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WHITEPINE입니다..

제가 3일에 일본으로 일주일 출장을 왔는데 말이죠...

태풍 제비가 휩쓸고 가서 간사이 공항이 폐쇄된 덕분에(?) 일본에 발이 묶였....

원래는 8일에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네요..
그래서 다음주중에 글 하나 올리려고 했는데 그것도 못 쓸 것 같네ㅠㅠㅠㅠ

얼른 항공권이 구해지는대로 한국에 들어가겠지만 글은 조금 더 늦게 올라올 것 같습니다...


* 정말 오랜만에 글 올리네요... 한달 넘게 글을 못 올렸....ㅠㅠ


* 원래는 장편 '장남의 심중' 외전을 올리려고 했는데, 충동적으로 쓰기 시작한 글이 빠르게 완성되어서 먼저 올려요!


* 육둥이의 학창시절 날조가 나옵니다.


* 글 내에서 미성년자의 음주 내용이 나옵니다만, 저는 아직 (한국나이) 20세가 되지 않은 학생들의 음주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미성년자의 음주에 비판적인 입장이며 글 내에서도 그러한 부분이 나옵니다.


* 구토 표현이 나옵니다.


* 등장인물 간의 대화부분은 굳이 맞춤법을 지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 공미포 9,618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가게 위 천장으로 올라가는 하얀 연기, 식욕을 돋구는 독특한 탄 내와 치익- 하고 불판에 울리는 소리에 오소마츠는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붉은 빛을 내는 숯불 위에 올려진 철판은 기름기 가득한 고기를 안달나게 괴롭히고 있었다. 

나중에 집에 들어가면 옷에 가득 묻은 고기 냄새로 동생들을 골려줄까, 그다운 바보같은 생각을 하며 군침을 꿀꺽 삼킨 오소마츠가 젓가락을 들었다. 

노릇노릇 구워진 고기를 들어올려 입 밖으로 길게 뺀 혀 위에 올리고 누가 뺏어갈 듯이 빠르게 입 안에 숨겼다. 

우물우물 천천히 치아를 움직이면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육즙과 함께 부드럽고 쫄깃한 고기가 혀 위에서 춤췄다. 

눈물까지 흘릴 기세로 맛을 음미하며 고기를 씹어 삼키고 시원한 맥주잔을 들어 벌컥벌컥 호쾌하게 마신 오소마츠가 “크햐~~~!!” 하고 커다란 감탄사와 함께 맥주잔을 쿵 식탁에 내려놓았다. 

조금 전까지 시원한 맥주가 담겨 있었던 잔에는 고깃집에 가득한 연기가 물방울이 되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여~, 장남. 오늘 달리는 거?”

단번에 맥주를 입에 털어 넣은 오소마츠를 보며 웃은 남자가 오소마츠의 빈 잔에 맥주를 따랐다. 

오소마츠의 앞도, 뒤도, 옆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옹기종기 모여 앉은 동창들. 

서로 웃고 떠들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들은 실로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이었다. 

다시 가득 찬 맥주잔에 흡족한 웃음을 피운 오소마츠가 동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술은 공짜잖아! 이럴 때 달려야지!”

“회비 다 걷었거든!?”

“나는 안 냈지롱~.”

“야야, 저 장남시키 잔 뺏어.”

“앙돼애~~.”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짓궂은 말에 오소마츠가 장난감을 뺏기지 않으려 애쓰는 어린아이처럼 맞장구치며 어깨를 움츠렸다. 

함께 웃고 있는 친구가 정말로 잔을 뺏어갈까봐 찰랑이는 맥주잔을 품에 안은 오소마츠가 입술을 삐죽였다.


“카라마츠가 내 몫까지 냈다구~! 그러니까 나도 마실 권리가 있단 말씀!”

“너는 진짜 변한 게 없구나?”

흥흥, 과장된 콧방귀를 끼면서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있는 카라마츠를 가리킨 오소마츠가 씩- 웃으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홀로 2인분의 회비를 내야했을 카라마츠를 동정하며 쓴웃음을 흘린 친구는 오소마츠를 향해 작게 혀를 찼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오소마츠와 같은 반이었던 지독한 악연의 친구는 유독 오소마츠에게 자주 엮이는 카라마츠를 측은히 바라보았다. 

원래 동생 좋아하기로 유명했던 오소마츠였다. 

다만 그 애정 표현 방식이 보통의 형제들과는 많이 달랐던 탓에 오소마츠의 동생들은 학창 시절 많은 사건사고에 휘말려야 했다. 

그 중에서도 오소마츠의 애정 아닌 애정을 가장 많이 받은 차남은 그 빈도가 잦았다.

자신이 그 당사자였다면 진작에 얄밉고 짜증나는 형을 무시했겠지만, 상냥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모를 카라마츠는 질리지도 않고 오소마츠를 상대했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같은 반이었던 고교 2학년 때의 1년은 카라마츠에게는 지옥같은 1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였다. 

오소마츠가 벌린 싸움에 강제 동참하고, 오소마츠가 친 사고에 함께 선생님에게 쫓기고, 오소마츠의 지독한 장난에 일방적인 희생자가 되어야했으니 주변의 동정을 사는 것은 당연했다. 

자기때문에 동생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리 없는 오소마츠는 너무나 순진한 얼굴로, 전혀 변하지 않은 해맑은 미소를 띄고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진짜- 답이 없는 바보라니까. 기적의 바보.’

홀로 그렇게 수긍하며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흘린 친구가 문득 입가로 가져가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말이야…. 카라마츠, 언제 한 번 엄청 크게 화낸 적 있지 않았나? 오소마츠 한테.”

서두 없이 던져진 질문에 오소마츠가 젓가락을 멈추고, 그 주변에 앉은 친구들이 고개를 기울였다. 

오소마츠의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안쓰러웠지만,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무해무독한 순딩이로 유명했던 카라마츠였다. 

그가 화를 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기에 친구들은 모두 눈썹을 찌푸리고 ‘그런 일이 있었나?’ 하는 얼굴로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친구들의 시선에 오소마츠는 어딘가 굳은 얼굴로 “몰라.” 하고 짧게 대답하고 다시 바쁘게 고기를 입에 쑤셔넣었다. 

얼버무리는 것처럼 대답을 흘리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친구들의 궁금증은 더욱 깊어졌다.

묘한 오소마츠의 태도에 친구들은 모두 머리를 싸매고 그런 일이 있었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가게 안, 오소마츠가 앉은 테이블만이 조용한 침묵에 빠졌다.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고기나,”

“아, 아아~~. 있었다!!”

맛난 고기를 눈 앞에 두고 끙끙대는 소리를 내는 친구들을 보고 볼을 부풀린 오소마츠가 뭐라 타박하려는 순간, 친구 하나가 트릭을 전부 푼 탐정처럼 얼굴을 밝히고 외쳤다. 

아직도 추억을 헤집고 있던 친구들은 기억을 떠올린 친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있었다고??”

“있었나? 카라마츠는 맨날 오소마츠한테 당하기만 하지 않았어? 순딩이였잖아, 그 녀석.”

“좋게 말해서 순딩이지, 사실상 호구였지.”

“왜, 그, 그그…. 언제였지? 수학 여행 때!”

“수학 여행?”

“그 때 카라마츠가 화냈다고?”

“아! 그렇네. 있었다!”

“그지?? 있었지?”

“응! 확실히 그 때 엄청 화냈어!!”

의심 가득한 목소리에 친구가 흥분하며 이야기를 꺼내자, 하나 둘씩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무심코 세탁기에 넣고 돌린 바지에서 비상금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환호하며 눈을 빛낸 친구들 가운데 떨떠름한 표정을 한 것은 오소마츠뿐이었다.


“저기…. 그 이야기는 그만 하고 맥주나,”

“근데 그 녀석 왜 화냈더라?”

“우리가 오소마츠랑 술 마셨다고 화냈잖아.”

젓가락을 움직이며 고기와 맥주로 화제를 돌리려는 오소마츠가 무색하게 기억의 꼬투리를 잡은 친구들은 점점 선명해지는 추억에 몸을 들썩이며 신나 있었다. 

카라마츠가 확실히 그 때 화 냈었다, 왜 화냈지?, 술 먹었잖아 등등. 

한 마디씩 나오는 증언에 오소마츠는 서서히 친구들 무리에서 멀어졌다. 

화난 것도, 짜증난 것도 아닌 묘한 표정으로 퍼즐 맞추듯 완성되가는 추억 이야기에 오소마츠가 초조하게 마른침을 삼켰다.






2.


고교 2학년의 꽃이라 하면 그것은 바로 수학 여행일 것이다. 

나라나 교토처럼 판에 박힌 여행지라도 교복을 입은 채 학교를 벗어나 여행을 한다는 것은 학생들에게는 설레는 일이었다. 

수학 여행 가기 한 달 전부터 함께 움직일 그룹을 정하고, 자유 시간에 갈 관광지를 의논하며 잔뜩 들뜬 철없는 고등학생들. 

그 속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도 당연히 들어가있었다. 

똑같은 얼굴이 같은 반에 있으면 헷갈린다는 이유로 육둥이는 으레 서로 다른 반으로 뿔뿔히 흩어졌으나, 서로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개성이 생긴 이후엔 종종 같은 반에 두 명이 들어가기도 했다. 

고교 2학년의 A반에는 1년 내내 붉은 후드를 입고 다니는 오소마츠와 짙은 눈썹을 가지고 과장된 연극톤을 달고 사는 카라마츠가 있었다. 

수학 여행을 앞두고 굳이 권유하지 않아도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친구들과 같은 조에 들어갔고, 그들은 숙소에서도 같은 방을 쓸 예정이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나라와 교토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검은 제복의 학생 무리들. 

그 속에서는 친구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는 오소마츠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카라마츠가 자리잡았다. 

하루 종일 안내원이 이끄는 대로 관광 코스를 돌아본 학생들은 저녁 식사 후 숙소에 돌아와서야 마음편히 다리 뻗고 쉴 수 있었다.


“기왕 수학 여행 갈거면 오키나와가 좋은데.”

짐을 풀고 수건을 어깨에 두른 친구의 말에 미리 깔린 이불에서 뒹굴던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오키나와는 뭐 있어?”

“적어도 여기보단 재미있을 걸?”

작년, 가족 여행으로 오키나와를 갔던 친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수학 여행의 메카, 큰일이 없는 한 당연하게 정해지는 나라와 교토에는 오소마츠와 친구들처럼 수학 여행을 온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았다. 

교과서에 나왔던 유적지를 하나씩 돌아본 들, 한창 때의 고등학생들에겐 별 흥미도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내일은 자유시간 많으니까 딴 데 가보자구~.”

늘어지게 하품하며 말하는 오소마츠에게 고개를 끄덕인 친구가 문득 비어있는 오소마츠 옆자리에 눈치챘다.


“카라마츠는?”

“토도마츠네 방에 갔어~.”

“헤—.”

시큰둥한 오소마츠의 대답에 친구도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숙소에 있는 커다란 대욕탕은 여학생, 남학생 나누어 사용할 시간을 정해놓았지만, 방에 있는 친구들 누구도 욕탕에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얼굴과 팔다리만 씻는 간단한 방법을 원한다면 숙소 방에 있는 화장실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오소마츠와 다른 친구들은 욕탕에 가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그대로 토도마츠랑 씻고 오지 않을까?”

화장실에서 막 씻고 나온 친구가 카라마츠의 행적을 묻자 오소마츠가 다시금 대답하며 몸을 굴렸다. 

엎드렸던 오소마츠가 이불에 대자로 누워 배를 내놓고 있는 모습에 친구들이 키들댔다.


“그럼 뭐라 태클 걸 녀석도 없는 것 같으니, 이걸로 조촐하게 놀아볼까?”

오소마츠에 버금가는 장난꾸러기라 알려진 친구가 지루해하는 친구들을 둘러보며 자신의 가방을 들어올렸다. 

뭔데 그러냐는 얼굴로 저를 보는 친구들을 보며 씨익- 간사한 웃음을 피운 그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푸른색의 술병이었다.


“엑!? 너 그런 거 가져왔었냐?? 용케 안 걸렸네….”

떡 하니 바닥에 내려놓은 술 5병에 친구들이 모두 입을 벌렸다. 

“케케케-, 다 수가 있지~.” 하고 웃은 친구가 가방에서 병따개를 꺼내며 눈을 반짝였다.


“마셔볼 사람?”

“나.”

“아, 나도.”

“오소마츠는?”

“나두~~!”

아버지의 컬렉션을 슬쩍했다는 친구의 불필요한 설명을 한귀로 흘리며 이불에서 벌떡 일어난 오소마츠가 친구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3.


