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쌓인 스트레스를 충동구매로 풀었더니 오늘 한꺼번에 택배가 도착해 풀어봅니다ㅎ

충동구매 1. 자석 북마커

제가 책 관련 팬시를 좋아해 모으기 시작... 책보다 북마커가 더 많은 기현상이ㅋㅋㅋㅋ


충동구매 2. 진하오 만년필

한개 9,000원?에 1+1이길래 샀습니다.  저가만년필에 빠져서 사모으고 있어요.ㅎ
근데 보통 1+1이면 다른색을 줄텐데!!
블루와 투명 2개 샀는데 덤이 죄다 투명...OTL 왜죠...?ㅠㅠ
나중에 잉크 카트리지도 사서 막쓰려구요. 싸니까ㅎㅎ  의외로 초록색 잉크가 예뻤습니다.


진하오를 사서 더 풍부해진 저의 만년필 콜렉션...

일본의 프레피 만년필
구형, 신형, 얇은촉  3가지입니다.
가격은 하나에 3,800원 정도였던걸로 기억해요.


모나미의 올리카 만년필!
원래 블루 하나만 샀는데 의외로 잉크가 좋아서 (마카로 채색해도 많이 안번져요!) 추가구매했어요.
제가 그리는 오소마츠상 그림 펜선은 죄다 저녀석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요건도 한개 3천원? 정도였던걸로 기억해요.


파이롯드의 카쿠노!
잉크가 마카칠하면 많이 번져서 오로지 글씨쓰는용으로 사용 중.
같은 파란색이어도 모나미 올리카와 색감 차이가 있어서 애용 중입니다.
이건 가격이 만원대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마지막 펠리칸의 트위스트?(모델명이 기억 안난다...)
제가 가지고 있는 만년필 중 제일 비싸요.
그래도 2만원댜입니다ㅋㅋ
귀차니즘이 심해 만년필 관리를 잘 못해서 일부러 저가만 구입하고 있어요.
망가지면 바로 새거사서 교체! 다행히 아직 망가진 녀석은 없습니다.



북마크는 평범하게 책 읽을 때나 수첩에 사용하고
만년필은 플롯 짤 때 써요.
소설 쓰는 건 노트북으로 하지만 플롯은 쓰면서 짜야 더 생각이 잘 되는 것 같더라구요.
저가여도 만년필의 사각거림은 남아있어 좋습니다. 대신 같은 모델이여도 많이 사각거리는 녀석이 있고 안그런 녀석도 있어요ㅎㅎ  저가의 한계...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저가여도 가격대비 효율은 좋아요.
잉크값이 좀 들지만...ㅎㅎ



그리고 이번 7월 서코에 가려고 합니다!
일반 참관객으로요.
혼자 훌렁훌렁 돌아다니는 덩치 큰 안경녀가 있으면 저일지도 모릅니다ㅋㅋㅋㅋ
아마 토요일 하루만 갈 것 같아요.
가서 열심히 지르고 오겠습니다.
질러도 아마 귀여운 일러스트 엽서나 북마커나 책갈피를 사고 오겠지만...

red tear 제본은 서코 전에 마무리하고 구매하실 분들 받겠습니다^^


지금 열심히 플롯 다듬고 이번주말에 올릴 50제 플롯 다듬는데 속도가 안나네요...
여러분 제게 힘을 주세요!!ㅎ

50제는 잘하면 오늘~내일 오전 안으로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급 이치오소가 쓰고 싶어서 플롯 생각하고 있는데 아마 '마지막포옹' 후편 올릴 것 같아요. 근시일내에!
여우골 외전도 하나 짜고 있습니다.
어느분께서 여우골 외전을 쓸 수 밖에 없도록 만드셔서ㅎㅎㅎ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플롯 짜고 있어요. 이것도 이번달 내에 올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럼 이만 줄이고 곧 50제 들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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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을 따라 뻘소리를 좀 지껄이려고 합니다ㅎㅎㅎ



0.


요즘 일이 많아서 지치네요. 결과도 이번 달 안으로 내야하고...ㅠ


당장 다음주 월요일까지 해야하는 과제가 생겼...ㅠㅠ


일이 많다고는 하나 잔업이 싫어서 필사적으로 일과 시간에 움직인 결과 대체로 야근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ㅎㅎ


대신 주말 출근이 있죠... 뭐죠 이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느낌...


주말 출근은 안해도 되고 해도 되지만 이번달 안으로 결과를 내려면 출근을 해야한다는 더러운 현실...


그래도 주중에 칼퇴 혹은 1시간 늦게 퇴근 하니까... 그걸 위안으로 삼고 살고 있어요...ㅎㅎ




1.


그 동안 비실대느라 손도 못 댄 Red tear 제본 작업 들어갔습니다!


지금 이 일기도 특전 쓰다가 딴짓하는 거에요ㅎ


1개는 플롯 거의 다 다듬었고, 남은 1개는 아직 플롯도 안 세웠지만...


본편 퇴고도 남았지만...


표지 디자인도 해야하지만...


여우골이야기도 제본 새로 하는 형식에 맞춰서 편집해야하지만...


일단, 이번주 주말까지 하는 걸 목표로...


목표는 크게 잡으라고 했으니까요.




2.


제본 작업 때문에 주말에 올릴 단편은 손도 못댔네요.


BAR마츠는 플롯은 완성되었는데, 보니까 2만자 넘을 것 같아서 무서워 손 못대고 있어요ㅎㅎㅎ


2만자...ㄷㄷ  올캐러니까 그럴 수 있지만, 2만자...


'아빠가 누구' 후편은 플롯도 못 짰어ㅠㅠ


이번 주말에 일단 50제 하나 더 올리고 싶은데...


요즘 너무 시리어스(?)한 카라오소만 써서 좀 해피해피한 녀석이 쓰고 싶어요...


50제를 열심히 뒤져서 해피해피한 글을 쓸 수 있는 키워드를 골라야겠다...


플롯 몇개 짜놓은 건 있지만, 마냥 해피해피하지 않은 것들 뿐이라..ㅎ




3.


사이좋던 동생이 군대가서 심심합니다.


맨날 심심하면 카톡했는데, 이제 카톡할 녀석이 없어!!ㅠㅠ


100일 휴가도 멀었네요. 아직 훈련소에 있어서...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고 하니 걱정은 안합니다ㅎ


부모님도 마찬가지로. 방임주의 교육을 하시는 부모님ㅎㅎ


얼마나 방임주의시냐면... 제가 밤 11시에 친구집에 놀러가 그대로 외박을 해도 뭐라 안하십니다.


아니 제가 외박한 것도 모르고 주무셨어요ㅎㅎㅎㅎ 제가 아침에 자진신고 했죠ㅎㅎㅎㅎ


"엄마, 나 친구 집에서 잤어." 했더니, "그래. 그럼 들어와, 이제." 라고 대답하신 간 큰 엄마.




4.


오늘 내로 특전 하나 완성하고 자고 싶다...ㅠ


내일 아침 일찍 출근이라 이제 자야하는데ㅠㅠ


프, 플롯을 조금만 더 다듬고..!!




암튼 좀 더 있다가 잘 것 같아요...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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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50제 시작입니다! 첫편이네요ㅎ 주중에 깔짝깔짝 써서 오늘 정리해 올립니다ㅎ

 50제가 올라오는 순서는 랜덤입니다ㅎㅎ


* 오메가버스입니다. 오메가버스에 관한 설명은 링크(요기)로 가주세요~


* 이거 전연령으로 수위 낮추느라 좀 고생했네요... 

  50제는 정말 부득이한 키워드나 상황이 아니면 대체로 전연령으로 올릴 생각입니다^^


* 임신과 관련된 자극적인 소재와 단어가 들어가있습니다. 불편하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공미포 19,652자. 한번 더 퇴고해서 재업로드 했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22. 발정기 (카라오소)   보름달 님 신청 키워드.




* 오메가버스 카라오소.

* 키워드가 키워드지만 전연령 버전입니다.

* 공미포 19,770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22. 발정기 (카라오소)   보름달 님 신청 키워드.


1.


아직 잠에 취한 눈을 비비고 젓가락을 고쳐 든 오소마츠가 멍청히 밥상을 응시했다. 어젯밤 그렇게나 달콤했던 술은 온화했던 얼굴을 바꿔 악마와 같은 형상으로 오소마츠의 머리를 강하게 쥐어짰다. 지끈거리는 두통에 한껏 인상을 찌푸린 오소마츠가 작은 한숨과 함께 눈을 끔뻑였다.

“쵸로~, 간장 좀….”

“자.”

“응. 감솨.”

“아으….” 하고 신음하며 머리를 짚는 오소마츠를 한심하단 눈으로 쳐다본 쵸로마츠가 간장을 건넸다. 짤막한 감사 후, 건네받은 간장을 계란프라이에 살짝 뿌렸다. 억지로 밥을 입으로 옮기고 있지만, 지금 당장 위 속 내용물이 밖으로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어 위액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은 오소마츠가 다시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며 빈 그릇을 들고 일어났다.

“얼마나 처마신 거야…. 어제부터 상태 안 좋아 보이더만!”

식사를 마치고 행주질까지 끝난 상 위에 턱을 괴고 엎드린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의 잔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숙취로 빌빌대는 오소마츠를 생각해 언성을 높이지 않은 것이 쵸로마츠 나름의 배려였다. 오소마츠는 여전히 상 위에 얼굴을 올린 채, 눈동자만 굴려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너무 그러지 마~, 쵸로씌~ 횽아도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궁~”

“그걸 왜 몸 안 좋을 때 하냐고! 이 바보 장남아!”

“별로, 괜찮다니깐~?”

“어이, 카라마츠! 너도 한마디 해!!”

손을 휘저으며 쵸로마츠의 잔소리를 흘려 넘기는 오소마츠에게 눈을 흘긴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려 거실 한쪽에서 거울을 보고 있던 카라마츠를 불렀다. 쵸로마츠의 부름에 거울을 내려놓은 카라마츠가 고개를 기울이고 “응~?” 하고 눈을 깜빡였다.

“듣지도 않았냐….”

산뜻하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돌아보는 카라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질린 듯이 중얼거렸다. 제 얼굴 보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쵸로마츠와 오소마츠의 대화는 카라마츠의 귓바퀴에도 걸리지 않았다. 쵸로마츠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와 두통으로 눈썹을 찌푸리고 축 늘어져 있는 오소마츠를 번갈아 보며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아오! 내 위에 놈들은 제대로 된 놈이 없어!! 오소마츠 형!”

“…응?”

“제대로 병원 갔다 와!”

“에―? 귀찮아.”

“가라면 좀 가! 얼굴이 새하얘!”

“우으~, 귀찮아….”

나가기 위해 미리 싸둔 녹색 가방을 어깨에 멘 쵸로마츠가 다시 오소마츠에게 삿대질하며 병원에 꼭 가라며 신신당부했다. 적당히 알겠다 대답한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어 현관을 나서는 쵸로마츠를 배웅했다. 쵸로마츠의 말대로 어제부터 속이 더부룩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을 떠올린 오소마츠가 이내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어 병원을 지워버렸다. 단순한 컨디션 불량이라면 푹 쉬면 나을 터였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나간 동생들과 쵸로마츠까지 떠난 거실엔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그리고 똑딱거리는 초침 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오소마츠가 달그락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카라마츠도 나가?”

보던 거울을 상에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는 카라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 물었다.

“아! 오늘도 뷰티풀-한 카라마츠 걸-즈를 위해!”

“후핫! 그런 거 없겠지만,”

“엩.”

“잘 다녀와~”

오소마츠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카라마츠도 만면에 미소를 띠고 “아, 다녀오지. 형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멍청히 거실을 나가는 카라마츠의 등을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돌연 고개를 돌린 카라마츠의 눈이 맞았다.

“응?”

“그…, 몸이 안 좋으면 오늘 꼭 병원 가라, 형님. 병원이 싫다면 하다못해, 데카판 박사에게라도 가 봐.”

“오―. 알겠엉~”

오랜만에 건네진 카라마츠의 걱정에 오소마츠가 기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소마츠의 대답에 안도한 것처럼 작게 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다시 인사하며 거실을 나섰다. 드륵-, 현관문이 닫히고 정적에 휩싸인 거실에서 오소마츠가 쭉 참고 있었던 불편한 숨을 내쉬었다. 딱히 정확히 어디가 아프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몸 전체가 늪에 빠진 것처럼 축 가라앉아 무거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침 식사 덕분인지, 마츠요의 특제 해장 주스를 마신 덕분인지, 두통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고 선명하게 체내를 표류하고 있었다.

“데카판한테 가볼까….”

혼잣말하며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2층으로 올랐다. 줄곧 입고 있었던 하늘색 잠옷을 벗고 붉은 후드로 갈아입은 오소마츠가 현관을 나섰다.

“…호에….”

“데카판? 뭐야? 나 무슨 병 걸렸어?”

처음 보는 문자와 이상한 수치들이 빼곡히 적힌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데카판 박사가 신음하며 턱을 쓸었다. 눈을 깜빡이며 재차 수치를 확인한 데카판이 몸을 돌려 오소마츠를 쳐다봤다.

“축하한다요, 오소마츠군. 임신이다요!”

“…하?”

데카판의 말에 오소마츠의 턱이 떨어졌다. 동태 같은 눈으로 박사를 응시하며 고개를 기울인 오소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아니아니아니, 그런 일 없으니까. 일어날 리 없으니까. 데카판은 바보야?”

