지만, 몸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눈 앞에 부상당한 카라마츠를 보고도 공격하지 못하는 제 꼴을 저주하고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공격할 수 없었다.


놓치는데…. 공격을 안 하면 놓치고 마는데….’

지긋지긋한 망설임이 오소마츠의 손에 피어 오른 불꽃을 좀먹었다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가는 불길을 카라마츠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끔찍한 화상의 고통을 잠시나마 억누른 카라마츠가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만들어내 오소마츠를 향해 날렸다.

 

““오소마츠 형!!””

은행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눈을 크게 떴다

오소마츠의 불길이 다시 힘을 되찾고 저를 향해 날아오는 얼음 조각을 깔끔하게 녹여 없앴다

아수라장 가운데서도 오소마츠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헤매지 않았다

은행 밖, 경찰들이 만든 안전선 밖에서 토도마츠와 이치마츠가 애타게 오소마츠를 부르짖고 있었다.


망설이지 마!! 카라마츠 형을 다시 데려오는 거 아니었어!!”

은근히 자랑하던 귀여운 얼굴을 잔뜩 뭉그러뜨리고 외치는 토도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가는 웃음을 흘렸다

오소마츠는 다시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눈빛으로 불꽃을 피운 오소마츠는 각오를 다졌다.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한 번만 더, 마지막 공격을 할 각오를 다진 오소마츠가 불꽃을 일으켰다

한 발 한 발 카라마츠에게 다가가는 오소마츠를 올려다본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오소마츠를 쓰러뜨리기 위해 전력을 담은 공격이 허사가 된 지금, 오소마츠에게 대항할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울렁거리는 붉은 불길을 응시하는 카라마츠 앞에 오소마츠가 멈춰 섰다.

 

오잇쇼~!!”

치열한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

오소마츠의 발 밑에 웅크리고 있던 지반이 하늘로 솟아났다.

흔들리는 땅에 오소마츠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쳤다

오소마츠의 눈 앞에 또 한 명의 동생이 맞섰다

1 2의 상황에 토도마츠가 초조하게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형!!”

동생의 걱정 어린 외침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괜찮다는 신호를 줌과 동시에 카라마츠의 입에서 싸늘한 말이 오소마츠를 꿰뚫었다.


시끄럽다.”

토도마츠에게 시선을 돌린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숨을 집어 삼켰다

한때 자신의 파트너였던 토도마츠를 바라보는 카라마츠의 눈빛엔 혐오가 서려있었다

본능적인 위험을 감지한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에게 손을 뻗기엔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조금씩 남은 힘을 비축하고 있던 카라마츠가 쏜 물방울이 토도마츠를 향했다.


피해!! 토도마츠!!”

오소마츠의 긴박한 목소리가 울리고 토도마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공격한 카라마츠를 멍청히 쳐다보았다

총알과 같은 위력을 가진 공격이 토도마츠에게 맞는다면 즉사할 것이 뻔했다

토도마츠를 향해 손을 펼쳤지만, 닿지 않음에 오소마츠가 절망한 순간 이치마츠가 토도마츠의 팔을 잡고 있는 힘껏 끌어당겼다

토도마츠가 피한 물방울은 뒤에 서 있던 경찰차에 맞아 두꺼운 앞유리를 박살냈다.


카라마츠, 방금 그거. 토도마츠였어.

호흡도 잊은 채, 오소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억양 없는 건조한 목소리가 고요히 전장 아래 내려앉았다

카라마츠는 자신의 공격이 맞지 않은 것에 낮게 혀를 차고 오소마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네 파트너였다고.”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


아무것도 없었다

머릿속은 공허했다

분노도

슬픔도

안타까움도

격정조차 없었다


지금 자신은 대체 뭘 느껴야 하는가


자신의 파트너를 아무런 고민 없이 공격하고 그것에 대해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카라마츠를 향해 오소마츠는 무엇을 느껴야 할지 몰랐다

무슨 생각을 떠올려야 할지 몰랐다.

 

오소마츠는 마지막으로 가냘픈 숨을 내쉬는 소리를 들었다

가쁘던 숨소리가 마지막으로 공기를 내뱉고 멈췄다가 사라졌다.


오소마츠가 기억하고 있던 카라마츠는 마지막 숨을 내뱉고 죽었다.

 

오소마츠의 주먹에 피어난 불꽃이 팔을 타고 올라와 전신을 감쌌다

새빨간 불길이 내뿜는 열기에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주춤거렸다.


카라마츠, 형이 동생을 공격하면 안 되잖아.”

“…우리는 더 이상 형제가 아니다.”

“…자꾸 그렇게 헛소리하면 이 형아한테 혼난다.

헛소리를 하는게 대체 누ㄱ…”

카라마츠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오소마츠의 거대한 불길이 카라마츠의 얼굴을 스쳤다

스친 것만으로 카라마츠의 옷깃이 불타 재가 되어 부서졌다

점점 더 거대해지는 화염을 보며 카라마츠가 얼굴을 찌푸렸다.


어이, 도망 쳐!! 후퇴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발을 뗐다

하지만 곧 매섭게 불타오르는 붉은 염화에 퇴로를 막히고 뒷걸음질칠 수 밖에 없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내뿜는 열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쥬시마츠에게 눈짓했다

고개를 끄덕인 쥬시마츠가 손을 뻗었다

긴 소매에 감춰진 두 손이 땅에 닿자마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오소마츠의 주변에 솟아난 땅이 그대로 오소마츠를 둘러싸고 작은 돔을 만들어 오소마츠를 가두었다

공기가 차단된 밀폐된 공간에 갇힌 오소마츠의 불길이 유지될 리 없었다

유한한 공기를 잡아먹고 타오르는 불꽃에 오소마츠가 질식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빠져나올 수 없다 확신하며 쥬시마츠와 함께 탈출구를 향해 뒤돌았다.

 

 

-시마츠~? 횽아 아직 이야기 다 안 끝났다고?”

등 뒤에서 일렁이는 무시무시한 열에 쥬시마츠가 딸꾹질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공포가 쥬시마츠의 온몸을 뒤흔들었다

마른침을 삼키고 두려움에 떨며 눈을 돌리자, 그 앞엔 새하얀 광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오소마츠를 가둔 흙은 마치 플라스틱마냥 바닥에 녹아 흐르고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열기를 뿜어내는 오소마츠의 불길은 더 이상 붉지 않았다

마치 눈처럼 새하얀 불꽃이 오소마츠의 온몸을 뒤덮고 타오르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불을 본 모든 센티넬이 죽음의 공포에 전율하며 행동을 멈췄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녹여 없앨 수 있는 불이 눈 앞에 있었다

오소마츠가 내디딘 흙바닥이 고무처럼 녹아 흐물거렸다

폐허가 된 은행 안을 가득 채운 열은 은행 밖에 서 있는 토도마츠와 이치마츠의 코 앞까지 퍼졌다

고온의 사우나에 들어간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은행 안에 서 있는 자들이 일반인보다 신체가 강한 센티넬이 아니었다면 그들 전부 광염의 열기에 집어삼켜져 녹아 내렸을 것이다.


, 도망쳐!!!”

그 외침이 「팔콘」에서 나왔는지, 「관리국」의 센티넬에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제히 죽음의 공포를 피해 은행 밖으로 뛰쳐나갔다

오소마츠를 앞에 둔 쥬시마츠와 카라마츠도 그 자리를 피하려 몸을 움찔거린 순간 붉은 불꽃이 쥬시마츠를 감싸고 솟아나 격렬하게 타올랐다

이미 오소마츠의 광염에 초월적인 공포를 경험한 쥬시마츠는 그대로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카라마츠는 쥬시마츠를 보며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돌리고 발을 돌렸다

쥬시마츠에게서 멀어지는 카라마츠를 뒤쫓으려는 오소마츠 앞을 하나의 인영이 가로막았다.


“…, 로마츠.”

카라마츠와 마찬가지로 검은 후드를 단정하게 입은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마주보았다

쵸로마츠는 카라마츠를 구하기 위해 오소마츠의 불길에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또 다시 오소마츠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자신을 보는 쵸로마츠의, 자신의 파트너의 눈은 카라마츠보다 더한 증오를 품고 있었다

혐오를 띄운 눈빛이 머금고 있는 공허에 오소마츠는 속절없이 먹혔다

멍청히 그 자리에 선 오소마츠는 그대로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와 함께 「팔콘」의 센티넬을 이끌고 도망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3.

 

카라마츠 형이 변해버린 이유가 세뇌라고 말하는 토토코의 얼굴은 지극히 담담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토토코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믿을 수 없었다

그야, 자신의 형이, 파트너가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어떻게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카라마츠 형과 싸우고 심한 부상을 입고 돌아온 오소마츠 형을 떠올리면 꼭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소마츠 형조차 카라마츠 형에겐 에 지나지 않는 걸까…. 

어린 시절 항상 곁에 있었던, 순수하게 웃었던 카라마츠의 얼굴을 떠올리자 심장이 불 붙은 것처럼 뜨거워졌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문득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 형을 바라보았다

짙은 그림자가 진 이치마츠 형의 얼굴은 어쩐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핏줄이 나올 정도로 강하게 쥔 주먹에서 이치마츠 형이 느끼고 있을 고통을 체감할 수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치마츠 형도 자신의 파트너를 잃었다


오소마츠 형도

우리 셋 모두 파트너를 잃었지만, 그 중에서 오소마츠 형이 가장 고통스럽겠지

오소마츠 형은 장남이자 이라는 자신의 입장을 각오하고 있다

쵸로마츠 형뿐만 아니라 카라마츠 형과 쥬시마츠 형, 우리 육둥이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가장 상처받고 있을 사람은 바로 오소마츠 형이다

답답하겠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카라마츠 형이

그리고 무엇보다 슬플 것이다.

우리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을 싫어하는 오소마츠 형이 훈련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슬픔을 혼자서 떠안고, 짊어지고, 오소마츠 형은 위태롭게 서 있다

자신의 슬픔보다 오소마츠 형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에 헛웃음을 흘리며 아프게 쥐여진 이치마츠 형의 손을 잡았다

갑작스런 접촉에 놀란 이치마츠 형이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이치마츠 형의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눈에서 나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이치마츠 형도 오소마츠 형을 걱정하고 있다

거기서 그치면 좋은데 이치마츠 형은 꼭 자기가 센티넬이었다면 하는 바람을 얻어 자신을 자책하고 만다

손톱 자국이 남은 이치마츠 형의 손을 꼭 잡고 토토코에게 오소마츠 형에게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토토코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그래….” 하고 대답했다.

 

 

오소마츠 형에게 향하는 차 안에서도 이치마츠 형의 손을 놓지 않았다

서로의 불안이 한데 뭉쳐져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가이드는 서로에게도 영향을 주는 걸까

그런 바보 같은 생각으로 카라마츠 형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릴 것 같은 불안을 숨겼다

이치마츠 형도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필사적으로 눈에 담으며 자신의 불안을 눌렀다

오소마츠 형은 반드시 카라마츠 형과 쥬시마츠 형, 쵸로마츠 형을 되찾아 올 것이다

오소마츠 형이 직접 한 그 다짐에 의심은 가지지 않는다

다만, 오소마츠 형이 그 세 사람을 되찾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은 뭐든 기브 앤 테이크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오소마츠 형이 그 대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두 손을 맞잡았다.

 

 

 

 

 

 

4.

 

관리국 보고서 #4


이름 : 마츠노 쵸로마츠

소속 : 팔콘, C급 범죄자

등급 : 가이드 A급 추정

상세 :

- 형제인 마츠노 카라마츠와 마츠노 쥬시마츠의 가이딩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 정보 수집, 해킹에 능숙함

- 형제 마츠노 오소마츠와 접촉하고도 공격을 하는 것으로 보아 팔콘에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있으며

  이는 약물과 정신 조작에 의한 반복된 세뇌에 의한 것으로 추정됨.

 

 


조직명 : 팔콘(Falcon)

수장 : 토고, S급 범죄자

- 정신계 능력을 가진 센티넬 A


상세 :

- 센티넬 우월주의자들의 집단

- 센티넬 독립 국가를 설립하려 함


범죄내역 :

- 시가지, 민간인 테러

- 센티넬 각성제, 마약 제조 및 유통

- 어린 센티넬과 가이드 납치 및 세뇌


* 현재 최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할 적으로 판단.



 

 

긴급 보고서 #1


현장에서의 능력 발현에 의해 등록번호 6001, 마츠노 오소마츠의 등급 변경

「팔콘」과의 대치 중, 6000도에 달하는 하얀 불꽃을 일으킴

마츠노 오소마츠가 능력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 능력 측정 시 정확한 측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됨

따라서 마츠노 오소마츠의 센티넬 등급을 A급에서 S으로 변경.





* 여러분 이어서 5편이 올라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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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마츠] Red tear -2-  (12) 2017.04.01
[장형마츠] Red tear -1-  (8) 2017.03.26

* 자기 전 단편 하나 더 올립니다.


* 카라마츠가 아픈 발언을 하지 않습니다. 오소마츠가 좀 바보에 약합니다.


* 이렇게 길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ㅠㅠ


* 공미포 18,639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 심심해~

읽고 있던 만화책을 던지고 기지개를 폈다

매정한 녀석들은 이미 다 외출했고, 집에 남은 건 나 혼자

게다가 어제 파칭코에서 다 날린 덕분에 돈도 없다

시간은 넘쳐나는데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누가 왔나? 왔으면 횽아랑 좀 놀아줭~

얼굴을 활짝 피고 벌떡 일어나 거실 문을 열자 구두를 벗으려 발을 들어올린 카라마츠와 마주쳤다.