“그럼 카라마츠 형, 내일 봐~.”

“아-.”

다소곳이 유카타를 입고 얌전히 갠 수건을 손에 든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손을 흔들었다. 

멋을 내겠다고 살짝 묶은 오비 덕분에 앞섬이 훤히 드러난 카라마츠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방을 향해 발을 돌렸다. 

토도마츠의 짐 정리를 도와달라는 요청에 토도마츠의 방에 가서 갔다가 그대로 목욕까지 한 덕분에 카라마츠가 방을 떠난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말았다. 

괜히 솟아나는 원인 모를 불안에 종종걸음으로 뛰다싶이 해 방에 도착한 카라마츠가 문을 열자, 그 앞에 펼쳐진 광경은 카라마츠에게서 말을 빼앗았다.


널부러진 술병은 깔끔하게 비어 있었고, 친구들은 저마나 방 곳곳에 쓰러져 창백해진 얼굴에 간신히 숨만 내뱉고 있었다. 

우엑~, 으~, 하고 신음하며 앓는 친구들의 모습에 멍청히 선 카라마츠가 눈을 굴리며 오소마츠를 찾았다. 

늘어진 친구들을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을 옮겨 방 안에 들어가서야 벽에 기대있는 오소마츠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형님!?”

“우에~~.”

카라마츠의 큰 성량에 오소마츠가 몸을 움찔 떨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허옇게 뜬 오소마츠의 안색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눈을 지그시 감고 눈썹을 잔뜩 찌푸린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부름에도 대답할 기력이 없는 것처럼 손을 까딱였다.


“대체 뭘 한건가!”

“으…. 윳치가 술 가져와서…. 다같이,”

“바보인가, 너는!!”

“목소리, 커어…. 머리 울려어~~.”

오소마츠의 발치에 기절하듯 잠든 친구의 애칭을 부르며 가리킨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의 노성이 닿았다. 

징징-, 북을 두드리듯 머리에 가득 울리는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신음하며 카라마츠를 밀어냈다. 

푹-, 형제의 한심함에 큰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빈 술병을 들어올렸다. 

요리조리 돌려 술병을 살핀 카라마츠의 짙은 눈썹이 거세게 일그러지더니 짜증 섞인 한숨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도수가 25도나 되는 술을 이렇게나 많이 마셨으니….”

빈 술병은 다섯, 오소마츠를 비롯해 쓰러져있는 친구들은 네 명. 한 사람당 적어도 한 병은 마셨다는 소리였다. 

처음 마셔보는 어른의 음료, 술. 

그리고 수학 여행을 와 들뜬 기분과 하루 종일 돌아다녀 지친 몸과 쌓인 피로가 합쳐져 환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처음 마시는 이들이 자제를 했을 리 없고, 적당한 때에 멈췄을 리도 없다. 그 증거가 방에 늘어져 있으니.


“우읏,”

“오소마츠?”

선생님이 이 모습을 보면 내일 있을 자유 여행은 물 건너 갈 것이 분명하기에 카라마츠는 일단 증거라도 없앨 생각으로 술병을 한 곳에 모으고 있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오소마츠의 괴로운 신음이 들리기 전까지는. 

몸을 홱 돌려 자신에게 달려온 카라마츠를 오소마츠가 거칠게 밀어내고 화장실로 달려 들어갔다.


“우엑, 웩, 흐긋,”

변기에 얼굴을 처박고 오늘 먹었던 것을 모두 게워내는 오소마츠는 너무나 괴로워보였다. 

원체 건강했던 육둥이였기에 구토를 하는 것도 드물었다. 

어지간히 아프지 않는 한, 뱃속이 뒤집히는 일은 없었기에 오소마츠는 처음 느끼는 낯선 감각과 함께 화산이 분출되듯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위액을 쏟아냈다. 

죽을 것처럼 멈추지 않고 구역질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는 크게 당황했다. 

손에 들고 있던 병을 던지고 오소마츠 옆에 쭈그린 카라마츠는 눈물 콧물 쏟아내는 오소마츠에게 뭘 해야 할지 몰라 손을 휘적이다 이내 오소마츠의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마츠요가 그러했듯 천천히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오소마츠의 등을 두드리고 오소마츠가 심하게 괴로워하면 등을 위아래로 쓰다듬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서서히 오소마츠의 구역질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코를 훌쩍이며 고개 든 오소마츠의 얼굴은 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처참했다. 

짙은 눈썹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입술을 깨문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나무라는 것은 일단 미루고 오소마츠를 천천히 일으켰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말도 꺼내지 못하는 오소마츠를 세면대 앞에 세우고 물을 틀어 정성스럽게 오소마츠의 얼굴을 씻겼다. 

거부할 힘조차 없는 오소마츠는 숨을 헐떡이며 가만히 카라마츠의 손을 받아들였다. 

눈물과 콧물과 입에 흘러나온 잔해들을 닦아내고 가방에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는 새 수건을 꺼내 오소마츠의 얼굴을 닦아내고 나서야 카라마츠와 오소마츠는 화장실을 나올 수 있었다. 

위를 비우고도 오소마츠는 술이 깨지 않았는지 머리가 아프다며 신음하고 몸을 웅크렸다. 

벽에 등을 기대로 작은 어린아이처럼 둥글게 몸을 움츠린 오소마츠에게 얇은 이불을 덮어준 카라마츠가 한숨 쉬며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이 보기 전에 숙소 밖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쓰러진 친구들을 이불에 눕혔다. 

그 모든 것을 끝내고 나니 목욕 후 보송보송했던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다시 씻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에 씻기를 포기하고 오소마츠 옆에 다가간 카라마츠가 조심스럽게 무릎 위에 올려진 오소마츠의 팔을 풀어 얼굴을 끄집어냈다.


“형님, 좀 괜찮나?”

“우으~~~. 아까보단 괜, 찮아아….”

죽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는 오소마츠를 보고 허탈한 한숨을 쉰 카라마츠가 작게 오소마츠를 꾸짖었다.


“그러게 왜 술 같은 걸 마신건가. 졸업하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데. 이렇게 될 때까지 마시고.”

“으그~~~~. 한 번 정도는 마셔보고 싶잖아아—.”

“전에 집에서 대디에게 한 잔씩 얻어 마셔봤잖아.”

“그, 그렇지만…. 또 마셔보고 싶었다구….”

“그 때는 쓰다고 다신 안 마신다며?”

“마시고 싶은 이유가 따로 있었어!!”

담담하게 저를 질책하는 카라마츠에 울컥해 대답한 오소마츠가 자신의 큰 목소리에 울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하아~, 하고 커다란 한숨을 쉬는 카라마츠에게 다시 발끈했지만 여기서 또 언성을 높여봤자 오소마츠만이 손해였다. 

건조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카라마츠를 한껏 흘겨본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가슴을 밀어 옆에 펴진 이불로 넘어뜨렸다.


“나 잘거니까 저리 가.”

일방적으로 말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대답도 듣지 않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자신의 이불에 누웠다. 

형광등이 비친 주황빛의 이불 속에서 둥글게 몸을 만 오소마츠는 옆에서 들려오는 한숨과 부스럭거리는 이불 소리에 조용히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감았다.






4.


“그래서 다음 날 카라마츠 엄청 화냈잖아.”

“그랬지~. 왜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먹냐고.”

“처먹냐고 했었어. 나, 카라마츠가 그렇게 험한 말 하는 거 처음 봤다.”

“선생님들한테 안 들킨 건 정말 기적이었지.”

“그래도 카라마츠가 의리있게 뒷정리 해 줬으니까.”

“나 그날 이후로 다시는 술 안 마시겠다고 맹세했잖아.”

“지금 니 손에 들린 건 뭐냐.”

“맥주.”

“맹세 어따 갖다 버렸냐.”

키들키들 웃으며 알딸딸한 술기운으로 무르익은 분위기에 추억 이야기를 섞는 친구들의 웃음에도 오소마츠는 묵묵히 고기를 먹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수학 여행에서 젊은 날의 치기로 마신 술. 

다음 날, 오소마츠와 친구들은 모두 무시무시한 숙취에 시달렸다. 안주도 없이 한없이 술을 들이켰으니 예정된 결과였다. 

자유 시간이 되어도 오소마츠와 친구들은 반친구들에게 ‘좀비’라고 불릴 정도로 흐물거렸고, 카라마츠는 여행 내내 오소마츠를 무시했다. 

구토까지 할 정도로 술에 빠져 속을 버려놓았으니 카라마츠가 화내는 것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친구들은 카라마츠가 그렇게 진심으로 화내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오소마츠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 오소마츠가 힘들어하면 부축은 했지만 대화는 일절 나누지 않았다. 

오소마츠가 옆에 가면 자리를 피하고, 말도 걸지 않고, 노골적으로 오소마츠를 비난하는 눈으로 노려보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친구들은 그를 말리려는 시도도 하지 못했다. 

조용하던 이가 화나면 더 무섭다고 누가 그랬던가. 

친구들은 카라마츠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고, 오소마츠 역시 평소와 달리 카라마츠에게 쉬이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상태로 자유 여행이 끼어있는 둘째 날, 집에 돌아가는 셋째 날을 보내자니 같은 조에 속한 친구들은 카라마츠와 오소마츠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공항까지 이어졌던 답답한 분위기를 떠올린 친구들이 하나같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짜 그 때 숨 막혔다.”

“오소마츠 너가 제대로 사과를 안 하니까 그렇지.”

“술 좀 마셨다고 화 내는 카라마츠가 너무하지!?”

“아니, 너 그때 엄청 퍼마셨으니까.”

“나, 그 날 이후로 카라마츠한테 엄청 째려봐졌다….”

“술 가져온 거 윳치잖아. 만악의 근원이었지, 너가.”

“그렇다고 그렇게 째려봐? 눈빛으로 살해당하는 줄 알았다, 야.”

“그렇게 화 내는 거 봤을 때, 솔직히 카라마츠가 ‘형’ 같았어.”

“하, 하아!?”

친구의 입에서 흘려나온 말에 오소마츠가 발끈해 외치자 옆에 앉은 유우지(윳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소마츠, 너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 벌써 취했어?”

“설마~. 오소마츠 은근 술 세잖아.”

“근데 정말 빨간데?”

엄연히 자신이 카라마츠의 ‘형’이라는 것을 어필하려던 오소마츠가 친구들의 지적에 뜨거운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주저앉았다.


“아님 상태 안 좋아?”

오소마츠를 향해 고개를 기울인 친구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젓기도 전에 낮은 목소리가 떠들썩한 공기를 뚫고 오소마츠 옆에 가라앉았다.


“오소마츠.”

오소마츠를 걱정해 뻗은 유우지의 손을 막아내듯, 오소마츠와 유우지 사이에 남아있던 좁은 틈에 엉덩이를 끼워넣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빤히 바라보았다.


“술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닌가?”

걱정스럽게 오소마츠와 눈을 맞추고 물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붉은 뺨에 손바닥올 갖다 대었다. 

부드러운 볼에서 미약하게 전해져오는 열기에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흘끗 제 옆에 앉은 유우지를 흘겨보았다. 

드물게 술을 마셔 체온이 높아진 카라마츠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와 볼에 맞닿은 카라마츠의 거칠고 마른 손바닥의 감촉에 오소마츠는 더욱 더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휘저어 카라마츠의 손을 털어냈다. 

따끈한 볼에서 떨어져 허공에 떠 있는 자신의 손에 험악하게 눈썹을 찡그린 카라마츠가 눈을 돌려 유우지를 본격적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많이 마신 건가?”

“아니, 많이 안 마셨어! 오소마츠 볼이 빨간 건 술 때문이 아니라구! 나 그만 노려봐~~!!”

카라마츠의 추궁에 유우지가 손사래를 치며 억울하단 얼굴로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친구들은 테이블 옆에 세워진 빈 병을 눈짓하며 유우지의 말에 동의했다. 

빈 맥주병은 겨우 3병. 오소마츠의 주량에 한참 못 미치는 양이었다. 

카라마츠는 미심쩍은 눈으로 빈 병을 보고 한숨과 함께 오소마츠 어깨에 팔을 감았다.


“먼저 돌아가야 할 것 같군. 다음에 또 보자, 프렌즈-!”

“그래그래~, 조심히 가.”

“잘 가~.”

붉은 얼굴을 숨기려 고개 숙인 오소마츠와 함께 일어난 카라마츠가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모아 눈가에서 튕기며 인사했다. 

변하지 않은 안쓰러운 언동에 친구들 모두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를 배웅했다.






5.


