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50제입니다!! 이제 50제도 슬슬 써야겠다 싶어서 썼습니다.


* 이번편은 무려 해리포터AU 입니다. 글 쓰면서 공식(?) 설정을 많이 참조했지만 미묘하게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육둥이가 일본계 영국인입니다.


* 공미포 21,756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소른 50제


13. 너구리 (오소른)   엘녜이 님 신청 키워드.




1.


투다닥, 복도 가득 요란한 발소리를 울리며 뛰어가는 한 무리. 

식당에서 나와 복도로 들어선 신입생 하나가 저를 스쳐지나가는 여섯 명의 학생들에 놀라 몸을 뒤로 뺐다. 

망토를 휘날리며 뛰어가는 이들의 등을 보며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신입생이 제 어깨를 두드리는 손에 놀라 뒤돌았다.


“아, 형….”

“놀랐어?”

“응…. 저 사람들…, 얼굴이 다 똑같았어….”

혼을 놓은 사람처럼 망연히 중얼거리는 동생을 보며 형이라 불린 상급생이 피식 웃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걸? 우리 학교에서 엄청 유명한 사고뭉치들이니까 말이야.”

하하, 하고 웃는 상급생을 올려다 보며 신입생이 눈썹을 찌푸렸다.



6년 전, 호그와트에 새로 입학한 신입생 가운데 유난히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이들이 있었다. 

호그와트에서 보기 힘든 동양인의 외모, 그리고 복사한 것처럼 똑같은 얼굴이 여섯. 

일본계 영국인, 마츠노 가의 여섯 쌍둥이가 연회장 단상 앞에 모였다. 

신입생 명단이 적힌 스크롤을 들어올린 교수가 흠흠, 목을 가다듬고 한 명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흥분한 얼굴, 긴장한 얼굴, 기대하는 얼굴로 단상에 오른 신입생들의 머리 위에 말을 하는 마법 모자가 올라가고 모자가 가장 알맞는 기숙사를 크게 외쳤다. 

강당에 울린 기숙사명에 학생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교사가 육둥이를 불렀다.


“쵸로마츠 마츠노.”

육둥이 중 셋째, 쵸로마츠의 이름이 불리자 형제들의 눈이 쵸로마츠에게 쏠렸다. 

긴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인 쵸로마츠가 단상에 올랐다. 

준비된 의자에 앉은 쵸로마츠의 머리 위로 모자의 그림자가 올라왔다.


“음~, 이 녀석은 쉽군. 래번클로!”

모자의 외침에 쵸로마츠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 

래번클로의 학생들이 모두 일어나 테이블로 뛰어오는 쵸로마츠를 맞이했다. 

래번클로에 배정된 것이 어지간히 만족스러운지 쵸로마츠의 세모꼴 입에 미소가 가득 피었다. 


“다음, 이치마츠 마츠노.”

두번째로 불린 것은 넷째, 이치마츠. 

긴장하다 못해 덜덜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던 이치마츠가 흠칫 놀라며 어기적어기적 단상 위로 올랐다. 

모자가 내려앉는 감각에 “힛,” 하고 비명을 삼킨 이치마츠가 불안한 눈으로 모자를 올려다보았다.


“흠…, 이 녀석은…, 여기? 아니야, 거기보단 여기가 더 좋겠군. 슬리데린!”

“…헤?”

“슬리데린이다, 꼬마.”

모자의 외침에 이치마츠의 얼굴이 파래졌다. 

너무나 당연하게 모두 같은 기숙사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형제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서렸다. 

래번클로 테이블에 앉아있던 쵸로마츠도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이치마츠를 걱정스럽게 응시했다. 

아무리 기숙사 간 갈등이 묽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슬리데린은 학생들이 가장 기피하는 기숙사였다. 

모자의 확인사살과 교사의 부름에 천천히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 이치마츠가 혼이 나간 사람처럼 터덜터덜 슬리데린 쪽으로 걸어갔다. 

선배들의 환대에도 이치마츠는 고개를 깊게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수선하게 시선을 서로 교환하며 이치마츠를 걱정하던 남은 형제들이 교사의 부름에 눈을 위로 들었다.


“쥬시마츠 마츠노.”

“네, 넵!”

건조한 교사의 부름에 손을 번쩍 들어 대답한 쥬시마츠가 삐걱이는 로봇처럼 단상에 올라 의자에 앉았다.

 모자가 씌여졌는데도 시선을 이치마츠에게 고정한 쥬시마츠가 모자의 외침에 눈을 깜빡였다.


그리핀도르!”

“에!?”

일어서 박수를 치는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걸어간 쥬시마츠가 남은 형제들에게 어색한 눈을 돌렸다. 

여섯 중 셋이 각각 다른 기숙사로 뿔뿔히 흩어진 것에 육둥이 모두 당혹해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하루도 떨어진 적 없었던 형제들이 서로 다른 기숙사에 들어갔다는 것은 육둥이에게는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카라마츠 마츠노.”

이어서 불린 둘째, 카라마츠가 마른침을 삼키고 단상 위 의자에 앉았다. 

다시 한 번 모자가 그리핀도르를 외치자 쥬시마츠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의자에서 일어나 후다닥 쥬시마츠 옆으로 뛰어간 카라마츠가 이어서 의자에 앉은 자신의 형,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오소마츠 마츠노, 의자에 앉으세요.”

“네….”

항상 활기차던 오소마츠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힘없이 대답했다. 

모자가 머리 위로 올라오자 오소마츠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아—, 이 녀석도 저쪽으로 보내면 되겠군. 그리피,”

‘아냐, 슬리데린. 슬리데린으로…!’

“응~? 슬리데린? 그곳도 네게 어울리긴 한다만….”

‘이치마츠를 혼자 놔두기 싫어.’

“그래, 네 바람이 그렇다면. 슬리데린!”

강당에 울리는 기숙사명에 이치마츠를 비롯한 육둥이 모두가 놀랐다. 

바란다고 정말로 슬리데린을 불러준 모자에게 놀란 오소마츠가 얼떨떨한 얼굴로 일어나 이치마츠 옆으로 걸어갔다. 

당연히 오소마츠가 그리핀도르로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자리를 비워두었던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멍청히 오소마츠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래번클로에 있던 쵸로마츠도, 남겨진 토도마츠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읏챠~.”

“….”

“에~, 뭐야—, 이치마츠. 내가 왔는데 그런 얼굴하고~. 엄청 웃긴 얼굴인데~.”

후핫, 하고 턱을 떨어뜨리고 저를 쳐다보는 이치마츠에게 웃어보인 오소마츠가 능청스럽게 맞은편에 앉은 선배와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 토도마츠 마츠노.”

“아, 네!!”

마지막으로 불린 막내 토도마츠는 모자를 다 쓰기도 전에 래번클로로 배정되었다. 

쵸로마츠의 옆에 앉은 토도마츠가 쵸로마츠가 가벼운 미소를 나누고 단상으로 눈을 돌렸다. 

육둥이를 마지막으로 신입생 기숙사 배정이 끝난 강당은 교사의 박수에 모습을 단번에 바꾸었다. 

테이블 가득 피어난 음식들에 학생들이 모두 눈을 빛내며 군침을 흘렸다. 

모두에게 존경받는 마법사이자 교장의 연설을 흘려듣는 육둥이의 눈에는 오직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만이 가득 맺혀있었다.


그리고 소란스러웠던 입학식 이후로 6년. 

6학년이 된 육둥이는 학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2.


“자, 자~. 모두 어서 모이라구~!”

교수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복도 구석. 

씨익- 장난스러운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주변에 모여든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글자가 어지러이 적혀있는 작은 수첩. 

입학 선물로 부모님이 선물해주었던 만년필을 꺼낸 오소마츠가 저를 보며 눈을 빛내는 학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번 예선전은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오~~래 전부터 라이벌이었던 두 기숙사라구~! 이번에 나오는 선수들은 양쪽 기숙사가 자랑하는 최정예! 막상막하라구~. 솔직히 이 카리스마 레전드 오소마츠님도 어디가 이길지 감—히 예측을 못하겠단 말이지~.”

“그러지 말고 솔직히 말해보지 그래?”

오소마츠의 능청에 학생 하나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 학생과 정면으로 눈을 맞춘 오소마츠가 얼굴을 찡긋이며 음흉한 미소를 피웠다.


“에~, 들켰네—. 실은 말이지~, 이번 경기에서 내 귀—여운 동생들이 나간단 말이지~. 근육 빵빵한 카라마츠가 몰이꾼!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발랄한 바보 쥬시마츠가 수색꾼! 자랑은 아니지만 내 예상엔 그리핀도르가 이길 가능성이 쪼~~끔 더 많달까?”

오소마츠의 미소가 옮은 학생들이 지그시 미소를 띄웠다.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구겨진 지폐를 꺼낸 학생들이 오소마츠에게 내밀며 예상 승리팀을 외쳤다.


“그럼 난 그리핀도르에 걸래!”

“나도!”

“난 슬리데린. 이번에 슬리데린도 만만치 않다구!”

“나는 그리핀도르. 오소마츠 예상은 잘 맞으니까!”

“그만큼 꽝도 많잖아. 나는 슬리데린하고 그리핀도르 둘 다 걸거야!”

“에~? 안전빵으로 가기~? 뭐, 나는 상관 없지만.”

학생들의 이름과 그가 외친 기숙사명을 노트에 적어내려간 오소마츠가 “매번 감솨~.” 하고 웃으며 학생들의 돈을 모아 주머니에 넣었다.


“이참에 다음 경기까지 돈 걸 사람은 없어?”

오소마츠의 도발에 학생들 중 한둘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서로 속닥거리는 학생들을 보며 “없으면 말구~.” 하고 노트를 덮는 오소마츠에게 몇 학생이 급히 돈을 더 내밀었다. 

이를 드러내고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가득 흘린 오소마츠가 “현명한 선택이야!” 하고 학생들을 북돋으며 돈을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잘~들 한다, 정말.”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둥그렇게 모여 속닥이던 학생들의 뒤에서 들려오는 혀차는 소리에 오소마츠가 볼을 부풀리고 고개 들었다.


“뭐야, 쵸로 씌. 지금 나는 비지니스 중 이니까 방해하지 말고 가던 길 마저 가라구~.”

“비지니스 좋아하네! 도박이잖아, 그거!! 교수님들께 걸리면 어쩔려고 그래!?”

쵸로마츠의 핀잔에 오소마츠가 바람이 다 빠졌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손을 휘휘 휘저었다. 

오소마츠의 신호에 쓴웃음을 흘린 학생들이 멀리 퍼져 복도를 빠져나갔다.


“정~말 잔소리쟁이라니까—. 이 아첨꾼(teacher’s pet)은.”

오소마츠의 한숨 섞인 한탄에 쵸로마츠가 늘어뜨린 눈썹을 추켜세웠다.


“누가 아첨꾼이라는 거야!! 나는 유급하지 않고 제대로 졸업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 뿐이라구!”

“아~, 그러셔요~? 그런 분이 시키지도 않은 교실 청소도 하고 말이지~?”

“내가 공부하는 곳을 좀 깨끗하게 만들겠다는데 왜 태클이야!”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깔끔했다고!?”

“오소마츠 형보단 백배 더 깔끔하거든!?”

“앙!? 해보자는 거냐!?”

오소마츠가 벌떡 일어나 쵸로마츠의 멱살을 잡자 쵸로마츠도 지지않고 팔에 걸쳐놓은 노트를 던졌다. 

넥타이도 제대로 매지 않은 오소마츠의 멱살을 콱 붙잡아 노려보던 쵸로마츠가 귓가에 닿는 웃음소리에 작은 눈동자를 돌렸다.


“헤~, 동양에는 그런 게 다 있구나.”

“응응. 그래서 내가 이번에 ‘점성술’을 신청한 거라구~. 동양의 ‘점술’하고는 뭐가 다른지 알아보려구~.”

“나, 그 이야기 더 듣고 싶어!”

“그래~! 동양에는 ‘12간지’라는 게 있는데 말이야~,”

슬리데린을 상징하는 초록색이 섞인 교복을 입은 두 명의 금발 미녀와 떠들며 복도를 지나가는 것은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의 동생이자 육둥이의 막내 토도마츠였다. 

오소마츠도 말을 걸어보지 못한 미녀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복도를 걸어 지나가는 토도마츠를 탁한 눈으로 보던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서로 멱살을 잡은 손을 팟, 하고 털어냈다.


“톳티-, 저 자시익~! 우리 기숙사에서 제일 예쁜 제인하고 이야기르 해!?”

“저 망할 동정 자식이…. 똥꼬털 태워버린다….”

이를 으득으득 갈며 태워버릴 듯이 쳐다보는 형들의 눈빛을 눈치챈 토도마츠가 애써 무시하고 발을 돌리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어이~! 톳티-!”

“어이~! 약은 톳티-!”

“…‘톳티-’라고 부르지 말랬지!!”

손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복도에 가득 울리도록 저를 부르는 형들의 목소리에 토도마츠가 결국 언성을 높이며 형들을 노려보았다. 

갑작스럽게 버럭 소리를 지른 토도마츠의 옆에 있던 미녀들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본 오소마츠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톳티~, 너 작년에도 점성술 듣지 않았어~?”

“읏!? 시끄러워!”

“그거 들어면 여자 꼬시기 좋다고 했었잖아~, 응~?”

오소마츠의 고발에 이은 쵸로마츠의 폭로에 토도마츠가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새빨개진 얼굴로 형들에게 달려드는 토도마츠를 보며 수근거린 미녀들은 어느새 복도를 지나쳐 저 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아~~! 정말—! 무슨 짓이야! 겨우 친해질 수 있었는데!!”

“이 횽아를 빼 놓고 그렇게 친해지면 섭하쥥~! 같은 기숙사인 횽아도 아직 말 한번 못했는데!!”

“어디서 먼저 여자친구를 만들려고?! 막내면 막내답게 형들을 기다려야지!”

“무슨 헛소리야!!”

토도마츠가 내지른 주먹을 이리저리 요령있게 피하며 신경을 긁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의 말에 “이익~~!!!” 하고 성질을 낸 토도마츠가 발을 쾅쾅 굴렀다. 

달려드는 토도마츠와 그를 피하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세 명이 뒤엉킨 복도에 새로운 발소리가 다가왔다.


“응~? 무슨 일 인가, 브라더-.”

“오소마츠 형아~! 쵸로마츠 형아~! 톳티-!”

“‘톳티-’라고 부르지 말라구, 쥬시마츠 형!!”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쥬시마츠에게 억울하다는 듯이 외친 토도마츠가 카라마츠와 쥬시마츠 뒤로 쏙 몸을 숨겼다.


“카라마츠 형, 쥬시마츠 형! 오소마츠 형이랑 쵸로마츠 형 좀 말려줘~! 이유도 없이 나를 막 놀린다구!”

““하아!?””

“오소마츠, 너는 장남이라는 녀석이 동생을 놀리기나 하는 건가….”

“쵸로마츠 형아도!”

토도마츠의 발언에 호흡을 맞춰 외치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에게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따끔하게 충고했다. 

훗, 하고 카라마츠 뒤에서 입꼬리르 올리는 토도마츠를 불같은 눈으로 노려보던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괴롭힌 것이 아니라며 손발을 버둥대며 해명하기 시작했다.


“어찌되었든, 2대 1로 동생을 괴롭히는 것은 나쁘다.”

“응응!”

이야기를 전부 듣고도 자신을 나무라는 카라마츠를 답답하다는 듯이 쳐다본 오소마츠가 ‘메롱’ 혀를 내미는 토도마츠를 보며 이를 갈았다. 

조금 전과 완전히 역전된 상황에 쵸로마츠도 이마에 힘줄을 세웠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대치하고 있는 다섯의 옆으로 비웃음 가득한 조롱이 흘러왔다.


“헤—, 슬리데린의 돈벌레랑 가디언이네~?”

“여-, 가디언 씨. 저번에 또 슬리데린 욕한 녀석을 패서 벌점 받았다며?”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시비를 거는 목소리는 슬리데린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것이었다. 

‘가디언’이라는 별칭이 자신을 칭하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는 카라마츠가 씩- 미소지으며 검지를 들어 흔들었다.


“논논~, 스튜던트~? 슬리데린이 아니라 브라더-를 욕해서, 다.”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혀를 찬 불량배(bully)가 다시 그 쓸모없는 입을 놀리려는 순간, 슥- 하고 뒤에서 다가오는 검은 구름에 놀라 뒤돌았다.


“어이쿠…. 나름 눈치는 빠르네—? 무슨 이야기 중?”

히힛, 하고 웃으며 기척도 없이 다가온 이치마츠의 질문에 불량배 둘의 얼굴이 금방 사색이 되었다.


“있지, 그거 알아? 내가 실수로 마비가 되는 물약을 흘렸는데 말이야…. 어쩌면 네 부엉이가 그걸 핥아먹었을 지도 몰라…. 힛.”

조근조근 이치마츠가 내뱉는 말에 불량배들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낮고 거친 목소리로 큭큭, 웃는 이치마츠가 또 어떤 무시무시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불량배들은 망토를 휘날리며 복도를 뛰어 빠져나갔다.


“여~! 이치맛쨩!”

“오소마츠 형, 이번에 도박한 거 걸리면 기숙사 점수 감점이니까. 부디 교수님들에겐 걸리지 말아줘.”

“오케~!”

“아니, 그 전에 못 하게 말리라고!!”

제 옆으로 다가오는 이치마츠를 기쁘게 반긴 오소마츠가 검지와 엄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며 흔쾌히 대답했다. 

쵸로마츠의 태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치마츠와 잡담을 나누던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와 쥬시마츠를 보며 진지한 얼굴로 목소리를 깔았다.


“카라마츠, 쥬시마츠.”

“응? 뭔가? 형님.”

“응~?”

“이번 경기…. 꼭 이겨라! 나, 너네한테 전재산 걸었다구~!!”

항상 헤실헤실 미소를 갖추고 있던 얼굴을 굳힌 오소마츠에게 얼굴을 모은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오소마츠의 발언에 빙그레 웃으며 엄지를 들어보였다.


“물론이다! 어떤 위협이든 이 카라마츠가 지켜보이지!”

“나도! 꼭 골든스니치 잡겠슴닷~!”

“아니, 오소마츠 형은 슬리데린을 응원하라고…. 자기 기숙사 놔두고 뭐하는 건데….”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카라마츠와 쥬시마츠를 보며 빵긋 웃는 오소마츠를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는 토도마츠가 중얼거렸다. 

거기에 또 쵸로마츠가 껴들어 태클을 걸고,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괴롭히고, 토도마츠가 쥬시마츠를 챙겼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오소마츠가 즐겁게 웃었다. 



비록 기숙사는 뿔뿔히 흩어졌어도 육둥이는 여전히 사이가 좋았다. 

기숙사에 맞게 성격이 많이 변했어도 그들은 육둥이였고, 호그와트 역사에 오래 기록될 사고뭉치들이었다.






3.


부드럽게 빗자루를 비틀어 땅에 내려앉은 카라마츠가 빗자루에서 내리며 땀을 닦아냈다. 

이번 예선에서 이긴 덕분에 결승까지 진출하게 되어 연습이 평소보다 배로 늘었다. 

거친 숨을 다듬으며 하늘을 올려다본 카라마츠가 쥬시마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직 저 높은 상공에 떠 있는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손을 마주 흔들더니 손가락으로 카라마츠 뒤를 가리켰다.


“카라마츠 형아~!! 뒤에~!”

하늘에 가득 퍼지는 커다란 쥬시마츠 목소리가 힘을 잃고 카라마츠 귀에 닿았다. 

고개를 기울이고 짙은 눈썹을 찌푸린 카라마츠가 몸을 돌린 순간, 덥썩 품에 안겨오는 인영에 카라마츠가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형님.”

“카라마츄~! 들어봐아~! 약초학 교수님이 너무하다구우~~!”

울상이 된 얼굴로 제 품에 안긴 채 찡찡대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또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올 대답을 예상하며 묻자 오소마츠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들었다.


“저번에 돈 걸고 빗자루 경주하자고 했던 게 들켜서 약초학 교과서를 챕터 1부터 5까지 정리해오라고 했다구~! 너무하지 않아!? 빗자루 경주가 그렇게 나쁜 일!?”

“자업자득이다.”

“너무해~! 주말 다 반납해야 된다구우~.”

우는 소리를 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카라마츠가 통통 가볍게 오소마츠 머리를 두드렸다.


“오소마츠 형아~!”

언제 내려왔는지 빗자루를 휘두르며 오소마츠를 향해 뛰어온 쥬시마츠가 울상이 된 오소마츠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일 있슴까?”

“쥬시마츠우~!”

카라마츠에게서 쥬시마츠로 타겟을 옮긴 오소마츠가 쥬시마츠를 껴안고 다시 투덜대기 시작했다.


“교수님이 너무해애~!”

“하핫! 또 벌 받았슴까?”

“응~.”

“저번처럼 안 하면 될 일 아닌가.”

징징대는 오소마츠를 쥬시마츠가 달래는 모습을 보며 카라마츠가 차가운 말을 던지자 오소마츠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번에 안 해오면 맨드레이크 화분 갈이를 도우라고 하셨다구~. 횽아는 싫어~!! 맨드레이크라니이~!”

허공에 대고 비통하게 외치며 우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함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짙은 눈섭을 더욱 찡그렸다. 

쥬시마츠 품에서 떨어지지 않고 “우~.” 하고 신음하는 오소마츠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카라마츠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동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브라더-!”

“이 바보 장남은 또 왜 이러고 있어?”

“보나마나 또 벌 받았나보지. 참, 쥬시마츠 형!”

“응~?”