“호, 호에…. 이 수치를 보면 임신이 맞다요! 검사는 정확하다요!!”

“…하?”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게 바로 이건가 하고 독백하며 넋을 놓은 오소마츠가 얼굴을 찡그렸다. 데카판은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옮겨 수치를 해석해나갔다.

“임신 3주 정도 된 것 같다요. 피검사 결과, 오소마츠 군은 철분이 부족한 것 같다요.”

“아니, 잠깐 멈춰봐, 데카판.”

연구소에 있는 철분제를 주겠다며 의자에서 일어서려는 데카판을 만류한 오소마츠가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를 붙잡고 눈을 굴렸다.

“응, 일단. 알겠어. 임신이라고? 알겠는데…. 나, 는….”

다음 말을 섣불리 꺼내지 못하는 오소마츠의 얼굴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데카판은 쉽게 입술을 떼지 못하는 오소마츠의 표정을 살피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싶다면, 의 동의가 필요하다요.”

오소마츠가 차마 내뱉지 못한 단어를 일부러 언급하지 않으며 데카판이 지그시 미소 지었다. 불안해하는 오소마츠를 조금이라도 달래주려는 미소에 오소마츠가 어느 순간부터 멈추고 있었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응….”

 



2.


이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외에 또 다른 성별이 있다. 알파(α)와 오메가(Ω)와 베타(β). 베타는 그냥 보통 사람들, 여자와 남자라는 두 가지 성별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알파는 그중에서도 조금 우수한 사람들…, 이려나? 오메가는 임신이 가능한 사람들. 남자라고 반드시 알파인 건 아니고, 여자라고 반드시 오메가인 것도 아니다. 오메가는 3개월에 한 번씩 ‘히트’가 오고, 알파의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그 정도가 내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 지식의 전부. 중학교에 들어가 여자와 남자 외의 성별에 대해 배웠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꽤 컸다. 그때까지는 달린 놈들이 남자, 가슴이 있는 게 여자, 정도의 지식밖에 없었으니까. 무슨 연구소에서 왔다는 선생님의 설명에 나는 “헤에―.” 하고 감탄하고 끝냈다.

그야 나랑은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는, 여섯 명이 하나인 우리는, 당연히 모두 같은 성별이라고 생각했고. 우리 모두 당연히 베타일 거라고 그때의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학교에서 받은 성별 검사 결과를 받은 나는 땅이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츠노 오소마츠’라고 쓰인 종이에 당당히 쓰여 있는 문자.

 

베타(β)가 아닌, 오메가(Ω).

 

알파도 아니고 오메가?! 머리를 강타하는 커다란 충격에 숨을 쉬는 것도 잊고 뚫어지라 결과 용지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노려보아도 오메가를 상징하는 문자가 베타로 바뀌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혼란스러웠다. 도저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떨리는 손과 함께 흔들리는 그 기호가 뇌를 마구 짜내는 것 같았다. 흔들리고 뒤틀리는 시야를 참지 못하고 쓰러지려는 순간, 시끄럽게 복도를 울리는 녀석들의 목소리에 들고 있던 결과 용지를 구겨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한시도 입을 멈추지 않고 떠들며 다가온 녀석들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즐겁게 웃으며 물었다.

“오소마츠 형은 뭐 나왔어?”

이때 우리는 이미 ‘형’과 ‘동생’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주머니 안에 구겨 넣은 용지를 꽉 쥐고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평소처럼 웃었다.

“너네는?”

“우린 다 베타야.”

“오~! 나도!!”

내 질문에 쵸로마츠가 녀석들을 쭉 둘러보며 대답했다. 단단하게 내 발밑을 지지해주고 있던 바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웃었다. 나 역시 베타라고 말하자 녀석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일까,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메가여도 녀석들이 나를 경멸할 리 없지만, 나만 녀석들과 다른 것이 참을 수 없이 싫었다. 나만 다르다는 것을 녀석들이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 ‘형’인 내가 녀석들보다 나약한 오메가라는 것이 싫었다.

이대로 숨기자고, 철저하게 숨기자고 홀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나와 엄마, 아빠에게만 알려졌다. 녀석들에게 내가 오메가라는 것을 숨기고 싶다고 솔직히 말하자, 엄마는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결과 용지는 녀석들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잘게 찢어 변기 속으로 흘려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카라마츠도 나처럼 녀석들에게 자신의 성별을 속인 거였다. 그 녀석은 연극부답게, 나보다 더 자연스러운 연기로 녀석은 ‘베타’를 자청했다.

 

저출산 시대에 오메가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남성이어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오메가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제법 빵빵했다. 히트 억제제나 피임약을 살 때 보험이 적용돼서 꽤 싸게 살 수 있었다. 1년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상담을 받는 것도 무료. 녀석들에겐 내가 오메가라는 것을 숨겨야 했기에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엄마가 함께였다.

흰 가운을 입은 미인 의사 누나에게 오메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억제제를 받았다. 하얗고 동그란 작은 알약은 내가 녀석들과 다르다는 증거였다. 평생 이 약과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다.

나는 베타가 아니다. 3가지 성별 중에서 가장 약한 ‘오메가’.

나는 이제 ‘여섯 명이 하나’가 될 수 없다. 함께 손을 이어 만들었던 작은 울타리에서 혼자 툭- 하고 떨어진 존재가 됐다. 녀석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약을 엄마에게 맡기고 병원에서 돌아온 그 날, 어두운 방 안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겨우 현실로 다가온 ‘오메가’라는 성별이 날카로운 단검이 되어 수십 번 가슴을 찔렀다. 얼굴을 후려치는 비정한 현실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메가 진단 후에도 내 몸이 변화하는 일은 없었다. 육둥이답게 녀석들과 큰 차이 없이 자라나는 몸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오메가는 ‘약하다’라는 인상이 있었지만, 나는 녀석들과 똑같은 키, 똑같은 덩치로 쑥쑥 자랐다. 육둥이 안에서 최강자라는 타이틀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오메가에게 반드시 찾아온다는 ‘히트’도 없었다. 검사 결과가 바뀐 것 아닐까, 나는 원래 베타인 거 아닐까 하고 한 줌의 모래와 같은 희망을 품었다.

 



3.


중학교 3학년, 졸업식이 가까워진 2월. 근처 고등학교에 배정된 우리는 느긋하게 남은 중학교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각자의 개성이 확실해져서 쥬시마츠는 지금과 같은 밝은 광인이 되어 있었다. 쵸로마츠는 성실해지고, 이치마츠는 반대로 어두워졌다. 토도마츠도 지금처럼 약삭빠르게 잔머리를 굴리면서 여자애들과 어울렸다. 카라마츠는 중학교 3년간 연극부에 있으면서 지금의 아픈 모습이 완성되었다.

졸업식을 며칠 남기지 않은 어느 날, 여자애들에게 인기라며 토도마츠가 틀어놓은 시시한 아침 드라마를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각인’이니, ‘운명의 상대’니, 시시한 아침 드라마에 걸맞은 알파와 오메가 이야기. 자기에겐 이미 ‘짝’이 있다며, 남주인공에게 울부짖는 여주인공을 보며 계란말이를 입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 이상한 위화감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몸이 간질간질하면서 배 아래 쪽에 뭔가 묵직한 것이 내려앉았다. 따뜻하면서도 무겁고, 불편한 뭔가에 “응?” 하고 젓가락을 입에 문 채 고개를 기울였다. 이게 뭐지?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답을 찾기도 전에 카라마츠가 내 목덜미를 물었다.

“…헤?”

“…에?”

갑자기 목을 콱! 물린 자극에 놀라 어깨를 튀면서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는 카라마츠와 눈이 맞은 순간, 둘이 거의 동시에 멍청한 신음을 흘렸다. 카라마츠는 바보처럼 눈을 끔뻑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둘이 눈을 마주한 채 놀라서 말을 잃은 사이, 엄마가 뛰어왔다. 목덜미에 선명히 남은 이빨 자국. “세상에….” 하고 망연자실한 엄마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넋이 나간 엄마를 보면서 목을 감싸고 있는 미약한 열에 손을 짚고 숨을 삼켰다. 동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냐는 얼굴로 쳐다보고, 카라마츠는 자신이 한 행동의 의미를 여전히 알지 못했다. 긴 침묵 끝에 정신을 차린 엄마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마찬가지로 카라마츠의 팔도 붙잡은 엄마는 우리 둘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녀석들은 엄마에게 이끌려 현관을 나서는 우리를 기이하단 눈빛으로 쳐다봤다.

 

‘운명의 상대’

 

그게 나와 카라마츠였다. 내게 오메가에 관해 설명해주었던 미인 의사 누나는 시종일관 동그랗게 뜬 눈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에게 이건 기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의사 누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단 한 명의 알파와 단 한 명의 오메가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관계. 그게 바로 ‘운명의 상대’였다. 원래 ‘각인’은 그냥 목덜미를 문다고 되는 게 아니고, 여러 조건과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했다. 상호 동의 아래, 섹스하면서 목덜미를 깨무는 것. 그게 기본적인 ‘각인’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상대’는 달랐다. 본능으로 알아챈 운명의 상대는 서로의 동의 없이도, 섹스 없이도, ‘각인’이 가능했다. 아주 미약한 ‘히트’의 기운에 이끌린 카라마츠가 내 목덜미를 문 것처럼. 그리고 우리는 ‘짝’이 되었다.

의사 누나는 ‘운명의 상대’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며 우리를 응시했다. 70억 명 중의 한 명. ‘운명의 상대’를 찾아내는 기술이나 요령 따윈 없다고, 의사 누나가 설명을 시작했다. 보통의 알파-오메가보다 강한 유대를 가질 수 있는 ‘운명의 상대’는 우수한 알파나 오메가 자손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울메이트와 같은 거라고.

의사 누나의 열성적인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그렇게 특별한 건지. 엄마는 의사 누나의 설명을 듣는 내내 어딘가 혼란스러워 보였고, 우리는 그저 나란히 앉아 서로를 보며 “후응―” 하고 무미건조한 감탄사를 흘렸다.

“카라마츠, 너 알파였구나….”

“형님이 오메가일 줄은 몰랐다.”

별 감흥도, 감동도 없는 우리를 부럽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너희는 축복받은 거야. 운명의 상대가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으니까.” 하고 말하는 의사 누나의 말에 눈을 돌렸다.

 

우리는 그냥 형제인데.

 

작게 중얼거린 내 혼잣말에 카라마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서 돌아와 녀석들에게 필사적으로 숨겼던 성별을 밝혔다. 녀석들도 아침의 사태로 어림짐작하고 있었는지, 별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예상대로 녀석들은 내 성별을 거부하지도, 혐오하지도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나에게 다가오는 녀석들이 고맙고, 또 슬펐다.

 



4.


카라마츠와 ‘짝’이 된 이후, 나는 3개월에 한 번씩 ‘히트’를 맞이하게 되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열기에 제대로 숨도 쉴 수 없었다. 온몸이 뜨겁고, 제대로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원초적인 본능이 뇌를 지배했다. 내뱉는 숨 하나하나가 뜨거웠다. 몸은 팔다리를 휘감은 쾌락과 함께 진득하게 녹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질척였다. ‘히트’가 오면 괴롭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자신의 ‘짝’뿐. 닿고 싶다고, 껴안고 싶다고, 만져지고 싶다고 본능이 외쳤다. 머릿속에 가득 울리는 그 외침이 끔찍한 두통을 만들어냈다. 본능을 거부하는 내게, 본능은 무시무시한 괴로움을 안겨주었다.

그런 지독한 ‘히트’가 고등학교 1학년 어느 아침에 찾아왔다. 어제와 같은 아침에 갑자기 ‘히트’에 카라마츠는 이성을 잃었다. 맹수와 같은 눈으로 나를 뚫어지라 응시하며 다가오는 카라마츠는 오로지 자신의 ‘오메가’을 향한 욕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히트’가 주는 괴로움에 몸을 작게 움츠리고 떠는 내게 카라마츠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곧바로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녀석들과 엄마, 아빠가 카라마츠를 뜯어말렸다. 아빠가 카라마츠의 뒤에서 붙잡고, 엄마가 카라마츠의 팔 한쪽을 잡았다. 쥬시마츠와 이치마츠는 카라마츠 다리에 매달리고, 쵸로마츠가 남은 팔 한쪽을, 토도마츠가 카라마츠 허리에 매달렸다. 하지만 내가 내뿜는 페로몬에 완전히 정신이 나간 카라마츠는 온 가족이 달라붙어도 막을 수 없었다. 카라마츠는 알파 특유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가족 모두를 질질 끌면서 내게 다가왔다.

‘히트’에 반쯤 정신을 놓은 나는 아수라장이 된 그 광경을 얄팍한 호흡을 이어가며 응시했다. 그때, 히트에 삼켜진 나는 카라마츠가 한 발짝씩 다가오는 걸 기뻐하고 있었다. 카라마츠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엄마가 재빨리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피신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나는 카라마츠에게 범해졌을 것이다.

 

이후, 발정기를 어떻게든 막기 위해 병원에서 독한 억제제를 처방받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히트’가 올 때마다 카라마츠를 피해 병원으로 도망가야 했고, 남은 가족들은 날뛰는 카라마츠를 말리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히트’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억제제를 먹어도 큰 효과는 없었다.

