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WHITEPINE입니다.


이전에 「여우골이야기」 제본 배포하면서 혼자 하기엔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는 제본을 하지 않겠다 다짐했었는데...


염치없이 「Red tear」를 제본하려고 합니다...


물론, 제본시 특전은 들어가 있습니다!


완결 이후의 이야기 하나와, 후기 뽀너스에 넣었던 '육둥이가 본편을 연기했다면' 가정 하의 단편 하나로


외전 하나와 번외 하나를 실을 예정입니다.



아직 제본하려는 계획 뿐이고 본격적인 퇴고는 7월달에 하려고 합니다.


이번엔 지난번의 경험을 토대로 빨리빨리 진행하려고 합니다.


책 배송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우체국 택배를 통해서 할 생각이고,


등기로 보낼거라 (더 빠르고, 분실 위험이 적은 등기) 배송비가 4,000원이 될 것 같습니다.


책 값은 아직 퇴고를 하지 않아 얼마가 될 지 모르겠지만, 8,000원 이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ㅎ



좀 더 정확한 공지와 책 가격 등은 7월달 중순에 올리겠습니다.


주문도 7월달 중순에 받으려고 합니다^^



추가로 「여우골이야기」도 구매 원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추가 주문을 받으려고 합니다.


대신 1차 배송 때보다 책 값이 비싸질 수 있습니다. 여러 권 제본과 1, 2권 제본시 할인율이 꽤 차이가 나서요...



* 단편 「츠노 다.(링크 걸어두었습니다.)」와 한 세트인 단편입니다. 

  오소마츠 편을 읽는 게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 24화, 25화를 지나, 동생들이 독립한 후의 이야기입니다.


* 초단문입니다. 공미포 2,019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츠노 카라마츠는 알고 있다. 자신이 오소마츠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마츠노 카라마츠는 알고 있다. 오소마츠 또한 카라마츠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형제의 범주를 넘어, 애욕을 가지게 된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쩌면 철이 들기도 전, 아니 어쩌면 따뜻하고 안락한 양수 속에 함께 있을 때부터일지도 모른다.

카라마츠는 진심으로 오소마츠를 사랑했다

그를 위해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다

끓어 넘치는 냄비 속의 물처럼 울컥 치솟는 일은 없어도, 따뜻한 품 속에 안긴 것 같은 미지근한 온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함께 있고 싶다

, 가까워지고 싶다

해서는 안 되고, 바라서도 안 되는 욕망을 가면 뒤에 숨겼다

모두가 알고 있는 안쓰러운 카라마츠, 2병 바보 차남을 연기하며 알싸하게 퍼지는 사랑을 숨겼다.

 

금지된 사랑이라는 것은 대체 누가, 어떻게 정한 것일까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묻곤 한다

금기, 터부(taboo)로 점철된 사랑

새까맣게 칠해진 사랑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사랑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부모를 배신하고, 형제를 배신하는 일이라는 것을 카라마츠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뭐 어때서?, 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자신은 괜찮아도, 오소마츠는 괜찮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형제와 가족과 이 미지근하고 거짓된 평화가 전부인 오소마츠가 가족의 외면과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매일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충동과 싸우며,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지켜보았다

변하지 않는 일상을 원하는 오소마츠를 그저 가만히 지켜보았다.

 

 

오소마츠가 세운 모형 정원, 모라토리엄

언뜻 보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여도 실상은 구멍투성이

세상에서 몰려오는 태풍을 완전히 막아주지 못하고, 그 바람에 휩쓸린 동생들은 결국 허름한 벽을 넘어 세상으로 향했다

영원히 이 안에서 함께 살아가길 원하는 오소마츠의 바람과 달리, 동생들은 세상으로 나가길 선택했다

올바른 어른이 되기를 선택했다

모두 함께 걸어온 그 길에서 벗어나 어둡고 거친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 언제 끝에 도달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은 마츠노가의 육둥이 중 한 명이 아닌, 육분의 일이 아닌, 단 한 사람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오소마츠라고 잘못 불릴 일 없이, 자신의 이름을 달고,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살아갈 수 있었다

모라토리엄을 벗어난 동생들 중엔 카라마츠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좁은 길을 걸으며 카라마츠는 옆을 둘러보았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길을 걸어가는 동생들은 어느새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항상 옆에, 살이 맞닿는 가까운 거리에 있던 동생들이 저마다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며 멀어지고 있었다

다섯 개의 길에 카라마츠, 쵸로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서 있다

오소마츠의 길은 없다

카라마츠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다섯 개의 길이 갈라져 나온 분기점에, 모두 함께 걸어왔던 커다란 길가에 오소마츠가 서 있었다

전부 포기한 얼굴로, 아련한 미소와 함께 동생들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 이 길을 쭉 걸어가 취직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릴 동생들을 오소마츠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없었던 것으로 할 생각이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는 그것도 예상했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한번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도록 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 결과가 이것인가

자조하며 카라마츠가 다시 동생들을 응시했다

망설임 없이 앞으로 걸어나가는 동생들이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조금씩 거리가 멀어진다

멀어져 간다

동생들이, 조금씩 오소마츠에게서 멀어져 간다

카라마츠는 자조하던 미소를 지웠다

, 이제야 겨우

카라마츠가 걸음을 멈췄다


이제야, 이제야 겨우

회심의 미소가 얼굴 가득 피었다

오소마츠에겐 형제가 전부였다

자신을 구성하는 것도, 오소마츠란 인간을 유지해 주는 것도, 전부 형제였다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였던 형제

카라마츠가 다가가려고 해도 오소마츠의 곁엔 항상 자신 아닌 형제가 있었다

형제가 있기에 오소마츠는 형제 이상의 애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소마츠를 지탱해주고 있으면서, 카라마츠를 방해하고 있던 것도 형제였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던 발을 뒤로 돌렸다

한 걸음 전진하면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만큼 동생들과 오소마츠의 거리는 멀어져 갔다

서슴없이 멀어지는 동생들, 혼자 남겨진 오소마츠

카라마츠는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 미소를 끌어안았다.

 

이젠 나와 너뿐이다

행복한 미소로 카라마츠가 분기점을 향해 걷는다

홀로 남겨진 오소마츠가 의지할 수 있는 형제는 이제 자신뿐이다

카라마츠가 돌아가면 오소마츠는 분명 놀랄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놀라 말도 잇지 못하는 오소마츠를 품에 안으면, 질식해 죽을 정도로 꽉 껴안고 속삭여 줄 것이다

사랑한다고, 네가 없으면 안 된다고

동생들을 향했던 그 잔잔한 미소를, 체념을 온전히 자신에게 돌려, 진득한 사랑에 익사시켜 버리자고, 다짐하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걸어갔다.





* 쓰고나니 약간 싸이코패스 카라마츠가 되어버린 것 같네요...


* 지금 열심히 색오소 단편 쓰고 있습니다. 내일은 꼭 올릴 수 있을 거에요!!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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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인 것 같네요...

 너무 글을 오래 못 올린 것 같아, 예전에 충동적으로 써 두었던 단편 올립니다.


* 이제 좀 여유가 생기나 싶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몸이 아픈 이유는 뭘까요...

  신체적으로도 안 좋았는데,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이었네요... 무기력증이...

  소설을 쓸 시간은 넘쳐났는데, 침대에 누워 잠만 자는 나날이었네요...

  지금은 좀 괜찮아져서 밀린 소설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 이어서 올릴 단편과 한 세트입니다.


* 24화, 25화 이후에 동생들이 독립한 후의 이야기입니다.


* 초 단문. 공미포 1,655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츠노 오소마츠는 알고 있다. 자신이 카라마츠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마츠노 오소마츠는 알고 있다. 카라마츠 또한 오소마츠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형제의 범주를 넘어, 애욕을 가지게 된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같은 얼굴, 형제, 동성

세상에서 금지하는 모든 죄악을 뒤집어 쓴 마음에서 오소마츠는 눈을 돌렸다

카라마츠를 사랑한다

그 마음은 진심으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하나 뿐인 목숨까지고 기꺼이 버릴 수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애정이 카라마츠에게 닿을 때마다 들떴다

두근대는 심장, 볼에 피어나는 홍조, 좀 더 닿고 싶다는 열망이 오소마츠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너를 사랑한다, 그 한 마디를 삼키고, 억누르고, 뭉개버려 종이뭉치처럼 보이는 자신의 자의식 속에 깊이, 아주 깊이 꽂아 넣는다.

 

20살을 넘긴 성인이지만 부모님의 등골을 빼먹고 사는 백수

일할 마음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 글러먹은 인간

그것이 세상이 오소마츠에게 붙인 수식어였다

오소마츠는 알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돼먹지 못한 어른이라는 것을

글러먹은 어른이 사랑

오소마츠는 코웃음을 친다

형제, 동성, 같은 얼굴

사랑이라면 뛰어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대사는 TV 화면 속 드라마에서나 나온다

오소마츠는 알고 있다

자신의 사랑을 입 밖으로 낸 순간, 얼마나 끔찍한 가시밭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변하고 싶지 않다

이대로 태어난 순간부터 평생 함께였던 동생들과 이 미지근한 모형 정원(모라토리엄)에서 영원히 살아가고 싶다

한낱 사랑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릴 정도로 오소마츠는 어리석지 않았다.

 

 

자립, 취직

동생들이 집을 떠났다

선발이라는 기회에 다시 모든 것을 버리고 돌아온 동생들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오소마츠는 알고 있었다

오소마츠가 세운 굳건한 요새, 모라토리엄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벽돌 모양의 스티로폼으로 지어진 모형에 지나지 않았다.

세운 것은 오소마츠지만, 그 안에 자신의 의지로 안주한 것은 동생들이었다

이대로 이 안에서 평생, 영원히

그것이 오소마츠가 바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동생들은 천천히 벽을 이루고 있는 스티로폼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세상이 원하는 어른, 올바르다고 일컫는 어른이 되려고 하는 동생들의 등을 오소마츠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아가는 동생들, 그리고 멈춰있는 자신

편안하고 안락한 모형 정원을 나가 거친 세상으로 나가는 동생들 사이에 카라마츠도 있었다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 헛된 바람을 품고 마는 것이 자신의 어리석음이었다

아니, 순수함인가

오소마츠는 앞으로 걸어갈 생각은 없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오소마츠가 홀로 걸어온 길이 아니었다

육둥이가 함께, 내가 우리고 우리가 나

여섯이 하나가 되어 걸어온 그 길의 끝,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길의 분기점에서 오소마츠는 멈춰섰다

모를 리 없었다

언젠가는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을

하지만 오소마츠는 동생들의 뒤를 따라 걸어갈 수 없었다

하나의 길에서 갈라진 분기점에, 오소마츠가 걸어갈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멀어지는 동생들의 등을 보며 빙긋이 쓸쓸한 웃음을 띄운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눈을 돌렸다


아아, 멀어져 간다

마츠노가의 차남으로서, 오소마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었던 카라마츠가 멀어져 간다

결국 이렇다. 끝이 났다

이대로 취직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릴 동생들과 카라마츠

언젠가는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아이를 안고 카라마츠가 이 집으로 찾아올 날이 올 것이라고 오소마츠는 예감한다

그렇게 오소마츠의 사랑은 끝이 난다

전하지 않고, 눈치채지 않은 척을 하며 눈을 돌려온 사랑은 오소마츠의 가장 깊은 곳에 끈질기게 남아 오소마츠를 괴롭힐 것이다

없애고 싶어도 없어지지 않는 사랑은, 오소마츠와 함께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것이다

환갑을 넘어 일흔이 되고 팔순이 되어서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끈질기게 오소마츠의 안에 남아, 오소마츠의 시신과 함께 불에 태워질 것이다.

 

할 수 없네, 하고 웃는다

길에 멈춰선 오소마츠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받아들일 뿐이다

떠나는 카라마츠에게 잘 가라는 말조차 할 수 없이, 오소마츠는 멀거니 멈춰선 채로 잔잔한 미소를 보냈다.




* 이어서 올라올 카라마츠 시점의 단편까지 한 세트로 봐주세요ㅎ

* 저번주 주중부터 충동적으로 조금씩 썼던 단편입니다.


* 원래 예정되었던 색오소와 BAR마츠 단편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체력 약화와 더불어 주말 출근이 제 발목을 잡네요...


* 카라오소지만, 미지근한 카라오소입니다. 미지근이랄까 조금 드라이? 형제의 선을 이제 막 넘으려고하는 카라오소...일려나요...