오소마츠를 보자마자 혀를 차는 쵸로마츠에게 혼잣말처럼 대답을 흘린 토도마츠가 해맑은 얼굴로 쥬시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등에 팔을 두른채로 저를 쳐다보는 쥬시마츠에게 다가간 토도마츠가 억지로 쥬시마츠와 오소마츠를 찢어냈다.


“이치마츠 형 어디있는지 알아?”

“이치마츠 형아?”

“응.”

오소마츠를 걸레짝 던지듯 카라마츠 쪽으로 쳐낸 토도마츠가 이치마츠를 찾자 쥬시마츠가 눈을 깜빡이며 커다란 물음표를 띄웠다. 

옆에 있던 쵸로마츠도 “이치마츠는 왜?” 하고 묻자, 토도마츠가 나름 귀엽다고 생각하는 표정으로 툴툴댔다.


“변신술 낙제 맞을 것 같아서…. 이치마츠 형한테 노하우 좀 들으려고.”

“헤—.”

토도마츠의 설명에 건조한 신음을 흘린 쵸로마츠가 쥬시마츠를 보며 “그래서 이치마츠는 어디 있는데?” 하고 쥬시마츠에게 물었다.


“이치마츠 형아라면 금지된 숲으로 산책갔슴닷!”

“하아!? 금지된 숲으로!?”

“용케 거길 가네, 그 녀석….”

경악하는 토도마츠를 보며 작게 중얼거린 쵸로마츠가 온갖 인상이란 인상은 다 찌푸린 토도마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톳티-, 저기.”

“‘톳티-’라고 부르지 말,”

쵸로마츠의 부름에 팩 고개를 돌리고 화를 내려던 토도마츠가 쵸로마츠가 가리킨 방향으로 눈을 돌리며 말을 잃었다. 

터덜터덜, 형제들 쪽으로 걸어오는 이치마츠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치마츠 품에 안긴 동물이 고양이가 아닌 것에 놀란 형제들이 다가온 이치마츠에게 물었다.


“뭐야? 그 생물은….”

쵸로마츠의 질문에 이치마츠가 머쓱하게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금지된 숲에서…, 날 따라왔어.”

““““하아!? 그걸 주워왔어!?””””

쥬시마츠를 뺀 형제들의 비명에 이치마츠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긴 건 너구리 같은데?”

어느새 동생들 곁으로 다가온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이며 이치마츠 품에 안긴 동물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카라마츠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소마츠의 말에 동의했다. 

울지도 않고 오소마츠의 눈을 마주보며 귀를 쫑긋이는 동물의 모습에 쵸로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교수님께 말씀 드리자. 생긴 건 너구리 같아도, 금지된 숲에 사는 녀석이면 보통 너구리는 아닐거야.”

“그렇겠지~.”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머리를 긁적이며 맞장구를 쳤다. 

이치마츠는 형들의 대화를 들으며 짧은 눈썹을 구기고 제 품에 안긴 동물을 바라보았다.


‘꼬르륵—’

공기를 울리며 퍼지는 소리에 육둥이의 눈이 너구리(를 닮은 생물)에게 향했다. 

조금 전까지 얌전히 이치마츠에게 안겨있던 너구리가 얼굴을 찡그리고 꼬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배고픈가봐.”

토도마츠의 추측에 다시금 ‘꼬르륵~’ 하는 작은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핫, 배고픈 녀석을 그냥 보내긴 그렇고…. 뭘 좀 먹이고 내일 데려갈까?”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버릇처럼 검지로 코 밑을 문지른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의 등을 툭 쳤다. 

오소마츠의 말에 하늘이 벌써 검게 물들었다는 것과 저들을 제외한 학생들은 모두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간 것을 눈치챈 형제들이 말없이 오소마츠의 뒤를 따랐다. 

발이 빠른 쥬시마츠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길게 늘어난 소매 속에 음식을 숨겨 층계로 뛰어왔다. 

꾸르륵 꾸르륵-, 배를 울리다못해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있는 너구리에게 한눈에 봐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을 내주자, 이치마츠 품에서 뛰어내린 너구리가 음식에 얼굴을 박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에 바로 교수님께 데려갈 거니까!”

“알고 있다궁~. 그렇게 잔소리할 필요 있어~? 쵸로 씌~.”

“원래는 발견한 즉시 데려갔어야 했다고!”

목에 핏대를 세운 쵸로마츠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고개를 돌린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말했다.


“이치맛쨩~. 이 녀석, 어디서 재울 거야?”

“어…?”

“이치마츠가 오늘밤만 데려가면 되잖아.”

오소마츠의 질문에 이치마츠가 당황한 듯이 한심한 소리를 흘렸다.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치마츠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간단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무리야. 우리 기숙사 지하고….”

“그럼 누가 데려가서 재울 건데?”

잘게 고개를 젓는 이치마츠에게서 시선을 돌린 쵸로마츠가 형제들을 둘려보며 물었다. 

그때, 너구리가 밥 먹는 모습을 관찰하던 쥬시마츠가 번쩍 손을 들었다.


“나나나나나!! 우리 기숙사에 데려가겠슴닷!!”

“오~! 굿 아이디어다! 쥬시마~츠!”

쾌활하게 웃는 쥬시마츠와 똥폼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카라마츠를 탁한 눈으로 바라본 쵸로마츠가 “아냐….” 하고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데려갈게. 쥬시마츠랑 카라마츠는…, 불안하니까.”

쵸로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쵸로마츠!? 와이!?” 하고 카라마츠가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깔끔하게 무시한 쵸로마츠가 그새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 너구리를 안아 들었다.


“그럼 우리가 데려갈 테니까-. 내일 보자.”

“오~. 잘 자, 쵸로 씌~. 톳티-도~.”

“그-러-니-까—!! ‘톳티-’라 부르지 말라구! 형들도 잘 자~.”

형제들보다 커다란 눈동자를 험악하게 빛내며 협박하듯 낮게 조아린 토도마츠가 단번에 표정을 바꿔 상쾌하게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단 몇 초만에 바뀌는 표정에 내심 감탄하며 손을 흔들어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를 배웅한 오소마츠가 이치마츠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 그러면 우리도 갈까~?”

“응…. 잘 자, 쥬시마츠.”

“안녕히 주무십쇼! 오소마츠 형아! 이치마츠 형아!”

“굿 나잇~! 마이 프레셔스 브라더-!”

“죽인다, 개똥마츠.”

“엩.”

평소와 같은 인사를 주고 받은 오소마츠와 이치마츠가 계단을 내려갔다.

슬리데린의 기숙사는 특이하게도 지하에 있었다. 

축축하고 습한 기숙사를 이치마츠는 은근히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오소마츠와 이치마츠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본 카라마츠와 쥬시마츠도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계단을 올랐다.






4.


“…형,”

“으음….”

“쵸로마츠 형!!”

어깨를 흔들며 자신을 부르는 토도마츠 목소리에 쵸로마츠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도 밤에 혼자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토도마츠가 또 같이 화장실 가달라는 이유로 깨우는 것이라 짐작한 쵸로마츠가 짜증을 내며 눈을 떴다.


“아, 왜….”

“너구리…, 없어졌어.”

“하아?!”

순식간에 잠이 달아나고 이불을 차고 벌떡 일어난 쵸로마츠가 토도마츠 침대 옆에 자고 있어야 할 너구리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너구리의 모습에 사색이 된 쵸로마츠가 마찬가지로 시퍼런 얼굴을 한 토도마츠와 눈을 맞췄다.


“어, 디로 간 거야…?”

“내가 알 리 없잖아~~!!”

멍청히 중얼거리는 쵸로마츠에게 토도마츠가 울먹이며 외쳤다. 

파하~,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하늘색 파자마 위에 카키색 외투를 걸쳤다.


“다른 녀석들도 얼른 깨우러 가자.”

레번클로 기숙사를 서둘러 나가는 쵸로마츠를 따라 토도마츠가 외투를 집어들고 뛰었다.




그리핀도르 기숙사 입구 앞에서 눈썹을 찌푸린 쵸로마츠가 머리 위로 검은 구름을 피웠다. 

기세 좋게 그리핀도르까지 온 것은 좋으나 그리핀도르의 암호를 쵸로마츠는 알지 못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전에 쥬시마츠가 알려준 암호를 댔지만, 정기적으로 바뀌는 기숙사 암호가 맞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푹-, 한숨을 쉬고 초조하게 다리를 떨던 쵸로마츠가 딸깍 소리를 내며 열리는 기숙사 문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어? 마츠노다.”

“아, 안녕. 잠깐 카라마츠랑 쥬시마츠한테 볼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들어가~.”

쵸로마츠는 면식도 없는 그리핀도르의 학생이 흔쾌히 몸을 비켜주었다.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육둥이를 모르는 학생은 없었고, 특히 육둥이가 속해있는 기숙사 학생이라면 백이면 백, 육둥이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다.

기숙사 밖으로 나가며 친절하게 손을 흔든 학생에게 가볍게 눈인사하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간 쵸로마츠가 익숙하게 카라마츠와 쥬시마츠 방으로 발을 옮겼다.


“카라마츠! 쥬시마츠! 당장 일어나!!”

이불을 둘둘 감고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쥬시마츠를 때려 깨운 뒤, 카라마츠의 이불을 단번에 뺏어 깨운 쵸로마츠가 방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너구리가 없어진 것을 알렸다.



“아! 크리스틴~!”

“어? 토도마츠다! 여긴 웬일이야?”

슬리데린 기숙사 입구에서 망설이던 토도마츠가 마침 기숙사로 들어가려던 여학생 하나를 붙잡았다. 

빨간 머리에 매력적인 주근깨를 가진 여학생이 후후 웃으며 토도마츠에게 걸어갔다.


“하하-, 형들한테 볼일이 있어서…. 형들보다 크리스틴을 보러 왔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후후, 여전히 말은 잘 하네~. 여기서 잠깐 기다려. 안에 존이 있을 테니까 말 전해줄게.”

“고마워~!”

어색하게 웃으며 과장된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에게 잔잔한 미소를 보낸 여학생이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10분 정도 지나자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한 이치마츠가 크게 하품을 하며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뭔데….”

“너구리가 없어졌어!”

“하!? 잘 지키고 있었어야지!!”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얼굴을 가까이 접근한 토도마츠의 속삭임에 이치마츠가 복도가 울리도록 큰 소리를 냈다. 

좀처럼 언성을 높이지 않는 이치마츠의 외침에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하자 이치마츠가 긴장해 몸을 움츠렸다.


“하아!? 내 탓이라는 거야!? 애초에 너구리를 주워온 건 이치마츠 형이잖아!!”

“칫, 여기서 기다려. 오소마츠 형 깨워서 데려올게.”

“빨리 깨워!”

“알고 있다고!”

토도마츠의 항의에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더 몰리는 것을 겁낸 이치마츠가 다시 목소리를 낮추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시시각각 방향이 바뀌는 마법의 층계에 모인 육둥이가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어, 어쩌지…? 쵸로마츠 형….”

울상이 된 토도마츠에 이어 쥬시마츠도 항상 벌리고 있던 입을 꾸욱 다물고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이치마츠는 말이 없었지만 평소보다 더 무겁고 어두운 오라를 풍기고 있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동생들을 보며 시선을 교환한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카라마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일단 우리 뿔뿔히 흩어져서 찾아보자. 분명 학교 안에 있을 거야.”

짝, 하고 박수쳐 분위기를 바꾼 쵸로마츠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덜컹, 하고 육중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 층계를 육둥이가 모두 흩어져 하나씩 올랐다.






5.


학교 앞 잔디밭으로 나온 카라마츠가 차가운 아침 공기를 잔뜩 들이마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침 수업에 늦어 잔디밭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학생들은 몇 보였지만, 갈색 몸을 가진 너구리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짙은 눈썹을 팩 찌푸린 카라마츠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선배의 목소리에 발을 멈췄다.


“카라마츠! 혹시 오늘 빗자루 보관실에 갔었어?”

“엩. 아니, 간 적 없다만….”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의 주장이 던진 질문에 카라마츠가 무고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하고 작게 카라마츠의 대답을 곱씹은 주장이 근심 가득한 얼굴을 들어올렸다.


“곧 연습 시간인데 빗자루가 전부 없어졌어. 우리 것뿐만 아니라 다른 기숙사 것도. 혹시 어제나 오늘 아침에 수상한 녀석 보지 못했어?”

“아니, 본 적 없다.”

“하아~, 대체 누가 빗자루를 전부 가져간 건지…. 이래선 연습을 못하잖아. 그럼 카라마츠, 너도 빗자루가 있을 법한 곳이나 빗자루를 가져간 범인 좀 찾아봐.”

“아, 알겠다.”

어깨에 툭 손을 올렸다가 지나가는 주장의 모습에 카라마츠 미간에 맺힌 주름이 더 깊어졌다. 

너구리가 없어진 것도 큰일인데, 빗자루까지 없어지다니. 

대체 누가, 그리고 왜.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단서 하나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쓰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흠….” 하고 목을 끓은 카라마츠가 건물로 향했던 발을 돌려 학교 뒤편에 있는 검은 호수로 향했다.



검은 호수의 비릿한 물냄새가 점점 진해지고, 카라마츠의 발걸음도 이유를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점점 빨라졌다.

거의 뛰다시피해 호수 근처에 도달했을 때, ‘퐁당’하고 검은 호수에 어울리지 않는 청명한 소리가 귀에 닿았다.


“아앗!? 네가 범인이었나, 리를 애니멀!!”

검은 호수의 부두 위에 잔뜩 쌓인 빗자루를 하나씩 호수에 버리고 있는 너구리를 향해 외친 카라마츠가 발을 더 빨리 놀렸다. 

잔물결을 일으키는 호수를 재미있다는 얼굴로 쳐다보던 너구리가 뿅, 하고 위로 튀어올라 자신을 붙잡으려는 카라마츠의 손을 피했다. 

관성의 법칙을 따라 너구리를 잡지 못하고 앞으로 기우는 카라마츠의 등을 밟은 너구리가 카라마츠 뒤에 안착함과 동시에 카라마츠가 크게 고꾸라졌다. 


“크읏~!”

나무판자에 쓸린 턱을 붙잡고 몸을 일으킨 카라마츠를 보며 너구리가 배를 잡고 뒹굴었다. 

킬킬거리는 너구리를 보며 짙은 눈썹을 씰룩인 카라마츠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너구리를 향해 눈을 빛내며 다가갔다.


“리를 애니멀~? 거기 얌전히 있어라. 스테이 컴-.”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여 너구리에게 다가간 카라마츠가 빠른 속도로 팔을 흔들었지만 켈켈 웃던 너구리가 튀어오르는 것이 더 빨랐다. 

휙, 하고 튀어올라 카라마츠의 손을 피한 너구리가 다시 즐겁게 꼬리를 흔들며 카라마츠를 향해 웃음을 던졌다. 

명백하게 저를 비웃는 너구리의 웃음에 이마에 힘줄 하나를 솟아낸 카라마츠가 콧김을 내뱉으며 화를 가라앉히고 망토에 손을 넣어 완드를 꺼냈다. 

짙은 갈색에 나무결이 그대로 보이는 완드는 소나무에 용의 심장을 넣어 만든 것이었다. 

형제들과 똑같은 완드를 꺼내 너구리에게 겨눈 카라마츠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마법 주문을 읊으려는 순간 너구리가 나뭇잎 하나를 꺼내 제 머리 위에 올렸다.


“응~? 그런 나뭇잎을 꺼내 뭘 하려는 거지~?”

가소롭다는 뜻을 담아 말꼬리를 올린 카라마츠를 향해 씨익-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운 너구리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 재주를 부렸다. 

너구리가 땅에 발을 대자마자 ‘퐁’ 하고 하얀 연기가 일어나 카라마츠의 시야를 가렸다.


“무슨?!”

갑자기 피어난 연기에 놀라 서둘러 너구리가 서 있던 곳으로 달려간 카라마츠가 연기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인영에 말을 잃었다.


“에…?”

살랑살랑, 좌우로 크게 꼬리를 너울거리며 연기를 쫓아낸 그것은 너구리가 아니었다. 

붉은 비늘에 감싸인 유선형의 꼬리와 금붕어처럼 얇고 반짝이는 지느러미, 산호와 조개로 화려하게 머리를 장식하고 비단같은 소매를 흔들고 일으킨 상체는 뽀얀 피부가 훤히 드러나있다. 

카라마츠 눈앞에 있어야 할 너구리가 아닌, ‘인어’가 다소곳이 땅에 앉아있었다. 

검은 호수에 인어의 한 종류인 ‘실키’가 있다는 것은 호그와트 학생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호그와트에 살고 있는 인어인 실키는 인간이 보기에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생물이었다. 

카라마츠는 한번도 실키를 본 적 없었지만, 우연히 실키를 봤던 오소마츠에게 자세히 들어 그들의 외모를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읏,”

찰싹, 하고 지면에 지느러미를 살짝 내리치고 카라마츠에게 다가온 인어는 카라마츠가 알고 있는 (혹은 추측하고 있는) 모습과 정반대였다. 

햇빛 하나 받은 적 없는 듯한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곡선을 이룬 꼬리, 반짝반짝 빛나는 선명한 붉은 비늘과 그리고…,


“오, 소마츠…?”

자신의 단 하나뿐인 형, 오소마츠를 닮은 얼굴.


카라마츠의 부름에 눈을 가늘게 뜨고 배시시, 앙큼한 미소를 흘린 인어가 한 발자국 더 카라마츠에게 접근했다. 

볼에 옅은 홍조를 피우고, 방금 물에서 올라온 것같은 촉촉한 피부를 뽐내며 다가오는 인어의 모습에 카라마츠는 당황하며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곧 카라마츠 코 앞까지 다가온 인어는 카라마츠 어깨에 손을 올리고 꼬리에 힘을 주어 몸을 위로 올렸다. 

카라마츠와 비슷한 높이까지 몸을 올린 인어가 상글상글 웃으며 카라마츠에게 몸을 비볐다.

어깨에 올렸던 손을 카라마츠 목에 감아 깍지끼어 매달리듯 카라마츠에게 몸을 가져간 인어의 미소와 눈을 조금만 내리면 보이는 하얀 피부, 상체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탓에 보이는 가슴과 그 가운데 자리잡은 분홍빛 돌기까지. 

모든 것이 카라마츠를 번민에 빠뜨리다 못해 작은 컵에 넣고 마구잡이로 휘저은 것 마냥 이성을 위태롭게 흔들었다. 

꼬리를 느긋하게 흔들며 카라마츠 뺨에 제 볼을 비빈 인어가 카라마츠 귓가에 작게 “카라마츄~.” 하고 오소마츠와 똑같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결국 욕망의 허리케인에 휩쓸린 카라마츠가 코피를 내뿜으며 장렬하게 쓰러졌다. 

행복한 얼굴로 쓰러진 카라마츠를 보며 눈을 찡긋이고 크게 웃은 인어가 다시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에 휩싸였다. 

연기가 사라지자 인어는 온데간데 없고 다시 너구리가 나타나 쓰러진 카라마츠의 배를 밟고 지나가 호숫가를 빠져나갔다.






6.


혹시 아직 기숙사에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자기나 토도마츠가 못 보고 지나쳤을 가능성을 좇아 다시 기숙사로 돌아간 쵸로마츠가 쿠션과 이불을 들썩이며 너구리를 찾았다. 

커다란 캐리어를 열어보아도, 이불을 아무리 들어올려도 너구리의 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쯧, 하고 짜증 섞인 혀를 찬 쵸로마츠가 벽난로가 타오르고 있는 휴게실로 나왔다. 

같은 기숙사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지만, 이치마츠가 멋대로 금지된 숲에서 주워온 정체도 모르는 생물을 함께 찾아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아~, 한숨을 내쉬고 휴게실을 샅샅이 찾아보던 쵸로마츠가 여학생 방 쪽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허리를 폈다. 


“꺄악~!!!”

탁탁탁, 요란한 발소리를 울리며 여학생 방에서 계단을 내려온 것은 쵸로마츠가 남몰래 연모하던 ‘레이카’였다.  


“레, 레이카!? 무슨 일이야!?”

“저, 저기에!”

분홍빛 머리칼을 흩날리며 휴게실에 뛰어들어온 레이카가 쵸로마츠 뒤로 몸을 숨기고 계단을 내려오는 한 생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여학생 방 쪽에서 나온 너구리가 음흉한 얼굴로 레이카를 쫓아 계단을 내려왔다.


“너!? 어디 있었어! 거기 가만히 있어!!”

레이카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기회라는 것을 깨달은 쵸로마츠가 과장된 몸짓으로 완드를 꺼냈다. 

형제와 똑같은 33cm 소나무 완드를 휘두르며 마비 주문을 외우려던 쵸로마츠가 ‘퐁’ 하고 피어난 연기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 

연기 너머로 드러난 너구리의 모습에 쵸로마츠의 동공이 경악에 물들며 동그랗게 커졌다. 

쵸로마츠 뒤에 숨은 레이카와 같은, 그리핀도르의 여학생 교복을 입은 오소마츠가 너구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다.

어버버, 입을 벙긋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쵸로마츠에게 가살궂게 웃은 오소마츠가 양손을 슬쩍 들어올렸다. 

밖에 나가서 너구리를 찾고 있어야 할 오소마츠가 왜 그리핀도르 기숙사에 들어와있는지는 몰라도 오소마츠가 입은 여학생 교복에 넋이 나간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줄무늬 넥타이 위에 회색 니트를 입고, 짙은 색의 치마를 입은 오소마츠의 다리는 무방비하게 일자로 뻗은 다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무릎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치마자락의 끝을 손가락에 건 오소마츠가 얄궂게 웃으며 손을 위로 올렸다. 