나를 담당한 의사 누나는 ‘운명의 상대’를 진찰하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70억 명 중에서 한 명을 찾아야 하는 ‘운명의 상대’는 지금까지 알려진 사례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침 드라마에서나 나올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개념으로 취급되었다. 판타지라고나 할까? 사례가 드문 만큼, 관련 연구도 적었다. ‘각인’에 따라서 오메가가 겪는 증상이 다르기에 개개인에게 맞는 처방이 필요했지만, 의사 누나는 ‘운명의 상대’를 가진 내게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지 알아내지 못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1년간 고생한 끝에 의사 누나가 ‘운명의 상대’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박사를 소개해주었다.

그게 바로 데카판 박사였다.

 

“호에호에” 하고 이상한 감탄사를 내며 나를 진단한 데카판은 간단하게 억제제가 들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운명의 상대라는 것은 알파와 오메가가 가장 자신에게 맞는 상대라는 증거다요. 서로가 ‘짝’이 되기를 강하게 바라고, 그만큼 ‘히트’도 심해진다요. 가장 잘 맞는 짝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아이를 가지려는 욕망도 커지는 거다요. 오소마츠 군도 짝이 가까이 있는데 성관계를 하지 않으니까 ‘히트’가 강해지고 억제제도 효과가 없는 것이다요.”

‘성관계’라는 노골적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그게, 하고 짜증을 내려는 찰나 데카판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어진 데카판의 말에 원치 않는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성관계하는 거다요. 반복해서 하다 보면 자연히 ‘히트’도, 성적 충동도 옅어질 거다요.”

으으응???

머리 위에 가득 물음표를 띄운 나와 달리 엄마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야, 방구야!?” 하고 외쳤지만, 엄마는 깔끔하게 씹어먹고 나를 약국으로 끌고 들어갔다.

‘피임약’을 달라는 엄마의 말에 또 혼이 날아갈 것 같았다. 내 손에 단단히 피임약을 쥐여 준 엄마가 말했다.

“약은 꼭 먹으렴.”

“….”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는 넋을 잃고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는 내 손을 잡고 집에 들어갔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내게 “괜찮았나?” 하고 묻는 카라마츠의 머리에 있는 힘껏 주먹을 쥐어박았다.

“아프다!! 무슨 짓인가! 형님!!”

“시-끄럿! 너 때문에 내가 피임약을 먹게 생겼다고!!”

“핏, 피피, 피, 피임!?”

동정에게 자극이 강한 단어를 내뱉자 카라마츠가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이고 말을 더듬었다. 나도 동정인데! 왜 이렇게 된 거냐고!! 억울하고 화가 나서 한참 동안 카라마츠를 붙잡고 외쳤다. 있는 대로 짜증 내며 쌓아둔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나를 엄마는 말리지 않았다. 카라마츠도 묵묵히 내 짜증과 구타를 참아내며 “미안하다, 형님….”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항상 힘있게 서 있던 눈썹이 축 늘어진 걸 보자마자 가슴이 꾹- 조여와 입을 다물었다. 녀석의 이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서 주먹 쥔 손을 펴 카라마츠의 머리에 올렸다.

“미안, 카라마츠.”

“아니다. 형님은 아무 잘못 없다….”

그렇게 따지면 너도 별 잘못 없잖아….

단지 네가 알파고 내가 오메가였을 뿐인데….

큰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쓰다듬자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를 스쳤다. 부들부들한 감촉이 꼭 커다란 강아지를 만지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새어 나온 미소를 본 카라마츠도 나를 따라 눈가를 늘어뜨리고 씩 웃었다.

다른 수가 없었다. 이거라도 해보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우리는 데카판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처음은 정말로 엄~청난 거부감이 들었다.

그야, 나랑 카라마츠라고? 같은 남자에 형제라고?

형제끼리…, 그걸 하라니….

나도 카라마츠도 언제 다음 히트가 올까 조마조마했다. 엄마가 준 피임약은 거실과 주방에 항상 비치되어 있었다. 이미 ‘짝’이 있는 내 페로몬을 감지할 수 있는 건 카라마츠 뿐이었다. 카라마츠는 평소엔 멍텅구리 둔탱이면서, 내 페로몬의 변화만큼은 예민하게 잡아냈다.

 

“형님.”

“아, 벌써 그때인가.”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나직이 나를 부르는 음성에 달력을 확인했다. 엄마가 표시해 놓은 날짜가 가까웠다. 약을 챙기기 위해 일어서면서 카라마츠에게 연락을 부탁했다. 고개를 끄덕인 카라마츠가 스마트폰을 꺼내 가족 단체 대화방을 켰다. 폰이 울리고 ‘알겠다’는 대답이 이어졌다. 엄마는 하던 일을 급히 끝내고 집에 돌아와 3일간 먹을 음식을 챙겨 줬다. 우리 둘을 뺀 나머지 가족은 전부 하타보가 준비해준 임시 거처로 옮겨 갔다.

완전히 둘만 남은 집 안에서 히트가 바로 코앞에 다가온 것을 느끼며 피임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고등학교 3년간, 몇 번의 히트를 경험하고, 우리 가족은 어떻게 히트를 준비해야 하는지 학습했다.

운명의 상대라서 그런지, 내가 특이한 건지, 내 ‘히트’는 제법 강했다.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해서 카라마츠가 옆에 다가오면 정신을 잃었다. 아니, 기억을 잃었다고 할까. 나에겐 히트 2~3일간의 기억이 없다. 아마 짐승처럼 정신없이 번식하는데 집중하는 거겠지. 정신을 차려보면 몸엔 정액과 여러 액체가 말라붙어 엉망이고, 냉장고 안의 음식은 착실히 줄어있었다.

처음엔 집이 아니라 하타보가 준비해준 호텔에 갔지만, 낯선 환경이라서 그랬는지 몸이 뜨거워지기만 할 뿐, 히트가 오지는 않았다. 결국, 오랜 가족회의 끝에 히트가 오면 나와 카라마츠를 뺀 다른 가족들이 자리를 피해 주기로 했다. 뭐, 눈앞에서 형 둘이 얼싸안고 있는 걸 보고 싶을 리 없으니까, 녀석들도 군말 없이 동의했고.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히트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하는 일은 ‘사후피임약’을 먹는 것. 완전히 알파의 본능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카라마츠가 콘돔을 챙길 리 만무했다. 히트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 쑤시는 몸을 끌고 주방에 들어가 찬장에 있는 약을 물과 함께 들이켰다.

 

보통 ‘짝’이 있으면 히트가 약해진다. ‘짝’ 이외의 상대를 유혹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아지는 일 없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심한 히트가 이어졌다. 점차 약해질 거란 데카판의 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고등학교 3년간,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도 히트 동안의 기억은 없다. 차라리 다행이지. 그딴 기억 필요 없고.

 

데카판은 내 히트가 약해지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다양한 검사를 했다. 박사라는 데카판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 히-트가 약해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잖아? ‘짝’이 있으면 자연히 약해지는 히-트가 계속 강하게 유지되는 이유는,

 

우리가 제대로 된 ‘짝’이 아니니까.


가만히 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히트 따위, 영영 없어지면 좋을 텐데….

 



5.


데카판 연구소에 돌아와 녀석들과 함께 목욕탕으로 향했다. 저마다 한마디씩 해도 여섯이 동시에 말하니 조용한 골목이 금세 떠들썩해졌다. 시시한 이야기나 웃긴 이야기를 나누며 목욕탕에 도착했다. 태어난 순서로 일렬로 앉아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커피 우유를 나눠 먹고 목욕탕을 나왔다. 여섯이 모두 누울 수 있는 커다란 이불을 깔고, 제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토도마츠가 불을 끄자, 방 안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녀석들의 숨소리에 집중해 시간을 쟀다. 양옆에 누운 녀석들의 숨소리가 느긋해졌을 때 눈을 떴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자 어렴풋한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른 숨소리를 내는 녀석들이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이불을 빠져나왔다. 색색- 꿈나라에 폭 빠져 있는 토도마츠의 머리를 슬쩍 매만지고 카라마츠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이, 카라마츠.”

짝짝, 카라마츠의 이마를 때리며 이름을 부르자, 눈썹을 한껏 찌푸린 카라마츠가 힘겹게 눈을 떴다.

“…응? 뭔가, 형님….”

“일어나봐. 할 말이 있어.”

다시 눈을 감으려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깊은 한숨과 함께 눈을 비비며 일어난 카라마츠가 이불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먼저 계단을 내려가 거실로 들어갔다.

 

“뭔가?”

커다란 하품을 끝내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카라마츠가 내 맞은편에 엉덩이를 내리고 앉았다. 정신의 반은 아직도 꿈나라에 빠져 있는지 카라마츠가 초점 잃은 흐리멍덩한 눈을 찌푸렸다. 금방 내려앉을 것 같은 녀석의 눈꺼풀을 보며 머리를 긁적이고 입을 열었다.

“오늘 몸이 안 좋아서 말이야…,”

“아, 몸은 괜찮은가?”

내 말에 졸음을 날려버린 카라마츠가 말을 끊고 물었다. 적당히 “어, 괜찮아.” 하고 대답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마른 입술을 적셨다.

“나, 임신했대.”

“….”

쩌억-, 카라마츠의 턱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 놀라겠지. 응, 횽아도 그 맘 안다. 나도 놀랐는걸.

꼬박꼬박 피임약 먹고 있었는데 말이지~.

“그, 지, …우려면 네 동의가 필요하대. 그러니까, 내일 데카판한데 가서…”

“자, 잠깐만, 형님.”

“응?”

카라마츠가 눈썹을 찡그리고 머리를 붙잡은 채, 내 말을 막았다. 고개를 기울이고 가만히 쳐다보니 녀석이 얼마나 혼란스러워하는지 뻔히 보였다. 잘게 눈동자를 흔드는 녀석을 잠깐 기다려줄 생각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릴 때부터 숱하게 봤던 낡은 나무 천장의 무늬를 하나씩 세다가 차가운 바람이 느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팔에 돋아난 소름을 쓰다듬으며 바람이 들어오는 곳을 확인했다. 누가 범인인지, 툇마루 쪽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날짜는 여름에 이제 들어섰지만, 여전히 밤공기는 쌀쌀했다. 슬금슬금 무릎으로 기어가 문을 닫았다. 탁,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형님….”

“응~?”

“…동의할 수 없다.”

“응? 뭐가?”

“…나, 낳아주지 않겠나?”

“하?”

일그러지는 표정과 함께 어이없는 신음을 던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낳자. 그리고 혼인 신고도…”

“미쳤냐, 너?”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험한 말에 카라마츠가 얼굴을 구겼다. 슬퍼 보이는 얼굴로 곤란한 미소를 피운 카라마츠가 살짝 고개 숙였다. 때때로 이 녀석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하곤 한다. 지금도 카라마츠 나름의 이유가 있는 발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카라마츠를 대신해 한숨과 함께 물었다.

“왜 낳자는 건데, 너.”

“…낳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왜.”

“그건…, 잘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저도 답답한지 입술을 깨문 카라마츠가 말끝을 흐렸다.

아아, 진짜 이 녀석 바보.

짜증 섞인 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벅벅 긁고 단호히 말했다.

“내일 데카판한테 갈 거니까.”

“싫다…, 형님.”

“카라마츠, 우린 형제야.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카라마츠의 입술에 이가 깊숙이 파묻혔다. 피가 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꽉 문 입술이 안쓰러웠다. 겨우 고개를 든 카라마츠의 눈동자가 내가 모르는 색으로 일렁거렸다.

“동의할 수 없다. 데카판에게 가지 않을 거다.”

“야.”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 화를 억누르고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눈인데도, 그 안에 서린 빛은 확고했다.

“카라마츠.”

“낳아줘, 형님.”

“우린 형제야!!”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건가!! 형제인 동시에 ‘짝’이다!”

“하아?!”

“제대로 혼인신고를 한다면 나라의 지원도 받을 수,”

“형제가 무슨 혼인신고!? 기분 나쁘거든! 역겹거든!!”

“형님!!”

“시끄럿! 부르지 마! 닥쳐!! 내일 데카판한테 갈 거야!!”

“못 보낸다!”

“네가 무슨 권리로!?”

모두가 잠든 새벽이라는 것도 잊을 정도로 머리에 피가 몰렸다. 점점 높아지는 노성이 고요한 새벽 공기를 울렸다.

이 앞뒤 꽉 막힌 멍청이가!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카라마츠를 향해 치솟은 분노로 비아냥거리자 카라마츠가 쾅! 하고 상을 내리쳤다.

 

“넌 내 것이잖아!!!”

 

벌어진 입을 다물고 숨을 삼켰다. 조금 전까지 거세게 휘몰아치던 분노가 바닥에 가라앉았다. 싸늘하게 식은 화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실언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화난 얼굴을 지우고 당황하며 손을 뻗었지만, 강하게 뿌리치고 거실을 나왔다. 복도에서 멈추지 않고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에 발을 끼웠다.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 목소리도 듣기 싫다. 역겹다. 헛구역질이 날 만큼 기분이 더럽다.

카라마츠를 향한 분노와 증오가 뒤섞여 참을 수 없는 울분을 만들어냈다. 지금 이 자리에 1초라도 더 있고 싶지 않다. 카라마츠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지 않다. “형님!!”하고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씹어버리고 현관을 열고 뛰쳐나갔다. 고요한 새벽 골목에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6.


점멸하는 신호등을 지나 거리를 걷는 그림자는 나뿐이었다. 셔터가 내려간 가게들과 은은하게 빛을 내려주고 있는 가로등 사이를 걸었다. 여름밤은 춥지는 않았지만, 얇은 잠옷 하나로 견딜 수 있는 기온은 아니었다. 쌀쌀한 공기에 딱딱해진 피부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정말 지긋지긋하다.