* 감기 걸린 오소마츠를 꼭 한 번 쓰고 싶어서 썼습니다. 실은 이 단편 플롯을 제가 아플 때 짜서요ㅎㅎㅎ

  자취생에게 감기는 정말 힘드네요. 새벽에 열이 올라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요...ㅠㅠ 집에서 통근하고 싶다...


* 공미포 14,629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세요^^




 

1.

 

동그란 테이블에 준비된 여섯 개의 밥그릇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5명이 유일하게 주인을 찾지 못한 자리를 응시했다

꼬르륵- 하고 울리는 배를 붙잡은 마츠노 가의 백수들은 모락모락 김을 내뿜는 윤기 나는 밥과 반찬에 눈썹을 찌푸렸다


밥은 모두 다 함께

어머니인 마츠요가 세운 암묵적인 규칙은 성인이 되어버린 육둥이도 어길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태평한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육둥이와 성실하게 일을 하는 마츠요와 마츠조가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저녁 식사뿐이지만, 마츠요가 차려주는 식사는 모두 육둥이가 전부 모여야만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미 일 때문에 집을 나선 마츠요가 없어도 반드시 지켜지는 규칙이었다

쵸로마츠는 세게 혀를 차며 아직도 2층에서 내려오지 않는 오소마츠의 자리를 노려보았다

줄줄 침을 흘리는 쥬시마츠와 묵묵히 밥상 앞에서 무릎을 안고 있는 이치마츠는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았지만, 쵸로마츠와 토도마츠의 인내는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카라마츠 형!”

오소마츠 형 좀 불러와!!”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날카로운 두 동생의 외침에 카라마츠가 움찔 어깨를 떨며 거울을 내렸다

쵸로마츠와 토도마츠의 외침에 동의하듯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눈도 일제히 카라마츠에게 꽂혔다

항상 반쯤 눈을 감고 있던 이치마츠까지 눈을 크게 뜨고 카라마츠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무언 속에서 날카롭게 박히는 동생들의 재촉에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할 수 없이 무릎을 일으켰다

타박타박 발을 울리며 복도로 빠져나가는 카라마츠의 등에 동생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 밥 먹을 시간이다! 브라더-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다고!”

벌컥 미닫이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온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아직도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오소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의 부름에 대답도 하지 않고 이불 속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작게 혀를 차며 이불을 쥐고 냅다 잡아당겼다.


형님!”

…, 뭐야…. 추우니까 이불 돌려줘.”

“…형님?”

이불을 들쳐내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던 오소마츠가 게슴츠레 눈을 뜨고 카라마츠를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바람 빠진 풍선마냥 축 늘어진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조심스럽게 오소마츠를 불렀다

잘게 몸을 떨며 카라마츠가 들어올린 이불 자락을 잡은 오소마츠가 힘겹게 숨을 내뱉었다.


난 더 잘 거니까, 먼저 먹어….”

오소마츠, 혹시 감기 걸린건가?”

?”

카라마츠의 말에 고개를 기울이는 오소마츠가 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 없어?”

아니, 자기 손으로는 알 수 없잖나….”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내려놓고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아직도 몸을 조금씩 떨고 있는 오소마츠의 이마에 손을 올려 온도를 확인한 카라마츠의 눈썹이 한껏 찌푸려졌다.


열 있군…. 형님, 이불 깔아줄 테니 옆방으로 옮겨라.”

?”

브라더-들에게 감기를 옮기면 곤란하다.”

이전 오소마츠를 제외한 다섯이 동시에 감기에 걸렸을 때를 떠올린 카라마츠가 말했다

오소마츠는 입을 삐죽 내밀고 병든 횽아 쫓아내는거야~?!” 하고 항의했지만, 카라마츠는 한 귀로 흘리며 육둥이의 방 옆에 있는 작은 방에 1인용의 이불을 깔았다.


, 오소마츠.”

멍하니 이불 위에 앉아있는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가 손을 내밀자, 오소마츠가 한숨과 함께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제 체온보다 높은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일으켜 옆방에 옮겨주자 더 투덜댈 것이라 생각했던 오소마츠는 얌전히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뭔가 필요한 것 있나? 약은 밥 먹고 먹는 게 좋겠다. 밥은 먹을 수 있나? 죽이라도 해 줄까?”

웬일로 상냥한 카라마츠의 질문에 오소마츠는 전부 고개를 흔들었다

목소리를 낼 힘도 없는지 이불 속에서 느린 속도로 눈만 껌뻑이는 오소마츠가 어쩐지 애처로워 보였다.


형님, 정말 필요한 것 없나?”

“…엄마는…, …. 오늘 엄마 일 나가는 날이지…. 그럼 됐어. 괜찮아.”

그렇게 말을 마친 오소마츠는 눈을 감고 몸을 돌렸다

카라마츠를 향해 등을 돌리고 누운 오소마츠가 작게 나가서 밥 먹어.” 하고 말했다

모처럼 큰 맘 먹고 베푼 자신의 호의를 전부 거절당해서인지 울컥 하고 치미는 감정에 카라마츠가 주먹을 쥐었다.


, 만들어 오겠다.”

낮은 목소리로 내뱉든 선언한 카라마츠가 방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와 거실에 들어서자 이미 식사를 끝낸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카라마츠를 맞이했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재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이미 밖으로 나간 것 같았다.


, 카라마츠 형. 너무 늦어서 그냥 먼저 먹었어.”

나갈 채비를 서두르는 토도마츠가 말했다

제대로 남겨져 있는 자신 몫의 밥과 반찬에 픽- 웃으며 카라마츠가 , 고맙다! 브라더-” 하고 대답하고 거실을 나와 주방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밥에 손도 대지 않는 카라마츠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토도마츠처럼 나갈 준비를 시작하려고 했던 쵸로마츠가 몸을 일으켜 카라마츠가 들어간 주방으로 향했다.

 

 

카라마츠, 무슨 일 있어?”

…. 오소마츠가 감기에 걸린 것 같아서. 죽을 만들려고 한다.”

오소마츠 형, 감기야??”

쵸로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대답하며 찬밥을 꺼내고 냄비에 물을 올렸다

담담하게 전하는 카라마츠의 대답에 쵸로마츠를 따라 들어온 토도마츠가 놀라 외쳤다.


열이 좀 있지만,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브라더?”

끓어오르기 시작한 물에 찬밥을 넣고 카라마츠가 눈을 찡끗하며 몸을 돌렸지만, 쵸로마츠와 토도마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탕탕탕 소리를 울리며 빠르게 층계를 올라가는 소리에 카라마츠가 주방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2층방 문을 연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 형은?” 하고 물었다

카라마츠가 손짓하며 옆방이다.” 하고 대답하자,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다시 옆방 문을 열더니 곧 안으로 들어갔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죽을 타지 않게 휘적거리며 카라마츠가 죽의 간을 맞추고 있을 때, 다시 쿵쾅거리는 소리가 울리며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주방으로 내려왔다.


쵸로마츠? 토도마츠?”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눈길도 주지 않고 거실로 들어간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장식장에서 약상자를 꺼냈다

카라마츠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두 동생을 바라보는 동안 약상자에서 약을 꺼낸 쵸로마츠가 몸을 일으켜 2층으로 향했다

토도마츠도 즉시 쵸로마츠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카라마츠가 끓어 넘치기 시작한 냄비로 몸을 돌렸다.

 

 

한 번도 제대로 요리해 본 적 없는 자신을 오늘만큼 아쉽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맛을 봐도 맛있다고 할 수 없는 죽을 눈앞에 두고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접시를 꺼냈다

냄비 가득 들어있는 죽은 조금 퍼서 접시에 담고 숟가락을 꺼내 쟁반에 올렸다

쟁반을 손에 들고 요령껏 발로 미닫이문을 열자, 오소마츠의 옆에 앉아있던 쵸로마츠와 토도마츠의 시선이 꽂혔다

갑자기 자신에게 집중된 두 쌍의 눈동자에 내심 당황하며 카라마츠가 방 안에 들어가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형님, 죽 가져왔다.”

“…필요 없는데….”

제 머리맡에 놓인 쟁반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을 보며 오소마츠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처럼 정성을 담아 준비한 자신의 죽은 거부하는 오소마츠에게 눈썹을 찌푸린 카라마츠가 그래도 먹으라고 말하려 입을 연 순간,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쵸로마츠가 빽 소리를 질렀다.


빈 속에 약 먹으려고?! 얼른 먹고 약 먹어!”

쵸로마츠의 잔소리에 오소마츠가 푸- 하고 한숨을 내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느릿느릿 상체를 세우고 앉은 오소마츠가 손을 내밀었다

.” 하고 내민 손에 카라마츠가 조심조심 쟁반을 들어 오소마츠의 무릎에 올려주었다.


“…밍밍해.”

, 원래 죽은 그런 거다!”

한 숟가락 죽을 떠먹은 오소마츠가 맥없이 내뱉은 말에 카라마츠가 서둘러 외쳤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힐끗 눈길을 주고 다시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밍밍하다고 할 정도로 간이 되어 있지 않는 죽을 오소마츠는 바닥까지 긁어 그릇을 싹 비웠다

빈 그릇과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쵸로마츠가 체온계를 들어올렸다.


일단 열이 얼마나 나는지 확인하고.”

쵸로마츠가 내민 체온계를 오소마츠가 한숨과 함께 건네 받아 자신의 옆구리에 끼었다

삑삑삑- 하고 세 번의 알람음이 나고 오소마츠가 빼낸 체온계를 쵸로마츠가 재빨리 빼앗았다.


우왓, 38 2….”

!?”

체온계에 표시된 숫자에 쵸로마츠가 놀라 중얼거리자, 놀란 카라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신음을 흘렸다

쵸로마츠가 들고 있는 체온계에 적힌 숫자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한 카라마츠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깜빡였다

오소마츠를 일으킬 때 열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그 정도로 열이 높을 줄은 몰랐다

괜히 오소마츠를 손님방으로 옮긴 것인가 자책하는 카라마츠를 뒤로 하고 토도마츠가 쵸로마츠와 함께 들고 온 해열제 두 알을 오소마츠 손바닥에 올려 주었다.


, !”

찰랑거리는 물을 응시하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바닥에 올려진 두 개의 새하얀 알약을 입에 털어 넣은 오소마츠가 물과 함께 약을 목으로 넘겼다

반쯤 줄어 들은 물컵을 쟁반에 내려놓은 오소마츠가 다시 이불에 털썩 누웠다.


고마워, 쵸로마츠, 토도마츠. 카라마츠도, 죽 고마워.”

“…아아….”

얼른 나아, 이 바보 장남.”

아프면 아프다고 해! 정말!”

오소마츠의 솔직한 감사에 얼떨떨한 얼굴로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도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한마디씩 내뱉고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규칙적인 호흡을 내며 잠에 빠져들려는 오소마츠를 배려해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고 방을 나온 쵸로마츠가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나는 약속 있으니까 나가볼게.”

, 나도!”

쵸로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따라서 외쳤다.

그리고 카라마츠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에 카라마츠가 식은땀을 흘리며 , 왜 그러나? 브라더-?” 하고 묻자, 다시 커다란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말했다.


카라마츠 형은 오늘 뭔가 예정 없어?”

물론, 오늘도 뷰티불한 카라마츠 걸-즈를…”

별로 중요한 거 아니네. 그럼 엄마 올 때까지 오소마츠 형 좀 봐 줘.”

!?”

부탁할게~, 카라마츠 형~~”

쵸로마츠의 말에 당황하는 카라마츠에게 토도마츠가 손을 흔들며 상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에엩?!” 하고 황당해하는 카라마츠를 버려두고 계단을 내려온 토도마츠와 쵸로마츠는 곧 나갈 채비를 끝내고 현관문 너머로 사라졌다

드르륵- 하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에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쟁반을 들고 계단을 내려와 주방에 들어섰다

오늘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카라마츠 걸-즈를 기다리려고 했던 계획인 오소마츠 덕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왜 하필 오늘 아프고, 또 왜 하필 자기가 먼저 오소마츠가 아픈 것을 발견하고만 것인가…. 