카라마츄~! 놀아줭~!”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아직 볼일이 끝나지도 않았고. 그저 지갑을 가지러 온 것 뿐이니까.”

~?! 조금은 횽아랑 놀아줘도 좋지 않아!?”

터벅터벅 복도를 걸어가는 카라마츠의 뒤에서 외쳤지만, 카라마츠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다

분명 놀아달라고 보챈 사람이 내가 아니라 동생들이었다면 카라마츠는 볼일도 미루고 놀아줬겠지

유일한 형아한테 쌀쌀맞은 카라마츠에게 혀를 날름 내밀어주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던져두었던 만화책을 집어 들고 읽으려고 상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오소마츠!!”

벌컥 문을 연 카라마츠가 화난 얼굴로 나를 불렀다

?” 하고 대답하자, 성큼성큼 걸어온 카라마츠가 다짜고짜 내 정수리에 주먹을 날렸다.


아파!!!”

절대로 머리에 혹 났을 거야, 이거!! 

강하게 얻어맞아 딩- 하고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외치자 카라마츠가 짙은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자신의 지갑을 눈 앞에 내밀었다.


내 지갑에서 돈 꺼내간 거 너지!!”

.”

어제 남은 용돈이 부족해 카라마츠의 지갑에 있던 돈 전부를 빼내간 것을 기억해내고 눈을 돌렸다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나를 보는 카라마츠의 얼굴이 더 험상궂게 구겨졌다.


오소마~?”

아니~, 내가 어제 쪼~끔 돈이 부족해서! 이거에서 이겨서 배로 갚아주려고 했는데 말이지!”

손을 돌려 공중에서 가볍게 돌리며 말하자, 카라마츠의 이가 뿌득- 하고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히익―, 무셔어~


갚아라. 오소마츠.”

!? 어제 다 털려서 돈 없어!!”

그래? 그럼 마미에게 말해 다음달 네 용돈에서 빼가지.”

하아?!?!”

그런 줄 알아라.”

!! 그럼 내 다음달 용돈 거의 0 입니다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군.”

하아?!!?”

목소리를 높여 항의했지만 카라마츠는 콧방귀를 끼고 다시 현관을 나섰다

돈도 없으면서! 왜 나가는데!? 

횽아랑 좀 놀아달라고!


특히 나에게만 차가운 카라마츠를 원망하며 나도 엉덩이를 들어올리고 운동화에 발을 끼었다

이대로 집에 있어도 지루하기만 할 뿐이다. 돈이 안 드는 재미있는 곳으로 발을 돌렸다.

 

 

 

이리 오너라~”

불투명한 유리문 앞에서 크게 외치자 자동문이 열리고 메이드 복을 입은 다용이 나왔다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아저씨의 메이드 복에 순간 토가 나올 뻔 했지만, 어떻게든 참아내고 다용의 안내를 따라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유리잔이 테이블 위에 얹혔다

데카판 박사는 아직 실험이 끝나지 않아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긴 다용이 실험실로 들어갔다

다용이 가져온 유리잔 안에는 정체불명의 초록색 액체가 담겨 있었다.


이거, 정말로 마실 수 있는 건가?

수상한 액체를 이리저리 흔들어보았지만, 딱히 뭐라고 단언할 수 없었다

, 마시라고 내왔으니 마실 수 있는 거겠지

가볍게 생각하며 유리잔의 액체를 입에 머금었다.


보웨에-!!!”

처음 느껴보는 끔찍한 맛에 바로 바닥에 액체를 뱉어냈지만, 한 모금 정도가 목구멍 아래로 넘어갔다.


우엑…. 이거 뭐야!?”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유리잔을 저 멀리로 치웠다

꼭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료수를 짬뽕한 맛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뱃속에 넘어간 한 모금 때문에 배가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호에호에, 오소마츠 군.”

돌아갈까, 생각하던 와중에 파란색 줄무늬 팬티만을 입은 대머리 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돈 들이지 않고도 시간을 때울 수 있다는 생각에 씩 웃으며 데카판에게 물었다.


데카판, 뭐 재미있는 거 없어?”

호에호에, 아직 완성된 발명품은 없다요…. , 호에!? 오소마츠 군?!”

?”

, 이걸 마셨다스까!?”

. 다용이 가져다 줘서.”

호에….”

? ?”

내가 마셨던 녹색 액체가 든 유리잔을 든 데카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박사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오소마츠 군. , 이건…”

 

 

 

 

 

 

2.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째 무겁다

결국 데카판의 연구소에서도 재미있는 건 없었고, 심한 꼴을 당하기만 했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데카판이 한 말을 떠올렸다.


이건 아직 실험 중인 약이다요! 아무래도 다용이 잘못 가져다 준 것 같다요

아직 무슨 효과가 있는지도 파악이 안 되었으니, 혹시나 무슨 변화가 있으면 연락해야 한다요!”


조금 찜찜한 감은 있지만, 지금까지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남자를 여자의 몸으로 만들어버리는 약까지 만들어내는 괴짜 박사지만, 이번만큼은 실패한 것 같다

, . 고개를 끄덕이고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었다.

 

 

 

눈을 뜨고 양쪽을 번갈아 보아도 인기척은 없었다

으음….” 하고 신음하며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후암- 하고 하품을 하며 텅 빈 이불을 나와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갔다

거실을 향해 뻗은 복도를 중간에 있는 주방에 발을 들였다.


엄마.”

이제야 일어났니? 백수 1.”

“…, 엄마? 머리 위에 그거 뭐야?”

? 머리 위? 뭐 묻었어?”

묻었, 달까…”

엄마의 머리 위를 본 나는 그대로 입을 떡 벌린 채 굳어버렸다

평소와 다름 없는 엄마의 머리 위에는 「1122」라는 네 자리 숫자가 떠 있었다.


?!

, 뭐야?? 웬 숫자!?


눈을 끔뻑이는 나를 보며 엄마는 얘가 잠이 덜 깼네. 가서 씻고 오렴.” 하고 내 등을 떠밀었다

엄마에 밀려 주방을 나온 나는 정말로 잠이 떨 깼나 싶어 재빨리 세면대로 향했다.

 

 

잠이 덜 깼다는 수준이 아니잖아….”

찬 물로 얼굴을 벅벅 씻고 나와도 나를 위한 아침상을 차려주는 엄마의 머리 위엔 여전히 「1122」가 떠 있었다

몇 번이고 눈을 비벼보아도 숫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체 뭐야!? 

맹렬히 머리를 굴려도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 그건가! 데카판의 약인가!!

겨우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벌떡 몸을 일으키자마자, 뱃속에서 꼬르륵~” 하고 만화 효과음 같은 소리가 울렸다

일단 밥을 먹자. 다시 상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과 진한 미소시루를 한 모금 먹자마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엄마가 없을 때는 제일 마지막에 일어나는 나에게 남아있는 건 식빵 몇 조각이나 이미 차갑게 식은 찬밥이 다였다

이렇게 일어나자마자 따끈~한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큰 감동이었다.


엄마! 역시 엄마 밥이 최고야!!”

본심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엄마에게 전하자, 엄마가 후후- 하고 살가운 웃음을 흘리며 그래, 많이 먹으렴~” 하고 말했다

!” 하고 씩씩하게 대답하고 밥을 크게 떠 입으로 옮기려는 순간,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엄마 머리 위에 떠있던 숫자「1122」가 「1132」로 올라갔다.

?! 저 숫자 변하는 거야?!

보면 볼수록 도저히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멈췄던 손을 다시 부지런히 움직이며 빨리 식사를 마치고 데카판에게 가자고 홀로 다짐했다.

 

 

 

밥을 먹자마자 옷을 갈아입은 나는 그대로 데카판의 연구소를 향해 뛰었다

놀랍게도 엄마 뿐만 아니라 거리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일정 숫자가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숫자의 대부분은 「0」이었다.

 

데카판의 연구소에 도착하자 데카판의 머리 위에도 숫자가 떠 있었다

데카판과 다용의 머리 위의 숫자는 「15

지금까지 오면서 만난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숫자가 떠 있었으며, 변화하기도 한다는 것을 설명하자 호에-” 하고 내 설명을 듣던 데카판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흐음~.”

데카판? 이게 뭔지 알겠어?”

알 것 같다요. 그건 바로 호감도다요!”

호감도?”

데카판의 말에 고개를 기울이고 묻자, 데카판이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실은 그 약은 사람의 마음을 알게 해주는 약의 미완성작이었다요. 미완성작이었기에 의도했던 효과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숫자는 그 사람의 오소마츠를 향한 호감도다요.”

말을 마친 박사는 그렇게 위험한 효과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로 설명을 마쳤다.

 

 

 

 

 

 

3.

 

박사의 추측대로 내게 보이는 숫자는 나를 향한 호감도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인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리에는 「0」이 떠 있었다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 결과, 얼굴도 모르는 타인은 「0, 경마장에서 만났던 친한 아저씨는 「30, 치비타는 「150, 토토코는 「35」의 호감도를 가지고 있었다

토토코의 호감도가 치비타보다 낮은 거엔 절망했지만, 대체로 친한 친구가 「100~200」정도의 호감도를 가지는 것 같다

엄마의 호감도가 「1132」이니까, 형제는 그 절반인 「500」정도이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나는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다

양반다리를 한 다리를 덜덜 떨면서, 연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들의 호감도가 「500」이 안되면 어쩌지…?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사라지지 않는다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은 이상한 마음이다

도저히 진정되지 않는 마음에 깊은 심호흡을 하고 있는 귀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걸렸다

타박타박- 복도를 울리는 힘없는 발소리는 분명 이치마츠의 것이었다

두근대는 심장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거실 문을 응시했다.


다녀왔습니다.”

, 어서 와….”

오소마츠 형?”

이치마츠가 거실 문을 열자마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반대로 돌렸다

고개를 돌리고 어서 오라는 인사를 하자, 이치마츠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그래?”

, 뭐가….”

“…, 나 같은 쓰레기랑은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겠지만,”

그런, 거 아냐!”

이치마츠의 말에 재빨리 반격하며 두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돌렸다

이치마츠를 향해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아직 감은 눈을 뜰 용기는 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작은 한숨과 함께 이치마츠의 맥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됐어….”


으아~, 이치마츄~~!

정말로 그런 거 아니라고~~


지금 당장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고 싶다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욕구와 눈을 뜨고 싶지 않은 두려움에 갈등하는 동안 또 현관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다녀왔습니머슬~!!”

쿠헉!?”

이치마츠에 이어 거실 문을 열고 들어온 쥬시마츠는 다짜고짜 나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쥬시마츠의 단단한 머리가 명치에 직격해 비명을 지르며 쥬시마츠와 함께 뒤로 넘어졌다.


쥬시마츠! 위험하니까 갑자기 달려드는 거 금지!!”

아이아이!!”

제법 아픈 가슴을 문지르며 주의를 주자 쥬시마츠가 배시시 웃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하여간 대답은 잘 해…. 

그리고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 나 눈 뜨고 봐버렸다,


내 가슴 위에 있는 쥬시마츠와 이치마츠의 머리 위에는 나란히 「550」이라는 숫자가 떠있었다

500이 넘는 수치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쥬시마츠으~, 역시 횽아는 널 믿고 있었어!!”

! 뭠까, 뭠까아~?”

이치마츄도~!!”

, 아니 별로. 한 것도 없고….”

쥬시마츠와 쥬시마츠의 옆에 앉아있는 이치마츠의 머리를 엉망으로 쓰다듬었다

쥬시마츠는 활짝 웃으며 내 손길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고, 이치마츠도 얼굴을 살며시 붉히고 내 손을 쳐내지 않았다

~여운 두 동생의 모습에 더 감격하며 으응~!!” 하고 신음하며 쥬시마츠와 이치마츠를 꽉~ 껴안았다.


우왓, 기분 나빠. 뭐하고 있는 거야?”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와 함께 비비적대고 있는데 토도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언제 돌아왔는지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거실로 들어오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에게 용기를 얻은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토도마츠와 쵸로마츠의 머리 위를 살폈다

토도마츠는 「546, 쵸로마츠는 「650」의 숫자가 떠 있었다

드라이 몬스터인 토도마츠도, 항상 내게 짜증만 내는 쵸로마츠도 500을 넘은 숫자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늘 위로 솟아날 것 같은 입꼬리를 자중하며 만면에 미소를 피우고 토도마츠에게 다가가 이치마츠와 똑같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잠깐, 머리 스타일 망가져!” 하고 화내면서도 쓰다듬을 거부하지 않는 토도마츠의 모습에 가슴 깊이 감격하고, 녀석들 중에서 가장 숫자가 높은 쵸로마츠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팔을 활짝 벌려 슬슬 뒷걸음치는 쵸로마츠에게 달려가 안겼다.


우왁!! , 하는 거야! 망할 장남!!”

쵸로마츠으~~, 싸랑해!!”

하아?!”

새빨간 얼굴로 버럭 외치는 쵸로마츠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얇은 쵸로마츠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자 달깍-’ 소리와 함께 쵸로마츠 머리 위의 숫자가 변했다

675」로 숫자가 높아진 것을 확인하고 다시 쵸로마츠를 꽉 안았다.


~~짜 싸룽해!! 쵸로마츠!!”

아니, 뭔데!? 왜 이러는 건데!!”

목소리를 격앙되어 있어도 새빨개진 얼굴을 한 쵸로마츠가 당황해 외쳤다

그 모습도 귀여워 머리를 바사삭- 쓰다듬자, 뒤에서 뻗어온 손에 옷자락을 쭉- 잡아당겨졌다.


