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딧불이의 숲으로』라는 애니메이션의 설정을 따왔습니다. 제법 가슴 아련한 사랑이야기로 한번 찾아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이번에 여우 오소마츠 일러스트가 나온 모양이던데, 「여우 오소마츠 + 반딧불이의 숲으로」 라는 망상에서 시작된 글입니다.


* 오소마츠를 제외한 다섯명이 오쌍둥이입니다.


* 원작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엔딩입니다. 저는 무조건 해피엔딩을 선호하므로...


* 부족한 글입니다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

 

「절대 인간에게 닿아서는 안 된다.

근엄한 목소리가 숲에 울렸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청년이 콧노래를 부르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깊은 숲 속으로 사라졌다.

 

 

1.

시끄럽게 울어대던 벌레 소리도 사라진 고요한 숲 속. 땀에 젖은 티셔츠를 두 주먹 가득 쥐고 불안에 떤 눈빛으로 이치마츠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오쌍둥이가 함께 놀러 온 시골 할머니댁. 형제들과 함께 놀러 온 숲에서 고양이를 발견해 무심코 고양이를 따라 깊은 숲 속으로 들어온 이치마츠가 눈물을 글썽였다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였던 오쌍둥이와 떨어져 혼자 남겨진 감각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작게 쥬시마츠으…”하고 자신의 파트너를 불러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이치마츠는 거칠게 팔로 눈물을 닦아내고 코를 훌쩍였다.


여긴 어디야? 집에 돌아가고 싶어…’

울먹이며 방향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발이 움직이는 대로 걸었다

어린 이치마츠는 자신이 서서히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정처 없이 걷던 발이 멈췄다

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하늘 가득 빽빽이 자란 나무가 가리고 있는 숲 속 한 가운데

홀로 남은 이치마츠가 결국 참고 참아오던 울음을 터뜨렸다.


, 우와아아아아아!!! 쥬시마츠으!!!! 토도마츠으!!! 카라마츠!! 쵸로마츠으!!! 어디있어!!!!!”

고요한 숲 속에 이치마츠의 울음 소리가 메아리쳤다. 아무리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이치마츠의 울음 소리가 더욱 커졌다.


어이, 꼬맹아.”

한창 울부짖던 와중, 옆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에 이치마츠가 퍼뜩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붉은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고 여우가면을 쓴 청년이 (가면을 쓰고 있어 잘 알 수는 없지만) 이치마츠쪽을 보고 있었다.


, 우흑.. , 저기 나, 길을 잃어서..”

울음을 멈추고 청년의 존재에 안도감을 느끼며 이치마츠가 다가가 손을 뻗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된 이치마츠는 자신을 불러준 이 청년의 존재가 너무나 고마웠다

형제 외의 타인을 어려워하는 이치마츠가 스스로 다가갔지만, (이치마츠의 접근에 놀랐는지) 청년은 크게 몸을 움찔거리며 자신의 손을 뒤로 내빼었다.


“…..”

, 아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청년의 거부에 이치마츠가 다시 눈물을 글썽거리며 뻗었던 손을 가슴께로 가져가 고개를 숙였다

청년은 눈에 띄게 당황해 하며 손을 저었다. 여전히 이치마츠에게 말을 걸면서도 다가오지는 않는 청년의 모습에 이치마츠의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이 크기를 더했다.


~ 정말~ 미안하다고, 꼬맹아~”

바삭바삭 풀이 밟히는 소리가 울리고 청년이 이치마츠의 코 앞까지 다가왔다

청년이 쓰고 있는 여우 가면이 고개를 든 이치마츠의 뿌연 시야를 가득 채웠다

자신을 거부하지 않고 다가와준 청년에게 이치마츠가 팔을 벌리고 안기려 하자, 청년이 우왓!”하고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몸을 피했다

청년이 몸을 피한 덕분에 그대로 풀 밭에 정면으로 넘어진 이치마츠가 , 우아아아~!!”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청년은 이치마츠의 옆에서 손을 흔들며 안절부절 못한 채, 당황하고 있었다.


!”

넘어진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치마츠의 앞에 아기 여우가 나타났다

!” 하고 한번 더 울더니 이치마츠의 눈물을 핥아주었다. 아기 고양이만한 아기 여우의 등장에 이치마츠의 눈물이 그쳤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아기 여우를 안아 든 이치마츠가 살며시 웃으며 아기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겨우 그쳤네.”

이치마츠의 옆에서 자리를 지키던 청년이 (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슬쩍 고개를 돌린 이치마츠의 얼굴을 본 청년이 우하하하하!!”하며 무례하게 웃었다

자신을 보며 갑자기 웃음을 쏟아내는 청년에게 눈살을 찌푸리고 노려보고 있으니 으힉-“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청년이 말했다.


, 너 얼굴 엉망진창.. 큭큭. 미안해, 잡아주지 않아서. 나는 내 생활이 걸렸었다고.”

청년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아 이치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청년이 다시 말했다.


나는 인간에게 닿으면 사라져버려.”

청년의 말에 이치마츠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닿으면 사라져? 인간에게

순간 이치마츠는 눈 앞의 청년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하고 작게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쳤다.

이치마츠가 거리를 벌리자 청년이 (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쓰게 웃으며 말했다.


어라아~ 피하는 거야? 나는 길을 알려주려는 무~지 친절한 사람인데.”

아니, 사람 아니잖아, ..”

청년의 말투는 장난스러웠고, 한층 경계를 늦춘 이치마츠가 태클을 걸자 청년이 또다시 큭큭대며 웃었다

가면을 쓴 채, 큭큭대며 배를 붙잡고 웃는 청년을 한참동안 이치마츠가 바라보고 있었다

다 웃었는지 고개를 든 청년이 근처를 두리번거리더니 곧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를 주워왔다.


, 이쪽 잡아.”

“…?”

길 알려줄게. 잡아.”

청년의 말에 이치마츠가 의심스럽다는 얼굴을 지으면서도 청년이 내민 나뭇가지의 끝을 잡았다

나뭇가지의 반대쪽 끝을 잡은 청년이 앞서 걷기 시작했다. 말없이 이치마츠는 아기 여우를 꼭 안고 청년의 뒤를 따랐다.

 

...


.”
청년과 한참을 걷자 이치마츠가 아는 곳이 나왔다. 여전히 숲 속이었지만 지금 보이는 곳은 항상 형제들과 놀던 곳으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여기서부턴 집 찾아갈 수 있지?”

청년이 뒤돌아 말하자 이치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가 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자마자 저 멀리서 이치마츠를 찾는 형제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치마츠~ 어디있어~?””””

형제들의 목소리에 이치마츠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치마츠가 형제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품에 안고 있던 아기 여우가 몸부림쳐 이치마츠에게서 벗어나 청년의 어깨로 훌쩍 올라갔다.


“...”

이 녀석은 내 친구라서 데려가면 곤란해~.”

청년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하곤 숲 입구에 놓인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았다.


잘 가, 꼬맹아~. 또 깊은 숲으로 들어가지 말고~”

청년은 휙휙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치마츠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곤 형제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서서히 형제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지자 이치마츠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청년이 있는 쪽을 확인했다.

“…”

계속 여우 가면을 쓰고 있던 청년이 가면을 반쯤 벗고 이치마츠가 있는 쪽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제법 멀리 떨어져 청년의 얼굴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제대로 눈, , 입이 붙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치마츠가 다시 고개를 돌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달걀귀신은 아닌가 보네.’

묘하게 떨려오는 가슴을 붙잡고, 형제들을 향해 나아가는 이치마츠가 생각했다.

 


 

2.

이치마츠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다음날, 숲 속에서 노는 것은 위험하다는 할머니의 말에 오늘은 모두 근처의 강가에 놀러가기로 했다

시끌벅적 떠들며 강가에 갈 준비를 하는 형제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치마츠가 말했다.


나는 안 갈래.”

“”””~? ?””””

입을 모아 의아한 얼굴로 묻는 똑 같은 얼굴의 형제들에게 이치마츠가 몸을 움츠리고 말했다.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

“”””그럼 할 수 없지~ 우리끼리 놀다 오자!””””

이치마츠의 말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는 순진한 형제들은 그대로 이치마츠 집에 놔두고 강가로 향했다

형제들이 모두 나간 텅 빈 집 안, 이치마츠는 뭔가를 각오한 듯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어제의 장소를 향해 숲 속으로 들어갔다. 숲이 가까워지자 저절로 발도 빨라져 어제의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이치마츠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아아~ 또 오지 말라고 했는데~”

어제의 그 장소에 도착하자 청년이 어제와 같이 큰 바위에 걸터앉아 이치마츠를 향해 말했다

청년의 어깨엔 어제의 아기 여우가 올라타 있었다. 두 쌍의 눈이 이치마츠를 향해 있었지만 그 눈빛은 결코 사납지 않았다.


말 안 듣는 꼬맹이네~”

나무라는 말투가 아닌, 장난스러운 청년의 말투에 이치마츠가 빙긋 미소 지었다.


나는 꼬맹이가 아니야! ‘이치마츠라는 제대로 된 이름이 있어!”

“…이치마츠.”

!”

이치마츠의 발언에 청년이 잠시 침묵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치마츠를 불렀다

청년의 어깨에 앉아있던 아기 여우도 이치마츠를 부르는 듯 작게 울었다

아버지 이외의 성인 남성에게 이름을 불린 적이 없었던 이치마츠가 얼굴을 붉히며 .”하고 대답했다.


나는 오소마츠.”

“…오소마츠.”

.”

그리고 이 녀석은 ’.”

아기 여우를 가리키며 말하는 오소마츠의 표정은 가면에 가려져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부드럽게 웃고 있을 것이라고 이치마츠는 생각했다

잠에 들 것만 같은, 어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 같은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오소마츠가 말했다.


이치마츠, 따라 와.”

오소마츠가 바위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팡팡 털고는 앞서 걸었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오소마츠를 이치마츠가 급히 뒤따랐다

어제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지 주위의 풍경이 어제와 조금 달랐다

제법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자 어느새 넓은 평원과 커다란 호수가 이치마츠의 눈 앞에 나타났다.

완만한 언덕에는 붉은 꽃들이 활짝 피어 바람에 살랑살랑 흩날리고, 호수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몇 번이고 놀러 왔던 숲이었지만 이런 곳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이치마츠가 우와…”하고 솔직하게 감탄했다.


여기, 나만 알고 있던 비밀 장소야.”

초롱초롱한 눈으로 풍경을 담아내던 이치마츠를 내려다보며 오소마츠가 말했다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어 오소마츠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한테 알려 줘도 괜찮아?”

괜찮아~ 이치마츠군은 착한 아이같고~”

장난스럽게 말한 오소마츠가 호수가의 작은 언덕에 털썩 앉았다

이치마츠가 살며시 오소마츠의 곁에 다가가 앉자 오소마츠의 어깨에 있던 아기 여우가 이치마츠에게 다가왔다.


우왓…!”

이치마츠에게 다가온 아기 여우가 망설임 없이 이치마츠의 무릎 위로 올라가 몸을 둥글게 말았다

무릎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이치마츠가 당황해하자 오소마츠가 아기 여우의 등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도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

“…흐음..”

살포시 이치마츠의 뺨이 붉게 물든 것을 눈치챈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이치마츠를 내려다보았다.

 

 


3.

그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이치마츠는 오소마츠를 찾아왔다

오소마츠는 항상 숲의 입구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타 이치마츠를 맞이해 주었다

셀 수 없는 많은 여름의 날들을, 둘이 함께 보냈다. 오소마츠의 비밀 장소의 호수에서 물장구 치며 놀고, 깊은 숲 속을 함께 탐험했다

이치마츠가 가져온 공으로 여우 과 함께 던지고 받기를 하기도 했다. 너무나 즐겁고 즐거운 날들이었다

오소마츠와 함께 있으면 이치마츠는 오쌍둥이의 셋째가 아닌, 이치마츠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왜 오소마츠는 사람과 닿으면 안돼?”

깊은 숲 속을 탐험하고, 숲 입구로 돌아가는 길. 나뭇가지의 끝과 끝을 잡은 채, 이치마츠가 물었다

이치마츠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숲 속에 버려진 갓난아기였대. 그대로 숲 속에서 굶어 죽을 운명이었는데 산신이 나를 불쌍히 여겨서 이승에 붙잡아 둔거야

나는 본래 인간으로 저승에 갈 영혼이 억지로 이승에 붙잡혀 요괴도, 인간도 아닌 존재가 된 거지

그래서 인간과 닿으면 나를 붙잡고 있는 산신의 힘이 사라져서 그대로 사라져버린다고 하더라고~.”

