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전에 엄청 짧은 단편 하나 더 올립니다.


* 정말 짧아요...ㅎㅎ


* 조금 많이 추상적입니다...ㅎ


* 카라오소이지만 카라오소인가 싶을 정도...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흰 공간을 본 순간, 깨달았다.


, 이것은 꿈이다, 라고.


정말로 새하얀 공간, 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도 알 수 없는 공간은 평평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목적도 없이 새하얀 공간을 천천히 걸어간다

대체 나는 왜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형제들에게 텅 비었다는 말을 들어도 꿈 속까지 이 지경일 이유는 안 된다

나 스스로는 제법 생각이 많다고 평가하고 있고.


대체 이건….”

한탄하듯 내뱉으며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본래 푸른색이어야 할 하늘조차 새하얗다

언젠가 토도마츠가 사람을 사방이 새하얀 방에 집어넣으면 미쳐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이런 꿈을 꾼다는 것은 나도 미친 것인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발을 옮긴다

걸어도 걸어도 보이는 것은 백색의 평지

무언가가 나오는 일도 없고, 들려오는 소리조차 없다

오직 내 숨소리와 맨발이 만들어내는 찰싹대는 소리만이 고막을 울린다.


이대로 걷기만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발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

내 오른편에 작은 물체 하나가 보였다

새하얀 공간에 아프도록 눈에 띄는 붉은색에 놀라며 발을 그쪽으로 옮겼다

저 붉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악을 경우 시체나 괴물이라고 해도 이건 꿈이다

깨어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발을 멈추지 않고 붉은 물체를 향해 걸어갔다.

 

 

….”

투명한 유리병에 꽂힌 붉은색의 꽃 한 송이

꽃의 특징을 보아 장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꽃이 여기에…?”

어쩐지 만질 염두는 나지 않아 가까이서 이리저리 꽃을 관찰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단순한 꽃에 불과한 붉은 장미는 물기를 잔뜩 머금고 촉촉한 꽃잎을 화사하게 피우고 있었다

적당한 길이를 남겨두고 잘린 줄기는 시원해 보이는 물이 담긴 꽃병에 들어가있었다

꿈 속이기에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체감상 한참이 지나도 꽃은 변화하지 않았다

갑자기 거대해져서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 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상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 아디오스-. 레드 로즈.”

이대로 이 곳에 있는 것도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붉은 장미에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은 공간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고 새하얬다

방향조차 무의미한 공간에서 한 걸음씩 꽃에서 멀리 떨어져갔다

어느새 저 멀리로 멀어진 붉은색은 이제 먼지만한 크기로 작아졌다

제법 걸어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다리가 무거웠다.


꿈 속인데도 피로는 느껴지는 것인가….”

한 번도 꿈 속이라는 것을 인지한 적 없는 내겐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무거운 다리와 뻐근한 무릎뼈를 느끼며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았다

잠시 쉬었다가 걷자고 생각했을 때, 저 멀리서 탁탁탁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색이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꽃이 걷게 된 것인가?! 

식인꽃의 상상을 다시 불러일으키며 피로도 있고 몸을 일으켰다

저 멀리서 보이던 붉은색이 점점 내 눈앞으로 다가올수록 내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오소마츠….”

, 카라마츠.”

맨발로 탁탁 소리를 내며 내 앞으로 뛰어온 오소마츠가 거친 숨을 고르며 물었다.


혹시 이 주변에서 꽃 못 봤어?”

“…붉은 장미라면 저 쪽에서 봤다만….”

오소마츠의 질문에 꽃을 봤던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가 똑바로 걸은 것이 맞다면 꽃은 내 뒤쪽에 있을 터였다

오소마츠는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고마워!” 하고 급히 인사를 던지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왜 내 꿈인데 오소마츠가 나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오소마츠가 뛰어온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새하얀 공간은 변하지 않고 오소마츠의 발소리는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갔다.


 

붉은 장미,

오소마츠….


 

우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오소마츠는 대체 왜 그 꽃을 찾으려고 한 걸까

왜 이 새하얀 공간에 그 꽃만이 덩그러니 있었던 것일까


수많은 의문과 함께 이유 모를 불안이 몸을 덮쳤다

망설이지 않고 오소마츠를 향해 뛰었다

왜 뛰는지, 무엇이 이리도 불안한지는 알 수 없었다

지만 이해는 하지 못해도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오소마츠를 막으라, .

 


 

오소마츠!!!”

크읏! 이거 놔!!!”

불안은 보기 좋게 적중하고, 오소마츠는 손에 든 칼로 가녀린 꽃을 무자비하게 찌르고 있었다

바닥에 흩어진 붉은 꽃잎이 어쩐지 애처로워서, 꽃에 칼을 내리꽂는 오소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오소마츠! 그만 해!”

카라마츠! 이거 놓으라고!!”

안 된다!! 네 손도 다쳤잖아!!”

꽃을 찌르면서 가시에 찔렸는지, 아니면 자상을 입었는지 오소마츠의 손에선 새빨간 피가 뚝뚝 흘러나와 새하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바닥에 흩어지고 짓이긴 꽃에서도 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어떻게든 꽃을 망가뜨리려는 오소마츠의 손을 꽉 붙잡자, 내 힘을 이기지 못한 오소마츠가 쥐고 있던 칼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꽂힌 날카로운 칼을 피해 오소마츠를 잡아당기자 오소마츠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 왜 못하게 하는 거야….”

오소마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서러운 목소리로 눈물 흘리는 오소마츠의 낯선 모습에 말을 잃은 나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소마츠는 한참을, 정말로 한참을 울었고, 내가 오소마츠를 달래기도 전에 내 꿈은 끝이 났다.

 

 

 

눈을 뜨자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자 머리맡에서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망할 장남!! 당장 일어나!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쳐 자고 있어?!”

우응…. 5분만….”

일어낫!!”

매일 일어나는 쵸로마츠와 오소마츠의 공방을 멍하니 바라보는 내게 토도마츠가 다가왔다.


카라마츠 형? 아직도 잠이 덜 깼어?”

? 아니, 일어났다.”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고 잠시 나를 보던 토도마츠는 이내 다시 스마트폰에 눈을 돌렸다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이불에서 몸을 꺼냈다

따뜻한 이불에서 나오자마자 부르르 떨리는 몸을 안고 잠옷을 벗어 푸른색의 점프 수트를 입었다.

포인트로 항상 하는 금목거리를 목에 걸고 나서야, 오소마츠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벅벅- 엉덩이를 긁으며 하품을 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었다

얼른 씻어!” 하고 잔소리하는 쵸로마츠에게 -”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며 내 옆을 지나가는 오소마츠가 잠시 발을 멈추고 내게 눈을 돌렸다.


“…오소마츠?”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형의 표정에 고개를 기울이고 부르자, 오소마츠가 눈을 낮게 깔고 고개를 돌렸다.


진짜, 잔인한 놈이야. ….”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는 아직 잠에 잠겨있었다

작지만 똑똑히 귀에 남은 오소마츠의 말에 사고가 멈췄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하얀 공간과 붉은 장미의 모습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침묵 뿐이었다.

 

 

 

, 인가….


새하얀 공간에 눈을 뜨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붉은 장미를 찾았다

새하얀 배경에 붉은색은 눈에 확 띄었기에 붉은 장미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푸른색의 유리병에 꽂힌 장미가 아직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장미 옆에 엉덩이를 내렸다

아직 오소마츠는 오지 않았다. 만일 오늘도 오소마츠가 이 장미를 부수려 한다면 나는 또 말릴 것인가…. 

스스로가 무슨 행동을 할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마치 타인의 마음속을 읽을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도 짐작이 되지 않았다

나는 왜 이 장미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왜 오소마츠를 말리자고 생각하는 것일까….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해답도 없이 흩어져 사라져간다

아름답게 피어난 붉은 장미만이 내 곁은 지키고 있는 이 상황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편안함마저 느끼는 자신에게 당황하며 장미를 응시했다

붉게 피어난 한 송이의 장미는 오늘도 물을 머금고 촉촉하게 그 빛을 뽐내고 있었다

평범한 장미꽃인데도 아름답다고 생각해버린다


 송이의 장미는 굉장히 사랑스럽고, 애처롭고, 아름다웠다.


“…너는 귀엽구나….”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장미에 손을 뻗었다

촉촉하고 매끄러운 꽃잎에 손가락을 가져댄 순간, 또록-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새하얀 공간에 파문이 일었다

붉은 장미에서 시작된 파문은 새하얀 세상을 흔들며 장미의 색을 바꾸었다

붉은 꽃잎이 마치 휴지에 떨어진 잉크 방울처럼 푸르게 물들어갔다

내 붉은 장미는 완전히 푸른 장미로 변화했다

바다처럼 푸른빛을 띤 장미는 조금 전보다 더 영롱하게 빛나며 내게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손에 쥔 푸른 장미를 응시하며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푸른색의 장미는 군침이 돌 정도로 매우 맛있어 보였다.





* 추상적이고 미지근한 카라오소였습니다.


* 붉은 장미의 꽃말은 '사랑' / 푸른 장미는 '기적' 입니다.


* 단편 '붉게 피어난 아네모네'와 같이 "꽃"을 주제로 한 단편이었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밴드마츠입니다!


* 쵸로마츠가 왜인지 입이 많이 험합니다... 더빙판의 영향이에요..ㅎㅎ


* 꽤 오래 전에 짠 플롯이었는데 이제야 써먹네요...ㅎㅎ


* 밴드의 연습이나 작곡 등 소설에 나온 것은 전부 제 망상에서 나온 것입니다ㅎ


* 공미포 10,815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안을 가득 울리는 드높은 함성과 하이톤의 외침에 절로 흥이 치솟아 오른다

무아지경으로 노래에 빠져 들고 있던 마이크도 내던지고 손에 들고 있던 스피커폰으로 노래를 부르자, 관객들 모두 환호하며 손을 높이 든다

중지와 약지를 접은 수신호와 함께 열정적인 연주는 클라이맥스에 접어들었다

†카라†의 반주를 감싼 음색으로 마음껏 내지르면 어느새 우리의 노래는 끝나가고 있었다.

 

 

“정말 좋았어요~!!

OSO! 오늘 진짜 최고였어요!!

“오~, 고마워~!

꺅꺅 거리며 대기실 앞에 모여있는 오랜 팬들의 응원에 웃으며 대답했다

길거리에서 혼자 공연을 때부터 노래를 들어준 고마운 팬들의 진심 어린 말에 어깨가 절로 들떠 올랐다

- 웃으며 밑을 문지르자 팬들의 말이 이어졌다.


“아, 그런데~

“응?


팬의 이어진 마디에 나는 장장 일주일이란 시간을 고생하고 말았다.

 

 

 

 

 

 

2.

 

“카라.

“응?

마시고 있던 맥주캔을 내려놓고 진지한 얼굴로 부르자,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고 있던 카라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 밴드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자작곡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작곡은 주로 카라나 이치나 쵸로가 맡고 있다

나는 보컬과 동시에 작사를 주로 맡고 있다

요즘은 작곡도 공부하고 있는 중이지만, 카라에 비하면 아직 초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 시즌에 맞춰 곡을 쓰고 있는 카라의 오선지를 내려다보며 오늘 팬이 했던 마디를 전했다.


“오늘 분이 말이야….

.”

“…슬슬 우리의 러브송(love song)이 듣고 싶대.”

“…?”

! 그렇지!? 역시 그런 반응이지!?”

카라의 한심한 바람 빠지는 소리에 나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 우리가 했던 음악은 정통 락(rock)으로 러브송 같은 건 한번도 취급한 적 없었다

물론 오랜 팬이었던 그들도 그것은 알고 있었다

나도 처음 러브송이라는 단어를 듣고 난감해하던 내게, 팬들은 락발라드로 장르를 넓히는 것이 좋다며 나를 설득했다.

팬들의 끈질긴 설득에 나도 한 번쯤 시도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우리는 무리지…. 전원 모쏠인걸!”

홧김에 새로운 맥주캔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곡을 뽑아내는 것도, 곡에 가사를 붙이는 것도 어느 정도 그 내용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연애는 커녕 사랑도 제대로 한 번 한적 없는 내가 러브송에 가사를 붙일 수 있을 리 만무했고, 카라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터였다

홧김에 들이킨 맥주에 완전히 취해버린 나는 그 후로 암울한 내 학창시절을 늘어놓으며 결국엔 여친이나 생겼을 좋겠다!! 쭉빵 누나, 내게로 와요~!” 하고 외친 것을 마지막으로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OSO, 아침이다.”

카라의 목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뜨자 환한 빛이 눈을 강타했다

갑작스런 빛에 눈을 찌푸리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카라가 물 한 컵을 건넸다.


땡큐우….”

다음부턴 적당히 마셔라.”

우응….”

카라의 충고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물을 마셨다

칼칼했던 목을 물로 축이니 한결 속이 편안해졌다

몸을 일으켜 대충 덮고 있던 이불을 접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샤워인가?”

닫힌 화장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카라의 목소리에 ~” 하고 대답하자, “그럼 수건은 여기 두겠다.” 하고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번 더 땡큐~” 하고 인사한 후, 샤워기를 뽑아 들어 온수를 틀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처음 만난 카라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잔뜩 허세가 들어 중2나 내뱉을 법한 말들로 자신을 치장하는 모습이 너무 웃겨, 같은 반인 시절은 카라를 볼 때마다 배를 잡고 웃느라 바빴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시시한 고교 생활을 보내던 나는 여름방학 때 삼촌이 가르쳐준 기타에 푹 빠지고 말았다

게으른 성격 때문에 연습도 많이 하지 않아 내 기타 실력은 그저그런 수준에 그쳤지만, 기타를 통해 이라는 장르에 빠져들었고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경음악부를 만들었다.


경음악부?”

! 락밴드!”

카라 입장에선 정말 뜬금없는 내 행동인데도 카라는 망설임 없이 내 변덕에 어울려주었다

나와 함께 삼촌에게 기타를 배운 카라는 정말 열심히 기타를 연습했다

나보다 늦게 배운 카라가 내 실력을 앞지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일취월장하는 카라의 실력에 감동한 삼촌은 아끼던 전자기타를 카라에게 선물해 주었다

전자기타라는 구색도 갖추어졌겠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밴드를 시작했다

내 별볼일 없는 기타와 카라의 기타로 여러 곡을 따라 연주하던 우리는 학교 내에서 제법 유명해졌고, 2학년에 들어가서는 JADE와 이치를 만났다

3학년 때는 JUICY와 토도도 들어와 밴드다운 밴드가 되었다


내신 성적이 개판이었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백수 생활이 예정되어있었다

부모님의 따가운 눈총을 피해 녀석들과 함께 길거리 공연으로 시작한 우리는 5년이 지나 락클럽에서 정기적으로 연주를 하는 인디밴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오늘 몇 시에 보기로 했지?”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탈탈 털며 묻자,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토스트를 식탁에 내려놓은 카라가 “5.” 하고 대답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우리는 모두 친가를 나와 자취를 시작했다

일도 하지 않고 밴드를 하고 있는 꼴을 참지 못한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해 집을 나와 모두 함께 룸쉐어를 했었다

하지만 깔끔한 성격인 JADE와 토도는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 여간 스트레스였는지, 둘은 곧 돈을 모아 따로 나가 살게 되었다

이후 이치와 JUICY도 함께 산다며 나갔고, 남은 것이 나와 카라였다

처음에 6명이서 북적북적 살던 집은 나와 카라 차지가 되었고, 공연으로 어느 정도 돈을 벌게 된 지금은 월세가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대충 토스트로 밥을 떼운 나와 카라는 집을 나와 각자의 알바로 향했다

정기적으로 공연을 한다고 해도 공연비로 버는 돈은 먹고 살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5시에 연습실에서 보기로 하고 잠깐의 작별인사를 한 뒤, 내가 알바를 하고 있는 작은 카페로 향했다.

 

 

 

 

 

 

3.

 

황당하단 얼굴의 JADE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러브송~?”

아니, 그냥 팬이 말했다고…. 내가 하겠다는게 아니라….”

노골적으로 인상을 구기며 큰 한숨을 내쉰 JADE당연하지! 우리가 러브송을 어떻게 써!!” 하고 외쳤다

,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 뭔가 열 받네….


, !! 쓸 수도 있지!”

연애 한 번 못해본 놈이 잘도 쓰겠다!!”

JADE의 말에 반발하자, JADE도 언성을 높였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는 상황에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OSO, 이거.”

나와 JADE 사이에 눈치 없이 끼어든 카라를 노려보며 카라가 내민 악보를 건네 받았다

은은한 곡조와 함께 JADE의 바이올린과 카라의 기타와 이치의 베이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부드러운 곡

항상 기타 중심의 시끄럽고 활동적인 곡만 만들던 카라가 내민 악보에 놀라 입을 떡 벌렸다.


뭔데?”

나와 싸우고 있던 것도 잊었는지 JADE가 내 옆으로 다가와 내 손에 들린 악보를 쭉 읽어 내려갔다.


“…발라드?”

어제, LOVE SONG이라는 말이 나와서 한 번 써 봤다.”

카라의 말에 JADE도 나처럼 입을 쩍 벌렸다

악보를 손에 들고 말을 잃은 우리들을 대신해 이치와 토도가 악보를 읽고 입을 열었다.


카라 형, 어디 아파?”

하핫, 설마 네가 이런 곡을 쓸 줄은….”

이거, 드럼이 쉬워!!”

이치와 토도 사이에서 악보를 본 JUICY가 활짝 웃으며 외쳤다

발라드곡이니까 드럼은 기본 비트만 넣어주면 되니 쉬울 수 밖에…. 


아니! 그게 아니라!!


카라! 너 설마 연애해 봤어?!”

!? 아니, 안 해봤다만….”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곡….”

그건 일단 제쳐두고, 이거 이번 스페셜 곡으로 넣자.”

?!”

카라에게 묻는 내 말을 싹둑 자르고 끼어든 JADE가 악보를 팔랑팔랑 흔들며 말했다

JADE의 돌발 발언에 놀란 것은 나뿐으로 바보 같은 소리를 내는 나를 제외한 다른 녀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괜찮은가? 실험적으로 쓴 곡이다만….”

, 충분히 괜찮고. 조금만 연습하면 될 것 같네.”

눈을 깜빡이며 서 있던 카라가 조심스럽게 JADE에게 물었다

JADE는 보기 드문 미소를 띄우고 고개를 끄덕인 후, 내게 악보를 내밀었다.


?”

“‘?’이 뭐야. 가사 붙여야지.”

!? 내가?!”

그럼 누가 붙이는데. 아까 분명히 쓸 수도 있다고 발언한 사람이 누구더라?”

크흑…. 알겠어! 쓰면 되잖아, 쓰면!”

이번 스페셜로 넣을 거니까 못해도 이번주 주말까진 써놔.”

….”

조금 전 자신이 한 말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별다른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악보를 받아 들었다

평소 카라가 쓰는 곡이면 적당히 사회비판적이거나 신나는 가사를 붙이면 됐는데, 이번엔 러브송…. 

내가 과연 제대로 가사를 붙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러브송 가사라는 걱정거리를 안고 그 날 연습에 임하는 내 기분을 더할 나위 없이 최악이었다.

 

 

 

 

 

 

4.

 

달력에 적힌 오늘을 날짜를 본 순간, 절로 한숨이 나왔다

때맞춰 띠링- 하고 울리는 스마트폰 화면엔 JADE오늘 내로 가사 써라.” 하는 메시지가 표시되어 있었다

카라가 러브송을 작곡하고 5일이 지났다

그 날의 악보는 초안이었기에 그 후, 카라가 다시 다듬긴 했지만 큰 멜로디는 변화가 없었다

이번 공연의 스페셜 곡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JADE 말대로 오늘 안으로 가사를 붙여야만 했다.