한탄해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릇을 씻으면서도 한숨을 멈추지 못했다

마츠요가 돌아올 때까지 집에 발이 묶인 카라마츠는 설거지를 끝내고 손을 털며 계단 위를 응시했다

잠든 오소마츠가 있는 집 안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카라마츠는 거실로 향하며 흘끗 현관에 놓인 두 켤레의 운동화를 응시했다

자신의 갈색 가죽 구두와 오소마츠의 뒤축이 다 구겨진 빨간 운동화

저 운동화가 있을 때엔 항상 집 안에 오소마츠의 응석이 울려 퍼졌다

놀아 달라느니, 심심하다느니, 동생들이 차갑다느니, 그런 어린아이 투정 같은 외침이 오늘은 고요했다

가끔은 이런 날도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묘한 위화감이 들고 만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쉰 카라마츠가 거실에 들어가 TV를 켰다

평일 낮에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라곤 드라마 재방송이나 재미없는 토크쇼가 전부였다

-, - 채널을 돌리며 상에 앉아 턱을 괴고 있다가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겨우 오후 3

마츠요가 돌아오는 시각은 대체로 5시 넘어서


하아~” 하고 숨을 내쉬며 밥상에 턱을 올린 카라마츠가 무미건조한 눈으로 TV 화면을 응시했다.


심심하다.’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심심하다는 생각 자체는 놀라울 것도 없었지만, 그 생각 뒤편에 숨어있던 작은 바람을 깨닫고 말았다

지금까지 오소마츠가 있던 없던 심심하면 거울을 봤다

기타도 쳤다

오자키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으면 어느새 심심하다는 생각은 저 멀리로 사라진 뒤였다

카라마츠는 자신 나름의 지루함을 날려버릴 수단이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대체 왜?’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 먼 산에 울려 퍼지는 메아리처럼 가슴 가득 그 울림을 퍼뜨리곤 영영 사라져버렸다


대답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하고 마음 속의 작은 악마가 물었다

작은 악마가 얼굴 가득 요사스러운 미소를 피우고 말했다

오소마츠가 없으니까 심심하다고 말이야, 하고 키득거리는 악마의 모습에 카라마츠의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누가 없어서 심심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카라마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은 적었다

적어도 자신이 아닌 타인 때문에 지루한 적은 없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위로 젖혔다

천장을 보고 있으면 2층에서 잠든 오소마츠의 숨결이 들릴 것만 같았다

심장을 때리는 혼란에 카라마츠가 짙은 눈썹을 찌푸리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에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다녀왔다~”

거실에 닿은 마츠요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시계를 확인했다

3 30

이른 귀가에 놀라며 카라마츠가 서둘러 몸을 일으켜 거실을 나왔다.


어머, 있었니? 백수 2.”

마미, 오소마츠가, 형님이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어머나~”

카라마츠의 말에 감탄인지 탄식인지 알 수 없는 맞장구를 흘리며 구두를 벗은 마츠요가 2층으로 향했다

그 뒤를 카라마츠가 긴장한 얼굴로 따라갔다. 당연하게 2층 방 문을 연 마츠요에게 카라마츠가 말했다.


형님은 옆, 손님방이다. 브라더-들에게 옮기면 곤란하니까….”

그러니? 잘 했다.”

죄책감에 힘없이 늘어진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마츠요가 빙긋이 웃고는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썹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든 카라마츠에게 생긋 미소 지은 마츠요가 옆 방으로 발을 옮겼다

스륵- 하고 방문을 연 마츠요가 방 안으로 사라지는 것은 응시한 카라마츠가 말없이 방 옆의 벽에 기댔다

카라마츠가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것을 눈치챈 마츠요가 방문을 닫았다

얇은 미닫이문 너머로 마츠요의 목소리가 복도에 퍼졌다.


오소마츠.”

“…, ?”

그래, 감기 걸렸다면서?”

“…….”

열은 얼마나 나니?”

아까 쵸로마츠가 38도라고 했어.”

높네…. 해열제는 먹었어?”

. 토도마츠가 줬어.”

빈 속에 먹진 않았지?”

카라마츠가 죽 만들어줬어.”

그러니? 착한 동생이네.”

…, 헤헤.”

속은 어떠니?”

“…조금, 울렁거려.”

메스껍고 그래?”

…. 토할 것 같아….”

그럼 위장약 먹자. 따로 뭐 먹고 싶은 건 없니?”

…. 없어….”

푸딩도 싫어?”

“…푸딩은, 먹고 싶어.”

후후후, 그럼 푸딩 먹고 위장약 먹자.”

….”

조금만 참아, 우리 아들.”

….”


귀에 닿는 두 사람의 대화는 문에 막혀 조금 뭉개져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할 말을 잃었다, 라는 말은 이럴 때 쓰면 좋을 것이다

카라마츠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오소마츠가 감기에 걸렸을 때를 떠올렸다

어릴 적, 비가 와도 신경 쓰지 않고 뛰놀다가 모두 함께 감기에 걸렸을 때를 마지막으로 감기에 걸린 오소마츠를 본 기억이 없다

학생 시절, 신체 건강한 육둥이가 감기에 걸리는 일 자체가 매우 드물었고 그 중에서도 오소마츠는 특히 감기에 잘 걸리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다시 유심히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었다. 정말로 오소마츠가 감기에 걸린 적이 없는가?


….”

탄식이 절로 입 밖으로 삐져나왔다

딱 한 번 있었다

오소마츠가 감기에 걸렸을 때가


컨디션이 안 좋은지 조퇴를 한 날. 땡땡이는 많이 쳐도 조퇴는 하지 않았던 오소마츠였다

같은 반이었던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조퇴 소식을 동생들 전원에게 말해주었고, 모두 무슨 일인가 싶어 일찍 귀가했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오소마츠를 찾았지만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평소와 같이 마츠요가 웃으며 육둥이를 맞이했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는 어디 있냐고 묻자 마츠요는 자상하게 웃으며 손님방에 있다고 말했다

감기가 옮을 수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덧붙여서

감기라니, 별 거 아니란 생각에 모두 충실히 마츠요의 말을 지켰다

오소마츠가 있는 방엔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고 그 다음 날, 언제 아팠냐는 듯이 아침밥을 해치우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안도했던 기억이 있다.


보여주지 않았던 것뿐이었나.’

깨달음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숙였다

오소마츠는 한 번도 자신이 아픈 모습을 동생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지금처럼 열이 높아 괴로워도, 토할 것 같이 속이 안 좋아도, 동생들 앞에선 내색하지 않았다.


내가 오늘 오소마츠를 깨우러 올라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소마츠는 그대로 혼자 이불 속에서 고통을 참아냈을 것이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감기에 걸렸단 것을 알고 따뜻한 말보다 동생들에게 옮으니 방을 옮기라는 쌀쌀맞은 말을 내뱉은 과거의 자신을 책망했다

그리고 죄책감과 함께 제일 먼저 오소마츠가 아픈 것을 발견한 것이 자신이라는 것이 기뻤다

죄책감과 기쁨이 한데 뒤섞여 거무죽죽한 감정이 되었다

고개 숙인 시야에 검은 그림자가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보였다

카라마츠는 절벽 끝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에 숨을 집어 삼키고 눈을 질끈 감았다.


카라마츠.”

!! , 뭔가? 마미!”

떨어지고 있는 자신을 쑥- 끌어올리는 마츠요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홱 고개를 들고 말했다

마츠요는 명백히 당황하고 있는 카라마츠를 추궁하지 않고 미소 띤 얼굴로 지갑에서 천엔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오소마츠에게 줄 푸딩 좀 사오겠니?”

, 아아!! 바람처럼 다녀오겠다!!”

카라마츠는 마츠요가 내민 지폐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힘차게 외치곤 쿵쾅대며 계단을 내려갔다

두 칸씩 층계를 건너뛰는 카라마츠를 보며 마츠요가 눈썹을 살며시 늘어뜨리고 웃었다.

 

 

 

 

 

 

2.

 

, 마밋!! 푸딩 사 왔다!!”

어머, 빠르네~”

, 헉 숨을 몰아 쉬며 주방으로 뛰어온 카라마츠가 자랑스런 표정으로 푸딩과 거스름돈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평온한 얼굴로 감탄한 마츠요가 저녁 식사 준비를 잠시 멈추고 푸딩을 쟁반에 올렸다

미리 꺼내놓은 위장약도 쟁반 위에 올린 마츠요가 쟁반을 들고 2층 계단을 오르는 것을 카라마츠가 뒤따랐다.

이번에도 카라마츠는 방에 들어가지 않고 벽에 등을 기댔다

스륵- 하고 문이 닫히고 마츠요와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소마츠, 푸딩이야.”

….”

일어날 수 있어?”

….”

사락- 하고 이불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푸딩의 뚜껑을 따는 소리가 들리고 곧 침묵이 이어졌다.

10분 정도 지나고 다시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퍼졌다.


다 먹었어.”

그래, 잘 했네~. , 약도 먹고.”

….”

아직도 토할 것 같아?”

….”

그럼 잠깐 앉아있자. 뭐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돼.”

….”

앉아있기 힘들면 엄마한테 기대렴.”

…. 고마워요, 엄마.”

후후후, 아플 때만 솔직하지?”

헤헤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둘의 대화가 끊긴 방 안을 응시했다

닫힌 방문 너머에 있는 오소마츠가 걱정되어 견딜 수 없었다

치솟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카라마츠가 슬며시 방문에 손을 올렸다

살짝, 겨우 방 안이 보일 정도로 아주 살짝 문을 밀어 틈을 만든 카라마츠가 방 안을 엿보았다

열이 올라 홍조가 핀 얼굴로 힘겹게 숨을 몰아 쉬는 오소마츠가 얌전히 마츠요에게 기대어 앉아있었다

작은 마츠요의 몸이 오소마츠를 단단히 지지하고 그 어떤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호흡에만 집중하고 있던 오소마츠가 천천히 눈을 뜨고 마츠요와 시선을 맞췄다.


엄마, 이제 괜찮아.”

더 앉아있어.”

정말로 괜찮아. 누울게.”

그래….”


아직도 힘겨워 보이는 오소마츠가 몸을 떼고 천천히 이불에 누웠다

마츠요가 힘들까 오소마츠 나름의 배려라는 것을 카라마츠도 마츠요도 알 수 있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체온을 확인한 마츠요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방을 나왔다.


카라마츠.”

, .”

엄만 이제부터 저녁 준비 해야 하니까, 수건이랑 찬물 가지고 오소마츠 간호 좀 해줄래? 열이 높으니까 계속 찬 수건 올려주고.”

, 알겠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카라마츠를 놔두고 미소 지은 마츠요가 계단을 내려갔다

서둘러 욕실에 뛰어가 대야와 수건을 챙긴 카라마츠가 물을 쏟지 않게 조심하며 계단을 올라 방에 들어갔다

뜨거워진 몸에 거친 숨을 내쉬는 오소마츠가 있는 방 안은 그 공기까지 뜨겁게 달궈진 것처럼 느껴졌다

답답하게 정지된 공기에 카라마츠가 대야를 내려놓고 창문을 반쯤 열었다

상쾌한 바람이 방 안의 공기를 내몰아 한결 호흡이 쉬워졌다

수건을 찬물에 적셔 쭉 짜내 오소마츠의 이마에 올린 카라마츠가 가만히 오소마츠의 얼굴을 응시하며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오소마츠의 가쁜 숨소리가 쌓일수록, 아침에 매몰차게 오소마츠를 손님방으로 옮겼던 자신을 향한 죄책감도 커져간다

미지근해진 수건을 다시 적시며 땀에 젖은 오소마츠의 앞머리를 넘겨준 카라마츠가 작게 속삭였다.


빨리 나아라, 오소마츠.”


조금, 아주 조금, 오소마츠의 호흡이 편안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3.

 

미지근해진 수건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자 현관문을 거칠게 열며 들어온 쵸로마츠와 마주쳤다

이어 토도마츠도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돌아와 손에 들고 있던 봉투에서 푸딩을 꺼냈다

이미 자신이 사온 푸딩을 먹었다고 전하자, 토도마츠가 볼을 부풀리고 뭐야, 모처럼 사 왔는데…. 그럼 이건 내일 몫으로 하지 뭐.” 하며 푸딩을 냉장고에 넣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쵸로마츠가 슬며시 오소마츠의 상태를 물어 아직 열이 좀 있다.” 고 대답하자, 쵸로마츠가 인상을 쓰며 그래….” 하고 신음을 흘렸다

정말 오소마츠를 좋아하는 동생들이라고, 카라마츠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 오소마츠 형 감기야?”

오소마츠 형아 또 저주에 걸렸슴까?!”

저녁 식사 시간, 오소마츠의 빈 자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놀란 얼굴로 이치마츠가 되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식탁에 앉아 마츠조와 식사를 하던 마츠요가 끼어들어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했다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이치마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쥬시마츠도 말없이 반찬을 입에 옮겼다.