?”

왜 쵸로마츠 형만!!”

“…오소마츠 형, , 나도….”

오소마츠 형아!! 나도! 나도 꼬옥~ 해주십쇼!!”

으아~~, 진짜!! 너네도 전~부 싸랑해!!”

가뭄에 콩 나듯 솔직하게 질투하는 녀석들을 하나하나 꼭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하게 웃으며 오늘이 인생 최고의 날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한바탕 껴안기가 끝나고 녀석들은 전부 2층에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내려왔다

곧 저녁 식사 시간이니까 카라마츠도 돌아올 것이다


카라마츠는 몇일까

일단 500은 넘을 테고, 나한테만 쌀쌀맞지만 그래도 나한테만 고민상담도 하고 의지하고 있으니까 좀 더 높지 않을까 예상한다

고등학교 때는 쵸로마츠보다 더 오래 붙어있었고

어쩌면 쵸로마츠처럼 600 넘을지도


희망적인 예상에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해하고 있을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1초라도 빨리 카라마츠의 호감도를 확인하고 싶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거실 문을 열어 젖혔다.


~서 와~! 카라마츠우~!”

아아…, 다녀왔다.”

현관까지 나온 나를 보며 멍청히 눈을 깜빡이는 카라마츠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숫자를 확인한 순간, 나는 호흡도 잊고 그대로 망부석이 되었다.

 

카라마츠의 머리 위에는 「0000」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4.

 

어떻게 저녁 식사를 하고, 목욕탕에 갔다가, 이부자리에 누웠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방 안은 이미 어두컴컴하고 조용했다

시계의 초침소리와 쥬시마츠의 코고는 소리만 울리는 고요한 방 안에서 망연히 눈을 깜빡였다.

 

몰랐다.

카라마츠가 그렇게 날 싫어할 줄은….

맨날 나한테만 쌀쌀맞던 건 내가 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싫어서였구나….

쌀쌀맞은 것도, 맨날 나한테만 화내고 냉정한 것도 다 진심이었구나….

그래, 그랬구나…. 횽아는 몰랐지….

 

뜨거워지는 눈시울과 더불어 천장의 얼룩이 흐려졌다

육분의 일, 내가 우리고 우리가 나였던 존재 하나가 나를 미워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쵸로마츠나 토도마츠에게 보이지 않게 베개에 얼굴을 묻고 흘러 나오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삼켰다.

 

 

 

세면대 거울에 비친 얼굴에 우와….” 하고 한숨을 흘렸다

퉁퉁 부은 눈두덩이에 눈썹을 늘어뜨리고 계단을 내려왔다

거의 자지 못한 덕분에 눈이 뻑뻑하다

일어나자마자 확인한 시간이 6시 였으니, 지금은 6시 반 정도인가…. 

방을 나오기 전 한번 더 확인한 카라마츠의 머리 위 숫자는 0000이었다

계단을 내려와 복도에 서자 통통통- 하고 잘은 칼질 소리가 주방에서 울려 퍼졌다

터벅터벅 발소리를 울리며 주방에 들어서자, 엄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빙긋이 미소 지었다.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나를 향한 자상한 미소와 엄마의 머리 위에 떠있는 「1135」라는 수치에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얼굴 근육을 찡그리고 엄마에게 다가가 어깨에 매달렸다

나보다 낮은 엄마의 어깨에 허리를 굽히고 매달리자, 엄마도 말없이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무슨 일 있니?”

엄마~, 카라마츠가…, 나를 미워해.”

카라마츠가?”

“….”

절로 나오는 코를 훌쩍- 들이마시자, 엄마의 작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카라마츠가 왜 너를 미워하니~. 또 싸워서 그런 말 하는 거야?”

뺨에 닿은 엄마의 손을 따라 고개를 들자, 엄마는 쿡쿡- 자애로운 미소로 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얼른 카라마츠랑 화해하렴. 카라마츠는 절대 오소마츠를 미워하지 않으니까.” 하고 달래는 엄마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진심 어린 말에도 슬픔이 희석되는 일은 없었다

형제라도 서로를 전부 알 수 없듯이, 부모도 자식의 전부를 알 수 없으니까

엄마는 모르겠지만, 카라마츠가 나를 미워한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나로서는 엄마의 말을 순수하게 믿을 수 없었다.

 

 

오늘 하루는 카라마츠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이 깨어나기 전에 서둘러 아침을 먹고 집을 나왔다

적잖이 풀 죽은 내가 걱정되었는지 엄마는 나가려는 나를 붙잡고 아빠 몰래 지폐 몇 장을 손에 쥐어주었다

손에 쥐어진 엄마의 사랑에 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현관을 나왔다

엄마가 준 돈으로 24시간 파칭코에 갔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통했는지 오늘은 유난히 파칭코가 잘 터졌고, 덕분에 밤 늦게까지 파칭코에서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자정을 지나 아침에 가까운 새벽 시간이 되어서야 파칭코를 나왔다

보랏빛으로 물들어 밝아지려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쌀쌀한 공기에 몸을 떨었다.

 

 

오소마츠, 너무 늦는다.”

미안.”

“…모두 걱정했다! 마미도!”

현관문을 열자마자 현관에 서 있던 카라마츠가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 화난 얼굴로 외쳤다

여전히 카라마츠의 머리 위에 떠 있는 「0000」라는 수치에 한숨을 내쉬며 신발을 벗고 복도에 올랐다.


“…너도 걱정했어?”

물론 나도 걱정했다, 오소마츠. 앞으로 늦을 때는 그렇다고 집에 연락이라도 줘. 너무 늦어진다면 내가 마중 나가겠다.”

“…그래.”

전혀 변화 없는 카라마츠의 호감도를 올려다보며 작게 대답했다

카라마츠, 너는 거짓말이 서툰 줄 알았는데 말이야…. 

완전 능숙하구나

마음에도 없는 말도 술술 잘하고. 자조하며 또 뭔가 말하려는 카라마츠의 말을 졸리다는 말로 가로막고 계단을 올랐다

잠든 녀석들의 머리 위에 있는 수치를 보고 다시 한숨을 쉬며 비어있는 내 자리에 슬금슬금 들어가 눈을 감았다.

 

 

 

 

 

 

5.

 

다음 날, 눈을 뜨니 사람들 머리 위에 보이던 수치가 사라져있었다

약의 효과가 얼마나 가는지 모른다더니 겨우 이틀 만에 효과가 떨어진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카라마츠의 머리 위에 뜬 「0000」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오늘도 모두 외출한 집은 조용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아직 개지 않은 이불에 누웠다

어제 파칭코에서 돈을 많이 땄지만, 밖에 나갈 생각은 없다. 나갈 기운도 없다.


카라마츠가 날 싫어하는 거, 알고 싶지 않았다고~.”

소매를 들어 눈물을 가렸다

차라리 몰랐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평범한 형제로 지낼 수 있었는데…. 

괜히 데카판의 연구소에 놀러 가서 아무 의심 없이 다용이 내온 초록색 음료를 마신 것을 후회하며 천장을 응시했다.


대체 카라마츠는 왜 나를 싫어할까…? 

함께 자란 형제인데 호감도가 0인게 말이 돼?


문득 떠오른 생각에 가장 오래된 기억부터 천천히 하나하나 되짚어갔다

어릴 적엔 항상 쵸로마츠와 붙어 다녀 카라마츠와는 그닥 접점이 없었다

생각나는 추억도 없고


카라마츠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추억이 많은 시절은 고등학교 때이다

착실해지겠다는 쵸로마츠가 반장도 맡고 재미없어진 뒤로 나는 카라마츠와 함께 다녔다

같이 싸움도 하고, 땡땡이도 치고, 혼날 때도 같이 혼나고….


, 그래서인가?

고등학교 시절, 시비를 거는 놈이 있으면 카라마츠라고 대고 싸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덕분에 카라마츠는 주변 고등학교의 불량배들에게 항상 시비를 받았고, 선생님에게도 항상 혼났다

내가 카라마츠를 싸움에 끌어들이고 나만 쏙- 빠졌던 적은 제법 많았다.


성인이 된 뒤로는 카라마츠의 지갑에서 돈을 빼내가기 일쑤

덕분에 카라마츠가 사고 싶어했던 선글라스나 가죽 재킷을 못 산 적도 있었다

그리고 카라마츠가 있는 다리에 가 카라마츠를 겁줘서 강에 빠뜨렸던 적도 있다.

 

혹시, 혹시 말야….

, 완전 최악의 형 아냐?

이건 싫어할 수 밖에 없는데?

 

기억 하나를 떠올리면 줄줄 이어진 열차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다른 녀석들에게도 장난은 많이 쳤지만, 유독 카라마츠에게만 지독한 짓을 많이 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싸악- 하고 피가 가라앉았다.


좋아!!”

다리를 들어 다시 내리면서 반동을 이용해 벌떡 몸을 일으켰다

호감도가 0라면 지금부터 올리면 된다

쵸로마츠도 사랑한다는 한 마디에 호감도가 15나 올랐으니까!! 

카라마츠도 지금부터 잘 해주면 충분히 호감도를 올릴 수 있겠지

주먹을 꽉 쥐고 홀로 파이팅을 하며 다짐했다.

 

 

 

다짐을 했으면 바로 행동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그대로 지갑을 들고 집을 나왔다

어제 잔뜩 따서 빵빵해진 지갑을 들고 카라마츠가 자주 이용하는 브랜드의 옷가게를 들어갔다

예전에 카라마츠가 갖고 싶다는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던 선글라스를 계산대에 올렸다

겨우 검은 칠한 안경인 주제에 더럽게 비싼 가격에 이를 악물고 계산을 마치고 포장을 부탁했다

푸른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된 선글라스를 소중히 품에 안고 지갑에 남은 금액을 확인했다

아직 돈이 충분히 남아있는 것을 확인한 후 동네에서 가장 큰 할인 마트로 발을 돌렸다.

마트에서 고급 가라아게와 햄버그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에겐 미리 말을 해두고 냉장고 한 켠에 햄버그와 가라아게를 숨겼다

준비를 전부 마치고 한숨 돌리자 타이밍 좋게 카라마츠가 집에 돌아왔다.


카라마츠! 어서 와.”

, 다녀왔다.”

잠깐, 이리로 와봐!!”

!?”

현관에서 구두를 벗은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2층으로 끌고 갔다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한 카라마츠는 순순히 나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 저번에 내가 빼간 돈.”

!? 오소마츠가 돈을 돌려준다고??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건가…?”

!? 내가 배로 돌려준다고 했잖아!! 그리고 이것도!”

이게 뭔가?”

저번에 네가 갖고 싶어 했던 선글라스.”

에엣?!”

내 말에 카라마츠가 놀라 서둘러 포장을 풀었다

, - 소리를 내며 찢긴 포장지 사이로 브랜드 이름이 적힌 상자가 나오자 카라마츠가 멍청히 입을 벌리고 나를 응시했다.


오소마츠, 드디어 죽을 때가 된 건가?”

아니거든!! 그냥, 너 주고 싶어서…. , 마음에 들어?”

브랜드 상자를 열고 반짝이는 선글라스를 확인한 카라마츠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었다.


, 마음에 든다. 고맙다…. 오소마츠.”

“…, 그래? 다행이다.”

소중히 쓰겠다.”

오우!”

기뻐하는 카라마츠의 얼굴이 진심이기를 바라며 코 밑을 문지르며 억지로 입가를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녀석들이 깨지 않도록 몰래 이불에서 빠져 나와 주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나를 보며 빙그레 웃고 옆자리를 비켜주었다

엄마의 말대로 식탁에 놓인 붉은 앞지마를 단단히 매고 엄마의 설명에 따라 어제 산 햄버그와 가라아게를 요리했다

햄버그는 적당히 먹음직스럽게 노릇노릇 익히고, 가라아게는 온도를 맞춘 기름에서 바삭바삭하게 튀겨 키친타월을 깐 접시에 놓았다

햄버그는 넓은 접시에 올리고 엄마가 준비해준 소스를 뿌린 후, 접시 한 쪽에 밥 한 공기 정도의 밥을 올려놓았다

처음 하는 요리라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어도 나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요리가 나왔다.

한숨을 내쉬며 앞치마를 풀고 시각을 확인했다

딱 녀석들이 일어날 시간임을 확인하고 엄마가 건네는 행주를 손에 들고 나와 거실에 있는 원형 식탁을 닦고 사람 수에 맞춰 식기를 놓았다.

주방과 거실을 왔다갔다하며 식기를 옮기는 중에 제일 먼저 일어나 계단을 내려온 카라마츠와 마주쳤다.


“…오소마츠? 이렇게 일찍 뭐하고 있는 건가?”

엄마 도와드리는 중.”

!?”

짧게 대답하고 주방으로 들어가 내가 요리한 햄버그와 가라아게를 들고 나왔다.


오늘은 아침부터 햄버그인가!?”

거실에 들어가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은 카라마츠가 놀라 물었다

아니.” 하고 고개를 젓고 카라마츠 앞에 햄버그 접시를 내려놓았다

자신 앞에 놓인 햄버그와 가라아게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만든 거야. 재료가 얼마 없어서, 1인분 밖에 못 만들었으니까…. 카라마츠 너 줄게.”

, , 정말인가?”

. 그러니까, 다른 녀석들 나오기 전에 빨리 먹는 게 좋을걸?”

…, . 고맙다. 오소마츠.”

.”