, 흐응~”

가볍게 악보에 적힌 멜로디를 따라 콧노래를 불렀다. 몇 번을 봐도 카라에 어울리지 않는 은은하고 부드러운 곡

나르시시스트 싸이코패스인 카라가 설마 이런 곡을 쓸 수 있을 줄은 정말로 꿈에도 몰랐다

은은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어딘가 슬픈 색을 띠는 곡이다

멜로디를 흥얼거릴수록 이건 정말로 러브송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치와 JADE, 그리고 카라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곡을 쓰는 녀석들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곡이기에 각자의 곡은 개성이 넘치고, 3명의 개성 넘치는 작곡가를 둔 우리 밴드는 곡의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운 밴드가 되었다.

물론 거기엔 어느 곡이든 멋지게 소화해내는 이 카리스마 레전드 보컬님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요점은 바로 경험이다

이런 러브송도, 결국 카라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 때, 연애해봤냐는 질문에 카라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믿을 수 없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카라의 친척인 토도에게 다시 물어보았지만, 토도도 카라가 연애를 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 한 적 없다고~ 연애~”

들고 있던 연필을 책상에 던지고 뒤로 몸을 기울였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등을 대고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러브송이라니, 카라는 그렇다 쳐도 나는 절대 이 곡에 가사를 붙일 수 없다

어릴 땐, 여자애들에게 장난만 쳤으니 인기가 있을 리 만무했고, 고등학교 때는 밴드활동으로 인기는 얻었지만, 연애를 할 시간이 없었다

졸업한 후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우리 밴드를 좋아해주는 팬들도 순수하게 으로써 좋아할 뿐, 우리를 연애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 나는 연애는 커녕 사랑도 제대로 해 본적 없다

카라처럼 나도 경험을 바탕으로 가사를 붙인다

사랑을 해 본적 없는 내가 이 곡에 가사를 붙일 수 있을 리 없다.


하아아아아~!!”

무슨 일 있나?”

, 어서 와~”

다녀왔다.”

신음에 맞추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카라에게 눈짓으로 인사했다

알바를 마치고 온 카라가 내 곁으로 와 앉아 책상에 놓인 악보를 응시했다.


가사는 아직인가….”

카라아아아~, 못 쓰겠어~~!”

?”

나는 연애도, 사랑도 해 본적 없다고~!!”

“…그런가.”

“‘그런가.’가 아냣! 바보!! 오늘 안으로 안 쓰면 JADE가 또 시끄럽게 군다고!!”

하하하….”

내 하소연에 카라가 마른 웃음을 흘리며 악보를 주워들었다

우수수하고 지우개가루가 책상으로 떨어졌다

몇 번이고 썼다 지웠던 흔적의 검은 때들을 하하하….” 하고 웃으며 손에 모아 쓰레기통에 털어 넣자, 그 모습을 보던 카라가 빙긋- 웃었다.


비웃는 거냐!? 러브송 하나 못 쓰는 놈이라고 비웃는 거냐?!”

, 아니!? 아니다!! 그냥…!”

그냥, !”

“…아무 것도 아냐….”

역시 비웃은 거지?!”

아니래도!!”

그 후, 반복되는 바보 같은 말싸움 끝에 씩씩 숨을 몰아 내쉬며 책상에 쿵!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박았다.


“OSO…?”

~, 정말 모르겠다고오~”

“….”

내 신음에 카라는 침묵했다

더는 위로할 말이 없는지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카라의 손에 조금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 그래!”

?”

카라, 너 솔직히 말해. 연애한 적 있지? 있으니까 이런 곡 쓴거잖아!?”

“…없다.”

귀신을 속여라?”

….”

참고하게 쪼~끔만! 쪼끔만 알려줘!”

“…하아~”

한숨 쉬지 말고!”

내 재촉에 카라가 슬쩍 나를 흘겨보곤 또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은, 예전부터 좋아하던 녀석이 있다. 사귀거나 한 것은 아니고, 그냥 내 짝사랑으로….”

!”

…, 웃는 얼굴이 굉장히 귀여웠어. 활발하고 낙천적인 면도 보고 있으면 힘이 났고. 남몰래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면이 보기 좋았다.”

“…, 오오….”

, 왜 괜히 내가 더 부끄럽지

카라가 그녀를 떠올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고 말하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

잔잔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눈빛이 향할 그녀가 어쩐지 굉장히 부러워졌다.


카라, …. 그런 얼굴도 할 수 있구나….”

?”

아니, 암것도 아냐! 있지, 그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는 뭐야?”

나도 모르게 나온 목소리에 당황하며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나는 한번도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 없으니, 카라의 연애이야기에 솔직히 흥미를 느꼈다

가만히 나를 보던 카라가 처음인가….” 하고 중얼거리며 눈을 돌렸다.


정확이 이때다, 하고 말할 수는 없다. 정신 차리니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고 있었다. 다만, 내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 얼굴이 정말로 귀여웠고, 그래서 굉장히 좋아했었다.”

“….”

순간, 카라의 입에서 나온 좋아했었다.’라는 과거 시제에 심장이 뭉클거렸다

그 어떤 말도 지금 내뱉는 순간, 내 생각 없는 말이 카라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았다

입술을 꾹- 다물고 카라에게 기울이고 있던 상체를 다시 제자리로 되돌린 후, 카라의 손에 들린 악보를 건네 받았다.


, 고마워. 참고가 됐어.”

“…그런가. 그럼 나는 장보고 오겠다.”

~, 부탁해~~”

 

 

카라의 말을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재생하며, 나는 평생 한번도 굴린 적 없었던 머리를 맹렬히 굴리며 밤샘을 한 후에야, 겨우 카라의 러브송에 가사를 붙일 수 있었다.

 

 

 

 

 

 

5.

 

솔직히-, 못 쓸 거라고 생각했어.”

연습실의 의자에 앉아 내가 건넨 악보를 받은 JADE가 말했다

바로 !?” 하고 화를 내자, 손을 흔들며 진정해, .” 하고 건성으로 대답한 JADE가 천천히 가사를 읽어 내려갔다

어쩐지 부끄럽다. JADE의 눈이 악보를 따라 내려갈 때마다 치솟는 창피함에 얼굴을 숨기고 싶어졌다.


러브송이라더니…. 실연송이잖아, 이거….”

악보를 다 읽은 JADE가 어이없다는 투로 말하곤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복사해오게.”

? OK?”

. 좋다고 생각해.”

밴드의 전반적인 곡의 검수를 맡은 JADE가 고개를 끄덕이며 연습실을 나갔다

근처 문방구에서 악보를 5개 더 복사해 들고 올 JADE를 기다리며 의자에 엉덩이를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으아~, 긴장했다.”

첫무대에 올랐을 때보다 더 긴장했다. 카라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떠올리는 카라의 표정, 목소리, 분위기, 그리고 마지막의 그 좋아했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상상하고, 그 감정에 열중해 쓴 가사

꼭 내 이야기도 아닌데, 내가 실연당하고 상처받을 것처럼 가사를 쓰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몰랐다. 사람은 기분에 따라서 물리적으로 심장이 아프기도 한다는 사실을….

정말로 굵은 밧줄로 심장을 꽁꽁 묶어 꽉 조이는 것 같은 아픔에 가사를 쓰면서도 가슴을 부여잡고 있어야 했다.

 

 

 

, 카라. 어서 와.”

복사된 악보를 들고 있던 JADE가 제일 마지막으로 연습실에 들어온 카라를 반겼다

.” 하고 짧은 인사를 하는 카라에게 JADE가 악보를 건넸다

악보를 건네 받는 카라의 손에 시선을 고정하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쩐지 부끄러워 오늘 아침까지 카라에겐 완성된 악보를 보여주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처음 가사가 완성된 악보를 보는 카라의 반응을 살폈다


곡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지

곡을 망쳤다고 하면…. 

아무리 JADE가 괜찮다고 해도, 작곡가인 카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다시 가사를 써야 한다.


어때?”

…, 괜찮다.”

좋아! 그럼 오늘은 이 곡을 집중적으로 연습하자!”

JADE의 말을 신호로 우리는 연습실 한 구석씩 차지하고 자리를 잡았다.

 


다른 밴드는 어떤 식으로 연습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새 곡이 나오면 제각기 멜로디를 연습한 후, 합주를 하면서 타이밍을 맞춰보는 식으로 연습했다

보컬인 나는 노래를 어떤 식으로 부를지 여러 번 불러보며 호흡할 타이밍과 음색을 다듬었다

악보에 쓰인 가사를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눈을 돌려 이치와 함께 연습하고 있는 카라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내 가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그저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카라는 성실하게 기타를 치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에 딱히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어이, 여기에 집중해!”

! 하는 소리와 함께 바이올린 채로 머리를 맞았다

내 맞은편에 앉은 JADE의 잔소리에 툴툴거리며 다시 고개를 돌려 악보에 집중했다.

 

 

 

그럼 맞춰보자.”

JADE의 말에 모두 모여 악기를 앰프에 연결했다

나도 중앙에 서서 마이크를 들었지만, 가라앉은 기분 탓인지 오늘따라 마이크가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다

심호흡을 하는 나는 보며 내가 준비되었음을 확인한 JADE JUICY에게 신호했다

, , 딱 하고 드럼 스틱이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내고 곧 우리의 합주가 시작되었다

육중한 베이스와 드럼을 기본으로 깔고, 청량한 음색의 바이올린이 멜로디를 연주한다

기타는 있는 듯 없는 듯 가볍게 배킹(Backing)을 하고, 키보드가 그 뒤를 따라 음색을 더 풍부하게 확장했다


전주가 끝나갈 무렵, 한번 더 심호흡을 하고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댔다

차분하고 정돈된 목소리로 천천히, 확실하게 가사를 짚어가며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 가사의 내용은 한 소녀를 정말로 깊이 사랑한 소년의 짝사랑 이야기

결코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한탄하며 그러면서도 너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그런 가사였다.


뭐야, 이거. 내가 썼지만…. 너무하잖아….

이루어지지도 않는 사랑을 위해 이렇게 절절히 노래하는데,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결국엔 짝사랑으로 끝이야?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을 느끼고 황급히 숨을 집어 삼켰다

고개를 숙이고 숨기려고 해도 결국엔 JADE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연주를 중단시킨 JADE가 내게 다가왔다

카라도 걱정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OSO!?” 하며 내 곁으로 달려왔다

흐려진 시야에 JADE와 카라의 얼굴이 보여, 참고 있던 눈물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 흐으으….”

꾹꾹- 누르고 있던 흐느낌과 함께 터져 나온 눈물은 그치지 않고 바닥을 적셨다

내 울음에 JADE는 물론이고, 카라와 다른 녀석들 모두 당황해 멍청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어깨까지 떨며 우는 나를 황당하단 얼굴로 쳐다본 JADE가 카라를 불렀다.


카라, 잠깐 이 녀석 좀 밖에 데리고 나가. 진정시키고 들어와.”

아아….”

JADE의 말에 대답한 카라가 내 어깨를 감싸고 일으켰다

눈물로 수분을 잃어 가벼운 탈수증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휘청거리는 나를 강하게 붙잡고 카라가 천천히 연습실을 나왔다.

 

 

 

 

 

 

6.

 

찬 겨울 바람을 쐬며 코를 훌쩍이는 내게 카라가 물병을 건넸다.


, 진정 되었나?”

…. 미안.”

“….”

미지근한 물로 목을 축이고, 아직도 촉촉히 젖어있는 눈을 비볐다

-, 꼴사나워…. 

새삼 자신의 추태가 떠올라 얼굴이 뜨거워졌다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던 카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나? OSO….”

아니, 그게 아니라….”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카라에게 고개를 저었다

쭈그린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음에 젖은 숨을 내뱉었다.


“…너는 이렇게 좋은 녀석인데…, 왜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널 안 받아준거야아….”

“…?”

가라앉은 목소리를 짜내어 작게 말했다

나를 쳐다보던 카라가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깜빡였다

원망스런 눈으로 카라를 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내가 운 이유는 바로 가사의 내용이다

내가 써놓고 내가 울다니…. 

바보에도 정도가 있다


카라의 마지막 말이 박혀 사라지지 않은 채,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카라의 사랑을 상상하면서 썼지만, 가사를 고쳐도 결말은 결국 실연하는 내용이었다

좀 안쓰럽고 바보같아도, 기본적으로 상냥한 녀석인데….

카라가 좋아했던 그 사람에게 실연당하고, 상처받고, 그 가슴의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 상상하니 도저히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대체 왜 나는 카라의 지난 일로 이렇게 슬퍼해야 하는 거야

이거 전부 네 탓이야-, 카라!!

오늘 재수없게 문지방에 발가락 치인 것도,

우유 먹다가 기도에 넘어간 것도,

알바에서 실수해 손님 옷에 커피를 쏟은 것도,

전부, ~부 네 탓이다!!

온갖 원망을 담아 노려봤지만, 카라는 바보 같은 얼굴로 나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 는 실연했다곤 한 마디도 안 했다만….”

!?”

카라의 말에 이번엔 내가 바보 같은 표정이 되었다.

아직 고백하진 않았다.”

? 그럼 자연 소멸된 거야? 지금은 싫어해?”

? 왜 그렇게 되지?”

그야…, 너가 말했잖아! ‘좋아했었다.’! 과거형으로!!”

아아, 지금은 좋아하는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하아?!?!”

쭈그리고 있던 무릎을 피고 벌떡 일어서자 카라가 나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올렸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단 얼굴로 나를 똑바로 보며 “OSO?” 하고 부르는 카라의 목소리에 피가 꺼꾸로 솟는 것 같았다.


뭐야 그게!!! 내가, 내가 얼마나!!!”

? , 뭔가?”

아오!! 이 똥멍청이야!!!”

, 에에?!”

카라의 머리를 세게 쾅! 쥐어 박고, 성큼성큼 걸어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카라를 기다리고 있던 녀석들의 시선이 죄 내게 박혔다. 따가운 시선을 무시하고 JADE에게 걸어가 말했다.


, 이거 가사 다시 쓸래.”

?”

납득이 안 돼. 내가!”

“…하아…, , 알겠어. 그럼 가사만 바꾸는 거지?”

아니, 아마 곡도!”

!?”

곡도 바꾼다는 내 말에 JADE가 인상을 팍 썼다

-, 예전 양아치 얼굴 나왔어….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위압적으로 나를 보는 JADE의 눈빛에 살짝- 뒷걸음질쳤지만 물러나진 않았다.


오늘 연습 첫 날이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까진 완성할 테니까!”

“…하아~, 너네 생각은 어때?”

JADE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단언하자 뒷머리를 박박 긁은 JADE가 뒤에 몰려 있는 다른 녀석들에게 물었다

토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난 괜찮아~” 하고 대답했고, 이치와 쥬시도 딱히 상관없다는 투의 대답을 했다

누구 하나 반대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잔뜩 눈썹을 찌푸린 JADE가 푹- 한숨을 쉬더니 모두의 악보를 회수해 내게 내밀었다.


반드시 내일까진 완성해.”

“OK!”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나를 보며 JADE가 다시 한 번 큰 한숨을 내쉬었다.

 

 

 

 

 

 

7.

 

지우개로 악보에 쓴 가사를 박박 지우고 깨끗한 백지를 마주한 후, 기합을 넣었다

어제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 파묻힌 가사가 아예 보이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반드시 오늘 안으로 완성할 수 있다고 다짐하며 연필을 들었다.


“OSO.”

, 똥멍청아.”

똥멍청!? 하아~, 왜 다시 쓴다고 한 거야?”

연필을 입에 물고 가사를 생각하는 내게 다가온 카라가 물었다

힐끗- 한번 눈길을 주고 다시 악보로 시선을 돌렸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이면지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써가며 대답했다.


짝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이루어지는 내용으로 바꾸려고.”

?”

네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라니깐.”

“….”

나는 한번도 연애도, 사랑도 해 본 적 없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달콤함과 그 과정에서 가슴을 옥죄는 아픔도 잘 알지 못한다

내가 들은 것은 오직 카라의 이야기뿐이지만, 카라의 이야기에서 얼굴도 모르는 그녀를 부럽다고 느낄 정도로 카라의 사랑을 맛봤다

그것은 굉장히 깊고 부드러우면서 뜨거웠고, 가사를 쓰는 내내 나도 조금은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생애 처음으로 (간접) 경험한 이 사랑을 제대로 이루어주고 싶었다

적어도 노래 가사 안에서라도!

 

그럼, 오소마츠는 내가 고백하면 받아줄 건가?

“…?”

악보를 들고 있던 손에서 연필이 스륵 빠져나갔다

동그랗게 뜬 내 눈에 비친 카라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며 경악하는 표정이 되었다.


, 아니!? 아니다! 이건!!”

“…? 아니야?”

“OSO! 악보!! 악보가 다 구겨진닷!!!”

카라의 외침에 내 손에 들려있을 악보로 시선을 돌렸다

너무 놀랐는지 손에 힘이 들어간 탓에 악보가 손 안에서 꾸깃꾸깃 주름져있었다

….” 하고 작게 신음하며 손힘을 풀고 악보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죽죽 세로줄이 생긴 악보를 말없이 꾹 눌러 펼치고 고개를 들었다.


“…?”

“….”

…, 저기, 혹시 나야?”

“….”

카라,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야?”

“….”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고개를 돌린 카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눈에 띄게 벌개진 얼굴은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후응~”

“….”

정말로?”

눈을 가늘게 뜨고 묻자, 천천히 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구나

카라, 네가 좋아한 사람이 나였어~? 


뭔가 뭉클거리고 몰캉한 것이 가슴 속에서 역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젯밤 가사를 쓰는 내내 느꼈던 고통과는 뭔가 다른 아픔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일단, 지금은 집중해야 되니까 저리 떨어져.”

!?”

훠이훠이-”

에엣!?”

손을 휘저어 뭐라 말하려는 카라를 멀리 떨어뜨리자 카라가 힘없이 “…알았다.” 하고 말하곤 현관을 나갔다

시계를 올려보고 카라가 알바할 시간임을 확인한 후, 악보에 눈을 돌렸다

지금 이 상태라면 정말로 멋진 가사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8.

 

6개로 복사한 악보를 들고 연습실 문을 활짝 열었다.


여봐라~! 카리스마 레전드 작사가님의 등장이시다~!!”

지랄을 한다. 악보나 내놔.”

모처럼 우렁차게 외친 내 말을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은 JADE가 내 손에 들린 악보를 뺏다시피 건네 받았다

악보를 찬찬히 살핀 JADE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피어난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히히, 좋지?”

“…인정하긴 싫지만, …. 어제보단 낫네.”

우히히-”

그 나 잘났지? 하는 얼굴 그만 둬. 패고 싶으니까.”

!”

JADE의 말에 입을 쭉 내밀고 내 자리에 섰다

오늘 알바가 늦게 끝난다는 카라만 빼고 모두 새로운 악보를 살피며 연습에 집중했다.

 

 

시침이 8을 넘기고 나서야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며 카라가 연습실에 들어왔다.


, 늦어서 미안하다!”

헉헉 거친 숨을 정리하며 기타를 꺼낸 카라가 JADE가 내민 악보를 받았다

다른 녀석들은 이미 새로운 악보를 보고 제 파트의 연습을 마친 상태였다

악보를 보는 카라의 눈이 동그래지는 것을 본 JADE가 피식- 웃더니 , 합주하자. 카라는 원곡자니까 당연히 칠 수 있지?” 하고 말했다

카라는 악보와 JADE를 번갈아 보며 , 에엑!?” 하고 당황했다

문득 나를 보며 도와달라는 눈빛을 했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보컬 자리에 서자, 카라도 포기한 듯 한숨과 함께 기타를 어깨에 멨다

JUICY의 드럼 스틱이 만드는 원, , 쓰리 신호에 맞춰 모두 연주를 시작했다

어제와 달리 가벼워진 기분으로 나도 천천히 노래를 시작했다.

 

어제의 가사가 결국 실연하는 짝사랑의 이야기라면, 오늘은 서로 짝사랑을 하던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이 가사를 쓰려고 작곡 초보인 내가 카라의 곡을 편곡까지 하면서 2절을 만들었다

1절은 짝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 2절은 짝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후렴구에서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깨닫고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의 가사


기분 좋고 경쾌하게 통통 튀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곡 자체는 잔잔해도 즐겁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완성되었다

반주에 맞추어 몸을 흔들어가며 즐겁게 노래하는 것. 내가 가장 바라던 형태의 LOVE SONG이 오늘 완성되었다!