 

 

항상 함께 걸어가던 목욕탕으로 향하는 길도, 시끄럽던 목욕 시간도, 치열했던 화장실 쟁탈도 모두 재미가 없었다

정말로 마츠노가()가 맞냐고 물을 정도로 집 안은 조용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모두 익숙지 않은 감각을 느끼며 잠옷으로 갈아입은 몸을 이불 속에 묻었다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제 옆에 놓인 빈자리에 슬그머니 눈길을 주는 것을 봤지만 모르는 척하며 카라마츠가 눈을 감았다

내일은 다시 활발한 오소마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라며, 내일 하루쯤은 건강해진 오소마츠와 함께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인 이른 새벽,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카라마츠가 이불을 벗어나 방문을 여는 두 개의 그림자를 응시했다

소음이 나지 않게 발소리를 죽이고 은밀히 방을 빠져나가는 두 동생의 모습에 옅은 미소를 띄운 카라마츠가 다시 눈을 감았다.

 

 

일을 나가는 마츠조와 마츠요가 일어나는 이른 아침

아직 잠들어있는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를 확인한 카라마츠가 천천히 이불에서 발을 뺐다

계단을 내려가 주방에 들어가자 아침 준비를 하던 마츠요가 반갑게 카라마츠를 불렀다.


어머, 일찍 일어났구나.”

굿 모닝, 마미-.”

후후, 그래. , 카라마츠. 엄마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뭔가?”

실은 오늘 일을 뺄 수가 없어서, 엄마 대신 오늘 하루만 오소마츠 간호 좀 해주련?”

, 이지 워크다! 내게 맡겨라!”

고맙구나. 그럼 이 체온계 들고 가서 오소마츠 체온 한 번만 확인해줄래?”

아직 자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겠지만, 엄마가 나가기 전에 온도 한 번 보고 가려고. 잠깐 깨워서 체온만 재고 다시 재우렴.”

, 알겠다.”

식탁에 올려져 있던 체온계를 집어 들고 2층 손님방 앞에 선 카라마츠가 작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새벽에 사라진 두 동생이 오소마츠 양 옆에 누워 색색 자고 있는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머리맡에 다가가 오소마츠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오소마츠, 잠깐 일어나라. 체온 재야한다.”

, 우응

대답인지, 잠꼬대인지 모를 소리를 흘리며 오소마츠가 눈을 떴다

자신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카라마츠의 얼굴에 오소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굿 모닝, 오소마츠.”

“….”

몸은 어떤가?”

, 괜찮아.”

체온 재자.”

….”

카라마츠가 내민 체온계에 오소마츠가 눈을 끔뻑이며 몸을 일으켰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양 옆에서 이불을 누르고 있는 덕분에 일어날 수가 없음을 깨달은 오소마츠가 이 녀석들 왜 여기서 자는 거야….” 하고 투덜거리며 엉덩이를 뒤로 빼 이불을 빠져 나왔다

체온계를 겨드랑이에 꽂은 오소마츠가 멍청히 허공을 응시했다

그 무엇에도 초점을 맞추지 않은 공허한 눈동자가 괜히 애처로워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

까만 눈동자가 자신을 비추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카라마츠가 마츠요의 말을 전했다.


오늘은 마미가 일이 있다고 한다.”

, …. 그렇겠지. 갑자기 일을 뺄 수는 없으니까….”

기대도 안 했다는 듯이 체념한 투로 툭 내뱉는 오소마츠 말에 카라마츠가 얼굴을 찡그리고 부정하려는 순간, 삐삐삐- 하고 알람이 울렸다

오소마츠가 느릿느릿 팔을 들어올려 체온계를 카라마츠에게 건넸다.


“…37 8. 아직 열이 있구나.”

…. 나 이제 다시 자도 돼?”

, 깨워서 미안했다.”

체온계의 숫자게 팍 인상을 찌푸린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카라마츠가 양 팔을 뻗어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어깨를 흔들었다.


웨이크 업! 브라더-! 아침이다. 게다가 마미의 명령 무시라니, 터프 가이구나.”

“…, 끄러. 개똥마츠.”

좋은 아침, 형아!!!”

쥬시마~? 오소마츠가 자려고 하니 조금만 볼륨을 줄이는 게 어떻겠나?”

, 죄송함다!”

비적비적 몸을 일으키는 이치마츠와 카라마츠의 말에 손으로 입을 꾹 막은 쥬시마츠가 이불을 떠났다

오소마츠를 향해 좋은 아침, 오소마츠 형.” 하고 인사를 건네는 두 동생에게 오소마츠가 미소 띤 얼굴로 ~, 좋은 아침.” 하고 인사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였지만, 그 톤은 가라앉아 바삭바삭 갈라져 있었다

방을 떠나 저희들 방으로 들어가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를 배웅한 카라마츠가 이불을 들췄다

오소마츠가 들어가기 쉽게 들어올린 이불에 오소마츠가 쏙- 제 몸을 집어 넣었다

발끝, 손끝 하나 빠져 나오지 않도록 단단히 이불을 덮어주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실소를 흘렸다.


오늘따라 다정하네~, 카라마츠 군~”

환자는 조용히 입 다물고 자라.”

, 쌀쌀맞은 차남으로 돌아왔다.”

저가 아픈 와중에 장난스러운 말을 꺼내는 오소마츠를 가볍게 쏘아본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며 방을 나왔다

체온계에 남은 열에 눈썹을 찌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와 주방에 들어서자, 마츠요가 기다렸다는 듯이 결과를 물었다.


“37 8부였다.”

그렇게 많이 내리지 않았구나. 오소마츠는 항상 그러니까.”

, 런가?”

감기 걸리면 꼭 열을 내고, 3일은 가니까. 오소마츠는.”

그럼….”

대체 오소마츠는 얼마나 자주 감기에 걸렸던 건가, 라는 말을 삼켰다

철이 든 이후로 오소마츠가 아픈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 카라마츠는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입술을 깨문 카라마츠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꾸역꾸역 넘기고 고개를 저었다

?” 하고 고개를 기울이는 마츠요에게 오늘 아침은?” 하고 물었다

마츠요는 방긋 웃으며 평소와 같지~” 하고 대답했다

식사 준비를 끝내고 일 나갈 준비를 하며 마츠요가 카라마츠에게 기본적인 간호 방법을 설명했다


열은 밥을 먹고 난 후에 재볼 것, 열이 내려도 해열제는 먹일 것, 식후 위장약을 먹이고 잠깐 앉혀놓을 것, 죽은 이미 만들어 놨으니 꼭 시간 맞춰서 먹일 것 등등

마츠요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인 카라마츠가 맡겨둬라.” 하고 자신하자 마츠요가 빙긋 웃으며 그럼 맡길게.” 하고 말을 남기고 현관을 나섰다

마츠요도 마츠조도 떠나고 조용해진 집 안에 카라마츠의 한숨 소리가 울렸다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 2층 방에 들어선 카라마츠가 동생들이 덮고 있는 이불을 훌쩍 들어올렸다.


굿 모닝, 브라더-! 브랙퍼스트 시간이다!”

카라마츠의 외침에 눈을 비비며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일어났다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1층을 내려가는 쥬시마츠를 보며 아침부터 기운도 좋네….” 하고 하품을 한 쵸로마츠가 방을 나갔다

이어 토도마츠도 일어나 나가고, 남아있는 것은 몸을 웅크리고 잔뜩 인상을 쓴 채 자고 있는 이치마츠뿐이었다

카라마츠는 슬금슬금 피어 오르는 불안함을 애써 무시하고 이치마츠를 흔들어 깨웠다.


이치마츠, 아침이다. 일어ㄴ…”

, 일어났어.”

말을 마치지도 전에 얼굴을 스치는 발길질에 놀라 뒤로 자빠진 카라마츠를 노려보며 섬뜩하게 중얼거린 이치마츠까지 방을 떠나고, 텅 빈 이불을 보며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멋대로 구겨진 이불을 정돈해 개어 벽장에 넣고 거실에 들어가자, 동생들은 이미 식사를 시작한 뒤였다

빈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든 카라마츠가 동생들을 향해 말했다.


오소마츠는 아직 열이 덜 내렸다.”

? 그럼 엄마는?”

토도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토도마츠와 눈을 맞추고 씩- 웃었다.


일 나갔다. 그래서 오소마츠 간호는 내가 맡는 것으로 했다.”

, 그래.”

무미건조하게 수긍하는 동생들을 보며 카라마츠는 쓴웃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미 남의 일이 되어버린 오소마츠 간호에 자신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에 진심으로 안도하는 동생들에겐 이미 오소마츠를 걱정하는 기색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형제, 마츠노가 육둥이라지만 형제들의 쌀쌀맞음이 꼭 자신에게만 향한 것은 아니라는 것에 카라마츠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식사를 끝낸 동생들은 모두 제 예정에 따라 집을 나섰다

하나하나 현관을 떠나는 동생들을 배웅한 카라마츠가 해열제와 위장약을 챙겨 죽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고요히 잠들어 있는 오소마츠를 억지로 깨워 일으켜 죽을 먹이고 약까지 넘겨준 카라마츠가 가만히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물과 함께 약을 넘긴 오소마츠가 멍한 눈으로 카라마츠와 눈을 맞췄다.


?”

아니, 몸은 좀 어떤가?”

괜찮아.”

마츠요에겐 솔직하게 어디가 아프다고 말했으면서 자신에겐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는 오소마츠가 조금 야속했다

카라마츠는 작게 한숨 쉬고 오소마츠의 등 뒤로 자리를 옮겼다.


? 뭐야?”

자신의 등에 딱 달라붙어 앉은 카라마츠를 뒤돌아보며 묻는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마미가 잠깐 앉혀놓으라고 해서. 내게 기대라, 오소마츠.”

…. ….”

동생에게 기댄다니 싫다고 할 줄 알았던 오소마츠가 의외로 순순히 카라마츠의 가슴에 등을 기댔다

자기가 한 말이지만 오소마츠가 순순히 따르는 모습에 적잖이 놀란 카라마츠가 숨을 멈추고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열이 올라 따끈한 몸이 품 안에 있는 것이 어째 묘한 기분을 불러 일으켰다

눈을 감고 조용히 기대있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마른침을 삼키고 머리를 긁적였다.


이대로 조용히 있으면 되는 건가? 아니면 뭔가 말을 걸어야 하나?’

카라마츠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사이, - 하고 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가볍게 카라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괜찮아. 다시 누울래.”

아아….”

멀어지는 체온에 아쉬움을 느끼며 카라마츠가 몸을 뺐다. 이불에 누운 오소마츠가 잘 자….” 하고 인사한 뒤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소마츠가 규칙적으로 호흡하며 잠든 것을 확인한 카라마츠가 방을 나왔다.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든 때운 점심 시간. 남은 밥으로 적당히 점심을 먹은 카라마츠가 손님방으로 올라갔다

색색 잘 자고 있는 오소마츠를 살짝 흔들자 실눈을 뜬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 …라마츠…?”

아아. 오소마츠, 점심은?”

“…안 먹어.”

꼬물꼬물 이불을 끌어당기며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카라마츠는 먹기 싫다고 하면 점심은 억지로 먹이지 않아도 된다는 마츠요의 말을 떠올리며 알았다.” 하고 대답했다.


그럼 체온 재자.”

….”

카라마츠가 내민 체온계를 오소마츠가 얌전히 겨드랑이에 꽂았다.


“37 7….”

많이 내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미열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걱정스러운 한숨과 함께 미간을 찌푸린 카라마츠가 자신을 바라보는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소마츠, 약 먹어야겠다.”

…. 귀찮아…. 놔두면 나아.”

푸딩 있는데?”

푸딩…. 그럼 먹을게.”

아아. 가지고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오소마츠에게 잔잔한 미소를 보여준 카라마츠가 재빨리 주방으로 내려가 푸딩과 해열제, 위장약을 챙겨 올라왔다

뚜껑을 까준 푸딩을 얌전히 비운 오소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약을 내밀자 오소마츠가 꿀떡 약을 삼켰다.


속은 어때?”

“…괜찮아.”

“…솔직히 말해라, 오소마츠.”

인상을 찌푸리고 말하는 카라마츠를 힐끗 쳐다본 오소마츠가 귀찮다는 듯이 눈을 찡그리고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아직 좀 불편해.”

그럼 저녁에도 위장약 한 번 더 먹자.”

….”

자라.”

….”

이불을 들춰주자 오소마츠가 슬금슬금 엉덩이를 움직여 이불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단단히 이불을 덮어준 카라마츠가 빈 푸딩을 들고 내려갔다.