말을 끝내고 카라마츠 옆에 앉았다

카라마츠는 모처럼의 고기 반찬을 뺏기는 것이 싫은지 순순히 내 말을 따라 준비한 나이프를 들어 햄버그를 잘라 입에 넣었다.


어때? 맛있어?”

! 맛있다!”

눈을 빛내며 엄지를 드는 카라마츠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과 함께 미소를 짓고, “그럼 많이 먹어.” 하고 가라아게 접시를 내밀었다

아아!” 하고 힘차게 대답한 카라마츠는 다른 녀석들이 깨기도 전에 햄버그와 가라아게를 전부 먹어 치웠다

가득 찬 배를 문지르며 숨을 내쉬는 카라마츠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 차도 마셔.”

, 고맙다…. 오소마츠.”

멋쩍게 웃으며 찻잔을 받아 든 카라마츠가 눈썹을 늘어뜨리고 말했다

진심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부드러운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쩐지 창피해져서 고개를 숙이고 별로….” 하고 대답했다

카라마츠가 식사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녀석들과 함께 나도 아침을 먹었다

오늘의 아침 메뉴는 평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미소시루와 흰 쌀밥이었다

카라마츠 혼자 고기 반찬을 먹은 것을 모르는 녀석들은 깨작깨작 밥을 먹는 카라마츠에게 어디 아프냐 물었고 카라마츠는 조금 배가 아프다며 밥을 남기고 먼저 일어났다.

 

 

카라마츠, 나가?”

아아…. 무슨 볼일 있나?”

아니, 볼일은 없는데…. 오늘 멋지네-, 하고 생각해서.”

!?”

그 가죽 재킷. 너한테 진짜 잘 어울려. 스키니 진도.”

, !? , 고맙다….”

항상 아프다고, 안쓰럽다고 말했지만…,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늘만큼은 진심을 담아 칭찬하자 카라마츠도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미소로 답했다

가늘게 휜 눈과 행복하게 얼굴 가득 넘실대는 미소에 카라마츠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카라마츠를 비롯해 다른 녀석들도 저마다 외출하고 혼자 남아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카라마츠를 위해 쓰고도 남은 돈을 들고 데카판의 연구소로 향했다.


그러니까, 그 약을 또 달라는 말이다요?”

.”

“…알겠다요.”

데카판은 곧 내가 마셨던 녹색의 약을 가져왔다

지난번엔 주스와 착각해 커다란 물잔에 담겨 있던 것과 달리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인지 약은 작은 약병에 담겨 있었다.


“1회 분이니까 한 번에 마시면 된다요.”

.”

심호흡을 하며 각오를 다지고 단번에 약을 들이켰다

여전히 더럽게 맛없는 약에 온 얼굴 근육을 찡그리고 크으-” 하고 치를 떨며 빈 약병을 데카판에게 돌려주었다

약은 하루가 지나야 효과가 나오니까 데카판의 연구소를 나와 파칭코에서 시간을 때우고 집에 들어갔다.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카라마츠의 호감도가 올라갔기를 빌며 이불에 몸을 누이고 눈을 감았다.

 

 

 

 

 

 

6.

 

“…, …마츠

….”

흔들리는 몸에 눈썹을 찡그리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더 크게 몸이 흔들리며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오소마츠.”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카라마츠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서둘러 몸을 일으키자 카라마츠가 놀라 몸을 작게 흠칫거렸다.


“…카라마츠.”

일어났나, 브라더-. 오늘 함께 피시에게 사랑을 고백하러 가지 않겠나?”

“…아니, 횽아 오늘 몸이 찌뿌둥해서 나가기 싫어~”

어디 아픈가?”

아니~, 그런 건 아냐.”

“…그런가. 알겠다. 마미가 준비한 밥이 식으니 어서 내려와.”

….”

고개를 돌리고 카라마츠의 말에 대답했다

이윽고 카라마츠가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카라마츠의 머리 위엔 여전히 「0000」이 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좋은 형이 되려고 해도 카라마츠에겐 소용없다는 사실이 아프다

천 개의 바늘을 삼킨 것처럼 침을 넘기는 목이 따갑다

공기가 지나가는 기도도 욱신거리는 착각이 일었다

제대로 호흡도 할 수 없는 가슴을 부여잡고, 조금 울었다.

 

 

흐느낌을 멈추고 겨우 진정된 마음을 질질 끌고 1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에 들어가자, 쵸로마츠를 제외한 다른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1인분의 밥이 차려진 상에서 구인 잡지를 읽고 있는 쵸로마츠의 머리 위에 뜬 「675」이라는 숫자를 본 순간, 겨우 가라앉았던 울음이 다시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 쵸로마츠으~.”

? …?! , 오소마츠 형, 울어!?!?”

우우우

참았던 눈물이 뚝뚝 볼을 타고 흘렀다

당황 반, 걱정 반으로 나를 응시하는 쵸로마츠에게 다가가자, 쵸로마츠가 나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쵸로마츠우~~” 하고 부르자, “, …. 무슨 일인진 모르겠는데 울지 마….” 하고 쵸로마츠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쵸로마츠의 위로에 눈물은 더 펑펑 쏟아졌다

아예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기 시작한 내 머리를 쵸로마츠가 천천히 쓰다듬었다.


“…, 소마츠?”

화장실에 있었는지, 물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잔뜩 가라앉은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몸을 움찔거리고, 눈물을 삼켰다

코를 훌쩍이며 울음을 그치려 노력하는 내 어깨를 쵸로마츠가 잡아 홱 일으켰다.


쵸로?”

“…미안, 오소마츠 형…. 나는 카라마츠 형한테 죽고 싶지 않아.

?”

눈물로 젖어 흐려진 시야에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쵸로마츠도 내가 싫어진 건가 하는 불안에 재빨리 쵸로마츠 머리 위 숫자를 확인했다

여전히 「675」을 유지하고 있는 숫자에 작게 안도하며 다시 쵸로마츠를 부르려는 내게 카라마츠가 다가와 어깨를 붙잡았다.


형님, 무슨 일인가. 어디 아픈가?”

- 붙잡힌 어깨가 아팠다

카라마츠의 걱정스런 얼굴과 머리 위에 뜬 0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괴리에 고개를 저었다

소매로 눈물을 닦고 별일 아냐…” 하고 대답한 뒤, 몸을 일으켰다

운 탓에 일어선 순간 느껴지는 현기증에 잠시 휘청거렸지만, 곧 중심을 잡고 거실을 나왔다.


, 형님!”

다시 잘래….”

카라마츠의 부름에도 뒤돌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카라마츠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 거다.

 

 

 

 

 

 

7.

 

이후로 나는 카라마츠를 피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밖을 나가서 모두가 잠든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갔다

혹여 카라마츠와 마주치더라도 빠르게 대화를 끊고 자리를 피했다

카라마츠와 함께 있을 수록 카라마츠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각인되어 가슴이 아팠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시각을 확인했다

아침 6. 이렇게 일찍 일어날 거라면 차라리 알바라도 할까

알바하면 집에 오래 안 있을 거고

솔직히 슬슬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작게 한숨을 쉬며 방을 나와 엄마가 주는 식빵으로 간단한 아침을 때웠다

다른 녀석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레 옷을 갈아입고 현관에 앉아 운동화 끈을 묶고 있는데 복도에 발소리가 울렸다.


오소마츠 형.”

, 토도마츠구나.”

카라마츠일까, 걱정했던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작게 웃었다

토도마츠는 잠옷 차림으로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나를 걱정스런 얼굴로 응시했다.


저기, 카라마츠 형이랑 뭐 때문에 싸웠는지는 모르겠는데. 빨리 화해해줄 수 없어? 집 안 분위기 장난 아니라고?? 카라마츠 형, 매일 일어나서 오소마츠 형이 없는 거 알고 얼마나 저기압이 되는지 알아? 무섭다고!! 눈빛으로 사람 하나 죽일 것 같다고!!”

가볍게 쥔 손을 방방 흔들며 울상이 된 얼굴로 호소하는 토도마츠의 머리를 쓴웃음과 함께 쓰다듬었다.


카라마츠랑 안 싸웠어.”

그럼 왜 피하는 건데!!”

“…카라마츠가 날 싫어하니까.”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럴 리 없잖아.”

아냐, 싫어해.”

무슨 소리야! 차라리 세상이 멸망한다는 말을 더 믿겠다!! 카라마츠 형이 얼마나 오소마츠 형을 챙기는데! 오소마츠 형이 카라마츠 형 피하게 되고 카라마츠 형 기분 장난 아니라니깐!? 무섭다고!! 카라마츠 형이 항상 먼저 나가자고 권유하는 것도 오소마츠 형이 유일하잖아!”

“…그건, 내가 카라마츠의 유일한 이니까 신경 써주는 것 뿐이야.”

하아!?”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외치는 토도마츠의 머리를 한 번 더 부드럽게 쓰다듬고 허리를 들었다

벙찐 얼굴로 나를 따라 시선을 올리는 토도마츠에게 미소 짓고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현관을 나섰다.

 

 

 

오소마츠 형아!!”

이웃마을의 강둑에서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는 내게 바다닥- 하고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쥬시마츠가 달려들었다

쥬시마츠의 무게가 더해져 기운 몸은 하마터면 그대로 강에 굴러 떨어질 뻔 했다.


쥬시마츠! 갑자기 달려드는 건 위험하니까 금지랬지!!”

!!”

“‘!’ 가 아냣!”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하며 야단 치자, 쥬시마츠가 고양이 눈을 하고 주먹을 손바닥에 내리쳤다

위험하니까 정말로 그만두라는 당부를 한 번 더 하자, 쥬시마츠도 씩씩하게 !” 하고 대답했다.


근데 내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일부러 카라마츠와 마주치지 않도록 이웃마을에 온 건데….


오소마츠 형아의 냄새를 쫓아왔슴닷!!”

냄새?”

!!”

나 그렇게 냄새 나나

킁킁 하고 자신의 소매나 옷자락을 들어 코에 갖다 대도 딱히 냄새는 나지 않았다

굳이 난다고 하면 가족이 함께 쓰는 섬유유연제 냄새인가….


오소마츠 형아!”

?”

후드의 이곳저곳을 맡기 바쁜 나를 쥬시마츠가 불러 고개를 들었다

쥬시마츠는 항상 벌리고 있던 입고 꾹- 다물고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오소마츠 형아는 카라마츠 형아가 싫슴까?”

? 아니?”

그럼 왜 카라마츠 형아랑 같이 안 놀아줌까?”

“…그건, 카라마츠가 날 싫어하니까야.”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몇 번을 말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사실에 또 가슴이 꽉 조였다

내 대답을 들은 쥬시마츠는 잠시 조용히 앉아있더니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외쳤다.


“…카라마츠 형아는 오소마츠 형아 싫어하지 않아요!! 카라마츠 형아는 항상 오소마츠 형아한테 제일 먼저 노래를 들려줌닷!! ‘육둥이의 노래도 오소마츠 형아한테 제일 먼저 들려줬슴다!! 그리고, 그리고- 카라마츠 형아가 오소마츠 형아한테 노래해줄 때 굉~장히 행복해 보였슴다!!! 그러니까 카라마츠 형아는 오소마츠 형아를 싫어하지 않아!! 오히려 좋아함다!!”

쥬시마츠가 활발하게 팔을 흔들며 말했다

커다란 목소리가 필사적으로 내게 전하려고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실을 알지 못하는 쥬시마츠의 말에 허탈한 웃음을 피우며 말했다.


쥬시마츠, 그건 착각이야. 카라마츠는 그저 노래 부르는 게 즐거웠을 뿐이고, 내게 먼저 노래를 들려준 건 우연이야. 내가 제일 집에 오래 붙어있으니까.”

, 그런 게 아니라…”

, 걱정해줘서 고마워. 미안해….”

제대로 웃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어색한 미소를 띄우고 쥬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을 잃은 쥬시마츠는 긴 소매로 입을 가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저 멀리에 솟아있는 산 너머로 해가 지며 하늘 가득 펼쳐진 노을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저녁 6시가 지난 공원엔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공원의 구석에 놓인 벤치에 앉아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숨을 쉬었다.


“…오소마츠 형.”

, 치마츠.”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야에 그림자가 걸렸다

고개를 돌리자 이치마츠가 마스크를 쓰고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오소마츠 형이야말로, 이 시간까지 여기서 뭐해.”

“…, 산책?”

“…그래.”

이치마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곤 내 옆에 앉았다

시선을 정면에 고정하고 내게 눈길을 돌리지 않은 채, 이치마츠가 입을 열었다.


“…, 개똥마츠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고…. 오소마츠 형의 오해일 수도 있으니까….”

“….”

그 녀석이 오소마츠 형을 싫어할 리 없고. 오소마츠 형이 늦게 들어오면 제일 불안해하는 건 개똥마츠니까. 계속 엄마한테 오소마츠 형한테 무슨 연락 없었냐고 묻고, 안절부절 못해서 거실이랑 현관 왔다갔다하고….”

“…그건, 다른 녀석들이 걱정하니까 차남으로서 그러는 거야.”

아니…”

괜찮아~ 이치마츄~. 그냥, 조금만 더 시간이 필요해서 그래….”


이 아픔에 익숙해질 시간이….


입술을 깨물고 슬픈 얼굴로 나를 응시하는 이치마츠에게 미소 지었다

다시 한 번 괜찮아.” 하고 달래며 이치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자, 이치마츠의 눈이 눈물에 젖어 아름답게 빛났다.

 

 

 

 

 

 

8.

 

드물게 경마에서 따서 아저씨들과 늦게까지 마신 날

어두컴컴한 하늘을 보며 다른 녀석들은 이미 잠들었을 시각임을 확신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오소마츠 형.”