 

 

노래가 끝나고 오른편에 선 카라를 보자, 카라도 나를 마주보며 행복하게 웃었다.


“…오소마츠, 나는, 이 곡이 우리 노래 중 제일 좋아하는 곡이 될 것 같다.”

“…우연이네-, 나도 그래. 카라마츠.”

 

뭐니뭐니해도, 우리가 만든 LOVE SONG이니까!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늦었네요... 원래 주말 안에 올리려 했는데..ㅠㅠ


* 동물마츠입니다!


* 공미포 19,664자


*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 주말 출근으로 시간이 걸리고 말았네요..ㅠ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딩동- 하고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거실에 모여 있던 육둥이의 시선이 현관으로 향했다

다시 번 울린 딩동-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쥬시마츠가 쏜살같이 달려가 현관을 벌컥 열었다

현관에 있던 의외의 인물에 놀란 쥬시마츠가 활짝 웃으며 외쳤다.


“데카판 박사님!!

쥬시마츠의 외침에 호기심이 솟아난 육둥이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너도나도 현관에 몰려갔다

나란히 서 있는 여섯 명의 똑같은 얼굴을 쭉- 둘러본 데카판이 미소를 지으며 들고 있던 커다란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게 뭠까아~? 선물!? 선물임까아~?!”

크게 외치며 상자를 툭툭 건드려보는 쥬시마츠를 본 데카판이 입을 열었다.


호에호에-, 실은 사정이 있어서 잠시 이 녀석들을 맡아줬으면 한다요.”

이 녀석들?”

데카판의 말에 고개를 기울인 오소마츠가 몸을 굽히고 상자를 열었다. 어두운 상자 안에 환한 빛이 비치고, 작은 몸집의 짐승들이 고개를 들었다

3초간의 정적 후, 상자 안에 있던 짐승들이 눈을 깜빡이며 놀란 얼굴을 한 오소마츠에게 달려들었다.


우왁-!!!”

~!”

가오-!”

-!”

-!”

!”

-!”

적갈색의 줄무늬를 가진 래서 판다는 오소마츠의 얼굴에, 호랑이는 어깨에, 양과 고양이는 양팔에, 개와 토끼는 양다리에 달라 붙어 복도 가득 울음소리를 채웠다.

온몸을 작은 짐승들에게 장악당한 오소마츠는 물론이고, 눈앞의 광경에 동생들도 멍청한 얼굴을 지울 수 없었다

푸하!!!” 하고 숨을 몰아쉬며 얼굴에 붙어 있던 판다를 떼어낸 오소마츠가 자기를 똑바로 보며 -, 큐이-!” 하고 울어대는 판다의 얼굴에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오소마츠 자신의 얼굴과 너무나 닮은 짐승들은 마치 어린아이가 짐승의 탈을 덮어쓰고 있는 것 같았다.


!? , 데카판! 이 녀석들은 대체…!!”

놀라 얼어버린 오소마츠를 대신해 쵸로마츠가 데카판을 향해 외쳤다

데카판은 육둥이의 반응이 이해가 간다는 얼굴로 끄덕이더니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호에호에-, 실은 얼마 전 오소마츠 군에게 받은 세포와 DNA로 키메라를 만드는 실험을 했다요. 인간의 세포와 동물의 세포를 융합하는 실험이었는데,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이 아이들이다요.”

““““““하아?!?!?!”””””

데카판의 말에 육둥이가 일제히 입을 크게 벌리고 외쳤다

어느새 오소마츠의 품에 안긴 동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 , 잠깐. 오소마츠 형의 세포를 받았다는 건 무슨 말이야?”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토도마츠가 손을 들어 묻자, 데카판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세포를 받는 대신에 사례는 했다요.”

“…어이!! 이 망할 장남!!! 무슨 짓을 한 거야!?”

…, 얼마 전에 먹을 거 왕창 사 왔던 그땐가….”

데카판의 말에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노려보며 외치자, 그 옆에 있던 이치마츠가 기억을 떠올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쵸로마츠의 외침에 눈도 깜짝하지 않은 오소마츠가 작게 혀를 내빼며 에헷-!” 하고 웃었다

오소마츠의 대답에 쵸로마츠의 이마에 새로운 핏줄이 솟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오소마츠의 멱살을 붙잡아 짤짤 흔들어대는 쵸로마츠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가 다시 데카판에게 물었다.


그래서? 왜 이 녀석들을 우리 집에 데려온 거야?”

“…그게, 원래는 하나의 키메라가 될 예정이었던 세포가 분화해서 여섯 마리가 되고 말았다요게다가 사람을 잘 따르지도 않고, 오늘 아침엔 실험실을 완전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다요간신히 붙잡았지만, 울음을 멈추지 않아 오소마츠 군의 사진을 보여주자 바로 울음을 그치고 얌전해졌다요아무래도 오소마츠 군을 엄마로 인식하는 것 같다요.”

““““““…?””””””

데카판의 말에 다시 육둥이 전원이 얼빠진 얼굴로 변했다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육둥이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은 데카판이 뒤에 서 있던 메이드다용에게 손짓했다

다용이 들고 있던 큰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탁탁- 털어낸 데카판이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그러니까 실험실을 수리하는 동안 부탁한다요. 물론 돌봐주는 데 필요한 양육비는 지원한다요. 이 아이들은 말은 못해도 10살 정도의 지능은 있다요. 그리고 키메라이니 밖에 데리고 가면 안 된다요! 그럼 잘 부탁한다요!!”

부탁한다용~!”

제 할 말을 마친 데카판은 새하얗게 백화된 육둥이를 남겨두고 현관을 나섰다

멀어지는 발소리에 재빨리 현실로 돌아온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팔에 안긴 동물들을 바라보았다.


““거짓말이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두 사람의 중얼거림에 오소마츠가 동의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2.

 

오소마츠 형이 알아서 해. 우리는 손 안 댈 거야.”

냉정하게 내뱉는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얼굴을 구겼다

~?!” 하고 반발하는 오소마츠를 싸늘하게 바라본 쵸로마츠가 고개를 팩 돌렸다

이 모든 사태가 오소마츠가 제공한 세포에서 일어난 것임은 당연했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 이름 지어 줘야 하는 거 아냐? 뭐라고 부를 거야?”

투덕거리는 푸른 줄무늬의 호랑이와 보라색 고양이를 스마트폰으로 찍던 토도마츠가 물었다

오소마츠는 자신의 무릎에 앉아있는 동물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이 너구리는 오소, 호랑이는 카라, 양은 쵸로, 고양이는 이치, 개는 쥬시, 토끼는 토도.”

너무 적당히 짓는 거 아냐?! 좀 더 생각하고 지어! 이 외도!! 그리고 그거 너구리가 아니고 레서 판다!!”

토도마츠의 태클에 맞춰 오소라 불린 레서 판다도 손을 들어 항의하듯 !” 하고 외쳤다

둘을 보며 -.” 하고 성의 없는 대답을 한 오소마츠가 다시금 푹-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로 이 녀석들 다 내가 봐??”

당연하잖아. 오소마츠 형이 원인이니까. 그리고 엄마~’ 잖아? 제대로 책임지라고.”

오소마츠의 불평에 토도마츠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 하고 볼을 부풀린 오소마츠가 가만히 품 안의 동물들을 보다, 동물들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일단, 지금은 화장실.”

읏챠-” 하는 시대착오적인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거실을 나왔다

저벅저벅 복도에 울리는 오소마츠의 발소리를 따라 두다다다닥-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뭐야?!”

화장실 앞까지 오소마츠를 따라 나온 동물들을 보며 오소마츠가 당황해 외쳤다

거실에서 빼꼼 얼굴만 내민 동생들이 화장실 앞에 펼쳐진 진풍경을 보며 말했다.


엄마로 인식한다잖아.”

떨어지고 싶지 않은가 보지.”

아하하! 오소마츠 형 엄마!!”

, 리틀 비스트들의 마미라...

닥쳐, 개똥마츠.”

저마다 한마디씩 툭 던지는 동생들을 살며시 노려본 오소마츠가 곤란한 얼굴로 외쳤다.


그런 말 할 시간에 이 녀석들 좀 붙잡아 봐! 나 급하다고!!”

발을 통통- 구르는 오소마츠의 다급한 외침에 -” 하고 혀를 찬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오소마츠를 올려다보는 동물들을 팔에 안았다

동물들을 안아 거실로 들어가는 동생들을 보며 오소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실에 들어와 앉은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얌전히 팔에 안겨있는 동물들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는 데카판의 말과 달리 동물들은 얌전했다

이치마츠와 쥬시마츠, 카라마츠도 처음 보는 키메라의 모습에 호기심을 지울 수 없었다. 

동물들 가까이 다가간 세 사람은 유심히 동물들의 모습을 살폈다.

자신들의 무릎 정도 밖에 오지 않는 작은 동물들은 정말로 자신들과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동물의 탈을 뒤집어쓴 것 같은 외견과 달리 머리 위에 달린 귀와 꼬리는 진짜 동물의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유심히 동물들을 살피는 동생들 뒤로 오소마츠의 발소리가 울렸다.


, 오소마츠 형. 다 끝났…”

미안, 토도마츠. 횽아, 오늘 파칭코 가지 않으면 죽을병에 걸렸어.”

하아!?”

미안!!”

! 소리와 함께 닫힌 현관을 본 동생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저 망할 장남!!”

역시 나 이상의 쓰레기….”

오소마츠 형, 아웃!!”

황당한 얼굴로 외치는 토도마츠를 따라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 쵸로마츠….”

멍청히 현관을 보던 쵸로마츠의 팔에 안긴 동물들의 이변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조용히 쵸로마츠를 불렀다

?” 하고 카라마츠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팔에 있는 동물들을 본 쵸로마츠의 호흡이 멈췄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오소마츠가 사라진 현관을 응시하던 동물들의 꼬리가 바쁘게 흔들렸다.

 

 

 

야호~! 카리스마 레전드 장남님이 돌아오셨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밝은 목소리로 외친 오소마츠의 인사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집 안 가득한 침묵에 오소마츠가 웃는 얼굴을 지우고 눈을 크게 떴다.


…?”

눈 앞에 펼쳐진 집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한심한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거실의 장지문은 엉망이 되어 하나는 복도에 쓰러져 있고, 다른 한쪽엔 동생 하나가 박혀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동생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장지문 너머 피바다가 된 거실엔 동생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구겨 신은 신발을 벗고 복도에 발을 올린 오소마츠가 장지문에 박혀있는 동생을 불렀다.


어이, 카라마츠. 괜찮아…읍?!!!”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오소마츠의 눈앞이 새까매졌다

코가 막혀 호흡할 수 없게 된 오소마츠가 팔을 휘두르며 얼굴에 달라붙은 방해물을 떼어냈다.


-! -! 큐이!!”

? 오소?”

-, - 하고 울며 눈물을 흘리는 래서 판다의 얼굴에 당황한 오소마츠가 상황을 다 파악하기도 전에, 남은 동물들이 일제히 거실에서 뛰쳐나와 오소마츠의 팔다리에 달라붙었다

아침에 데카판이 왔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 된 오소마츠가 자신의 팔다리에 붙어 울부짖는 동물들을 보며 엉거주춤하게 섰다.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발톱 자국과 핏자국이 남은 거실을 보며 중얼거린 오소마츠가 좀비처럼 천천히 일어나는 동생들을 보며 숨을 삼켰다.


, 토도마츠?”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오소마츠의 어깨를 꽉 붙잡은 토도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식은땀을 흘렸다

강하게 붙잡힌 어깨에서 올라오는 아픔에 얼굴을 찡그린 오소마츠의 옆에 토도마츠와 마찬가지로 피칠갑을 한 쵸로마츠가 섰다.


오소마츠 형.”

, !!”

쵸로마츠의 낮은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사색이 된 재빨리 대답했다

핏빛이 된 얼굴로 살벌한 미소를 띄운 토도마츠와 쵸로마츠가 간곡히 말했다.


““두 번 다시 이 녀석들 놔두고 외출하지 마.””

?”

““대답!!!””

! !!”

거세게 얼굴을 끄덕이는 오소마츠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와 함께 거실을 치우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오소마츠가 자신들을 놔두고 나갔다는 것을 깨달은 동물들은 한참 동안 오소마츠가 사라진 현관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쵸로마츠나 토도마츠가 말을 걸어도 미동도 하지 않고 현관을 보던 동물들은 곧 이성을 잃었다

그제야 비로소 왜 데카판의 실험실이 엉망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레서 판다 오소는 끊임없이 -, 큐우~!” 하며 울기 시작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호랑이 카라는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손을 마구잡이로 물더니 곧 카라마츠를 쫓아다니며 물어뜯기 시작했다

양 쵸로는 거실의 벽을 제 뿔로 들이박기 시작하고, 고양이 이치는 발작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빠른 속도로 온 거실 안을 돌아다녔다

이치에게 전염되었는지 개 쥬시도 온 거실을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토끼 토도는 끊임없이 바닥에 발을 구르며 여기저기로 높이 점프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실은 엉망이 되고 TV, 상이며, 벽이며 할 것 없이 모두 엉망이 되고 말았다.


헤에~ 이 녀석들이 그랬다고?”

어느 정도 정돈된 거실 한편에 앉은 오소마츠가 자신의 무릎 위에서 잠든 동물들을 쓰다듬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찌릿- 오소마츠를 노려본 쵸로마츠가 그 광경을 못 봐서 그래!” 하고 외쳤다.


마치 스톰 같은 리틀 비스트였다.”

카라에게 물려 팔 곳곳에 반창고를 붙인 카라마츠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동물들의 발광에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이치마츠는 거실 구석에 주저앉아 평소보다 한층 더 짙은 검은 오라를 마구 내뿜고 있었다

그나마 쥬시마츠가 이치마츠의 옆에서 달래주고 있어 다행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 그만해…. 위험해….” 하고 중얼거리는 이치마츠를 본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절! 외출하지 마. 당분간 외출 금지!!”

에-?!”

금지!!”

쵸로마츠의 단호한 외침에 오소마츠가 푹- 고개를 떨궜다. 

툴툴거리는 오소마츠를 무시하고, 오소마츠의 무릎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동물들을 보며 동생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앞으로 마츠노가에 몰아닥칠 파란을 동생들은 모두 예감하고 있었다.

 

 

 

 

 

 

3.

 

달그락거리는 자기 소리와 함께 바쁘게 움직이는 젓가락을 따라 동물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잠버릇으로 뻗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우물우물 밥을 씹는 오소마츠 옆에 딱 달라붙은 동물들은 가만히 오소마츠의 젓가락을 응시했다.


오소마츠 형, 그 녀석들 밥은?”

-, 사료 주면 된다고 하던데.”

흐응~”

근데 그냥 밥 줘도 상관은 없다고.”

토도마츠의 물음에 오소마츠가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키메라인 동물들은 반은 동물, 반은 인간이라는 특수한 신체로, 데카판이 직접 만든 전용 사료를 먹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반은 인간인 탓에 사람이 먹는 보통의 음식을 줘도 상관은 없다고, 어젯밤 데카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떠올린 오소마츠가 빈 밥그릇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백수 1~, 이거 아가들한테 주렴~”

오소마츠가 빈 밥그릇을 들고 일어나려는 찰나, 부엌에서 나온 마츠요가 어린이용 접시에 담긴 오므라이스를 들고 거실에 들어왔다

작은 그릇에 담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므라이스를 본 오소마츠가 눈을 크게 뜨고 이게 뭐야?” 하고 물었다.


“아가들 밥.”

간단하게 대답한 마츠요가 좁은 식탁에 널린 빈 그릇을 치우고 여섯 개의 작은 접시를 내려놓았다

동물들에게 작은 숟가락을 쥐여준 마츠요가 빙긋 웃으며 동물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젯밤, 일에서 돌아온 부모에게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하자 마츠요와 마츠조는 별 무리 없이 동물들을 받아들였다.


손자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직접 만들어 올 줄은 몰랐네.”

담담하게 동물들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던진 마츠요의 말에 오소마츠가 마시던 보리차를 뿜었다

아니, 내가 낳은 거 아니니까!!!” 하고 당황해 외치는 오소마츠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마츠요와 마츠조는 그저 눈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동물들을 예뻐했다.

 

제대로 먹여, 엄마~”

엄마, 제발….”

마츠요에게 엄마라고 불린 오소마츠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마츠요의 무언의 협박에 푹- 한숨을 쉰 오소마츠가 식탁에 앉아 서툰 손놀림으로 오므라이스를 먹는 동물들을 바라보았다

주먹 쥔 손에 간신히 잡혀있는 숟가락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숟가락을 힘겹게 입으로 가져가는 동물들을 본 오소마츠가 몸을 굽혀 바닥에 있는 티슈 상자로 손을 뻗었다.


다 묻었다, 얀.”

-!”

티슈 한 장을 뽑아 오소의 볼에 묻은 케첩을 닦아낸 오소마츠가 오소의 손에 들린 작은 숟가락을 건네받아 오므라이스를 펐다

, 아앙~” 하고 입을 벌린 오소마츠를 따라 오소의 작은 입이 벌어졌다

숟가락을 입에 넣어주자 앙- 입을 다물고 턱을 움직이는 오소의 모습을, 동생들 모두 젓가락을 멈추고 넋 놓고 바라보았다.

얼굴 가득 미소를 피우고 맛있게 오므라이스를 먹는 오소에게 다시 숟가락을 돌려준 오소마츠의 옷깃을 토도가 잡아당겼다.


? 너도?”

!”

- 하니 자신의 숟가락을 내미는 토도를 본 오소마츠가 어쩔 수 없네-” 하고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일일이 동물들의 밥을 챙겨주고 입가에 묻은 밥풀을 닦아주는 오소마츠를 본 동생들은 식사도 잊어버리고 망연히 오소마츠를 응시하고 있었다.


, 고귀하다….’

눈물을 흘리며 상 아래에 있는 손으로 주먹을 쥐고 파이팅하는 카라마츠에 이어 쵸로마츠도 얼굴을 붉히고 눈썹을 찌푸렸다.


‘‘겁나 귀엽네에에-!!!’’

1초라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오소마츠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도 숨을 삼키며 속으로 외쳤다

토도마츠는 어느새 꺼낸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연사하고 있었다

쥬시마츠도 과도하게 반짝거리는 눈으로 오소마츠를 보고 있었다

얼마나 쳐다봤는지 오소마츠와 동물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동생들의 밥그릇은 여전히 가득 차 있었다.

 

 

흰색의 담요가 펄럭이며 바닥에 깔렸다

장롱에서 적당한 두께의 이불을 꺼낸 오소마츠가 담요 위에 눕자마자 그 양 옆에 동물들이 누웠다.


, - 자자~”

!”

가우!”

!!”

!”

멍멍!”

뀨이!”

오소마츠의 말에 대답하듯 동물들이 따라 울고는 눈을 감았다

오전 늦게 일어나, 조금 전 막 점심을 끝낸 참이건만 낮잠을 자겠다고 누운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잠이 와?”

횽아는 머리만 붙이면 3초 안에 잘 수 있어!”

X구냐?!”

오소마츠의 말에 태클을 걸며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잡지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도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구직잡지를 이리저리 뒤지던 쵸로마츠가 문득 잡지 너머로 시선을 옮겨 맞은편에 앉은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항상 점심이 끝나면 제 할 일을 찾아 외출하던 동생이 오늘은 모두 집 안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쵸로마츠의 맞은편에 앉은 이치마츠는 조용히 방 중앙에 이불을 깔고 누운 오소마츠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거실에 비하면 좁은 2층 방에 오소마츠가 이불을 깔고 누워 더 좁아진 방 안에 진득이 들어와 있는 네 명의 형제들을 쭉 둘러본 쵸로마츠가 기가 찬 코웃음을 흘렸다.


다들 안 나가?”

쵸로마츠의 물음에 동생들의 몸이 일제히 움찔거렸다

창가에 앉아 부드러운 시선으로 오소마츠를 보고 있었던 카라마츠가 기계마냥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 오늘은 비가 올 것 같아서 말이지.”