오소마츠의 팔은 자신의 어깨에 올리고 자신의 팔은 오소마츠 허리에 감은 카라마츠가 어두운 길목에 비친 빛을 등지고 섰다.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그 속에 담긴 떠들썩한 인파의 말소리처럼 따뜻했다. 

격자 모양으로 나눠진 빛에 길게 드리운 두 사람의 그림자를 밟고 서서 오소마츠를 가만히 바라본 카라마츠가 말없이 허리를 구부렸다.


“업혀라.”

“어? 나 그 정도로 취하지 않았어.”

“그래도 일단 업혀라.”

“괜찮은데…….”

막무가내로 업히라 재촉하는 카라마츠의 고집에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적이고 그 등에 올라탔다. 

자신과 같은 온도의 체온이 전해지는 등에 몸을 의지한 오소마츠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한 카라마츠의 어깨에 볼을 비볐다.


“카라마츄우~.”

“응? 뭔가.”

후헤헤—, 하고 잘은 웃음을 흘리는 오소마츠를 따라 카라마츠도 입꼬리를 올렸다. 

조금 전까지 차가운 눈초리로 동창 친구들을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눈빛과 음성으로 오소마츠를 감싼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좋아해.”

수줍은 듯, 작게 귓가에 들릴락 말락한 가녀린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빙긋- 웃었다. 

자신의 등에 숨은 오소마츠의 얼굴은 분명 딸기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을 것이다. 

훗, 하고 새어나오는 행복한 웃음을 참지 못한 채로 카라마츠도 오소마츠에게 얼굴을 돌려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도 좋아한다, 오소마츠.”

꿀처럼 달콤하게 닿은 대답에 오소마츠는 만족한 듯이 “히힛.” 하고 웃으며 카라마츠의 목에 팔을 감았다.





동창들은 알지 못하는 둘 만의 비밀이 있다. 

수학 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왔을 때, 아직도 오소마츠와 말을 나누지 않는 카라마츠를 친구들은 피했다. 

친구들 무리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묵묵히 짐을 지키는 카라마츠에게 먼저 다가간 것은 오소마츠였다.


“카라마츠, 미안하다니까…. 그렇게 많이 마실 생각은 아니었다구…. 조금만 마실려고 했어, 정말로.”

항상 자랑하던 장난스럽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싹 지운 진지한 얼굴로 건넨 사과가 통했는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와 눈을 맞췄다. 

드디어 자신을 봐 준 카라마츠에 기쁜 기분을 드러내며 멋쩍은 웃음을 지은 오소마츠가 다시 한 번 카라마츠에게 사과했다.


“미안….”

“…하아—.”

비수처럼 날아오는 한숨에 오소마츠가 깊이 고개 숙였다. 

무슨 말이 날아올지 몰라 두려워 잘게 몸을 떠는 오소마츠에게 다가온 것은 뜻밖에도 다정한 카라마츠의 손이었다. 

오소마츠의 머리 위에 조심스럽게 얹어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카라마츠의 손길에 오소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 들었다.


“카라마츠…?”

“나야말로 화내서 미안했다. 형님이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건 처음 봤으니까, 당황해서…. 그리고 그렇게 될 때까지 술을 마신 것에는 솔직히 화났었다. 하필 내가 없을 때 그렇게 마신 것도….”

“우, 우응….”

예상하지 못했던 말들에 오소마츠는 얼떨떨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것은 현실인가?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머리 한쪽에서 혼란스러운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오소마츠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의 얼굴은 ‘동생’인 그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괴롭게 찌푸린 눈썹과 눈가에 희미하게 맺힌 붉은 기운과 무언가를 망설이는 입술은, 오소마츠가 처음 보는 표정을 만들었다.


“카라, 마츠?”

“너무…, 몸을 함부로 하는 일은 하지 말아줬으면 해. 좋아하니까, 걱정된다…. 그러니까,”

“…………헤?”

조심히 카라마츠의 이름을 부르자, 카라마츠가 입에 머금고 있던 말을 꺼냈다. 

그 안에 담긴 마음에 오소마츠는 멍청한 되물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줄곧 오소마츠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것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것이었다.


“형님을, 오소마츠를 좋아하니까…. 너무 무모한 일은 하지 말아줘.”

다시금 되새기듯 전한 말에 오소마츠는 숨 쉬는 것도 잊을 뻔 했다. 

달아오르는 얼굴의 열기는 오소마츠의 머리까지 침식해 들어와 이성을 꽁꽁 얽어맸다. 

그것은, 그 말은, 오소마츠가 줄곧 카라마츠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로,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 술기운을 빌리려 했던 말이었으니까. 

오소마츠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고 뜨거워진 눈시울을 숨기려 눈을 깜빡이며 고개 숙였다.


“미안, 미안하다…, 형님. 기분 나쁜 말을 해서.”

카라마츠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오소마츠에게 사과하며 자리를 떠나려 했다. 

하지만 떨리는 오소마츠의 손이 카라마츠의 옷깃을 붙잡은 탓에 떠날 수 없었다.

“오소마츠…?”

‘형’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엔 불안감과 아주아주 작은 기대가 담겨 있었다.

고개를 들어올린 오소마츠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 나올 것 같은 눈동자에 카라마츠를 담고 씨익- 웃었다. 

울음을 참느라 빨개진 코끝을 버릇처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기쁘게 웃은 오소마츠가 금고에 소중히 숨겨둔 말을 전했다.


“나도, 좋아해.”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어서 술의 힘을 빌리려다 실패하고 만 그 말을.





* 정말 오랜만에 올린 글이네요ㅎ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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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라오소 전력 60분에 참여한 글입니다.

 

 * 행사 후 지쳐 잠들어서 올릴 시간이 훨씬 지나버렸습니다만, 그래도 일단은 올려요ㅎㅎ

 

 * 카라오소...?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버~~."

눅눅한 다다미 바닥에 늘어져 인상쓰며 몸을 뒤집은 오소마츠가 한탄하며 천장에 달린 에어컨을 응시했다. 

기록적인 더위라는 무더운 여름. 종일 틀어놓은 오래된 에어컨이 기어이 망가지고 말았다. 

여름이라는 계절 특성상 수리기사가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지 않았다. 

경마와 파칭코로 용돈을 모두 탕진한 오소마츠를 제외한 동생들은 모두 시원한 장소를 찾아 집을 나갔다.

찌는 듯한 더위는 선풍기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다. 붉은 반팔과 짧은 반바지는 이미 땀으로 푹 젖었다. 

끈적거리는 피부에 달라붙은 젖은 공기에 오소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더운 숨을 내쉬었다.

더위로 지친 몸을 움직일 기운도 없이 끙끙대던 오소마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카라마츠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나간 거 아니었어?"

"훗, 썬샤인의 질투가 오늘따라 짙더군."

"아니, 시원한 데 찾아서 나간 거 아니었냐구~."

"아쉽게도 어제 새 선글라스를 사서 돈이 없다."

"왜 나간 거야...."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리는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황당한 숨을 내쉬고 제 앞에 앉는 카라마츠를 따라 시선을 내렸다. 

보기에도 숨이 막히는 가죽 자켓을 벗어던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거실 테이블에 기대 앉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향해있는 선풍기 목을 돌렸다.

 

"아! 나 쓰고 있다구!"

"사랑스러운 동생에게 조금정도는 양보해라."

"누가 사랑스러운 동생이냣!!"

자기 쪽으로 방향을 고정하고 선풍기를 쐬던 카라마츠에게 버럭 외친 오소마츠가 가만히 카라마츠가 입은 민소매 셔츠를 보더니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너 그거 뭐야~!! 왜 자기 얼굴 붙어있는데~!!"

이치마츠가 '빌어먹을 탱크탑'이라고 이름붙인 하늘색 민소매 셔츠를 입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웃음에 고개를 기울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냐는 순진한 얼굴로 저를 보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더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고 구른 오소마츠가 지친 숨을 내쉬며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아--, 더우니까 웃는 것도 힘들어. 선풍기 이쪽으로 돌리라고!!"

"싫다."

"이씨!!"

단호하게 대답하고 선풍기 바람을 온몸으로 쐬는 카라마츠를 노려본 오소마츠가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켜 카라마츠 옆에 앉았다. 

나란히 앉아서 선풍기 바람을 쐬어도 더운 공기를 머금은 선풍기는 뜨끈한 공기만 뱉어내고 있었다.

 

"진짜 덥다아~~, 더브워~~~~!"

"오소마츠, '덥다 덥다'하지 마라."

"왜? 더 더워진다고 하게?"

"아니, 시끄럽다."

"우씨-, 너 왜 나한테는 그렇게 쌀쌀맞은데! 다른 녀석들이 덥다고 하면 바로 부채 대령하는 주제에!"

"하아~~."

"왜 거기서 니가 지치는데!!"

철없는 소리를 하는 아이를 보는 것처럼 질렸다는 얼굴을 돌려버린 카라마츠가 옆에서 떽떽거리는 오소마츠를 무시하고 거울을 들어올렸다. 

 

"카랴마츄~."

"...."

"카랴마츄우~~."

"...."

"카라마츙, 카라마츠, 카라마츠우~."

"...."

"카랏 카랏 카라맛츙-! 카랏츙!"

"...뭔가."

거울에 집중한 카라마츠 어깨에 턱을 올리고 한결같이 카라마츠를 연호하는 오소마츠를 더는 무시할 수 없었던 카라마츠가 할 수 없이 대답했다. 

오소마츠는 자기가 이겼다는 얼굴로 씩- 웃고는 "더워." 하고 한 단어를 덧붙였다.

 

"하아~~~."

"한숨 쉬는 건 너무하지 않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크디 큰 한숨을 쉬는 카라마츠에게 투덜거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서 떨어져 바닥에 누웠다. 

끈적이는 피부가 다다미에 달라붙었다가 오소마츠가 자세를 바꿀 때마다 쩌억- 하고 떨어졌다. 

더운 공기는 체온보다 더 뜨거웠고, 방 안은 꼭 가마솥 같았다. 

더위에 완패하고 "으어~~." 하고 신음을 흘리며 죽어가던 오소마츠가 불쑥 떠오른 생각에 활짝 웃으며 벌떡 일어났다.

 

"맞아!!"

"우왓, 깜짝이야...."

갑자기 일어난 오소마츠에 놀란 카라마츠가 어깨를 움찔였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지나쳐 2층으로 오르더니 천장을 울리는 소음을 만들어냈다. 

윗층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음에 공사라도 하는 것이냐며 눈살을 찌푸린 카라마츠가 다시 거울에 시선을 돌렸을 때, 계단을 쿵쾅쿵쾅 뛰어 내려오는 오소마츠의 발소리가 다가왔다.

 

"짜잔~~!!"

"오소마츠, 설마...."

"후후후, 그 설마다!"

"OH..., 지-져스."

흐물흐물한 고무 풀장을 들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만면에 띄운 오소마츠가 거실에 공기 펌프를 내려놓았다.

재빠르게 고무 풀장과 펌프를 연결하고 펌프를 발로 밟아 공기를 넣기 시작한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기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두 사람만 있는 거실에 푸숙푸숙, 펌프를 밟는 소리가 일정하게 울리더니 곧 멈췄다.

 

"힘들어!! 카라마츠, 이것 좀 해줘-. 해준 다고? 고마워~~~."

"한다고 대답도 안 했는데?!"

일방적으로 말하고 엉덩이를 내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손짓했다. 

해맑게 웃으며 "이런 거 부탁할 사람이 카라마츠 밖에 없잖아~~." 하고 말하는데 카라마츠로서는 안 해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훗, 할 수 없군." 하고 멋지게 앞머리를 넘기며 일어난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 이어 펌프를 밟는 동안 오소마츠는 그세 자기쪽으로 돌려놓은 선풍기를 쬐었다. 

펌프 소리에 맞춰서 점점 부풀어오르던 풀장이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카라마츠가 땀에 흠뻑 젖어 지쳐 쓰려지고나서야 풀장이 완전히 부풀었다. 

카라마츠에게 짧은 감사 인사를 건넨 오소마츠가 신나서 풀장을 뒷마당에 던졌다. 

주방 싱크대에 기다란 호스를 연결해 뒷마당까지 뺀 오소마츠가 풀장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육둥이가 아직 어릴 적 사용한 풀장은 구멍난 곳 없이 훌륭하게 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성인 한 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풀장에 물이 금방 차올랐다. 

집을둘러싼 빌딩이 만드는 그늘 아래 물이 찰랑이는 풀장을 행복하게 바라본 오소마츠가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으엑.... 옷이 땀으로 축축해.... 갈아입을 거 없는데."

더위에 뒹굴고 펌프를 밟고 풀장에 물을 채우느라 분주히 움직인 오소마츠가 빨간 반팔을 벗어던졌다.