마치 남 일 이야기를 하듯 술술 말하는 오소마츠를 올려다보며 이치마츠가 나뭇가지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절대 오소마츠를 만지지 않을 거니까.”

?”

어린 이치마츠의 다짐에 오소마츠가 뒤돌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가 눈물로 촉촉해진 눈으로 오소마츠를 올려다보았다.


오소마츠가 사라지는 건 싫으니까, 그러니까 오소마츠도 절대 나를 만지면 안돼.”

이치마츠의 앳된 목소리에는 아이답지 않은 무게가 실려 있었다. 오소마츠가 쓴 가면 안에서 하고 숨을 내뱉는 소리가 났다.


꼬맹이가…”

말을 잇지 못한 채,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걸음을 재촉했다.

 


 

4.

매년 질리지도 않고 오네. 꼬맹이 이치마츠~”

이젠 암묵적인 만남 장소가 되어버린 숲 속의 입구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오소마츠와 아기 여우 콘이 바위에 앉아 이치마츠를 향해 말했다

중학교의 교복을 입은 이치마츠가 하고 코웃음치곤 말했다.


, 이제 꼬맹이 아닌데. 벌써 중학생이고.”

중학생? 그럼 몇 살인 거야?”

오소마츠가 멍청히 묻자 이치마츠가 그것도 모르는 거야?”하고 황당하단 얼굴로 대답했다.


“13!”

뭐야아~ 아직도 꼬맹이구만~”

자랑스럽게 나이를 외치는 이치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웃으며 말했다

항상 얼굴을 가린 채 쓰고 있던 여우가면은 머리 옆에 걸쳐있어 오소마츠의 장난기 섞인 얼굴이 시원하게 보이고 있었다.

 


10, 처음 오소마츠를 만난 이후로 이치마츠는 매년 여름 이 곳에 왔다

한달이라는 여름방학을 이치마츠는 온전히 시골 할머니 댁에서 보냈다

다른 형제들이 시골 할머니댁은 질렸다고 다른 곳으로 놀러 가자고 할 때도, 이치마츠는 홀로 할머니댁에 왔다

전부 오소마츠를 만나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작년,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기념으로 오소마츠에게 가면 속 얼굴을 보여달라고 했다

이치마츠와 함께 있는 오소마츠는 절대 그 여우가면을 벗은 적이 없었다.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고싶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던 것이, 여러 시도가 실패하자 오기로 바뀌어 있었다. 무슨일이 있어도 얼굴을 보고 말 테다! 이치마츠가 각오를 다졌다.


~.”

“….”

초등학교 졸업 선물로 가면을 벗어달라고 했지만 당연히 오소마츠는 거절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이유를 묻자 오소마츠는 그냥?”이라고 한심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런 것 보다, 놀러 가자!”

오소마츠가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르며 말했다

그 날은 유난히 더운 날이어서 오소마츠와 이치마츠는 함께 오소마츠의 비밀장소인 호수가로 향했다

호수의 물은 적당히 시원해서 오소마츠와 함께 시간도 잊고 정신없이 물장난을 친 이치마츠가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호수가 옆의 언덕에 앉았다

오소마츠도 따라 나와 이치마츠의 옆에 누웠다. 이내 오소마츠가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었고, 이치마츠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소마츠의 얼굴에 쓰인 가면을 들어올렸다.


“…!!”

가면 아래, 어떤 얼굴이 있을까? 두근대며 들어올린 가면을 이치마츠가 재빨리 오소마츠에게 쓰였다.


우왓!! 아팟!!!”

무심코 힘이 들어가 가면을 그대로 오소마츠의 얼굴에 들이박아 버렸지만, 이치마츠의 머리속에는 그러한 정보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소마츠의 아프다는 비명도 저 멀리에서 들리는 듯 작게 들렸다.


어째서 나랑 똑 같은 얼굴?’

두근두근 심장이 떨렸다. 결국 그 날은 할 일이 생각났다며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서도 가슴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마침 자신을 부르는 할머니의 곁에 앉았다.


할머니, 혹시 우리 친척 중에 오소마츠라는 사람이 있나요?”

이치마츠의 물음에 할머니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차를 마시던 손을 멈추었다

김이 나는 찻잔이 할머니의 손에 들린 채 멈춰있는 것을 이치마츠가 멍하니 쳐다보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고 조심스럽게 찻잔을 마루에 내려놓은 할머니가 말했다.


, 어째서 그 이름은 알고있니?”

할머니의 물음에 이치마츠가 당황하며 , , 족보에 이름이 써 있어서!”라고 맹렬히 머리를 굴려 대답했다

이치마츠의 질문에 할머니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옛날엔 이 마을도 기근이 심하게 들어서, 다들 가난했단다. 그런 힘든 시기에 태어난 아기는 공공연하게 숲 속에 버려지곤 했어… 

사람으로서 부모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지만, 그때는 그 정도로 절박했단다

오소마츠는 네 할아버지의 형님의 이름이야. 태어나고 이름까지 받았지만 결국엔 숲에 버릴 수 밖에 없었다고… 

네 증조 할머니께서 평생 후회하셨단다.”

 

...


작년, 할머니와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며 이치마츠가 앞서 걸어가는 오소마츠를 뒤따랐다

오소마츠가 잠든 사이 몰래 가면 뒤의 얼굴을 본 후로, 오소마츠는 가면을 쓰는 것을 고집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 맨 얼굴을 감춘 건 그냥 재미였고, 이미 들켰으니 상관 없잖아?”라는 가벼운 대답이 돌아왔다

두 손을 깍지 끼고 머리 뒤에 올려 콧노래를 부르며 사박사박 풀을 밟아가며 나아가는 오소마츠의 모습을 이치마츠가 두 눈 가득 담았다.


, 맞다!”

앞서 걸어가던 오소마츠가 갑자기 우뚝 멈춰서더니 이치마츠를 향해 뒤돌았다

씩 장난스럽게 웃고는 오소마츠가 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들어가며 외쳤다.


거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제대로 길이 나지도 않은 숲 속을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가는 오소마츠의 뒷모습을 보며 이치마츠는 얌전히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몇 년간 오소마츠와 함께 숲 속에서 놀며 배운 것이 있다면 오소마츠 없이 혼자서 함부로 숲 속을 걸어 다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아닌 오소마츠는 괜찮아도 깊은 숲 속엔 인간이 알지 못하는 심연이 숨겨져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심연에 홀려 들어가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고, 오소마츠는 단단히 당부했다

주저 앉은 채, 눈을 감고 숲 속 가득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듣고있던 이치마츠가 눈을 떴다

매미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가녀린 꺼질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와 이치마츠가 일어나 소리가 들려오는 풀 숲을 헤집었다.


…”

작은 아기 새가 둥지에서 떨어졌는지 몸을 떨며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날개는 야속하게도 아기 새의 몸을 공중에 띄우지 못했다

서럽게 우는 아기 새를 이치마츠가 조심히 들어올렸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작은 온기에 이치마츠가 살며시 미소지었다

고개를 들어 아기 새가 떨어진 둥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나무 위 둥지에서 아래를 보고 울고있는 아기 새의 형제들을 발견했다.


저 녀석들도 네가 걱정인가보다.”

이치마츠의 손에 들려 있는 아기 새를 향해 울고 있는 형제 새들을 보고 하고 웃으며 이치마츠가 말했다

조심히 조심히 아기 새를 한 손에 올린 이치마츠가 둥지가 있는 나무에 올랐다

한 손만 사용해 민첩하게 나무에 오른 이치마츠가 둥지 안에 아기 새를 넣어주었다

형제 새들이 아기 새에게 다가와 짹짹기쁘게 웃는 것 같아 이치마츠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제 천천히 내려가기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긴장을 늦춘 탓일까 위태롭게 나뭇가지에 걸쳐져 있던 발이 미끄러졌다.


, 우와!!!”

미끄러진 발은 그대로 공중에 뜬 채, 필사적으로 붙잡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이치마츠가 식은 땀을 흘렸다

많이 높지도 않지만, 절대 낮다고도 할 수 없는 높이에 이치마츠의 눈이 핑글 돌았다

나무에 매달린 채, 손도 발도 쓸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더욱 절망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뿌지직!”

이치마츠가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부러지고 있었다

이대로 떨어지면 제법 다칠 것이라는 생각에 두 눈을 꼭 감았다.


, 이치마츠으?!!!!”

오소마츠의 놀란 목소리에 이치마츠가 꾹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아기 고양이를 두 팔 가득 안고 서 있는 오소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이치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 오소마ㅊ…!!”

오소마츠를 부르려는 순간 커다란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그대로 땅을 향해 낙하하는 이치마츠를 본 순간, 오소마츠가 품에 안고 있던 아기 고양이들을 땅에 내려놓고 이치마츠를 향해 돌진했다

두 팔을 쭉 벌리고 이치마츠를 받으려고 달려오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이치마츠의 시야에 들어왔다.


“..안돼!!!!!”

순간, 이치마츠가 크게 외쳤다. 이치마츠의 외침에 오소마츠가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치마츠는 보기 좋게 땅에 굴렀다.


, 이 바보가!!!!!!”

땅에 굴러 온 몸이 아팠지만 그런 것은 지금 이치마츠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난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카랑카랑하게 들렸다

아픔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영문 모를 눈물이 이치마츠의 뺨을 타고 흘렀다.


나를 만지면 사라지는 주제에!!!! 오지 마!!!! 다가오지 마!!!! 나 같은 쓰레기 구하려고 하지마!!! 이 바보야!!!!!!”


이치마츠의 노성이 숲 가득 울렸다. 뚝뚝 커다란 눈물방울이 이치마츠의 눈에서 흘러나와 반짝였다

땅을 치며 격렬하게 화를 내는 이치마츠를 가만히 바라본 오소마츠가 멈췄던 발을 옮겨 이치마츠의 앞으로 다가가 쭈그려 앉아 이치마츠와 시선을 맞추었다

오소마츠의 눈이 촉촉히 반짝이며 정면의 이치마츠를 비추고 있었다.


이치마츠으자신을 쓰레기라고 하지마.. 나는 알고 있다고? 너는 작은 아기 새를 다시 둥지에 올려주려고 한 상냥한 녀석이라는 걸… 

쓰레기 따위가 아닌 걸, 나는 알고 있다고?”


눈물에 젖어 반짝이는 오소마츠의 눈을 보며 이치마츠가 , 보석 같아.’하고 감탄했다. 그리고 오소마츠의 말에 한번 더 감탄했다

이 녀석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나 같은 건, 쓰레기인데

처음 보는 오소마츠의 눈물에, 계속 듣고 싶었던 자신을 인정해주는 한 마디에, 오소마츠를 잃을 뻔했던 두려움에, 그리고 잃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이치마츠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영문을 모르겠어.”

이제 자신조차도 왜 울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치마츠의 중얼거림에 오소마츠가 눈물 맺힌 눈을 가늘게 하고 미소 지었다.

 


 

5.

어때?”

막 입학한 고등학교 교복(하복)을 보여주며 이치마츠가 물었다. 바위에 앉은 오소마츠와 여우 이 함께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변한 거야?”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멍청히 물어오는 오소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크게 한숨 쉬었다.


교복이 바뀌었잖아! 나 이제 고등학생! 16!”

후응~. 별로 변한 게 없는데 우리 꼬맹이 이치마츠군은~”

오소마츠가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이치마츠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 노려보았다.


아니, 키도 컸고! 목소리도 훨씬 낮아졌고!”

, 그러고 보니 목소리 변했구나.”

중학교 3학년, 또래보다 조금 늦은 변성기가 찾아온 이치마츠는 이제 어린 시절의 얇은 목소리가 아닌 제법 낮은 목소리로 변했다

아직 어린 티가 사라지지 않은 이치마츠의 얼굴을 보며 오소마츠는 우힛하고 웃고는 이치마츠에게 다가왔다.


그럼~ 고등학생이 된 이치마츠군에게 선물을 주지요~”

선물?”

오늘, 요괴들의 여름 축제가 열려. 흥미 있어?”

있어!!!”

오소마츠의 말에 이치마츠가 눈을 반짝이며 달려들었다. 요괴 축제라니. 재미있을 것 같다

형제들과 있을 때는 절대 드러내지 않는,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이치마츠가 말했다.