오늘 날씨 완전 맑음이라는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카라마츠.”

열린 창밖에 펼쳐진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며 쵸로마츠가 말하자 카라마츠가 입을 다물고 쵸로마츠의 시선을 피했다

날카롭게 카라마츠를 보던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려 이번엔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이치마츠, 항상 이 시간에 고양이 보러 가지 않았어?”

“…, 오늘은 안 가도 돼.”

정말로…?”

“…, …. 아마도….”

아마도…?”

“….”

쵸로마츠의 집요한 물음에 이치마츠도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이어 쵸로마츠의 시선을 받은 쥬시마츠도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쥬시마츠에게 뭐라 말하려던 쵸로마츠가 문득 떠오른 기억에 입을 다물고 토도마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토도마츠.”

뭐야?”

녹색 소파에 앉아 잠든 오소마츠의 얼굴을 찍고 있던 토도마츠가 슬쩍 고개만 돌려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넌 오늘 약속 없어?”

없는데~? 쵸로마츠 형이야말로 오늘은 헬로워크나 라이브 안 가?”

오늘은 조금 쉬려고.”

후응~”

오소마츠를 찍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토도마츠가 쵸로마츠를 빤히 바라보았다

토도마츠의 시선을 피해 잡지에 눈을 돌린 쵸로마츠가 토도마츠를 향해 원망을 담아 (속으로) 외쳤다.


망할 드라이 몬스터 자식!!’

 

 

 

데카판에게서 동물들을 맡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엔 오소마츠와 동물들의 모습에 매일매일 행복했던 동생들은 날이 지날수록 점차 지쳐갔다.


오소마츠 형! 또 내…”

캬앗!!!”

“….”

사라진 마른 멸치의 행방을 추궁하려던 이치마츠를 향해 잔뜩 털을 곤두세운 이치의 경계에 이치마츠가 슬슬 뒷걸음질 쳤다

목을 울리며 이치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위협하는 고양이 이치의 머리를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쓰다듬자,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금세 골골골- 하는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미안~ 너무 맛있어서…. 이치도 맛있었지~?”

-”

“…그래….”

오소마츠의 가벼운 사과에 이치마츠가 고개를 숙이고 거실 저편으로 걸어가 틀어박혔다

이치마츠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동생들은 또냐!’ 하고 하나같이 외쳤다

동물들은 동생들이 오소마츠에게 다가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항상 오소마츠에게 붙어있으면서 누가 오소마츠에게 다가가려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위협하며 화를 냈다

눈앞에 귀여운 천사들이 있는데도 다가갈 수 없는 눈앞의 떡상황이 일주일이나 이어지자, 동생들의 인내심은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 토도마츠. 잠깐 스마트폰 좀 빌려줘!”

스마트폰? ?”

오소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미심쩍다는 얼굴로 오소마츠를 찍던 것을 멈추고 물었다

이히히-” 하고 천진난만하게 웃은 오소마츠가 경마 방송 좀 보게.” 하고 대답했다

오소마츠의 말에 푹-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러 가까이 다가가자, 오소마츠의 옆에 있던 토끼 토도가 인상을 쓰고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토끼는 위험이 닥치거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땅에 발을 굴러 신호를 보내는 버릇이 있었다

쾅쾅쾅쾅쾅! 하고 빠르고 크게 바닥이 울렸다

거세게 발을 구르는 토도를 보며 쯧- 하고 혀를 찬 토도마츠가 스마트폰을 재빨리 건네주고 오소마츠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멀어지는 토도마츠를 노려본 토도가 발을 멈추자 토도마츠의 입에서 절로 큰 한숨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동물들의 지속적인 방해에 토도마츠는 물론이고 동생들 전원은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예외가 있다면 어머니 마츠요와 아버지 마츠조뿐이었다.

부모님인 두 사람은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가도 동물들이 방해하거나 위협하지 않았다.

한숨과 함께 바닥에 무릎을 모으고 앉은 토도마츠에게 다시금 형제들의 동정 어린 시선이 꽂혔다.

 

 

오소마츠 형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쥬시마츠의 씩씩한 외침이 온 집안에 울렸다

외출에서 돌아온 쥬시마츠가 흙투성이가 된 옷을 대충 털고 오소마츠에게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갔지만, 곧 왕왕 짖는 쥬시에 의해 제지되고 말았다.


….”

크르르릉-, ! !”

쥬시마츠를 보며 으르렁거리는 쥬시의 모습에 쥬시마츠가 입을 꾹- 다물고 이치마츠 옆에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어서 와, 쥬시마츠.”

, 다녀왔어. 이치마츠 형아.”

음침한 기운을 내뿜는 두 동생을 보며 난처한 웃음을 지은 오소마츠가 아직도 씩씩거리는 쥬시를 품에 안았다.


, -. 착하지~”

쥬시를 달래는 오소마츠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쥬시는 바로 헥헥거리며 꼬리를 흔들곤 오소마츠의 얼굴을 핥았다

마치 자기 아이를 어르듯 자애로운 오소마츠의 표정과 그 품에 안겨 즐겁게 웃으며 오소마츠의 얼굴을 핥는 쥬시의 모습을 빤히 바라본 동생들은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고귀하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지금 이 눈앞에 있는 이곳이 아닐까, 생각하며 오소마츠와 동물들의 귀여움에 몸부림칠수록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이미 잔뜩 풀이 죽은 채, 거실 구석에 정착한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를 뒤로 하고,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은근한 눈길을 보냈다

거울을 보던 카라마츠도 둘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고 슬며시 몸을 일으켜 동물들과 카드놀이를 하는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형님.”

?”

오소마츠와 1m 정도 거리를 두고,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오소마츠와 동시에 동물들의 싸늘한 눈초리가 카라마츠에게 박혔다

애써 동물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헛기침을 한 카라마츠가 말을 이었다.


…, 리틀 비스트에게 훈련이라도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 훈련? ?”

아니, 형님에게 항상 붙어있는 것은 리틀 비스트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형님도 이대로는 계속 외출하지 못하니 답답하지 않은가?”

손가락을 들고 빙고오-?” 하고 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잡고 ~ 아파! 갈비뼈 부러진다~!” 하고 장난스럽게 신음하자, 호랑이 카라가 득달같이 카라마츠에게 달려가 그 손가락을 물었다.


아우치!!!”

크앙-!!!”

카라마츠의 비명에 오소마츠가 재빨리 카라를 붙잡았다

날카로운 맹수의 이빨에 물려 피가 철철 흐르는 손가락을 쥔 카라마츠가 울상이 된 얼굴로 외쳤다.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

, …. 무는 건 좀 말려야겠네….”

카라마츠의 울먹임에 오소마츠가 코 밑을 문지르며 멋쩍게 웃었다

카라를 들어 올려 시선을 맞춘 오소마츠가 마츠조의 얼굴을 따라 엄한 표정을 짓고 카라! 안 돼!! 물면, !” 하고 외쳤다

제대로 오소마츠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카라의 귀와 꼬리가 축 늘어졌다

갸우….” 하고 힘없는 울음을 내는 카라의 모습에 오소마츠는 금세 엄한 표정을 풀고 카라를 품에 안아 토닥여 주었다.


반성하는 거지? 앞으로 그럼 안 돼~?”

갸우-”

눈물을 흘리며 눈앞의 천국을 보는 카라마츠를 제치고 참지 못한 쵸로마츠가 다가왔다.


아니 그거 절대 혼내는 거 아니니까!! 저 녀석 아직도 카라마츠 노려보고 있고!!!”

쵸로마츠의 태클이 끝나자마자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했다

? 이거론 안 돼?” 하고 묻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당연히 안 되지!!” 하고 외침과 동시에 다닥다닥- 하고 발이 울렸다.


쿠헉!?”

!?”

오소마츠에게 호통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오소마츠 곁에 앉아있던 양 쵸로가 달려들어 쵸로마츠의 배에 뿔을 받았다

아직 어린 양이어도 단단한 뿔에 받힌 고통은 엄청났다

배를 잡고 쓰러진 쵸로마츠를 보며 당황한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달려가자 레서 판다 오소와 다른 동물들이 일제히 울부짖기 시작했다.


큐우~!! !!”

가우-!”

!!”

멍멍!”

!”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쵸로마츠에게 달려가던 발을 멈춘 오소마츠가 미안한 얼굴로 쵸로마츠를 보며 동물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괜찮아? 쵸로마츠으~”

, 괜찮아….”

울음을 멈춘 동물들을 품에 안고 걱정스럽게 묻는 오소마츠에게 간신히 일어난 쵸로마츠가 대답했다

후들거리는 팔로 몸을 지탱하고 일어난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보며 단호히 말했다.


훈련! 꼭 시켜…!”

….”

귀신 같은 얼굴로 낮게 읊는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4.

 

오소마츠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텅 빈방 안. 동물들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맞댔다.


좋아! 오늘의 회의를 시작한다!”

“““““~!!”””””

오소의 외침을 따라 동물들이 일제히 손을 들고 울었다

동물들 딴에는 대화를 하고 있겠지만, 다른 이가 보면 영락없는 브레멘 음악대와 같은 광경이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제 크기에 꼭 맞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린 오소가 다시 외쳤다.


오늘도 제대로 엄마를 지켰나?!”

오소의 물음에 동물들이 모두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물론이다!! 오늘도 엄마를 항상 아프게 하는 파란 녀석에게서 제대로 엄마를 지켰다고!!”

나도! 항상 엄마한테 소리치는 나쁜 풀 같은 녀석을 때려줬어!!”

보라색의 음침한 녀석이 엄마한테 못 가게 막았어….”

나도! 나도! 시끄러운 노란 거 멀리 쫓아냈어!!”

귀여운척하는 분홍 녀석도!”

저마다 동생들을 막아낸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물들을 보는 오소의 입가에 기쁜 미소가 걸렸다.


! 모두 잘했어! 엄마의 동생이라지만 엄마를 나쁜 눈으로 보는 녀석들에게서 반드시 엄마를 지키자!”

“““““~!!”””””

오소의 말에 동물들 모두 빠짐없이 동의하며 손을 높이 들고 다짐했다.

 

 

 

 

 

 

5.

 

“어-….”

절로 나오는 한숨을 삼키지 못하고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소마츠 형에게 가까이 가지 못한지 벌써 일주일이 넘게 흘렀다

오소마츠 형과 동물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며칠 동안 외출하지 않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밥을 챙겨주지 못한 고양이들의 상태가 걱정되어 결국 오늘 집을 나섰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인지 동물들이 온 이후로 오랜만에 오소마츠 형을 남겨두고 모두 외출했다

사료가 담겨 있었던 봉지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터벅터벅 슬리퍼를 끌었다

소마츠 형을 엄마로 인식하고 있다는 동물들은 절대 우리 곁에 다가오지 않았다

다가오기는커녕 오소마츠 형에게 조금만 접근해도 바로 우리를 위협했다

자신의 얼굴을 한 고양이에게 거부당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괴로웠다

오소마츠 형과 함께 고양이 이치의 털을 쓰다듬고 싶다

오소마츠 형에게 이렇게 오랫동안 가까이 가지 못한 적은 없었다

슬슬 오소마츠 형 금단증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맛있게 사료를 먹던 적갈색의 고양이를 오소마츠 형이라고 불렀으니 말 다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오늘도 오소마츠 형에게 가까이 갈 수 없구나…. 

괜히 길가의 돌멩이를 차며 걷는데, 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내 옆을 지나쳤다.


우왓! 위험….”

여긴 아이들도 자주 다니는 골목길인데 저렇게 속도를 내서 지나가다니…. 

몰상식한 운전사의 모습에 눈썹을 찌푸리고 번호판을 노려보며 번호를 외웠다

저렇게 빠르게 다니면 아이뿐만 아니라 고양이들도 치일 수 있다.

나중에 쵸로마츠 형에게 부탁해서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하자

차 번호를 되뇌며 머릿속에 집어넣고 다시 발을 옮겼다


집으로 향하는 일직선의 길

저 멀리에서 보이는 낯익은 지붕을 보자마자 착잡한 심정이 다시 퍼졌다

오늘도 나는 오소마츠 형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인 내 시야에 몸을 작게 웅크리고 있는 보랏빛의 덩어리가 들어왔다.


? 너 여기서 뭐 해?”

“…, 냐아?”

길 한구석에 작게 웅크려 떨고 있는 이치를 보며 묻자, 고개를 든 이치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 이 녀석, 집 밖으로 나오면 안 되지 않나

데카판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기울이고, 천천히 몸을 숙여 이치와 눈을 마주했다.


이치?”

냐아….”

뭔가를 호소하는 것처럼 우는 이치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발톱까지 세우고 덜덜 떠는 이치는 얌전히 내 품 안에 안겼다.

이치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레 이치를 옷으로 감싸고 현관문을 열었다.


! 이치마츠!! 혹시 이치 못 봤어?”

현관문을 열자마자 다급하게 외치는 오소마츠 형에게 품에 안고 있는 이치를 보여주었다.


이치!!!”

냐아~!!”

오소마츠 형이 두 팔을 벌리고 이치를 부르자마자, 이치는 내 품에서 뛰어내려 오소마츠 형에게 달려갔다.


어디 갔었어~! 걱정했네!”

냐아-!”

낮잠 자다 일어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냐아-”

제대로 반성하는 거지?”

이치를 품에 안고 얼굴을 비비는 오소마츠 형의 말에 왜 이치가 덜덜 떨고 있었는지 이해했다

아무래도 오소마츠 형과 동물들이 잠든 사이, 몰래 밖에 나온 이치는 조금 전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에 놀란 것 같았다

자기보다 몇십 배는 커다란 쇳덩이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면 나라도 두려울 것이다. 

오소마츠 형의 품에 안겨 안심한 얼굴로 -, -“ 하고 응석 부리는 이치에게 살며시 다가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밖에 나가지 마.”

“….”

내 말에 대답하듯 우는 이치의 모습에 절로 얼굴이 풀어졌다

오소마츠 형도 빙긋 웃으며 고마워, 이치마츄~” 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오소마츠 형의 손길에 절로 등이 굽었다.

 

 

 

 

 

 

6.

 

간식을 먹는 동물들을 챙겨주는 오소마츠 형에게 거리를 두고 앉아 스마트폰을 들었다

동물들이 오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내 스마트폰의 갤러리에는 오소마츠 형과 동물들의 깜찍한 사진들로 가득했다

동물들을 보는 오소마츠 형의 자상한 얼굴과 눈빛을 언제까지고 간직하고 싶어 벌써 몇백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오소마츠 형의 고귀함은 사진에는 다 담기지 않았다

언제쯤 만족할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한탄하며 한 번 더 화면을 눌러 사진을 찍었다.


엄마~, 잠깐 이리로 와 볼래?”

거실에 들려오는 엄마의 부름에 오소마츠 형이 눈썹을 찌푸리고 일어났다

, 엄마!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니깐!!” 하고 투정을 부리며 오소마츠 형이 거실을 나가자, 거실엔 나와 동물들만이 남았다

오소마츠 형에게 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았던 동물들은 간식에 정신이 팔렸는지 오소마츠 형이 거실을 나간 것도 눈치 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손가락을 멈추고 화면에 비친 동물들을 응시했다


이 녀석들이 온 뒤로 오소마츠 형의 보배로운 사진은 많이 찍을 수 있었지만, 오소마츠 형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으니 소용이 없다.

절벽 위의 꽃 마냥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지금의 생활에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누가 너희들 사진 따위 찍어줄까 보냣

작은 복수의 의미로 카메라를 종료하고, 몸을 부르르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물들을 피해 거실을 나와 화장실로 향하면서 주방을 보니, 오소마츠 형과 엄마가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오늘은 오소마츠 형의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건가

은근히 들뜨는 마음으로 용무를 끝내고 거실문을 열자 토끼 토도가 나를 보고 움찔 떨며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덜컹- 하고 스마트폰과 함께 내 마음도 떨어졌다

저거 아직 할부 남았는데!! 

재빨리 스마트폰을 주워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하아~”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토도를 노려보자 토도는 고개를 홱 돌리고 휘파람을 불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영악한 토끼 자식

토도를 쏘아보며 스마트폰의 화면을 켰다.


혹시 너, 이거 보고 있었어?”

스마트폰의 잠금 화면을 보고 나직이 토도에게 물었다

내 질문에 놀랐는지 눈을 똥그랗게 뜬 녀석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스마트폰의 잠금 화면은 토끼 토도를 안고 자상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오소마츠 형의 사진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폰을 들고 바닥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토도에게 더 볼래?” 하고 묻자, 토도가 눈을 빛내며 내게 다가왔다

항상 오소마츠 형에게 붙어서 내게는 한 번도 스스로 오지 않았던 토도가 내 무릎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에 적잖이 감격하며, 갤러리를 열어 오소마츠 형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토도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오소마츠 형의 사진을 감상하더니 작게 콩- 하고 발을 굴렀다

신호에 맞추어 사진을 넘기자 토도가 다시 스마트폰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대고 사진을 유심히 살폈다

잠시 후, 다시 콩- 하고 울리는 신호에 맞추어 다음 사진을 보여주었다

오소마츠 형과 자신의 사진에 뀨이~!” 하고 울며 뚫어지라 쳐다보는 토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얼레?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거실로 들어온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토도가 !!” 하고 놀라며 재빨리 내 무릎에서 뛰쳐나갔다.


뭐 보고 있었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와 묻는 오소마츠 형에게 싱긋- 웃으며 비밀이야!” 하고 대답했다

토도도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 하고 울었다

퉁퉁 볼을 부풀리는 오소마츠 형의 주변에서 토도가 기쁜 얼굴로 팔짝팔짝 뛰며 오소마츠 형의 주변을 맴돌았다

토도를 안아 올리는 오소마츠 형을 보며 작은 한숨과 함께 무릎에 남아있는 토도의 온기에 입꼬리를 올렸다.

 

 

 

 

 

 

7.

 

현관문을 눈앞에 두고 휙휙- 입고 있는 옷을 훑어보았다

엄마는 집에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먼지를 털고 들어오라고 했었다

군데군데 묻은 흙을 팡팡 털어내고 현관문을 열었다.


“CR다녀왔슴다~!!!”

, 쥬시마츠~”

신발을 벗고 복도에 오르자 주방에서 나온 오소마츠 형아가 미소로 반겨주었다

동물들의 맘마를 준비하고 있었는지 빨간색 앞치마를 두른 오소마츠 형에게 다시 크게 다녀왔슴다!” 하고 외치자, “, 어서 와~. 옷 갈아입고 와~!” 하고 오소마츠 형이 대답해주었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2층에 올라가 방문을 열자 동물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다녀왔슴다!!”

크게 외치자 동물들이 털을 바짝 세우고 막 울었다

왜 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 시끄럽네!”

일제히 울어대는 동물들에게 외치자 동물들이 울음을 멈추고 황당하단 얼굴을 한 것 같았다

~,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동물들은 놔두고 입고 있던 야구 유니폼을 벗었다

윗도리를 벗고 노란 후드를 입은 후, 긴 야구 양말을 벗고 바지를 내렸다.


통통통- 도르르-


! 야구공!!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잊고 있었던 야구공이 바지를 벗는 중에 주머니에서 튀어 나갔다

통통 가볍게 바닥에 튀어 올랐다가 굴러가는 야구공을 다시 집어 들고 고개를 들자, 야구공을 보고 있던 쥬시랑 눈이 마주쳤다.


? 응응??

이거?? 이게 하고 싶은 거지??

나를 보며 !!” 하고 대답한 쥬시를 보자 하하하! 하고 웃음이 나왔다

반바지를 쭉 잡아당겨 똑바로 입고 서자, 쥬시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빤히 응시했다.


~! 그럼~, 물어 와!!”

! !!”

방 안에 던진 공은 이리저리 튀어 소파에 떨어졌다

멍멍 기쁘게 울며 공을 쫓던 쥬시가 팔짝팔짝 튀어 소파에 간신히 올라 공을 물고 다시 내 앞에 왔다.