이제 ‘오메가’도 ‘히트’도 다 싫다. 생각도 하기 싫다.

나는 녀석들과 달라지고 싶지 않았어. 녀석들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성별이 오메가라는 그거 하나만으로 나는 녀석들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 3개월에 한 번씩 히트를 겪고, 동생과 짝이 되어서, 이성도 잃고 미친 듯이 짐승처럼 섹스하고. 느슨해진 눈물샘 밖으로 뜨거운 물방울이 새어 나왔다.

히트 때 나는, ‘내’가 아니다.

나약하고, 음탕하고, 이상한, 오로지 자신의 짝에 좌지우지되는 오메가.

기분 나빠. 그딴 거 내가 아니다.

 

혐오와 증오.

 

내가 오메가인 나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오메가인 내가 미치도록 싫다. 치가 떨리도록 증오스럽다.

임신도 전부 오메가 탓. 히트가 끝나고 사후피임약을 먹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것도 오메가 탓이다. 히트가 끝나고 막 정신을 차렸을 즘엔 아직 몽롱한 상태니까 기억도 희미하다. 그래도 확실히 확인했었다. 주방 식탁 위에 사후피임약의 빈 껍질이 놓여 있는걸. 그러니까 제대로 먹었다고 생각했고, 아무런 의심 없이 빈 껍질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개새끼.”

낮게 내뱉은 말이 지닌 온도는 내 생각보다 더 차가웠다. 졸졸 흐르는 물을 보며 강둑에 앉았다. 그새 짧은 풀에 내려앉은 이슬 덕분에 얇은 잠옷이 젖었다. 차가운 흙의 감촉에 몸을 힘껏 움츠렸다.

내가 오메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평범한 형제로 남았을 텐데.

알파인 카라마츠의 걸림돌이 되지 않았을 텐데. 베타보다 우수한 알파니까, 카라마츠가 원한다면 좋은 기업에 취직해 예쁜 부인을 얻는 것도 가능했다. 내가 오메가가 아니었다면, 카라마츠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다. 히트다 뭐다, 그런 거 없이 자유롭게.

아니면 차라리, 운명의 상대가 아니었다면. 카라마츠는 나보다 더 나은, 녀석과 마음이 맞는 오메가와 짝이 될 수 있었을 거다. 남자가 아닌 여자, 피가 연결되지 않은 타인의 오메가를.

서로가 자각하기도 전에 이루어진 ‘각인’ 덕분에 다른 알파가 어떤지도 알지 못한다. 오메가가 가지는 모든 특징은 필사적으로 알파를 붙잡으려는 애처로운 노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이렇지 않은데.

마츠노 오소마츠는, 형인 나는, 카라마츠보다 강해야 했다.

더 의지가 되고, 멋진, 그런 형이 되어야 했다.

약해 빠져서 카라마츠에게 빌빌대는 그런 형이 아니라.

뿌득- 이를 갈며 수도 없이 오메가를 욕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욕이란 욕을 다 쏟아부어도 온몸을 가득 채운 증오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메가는 내게 더러운 기생충과 같았다.

 

멋대로 내 허락 없이 기생하는 기분 나쁘고 더러운, 혐오스러운 존재.

빨리 사라져버려. 제발, 없어져.

이루어지지 않을 바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간절히 기도하며 손에 치인 돌멩이 하나를 들어 강에 던졌다. 퐁당- 하고 울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잠옷 한 벌로 나와서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모텔이나, PC방에 가고 싶어도 지갑을 들고나오지 않아 돈이 없다.

다 싫다….

쓸쓸하게 내뱉고 몸을 돌렸다.

 



7.


정처 없이 걷고 걷다가 기차역에 도착했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역을 보며 첫차가 다닐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라리 멀리 떠나버릴까? 교통비 정도는 이야미에게 뺏으면 될 일이다. 다행히 이야미 집은 역에서 멀지 않으니까. 응, 그러자. 이야미 집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형님!!”

젠장. 낮게 욕하고 냅다 뛰었다. 조용한 새벽 거리에 뜀박질 소리가 2개. 전속력으로 뛰고 있는데도 멀어지지 않는 발소리에 초조하게 팔을 흔들었다. 머릿속으로 제일 빨리 이야미 집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계산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낮고 남자다운 목소리가 새벽 공기를 뒤흔들었다.

“오소마츠!!!”

“흣!”

숨을 삼킴과 동시에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감각에 치를 떨었다. 그 자리에서 멈춘 발은 접착제라도 붙인 것처럼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가오는 인기척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얕아진 숨이 금방이라도 끊길 것처럼 가빴다. 카라마츠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더 또렷하게 들릴수록 심장 박동도 빨라졌다. 원치 않는 기쁨이 온몸을 지배했다. 겨우 이름이 불린 것뿐인데!! 자동으로 일어나는 신체 변화에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빌어먹을 오메가. 다시 발을 떼서 달아나려고 해도 이미 달뜬 몸은 뇌의 명령을 무시했다.

젠장, 젠장, 젠장, 빌어먹을! 이를 갈며 입을 꾹 다문 내 앞에 슬리퍼를 신은 발이 섰다.

“따라와.”

팔을 잡혀 그대로 끌려갔다. 있는 힘껏 발에 힘을 주고 저항해도 카라마츠와 내 안에 있는 오메가를 이길 수는 없었다.

 

저에게 잡힌 팔을 빼내려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오소마츠를 끌고 카라마츠가 도착한 곳은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러브호텔이었다. 빈방을 보여주는 패널에서 적당한 방을 골라 떨어진 카드를 집어 들자 오소마츠의 저항이 더욱더 거칠어졌다. 건물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노성을 내지르는 오소마츠를 들쳐 메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냅다 침대 위로 오소마츠를 던진 카라마츠가 그 위에 올라탔다.

“크우읏!! 이거 놔!!”

제 손을 구속하고 있는 카라마츠를 밀어내며 비통하게 외치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반항하며 휘젓는 오소마츠의 남은 손을 잡아 침대에 눌렀다.

알파의 힘이 주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도 오소마츠는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몸부림치는 오소마츠의 몸을 자신의 체중으로 지그시 누른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와 눈을 맞췄다. 러브호텔의 간접조명에 비친 오소마츠의 다갈색 눈동자엔 태풍과 같은 분노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왜, 그렇게나 싫어하는 건가…. 전부 내가 책임지겠다. 취직도 하겠다. 오메가와 알파를 부정하는 시대도 아니다. 세상도 우리를 이상하게 보지 않아.”

빠드득- 스티로폼이 부서지는 것처럼 강렬한 소리가 울렸다. 분노로 눈을 새빨갛게 물들인 오소마츠가 이를 갈며 카라마츠를 똑바로 응시하고 격분해 외쳤다.

“난 네 이지, 네 소유물이 아냐!!!”

오소마츠의 외침에 카라마츠가 슬프게 눈썹을 늘어뜨렸다. 자신이 원한 건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독백하며 카라마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내 것’이라고 한 건 실언이다. 오소마츠는 내 이다. 내 단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상대다.”

“하? 무슨 말을,”

“사랑한다.”

카라마츠의 고백에 오소마츠의 눈동자에서 불타오르던 분노가 사그라졌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찌푸리고, 사색이 된 오소마츠에게서 떨리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그러는 건데. 진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너. 우린 형제야! 피가 이어진 형제라고!!”

짙은 파랑이 담긴 눈이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가늘게 뜬 눈이, 사랑스럽단 듯이 오소마츠의 얼굴을 샅샅이 훑었다.

“형제면 뭐? 우린 운명의 상대인데. 서로를 위해 태어났는데. 이 세상에 오직 단 한 사람을 위해 태어났는데, 왜 사랑하면 안 되나.”

“….”

미쳐버린 궤론에 오소마츠가 입을 다물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가 애원하듯 매달렸다.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나? 오소마츠.”

 



8.


깨닫지 못한 본능이 이성을 앞섰다. 얼떨결에 물어버린 얇은 목덜미에 남은 자신의 이빨 자국을 멍청히 응시했다. 엄마와 동생들의 소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단 한 사람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의 ‘운명의 상대’라는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운명이라는 것이 겨우 이런 것인가?

각인을 통해 짝이 되었는데도 오소마츠를 향한 내 마음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그냥 ‘형’이었다. 육둥이의 장남이자 나의 형.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존재도 아니었다. 우리가 운명의 상대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무덤덤하게 서로가 짝이 되었다는 사실만을 받아들였다. 짝이 되었어도 뭔가가 변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순한 ‘형제’였으니까.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오소마츠에게 2번째 히트가 왔을 때였다. 식욕을 돋우는 밥 냄새에 섞여 희미하게 퍼지는 모란꽃의 향기. 그 향기를 맡은 순간, 기계 전원을 끄듯 뚝- 하고 기억이 끊겼다.

후에 정신을 차리자, 나는 두꺼운 밧줄로 꽁꽁 묶여서 모두 함께 사용하는 2층 방에 휙- 던져져 있었다. 이성을 되찾은 내게 동생들은 무서웠다며 울먹였다. 오로지 충동과 욕망이 몸을 지배하고 있었던 나는 동생들과 부모님도 뿌리치고 형님에게 달려들었다고 했다. 기억이 없는 것에 놀라고, 자신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에 또 놀랐다. 히트가 끝나 병원에서 돌아온 오소마츠에게 사과하자, 오소마츠는 언제나 그랬듯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돌려주었다.

 

오소마츠에게 히트가 올 때마다 이성을 잃고 덮치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아니, 문제밖에 없었다. 아무리 공인된 짝이라고 해도 그건 강제로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병원에서 억제제를 받아온 오소마츠와 함께 나도 알파 전용 억제제를 처방받아 복용했다. 하지만 아직 연구가 덜 된 알파 전용 억제제는 큰 효과가 없었다. 오소마츠도 어째서인지 억제제가 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히트가 올 때마다 오소마츠는 나를 피해 병원에 입원했고, 나는 밧줄에 묶여 방에 방치되었다. 시중에 판매하는 온갖 억제제를 먹어도 오소마츠의 히트가 잠잠해지는 일은 없었다.

꿀꺽- 하고 물과 함께 약을 삼킨 오소마츠가 혀를 차며 상에 엎드렸다.

“발정기 따위, 정말 싫어.”

‘싫다’는 말이 오소마츠 나름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실은 더 강한 감정일 것이다. 싫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진한 감정을 오소마츠는 그렇게 표현했다. 2번째 히트 후로 장장 1년 동안, 오소마츠는 여러 가지 약을 먹었지만, 하나같이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찾아간 데카판 박사는 억제제로 억누르려 하지 말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놔두면 자연스럽게 히트가 약해질 거라 했다. 오소마츠에게 히트가 오고 2~3일 동안 가족은 전부 임시 거처로 옮기고, 나와 오소마츠만 남은 집에서 우리는 짐승처럼 서로를 탐했다. 기억이 날아가 있을 때는 오롯이 본능이 몸을 지배했다.

이렇게 계속 이어가면 히트가 나아질 것이라 희망을 품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해 성인이 되어도 오소마츠의 히트는 여전히 지독했다.

 

히트 때의 기억이 없는 내게 오소마츠는 그냥 ‘형’이었다.

그랬는데, 왜….

 

어느 순간부터 히트 때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안개 속처럼 어렴풋했던 기억은 갈수록 선명해졌고, 단편적인 기억이 아닌 히트 동안의 모든 기억이 뇌 속에 틀어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뜨거워진 신체와 이성을 밀치고 수면으로 올라온 욕정과 욕망, 색욕.

빨리 열을 해소하고 싶다는 갈망과 동시에 자신의 짝을 품에 넣으려는 다급함이 이성을 조각냈다.

짝을 확인하기 위해 초조하게 뻗은 팔 아래에,

오소마츠가 있었다.

 

형이었던 오소마츠가 처음 보는 표정으로 애처롭게 나를 불렀다. 애타게 내 이름을 읊는 달아오른 목소리. 나를 요구하며 오직 나를 향해서 들어 올린 팔. 쾌락에 엉망으로 녹아 초점을 잃은 다갈색의 눈동자에 나만이 비친 순간, 참을 수 없는 욕정과 동시에 행복이 피어올랐다.

모두의 형인 오소마츠를 독점했다는 우월감, 오소마츠를 손에 넣었다는 성취감, 내 품에 오소마츠가 있다는 그 사실이 주는 안도감, 그리고 농후한 행복. 달뜬 숨결과 덜덜 떨면서 닿아오는 가녀린 손길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카라마츠우….” 하고 나를 부르며 울먹이는 귀여운 사람이, 내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눈앞의 존재가 애처로워서, 사랑스러워서, 귀여워서, 애끓는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게도 나는, 히트에 빠진 오소마츠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와 같은 얼굴, 같은 신장을 가지고 있는데도 여리게 보이는 몸을 품에 안기까지 견뎌낸 인내의 시간. 오소마츠를 사랑하게 된 것을 자각한 후로, 히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가는 어깨를 감싸고 키스를 하면 오소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요염한 미소로 내 목에 매달렸다. 배시시 웃는 눈은 가늘게 휘어져서 그 눈 속에 가득 담긴 달콤한 꿀이 내 몸을 녹이는 것 같았다. 붉고 부드러운 입술은 촉촉이 젖어 한 시라도 떨어지기 싫다는 듯이 닿아왔다. 보들보들한 살결을 따라 손을 내려 등을 매만지고, 얇은 허리로 미끄러져 내려와 감싸 안았다. 짙은 모란꽃의 향이 비강을 타고 올라와 걸쭉한 행복을 불러왔다. 꽃향기가 섞인 살냄새가 체온과 함께 넘어왔다. 나를 원해서, 내게 안기고 싶어서 달아오른 몸을 품에 안고 “오소마츠, 사랑한다.” 하고 나직이 귓가에 속삭이면, 떨리는 목소리가 “응, 나도 사랑해. 카라마츠으~” 하고 대답했다.