자연스럽게 치마자락도 손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사락사락, 천과 맨살이 스치는 소리를 내며 무릎 위, 허벅지로 올라간 치마 끝에 쵸로마츠가 인중을 길게 빼고 숨을 들이마셨다. 

항상 덜렁대는 탓에 상처가 가득했던 둥근 무릎과 적당히 살이 붙은 하얀 허벅지에 쵸로마츠가 본능을 따라 몸을 굽혔다.

못 볼 것을 본 것 처럼 자신을 어이없이 쳐다보는 레이카의 시선도 눈치채지 못한 채, 슬슬 올라가는 오소마츠의 치마자락을 따라 점점 더 몸을 아래로 내린 쵸로마츠가 상승을 멈춘 손을 원망스럽게 응시했다. 

속옷이 보일 것처럼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손을 멈춘 오소마츠가 실실 웃으며 허리를 흔들자, 치마의 주름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응응음음음~~!!!”

“…대~박.”

세모꼴의 입을 더욱 올리고 흔들리며 보일듯 보이지 않는 그 너머에 신음하는 쵸로마츠를 보며 레이카가 작게 중얼거렸다. 

가슴께에 모은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며 안달내는 쵸로마츠의 모습에 야릇한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다시 손을 움직인 그때,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쵸로마츠 얼굴에 티슈곽이 박혔다. 

소파 옆 테이블에 있던 티슈곽을 재빠르게 집어 던진 오소마츠가 씩- 웃더니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너구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눈을 빙빙 돌리며 기절한 쵸로마츠를 킬킬 비웃은 너구리가 여유롭게 레이카의 다리 사이를 지나가 그리핀도르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7.


아침부터 육둥이가 흩어져 너구리 찾기를 했건만, 점심 시간이 가까워진 지금도 그 누구 하나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층계와 복도를 오가며 너구리를 찾던 쥬시마츠도 너구리의 꼬리도 찾지 못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쉰 쥬시마츠가 복도 창밖에 높이 솟은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내려주는 해를 본 순간, 뱃고동이 울렸다. 

꼬르륵 꼬르륵~, 피리를 부는 것처럼 연달아 울리는 소리에 쥬시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형제가 없음을 확인한 쥬시마츠가 연회장으로 발을 돌렸다. 

잠깐 밥 좀 먹고 온다고 너구리가 갑자기 땅으로 꺼지진 않을 것이다. 

맛난 점심 식사를 할 생각에 입안에 도는 군침을 삼킨 쥬시마츠가 연회장 안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모여있는 학생 무리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왜 아무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가, 그 궁금증은 연회장 안을 들여다본 순간 풀렸다.

테이블에 올라가 있어야 할 음식들이 접시 째로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아!!”

이게 무슨 일이냐, 수근대는 학생들 사이에서 쥬시마츠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학생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떠 있는 음식들 사이로 자유롭게 부유하며 요리를 집어먹는 너구리의 모습에 쥬시마츠는 온몸의 땀샘에서 땀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훔쳐낸 쥬시마츠가 허겁지겁 학생들을 헤치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타고난 괴력으로 커다란 연회장 문을 쾅! 닫자, 문 너머에서 학생들이 소근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쥬시마츠를 알고 있는 학생들이 쾅쾅 문을 두드리며 쥬시마츠를 부르는 가운데 손가락을 꿈틀대며 준비태세를 갖춘 쥬시마츠가 허공에 떠 있는 너구리를 노려보았다.


“우럇!!”

기합을 외치며 테이블을 차고 뛰어오른 쥬시마츠가 너구리가 떠 있는 공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저를 향해 날아오는 쥬시마츠를 본 너구리가 당황하며 허공에 다리를 뻗어 바삐 움직였다. 

날개를 파닥이는 새처럼 다리를 힘껏 휘저은 너구리가 공중에서 이동해 쥬시마츠의 손아귀를 피했다.


“다시 한 번~!!”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착지한 쥬시마츠가 쉬지 않고 다시 다리를 스프링처럼 튕겼다. 

테이블을 차고 올라가 공중에 있는 너구리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너구리는 아쉽게 쥬시마츠의 손을 빠져나갔다. 

테이블과 의자, 벽까지 차면서 자신을 붙잡으려는 쥬시마츠를 놀리는 것처럼 너구리가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움직이며 아직도 부유하고 있는 음식들을 집어 먹었다. 

냠냠, 볼을 가득 부풀리고 행복한 얼굴로 혼자 요리를 만찍하는 너구리의 모습에 “익!” 하고 눈썹을 찌푸린 쥬시마츠가 다리를 접어 몸을 작게 움츠렸다.


“캐논 볼~!!!”

외치며 단번에 다리를 핀 쥬시마츠가 빠른 속도로 너구리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여기까진 닿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던 높이까지 껑충 뛰어오른 쥬시마츠의 모습에 당황한 너구리가 허둥지둥 나뭇잎 하나를 꺼내 머리 위에 올렸다.


“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요정으로 변한 너구리에 쥬시마츠가 공중에 멈췄다. 

따로 마법을 부린 것도 아니지만 날아가던 상태 그대로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멈춘 쥬시마츠가 멍청히 요정을 응시했다. 

초콜릿을 닮은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둥글게 부푼 치마를 흔드는 붉은 머리의 요정은, 육둥이의 장남 오소마츠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같은 얼굴이 여섯있는 육둥이지만, 저마다 얼굴에서 보이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하나로 묶은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올린 작은 요정이 생긋 웃으며 아기보다 더 조그만 손을 입가에 가져갔다.


“chu~♡”

“에엣!?”

작디작은 손을 제 입가에 가져가 쪽, 하고 귀여운 키스를 날린 요정 덕분에 쥬시마츠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바닥에 추락했다. 

쾅! 소리를 내며 정면으로 바닥에 추락한 쥬시마츠를 보고 큭큭 잘게 웃음을 흘린 요정이 훨훨 날아 연회장에 굳게 닫힌 문틈으로 쏙 빠져나갔다.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리 없는 학생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인적이 드문 복도까지 나온 요정은 다시 ‘퐁’하는 소리를 내며 너구리의 모습으로 돌아와 운동장을 향해 뛰어 나갔다.






8.


“대체 어디로….”

인상을 쓰고 운동장을 걷던 이치마츠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자신을 졸졸 따라와 금지된 숲에서 나온 너구리. 

너구리가 없어진 것에 제일 큰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치마츠였다. 

답지않게 필사적으로 온 학교 건물을 해멨지만, 너구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제일 마지막으로 미루었던 바깥까지 나왔지만 여전히 너구리 찾기는 소득이 없었다. 

휴~, 한숨을 내쉰 이치마츠가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작은 비명소리가 귀에 닿았다. 

발을 멈추고 잘못 들은 것인가 확인하기 위해 귀를 기울인 이치마츠에게 다시 한번 얇고 높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항상 반쯤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뜬 이치마츠가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고막을 울리는 맨드레이크의 비명소리가 울리는 온실 앞에 선 이치마츠가 숨을 들이마시고 온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고막을 찢을 듯이 들려오는 맨드레이크의 비명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뻔한 이치마츠가 제 허벅지를 꼬집고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약초학 수업에 쓸 맨드레이크 묘목을 하나씩 화분에서 뽑던 너구리가 온실 안으로 들어온 이치마츠를 그제야 눈치채고 움찔 몸을 떨었다. 

엉망으로 바닥에 떨어진 화분과 흙, 그리고 사람을 기절시키는 비명을 지르는 맨드레이크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이치마츠의 귀와 온실 전체를 울리는 비명에 이치마츠가 재빨리 주머니에서 구겨진 티슈를 꺼내 귓구멍에 밀어넣었다. 

눈썹을 찌푸리는 너구리에게 히힛, 하고 음험한 미소를 던진 이치마츠가 맨드레이크를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을 옮겨 너구리에게 접근했다. 

어느정도 가까워지자 이치마츠가 날쎄게 몸을 날렸지만 손에 들고 있던 맨드레이크 묘목을 이치마츠에게 던진 너구리가 펄쩍 뛰어 도망쳤다. 

너구리가 던진 맨드레이크를 혹시나 상처라도 날까, 부드럽게 화분에 넣어준 이치마츠가 날렵한 몸놀림으로 너구리가 나가기 전에 온실 입구를 막아섰다.


“히히힛, 이제 갈 곳은 없어. 얌전히 이리로 오라구~.”

승리의 미소로 말하는 이치마츠를 분한 듯이 노려보던 너구리가 나뭇잎을 꺼내 퐁, 하고 연기를 내뿜었다.


“에…? 무슨,”

갑자기 피어난 연기에 이치마츠가 영문을 모르고 얼굴을 찌푸리자, 연기 속에서 “냐~.” 하고 고양이 울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헤?”

연기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연갈색 줄무늬의 고양이 옷을 뒤집어쓴 오소마츠였다. 

동물 잠옷처럼 헐렁한 고양이 옷을 뒤집어쓴 모습으로 꼬리를 살랑이며 다가오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기겁한 이치마츠가 말을 더듬었다.


“나, 나는 그런 소, 속임수에 안 속아!”

억지로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외쳤지만,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처럼 이치마츠의 목소리도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치마츠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빵긋-, 웃으며 다가온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의 다리에 고양이처럼 몸을 비볐다. 

골골골, 고양이가 가르랑 거리는 소리까지 내며 이치마츠의 다리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모습에 이치마츠가 두눈을 질끈 감고 신을 찾았다.


‘오—! 이런 젠장, 신이시여~!!! 아냐, 이건 고양이 탈을 쓴 오소마츠 형이 아니야. 저건 그 너구리다…. 속지 말자! 너구리라구, 저건!!’

염불을 외는 승려처럼 마음을 가다듬은 이치마츠가 짐짓 화난 표정으로 오소마츠를 들어올렸다.


“오소마츠 형 얼굴을 해도 네가 너구리인거 알고 있어!”

선언하는 이치마츠를 보며 활짝 웃은 오소마츠, 아니 너구리가 할짝, 작은 혀를 내밀어 이치마츠의 코끝을 핥았다.


“헤…?”

너구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지금은 오소마츠의 얼굴. 제 코를 핥고 수줍게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굳어버린 이치마츠가 버둥거리는 너구리를 놓치고 말았다. 

고양이처럼 몸을 돌려 발부터 착지한 너구리가 쌩- 하니 이치마츠를 지나쳐 온실 문을 열고 도망쳤다. 

남겨진 이치마츠는 그저 망연자실한 얼굴로 멀어지는 너구리를 바라보았다.






9.


계단을 올라 수업이 있는 교실로 향하던 토도마츠가 고개를 돌려 아래를 응시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쳐다보았지만 역시나 너구리는 없었다. 

찾다찾다 도저히 찾을 수 없자 진작에 찾는 것을 포기한 토도마츠는 시간표대로 수업에 참석했다. 

남은 것은 점성학 수업뿐. 남은 형제들이 무사히 너구리를 찾기를 빌며 토도마츠가 저를 부르는 동급생을 따라 교실에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수업 시작 전 가벼운 잡담을 나누던 토도마츠가 교실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교탁으로 돌렸다.

 교실로 들어온 교수님이 교탁으로 걸어오는 그 짧은 시간에 토도마츠의 얼굴이 변했다.


‘저 녀석이 왜 저기 있어!?’

교탁 아래 숨어있던 너구리가 빼꼼 얼굴을 내민 것을 토도마츠가 목격하고 입을 벌렸다.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더니 교실에 숨어 있었던 것인가, 눈썹을 찌푸린 토도마츠가 너구리가 들어올린 무언가에 놀람을 경악으로 바꾸었다. 

빨간 방석 같이 생긴 그것을 교수님이 앉을 의자에 살포시 내려놓은 너구리가 킬킬대며 다시 교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토도마츠는 너구리가 의자에 놓은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머글 세계에 놀러 갔을 때 오소마츠가 장난으로 샀던 그것, 바로 방구 방석. 집에서 형제들을 상대로 오소마츠가 몇 번이고 사용했던 방구 방석의 위력을 토도마츠는 끔찍한 경험을 통해 배웠다. 

교수님이 그대로 의자에 앉는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한 결과에 토도마츠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수님을 불러 세웠다.


“교수님! 그, 그러니까….”

“네? 무슨 일이죠? 마츠노 학생.”

“저, 저기…. 도, 동양에는 12간지라고 해서 한 해를 대표하는 동물이 있는 걸 아시나요? 그 동물이 대표하는 연도에 태어났다는 것으로 점을 치기도 하는데….”

“호오~, 그것 참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마츠노 학생이 자료를 준비해준다면 다음 수업시간에 발표를 부탁해도 될까요?”

교수님을 멈춰 세우겠다는 목적만으로 횡설수설 떠들던 토도마츠가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구요…,”

“아쉽게도 오늘은 이미 수업 내용이 정해져 있으니 다음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죠.”

생긋 웃으며 토도마츠에게 강요아닌 강요를 한 교수님이 다시 교탁으로 걸어갔다.


“교수님! 그리고 동양에는 별자리에 따라서 하루의 운세를 점치는 것도,”

“그건 서양도 마찬가지랍니다, 마츠노 학생.”

어떻게든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한단 생각에 늘어놓은 이야기를 부드럽게 멈춘 교수님이 교탁 앞에 섰다. 

“자, 오늘 수업을 시작할까요?” 하고 인자하게 웃으며 의자에 엉덩이를 내리는 교수님을 보며 토도마츠가 고개를 푹 숙였다. 

엉덩이가 의자에 내려앉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엎드려 얼굴을 파묻은 토도마츠에게 현실은 너무나 잔인했다.


“뿌우웅——!!”

교실에 크게 울려 퍼지는 소리에 이어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방석에서 새어나왔다. 

계란을 썩인 듯한 냄새에 학생들 모두 얼굴을 찡그리고 코를 붙잡았다.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은 토도마츠뿐. 교실에 있는 학생 전원은 교수님이 실수를 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 내에서 괴짜로 뽑히는 교수님은 얼굴을 붉히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킁킁, 허공에 코를 올리고 냄새를 맡은 교수님이 심각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죽음…! 죽음의 냄새다!! 모두 지금 당장 이 교실을 나가세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교수님 뒤로 의자가 넘어지면서 쿠당탕 하고 소음을 만들어냈다. 

얼이 빠진 토도마츠를 놔두고 학생들이 교수님의 외침에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빠져나갔다.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갔는지도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공황 상태에 빠진 교수님가지 교실을 나가고 남은 것은 토도마츠와 너구리 그리고 지독한 냄새뿐이었다.


“후, 후후후후….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붙잡기나 하자….”

자포자기한 눈으로 마른 웃음을 흘린 토도마츠가 자리에서 일어나 완드를 들고 교탁으로 걸어갔다. 

교탁 아래서 일련의 사건으로 모두 지켜보고 배를 잡고 웃던 너구리가 토도마츠가 다가오는 발소리에 귀를 쫑긋거렸다. 

교탁 위로 얼굴을 빼낸 너구리와 눈이 마주치자 토도마츠가 헤헷, 하고 웃으며 웃는 얼굴인 채로 완드를 들어올렸다. 

완드를 부드럽게 휘두르며 주문을 외는 찰나,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너구리가 모습을 바꾸었다.


“…하아!? 너구리 주제에 마법도 쓰는 거!?”

적절한 태클을 걸며 놀라는 토도마츠 앞에 연분홍색 토끼 귀가 돋아난 오소마츠가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다.


“게다가 왜 오소마츠 형으로 변한 건데!!”

짜증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완드를 고쳐 잡은 토도마츠가 저에게 슬슬 가까이 오는 너구리에게 마법을 겨누었다.


“잠~깐만 잠들자~.”

대상을 깊은 수면에 빠지게 만드는 주문을 읊으려던 토도마츠가 행동을 멈추고 저를 빤히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빛에 목소리를 멈췄다.


“뭐, 뭐야!? 그렇게 귀엽게 바라본다고 내가 봐줄 것 같아! 어림도 없어!”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동그란 눈을 더욱 크게 만들어 저를 빤히 쳐다보는 너구리의 얼굴은 토도마츠가 한번도 본 적 없었던 표정을 한 오소마츠의 얼굴이었다. 

그 애처롭게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에 이를 갈며 “으으윽~~~!!” 하고 번민하던 토도마츠가 푹-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완드를 내렸다.


“하아~~, 진짜…. 그렇게 귀여운 건 반칙이라구…. 물론 나만큼 귀엽진 않지만!”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기울인 토도마츠가 몸을 돌려 교실을 나섰다. 

남겨진 너구리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묵묵히 학생들이 먼저 걸어내려간 계단을 밟아 아래로 향했다.






10.


한 자리에 모인 동생들을 쭉— 둘러보며 오소마츠가 어이없는 한숨을 떨어뜨렸다.


“너네 전부 놓쳤다고?”

황당해 묻는 오소마츠에게 동생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왜 놓친 건데?”

순수하게 이유를 묻는 오소마츠에게 동생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당사자인 오소마츠에게 놓친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할 용자는 없었다. 

시선을 피하고 휘파람이나 불며 딴짓을 하는 동생들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오소마츠가 이해되지 않는단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 됐어. 무튼 빨리 그 녀석을 잡지 않으면 큰,”

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도로 나온 너구리와 오소마츠의 눈이 마주쳤다. 

흠칫 놀래며 천천히 발을 뗀 너구리가 오소마츠와 정반대 방향으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앗!! 이 녀석! 거기 서어~!!!”

너구리를 뒤쫓는 오소마츠를 따라 동생들도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복도를 빠르게 달리는 너구리를 쫓아 육둥이가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우당탕탕하는 커다란 발소리가 학교 전체에 울려퍼지고 곧 교수들이 소음이 일어나는 복도로 몰려들었다. 

이리저리 장애물을 잘 피해가며 도망치는 너구리를 쫓으며 육둥이도 몸을 숙이고, 물건을 뛰어넘고, 넘어지고 하며 잔상처를 입었다. 

그렇게 한참을 쫓다가 오소마츠가 방향을 바꿔 정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오소마츠를 말릴 새도 없이 너구리를 뒤쫓던 형제들이 모퉁이를 돈 순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호통을 치는 교수들에게 막혀 너구리를 놓치고 말았다. 

잔뜩 화가 난 교수진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수도 없어 말도 안되는 번명을 만들어내며 식은땀을 흘리는 육둥이의 모습을 본 너구리가 킬킬 웃으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하!! 이리로 올 줄 알았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통로를 통해 너구리가 올 장소를 예측해 먼저 숨어있던 오소마츠가 훅 모습을 드러냈다. 

너구리가 갈 길을 막고 완드를 꺼내든 오소마츠가 히히히, 하고 웃으며 너구리에게 말했다.


“이제 포기해~. 이 카리스마 레전드 오소마츠님을 따돌릴 수는 없다구~.”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오는 오소마츠의 위협에 너구리가 털을 곤두 세우고 으르렁대며 뒷걸음질 쳤다.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면 너구리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침묵 속에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이 흐르고, 오소마츠가 눈을 깜빡이는 틈을 탄 너구리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똑바로 곧게 뻗은 복도를 뛰던 너구리가 유연하게 방향을 선회해 저를 뒤쫓는 오소마츠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며 혀를 길게 내밀었다. 

오소마츠 뒤로 달려가는 너구리를 보며 이를 간 오소마츠가 다시 뒤를 따랐다. 

복도를 달리고 또 달려 모퉁이가 나오자 너구리가 모퉁이로 쏙 모습을 감췄다.


“어딜…!”

벽에 손을 집어 너구리를 따라 속도를 줄이지 않고 모퉁이를 돈 오소마츠가 바닥에 떨어진 금화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조금 전까지 바로 앞에 뛰어가던 너구리는 보이지 않고 바닥에 흩어진 금화에 눈을 깜박이던 오소마츠가 씨익-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만면에 피우고 금화 하나를 들어올렸다.


“가짜 금화로 이 오소마츠 님은 못 속이지~!”

금화가 진짜인지 확인하려는 양 금화를 이 사이에 낀 오소마츠가 금화를 콱 물기도 전에 ‘퐁’ 하는 소리를 내며 금화가 너구리로 모습을 바꾸었다.


“역시~!”

손에 잡힌 너구리를 보며 거만한 미소를 피운 오소마츠가 땅에 떨어진 금화를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자, ‘퐁’ 소리를 내며 금화가 푸른 나뭇잎으로 바뀌었다.


“…이것도 가짜였냐….”

힘없이 중얼거리는 오소마츠를 보며 너구리가 즐겁게 꼬리를 흔들었다. 

버둥대며 오소마츠의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너구리를 꼭 붙잡은 오소마츠가 “용서 못한다.” 하고 이를 갈며 복도를 빠져나왔다.


“오소마츠 마츠노 학생.”

“히익!?”

복도를 나온 오소마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험악한 얼굴을 한 교수진과 교수진에게 이미 붙잡힌 동생들이었다.




낡고 허름하고 축축한 지하실에서 육둥이는 앞에 내밀어진 종이와 깃펜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가 붙잡은 너구리를 데려간 교수진은 멋대로 정체불명의 생물을 학교 안에 들인 경위와 너구리를 잡겠다고 온 학교 안을 들쑤신 과정을 모두 낱낱히 빠짐없이 쓰라는 벌을 내렸다. 

비밀이나 감추는 것 없이 전부 쓰라는 교수의 말에 동생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오소마츠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그것만은 봐 달라고 비는 동생들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응시했다.




결국, 육둥이가 쓴 경위서는 교수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너구리를 쫓겠다고 육둥이가 온 학교 안을 돌아다니고, 또 그동안 너구리가 벌인 사건들은 빠른 속도로 학교 안에 퍼졌다. 