! 잘했다~! 그럼 한 번 더!!”

내가 공을 다시 던지자, 쥬시도 다시 멍멍! 울며 공을 쫓았다

공을 따라가는 쥬시는 굉~장히 기뻐 보였다.


어이, 너네 너무 시끄러…, 우왓!!!”

오소마츠 형아가 문을 열자 책장에 부딪힌 공이 오소마츠 형아의 얼굴 옆을 스쳐 날아갔다

빠르게 스쳐 지나간 공에 놀란 오소마츠 형아가 복도에 주저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쥬시는 계속 멍멍! 외치며 계단을 굴러 내려가는 공을 쫓았다.


~~~~?!”

!”

집 안에서 공놀이는 위험하지~?”

!”

오소마츠 형아가 조금 화를 냈지만,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오소마츠 형아는 진심으로 화내지 않으면 별로 안 무섭다

지금도 화난 말투이지만, 오소마츠 형아의 얼굴엔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해바라기같이 빛나는 미소와 함께 오소마츠 형아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같이 놀아주고, 착하네~” 하고 칭찬해주었다

오랜만에 오소마츠 형아에게 칭찬받았다

기쁘게 웃자, 어느새 공을 물고 돌아온 쥬시도 공을 내려놓고 나를 보며 왕! 하고 웃었다.

 

 

 

 

 

 

8.

 

기분 좋게 냐-짱 라이브에서 돌아오는 길

귓가에서 맴돌며 사라지지 않는 냐-짱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도착했다

요즘 데카판이 맡긴 골칫덩어리들 덕분에 오소마츠 형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와중에, 오늘의 냐-짱 라이브는 내게 어둠 속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냐-짱 덕분에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해소되어, 그 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개운해졌다. 


현관문을 앞에 두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 되뇌었다.

괜찮아. 오늘도 버틸 수 있다

오소마츠 형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은 괴롭지만…. 

괜찮다며 스스로 다독이고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 하고 외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상 일을 나가신 엄마와 아빠의 대답이 없는 것은 그렇다 쳐도, 동물들 때문에 집에 남아있을 오소마츠 형의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 것은 이상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거실로 들어서자 엉거주춤하게 서 있던 쵸로가 나를 보며 메-!” 하고 울었다.


너 혼자야? …근데, ?”

쵸로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이유를 본 순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설마 제 털에 발이 엉켜있을 줄은…. 

나와 똑같은 얼굴에 같은 이름을 가진 녀석이 이런 한심한 꼴이 되어 있는 것이 묘하게 자존심 상했다

한숨을 푹- 내뱉고, 메고 있던 가방에서 빗을 꺼내 쵸로를 붙잡았다.


-!!”

안 때려. 도망치지 마.”

내 손에서 도망치려 발버둥 치는 쵸로를 안고 앉아 빗으로 천천히 털을 빗겨주었다

오소마츠 형은 이런 관리를 전혀 해주지 않으니 이런 사태가 일어난다

! 하고 혀를 차며 아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털을 빗자, 쵸로의 발에 엉켜있던 털도 서서히 풀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숙이고 있는 머리를 지탱하는 목이 빠듯하게 아파왔다.


, 됐다!”

만족스러운 외침과 함께 쵸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 발치에 있는 쵸로의 털 뭉치를 쓰레기통에 넣고 멍청히 나를 올려다보는 쵸로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털을 빗겨줄 때도 느꼈지만, 이 녀석 털 엄청 부드럽다

괜히 양털로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털을 쓰다듬어주자, 쵸로도 기분 좋은지 눈을 감고 -” 하고 수줍게 울었다.


? 쵸로마츄~, 언제 왔어?”

20분 전에? 뭐 하고 있었는데 내가 온 것도 몰라?”

거실문을 열고 나타난 오소마츠 형에게 묻자, 오소마츠 형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창고에 있었거든~”

창고? ?”

빗 찾으러…. 근데 생각해보니까 안방에 있는 엄마 화장대에 있겠다 싶어서…. ? 쵸로, ….”

, 내가 빗겨줬어.”

뭐야아~, 쵸로마츠한테 빗 있었어?”

오소마츠 형이 기쁜 얼굴로 쵸로에게 다가갔다

쵸로도 ~!” 하고 기분 좋게 울며 오소마츠 형에게 다가가 순순히 품에 안겼다

쵸로를 들어 올린 오소마츠 형에게 빗 찾으러 창고에 있었어?” 하고 묻자, 오소마츠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빗 안 쓰고…. 토도마츠도 없다고 하길래. 카라마츠한테는 있을 텐데 집에 없고, 세면대에도 빗이 없더라고. 그래서 창고에 있나 싶었지.”

하아….”

오소마츠 형의 말에 뭐라 반응해야 할지 알지 못해 멍하니 바라보자, 오소마츠 형이 쵸로의 볼에 뽀뽀하며 빙긋이 미소 지었다.


쵸로마츠가 쵸로 도와줬네~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했어?”

~, !”

쵸로의 작은 손을 잡고 좌우로 파닥파닥 흔드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에 작게 웃고, 쵸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쵸로마츠~, 땡큐~!”

, …. 별로….”

기쁘게 웃는 오소마츠 형의 미소에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9.

 

! 오늘도 완벽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세면대를 떠났다

오늘따라 유난히 완벽하게 느껴지는 나의 퍼펙트 패션을 다시 내려다보며, 계단을 올라 2층 방문을 열었다.


오소마~! 벌써 아름다운 썬-이 이 월드에 축복을 내리고 있다! 마미의 딜리셔스-한 밥이 기다리고 있다고~?”

내 외침에도 오소마츠는 이불에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곤란한 형님이다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동생들이 모두 떠난 이불을 붙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추웟!!! 카라마츠!”

굿 모닝- 마이 하니-!! 어서 일어나 큐트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나?”

아팟! 아침부터 갈비뼈가 아팟!!!”

배를 잡고 일어난 오소마츠가 큭큭 하고 어깨를 떨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오소마츠 주변에 누워있던 리틀 비스트들도 눈을 비비며 일어나 스스로 계단을 내려갔다.


읏챠아~”

아저씨 같은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에게 오소와 카라가 달라 붙어있었다

오소마츠의 어깨에 올라탄 오소는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카라도 오소마츠의 등에 매달려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아직도 그렇게 경계를 풀어주지 않는 건가…. 리틀 비스트-.


그 녀석들은 아직도 오소마츠한테서 떨어지질 않는구나.”

~, 이 녀석들이 제일 안 떨어져….”

하품을 하며 제 등과 목에 매달려있는 리틀 비스트의 머리를 쓰다듬은 오소마츠가 잠옷 차림으로 방을 나섰다

마지막에 일어났으면서 제대로 이불도 정리하지 않는 오소마츠의 뒤를 따르며 쵸로마츠가 잔소리할 것이라 충고했지만, 오소마츠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괜찮대도~ 쵸로마츠 잔소리는 매일 듣는 거…, 우왁!?”

적당히 웃으며 넘기는 오소마츠의 몸이 순간 크게 기울었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 오소마츠를 재빨리 붙잡았다.


, 괜찮나? 오소마츠….”

, …. 우와~ 놀라라….”

오소마츠의 허리를 잡고 끌어당겨 품에 안은 채 묻자 오소마츠가 놀란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조심 좀 해라.” 하고 가볍게 화를 내는 나를 보며 씩- 웃은 오소마츠가 미안, 미안~” 하고 사과하곤 내게 슬쩍 기댔다.


그럼, 힘센 우리 차남이 좀 옮겨줘~”

, 할 수 없군.”

팔을 벌리고 어리광을 부리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귀까지 올라갈 것 같은 입꼬리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오소마츠의 무릎 뒤에 팔을 넣고 들어 올렸다

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로 오소마츠를 들어 올리고 계단을 내려왔다

1층 복도에 오소마츠를 내려놓자 오소마츠의 등에 매달려있던 리틀 타이거가 나를 보며 울었다.


갸우-!”

? 무슨 일인가?”

고개를 기울이며 묻자, 리틀 타이거가 다시 갸우!” 하고 울었다

무슨 일일까 싶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소마츠가 즐겁게 웃으며 타이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그러네! 고마워! 카라마츠~! 카라도 고맙대~”

, 아아!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해 주겠다!”

그럼 고마워요 악수~!”

오소마츠는 타이거의 손을 잡아 내게 내밀었다

잠시 망설이자 타이거가 갸우!” 하고 외쳤다

항상 내 손을 물어뜯기 바쁘던 타이거의 손을 머뭇거리며 붙잡자, 오소마츠가 은은한 미소와 함께 타이거의 손을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푹신푹신한 털의 감촉과 손가락에 느껴지는 말랑말랑한 육구의 따뜻함에 해일처럼 감동이 몰려왔다.


그럼 밥 먹을까!”

두세 번 더 손을 흔든 오소마츠가 타이거와 함께 거실로 향했다

손에 남은 육구의 감촉과 오소마츠의 체온에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10.

 

내 무릎에서 서로 뒤엉켜 장난을 치고 있는 오소와 카라에게서 시선을 올려 거실을 쭉 둘러보았다

어느새 친해진 녀석들은 저마다 짝을 지어 함께 놀고 있었다

토도마츠와 토도는 같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고, 이치와 쥬시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와 함께 공놀이하고, 쵸로는 쵸로마츠의 무릎에 누워 자고 있다.

이제 내게 24시간 붙어있지 않게 된 녀석들에게 조금의 아쉬움을 느끼며 오소와 카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잠깐??

이거 기회 아냐?

 

번뜩인 생각에 역시 나는 카리스마 레전드라는 것을 실감하며 거울을 보고 있는 카라마츠에게 오소와 카라를 억지로 안겼다.


, 오소마츠?”

당황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카라마츠에게 좀 부탁해.” 하고 말한 뒤, 거실을 나왔다.


드디어!! 밖에 나갈 수 있다!!

키메라인 녀석들을 데리고 밖에 나갈 수 없어 반강제로 지내온 감금 생활도 이제 끝!!

파칭코다!! 아니 경마 먼저 갈까!

룰루루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2층에서 지갑을 들고 내려와 현관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내 귀에 듣고 싶지 않았던 오소와 카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역시 안 되었나.

아직도 떨어뜨리면 안 되는 건가….


- 한숨을 내쉬고 거실로 들어가자, 내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 타이거- 진정해라. 래서-!! 동생을 공격하면 안 된다!!”

조금 전까지 내 무릎에서 함께 놀던 오소와 카라가 카라마츠의 무릎에서 서로 싸우고 있었다

장난으로 물어뜯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심각하게 싸우는 두 녀석을 카라마츠가 잔뜩 당황하며 말리고 있었다.


? ?? 무슨 일??”

카라마츠에게 뛰어가 -! 갸우~!!” 하고 울고 있는 카라를 안아 올렸다

오소에게 물렸는지 카라의 앞발에서는 피가 나오고 있었다.


!! 큐이!!”

잔뜩 성을 내고 씩씩거리던 오소가 나를 보며 크게 울었다

오소가 많이 울긴 해도 이렇게 큰 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

몸을 떨며 놀라 우는 카라의 등을 토닥이며 몸을 숙였다.


오소? 왜 그래?”

큐우~!!!”

내게 팔을 뻗고 외치는 오소를 잡아 카라와 함께 안아 올리자, 오소도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 큐우-” 하고 울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 나도 잘 모르겠다….”

?”

카라마츠는 멍청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네 무릎에 있었거든? 이 녀석들….


갑자기 싸우기 시작했어.”

카라마츠의 뒤에서 쥬시마츠가 말했다

갑자기?” 하고 되묻자 !” 하고 씩씩한 대답이 돌아왔다.


오소가 먼저 공격하던데?”

쥬시마츠에 이어 토도마츠가 스마트폰을 내리고 말했다

오소가?” 하고 되묻자 마찬가지로 .”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다른 녀석들과 한 번도 싸운 적 없던 오소가 먼저 싸움을 건 것도 이상했고, 제가 먼저 싸움을 걸어놓고 내 품에서 큐- - 우는 것도 이상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요상한 꺼림칙함을 남겨놓고 이 싸움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오소의 기행은 멈추지 않았다.

 

 


쵸로씌~ 나도 데려가아~~”

, 좀 꺼져 봐!”

레이카의 라이븐지 뭔지에 가려는 쵸로마츠의 다리에 매달려 조르자, 평소와 다름없이 짜증을 부리던 쵸로마츠가 웬일로 발을 멈추고 거실에 엉덩이를 내렸다.


? 안 가?”

“…오늘은 안 내키기도 했고. 뭐 할 건데?”

정말로 정~말로 드물게 쵸로마츠가 놀아주기로 한 것이 기뻐서, 서둘러 2층에 올라가 고이 간직해 두었던 오셀로를 꺼내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셀로? 오랜만이네.”

그지~! 저번에 빗 찾으러 창고 뒤지다가 발견했어!!”

~ 그때….”

쵸로의 털이 엉켰던 것을 떠올렸는지 작게 중얼거린 쵸로마츠가 말없이 오셀로 판을 펼쳤다

어린 시절엔 둘이서 자주 했던 추억의 게임을 같이 한다는 생각에 기분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 큐우!! 큐큐!!”

!! 메에~!!”

오셀로를 시작하려는 찰나, 거실 안에 울리는 처절한 울음소리에 나와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얌전히 거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오소와 쵸로가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 오소?!”

당황해 외치며 급히 오소와 쵸로를 떼어놓자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오소가 발버둥 치며 쵸로에게 꼬리를 휘둘렀다.


, 왜 그래??”

마찬가지로 오소에게 달려들려는 쵸로를 붙잡은 쵸로마츠가 물었지만, 나도 싸운 이유를 알지 못했다

뭐가 그리 분한지 - -” 하고 울음을 멈추지 않는 오소를 품에 안고 거실을 빠져나왔다

2층 방에 올라 오소의 등을 토닥이자, 서서히 오소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품에 안겨 울다 지쳐 잠든 오소를 보며 갑자기 왜 싸우기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 이후로, 오소는 자주 다른 녀석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내가 이치마츠와 함께 고양이 방송을 보고 있을 때, 오소의 울음소리에 뒤돌자 어느새 우리 뒤편에서 오소와 이치가 싸우고 있었다

쥬시마츠와 함께 야식을 먹기 위해 몰래 이불에서 빠져나왔을 때도, 소란스러워진 2층을 눈치채고 올라가 보자 이불 위에서 쥬시와 오소가 싸우고 있었다

토도마츠와 함께 토도를 안고 셀카를 찍고 있을 때는 내 품에 안긴 토도에게 오소가 달려들었다

오소는 다른 녀석들을 죽일 듯이 맹렬하게 달려들었고, 그에 대항하는 녀석들은 싸움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새근새근 규칙적으로 숨을 내쉬며 잠든 오소를 품에 안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 외의 다른 녀석들은 고양이나 호랑이, , 양이었다

몸집은 같아도 의 차이가 있었고, 맹수인 카라나 이치는 오소와 싸울 때도 적당히 봐주면서 싸우고 있었다.

힘의 차이가 있다 해도 오소는 망설이지 않고 공격해대니, 결국 상처를 제일 많이 입는 것은 오소였다

작은 팔 군데군데 남은 상처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오소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오소-,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싸우는 거야….”

안타까움을 담아 물었지만 잠든 오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데카판에게 가서 오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기계를 받아오자, 홀로 다짐하며 오소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11.

 

너네 진짜 뭐야!!”

오소마츠가 낮잠이 들고, 조용한 집 안에 오소의 !!” 하는 울음소리가 울렸다

거실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동물들의 회의가 열려 있었다.


엄마를 지키기로 해 놓고!!”

오소의 다그침에도 동물들은 눈을 돌릴 뿐, 뭐라 입을 열지 않았다.


너희들, 엄마를 지킬 생각 없는 거야!?”

, 그럴 리 없다!! 다만….”

오소의 말에 카라가 발끈해 외쳤다

뒷말을 흐리는 카라를 보며 오소가 날카롭게 다만, 뭔데?” 하고 물었다.


다만, 카라마츠라면 좋은 아빠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고….”

그 파란 녀석은 항상 엄마를 아프게 하잖아!”

, 아니다!! 그건 정말로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카라마츠는 멋있고 강하다! 엄마를 지켜줄 수 있어!!”

억울하단 얼굴로 외치는 카라에 이어 이치도 손을 들고 말했다.


“…개똥마츠보다는 이치마츠가 더 좋을 것 같은데. 차분하고 상냥해. 이치마츠가 아빠가 되어주면 기쁠 것 같아….”

아니, 보라는 너무 음침하잖아? 토도마츠가 최고지! 나처럼 귀엽고! 엄마와도 제일 마음이 맞고! 제일 어울리고!! , 봐 봐!”

이치의 말이 끝나자마자 토도가 오소마츠와 토도마츠가 함께 찍혀있는 사진을 꺼내 자랑하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빠는 쵸로마츠가 제일 어울려. 엄마랑 어릴 때부터 친구였고! 엄마 마음을 제일 잘 알고 있는걸!”

토도가 꺼낸 사진을 보며 콧방귀를 낀 쵸로가 말했다

쵸로의 말이 끝나자 이번엔 쥬시가 아냐, 아냐!” 하고 외치며 말을 시작했다.


쥬시마츠가 최고야! 파랑보다 힘세서 엄마를 잘 지켜줄 수 있어! 그리고 제일 잘 놀아줘!!”

쥬시마츠와 함께 공놀이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쥬시가 활기차게 외쳤다

가만히 서서 동물들의 말을 듣고 있던 오소가 부들부들 몸을 떨더니 방이 떠나가라 외쳤다.


안 돼!! 우리한테 아빠는 필요 없어!!! 엄마한테는 우리만 있어도 돼! 우리가, 내가 엄마를 지켜줄 거야!!! 그 누구도 아빠로 인정 못 해!!!”

쾅쾅 발을 구르며 외친 오소가 꼬리를 땅땅 바닥에 내치며 동물들을 노려보았다.


~대로 그 누구도 엄마한테 가까이 못 가게 할 테니까!”

비장하게 외치는 오소를 보며 동물들은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마마보이 자식….’’’’’

 

 

 

작은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마츠노가에 평화가 찾아오기엔 아직도 멀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번 단편은 이후에 후편이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 후편이 나온다면 아빠가 누군지 정해야 하는데... 누구로 할까요..?

안녕하세요ㅎ


그동안 몸살감기로 고생한 WHITEPINE입니다ㅎㅎ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일은 안 풀리고 몸살감기로 아프고 게다가 배탈까지 나서ㅠ


도저히 소설을 쓸 짬이 나지 않았습니다.



일은 여전히 안 풀리고, 몸이 안 좋았던 반동인지 환절기라서 그런지 우울증이 또 도져서..ㅠㅠ


근본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이라 죽고싶다 정도는 아닌데, 무기력이 가시질 않네요...


게다가 일 특성 상, 개강시기에 맞춰서 일이 많아져서...


이번 달 안으로 결과 내야 하는 것도 있고... 바쁘네요ㅎㅎㅎㅎ



올해 다짐이 '병가'는 쓰지 말자였는데, 벌써 2번이나 썼어요..ㅠㅠ




암튼, 요즘 블로그를 너무 관리 못하고 소설도 못 올려서 간단한 근황이나 올려봐요ㅎㅎ


그래도! 마냥 쉬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장편인 마피아마츠 플롯이랑 설정 다듬었어요..


이제 센티널버스 장편 다듬으면 3월 중순엔 장편 연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장편 연재하면 또 단편이 소홀해지는데, 쌓인 소재가 꽤 많아서...;;


장편 연재 하면서 간혹 장편을 쉬고 단편을 올릴 수도 있어요..ㅎㅎ




몸만 안 아팠으면!! 저번주 주말에 오소른 단편 올리려고 했는데!!ㅠㅠ


이번 주말까지는 단편 플롯 다듬기에 집중해야 될 것 같습니다.


주말에는 단편 하나 꼭 올릴거에요!!


그리고 앞으로 올릴 단편 리스트를 하나 만들어서 올릴까 생각 중입니다. 그 전에 플롯부터 짜야 하지만...



다음생엔 건물주로 태어나고 싶네요..


가만히 앉아서 들어오는 돈으로 소설이나 쓰며 탱자탱자 살고 싶다...




오소른 소설은 이번주 주말에 올리겠습니다ㅎ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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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저번주 주말에 올릴 예정이었던 단편입니다...ㅎㅎ 주말 출근으로 못 올렸습니다...


* 공미포 20,744자


* 카라이치는 처음 써보네요... 오소마츠가 소녀감성입니다ㅎ 살짝쿵 카라오소도 있어요.


* 비속어가 약간 나옵니다.


* 트위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에 글 올리고 실시간 알람(ㅎ)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아이디는 WHITEPINE, @WHITEPINE92 입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너는 변하지 않아도 돼, 카라마츠.”