땀으로 진득해진 티셔츠를 쓰레기처럼 손가락을 집어올려 빨래 바구니에 던지고 돌아온 오소마츠가 그대로 풀장에 들어가려고 하자 카라마츠가 다급히 오소마츠를 불러세웠다.

 

"웨잇!! 웨이트다, 오소마츠!!"

"뭐야~?"

"이걸 입으면 된다!"

"하아?!"

귀찮다는 듯이 대답한 오소마츠가 이어진 카라마츠 말에 멍청히 반문하며 그 손에 들린 민소매 셔츠를 응시했다.

 

"내가 왜 그 빌어먹을 탱크탑을 입어야하는데-."

"빌?! 흠흠, 잘 들어라-, 오소마츠. 이렇게 선샤인이 따가운 날에 무방비로 살을 내놓는 것은 옳지 않다."

"하? 별로 상관 없잖아-. 어차피 그늘이고."

"논논, 오소마~~츠? 잔말말고 입는 거다-. 자, 자."

"엑?! 그 얼굴 뭐야! 웃기니까 그만해~~!"

"응~? 오소뫄~츠?"

"크학학학, 알겠어! 입을게! 입을 테니까!!"

부담스럽게 눈을 반짝이며 웃지않고는 배길 수 없는 얼굴로 다가오는 카라마츠를 간신히 밀어낸 오소마츠가 민소매 셔츠를 걸쳤다. 

윙크하는 카라마츠 얼굴이 프린트된 셔츠에 갈비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느끼며 한숨을 쉰 오소마츠가 자신을 응시하는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이걸로 만족?"

"아-. 퍼펙트다!"

"나-참."

엄지를 척! 하니 들어올리고 이를 드러낸 시원한 미소를 보낸 카라마츠가 풀장에 잠기는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새록새록 피어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성인 남성이 어린이 풀장에 들어가있는 광경이 섞여 기묘한 위화감을 불러왔다.

 

"설마 그 나이에 거기에 들어갈 줄은 몰랐다."

"시원하다구~."

황망히 중얼거리는 카라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작은 고무 풀장에 몸을 집어넣고, 푹 잠기도도록 엉덩이를 내린 오소마츠가 "흐아~, 천국이다." 하고 감탄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빌딩으로 좁아진 하늘은 억울할 정도로 푸르렀다. 

물을 참방이며 더위가 한결가신 것을 노래한 오소마츠가 풀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카라마츠와 눈을 맞췄다.

 

"카라마츄도 들어올래? 횽아가 특별 서비스해주지!"

"엩. 아, 아니.... 괜찮다."

"어? 왜? 시원하다구~."

"아무리 그래도 성인 남성이 들어가기엔 좀...."

쓸데없이 겉멋이 든 카라마츠가 고개를 젓자 어깨를 으쓱 올린 오소마츠가 "그래라, 그럼-." 하고 넘기고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한량처럼 옷을 입은 채 느긋하게 어린이 고무 풀장에 들어가있는 오소마츠의 모습은 그야말로 현실감각을 잃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체면이나 남이 보는 시선따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오소마츠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린 카라마츠가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주방으로 향했다. 

유리컵 2개에 냉동고에서 꺼낸 얼음을 넣고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힌 보리차를 따른 카라마츠가 작게 콧노래를 불렀다. 

날씨가 더운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오소마츠가 풀장에 들어가있는 걸 보니 어쩐지 덜 덥게 느껴졌다. 

조금 변덕을 부려서 오소마츠와 함께 들어가도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현관문이 열리고 씩씩한 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머슬!!"

"...다녀왔습니다."

"응~? 아!! 풀장이다!!"

"엑. 진심이냐, 개똥마츠... 아무리 덥다고 해도 어린이 풀장에...? 제정신?"

훤히 열린 툇마루 문과 거실 문 덕분에 현관에서도 뒷마당이 잘 보였다. 

함께 귀가한 쥬시마츠와 이치마츠가 뒷마당에서 멱을 감고 있는 (카라마츠의 민소매 셔츠를 입은) 오소마츠를 보며 눈을 흘겼다.

 

"아하하-! 카라마츠 형아, 아웃!"

"성인이 어린이 풀장이라.... 히히힛,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대박이겠군."

카라마츠처럼 오소마츠의 모습에 질겁하며 비꼬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반응은 정상이었다. 

같은 육둥이 얼굴이니 오소마츠를 카라마츠로 오해하는 것도.

 

"응~? 웰컴, 브라더-. 함께 들어올 건가? 베리 쿨-이다!! 여기에 와인이 없는 것이 새드할 정도다!"

"진짜냐...."

"아하하하하하!! 카라마츠 형아, 갈 때까지 갔구만유!"

"어이, 개똥마츠. 더위 먹었으면 병원에 가라고."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말에 풀장에 앉아있던 오소마츠가 속으로 악마같은 웃음을 피웠다. 

오소마츠에게 형제, 특히 카라마츠의 흉내를 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진심으로 질린다는 얼굴과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올 것을 꾹- 참고 오소마츠가 말을 이었다.

 

"논논, 이치마~츠? 이 더위다! 위대한 더 썬이 카라마츠님을 질투해 내린 이 배드럭(bad luck)에도 나는 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겠나-? 오케이~?"

"쥬시마츠, 정신병원 전화번호 좀 불러봐."

무표정이 되어서 침착하게 쥬시마츠를 부르고, 전화번호부를 훝어보며 정신병원 전화번호를 찾는 쥬시마츠 모습에 웃음을 참다 못해 위장이 꼬이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푹 숙이자, 이치마츠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개똥마츠. 너 진짜 어디 아프냐? 병원 데려다줘?"

평소보다 한결 상냥해진 이치마츠 태도에 더는 참지 못하고 빵 웃음을 터뜨린 오소마츠가 발까지 구르며 박장대소 하는 동안 주방에서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카라마츠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오소뫄~~~아~~츠?!!"

"크하하하하하핫!!! 배!! 배가, 아파아~~!! 웃음이 안 멈, 춰서~!!!"

갑자기 실성한 것처럼 웃음을 터뜨린 (카라마츠로 보이는) 오소마츠와 거실로 달려와 맨발로 뒷마당에 나가서 오소마츠를 흔드는 카라마츠 모습에 얼이 빠진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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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둥이 생일 축전!


 * 육둥이 생일 축하로 지금까지 연재한 장편 (Red Tear 제외) 외전을 하나씩 올리려고 합니다^^

  첫 스타트는 여우골이야기 외전이에요^^


 * 타비마츠에 나왔던 너구리 육둥이가 나옵니다.


 * 공미포  15,033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콰르릉, 쿠드득….


흔들리는 지면에 길거리에 세워진 입간판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요동치는 집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무리를 지었다. 

여우골을 강타한 지진으로 땅과 집, 빌딩이 넘실대는 강진에 여우 신사에 올려진 기와도 스륵 지붕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낡은 신사가 혹시나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얼굴로 전전긍긍하며 붉은 토리이 앞에 선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쵸로마츠의 불안한 눈빛을 뒤에 지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오소마츠가 토지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짜내 지맥에 흘려 넣었다. 

강진에도 무너지거나 내려앉지 않도록 지반을 강하게 지탱한 오소마츠가 수 초에 걸쳐 여우골을 덮친 지진을 이겨냈다. 

땅이 흔들리는 것은 완전히 막을 수 없었지만, 기록적인 강진에도 여우골의 피해는 다른 마을보다 눈에 띄게 적었다. 

지진이 지나가고 다소 상처는 입었지만 무사한 여우골을 내려다본 오소마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저를 향해 달려오는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의 외침을 뒤로 하고 구름 하나 없는 푸른 하늘에서 내려오는 검은 날개가 흐려지는 시야에 맺혔다.






2.


“그래서 오소마츠가 이렇게 된 거야?”

고개를 기울이고 묻는 ‘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작아진 몸을 제 품에 쏙 껴안고 툇마루에 앉아 발을 동동 굴리던 신이 머리 위에 쫑긋 솟은 보들보들한 귀를 매만졌다.


“오소마츠가 작아지니까 동생 같아!”

눈을 반짝이는 신의 말에 쓴웃음을 흘리고 꼬리를 살랑였다. 

큰 지진을 막으려고 온 힘을 쏟아부은 결과, 몸이 작아졌다. 

꼬리는 여전히 4개이지만 몸집은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와 같다. 

꼬리도 귀도 제대로 숨길 수 없고, 여우 모습이 되는 것도 무리. 신력(神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짜낼 힘도 없다는 게 바로 지금의 상태다. 

어휴~, 한숨을 쉬고 내 꼬리와 귀를 만지작거리는 신의 무릎에서 펄쩍 뛰어 내렸다. 


“아…, 신페이. 오늘도 놀러왔어?”

“쵸로~! 안녕!”

“‘쵸로마츠’라고 제대로 불러! 욘석아!!”

“헤헤~.”

신사에서 나온 쵸로마츠를 향해 손을 흔든 신이 쵸로마츠의 잔소리에 멋쩍게 웃었다. 

살갑게 웃으며 쵸로마츠의 잔소리를 어영부영 넘기는 신에게서 눈을 돌려 마을 곳곳에 부서진 부분을 고치는 인간들을 내려다보았다. 

피해가 크지 않은 것은 정말 천만다행이지만…. 

힘을 쓸 수 없으니 불편한 것도 많고, 답답하다. 

빨리 힘이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얌전히 쉬는 것 밖에는 방도가 없으니….


“오소마츠.”

끙-, 골머리를 앓는 와중에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다가왔다.


“카라마츄~! 오늘 일은 끝?”

“아—. 몸 상태는 어떤가?”

“힘이 좀 없어진 것 빼면 멀쩡하다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구~.”

남자다운 눈썹을 늘어뜨리고 근심가득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카라마츠에게 별 문제 아니라는 얼굴로 웃어보이며 코 밑을 문질렀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네 신혼집이 조금 내려앉아서 말이야. 도와준다고 그쪽으로 갔다.”

“헤—.”

일하기 싫어하는 그 이치마츠가 쥬시마츠의 집수리를 도우러 갔다니…. 

기특한 녀석. 

나중에 돌아오면 쓰담쓰담 100번이다! 

홀로 다짐하고 끄덕거리자 어느새 코앞까지 걸어온 카라마츠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우왓!? 뭐, 뭐야…?”

“아니…, 뭔가…. 작구나 싶어서.”

“하!?”

의미심장하게 말을 흐리는 카라마츠를 인상을 팍 쓰고 노려보자 쵸로마츠와 실랑이를 끝낸 신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카라마츠! 오소마츠 놀리지 마!!”

정말로 내가 자기 동생이라고 생각하는지, 평소엔 카라마츠 앞에서 큰 소리도 내지 못하던 신이 당당하게 외치는 모습에 묘한 감동이 스며들어왔다. 

찡- 하고 울리는 심장에 귀를 까닥이자 카라마츠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나를 내려놓았다.

아아—, 삐졌구만.

토라진 얼굴로 홱 고개를 돌리고 쵸로마츠에게 걸어가는 카라마츠의 등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소마츠?” 하고 부르는 신에게 활짝 웃어주었다.


“신~,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야~.”

해가 산너머로 잠자러 들어가는 하늘을 보며 신에게 말했다.


“아…. 더 있고 싶은데-.”

“안 돼~. 그럼 토-루가 걱정한다구~?”

“아빠는 오소마츠랑 같이 있으면 늦게 들어가도 뭐라 안 하는 걸!”

“그래도~. 어제 지진이 있었으니까 걱정할거야.”

“웅….”

볼을 부풀리고 아쉬운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면서 기죽은 강아지처럼 쳐다보는 신의 머리를 발꿈치 들어 쓰다듬어 주고 통통 등을 두드려주었다.


“또 놀러 와!”

“응….”

지진으로 깨진 돌계단을 조심히 내려가라고 충고하고, 풀죽은 신이 터벅터벅 신사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배웅하고 몸을 돌렸다. 



묘하게 어두운 다다미 방에 들어가 털썩 방석에 엉덩이를 내리자마자 쵸로마츠가 불쑥 얼굴을 내밀고 또 득달같이 잔소리를 시작했다.


“쉬고 와.”

“에~~~?”

무표정으로 눈도 반쯤 뜨고 차갑게 내뱉는 쵸로마츠의 말에 눈썹을 찌푸리자 옆에 앉아있던 카라마츠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토도마츠는 (언제 만든 것인지 모를) 스마트폰을 툭툭 두드리며 “어디어디가 요양하는 데 좋데~.” 하고 옆에서 은근슬쩍 쵸로마츠를 지원했다. 

1대 3. 

비장의 수단을 쓸 때다! 