또 육둥이가 거대한 사고를 쳤다고, 학생들이 받아들일 무렵 너구리의 정체를 밝혀낸 교수들이 남몰래 육둥이를 불렀다.


“너희가 붙잡은 생물의 정체를 알아냈다.”

““““““헤….””””””

처음부터 너구리의 정체는 안중에도 없었던 육둥이가 건조하게 대답하자, 흐흠- 하고 헛기침을 한 교수가 말을 이었다.


“마법 생물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일본의 요괴 중 하나인 ‘바케너구리’ 라는 생물이라더구나. 신고되지 않은, 밀수입된 생물로 전문가에게 맡겨 일본의 마법학교인 ‘마호토코로’에 보내기로 했다.”

“네—, 교수님~! 바케너구리가 뭔데요?”

교수의 설명에 오소마츠가 손을 들고 물었다. 후- 하고 한숨을 내쉰 교수가 육둥이를 쭉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도 다 봤겠지만,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너구리라고 한다.”

“헤~, 역시 보통 너구리는 아니었네—.”

교수의 말에 태평하게 머리를 긁적인 오소마츠가 이어진 교수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너희가 쓴 경위서 말인데,”

뒷말을 흐리는 교수를 보며 오소마츠를 제외한 동생들이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잔뜩 긴장한 채로 뻣뻣하게 섰다.

오소마츠만이 그런 동생들을 보며 이유도 알지 못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너희는…, 장남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구나.”

뭔가를 포기한 듯한 교수의 혼잣말 같은 발언에 동생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여전히, 오소마츠만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푸쉬쉬- 연기를 내뿜을 정도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동생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요즘 일도 바빠지고 여유가 없다보니 달아주시는 댓글에 답글을 달 기력이 없네요...ㅠ 그래도 남겨주시는 댓글은 모두 소중히 잘 보고 있습니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랜만에 오소카라 올려봐요~


 * 카라마츠 사변 소재. 약간 카라른..?


 * 공미포  16,188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취급이 전혀 달라~!!!”
놀이터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목발까지 짚은 카라마츠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저 녀석…. 

나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리고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카라마츠~! 너도 얼렁 와~!!”

크게 외치자 저 멀리에 서 있던 카라마츠가 고개를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목발을 옆에 낀 작은 몸은 이쪽으로 오는 일 없이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진짜 뭐 하는 거야…, -.

할 수 없이 한숨을 쉬고 카라마츠에게 걸어가려고 발을 땅에서 뗀 순간, 4개의 그림자가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 카라마츠 형!! 어쩌다 이렇게 다쳤어?!”

, 괜찮아?! 카라마츠? 내가 부축해줄게!”

“…, 똥마츠….”

카라마츠 형아! 괜찮슴깟!?”

저마다 한 마디씩 던지며 달려가는 녀석들의 얼굴은 파칭코에 도착해서야 돈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허구한 날 지붕에서 떨어지고 이치마츠한테 치여서 날아가는 카라마츠가 심하게 다치는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지….


너네 왜 그러냐? 단체로….”

정말 미안해! 카라마츠 형!! 일부러 무시한 건 아니야?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배에 정신이 팔려서….”

, 나도! 미안해, 카라마츠 형.”

각자 한쪽 팔씩 잡고 카라마츠 부축하던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죽을죄를 지었다는 얼굴로 카라마츠에게 사과했다

쵸로마츠는 평소에 잘 쓰지 않는이라는 호칭까지 붙여가면서

이치마츠도 에스퍼 냥이를 안은 채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고, 쥬시마츠는 동공을 풀로 확장한 상태로 긴 소매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카라마츠에게 굽신대는 녀석들도 이상하지만, 연신 사과하는 녀석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카라마츠도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벌써 괜찮다느니, 이미 용서했다느니, 브라더들이 주는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느니, 안쓰러운 소리를 하고 있을 텐데…. 

멀뚱이 지들을 보고 있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쥬시마츠가 얼굴을 반짝이더니 카라마츠를 번쩍 들어올렸다.


집까지 옮겨주겠슴다! 카라마츠 형아!!”

. , 아니아니아니! 괜찮다, 쥬시마,”

카라마츠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쥬시마츠가 카라마츠를 들고 엄청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눈 한번 깜빡였을 뿐인데 벌써 쥬시마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 카라마츠의스타압~!!! 쥬시마츠, 제발 스타압~~!!:” 하는 절규가 이어졌다.

 

 

다 함께 집에 도착하니,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배를 쥬시마츠가 산처럼 쌓아놓고 카라마츠 앞에 내밀었다

웬 배…? 

대체 이 녀석들이 왜 이러나 알 수가 없는데, 쵸로마츠랑 토도마츠는 서둘러 카라마츠 옆에 뛰어가 정성스럽게 배를 깎기 시작했다

진짜 저 녀석들 왜 저래?!?! 

내 옆에 뻘줌히 서 있던 이치마츠도 카라마츠 근처에 엉덩이를 내렸다

한껏 몸을 웅크리고 고양이를 꼬옥 껴안고 있는 게…. 

고양이도 무사히 찾았는데 왜 또 저렇게 기분이 나빠진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일단 나 혼자 서 있기 뭐해서 녀석들이 소란을 떨고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는 배는 깔끔하게 껍질이 벗겨져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 있었다

엄마가 아끼는 접시까지 꺼내온 토도마츠가 친절하게 배게 포크까지 꽂아서 카라마츠 앞에 내밀고 있다

정말…, 한날한시에 태어난 육둥이라도 서로 모르는 게 많구나…. 

작게 한숨을 내쉬며 널려있는 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이!! 망할 장남! 어디서 손을 대!”

아얏!”

배를 들어 입으로 가져가려는 내 손등을 찰싹 때린 쵸로마츠가 귀신같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니, !? 나 뭔가 잘못했음?!


아프잖아! 쵸로마츠!!”

어떻게 이것까지 뺏어먹을 생각을 하냐!? 이 개노답 장남!”

하아!?”

쵸로마츠의 이유 모를 비난에 목소리를 높이자, 카라마츠 뒤에 앉아있던 이치마츠가 음산하게 웃었다.


역시 오소마츠 형은 나보다 더 쓰레기구나…. 이 세상에 살 가치도 없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

왜 갑자기 날 디스 하는 거?!”

어이가 가출해서 외치자 쵸로마츠의 째림과 이치마츠의 정적 속에서 큭큭 하고 작게 웃는 소리가 났다.

“…, ….”

넌 또 왜 웃는데-. 카라마츠!”

어깨까지 떨면서 먹던 배도 내려놓고 큭큭 웃음을 참는 모습에 괜히 화가 나 빽 질렀더니 쵸로마츠의 주먹이 정수리에 박혔다

아프다고 외쳐도 눈길도 주지 않은 쵸로마츠가 카라마츠를 보며 안도했다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한 카라마츠가 하하하 웃음을 터트리고 나자 녀석들도 평소와 같은 상태로 돌아왔다


정말로 뭐였던 거야, 대체….

 

 

 

 

 

2.

 

스륵-, 거실문을 열고 들어온 토도마츠가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에코백을 고쳐 매고 거울을 보고 있는 카라마츠를 불렀다.


카라마츠 형~, 같이 쇼핑 안 갈래~? 이번에 자주 가는 가게가 세일을 한다고 해서~. 카라마츠 형이 좋아할만한 옷도 많이 있더라구~!”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토도마츠의 간드러진 목소리에 거실에 함께 있던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칫, 하고 작게 혀를 찼다

카라마츠가 좋아할만한 옷이 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

토도마츠의 진짜 속셈은 카라마츠를 짐꾼으로 이용하려는 것임을 둘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저렇게나 노골적인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형제 중에 단 한 사람, 당사자인 카라마츠뿐이었다

토도마츠가 반짝이는 눈으로 뚫어지라 저를 보고 있는데도 거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카라마츠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토도마츠. 제안해준 것은 기쁘지만, 오늘은 비가 올 것 같으니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 그래….”

예상하지 못한 카라마츠의 거절에 토도마츠가 추욱 어깨를 늘어뜨렸다

놀란 얼굴로 토도마츠의 권유를 거절한 카라마츠를 응시하고 있던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읏챠—.” 하고 소리를 내며 읽고 있던 만화를 덮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오소마츠를 따라 시선을 올렸다.


한 번 봤던 거라 재미없네~. 나 파칭코 좀 다녀온당~.”

형님, 나갈 건가?”

? . ? 너도 가게?”

—. 비너스의 손에 내 운을 맡기고 싶었던 차였다.”

아야야야야, 갈비뼈가~!!”

어째서?!”

너는 하나하나 말하는데 아프다궁~. 그럼 가자~!”

!”

배를 잡고 아프다는 시늉을 하던 오소마츠가 씨익- 웃으며 코 밑을 문질렀다

거실을 나서 뒤축이 잔뜩 구겨진 운동화에 발을 끼우는 오소마츠 옆에 선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와 함께 집을 나섰다

두 형이 사라진 현관을 가만히 바라보던 토도마츠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거 이상하지 않아?!?!”

토도마츠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얼굴을 찌푸린 쵸로마츠가 푹-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 이상하지.”

그치?! 내가 같이 나가자고 했을 때는 나가기 싫다고 했으면서 왜 오소마츠 형이랑은 나가는 거!?”

아까 오소마츠 형이 오기 전까지 나랑 같이 있는 것도 싫어하던데…. 히힛, 그래. 나 같은 쓰레기랑 한 방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게 어지간히 불쾌하기도 하겠지…. 히히히히히….”

토도마츠의 불평에 이치마츠가 한술 더 떠서 어두운 웃음을 낮게 깔았다.

우주의 암흑물질이라도 머금은 사람처럼 한없이 까만 오라를 내뿜는 이치마츠를 보며 한숨을 내쉰 쵸로마츠가 울상이 된 토도마츠를 보며 말했다.


내가 말을 걸어도 놀라는 눈치더라…. 오소마츠 형하고는 평범하게 있으면서…. 솔직히, 좀 짜증 나.”

그치그치?!”

나도!”

쵸로마츠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 토도마츠가 뒤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쥬시마츠의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나도 있슴닷! 카라마츠 형아, 이제 나랑 같이 노래 안 불러줘…. 시무룩~.”

쥬시마츠 형 부탁까지 거절하는 거야!?”

몸에 힘을 빼고 어깨를 떨어뜨린 쥬시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을 깜빡이던 토도마츠가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눈을 굴리더니 푹 고개를 숙였다.


목욕탕 갈 때도…,”

?”

토도마츠의 혼잣말에 쵸로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홱 고개를 들어 올린 토도마츠가 눈물을 글썽이며 힘겹게 입술을 뗐다.


생각해보니까, 목욕탕 갈 때도 카라마츠 형은 오소마츠 형 옆에만 있었어.”

토도마츠의 말에 쵸로마츠가….” 하고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쥬시마츠 옆으로 이동한 이치마츠도 짐작이 간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그 자식, 간장도 직접 안 건네줘. 간장 좀 집어달라고 하면 상 위에 올려놓고…. 오소마츠 형한테는 멀쩡히 건네주면서….”

!? 대체 왜!?”

이치마츠의 중얼거림에 토도마츠가 외쳤다

주먹을 가슴께로 모으고 울먹인 토도마츠가 해답을 바라며 쵸로마츠를 응시했다

토도마츠를 따라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도 쵸로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저에게 몰린 시선에 푹 한숨을 내쉬며 눈살을 찌푸린 쵸로마츠가 머뭇거리며 가장 신빙성있는 추측을 내놓았다.


유괴 사건, 때문 아니야…?”

“““.”””

조심스러운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모두가 짧은 한탄을 내뱉었다.


그 사건으로, 우리를 원망하고 있는 거 아닐까…?”

쵸로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휙휙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이치마츠가 눈썹을 팩 찌푸렸다.


그 카라마츠 형이 원망~? 카라마츠 형이라면 그, 그럴 리 없잖아~.”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토도마츠가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불안에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이치마츠도 쵸로마츠의 말에 반박하듯이 걸걸한 목소리를 냈다.


아니, 개똥마츠한테 그럴 배짱이 있을 리 없잖아. 우리를 원망한다던가…. 그런….”

서서히 줄어드는 목소리와 함께 이치마츠가 내비친 확신도 줄어들었다

무거운 침묵이 거실에 감돌았다. -, 땅이 꺼지라 내쉰 한숨은 누구의 것일까

침울한 분위기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드르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껴들었다.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쵸로마츠가 불편한 얼굴로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돈이 없었엉~.”

왜 간 거야!?”

에헤헤, 수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오소마츠의 대답에 쵸로마츠가 있는 대로 얼굴을 찌푸렸다

후핫, 하고 별일 아니라는 듯한 미소로 거실에 들어오는 오소마츠의 뒤를 카라마츠가 따랐다

침묵을 불러왔던 당사자의 등장에 토도마츠와 이치마츠가 똑바로 카라마츠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작게 다녀왔냐는 인사를 건넸다

—.” 하고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카라마츠에게 형제들은 눈을 맞출 수 없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앉은 육둥이는 평소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힐끗, 눈동자를 움직여 쥬시마츠와 조금 거리를 두고 오소마츠 옆에 앉은 카라마츠를 시야에 담은 이치마츠가 마른침을 삼켰다

평소에도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적은 자신이, 원망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카라마츠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적잖이 두려운 일이었다

잘게 부순 밥을 넘기고 후-, 한숨을 내쉰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개똥마츠. 간장, 필요 없어…?”

간장병을 들어 내밀자 카라마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간장병과 이치마츠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놀라 말이 없는 카라마츠를 대신해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오소마츠였다.


~? 웬일이야~, 이치마츄~. 네가 먼저 카라마츠한테 간장을 다 건네주고?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키득키득 웃으며 저를 가볍게 놀리는 오소마츠를 쏘아본 이치마츠가 다시 카라마츠를 보며.” 하고 간장병을 살짝 흔들었다.


…. 고맙다, 브라더-.”

이치마츠의 재촉에 짙은 눈썹을 내린 카라마츠가 떨떠름하게 대답을 흐리며 가만히 간장병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간장병을 쥐고 있는 이치마츠의 손을 응시했다

초침의 똑딱 소리가 60번이 울리는 동안, 카라마츠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손을 뻗을 것 같지 않은 카라마츠를 보며 비통하게 혀를 찬 이치마츠가 상 위에 간장병을 내려놓았다

테이블 중앙에 몰려있는 반찬들 사이에 간장병이 처량하게 놓였다

그제야 이치마츠의 손이 떠난 간장병을 집어 든 카라마츠가 미소가 피어난 얼굴로고맙다!” 하고 인사했다

간장병을 기울여 간장을 따라낸 카라마츠는 다시 젓가락을 쥔 이치마츠의 손에 얼마나 힘을 들어가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잠시 멈췄던 식사가 다시 이어지고, 간장을 다 쓴 카라마츠가 간장병을 내려놓으려던 손을 멈추고 오소마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형님, 간장 필요한가?”

, ~.”

.”

땡큐~!”

평범하게 간장병을 손으로 직접 건네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이치마츠와 토도마츠가 숨을 삼켰다

순식간에 엄청난 어둠을 내뿜는 이치마츠를 쥬시마츠가 걱정스럽게 응시하는 것도, 카라마츠는 알지 못했다.

 

 

여섯 명이 모여 잘 이불을 깔고, 자기 자리를 찾아 육둥이가 하나씩 몸을 누였다

크게 하품을 하는 오소마츠와 쥬시마츠 사이에서 쵸로마츠가 못마땅하단 얼굴로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고, 이치마츠도 끝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모두 자리에 누운 것을 확인한 토도마츠가 등불을 끄려고 끈을 손에 감았을 때, 카라마츠가 나직이 토도마츠를 불렀다.


토도마츠.”

! 뭐야? 카라마츠 형!”

오랜만에 자신을 불러준 것이 기뻐, 저도 모르게 활짝 피어난 목소리를 낸 토도마츠가 뒤에 꽂히는 따가운 시선을 무시하고 카라마츠에게 미소지었다.


?”

자리를 바꿔주지 않겠나?”

….”

카라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말을 잃었다

망연히 서서 눈만 깜빡이는 토도마츠를 대신해 벌떡 몸을 일으킨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향해 으르렁댔다.


자리는 왜!!”

, 왜냐니…. 그야…,”

어느새 몸을 일으킨 쵸로마츠와 쥬시마츠가 잔뜩 긴장한 채로 카라마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희를 원망하고 있으니까 옆에서 자고 싶지 않다, 하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불안에 떨며 숨을 삼킨 형제들을 둘러본 카라마츠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말을 이었다.


내 옆에서 자는 영광을 형님에게도 누리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나!!”

““““하아?!?!?””””

으스대며 선언하는 카라마츠의 말에 높이 치솟은 목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얼굴을 찡그리고 귀청을 때리는 소음을 참아낸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 카라마츠…. 정말로, 그게 이유야?”

저에게 묻는 쵸로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상큼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너무나 순수한 얼굴로 물어오는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파하~, 한숨을 내쉬었다

카라마츠의 대답에 토도마츠와 이치마츠도 인상을 찌푸렸다

카라마츠는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한다

그리고 저 얼굴은 거짓말을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너무나 순수한 진실이라는 것에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할 수 없이 토도마츠가 자리를 바꾸어주었다

활짝 웃으며 토도마츠의 손을 잡고 흔들며고맙다! 브라더-!!” 하고 웃은 카라마츠가 서둘러 엉덩이를 움직여 오소마츠 옆으로 몸을 옮겼다

늦게 자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짓는 카라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복잡한 심경을 담은 깊은 한숨을 허무한 밤의 어둠 속에 내뱉었다.

 

 

신기계가 들어온다며 일찍 이불을 떠난 오소마츠의 빈자리에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렸다

체온이 남아 따끈한 이불에서 몸을 빼낸 카라마츠가 마침 계단을 올라오는 이치마츠에게 물었다.


이치마츠, 형님은,”

—, 오늘 새기계 들어온다고 일찍 나갔는데.”

그런가….”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않는 카라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인상을 찌푸리고 입을 열었다.


개똥마츠, 오늘 시간 많으면 나랑 나가.”

?”

눈을 깜빡이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울컥 솟아나는 화를 참아낸 이치마츠가 최대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늘, 길고양이 집 만들 상자 받으러 가는데 조금…, 도와줘.”

“….”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을 망설이는 카라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혀를 차고 참고 있던 목소리를 터뜨렸다.


! 나 같은 쓰레기랑 같이 다니는 건 싫어?”

, 아니! 그건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

재빨리 손을 저으며 부정하는 카라마츠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본 이치마츠가 입술을 깨물었다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는 이치마츠 옆으로 쏙 얼굴을 내민 쥬시마츠가 카라마츠 앞에 섰다.


카라마츠 형아!”

?”

원망하고 있슴까?”

? , 엇을…?”

직구로 던진 질문에 이치마츠가 눈을 크게 떴다

항상 헤- 웃던 얼굴을 감추고 진지하게 묻는 쥬시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에 쓴웃음을 지은 쥬시마츠가 다시 물었다.


우리가, 카라마츠 형아를 구하러 가지 않은 거…. 원망하고 있슴까?”

쥬시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의 눈이 커졌다

잘게 입술을 뗐다가 다시 붙인 카라마츠가 쥬시마츠를 향해 한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피우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내가 브라더-들을 원망할 리 없잖나-, 쥬시마츠. 이 카라마츠는 저! 푸른 바다처럼 마음이 넓고, 또 쿨~한 남자라구~? 으응~?”

, 하고 특유의 웃음을 흘리며 검지를 들어 좌우로 살짝살짝 흔든 카라마츠가 쥬시마츠 옆에 서 있는 이치마츠를 보며 빙긋- 웃었다.


이치마츠, 미안하다. 오늘은 이 세상의 카라마츠 걸-즈와 약속이 있다.”

, 그래.”

두 팔을 활짝 벌려 고개를 들고 허공에 반짝이는 눈빛을 던진 카라마츠의 모습에 질린 얼굴로 대답한 이치마츠가 하-, 하고 작게 한숨을 흘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외출했던 카라마츠와 일찍 파칭코에 갔던 오소마츠가 돌아온 저녁 시간

시계의 시침이 6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확인한 쥬시마츠가 활짝 열리는 현관문 소리에 환히 웃었다.


어서 오세요~! 쵸로마츠 형아! 토도마츠!!”

쥬시마츠의 밝은 목소리에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간단한 귀가 인사를 던지고 거실에 들어왔다.


어서 와라, 브라더-!”

카라마츠 형.”

~?”

거울을 든 채 고개를 들어 올린 카라마츠 앞에 나란히 선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서로 시선을 나누었다

뭔가를 결심한 것처럼 꿀꺽, 침을 넘긴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하얀 쇼핑백 하나를 내밀었다

눈앞에 디밀어진 쇼핑백에 카라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뭔가?”

선물이야.”

저번…, 유괴 사건…. 구하러 가지 않았으니까…, 사과할 겸…,”

.”

카라마츠의 질문에 토도마츠가 대답하고 쵸로마츠가 머리를 긁적이며 선물의 의도를 밝혔다

멍청히 눈을 깜빡인 카라마츠가 머뭇거리며 쇼핑백을 건네받았다

오소마츠와 이치마츠, 쥬시마츠의 이목도 카라마츠 손에 들린 쇼핑백에 몰렸다

형제들의 눈길을 느끼며 머쓱한 웃음을 흘린 카라마츠가 천천히 쇼핑백 안에 있는 선물을 꺼냈다

푸른색 포장지로 감싸인 작은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제법 값이 나가는 검은 선글라스가 들어있었다.


, 이건….”

토도마츠랑 머리를 맞대도, 그거 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구….”