언젠가 있었던 카라마츠의 고민 상담에 해준 대답.

자신도 바보 같은 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 모든 마음을 담은 진실한 바람이었다.

 

 

 

중학생이 되고 우리는 하나가 아니게 되었다

항상 붙어 다녔던 초등학교 때와 달리 커진 몸, 예민해진 신경, 그리고 친구들의 놀림. 그 모든 것이 우리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점점 모두 함께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했고, 같은 옷을 입는 것도 질색하게 되었다

우리의 것이었던 것들은 어느새 내 것네 것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그 관계는 동생이라는 호칭으로 이어졌다


이니, ‘장남이니 하는 것들이 너무 싫었다

둥이, 동갑인데 왜 굳이 서열을 여겨야 하는가

그리고 하필이면 왜 내가 장남인가

주변 사람들도, 학교의 선생님도, 심지어 부모님까지 장남이라는 이유로 내겐 더 엄한 기준을 두었다

동생들이라면 넘어갈 일도, 나는 호되게 혼나기 일쑤였다.


이니 동생들을 지켜야 한다는 말도 싫었다

동갑인데 이나 동생이 어디 있어. 게다가 나 정돈 아니어도, 녀석들 또한 결코 약한 편이 아니었다

스스로 제 몸을 지킬 수 있는 녀석들을 왜 내가 지켜야 하는가

그런 불만과 반항기가 겹쳐 나는 제일 먼저 녀석들의 곁을 떠났다

나를 따라 녀석들도 하나둘 육둥이를 떠나 자신만의 색을 찾아갔다

그렇게 우리가 뿔뿔이 흩어졌을 때, 바보 같은 나는 다시 육둥이로 돌아왔다

아무리 친구들과 웃고 떠들어도, 마음 한편에 남은 쓸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혼자라는 느낌이 싫었다. 외톨이는 더 싫었다

어리석은 나는 겨우 그것을 깨닫고 다시 육둥이의 자리로 돌아왔지만, 녀석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다시 우리를 바라도 녀석들은 멀어져 가기만 했다

혼자는 싫다고, 돌아오라고-, 붙잡고 싶어도 어떻게 붙잡아야 좋을지 몰랐던 나는 그저 멀어지는 녀석들의 등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런 나를 돌아보고 다시 옆에 다가와 준 것은 카라마츠였다

제일 먼저 돌아와 준 녀석은 그 후로도 죽- 내 곁에 있어 주었다.


너는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물론! 나는 항상 오소마츠 곁에 있겠다!”

내 바보 같은 질문에, 바보인 카라마츠는 다짐했다

어린 카라마츠의 치기 어린 대답이 얼마나 나를 구원해주었는지 바보 카라마츠는 알지 못한다.

 


 

만화책을 펼쳐 들고 벌써 몇 시간째 거울을 쳐다보고 있는 카라마츠를 살며시 바라보았다

질리지도 않는지 벌써 몇 시간째, 카라마츠는 거울을 붙잡고 있다

저 나르시시스트 사이코패스. 같은 얼굴이 다섯이나 있는데, 그렇게도 본인의 얼굴이 좋은 걸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하고 한숨을 내쉰 후, 다시 고개를 돌려 만화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저 바보 나르시시스트 사이코패스 둔감남에게 사랑을 품고 있다

중학교 시절, 가장 먼저 내 곁에 돌아와 주고 항상 내 곁에 있겠다는 어리석은 다짐을 한 녀석을, 나는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나와 함께 의 자리에 올라서서, 동생들을 챙겨주며 나에겐 가차 없는 저 바보 녀석을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빈말로도 참을성이 있다고 할 수 없고, 항상 제멋대로인 내가 카라마츠와 단순한 형제 사이라는 것에 새삼 헛웃음이 나온다

주변에서 초6 정신이라고 불리는 나는,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성미가 풀렸다

원하는 것이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카라마츠가 오직 나만의 것이 되어 주었으면 하고 몇 번이고 바랐다

내 연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내 바람을 막고 있는 것만 없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카라마츠에게 달려들 것이다

카라마츠는 내게 형제애 이상의 감정은 없지만, 이 카리스마 레전드 오소마츠 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다

아직좋아하지 않는다면, ‘좋아하게만들면 되는 일이다.


다녀왔어.”

작은 목소리와 함께 거실문이 열렸다

눈을 들어 터벅터벅 거실 안으로 들어오는 이치마츠에게 어서 와~” 하고 인사를 건네자, 이치마츠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고양이를 안은 채 거실 구석에 가 앉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내 사랑의 가장 큰 장애물이 왔다.

마츠노 이치마츠, 마츠노 가의 사남, 내 동생. 이치마츠도 카라마츠를 좋아한다

물론 like가 아니라 love 쪽으로

딱히 좋아하는 티도 내고 있지 않고, 오히려 카라마츠를 괴롭히지만, ‘이니까 알 수 있다

나는 그렇다 쳐도, 이치마츠. 너는 대체 카라마츠의 어느 부분에 반한 거야

상냥한 점? 하지만 그 상냥한 부분을 모두 상쇄해 먹어 치울 정도로 바보에 눈치 없는 나르시시스트라고? 카라마츠는

결코 말로 꺼낼 수 없는 말을 속으로 던지며 만화책을 접었다

이제 이 방에는 내가 필요 없으니까, 파칭코나 갈까

몸을 일으키자 거울을 보던 카라마츠가 나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오소마츠, 나가는 건가?”

? ~. 파칭코 다녀올게~”

만화책을 거실 구석에 휙- 던지고 거실을 빠져나가려는데 카라마츠가 다시 나를 불렀다.


그럼 나도 같이 가지.”

? ?”

? 왜라니. 그야, 나도 파칭코.”

아니, 너 오늘은 그 카라마츠 걸-? 보러 다리에 안 가?”

, 오늘은 휴무다.”

, 그러셔~. 그럼 파칭코 말고 이치마츠랑 같이 고양이 사료라도 챙겨주면?”

?”

그럼 횽아는 나간다~”

손을 팔랑팔랑 흔들고 발을 재촉해 거실을 나왔다

서둘러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올 때까지 카라마츠는 입을 굳게 다물고 내게 말 걸지 않았다.

 


현관을 닫고 나와 길거리를 걷는다

바보같이 뜨거워지는 눈시울에 고개를 푹 숙였다

잘 포장된 보도블록과 붉은 신발을 신은 내 발이 보였다가 서서히 흐려져 갔다

뜨거워지는 눈시울에 입술을 깨물었다

내 연적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생판 남이었다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겠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카라마츠를 내 것으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가혹해서 웃기지도 않을 내 사랑의 연적 또한 내 동생이었다


처음엔 예쁜 누님이라면 모를까, 같은 형제에게 카라마츠를 뺏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치마츠를 견제했다

이치마츠를 은근히 따돌리고 카라마츠와 함께 등하교하고, 이치마츠와 카라마츠가 단둘이 있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끈질기게 방해공작을 펼쳤다. 내가 카라마츠를 바라보던 이치마츠의 그 눈빛을 보기 전까지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과 울 것 같이 일그러진 이치마츠의 얼굴을 본 순간, 가슴이 수천 개의 바늘로 찔린 것처럼 아팠다

따끔거리는 아픔은 심장을 넘어 온몸을 조이더니 나를 검은 어둠 속으로 떨어뜨렸다

겉보기와 달리 우리 중 가장 섬세하고 여린 심성을 가진 이치마츠는 내가 카라마츠를 가지려 하면 분명 크게 상처받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나는 형이니까 동생을 울릴 수 없다

동생의, 이치마츠의 슬픈 얼굴도 보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이 아픔을 이치마츠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양보는 하지 않을 거야, 이치마츠. 왜냐면 이건 이미 결과가 나온 승부인걸.

아무리 내가 승부수를 걸어도 카라마츠는 이미.

 

나는 괜찮아. 이미 익숙하니까.

 

 

 

 

 

 

2.

 

어느 날, 오소마츠 형아가 카라마츠 형아를 보는 눈을 본 순간 알았다

오소마츠 형아는 카라마츠 형아를 좋아한다고.

 


저 앞에서 설렁설렁 걸어가는 붉은 후드를 보고 재빨리 강둑을 올랐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걷고 있는 오소마츠 형아의 뒷모습에 꾹- 하고 아련한 고통이 퍼졌다

저대로 오소마츠 형아를 혼자 두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 빨리 발을 옮겨 오소마츠 형아에게 달려갔다.


오소마츠 형아!!!”

우왁! , 쥬시마츠으?!”

오소마츠 형아의 허리를 꽉 잡고 고개를 들었다. 놀란 얼굴로 크게 뜬 눈을 깜빡이는 오소마츠 형아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었다

다시금 가슴 가득 퍼지는 아련함에 큰 목소리로 외쳤다.


형아! 나랑 야구!!”

? 야구 할까?”

아이아이!!”

헤헤, 좋아-.”

웃으며 대답하는 오소마츠 형아의 얼굴이 밝아져, 나도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쥬시마츠으~, 잠깐, 휴식.”

오소마츠 형아 벌써 지쳤슴까아~?”

, 허억.”

오소마츠 형아는 내 물음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강둑에 털썩 엉덩이를 내렸다

계속 휘두르고 있던 야구 배트를 바닥에 내려놓고 오소마츠 형아의 옆에 가 앉았다

말없이 숨을 고르며, 옆에 앉은 나를 본 오소마츠 형아가 씩-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상냥한 오소마츠 형아인데. .


오소마츠 형은 왜 카라마츠 형이랑 같이 안 있슴까?”

? 별로, 같이 있을 필요 없으니까?”

.”

오소마츠 형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봤다

우응-, 이게 아닌데. 다시 말을 고치고 입을 열었다.


나는, ‘그녀와 계~속 같이 있고 싶었슴다. 항상, ~! 같이 놀고 싶었슴다. 결국 그러지 못했지만, 그래도 오소마츠 형아 덕분에 제대로 마지막까지 그녀와 마주 볼 수 있었슴다. 제대로 바이바이할 수 있었슴다.”

.”

오소마츠 형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오소마츠 형과 마주 보고 활짝 웃었다.


왜 오소마츠 형아는, 카라마츠 형하고 같이 안 있슴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쭉- 같이 있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한데

오소마츠 형은 자신의 마음도, 욕망도, 바람도, 그 무엇 하나 드러내지 않은 채 홀로 떠안고 있다

분명히 그것은 가슴이 찢질 정도로, 굉장히, 아플 것으로 생각한다.


쥬시마츠, 고마워.”

오소마츠 형은 은은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틋한 오소마츠 형의 미소에, 입가에 맺힌 웃음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입술이 떨렸다.


쥬시마츠는,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쩔 거야?”

그런 거! 양보,”

양보, 못 해?”

양보, 하고 싶지 않지만,”

. 역시 쥬시마츠는 착하네~ 천사네~”

만약에, 만약에 형아들 중 누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해도, 양보, 하고 싶지 않다

그 누구보다 소중한,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그녀니까

방심하면 양보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버릴 것 같은 입을 소매로 막고 있자, 오소마츠 형이 빙그레 웃었다.


나는, 너희가 슬퍼하는 얼굴 보고 싶지 않아~.”

오소마츠 형아의 얼굴에 퍼진 미소는 진짜였다

진짜, 진짜로, 오소마츠 형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

석양을 등지고 있는 오소마츠 형의 미소가 잘 보이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 …아!”

쥬시마츠, 고마워. 횽아를 위해서 울어줘서.”

오소마츠 형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겨우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팔을 활짝 벌리고 오소마츠 형을 세게 끌어안았다. 아프다, 가슴이 너무나 아프다

그녀가 떠나갔을 때만큼이나 아파서, 너무 아파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오소마츠 형아의 마음이, 다짐이 너무 예뻐서, 상냥해서,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흐느낌에 오소마츠 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따뜻한 오소마츠 형의 체온이 마음속까지 침투해서 가득 퍼졌다

말없이 내 등을 토닥여주던 오소마츠 형아가 다정하게 말했다.


고마워, 쥬시마츠. 그러니까, 형아를 조금만 도와주지 않을래?

 

 

 

 

 

 

3.

 

그럼 횽아는 나간다~”

손을 흔들며 현관을 나서는 오소마츠 형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눈썹을 찌푸렸다

요즘 오소마츠 형이 이상하다

낚시터나 파칭코에 같이 가자고 하면, 항상 ? 횽아도 데려가 주는 거야~? 갈래~!” 하고 달라붙어 오던 것이 요즘엔 어딜 가도 혼자 가겠다며 내 권유를 받아주지 않는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혹시 고민하는 것이라도 있는 건가

오소마츠 형은 내가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 내 말을 들어주었다

만약, 정말로 오소마츠 형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내게 상담해주기를 바란다

오소마츠 형이 나간 현관을 보고 있자,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나를 덮었다.


이치마츠?”

갈 거야?”

?”

, 러니까! 고양이…. 밥 주러 나갈 건데, 같이 갈 거냐고.”

, 아아!! 물론이다! 브라더-와 함께하면 어디든!”

, 그래.”

몸을 일으켜 앞서 걸어가는 이치마츠의 뒤를 따랐다

최근, 이치마츠가 상냥하다

오늘처럼 같이 나가자고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항상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는 일도 줄었다

여전히 내게 주먹을 내긴 해도, 그 강도는 예전보다 많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소중한 동생이 내게 상냥해진 것에 기쁘지 않을 리 없다

이렇게 이치마츠가 먼저 다가올 때면 가슴이 간질간질하면서 굉장히 기쁘다

마치 잔뜩 경계하고 틈을 내주지 않던 길고양이가 슬며시 다가온 것 같은, 그런 기쁨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느슨해지고 만다.


그 표정 뭔가 짜증 나.”

? 이상한 표정 하고 있었나?”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

의구심을 담아 이치마츠를 바라보자, 눈썹을 찌푸린 이치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또 말을 잘못한 건가 싶어, 반걸음 정도 뒤에서 걷던 걸음을 재촉해 이치마츠의 옆에 나란히 섰다

내게서 고개를 돌린 이치마츠의 귀가 묘하게 붉은 것이 눈에 띄어, 어쩐지 애달파졌다.

 

 

사랑스러운 리틀 키티-들에게 밥을 챙겨준 후, 이치마츠와 함께 강둑을 걸었다

오늘은 옆 마을에 있는 키티-들의 밥을 챙겨주었기 때문에 제법 먼 거리를 함께 걸었다

묵묵히 옆에서 걷고 있는 이치마츠를 볼 때마다 가슴이 소란스러워졌다

항상 내게 적대적이었던 이치마츠가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쁜 것인가, 나는

들떠오는 마음에 빙그레 미소를 띠고 주변을 둘러보자,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어쩐지 세상이 특별하게 보였다

세상도 이 카라마츠 님의 기쁨에 동조하고 있는 것인가!! 

차오르는 행복을 만끽하며 문득 시선을 강가로 돌리자, 붉은 후드와 노란 후드가 보였다

오늘따라 들뜬 기분에 반갑게 브라더-들을 부르려고 손을 들려다 멈췄다

강둑에 앉은 오소마츠 형이 쥬시마츠에게 안겨있었다

토도마츠도 아니고 그! 오소마츠 형이 저렇게 동생에게 안겨있거나 기대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작지 않은 충격이 머리를 강타했다

멍청히 강둑을 보고 있자, 이치마츠가 나직이 나를 불렀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이치마츠의 목소리에 단숨에 현실로 돌아온 나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 아무것도 아니다! 서둘러 돌아가자, 브라더-. 서두르지 않으면 저녁 식사에 늦는다고~?”

, , 그래.”

의심쩍다는 시선으로 나를 보는 이치마츠의 어깨를 잡고 서둘러 밀었다

조금 전까지 몽글몽글 떠올랐던 기분이, 거품을 터뜨린 것처럼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왜 자신이 이렇게 충격을 받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이치마츠를 끌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강둑에서 우연히 오소마츠 형과 쥬시마츠를 목격한 이후, 오소마츠 형이 쥬시마츠와 함께 외출하는 일이 늘었다

언제나 쥬시마츠와 하는 야구는 너무 힘들다며 줄곧 피했던 오소마츠 형이, 쥬시마츠의 야구 하자는 말을 거절하지 않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함께 나가는 쥬시마츠와 오소마츠 형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

오소마츠 형은, 쥬시마츠에게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것일까

쥬시마츠에게 기대 안겨있던 오소마츠 형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 차남인 나를 의지하지 않고 쥬시마츠에게 갔을까. 내가 쥬시마츠보다 더 잘 지탱해 줄 수 있는데.


그럼 다녀올게~”

다녀오겠머슬~!!”

커다란 목소리로 복도가 다 울리도록 외치는 쥬시마츠와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도 함께 나가는 건가. 드륵-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쥬시마츠의 소란스러운 발소리가 멀어졌다

매일 둘이 나가 무슨 일을 하고 오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딱히 알 필요도 없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고 만다

보고 있던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내 옆에 앉아 구인잡지를 읽고 있던 쵸로마츠를 불렀다.


쵸로마츠.”

?”

요즘 형님과 쥬시마츠가 함께 나가는 일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나?”

?”

내 물음에 쵸로마츠의 얼굴이 굳었다. 단순한 질문이었을 텐데, 쵸로마츠는 싸늘한 눈길로 나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아니, . 요즘 둘이 꽤 가깝다고 생각이 들어서.”

말을 할수록 쵸로마츠의 얼굴이 더욱 차가워졌다

이치마츠가 빙의된 것처럼 날카롭게 나를 쏘아보는 쵸로마츠의 압력에 내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갔다

, 왜 그런 건가!? 

내가 뭔가 이상한 걸 물어본 것도 아니지 않나?! 

억울하단 얼굴로 쵸로마츠를 보자, 쵸로마츠가 입을 열었다.


왜 갑자기 그런 거에 신경 써?”

, ?!”

별로 신경 안 썼잖아. 누가 누구랑 놀러 가든, 친하든. 왜 인제 와서 그런 걸 물어봐?”

아니, .”

항상 하던 대로 너 자신이랑 이치마츠나 신경 써. 그럼 나는 헬로워크 갈 테니까.”

, 아아. , 다녀와라.”

냉랭한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배웅했다

매정하게 나를 한번 흘겨보고 나가는 쵸로마츠의 표표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숨을 집어삼켰다

쵸로마츠가 현관 너머로 사라지고 나서야 자신이 숨을 참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푸하-.” 하고 한 번에 숨을 내뱉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

나는 대체 뭘 잘못한 것인가??

단순히 쵸로마츠가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아니, 그래도 내가 묻기 전까진 그렇게 기분 나빠 보이진 않았다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쵸로마츠의 기분이 갑자기 나빠진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신음하는 내게 하나의 인영이 다가왔다.


뭐 하고 있어?”

, 이치마츠.”

조금 전까지 귀여운 키티-들과 함께 2층 방에 있던 이치마츠가 거실로 들어오며 물었다

쓰게 웃으며 별거 아니라고 대답하자, 이치마츠가 흐응-.” 하고 나를 내려다보더니 들릴락 말락 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오늘도, 고양이 밥 주는데 같이 갈래?”

살짝 시선을 피하고 묻는 이치마츠의 붉어진 얼굴을 보자 절로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났다

기쁘게 웃으며 ! 물론이다!” 하고 대답하며 일어났다

그 길로 이치마츠와 함께 집을 나서는 순간, 쵸로마츠와 오소마츠에 대한 것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백수들~, 엄마 반상회 가 있는 동안 장 좀 보고 오렴~.”

마미의 부름에 거실에 있던 오소마츠 형이 ~” 하고 불평을 했다

오소마츠 형의 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마미가 오소마츠 형의 손에 장바구니를 쥐여주며 알겠지? 짐이 많으니까 카라마츠하고 같이 갔다 오렴~.” 하고 당부했다

말을 마치고 집을 나가는 마미를 보며 오소마츠 형이 ~, 귀찮은데~하고 한심한 말을 흘렸다.


카라마츠!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갔다 오기 하자!”

오소마~? 마미가 함께 다녀오라고 하지 않았나? 짐이 많을 것 같으니 함께 가자.”

~, 가기 싫어~~. 횽아 귀찮다고~~”

, 갈까! 오소마츠!!”

싫다며 칭얼거리는 오소마츠 형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오소마츠 형의 손에 들려 있던 장바구니를 받아 들고 일어서자, 오소마츠 형도 ~” 하고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한쪽씩 나눠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석양에 비친 오소마츠 형을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질문이 입 밖으로 나왔다.