몸집과 함께 짧고 뭉툭해진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귀까지 뒤로 돌려 눈을 반짝이며 쵸로마츠를 응시했다.


“그치만~ 내가 없으면 마을은? 내가 일 못하면 체리마츠나 카라마츠한테 부담되잖아~.”

“누가 체리마츠냣!! 그리고 어차피 오소마츠 형은 별로 일 안 했잖아. 오소마츠 형이 없어도 충~~분히 괜찮으니까 내빼지 마!”

토토코에게 전수 받은 필살 애교 얼굴을 했지만 쵸로마츠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발끈해서 뭐라뭐라 잔소리를 늘어놓는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귀를 덮고 몸을 돌렸다.


“우—. 카, 카라마츠는?!”

작전을 바꿔 이번엔 카라마츠를 올려다보았다. 

이 각도에서 카라마츠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아래에서 보는 신선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꼬리를 너울댔다.


“카라마츄~~. 내가 없으면 카라마츠도 바빠지잖아~? 그, 그리고 내가 멀리 가면 카라마츠랑도 떨어지고!!”

일부러 눈을 덜 깜빡여 눈물이 나와 눈이 반짝이도록 하고, 카라마츠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나와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던 카라마츠가 하는 수 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움찔, 어깨를 떤 카라마츠가 흐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시선을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조금은 쉬다 오는 게 좋지 않겠나? 토도마츠가 추천한 곳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소마츠 혼자 가는 것이 싫다면 나도 함께 가겠다.”

“싫어.”

“엩.”

나도 모르게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카라마츠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눈을 깜빡였다.


이 바보카라마츠!! 

눈치를 좀 키우라고—! 

여기선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해야 하잖아~! 

이야기의 흐름—!!


“왜 싫은데.”

카라마츠에게서 등돌린 나를 보며 어이없다는 얼굴을 한 쵸로마츠가 물었다. 

왠지 뚱한 기분이 들어서 무릎을 세워 껴안고 고개를 돌렸다.


“…여기는 내 마을이잖아.”

작게 씹은 말에 카라마츠가 싱긋- 웃으며 눈썹을 내렸다.


“잠깐 떠나는 정도는 괜찮을 거다. 불안하면 토토코에게 잠시만 마을을 봐달라고 부탁하는 게 어떻겠나?”

“…토토코한테…?”

“오소마츠가 빨리 힘을 회복해야 이 마을도 다시 오소마츠의 힘을 받아 활기차질 테니까. 나는 오소마츠를 닮은 이 마을이 좋다.”

“….”

카라마츠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내려온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몸집이 작아진 탓에 더 크게 느껴지는 카라마츠의 손이 상냥하게 귀를 어루만지고, 느긋하게 아래로 내려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함께 쉬다 오지 않겠나?”

“….”

어깨를 안은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손을 더 내려 내 허리를 감싸고 들어올린 카라마츠가 조심스럽게 자기 무릎 위에 나를 앉혔다. 

빙긋- 나긋나긋한 미소로 묻는 카라마츠에게 더는 싫다고 할 수 없었다. 

푹-,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카라마츠는 물론이고 쵸로마츠와 토도마츠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토도마츠는 환해진 얼굴로 쉬고 오기 좋다는 곳을 추천하고 쵸로마츠는 내가 없는 동안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말라는 둥 푹 쉬고 오라는 둥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무릎에 얌전히 앉아있는 나를 팔 안에 가두고 은은한 미소와 함께 (뭐가 즐거운지) 작게 콧노래를 불렀다.






3.


휴양을 가기로 결정되고 속전속결로 준비를 한 쵸로마츠와 토도마츠 덕분에 3일 후 우리는 신사를 떠나게 되었다.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신사에 온 치비타와 쇼도 2, 3일 카라마츠가 없어도 괜찮다며 오히려 푹 쉬고 오라고 우리 등을 떠밀었다.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쥬시마츠 부부와 토도마츠, 그리고 신의 배웅까지 받았지만, 나와 카라마츠가 함께 떠나는만큼 마을을 그냥 놔두는 것은 불안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카라마츠가 미리 토토코에게 연락을 넣어두었고, 우리를 배웅하러 신사에 들린 토토코에게 잠시 마을을 부탁했다. 

올 때 반드시 기념품을 사오라는 토토코에게 마을을 맡기고 향한 곳은 신과 요괴들이 많이 찾는다는 유명한 여관(료칸). 

사시사철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있는 영산(靈山)에 자리한 여관은 오래 머물면 이무기가 용(龍)이 될 정도로 정기가 가득한 곳으로 유명했다. 

인간은 닿을 수 없는 깊고 깊은 숲 속에 숨겨진 작은 여관에 도착해 정문에 서자, 짙은 홍색의 기모노에 단풍 무늬가 새겨진 회색 하오리를 입은 지배인이 잰걸음으로 나왔다. 


“너구리 여관에 어서오세요! 예약하신 ‘카라마츠’님 이신가요?”

머리 위에 솟은 둥근 갈색 귀와 통통한 줄무늬 꼬리를 흔들며 생글 웃는 지배인의 머리 위에 올려진 녹색 나뭇잎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흔들렸다. 

위태롭게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나뭇잎에 시선을 고정하고 멍청히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카라마츠가 지배인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짐 들어드리겠습니다.”

빵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지배인이 앞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프런트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경쾌하게 달려와 카라마츠가 들고 있던 짐을 건네 받았다. 

노란 셔츠에 검은 넥타이, 그 위에 단풍 무늬가 새겨진 핫피를 입고 아래는 정장 반바지라는 특이한 옷차림을 한 점원이 햇살처럼 빵긋 웃으며 나와 눈을 맞췄다.


“201호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돌려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영업 미소를 띄운 지배인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여관은 오래된 목조 건물로 밖에서 볼 때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내부는 정말 넓었다. 

먼지 하나 없는 바닥과 얼룩 없는 옅은 황색의 벽은 큰 장식 하나 없어도 내가 세련되었다고 느낄 정도로 정연했다. 

게다가 향긋한 나무 냄새가 여관 안을 은근히 흘러다니는 바람에 실려 피부를 간질였다. 

속으로 감탄하며 스쳐 지나가는 여관의 직원이나 저 멀리 보이는 정원에 멍청히 시선을 두었다가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카라마츠가 저 멀리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몸이 작아진 덕분에 카라마츠가 한 발 앞으로 걸어갈 때, 두 발 아니 세 발을 바쁘게 내딛지 않으면 나란히 걷지 못하고 뒤쳐졌다. 

뱁새처럼 종종 빠르게 걷는 것이 익숙치 않아 뚱한 기분에 볼을 부풀리자, 내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뒤로 돌린 카라마츠가 훗, 하고 웃더니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카라마츠…. 나는 어린애가 아니라구!”

영락없는 애 취급에 화를 내며 따져도 카라마츠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그렇군.” 하고 적당히 대꾸할 뿐이었다. 

게다가 그런 우리를 지배인은 자애로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창피해서 내려달라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카라마츠는 나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를 꼭 안아든 채로 지배인의 뒤를 따라 방으로 향하는 카라마츠를 향해 다 들리라고 크게 한숨을 내쉬고 몸의 힘을 뺐다.



빨간 단풍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이 훤히 보이는 큰 창을 가진 방에 우리를 안내한 지배인이 식사 시간과 간략한 여관 수칙을 전했다. 

토도마츠가 예약했다는 방은 한눈에 보아도 고급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카라마츠가 나를 내려놓자마자 방석에 앉아 늘어진 나를 보며 지배인이 작은 미소를 피우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시길. 어린 신부님도요.”

“헤?”

“풋,”

“저녁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으니 온천을 한 번 즐기고 오세요. 그럼 편히 쉬세요.”

지배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바보같은 소리를 내자, 카라마츠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얼굴까지 돌려 터진 웃음을 숨겼다. 

벙쪄서 반박도 하지 못하는 나와 어깨까지 떨며 웃고 있는 카라마츠에게 환한 미소를 보낸 지배인이 예의 가득한 조신한 몸짓으로 방문을 열고 나갔다.


“…….”

“…오, 소마츠.”

한참을 웃고 나서야 헛기침으로 목을 다듬은 카라마츠가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내가 더 연상인데!! 훨——씬, 훨씬 더 연상인데!!!”

분노로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벌떡 일어나 외쳤지만 카라마츠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천천히 나를 달랬다.


“지금 모습이니까 그렇게 착각한 걸거다. 화내지 말고 모처럼 여관에 왔으니 온천에 들어가자.”

“그건 알지만 말이야~~!”

분한 건 분한 거다. 

겨우 몇 백년 산 카라마츠와 달리 나는 천년을 넘게 산 천호! 

절대적으로 내가 더 오래 살았고, 더 지혜롭고, 더 멋지잖아?! 

아무리 이 모습이 되었다지만 말이야!! 

힘을 잃은 덕분에 내가 카라마츠보다 어리게 보인다는 사실이 도저히 받아들여 지지 않아서 씩씩대고 있자, 눈썹을 늘어뜨리고 곤란하단 미소를 피운 카라마츠가 나를 또다시 들어올렸다.


“자—. 온천에 가자.”

“카라마츠, 네가 이렇게 자꾸 들어올리니까 그런 오해를 받잖아~~!!”

“그럴지도 모르겠군.”

“어이!”

묘하게 즐거운 얼굴을 하고 웃어넘기는 카라마츠에게 더 화를 내도 소용 없었다. 

방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저항을 포기한 나를 안은 채 탈의실에 도착한 카라마츠가 내가 무슨 유리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나를 내려놓았다.

있는 힘껏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았지만 카라마츠는 신경쓰지 않고 훌렁훌렁 옷을 벗어 앞에 놓인 바구니에 벗은 옷을 개어 넣었다. 

푹- 한숨을 내쉬고, 온천이나 만끽하자는 생각에 입고 있는 붉은 기모노의 오비를 풀었다. 

대충 오비를 접어 바구니에 넣으려고 손을 뻗은 순간 깨달았다. 


키가 작아서 손이 안 닿아아아아아아아!!!


왜 쓸데없이 바구니를 저렇게 높이 둔 거야?! 어떻게 잡으라고! 발꿈치를 들어도 안 닿아!!


끙끙대며 팔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바구니에 도저히 손이 닿지 않았다. 

간신히 손가락이 닿았지만 툭, 하고 바구니를 안쪽으로 밀어내서 상황은 더 악화…. 

슬슬 치밀어오르는 짜증에 꼬리로 바닥을 팡팡 두드리고 있자, 내 모습을 눈치챈 카라마츠가 조용히 바구니를 내려주었다.


“…….”

“오소마츠?”

“아니…. 응….”

고개를 기울이는 카라마츠에게 고개를 젓고 기모노를 벗어 바구니에 넣었다.


…도움은 필요 없었어!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필요하긴 했지만? 쫌-, 쫌 뭐랄까…, 천호의 자존심의 문제라고 할까…!

복잡하게 이리저리 뒤섞인 감정에 인상을 구긴 나를 카라마츠가 온천으로 이끌었다. 

적당히 몸을 씻고, 카라마츠와 교대로 등을 밀어주고 돌멩이로 둘러진 온천으로 들어갔다. 

먼저 “후아~~.” 하고 녹는 소리를 내며 온천에 들어간 카라마츠를 뒤따라 온천물에 발을 담그자마자 재빨리 발을 뽑았다.


“뜨거어….”

“엩. 적당하다고 생각한다만….”

뭐야 이거!? 감각까지 어린애가 된 거?! 의아한 얼굴을 한 카라마츠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모처럼 온천에 왔는데 안 들어갈 수는 없겠지…. 

카라마츠의 눈빛을 느끼며 천천히 발을 온천 속으로 넣었다. 

천~천히 넣으니까 조금 참을만 했다. 

들어가 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어깨가지 온천물 속으로 가라앉힌 순간, 또 깨달았다.


깊어어어어어어어어!!!


아무리 엉덩이를 내려도 물이 위로 위로 올라온다. 

물이 턱까지 올라온 시점에서 몸을 내리는 것을 멈췄다. 

온천 바닥에 엉덩이가 닿으면 물은 분명 내 머리 위에 있을 테니까.

 다시 슬금슬금 올라오는 짜증을 억지로 누르고 옆에 앉은 카라마츠에게 눈을 돌렸다. 

제대로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온천을 즐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물을 촥-! 끼얹었다.


“푸핫!! 무, 무슨 짓인가! 오소마츠!”

“아—, 미안~. 손이 미끄러졌네에~?”

“이…!, ……오소마츠, 왜 그렇게 어정쩡하게 있는 건가?”