아아, 사랑스러운 나의 짝.

오직 나만을 위한 귀여운 존재.

몇 번이고 입술을 겹치고, 그 뜨거운 몸속 깊숙이 자신을 새겼다. 달콤한 신음을 흘리는 오소마츠의 허리가 튕길 때마다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가 진한 사랑을 나눴다.

그러나 내 것이 분명한 그 몸에 아무리 나를 새겨도 가슴 한쪽에 자리 잡은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짝, 나만을 위한 유일한 존재가, 내 것인데도 꼭 금방이라도 내 손에서 빠져나가 멀리 달아나버릴 것만 같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나 애틋한 존재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히트가 와도 기억이 유지되고 의식이 또렷한 나와 달리 오소마츠는 계속 기억을 잃었다. 히트가 아닌 시기엔 평소와 다름없이 ‘형’으로서 나를 대했다. 나 역시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히트의 오소마츠지, 형님이 아니다.

오소마츠가 보여주는 얼굴을 형님은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형님은 나를 달콤한 목소리로 부르지 않는다. 나를 동생으로밖에 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구분할 수 있었다. 가족애로서 형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오소마츠를 사랑할 수 있었다. 이걸로 되었다고, 이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고등학교 2학년, 이치마츠를 괴롭히는 무리의 대장이자 수시로 토도마츠에게 시비를 걸던 녀석과 오소마츠가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먼지와 발자국이 가득하고 팔 한쪽이 뜯어진 너덜너덜해진 교복을 걸치고 코 아래를 문지르며 웃은 오소마츠의 머리에선 피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족들 모두 잠든 늦은 시간, 오자키에 대한 특집 방송을 보려 깨어 있던 나만이 오소마츠를 맞이했다. 볼을 타고 떨어지는 핏방울에 사색이 된 나를 보며 오소마츠는 그저 웃었다. “오~? 아직 안 잤네? 카라마츠~.” 하고 평소와 같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마루에 오른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거실로 끌고 왔다.

피를 닦아내고 크게 찢어진 이마를 소독한 후, 약을 발라 솜을 붙였다. 머리 외에 또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소마츠의 상의를 벗기자마자 말을 잃었다. 몸 곳곳에 남은 타박상과 피멍, 흉터. 생긴 지 얼마 안 된 시퍼런 멍부터 흐려진 갈색 자국까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생긴 상처를 보자마자 뜨거운 불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내 것인데….

 

무의식의 깊은 바닷속에서 떠오른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오소마츠가 아닌데도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지 못한 곳에서 멋대로 상처를 달고 돌아온 오소마츠에게 화가 났다. 오소마츠를 상처 입힌 불량배 놈들에게도 화가 났다. 이 이상 오소마츠의 몸에 상처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혼자서 싸우지 않기를 바랐다.

 

지켜주고 싶다.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이 커진 마음이 기도를 막았다.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을 메운 자신의 마음에 질식되어 죽을 것 같았다. 자신의 마음에 농락당해, 오소마츠의 손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자, “아파!”하는 외침과 동시에 머리에 꿀밤이 내려왔다. 씩씩거리며 손을 주무르는 오소마츠에게 사과하고 다시 치료를 이어갔다.

 

그일 이후, 오소마츠가 싸움을 할 때는 반드시 따라갔다. 귀찮다는 오소마츠의 말을 무시하고 토도마츠의 도움까지 구해가며 오소마츠가 몰래 싸우러 갈 때마다 따라붙었다. 싸움 횟수가 더해갈수록 실력도 늘었다. 이윽고 자연스럽게 오소마츠와 호흡을 맞추며 싸울 수 있게 되었다. 뭐, 잦은 싸움으로 연극부는 잘리고 말았지만.

오소마츠와 함께 싸우면서 알게 된 게 두 가지 있었다. 오소마츠는 자기 몸을 보호할 생각이 없다는 것과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앞에서 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사내놈들을 쳐내면서, 놈들이 걸어오는 공격은 대충 피한다. 맞아도 어쩔 수 없지 라는 식으로 싸우는 오소마츠를 전력으로 보호했다. 네 몸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타일러도 소용없었다. 아무리 내가 오소마츠를 보호해도 싸움을 거듭할수록 상처는 늘어갔다. 크게 화를 내도 오소마츠는 변하지 않았다.

오소마츠가 입은 부상을 치료하는 것은 내가 맡았다. 그 누구에게도 오소마츠의 상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닌 타인의 손이 닿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귀여운 동생이라도 해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싸움을 멈추지 않는 오소마츠 뒤로 악명이 쌓여갈수록 억울한 상황도 늘어갔다. 오소마츠가 관련된 싸움이 아니어도 선생들은 오소마츠를 탓했다. 때때로 사고를 친 동생들마저 오소마츠의 이름을 대서 악명을 더욱 부추겼다. 육둥이 중 누군가가 저지른 잘못인데도, 비난과 질책은 전부 오소마츠가 뒤집어썼다.

토도마츠가 여자애들에게 시비를 거는 양아치들에게 대들고, 오소마츠의 이름을 말해 불합리한 싸움이 일어나도. 그리고 그 싸움으로 팔 하나가 부러져도 오소마츠는 헤실헤실 웃었다. 절대로 울지 않았다.

깁스한 팔을 보며, “미안~” 하고 가벼운 사과를 건네는 토도마츠에게도 화내지 않고 바보처럼 웃었다. 쵸로마츠가 옆에서 토도마츠를 꾸짖지 않았다면 내가 토도마츠의 멱살을 잡았을 것이다. 오소마츠는 울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에서도 “할 수 없네―.” 하며 웃었다.

슬픔에 살짝 일그러진 그 미소가 심장을 파고들어 서리를 만들었다. 애처로운 미소를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짝이 아닌 단순한 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그것이 억울해 울었다. 사랑스러운데, 저렇게나 애달픈 미소가 사랑스러운데, 오소마츠는 내게 의지하지 않는다.

 

 

사랑스러운 짝, 내 단 하나의 운명.

 

하지만, 오소마츠는 그것을 거부했다. 내가 형제로 남아 있기를 요구했다. 히트가 아닌 오소마츠는 짝인 나를 원하지 않았다.

상처받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형제인 오소마츠조차 사랑해버린 나처럼, 오소마츠도 나를 사랑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내 일방적인 바람을 오소마츠가 들어주는 일은 없었다. 오소마츠는 내 마음조차 알지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오소마츠가 원하는 대로 형제를 연기했다. 오소마츠의 동생, 마츠노가의 차남인 카라마츠를. 형제 이상의 접촉은 하지 않고, 오소마츠가 나를 의지하지 않아도 추궁하지 않았다.

 

대신, 히트의 오소마츠는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기억을 잃고, 이성조차 날려버린 사랑스러운 내 짝을, 녹아 허물어질 정도로 사랑해주었다. 실컷 응석을 받아주고, 응석 부렸다. 나를 요구하는 팔을 기꺼이 따랐다. 내가 팔을 뻗으면 당연하게 내 품에 안겨주었다. 사랑한다고 귓가에 쉴새 없이 속삭이면 수줍게 웃으며 “나도” 하고 대답을 돌려주었다.

금방이라도 손끝으로 빠져나갈 것 같은 위태로운 사랑을 손에 쥔 채로 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9.


“정말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나? 오소마츠.”

카라마츠의 물음에 오소마츠가 입을 뻐끔거렸다.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외쳐야 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턱, 하고 막혀버린 숨에 가슴을 달싹거린 오소마츠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나를 불렀던 것도 기억나지 않는 건가…? 나를 원했던 것도? 내게 먼저 키스했던 것도?”

오소마츠를 응시하는 짙은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카라마츠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보며 희미하게 떠오른 기억을 붙잡은 오소마츠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짧은 기억의 파편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갔다. 죽기 직전에나 보인다는 플래시백이 눈동자 아래를 스쳤다.

껌뻑 죽을 정도로 질척질척하고 애달프게, 눈물이 날 정도로 진하게 사랑받고, 쾌락에 허우적거렸던 기억이, 감각이, 행복이, 되살아나 오소마츠를 감쌌다. 애타게 카라마츠를 불렀던 자신은 형이 아니었다. 카라마츠의 짝으로서, 운명의 상대로서 카라마츠를 부르며 그를 간절히 원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초점에 카라마츠가 맺혔다.

“오소마츠…!”

오소마츠의 어깨를 감싼 카라마츠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 카라마츠의 눈가를 떠난 눈물이 툭, 오소마츠의 얼굴에 떨어졌다. 피부에 닿은 미지근하고 축축한 눈물이 히트의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흐느끼는 카라마츠의 목소리 위로 오소마츠를 부르던 카라마츠의 애정 어린 목소리가 덧씌워졌다.

‘젠장.’

완전해진 기억에 오소마츠가 얼굴을 찡그렸다. “사랑한다, 오소마츠.”하고 고백하는 카라마츠의 마음을, 진심을 깨닫고 말았다.

‘나랑 같은 마음 아니었냐고, 나처럼…. 형제로만 봤던 거 아니었냐고….’

억울함과 함께 울컥 치솟은 눈물이 선을 그리며 흘러내렸다. ‘왜’라는 물음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카라마츠는, 카라마츠를 형제로만 생각했던 오소마츠와 달랐다.

오소마츠를 사랑하고 있었다. 짝인 오소마츠도, 형제인 오소마츠도, 한 사람의 인간인 오소마츠도,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해주고 있었다.

흘러내린 눈물이 하얀 이불 속으로 사라지듯이, 오소마츠의 안에 존재하던 무언가가 녹아내려 오소마츠의 안으로 스며들었다.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단단한 팔에 제 손을 올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

눈물로 엉망이 된 카라마츠의 눈가를 닦아주며 오소마츠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제대로, 사랑해줘?”

“읏!”

양팔을 활짝 벌리고 웃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가 숨을 삼키고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강하게 얼싸안은 카라마츠의 애정을 느끼며 오소마츠도 카라마츠의 등에 팔을 둘렀다. 아직은 형제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변하기까지 아마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훌쩍- 하고 콧물을 삼키는 카라마츠의 귓가에 오소마츠가 속삭였다.

“조금만, 기다려줘. 나도 제대로 사랑해줄게…. 너를, 카라마츠를.”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울음에 잠긴 목소리로 “아아.” 하고 대답했다. 어린아이가 울음 끝에 겨우 대답하는 듯한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10.


사랑해주길 바랐다. 진정한 사랑을 원했다. 내 모든 것을 인정해주는, 내 모든 것을 받아들여 주는 그런 사랑을. 스스로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자신을 깊이, 아주 깊이 사랑해주는 상대를 원했다.

바로 곁에 있었던 나의 짝, 단 하나의 사랑.

내가 원하는 대로 행복해 죽을 것만 같은 사랑을 부어준 짝.

 

그러니까, 자신에게 외치기 시작했어.

내 짝을 슬프게 하지 말라고, 나를 인정해달라고.

‘나’도 결국 너니까. ‘나’도 네가 행복하길 바라니까.

그러니까, 제대로 ‘나’를 사랑해주세요, 오소마츠.



* 마지막은 오메가인 오소마츠가 자신에게 보내는 말입니다ㅎ

* 이 단편의 후편을 유료 공개하고 있습니다. 후편은 성인 공개입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름 장마가 왔네요. 습하고 덥고, 그래서 그런지 자도 잔 것 같지 않네요.

 이럴 때일수록 몸관리를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ㅎ  제 블로그 찾아와주시는 모든 분들도 건강 꼭 챙기세요^^

* 이전 단편 「 다.(링크)」, 「 다.(링크)」에 이어지는 단편입니다.

  이전 단편을 보고, 이 단편을 보시는게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 24화, 25화 이후, 동생들이 자립한 후의 이야기 입니다.


* BAR마츠와 50제는 열심히 플롯 정리 + 소설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 내일은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공미포 2,766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드르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오소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부부 여행을 떠난 마츠요가 뭔가 놓고 간 것이 있나, 추측하며 거실문을 연 오소마츠 앞에 현관문을 닫고 들어온 사신이 멈춰 섰다.

 

 


“…카라마츠.”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동생을 부르자, 카라마츠가 빙긋이 웃으며 .” 하고 대답했다

오만 가지 생각과 질문이 머릿속을 유영한다

오소마츠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질문을 날려버리고 숨을 내쉬었다.


뭐야?”

혀까지 올라온 물음을 억지로 삼킨 오소마츠가 가까스로 내뱉은 한 마디에 카라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싱긋- 웃었다

자신의 질문의 어디가 우스운 걸까,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오소마츠는 가만히 카라마츠의 대답을 기다렸다.


데리러 왔다. 오소마츠.”

“….”

확실히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오소마츠는 눈을 크게 뜨고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 손을 내밀고 다시 한번 말했다.


함께 가자. 오소마츠.”