그럼~ 오늘 밤 8시에 여기로 나와주세용~”

! 알겠어!!”

 

...


오소마츠, 유카타 입었네.”

저녁 8, 약속 장소에 가자 붉은 유카타를 입은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항상 쓰고 있거나 머리에 걸치고 있던 여우가면을 손에 들고 굴리고 있던 오소마츠가 웃으며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이치마츠군도~ 유카타네?”

, 이건. 할머니가 입고 가라고 하셔서…”

보랏빛의 유카타를 입을 이치마츠가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오소마츠는 큭큭하고 웃더니 이치마츠의 눈 앞에 흰 천을 내밀었다.


뭐야? 그거?”

~ 이건 말이지~”

오소마츠가 웃으며 흰 천을 길게 만들어 자신의 오른손목에 묶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치마츠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뭐야? 오소마츠, 그런 취미?”

아니거든~? 뭐야, 그런 취미라는게.. , 이쪽은 네 손목에 묶어.”

오소마츠가 반대편 끝을 내밀자 이치마츠가 이내 흰 천의 용도를 눈치챘다

어릴 적 나뭇가지의 끝과 끝을 쥐고 숲 속을 걸었었다. 오늘은 이 흰 천이 나뭇가지 대신이라는 것이다

얌전히 오소마츠가 내민 흰 천을 왼손목에 묶자 오소마츠가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잘 들어, 이치마츠. 오늘은 요괴들의 축제야. 그만큼 위험한 녀석들도 몰려든단 말이야

그러니까 너는 오늘 축제에서 마주치는 녀석들에게 절... 말을 걸어서는 안 돼. 알겠지?”

어째서?”

네가 인간이란 걸 눈치채면 먹으려 들 테니까.”

, 알겠어.”

오소마츠가 무서운 얼굴을 지으며 두 손을 구부려 짐승의 발톱 모양을 하고 말했다

이치마츠가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오소마츠가 히히하고 웃더니 손에 들고 있던 여우가면을 이치마츠에게 씌웠다.


일단 이거 쓰고 있으면 인간이라는 거 안 들키니까.”

.”

살짝 홍조가 핀 이치마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소마츠가 성큼 다가가 이치마츠의 머리에 쓰여진 여우 가면에 하고 입맞춤했다.


“.., , , , 뭐를!”

~ 가자. 이치마츠군!”

순식간에 벌개진 얼굴로 당황해 말을 더듬는 이치마츠를 씩 웃으며 바라보곤 손을 들어 장난스럽게 말한 오소마츠가 앞서 걸었다

너무 뜨거워 열이 나는 얼굴을 이치마츠가 여우 가면으로 가리고 오소마츠의 뒤를 따랐다. 조금 거리를 둔 두 사람 사이를 흰 천이 이어주고 있었다.


...

 

어떠냐!!”

~”

손에 든 사과사탕을 베어먹으며 이치마츠가 감탄했다

백발백중. 축제의 사격 놀이에 참가한 오소마츠가 능숙하게 앞에 놓인 타겟을 맞춰나갔다

하나하나 타겟을 전부 맞춰가는 오소마츠를 보며 주인이 조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요괴들의 축제라고는 하나 축제 모습은 인간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웃으며 이치마츠를 스쳐 지나가는 어린아이의 머리 위에 짐승의 귀와 엉덩이에 꼬리가 달려 있다는 정도.


모두 인간으로 변해서 즐기는 거야~”

좀 더 다양한 요괴의 모습을 기대했던 이치마츠가 두리번거리자 오소마츠가 웃으며 말했다

본디 요괴들만의 축제라는 것은 인간들의 것과 다르지만, 이 숲에서 열리는 축제는 인간들의 축제를 본 따 즐기는 것이라고 오소마츠가 설명했다

파는 음식도, 놀이판도 모두 마을에서 열리는 축제와 다르지 않았다

오소마츠와 함께 사격을 하고, 금붕어 건지기, 고리 던지기를 했다. 맛있는 빙수와 레모네, 야키소바도 사 먹었다.


형제와 있을 때보다 즐거워.’

우햐햐햐햐!” 하고 크게 웃는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이치마츠가 생각했다.

 

 


6.

축제를 실컷 즐긴 후, 이치마츠가 너무 시간이 늦기 전에 돌아가자고는 오소마츠를 따라 축제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으로 나왔다

축제를 빠져 나오자마자 오소마츠는 자신의 손목에 묶어두었던 흰 천을 풀었다

쭉 두 사람을 이어주고 있던 흰 천이 풀리는 것에 이유 모를 아쉬움을 느끼며 이치마츠도 자신의 손목을 감싸고 있는 천을 풀었다.


우히히! 재미있었다~.”

오소마츠가 앞서 걸으며 축제의 여운에 젖은 채 웃으며 말했다. 이치마츠도 고개를 끄덕이며 뒤따라 걸었다

이치마츠를 인간의 마을로 바래다주는 길, 오소마츠가 웬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치마츠도 낯선 오소마츠의 침묵에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선선한 공기와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만이 들려왔다. 서서히 숲 입구가 가까워지자 이치마츠는 초조해졌다. 이대로 헤어지는 것은 싫다고 생각되었다.


저기, 오늘 콘은?”

?”

이치마츠의 물음에 오소마츠가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긁으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 그러고 보니, 오늘 콘을 못 봤네.”

“….”

여태 콘이 없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에 이치마츠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오소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이 근처에 숨어 있을지도~?” 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치마츠도 따라 주변을 슬슬 둘러보는데 저 쪽에서 한 어린아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슬쩍 오소마츠를 보았지만 오소마츠는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전히 콘을 찾고 있었다.


저 눈치 없는 놈

고개를 가로 저으며 혀를 찬 이치마츠가 어린 아이에게 다가갔다.


꼬마야, 길을 잃었니?”

“….”

?”

어린아이가 작게 말했다. 제대로 들리지 않아 이치마츠가 어린아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너의 영혼을 줘.”

“…!!!!”

순식간에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흉측한 지네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요괴가 이치마츠를 향해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이치마츠가 재빨리 몸을 뒤로 피했지만, 어린아이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갔기에 요괴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대로 죽는구나 하고 두려움에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날카로운 손톱에 시선을 돌린 순간,


위험해!!!!”

오소마츠의 외침과 함께 이치마츠의 몸이 뒤로 당겨졌다. 그리고 뒤로 당겨진 이치마츠와 교대하듯 콘이 앞으로 뛰어 올랐다

요괴에게로 달려든 콘과 요괴는 한 덩어리로 엉켜 숲 속으로 사라졌다

풀 위에 풀썩 주저앉은 이치마츠가 멍하니 요괴가 사라진 숲 속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강한 힘으로 당겨진 팔을 보았다.


“…!!!”

몰려오는 불안에 고개를 홱 들어 뒤돌자 오소마츠가 슬프게 웃고 있었다

이치마츠를 붙잡았던 오소마츠의 손이 빛을 내며 흩어지고 있었다

서서히 반딧불이의 불처럼 은은하고 아름답게 빛나며 오소마츠의 손이 사라지고 있었다.


“…, 오소마츠…”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오소마츠를 올려다보자 오소마츠가 씩 웃더니 두 팔을 벌렸다.


이리 와, 이치마츠.’


소리가 되지 못한 오소마츠의 말이 이치마츠에게 전해졌다. 땅을 박차고 오소마츠에게 뛰어들어 오소마츠의 등에 팔을 둘렀다

일순 오소마츠의 피부와 온기가 느껴지고, 이치마츠는 수많은 작은 불빛에 휩싸였다

이치마츠의 품엔 오소마츠의 붉은 유카타만이 남고, 하늘 높이로 수많은 불빛이 올라갔다.


“…, 우아아아아아앙!!!! , 흐욱!!! , 아아아아!!!”

온기가 남아있는 붉은 유카타를 품에 안고, 이치마츠가 울부짖었다

너무나 허무하게 맞이한 오소마츠와의 이별에 울부짖었다.

 

 ...


이치마츠여.”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는 이치마츠를 부르는 낯선 목소리에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여우 콘이 이치마츠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귀여운 외양과 정반대의 근엄한 목소리가 울렸다.


울지 말거라. 오소마츠는, 내 아이는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웃었으니.”

“…”

오소마츠를 행복하게 해주어 고맙구나.”

근엄하지만 부드러운 음성이 이치마츠를 달랬다

말을 마친 콘이 훌쩍 뒤돌아 이치마츠를 떠났다. 콘이 사라지고 이치마츠가 붉은 유카타를 안아 든 채, 일어섰다

여전히 눈물은 멈추지 않고 얼굴을 적셨다. 한걸음 한걸음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 이치마츠는 집으로 향했다.


 

그 후로 매년 이치마츠는 시골로 내려와 오소마츠와 함께 거닐었던 숲 속을 홀로 돌아다녔다.



 

7.

올해도 휴가 받아야 하는데.’

멍하니 단상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이치마츠가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직장에 다녀 여름이 되면 그 숲이 있는 시골에 가기 위해서는 휴가를 받아야 했다

적당히 말 꺼낼 타이밍을 생각하며 눈 앞에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내려다보았다

매년 보는 입학식. 매년 앳된 얼굴의 소년들이 이곳에 들어온다. 오소마츠와 축제에 갔었을 때를 기억하며 이치마츠가 쓰게 웃었다.

 


후루룩하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입에 대고 마셨다

입학식인 오늘, 설마 양호실에 찾아오는 바보는 없겠지만 이치마츠는 오후 3시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

이치마츠 특유의 나른한 얼굴로 턱을 괴고 창 밖을 쳐다보았다. 입학식은 오전에 끝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손에 든 컵을 다시 입에 가져간 순간, ‘콩콩하고 양호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울렸다.


대체 입학식도 끝났는데 누구야…’

얼굴을 찡그리고 평화로운 오후를 방해하는 얼뜨기를 욕하며 이치마츠가 ~.” 하고 대답했다

드르륵하고 문이 열리고 양호실 안으로 학생 한 명이 들어왔다

반듯하게 각이 잡힌 교복과 가슴에 달린 붉은 리본으로 보아 오늘 입학한 신입생이 분명했다

재학생도 아니고 신입생의 등장에 이치마츠가 더욱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

이치마츠의 물음에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내가 널 만나러 왔어. 다시 함께 놀자, 이치마츠.”





* 여우 '콘'은 오소마츠의 영혼을 이승에 붙잡아 놓은 '산신'입니다. 여우의 모습으로 둔갑해 오소마츠를 지켜왔습니다.

* 원작의 결말과는 달라졌지만, 저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엔딩이 좋습니다ㅎ.

* 고등학교에 입학한 오소마츠는 16세, 이치마츠는 33세의 양호선생님입니다. 나이차 커플이네요ㅎㅎㅎ


* 하편입니다.

* 철저하게 보복당하는 토고아저씨...

* 후일담이 남아있지만 분량이 너무 길어서 따로 쓸 것 같네요.. 

* 기본 카라오소이지만 살짝 오소른삘이... 후일담에서 더욱 강해지는 오소른입니다.

* 부족한 글실력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축하해. 카라마츠 형.”

검은 기모노를 입은 카라마츠에게 고급 천으로 만들어진 파란 하오리를 어깨에 걸쳐주며 쵸로마츠가 말했다

오랜 후계자 교육 끝에 오늘 드디어 젊은 우두머리에 오른 카라마츠가 쓰게 웃었다.


고마워. 쵸로마츠. 네 도움이 컸어.”

자신만큼이나 혹독한 수업을 받고 낙하산이 아닌 자신의 실력으로 우두머리 보좌 자리에 오른 쵸로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쵸로마츠는 처진 눈썹을 살짝 찡그렸지만 카라마츠의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뭔가, 카라마츠 형. 머리 쓰다듬는거 자주 하네.”

카라마츠가 손을 내리자 쵸로마츠가 말했다.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래? 어릴 때부터 그래왔잖아?”

아니, 어릴 땐 안 그랬어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한 건…”

쵸로마츠가 아차하는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카라마츠가 의아한 얼굴로 쵸로마츠를 바라보며 

시작한 건..?”하고 물었지만 쵸로마츠가 고개를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얼버무렸다. 분명 뭔가 있지만 쵸로마츠는 똑똑한 녀석이다.

명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한 카라마츠가 웃었다.