고개를 든 카라마츠를 보며 쵸로마츠가 눈썹을 내렸다. 토도마츠도 눈썹을 찌푸리고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끈한 바디에 검은 알. 멋스럽게 금박으로 새겨진 로고에 카라마츠가 말을 잃고 가만히 선글라스를 응시했다.


마음에, 안 들어…?”

어떤 반응도 돌아오지 않자, 토도마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불안으로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한 카라마츠가 방긋 웃었다.


아니, 기쁘다…. 고마워.”

“…….”

“….”

분명 미소와 함께 한 말이건만 그 안에 진심은 보이지 않았다

얼떨떨한 얼굴로 작게 대답하는 토도마츠에 이어 쵸로마츠도 입을 꾹 다물고 그저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찰싹찰싹, 머리를 때리는 손에 오소마츠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뭐야아~.”

-!!”

하품을 하며 일어나는 오소마츠를 향해 입술에 검지를 세운 쵸로마츠가 카라마츠가 깨지 않도록 오소마츠를 일으켜 거실로 내려갔다

거실문을 열자 먼저 일어나 모여있던 네 명의 동생들이 일제히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너네 뭐 하고 있어? 야동 상영회?”

그런 걸 왜 하냐!!”

즉시 오소마츠의 말을 부정한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끌어다 동생들 사이에 앉혔다

둥그렇게 원으로 모여 앉은 동생들을 보며 오소마츠가 다시 큰 하품을 흘렸다.


뭔데….”

잠에 취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는 오소마츠를 향해 토도마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카라마츠 형, 이상해.”

이상…? 그 녀석은 항상 이상하잖아. 카라마츠가 정상인 적이 있었어?”

그게 아~~라아~!!”

한쪽 눈썹을 찌푸리고 묻는 오소마츠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콩콩 내리친 토도마츠가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즘 카라마츠가 자신들, 동생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그런 태도를 보이는지, 하지만 오소마츠만큼은 예외로 대하는 것 등…. 

토도마츠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오소마츠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할 수 없네~. 이 횽아가 전부 해결해주지!”

뭘 믿고 저렇게 자신만만할까, 저 인간.”

불안밖에 안 느껴져….”

, 히힛. 그냥 죽자.”

아하하-! 지옥이네!”

당당히 선언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쵸로마츠도 눈살을 찌푸리고 투덜대고, 이치마츠는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치마츠와 정반대로 의미 모를 밝은 웃음을 흘리는 쥬시마츠를 향해 오소마츠가얀마!!” 하고 버럭 화를 냈다

콧바람을 크게 흥-, 내뱉은 오소마츠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불신 가득한 눈동자로 저를 올려다보는 동생들에게 씩- 웃으며 선언했다.


횽아만 믿으라구—!”

호언장담하는 오소마츠를 탁한 눈으로 쳐다보던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그래, 힘내….” 하고 한숨 쉬듯 말했다

티끌만 한 영혼 한 조각도 느껴지지 않는 응원에 오소마츠가 인상을 찌푸리고진짜 두고 보라니까!!” 하고 외쳤다.

 

 

 

 

 

3.

 

오랜만에 오전에 일어나 거실에 들어가자 녀석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동시에 꽂혔다

그렇게 노려보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할 건데 말이야

어젯밤에 들은 이야기는 솔직히 꽤 충격이었고—. 

빨리 어떻게 해야지, 나 참

후아암~, 하품을 하고 등에 박히는 시선을 무시하며 계단을 올랐다

아직도 이불 속에 들어가있는 카라마츠를 적당히 발로 차 깨우고 함께 방을 나왔다

묘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밥을 먹고 평소처럼 안쓰러운 가죽 재킷을 입고 나가려는 카라마츠를 붙잡았다.


무슨 일인가, 형님.”

카라마츄~, 오늘은 나랑 경마 가자!”

, 미안하지만 오늘 나는 이 피스풀한 월드를 가슴으로 느끼려,”

가자.”

, 잠깐!! 오소마츠!!”

또 뭐라 안쓰러운 말을 꺼내려는 카라마츠를 다짜고짜 붙잡고 현관을 빠져나왔다

카라마츠는 경마장으로 향하는 길 내내 입을 비죽 내밀고 사람이 배려가 없다느니, 제멋대로라느니, 끓임없이 헛소리해댔다

경마장에 도착해 정말 큰~맘 먹고 내 돈으로 적당히 번호를 골라 마권을 끊어 쥐여주자 툴툴거리던 카라마츠가 입을 다물었다

평일 한낮, 한자리에 모인 글러 먹은 인간들 사이에서 카라마츠와 함께 난간에 손을 얹고 흙밭을 달리는 말을 응원했다.

난간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몸을 걸고 허리 숙여 힘껏 외쳤건만 내가 고른 말들은 죄 지기만 했다

어제 경마신문을 확인하고 우승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말들이었는데…. 

, 한숨을 쉬고 옆을 보자 카라마츠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손에 들린 마권을 보고 있었다

왜왜. 뭔데 그래

카라마츠 어깨너머로 슥 고개를 내밀어 보니, 내가 대충 찍어준 마권이 만마권이 되어 있었다

이럴 때는…, 일초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


카라마츠.”

.”

마시러 가자. 물론 네가 쏘는 걸로.”

!?”

카라마츠 어깨에 손을 올리고 엄지를 척! 하니 들어 올렸다

눈알이 빠질 것처럼 크게 뜬 눈으로 붕붕 바람 소리가 울리도록 고개를 젓는 카라마츠의 목에 팔을 감고 그대로 경마장을 빠져나왔다.

 

모처럼 옆 동네까지 나와 좋은 술이 많이 있는 술집의 문을 열었다

점원이 안내해주는 자리에 털썩 앉아 달지만 조금 센 술을 주문하자 카라마츠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

꽤 익숙하군. 전에 와봤던 곳인가?”

~. 전에 경마장에서 만난 아저씨가 겁나 따서 말이야~. 여기서 얻어 마셨지~.”

씨익- 웃으면서 말하자 카라마츠가 눈을 털고그렇군.”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적당히 떠들다가 나온 안주와 술에 분위기가 하늘 높이 올랐다. 적당히 달고 맛있는 술은 술이 약한 카라마츠도 시원하게 넘길 정도였다

조금 도수는 높지만, 카라마츠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한 잔, 두 잔, 입에 털어 넣은 카라마츠는 한 병을 다 비우기도 전에 취해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히끅, 하고 딸꾹질까지 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쓴웃음을 짓고 두 손으로 쥐고 있는 잔을 뺏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 맛있지?”

—. 딜리셔스다.”

다음에 녀석들도 데려오자구~.”

“….”

자연스럽게 녀석들에 대해 말을 꺼내자 카라마츠가 지퍼를 채운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숨기고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만 보고 있는 카라마츠에게 슬쩍 물었다.


싫어?”

“…아니, 싫은 건….”

뭔데뭔데~, 횽아가 없는 사이 그 녀석들하고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싸웠다던가?”

그런 건 없다. 귀여운 브라더-들과 싸울 리 없잖나.”

너야 그 녀석들이 귀여워 보이지…. ——혀 귀엽지 않다구….”

, 그렇군.”

파하~, 크게 한숨을 내쉬는 시늉을 하며 투덜대자 카라마츠가 마른 웃음을 흘렸다.


저번에 파칭코에서 터져서, 오랜만에 한턱 쏘겠다고 했는데도 그 녀석들 전혀 안 믿어줬다니까? 너무하지 않아?”

그랬나….”

그래서 오늘은 카라마츠 너만 데리고 나온 거지만.”

그렇군….”

너도 가끔은 화내라고~? 버릇 나빠져, 그 녀석들.”

“…후후, 그럴 수는 없다. 소중한 브라더-니까.”

그런 것 치곤 지금 꽤 뜸 들였는데.”

“….”

하여간 이 녀석은, 지가 불리하면 입을 다문다니까.


카라마츄~. 돈 남았는데, 내일은 새 술집을 개척해볼까?”

, 좋다.”

한 명 정도는 더 불러도 여유 있을 것 같은데…. 내일은 쵸로 씌도 부를까?”

“….”

카라마츠?”

다시 입을 다문 녀석을 보며 가만히 답을 기다렸다

새로 주문한 맥주를 다 비울 때쯤에야 카라마츠가 다시 입을 열었다.


“……,”

?”

둘만, 가는 건 어떤가? 쵸로마츠는 내일 바쁠 것 같은데….”

그 녀석이 바빠 봤자 자기만족 취활에 라이브잖아~.”

“….”

카라마츠, 쵸로마츠랑 같이 가는 거, …싫어?”

별로, 그런 건….”

?”

“….”

또 침묵이냐…. 

-, 한숨을 쉬고 직구를 던지기로 했다

돌려 말하는 건 내 취미가 아니야.


원망하고 있어?”

“…원망, 하는 건가? 나는….”

어이어이, 직구를 던졌더니 다시 나한테 던지면 어쩌냐….


카라마츠.”

테이블에 턱을 괴고 무너진 카라마츠의 머리를 통통 두드렸다.

검은 머리카락이 술집의 환한 등에 비쳐 반짝였다

~, 하고 술 냄새 나는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다시 얼굴을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든다.”

?”

만약, 치비타에게 유괴당한 사람이 내가 아니었다면…, 모두 구하러 가지 않았을까….”

“….”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녀석…?


카라마츠,”

내가, ‘카라마츠가 유괴됐으니까 구하지 않은 거다.”

“…그 녀석들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널 안 구했다구.”

카라마츠의 생각을 바꾸려고 슬쩍 녀석들 편을 들었지만, 카라마츠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오소마츠는, 형님은 다르다.”

뭐가 다르다는 건데?”

형님은 내가 아니라 다른 녀석들이어도 구하지 않을 거잖아?”

그야 당연하지. 돈 아깝고….”

후후—, 역시 형님은 쓰레기다.”

어이.”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여서 구하지 않았다.”

“….”

그러니까, 그게 조금…, 섭섭하다면 섭섭할까….”

, 하고 쓸쓸한 웃음을 흘린 카라마츠가 그대로 테이블에 엎어졌다

꽤 마셨으니까, 아까부터 휘청대던 게 한계에 달한 것 같았다

색색, 잠든 카라마츠를 보며 머리를 박박 긁었다


이건…,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잖아~~!!

 

 


카라마츠를 이불에 던져놓고 내려와서 거실에 앉아있던 토도마츠에게 말했다

눈썹을 팩 찌푸리고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한 토도마츠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카라마츠 형이 그렇게 말했어?”

그래~. 그러니까 협력 부탁해~.”

“…정말로 그걸로 될까?”

불안하게 묻는 토도마츠를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해 봐야지.”


, 이 카리스마 레전드 오소마츠 님이 하는 거니까 당연~히 성공하겠지만.

 

 

 

 

 

4.

 

지끈거리는 머리를 안고 몸을 일으키자 옆자리가 허전한 것을 눈치챘다

검은 매직으로 마구 칠해진 기억을 더듬어 오소마츠와 함께 술집에 갔던 것을 떠올렸다

분명, 오소마츠가 시킨 술을 마시고….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꽤 맛있는 술이었는데, 아무래도 도수가 높은 술이었던 모양이다

오소마츠는 분명 날 골탕 먹일 생각으로 센 술이라는 걸 말하지 않았겠지

오랜만에 느끼는 숙취에 끙끙대며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에 걸린 시계는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버렸군

꿀물이라도 타 먹을 생각으로 주방으로 들어간 순간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안 그래도 흔들리는 머리를 시끄러운 벨 소리가 강타하고 지나갔다

-, 하고 아득해지는 두통에 눈썹을 찌푸리고 발을 멈추자, 요란한 발소리를 울리며 현관으로 뛰어온 쥬시마츠가 수화기를 들었다

동시에 벨소리가 끊긴 것에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고 물을 머그잔에 따랐다

찬장에서 꿀을 꺼내 적당히 머그잔에 붓고 휘휘 저으며 현관에서 넘어오는 쥬시마츠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 장어가 썰전에서 육수를 뺀다고라!?”

—, 쥬시마츠…. 

그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절로 눈썹을 찌푸리고 숨을 내쉬자 현관에서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전화야?”

쵸로마츠 형아! 장어가 썰전에서 육수를 뺀대!”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바꿔봐!”

아이!”

, 여보세요? ~, 우리 집 장남이 썰물에 빠져 죽는다구요? 그렇구나~. 하하, 그런 이야기였군요~, , 에에에에에?!?!”

쵸로마츠의 외침에 주방에서 나왔다

수화기를 던지고 거실로 들어간 쵸로마츠가 나른하게 테이블에 기대어 앉아있는 토도마츠와 이치마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큰일 났어!! 이번엔 오소마츠 형이 유괴됐대!!!”

느릿느릿 고개를 들어 쵸로마츠를 응시한 이치마츠가 팩, 한숨을 쉬며 턱을 괴었다.


자기가 알아서 하라 해.”

맞아. 오소마츠 형이라면 다~ 자업자득일 텐데.”

이치마츠에 이어 토도마츠도 스마트폰만 두드리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쥬시마츠도지당한 말씀!” 하고 웃으며 이치마츠 옆에 엉덩이를 내렸다

브라더-들의 답변에 이마 가득 핏줄을 세운 쵸로마츠가 버럭 소리 질렀다.


이 쓰레기 놈들아!! 뭘 믿고 그렇게 태평한 거야! 목숨이 달려있다고! 목숨이!!”

보나마나 또 치비타일텐데 뭐하러~ 오소마츠 형이 우리 지갑에서 빼간 돈으로 알아서 갚으라 해~.”

스마트폰을 휘적이던 토도마츠가 한 말에 쵸로마츠가 기세를 죽였다

확실히….” 하고 중얼거리며 턱을 쓰다듬는 쵸로마츠의 모습에 절망했다.

쵸로마츠, 너만은 안 그럴 거라 믿었는데!! 

브라더들 아무도 형님을 구할 생각이 없는 것을 확신하고 현관에 놓인 구두에 발을 끼워 넣었다.


? 카라마츠 형? 어디 나가게?”

—. 형님을 구해오겠다!”

하아~? 아니 아니, 그럴 필요 없다니까~?”

아무리 노답에 쓰레기에 바보인 오소마츠라도 구하러 가주지 않으면 불쌍하다!”

“…, 그럼 일단 엄마한테 상담해보자!”

마미에게?”

!!”

끄덕이는 토도마츠를 보며 이유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확실히, 나 혼자 구하러 가는 것보다는 마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구두에서 발을 빼고 마미를 부르려는 순간, 마미가 밝은 미소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백수들아~, 옆집에서 또 배를 나누어주셨어~. 맛있게 먹으렴~.”

““““, 배다아~!!!””””

, 소리와 함께 배가 가득 쌓인 접시가 테이블에 떨어지자마자 출발 신호를 들은 말처럼 브라더들이 일제히 접시로 달려들었다.

와삭와삭, 즙이 가득한 배를 입안 가득 쑤셔 넣으며 감동의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니 절로 군침이 돌아 참을 수 없었다

미안하다, 오소마츠. 조금만 버텨라

반드시 이 카라마츠가 구하러 갈 테니!! 주먹을 불끈 쥐고 브라더-들의 뱃속으로 배가 다 들어가기 전에 테이블을 향해 달려갔다.

 

 

 

배로 가득 찬 윗배를 퉁퉁 두드리고 몸을 일으켰다

이제 형님을 구하러 가지 않으면…!


, 카라마츠 형~! 나랑 같이 장 보러 가자.”

. , 아니. 나는….”

백수 2~. 오늘은 짐이 많으니까 6호랑 같이 다녀오렴~.”

.”

주방에서 들려오는 마미의 목소리에 토도마츠가그치?’ 하는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망연히 서 있는 내 팔에 팔짱을 낀 토도마츠가 생글 웃으며 나를 끌어당겼다.


~, 얼른 다녀오자. 나 혼자 쌀 한 포대 드는 건 무리라구~.”

, 아니….”

나 혼자 그 무~~~거운 걸 들고 오라는 거야? 카라마츠 형?”

, 그건 아니지만….”

그렇지~. 카라마츠 형은 엄청 상냥한 걸~. 그럼 가자~!”

애교를 담아 활짝 웃는 토도마츠의 팔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미안하다, 오소마츠. 조금 더 늦어질 것 같다.

 

 

 

일초라도 빨리, 오소마츠를 구하러 가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내게 주어진 일이 너무나 많았다

토도마츠와 함께 장을 보고 오자마자 마미의 명령에 브라더-들과 함께 뒷마당에 높이 솟은 잡초를 뽑아야 했다

그 누구도 돌보지 않은 뒷마당에는 무릎 높이까지 자란 푸른 풀떼기들이 가득했다

하얀 장갑을 손에 끼고 땀을 흘려가며 허리 아프게 쭈그려 앉아 한참 동안 잡초를 뽑고 나니 이번에는 산처럼 쌓인 빨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뒷마당에 있는 건조대에 이불과 우리들의 후드를 걸어 널고, 다 마른 옷을 가지런히 접는 일은 간단한 듯하면서도 너무나 어려웠다.

이런 일을 마미는 매일 하는 건가…. 

역시 마미는 대단하다

응응,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붉은 해가 그림자를 길게 잡아 늘였다.


벌써 저녁 식사 시간인 건가?!”

아직 오소마츠를 구하러 가지 못했는데!! 

주홍빛으로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며 당황해 후다닥 뛰어 현관으로 나가려는 나를 향긋한 밥 냄새가 붙잡았다.


카라마츠 형, 어디 가려고? 오늘 반찬 가라아게래~!”

“….”

정말, 정말 미안하다. 오소마츠!!

마미의 정성과 사랑이 들어간 가라아게는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만복감에 한숨을 내쉬자 그대로 쥬시마츠가 건네는 목욕 대야를 손에 들었다

샴푸와 수건을 챙기고 갈아입을 속옷까지

완벽하게 준비를 마치고 브라더-들과 함께 목욕탕으로 향했다

나란히 쭉 일렬로 앉아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따끈~한 핫워터에 몸을 담그고 나니 기분이 너무나 상쾌했다

하지만 영문 모를 찜찜함이 계속 내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브라더-들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돌아오는 길에도 뭔가, 꿀꿀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궁리하는 사이 브라더들이 이불을 펴고 자기 자리에 하나둘씩 누웠다.


카라마츠 형, 불 끈다~.”

, 아아!”

토도마츠의 부름에 서둘러 이치마츠 옆에 누웠다

이 어수선한 마음의 정체는 잘 모르겠으나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슬립 이즈 베스트

오늘도 시작된 쥬시마츠의 코골이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들아!!”

, 끄럽네 정말….”

창밖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슬쩍 눈을 떴다.

나와 같이 커다란 소음에 잠에서 깬 쵸로마츠가 짜증을 내며 창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기둥에 묶인 오소마츠와 스피커폰을 들고 있는 치비타가 서 있었다.


얀마!! 너네는 오소마츠가 죽어도 좋은 거냐!!”

치비타아!?!?! 이건 말이 다르잖아~!! 시늉만 하기로 해놓고 왜 진짜로 불을 피우는데—!!!”

기둥에 단단히 묶인 채로 필사적으로 몸을 비트는 오소마츠의 발밑에는 빨간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아아—, 그렇구나….

 


오소마츠를 잊고 있었다아~!!!

 


식은땀을 흘리며 어쩌나 고민하는 사이 칫, 하고 혀를 찬 이치마츠가 벽장 깊숙이에 잠들어있던 맷돌을 꺼냈다.


, 이치마~!? 진정해라!! 맷돌은 안 된다!! 맷돌으은~~!!!”

!? 이거 안 놔! 개똥마츠!!”

창가로 걸어가는 이치마츠의 허리에 매달려 맷돌을 막는 사이 남겨진 브라더들이 온갖 물건을 창밖으로 던졌다

이가 나간 그릇, 야구 배트, 프라이팬, 꽃병이 차례로 오소마츠에게 날아가 꽂혔다

크억, 하고 작은 신음이 나더니 곧 잠잠해졌다

!, 하고 콧바람을 내고 창문을 굳게 닫아 걸쇠까지 잠근 쵸로마츠와 브라더-들이 자리에 누웠다

토도마츠가 등을 끄자 다시 조용한 어둠이 찾아왔다.


하아~.”

푹 한숨을 쉬고 조용히 문을 열고 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치비타는 이미 떠난 뒤

길바닥에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있는 오소마츠를 부축해 거실로 들어왔다.


“…, ? 카라, 마츠…?”

, 형님. 정신이 들었나?”

오소마츠를 거실로 옮기자 작게 신음하던 오소마츠가 눈을 떴다

….” 하고 대답하며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머리를 붙잡았다.


, 파라~~! 그 자식들 인정사정없이 던졌겠다….”

그렇게 쉽게 유괴당한 오소마츠 잘못도 있다.”

!?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 오소마츠, 지금 브라더-들과 마미 앤 대디는 꿈나라를 여행 중이다.”

우씨…. , 젠장. 머리 아파.”

이리 보여줘 봐.”

인상을 찌푸린 오소마츠가 순순히 내게 머리를 보였다

꽃병에 맞아 찢어졌는지 이마에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그걸 제외하면 딱히 외상은 보이지 않는군

안도하며 약 상자를 꺼내 오소마츠의 상처를 치료했다

아프다고 엄살을 피울 줄 알았던 오소마츠는 웬일로 얌전히 소독약의 따끔함도 참아내고 묵묵히 상처를 덮어가는 반창고를 눈에 담았다.


다 끝났다.”

—. 땡큐.”

. 이제 자러 올라가자, 형님.”

~.”

오소마츠에게 손을 내밀자 픽-,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함께 계산에 올라 새근새근 자는 브라더들 사이에 파고들어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옆에서 오소마츠가 뒤척이며 내는 부스럭 소리가 어쩐지 잔잔한 자장가처럼 들려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5.