공중에 떠 있는 카라마츠의 손을 오소마츠가 내려다보았다

잿빛의 정장을 입고 어깨 한쪽엔 사무용 가방을 멘 카라마츠는 집에서 보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오소마츠가 만든 모형 정원을 제 발로 떠나 세상을 헤쳐나가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오소마츠는 뇌를 뒤흔드는 혼란에 그저 호흡만을 지속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스스로 이 집을 나갔잖아?

왜 돌아왔어?

함께 가자는 무슨 소리야?


혼란이 불쾌한 감정과 기쁨을 한데 혼동해 오소마츠의 위장으로 밀어 넣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위장이 꿈틀거리며 위액을 위로 올려보냈다

목구멍까지 치솟는 메스꺼움에 침을 삼킨 오소마츠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야.”

- 함께 있자. 오소마츠. 나는, 네가 아니면 안 돼.”

“….”

내 곁에 네가 없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오소마츠.”

어이,”

이어질 카라마츠의 말을 예상한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멈추려 목소리를 냈다

카라마츠는 자신을 부르는 오소마츠의 제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계속 듣고 싶었던 말.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제일 듣기 싫었던 말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바람을 잔인하게 짓밟고 사랑을 고백했다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숨이 멈췄다

숨 쉬는 법도 잊고 망연히 서 있는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여전히 오소마츠를 향해 뻗은 손은 거두지 않은 채 공중에 멈춰 있었다.


오소마츠.”

오소마츠는 시선을 내렸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가죽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


오소마츠는 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이 고개를 들고 카라마츠를 마주 보았다.


내가 싫다고 하면?”

“….”

오소마츠의 대답에 카라마츠는 예상했다는 듯이 은근한 미소를 피웠다

오소마츠가 바랐던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네가 무슨 대답을 하던, 내가 앞으로 할 행동이 변하는 일은 없다.”


카라마츠의 대답에 오소마츠는 이전 토도마츠가 질렸단 얼굴로 외쳤던 대사를 떠올렸다.



카라마츠 형은 진짜로, 나르시시스트를 뛰어넘은 사이코패스야!!”


막냇동생의 혜안에 나직이 감탄하면서 오소마츠가 픽- 마른 웃음을 흘렸다

이 집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카라마츠는 모든 것을 정해두었다

오소마츠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이 집을 떠나느냐, 혹은 카라마츠에게 억지로 끌려 이 집을 떠나느냐, 둘 중 하나였다

멈춰선 오소마츠가 지금 이렇게 망설이는 순간에도 세상으로 나간 동생들은 착실히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오소마츠에게서, 이 집에서 멀어지고 있다

오소마츠는 멈춰선 자신에게 다가온 유일한 존재를 눈에 담았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얼마나 지금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카라마츠가 자신을 위해 걸어가던 길을 되돌아와 자신의 앞에 섰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가시밭길

카라마츠의 손을 잡은 순간,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거친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 길을 함께 걸어가기 위해 카라마츠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함께 떠나자고 말했다

오소마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나온 거실과 바닥이 삐걱거리는 마루, 매일 아침 맛있는 밥 냄새가 새어 나오던 주방을 응시했다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그리운 집

오소마츠의 유일한 안식처

그리고 오소마츠가 멈춰선 장소.

 

오소마츠는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부동자세로 자신을 기다리는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이 손을 잡는 순간, 마츠노 오소마츠는 죽는다. 

가족이 가장 소중하고, 동생을 사랑하고, 육둥이인 자신이 전부였던, 장남 오소마츠가 죽는다.


카라마츠는 두 번 다시 이 집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

지금도 구두를 신은 발을 마루에 올리지 않는다

이방인처럼 현관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이 손을 잡으면, 이 집을 떠나면…. 

더는 오소마츠에게 있어 동생들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다정한 부모님도 중요치 않다

오로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오소마츠는 문득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한 번도 생각한 적도 없고, 마주한 적도 없는 자신이 너무나 두려웠다


동생을 사랑하지 않는 오소마츠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는 오소마츠

세상이 말하는 어른이 된 오소마츠

그리고, 카라마츠의 곁에 있을 오소마츠.


한 번도 꿈꾼 적조차 없는 자신이 무섭다

두렵다

아랫입술을 깨문 오소마츠의 귀에 부드러운 음성이 닿았다.


오소마츠. 내가 언제나 곁에 있겠다.”

“….”

그윽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숨을 삼켰다.

무섭다. 무섭지만, 무시할 수 없는 기대가 그곳에 있었다


카라마츠를 사랑하는 이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오소마츠.

카라마츠에게 마음껏 응석 부리는 오소마츠

카라마츠와 키스하고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오소마츠


오소마츠는 달뜬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까지 와서 이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오소마츠는 뜨거워지는 눈시울에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는 오소마츠를 보는 카라마츠의 눈빛에 환희가 서렸다

부들부들 잘게 떨리는 손끝이 살며시 카라마츠의 손가락에 닿았다.


오소마츠.”

“….”

자신의 부름에 대답하는 오소마츠의 손을 카라마츠가 강하게 움켜쥐고 잡아당겼다

우왓?!” 하고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오소마츠가 품에 안겼다

강하게, 아주 강하게,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오소마츠를 강하게 껴안은 카라마츠가 살포시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한다, 오소마츠.”

“…하아…. 나도, 사랑해. 카라마츠.”

달콤하게, 애절하게 떨리는 숨을 내뱉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등에 손을 두르고 대답했다

오소마츠의 어깨에 턱을 올린 카라마츠의 얼굴 가득히 희열이 넘실거리는 미소가 번졌다.


 

마츠노 가의 장남, 마츠노 오소마츠는 이 시간부로 죽었다.

남겨진 오소마츠는 오롯이 카라마츠의 것이다.


붉은빛이 감도는 다갈색의 눈동자도

달콤한 목소리도

사랑스러운 얼굴도

따끈한 체온도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도

애정을 갈구하는 욕망도

숨소리도

눈물도

미소도

전부, 전부 카라마츠의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에 왈칵 눈물이 솟아났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오소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오소마츠는 죽었다.

이 세상에 오직 단 한 사람, 카라마츠를 위해 죽어버렸다.





* 이 단편 시리즈(?)는 이걸로 끝입니다ㅎ  이후는 꽁냥되며 신혼 생활을 이어갈 카라오소만 남았네요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요즘 잠이 너무 늘었어요. 날씨가 꿀꿀해서 그런건지, 낮에도 시간만 나면 잡니다ㅠㅠ 뭐, 잠 깰 수 있는 좋은 방법 없나요...ㅠ

  커피를 마셔도 카페인이 저를 거부해서 잠이 안 깨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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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오소 들고 왔습니다!!

  아, 힘들었다ㅠㅠ


* 이번 단편 쓰면서 제가 손이 빠른 편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어요...


* '이치마츠 사변' 이후의 이야기입니다ㅎ  약간 개그물?


* 공미포 11,544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아니라고오오―――!!!”

카라마츠의 처절한 외침을 뒤로하고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조용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모든 일은 마음속에 묻고 무덤까지 가져가자고.

 

 

 

 

 

 

2.

 

~! 심심해애~!!”

바닥에 엎드려 발을 굴리다 못해 기어이 바닥을 구르기 시작한 오소마츠가 탄식했다

마미의 찬란한 은혜(용돈)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날이 멀다 하고 은색의 축복(파칭코)를 탐한 오소마츠의 수중에 남은 그린()은 제로였다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한숨을 내쉬는 오소마츠를 몰래 거울 너머로 응시했다

오늘도 쏘 큐트-하다

뒤통수에 남은 잠버릇이 중력을 무시하고 솟아나 있는 것이 귀엽다

가지고 있는 왁스와 빗으로 정리해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거울을 보는 척을 이어갔다.


하아~, 심심해….”

엎드린 채로 팔을 겹치고 얼굴을 묻은 오소마츠가 다시 중얼거렸다

힘없이 늘어진 목소리가 어쩐지 구슬프게 들린다

심호흡과 함께 거울을 내리고 오소마츠를 그윽한 목소리로 불렀다.


오소마츠.”

~?”

함께 세상의 무한한 러브를 푸른 강에 외치러 가지 않겠나?”

~? 그거 그냥 다리에 멍청히 서 있는 것뿐이지?”

그게 싫다면 피시의 마음을 훔치러 가는 것은 어떤가?”

낚시터인가….”

오소마츠가 눈을 굴리며 고민했다

여기서 낚시터 입장료를 내가 내겠다고 하면 오소마츠는 분명 가겠다고 하겠지

할 수 없다는 투로 돈은 내가 내겠다고 말하려던 찰나, 거실 구석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울렸다.


“…조금 있다가 고양이 봐주러 갈 건데…. 오소마츠 형은?”

고양이?”

최근에, 아기 낳은 녀석 있으니까.”

~, 아기 고양이인가….”

조금만 더 하면 오소마츠와 함께 데이트를 할 수 있었는데, 은근슬쩍 끼어든 이치마츠에게 시선을 돌렸다

반쯤 감은 눈은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탁했지만, 그 시선은 오소마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작은 목소리로 우응~” 하고 입을 삐죽인 오소마츠가 작게 .” 하고 소리를 냈다

뭔가를 생각해낸 것처럼 눈을 반짝인 오소마츠가 슬쩍 나와 이치마츠에게 시선을 주고 고개를 돌려 아무것도 없는 정면을 응시했다.


아냐, 됐어. 나는 집에 있을래.”

!?”

“….”

둘이 다녀오면?”

““?””

대체 뭐가 좋아서 이치마츠와?! 

황당한 얼굴로 시선을 돌리면 이치마츠도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 그럼 오소마츠도 껴서 셋이 다니는 건 어떤가?”

~? 나 끼면 의미 없잖아.”

“…으응~?”

눈썹을 찌푸리고 툭 던지듯 내뱉은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를 보며 그렇지?” 하고 동의를 구했다

오소마츠의 질문에 이치마츠는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 하고 신음했다

이치마츠의 신음을 대답으로 받아들인 오소마츠가 다시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 귀엽다….


봐봐, 이치마츠도 싫다잖아~. 아무리 둘이 있는 게 부끄러워도 횽아를 거기 끼우지 말아줘용~”

묘한 위화감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이치마츠도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오소마츠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가 이상하다

게다가 오소마츠의 태도가 굉장히 신경 쓰인다

팔을 뒤덮은 이유 모를 소름을 무시하고 오소마츠에게 말을 걸려 입을 연 순간이었다.


형들 있어?”

~, 톳티-. 어서 와~”

…. 왜 하필이면 이 사람들이….”

오소마츠의 환영도 무시한 토도마츠가 방을 쭉 둘러보며 우리들의 얼굴을 확인한 후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근심 어린 얼굴로 방에 들어와 앉은 토도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뭐야, 왜 그래? , 혹시 여자한테 차였어? 톳티-”

안 차였거등!?”

오소마츠의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에 발끈하며 외친 토도마츠가 다시 푹- 한숨을 내쉬곤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들었다

스마트폰 화면을 가볍게 두드려 라인(LINE) 내용을 확인한 토도마츠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있지…. 미팅, 빈 자리 하나 생겼는데….”

! 내가 갈래!!”

머뭇거리는 토도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재빨리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붕붕 팔이 떨어져라 흔들며 반짝이는 눈으로 자길 찍어달라고 호소하는 오소마츠에게-굉장히 귀여웠다

뭔가, 저건. 초딩인가? 로리, 아니 쇼타인가!?


토도마츠가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단호히 오소마츠 형은 안 돼!” 하고 선언하는 토도마츠에게 오소마츠가 !!”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을 동동 구르며 항의하는 오소마츠를 무시한 채, 토도마츠가 빙글 몸을 돌려 나를 응시했다.


할 수 없으니까, 이 중에서 그나마 나은 카라마츠 형.”

, 오오?”

같이 갈 거지?”

, 토도마츠으!!”

토도마츠를 따라 갈 생각은 없었지만-지금 내가 여기서 자리를 비우면 자동적으로 오소마츠는 이치마츠와 나가게 되니까.- 순수하게 나를 선택해준 것이 기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카라마츠. 비 쿨- 이다

숨을 들이마시며 눈물을 억누르고 토도마츠에게 멋진 거절의 말을 찾고 있을 때, 바닥에 뒹굴며 우리 둘을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당연하단 투로 말했다.


, 카라마츠는 데려가면 안 돼.”

? ?”

있어. 그러니까 카라마츠는 안 돼.”

!?”

오소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얼굴을 한껏 찌푸리며 되물었지만, 오소마츠는 암튼 안 돼라는 말을 반복했다

결국 오소마츠와의 입씨름에서 진 토도마츠가 칫- 하고 혀를 차더니 이치마츠를 보며 말했다.


그럼…. 이치마츠 형.”

이치마츠도 안 돼.”

?! !!”

안 돼~”

오소마츠 형, 지금 형이 못 간다고 다른 형들도 못하게 막는 거야? ? 뭐야? 질투?”

아니거든!! 이치마츠나 카라마츠나 미팅 나간다고 여친 사귈 수 있는 녀석들이었으면 진작에 생겼거든!? 질투 아냣!!!”