우연히 딸딸마츠를 들킨 쵸로마츠가 내게 전골 국물을 끼얹으면 했던 변명을 따라하자, 화를 내려던 카라마츠가 멍청히 내게 물었다. 

그걸 이제야 눈치챘냐는 생각에 눈썹을 세우고 말했다.


“별로~? 그냥 좀 물이 깊을 뿐이야.”

“엩.”

내 말에 카라마츠가 눈을 깜빡이더니 “아….” 하고 신음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얼굴을 밝히고 물어왔다.


“저기 어린아이들 전용 탕이,”

“절대 안 가!!”

카라마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끊고 외쳤다. ‘왜?’ 라는 얼굴을 한 카라마츠를 째려보며 흥-, 고개를 돌렸다. 

이 나이에 어린애 탕이 말이 되냐구! 

아무리 몸이 작아졌다지만 속알은 여전히 천호! 

천 살이 넘은 내가 어린애 탕에 들어가야겠어!? 

씩씩, 뜨거운 콧바람을 내뿜으며 화를 식히는데 몸이 번쩍 공중으로 들렸다.


“으헤!?”

“이러면 되겠나?”

나를 들어올려 제 무릎 위에 앉힌 카라마츠가 나를 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다정한 목소리에 조금 전까지 혼자 씩씩대로 있던 것이 어쩐히 허무해져 귀를 늘어뜨리고 “웅….” 하고 작게 대답했다. 

겨우 익숙해진 뜨끈한 온천물에 어깨까지 담그고 등에 닿은 카라마츠의 체온을 즐기며 눈을 감았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따가운 눈빛에 곧 눈꺼풀을 열었다.


“카라마츄~. 너무 쳐다보는 거 아니야?”

“아……,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그만.”

“몸집이 작아진 것 뿐이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또 불필요한 과보호를 하는 카라마츠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내뱉은 말에 카라마츠가 쓴웃음을 띄웠다. 

걱정하는 게 아니면 뭔데?

눈을 깜빡이며 쳐다보니 카라마츠가 조금 붉어진 얼굴로 내 손에 깍지를 끼웠다.


“나는…, 한 번도 오소마츠의 어린 모습을 본 적 없으니까…. 이렇게나마 오소마츠의 어릴 때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것이 조금…, 기쁘, 다고나 할까….”

점점 빨개지는 카라마츠의 얼굴은 온천 때문이 아니었다. 

말을 할수록 떨리는 목소리에 중간중간 숨을 끊어가며 전하는 카라마츠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 바, 바보카라마츠!”

“어, 어쩔 수 없잖나! 내가 오소마츠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소마츠는 어른의 모습이었으니까….”

부끄러워 외친 비난에 카라마츠가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카라마츠를 지그~시 노려보며 몸을 돌려 카라마츠와 마주보고 앉아 카라마츠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렇게 말하면 나도 카라마츠의 어린 시절은 본 적 없다구! 내가 카라마츠와 처음 만났을 때, 카라마츠도 어리지 않았으니까!”

“하핫, 확실히 그렇군.”

내 말에 카라마츠가 쿡쿡, 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카라마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카라마츠의 어린 모습이 보고 싶고….


“아, 그래!”

“응?”

“카라마츠랑 꼭 닮은 자식을 낳으면 돼!”

“……응!?”

“그러면 아기 카라마츠, 어린아이 카라마츠, 소년 카라마츠를 모두 볼 수 있어!”

역시 나는 천재~!! 

기분좋게 온천물 속에서 꼬리를 남실대며 웃자, 아까보다 더 빨개진 얼굴로 카라마츠가 말을 더듬었다.


“오, 오, 오, 오소마~츠?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말하는 건가?”

“응?”

카라마츠의 말에 입을 다물고 눈을 깜빡였다. 


뜻? 

무슨 뜻? 

카라마츠랑 똑같은 아기?


응…? 응……? 응………??

으응!?!?!?


철썩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난 내 몸을 따라 온천물이 요동쳤다. 

얼굴뿐 아니라 전신이 뜨겁다. 

당황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입만 뻐끔거리는 나를 보며 카라마츠가 “겨우 깨달았나….”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다구우우~~!! 

팔을 파닥이며 외치는 나를 향해 카라마츠는 헤실-, 바보같은 웃음을 흘렸다.






4.


온천에서의 작은 오해(?)를 겪고, 상쾌한 기분으로 방에 돌아오자 지배인과 함께 진수성찬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보글보글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는 전골을 중심으로 처음 보는 음식들이 상 가득 채워졌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을 마지막으로 상에 올린 지배인이 싱긋 웃으며 음식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저희 여관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너구리 전골’ 입니다.”

“헤?! 너, 너구리?! 여기 너구리 들어간 거~?!”

지배의 말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치자 후훗, 하고 작게 웃은 지배인 대답했다.


“이름이 ‘너구리 전골’일 뿐, 다행히 너구리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졸지에 동족을 먹는 요괴로 만들어버린 내게 미소로 대답해준 지배인은 음식을 함께 나른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방을 떠났다. 

의심 하나 가지지 않고 보기좋게 속아(?) 넘어간 것이 부끄러워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자 맞은편에 앉은 카라마츠가 전골을 앞접시에 적당히 덜어 내밀었다.


“아, 고마워~. 카라마츄~!”

콧속으로 들어오는 맛있는 향기에 군침을 삼키고 접시를 받았다. 

먼저 국물을 후후- 불어서 한모금 먹자, 깊고 감칠맛이 나면서도 산뜻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햐아! 이거 진짜 맛있어!!”

카라마츠가 정성스럽게 말려주어 뽀송뽀송해진 꼬리에 맛있는 전골까지! 

행복한 마음에 전골을 쉴 새 없이 입 속으로 나르고 상 가득 차려진 음식에도 손을 대다 보니 어느새 그 많던 접시가 모두 깨끗이 비워졌다. 

불뚝 솟아난 배를 통통 두드리며 몸을 뒤로 털퍽 눕히고 꺼흑, 큰숨을 내쉬었다.


“으햐아~, 배불러~. 이제 못 움직여어~~.”

만복감과 적당하게 몸을 누르는 피로에 점점 눈을 깜빡이는 속도가 느려졌다. 

마른 다다미 바닥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기온. 나른하게 덮쳐오는 졸음에 서서히 잠으로 빠져들었다.


“오소마츠. 잘 거면 제대로 이불에 누워라.”

“우~~.”

산통을 깨는 카라마츠의 말에 몸을 옆으로 구르고 신음했다. 

지금은 움직이기 싫다구우~. 

꼬리로 탕탕 바닥을 두드리고 얼굴을 찡그린 채로 다시 잠에 빠져들려는 내게 다가오는 카라마츠의 발소리가 귀에 닿았다.


“완전히 어린애군.”

후-, 하고 내쉬는 숨소리 후에 부유감이 몸을 감쌌다. 

타박타박, 다다미 바닥을 밟고 이불로 가는 카라마츠의 발소리와 그에 맞춰 흔들리는 몸이 꼭 아기들이 자는 요람같다. 

몸이 작아지기 전과 같은, 변하지 않은 강인한 카라마츠의 팔 안에서 그대로 의식을 놓고 잠의 세계로 넘어갔다.






5.


후암~, 하고 크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온천에 들어갔다가 배부르게 먹고 푹신한 이불에서 잔 덕분에 기분은 최고! 

대충 꼬리털을 다듬고 고개를 돌리자,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카라마츠가 있었다. 

여우골에서는 일도 많고, 마을을 지키는 텐구의 수장 답게 부지런히 일어나 마을을 순찰하던 카라마츠가 나보다 더 깊이 잠에 빠져든 모습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씨익- 웃으며 장난스럽게 카라마츠 코끝에 꼬리를 살랑여보아도 코를 찡그릴 뿐 일어나지 않았다. 

바보 같은 얼굴에 훗, 하고 웃고 몸을 일으켰다.

끄으으~~, 하고 소리를 내며 다시 기지개를 켜고 준비된 유카타로 갈아입었다. 

어린아이 사이즈인 것이 슬쩍 신경을 긁었지만, 지금 몸집으로는 어쩔 수 없으니까. 

서툰 손놀림으로 오비를 묶고 실내화에 발을 끼우고 방을 나왔다. 

처음 이 여관에 왔을 때 시야 구석에 스쳤던 정원을 보고 싶었다. 

복도 저편에 보이는 정원을 향해 이리저리 꺾이고 얽힌 복도를 걷고 걸어도 정원은 나오지 않았다. 

지배인이 방을 안내할 때 걸어왔던 길이지만 카라마츠에게 안겨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느라 길을 외워두지 않았더니…. 

한쪽 눈썹을 기울이고 툇마루에 앉아 푹- 한숨을 쉬며 턱을 괴었다. 


이제 어쩐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다니다보니 방으로 돌아가는 길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직원이 있다면 물어보겠지만, 내가 멈춘 곳은 직원도 잘 지나다니지 않는 복도 같았다. 

발치에서 흔들리는 녹색 풀을 괜히 발가락을 툭툭 건드리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혼자야?”

“우왓!?”

바로 코앞에 있는 얼굴에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앉은 채로 펄쩍 뛰었다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은 나를 보며 꺄르르- 웃은 아이 하나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으, 응….”

얼떨결에 대답하며 손을 잡자 힘을 주어 나를 일으킨 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나는 토도마츠! 너는?”

등 뒤로 갈색 줄무늬 꼬리를 붕붕 흔들고, 머리 위에 솟은 둥근 귀를 쫑긋거리고, 그 사이에 나뭇잎을 올려놓은 아이는 자기 이름을 밝히며 내게 물었다. 

우리 토도마츠와 똑같은 이름에 조금 놀라며 “오, 오소마츠….” 하고 대답했다.


“헤에~. 우리 엄마랑 이름이 똑같아!”

“엣. 그, 그래?”

“응!”

제 또래의 아이를 만난 것이 반가운지 활짝 웃은 아이가 맞잡은 내 손을 놓지 않고 잘게 흔들었다.


“있지-, 오늘 나랑 같이 놀래?”

“어….”

“요즘 친구들 가족기리 놀러가고, 엄마랑 아빠도 바빠서 나랑 안 놀아줘….”

추욱-, 소리가 날 정도로 귀와 꼬리를 늘어뜨린 아이에게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수는 없는 노릇. 

카라마츠는 아직 자고 있을 거고…. 

조금은 같이 놀아줘도 괜찮겠지.


“좋아! 같이 놀자!”

알맹이는 늙은이지만, 오늘 하루정도는 동심을 되찾아서 아이와 놀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내 대답에 아이, 아니 토도마츠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손을 잡아 끌었다.



토도마츠가 나를 데리고 향한 곳은 직원 휴게실. 

바쁘게 휴게실을 뛰쳐 나가는 직원을 지나서 휴게실에 들어간 토도마츠가 능숙하게 사물함 하나를 열었다.


“여기에 재미있는 책이 있어!”

“재미있는 책?”

토도마츠의 말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우리 톳티-가 가끔 보던 인간 세상의 책이 있었다. 

화려한 색깔과 얇고 짧은 옷을 입은 인간들이 잔뜩 들어가있는…. 

아! 잡지! 

응, 잡지라고 하는 책이었다. 

보물처럼 살살 잡지를 들어서 옆에 있는 책상에 올려놓은 토도마츠가 턱을 괴고 진지한 얼굴로 잡지를 보기 시작했다. 

뻘쭘히 옆에 서 있자, 토도마츠가 다급하게 손을 휘저으며 나를 옆에 앉혔다.


“이거 봐! 엄청 멋있지!!”

“어…? 으, 응….”

인간들의 감각을 나는 잘 모르겠다. 

속옷 마냥 짧은 바지의 어디가 멋있다는 건지…. 

처음 듣는 단어들에 절로 갸우뚱 기우는 고개를 의식해 똑바로 세우고 이건 어떻다, 저건 어떻다,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토도마츠의 말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톳티-도 가끔 마을에 내려가 인간들의 옷을 사오던데, 이 녀석도 그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아무리 한 장 한 장 시간을 들여 보아도 잡지라는 것은 굉장히 얇았다.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마지막 쪽을 보고 잡지를 덮은 토도마츠가 “나도 옷 가지고 싶다~. 이런 기모노 말구-.” 하고 작게 불평하며 다시 나를 이끌었다.



다음으로 토도마츠가 나를 끌고 들어간 곳은 직원들이 바쁘게 들어갔다 나가는 주방. 

주방 입구에 슬쩍 몸을 숨기고 얼굴만 빼서 안을 살핀 토도마츠가 헤헤 웃으며 주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한창 요리 중인 주방장의 발치를 슬금슬금 기어 지나가 음식이 잔뜩 올려져 있는 식탁에 도착했다. 