 

카라마츠 형아~! 아직~?”

현관에 가득 울리는 쥬시마츠의 밝은 목소리에 카라마츠가 서둘러 가죽 재킷에 팔을 끼워 넣으며 외쳤다.


다 됐다!!”

탁탁, 계단을 소리 내 뛰어 내려온 카라마츠가 현관에 서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쥬시마츠와 이치마츠를 향해 밝게 웃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브라더-! 갈까!”

! 카라마츠 형아랑 오랜만에 하는 야구! 기대됨닷!!”

카라마츠의 밝은 미소에 이끌리듯 쥬시마츠도 해맑은 미소를 피우고 손을 붕붕 흔들었다

쥬시마츠의 야구 배트를 들고 있던 이치마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항상 나른했던 그의 무표정에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기쁨이 슬쩍 붙어있었다

드르륵-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카라마츠와 쥬시마츠, 이치마츠를 배웅한 토도마츠가 한숨을 쉬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후암~. 존 아침~.”

좋은 아침, 오소마츠 형.”

성이 난 것처럼 불쑥 솟아오른 뒷머리를 긁적이며 거실에 들어온 오소마츠가으아~.” 하고 기괴한 신음을 흘리며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은 눈을 껌뻑이며 멍청히 허공을 응시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눈썹을 찌푸린 토도마츠가 무심하게 물었다.


몸은 괜찮아?”

보통—.”

, 맷돌은 안 던졌으니까.”

어떻게 던져놓고 어떤지 나와 보지도 않냐!? 이 매정한 놈들!!”

토도마츠의 중얼거림에 오소마츠가 발끈 화를 내며 허리를 폈다

끄으으-, 높이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켠 오소마츠가 팍 인상을 썼다.


…. 아직도 뻐근하니 아프다….”

추욱 어깨를 늘어뜨리고 끙끙대는 오소마츠를 보며 토도마츠가 한심하단 눈을 하고 말했다.


그러게 왜 그런 과격한 방법을 쓰자고 한 거야.”

나름 머리 굴려 가면서 생각한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그리고 내가 말한 대로 다~ 잘 됐잖아!”

오소마츠의 투덜거림에 토도마츠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스마트폰을 다시 깔짝였다.

솔직히-, 우리 중 누가 유괴되도 결과는 똑같을 텐데 말이야…. 누구도 구하러 안 간다구~.”

혼잣말인듯 흘리는 토도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던 손을 멈췄다.


, 그게 작전이 아니었어도 우리는 어차피 구하러 가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왜 굳이 오소마츠 형이 자진해서 유괴된 거야?”

형제들보다 조금 더 큰 토도마츠의 눈동자에 묘한 빛이 스쳤다

가만히 토도마츠의 말을 듣고 있던 오소마츠가 씩- 웃었다.


다른 녀석이 유괴됐다면, 카라마츠가 구하러 갔을걸?”

“…그건 모르지. 우리가 말릴지도 모르잖아? 뭐하러 구하러 가냐고….”

그래도 카라마츠는 너희를 구하러 갈 거야. 그러면 작전 실패잖아~.”

살기 위해 호흡을 하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하는 오소마츠를 토도마츠가 지그시 바라보았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저 믿음은

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에 저장된 친구들의 목록을 훔쳐본 토도마츠가 다시 물었다.


카라마츠 형이 우리를 구하러 가도, 오소마츠 형은 안 갈 거지?”

그야 당연하지. 내가 뭐하러 가? 유괴 정도는 너네가 알아서 빠져나오라구~. 게다가 카라마츠가 구하러 갈 텐데 나까지 갈 필요 없잖아~?”

“….”

오소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말을 잃었다

슬쩍 피어난 한 가지 가능성을 부정하며 토도마츠가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

?”

카라마츠 형을 위해서 자작극까지 벌여가면서 말이야…. 카라마츠 형이 아니라 우리였다면…,”

그럼 상황이 여기까지 안 오지~. 카라마츠가 구하러 갈 테니까.”

그럼, 말이야…. 왜 카라마츠 형은 우리를 원망했으면서 오소마츠 형은 원망하지 않은 거야? 오소마츠 형도 구하러 가지 않았잖아.”

그건, 그 녀석도 똑같이 할 테니까.”

?”

토도마츠의 되물음에 오소마츠가 하핫, 하고 잔잔한 미소를 피웠다.


카라마츠도 똑같이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신경도 안 쓸걸? 내가 유괴당해도.”

…?”

글쎄? 내가 녀석의이라서 아냐?”

.”

오소마츠의 대답에 토도마츠가 묘한 소리를 늘리며 오소마츠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서 이 고생을 한 거야? 카라마츠 형을 위해서.”

딱히 그 녀석을 위해서 그런 건 아닌데…. 카라마츠, 그 바보 녀석이 너네를 챙기지 않으면 내가 귀찮다고~. 게다가 그 녀석은 바보같이 변하지 않고 내 옆에서 웃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고…. 카라마츠가 옆에 있으면 뭔가 좀…, 안심된달까?”

수줍게 웃으며 검지로 코밑을 긁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어깨를 들어 올려 푹~, 깊은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러심까아~.” 하고 혀를 찼다

눈썹을 찌푸리고 스마트폰 화면만 보는 토도마츠가 토라진 이유를 알 리 없는 오소마츠는 멍청히 고개를 기울였다.

 

 

, 하고 거실문에 기댄 카라마츠가 작게 웃었다

놓고 온 선글라스를 가지러 다시 돌아온 덕분에 오소마츠와 토도마츠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선글라스를 챙기는 것도 잊을 정도로 들뜬 마음에 심장이 요동쳤다

가슴에 손을 얹고, 넘실대는 미소를 품은 카라마츠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저를 기다리고 있는 동생들과 놀기 위해서.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짠! 급 생각나서 쓴 초단편입니다.


 * 마피아 카라마츠 x 인어 오소마츠 이야기에요.


 * 수위는 R-15...?


 * 공미포 3,883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자들이 복도 양쪽에 늘어서서 허리를 90도로 굽혀 남자에게 인사했다. 

푸른 셔츠를 가슴께까지 풀고, 검은 재킷의 소매를 걷어 올린 남자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고개도 까딱이지 않고 복도를 걸어 올라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목에서 흔들리는 금목걸이와 굵은 손목에 찬 금시계는 남자의 취향이었다.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액세서리지만, 남자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울릴 정도로 사람이 없는 복도를 홀로 걸어 도착한 커다란 문. 

씨익,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피운 남자, 카라마츠가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방에는 커다란 침대와 작은 책상과 옷장만이 살풍경한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대저택에 어울리는 커다란 방이지만, 안에 있는 가구는 달랑 몇 개. 

남은 공간은 수영장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풀(pool)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풀에 푸른 물이 찰랑거리며 방 주인을 반기고 있었다.


“…오소마츠.”

허벅지 높이까지 올라오는 풀 난간에 걸터앉은 카라마츠가 나직이 부르자, 푸른 물이 거세게 출렁였다. 

촤악-, 하고 물을 흘리며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붉은 비늘을 가진 인어. 

카라마츠와 비슷한 얼굴과 검은 머리칼을 가진 인어의 허리 아래에는 유선형의 꼬리가 이어져 있었다. 

카라마츠를 향해 활짝 웃으며 팔을 벌린 인어가 저를 감싸 안는 카라마츠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남들이 들으면 입을 떡 벌릴 정도로 고가인 셔츠가 젖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인어를 품에 안은 카라마츠가 속삭였다.


“잘 지내고 있었나?”

인간의 귀와 다르게 붉은 피막이 달린 귓가에 낮은 목소리를 깔자, 인어가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인어, 오소마츠가 검지로 코 밑을 긁으며 수면을 때렸다. 

오소마츠가 부끄러울 때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따라 빙긋 웃고 오소마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카라마츠의 인어, 오소마츠. 

카라마츠를 제외한 다른 이와 일체 접촉할 일이 없는 오소마츠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카라마츠만을 위한 인어였다.

신화 속에나 존재하는 환상의 동물, 미지의 생물인 인어를 어떻게 손에 넣었냐고 묻는 이에게 카라마츠는 우연히 낚시하다 건져 올렸다고 대답했다. 

그 말도 안 되는 대답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먼지 한 톨만큼이라도 의심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간 그의 존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사라질 테니까. 

오소마츠를 위한 거대한 풀, 바다와 유사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 수온과 염도가 섬세한 센서로 관리되고 있고, 여러 미네랄과 단백질을 첨가한 물은 바다처럼 짙푸른 색을 띠었다. 

오소마츠의 식사량, 식단, 수면시간, 몸무게를 비롯한 전반적인 건강을 책임지는 선별된 의료진이 24시간 준비되어 있고, 오소마츠가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풀은 크기도 크거니와 깊이도 5m에 달했다. 

막대한 돈이 드는 이 모든 것들이 오로지 오소마츠만을 위한 것들이었다.




츕, 하고 타액을 빨아들이자 오소마츠의 허리가 움찔 튀었다. 

맞닿은 입술은 뜨겁고 말랑말랑했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훤히 드러난 상체는 물속에 있었던 탓인지 서늘했다. 

가늘게 실눈을 뜬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필사적으로 입맞춤을 따라오려 애쓰는 오소마츠의 붉은 얼굴에 훗, 하고 속웃음을 흘렸다.

물기가 남은 피부를 쓸어내리며 손을 어깨에서 허리로 이동해 끌어당긴다. 

더 강해진 포옹에 맞춰 입맞춤도 더욱더 깊어졌다. 

인간과 다를 바 없이 따뜻하고 미끈거리는 입안을 누비며 희롱할 때마다 오소마츠가 귀여운 신음을 내며 울었다. 

부끄러운지 떨어지려는 뒤통수를 감싸고 각도를 바꾸어 다시 입 맞춘다. 

고르게 정렬된 하얀 치아와 끈적이는 타액에 푹 젖은 뺨 안쪽, 그리고 단단한 입천장을 간질이며 애달프게 닿아오는 붉은 혀를 휘감았다. 

간헐적으로 흘리는 날숨까지 허용하지 않겠다는 기세로 오소마츠를 품 안에 붙잡고 혀를 옭아매고 정열적인 입맞춤을 이어가던 카라마츠가 찰박찰박, 오소마츠의 꼬리가 수면을 때려 보내는 신호에 겨우 팔의 힘을 풀었다. 

아쉽다는 얼굴을 감추지 않고 짙은 눈썹을 찌푸리며 입술을 뗀 카라마츠가 쪽, 소리를 내며 오소마츠의 입술에 짧은 버드 키스를 내렸다.


“힘들었나?”

“….”

카라마츠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오소마츠가 손을 들어 발개진 얼굴을 숨겼다. 

차오른 숨을 몰아 내쉬는 오소마츠를 따라 하얀 가슴이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달달 떨리는 오소마츠의 손을 지그시 내려다보던 카라마츠가 짓궂게 웃으며 오소마츠의 손을 잡아 힘주어 내렸다.


“논논, 오소마~츠? 얼굴을 가리면 곤란하지—. 자, 똑바로 나를 보는 거다.”

“….”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잘게 흔들었다. 

두 눈을 꼭 감고 더욱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 어깨를 움츠린 오소마츠에게 손을 뻗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턱에 손가락을 걸어 강압적으로 들어 올렸다.


“아아—. 아름다운 빨강이다.”

발갛게 상기된 눈가에 담긴 적갈색의 눈동자가 카라마츠를 응시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엇갈리는 시선을 잡아 맞춘 카라마츠가 입안에 도는 군침을 삼키고 오소마츠의 붉은 뺨을 어루만졌다.


“그러고 보니…,”

“?”

카라마츠의 중얼거림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훗, 하고 마른 웃음을 흘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둥근 어깨를 따라 손을 내렸다. 마른 근육이 붙은 팔과 그사이에 길게 뻗은 허리. 

군살 하나 붙어있지 않은 배에 손을 대면 뜨겁게 달아오른 근육이 느껴졌다. 

카라마츠만큼은 아니더라도 탄탄한 근육이 촘촘히 자리 잡은 반들반들한 배를 내리훑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붉은 뺨을 살짝 깨물어 지분댔다.


“물고기에게 인간의 체온은 너무 높아서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속설을 들었다만….”

“….”

“뭐—, 속설은 속설인 뿐이지.”

카라마츠의 입술이 닿은 곳에 열이 모이는 것을 느끼며 피식-, 웃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인간과 다름없는 상체와 그 아래에 뻗은 유선형의 몸. 

오소마츠의 몸이 그리는 곡선은 어쩐지 인간의 것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후—.” 하고 애끓은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태어난 상태 그대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오소마츠의 몸을 마음껏 더듬으며 더 깊이 입 맞춘다. 

가녀린 목, 둥근 어깨, 어깨 아래에 툭 튀어나온 견갑골, 가느다란 팔 그리고 곧게 뻗은 척추를 따라 손을 내린 카라마츠가 붉은 비늘을 손에 걸었다. 


물고기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비늘로 덮인 오소마츠의 하반신, 꼬리. 

인어라는 말이 걸맞게 물을 세차게 차고 빠르게 수영할 수 있는 꼬리가 달린 오소마츠를 카라마츠는 사랑하고 있었다. 

특히 더 사랑하는 부분이 있다면 인간과 같은 부분인 상반신과 꼬리로 이루어진 하반신이 만나는 경계선. 

꼬리를 덮은 비늘이 돋아나 있는 오소마츠의 가는 허리가, 카라마츠는 마음에 들었다. 

등을 타고 손을 내려 허리를 쓰다듬고 그보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허리가 끝나고 엉덩이가 시작되는 아슬아슬한 지점에 비늘이 한둘 씩 툭 튀어나와 있다.

위에서 아래로, 머리에서 꼬리 쪽으로 누워있는 비늘을 살살 손가락으로 어루만진 카라마츠가 손톱을 세워 비늘 하나를 슥- 들어 올렸다. 

타원을 반으로 자른 것처럼, 둥근 부분을 손톱에 걸고 들어 올리면 비늘이 붙어있는 얇은 피부가 함께 위로 솟았다. 

그대로 잡아 뜯기지 않을까 하는 본능적인 공포가 신경을 타고 올라와 오소마츠의 이성을 흔들었다. 

사시나무 떨듯이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카라마츠의 셔츠를 꽉 붙잡은 오소마츠의 눈가에 금새 커다란 눈물방울이 맺혔다.


“흣, 으…, 읏~!”

입맞춤 중간중간 숨을 들이마시기 위해 떨어진 입술에서 오소마츠의 안타까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말을 하지 못하는 오소마츠가 유일하게 소리를 내는 순간. 

고막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심장을 애달프게 조이는 오소마츠의 헐떡임에 카라마츠는 허리 아래가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하고 어찌할 수도 없는 욕정이 자신을 충동질한다. 

겨우 비늘 하나를 손가락에 걸었을 뿐인데 이렇게나 바들바들 떤다. 

만약 꼬리에 난 비늘을 전부 벗겨낸다면 어떤 소리를 낼까, 카라마츠가 아득히 웃었다. 

꼭 회를 뜨기 전, 물고기의 비늘을 벗겨내듯이 꼬리부터 허리까지 전부 비늘을 긁어낸다면, 어쩌면 인간과 같은 뽀얀 다리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잔혹한 악마가 귓가에 속삭이는 충동을,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털어냈다. 

빠듯한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울렁대는 욕망을 눌러 으깬 카라마츠가 고혹적으로 젖은 눈을 하고 자신을 응시하는 오소마츠와 시선을 겹쳤다. 

푸른 수면 위로 올라온 붉은 비늘과 달아올라 홍조가 핀 얼굴과 하얀 몸. 모든 것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아직,”

“…?”

“아아, 아직은 때가 아니지….”

카라마츠의 혼잣말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며 묘한 미소를 피운 카라마츠의 가슴에 오소마츠가 더 만져달라고 앙탈을 부리는 고양이처럼 볼을 비볐다. 

앙큼한 오소마츠의 응석에 픽-, 웃음을 흘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제게 내려오는 카라마츠의 손길에 오소마츠가 환희하며 해맑게 웃었다. 

이렇게 사랑하건만, 카라마츠는 아직 오소마츠를 안지 않았다. 

인간과 인어이기 때문에? 

아니, 카라마츠에게 그런 것은 너무나 사소해서 이유조차 되지 않을 문제였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 묻는다면 카라마츠는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이라 대답할 것이다. 


맛있는 것은 제일 나중에 먹는 것이 카라마츠였다. 

그 누구도 손대지 못하도록 지키고 서서, 

참고 또 참은 후에, 

그것을 먹지 않으면 호흡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안달 나서, 

조바심으로 가득 차서, 

초조해서 목이 마를 지경까지 이른 후에야 그것을 먹는 것이 카라마츠였다. 


자신의 인내심을 한계까지 몰아붙인 후에 먹는 그것은 평소보다 훨씬 더 농후하고 오싹한 행복을 불러왔다. 

그렇기에 카라마츠는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과실이, 지금도 충분히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유혹해오는 오소마츠가 얼마나 맛있을지. 

저 유선형의 몸을 힘껏 안고, 오소마츠에게 자신을 새길 때, 얼마나 황홀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허리가 저렸다. 

오소마츠의 온몸에 질탕히 자신의 흔적을 남길 생각을 하며 애욕에 젖은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제 품 안에서 잔망스럽게 가르랑거리는 오소마츠의 눈을 바라보았다. 


하루빨리 그 날이 오기를 바라며, 

동시에 그 날이 너무 빨리 오지 않기를 바라며.


30평의 커다란 풀에 오소마츠를 가두었다.





 * 소재 자체는 예전에 생각했던 거였는데, 이번에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 (Shape of water)'를 보고 더 쓰고 싶어졌던 단편이에요ㅎ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6

 * 오랜만이에요ㅠ 결코 탈덕한 적 없는 WHITEPINE입니다ㅎㅎ


 * 일도 바쁘고 잠시 글 쓰는 일을 쉬고 싶어서 이렇게 오랜 공백이 생기게 되었네요. 앞으로는 다시 매 주말마다 글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 전에 올렸던 단편 【[오소른] 아빠는 누구?의 후편입니다^^


 * 공미포 21,162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

거실 가득 울리는 외침에 오소마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 뒤엉켜 물어뜯는 레서판다와 고양이를 떼어낸 오소마츠가 바닥에 흩날리는 털 뭉치를 보며 다시금 푹- 한숨을 내쉬었다

레서판다오소의 울음소리를 듣고 내려온 동생들이 거실 안으로 얼굴을 쭉 내밀었다

오소와 싸운 상대가 고양이이치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이치마츠가 터벅터벅 거실 안으로 걸어와 이치를 품에 안았다

혹시나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다가올까-!!” 하고 소리 높여 위협하는 오소의 모습에 육둥이가 다 함께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의 세포를 받아 탄생한 키메라

레서판다 오소, 호랑이 카라, 양 쵸로, 고양이 이치, 강아지 쥬시, 토끼 토도는 엉망이 된 데카판 박사의 연구소가 수리될 때까지 마츠노가에서 지내게 되었다

오소마츠를 엄마라고 생각해 따르던 6마리의 키메라가 동생들과도 친해져서 평화의 시간이 찾아온 것도 잠깐

다른 키메라들과 다르게 레서판다 오소 만은 오소마츠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동생 중 그 누구라도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하면 위협하며 물어뜯으려 안달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이젠 같은 키메라들과도 싸우는 오소의 마음을 오소마츠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치와 한바탕 싸우고 제 품에 안겨 잠든 오소를 오소마츠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평온한 얼굴로 잠든 오소와 달리 눈썹을 진득이 찌푸린 오소마츠가 아쉬운 듯이 창밖을 응시했다

잠깐이라도 오소마츠와 떨어지면 빼액- 울어 젖히는 오소 덕분에 반강제 연금 생활을 이어간 지 벌써 2

파칭코도, 경마도 가지 못한 덕분에 지갑은 두툼하건만, 그 안에 잠든 돈을 쓸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지갑을 들고 -돈이 부족하면 동생의 지갑을 들고- 경마에 가, 제육 덮밥을 먹으며 목이 터지라고 말을 응원하고, 먼지만 떨어지는 지갑을 안고 경마장을 나와 치비타네로 기어가 맛난 오뎅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그런 소소한 행복을 누리지 못한 지 2

이대로 영영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몰려왔다

핏기가 가신 얼굴로 벌떡 일어난 오소마츠가 오소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불 위에 눕히고 계단을 내려왔다

검은색 커다란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돌려 전화를 건 곳은 데카판의 연구소. 두세 번의 연결음 끝에 저편에서 데카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에호에.” 하고 그 특유의 말버릇을 붙여 무슨 일이냐 묻는 박사에게 오소마츠가 마른침을 삼키고 진지한 부탁 하나를 전했다.


『알겠다요. 만들어 보겠다요.

…. 고마워, 데카판

『참, 오소마츠 군.

?”

『곧 연구소 수리가 끝난다요.

“…?”

데카판의 말에 오소마츠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잘게 머리를 흔들어 까마득해진 시야를 털어낸 오소마츠가 데카판의 이어지는 말에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큰일이 없다면 3일 후에 끝날 것 같다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마음을 정해달라요. 키메라들을 어떻게 할지.

“…, 떻게 할지?”

『그렇다요.

“…….”

『오소마츠 군?

“…알겠어.”

긴 침묵 후에 힘겹게 오소마츠가 대답했다

수화기 너머에 있는 데카판에게 전해지지 않는데도,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짜낸 오소마츠가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마츠가 데카판과 짧지 않은 통화를 하는 동안, 2층 육둥이 방에서 키메라들의 회의가 열렸다

잠들어있던 오소를 흔들어 깨운 것은 토끼 토도

저를 빙 둘러싸고 앉아있는 카라, 쵸로, 이치, 쥬시, 토도를 보며 오소가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뭐야….”