 


마츠노가는 오늘로 27대 우두머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22세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우두머리는 타고난 수완으로 전대 우두머리를 보좌하며 가문을 더욱 크게 세운 공적을 간부들에게 인정받아 그 어떤 반대도 없이 수월하게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젊은데다 미모까지 출중한 젊은 우두머리에 대한 소문은 이미 널리 퍼져 마츠노가가 관리하는 업소에 다니는 여성들은 모두 젊은 우두머리를 한번이라도 만나보기를 원했다.


그렇게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은데 말이야…’

웃는 얼굴로 자신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간부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생각했다

몇 년 전, 전대 우두머리였던 아버지 마츠조가 은퇴를 선언한 후, 카라마츠에게 우두머리 자리에 오를 것을 명하자 카라마츠는 하나 조건을 걸었다.


           “저는 절대 결혼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괜찮다면.”


단호한 얼굴로 말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는 직감했다. 저 말은 진짜라고

분명 무슨 일이 있더라고 카라마츠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카라마츠의 말에 아버지는 당황했지만 이내 조건을 승낙했다

우두머리가 되고 여자들을 품다 보면 분명 정이 든 여자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카라마츠는 여자를 품기는커녕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여자가 말을 걸어와도, 욕망이 가득한 눈길로 쳐다봐도 카라마츠는 무시로 일관할 뿐이었다

카라마츠가 유일하게 무시하지 않은 여자는 어머니인 마츠요와 쥬시마츠의 부인인 그녀뿐이었다.


너는 인기도 많은데 말이야.”

간부들과의 인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쵸로마츠가 문득 말하자 카라마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그렇군. 나를 원하는 카라마츠 걸-즈는 많지. 하지만 나의 하-트는 한 사람만 주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자랑스럽게 머리를 튕기며 말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얼굴을 구겼다.


저 새끼는 교육과정에서 어떻게 잘못 됐길래 저런 또라이가 됐다냐.’

말로는 내뱉지 않은 채, 속으로 잘근잘근 씹어대며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의 뒤에서 조용히 걸었다.

 



그러고 보니.”

긴 복도를 지나 자신의 방에 도착해 하오리를 벗어 걸고 오비를 풀어 품을 헐겁게 한 카라마츠를 향해 쵸로마츠가 말을 걸었다

한쪽 팔을 벗고 상체를 반쯤 드러낸 상태로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탄탄하게 근육이 잡힌 상체가 훤히 드러나 쵸로마츠가 얼굴을 찡그렸다.


저렇게 입고 다니니 여자들이 환장하지.’

같은 사내의 알몸 따위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쵸로마츠가 말을 이었다.


쥬시마츠한테서 선물이 왔어. 직접 재배했다는 채소랑 과일.”

오쌍둥이 중 가장 가문과 멀리 떨어져 있는 쥬시마츠는 어릴 때부터 가문의 일을 맡기기에는 너무나 순수했다

그 성질을 파악한 아버지 마츠조도 쥬시마츠만큼은 가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도록 교육했고

쥬시마츠는 고등학교에서 만난 소녀와 열애 끝에 결혼해, 소녀의 고향으로 함께 내려가 농사를 짓고 있었다

얼마 전엔 경사스럽게도 임신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 마츠조는 카라마츠에게 은근히 결혼을 독촉하던 것을 멈추었다

카라마츠 다음대의 후계자는 카라마츠의 형제들 중에서 뽑으면 된다는 계산에서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물론 그런 아버지의 속을 알아챈 쵸로마츠와 카라마츠는 불쾌하게 생각했지만.

 


, 그거 원더풀이로군!”

하고 부드럽게 웃으며 카라마츠가 말했다. 카라마츠의 상냥한 미소를 보며 쵸로마츠가 씁쓸히 웃었다

언제부터인가 카라마츠는 저렇게 웃었다. 자애롭고 부드러운 미소를 형제들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으로서는 최상의 미소였지만, 카라마츠의 이 아니였다.


10년 전, 카라마츠가 폭행당해 쓰러져 기억을 잃은 이후, 저런 미소를 짓게 되었다

눈을 뜬 카라마츠는 어른스러운 미소로 자신을 걱정하는 동생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엔 갑작스런 스킨쉽에 동생들 모두 놀라 기겁해 치를 떨며 카라마츠의 손길을 거부했다

마츠노가의 오쌍둥이는 일절 그런 스킨쉽을 나눠본 적이 없었다

토도마츠에게 매도당하고, 이치마츠에게 걷어차이면서도 카라마츠는 미소 띤 얼굴로 손을 내밀어왔다

결국 동생들 모두 카라마츠의 손길에 익숙해져 오히려 쓰다듬어주는 것을 기대할 정도가 되었다

울보로 놀림 받았던 과거가 거짓말인듯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쵸로마츠를 제외한 동생들은 모두 카라마츠의 변화를 반겼다

부모님도 훨씬 어른스러워 졌구나.’하며 카라마츠를 칭찬했다. 하지만 쵸로마츠는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변화가 카라마츠의 이 아니라는 것을.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장남과 차남으로 다른 형제들보다 가까웠다

서로의 스펙이 비슷해 장남이라는 이유로 후계자가 된 카라마츠를 질투한 적도 있었다

카라마츠가 기억을 잃을 그 무렵엔 질투와 열등감이 거세져 눈만 마주치면 막말을 내뱉을 정도로 험악한 사이였다

그 시절의 카라마츠는 울보에 텅텅 비어 있는 녀석이었다. 그랬던 녀석이 쓰러졌다 눈을 뜬 후,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카라마츠의 바뀐 모습에 쵸로마츠는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이었다.’


카라마츠는 동생들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모방하고 있었다

자애로운 미소도, 쓰다듬어주는 부드러운 손길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강인함도, 전부 카라마츠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이었다.

 

 



아앙?! 닥치고 책임자나 불러?!!!”

마츠노가가 관리하고 있는 술집에 시찰을 나가 행패를 부리고 있는 남성을 발견한 쵸로마츠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양 팔에 문신을 잔뜩 한 저 멍청한 자식은 이 술집이 마츠노가의 관리 하에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에 경찰을 부르려 휴대폰을 들 순간, 쨍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아아!!!”
레이카를 부르라고!!!!! 안 그러면 이 추녀 얼굴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 주지!!!!”

술병을 깨뜨려 한 손에 쥐고 여자의 목을 감싸 안은 남자가 날카로운 술병을 여자의 얼굴에 가까이 댔다

남자가 말하는 레이카는 마찬가지로 마츠노가 관리에 있는 유흥업소의 탑 호스티스였다

가끔 이 술집에도 나와 접대를 하는데 아무래도 저 남자는 레이카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짜증으로 구겨진 눈매를 더욱 찡그리며 쵸로마츠가 최대한 손실 없는 방법을 계산하고 있는 사이 쵸로마츠의 뒤에서 인기척이 다가왔다.


하고 쵸로마츠의 어깨를 두드린 카라마츠가 경찰 불러.”라고 속삭인 후, 망설임 없이 남자에게 다가갔다

엎치락뒤치락 한바탕의 몸싸움 끝에 남자는 간단히 카라마츠의 손에 제압되었고 여자는 상처 없이 사내의 손아귀에서 풀려났다

때마침 쵸로마츠가 부른 경찰이 도착해 소동은 온건히 마무리 되었다.


툭툭 검은 양복에 붙은 먼지를 털어낸 카라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다가왔다. 밖에 나올 때, 카라마츠는 항상 푸른색 셔츠에 검은 양복을 입었다

소매를 걷고 금 목거리에 금시계까지 한 그 모습을 본 토도마츠가 안쓰럽네, 정말!!!’하고 외치며 질색을 했었다

카라마츠의 옷차림에 혀를 찬 쵸로마츠가 미소 띤 얼굴로 다가온 카라마츠에게 얼굴을 구긴 채 말했다.


아니, 우두머리인 네가 직접 나서서 어쩔 건데. 다른 녀석 부르라고.”

쵸로마츠의 잔소리에 카라마츠가 살짝 곤란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레이디가 다칠 수 있는 시츄에이션이었잖아? 게다가 나는 다치지 않으니까.”

카라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네가 자신의 몸이 다치지 않도록 싸우는 것은 알고 있지만.”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빙긋 웃었다. 카라마츠의 미소에 맥이 풀린 쵸로마츠가 한숨을 내쉰 후

오늘의 소동으로 나올 손해를 계산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가? 브라더?”
, 왜 항상 그렇게 자기 몸을 지키며 싸워?”
“…
?”
황당하단 얼굴로 카라마츠가 되물었다. 가문의 특성 상 카라마츠를 비롯한 형제들은 모두 호신술을 비롯한 각종 무술을 배워왔다

어디까지나 자기 방어 수단으로서 배운 것이지만 실제 싸움에서도 유용하게 쓰였다. 학창시절 가문의 일을 들먹이며 시비를 걸어오는 양아치들을 물리칠 때도, 지금과 같은 소동이 일어날 때도 카라마츠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몸을 보호해가며 싸워왔다

결벽증인 쵸로마츠도 싸움에 관련되면 어느 정도 상처를 입는 것을 각오하고 싸웠지만 카라마츠는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남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했다

지금도 깨진 병을 든 사내와 몸싸움을 했건만 카라마츠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쵸로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기울여 생각에 빠졌다.


다치지 말라고 들었기 때문일까?”

카라마츠의 대답에 이번엔 쵸로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다치지 말라니

누가 그런 말을 했었나

어릴 적 어머니인 마츠요가 항상 몸 조심하라고 신신당부 했던 것을 기억해낸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시 물었다.


어머니한테 들은 말이지? 그거.”

아니, 틀리군…”

? 아니 어머니말곤 우리한테 그런 말 할 사람은 없는데.”
“…
그렇군.. 그럼 내게 다치지 말라고 한 사람은 대체 누구지?”


카라마츠의 멍청한 대답에 쵸로마츠는 슬슬 인내의 한계를 느끼며 손을 저었다.

~ 됐어. 카라마츠 형하고는 대화가 안 돼.”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하하, 그런가?” 하며 웃었다

사태가 전부 수습된 것을 확인한 쵸로마츠가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한 뒤, 앞서 걸었다. 쵸로마츠의 등을 바라보며 뒤따른 카라마츠가 손으로 턱을 짚었다.


내게 다치지 말라고 한 것은 대체 누구?’


           더 이상 다치지 마…”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는 것 같아 카라마츠가 얼굴을 찌푸렸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머리를 맹렬히 굴렸지만 카라마츠는 결국 기억해 낼 수 없었다.

 



 

, 쵸로마츠 형.”

변호사 배지가 달린 양복을 입은 채, 본가의 고양이와 놀고 있던 이치마츠가 일어났다

양복 가득 고양이 털이 붙어있는 것을 눈치챈 쵸로마츠가 얼굴을 잔뜩 구겼다.


이치마츠, 나가서 고양이털 떼내고 와.”

네이네이~ 저 같은 쓰레기는 나가야죠.”

아니, 네 몸에 붙은 고양이털만 떼내고 들어와.”

결벽증인 쵸로마츠를 일부러 도발하며 이치마츠가 씩 웃고는 밖으로 나갔다

얼마 전, 술집에서 일어난 소동으로 사법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 이치마츠를 불러낸 참이었다

이치마츠가 고양이털을 모두 떼어내고 다시 들어오자 쵸로마츠가 거실에 놓인 커피테이블에 관련 서류를 펼쳤다.

 


이거랑 이거는 카라마츠 형이랑 이야기 해 봐야겠는데.”

서류를 가리키는 이치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인상을 썼다

되도록 자신의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건만. “!”하고 혀를 차자 이치마츠가 황홀하단 얼굴로 쵸로마츠를 쳐다보며 

나한테도 그런 얼굴 좀 지어줘.”라고 말해와 쵸로마츠가 얼굴을 구겼다

잔뜩 구겨진 쵸로마츠의 얼굴을 보며 이치마츠가 히힛!”하며 몸을 떨었다.


저 변태새끼는 진짜 답이 없다. 답이 없어.’

흥분에 몸을 떠는 이치마츠를 뒤로 한 채, 카라마츠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없어 카라마츠는 하루 종일 집에 붙어있었다

지금 이 시간이라면 틀림없이 자신의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카라마츠의 방에 도착한 쵸로마츠는 노크 없이 방문을 열었다.


어이~ 카라마츠 형.”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카라마츠를 흔들자 으응~”하며 카라마츠가 얼굴을 구겼다.


악몽이라도 꾸나?’