플라스틱 푸딩 컵은 재활용 쓰레기통에 넣고 주방을 나와 대야에 찬물을 길어 다시 계단을 올랐다

찬물에 수건을 적셔 오소마츠 이마에 올리자 오소마츠가 슬쩍 눈을 뜨고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왜 아까부터….”

마미에게 간호 부탁 받았으니까.”

“…후응

오소마츠의 질문을 헤아려 대답한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목소리를 흐리며 눈을 감았다

올라올 때 시계를 확인했을 때, 시침은 2에 올라가 있었다

이제 앞으로 3시간

카라마츠는 마츠요가 돌아올 때까지 둘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3시간 밖에 남지 않은 것에 이유 모를 아쉬움을 느끼며 벽에 등을 기댔다

한숨을 내쉬고 천장을 보며 눈을 감는다


자신이 오소마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적었다

이렇게나 적은데도, 자신은 제대로 오소마츠를 위해 한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생들을 위해서라면 양아치들의 소굴에도 당당히 들어갔던 카라마츠였지만, 오소마츠를 위해서 같은 일을 했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망설이고 만다

오소마츠는 홀로 고고히 서 있었다


싸움도 혼자, 아픔도 혼자, 고민도 혼자서.


전부 혼자.


카라마츠가 기억하는 오소마츠는 항상 무리를 이끄는 장난꾸러기 리더의 모습이었다

육둥이의 리더는 항상 씩씩하고 건강하고 당당하고 짓궂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나 위태로워 보이는지 카라마츠 자신도 알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흔들 휘청거리는 들꽃처럼, 절벽 위에 홀로 피어난 들꽃처럼, 오소마츠가 위태롭다. 안쓰럽다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혼자를 고집하는지, 바보같다고 생각하며 카라마츠가 작게 혀를 찼다

누군가가 있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휘청거리는 저 가녀린 들꽃을 지탱해주는 누군가가. 고개를 내려 천장에서 이불로 시선을 옮겼다

열이 많이 내린 덕분에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새근새근 자는 오소마츠가 보였다

조용한 오소마츠는 익숙지 않다.

조용한 집 안은 재미가 없다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든다

카라마츠는 조용히 오소마츠 곁으로 다가가 땀에 젖은 뺨을 어루만졌다.


빨리, 나아라. 오소마츠.”


마음을 담아 그렇게 속삭이고 손을 거두었다.

 

 

 

 

 

 

4.

 

하아~”

한숨이 밀폐된 공기에 담겨 가슴을 눌렀다

정체된 공기에 답답한 숨을 내쉬고 있으면 벌컥- 손님방의 문이 열렸다.


! 카라마츄~!”

문을 닫고 들어온 붉은 후드의 오소마츠. 건강한 모습은 언제 감기가 걸렸다는 듯이 씩씩했다

쾌활하게 웃으며 손에 든 냉각패드 포장을 찢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앞머리를 넘기고 이마에 냉각패드를 붙였다.


너는 바보라서 감기에 안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기적의 바보인 오소마츠가 걸렸는데, 내가 무사할 리 없잖아.”

누가 바보냣! 바보라고 한 사람이 바보거든!?”

흥흥, 하고 화를 내며 외치는 오소마츠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작은 미소를 실었다

마츠요의 말과 달리 이번엔 이틀 만에 감기를 털고 일어난 오소마츠의 평소와 같은 모습에 어쩐지 굉장히 안도되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소마츠는 바로 뭐라 반박할 줄 알았던 카라마츠가 말없이 자신을 응시하자 고개를 기울이고 의아한 얼굴로 시선을 되받아쳤다.


?”

아니, 아무것도.”

후응?”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묘한 신음을 흘렸다

- 하고 뜨거운 숨을 내쉬며 얌전히 잠을 자려고 눈을 감은 카라마츠를 뚫어지라 쳐다본 오소마츠가 몸을 일으켜 창문을 조금 열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상쾌한 공기가 방 안을 맴돌았다

편안해진 호흡에 카라마츠가 눈을 뜨자, 이불 속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오소마츠가 보였다.


, 뭐 하는 건가!? 형님!!”

? 아니, 나도 잠 좀 자려고.”

옆방 가라!! 또 감기 걸리려고…!”

나한테 옮긴 거잖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지 않아!!”

감긴데도 건강하네, .”

빽 소리를 지르는 카라마츠를 귀찮다는 얼굴로 쳐다본 오소마츠가 기어이 카라마츠를 슬쩍 밀어내고 이불에 누웠다

싱글 이불에 성인 남자가 둘. 당연히 좁아진 자리에 카라마츠가 인상을 찌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제멋대로인 브라더다….”

에헷!”

칭찬 아니다!”

싱긋- 웃는 오소마츠에게 외치고 혀를 찬 카라마츠가 눈을 감았다

옆에서 조물조물 움직이는 오소마츠를 최대한 무시하면서 잠들려는 카라마츠의 귀에 오소마츠의 작은 중얼거림이 닿았다.


아플 때 혼자면 쓸쓸하잖아….”

, 하고 속으로 탄식하며 카라마츠가 눈을 떴다

정면으로 천장을 보고 누운 카라마츠가 고개를 슥 돌리자, 카라마츠를 보며 옆으로 누워있던 오소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오소마츠.”

?”

나직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이불 속에서 손을 움직여 오소마츠의 손을 찾아내 꽉 붙잡은 카라마츠가 작게 속삭였다.


미안….”

“…, 바보.”

감기 때문에 느슨해진 눈물샘이 눈물을 내뿜었다

팔을 들어 눈을 누르고 눈물을 가린 카라마츠를 보며 짧게 웃은 오소마츠가 맞잡은 손에 깍지를 끼고 카라마츠 옆에 가까이 붙었다.


고마워, 카라마츠.”

어제 간호해줘서, 하고 오소마츠가 말을 덧붙였다

카라마츠는 여전히 팔을 올린 채, 고개를 끄덕이며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었다

빙긋이 행복한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옆에서 느껴지는 카라마츠의 체온에 안도하며 눈을 감았다.





* 그럼 저는 이제 주말출근을 갑니다...ㅠ


* 색오소는 분발하면 오늘 안으로? 내일 새벽 안으로? 올릴 수 있을 것 같네요ㅎ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소마츠 허리 합작에 참여했던 글입니다.

  허리 합작은 12일에 공개되었는데, 이러저러 바쁜 일이 있어 이제야 블로그에 올리네요ㅎㅎ

 

  제 글 말고도 존잘님들의 글과 그림이 많으니 한 번 들어가보세요~

  오소마츠 허리 합작 : 



* 공미포 14,844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운동장 가득 크게 울리는 팡파르와 학생들의 웃음소리, 지나가는 학생들을 불러 세우려는 외침으로 가득 찬 아카츠카 고교.

오늘은 지루하고 지루한 학교생활의 유일한 재미이자, 학창시절의 꽃인 축젯날이었다.

운동장 빼곡히 채워진 먹거리 장터와 학교 창문에 덕지덕지 붙은 가지각색의 홍보 포스터가 오늘이 축젯날임을 어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

우와…. 눈 썩는다….”

오소마츠 누나아?!”

, 형님…. 대체 그 꼴….”

속된 말로 일명 썩은 표정을 한 동생들이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눈앞에 서 있는 장남을 응시했다.

 

-끄럿!! 나도 좋아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라고!!!”

! 오소마츠 형!! 복도에 목소리 다 울려!”

들고 있는 팻말을 붕붕 휘두르며 새빨개진 얼굴로 외치는 오소마츠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검은 가쿠란이 아닌, 학교 지정의 푸른 세라복을.

그 옆에서 인상을 쓰고 오소마츠를 나무라는 토도마츠가 빨간 망토를 연상시키는 붉은 망토와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고 있는 꼴에 형제들의 경악은 더욱 짙어졌다.

이치마츠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오소마츠가 들고 있는 팻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2-A, 여장 카페!’ 라고 쓰인 팻말에 이치마츠가 한숨을 내쉬며 우와, 악취미….” 하고 홀로 작게 중얼거렸다.

 

 

온갖 먹을거리와 볼거리, 놀이가 가득 찬 축제.

1년을 축젯날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육둥이는 축제를 좋아했다.

지겨운 수업도 없이 학교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축젯날은 육둥이가 함께 몰려다닐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

육둥이의 악명에 여섯이 함께 같은 반에 배정되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지금도 오소마츠와 같은 반이 된 토도마츠를 제외하면 나머지 동생들은 각 반에 한 명씩 배정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 떨어져도 육둥이.

축젯날만큼은 각자 다른 반에 있어도 다 함께 돌아다니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었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늘도 다 같이 학교를 돌아보기로 약속하고 장남과 막내의 반에 모인 동생들은 세라복을 입은 장남을 보고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토도마츠, 예뻐!”

에헷~, 나 귀엽지? 쥬시마츠 형.”

토할 정도네.”

이치마츠 형은 좀 다물어 줄래?!”

어느새 모여 꺄- - 떠들어대고 있는 동생들을 보며 쵸로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바퀴 빙글- 돌아 옷 자랑을 하는 토도마츠는 영락없는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나름 육둥이 중에서 애교 있는 얼굴인 토도마츠는 여장을 해도 도저히 못 봐줄 수준은 아니었다.

옅게 화장도 했는지 평소보다 더 여성스러워 보이는 얼굴에 위화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선 오소마츠를 쳐다보았다.

 

같은 얼굴인데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이야.”

뭐야! 나도 나름 어울리잖아!! !!”

쵸로마츠의 싸늘한 눈빛에 오소마츠가 발을 쿵쿵 굴리며 외치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스커트를 살며시 들어올렸다.

짧은 루스 삭스를 신은 덕분에 완전히 노출된 맨다리와 허벅지가 확연히 드러났다.

 

어때? 섹시하지?”

“…죽여버리기 전에 내려라. 눈 썩는다.”

, ~!”

, 오소마~?!”

중학교 시절 오소마츠와 함께 쌩양아치라 불리며 악명을 떨쳤던 시절의 쵸로마츠가 나타나 오소마츠를 매섭게 노려봤다.

쵸로마츠의 사나운 눈길에도 기죽지 않고 항의하며 볼을 부풀리는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의 당황스러운 외침이 닿았다.

새빨개진 얼굴로 오소마츠를 향해 팔을 뻗은 카라마츠가 자못 근엄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스커트를 들추면 안 된다!!”

~”

카라마츠의 외침에 오소마츠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스커트를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2.

 

그럼 갈까?”

터덜터덜 교실을 나온 오소마츠가 기다리고 있던 동생들에게 말했다.

오전에만 일하기로 한 오소마츠와 토도마츠의 휴식시간, 모두 함께 학교를 돌아다니기로 한 시각이 되었다.

어슬렁어슬렁 복도로 나온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말을 더듬었다.

 

, 형님…? 설마…, 그대로 다닐 건가?”

~? . 갈아입기 귀찮고.”

“Oh…. 지져스….”

네놈은 수치심이라는 게 퇴화했냐?”

평범한 남학생 교복으로 갈아입은 토도마츠와 달리 세라복 그대로 나온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깊은 한숨과 함께 쏘아붙였다.

오소마츠는 메롱-’ 하고 혀를 내밀곤 입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돌아다니면서 카페 홍보하고 오라고 했단 말이야….”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흘끔- 오소마츠의 등을 확인했다.

세라복을 입은 오소마츠의 등에 여장 카페를 홍보하는 커다란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오소마츠가 세라복 차림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것에 불평하기 시작하자, 쵸로마츠가 작게 한숨 쉬며 알겠으니까, 가자.” 고 오소마츠를 이끌었다.

이미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는 동생들의 뒤를 따라 2학년 교실이 모여있는 복도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앞으로 20분 후에 결전! 최고가 되어라가 시작됩니다~. 참가할 학생은 학생회실 앞으로 모여주세요.

 

교내에 울리는 안내 방송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뭐야? ‘최고가 되어라?”

오소마츠 형 몰라? 이번에 학생회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거잖아~!”

오소마츠의 질문에 앞서 걷던 토도마츠가 휙 몸을 돌려 오소마츠에게 대답했다.

토도마츠의 말에도 오소마츠가 여전히 모르겠단 얼굴을 하자, -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가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학생회가 축제 활성화를 위해서 준비한 행사야. 여러 개의 미션을 해서 전부 클리어한 사람에게 상품을 준대. 상품이 꽤 빵빵하다고 그러던데?”

돈 주는 거야?!”