그럼 왜 안 된다는 건데!”

~~~, 진짜! 암튼 저 녀석들은 안 돼!”

장남의 특권을 이용해 명령하듯 외치는 오소마츠에게 토도마츠가 어이없단 눈길을 보내며 어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오소마츠의 극심한 반대에 나와 이치마츠는 미팅 후보에서 제외되고, 토도마츠는 웬일로 빨리 귀가한 쵸로마츠를 끌고 집을 나섰다.

남겨진 나와 이치마츠는 잔망스럽게 발을 흔들며 바닥에 엎드려 만화책을 보고 있는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위화감이 서서히 뚜렷한 형태를 취한다

토도마츠에게 나와 이치마츠는 데려가지 말라 외치며 우리를 번갈아 보던 오소마츠의 눈빛에 문득 잊고 싶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치마츠 사변이라고 일컬어지는 어떤 사건을…. 

그것은 이치마츠도 마찬가지인지, 창백해진 얼굴로 입을 뻐끔거리며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대로 놔둬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거울을 내려 놓고 오소마츠에게 다가가 만화책을 뺏어 들었다

곧바로 얼굴을 팍 구기며 무슨 짓이야!?” 하고 성난 목소리로 외치는 오소마츠에게 전부 오해라고, 나와 이치마츠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전했다

어느새 다가온 이치마츠도 내 해명에 맞추어 , !”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마츠치고는 강한 자기 주장에 오소마츠도 한껏 일그러뜨리고 있던 표정을 풀고 가만히 우리를 응시하더니, “알겠어.” 하고 가볍게 내뱉었다

내게로 손을 뻗어 만화책 돌려 줘.” 하고 투덜대는 오소마츠의 귀여움에 목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신음을 삼키고 순순히 만화책을 돌려주었다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이치마츠에게도 알겠다니깐?” 하고 퉁명스레 말한 오소마츠가 다시 바닥에 엎드려 만화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낙관은 이후 이어지는 해프닝에 묻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3.

 

아침 먹으렴~, 백수들아~”

마미의 정겨운 외침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하품을 했다

세면실로 들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오늘도 퍼펙트한 자신의 모습을 감상했다

중간에 짜증나니까, 다른데 가서 해줄래?” 하는 토도마츠의 불평이 들린 것 같았지만

실컷 머리를 매만지고 거실에 들어갔다

작게 하품을 하는 쵸로마츠 옆에 앉은 토도마츠가 젓가락을 손에 들었다

쥬시마츠는 이미 활기차게 반찬을 입에 옮기고 있었다

나른한 표정으로 이치마츠가 젓가락을 드는 것을 보며 자리에 앉은 순간, 아직 비어있는 자리가 있는 것을 깨달았다.


형님은?”

아직 안 일어난 것 같던데. 놔둬, 그 망할 장남은.”

혀를 차며 대답한 쵸로마츠에게 쓴웃음을 지어주고 몸을 일으켰다. “

오소마츠 형한테 가려고?” 하고 묻는 쵸로마츠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후, 거실을 나와 계단을 올랐다

끼익- 하고 낡은 계단의 비명을 들으며 다섯 계단 정도 올랐을 즈음, 등 뒤에서 계단의 비명이 또 들려왔다.


“…, 이치마츠도 갈 건가?”

? 개똥마츠 너랑은 상관 없잖아?”

졸린 눈을 비비며 내 뒤를 이어 계단을 올라온 이치마츠가 날카롭게 노려보며 내뱉은 낮은 목소리에 숨을 삼키고 적당히 대답했다

모처럼 오소마츠의 잠든 얼굴을 독차지할 기회가 저 멀리 날아가는 환상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고 이치마츠와 나란히 계단을 올랐다.

 

끼익- 하고 울리는 나무판자 소리 가운데, 삐걱- 하고 톤이 다른 소리가 섞였다

순식간에 기울기 시작한 이치마츠의 몸에 놀라 괴성을 지르며 계단 아래로 추락하려 하는 이치마츠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 !”

, 으아악!!!”

급히 몸을 돌려 이치마츠를 붙잡느라 중심을 잃은 내 몸이 이치마츠와 함께 중력에 이끌려 휘청거렸다

아슬아슬하게 이치마츠를 붙잡고 있는 몸을 지탱하던 발가락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다시 중심을 잡으려고 했던 내 노력을 훌륭하게 배신한 낡은 계단이 삐걱- 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말았다.

우와아악!!” 하고 한심한 외침과 함께 나와 이치마츠의 몸이 한데 굴렀다

쿵쾅쿵쾅 하고 온 집안을 울리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계단을 굴러 떨어진 나는 계단 아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벽에 거하게 머리를 부딪혔다

어릴 적 보았던 만화에 나오는 효과처럼 별이 번쩍이며 머리 위를 맴도는 것 같았다

- 하고 울리는 머리에 퍼지는 둔통에 신음하며 나도 모르게 꽉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바로 코 앞에 고통으로 일그러진 이치마츠의 얼굴이 보였다

?” 하고 놀라며 눈을 깜빡이면서 상황을 살폈다

계단에서 굴러 바닥에 처박힌 이치마츠의 위에 내가 올라타고 있었다.

맞닿은 몸과 민망한 자세에 절로 얼굴이 뜨거워졌다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벽에 부딪치면서 가벼운 뇌진탕이 왔는지 내 의지와 달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크으….” 하고 신음하자,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이치마츠가 험악한 얼굴로 나를 쏘아보았다.


“…너네 뭐하냐?”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다시 몸을 일으키려 시도하던 나와 빨리 비키라며 나를 때리던 이치마츠가 멈췄다

잘못 들었기를 간절히 바라며 숨을 멈춘 우리들 앞에 하늘색 잠옷을 입은 오소마츠가 섰다

순식간에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와 잠옷을 적셨다

대체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로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자,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하던 오소마츠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거실로 발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현기증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 하고 온몸의 혈류가 발 아래로 끌려 내려가는 느낌에 재빨리 몸을 일으켜 거실로 들어가려는 오소마츠의 팔을 붙잡았다.


, 오소마츠!! 틀리다!!”

? 뭐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태연한 얼굴로 묻는 오소마츠를 벽에 가두고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오해다!! 나랑 이치마츠는, 절대 그런 관계가…!!”

, 그래. 알겠엉, 알겠엉~. 횽아, 밥 좀 먹자.”

울상이 된 나를 보며 한숨을 내뱉듯 말한 오소마츠가 거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디로 보나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리는 오소마츠의 태도에, 다시 오소마츠에게 매달려 다시 아니라고, 오소마츠으으으으~!!!” 하고 외쳤다.

 

이치마츠가! 이치마츠가 계단에서 떨어지려는 걸 붙잡다가 함께 떨어진 것뿐이다!!”

, 그래. 알겠다니깐~? 횽아, 다 알아 먹었어!”

젓가락을 입에 물고 이미 식사를 마친 동생들이 남긴 반찬을 자기 가까이로 끌어당기는 오소마츠의 옆에 앉아 해명해도, 오소마츠는 단조로운 대답만 돌려보냈다

계단에서 떨어지면서 다쳤는지 허리에 손을 짚고 낑낑대며 거실에 들어온 이치마츠도 내게 가세해 오소마츠에게 나직이 말했다.


오소마츠 형, 개똥마츠 말 진짜니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이치마츠에게 슬쩍 눈길을 준 오소마츠가 다시 식사에 열중하며 알겠어.” 하고 대답했다.

가벼운 대답에도 우리에게 보여준 미소는 평소와 같은 다정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 미소에 떨떠름한 마음을 무시하며 안도하고 오소마츠와 함께 식사를 재개했다.

 

 

 

 

 

 

4.

 

친구에게 줄 새 멸치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이번엔 좀 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야겠다고 홀로 다짐하며 방문을 열자,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조용한 햇살이 나를 맞이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이 햇빛을 머금고 손을 뻗었다

활짝 열린 창문에서 방 안으로 흘러 들어온 햇빛에 평온한 기분이 들어 남몰래 미소를 짓고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디에 멸치를 숨겨야 오소마츠 형이 빼먹지 않을까 생각하며 방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녹색 소파에 늘어져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또 개똥마츠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확인했다.


, 오소마츠 형이다.


침까지 질질 흘려가며 세상 모르고 잠든 얼굴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창문 사이로 비치는 햇살처럼 부드럽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평온한 얼굴에 피식- 미소를 흘리며 멸치를 바닥에 내려놓고 소파 옆에 앉았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두루마리 휴지를 집어 들어 손에 감아 뜯어냈다

볼을 흘러내리는 침을 오소마츠 형이 깨지 않게 살며시 닦아주고 벌려진 턱을 슬쩍 들어올리자, “음냐….” 하고 판에 박힌 잠꼬대를 하며 오소마츠 형이 입을 다물었다

쩝쩝 입을 다시는 것이 뭔가 먹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쵸로마츠 마냥 처진 눈썹과 감긴 눈꺼풀 아래 자리잡고 있을 맑은 눈동자를 떠올리며 은근한 미소를 짓고, 소파에 턱을 괴었다

방 안을 맴도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앞머리를 살짝 쓸어 올려주자, 뭐가 좋은지 얼굴 가득 배시시 미소가 퍼졌다

정말이지, 이렇게 잠든 모습을 보면 오소마츠 형이 우리들의 장남이라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고 만다

평온하게 잠든 얼굴은 꼭 배불리 밥을 먹고 행복한 낮잠을 자는 어린아이를 닮았다

뽀송뽀송한 뺨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면 꼭 아기의 젖내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더운 기온에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 그리고 잠든 오소마츠 형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 영원히 이어지길 바랐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도록 오소마츠 형의 잠든 얼굴을 눈에 고정하고 뇌 깊숙이 박아 넣었다

기억이 흐릿해질 정도로 시간이 흘러서, 죽기 직전의 순간이 와도 이 얼굴을 기억할 수 있도록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깊숙이 새기고, 오소마츠 형이 내뱉는 숨결을 만끽했다.

 

끼익- 하고 계단의 나무 판자가 울리는 소리에 행복한 시간이 끝이 났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몸을 일으켜 온갖 잡동사니가 처박혀 있는 벽장 속에 멸치를 넣고 책장에서 적당한 만화책을 꺼내 들고 창가로 이동해 엉덩이를 내렸다.


아임 홈! 마이 브라더-!”

, 하필이면 가장 보기 싫은 녀석이 돌아와버렸다

! 하고 강하게 혀를 차자, 몸을 움찔거린 개똥마츠가 나를 보며 , 이치마츠…. 있었나.” 하고 물었다.


보면 알잖아. ? 있으면 안 돼?”

아니, 그건 아니지만….”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말꼬리를 흘리며 식은땀을 흘린 개똥마츠 뒤로 오소마츠 형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으응….”

개똥마츠의 쓸모 없는 목소리에 오소마츠 형이 몸을 둥글게 말았다

다시 쯧! 하고 혀를 찼지만, 오소마츠 형에게 시선을 고정한 개똥마츠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일은 없었다

가만히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던 개똥마츠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해 벽장에서 얇은 담요를 하나 꺼냈다.

어릴 적 함께 덮었던 담요에 아련한 그리움을 느끼며 개똥마츠가 하는 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담요를 대충 품에 안고 오소마츠 형에게 다가간 개똥마츠가 담요를 펼쳐 오소마츠 형에게 살포시 덮어주었다.


? 뭐야, 저건?

개똥마츠 나름의 상냥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화가 치밀어 올라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개똥마츠의 무릎에 멋지게 니킥을 먹였다.

무릎의 뒤쪽, 접히는 관절을 맞은 개똥마츠가 우왁!” 하고 비명을 질러 기뻐하는 것도 잠시

접힌 무릎에 균형을 잃은 개똥마츠가 뒤로 넘어지면서 허우적대던 손이 내 후드를 꽉 쥐었다

?” 하고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개똥마츠의 손에 쥐인 옷자락을 본 순간, 개똥마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몸이 기울었다.

가까워지는 바닥과 개똥마츠를 보며 머리 끝까지 치솟는 분노에 뿌득- 이를 갈았다.

 

! 소리를 내며 넘어진 몸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딱딱한 바닥이 아닌 개똥마츠의 몸 위에 안착했다

넘어지면서 자동적으로 뻗은 손이 개똥마츠의 가슴에 올라가 있다는 점은 차치해도, 내가 무사하다는 점에서 안도했다

온몸을 그대로 바닥에 들이박은 개똥마츠가 등과 뒤통수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것도 볼만했다

- 하고 혀를 차며 개똥마츠의 몸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담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따가운 시선이 등 뒤에서 박혔다.


“…그런 건 나 없을 때 해줄래?”

, 젠장

속으로 온갖 욕을 쏟아내며 끼기긱, 하고 뻣뻣하게 움직이는 목을 돌렸다

경멸하는 눈은 아니었지만, 지극히 황당하단 눈길로 나와 개똥마츠를 응시하는 오소마츠 형의 표정에서 평소와 같은 장난스러운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왜 또 이런 오해 받을 상황이…. 

한탄하며 섣불리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나와 개똥마츠를 응시한 오소마츠 형은 어휴-” 하고 가벼운 한숨을 흘리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터벅터벅 방문을 향해 걸어가는 오소마츠 형을 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다급히 뻗은 손이 오소마츠 형의 바지를 붙잡자마자! 하는 소리와 함께 오소마츠 형이 시원하게 바닥에 정면으로 넘어졌다

코를 세게 부딪쳤는지 빨개진 코를 문지르며 오소마츠 형이 주먹 쥔 손을 들어올렸다.


, 프잖아!! 이 자식아!!!”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개똥마츠를 발로 차 기절시킨 후, - 노성을 내지르는 오소마츠 형에게 기어가 금방이라도 휘두를 것처럼 들어올린 주먹을 감싸 쥐었다.


, 아냐…. 오소마츠 형.”

?”