대체로 평온하게 자는 카라마츠이기에 얼굴을 구기는 것을 보고 쵸로마츠가 생각했다

다시 한번 흔들어 깨울 참으로 손을 뻗은 순간 카라마츠가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 …., , 마츠…”

“…?”

누군가의 이름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는 카라마츠의 잠꼬대에 쵸로마츠가 놀라 손을 뗐다.

누구? 오소마츠?’

자신의 형제들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뒤로 한 채, 쵸로마츠의 머릿속엔 맹렬하게 물음표가 떠올랐다

쵸로마츠는 모르는 이름. 카라마츠는 잔뜩 얼굴을 구기고 계속 그 이름을 불렀다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묘한 기분에 쵸로마츠가 급히 카라마츠를 흔들어 깨웠다.


“…, 무슨 일이야? 쵸로마츠.”
어이, ‘오소마츠라니 누구?”
“…
?”
쵸로마츠의 물음에 카라마츠가 멍청히 되물었다

잠이 덜 깬 멍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카라마츠에게 답답함을 느낀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오소마츠가 누구냐고!”

“…그게 누구야?”

하아…”
정말로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어오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얼굴은 어릴 적 보았던 텅 빈카라마츠의 얼굴이었다

이 이상 추궁해도 얻을게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쵸로마츠는 이치마츠가 기다려. 거실로 와.”라는 말을 남기고 카라마츠의 방을 나섰다.


조사해볼까. 누군지.’

쵸로마츠는 거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오소마츠라는 이름을 적었다.

 



아아, 그럼 그렇게 해줘.”

이치마츠가 내민 서류들을 바라보며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도 알았다고 대답한 뒤, 테이블 가득 펼쳐져 있는 서류들을 모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빤히 이치마츠를 바라보고 있던 카라마츠가 망연히 물었다.


그런데 이치마츠. 너 어릴 적엔 나를 카라마츠라 부르지 않았던가?”

“…?”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어이없는 질문을 던지는 카라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치마츠의 표정에 카라마츠가 당황하며 아닌가?”하고 되물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개똥마츠 형.”

이치마츠가 대답한 후, 옆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쵸로마츠가 덧붙였다.

우리 후계자 문제니 뭐니 해서 아버지한테 항상 들어왔잖아. 반드시 을 붙이라고이치마츠가 반항기일 때도 꼬박꼬박 개똥마츠 이라고 형을 붙여서 불렀잖아.”

, 그랬었나…”

묘한 얼굴로 대답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봐?”

아니, 어릴 적 카라마츠라고 불렸던 게 기억나서.”


카라마츠의 대답에 쵸로마츠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불린 거겠지.”

아니, 성인은 아니야. 오히려 내 또래의…”

반 친구들한테 그렇게 불렸었던가.”

이치마츠가 말하자 카라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카라마츠…”


기억의 한구석에서 반복해 울려 퍼지는 소년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카라마츠가 말했다.

확실히 반 친구들에겐 카라마츠라고 불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반 친구들이 아니야.”

인상을 쓴 채, 중얼거리는 카라마츠를 보며 이치마츠와 쵸로마츠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카라마츠는 자신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소년의 목소리를 되새기고 되새겼다.

 

 



털썩하는 소음을 내며 쵸로마츠가 던진 서류가 카라마츠의 책상에 안착했다

결벽증인 쵸로마츠 답지 않게 어지럽게 널린 서류를 정리하며 카라마츠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 브라더.”

통통 서류를 정리해 책상 한 켠에 놓은 후, 소파에 몸을 묻은 쵸로마츠를 향해 물었다

쵸로마츠는 큰 한숨을 내쉰 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우리 구역에서 설치고 있는 사기꾼 일당이 있어서. 제법 솜씨가 좋은지 꼬리가 안 잡혀.”

그거 걱정이군. 잡을 방법은 없나?”

카라마츠의 질문에 쵸로마츠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예전 같으면 힘 꽤나 쓰는 녀석들을 모아 손쉽게 붙잡았겠지만, 현재 마츠노가의 모든 사업은 합법이다

야쿠자라는 이름도 명색뿐으로 불법적인 일이나 폭력행위는 일체하고 있지 않았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기꾼 일당을 잡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게다가 그 동안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최대한 빨리 그 사기군 일당을 붙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쵸로마츠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한탄하듯 내뱉었다.


할 수 없이 전문가한테 부탁할까.”

“…전문가?”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물었다. 쵸로마츠는 카라마츠의 집무실 한편에 위치한 장식장에서 오래된 주소록을 꺼냈다.


이쪽 방면에서 사기꾼으로 유명한 녀석이야. 인간 쓰레기이지만 돈만 주면 뭐든 하는 녀석. 이이제이라고 사기꾼은 사기꾼으로 잡을 수 밖에.”
휙휙 주소록의 페이지를 넘기던 쵸로마츠가 이름을 발견했는지 번호를 외우고 핸드폰을 들어 주소록에 쓰인 번호를 입력했다.

“…흐음…”

마츠노가의 모든 일을 합법적으로 처리하려는 카라마츠도 이번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쵸로마츠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자신들의 구역에서 사기꾼이 날뛴다면 거래처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손해를 보는 것은 당연히 마츠노가였다

상대가 전화를 받았는지 쵸로마츠가 , .”라고 대답하며 카라마츠의 집무실을 나섰다.

 

 



쵸로마츠, 이 서류 말인데…”
쵸로마츠를 찾아 집안을 헤매다가 응접실에 있는 쵸로마츠를 발견하고 들어가자 쵸로마츠와 함께 사내가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이미 60은 되어 보였고 갈색 체크무늬 정장을 입고 있었다

비열하게 웃는 얼굴을 한 늙은 사내를 빤히 바라본 카라마츠가 쵸로마츠의 부름에 시선을 옮겼다.


뭐야?”
, 이 서류가 말이야…”

, 그건 좀 있다가.”

아아, 알겠다. 그런데 저 사람은?”
카라마츠의 질문에 쵸로마츠가 작게 속삭였다.
지난번에 말한 전문가. 이미 일을 처리했다고 보고하러 와서.”

아아…”
쵸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쵸로마츠와 카라마츠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늙은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이야~ 이거. 마츠노가의 젊은 우두머리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아, 반갑군.”

늙은 사내가 내민 손을 마주 잡으며 카라마츠가 떨떠름하게 웃었다. 악수를 끝낸 사내가 웃었다.

저는 토고라고 합니다. 앞으로 마츠노가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습니다만…”


‘…토고?’

늙은 사내의 이름에 카라마츠가 짙은 눈썹을 찌푸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되어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어보았지만 어디서 들은 이름인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늙은 사내는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맡겨주신 일은 훌륭히 처리했습니다. 놈들도 더 이상 이 구역에서 날뛰지 않겠죠. , 여기 그 증거입니다.”
늙은 사내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에 펴 들었다

꽁꽁 싸여있던 손수건을 풀자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잘린 사람의 귀였다.

“…!”

어떻습니까?”

죄송하지만, 저희는 분명 합법적인 선에서 처리를 부탁 드렸을 텐데요?”

늙은 사내가 웃으며 내민 사람의 귀를 본 쵸로마츠가 노골적으로 얼굴을 구기고 살기를 내뿜었다

쵸로마츠의 차가운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늙은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그런 멍청한 새끼들은 말만해서는 안 듣죠. 어느 정도 쳐 맞아봐야…”

죄송하지만 이 이후로 당신께 부탁드릴 일은 없을 것 같군요.”

쵸로마츠가 말을 끝내고 늙은 사내를 돌려보내려는 순간, 카라마츠의 얼굴을 본 쵸로마츠가 숨을 멈췄다

옆에 서 있는 쵸로마츠마저 죽일 것 같은 살기가 카라마츠에게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 카라마츠 형?”

떨리는 목소리로 쵸로마츠가 카라마츠를 부른 순간 카라마츠가 늙은 사내에게 뛰어들었다.

크헉!!”
늙은 사내의 멱살을 잡고 대여섯번의 주먹을 내지른 카라마츠가 들어본 적 없는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오소마츠를 어떻게 했지?!!!!!!!”

, 카라마츠?!”

“…, 크핫. 그 꼬맹이를 어떻게 알지?”

자신을 말리려 다가오는 쵸로마츠도 밀어낸 채, 카라마츠가 살기를 가득 담아 늙은 사내를 노려보았다

늙은 사내는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손수건은 내가 오소마츠에게 준 것이다!!! , 다시 묻지 오소마츠를 어떻게 했지?!!!!”

카라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확인했다. 그것은 분명 어릴 적 오쌍둥이 형제들의 색깔에 맞춰 어머니인 마츠요가 손수 제작한 손수건이었다

카라마츠의 색인 푸른빛에 손수건 한 구석에 소나무 표시가 들어가있는 손수건

쵸로마츠가 손수건을 주워들어 카라마츠를 불렀지만 이미 이성이 날아간 카라마츠는 늙은 사내를 흔들며 오소마츠는 어디있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 크흐흐흐흐흐. 네가 그때 그 꼬맹인가? 안됐군. 오소마츠는 이미 죽었어.”
“…
이 자식!!!!!!!!!!”

늙은 사내의 말에 카라마츠가 주먹을 내질렀다.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얼굴을 맞은 늙은 사내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카라마츠가 잡고 있던 늙은 사내의 멱살을 놓자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늙은 사내의 신체가 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늙은 사내의 피가 묻은 주먹을 쥐고 씩씩대며 여전히 살기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카라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 라마츠 형…”

쵸로마츠, 이 녀석이다.”


카라마츠의 낮은 목소리가 응접실에 울렸다.


“10년 전, 나를 폭행해 병원에 실려가게 만든 녀석은 이 녀석이야.”

“…!!!!”

카라마츠의 말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 쵸로마츠가 멍하니 바닥에 쓰러져있는 늙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서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쵸로마츠를 향해 카라마츠가 말했다.


이 자식을 지하에 가둬. 그리고 오소마츠가 어디 있는지 심문해.”

쵸로마츠를 향해있는 카라마츠의 눈빛은 강렬하고 차가웠다.

 

 



다시 묻지. 오소마츠는 어디에 있지?”

이미 잔뜩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된 몸을 힘겹게 일으킨 토고가 비릿하게 웃었다

카라마츠는 감정 없는 눈빛으로 토고를 가만히 훑어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 했잖아. 이미 죽었다ㄱ…”

토고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카라마츠가 토고의 턱을 발로 찼다

인간의 급소인 턱을 차인 토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여전히 감정 없는 눈빛으로 토고를 내려다본 카라마츠가 발길을 돌려 쵸로마츠에게 향했다.

 



「무슨 일이야? 쵸로마츠 형.

수화기 너머로 오랜만에 듣는 막내의 목소리에 쵸로마츠는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품에서 수첩을 꺼내 오소마츠라고 적힌 페이지를 바라보며 쵸로마츠가 얼굴을 구겼다.

좀 더 일찍 알아볼 걸 그랬어.’

후회를 뒤로 한 채, 쵸로마츠가 입을 열었다.

토도마츠, 경찰 쪽에서 오소마츠토고에 대한 자료 좀 보내줄 수 있어?”

마츠노 오쌍둥이의 막내 토도마츠는 경찰이 되어 현재 경부보라는 지위까지 올라가 있었다

마츠노가의 사업이 전부 합법이었기에 토도마츠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경찰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가끔 경찰 쪽의 협조가 필요할 때마다 힘을 빌려주는 든든한 동생이었다

잔뜩 가라앉은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토도마츠가 재빨리 대답했다.

「알겠어. 내가 알아볼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알아볼게.

아아, 부탁해.”

스마트폰의 통화 종료버튼을 누른 쵸로마츠가 크게 한숨을 쉬며 집무실 문을 열었다.

우왓!!!!”

집무실 문을 열자마자 차가운 눈빛을 한 카라마츠와 맞닥뜨려 놀란 쵸로마츠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쵸로마츠. 좀 알아낸 게 있나?”
무미건조한 어조로 묻는 카라마츠에게 쵸로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그 놈은?”

기절했다. 아무래도 불 생각은 없는 것 같아.”

차갑게 내뱉은 카라마츠가 집무실에 들어가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20여년을 함께한 형제인데도 카라마츠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지독하게 차가운 눈빛에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얼굴에 쵸로마츠는 일말의 두려움을 느꼈다.


혹 저게 「진짜 카라마츠」인가?’