아니.”

-”

(¥) 모양으로 변한 눈을 빛내며 묻는 오소마츠에게 토도마츠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즉각 답했다.

그럴 리 없잖아, 하고 경멸을 담은 토도마츠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소마츠가 노골적인 아쉬움을 내비치며 볼을 부풀렸다.

 

토토코~, 1등 상품 가지고 싶은데~”

발랄하게 복도에 울리는 소꿉친구이자 교내 마돈나의 목소리에 육둥이가 화색이 도는 얼굴로 뒤돌았다.

생글생글 귀엽게 웃으며 육둥이의 뒤에 서 있던 토토코가 다시 말을 늘였다.

 

토토코~, 1등 상품이 너~무나 가지고 싶은데에~. 누가 가져다주지 않으려나~?”

작고 고운 양손을 마주 잡고 가슴께에 모아 묘하게 글썽거리는 눈으로 육둥이를 지그시 바라보는 토토코의 모습에 육둥이의 종잇장 같은 이성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저마다 손을 번쩍 들고 자기가 가져다 주겠다고 수선을 떠는 육둥이를 보며 토토코가 앙큼한 미소를 피웠다.

 

그럼~, 토토코! 모두를 믿고 기다리고 있을게~”

““““““우리에게 맡겨!!!””””””

말을 끝내자마자 일제히 학생회실을 향해 달려가는 육둥이의 등을 토토코가 흐뭇한 미소로 배웅했다.

 

 

 

 

 

 

3.

 

-, 왜 이렇게 된 거?”

벅벅 스커트를 두른 엉덩이를 긁으며 오소마츠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대결의 참가자임을 알리는 리본을 손목에 두른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쏘아보며 말했다.

 

오소마츠 형하고 했다간 꼴찌 할 테니까!”

에에~~”

 

 

대결 2 1조로 진행되었다.

등록을 마친 육둥이는 2 1조라는 말에 곧바로 서로 짝을 찾아 손을 잡았다.

쥬시마츠와 손을 잡은 이치마츠야 그렇다 쳐도, 토도마츠와 손을 잡은 쵸로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경악했다.

당연히 자신과 팀을 할 것으로 생각했던 쵸로마츠가 토도마츠와 다정~히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본 오소마츠의 허공에 뜬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왜 토도마츠으?!” 하고 절규하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콧방귀를 끼었다.

결국 오소마츠는 좋든 싫든 남겨진 카라마츠와 팀이 되어야 했다.

 

육둥이가 팀을 정한 것을 확인한 진행 요원이 웃는 얼굴로 육둥이에게 1~6번까지 번호가 적힌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각 번호의 아래엔 작은 글씨로 체육관, 교실, 식당 등 여러 장소가 적혀 있었다.

종이를 확인하는 육둥이를 본 진행요원이 생글생글 웃으며 대결의 규칙을 설명했다.

 

1~6번에 쓰여진 장소에 가서 미션을 성공하고 스탬프를 받아, 전부 모이면 학생회실로 돌아올 것. 스탬프를 받는 순서는 번호를 따르지 않아도 OK.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모두 들은 육둥이가 팀별로 뿔뿔이 흩어졌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와 함께 들고 있는 작은 미션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뭐가 있는지 모르고. 귀찮으니까 순서대로 돌까?”

, 그것도 좋겠군.”

종이에 적힌 장소와 장소의 거리라던가, 이동시간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일일이 계산해 출발한 동생들과 달리 오소마츠는 미션지를 팔랑팔랑 흔들며 카라마츠를 쳐다보았다.

빙긋-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카라마츠에게 그치~!” 하고 활짝 웃은 오소마츠가 1번 아래에 적힌 장소로 발을 옮겼다.

 

 

 

 

 

 

4.

 

2-C.

오소마츠는 손에 든 종이와 팻말에 적힌 반 번호를 확인했다.

번호 순서대로 돌기로 해, 첫 번째 관문 앞에 도착한 오소마츠가 망설임 없이 드르륵- 교실 문을 열었다.

 

 

형님, 정말 자신 있는 건가…?”

걱정 말래도~! 이 횽아만 팍팍 믿어!!!”

불안한 얼굴로 뒤돌아 묻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며 주먹으로 가슴을 팡! 쳤다.

가위바위보를 해 따낸 역할에 의기양양한 오소마츠를 본 카라마츠가 울음 반, 한숨 반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1번 미션은 방석 퀴즈.

한 사람이 방석 위에 앉아 문제가 끝나면 재빨리 깔고 앉은 방석을 들고, 대답할 찬스를 얻으면 뒤에 앉은 사람이 정답을 맞히는 게임이었다.

대결에 참가한 학생들이 제법 되는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외에도 세 팀이 쭈르르 나란히 앉아 문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문제를 맞혀야만 스탬프를 받을 수 있다는 진행 요원의 말에 오소마츠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카라마츠는 가위바위보에서 진 자신을 원망할 정도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육둥이 모두 그리 자랑할만한 성적을 받지는 못하지만, 그중에서도 오소마츠와 쥬시마츠는 정말로 심하다고 할 정도의 점수를 받아왔다.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바보가 바로 오소마츠와 쥬시마츠였다.

카라마츠는 쥬시마츠와 팀을 짠 이치마츠도 이 미션에서 애 좀 먹겠다고 자신을 달래며 눈물을 머금고 방석 구석을 쥐었다.

 

, 그럼 첫 번째 문제! 스포츠 문제입니다.”

진행 요원의 말에 카라마츠의 마음에 일말의 희망이 피어났다.

오소마츠는 학교 친구들과 자주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을 하니 조금은 스포츠 지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눈썹에 힘을 주고 초조하게 문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축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스코어를 펠레 스코어라고 합니다. 그럼 그 스코어는 몇 대 몇?”

재빨리 방석을 들어올린 카라마츠는 지져스!!’ 하고 속으로 외쳤다.

생각보다 문제가 어려웠다.

카라마츠도 모르는 답을 오소마츠가 알 리 없다고 생각하며 신을 찾는 카라마츠를 뒤로하고 오소마츠가 밝은 미소와 함께 답을 외쳤다.

 

“3 2!”

! 정답입니다!!”

“…?!?!”

진행요원의 말에 카라마츠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뒤돌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청히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살며시 볼을 부풀리고 카리스마 레전드 횽아 얕보지 마!”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놀란 얼굴을 지우지 않고 찍은 건가?” 하고 작게 묻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아니거든!?” 하고 외쳤다.

오소마츠의 큰 목소리에 진행요원이 끼어들어 다음 문제입니다.” 하고 둘의 대화를 막았다.

카라마츠는 얼떨떨한 얼굴로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문제! O, X 문제입니다. 물고기에도 귀가 있다?”

O, X 이라면 확률은 반반.

카라마츠가 힘차게 방석을 들어올렸지만, 한발 늦어 카라마츠 옆에 앉은 팀이 찬스를 얻었다.

뒤에 앉은 남학생이 자신 있게 “X”라고 외쳤지만, 진행 요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 틈에 오소마츠가 옆에서 그럼 O!!” 하고 외쳤다.

진행 요원은 오소마츠를 응시하며 빙그레 웃곤 정답입니다!” 하고 외쳤다.

물론 옆에 앉은 팀과 다른 팀들의 반발이 이어졌지만, 진행 요원은 다른 팀이 틀린 후에 곧바로 대답하지 말라고 한 적 없습니다.” 라며 권력을 이용해 반발을 억눌렀다.

카라마츠는 연달아 두 문제를 맞힌 오소마츠의 능력에 그저 눈을 끔뻑이며 혼란스러운 머리에 눈썹을 찡그렸다.

 

이어서 세 번째 문제! 상식 문제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후지 산!!”

!”

에베레스트!!”

! 정답입니다!”

제일 먼저 방석을 든 것은 카라마츠, 그리고 멋지게 오답을 외친 오소마츠였다.

카라마츠는 이마에 힘줄을 세우고 오소마츠를 노려보았다.

 

오소마~!?”

~”

배시시 웃으며 혀를 살짝 내미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퀴즈는 그 이후로 계속 이어졌고, 놀랍게도 오소마츠가 선전해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는 앞으로 한 문제만 맞히면 스탬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럼 마지막 문제!! 불을 켜려고 하는데 성냥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석유난로와 전기난로, 그리고 램프가 있는데 가장 먼저 불을 붙여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카라마츠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잔뜩 띄운 채로 방석을 들었다.

진행 요원이 미소를 띠고 카라마츠 뒤에 앉은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오소마츠도 헤실헤실 웃으며 자신 있게 정답을 외쳤다.

 

성냥!!”

! 정답입니다~!”

마지막 문제를 맞힌 오소마츠 덕분에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행 요원에게 미션지를 내밀었다.

1번 칸에 도장을 찍어준 진행 요원에게 오소마츠가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오다~!”

천만에요~! 근데 오소마츠 선배, 그 차림은 대체 뭐에요?”

우리 교실에서 여장 카페하고 있거든~! 그거 홍보!!”

대단하지!’ 하고 어깨를 으쓱대며 오소마츠가 등을 보여주었다.

세라복 등에 붙은 카페 홍보 스티커에 진행 요원이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카라마츠는 멀뚱히 서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오소마츠와 진행 요원의 정다운 대화에 눈썹을 찌푸렸다.

 

오소마츠! 빨리 다음 가자!”

, 오오!!”

- 오소마츠의 손목을 잡아채듯 붙잡아 이끄는 카라마츠에게 수긍하며 오소마츠가 진행 요원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소마츠를 배웅하며 오소마츠 선배, 파이팅~!” 하고 외치는 진행 요원의 목소리에 어쩐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카라마츠는 누가 보면 사람 죽였냐고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오소마츠를 끌고 쿵쿵 발을 울리며 다음 미션 장소를 향해 걸어나갔다.

 

 

 

 

 

 

5.

 

2번 미션 장소는 1-B.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비장한 표정으로 서로 마주 보며 각오를 다지고 교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교실 안에는 단 한 명의 진행 요원만이 서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교실 안에 들어가자 진행 요원이 상냥히 웃으며 미션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2번 미션은 힌트 3개를 듣고, 힌트에 해당하는 물건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물건은 교실 안에 있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 이 교실 밖에 나가서 찾아오셔야 합니다. 그럼 힌트 드리겠습니다!”

진행 요원의 말에 오소마츠가 카라마츠가 긴장된 표정으로 꿀꺽 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매일 기침을 합니다. 그리고 매일 흰 마음을 쌓아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겐 항상 함께하는 소중한 짝꿍이 있습니다. 이 짝꿍은 하얗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고, 붉기도 합니다. 저는 뭘까요~?”

““?!””

, ~. 얼른 나가서 찾아오세요~!”

 

 

“…모르겠다.”

진행 요원에게 떠밀리듯이 교실을 나와 복도를 걷는 카라마츠가 손가락으로 턱을 받친 채,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오소마츠도 옆에서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기울였다.

 

매일 기침을 하고, 흰 마음을 쌓아둔다? 짝꿍??”

정체불명의 힌트에 머리를 싸매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다짜고짜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 형님!?”

교실 안에 있다니까 일단 아무 교실이나 들어가 보자고!”

오소마츠는 그대로 카라마츠를 끌고 빈 교실로 들어갔다.

드르륵- 문이 닫히자, 둘만 서 있는 텅 빈 교실이 어쩐지 을씨년스러웠다.

빈 교실에서 느껴지는 묘한 서늘함에 소름 돋은 팔을 문지른 카라마츠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책상 위에 올려진 의자, 칠판, 교탁, 벽에 걸린 낡은 선풍기.

교실 안에 들어와도 여전히 답은 깜깜 오리무중이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오소마츠 쪽으로 고개를 돌린 카라마츠가 입 한쪽을 씰룩였다.

문제의 해답을 찾아 맹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카라마츠와 달리 태평하게 빈 칠판에 흰 분필로 똥 모양을 그리고 있는 오소마츠를 본 카라마츠의 이마에 빠직- 하고 힘줄이 솟아난 것은 당연했다.

 

오소마츠!!!”

우왓!!”

쩌렁쩌렁한 카라마츠의 외침에 놀란 오소마츠의 손이 튀면서 칠판을 세게 긁었다.

끼끼끽- 하고 귀를 고문하는 소음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카라마츠의 노성이 다시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 알겠다고~”

입을 삐죽 내밀고 툴툴대며 칠판지우개를 들어 자신이 그린 똥 모양 낙서를 지우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매섭게 노려보았다.