객실에 들어갈 음식들이 점원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향긋한 냄새에 꼬르륵- 배가 울렸다. 

그러고보니 아침도 아직 먹지 않았다….


“이거 맛있겠지!”

후식으로 보이는 화과자를 들어 자랑스럽게 내보인 토도마츠가 망설임없이 “아—암~!” 하고 화과자를 입에 쏙 넣었다. 


“…그거, 손님한테 나가는 거 아니야? 그렇게 몰래 먹으면 혼날,”

“앗! 이녀석, 토도마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서 들려오는 엄한 목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토도마츠도 놀라 목으로 넘어가던 화과자가 걸렸는지 켈룩켈룩 기침하며 가슴께를 두드렸다.


“에헤헤~.”

꿀꺽, 목에 걸린 것을 억지로 삼킨 토도마츠가 저를 내려다보는 주방장을 향해 앙큼하게 웃었다. 

허리에 손을 얹고 “나 참—.” 하고 한숨을 내쉰 주방장이 곧 두 명 분의 식사를 가져왔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찰진 흰 밥, 그리고 적당히 타서 노릇노릇 구워진 고등어, 윤기가 흐르는 나물무침. 

꼬르륵 꼬르륵-, 빨리 밥을 달라고 아우성인 배를 억누르려 붙잡자 주방장이 빙긋- 웃으며 “어서 먹으렴.” 하고 식기를 내주었다.


“또 노느라 밥 안 먹었지? 손님 것 훔쳐 먹지 말고.”

“응! 고마워~. 아빠!”

통통한 볼 가득 밥을 넣고 먹는 토도마츠에게 가벼운 핀잔을 준 주방장에게 토도마츠가 빵긋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아빠’라는 단어에는 조금 놀랐지만, 이내 이해했다. 

토도마츠와 주방장의 얼굴이 묘하게 닮았다. 

주방장은 카라마츠처럼 눈썹이 진했지만 기본 바탕은 토도마츠와 똑같아 보였다. 

맛나보이는 밥에 잘 먹겠다고 인사를 하고 젓가락을 들어 짭짤한 고등어를 입에 넣었다.



맛있는 밥으로 배를 채우고 주방을 나와 토도마츠와 함께 잡담을 떨며 여관 안을 돌아다녔다. 

휴게실에서 무슨 대회 결승전이라도 되는양 필사적으로 탁구를 하고 있는 손님들을 구경하거나, 아이의 몸에는 맞지 않는 안마 의자에 앉아보기도 하고, 기-다란 복도를 힘껏 달려 달리기 승부를 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어린 아이와 동심으로 돌아가 놀아 정말로 즐거웠다. 

여우골엔 신이 있지만, 신은 얌전한 아이라서 활동적인 놀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콧노래를 부르는 토도마츠에 맞춰 대충 지어낸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사이 여관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비어있는 객실에 들어가 딩굴거리고 나오자 토도마츠가 뭔가 생각났는지, 내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향한 곳은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복도 끝. 

밖이 훤히 보이는 복도 옆에는 난간이 있고, 햇빛에 말리려 난간에 걸어놓은 이불이 잔뜩 있었다. 

저렇게 햇빛에 말리면 뽀송뽀송하고 햇살 냄새가 나서 기분 좋~게 잘 수 있단 말이지—. 

어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어 버렸지만, 굉장히 포근한 이불 속에서 달게 잘 수 있었다. 

바람에 살랑이는 이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혼자 납득하고 있는데 토도마츠가 과감히 이불을 난간에서 빼내 바닥에 홱 던졌다.


“토, 토도마츠? 뭐해…?”

이불 세 개 정도를 바닥에 쌓아 올리는 토도마츠에게 묻자, 토도마츠가 해맑게 웃으면서 “이렇게 해놓고 낮잠자면 엄청 기분 좋아!” 하고 대답했다. 

그야 물론 기분 좋겠지만 말이야…. 

힘들게 난간에 널어놓은 걸 그렇게 바닥에 팽개치면 말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이불 위로 올락나 토도마츠가 벙쪄있는 나를 끌어당겼다.


“여기! 오소마츠도 같이 자자!”

팡팡, 이불을 두드리며 방긋 웃는 토도마츠의 천진난만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하핫, 하고 잘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아——, 이건 할 수 없네. 

나중에 같이 혼나주지, 뭐-. 

혼자 끄덕이며 토도마츠를 따라 푹신~한 이불에 누웠다. 

아, 이건 확실히 기분 좋게 낮잠을 잘 수 있겠다. 

이불을 세겹이나 겹쳐서 엄청 뽀송뽀송하고, 따뜻한 햇살이 위에서 내려오고, 게다가 햇살 냄새도 난다. 

딱 좋게 부른 배에 따끈-한 햇볕. 토도마츠의 옆에서 그대로 푹- 잠들어 버렸다.



“오소마츠, 빨리빨리!”

급히 나를 흔들어 깨우는 토도마츠의 목소리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자 토도마츠가 내 손을 잡고 냅다 뛰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우리 뒤로 직원의 불쌍한 비명이 들려왔다. 

들키기 전에 도망치는 건가…. 

제법 하는 걸? 

2단씩 계단을 뛰어 내려가서 아무도 뒤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발을 멈춘 토도마츠와 눈이 마주치자 너나 할 것 없이 같이 키득키득 웃었다.

큭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떨며 복도를 걷다보니 내 처음 목적지였던 정원이 보였다.


“아, 정원.”

“어? 오소마츠, 정원 보고 싶어?”

“응.”

“노인네 같아—.”

“아하하….”

노인네 같다기보단 노인네지만 말이야…. 

어색하게 웃으며 토도마츠가 가져온 게다(일본식 나막신)에 발을 끼웠다. 

따각따각 소리를 내며 다가간 정원은 예상대로 굉장히 멋있었다. 

빨갛게 물든 큰 단풍 나무가 바람에 나부끼고, 그 주변에 가냘프게 피어난 색색의 꽃이 조화로웠다. 

이런 정원이라면 하루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신사에도 이런 멋진 정원을 만들어볼까? 

근데 그러면 관리가 귀찮단 말이지~. 

예-전에 카라마츠가 작은 텃밭은 만든 적은 있었지만 말이야. 

500년은 묵은 것처럼 보이는 단풍 나무를 빙- 돌아 보고 정원을 한 바퀴 돌고나자,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아…. 이제 돌아가야지.”

“어? 벌써? 그, 그럼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어!!”

“보여주고 싶은 곳?”

“응!! 빨리 갔다 오자!”

슬슬 방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혼잣말한 것을 들은 토도마츠가 초조한 얼굴로 여관 뒤에 있는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방에 돌아가는 것은 조금 늦어져도 괜찮겠지. 

더 놀고 싶어하는 토도마츠를 따라 여관 뒤에 있는 산길을 올랐다. 

해가 저무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헤매지 않고 올라간 토도마츠가 내게 손짓했다.


“여기야! 내 비밀기지!”

해죽이 웃는 토도마츠 뒤에 펼쳐진 것은 빨강. 

붉은 단풍으로 가득찬 산이 한눈에 보이고, 노을 진 하늘까지 절경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때맞춰 흘러온 바람에 쏴아아- 하고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빨간 단풍잎이 흩날렸다.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단풍이 우아하게 노을을 배경으로 춤추듯 내려앉는 것을 가만히 응시했다.


“…….”

“멋지지?”

가슴을 내밀고 뽐내며 말하는 토도마츠에게 멍청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광경…. 

천계에서도 본 적 없다. 

인간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니…. 

가만히 풍경을 만끽하는 내 옆에 조용히 엉덩이를 내린 토도마츠와 노을이 끝날 때까지 그 장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토도마츠와 손을 잡고 산길을 내려와 여관에 도착하자, 지배인이 우리를 발견하고 종종 걸음으로 달려왔다.


“토도마츠! 여태 어디 가 있었어! 찾았잖아!! 손님분까지 끌고 가서는….”

지배인의 꾸중에 토도마츠가 볼을 잔뜩 부풀리고 “그치만…, 엄마 요즘 바빠서 안 놀아주니까….” 하고 손가락을 쪼물거렸다. 

푹- 한숨을 내쉰 지배인이 내게로 시선을 옮겨 짐짓 엄한 얼굴로 말했다.


“어린 신부님도, 말도 하지 않고 나가니까 찾으시잖아요.”

“아! 카라마츠!!”

지배인의 말에 카라마츠가 퍼뜩 생각나 토도마츠에게 손을 흔들고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호기롭게 복도를 달려간 것은 좋았지만, 여전히 어떻게 방에 가야하는지 몰라서 중간에 직원에게 물어봐야 했지만….



“오, 오소마츠으으으으!! 대체 어디 갔던 건가아아아!!”

방에 들어가자 울상이 된 카라마츠가 내게 달려와 나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안그래도 힘이 센 녀석이 작은 몸을 힘껏 껴안으니 더 괴로워 발버둥치며 카라마츠 등을 주먹으로 때렸다. 

있는 힘껏 때리는 데도 살집이 붙은 어린아이 손으로는 큰 타격이 들어가지 않았다.


“카라마츠으~!! 좀 놔아!”

“어딜 갔는지 전부 털어놓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을 거다.”

“그냥 여관 안 돌아다니다가 토도마츠 만나서 논 거 뿐이라구~!”

“…토도마츠?”

‘토도마츠’라는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카라마츠의 팔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몸을 뺐다. 

휴—, 하고 잔뜩 구겨졌던 몸을 피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카라마츠에게 설명했다. 

지배인과 주방장의 아이 이름이 토도마츠이며 그 아이와 하루종일 함께 다녔다고. 

몇 번이고 설명해서 겨우 이해해준 카라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더니 풀이 죽어 날개를 추욱 늘어뜨렸다.


“깨워줬으면 좋았을 텐데….”

입을 은근하게 내민 카라마츠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였다. 

삐졌네, 이거—.


“카-라마츄~. 내가 미안해~. 잘 자고 있으니까 깨우기 미안해서…. 내일은 하루종일 같이 붙어있자!”

작은 몸을 이용해 옆구리와 팔 사이에 생긴 틈으로 쏙 얼굴을 집어 넣어 배시시 웃어주었다. 

짧은 꼬리도 정성스럽게 흔들며 바라보자, 슬쩍 눈빛을 스친 카라마츠가 큰숨을 내쉬고 나를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약속이다.”

“응!”

카라마츠의 말에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카라마츠가 내민 커다란 손가락에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이후에 들어온 저녁을 함께 맛있게 먹고, 온천에 들어갔다가 카라마츠 이불에서 같이 꼬옥- 껴안고 잤다.






6.


짹짹, 창가에서 우는 새소리에 눈을 뜨자, 하얀 햇살이 이불에 누워있었다. 

음냐-, 하고 입을 다시며 눈을 깜빡이면서 빛에 익숙해지자 나를 감싸안고 있는 카라마츠의 팔이 보였다.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단단히 껴안고 자고 있는 바보같은 얼굴에 훗, 하고 웃고 카라마츠의 코를 꼬집었다.


“…응, 으으~~.”

짙은 눈썹을 팍 찌푸리고 신음한 카라마츠가 고개를 비틀었다. 

내 손에서 벗어난 카라마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바다보다 푸르고 깊은 눈동자에 빛이 서렸다.


“좋은 아침—, 카라마츄~.”

“아-. 좋은 아침이다. 오소마츠….”

“후헷, 잠깐! 간지러어~.”

아직 잠에 취해 갈라진 목소리로 짐승 귓가에 코를 비비는 카라마츠의 팔 안에서 몸을 꼬았다. 

도망치려고 해도 도망칠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카라마츠의 머리를 안고 쓰다듬었다. 

그렇게 둘이 한참을 이불에서 머뭇거리다가 아침 식사를 가져왔다는 직원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끝내고 카라마츠와 함께 방에 딸린 노천탕에 들어갔다. 

첫날 들어간 건 커다란 공용 온천이었지만, 오늘은 느긋-하게 단둘만 들어갈 수 있는 노천탕. 

공용탕만큼 깊지도 않아서 카라마츠 다리 위에 앉을 필요가 없었다.


“후아아~.”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구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기분 좋게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데 옆에서 향기로운 술 냄새가 풍겼다.


“술!?”

“우왓!”

노천탕 가에 술병과 술잔을 내려놓은 카라마츠가 ‘귀신같이도 안다’는 얼굴로 술잔을 기울였다. 

달콤한 냄새가 나는게 이 지방의 유명한 과일주 같았다. 

눈을 빛내며 벌떡 일어나자 카라마츠가 술병을 내게서 멀리 떨어뜨려놓았다. 


“왜!?”

“그 몸으로 술은 금지다.”