지금까지 누군가를 모방해 온 카라마츠가 아닌 텅 빈카라마츠의 진짜 모습이 저게 아닐까하는 불안에 쵸로마츠가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저 모습이 진짜 카라마츠라면, 터무니 없는 괴물을 우두머리에 앉힌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이 발끝에서 서서히 쵸로마츠를 침식해 들어왔다

냉혹한 괴물. 지금의 카라마츠는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

토고를 붙잡은 이후, 카라마츠는 계속 토고를 심문했다. 반복해서 묻는 카라마츠의 질문과 토고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오소마츠는 어디에 있나?”

죽었다.”

그 대화의 반복. 카라마츠는 토고를 죽기 직전까지 팼고, 기절한 토고를 내버려두었다. 토고가 깨어나면 다시 같은 질문을 하고 주먹질을 반복했다

지금 카라마츠의 머리 속엔 오소마츠라는 자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 이외에는 들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토고를 붙잡은 지 3일이 지나고, 쵸로마츠 쪽의 정보원에게 오소마츠의 위치를 알아냈다는 연락이 왔다

정확한 위치를 들은 쵸로마츠가 카라마츠가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여전히 토고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카라마츠를 향해 쵸로마츠가 다급히 외쳤다.

카라마츠 형!! ‘오소마츠의 위치 알아냈어!!!”

쵸로마츠의 외침에 카라마츠가 주먹을 멈추고 쵸로마츠에게 뛰어갔다.

정말인가?”

아아, 이미 차를 준비해 두었다.”

그럼 서두르지.”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는 카라마츠를 뒤따르던 쵸로마츠가 시선을 돌려 토고를 향했다

토고는 중요한 뭔가를 잃은 사람마냥 망연자실해 초점을 잃은 눈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기 직전의 눈이다.’

토고의 눈을 바라보며 쵸로마츠가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위층에 도달한 카라마츠의 부름에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폐허가 된 공장단지. 주인 없이 버려진 그 단지에 있는 창고 앞에 고급 세단 3대가 멈춰 섰다

제일 앞에 선 차에서 내린 카라마츠가 쵸로마츠의 부름도 무시한 채,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끼이익하고 쇠 긁는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간 카라마츠는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둠에 눈썹을 찌푸렸다

카라마츠의 뒤를 이어 들어온 쵸로마츠가 창고 가득한 어둠에 우왓하고 외치곤 차로 되돌아가 트렁크에 들어있던 손전등을 들고 돌아왔다

2개의 손전등 중 하나를 카라마츠에게 건네자, 손전등을 건네 받자마자 카라마츠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카라마츠 형!!!”

창고 안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가는 카라마츠의 뒤를 따라 쵸로마츠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창고의 안의 빛은 일체 들어오지 않으면서 넓었다. 카라마츠가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쵸로마츠가 왼쪽으로 꺾어 손전등을 여기저기에 비추며 인기척을 찾았다

여기저기 사방을 비추던 쵸로마츠가 걸음을 멈추었다. 창고 안, 작은 컨테이너 박스가 놓여있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나마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카라마츠 형!!!”

쵸로마츠는 뒤돌아 카라마츠를 불렀고, 타박타박 발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카라마츠가 뛰어왔다

컨테이너 박스는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개조된 것으로 정면에 보이는 문틈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쵸로마츠가 손전등으로 컨테이너를 비추고 있는 가운데 카라마츠가 천천히 다가가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시야 가득 들어오는 형광등의 빛에 카라마츠가 팔을 들어 빛을 가리고 눈을 찡그렸다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 익숙해져 있던 눈이 갑작스러운 빛에 시렸다. 잠시 눈을 깜빡인 후, 겨우 빛에 익숙해져 들고 있던 팔을 내렸다.


“…, 아저씨가 데려온 손님?”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와 카라마츠가 눈을 크게 떴다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가전제품과 가구가 갖춰진 컨테이너 박스 안, 침대 위에 올라가 있던 붉은 후드를 입은 청년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가녀린 그 몸과 얼굴은 군데군데 피멍으로 검붉게 물들어 있었고, 가는 목과 다리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저기, 손님?”

청년이 다시 조심스럽게 물으며 침대에서 내려와 카라마츠에게로 다가왔다

절뚝거리며 청년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찰랑찰랑하고 쇠사슬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카라마츠가 시선을 내려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청년의 오른발목에 감겨져 있는 긴 쇠사슬이 침대와 연결되어 있었다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문 카라마츠가 작게 심호흡한 뒤 고개를 들었다. 청년은 카라마츠와 2m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저기…”

헤헤…’ 하고 웃어 보이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는 눈가가 뜨거워지고 가슴이 옥죄어왔다.


너는 여전히 웃고 있구나. 이런 모습을 하고도…’


멋쩍게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차오르는 이름 모를 감정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천천히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

30cm 정도의 거리를 남겨둔 채 멈춘 카라마츠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오소마츠의 눈빛을 카라마츠가 부드럽게 마주했다

가녀린 몸매의 오소마츠의 머리는 카라마츠의 어깨쯤에 위치해 있었다. 어릴 땐 비슷했던 신장이 이제는 머리 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오소마츠에게 팔을 뻗은 카라마츠가 그대로 오소마츠를 품에 안았다.


“…!. , , 저기…”

놀라 몸을 굳히고 말을 더듬는 오소마츠를 더욱 강하게 안고 카라마츠가 비통한 목소리로 오소마츠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소마츠. 겨우 찾았다.”

“…, 카라마츠? 혹시 카라마츠야?”

카라마츠의 속삭임에 오소마츠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카라마츠는 대답대신 오소마츠의 몸을 더욱 강하게 껴안았다. 카라마츠의 품에 안긴 오소마츠가 몸을 떨며 울부짖었다.


흐으, 후읏!!! , 카라마츠우~~!!!! , , 네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해서!!! , 흐윽!!! , 살아있었구나!!! 다행이다!! 다행이다아…”


울부짖는 오소마츠는 전신을 떨며 필사적으로 카라마츠에게 매달려왔다

오소마츠의 눈물로 뜨겁게 젖어오는 어깨에 안타까움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카라마츠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고 한바탕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해졌다

쵸로마츠가 조심스럽게 컨테이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카라마츠가 고개만 돌려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쵸로마츠. 차에서 니퍼 가져와.”

카라마츠의 분노가 섞인 낮은 목소리에 쵸로마츠가 몸을 움찔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고를 나와 차 트렁크에서 니퍼를 꺼내 다시 컨테이너 안으로 돌아가자 카라마츠가 눈짓으로 침대에 연결되어 있는 쇠사슬을 가리켰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쵸로마츠가 니퍼로 쇠사슬을 끊어냈다.

.” 하고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울다 지쳐 잠든 청년이 카라마츠에게 안겨있었다. 쵸로마츠는 작은 목소리로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그 녀석이 오소마츠?”

“…아아. 데리고 돌아간다.”
“…
오우.”

반대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어투로 말하는 카라마츠에게 쵸로마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소마츠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카라마츠가 으르렁거리며 낮게 내뱉었다.

쵸로마츠, 집에 돌아가면 토고 그 새끼 죽여버려.”
“..
?!”
앞좌석에 앉은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려 뒷좌석에 앉은 카라마츠를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합법 조직인 마츠노가는 당연히 여태 한번도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

현 우두머리인 카라마츠가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카라마츠를 노려보자, 부드러운 시선으로 잠든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던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어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오소마츠를 향한 부드러운 시선은 온데간데 없는 감정 없는 차가운 눈빛에 쵸로마츠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죽여.”
카라마츠의 낮은 목소리가 주는 중압감은 엄청났다.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하고 있는 기사까지 온 몸을 떨었다

쵸로마츠는 일단 알겠다고 말한 뒤, 고개를 돌려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쉽게 깨지는 유리 세공품 마냥 소중히 오소마츠를 안아 들고 옮기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카라마츠가 집 안으로 사라진 후, 지하로 내려간 쵸로마츠는 수하들에게 카라마츠가 지하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명령을 내린 후, 카라마츠의 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피멍이 든 오소마츠의 팔, 다리를 살며시 쓰다듬는 카라마츠의 손길은 지극히 부드러웠다.

아아, 저게 진짜 카라마츠다.’

카라마츠를 바라보며 쵸로마츠가 멍청히 생각했다. 직감으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쓰다듬는 카라마츠의 손길이 멈추길 기다렸다가 카라마츠를 불렀다.


토고는 죽였나?”

쵸로마츠를 보자마자 물어오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푹 한숨을 쉬었다.

아니, 우리 합법적으로 해결하자고?”
쵸로마츠, 두말하지 않아. 죽여.”

냉정한 카라마츠의 얼굴을 들어다보던 쵸로마츠가 시선을 잠든 오소마츠에게로 옮겼다

그리고 카라마츠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며시 미소 지은 후 입을 열었다.


네가 그 녀석을 죽이면 그 녀석, ‘오소마츠가 기뻐할까?”

쵸로마츠의 말에 냉정하던 카라마츠의 눈빛에 동요가 휩싸였다. ‘이거다!’라고 생각하며 쵸로마츠가 말을 이었다.

합법적으로 경찰에 넘기는 게 카라마츠 형을 위해서도, ‘오소마츠를 위해서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

카라마츠가 가만히 쵸로마츠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려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상냥한 손길로 오소마츠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며 카라마츠가 말했다.


“…토고는, 토도마츠 쪽에 넘겨.”

아아.”
쵸로마츠가 승리의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방을 막 나서려는 쵸로마츠가 카라마츠가 불러세웠다.


쵸로마츠.”
뭐야?”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다시 냉혹한 눈빛으로 되돌아간 카라마츠가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반쯤 죽여서 보내.”

하아알겠어.”


쵸로마츠가 한숨 쉰 후, 대답했다. “내가 이러다 늙지.”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카라마츠 방을 나선 쵸로마츠가 지하로 내려가 수하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다음날, 현상수배 중이던 강도가 잡혔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소마츠.”

? 왜애~”

부드러운 카라마츠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빙긋 웃었다

이를 드러내고 무방비하게 웃는 그 모습에 쵸로마츠를 비롯한 마츠노 일가는 숨을 삼키고 오소마츠의 귀여움에 몸부림 쳤다.


오늘부터 마츠노 오소마츠가 된 걸 축하해.”

커다란 케이크를 오소마츠 눈 앞에 드러내고 카라마츠가 웃으며 말했다

카라마츠 뒤편에 앉은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토도마츠, 쥬시마츠 부부와 마츠요와 마츠조까지 모두 웃는 얼굴로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투명한 눈으로 카라마츠를 올려다 본 오소마츠가 행복하게 웃으며 외쳤다.


, 고마워.. 카라마츠!!!”





* 이후 후일담이 있습니다.

* 저는 항상 워드로 글을 쓰는데 왜 단편 하나 쓰는데 꼬박 하루가 소요되는 걸까요... 게다가 이번 단편은 상, 하 합쳐서 32쪽이었습니다...쿨럭..

* 후일담은 오소른에 본편에서 다루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다룰 생각입니다. 카라마츠와 오소마츠의 염장질을 기대해 주세요.


*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토고오소 요소가 있습니다만, 사랑은 없습니다.

* 카라마츠 아래 다섯명이 오쌍둥이. 오소마츠는 외동이라는 설정입니다.

* 야쿠자 카라마츠 x 일반인? 오소마츠

* 개인적으로 토고오소는 조금 지뢰라서 쓸 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쓰게 되었습니다...ㅎㅎ

* 쓰다보니 길어져 상, 하편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 부족한 글 실력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택가에 위치한 평범한 공원, 풀 숲이 우거진 인적이 드문 공원 구석에서 카라마츠는 무릎을 안고 고개를 묻었다

흐르는 눈물이 무릎에 떨어져 흘렀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소리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카라마츠는 다리에 머리를 깊게 묻었다.