- - 낙서를 지우고 손을 탁탁 턴 오소마츠를 보는 카라마츠의 눈이 반짝였다.

 

, 형님. 답을 알아냈다.”

? 너도?”

?! 형도!??!”

!! 얼른 가지러 가자!!”

, 에에에!?!?”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외친 카라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 빵긋 웃으며 말했다.

바보 중의 바보인 오소마츠가 답을 알아냈단 말에 까무러치게 놀라는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고 교실 밖으로 나온 오소마츠가 걸음을 재촉했다.

분명 답은 교실 안에 있는 물건인데도 교실을 지나치는 오소마츠에게 끌려가는 카라마츠가 당황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 탁 경쾌한 발소리를 울리며 오소마츠가 복도를 뛰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던 오소마츠가 환한 얼굴로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어이~!! 이쿠치~!!”

에에에에에?!”

, - 바람 소리가 울리도록 팔을 흔드는 오소마츠와 달리 카라마츠가 숨을 삼키며 경악했다.

복도의 저편에 흰 마스크를 쓰고 어슬렁거리던 남학생이 오소마츠의 부름에 뒤돌았다.

이쿠치라고 불린 남학생이 무슨 일이야?” 하고 묻자 오소마츠가 눈을 빛내며 일단 따라와!” 하고 빈손으로 이쿠치 군의 손을 잡았다.

한 손엔 카라마츠, 한 손엔 이쿠치 군을 단단히 붙잡은 오소마츠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미션을 받은 1-B반으로 발을 옮겼다.

 

 

! 정답!!”

진행 요원의 앞에 이쿠치 군을 내민 오소마츠를 보며 턱을 떨어뜨린 것은 카라마츠 만이 아니었다.

 

, , 무슨??”

말까지 더듬어가며 눈앞에 선 이쿠치 군을 응시하는 진행 요원에게 오소마츠가 쾌활하게 말했다.

 

이쿠치는 매일 기침하고, 소심해서 무슨 말만 하면 가슴에 쌓아두잖아~? 그리고 맨날 흰 마스크 쓰고 있어!!”

“….”

“….”

“….”

그 자리에서 오소마츠를 제외한 전원이 말을 잃었다.

이미 끝났다는 얼굴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카라마츠, 오소마츠의 노골적인 디스(dis)에 넋을 잃은 이쿠치 군, 눈을 깜빡이며 가만히 서 있는 진행 요원을 번갈아 쳐다본 오소마츠가 ? 틀렸어?” 하고 물었다.

 

짝꿍은 하얗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고, 붉기도 하다고….”

무거운 침묵을 깨고 소리를 낸 진행 요원의 말에 오소마츠가 해맑게 웃었다.

 

마스크 색은 여러 가지 있잖아?”

“…교실 안에 있는 물건입니다만,”

이쿠치는 교실 안에 있어! 항상!”

오소마츠의 대답에 고개를 푹 숙인 진행 요원을 보며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다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하기 직전, 진행 요원의 어깨가 덜덜 떨렸다.

 

“…, 크크크크크…. , 정답으로 해 드릴게요…. 큭큭큭큭…!!”

눈물까지 글썽이며 배를 잡고 웃는 진행 요원의 말에 오소마츠가 환하게 웃었다.

아싸!!” 하고 팔을 들고 환호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이쿠치 군도 헛웃음을 흘리며 축하한다. 오소마츠.” 하고 인사를 건넸다.

2번에 찍힌 스탬프를 보며 방실방실 웃은 오소마츠가 !! 땡큐!” 하고 이쿠치 군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는 모습을 보며 카라마츠는 대체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았다.

 

 

 

 

 

 

6.

 

3번 미션은 체육관에서 이루어졌다.

농구 골대에서 일정 거리 떨어져 자유투를 3번 넣으면 미션 성공.

, 5번 안에 3번을 성공시켜야 했다.

미션이 자유투라는 말을 듣자마자 오소마츠의 얼굴이 단숨에 환해졌다.

체육 실기로 했던 자유투를 자기는 10번 중의 8번 이상 성공했다며 카라마츠를 밀치고 공을 잡은 오소마츠가 통통 가볍게 발을 굴리고 지정된 자리에 섰다.

오소마츠의 타고난 운동 실력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카라마츠가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오소마츠에게 공을 맡기고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진행 요원의 삑- 하는 호각 소리에 오소마츠가 팔을 들어 올리며 가볍게 발꿈치를 들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오소마츠의 손을 떠난 공이 흔들림 없이 동그란 림을 통과해 바닥에 튕겼다.

깔끔한 폼과 모범적인 공의 궤도에 감탄하는 진행 요원과 달리 카라마츠는 머리끝까지 치솟는 카오스에 얼굴을 잔뜩 붉히고 오소마츠를 노려보았다.

아싸!!” 하고 빵실 웃으며 다음 공을 집어 든 오소마츠가 다시 멋진 폼으로 공을 던졌다.

 오소마츠 자신은 공에 집중하느라 알지 못했지만, 공을 던지기 위해 팔을 뻗으면 짧은 세라복 상의가 팔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아무리 오소마츠가 마른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여성의 옷이 오소마츠에게 딱 맞을 리 없었다.

오소마츠가 입은 세라복은 약간 짧아서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치마와 맞닿아 오소마츠의 몸을 간신히 가려주고 있었다.

팔을 따라 올라간 세라복 사이로 얇은 허리를 감싸고 있는 치마와 하얀 피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오소마츠의 허리는 잔 근육으로 탄탄히 다져져 있었다.

형제보다 약간 하얀 피부와 지방 하나 붙지 않은 날씬한 허리가 세라복이 흔들릴 때마다 카라마츠의 시각을 빨아들였다.

- 하고 림을 빗나간 공에 작게 혀를 찬 오소마츠가 다시 공을 들어 올렸다.

자유투 자세를 잡는 오소마츠를 벌게진 얼굴의 카라마츠가 멈춰 세웠다.

 

, 오소마츠!!!”

! 집중하고 있으니까!”

오소마츠를 말리려 코앞으로 다가온 카라마츠를 밀어낸 오소마츠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골대에 시선을 집중했다.

얇은 허리가 카라마츠의 번민을 부르는 동안, 오소마츠의 손을 떠난 공이 골대를 통과했다.

씨익- 입가 가득 넘실거리는 미소로 오소마츠가 연달아 자유투를 성공시키는 동안, 카라마츠는 혹여 진행 요원이나 지나가는 학생들이 오소마츠의 허리를 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주변을 지켰다.

오소마츠는 두 번째 공을 제외하고 3번의 자유투를 훌륭하게 성공시키고 스탬프를 받아 으스대는 얼굴로 카라마츠 앞에 내밀었다.

 

“…하아~. 알겠으니 다음 가자.”

코를 높이 쳐들고 자랑하는 오소마츠에게 한숨을 내뱉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카라마츠는 다음 장소로 향하는 도중에 오소마츠에게 앞으로 팔 들지 마라!!” 하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7.

 

4번에 적힌 교실로 이동한 카라마츠는 한 번 더 번민했다.

4번 미션은 바로 팀원을 업고 앉았다 일어나기 15.

오소마츠보다 힘이 센 자신이 오소마츠를 업는 편이 확실히 성공하기 쉽지만, 치마를 입고 있는 오소마츠를 도저히 등에 태울 수 없었다.

진행 요원과 더불어 미션을 하기 위해 다른 팀들도 같은 교실에 있는 상황.

카라마츠는 머리를 붙잡고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뭐해, 카라마츠. 빨리 앉아봐!!”

카라마츠의 속을 알 리 없는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재촉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카라마츠가 몸을 낮췄다.

오소마츠가 이제야 굽히냐, 하는 얼굴로 카라마츠에게 다가가자 카라마츠가 몸을 틀어 오소마츠의 어깨를 감싸고 무릎 아래에 제 팔을 집어넣었다.

카라마츠가 그대로 벌떡 일어나자,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자세를 확인한 오소마츠가 비명을 질렀다.

 

으갸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공주님 안기로 안긴 자신의 모습에 경악하는 오소마츠와, 오소마츠의 무릎을 지지하고 일어난 덕분에 무방비로 늘어진 스커트를 알아챈 카라마츠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중력에 이끌려 대롱대롱 흘러내린 스커트는 오소마츠의 뽀얀 허벅지와 통통한 엉덩이를 무방비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공주님 안기의 치명적인 허점에 절규한 카라마츠가 재빨리 오소마츠를 내려놓자, 오소마츠가 인정사정 없이 카라마츠의 머리에 주먹을 내리쳤다.

 

아팟!!”

업으라니까 왜 안아 올려!! 이 바보마츠(바카라마츠)!!!”

! 소리가 나도록 맞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씩씩거리며 노성을 냈다.

카라마츠는 제대로 업으라는 오소마츠의 외침을 한 귀로 흘리며 짧고 살랑거리는 푸른색의 스커트를 노려보았다.

 

!”

!?”

손바닥에 주먹을 퉁! 치며 머리 위로 빛나는 전구를 띄운 카라마츠를 따라 오소마츠가 언성을 높였다.

자신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무표정한 카라마츠에게 다시 주먹을 올린 순간, 카라마츠가 입고 있던 검은 교복 재킷(마이)를 벗어 오소마츠의 허리에 칭칭 감았다.

재킷의 소매를 단단히 묶어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한 카라마츠가 ~” 하고 한숨을 내쉬며 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카라마츠의 행동을 살피던 오소마츠가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허리에 딱 맞게 감긴 재킷이 짧은 스커트와 훤히 드러나 있던 허벅지를 가렸다.

겨우 카라마츠의 행동을 이해한 오소마츠가 얼굴을 찡그리고 입을 떼려하자, 카라마츠가 서둘러 오소마츠를 안아 들었다.

오소마츠는 팀원을 업고 있는 다른 팀들 사이에서 홀로 공주님 안기 상태로 들린 자신에게 경악하며 입을 뻐끔거렸다.

오소마츠가 뭐라 항의하기도 전에 진행 요원의 호루라기 소리가 교실에 울렸다.

 

하나~”

진행 요원의 외침에 교실 안에 있던 모두가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가 일어났다.

모두 일어난 것을 확인한 진행 요원이 다시 ~” 하고 수를 셌다.

앉았다가 일어나는 카라마츠에게 매달린 오소마츠가 ~” 하고 외치는 진행 요원의 목소리에 그제야 미션이 시작된 것을 깨달았다.

 

 

열다섯!”

끄핫!!!”

괴성을 내지르며 카라마츠가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어깨너머로 다른 팀들의 모습을 살폈다.

다른 팀은 자기 또래의 타인을 업고 일어나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 15회를 채우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었다.

업히는 쪽과 앉았다 일어나는 쪽이 자리를 바꾸어 다음 기회를 준비하고 있는 팀도 있었다.

교실 안에 남은 팀 중, 유일하게 15회 안았다 일어나기를 성공한 카라마츠의 든든함에 빙그레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안긴 채, 카라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카라마츄~! 최고다!! 횽아, 반하겠어~~”

~!” 하고 스스로 효과음을 내며 두 손을 가슴께에 모으고 고개를 흔드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살짝 노려보았다.

-, -, 하고 거친 숨을 내쉬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오소마츠가 통통통 가볍게 뛰어 진행 요원에게 미션지를 내밀었다.

4번에 찍힌 스탬프에 시선을 고정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오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가쁜 숨 가운데 피식- 짧은 웃음을 섞어 내뱉었다.

 

 

 

 

 

 

8.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 두 그릇을 눈앞에 둔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군침을 삼켰다.

5번 미션 장소는 식당.

미션은 빨리 먹기. 뜨거운 라면을 5분 안에 먹어야 한다고 설명을 마친 진행 요원이 초시계를 손에 들었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모두 고양이 혀는 아니었지만, 김이 날 정도로 뜨거운 라면을 망설임 없이 입에 집어넣을 정도로 도전 정신이 투철하지는 않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카라마츠! 이런 거 후딱 해치워버리자고!!”

, 오우!!”

긴장한 표정으로 무모하게 외치는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도 고개를 끄덕였다.

딸깍- 하고 초시계를 누르는 소리와 동시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후루륵-, 후루륵- 국수를 빨아올리는 소리가 식당 안에 가득 찼다.

뜨거운 면을 한두 번 불고 입에 넣자니 입천장도, 혀도 뜨거워 고역이 따로 없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아직도 뜨거운 면을 대충 씹고 넘기자,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열기가 식도를 타고 명치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입안을 가득 채운 더운 숨을 토해낸 카라마츠가 힐끗 옆을 바라보았다.