?!”

분명히 불이 꺼져 있던 현관엔 쵸로마츠가 팔짱을 끼고 귀신 같을 얼굴로 서 있었다

단번에 팟! 하고 켜진 불에 놀라 몸을 움츠리자, 쵸로마츠가 큰 한숨을 내쉬더니 내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 !? 쵸로마츠??”

좀 와 봐.”

쵸로마츠를 따라 거실에 들어가자 바닥에 깔린 방석에 카라마츠가 정좌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카라마츠 얼굴에 반가움도 잠시, 바로 카라마츠가 날 싫어한다는 것을 깨닫고 쵸로마츠에게 잡힌 손목을 빼내려고 했지만 쵸로마츠가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손목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기 앉아.”

카라마츠의 맞은편에 놓인 방석을 가리킨 쵸로마츠에게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앉아. 망할 장남.”

-!!”

과거, 양아치 시절의 무시무시한 얼굴이 나온 쵸로마츠에게 더는 반항하지 못했다

얌전히 쵸로마츠에게 손목을 잡힌 채 방석에 앉자 쵸로마츠가 내 옆에 앉아 목을 다듬었다.


대체 무슨 오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좀 해! 보고 있는 우리가 힘들어!!”

“….”

“….”

오소마츠 형!”

….”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형을 미워할 리 없다는 거 알잖아! 왜 그러는 거야!!”

“…아니라구…, 진짜로 카라마츠는, 나를, , 미워한단 마랴….”

쵸로마츠의 호통에 괜히 억울함이 벅차 눈가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다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눈물에 함께 목소리도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쵸로마츠는 한숨을 쉬고 준비해둔 티슈를 꺼내 내 눈물을 정성스레 닦아주며 말을 이었다.


오소마츠 형, ~전에 형이 아팠을 때 기억나? 형 혼자 독감 걸렸을 때, 카라마츠가 얼마나 극진히 간호했는지 오소마츠 형도 잘 알잖아? 게다가 평소에 오소마츠 형이 귀찮게 매달릴 때도 카라마츠 형만은 오소마츠 형을 받아주고, 술 주정 심한 오소마츠 형하고 단 둘이 술 마시러 가주고 하잖아. 오소마츠 형이 싫으면 술 주정하면서 남 패기 일쑤인 오소마츠 형하고 같이 나가겠어?”

“…우우, , 치만….”

그렇다. 오소마츠! 나는 단 한 순간도 오소마츠를 미워한 적 없다!!

태연하게 억울하단 얼굴을 하고 필사적으로 호소하는 카라마츠를 본 순간, 참고 참았던, 가슴 깊이에 누르고 있던 분노가 폭발했다

눈물을 닦아주는 쵸로마츠의 손길도 뿌리치고 벌떡 일어나 카라마츠를 노려보며 외쳤다.


거짓말 하지 마!!”

내 외침에 카라마츠도 얼굴을 구기고 일어나 언성을 높였다.


거짓말 아니다!!”

차남이니까, 내가 이니까 챙겨준 것뿐이잖아!! 진짜는 내가 싫잖아!! 가족이라고도 생각 안 하잖아!! 나한테 먼지 한 톨의 관심도 없으면서 신경 쓰는 척 하지 말라고!!!

외치면서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가슴을 후벼 파는 말에 카라마츠에게 울분을 퍼부었다

굵은 눈물은 끊임없이 볼을 타고 흘러 다다미를 적셨다

쵸로마츠도, 카라마츠도 넋을 잃고 내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입술을 꽉 다물고 흐느끼며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자, 거실 문 뒤에서 시작된 후다닥- 하는 발소리가 층계까지 이어졌다

분명 나와 카라마츠를 숨어서 지켜보던 녀석들이 당황해 2층으로 도망친 거겠지

온몸을 휩쓴 울분에, 분노에 몸을 떨며 숨을 삼켰다.


오소마츠 ㅎ…”

! 형님은 왜 내 말은 듣지 않는 건가!! 나는 형님을 싫어하거나 하지 않아!!

쵸로마츠의 침착한 목소리가 나를 부르기도 전에 카라마츠의 노성이 거실 가득 울려 퍼졌다

! 하고 발로 바닥을 구르며 분노하는 카라마츠 모습에 나도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거짓말 하지 마!! 나는 다 안다고!!”

뭘 안다는 건가!! 오소마츠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안다는 거야!!!”

봤으니까!! 네가 나를 싫어하는 거 전부, ~~부 다! 봤으니까!!”

웃기지마!! 개소리하지 마!! 오소마츠!!’

개소리 아냐!! 진짜라고!!!”

나는 너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거야!!! 오소마츠!! 나는 너를 싫어하지 않아!! 미워하지 않아!! 오히려 좋아하고 있다고!!!

웃기시네!! 누가 그딴 거짓말 믿을 줄 알아!? 너야 말로 날 싫어한다고 인정해!!”

“…호오~?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못 믿겠다 이건가?”

그래!!”

그래…, 그럼 몸으로 알게 해주지.

!?”

카라마츠는 영문 모를 말을 내던지고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왔다

뭐야, 해보잔 거냐!! 

이를 갈며 카라마츠를 노려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언제 주먹을 날려도 대응할 수 있도록 긴장하고 있는 내 앞에 선 카라마츠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감싸고 그대로 입술을 박았다.


“…!?!?!?!?”

바로 눈앞에 놓인 카라마츠 얼굴에 머리가 멈췄다

눈썹을 찌푸리고 눈을 감은 카라마츠는 패닉에 빠진 내 허리에 제 팔을 감고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자연히 내 입술을 누르고 있는 카라마츠의 입술도 더 강해졌다

뜨겁고 마른 입술이 닿는 감촉에 허리가 떨렸다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카라마츠가 입 맞춘 순간 멈춘 숨이 입 맞춤이 길어질수록 힘들어졌다

이제 한계!! 

그렇게 생각한 순간, 카라마츠의 가슴을 밀쳤다.


, 대체 무슨!? …으응!?!?”

푸핫-, 하고 숨을 몰아 쉬며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다시 카라마츠가 키스했다

말하던 중간에 막힌 입술의 작은 틈으로 카라마츠의 혀가 기어들어왔다.


“!??!?!?!?!”

물컹거리는 살덩어리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카라마츠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해도 망할 고릴라 힘을 가진 카라마츠는 꿈쩍도 안 했다

입 안으로 들어온 카라마츠의 혀는 종횡무진하며 온 입안을 헤치고 돌아다녔다

치열을 훑고, 어금니 안쪽을 간질이더니 입 속 깊은 곳에 움츠러든 내 혀를 잡아 옭아매고 빨아들였다.


“…!”

살과 살이 만나 점막을 쓸어 올리는 감각에 나도 모르게 콧소리가 났다

카라마츠 어깨를 붙잡은 팔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허리에 감긴 카라마츠의 단단한 팔도 어쩐지 아까보다 더 강하게 느껴져서 죽을 것 같았다

내가 카라마츠의 혀에 번민하는 사이, 거실 안에 쪽, - 하고 야한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동에서나 들었던 키스 소리에 완전히 패닉에 빠진 나는 아직 방 안에 남아 있을 쵸로마츠에게 시선을 돌렸다.


도와줘!! 쵸로마츠으으으으!!

필사적으로 눈빛을 보냈지만, 눈앞에 펼쳐진 형제의 키스신에 쵸로마츠는 완전히 넋이 나가있었다.


, 으읏!! , …, 마흐…!”

키스를 반복하며 살짝살짝 떨어지는 입술 사이로 쵸로마츠를 부르자, ! 하고 정신을 차린 쵸로마츠가 나를 잠시 응시하더니 곧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빠르게 거실을 나갔다.


도와달라고 망할 라이징휴지스키이이이이이이이

형제 키스신에 얼굴 붉히지 말라고 망할 동저어어어어어어엉!!!


도움을 요청하는 내 간절한 눈빛도 무시하고 나간 쵸로마츠를 저주하며 입 안에 있는 카라마츠의 혀를 밀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쵸로마츠를 부른 순간 더 강해진 포옹과 격렬해진 혀의 움직임에 나는 정말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 후응. 햐읏!!”

카라마츠의 혀가 입천장을 간질인 순간 야동에 나오는 누나들이나 내뱉는 가느다란 신음이 목에서 울렸다.


~!!! 도와줘요, 아카츠카 선생님!!!

창피해 죽을 것 같아아아아아아아!!


키스가 이어지는 와중에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슬슬 괴로워졌다.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카라마츠의 등을 세게 내리쳤다.


“…푸핫!!!”

오소마츠, 딴 생각하지 말고 나만 봐라.”

, 슨 말으…, !!!”

다시 겹쳐진 입술에 항의하듯 소리를 질렀지만, 카라마츠의 혀가 들어온 덕분에 완전히 뭉개진 외침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아까 내 입안을 사정없이 누빈 혀는 내 성감대를 기억한 건지 입 안에서도 기분 좋은 곳만 골라 핥아댔다

입천장, 혀의 옆면, 어금니의 잇몸을 핥고, 혀를 옭아매 빨아들이고…. 

살덩어리와 점막에서 느껴지는 쾌락에 나는 거의 울고 있었다

코로 신음을 반복하며 어떻게든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기울이고 카라마츠의 혀에 어울렸다

입이 막혔으니 조금씩 코로 숨을 내쉬며 질식사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자, 카라마츠의 목에서 -” 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가 웃긴데!! 나는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라고!!

바로 지척에 놓인 카라마츠를 흘겨보자 카라마츠의 감긴 눈이 얇게 뜨였다

가늘게 눈을 뜨고 나를 응시하는 카라마츠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스쳤다

아예 손을 들어 내 뒤통수를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단단히 안은 카라마츠가 다시 혀를 움직였다

생전 처음 입으로 느끼는 쾌감과 카라마츠의 심장 박동 소리와 강인한 팔의 힘에 다시 눈 앞이 팽팽 돌았다

이미 패닉에 빠진 뇌가 기어이 모든 기능을 정지했다

차오르는 숨에 답답함을 느끼면서 카라마츠의 옷자락을 꽉 붙잡은 채,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9.

 

으음….”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떠 습관적으로 옆으로 눈을 돌린 순간, 카라마츠의 얼굴이 보였다.


“!?!?!?”

놀라 재빨리 몸을 일으키자 내 옆에 누워있던 카라마츠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 , …. 왜 네가 내 옆에 누워 있어!?”

지극히 당연한 질문을 하는 내 손을 꽉 붙잡은 카라마츠가 맹수처럼 매섭게 빛나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꼭 눈앞에 놓인 먹잇감에게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은 눈빛 같았다.


“…오소마츠.”

-?!”

내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온 카라마츠의 얼굴을 밀며 허리를 뒤로 굽혔다

도망치는 내 모습이 불쾌한지 카라마츠는 눈썹을 찌푸리고 내 허리에 팔을 감아 나를 제 품에 가두었다.


, 뭔데!? 이거!!”

누가 좀 도와줘!!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지만, 육인용의 이불에 남아있는 것은 나와 카라마츠뿐이었다.


오소마츠, 대체 왜 그런 오해를 한 건가.”

“…, 무슨 오해….”

완전히 울상이 된 내가 반쯤 울먹이며 물었다.


내가 오소마츠를 싫어한다는 오해 말이다.”

카라마츠의 물음에 모든 걸 체념한 나는 데카판 연구소에서 약을 잘못 마신 일부터 시작해 어제까지의 모든 일을 이야기했다

진지한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들은 카라마츠는 내 말이 끝나자 어이없단 한숨을 흘리며 제 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렸다.


하아~”

왜 한숨 쉬는데!!”

오소마츠.”

!!”

오소마츠 말대로라면 오소마츠와 아무런 안면도 없는 타인은 「0」으로 표시 되었다고 했지?”

“….”

그리고 마미는 「1122」로 네 자리 숫자였고.”

“….”

그리고 나 역시 마미처럼 「0000」으로 네 자리 숫자였지 않나?”

“…? 그러게?? 왜 네 자리로 표시되었지?”

“…그건 표시 범위를 넘겨서 그런 게 아닌가?”

“…, 시 범위?”

, 오소마츠가 보았던 호감도 수치는 딱 네 자리만 표시되는 거다. 그 이상의 수, 예를 들면 ‘10000 (일만)’ 같은 수는 전부 표시할 수 없는 거지. 그럼 「0000」으로 표시 될 거라 생각되지 않나?”

“…그러니까, 카라마츠 네 말은…, 네 호감도는 표시될 수 있는 수치를 넘어서서 그렇게 나온 거라고?”

. 오소마츠가 볼 수 있는 호감도는 최대 「9999」이고, 그 이상은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 카라마츠가 「0000」이라고 표시된 건, 9999」를 넘어서 그렇다는 거야?”

.”

“…헤에~”

이제 좀 오해가 풀렸나?”

“…,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런가.”

내 중얼거림에 어깨를 들썩이며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다시 눈빛을 바꾸고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오소마~.”

!? !? 왜 가까이 와!?!? 좀 떨어져 줄래?!”

오해도 풀렸고,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제 오소마츠에게 고백도 했다. 대답은 언제 해 줄 거지?”

?”

카라마츠의 말에 잠시 이성이 가출했다.

고개를 기울이고 무슨 소리?’ 하는 얼굴로 쳐다보자, -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역시 기억 못하고 있군.” 하고 혼잣말을 흘렸다.


나는 오소마츠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물론 형제로서가 아니라 오소마츠라는 한 사람으로서.”