아카츠카구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마츠노가는 에도시대부터 이어진 유서깊은 가문이었다

가문의 시작은 야쿠자로, 현재 가문이 관리하고 있는 모든 사업이 합법임에도 불구하고 마츠노가는 고쿠도(야쿠자)로 알려져 있었다

카라마츠는 그런 마츠노가의 27대 손으로 오쌍둥이 중 장남이었다. 마츠노가에서 장남이라는 타이틀의 무게는 다른 일반 가정보다 무거웠다

5살부터 시작된 후계자 교육은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고 힘겨웠다오늘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불평을 쏟아붓자 아버지 마츠조의 불호령이 떨어져 카라마츠의 기분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버지의 불호령에 울상을 지으며 옆에 있던 쵸로마츠에게 툴툴대자 쵸로마츠는 싸늘한 얼굴로 그러니까 네가 텅텅 비었다는거야, 이 텅빈(카랏뽀)마츠 형.’ 라는 심한 말을 들어, 카라마츠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집을 뛰쳐나왔다

지금쯤 집에서는 한창 자신을 찾아다니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카라마츠는 눈물을 멈추고 눈가를 닦아냈다

슬슬 돌아가자고 생각한 순간, 카라마츠가 앉아있는 수풀 맞은편에 자리한 벤치에 누군가가 다가가 앉았다

호기심에 풀숲에서 머리만 살짝 내밀어보니 카라마츠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앉아있었다

오쌍둥이인 자신과 동생들과 너무나 닮은 얼굴에 카라마츠는 놀라 더욱 자세히 소년을 관찰했다. 붉은 후드를 입은 소년은 붉게 부어오른 뺨을 문지르고 있었다.


~ 젠장. 망할 아저씨. 겨우 그거 갖고 이렇게 귀여운 나를 패냐…”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뺨을 문지르는 소년은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풀숲에서 살며시 일어나 주머니에 들어있던 손수건을 꺼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라며 어머니 마츠요가 항상 넣어주는 것이었다. 식수대로 발걸음을 옮겨 손수건을 적셨다

공원의 식수대는 신식 기계를 사용해 항상 얼음장마냥 찬 물이 나왔다. 수건을 적셔 적당히 짠 후, 카라마츠는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

차갑게 젖은 손수건을 내밀자 소년이 얼굴을 찌푸리며 카라마츠를 노려봤다

그 눈빛은 마치 카라마츠를 혼내기 전의 마츠조의 눈빛과 닮아 카라마츠는 몸을 움츠렸다.

, 이거. 볼에 대고 있어.”

잔뜩 움츠린 채, 손수건을 내민 손을 더욱 앞으로 뻗으며 말하자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카라마츠와 손수건을 번갈아 보더니 손을 뻗어 손수건을 손에 쥐었다.

부어오른 뺨에 카라마츠의 손수건을 갖다 대는 것을 본 카라마츠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소년의 옆에 앉았다.

저기, 왜 다친거야?”

살며시 고개를 돌려 물으니, 소년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돌아와 다시 고개를 돌려 땅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고 이내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공원 가득 종소리가 울렸다. 저녁 6시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옆에 앉은 소년에게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카라마츠에게 손수건이 돌아왔다.

..?”

이거, 고마웠어.”

소년은 무표정이었지만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져 있었다. 카라마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소년이 내민 손수건을 받았다.

저기…”
카라마츠가 손수건을 받자 몸을 돌려 돌아가려는 소년을 불러 세웠다. 소년은 고개만 돌려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너는 이름이 뭐야? , 나는 마츠노 카라마츠야!”

“…오소마츠.”

소년은 작게 말하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년의 뒷모습에서 풍겨오는 거절의 오라는 따라오지 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카라마츠는 그 이상 소년을 붙잡지 못했다

서서히 멀어지는 소년의 작은 뒷모습에 카라마츠가 중얼거렸다.

,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카라마츠는 소년의 체온으로 따뜻해진 손수건을 꽉 쥔 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날 이후, 카라마츠는 시간만 되면 그 공원으로 향했다. 또 그 소년을, 아니 오소마츠를 만나고 싶었다

일주일 동안 매일 공원에 갔지만 오소마츠는 만날 수 없었다.

또 그 공원?”
카라마츠가 나갈 준비를 하고 현관을 나서려는 순간, 쵸로마츠가 뒤에서 물어왔다

그 날 쵸로마츠의 폭언을 들은 이후, 조금 어색해진 카라마츠와 쵸로마츠였다

카라마츠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쵸로마츠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적당히 해. 그러다 납치될라.”

말은 저렇게 해도 자신을 걱정해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카라마츠가 미소 띤 얼굴로 끄덕이곤 현관을 나섰다

확실히 마츠노가의 특성 상 카라마츠나 다른 동생들은 항상 납치될 위험에 처해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마츠조는 카라마츠나 다른 아들들 모두 되도록 평범한 청소년기를 보내길 원했고, 그만큼 자신의 아들들에게 어떠한 위협이 가해지지 않도록 손을 썼다

덕분에 카라마츠를 비롯한 오쌍둥이 모두 지금까지 한번도 납치나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았다

그래도 유비무환이라고 오쌍둥이 모두 집을 나설 때는 각별히 조심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치지 말라는 어머니 마츠요의 부탁이기도 했다

대문을 나서며 좌우를 둘러봐 따라오는 수상한 자는 없는지 확인한 후, 카라마츠가 공원을 향해 뛰었다.


오늘은 만날 수 있을까?’

기대를 안고 공원으로 뛰어 오소마츠와 함께 앉아있었던 벤치로 향했다.

“…!!!!”

벤치가 시야에 들어오자 벤치에 앉아있는 붉은 후드가 보였다. 카라마츠는 기쁨에 휩싸여 뛰는 속도를 높였다

벤치 앞에 도착에 거친 숨을 고르며 벤치에 앉아 놀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오소마츠를 향해 카라마츠가 기쁘게 웃었다.

또 만났네!! 오소마츠!”

…”

…”

놀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본 순간 카라마츠가 탄식했다. 또 볼이 부어있었다

이번엔 저번보다 더 부어올라 검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볼에 당황한 카라마츠가 안절부절 못하더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식수대로 뛰어갔다

식수대에서 급히 손수건을 적셔 대충 짠 후, 다시 오소마츠에게 돌아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내밀어진 손수건을 빤히 쳐다본 오소마츠가 하고 웃으며 손수건을 건네 받았다

얌전히 부어 오른 볼에 손수건을 갖다 대는 것을 확인한 후, 카라마츠가 옆에 앉았다.


너 말이야…”

카라마츠!”

?”

나는 카라마츠다! 오소마츠. 카라마츠라고 불러 줘!!”

“…카라마츠.”
오우!”

눈을 빛내며 대답하는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큭큭큭 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단순히 자신을 부르는 오소마츠에게 대답을 한 것뿐인데 지금 어디에 웃는 요소가 있었다?’ 라고 생각하며 카라마츠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멍하니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큭큭거리며 웃은 오소마츠가 웃느라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 상냥하네.”

“…??”

가족에게는 항상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는 카라마츠는 처음 들어보는 상냥하다라는 말에 놀라 되물었다.

, 나는 상냥하지 않다고? 나는 텅텅 비어있는 한심한 녀석이야?”

“..? 아니, 내가 보기엔 텅텅 비어있진 않은데?”

카라마츠의 말에 이번엔 오소마츠가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자신을 향해 있는 오소마츠의 얼굴에선 한 치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향한 오소마츠에게 당황한 것은 카라마츠였다.

너는 상냥한 거야. 그게 지나쳐서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미소지은 얼굴로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힘을 빼고 살살 자신을 쓰다듬어오는 오소마츠의 손길에 카라마츠의 가슴이 따뜻해지며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 왜 울어?!”

, 우우, 나는 항상 텅 비어있다고 생각해서. 항상 나 같은 거 한심하다고 들어서…”

“…너는 한심하지 않아. 나처럼 완벽한 타인한테도 상냥한데 네가 한심한 녀석일 리 없잖아? 이 카리스마 레전드 오소마츠님께서 보증해 줄게.”

, 우우우우, 오소마츠으으으…”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봇물 터지듯 눈물을 쏟아냈다

펑펑 울기 시작한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아아~’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카라마츠를 품에 안았다

자신보다도 가녀린 오소마츠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 카라마츠는 그 동안의 울분을 전부 쏟아내었다.

 


“…훌쩍.”

붉게 부은 눈을 비비며 코를 들이마셨다. 카라마츠의 붉은 눈가를 보며 오소마츠가 킥킥 웃곤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다 울었어?”

아아…”

그래…”

장하다~’ 라고 말하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소마츠의 부드러운 손길을 음미하던 카라마츠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 오소마츠는 울지 않는 건가?”
“…
?”
그렇다. 오소마츠는 아프지 않은 건가?”

아직도 부어있는 오소마츠의 볼을 가리키며 카라마츠가 물었다

오소마츠는 자신의 볼을 쓱쓱 문지르더니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에 힘을 주어 카라마츠의 머리를 엉망으로 흩트렸다.

, 우왓! , 아프다! 오소마츠!”

킥킥킥. 이 귀~여운 녀석. 다 울어서 여유가 생겼어? 이젠 내 걱정도 해주네?”

, 아프다!”

그래그래

바둥대는 카라마츠를 즐겁단 얼굴로 바라본 오소마츠가 손을 거두었다. 이치마츠 마냥 엉망이 된 머리를 정돈하며 카라마츠가 물었다.

나처럼 울보라고 놀림 받을 것 같아서 울지 않는 건가?”

카라마츠의 물음에 오소마츠가 -‘하고 고개를 올려 잠시 생각하더니 얼굴을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보다 네가 울보인건 상냥해서잖아? 그런 울보, 나는 싫어하지 않아.”

“…, 고마워. 오소마츠.”
그리고 너처럼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게 좋아. 나처럼 못 우는 것보단..”

쓸쓸한 미소로 웃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의 가슴 안쪽이 징-하고 울렸다.


이 아픔은 무엇이다?’

어린 카라마츠는 그 아픔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오소마츠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럼 내 앞에서라면 사양 말고 울어도 좋다 오소마츠!! 나는 절대 너를 울보라고 놀리지 않아!!!”

푸핫!!!”

, 어서 내 품에 와라!!’하는 포즈로 자신을 향해 당당히 눈빛을 빛내고 있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배를 붙잡고 폭소했다

해질녘 하늘이 붉게 물든 아래, 공원에 오소마츠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너 진짜!!! , 갈비뼈 부러진다?!!”

어째서?!! , 괜찮아? 오소마츠으!!!”

큭큭큭큭큭…”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웃고 난 뒤, 오소마츠가 눈물을 닦아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안 놀려?”

, 물론이다!!!”

후응~”
믿어줘!!”

그럼, 좋아.”

이를 드러내고 천진난만하게 웃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지금은 이걸로 충분해.”
작게 속삭이며 눈을 감고 카라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오소마츠의 등에 카라마츠가 팔을 둘러 꽉 안았다

또 다시 가슴이 찡- 하고 아파왔다.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며 카라마츠는 조여오는 가슴의 아픔과 이유 모를 슬픔에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딩동~ 딩동~ 딩동~’

저녁 6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공원에 울려 퍼지자 오소마츠가 팟! 하고 카라마츠의 어깨에 묻었던 얼굴을 들었다

카라마츠를 보며 카라마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본 오소마츠가 하고 웃으며 왜 너가 우는 거야.” 라며 카라마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 이제 가볼게.”

벤치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어낸 오소마츠가 말했다. 헤어진다는 아쉬움에 카라마츠가 어두운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이거.”

오소마츠가 내민 손수건을 가만히 바라본 카라마츠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오소마츠가 가져가도 좋다. 또 필요할 때, 써줘.”

? 괜찮아?”

.”
그래.. 그럼 받아둘게.”
오소마츠가 빙긋 웃으며 아직 젖어있는 손수건을 소중히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이라고 가볍게 말한 오소마츠가 등을 돌린 순간,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팔을 붙잡았다.
! 만날 수 있는 거지?”
불안한 얼굴로 물어오는 카라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 씩 웃으며 말했다.

물론! 내일도 나올게!”

오우! 기다리고 있겠다!!”
확 밝아진 얼굴로 카라마츠가 기쁘게 대답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서서히 멀어지는 오소마츠를 향해 카라마츠는 손을 크게 흔들었다.

 

 

카라마츠형, 오늘도 나가?”

점심을 먹은 직후, 나갈 준비를 하는 카라마츠를 향해 이치마츠가 물어왔다

카라마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아직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이치마츠를 뒤로하고 현관을 나섰다.

빨리 오소마츠를 만나고 싶다!”

뛰기 시작하면서 중얼거린 카라마츠가 전속력으로 뛰어 나갔다.

 

“…오소마츠.”
, 카라마츠으~”

자신보다 먼저 나와 벤치에 앉아있던 오소마츠를 발견하고 하늘 끝까지 올라갔던 기분이 오소마츠의 얼굴을 본 순간 땅바닥으로 곤두박칠치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그 얼굴은.”

~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라니…!”