오소마츠는, 요즘 쥬시마츠와 친하구나.”

~? 뭐야? 갑자기?”

발을 멈춘 오소마츠 형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오소마츠 형의 말에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기울이고 나를 보는 오소마츠 형에게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요즘 자주 같이 나가니까.”

~, . , 그렇지~?”

내 말에 오소마츠 형이 힘없이 웃으며 수긍했다

멈췄던 발을 다시 걷는 오소마츠 형을 따라 나도 다시 발을 옮겼다.


실은, 쥬시마츠한테 특별히 부탁할 게 있어서~”

정면을 보고 살며시 말한 오소마츠 형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굉장히 은은하고 해맑은 미소였는데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파서


부탁이 무엇인지 도저히 물을 수 없었다.

 

 

 

 

 

 

4.

 

요즘 집 안 분위기가 이상하다

오소마츠 형은 부쩍 쥬시마츠 형과 가깝고, 쵸로마츠 형은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고, 카라마츠 형과 이치마츠 형은 보고 있는 이쪽이 짜증 날 정도로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뭔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짜증 난다

형들에겐 드라이 몬스터라고 불리지만, 일단 나도 형들에게 관심은 있다고

오소마츠 형은 쥬시마츠 형과 뭔가 꾸미고 있는 것 같고, 이치마츠 형은 카라마츠 형에게 상냥해졌고, 쵸로마츠 형은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심기가 불편하고

분명히 뭔가가 있는데도 내겐 일언반구도 없다

가끔 낚시 같이 가자고 조르던 오소마츠 형은 이제 완전히 나한테 말도 안 걸고

쥬시마츠 형도 오소마츠 형만 신경 쓰고 있다


뭔데 진짜!! ~청 신경 쓰이는 데요?! 

쵸로마츠 형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요즘 진짜 기분 나빠 보이니까 섣불리 말을 걸 수가 없다

오소마츠 형과 함께 완전 막 나갔을 때의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어 정말로 거짓말 안하고 그냥 무섭다

나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 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 내일 봐~”

손을 흔들며 여자아이들에게 인사한 후,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터벅터벅 걷는 발을 내려다보니 절로 한숨이 푹- 나왔다

집 안 분위기가 묘해진 뒤로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불편하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나 혼자 아무것도 모른 채, 우두커니 앉아있으면 당연히 스트레스가 쌓인다.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기니 어느새 현관 앞에 도착해 다시 큰 한숨을 쉬며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드륵- 하고 시원스레 열리는 미닫이문을 지나 다녀왔습니다~” 하고 외쳤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현관에 놓인 신발은 전부 5

형들 모두 집에 있을 텐데도 항상 어서 와~” 하고 반겨주던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며 신발을 벗었다


2층 방에 올라 옷을 갈아입고 거실에 내려오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이상한 분위기가 나를 감쌌다

쵸로마츠 형은 테이블 한편에 앉아 검은 오라를 풀풀 풍기고 있고-순간, 이치마츠 형이라고 착각했다- 오소마츠 형은 쵸로마츠 형 옆에 앉아서 애매~한 얼굴로 쵸로마츠 형을 바라보고 있다

이치마츠 형은 왜소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고, 쥬시마츠 형은 이치마츠 형 옆에 딱 달라붙어서 꾹- 입을 다물고 오소마츠 형 눈치를 보고 있다

카라마츠 형은 들고 있는 거울엔 눈도 주지 않고 어쩐지 멍-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 뭔데?? 

대체 뭔데? 이 상황!?


지금 당장 이 방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내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양아치 시절의 얼굴을 한 쵸로마츠 형 옆은 논외고, 오소마츠 형 옆도 지금은 불편하다

이치마츠 형이나 쥬시마츠 형 근처엔 가고 싶지 않고

결국 소거법으로 결정된 카라마츠 형 옆에 가 앉았다

이제 곧 저녁 식사 시간이니까 밖에 나갈 수도 없다. 거실 벽에 걸린 아날로그 시계를 보며 빨리 저녁 식사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오늘은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을까, 생각하며 거리를 걸었다.

거실의 불편한 공기는 저녁 식사 시간에도, 목욕탕에 가는 길에도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목욕을 마치고 따끈따끈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 순간에도 이 불편한 공기는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


진짜! 이제 한계라고!! 

내 눈물샘이!!! 


지금 당장 누구 한 명의 멱살을 붙잡고 짤짤 흔들며 대체 뭔데!?!?” 하고 울부짖고 싶은 마음을 집어삼켰다

뜨끈한 목욕물에 몸을 녹였을 터인데도 쵸로마츠 형은 잔뜩 인상을 구기고 맨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고, 그 뒤를 오소마츠 형이 가볍게 따라가고 있다

이치마츠 형은 묵묵히 오소마츠 형 옆에서 걷고, 쥬시마츠 형은 무서울 정도로 말이 없다

~, 진짜 제발 누가 좀 구해줘~~!!! 

절규하고 있는 내 팔을 갑자기 뭔가가 뒤로 훅- 잡아 당졌다

? 뭐야

놀라 뒤돌자 카라마츠 형이 멍청한 얼굴로 나를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릴 적 파트너의 감으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하고 다정하게 묻자, 카라마츠 형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나?”하고 물었다

앞서 걸어가는 형들을 잠깐 보고 카라마츠 형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생 시절, 모두 함께 자주 왔던 낡은 공원의 그네에 앉았다

살며시 흔들자 끼익 끼익- 쇳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중후한 무게에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모랫바닥에 발을 놓고 무릎을 굽혀 가볍게 그네를 흔들며 앞에 서 있는 카라마츠 형을 불렀다.


무슨 일이야?”

, 싫지 않겠나?”

? 뭐가?”

내 물음에 카라마츠 형이 괴로운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처음 보는 카라마츠 형의 표정에 고개를 기울이고 자세히 살폈다

한참을 말없이 고개 숙이고 있던 카라마츠 형이 주먹을 꽉 쥐고 나를 바라보았다.


듣고, 내게 환멸 하지 말아줘.”

?? 무슨 말인데 환멸이라는 단어가 나와??”

오늘, 이치마츠에게 고백, 받았다.”

~, 겨우?”

?? 겨우??”

내 반응에 적잖이 놀랐는지 카라마츠 형이 눈을 크게 뜨고 떡-하니 입을 벌렸다

이치마츠 형이 카라마츠 형에게 비뚤어진 애정을 품고 있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바보에, 둔치인 카라마츠 형은 몰랐던 것 같지만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를 보고 있는 카라마츠 형을 한심하게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고백받았는데 왜?”

, 아아. 내일 대답해달라고 들어서.”

그래서?”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건가.”

하아~~”

한숨?!”

카라마츠 형의 표정에 절로 커다란 한숨이 나왔다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저런 얼굴로 대체 뭘 묻는 건지

대체 이 눈새는 언제쯤 정신을 차릴는지

그네에 앉아 턱을 괴고 가만히 카라마츠 형을 올려다보았다

뻘뻘 땀을 흘려가며 안절부절못하는 카라마츠 형의 모습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아 카라마츠 형을 보며 말했다.


있지, 카라마츠 형. 나한텐 싫다든가, 환멸 한다든가 물어봤으면서 자신은 어때?”

?”

이치마츠 형의 고백 듣고, 어땠어? 싫었어?”

, 진 않았다.”

그럼 좋았어?”

그건, 잘 모르겠다.”

말끝을 흐리며 숨을 내쉬는 카라마츠 형을 보자,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 정말 이 바보는

어깨를 으쓱 올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전방 카메라로 돌려 카라마츠 형에게 내밀었다.


답이 얼굴에 다~ 나와 있네요~.”

스마트폰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카라마츠 형이 말을 잃었다

그야 그렇지. 저렇게 새빨개진 얼굴로 어쩌지?” 하고 물었으니까

잔뜩 붉어진 얼굴로, 이치마츠 형을 떠올렸는지 한없이 부드러운 눈빛을 하고 대답을 망설이는 카라마츠 형

화면에 비친 얼굴을 확인한 카라마츠 형이 한결 안정된 얼굴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토도마츠, 고맙다.”

별말씀을~”

부드럽게 웃는 카라마츠 형의 얼굴은 굉장히 다정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카라마츠 형은 이치마츠 형을 불러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아도 속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카라마츠 형을 응원하고, 거실로 향했다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켜는 쵸로마츠 형을 슬쩍 피해서 쥬시마츠 형의 옆에 가 앉자, 쥬시마츠 형이 나를 보며 빵긋 웃어주었다.


토도마츠, 카라마츠 형의 마음 알고 있었구나!”

오소마츠 형과 쵸로마츠 형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쥬시마츠 형에게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파트너였으니까.”

그렇구나~!!”

쥬시마츠 형도 이치마츠 형 마음 알고 있었지?”

! 그렇지!”

오늘 이치마츠 형 고백도 쥬시마츠 형이 도와준 거야?”

폭력적인 방법으로밖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이치마츠 형이 먼저 고백하다니,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일이다

쥬시마츠 형이 옆에서 열심히 설득해 주었던 덕분이라고 전하자 쥬시마츠 형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 쥬시마츠 형?”

입을 꾹- 다문 쥬시마츠 형의 모습에 놀라 부르자, 쥬시마츠 형이 다시 활짝 웃었다.


~, 있지! 나는 부탁받았어!!”

부탁?? 무슨 부탁?”

-!”

비밀?? 그럼 누구한테 부탁받았는데?”

~, 그것도 비-!!”

천연덕스레 웃은 쥬시마츠 형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대체 누구냐고 물으려던 질문은 쥬시마츠 형의 미소에 다시 뱃속으로 가라앉았다.

 

 

 

 

 

 

5.

 

-. 열 받아.

, 저 얼굴이다.


펼쳐 든 구인잡지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려 만화책을 보고 있는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았다

거울을 보고 있는 카라마츠를 향한 오소마츠 형의 눈빛은 지극히 부드러워서 보고 있는 이쪽이 기분 나빠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간절하게 바라보면서 입가에 은은하게 피어오른 미소는 애환을 담고 있다

오소마츠 형은 카라마츠를 볼 때마다 저런 얼굴을 한다

슬프면서, 애달프면서, 행복하면서, 괴로운 얼굴

왜 저런 얼굴을 하면서도 카라마츠를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는지 알 수밖에 없는 자신이 싫어진다

한참 동안 거울을 응시하던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작은 목소리에 즉각 반응해 고개를 돌렸다

웬일로 함께 나가자고 먼저 말을 거는 이치마츠를 보며 활짝 웃은 카라마츠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거실을 나서는 둘의 그림자를 쫓아 시선을 돌리는 오소마츠 형에게서 눈을 떼고 다시 잡지를 응시했다.

 



육둥이에 한 몸과 같았던 우리는 중학교에 들어가 각자 개성을 찾아갔다

놀림 받는 것이 싫어서, 서로가 창피해서 거리를 두었던 우리는 저마다 개성을 확립한 후, 다시 육둥이로 돌아갔다

가장 먼저 돌아와 우리를 맞이해준 것은 오소마츠 이었다

6 정신에 제멋대로에, 안하무인에, 파칭코 쓰레기인 주제에 오소마츠 형은 항상 동생들을 우선했다

그 무엇보다, 심지어 자기 자신보다.


만약, 카라마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치마츠가 아닌 타인이었다면 오소마츠 형은 망설이지 않고 카라마츠를 손에 넣었을 것이다

저런 얼굴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닌 동생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원했기 때문에 오소마츠 형은 카라마츠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매번 그랬다

동생이 원하면 오소마츠 형은 한발 뒤로 물러났다

언젠가 엄마가 사오신 간식이 모자랐던 때가 있었다

6명 앞에 놓인 간식, 도넛은 5. 필연적으로 한 명은 간식을 포기해야 했고, 우리는 죽자 살자 싸웠다

결국, 간식을 포기해야 했던 녀석이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만 먹지 못했다며 울고불고 억울해하던 동생을 앞에 둔 오소마츠 형은 조용히 들고 있던 도넛을 접시에 내려놓고 말했다

~, 나 친구들이랑 약속 있었어!! 나 올 때까지 내 도넛 먹으면 죽는다!!” 하고 외친 오소마츠 형은 집을 나갔다

남겨진 도넛이 멀쩡히 남겨져 있을 리 없다는 것은 오소마츠 형, 본인도 알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이 나가자마자 간식을 먹지 못한 동생은 망설임 없이 오소마츠 형의 도넛을 집어 먹었다

물론 오소마츠 형이 돌아오고 나서 무시무시한 응징이 있었지만, 우리 동생들은 전부 간식을 먹을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다

술에 취한 아빠가 웬일로 비싼 장난감을 사 왔다

색색의 미니 자동차였다

한 세트로 포장된 것을 덜컥 사버린 아빠는 다음날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었지만, 우리는 새로 생긴 장난감에 마냥 즐거워했다

한 세트로 포장된 장난감은 무슨 조화인지 5개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또 한 번의 폭풍 같은 다툼이 일어나고, ‘동생중 한 명은 자동차를 가지지 못했다

우리가 새 자동차를 가지고 놀 때마다 울먹이는 얼굴로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는 동생, 오소마츠 형은 외면하지 못했다

아빠가 장난감을 사 오고 3일쯤 지났을까, 우리는 아직도 새 자동차에 꽂혀 매일 그것만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오소마츠 형은 자기 자동차를 가지고 놀지 않았다

엄마도 매일 가지고 놀던 아이가 갑자기 흥미를 잃자 의아했는지 오소마츠 형에게 왜 가지고 놀지 않느냐 물었다

이제 질렸어~.” 하고 대답한 오소마츠 형은 우리가 제일 갖고 놀기 싫어했던 낡은 우드 블록을 가지고 놀았다

오소마츠 형에게 외면당한 새 자동차 장난감은 자연히 다툼에서 졌던 동생의 것이 되었다.


-, 늘 그랬다

우리 육둥이의 정점에 있었던 오소마츠 형이 싸움에서 지는 일은 없었다

항상 우리 동생 중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동생이 울고 있으면 오소마츠 형은 자기도 원하는 주제에 자연스럽게 그것을 동생에게 넘겨주었다

원하면서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던 오소마츠 형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주변에서 장남이라고 불리기 시작하면서 그런 일은 더 자주 일어났다

보고 있기에 답답해서 한 번은 직설적으로 물었다. 왜 포기하는 거냐고, 원하지 않냐고…. 

오소마츠 형은 놀란 얼굴로 빤히 나를 보더니 이내 히죽- 웃으며 별로 포기한 적 없다고~?” 하고 대답했다


너는, 그것은 포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보기에 그것은 영락없는 포기라고 오소마츠

그 한심한 대답에 몰래 숨어 울었던 것을 오소마츠 형은 알지 못한다


자기도 원하면서, 간절히-, 간절히 원하면서…. 

동생에게 양보하고 실실 웃는 그 미소가 정말로 싫었다

애처로운 그 미소를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외면했다

오소마츠 형이 뭘 하건 나와는 상관없다고 되뇌며 모든 상황을 외면하고 보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이었든,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었다.

 

 


원하면 그런 얼굴 하지 말라고….

- 하고 혀를 차며 집으로 향했다

오소마츠 형의 그 미소를 보고 있으면 짜증이 치솟아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원하면서, 괴로운 얼굴을 할 정도로 원하면서, 연적이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포기하는 건 대체 무슨 정신머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포기했으면 정말로 깔끔하게 마음을 접던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하는 이유는 뭐야?! 

하아~, 바보 같아. 정말로 바보 같다

괜히 길가에 놓인 돌멩이를 걷어찬 후,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에 들어가자 마침 방을 나오려는 오소마츠 형과 딱 마주쳤다

움찔 몸을 떨며 놀라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작게 혀를 차고 한숨과 함께 어디 나가느냐고 묻자 쥬시마츠와 야구하러 나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짧게 잘 다녀와.” 하고 배웅하자 오소마츠 형이 바보같이 웃으며 그럼 다녀올게~” 하고 손을 흔들었다

오소마츠 형과 함께 현관으로 나간 쥬시마츠도 “다녀오겠머슬~!!” 하고 복도가 떠내려가라 외쳤다

두 사람이 떠난 거실에는 거울을 들고 있는 카라마츠만이 남아 있었다

가방에서 구인잡지를 꺼내 펼치고 할 만한 일이 없나 살펴보고 있는데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쵸로마츠.”

“아?”

시선만 옮겨 카라마츠를 보자, 거울도 상에 내려놓고 진지한 얼굴의 카라마츠가 조심스레 물었다.


“요즘 형님과 쥬시마츠가 함께 나가는 일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나?”

?”

이 자식, 진심으로 묻는 건가? 해일처럼 몰려오는 황당함과 짜증이 온몸을 덮쳤다

나도 모르게 낮아진 목소리로 되물으며 쳐다보자 카라마츠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 . 요즘 둘이 꽤 가깝, 다고 생각이 들, 어서….”

화산처럼 폭발해 쏟아지는 분노에 뿌득- 이를 갈았다

진짜 너는 아무 생각이 없구나

금방이라도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이성이 아슬아슬하게 붙잡았다

분노로 뜨거워진 숨을 천천히 내뱉고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거에 신경 써?”

“에, ?!”

“별로 신경 안 썼잖아. 누가 누구랑 놀러 가든, 친하든. 왜 인제 와서 그런 걸 물어봐?”

“아니, .”

카라마츠는 내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며 말을 더듬었다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내 이성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이 이상 대화를 이어간다면 분명 나는 카라마츠에게 주먹뿐 아니라 발길질까지 날릴 것이 뻔했다.


“항상 하던대로 너 자신이나 이치마츠나 신경 써. 그럼 나는 헬로워크 갈 테니까.”

“아, 아아. , 다녀와라.”

카라마츠의 배웅도 듣지 않고, ! 소리를 내며 현관을 닫았다.


하아~.”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고 현관 앞에 주저앉았다

일렁이는 분노로 눈앞이 새빨개졌다

용케 참은 내 이성을 칭찬하며 정처 없이 발을 옮겼다

터덜터덜 땅을 보고 걸으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자신의 발등을 바라보았다

찬 바람에 머리가 식어갔다.


카라마츠에게 죄가 없다는 건 알고 있어.”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목소리를 내 중얼거렸다

그래, 알고 있다. 녀석은 상냥하니까

오소마츠 형을 걱정해서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아니,  요즘 둘이 꽤 가깝, 다고 생각이 들, 어서.”

생각 없는 그 한마디에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욱신거리는 손바닥의 통증을 느끼며 헛웃음을 흘렸다


카라마츠, 너는 네 그런 말 한마디에, 작디작은 사소한 언동에 얼마나 오소마츠 형이 휘둘리는지 알긴 해

오소마츠 형이 네게 닿기 전에 몇 번이고 망설이고 심사숙고하는지, 장난스러운 스킨십에 담긴 오소마츠 형의 마음을, 너는 분명 평생 알지 못하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짜증 난다

화 난다

열 받아.


이치마츠를 좋아하는 주제에, 가볍게 오소마츠 형을 걱정하지 말라고.”

항상 카라마츠가 시간을 보내는 다리에 기대 낮게 읊조렸다

네놈의 하찮은 말로 이 이상 오소마츠 형을 상처 주지 말라고

강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한숨과 함께 코웃음을 지었다.


무슨 얼굴이냐, 저건.”

강물에 비친 자신의 지독한 얼굴에 눈을 감았다.

 


쵸로마츠!! 빨리 가자-!!”

기다려, 오소마츠!!”

어린 시절의 오소마츠를 떠올리고 미소와 함께 가슴이 뜨거워졌다

힘차게 나를 부르던 오소마츠는 누가 뭐래도 우리의 리더이자 자랑이었다