?”

어릴 적부터, - 사랑했다. 오소마츠.”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한 카라마츠가 붙잡고 있던 내 손을 들어 손등에 가볍게 입술을 내렸다

멍청히 눈을 깜빡이는 나를 보며 피식- 장난스런 웃음을 흘린 카라마츠가 허공에 떠 있는 내 손에 깍지를 끼고 꽉 잡았다.


, !?”

그러니까, 지금 대답해줘. 오소마츠.”

슬슬 가까이 다가오는 카라마츠의 얼굴에 또다시 뇌가 혼란에 빠졌다

열기를 품고 나를 쳐다보는 카라마츠의 눈빛에 몸이 얼어붙었다

얼굴을 비롯해 온몸의 체온이 순식간에 확 높아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한 번도 카라마츠를 그런 식으로 본 적 없으니 대답을 해 줄 수 없다고 말하려 입을 열었다

대답을 위해 연 입술은 그대로 카라마츠에게 막혀 나는 이후로 한참 동안 신음이 아닌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자러 가겠습니다.

* 단편「매일 한 송이」의 후편입니다!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플롯이 떠올라 쓰고 말았네요ㅎㅎ


* 이번주는 미성년자 분들을 위한 단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마무리한 단편입니다.

  오늘 저녁에 한 편 더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ㅎ


* 공미포 10,573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하늘색 잠옷 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 배를 벅벅 긁으며 하품을 흘렸다

텅 빈 이불을 보며,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뺀 다른 녀석들은 이미 외출한 것을 짐작했다

엄마도 조금 전, 계 모임에 다녀오겠다고 했으니 집 안에 남은 건 나뿐이다

끔찍할 정도로 조용한 집 안을 둘러보고 주방으로 향했다

잠버릇으로 솟아있는 뒷머리를 긁적이고 식빵 2장을 꺼내 토스터기에 넣었다

찬장에서 잼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고 멍하니 의자에 않아있자,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빵이 튀어 올랐다

빵을 접시에 올려놓으며 나온 큰 하품에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소매로 대충 눈물을 닦아내고 빵에 잼을 발라 크게 한 입 베어 먹었다.

 

 

오늘은 대체 뭘 하나-

거식 바닥에 뒹굴며 선택지를 늘어놓았다

파칭코와 경마는 어제 빈털터리가 된 덕분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집에 있는 만화책은 이미 몇 번이고 읽었던 것들이다

만화책 신간은 금요일에나 나오고, 즈다야에 가서 쭉빵 누님들이라도 데려올까 했지만, 지갑을 열어도 먼지만 나오는 현 상황에서는 그것도 불가능하다

그냥 무작정 거리로 나가볼까 생각했지만, 어쩐지 귀찮아졌다

한숨을 내쉬며 다시 뭘 하나- 하고 늘어져 백수의 넘쳐나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현관에 있는 전화벨이 따르릉- 끈질기게 울리고 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귀찮아 무시하기로 했다

모두가 나간 평일 한낮에 걸려오는 전화가 제대로 된 전화일 리 없고

눈을 감고 낮잠이나 자려고 했지만, 끈질기게 울리는 전화벨은 대체 그칠 줄을 몰랐다

작게 혀를 차고 끙- 하고 몸을 일으켰다

박물관에서 전시될 법한 낡고 오래된 검은 전화기의 묵직한 수화기를 들자 엄마의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일찍도 받는다!』

헤헤-, 엄마 왜?”

오늘 오후에 비 온다는데 빨래를 널어놓고 나왔지 뭐니. 좀 들여 놓으렴. 내친김에 개어놓고.

~, 귀찮은데.”

오늘 저녁 굶고 싶지?

전심전력을 다해 미션을 수행하겠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줘, 백수 1~

~”

수화기를 내려놓고 터벅터벅 거실 너머 툇마루에 섰다

엄마 말대로 좁은 마당 한 켠에 널려진 이불과 옷을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내놈이 여섯이니 빨래양도 보통 집의 배가 된다

대나무가 부러져라 널려있는 많은 옷들을 보고 한숨을 내쉰 후, 툇마루 아래에서 나막신을 꺼내 신었다

딸깍- 하고 신을 울리며 마당에 서서 옷을 하나하나 팔에 걸었다

커다란 이불까지 거실에 들어놓고 나자 백수의 한심한 체력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대충 던져놓은 이불에 푹 몸을 묻고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로 숨이 차다니. 완전히 저질 체력이 되어버렸다

이리저리 날아다녔던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에효~” 하고 한숨을 쉬고 나막신을 벗어 거실에 올랐다

제대로 개어놓지 않으면 계 모임에서 돌아온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하다

그럼 다음달부터 내 용돈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쩝쩝 입맛을 다시며 거실에 앉아 산더미 같은 옷 더미에서 옷을 하나 빼내었다.


, 하고 있나?”

스륵- 하고 미닫이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카라마츠가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보면 몰라? 옷 개잖아.”

….”

영문 모를 한숨을 흘리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고개를 기울였다

?” 하고 묻자, 카라마츠가 고개를 홱홱 돌리며 , 아무것도.” 하고 대답했다

이상한 녀석

콧바람을 내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멈췄던 손을 움직였다

손에 든 푸른 후드를 개어 옆에 놓자, 발소리를 울리며 카라마츠가 내 옆에 섰다.


오소마츠, 이거….”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내민 붉은 장미에 ….” 하고 대답했다

정말 매일 질리지도 않는구나, 이 녀석

카라마츠 걸-라는 UMA(Unidentified Mysterious Animal, 미지의 생물)를 찾으러 떠났던 동생에게 어이없는 숨을 흘리고 장미 한 송이를 받아 들었다

활짝 피어나 붉은 빛을 자랑하는 장미의 꽃잎을 슬쩍 매만졌다

수분을 잔뜩 머금은 촉촉한 꽃잎이 부드럽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각에 나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흘렸다.


땡큐~”

“….”

무릎에 올려놓았던 노란 후드를 바닥에 내려놓고 일어나며 말하자, 눈을 끔뻑이며 나를 빤히 바라보던 카라마츠가 고개를 휙 돌리고 작게 대답했다

이 녀석, 오늘따라 이상한데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하며 오늘의 장미를 현관에 놓인 꽃병에 꽂았다

꽃병을 가득 채운 커다란 장미 다발이 현관에서 새어 나온 햇빛에 반짝이며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엄마가 아침에 물을 주고 갔는지 꽃잎에 맺힌 물방울이 햇빛에 무지갯빛으로 빛났다

반짝반짝 빛나는 꽃이 꼭 내게 뭔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날이 갈수록 줄어들지 않고 늘어만 가는 장미 개수에 작게 한숨을 쉬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 도와주려고?”

혼자서 하기엔 많지 않은가.”

거실로 돌아오자 카라마츠가 옷 더미에서 옷을 꺼내 개고 있었다

나한텐 쌀쌀맞아도 상냥한 녀석에게 빙긋 웃고, 거실에 엉덩이를 내렸다.


그럼 나는 TV나 볼까~?”

어이.”

, 알겠다고~”

리모컨을 찾는 나를 보며 눈썹을 팍 찌푸리고 낮게 부르는 카라마츠에게 대답했다

툴툴대며 카라마츠 옆에 앉아 함께 옷을 개어나갔다

문득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묘하게 기쁜 얼굴을 짓는 카라마츠가 보였다.

 

 

 

 

 

 

2.

 

먼지를 뿜어내는 지갑을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모처럼 옆 마을까지 원정 갔건만, 돌아오는 것은 대패배…. 

신기계가 들어왔단 소식에 달려간 거였는데 말이지…. 

당장 내일부터 또 어떻게 하나-, 한탄하며 시내와 주택가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넜다

주택가와 시내를 구분해주는 작은 동네 개천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여러 개의 다리가 놓여있었다.

다리를 건너며 문득 저 멀리 떨어진 또 다른 다리로 눈을 돌렸다

매일 카라마츠가 있는 다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

지나가는 길에 말이나 걸까, 생각하며 강둑을 따라 걷던 도중에 걸음을 멈췄다.


어머! 왜 그쪽에서 와요?”

“?”

놀란 여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작은 꽃가게가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꽃과 화분이 어지럽게 놓여있는 가운데 다갈색 머리를 높게 묶은 여성이 나를 보고 반갑게 웃었다.


맨날 저~쪽에서 왔었잖아요?”

, 저요?”

? 뭐에요~ 갑자기 모르는 척하고~”

명백히 나를 알고 있는 말투에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멍청히 서 있는 나를 보며 여성이 다시 물었다.


오늘 사간 장미는 어떻게 했어요? 드디어 오늘 좋아하는 사람에게 준 거에요?”

….”

여성의 말에 겨우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바로 손을 저으며 카라마츠와 나를 착각한 여성에게 자조치종을 설명했다

육둥이에 내가 카라마츠의 형이라는 설명을 하자, 여성은 놀란 얼굴로 눈을 크게 떴다.


어머, 어머! 그래요? 세상에나~! 내가 착각했네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근데 카라마츠가 매일 여기서 장미 사가는 거에요?”

나를 카라마츠라고 생각하고 너무나 반갑게 인사한 여성에게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여성은 웃으며 !” 하고 대답했다.


매일 가장 싱싱하고 예쁜 장미로 사가요~ 좋아하는 사람한테 줄 거라면서~.”

-”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카라마츠 걸-말이지

절대 임자가 나타날 리 없는 장미에게 동정을 느끼며 가볍게 웃었다

매일 돈 들여 산 장미는 주인도 찾지 못하고, 우리 집 현관에 놓여있다는 말을 꺼내려 입을 연 순간, 여성의 이어지는 말에 숨을 멈췄다.


매일 좋아하는 사람한테 장미는 주는데, 고백은 아직 못했다고 그러던데~”

“….”

어머, 이건 말하면 안 되려나…. 형님이니까 모른 척해줘요~?”

, ….”

충격적인 발언에 이어 뭐라 입을 바삐 움직이는 수다스러운 여성에게 대충 맞장구를 치며 머리를 굴렸다


?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고 있다고

좋아하는 사람

근데 매일 나한테 주잖아, 장미는

? 고백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

??


눈을 깜빡이며 태어나 처음으로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고등학교 시험 기간 때도 이렇게 열심히 굴린 적 없는 머리가 과부하를 일으켜 열을 내며 엄청난 결론을 내뱉었다.


카라마츠가 좋아하는 사람 =


거짓말이지?!”

…, 싫으세요?”

, 아니! !? , 뭐가 싫어요?”

정말~, 당분간 우리 가게에서 알바 안 해보겠냐고 했잖아요! 말 안 듣고 있었어요?”

알바?”

우리 남편이~, 어제 이 아이를 옮기다가 허리가 나가서~. 그래서 내가 좀 조심하라고 했는데.”

어휴~, 하고 한숨을 쉬며 여성이 가리킨 화분을 내려보았다

중간크기의 나무가 심어진 화분은 한눈에 보기에도 굉장히 무거워 보였다.


그래서 남자 손이 좀 필요한데…. 해볼 생각 없어요? 시급은 넉넉하게 줄게요.”

“…할게요.”

어머! 정말요?! 다행이다~! 당장 일손을 구해야 했는데 사람이 없어서 막막했거든요!”

, ….”

그럼 내일부터 나와요! 오늘은 남편이 도와줘서 괜찮으니까! 내일 9시에 오면 되요! , 그리고 내 이름은 시미즈 쿄코에요!”

, 마츠노 오소마츠입니다.”

마츠노 군! 내일부터 잘 부탁해요~!”

.”

 

 

 

 

 

 

3.

 

카라마츠가 나를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에서 미처 헤어나오지 못한 사이에 얼결에 대답해버린 나는 시미즈 씨의 꽃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된 거!?”

꽃이 잔뜩 든 화분을 옮기며 허공에 외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지나가던 미인의 싸늘한 눈길뿐이었다.


, 마츠노 군~ 그거 다 옮기면 이것도 부탁해.”

오랜만에 쓰는 팔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욱신거리는 팔을 주무르며 가게 안의 시미즈 씨에게 대답했다

가게 안에 있던 화분을 전부 밖에 옮기고 나서야 나는 겨우 숨을 돌리고 어지럽게 헤쳐진 머리 속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카라마츠가 나를 좋아한다는 거지?

똑같은 얼굴에 형제인 나를?

아무리 내가 카리스마 레전드 인간국보라지만, 설마 동생까지 홀릴 줄은….


바보 아냐?


똑같은 얼굴에, 형제에, 동성에…. 

대체 뭘 보고 나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둔탱이에 바보에 다른 녀석들에게서 텅 빈 마츠라고 불리고 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피가 이어진 동생이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혐오감은 들지 않지만, 정말로 바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오히려 동정이 느껴질 정도다.


이 장미에 물 좀 줘요.”

.”

멍하니 화분을 보고 있다가 시미즈 씨의 말에 재빨리 정신을 되찾아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 한 구석에 있는 커다란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채워 들어올렸다

묵직한 무게에 허리가 뻐근해졌다. 절실히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며 장미에 가볍게 물을 뿌렸다

촉촉해진 흙과 아래쪽 잎에 방울방울 맺힌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무지갯빛으로 빛났다

시원한 물을 듬뿍 빨아들인 장미도 한층 더 촉촉하고 싱싱해진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장미인가….

카라마츠가 매일 내게 건네는 장미에는 그런 마음이 담겨져 있었던 건가…. 

다시금 녀석은 정말 심각한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 친형에게 고백해봤자 돌아올 대답은 한 가지 밖에 없는데….