덜 깬 잠에 인상을 구기는 오소에게 모두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오소, 아무리 마미-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대디가 마미에게 갈 수 없게 만들다니!!”

하아!? 그 안쓰러운 녀석이 왜 아빠야?!”

호랑이 카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오소가 벌컥 화를 냈다

분노로 털을 곤두세우는 오소 옆에서 고양이 이치가 카라에게 냥냥펀치를 날렸다.


아우치!!”

웃기지 마, 망할 호랑이. 그 녀석이 아빠가 아니라 이치마츠가 아빠라구.”

하아!?”

잠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치 형!! 토도마츠가 아빠지!!”

하아!?”

아냐!! 쥬시마츠 아빠가 진짜 아빠야!!”

하아아아아!?”

저마다 아빠로 생각하는 이를 들고나올 때마다 오소가 점점 언성을 높였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털이란 털은 모두 부풀린 오소가 레서판다답게 두 발로 벌떡 일어나 팔을 높이 치켜들고 위협하는 자세로 외쳤다.


전부다——!! 아빠가 아니야!!! 아빠 같은 게 있으면…, 그러면….”

“““““….”””””

목소리를 흐리며 다음 말을 망설이는 오소에게 시선을 고정한 다섯 마리 키메라가 눈을 깜빡였다

오소가 모두의 엄마인 오소마츠에게 동생들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고백하려는 순간이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과연 어떤 말이 나올까 귀 기울이는 키메라들을 보며 오소가 기세를 잃고 울먹였다.


아빠가 생기면…, 아빠 같은 게 있으면…, 엄마를 뺏겨 버리잖아~~!!!

‘‘‘‘‘그럼 그렇지….’’’’’

오소의 외침에 모두 눈을 게슴츠레 뜨고 크디큰 한숨을 내쉬었다.

 

 

 

몇 년 썼는지 숫자를 세는 것도 무의미해진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육둥이가 사이사이에 키메라들을 끼고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이 쓰는 포크형 숟가락을 주먹으로 쥐고 음식을 떠먹는 키메라를 보며 부모와 같은 표정을 짓는 육둥이에게 마츠요가 툭, 하고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 백수들아-. 내일 너희 중 하나가 삼촌 댁에 농사 도우러 가야 하는데, 누가 갈래?

““““““…?””””””

청천벽력처럼 내려온 말에 육둥이 모두 손을 멈췄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키메라들의 숟가락이 바쁘게 움직이며 내는 달각거리는 소리만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


내일이요?!”

제일 먼저 목소리를 뒤집으며 외친 것은 육둥이의 태클 담당, 쵸로마츠였다

태연한 얼굴로 쵸로마츠를 바라본 마츠요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아니, 너무 갑작스럽지 않아요!?”

, 하늘이 내려준 시련인가….”

좀 닥쳐. 개똥마츠.”

난 내일 약속 있으니까 안 돼~.”

나도, 나도!! 내일 에이타로랑 약속 있슴닷!!”

쵸로마츠의 태클에 이어, 카라마츠의 안쓰러운 말에 이를 가는 이치마츠 사이로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잽싸게 약속이 있음을 어필했다

동그란 안경 너머로 아들의 거짓말을 꿰뜷어본 마츠요가 콧방귀를 날리고 티끌 하나 묻어나오지 않는 맑은 미소로 물었다.


그래서 누가 갈래?”

나는 오소 때문에 못 나가니까~, 카라마츠.”

상냥한 카라마츠 형이요.”

개똥마츠.”

누구우~?”

카라마츠 형.”

브라더어!?!?”

마츠요의 질문에 오소마츠가 밥풀과 소스로 더러워진 오소의 입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이어 오소와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한 쵸로마츠가 감정 하나 묻어나오지 않는 건조한 말투로 카라마츠를 지정했다

이치 앞에 놓인 생선구이의 뼈를 발라주던 이치마츠도 고개도 들지 않고 카라마츠를 호명했다

고개를 기울이고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쥬시마츠는 건너뛰더라도, 오소와 오소마츠를 향해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토도마츠 역시 눈짓으로 카라마츠를 가리켰다

한마음으로 자신을 지목하는 동생들에게 경악하며 벌떡 일어난 카라마츠에게 미츠요가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그럼 카라마츠는 짐 싸놓고, 내일 아빠랑 같이 나가렴.”

마미이!?”

마츠요의 결정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태연하게 식사를 재개한 거실 한가운데, 홀로 벌떡 일어나 있는 카라마츠만이 눈물을 글썽였다.

 

 

다음 날 아침, 마츠요의 매서운 등짝스매시에 눈을 뜬 카라마츠가 형제들이 한마음으로 싸놓은 짐을 보고 푹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일어나 나갈 준비를 마치고 현관에 선 마츠조의 재촉하는 눈길에 다시금 푸욱-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할 수 없이 커다란 푸른색 더플백을 들어 올렸다

윤기 나는 갈색 가죽 구두에 발을 끼워 넣은 카라마츠의 발치에서 작게가우!”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내려왔는지, 졸린 눈을 비비며 현관 앞까지 나온 호랑이 카라가 카라마츠를 보며 빵긋 웃었다.


가우!!”

작은 손 하나를 번쩍 들고 외치는 카라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무언으로 시선을 교환한 카라마츠와 카라가 부드럽게 웃었다.


, 기다려라. 카라. 더 멋진 카라마츠 님이 되어서 돌아오겠다! 그동안 마츠노 가의 평화를 맡기겠다. 그럼 아디오스-!”

가우!!”

검지와 중지를 모아 이마 언저리에서 가볍게 튕긴 카라마츠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문을 나섰다

카라마츠의 작별인사에 맞춰 힘차게 운 카라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환한 빛을 향해 걸어가는 카라마츠의 등을 배웅했다.

 

 

 

 

 

2.

 

늦은 오전, 점심 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야 일어나기 시작한 다섯 명의 백수들은 카라마츠의 빈자리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시작했다

사람 하나가 줄어 자리가 넉넉해진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를 마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선 현관에서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오소에게 묶인 오소마츠 만이 현관을 넘어가지 못하고 어깨를 잔뜩 늘어뜨린 채 동생들을 배웅했다.


!”

~. 오늘은 뭐할까~?”

거실에서 들려오는 오소의 울음소리에 오소마츠가 단번에 표정을 바꾸었다

아무 걱정근심도 없는 환한 미소로 오소를 안아 든 오소마츠가 조금 전까지 먹음직스러운 식사가 차려져 있던 테이블 위에 카드덱을 내려놓았다

비밀리에 한 실험의 결과물인 키메라들은 마츠노 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섣불리 나갔다가 다른 사람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들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

꼼짝없이 집에 묶여 있어야 하는 키메라들과 오소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는 오소마츠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여러 놀이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간단한 54장 카드덱 하나로도 할 수 있는 놀이는 많았다

가끔 오소마츠와 키메라들을 걱정한 동생들이 사 오는 보드게임도 지루함을 달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섯 장의 카드를 펼친 오소마츠가 씩- 웃으며 오소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끙끙대며 고심하던 오소가 카드 하나를 뽑자마자 오소마츠가 주먹을 들어 올리고 환호성을 불렀다.

희멀건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빨간 공 세 개로 저글링을 하는 피에로가 그려진 카드에 오소가 다다미 바닥에 꼬리를 탕탕 내리치며 볼을 잔뜩 부풀렸다


이른 오후를 한가롭게 도둑 잡기로 보내고 시침이 숫자 3을 가리키자, 때맞춰구우우~’ 하고 키메라들의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우렁차게 울어대는 배를 붙잡고 저를 올려다보는 키메라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은 오소마츠가 주방으로 향했다

마츠조는 회사, 마츠요는 오늘 일이 있어 자리를 비웠다.

집에 있는 사람은 오소마츠 뿐

키메라들의 밥을 챙겨줄 수 있는 것도 오소마츠뿐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움직임으로 주방을 이리저리 오가며 아이들이 먹을 밥을 준비하는 오소마츠의 어깨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오소가 매달려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얌전히 거실에서 저들끼리 떠들고 놀며 밥을 기다리고 있건만, 오소는 단 일 초라도 오소마츠에게서 떨어질 수 없다는 듯이 꼭 달라붙어 있었다

손에 묻은 물기를 가볍게 털어내고 옅은 한숨과 함께 어깨너머로 얼굴을 삐죽 내민 오소를 쓰다듬은 오소마츠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기울였다

일을 나간 마츠조와 마츠조는 물론이고, 동생들도 저녁때가 되어서야 들어온다

현관문을 연 이는 누구인가, 눈썹을 찌푸린 오소마츠가 주방을 나서려는 순간 쵸로마츠가 안으로 들어왔다.


얼레? 쵸로마츠, 웬일로 이렇게 빨리 들어왔어?”

라이브가 취소됐어….”

오소마츠의 질문에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한 쵸로마츠가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상 위에 올려놓았다.


뭐야?”

바스락거리는 봉지 소리에 오소가 꼬리를 흔들었다

잠시 조리대에서 떨어진 오소마츠가 봉지를 열었다.


사과.”

사과??”

쵸로마츠의 대답을 되뇌며 봉지를 펼진 오소마츠가 입맛 돋우는 빨강을 집어 들었다

라이브 나갔던 녀석이 웬 사과

슬쩍 눈썹을 찡그리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변명하듯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오소 주라고.”

.”

요즘 기운 없는 거, 오소 때문이잖아.”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눈을 끔뻑였다

오소마츠 어깨에 올라타 있던 오소도 오소마츠와 똑같은 얼굴로 멍청히 쵸로마츠를 응시했다

멋쩍은 듯이 벅벅 머리를 긁으며 시선을 피하는 쵸로마츠와 사과를 번갈아 응시하던 오소마츠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사리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오소마츠의 표정을 살피던 오소가 불안한 눈으로 작게.” 하고 울었다.


———. …, 땡큐~!”

오소의 울음에 해죽 웃은 오소마츠가 오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쵸로마츠에게 말했다

그제야 어긋난 시선을 맞춘 쵸로마츠가 한숨 묻은 쓴웃음과 함께….” 하고 대답했다

빙글- 몸을 돌려 싱크대에서 사과를 씻은 오소마츠가 저를 바라보는 오소에게 사과를 쥐여주었다.

?” 하고 질문을 하는 것처럼 우는 오소에게 오소마츠는 미소로 화답했다.


쵸로마츠가 사다 준 거니까 맛있게 먹자~!”

또 다른 사과 하나를 꺼내 대충 소매에 문질러 닦은 오소마츠가 탱글탱글한 사과를 입에 물었다

와삭-, 하고 청량한 소리와 함께 달콤새콤한 사과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과즙이 톡톡 터지는 사과를 맛있게 먹는 오소마츠를 가만히 지켜본 오소가 제 손에 들린 탐스러운 사과를 입으로 가져갔다

빠른 속도로 사를 뼈대만 남긴 오소마츠가 봉지에 남아있는 사과를 전부 꺼냈다

오소마츠와 오소가 하나씩 먹고, 남은 빨강은 다섯 개

텅 빈 봉지를 적당히 구겨 쓰레기통에 던진 오소마츠가 상 위에 올려진 사과의 개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고마워, 쵸로마츠.”

오소마츠를 도울 양으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싱크대로 다가오는 쵸로마츠에게 오소마츠가 작게 인사했다

됐어, 인사 같은 건.” 하고 핀잔처럼 말을 날린 쵸로마츠의 볼이 아주 조금 붉게 물들었다

소리가 되지 않은 웃음을 흘리며 입꼬리를 끌어올린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와 함께 깨끗이 사과를 씻어 거실로 돌아가자,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던 키메라들이 둘을 반겼다

오소마츠 어깨에서 내려가 제 형제들 곁에서 사과를 먹는 오소를 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은 오소마츠가 리모컨을 들어 TV를 켜는 쵸로마츠에게 물었다.


뭐 보려고?”

오늘 하는 예능에 냐-짱이 나온다고 해서….”

후응~.”

브라운관에 비치는 분홍색 머리의 아이돌을 향해 달은 한숨을 내쉬며 야광봉을 들어 올린 쵸로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라 불리는 아이돌의 언행 하나하나에 흥분해 반응하는 쵸로마츠를 오소마츠가 가련하다는 눈으로 응시했다

저렇게 좋아해도 TV 화면 저 너머에 있는 아이돌에게 목소리가 닿을 리 없는데, 쵸로마츠는 냐-짱의 노래에 맞춰 열심히 후렴구를 넣으며 야광봉을 힘차게 흔들었다.


, 맞아. 오소마츠 형.”

?”

프로의 중간, 광고가 흘러나오자마자 손에 쥐고 있던 야광봉을 내려놓은 쵸로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쵸로마츠의 부름에 오소마츠도 쵸로마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오소마츠의 얼굴이 있었다

오소마츠의 눈동자에 비친 제 얼굴을 본 순간, 쵸로마츠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코끝과 코끝이 닿을 거리에, 오소마츠의 숨결이 퍼졌다

호흡조차 잊을 정도로, 시야를 가득 채운 오소마츠의 얼굴에 쵸로마츠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뒤로 던졌다

요란하게 다다미 바닥에 던져진 쵸로마츠의 몸뚱이 아래에 깔린 리모컨이 삑- 비명을 지르며 TV 화면을 까맣게 덮었다

소란스러운 광고 소리가 사라진 거실 안에 두 사람의 숨소리와 똑딱똑딱 벽시계 초침이 내는 소리만이 흐르고 있었다

가슴을 크게 상하로 움직이며 놀란 가슴을 진정한 쵸로마츠가 너무나 잠잠한 공기에 시선을 비켰다

그렇게나 가까이 오소마츠 옆에 붙어 있었다면 응당 달려왔어야 했을 오소는 무슨 연유인지 가만히 앉아서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를 응시하고 있었다

당장 저 높은 하늘에서 급하강하는 새처럼 뛰어와 쵸로마츠를 무자비하게 물어뜯고 있어야 할 오소가 쵸로마츠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유리처럼 투명한 눈으로 쳐다보며 오소마츠 곁으로 발을 옮겼다

오소마츠 무릎 위에 자리를 잡고 사과로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낮잠 잘 준비를 하는 오소를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기이하단 눈으로 바라보았다.

 

 

 

땅거미가 자취를 감추고 밝은 달에서 내려온 샌드맨이 황금 모래를 뿌리는 시각

검은 동공을 확장하고 슬그머니 이부자리를 빠져나온 보라색 고양이이치가 커다란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켰다

고양이 키메라답게 야행성인 이치가 가장 활발해지는 시간은 해가 서산 너머로 지고, 육둥이가 꿈속으로 여행을 하는 깊은 밤

꼬리를 살랑이며 숨소리가 섞인 고요한 방 안을 크게 둘러본 이치가 귀를 쫑긋거리더니 온 방 안을 바쁘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고양이 애호가들이 흔히 말하는우다다를 시작한 이치는 낮에 보여주었던 그 나른한 자세를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너무나 활발하게 이불 주변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닷, 하고 이치의 발소리가 낡은 목조 건물 안에 멀리 퍼졌다

달게 자던 사람의 잠도 깨울 정도로 큰 발소리에도 육둥이를 비롯한 마츠노 가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쥬시마츠가 이불을 발로 차고 몸을 반대로 뒤집으며 잠시 뒤척일 뿐이었다

꼬박 30분 동안 뜀박질을 한 이치가 거친 숨을 내쉬며 속도를 늦추지 않고 목표물을 향해 전력으로 돌진했다

오소마츠의 머리맡에 놓인 푹신한 쿠션 위, 꼬리를 껴안고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오소를 향해 달려든 이치가 오소의 귀를 물어뜯고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이치에게는 놀아달라는 어필이지만 곤히 잠들어있던 오소에게는 귀찮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끄우~!” 하고 짜증 섞인 울음과 함께 이치를 밀어내도 이치는 그만두지 않고 집요하게 오소의 얼굴을 핥았다

끄야아~!!” 하고 한 번 더 오소가 울었지만, 이번엔 이치도응냥!” 하고 반박하며 오소의 꼬리를 물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박힌 꼬리 끝에서부터 신경을 타고 올라오는 찌릿한 아픔에 결국 눈을 뜬 오소가!” 하고 거세게 항의하며 이치의 코를 물었다

!!” 하고 얼굴을 흔들어 오소를 털어낸 이치가 눈을 날카롭게 빛내고 오소에게 달려들었다

두 마리가 작은 쿠션 위에서 엎치락뒤치락 날뛰며 몸을 뒤집었다

어느 한쪽이 물러날 법도 하건만 오소와 이치는 서로 질 수 없다는 듯이 없는 힘을 짜내 서로를 물고 할퀴기 시작했다

팔을 번쩍 들어 올리고 두 발로 선 오소를 향해 이치가 하악질을 한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불이 달싹거렸다

육둥이가 모두 누워 있는 커다란 이불의 오른쪽 끝, 이불 밖으로 상체를 내민 이치마츠가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오소와 이치에게 다가갔다

쵸로마츠와 토도마츠 사이에 누워있는 오소마츠에게 달빛을 받은 이치마츠의 그림자가 닿자, 오소가 분노의 대상을 이치에서 이치마츠로 바꾸었다

이치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 올리려는 이치마츠의 손가락을 덥석 문 오소가 턱에 힘을 주어 아득 이를 악물었다

,” 하고 숨과 함께 고통을 삼킨 이치마츠가 손가락을 펴 오소를 슬쩍 밀고 이치를 들어 올렸다.


우응…. , …?”

이치마츠의 품속에 들어간 이치의 불만스러운꾸응.” 소리에 이어 잠에 갈라진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은 밤공기를 녹였다.


이치마츠…?”

 “미안, 깨웠어?”

….”

상체를 일으킨 오소마츠를 보며 이치마츠가 눈썹을 늘어뜨렸다

품에 안은 이치를 가볍게 흔들어서 달래주며 이치마츠가 간결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따라 눈썹을 내리고 이치마츠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오소에게 손을 뻗었다.


오소~, 이치 때문에 깼어~?”

부드럽고 상냥하게 내려오는 목소리에 곤두서있던 오소의 털이 쑤욱 가라앉았다

통통, 오소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오소마츠가 오소를 안은 채로 이불 속으로 몸을 돌렸다

후암~.” 하고 하품을 하는 오소마츠가 베개에 머리를 내리자 이치마츠가 조심스럽게 어깨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주었다.


잘 자, 오소마츠 형.”

~.”

찬바람이 이불 속으로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이불을 덮어준 이치마츠가 발소리를 죽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오소가 눈으로 좇았다.

 

 

해가 중천에 뜨고 간밤의 소동을 알지 못하는 형제들과 키메라들이 기지개를 켜는 사이 오소마츠와 이치마츠도 눈을 떴다

좋은 아침, 오소마츠 형.” 하고 나직이 인사를 건네는 이치마츠에게 뒷머리가 삐죽 솟은 오소마츠가 배시시 웃었다

.” 하고 대답하고 아직 졸음이 매달려있는 눈꺼풀을 깜빡이는 오소마츠의 품에서 오소가 발버둥 쳐 이불 위로 올라가더니 멀뚱히 이치마츠를 응시했다

오소의 눈초리에 괜히 오소마츠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난 이치마츠가 저에게 다가오는 오소를 보며 항상 반쯤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떴다

오소마츠에게 딱 달라붙어서 다른 형제에게 다가간 적도, 다른 형제가 오소마츠에게 다가오게 허락한 적도 없는 오소가 이치마츠를 향해 작은 발을 바삐 옮겼다.


…, …?”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이치마츠를 올려다보며 털썩 엉덩이를 내린 오소가 가만히 이치마츠의 손을 응시했다

오소의 시선을 따라 제 손을 내려다본 이치마츠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천천히 손을 오소 앞으로 내밀었다

이치마츠의 눈과 선명하게 이빨 자국이 남은 손을 번갈아 올려다보던 오소가 슬그머니 손을 올려 이치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

분홍색 작은 혀를 길게 내밀어 할짝, 이치마츠의 손에 남은 이빨 자국을 핥은 오소가 이치마츠와 시선을 맞추고….” 하고 작게 울었다

꼭 새벽에 문 것을 사과하는 것처럼

꼭 금방 깨질 것 같은 유리 세공품을 옮기는 사람처럼 숨소리까지 죽인 이치마츠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

이치마츠의 말에 오소가 다시 작게 울고 이치마츠의 손을 핥았다

열심히 제 손을 핥는 오소를 보며 이치마츠가 할 말을 고르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마츠요의 목소리가 닫힌 문을 뚫고 들어왔다.


백수들아~, 밥 먹으렴!”

, 하고 정신을 차린 이치마츠가 그제야 형제들 모두 이부자리를 떠난 것을 알아챘다

손을 핥는 것을 멈춘 오소를 향해 빙그레 다정한 미소를 피운 이치마츠가가서 밥 먹자.” 하고 오소를 쓰다듬었다

!” 하고 고개를 끄덕인 오소가 푹신한 이불을 가로질러 멍청히 이불 위에 앉아 꿈나라에 발을 걸치고 있는 오소마츠에게 걸어갔다.


!”

아얏!”

오소마츠를 깨우려는 건지, 오소가 오소마츠의 손가락을 콱 물었다

찌릿 퍼지는 아픔에 순식간에 잠을 날린 오소마츠가 눈물을 글썽이며 오소에게 물린 손을 감싸고 이불에서 빠져나왔다.