“에엑~~?! 몸만 어려진 거잖아!”

“어쨌든 안된다.”

“우——. 치사해! 짠돌이! 혼자만 마시고-!”

“…나중에 하나 사놓겠다. 돌아가서 마셔라.”

“나는 지금 마시고 싶다구!”

화를 내며 손을 뻗었지만 카라마츠 손에 들린 술잔에는 닿지 않았다. 

아——, 정말 이 작은 몸 불편하네!! 

카라마츠에게 등을 홱 돌려 온천물에 턱까지 담그고 부부부부부- 방울을 불었다. 

치사해-.

나도 마시고 싶다구~. 

이 몸이 되고 나서 불편한 게 생각보다 더 많아! 머리 위로 올라오는 짜증에 꼬리로 수면을 팡팡 때렸다. 

카라마츠한테 물 다 튀게. 눈썹을 찌푸리고 온천수 반 술 반이 된 술잔을 입에 털어넣은 카라마츠가 내 옆으로 엉덩이를 옮겼다.


“심통 부리지 말고…. 오늘 하루종일 같이 있어주겠다고 약속했잖나.”

“그건 지킬 거지만….”

퉁한 얼굴로 보니 뭐가 좋은지 은근한 미소를 피운 카라마츠가 나를 들어올려 자기 무릎에 앉혔다. 

이 자세, 단골이 되고 있는데…. 

마주보고 앉아 내 머리나 귀를 어루만지는 카라마츠의 손길은 지극히 다정해서 삐진게 사르르 녹아내렸다. 

내가 봐줘야지-, 할 수 없잖아? 

머리에서 얼굴로 내려온 손에 볼을 비비고 카라마츠를 나긋하게 쳐다보았다. 

훗, 하고 눈까지 가늘게 만들고 기쁘게 웃은 카라마츠가 내 요청에 응해 천천히 입술을 내렸다. 

몸집 차이가 커져서 전보다 더 고개를 위로 들어야했지만, 온천에 맞춰 따뜻해진 입술은 여전했다.



온천을 만끽하고 점심 식사를 하고 카라마츠와 함께 방을 나와 정원을 구경하고 여관 아래에 있는 산책로를 걸었다. 

손을 맞잡고 좁을 길을 나란히 걸었다. 느긋하게-. 일도 없고, 돌봐야 할 인간이나 마을도 없이. 

단 둘이서. 

처음엔 마을을 놔두고 둘이 휴양 오는게 불안했지만, 이렇게 둘이서 무엇도 신경쓰지 않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7.


둘이 함께 했던 2박 3일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어느새 지배인과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여관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지배인과 주방장 사이에 서 있는 토도마츠에게 손을 흔들고 여관을 나와 우리 톳티-가 보내준 화차에 올랐다. 

하늘로 붕- 떠올라 여우골을 향해 날아가는 화차 안에서 멍청히 멀어지는 여관을 응시했다.


“즐거웠나? 오소마츠.”

“응-. 생각보다 더 좋았어.”

“그거 다행이군.”

상냥한 미소를 보여주는 카라마츠를 보다 문득 여관장과 주방장 사이의 아이, 토도마츠가 떠올랐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그 무릎에 앉았다.


“카라마츠.”

“응?”

무릎에 앉은 내 머리를 쓰다듬는 카라마츠에게 장난스러운 미소를 활짝 피우고 물었다.


“우리도 애기 가질까?”


내 물음에 카라마츠의 반응은 대충 상상이 가지?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짧은 단편 2번째!


* 공미포  3,159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날이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기분이 가라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 

오소마츠에겐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형제들 모두 외출하고 홀로 남은 방에서, 숨소리조차 죽인 오소마츠가 멍청히 창밖을 응시했다. 

안개처럼 가는 빗방울이 창밖을 온통 뿌옇게 흐려놓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골목에는 간헐적으로 젖은 땅을 짓이기고 달리며 물웅덩이를 첨벙 밟고 지나가는 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가슴이 크게 부풀 때까지 숨을 잔뜩 들어마시고 다시 푸후— 내쉰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고요하기 그지 없는 방안에서 오소마츠가 눈을 지그시 내리깔았다. 

제습기 없는 방안은 비에 푹 젖은 종이같았다. 

눅눅한 공기가 찰거머리처럼 피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문득 눈썹을 찌푸린 오소마츠가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스륵-,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오소마츠 바로 아래 동생. 

비구름이 껴서 흐린 날에 검은 선글라스와 가죽 자켓을 입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슬쩍 보고 옷장으로 걸어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는 전용 케이스에 소중하게 넣고, 비를 맞은 자켓은 옷걸이에 걸어 널어놓는다. 

비 때문에 회색으로 변한 양말까지 휙 벗어 던지고 새하얀 양말로 갈아신은 카라마츠가 그제야 저를 빤히 바라보는 오소마츠를 향해 몸을 돌렸다.


“오소마츠.”

불쾌하기만했던 공기를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헷-, 입꼬리를 올렸다.


“응.”

말없이 카라마츠를 향해 두 팔을 활짝 열자, 짙은 눈썹을 늘어뜨리고 쓴웃음을 지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앞에 무릎을 내리고 그 작은 몸을 힘껏 껴안았다.


“오늘은 어째 기분이 별로같군. 무슨 일 있었나?”

“아니—. 없었어~.”

저를 걱정하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묘한 만족감을 느끼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 어깨에 볼을 비볐다. 

오소마츠가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의 푸른 후드에서는 비 냄새와 섞인 카라마츠의 향기가 잔뜩 붙어있었다. 

체온이 옮아 따끈한 후드에 코를 폭 파묻고 숨을 들이마셨다. 

폐에 퍼지는 연인의 체취에 오소마츠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무료함이었는지, 외로움이었는지 모를 감정은 내뱉는 숨과 함께 사라지고, 은은한 행복이 포근하게 마음을 감싸안았다. 

카라마츠 등에 두른 팔에 힘을 주자 카라마츠도 더욱 강한 힘으로 오소마츠를 얼싸안았다. 

귓가에서 울리는 심장박동에 눈을 뜬 오소마츠가 문득 덮쳐오는 불안에 입술을 깨물었다. 

혹시, 혹시나—. 만약, 이 따뜻하고 안락한 카라마츠의 품을 잃게 된다면…. 

툭툭, 처음 내린 빗방울이 지면을 적시듯 가슴에 퍼진 불안은 곳 무너진 둑을 넘어 몰려오는 물살처럼 오소마츠를 가득 채웠다. 


‘장남’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그것에 맞게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아주 가끔, 정말 가끔만 ‘오소마츠’가 되어 약해져 있을 때. 

곁을 지켜준 소중한 동생이자 연인. 

지금도 이유없는 우울함을 단번에 털어낼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이 품에, 두번 다시 안길 수 없게 된다면…. 

분명 피부로 전해지는 온기와 귓가에 퍼지는 숨소리, 닿아오는 심장소리는 카라마츠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도, 두려움에 잠겨버린 오소마츠는 왈칵 치솟는 눈물을 억누를 수 없었다. 

뜨거워지는 눈시울에 황급히 카라마츠 어깨에 눈을 눌렀다. 

눈가에 닿은 후드가 축축히 젖어가는 것을 느끼며 훌쩍, 코를 들어마신 오소마츠의 기색에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혹시 우는 건가?”

화난 것처럼 들리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쉽게 상상이 갔다. 

헤실-, 힘없는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그대로 고개를 들지 않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잠깐 콧물이 나와서 카라마츠 옷으로 닦은 것 뿐~.”

“어이.”

“하핫.”

험상궂게 변한 카라마츠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너털웃음을 흘리고 큰숨을 내쉬었다. 

만약의 경우를 상상했을 뿐인데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천이 손바닥을 스치는 감각을 기억하며 카라마츠의 등을 쓸어올렸다. 

든든한 어깨에 다시금 볼을 비빈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여 눈가에 남은 눈물을 말렸다.


‘그렇게 되면 아마 살 수 없을 거야….’

이 온기가 없다면, 자신을 보듬어주는 이 품이 없다면. ‘오소마츠’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카라마츠에게 들키지 않도록 작은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몸을 힘껏 끌어안았다. 

미래에 올 지도 모를 불안보다, 지금 누릴 수 있는 이 작고 소중한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서.




우중충한 하늘에서 내리는 부슬비에 카라마츠가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아침 일기예보는 확인하지 않은 탓에 카라마츠의 손에는 우산이 없었다. 

형제 모두 외출한 집에 도착해 열쇠구멍에 키를 꽂아 돌렸지만 공허한 회전이 손끝에서 전해졌다. 

분명 아침에 모두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의아하단 얼굴로 현관문을 연 카라마츠가 현관에 남아있는 붉은 운동화에 옅은 미소를 피웠다.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 방문을 열자, 지루함을 가득 머금은 눈동자가 저에게 향했다. 

육둥이의 장남, 안하무인 쓰레기 맏형은 오늘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옷장으로 걸어가 편한 후드로 갈아입은 카라마츠가 몸을 돌려 오소마츠를 부르자, 뿌루퉁한 얼굴로 팔을 활짝 펼쳤다. 

아무래도 오늘은 어리광 모드인 것 같다, 며 쓴웃음을 흘린 카라마츠가 순순히 오소마츠 앞에 무릎을 내리고 가녀린 몸을 품에 넣었다. 

난방도 틀지 않은 방 창가에 줄곧 있었던 탓인지 밖에서 들어온 자신보다 더 차가운 오소마츠의 몸에 눈썹을 찌푸렸다. 


“오늘은 어째 기분이 별로같군. 무슨 일 있었나?”

“아니—. 없었어~.”

가볍게 대답하며 어깨에 볼을 비비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또, 혼자 끌어안고, 숨기고, 보여주지 않는다. 

힘든 일이건, 슬픈 일이건, 고민하는 일이건,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혼자서 껴안고, 고민하고, 망설이는 그 버릇을 어떻게든 고쳐주고 싶은 참이건만 오소마츠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보통은 형제들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오소마츠의 약한 면. 

그것을 오직 자신만 볼 수 있다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면서 잘게 떠는 오소마츠의 몸을 쓰다듬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볼을 치대던 오소마츠가 카라마츠 어깨에 얼굴을 깊이 묻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서서히 젖어가는 천의 감각, 그리고 아주 작지만 훌쩍, 하고 코를 들이마시는 소리에 카라마츠가 팩 눈썹을 찌푸렸다.


“오소마츠…? 혹시 우는 건가?”

저도 모르게 걱정에 섞인 울화가 목소리를 거칠게 만들었다. 

또 무엇인데 자신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는 건지. 답답한 마음에 크게 숨을 내쉬자 오소마츠가 고개를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깐 콧물이 나와서 카라마츠 옷으로 닦은 것 뿐~.”

“어이.”

“하핫.”

아무렇지도 않은,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해도 그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카라마츠는 알 수 있었다. 

제 등을 쓸어올리는 손길에 카라마츠가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오소마츠를 강하게 껴안았다. 

이유따위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자신의 존재가 미약하게 나마 오소마츠를 위로해주기를, 그리고 지탱해주기를 바라며 오소마츠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다시 얼굴을 비비기 시작한 오소마츠의 고른 숨소리에 맞춰서 통통, 천천히 등을 두드렸다. 

누구도 없는, 혼자만 남은 방에서 홀로 슬픔을 삭히는 오소마츠의 곁에 반드시 자신이 있기를 원했다. 

이렇게 가녀리고 애처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홀로 다짐한 순간, 예상치 못한 불안이 카라마츠를 덮쳤다. 


만약, 자신이 사라진다면…. 오소마츠보다 먼저, 오소마츠를 남겨두게 된다면…. 

저도 모르게 오소마츠의 후드를 꽉 움켜쥔 카라마츠가 흔들리는 눈동자를 눈꺼풀 속에 감췄다. 

까매진 시야 속에 홀로 남아 울지도 못하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오소마츠가 그려졌다. 

안아주는 이 없이, 위로해주는 이 없이. 고독과 외로움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갈 오소마츠가.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된다. 절대 용납할 수 없어.’


번쩍 눈을 뜬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끌어안았다. 

오소마츠의 희노애락은 모두 카라마츠의 옆에 있을 때 성립되어야 했다. 

자신이 아니면 이렇게 약해진 오소마츠를 껴안아 줄 수 없다.

 평범한 형제에게 그런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오직 카라마츠 자신만이, 연인인 자신만이 오소마츠를 품에 안을 수 있다. 절대로 오소마츠를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카라마츠가 제게 기대는 오소마츠를 쓰다듬었다. 

지금의 이 행복이 영원까지 이어질 것이라 확신하면서.





*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문득 몰려오는 두려움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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