개똥마츠가 넘어지면서 내 옷을 잡아서…. 그러니까, 아냐…!”

, 오오…?”

오해니깐!!”

두 손으로 오소마츠 형의 주먹을 꽉- 쥐고 어울리지 않게 언성까지 높여가며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평소에 말이 부족한 탓에 이럴 때 알맞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자신의 빈약한 어휘력을 저주하며 오소마츠 형에게 알아달라는 필사의 눈빛을 보냈다

한쪽 눈썹을 찡그리고 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오소마츠 형은 이내 푹- 한숨을 내쉬더니 , 정말. 알겠어~” 하고 말하며 내 손에 감싸있던 자신의 주먹을 흔들어 빼냈다

알겠으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 부담스러~” 하고 장난스럽게 내뱉은 목소리는 어느새 평소의 톤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힛- 하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코 밑을 문지르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에 진심으로 안심하면서 이 모든 소동의 원흉이자, 바닥에 기절해 쓰러져 있는 개똥마츠를 흘겨보았다.

 

 

 

 

 

 

5.

 

신은 우리를 저주하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그 이후로도 웃지 못할 사건들이 이어졌다

우연히 아침 일찍 일어나 세면실에서 마주친 개똥마츠를 실컷 적의에 가득 찬 눈으로 노려보고 있으면 그 옆을 지나가던 오소마츠 형이 오우, 뜨겁넹~” 하고 웃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던가

형제가 함께 TV를 보다가 옆에 앉은 개똥마츠를 쥬시마츠라고 착각해, 개똥마츠의 어깨에 기댄다던가

지붕에서 그 같잖은 기타나 치던 개똥마츠가 지붕에서 떨어졌는데, 하필 마침 현관을 나오던 나와 부딪쳐 넘어진다던가…. 

생각만해도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일들이 연속되고, 또 그 때마다 오소마츠 형과 마주쳐 우리를 보는 그 요상한 눈빛을 받아내야 했다

뱃속에서 시작해 온 내장을 휘감아 치솟는 짜증에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다

무릎에 얌전히 앉아있는 에스퍼 냥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추스르려 해도 한계라는 것이 있다

들끓는 울화에 뜨거워진 숨을 후- 하고 내뱉으며 눈을 감고 있는데, 드륵- 하고 현관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OH…. 이치마츠뿐인가?”

“…개똥마츠, 너 당분간 집에 오지 마.”

!? 와이!?”

? 그야 꼴 보기 싫으니까. 나한테 10m 이상 가까이 접근하지 마.”

, 그럼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만!?”

그러니까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 그런!!”

나가.”

무겁게 가라앉아 칼칼하게 퍼지는 목소리에 개똥마츠가 억울하단 얼굴로 눈물을 글썽였다

성큼성큼 거실 안으로 걸어와 내 앞에 주저앉은 개똥마츠가 짜증나는 목소리로 징징대기 시작했다.


오소마츠의 오해는 내 잘못이 아니지 않나, 이치마츠으!! 나도 억울하다!! 왜 자꾸 그런 상황에 놓이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치마츠도 좀 더 적극적으로 오소마츠에게 해명을…”

지겨운 말을 늘어놓으며 울먹이던 개똥마츠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잡았다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는지 잡힌 어깨가 아파 !” 하고 신음하며 얼굴을 찌푸리자, 내 무릎에 앉아있던 에스퍼 냥이가 나를 올려다보더니 뭔가를 다짐한 듯한 표정으로 개똥마츠에게 달려들었다.


으와앗!!!”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달려든 에스퍼 냥이에게 놀라 벌떡 일어난 개똥마츠를 에스퍼 냥이가 온 힘을 다해 물었다


개똥마츠의 가랑이를


어지간히도 세게 물었는지 개똥마츠가 날뛰는 와중에도 가랑이에 대롱대롱 매달린 에스퍼 냥이를 보며 헛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남자의 급소를 강타하는 고통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서 몸을 부르르 떨며 날뛰는 개똥마츠에게 다가갔다

저러다가 에스퍼 냥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안되니까

가까스로 에스퍼 냥이의 허리를 잡고 개똥마츠에게서 떼내려는 순간, 고통으로 완전 패닉이 된 개똥마츠가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에스퍼 냥이가 물고 있는 청바지를 성급히 풀어 무릎 아래로 내린 개똥마츠는 나와 내가 붙잡고 있는 에스퍼 냥이 눈앞에서 하반신이 팬티 한 장이라는 몹쓸 모습이 되었다.


“…쳐죽인다….”

와이!? ,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저도 제 모습이 당황스러운지 바지를 도로 끌어올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울먹이는 개똥마츠가 아팠다고!!” 하고 외치는 것도 무시하고 눈을 돌렸다.

이 이상 저 꼴을 봤다간 아침에 먹은 밥을 토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남아있던 정나미도 뚝 떨어질 것 같았다.


? 잠깐, 지금까지의 패턴을 보면….

설마….


누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말을 만들어낸 걸까

그 말을 증명하듯, 오소마츠 형이 거실 문을 열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와우.”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거란 절망과 동시에 무표정으로 이상한 감탄사를 내뱉은 오소마츠 형이 조용히 거실 문을 닫았다

오소마츠 형과 눈이 마주친 나와 개똥마츠가 닫힌 문을 보며 침묵을 지켰다. 문 너머에서는 그 어떤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계 초침이 똑딱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서로 눈을 마주한 나와 카라마츠가 천천히 조금 전 일어난 일을 다시 되돌렸다.


, 그러니까. 개똥마츠가 팬티 한 장에, 내가 그 앞에 앉아있는 상황인거지?

, 과연. 그렇군. 그렇군….


상황을 모두 이해한 나와 개똥마츠가 일제히 벌떡 일어나 거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거실 문 앞을 떠나지 않고 있던 오소마츠 형이 놀라 어깨를 튀며 우리를 응시했다

빨리, 해명해야…!! 

오소마츠 형의 손을 붙잡고 오해라고 말하려는 순간 오소마츠 형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내 손을 쳐내고 우아아아아아아!!!” 하고 괴성을 내지르며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거 절대로 오해한 채잖아!!!


나답지 않게 외치며 슬리퍼를 대충 발에 끼우고 오소마츠 형을 따라 뛰었다

개똥마츠는 그제야 자기 하반신을 확인하고 , 잠깐 이치마츳!!” 하고 나를 불러 세웠지만, 개똥마츠 따위 알까 보냣

지금은 오소마츠 형의 오해를 푸는 게 더 중요하다고!!!


형제 중 쵸로마츠 형에 이어 2번째로 발이 빨랐던 오소마츠 형답게 오소마츠 형은 이미 저-만치 멀리에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뛰어도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가는 거리에 거친 숨을 내뱉으며 발을 멈췄다

탁탁 소리를 내며 다가온 개똥마츠가 다급히 오소마츠 형의 행방을 물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개를 좌우로 젓는 것뿐이었다.

, 하고 한숨과 함께 혀를 찬 개똥마츠가 발을 옮겼다.


어디로 가려고?”

오소마츠가 갈 만한 곳은 다 찾아봐야지.”

망설임 없이 발을 옮기는 개똥마츠를 뒤따랐다

해가 뉘엿뉘엿 산 너머로 가라앉고 있었다

길게 그림자를 늘이며 앞서 걷는 개똥마츠의 등을 보면서, 빨리 오소마츠 형을 찾아내 이 구역질 나는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6.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는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오소마츠를 찾았다

오소마츠가 있을 법한 곳들을 샅샅이 뒤져도 오소마츠의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집과 번화가 사이에 있는 공원에서 발을 멈춘 카라마츠와 이치마츠가 답답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여실히 드러내며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파칭코에도, 경마장에도, 공원에도, 강가에도 오소마츠는 없었다

이제 갈만한 곳은 다 돌아봤다며 스마트폰을 만진 이치마츠가 형제들 중 가장 오소마츠를 잘 이해하고 있는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치마츠, ?

쵸로마츠 형, 오소마츠 형 못 봤어?”

『아까 오늘은 늦게 들어온다고 연락은 왔었는데….

쵸로마츠의 말에 이치마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급히 오소마츠가 어디 있냐고 묻자 폰 너머에서 쵸로마츠가 『글쎄….』 하고 말을 흐렸다.


짐작 가는데 없어?”

『음….

“….”

『아마 옆 동네 선술집에 있을걸?

알겠어!! 고마워, 쵸로마츠 형!!”

『에?? 네가 고맙단 말을 다하고, 대체 무슨 일ㅇ

쵸로마츠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은 이치마츠가 뛰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도 이치마츠가 향하는 곳에 오소마츠가 있는 것을 눈치채고 곧바로 이치마츠의 뒤를 쫓았다.

 

 

 

옆 동네 선술집

술 맛이 좋다며 오소마츠가 파칭코에서 땄을 때, 종종 형제들을 이끌고 왔던 곳이다

뜀박질로 거칠어진 호흡을 다듬으며 술집 문을 연 이치마츠가 두리번거리며 오소마츠를 찾았다

술잔을 쥔 채로 테이블에 쓰러져 있는 붉은 후드를 발견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후- 한숨을 내쉬며 오소마츠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허리를 내렸다.


오소마츠 형.”

크지 않은 이치마츠의 목소리는 곧 떠들썩한 술집의 잡음에 섞여 사라졌지만, 오소마츠의 귀에는 확실히 닿았는지 게슴츠레 눈을 뜬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 이치마츄당~”

어지간히도 취했는지 이리저리 돌아가는 혀를 필사적으로 움직여 이치마츠를 부른 오소마츠가 헤실 웃었다

이어 테이블에 다가온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다시 빵긋 웃었다.


-마츄도 왔어~? 우헤헤~”

뭐가 웃긴지 키들거리며 어깨를 떤 오소마츠가 휘청거리는 상체를 일으켜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너네 마랴~, 아무리 내갸 입이 싸-지만 그렇게 필샤젹으로 슘기쥐 아나도 되자나~? 말 안햔다고 해는데에…. 형제지만 너네가 조타면 나도 별로 샹관 업다고~. ~~금 외롭지먄…. 나는 너네가 조으면 조으니까아~”

“…오소마츠 형….”

이치마츠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오소마츠를 불렀다

대체 이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시원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형님, 정말로 우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이상하게 그런 상황이 일어났지만, 정말로 오해다! 적어도 나는 형님을, 오소마츠를 좋아한다!!”

우응~, 나도 카-마츄 조아~”

그게 아니다….”

자신의 마음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카라마츠가 고개를 떨궜다

술에 잔뜩 취해 해롱거리는 오소마츠는 또 다시 너네가 조아하는 거, 아무한테도 말 안한다궁~” 하고 쐐기를 박듯 내뱉고는 , 잠온당….” 하고 테이블 위에 쓰러졌다

색색- 평온히 잠든 오소마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 이치마츠가 뭔가를 결심한 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도 의미심장한 얼굴로 이치마츠와 시선을 나누곤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가 완전히 쓰러진 오소마츠의 팔을 어깨에 둘러메고 일으키는 동안 오소마츠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계산을 마친 이치마츠가 앞서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섰다

화려한 색으로 빛나는 간판이 번쩍거리는 거리 속으로 들어가는 이치마츠의 뒤를 오소마츠를 업은 카라마츠가 따라 걸어갔다.

 

 

 

 

 

 

 

7.

 

, ~?”

등에 맞닿은 뜨끈한 온기와 몸을 더듬는 감촉에 오소마츠가 눈을 떴다

분명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자신이 푹신한 침대 위에 올라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오소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카라마츠?”

.”

, 이치마츠?”

.”

너네, …, 뭐해?”

오소마츠의 등 뒤에 앉아서 오소마츠의 상체를 안고 있는 이치마츠와, 오소마츠 앞에 앉아 오소마츠 다리를 껴안고 있는 카라마츠를 부르자, 태연한 얼굴로 대답한 카라마츠와 이치마츠가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술기운에 몽롱했던 정신이 순식간에 이성을 되찾고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를 썼다

오소마츠는 떨리는 목소리로 제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 동생들을 불렀다.


, 뭐하려고?”

오소마츠, 우리는 계속 말했다.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 어어??”

나쁜 건 오소마츠 형이니까.”

, 에에??”

카라마츠에 이어 이치마츠가 가볍게 오소마츠를 책망하듯 내뱉은 말에 오소마츠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이해되지 않는단 얼굴로 신음했다.


, 잠깐…. 일단 여기 어디!?”

““러브 호텔””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의 대답에 오소마츠가 경악해 외쳤다.


!?!?!? 뭐가 좋아서, 사내 새끼 셋이서 러브 호텔에 와 있는 건데?! 뭐 하려고오!?”

러브 호텔에 왔으면 할 일은 하나지. 오소마츠 형.”

히힛- 하고 섬뜩한 웃음을 흘린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귓가에 살포시 속삭였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귓불에 닿는 축축한 숨결에 오소마츠가 어깨를 떨었다.


오소마츠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왔다.”

오소마츠의 다리를 들어올려 제 옆구리에 끼우고 오소마츠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온 카라마츠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제야 동생들의 생각을 읽은 오소마츠가 고개를 거세게 흔들며 아니, 믿어!! 믿으니까!!” 하고 외쳤지만, 이미 기차는 지나간 뒤였다.

 

 

그날 밤, 오소마츠는 가끔은 보이는 것보다 동생들의 말을 믿어야 할 때도 있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





* 다 쓰고 나니깐,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너무하다는 걸 깨달았다ㅎ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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