오소마츠의 파트너가 자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오소마츠가 차남인 카라마츠가 아닌 자신을 파트너로 선택해 준 것을 얼마나 뽐냈는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다리 난간에서 몸을 떼었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보며 한숨과 함께 다시 집으로 향했다.

 

 

 

이치마츠의 고백에 카라마츠가 대답했다

이치마츠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갔던 카라마츠는 20분 후, 이치마츠와 손을 마주 잡고 내려왔다

멋쩍게 웃으며 사귀게 되었다고 선언하는 카라마츠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 그거 굳이 우리 앞에서 선언할 필요 있었어

오소마츠 형 앞에서 말할 필요 있었어

시야를 흐리는 분노에 뇌가 녹는 것 같았다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토도마츠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했다

천천히 내뱉고, 들이마셨다

시끄럽게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들었다

카라마츠와 이치마츠 주변에 모여 축하 인사를 건네는 형제들 사이에서 오소마츠 형이 쥬시마츠와 눈을 맞추고 빙긋 웃었다


-, 그런가. 그런 거였나

절대 먼저 고백할 리 없다고 생각했던 비굴하고 내성적인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먼저 고백한 이유를 알겠다

애절하게 웃으며 축하한다고 호들갑 떠는 오소마츠 형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오소마츠 형은, 너는-.

그걸로 좋은 거야?


차마 묻지 못한 채, 자조하며 눈을 돌렸다.

 

 

사귄다는 선언 이후, 카라마츠는 어딜 가나 항상 이치마츠와 함께 했다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오소마츠 형을 떠올리고 말아 가만히 앉아서 둘을 보고 있기가 괴로웠다

자연스럽게 나는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를 피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오소마츠 형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파칭코나 경마를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서고 밤늦게 돌아오는 오소마츠 형은 너무나 위태로워 보여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는 오소마츠 형을 찾아 거리를 돌아다니길 몇 번

아무리 찾아도 오소마츠 형은 찾을 수 없었고, 나는 매번 허탈하게 홀로 집에 돌아와야 했다


오늘도 식탁에 앉은 사람은 다섯 명. 오소마츠 형의 빈자리를 보며 밥을 떴다.

어디서 뭘 하는 거야, 이 망할 장남.

또 어디 혼자 처박혀서 울고 있는 거 아냐?

빨리 돌아와. 바보 멍충아.

 

 

모두 잠든 밤. 새벽 2시를 가리키는 시침을 보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어있는 옆자리를 보고 한숨과 함께 복도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에 부르르 몸을 떨고 끼익 끼익 울리는 낡은 계단을 내려가 거실로 들어갔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전등 스위치를 찾아 키자, 환한 빛에 눈이 아렸다

서늘한 거실 바닥에 털썩 앉아 한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나올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몸이 추운 건지, 마음이 추운 건지 으슬으슬하게 떨리는 몸을 웅크리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쵸로마츠 형아.”

작지만 힘이 담긴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쥬시마츠가 내 앞에 앉았다.


쥬시마츠.”

오소마츠 형아는 3시가 되면 들어옴닷!”

그걸 어떻게 알아?”

쥬시마츠의 말에 시계를 한번 쳐다보고 말했다

항상 우리가 잠든 후에야 들어오는 오소마츠 형의 정확한 귀가시간은 나도 알지 못했다

확신에 찬 쥬시마츠의 목소리에 나직이 묻자 쥬시마츠가 망설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오소마츠 형아는 아르바이트 중!! 돈을 모아서 집을 나갈 거라고 했슴다!”

?”

오소마츠 형아는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쵸로마츠 형아는 괜찮슴다!”

.”

쵸로마츠 형아라면, 오소마츠 형아를 맡길 수 있어!

쥬시마츠.”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쥬시마츠는 타박타박 마루를 울리며 빠르게 거실에서 나가 2층으로 올라갔다

쥬시마츠의 말에 노곤히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졸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르바이트? 누가? 그 파칭코 쓰레기가?? 

숨을 내쉬며 필사적으로 쥬시마츠의 말을 이해하려 했다


집을 떠나? 혼자

아르바이트하는 이유가 떠나려고

혼자서


머릿속이 뱅뱅 돈다

참을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가 온몸을 지배했다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와 알싸하게 입 안에 번졌다

토도마츠가 지금 내 얼굴을 보면 질겁을 할 정도로, 자신이 얼마나 지독한 얼굴을 하고 있을지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진짜로, 웃기지 말라고. 오소마츠.

 


 

새벽 3,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거실 벽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잘그락하고 신발을 벗는 오소마츠 형의 앞에 조용히 섰다.


쵸로마츠, 아직 안 자고 뭐 해?”

태연한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부아가 치밀어 올라 절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너야말로 여태 뭐하다 이제야 들어와?”

? 이 횽아 오늘 파칭코 완~전 대박 나서!! 지금까지 마시다 왔징~!”

여태 마셨던 것 치고는 술 냄새가 안 나는데?”

쵸로마츠, 오늘 기분 안 좋아? 괜찮아? 횽아가 꼬옥~ 껴안고 같이 자줄게~!”

말 돌리지 마. 여태 아르바이트하다 온 거 알고 있으니까.”

,

어떻게 알았는지는 왜 물어봐? 그런 것보다.”

그럼 횽아 지금 엄~, 무지 무~지 피곤한 거 알겠네~! 횽아 이제 완전 무리! 졸려 죽겠어~~ 그러니까 들여보내 주지 않을래? 쵸로 씌~!”

또다시 말을 돌리며 마루로 올라온 오소마츠 형의 앞에 섰다

앞길을 가로막은 나를 보며 얼굴을 찡그린 오소마츠 형의 눈빛이 살며시 떨렸다.


저기, 쵸로마츠? 횽아 졸려.”

.”

좀 비켜줄래?”

.”

쵸로마츠.”

나를 향한 오소마츠 형의 눈이 강하게 빛났다

장난기가 사라진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에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정말로 이대로 떠날 거야?”

!”

내 말에 오소마츠 형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입을 꾹 다물고 나를 가만히 응시하던 오소마츠 형이 고개를 돌리고 마른 웃음을 지었다.


나 걱정해 주는 거야? 웬일이야~, 쵸로마츠가….”

대답해. 이대로 카라마츠를 포기할 거야?”

별로 포기한 거 아냐.”

웃기지 마.”

, 진짜 뭐야? 왜 그런 걸 묻는데? 포기한 거 아니라고!!”

지금 새벽이야. 목소리 낮춰. 부모님 깨셔.”

그럼 왜 그딴 걸 묻고 지랄이야!!”

이를 앙다물고 괴롭게 얼굴을 찌푸린 채 나를 향해 외치는 오소마츠 형의 모습에, 웃기게도 나 자신의 감정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오소마츠 형의 눈을 마주하고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또 양보하고, 자기만 손해 보지.”

.”

파칭코 쓰레기 주제에.”

너랑 상관없어!”

카라마츠를 원하잖아? 곁에 있어 주길 바라잖아.”

필요 없다고! 카라마츠 따위!!!”

괴롭게 외치는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가 떨렸다


-, 진짜 바보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상처받고


거칠게 숨을 내쉬는 오소마츠 형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참아내려 하는 오소마츠 형의 어깨가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다

욱신거리는 심장의 아픔과 함께 팔짱을 풀어 손을 뻗었다

오소마츠 형의 얼굴을 잡고 끌어올려 눈을 마주했다

눈물에 젖은 눈이 거실에서 비치는 불빛에 가냘프게 반짝였다.


같이 가.”

?”

나도 같이 갈게. 오소마츠, 너랑 같이 떠날게.”

, 슨 소리야. 쵸로마츠.”

네 곁에 있겠단 소리야. 그 누구보다 혼자를 싫어하면서.”

왜 그런 말을 해?”

나는 네 파트너니까. 네가 괜찮아질 때까지 곁에 있을게.”

.”

나를, 포기할 필요 없어. 마음껏, 내게 기대. 오소마츠.”

, 으읏!! , 우우-.”

커다란 눈물방울이 흐느낌과 함께 흘러넘쳤다

오소마츠의 두 볼을 감싸고 있는 내 손까지 적시는 뜨거운 눈물에 내 눈시울도 뜨거워져, 오소마츠를 품에 안아 얼굴을 숨겼다

이럴 때까지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를 죽이고 우는 오소마츠를 꼭 껴안자, 오소마츠도 내 등에 팔을 올렸다.


 

 

줄곧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오소마츠의 괴로워하는 얼굴과 함께 외면했던 것

그것은 바로 오소마츠를 향한 내 감정이었다

이미 형제애의 범주를 아득히 넘은 그것은 어느새 내 온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내 모든 행동의 근원에 진득하게 깔린 그것을 나는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몰랐다


사랑’? 

애정’? 

형제애’? 


그 어느 것도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에 맞는 것 같지 않았고, 나는 이 정체불명의 감정에서 눈을 돌렸다

내가 외면하는 사이, 내 안에서 사라졌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것은 카라마츠를 향한 오소마츠의 눈빛을 보는 순간 다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애틋하게 바라볼 때마다, 카라마츠 때문에 상처받은 얼굴을 할 때마다….

가슴 속에 소용돌이치는 그 감정은 이성도 무시한 채 내 몸을 조종했다

이 감정이 형제애를 넘어선 것이라는 것을 그때야 깨달았다. 하지만 내겐 아직도 확신이 없었다

이것이 오소마츠를 향한 사랑인건지, 파트너를 향한 애정인건지….

망설이며 홀로 끙끙대고 고민했다. 오소마츠를 품에 안은 지금도 나는 아직 이 감정을 알지 못한다


크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이것이 무엇이든, 나는 오소마츠와 함께 갈 것이다

오소마츠를 혼자로 만들고 싶지 않다

으로써 많은 것들을 포기해왔던 이 바보를,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다

이제 오소마츠와 함께 할 시간은 많다. 조금씩 천천히 이 감정을 알아가자

리고 이 감정이 확실해졌을 때, 스스로가 자신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해졌을 때…. 


오소마츠, 너에게 고백할게.

 

 

 

 

 

 

6.

 

탕탕-, 경쾌하게 울리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자 샛노란 후드가 시야 가득 퍼졌다.


쥬시마츠.”

아이!”

일단 좀 놔주지 않을래?”

아이아이!”

내 요청에 나를 안고 있던 쥬시마츠가 내 옆에 앉았다

긴 소매로 감춘 손을 앞에 모으고 나를 보며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는 동생의 모습에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무슨 일이야?”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쥬시마츠가 말하기 쉽도록 일부러 부드럽게 묻자, 쥬시마츠가 다시 한번 해맑게 웃었다.


있지! 이치마츠 형아!!”

.”

나는, 실은 그녀가 굉장히 좋아서.”

.”

처음이다. ‘그 날이후로 쥬시마츠의 입에서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직도 떠올리기 힘든 기억일 텐데, 스스로 그 일을 꺼내는 쥬시마츠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조용히 쥬시마츠의 말에 귀 기울였다.


매일매일 같이 놀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나서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말할 수 있었어. 그래도 결국엔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다 포기하자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소마츠 형아가 가보라고 해줘서, 마지막까지 그녀의 앞에 설 수 있었슴다!!”

.”

그러니까아~, 이치마츠 형아도…. 제대로 마주 봐야 해. 나처럼 망설이면 눈앞에 있는 행복을 놓치고 맙니닷!”

.”

말을 잃은 나를 보며 잔잔히 미소 지은 쥬시마츠가 소매에서 손을 꺼내 내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이치마츠 형아! 홧팅!!”

.”

 


- 고백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굉장히 원했다. 상냥한 그 손길이 내게 닿기를 바랐다

비굴하고, 비참하고, 보잘것없는 나를 바라봐주길 바랐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내가 먼저 다가가도 될지 자신이 없어서 쭉- 미뤄왔던 일

쥬시마츠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까지 내 등을 든든히 지탱해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쥬시마츠의 미소를 본 순간, 이유 없이 차오른 눈물에 고개를 숙이자, 쥬시마츠의 부드러운 음성이 귓가에 울렸다.


제대로, 말하자? 이치마츠 형아.”

.”

눈앞에 벼랑이 있다고 해도, 쥬시마츠가 등을 지켜주고 있다면 앞으로 나아가자

기껏 한 발자국, 나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 형과 오소마츠 형이 돌아왔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쥬시마츠의 눈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렁이던 쥬시마츠의 눈가가 가늘게 휘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장바구니를 마루에 올려놓은 카라마츠 형 앞에 다가가자 오소마츠 형이 나를 슬쩍 보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마루에 서 있는 나를 올려다보며 카라마츠 형이 고개를 기울였다.


이치마츠? 무슨 일 있나?”

개똥마츠, 할 말이 있으니까 2층 따라와.”

!?”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계단을 올랐다. 곧이어 뒤따르는 발소리에 두근거리는 심장에 심호흡했다

나는, 오늘 제대로 너에게 내 마음을 전한다.

 

 

 

토도마츠와 쥬시마츠는 함께 외출하고, 카라마츠 형도 심부름을 나간 집 안은 고요했다

혼자 거실에 남아 무릎에 누운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거실을 둘러보다 문득, 항상 오소마츠 형이 누워 만화책을 보던 자리에 시선이 멈췄다

오소마츠 형과 쵸로마츠 형이 함께 집을 나간 지 한 달이 흘렀다

오소마츠 형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쵸로마츠 형의 거친 욕설이 사라진 집 안은 언제나 조용했다

적막한 거실 안에 시계 초침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오소마츠 형이 쵸로마츠 형과 함께 나가겠다고 선언한 날, 부모님도 우리도 놀라 까무러졌다

오소마츠 형이 알바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날 처음 알았다

타지에서 일 제의가 들어와 떠나겠다는 오소마츠 형의 얼굴은 어쩐지 굉장히 산뜻해 보였다

오소마츠 형과 쵸로마츠 형의 송별파티에서 홀가분한 얼굴의 오소마츠 형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이치마츠, 카라마츠 잘 부탁한다.” 하고 말했다

멋쩍게 씩- 웃으며 코 밑을 문지르는 오소마츠 형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소마츠 형도 카라마츠 형을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중학교 시절, 오소마츠 형의 곁엔 쵸로마츠 형이 아닌 카라마츠 형이 있었다

마치 둘만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어딜 가든 두 형은 찰떡처럼 붙어 다녔다

카라마츠 형의 별것 아닌 농담에 배를 잡고 웃는 오소마츠 형을 보며 오소마츠 형이 카라마츠 형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한때는 내가 카라마츠 형에게 다가가는 것을 오소마츠 형이 막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카라마츠 형과 사귄다고 선언한 그 날, 내게 축하한다고 말하는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는 지극히 다정했다

정말로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뚝뚝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본 토도마츠는 음흉한 미소로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오소마츠 형의 빈자리를 보자 나도 모르게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둡고, 소심한 나를 가장 걱정된다고 해줬던 오소마츠 형이 이 집에 없다는 사실이 서러워서,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중력에 이끌려 아래로 떨어지는 눈물을 피해 고양이가 무릎에서 일어나 창문을 뛰어올라 사라졌다

고양이가 사라지고 온기가 사라진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오소마츠 형이, 보고 싶다.

가슴을 조이는 그리움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이치마츠?!”

카라마츠 형의 목소리에 눈물로 젖은 한심한 얼굴을 들어 올렸다

황급히 거실 안으로 뛰어들어온 카라마츠 형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누가 널 해쳤나!? 이치마츠!!”

아니, 아니야. 오소마츠 형이.”

? 오소마츠?”

오소마츠 형이, 보고 싶, 어서.”

그런가.”

- 하고 깊은숨을 내쉬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 형이 안도했다

다시 손수건을 고쳐 들어 뺨에 흘러내린 눈물을 하나하나 닦아낸 카라마츠 형이 빙긋- 웃으며 품에서 하얀 편지 봉투 하나를 꺼냈다.


뭐야? 그거.”

오소마츠가 보낸 편지다.”

오소마츠 형이!?”

눈물로 흐려진 시야로 오소마츠 형의 편지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대체로 새로운 동네에 잘 적응했고, 일도 적성에 맞는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은 잘 지내고 있으니 모두 잘 지내라는 오소마츠 형의 편지에 바보 같은 웃음이 나왔다

삐뚤빼뚤 일정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튀어나와 있는 오소마츠 형의 글씨에 헤헤 웃으며, 편지를 품에 안았다

무기질일 터인 편지가 어쩐지 오소마츠 형처럼 따스하게 느껴져서 품에 안고 있자, 카라마츠 형도 잔잔한 미소를 띠고 내 옆에 앉아 등을 두드려주었다.


쥬시마츠 형, 조심해-.”

! 괜차나!!”

소란스럽게 현관에서 들려오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의 목소리에 코를 훌쩍이며 몸을 일으켜 거실을 나왔다

쥬시마츠가 어디서 났는지 새하얀 별 모양의 꽃을 현관에 놓인 꽃병에 꽂고 있었다

두껍고 긴 꽃잎에 숭숭 털이 나 있는 꽃은 빈말로도 아름답다고 할 수 없었다

쥬시마츠는 긴 소매까지 걷어붙이고 정성스럽게 꽃을 매만지고, 한 발자국 물러섰다

토도마츠가 쥬시마츠의 뒤에서 스마트폰으로 꽃 사진을 찍고, 화면을 보며 웃었다.


웬 꽃이야?”

꽃병에 가지런히 꽂힌 꽃을 보며 묻자 어느새 옆에 다가온 카라마츠 형이 대신 대답했다.


오소마츠가 보내준 꽃이다.”

오소마츠 형이?”

.”

놀라 묻자 카라마츠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 형이 꽃


전혀 오소마츠 형답지 않은 선물에 놀라 하얀 꽃을 빤히 바라보았다

일반적으로 꽃집에서 파는 화려한 꽃들과 너무 다른, 소박한 꽃이었다.


이거 무슨 꽃?”

어쩐지 상냥해 보이는 작은 꽃을 유심히 보며 묻자 쥬시마츠가 해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에델바이스!!”

 

 

 

 

 

 

7.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손에 들린 보랏빛 작은 꽃을 응시하는 오소마츠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알큰하게 퍼지는 꽃향기에 봄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실감했다

온 마을을 뒤덮었던 눈도 다 녹고, 푸른 잎이 하나둘 솟아나기 시작했다

붉은 리본에 묶인 한 다발의 보랏빛 꽃을 손에 들고 현관을 나선 오소마츠의 앞에 쵸로마츠가 섰다.


가자, 오소마츠.”

!”

오소마츠의 손을 잡고 이끄는 쵸로마츠를 따라 오소마츠가 경쾌하게 뛰었다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이 힘주어 마주 잡은 손을 응시한 오소마츠가 온유한 미소를 띠고 쵸로마츠와 함께 바다로 달려나갔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집. 햇빛이 만개한 현관에 놓인 작은 꽃병에는 보랏빛 라일락이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 소설에 나온 꽃들의 꽃말

아네모네 : 사랑의 괴로움, 허무한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제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웠어요.

에델바이스 : 소중한 추억

보라색 라일락 : 사랑의 싹이 트다.


* 꽃 관련해서 플롯 짜놓은 단편이 몇 개 더 있어서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 요즘 회사일이 잘 안 풀려서 우울하네요...ㅠ 다 때려치고 소설이나 쓰면서 살고 싶다...ㅠㅠ (하소연..살짝 해봐요..)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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