 

 

 

 

 

 

4.

 

꽃집의 일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고되었다

매일 커다란 화분을 들고 옮기고, 또 대형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채워 이리저리 휘두르는 일은 운동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는 내 몸에 무시무시한 근육통을 선사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할 때마다 근육이 욱신거리고 뼈 마디마디가 뻐근했다


내가 왜 이 일을 한다고 했을까…. 

, 카라마츠 생각하면서 멍 때리다 하겠다고 했지…. 

망할 카라마츠 자식….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홀로 앉아 잘근잘근 씹으며 카라마츠를 실컷 욕했다

이미 알바를 하고 있다고 말한 엄마는 자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현관을 나서는 나를 친히 배웅까지 하셨다

대충 구겨 신은 신발을 통통 가볍게 현관 바닥에 두드리고 현관문을 연 순간, 시야 한 구석에 붉은 장미가 잡혔다

눈만 슬쩍 돌려 꽃병에 꽂힌 장미에게 눈길을 주고 다시 정면으로 돌렸다

꽃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현관에 놓인 붉은 장미가 이상하게 눈에 밟힌다

현관에 놓인 장미는 카라마츠가 나를 향해 품고 있는 마음의 증거이다

그 장미가 사라지지 않는 한 나를 향한 카라마츠의 마음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딴 마음 빨리 없애는 게 좋은데….”

슬그머니 입 밖으로 기어 나온 진심에 마음이 불편하다

꼭 다리를 저는 친구의 무릎을 걷어찬 것 같은 불편함에 가슴이 답답했다

제가 한 말에 완전히 가라앉은 마음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얼마나 심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꽃집에 도착한 나를 본 시미즈 씨는 순간 강도인 줄 알았어….” 하는 심한 말을 했다.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게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 반. 슬슬 카라마츠가 이쪽으로 올 시간이었다

작게 한숨을 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석에 몸을 숨겼다

처음 알바를 시작할 때, 내가 이곳에서 일하는 건 카라마츠에게 숨겨달라는 부탁을 했다

카라마츠의 마음을 알고 난 뒤로 카라마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고, 카라마츠가 나를 위한 장미를 사는 이 곳에서 만난다면 더 어색할 것 같았으니까

시미즈 씨는 의아한 얼굴을 하면서도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덕분에 카라마츠가 오는 시간에는 이렇게 가게 구석에서 시든 꽃을 정리하거나 바닥을 치우는 등의 일을 했다.


, 어서 와!”

안녕하세요.”

밝은 시미즈 씨의 목소리와 함께 카라마츠의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 보일 것을 알지만 그래도 더 어두운 구석으로 몸을 밀어 넣고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에 귀 기울였다.


오늘도 붉은 장미 하나?”

. 부탁 드립니다.”

후후후-, 이렇게 매일 장미를 바치면 상대방도 기뻐하겠네~.”

“…아뇨, 별 생각 없을지도 모르죠.”

어머, 그래? 나는 매일 장미를 가져다 주면 기분 좋을 것 같은데? 무슨 일일까 싶어서 물어보기도 할 것 같고.”

하하하…. 그런가요?”

! 여기. 가장 싱싱한 장미로 드려요~. 오늘은 고백 성공하길 빌게.”

. 감사합니다.”

카라마츠의 마른 목소리가 울리고 곧 구둣발 소리가 점점 가게에서 멀어졌다

나는 한 순간이라지만 시미즈 씨와 대화를 하는 카라마츠의 모습을 엿본 것을 후회했다.

카라마츠는 보고 있는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데, . 그런 얼굴 하고….

바보 아냐?!

그런 애달픈 얼굴을 해도, 네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데. 바보 같다

진짜 바보 같아….


발치에 놓인 꽃잎을 괜히 신발코로 차며 작은 한숨을 내쉬며 다짐했다

카라마츠가 고백을 한다면 제대로 부드럽게 최대한 상냥하게 답게 거절해주자고

카라마츠가 내가 모르는 저런 얼굴을 하고 슬퍼하는 건 보고 싶지 않다

다리를 향해 터벅터벅 발을 옮기는 카라마츠의 뒷모습을 가게에 숨어 훔쳐보면서 하루라도 빨리 카라마츠가 내게 고백하기를 빌었다

저 어리석은, 불쌍한 마음을 한 시라도 빨리 끝내주어서, 카라마츠의 슬픔을 없애주고 싶었다.

 

멀어지는 등이 묘하게 외로워 보여서, 가슴이 아팠다.

 

 

 

 

 

 

5.

 

다녀왔다, 브라더-!”

, 어서 와.”

가게를 일찍 닫는 꽃집의 사정 상 나는 항상 카라마츠보다 한 발 먼저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멋진 포즈(웃음)을 하고 눈을 반짝이는 카라마츠에게 평소와 같이 인사했다.

항상 하던 대로 거실에 뒹굴며 만화를 보려 했지만, 허리에 놓인 카라마츠의 손에 들린 장미에 아무래도 시선이 가고 만다.


“…카라마츠, 그거 오늘의 장미?”

? , 아아….”

짙은 눈썹을 얕게 늘어뜨리고 부드럽게 일렁이는 눈으로 나를 본 카라마츠가 대답했다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올라 거실로 들어온 카라마츠가 털썩 내 옆에 엉덩이를 내리고 앉았다.


여기, 오소마츠.”

“….”

카라마츠가 내미는 장미를 조심스럽게 건네 받았다

오늘도 싱싱하게 제 아름다움을 뽐내는 장미의 향기에 조금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있지, 카라마츠.”

?”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장미를 든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는지, 고개를 들자마자 카라마츠의 눈과 마주쳐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 나한테 할 말 없어?”

?! , 할 말…?”

. 없어?”

“….”


말해, 빨리

네 슬픔을 끝내 줄 테니까.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대답을 미루는 카라마츠를 쳐다보며 기다렸다

커다란 한숨과 함께 괴로운 얼굴로 눈썹을 찌푸린 카라마츠가 실없이 웃었다

쵸로마츠 마냥 처진 눈썹이 어쩐지 안타깝다.


없다. 딱히 마이 올더 브라더-에게 할 말은….”

“…그래.”

평소와 다름없는 안쓰러운 차남의 말투에 쓴웃음을 짓고 몸을 일으켰다

외부에 오래 나와 생기를 잃기 전에 장미를 다듬어 꽃병에 꽂았다

화분 가득 꽂힌 장미만큼 카라마츠의 슬픔도 이렇게 큰 걸까…. 

동생의 가망 없는 사랑에 괜히 가슴이 조였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카라마츠는 고백하지 않았다

한 가지 변화가 있다면 매일 아무 말도 없이 장미를 건네주던 것이 요즘은 조금이라도 뭐라 말을 하려고 하는 점일까

애처롭게 눈썹을 찌푸리고 말을 더듬으며 필사적으로 내뱉으려는 말을 삼키고, 카라마츠가 내뱉는 말은 언제나와 같은 아픈 말뿐이었다.


오소마츠.”

알바 가려는 나를 현관에서 엄마가 불렀다

~?” 하고 대답하자,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낸 엄마가 내게 내밀었다.


? 뭐야? 용돈?!”

그럴 리 없잖니! 알바하는 가게에서 큰 꽃병 좀 사오련?”

엄마의 말에 ….” 하고 작게 대답하며 지폐를 받았다

눈을 돌려 현관에 놓인 꽃병을 보았다

틈도 없이 꽂혀있는 장미 덕분에 화분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매일매일 한 송이씩 늘어나니 이런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하루라도 빨리 카라마츠가 고백을 하면 끝날 일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묘한 불쾌감에 커다란 한숨을 쉬며 현관을 나왔다.

 

 

? 그럼 저 이제 그만해도 되요?”

! 다음주부터는 남편이 나오니까.”

앗싸!”

어머, 뭐니~.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게 그렇게 싫었어?”

그건 아니지만, 저는 백수로 허송세월 보내는 게 더 좋아요.”

정말~, 오소마츠 군의 어머님이 불쌍해.”

하하하하하.”

감정 없는 웃음을 흘리고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였다

통에 넣기 위해 적당한 길이로 줄기를 자른 꽃이 옆에 수북이 쌓였다

이번주로 이 일도 끝난다고 하니 어쩐지 시원섭섭해졌다

힘든 일이긴 했지만, 시미즈 씨와도 친해졌고, 꽃을 다듬고 관리하는 것도 손이 많이 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시급도 빵빵 했었으니까, 이제 또 빈털터리 생활로 돌아간다는 것이 괴롭다.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시급은 금요일에 몰아서 줄게.”

. 감사합니다.”

시계를 확인하고 허리를 폈다

시미즈 씨도 시각을 확인하고 벌써 이런 시간이네.” 하고 꽃을 정리했다

줄기를 자른 꽃을 대형 물통에 꽃아 가게 한 구석에 밀어 넣고, 바닥에 널린 줄기와 이파리를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시 시계를 확인하고 가게 구석에 몸을 숨겼다.


어서 와! 미리 좋은 장미로 골라 뒀어!”

감사합니다.”

시미즈 씨의 활발한 목소리에 섞여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차라리 지금 확 나가서 네가 꽃을 사는 이유도 다 알고 있다며 얼른 고백하라고 재촉해볼까 생각했지만, 어쩐지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카라마츠의 슬픔이 더 깊어질 것 같았다.


동생 군, 갔어~”

. 감사합니다.”

내가 몸을 숨긴 구석까지 다가와서 빙긋 미소 짓는 시미즈 씨에게 인사했다

시미즈 씨는 후후후- 웃으며 형제는 복잡하네~” 하고 중얼거렸다

타인이 보기엔 명백히 이상한 내 행동을 묻지 않는 시미즈 씨의 상냥함에 속으로 감사하며 시미즈 씨를 따라 다시 꽃을 작업대에 펼쳤다.

 

 

 

시미즈 씨의 꽃가게는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

나는 4시 반부터 가게 밖에 장식된 꽃들과 커다란 화분을 가게에 들여놓고 일을 마쳤다

시미즈 씨에게 꾸벅 인사하고 가게를 나와 터벅터벅 걸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 걸린 다리에 카라마츠의 검은 가죽 재킷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여전히 성과 없는 헌팅을 기다리는 카라마츠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오늘 하루 정도는 같이 돌아갈까, 그렇게 생각하며 다리를 향하던 내 발이 천근을 달아놓은 것처럼 무겁게 땅에 붙었다.


멀리서 봐도 미인임을 알 수 있는 한 여성이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툭툭- 가죽 재킷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이 가늘다

뒤돈 카라마츠는 선글라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있겠지

뻐끔거리는 입이 또 아픈 말이나 하고 있는 것 같다

보통은 저기서 질려 떠나가는데, 오늘의 미인은 배를 잡고 웃으며 화사한 미소를 피웠다

말을 잃은 건 카라마츠다

어벙한 표정으로 서 있는 카라마츠의 손에 들린 장미를 미인이 가리켰다

뭐라 묻는지 멀어서 들리지 않지만 명백하게 당황한 카라마츠의 얼굴이 붉었다


뭐야, 진짜 있었네. 카라마츠 걸-

제대로 카라마츠를 사랑해줄 여자가 있다. 

카라마츠의 아픈 부분까지 제대로 받아줄 사람이 있다

굳이 내가 카라마츠의 고백을 거절하지 않아도, 카라마츠의 슬픔을 끝내줄 사람이 나타났는데….


분명 기뻐야 하는데, 전혀 기쁘지 않다.


즐겁게 대화를 하는 미인과 카라마츠의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보고 싶지 않은데 눈은 수줍게 웃는 카라마츠에게 고정되어 떨어지지 않는다

발도 꼭 강력접착제를 바른 것처럼 땅에 붙어있다

온몸이 가위 눌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여지지 않는다


뭐야, 왜 이래…. 

왜 이러는 건데…. 


두근대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마음이 뭐라 형언할 수 없이 울렁거린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자신의 감정인데, 꼭 완전한 타인의 마음처럼 알 수가 없다

말을 잃은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다

내가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와중에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흘렀다

미인과 대화를 나누던 카라마츠가 다정히 웃으며 장미꽃을 미인에게 내민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면 땅에 붙은 줄 알았던 발이 떨어졌다

뒤돌아 그대로 전속력으로 땅을 박차고 뛰었다.


바보 아냐?! 진짜 바보 아냐?!

 

 

 

 

 

 

6.

 

현관문을 열자마자 대체 어딜 갔었냐고 물으며 달려드는 녀석들에게 파묻혔다

전속력으로 뛰어든 쥬시마츠 덕분에 뚜둑 소리를 낸 허리에 손을 올리고 경마장에서 딴 돈으로 아저씨들과 마시고 왔다고 변명했다

그제야 동생들은 내 몸에서 풀풀 풍기는 술 냄새를 맡았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하나 둘씩 내게서 떨어졌다

쥬시마츠만이 아직도 내게 매달려있어, 떨어지지 않게 쥬시마츠를 안아 들고 걸음을 옮겨 거실로 들어갔다.


걱정했었다. 오소마츠.”

~, 미안.”

그리고….”

“…? 오늘은 없, 는 거 아냐?”

?”

, 아냐. 아무 것도. 일단 땡큐….”

.”

카라마츠가 내민 장미를 받아 들고 작게 인사했다

내 손에 들린 장미를 쳐다보는 카라마츠의 눈가가 부드럽게 휘었다

잔잔한 미소가 깃든 얼굴로 카라마츠가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거실 중앙에 내게 매달린 쥬시마츠를 내려놓고 장미를 들고 복도로 나와 꽃병 앞에 섰다.