맹렬하게 후루륵- 소리를 울리며 아예 씹지도 않고 뜨거운 면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질겁한 카라마츠가 서둘러 눈을 돌렸다.

 

“2분 남았습니다.”

가혹한 진행 요원의 말에 카라마츠가 경악하며 서둘러 남은 면을 한 젓가락에 집어 들었다.

오소마츠를 따라 면을 씹지도 않고 기세로 넘긴 후, 그릇에 남은 국물을 그릇째 들어 꿀떡꿀떡 넘겼다.

온몸을 달구는 열에 푸하아!!!” 하고 숨을 거하게 내쉬며 그릇을 내려놓자, 오소마츠도 !” 소리를 내며 빈 그릇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의 그릇이 완벽하게 빈 것을 확인한 진행 요원이 빙그레 웃으며 오소마츠가 내민 미션지에 스탬프를 찍었다.

 

 

카아마흐~, 혀 데어혀~~”

스탬프가 찍힌 미션지를 확인도 하지 않고 주머니에 밀어 넣은 오소마츠가 입 밖으로 삐죽 혀를 내밀고 부채질을 했다.

타액에 촉촉이 빛나는 붉은 혀가 얇은 입술 사이로 빠져나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식당의 형광등에 비쳐 번들거리는 붉은 살덩어리에 카라마츠가 부웃!’ 하고 숨을 토해내고 벌겋게 익은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의자에서 일어나는 카라마츠를 따라 오소마츠가 시선을 올려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혀를 내밀고 멍청히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오소마츠의 상의 사이로 툭 튀어나온 쇄골이 보였다.

세일러 복의 디자인상 깊게 파인 목둘레 사이로 드러난 쇄골과 하얀 피부에 카라마츠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식당 구석에 놓인 정수기를 향해 달렸다.

학교에 비치된 은색 컵에 찬물을 가득 받아 다시 오소마츠에게로 뛰어온 카라마츠가 찬물이 흘러넘치는 컵을 내밀었다.

 

얼른 식히고 다음 장소 간다!!!”

, …. 행휴~”

고개를 기울여 카라마츠의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면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가 내민 컵을 건네 들었다.

찬물에 혀를 담그고 흐햐아~” 하고 풀린 눈을 감은 오소마츠 모습에 카라마츠가 손을 들어 목까지 뜨거워진 얼굴을 감췄다.

 

 

 

 

 

 

9.

 

식당에서 5번 미션까지 성공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마지막 장소를 향해 뛰어갔다.

6번 미션 장소는 운동장.

신발장에서 빠른 속도로 운동화를 갈아 신은 둘은 전속력으로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진행 요원에게 달려갔다.

 

이인삼각으로 50m 20초 안에 들어와 주세요.”

하얀 끈을 내밀며 웃는 진행 요원의 말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에에에에….””하고 신음했다.

 

 

괜찮아. 우린 육둥이잖아~? 이 정도는 껌이징!!”

근거 없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주먹을 불끈 쥐는 오소마츠와 달리 끈을 매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은 카라마츠가 작은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뜀박질이 빠른 오소마츠나 쵸로마츠와 달리 카라마츠는 그리 다리가 빠르지 않았다.

형제 중 자신이 두 번째로 느린 것을 카라마츠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힘든 것이 싫다며 일부러 온 힘을 다해 뛰지 않는 이치마츠를 제외하면 카라마츠가 달리기로 이길 수 있는 형제는 없었다.

반면, 오소마츠는 발이 빠른 쵸로마츠와 비슷할 정도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

그런 오소마츠와 이인삼각은 솔직히 무리, 라고 생각하며 카라마츠가 끈의 매듭을 질끈 묶었다.

 

다 됐다, 형님.”

조아쓰~! , 카라마츠! 어깨동무!!”

하아…, 아아.”

뭐야, 왜 한숨 쉬어? 할 수 있다니까~!”

“….”

에에에~, 뭐야 그 반응…. 횽아 상처 받았엉~!”

오소마츠, 준비해라.”

!”

저 앞에 선 진행 요원이 하얀 깃발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본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달리기 준비 신호에 오소마츠도 장난을 멈추고 정면을 응시하며 입을 꾸욱 다물었다.

한층 진지해진 표정의 오소마츠를 엿본 카라마츠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깃들었다.

펄럭- 소리를 내며 깃발이 내려감과 동시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땅을 박차고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역시 무리다!!!’

빠르게 내달리는 오소마츠를 간신히 따라가며 카라마츠가 절규했다.

쑥쑥 앞으로 내미는 오소마츠의 다리는 그보다 느린 카라마츠의 다리에 묶여 무겁게 움직였다.

오소마츠도 생각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생각만큼 빨라지지 않는 속도에 실패를 예감한 카라마츠가 울상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골에 서 있는 진행 요원의 놀란 얼굴이 시야에 잡혔다.

입을 떡 벌리고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어딘가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진행 요원의 시선을 따라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뜬 카라마츠가 하늘을 향해 입을 뻐끔뻐끔 벌리며 결코 소리가 나지 않는 비명을 한껏 내질렀다.

진행 요원의 시선이 꽂혀있던 곳은 바로, …오소마츠의 다리였다.

자신이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오소마츠는 전력을 다해 뜀박질을 시작했고, 앞으로 나아가며 가른 공기가 거센 바람이 되어 스커트를 사정없이 들췄다.

펄럭이며 다리를 따라 올라간 스커트가 바람에 흔들리며 아슬아슬하게 나부꼈다.

 

넘실대는 스커트와 그 사이로 드러난 쭉 뻗은 다리와 뽀얀 허벅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속옷은 한창때 소년들의 남심(男心)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설사 그 다리의 주인이 같은 동성일지라도 곧게 뻗은 다리는 매혹적이었다.

진행 요원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오소마츠의 스커트에 집중해 있는 것을 깨달은 카라마츠가 치솟는 분노에 이를 악물었다.

 

오소마츠, 이 멍청이가~!!! 치마를 입고 뛰면 어쩌자는 건가!! 지금이라도 멈출까? 아니, 그러면 분명 오소마츠가 엄청 화내겠지. 그리고 바로 재도전하겠다고 난리를 칠 거다! 아냐, 그래도 일단 멈추고 갈아입으라고 해야…. 잠깐, 그럼 돌아가는 모습을 또 보이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지금 급정지하면 오소마츠가 넘어질 거고…. 차라리 이대로 빨리 골에 도착하는 것이…!’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카라마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수많은 생각 속에서 결정을 내린 카라마츠가 들끓는 번민을 커다란 외침으로 승화시켰다.

 

우오오오오!!!

에에에에에!?”

큰 기합 소리와 함께 갑자기 빨라진 카라마츠의 속도에 오소마츠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카라마츠 때문에 느려졌던 속도가 서서히 빨라지자, 이번엔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끌려가는 처지가 되었다.

본 적 없는 카라마츠의 빠른 달리기에 당황한 오소마츠가 당혹스러운 탄성을 내뱉으며 가까스로 카라마츠의 속도에 맞추었을 즈음, 둘은 골을 통과했다.

진행 요원이 흔드는 하얀 깃발을 뒤로하고, 가속도를 이기지 못해 그 후로 몇 m를 더 뛰어간 카라마츠가 헉헉거리며 속도를 줄이고 발을 멈췄다.

힘없이 꺾어진 무릎에 손을 얹고 허리를 굽힌 카라마츠가 가쁜 숨을 내뱉으며 호흡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오소마츠가 두 사람의 다리를 엮고 있던 끈을 풀었다.

 

카라마츠!! 하면 되잖아!!!”

“…, 다물어라.”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한계를 뛰어넘어 내달렸는지도 모른 채, 속 편하게 웃는 오소마츠를 한 번 노려본 카라마츠가 큰 한숨을 내쉬며 결국 운동장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하고 볼을 부풀린 오소마츠가 기껏 칭찬해 줬더니….” 하고 중얼거리며 진행 요원에게 다가가 스탬프를 받았다.

6개의 스탬프가 전부 찍힌 미션지를 보며 뚱- 했던 표정을 싹 지우고 환하게 웃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도 짧은 웃음을 흘렸다.

 

 

 

 

 

 

10.

 

와아~! 오소마츠 군! 카라마츠 군! 고마워~!!”

반짝거리는 하트 모양의 목걸이를 소중히 손에 쥔 토토코가 여신 같은 미소로 인사했다.

인중을 쭉 내리고 헤실 웃은 오소마츠가 에이~, 이 정도는 이 카리스마 레전드 님에게 별거 아니쥐~!” 하며 코 밑을 문질렀다.

카라마츠도 토토코의 미소에 헬렐레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큐티 비너스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하드 워크 따위…”

그럼 토토코 갈게~!”

!?”

! 바이바이~~”

에엩!?!?!”

멍청히 바보 같은 말을 흘리는 카라마츠를 뒤로 하고 토토코가 총총 저 멀리 뛰어갔다.

멀어지는 뒷모습에 푹-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카라마츠와 마주 본 오소마츠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카라마츠우~, 오늘 수고했엉~”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가늘게 뜬 눈을 반달처럼 휘고 샐쭉 웃는 오소마츠를 본 카라마츠가 하아~” 하고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션을 수행한답시고 여기저기서 만천하에 맨살을 드러낸 오소마츠 덕분에 자신이 한 고생을 떠올린 카라마츠의 눈썹이 매섭게 곤두섰다.

오소마츠는 묘하게 기분 나빠 보이는 카라마츠의 표정에 고개를 기울이고 물음표를 띄웠다.

 

오소마츠, 오늘…”

! 포크송! 카라마츠, 나가자!”

카라마츠가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오소마츠를 부르자마자 운동장에 포크송이 울려 퍼졌다.

몸을 내밀어 창문 너머로 운동장을 확인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포크 댄스.

운동장에 큰 원 모양으로 선 남녀가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서로의 손은 맞잡았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손을 흔들며 도는 학생들의 모습을, 운동장에서 조금 떨어진 잔디밭에 앉은 오소마츠가 가만히 응시했다.

포크 댄스에 참가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고 예상한 카라마츠가 운동장으로 내려가지 않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눈썹을 올리고 그 옆에 앉았다.

 

, 저기 토도마츠 있다. 우와~, 저 약아 빠진 막내 녀석.”

여학생의 손을 잡고 계산된 미소를 피운 토도마츠를 찾아낸 오소마츠가 투덜거렸다.

 

형님도 참가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 아니? 그냥 구경하려고. ? 카라마츠, 참가하려고.”

아니, 이미 시작해버렸으니….”

오소마츠의 물음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젓고 시선을 돌려 운동장을 응시했다.

환하게 축젯날을 비추었던 해님은 저 산 아래로 가라앉고 까만 밤하늘의 달빛이 운동장을 밝혔다.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즐겁게 춤추는 학생들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오늘 정~말로 재미있었지?”

오소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가 시선을 돌려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카라마츠의 시선을 느꼈는지 오소마츠도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를 마주보았다.

 

?”

아아…. 즐거웠다.”

헤헤헤~, 그치!”

배시시 웃는 얼굴에 마주 웃어주며 카라마츠가 수긍하자, 오소마츠가 한층 더 귀엽게 웃으며 코 밑을 문질렀다.

원래 계획했던 대로 형제들과 함께 학교를 돌아보거나, 아름다운 여학생을 찾는 일은 할 수 없었지만, 오소마츠와 함께 미션을 해결해나가는 일은 정말로 즐거웠다.

철없던 어린 날이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그리움과 함께 찾아온 행복이 심장을 환희로 물들였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며 새삼 얼마나 즐거웠는지는 떠올린 카라마츠가 빙긋- 미소 짓자, 그를 본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었다.

 

 

~, 춥다.”

포크 댄스도 끝나갈 무렵, 깊어진 밤이 불러온 찬 공기가 피부를 어루만졌다.

부르르- 몸을 떨며 팔을 쓸어 올리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하고 신음했다.

- 하니 다리를 벌리고 앉은 오소마츠는 또 맨살을 내놓고 있었다.

탱탱하고 핑핑한 오소마츠의 허벅지에 한 번 더 거대한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

빨리 옷, 갈아입어라.”

.”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하는 카라마츠의 시선을 따라 제 몸을 살핀 오소마츠가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이제야 자기가 어떤 차림으로 학교 내를 돌아다녔는지 깨달은 오소마츠의 얼굴이 딸기처럼 새빨개졌다.

열기를 내뿜는 오소마츠의 옆에서 이마에 손을 짚고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고 한탄하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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