어제보다 더 부어 오른 볼은 아예 검은빛을 띄고 있었다. 게다가 하얘야 할 안구가 핏빛으로 붉어져 있어 보는 카라마츠가 더 아팠다.

, 은 대체 왜…”
, 이거? 이거피가 눈에 들어가면 잘 안 빠져서 이렇게 빨개지더라~”
, 그런!!!!”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말하는 오소마츠의 태도에 카라마츠가 목소리를 높였다

화난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쓴웃음을 지은 오소마츠가 자신의 옆자리를 통통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으니까~ , 얼른 앉아?”
“…”

빙긋 웃는 오소마츠의 얼굴에서 어른들이 으레 하는 어린이는 몰라도 돼라는 말이 떠올랐다.

더 이상 묻지 말라는 것인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옆에 앉았다.

너는 꼭 내 형제 같네.”

오소마츠의 한마디에 카라마츠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카라마츠를 향해 웃고 있는 오소마츠는 분명 웃고 있는데도 너무나 슬퍼 보였다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일부러 밝은 얼굴로 말했다.

내가 형이지?”

아니이~ 당연히 카리스마 레전드인 내가 형이지.”
?!”

너 어제, 내 앞에서 그렇게 거하게 울어놓고 형이라는 말을 잘도 하네.”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얼굴을 붉히며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어제 오소마츠 앞에서 대성통곡했다는 것은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으구구구, 그것은.”

~ 됐고. 내가 형! 이거 결정!!”

변명을 하려는 카라마츠의 말을 막고 오소마츠가 손가락을 들어 말했다

씩 웃는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는 더 이상 일언반구의 항변도 할 수 없었다.
…”

큭큭큭, 자 이 형님에게~’하고 불러 봐.”

“…오소마츠형님.”

거만하게 웃는 오소마츠를 향해 약간의 복수심을 담아 형님이라고 불렀다

장남으로 항상 이라고만 불렸지 한번도 자신이 이라고 불러본 적 없는 카라마츠는 이로 말할 수 없는 어색함에 몸을 떨었다.

“…형님? …, 됐나? ~ 카라마츠으~”

오소마츠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웃는 얼굴로 돌아가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에~ 카라마츠. 오쌍둥이구나. 대단하네.”

, 그런가? 오소마츠는 외동인건가?”

~ , 그렇지. 동생들은 어때? 귀여워?”
쌍둥이니까 동갑이고 그렇게 귀엽지는 않지만.. 가끔은 귀엽다.”

.. 그래?”

동생들을 떠올리며 상냥하게 웃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카라마츠는 동생들을 엄~청 사랑하나 보네?”

, 당연하다! 내 사랑스런 동생들이라고?”
“…
나도 카라마츠네에 태어났다면 좋았을걸.”

“……”

한 순간 굉장히 슬픈 얼굴로 말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옥죄어오는 가슴을 쥐고 눈썹을 내렸다

오소마츠의 저런 슬픈 표정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카라마츠가 다시 화제를 돌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 오소마츠도 이제 외동이 아니라고?”

?”
내 형님이니까, 내 동생들도 모두 오소마츠의 동생들이다.”

푸핫!! 뭐야, 그게! 나 순식간에 동생이 5명이나 생긴 거?”
큭큭큭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즐거운 얼굴로 그동안 있었던 마츠노가 브라더스의 황당한 일화를 줄줄 털어놓아

오소마츠는 쉴 새 없이 웃어댔다.

 

저녁 6시 종이 울리고 어김없이 오소마츠가 벤치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멀어지는 오소마츠의 뒷모습을 배웅하며 카라마츠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의 인사는 내일 또 봐.” 였기에 내일 또 오소마츠를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카라마츠는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토도마츠가 자신을 붙잡았지만, 카라마츠의 머릿속은 온통 오소마츠로 가득했다

공원에서 대체 뭘 하냐는 토도마츠의 질문에 대충 대답을 흘리고는 공원을 향해 뛰었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는 오소마츠에게 크게 손을 흔들자 오소마츠 역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소마츠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 ?”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장래의 꿈에 대한 화제가 나와 카라마츠가 묻자 오소마츠가 복잡한 얼굴로 카라마츠를 마주 보았다.

카라마츠는?”
“..
? 나는 아마 집안일을 이어서 할 거라고 생각된다.”
“…
잇기 싫어?”

싫다기보단나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나는 한심하니까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말을 흐리는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상냥하니까 뭘 해도 괜찮아.”
, 하지만. 우리집 일은 상냥하기만 해선 안 된다고 아버지가!”
상냥함은 네 장점인걸. 괜찮아. 네 상냥함으로 충분히 이끌 수 있어.”

오소마츠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카라마츠는 그 동안 후계자라는 이름이 짓누르고 있던 중압감에서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한결 숨쉬기 편해진 것 같은 느낌에 오소마츠를 향해 빙긋 웃고는 다시 물었다.

그래서 오소마츠는? 뭐가 되고 싶어?”
…? 나는…”

기대에 찬 얼굴로 오소마츠를 바라보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웃고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계 제일의 백수!”

, 백수?!”
황당하단 얼굴로 카라마츠가 되묻자 오소마츠가 씩 웃으며 말했다.

! 백수! 좋잖아? 놀고 먹고~ 일 안하고~”

오소마츠. 나는 진지하게 묻고 있는 거다.”
조금 토라진 얼굴로 카라마츠가 쏘아붙이자 오소마츠가 하하하하고 마른 웃음을 내뱉곤 입을 열었다.

그럼 세계 제일의 사기꾼?”

어이.”
아님, 도박사? 아니면 도둑? 그것도 아니면…”

오소마츠.”
단호한 목소리로 다그치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웠다

알겠어, 알겠어~”라며 손을 들어 항복 표시를 보인 오소마츠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 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될 수 있다면.”

물론!! 오소마츠는 훌륭한 선생님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밝은 얼굴로 천진난만하게 웃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쓰게 웃었다.

“…고마워.”

꿈을 이야기하는데 당연히 빛나야 하는 오소마츠의 얼굴이 슬픔으로 가득해 카라마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날, 오늘은 쥬시마츠가 다가와 형아~ 같이 야구해요!!”라며 다가왔지만 카라마츠는 웃는 얼굴로 다음에.”라고 대답한 후, 공원을 향해 뛰었다.

오소마츠의 부모님은 대체 어떤 자식들이야?”

분노가 섞인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놀란 얼굴을 하더니 푸핫!” 하고 웃었다

그리고 이내 아야야…” 하며 부어 오른 뺨을 감쌌다. 오늘은 팔에도 붕대가 감겨 있었다

오른팔엔 붕대, 왼팔엔 검붉은 피멍이 군데군데 들어 하얀 오소마츠의 피부를 가리고 있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화를 내고 있는 카라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 초연히 웃었다.

나는 부모님 없는데~”

“…?!”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카라마츠의 속마음을 오소마츠를 알 수 있었다

분명 지금 말실수 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아저씨랑 살고 있어.”
“…
아저씨?”
.”
가족인가?”
피는 안 이어졌어.. 법적 보호자.”
, 법적 보호..? 그게 무엇이다?”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물어오는 카라마츠를 향해 웃으며 오소마츠가 나도 몰라~”라고 대답했다

얼굴을 찡그리고 법적 보호자…”라고 중얼거리는 카라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 슬픈 표정을 했다.

카라마츠.”

“..?”

부드럽게 부르는 오소마츠의 음성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슬프게 웃은 오소마츠가 말했다.

, 이제 여기 못 와.”

청천벽력과 같은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순식간에 눈물을 글썽이며 오소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 어째서?!”
울상이 된 카라마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내일 다른 마을로 가게 되서…”

, 그런 것 싫다!!”

나도 싫어. 싫은데…”

, 오소마츠!!”

아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매달려오는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힘겹게 밀어냈다.

그러니까 오늘은 이걸로 바이바이.”

오소마츠!!!”

벤치에서 일어나 떠나려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붙잡은 순간, 낮고 음흉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뭐야, 오소마츠. 그런 꼬맹이를 만나고 있었나?”
사내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몸을 떨었다.

, 토고 아저씨. , 그게 아니라…”

덜덜 떨며 말을 더듬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항상 당당했던 오소마츠가 이렇게 두려워하는 사내는 대체 어떤 자인지 확인하려 고개를 들었지만, 역광을 받은 사내의 얼굴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 가자. 오소마츠.”
거칠게 피멍이 든 오소마츠의 팔을 꽉 붙잡고 끌어당기는 사내의 행동에 오소마츠가 아팟!”하고 신음했다

오소마츠의 신음소리를 들은 순간 카라마츠는 몸이 먼저 움직여 오소마츠와 사내 사이에 서서 오소마츠를 막아섰다.

, 카라마츠?”
오소마츠가 놀라 카라마츠를 불렀지만 카라마츠의 시선은 사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 오소마츠를 괴롭히지마! 오소마츠는 내 소중한 친구다!!”

“…호오?”

카라마츠의 외침에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가 비열한 웃음이 피어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내의 발이 카라마츠의 배에 꽂혔다.

!!”

카라마츠!!!!!”

처음 겪는 격통에 카라마츠가 신음하며 배를 안고 고꾸라졌다. 오소마츠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카라마츠를 불렀지만, 카라마츠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며 고개를 들자 사내에게 팔을 붙잡혀 끌려가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시야에 가득했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자신을 부르짖는 오소마츠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는 거칠게 오소마츠를 끌어당겨 이내 오소마츠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오소마츠의 몸뚱아리가 공중에 떴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덜덜 떨리는 몸을 오소마츠가 간신히 일으켰다

오소마츠는 더 이상 울고 있지 않았다. 떨리는 몸으로 사내 앞으로 자진해서 다가간 오소마츠가 앞서 걷기 시작한 사내를 따랐다.

안 돼. 오소마츠!’

오소마츠, 를 놔 줘!!!!!”

고통을 참으며 외치자 사내의 발걸음이 멈췄다. 오소마츠가 불안한 얼굴로 카라마츠와 사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사내는 발걸음을 돌려 카라마츠를 향했다. 오소마츠가 필사적으로 사내를 붙잡았지만 사내의 주먹을 맞고 주저 앉았다.

“…이 쪼그만 게 건방지게, 어디서 명령질이야?!”

살벌한 목소리로 잘게 씹으며 사내의 매서운 발길질이 카라마츠에게로 향했다.

, 우앗!!”

, 다리, , 얼굴에 용서 없이 가해지는 구둣발에 카라마츠가 고통스럽게 외쳤지만 사내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저 멀리에 주저앉아있던 오소마츠가 재빨리 뛰어와 카라마츠를 감싸 안았다.

, 아저씨. 제발, 제발요. 제가 다 잘못했으니까.”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울음에 젖어있었다. 서서히 흐려지는 시야로 자신을 안고 있는 오소마츠의 팔이 보였다

사내는 오소마츠의 말에 더욱 발길질에 박차를 가했다. 사내의 발은 온 몸으로 카라마츠를 감싸 안은 오소마츠를 향했다.

, 진짜. 이게 키워줬더니 아주 은혜를 똥으로 갚아?!”

괘씸하다는 어투로 한참을 걷어찬 사내가 씩씩 거리며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 일어나! 시간 없으니까!”

거친 사내의 음성에 오소마츠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켰다.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팔을 붙잡았다.

, 오소마, …”

카라마츠카라마츠나에 대한 건 다 잊어버려잊어버리고따라 오지마… 더 이상 다치지 마…”

처음 듣는 울먹이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휩싸여오는 깊은 슬픔에 몸을 떨었다. 살며시 마지막으로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은 오소마츠가 힘겹게 일어서 사내의 뒤를 따랐다.

           “나를 잊어.”

마지막,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이는 오소마츠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카라마츠가 눈을 감았다.

 

 

공원에 소년이 쓰러져있다는 익명의 제보에 출동한 구조대에 의해 카라마츠는 늦지 않게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신 타박상에 폭행에 의한 내상을 입은 카라마츠는 꼬박 3개월을 입원해 있어야 했다

자신의 아들이 폭행당해 쓰러졌다는 사실에 대노한 마츠조가 공원 일대를 이 잡듯 수색했지만, 목격자도 범인도 찾을 수 없었다

카라마츠에 대한 것을 제보한 익명의 제보자가 어린 소년의 목소리를 했다는 것만 간신히 알아낼 수 있었다.

 

꼬박 3일은 쓰러졌다가 눈을 뜬 카라마츠는 2~3주 동안의 기억을 잃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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