대체 왜 지금 내 손에 장미가 들려있는 거야?

카라마츠는 분명, 낮에 미인과 즐겁게 대화했는데…. 

장미도 넘겨줬는데, 대체 왜?

매일 건네 줬으니까 오늘은 의리로 줬다던가?


조금 시들어 고개를 내리고 있는 장미를 꽃병에 꽂는 손이 덜덜 떨렸다

꽃병이 터져라 가득 찬 장미를 보며 그제야 주머니에 구겨 넣은 지폐를 떠올렸다

엄마가 더 큰 꽃병 사오라고 했는데

멍청히 생각하며 나는 한참을 하염없이 현관에 서서 장미를 응시했다.

 

 

 

전속력으로 뛰어 옆 마을까지 가고 나서야 겨우 뜀박질을 멈춘 나는 제대로 생각을 정리할 수 없었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왜 마음이 아픈지, 이해하려고 해도 이성이 브레이크를 걸고 그것을 막았다

답답함에 기분을 땅 끝으로 떨어졌다. 조금이라도 이 더러운 기분을 해소하고자 술을 들이켰다

알코올에 취해 알딸딸한 상태에서도 가슴 깊숙이 진득이 자리잡은 검은 덩어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날도 카라마츠는 평소와 다름없이 카라마츠 걸-즈를 찾아 다리로 향했고, 저녁에 돌아올 때는 장미 한 송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미 주인을 찾은 장미를 왜 내게 주는 건지 묻고 싶은 마음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이를 악물고 삼켰다

그 말을 내뱉었다간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말 거라는 생각에, 나는 카라마츠에게 아무 것도 물을 수 없었다.

 

 

하아~.”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어?”

꽃에 물을 주는 나를 보며 시미즈 씨가 물었다

작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대답을 하고 텅 빈 물뿌리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시미즈 씨는 의심쩍단 얼굴로 잠시 나를 보더니 다시 눈을 돌려 작업대에 펼쳐진 꽃다발을 정리했다.


“…그거 예쁘네요.”

그렇지? 여자는 누구든 이렇게 예쁜 꽃다발을 받으면 엄청 행복해 한다구~”

단골 고객이 주문한 꽃다발에 정성스럽게 리본을 달며 시미즈 씨가 활짝 웃었다

종류는 잘 몰라도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한데 뭉쳐 그 빛을 더 화사하게 발했다

튀어나온 꽃잎을 떼내고 꽃을 정돈하는 시미즈 씨가 행복한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늘은 기분 좋으시네요?”

~, 이 꽃다발을 보니까 남편이 생각나서~ 글쎄 있지~”

.”

우리 남편이 처음 나한테 고백할 때, 이렇게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말이야~. 그런데 우리 남편이 좀 못생겼거든. 전형적인 여자한테 인기 없는 스타일! 그래서 나도 처음엔 싫다고 했지. 그런데 매일매일 꽃을 가져다 바치는 거야. 솔직히 나는 꽃 별로 안 좋아했거든. 근데 매일 다른 종류의 꽃을 가져다 주니까 호기심이 생겨서 꽃에 대해 알아봤어. 남편이 내게 주는 꽃들은 하나같이 꽃말이 너무 이쁘더라구~. 그래서 꽃도 좋아하게 됐고, 우리 남편도 좋아하게 됐어~”

~”

꽃의 마법, 이려나. 그렇게 매일 꽃으로 사랑을 고백하면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잖아?

“…그렇, 네요.”


시미즈 씨의 말에 숨이 턱 막혔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가슴이 간지러우면서 카라마츠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보 아냐?

 

오소마츠 군, 오늘로 마지막이네.”

, .”

꽃잎을 쓸던 빗자루를 멈추고 시선을 돌려 시미즈 씨에게 대답했다

어느새 완성된 꽃다발 옆에 파란색의 장미가 놓여 있었다.


파란, 장미?”

? , 이거! 오늘 들어왔어! 특별 주문~. 비싸다고~!”

헤에….”

오소마츠 군! 파란 장미의 꽃말이 뭔지 알아?”

아뇨….”

파란 장미는 자연적인 교배로 만들 수 없어서 꽃말이 불가능이었어. 그런데 과학의 발전으로 파란 장미가 생겨났고, 꽃말도 바뀌었지. ‘불가능에서 희망으로 말이야.”

“….”

하늘을 닮은 푸른 장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봤다

2 50. 곧 카라마츠가 집을 나설 시간이었다.


“…시미즈 씨. 저 잠깐, 나갔다 와도 될까요?”

?”

그리고, 그 장미 한 송이만 살 수 있을까요?”

“…그래! 그 동안 도와줬으니까! 한 송이는 그냥 줄게.”

감사합니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 다녀 와~.”

가게를 나오자마자 바람을 헤치고 뛰어갔다

-, - 귓가를 스치는 바람에 머리가 흩날렸다

손에 쥔 장미가 꺾일까 소중하게 손으로 쥐고 집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카라마츠!!!”

으힛!! !!”

! 소리가 나도록 세게 열어젖힌 현관 너머에 카라마츠가 겁을 집어먹고 대답했다

가쁜 숨을 몰아 쉬고, 마른침을 삼키며 호흡을 정리했다

전속력으로 뛰어온 탓에 심장이 고막에 울렸다

왼쪽 가슴에서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집 안으로 한 걸음 내디디어 카라마츠 앞에 섰다.


.”

…?”

품에 소중히 안고 있던 푸른 장미를 카라마츠에게 내밀자, 카라마츠가 한심한 얼굴로 장미를 받아 들었다

카라마츠의 색인 푸른 장미는 역시 내 예상대로 카라마츠에게 굉장히 잘 어울렸다

장미를 손에 든 카라마츠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 오르면서 얼굴이 뜨거워져 웃음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려 동요를 감췄다.

가슴에 피어 오르는 이름 모를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코 밑을 문질렀다

나를 응시하는 카라마츠의 눈에 내가 비친 것이 기뻤다.


 

나는, 꽃다발보단 돈다발이 좋아! 그러니까 고백할 때는 이걸로 줘!”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동그라미를 만들고 씩- 웃었다

카라마츠는 여전히 멍청히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어쩐지 부끄러워져 재빨리 외치고 다시 현관을 뛰쳐나왔다

다시 가게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꼭 하늘을 걷고 있는 것처럼 가벼웠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전편에 남겨주신 댓글 읽다보니 후편을 쓰고 싶어져 쓰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엔딩은 역시 해피 엔딩이 좋네요!! ㅎㅎ

* 오랜만에 주말출근이 없는 휴일이라! (근데 내일은 나갑니다...ㅎㅎ) 멍때리다가 생각나 올립니다ㅎㅎㅎ


* 전에도 어딘가 썼던것 같은데 저는 브라콤입니다ㅎㅎ  제가 장녀고 3살 아래 남동생이 있습니다ㅎㅎ


* 밥 먹다 문득 예전 동생과의 대화가 떠올라서 올려보고 싶어졌어요ㅎㅎㅎ

  기억에 의존한 대화라 각색이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ㅎㅎ

  동생 자랑하려고 올려요ㅎㅎ


* 동생과의 사이는 제법 좋은 편입니다ㅎ





1.


재작년? 설날에 시골에 내려가는 자동차 안에서의 대화입니다.



- 아빠의 형제 이야기를 하다가 나이가 먹어도 동생은 귀엽다는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ㅎㅎ-


동생 : 내가 40살 먹고 배가 나온 아저씨여도 귀엽다고??


나 : 응, 귀여워 (단언)


동생 : ...



그러다가 나온 빵터지는 대화


동생 : 나는 누나가 걱정이야.


나 : 응? 갑자기 왜?


동생 : 집에 와서 막 술먹고 그러잖아


(저는 술을 못해서 회식에서 한 두잔 받아먹고 마는데, 집에서는 가끔 약한 도수의 술을 마십니다. 이슬톡톡 같은거)


나 : 스트레스 받으면 마실 수도 있지!


동생 : 누나가 점점 망가져가고 있어


나 : 망가졐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빵터짐)


엄마 : 아닠ㅋㅋㅋ, 누나가 가끔 술 마시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니잖아


동생 : 그러다가 사람이 망가지는 거야!! 술 가끔 마시다가 알콜 중독되는 거고! 그러다 담배도 피고!! 어!


엄마, 나, 운전하시던 아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생을 제외한 전원 빵터짐)



동생 혼자 굉장히 진지했습니다ㅋㅋㅋㅋ







2.


2살 아래 여자아이와 연얘 중인 동생


동생 : 나는 다음엔 연상을 사귈래


나 : 응? 왜? 지금 사귀는 애가 너무 어려?


동생 : 응. 그리고 나는 연인이랑 좀 더 고차원적인 대화를 하고 싶어


나 : ㅋㅋㅋㅋㅋㅋㅋㅋ







3.


일 때문에 타지에서 자취생활 중인 저는 한달에 한 번 본가에 갑니다


동생 : 어서와


나 : 다녀왔어. 누나 없어서 외로웠어?ㅋㅋ 


동생 : 어, 좀... 누나가 집에 없으니까 좀 쓸쓸했어


나 : (감동!!!)



하나 더! 제가 집에 가기 전에 미리 카톡으로 연락을 하고 집에 가는데


동생 : (카톡으로) 누나 언제 와?


나 : 0시 쯤에 갈려고. 왜?


동생 : 아니, 그냥 물어봤어.


나 : (귀여운 녀석!)







4.


얼마 전, 동생 생일날


나 : (카톡으로) 아직 자고 있겠지만... 생일 축하혀~


-제 동생은 점심 때 넘어야 일어납니다-


동생 : (점심 지나고 카톡으로) 댕스(오타인듯)... 시스터~



반대로, 제 생일날


동생 : (카톡으로) 생축~~ 모쪼록 좋은 하루 보내길... 작은 행운이라도 생기는 생일 보내삼


나 : 오~ 땡스~~ㅎㅎ


-그리고 저는 회식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죽다 살아났습니다...-







5.


군입대를 앞둔 동생


나 : 요즘은 알바 안해?


동생 : 군대를 앞두고 알바따위로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아


나 : ㅋㅋㅋㅋㅋㅋ


동생 : 제대로 시간을 탕진하고 가야 덜 억울할 것 같아


나 :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동생은 백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나 더, 군대에 대해 말하던 중


동생 : 누나는 나 휴가 나오면 '왜 또 나왔어?' 같은 말 하지마


나 : ㅋㅋㅋㅋㅋㅋㅋ오키


동생 : 상처받아


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서 전화나 편지 해


동생 : 응, 면회도 올거지?


나 : 봐서...


-동생은 아마도 후방 배치 예정 (충북? 충남? 인걸로 기억합니다)-







6.


최근에 본가 갔을 때, 침대에 누워 TV 보는 제 옆에 누운 동생


동생 : (스윽 손을 뻗어 제 뱃살을 만짐)


나 : 앜ㅋㅋㅋㅋ 저리 치워!! 간지럽다고!!


동생 : (이해안된단 얼굴로) 이게 간지럽다고??


나 : 간지러! 그리고 니 배 만지라고!


동생 : 내 배는 누나 배처럼 말랑말랑하지 않아


나 : (죽일까..)







7.


카톡대화


나 : 토욜에 (본가가면) 같이 고양이카페 가자


동생 : 노노... 좀 쉬자


나 : 넌 맨날 쉬면서!! 맨날 집에서 쉬면서!!


동생 : 군대가기 전에 다 쉬어야해


나 : 평일에도 쉬면서!!


동생 :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야


나 :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고양이 카페 가자고!


동생 : 심신이 안정돼야 해


나 : ㅋㅋㅋㅋㅋㅋ 젠장! 겁나 잉여로운 녀석...


동생 : 고양이 카페 멀어서 안돼. 후후후


나 : 너는 왜 나보다 더 집돌이여ㅋㅋㅋ

     됐쓰 혼자 갔다올껴...ㅠ

     잉여로운 녀석. 평생 잉여롭게 살아라

     나중에 자식들한테 안 놀아준다고 원망이나 들어라

     마누라한테 휴일에 빈둥거린다고 등짝스매시나 먹어라

     뒹굴거리다 30 넘어서 배나 나와라


동생 : ㅋㅋㅋㅋㅋㅋㅋ (여유로운 이모티콘)


-결국 고양이카페는 못갔어요... 혼자라도 가야지...-







8.


명절에 시골집. 친척들 모두 모여 큰방에서 TV 보고 있을 때


나 : (멍 때리며 TV 보다가 문득 동생한테 팔짱끼고 앉아있는 걸 깨달음)


동생 : (마찬가지로 멍 때리며 TV 시청)


나 : (그냥 그대로 TV 봄)




팔짱에 관련된 대화 하나 더,


겨울에 가족끼리 심야영화 보러가는 중


나 : 으~ 추워!! 팔 좀 빌려줘!


동생 : ...


나 : (대답도 안 듣고 동생 팔에 팔짱끼고 꽉 껴안음. 이러면 좀 덜 춥더라구요.)


동생 : ... (생각이 없다.)






이상입니다ㅎ


쓰다보니 제법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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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편입니다. 전편의 건전함이 무색한 불건전한 편입니다...ㅎㅎ

  역시 저는 야한걸 못쓰네요...


* 미성년자 (19세 이하)는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 주의) 고어적이나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비속어도 있습니다.


* 모브녀와 쵸로마츠와의 관계 표현이 아주 약간 있습니다.

 카라마츠의 싸이코패스 기질이 조금 나옵니다.


* 공미포 16,766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인글은 포스타입 블로그에 옮겼습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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