 

 

모두가 모여 앉은 원형 테이블

커다란 하품을 하며 배를 긁적이는 오소마츠가 바닥에 앉자 그 왼쪽에 이치마츠가 엉덩이를 내렸다

마츠요를 도와 하얀 쌀밥이 담긴 밥그릇을 옮기던 쵸로마츠가 오소마츠 오른쪽에 자리를 잡자, 젓가락을 막 들어 올리려던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소마츠 옆에 이치마츠와 쵸로마츠가 앉았는데도 오소마츠 무릎 위에 자리 잡은 오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밥을 먹으려 테이블에 모여 앉을 때조차 오소를 피해 한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띄우고 앉아야 했는데…. 

우물우물, 부지런히 밥을 입에 옮기는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이치마츠 옆에서 함께 밥을 먹던 쵸로와 이치가 거만한 얼굴로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쥬시와 토도를 응시했다.

 

 

 

그날 밤, 키메라들의 긴급회의가 열렸다.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쥬시와 토도가 오소에게 큰소리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왜 그 촌———쓰런 딸딸마츠랑 궁상맞은 어둠마츠가 엄마한테 가까이 갈 수 있게 하는 건데!! ~엽고 똑똑한 토도마츠가 아니라!!”

분홍 토끼 토도가 큰 뒷발을 쾅쾅 구르며 오소에게 외쳤다

쥬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토도 옆에 섰다

오소는 쥬시와 토도의 역정에 당황해 멀뚱히 서 있는 카라 옆에 숨에 둘의 외침이 듣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홱 돌렸다

, 하고 오소를 보며 이를 가는 토도와 쥬시 앞을 이치와 쵸로가 가로막았다.


이치마츠가 뭐 어때서.”

맞아! 쵸로마츠도 충분히 아빠 자격이 있다구!”

음습한 미소를 피우며 토도를 응시하는 이치와 당황해 저를 바라보는 쥬시를 맞받아치듯 바라보는 쵸로가 엣헴, 하고 가슴을 내밀었다

둘의 공세에 쥬시와 토도가 더욱 억울하다는 얼굴로 오소를 흘겨보았다

날카롭게 박히는 눈초리에 오소가 헛기침을 하고 앞으로 나섰다.


쵸로마츠랑 이치마츠는 엄마를 잘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니까, 가까이 가도 괜찮아.”

오소의 말에 흥, 하고 콧방귀를 끼는 이치와 쵸로를 보며 토도와 쥬시가 더욱 얼굴을 구겼다

그르렁대는 울음소리에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는지 카라가 황급히 험상궂은 얼굴로 서로를 노려보는 토도와 이치, 쥬시와 쵸로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럼 그 두 녀석을 아빠로 인정하는 거야!?”

~~대 아냐!!”

한참을 씩씩댄 후에, 토도가 조급히 묻자 오소가 거세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짧은 팔을 쭉 뻗어 커다란 엑스(X)자를 만드는 오소를 보며 토도와 쥬시가 아직 기회가 있음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하고 혀를 차는 쵸로와 이치를 무시한 오소가 잠든 오소마츠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으로 긴급회의는 막을 내렸다.

 

 

 

 

 

3.

 

뜨끈하게 방바닥을 달구는 햇빛에 모두 기분 좋게 배를 내놓고 누웠다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잠든 이치 위에 토도가 엎드리고, 완전히 배를 까고 널브러진 쥬시 양옆에 카라와 쵸로가 누웠다

방 안으로 길게 손을 뻗은 햇빛이 오소마츠가 앉아있는 초록색 소파까지 온기를 훌쩍 던졌다

오소마츠 배 위에 누운 오소의 체온에 노곤한 눈을 감은 오소마츠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로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지 몇 일째이던가. 카드 게임이나 보드게임으로 억누르고 있던 지루함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답답한 방을 뛰쳐나가 경마장이나 파칭코로 달려가고 싶은 것이 오소마츠의 본심이었다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배 위에서 몸을 움찔거리는 오소의 움직임에 숨을 멈췄다

꼬물꼬물, 몸을 뒤척이던 오소가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빛을 담은 적갈색 눈동자가 저에게 꽂히자 오소마츠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 태평한 미소를 띄웠다.


일어났어~?”

잔잔한 목소리로 건넨 질문에 오소가끄앙~.” 하품을 하고 오소마츠의 가슴에 얼굴을 비볐다

아직 잠이 덜 깬 와중에 부리는 응석에 오소마츠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슥슥-, 오소의 머리를 쓰다듬는 오소마츠의 귀에 벌컥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도착했다.


다녀왔머슬~허슬~!”

흙투성이가 된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입을 활짝 벌린 쥬시마츠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나 휘둘렀는지 잔상처가 가득한 야구 배트를 책꽂이 앞에 세워놓고 오소마츠 앞에 선 쥬시마츠가 빵긋 웃었다.


어서 와, 쥬시마츠.”

아이!”

!! 와우왕와아앙!!”

키메라들이 잠든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대답한 쥬시마츠의 목소리에 쥬시가 벌떡 일어나 호탕하게 울며 뛰어왔다

아하핫!” 하고 쥬시마츠를 향해 높이 뛰어오른 쥬시를 양팔 벌려 받아낸 쥬시마츠가 쥬시와 함께 바닥을 굴렀다

뒹구르르 구르는 와중에도 쥬시는 쥬시마츠의 얼굴을 핥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얼굴이 침 범벅이 되고 나서야 몸을 일으킨 쥬시마츠가!” 하고 머리 위로 전구 하나를 띄우더니 벌떡 일어나 벽장으로 다가갔다.

벽장의 미닫이문을 홱 열어젖힌 쥬시마츠가 벽장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까치발을 든 다리만 보일 정도로 깊숙이 몸을 넣어 벽장 안을 뒤적이던 쥬시마츠가있다!!” 하고 외치며 노란 탱탱볼 하나를 꺼내 들었다

계란만 한 탱탱볼을 후~, 불어 먼지를 털어낸 쥬시마츠가 기대로 가득 찬 눈을 반짝이는 쥬시 앞에서 공을 흔들었다.


헤헤~, 이걸로 놀자!”

우왓, 그거 엄청 옛날에 가지고 놀던 거잖아. 그립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노란 탱탱볼을 본 오소마츠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쥬시마츠 머리에 붙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 간닷!” 하고 공을 든 손을 높이 치켜들자 쥬시가 준비되었다는 듯이 앞발을 길게 앞으로 뻗어 상체를 푹 숙였다

바람을 일으킬 것처럼 기운차게 흔들리는 꼬리를 따라 좌우로 손을 흔든 쥬시마츠가!”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을 바닥에 힘껏 튕겼다

바닥에서 튀어 올라 벽에 부딪히고 또 반대편 벽에, 그랬다가 책장에도 발 도장을 찍은 탱탱볼이 온 방 안을 누비더니 열린 문 너머 복도로 쌩하니 날아갔다

멍멍, 짖으며 공을 쫓던 쥬시도 후다닥 뛰어 복도로 나갔다

뒤이어 우당탕 요란하게 복도 가득 퍼지는 소리에 오소마츠와 함께 소파에 앉아있던 오소가 쥬시가 사라진 복도를 보며 귀를 쫑긋 세웠다

쥬시처럼 방 안을 튀어다니던 공을 오소도 눈으로 좇고 있었다

쥬시가 뛰노는 모습을 보는 오소의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것을 보았던 오소마츠가 피식- 웃음을 흘렸을 때, 쥬시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방 안에 들어왔다

박자를 맞추어 발을 내디뎌 들어온 쥬시의 입에는 노란 탱탱볼이 들어있었다

복도에서 넘어졌는지 귀 하나가 뒤집어진 것도 모르고 헥헥대며 쥬시마츠 앞에 공을 내려놓은 쥬시가 다시 눈을 빛내며 꼬리를 흔들었다

여전히 귀 하나는 뒤집은 채로, 헉헉 길게 빼내민 혀에서 침을 뚝뚝 흘리며 사정없이 꼬리를 흔드는 쥬시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하고 몸을 앞으로 숙이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푸하하하하하핫!! 쥬시, 저 녀석…. ~전히 바보 개잖아~~!!”

큭큭큭, 어깨를 떨면서 박장대소하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쥬시마츠가 명랑한 웃음을 한가득 피웠다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는 쥬시와 복잡한 얼굴을 한 오소가 멍청히 배를 잡고 웃는 오소마츠를 응시했다

히이히이, 숨을 몰아 내쉬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오소마츠가 쥬시가 바닥에 놓은 공을 들어 흔들었다.


~, 쥬시. 다시 물어오는 거다~.”

!”

오소마츠의 말에 쥬시가 크게 울었다. 조금 전보다 더 힘차게 꼬리를 흔드는 쥬시를 보며 후핫, 웃음을 흘린 오소마츠가 공을 힘껏 던졌다

다시 사방으로 공이 튕기고 쥬시도 공을 따라 방 안을 껑충껑충 뛰었다

바닥이 울리고, 공이 튕기는 소리에 눈을 뜬 키메라들도 어느새 공 쫓기에 합세했다

2층 방과 복도, 계단을 내려가 거실까지

온 집 안에 발자국을 찍고 나서야 녹초가 되어서 널브러진 키메라들을 보며 오소마츠가 즐겁게 웃었다

어린 얼굴에 피어난 미소에 오소도 꼬리를 흔들며 빙그레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우와….”

방문을 열자마자 펼쳐진 광경에 어이없는 한숨을 내쉰 토도마츠가 쥬시를 안고 코를 골며 자는 쥬시마츠를 넘었다

서로 모여 잠든 키메라들 사이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잠든 오소마츠를 흔들어 깨운 토도마츠가 나른하게 하품을 늘리며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뭘 했길래 그렇게 쓰러져서 자고 있어?”

쥬시마츠랑 다 같이 공놀이~.”

오소마츠의 말에 단번에 모든 것을 이해한 토도마츠가 헛웃음을 흘리며기운도 좋다.” 하고 오소마츠의 옆에 앉았다.


후암~. 톳티-, 오늘은 일찍 들어왔네.”

일찍은 무슨. 이제 곧 저녁 시간이거든?”

하품 섞인 질문에 눈썹을 찌푸린 토도마츠가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높이 들었다.


, 오소마츠 형. ~.”

?”

토도마츠의 부름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올린 순간, ‘찰칵하는 셔터음이 울렸다

둥근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오소마츠가 만족스럽게 웃는 토도마츠를 보며?”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뭐 한 거야?”

사진 찍은 거야~. , 이거 봐. 이번에 새로 깐 앱인데…,”

푸핫! 그게 뭐야!”

우쭐대며 내민 토도마츠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푹신푹신한 토끼 귀가 달린 오소마츠와 토도마츠의 사진이 떠 있었다

토끼 귀에 코에는 작은 토끼의 코, 그리고 당근을 들고 있는 조그마한 손까지 함께 찍힌 사진에 오소마츠가 잘게 웃었다

오소마츠의 웃음소리에 눈을 뜬 오소가 오소마츠와 가깝게 붙어있는 토도마츠를 보자마자 꼬리로 탕탕 바닥을 내려치며 다가왔다

토도마츠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으르렁거리며 털을 부풀리는 오소 앞에 토도마츠가 재빨리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이것 봐, 오소. 오소마츠 형 귀엽지~?”

눈앞에 불쑥 드리운 화면에 오소가 화를 내는 것도 잊고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했다

수줍은 듯이 볼을 슬쩍 붉힌 오소마츠의 머리 위에는 오소와 비슷한 동물 귀가 쫑긋 솟아있고, 등 뒤에는 줄무늬 꼬리가 솟아나 있었다.

저와 닮은 오소마츠 사진에 놀랐는지 눈을 똥그랗게 뜬 오소가 토도마츠의 손인 줄도 모르고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손가락을 덥썩 잡았다.


귀엽지~? 오소도 같이 찍자!”

계획대로, 라는 얼굴을 숨기고 해맑게 웃은 토도마츠가 말했다

오소마츠도 그에 동조해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도 화면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는 오소를 안아 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토끼 토도도 토도마츠 품에 안겨있었다.


, ~!”

!”

?”

-!”

토도마츠의 신호에 맞춰 오소마츠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활짝 웃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소와 토도마츠에 맞춰 손을 가슴에 모은 토도까지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찍힌 사진은 그야말로귀엽다는 말이 절로 나올만한 것이었다

모터를 단 것처럼 손가락을 움직여 여러 효과를 주는 필터와 귀여운 스티커들을 붙인 토도마츠가 행복하게 웃으며 사진을 저장했다

토도마츠 어깨너머로 스마트폰 화면을 보던 오소마츠와 눈을 맞춘 토도마츠가 배싯 웃으며 다시 폰을 높이 들었다.


이번엔 이걸로 찍어보자!”

? 뭐야? …후핫!!”

토도마츠를 따라 화면을 가만히 응시하던 오소마츠가 제 턱과 토도마츠 턱에 달린 수염을 보자마자 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토도마츠가 이리저리 필터를 바꾸자 오소마츠의 웃음은 점점 더 커졌다

수염, 코알라, 강아지, 수박, 얼굴 바꾸기 등등

너무나 우스꽝스럽고 웃긴 화면 속 자신을 보고 웃으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오소가 가만히 꼬리를 흔들었다

얌전한 오소와 기세를 탄 토도의 응석에 오소마츠와 토도마츠는 다른 형제들이 돌아올 때까지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오늘도 헬로워크에서 허탕을 친 쵸로마츠가 현관문 앞에서 이치마츠와 만나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오자, 까만 정적이 둘을 맞이했다

현관에 놓인 신발은 분명 세 쌍

자신들을 제외한 형제들은 집에 있을 터인데도 둘을 맞이하는 밝은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서로 마주 보며 눈살을 찌푸린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 발을 타고 올라오는 묘한 불안함에 서둘러 신발을 벗고 계단을 올랐다

방문을 활짝 열자, ‘찰칵하는 소리가 둘을 맞이했다

옹기종기 모여서 토도마츠가 든 스마트폰을 향해 웃고 있는 오소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와 키메라들을 본 쵸로마츠와 이치마츠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사진을 좀 더 잘 찍기 위해 높이 솟은 셀카봉에서 폰을 빼낸 토도마츠가 화사한 얼굴로 화면을 오소마츠와 쥬시마츠에게 보여주었다

꼭 소풍 와서 들뜬 어린아이들처럼 꺄꺄, 소란스럽게 웃으며 사진을 보고 웃는 형제들과 키메라의 모습에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또다시 열린 긴급회의. 전과 달리 이번에 화난 얼굴을 한 것은 쵸로와 이치였다

빠른 속도로 꼬리를 좌우로 흔드는 이치 옆에서 쵸로가 방바닥을 차며 오소를 싸늘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 바보랑 얍삽한 녀석을 왜 엄마 옆에 갈 수 있게 하는 건데!”

노란 건 몰라도, 분홍색은 짜증나는 녀석이라구….”

쵸로의 볼멘소리에 이치도 토도를 노려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 하고 콧방귀를 낀 것은 토도와 쥬시였다

이번에도 카라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오소 옆에서 싸움이 일어날까 조마조마한 심장을 붙잡고 서 있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물러서지 않는 쵸로와 이치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쉰 오소가 입을 열었다.


쥬시마츠랑 토도마츠는 엄마를 즐겁게 해주니까 괜찮아! …그렇다고 아빠로 인정한다는 건 아니니까!!!”

오소의 말에 얼굴을 밝혔던 쥬시와 토도가 이어지는 말에 추욱 귀를 늘어뜨렸다

네 명 중 그 누구도 아빠로 인정할 수 없다는 오소의 발언에 아쉬운 입맛을 다시는 쵸로, 이치, 쥬시, 토도를 가만히 지켜보던 카라가 오소에게 다가갔다.


오소. 카라마츠는?”

? 그 아픈 녀석?”

카라의 질문에 오소가 고개를 기울이자마자,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든 넷이 결사반대를 외쳤다.


그 녀석은 논외야.”

개똥마츠…, 죽인다.”

아웃!”

안쓰럽잖아, 그거.”

토도에 이르러서는그거라고 지칭된 카라마츠를 떠올리며 카라가 얼굴을 구겼다

울상이 된 카라를 달래며 오소가 단호히 말했다.


카라한테는 미안하지만 그 녀석은 더더욱 안 돼! 엄마를 보는 눈이 제일 위험하다구! 요주의 인물이야!”

….”

오소의 말에 카라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이 더 커졌다

금방이라도 툭,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카라를 안타깝게 보던 오소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나는 그 누구도 아빠로 인정할 생각 없으니까!”

절대 무너질 일이 없는 성에 서 있는 것처럼 당당히 선언하는 오소를 보며 키메라들이 불만 가득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 이상 더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오늘의 긴급회의는 끝을 낼 수밖에 없었다.

 

 

 

 

 

4.

 

“I’M HOME~! MY BROTHERS!!”

조금 탄 얼굴을 불쑥 내밀고 필요 이상으로 힘을 준 미소로 외쳤건만 돌아오는 것은 사무치는 침묵이었다

~?” 하고 눈을 게슴츠레 뜨며 메고 있던 더플백을 거실 바닥에 내려놓은 카라마츠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아항~.” 하고 고개를 잘게 저었다.

해가 높이 뜬 이른 오후. 형제들이 모두 외출해 있을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카라마츠가 짙은 눈썹을 찌푸리고 눈을 올렸다

현관에는 아직 빨간 운동화가 남아있었다. 거실을 나와 계단을 오르려 발을 들어 올리자, 노란 물체 하나가 카라마츠의 가슴께로 달려들었다.


! 카라!”

갸우~!”

이 몸이 없는 동안 오소마츠는 잘 지켜주었나?”

갸우!”

옷자락을 꽉 쥐고 꼬리를 너울대는 카라를 안아 든 카라마츠가 시선을 맞추고 싱긋 웃었다

카라마츠의 질문에 손을 번쩍 들어 씩씩하게 끄덕이는 카라에게굿- 보이다!”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카라마츠가 계단을 올랐다

방문을 열자 키메라들과 함께 앉아있던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보며 방긋 웃었다.


카라마츄~, 어서 와~!”

다녀왔다, 형님. 그런데….”

?”

오소마츠의 인사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카라마츠가 카라를 바닥에 내려놓고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발치에서 오소가 으르렁거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오소마츠 앞으로 걸어간 카라마츠가 인상을 찌푸리고 오소마츠 이마에 손을 얹었다.


오소마츠, 어디 아픈가?”

열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손을 거둔 카라마츠가 물었다

흔들흔들 고개를 저은 오소마츠가….” 하고 작게 신음했다.


아까 밥 먹었는데, 체했나 봐….”

점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에 카라마츠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깊어졌다

카라마츠를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얼굴은 창백했고, 오소마츠를 일으키려고 잡은 손은 차가웠다

- 한숨을 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일으켜 소파에 눕히고 배 위에 담요를 꺼내 덮었다.


삼촌이 매실차를 주셨다. 가져올 테니까 얌전히 누워 있어.”

….”

오소마츠를 눕히고 털을 곤두세우고 카라마츠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오소를 지나친 카라마츠가 조급하게 2칸씩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에 던져둔 더플백에서 진한 갈색 음료가 든 페트병을 꺼낸 카라마츠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냄비에 수돗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페트병을 열어 빨간 머그잔에 살짝 따랐다

물이 끓자 조심조심 냄비를 옮겨 머그잔에 뜨거운 물을 담고 수저로 휘휘 젓자 따끈따끈한 매실차가 완성되었다

작은 쟁반에 머그잔을 올리고 계단을 서둘러 올라 방에 도착한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매실차를 내미는 순간, 줄곧 카라마츠를 못마땅한 눈으로 경계하던 오소가 카라마츠의 다리를 콱 물었다

우왓!” 하고 비명을 지르며 중심을 잃은 카라마츠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슬로우모션처럼 쟁반이 기울고, 머그잔이 크게 휘청이며 김이 올라오는 매실차가 오소마츠 쪽으로 쏟아졌다.


, !!!”

매실차가 쏟아진 오른손을 들고 벌떡 일어난 오소마츠가 신음했다

벌게진 손에 오소가 경악한 사이, 카라마츠가 쏜살같이 오소마츠를 들어 올려 계단을 내려갔다

싱크대에서 레버를 오른쪽으로 힘껏 꺾어 찬물을 튼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손을 싱크대에 넣었다.

오소마츠의 하얀 피부와 대조적으로 붉게 붉게 물든 손등에 짙은 눈썹을 팩 찌푸린 카라마츠가하아~.”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싱크대에 떨어지는 찬물에 충분히 손을 대고, 찬물에 적신 수건을 오소마츠 손등에 올려준 카라마츠가 삐적거리며 주방 안으로 들어온 오소를 향해 엄하게 외쳤다.


오소! 큰일 날 뻔했다!”

자기 때문에 오소마츠가 다쳤다는 사실에 놀란 오소가 카라마츠의 호통에 안절부절못하며 귀와 꼬리를 늘어뜨렸다

오소마츠가 괜찮다며 카라마츠를 말려도 오소를 노려보는 카라마츠의 안광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누가 오소마츠에게 다가가는 것이 싫다고 해도, 해도 될 일과 안 되는 일이 있는 거다!”

카라마츠~, 나 괜찮다니까?”

몸을 잔뜩 웅크리고 훌쩍이는 오소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잘게 두드렸다

분노로 높이 치솟은 눈썹을 내리지 않는 카라마츠를 제치고 오소에게 다가간 오소마츠가 오소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오소도 놀랐지~?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말이야~. 괜찮으니까, 울지 마.”

, 큐우우~~!! , 큐우…!!”

, . 잘못한 거 알았으면 됐어~.”

오소마츠 귓가에서 큐큐, 애처롭게 울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오소를 토닥인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눈길을 보냈다

오소마츠의 눈초리에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주방을 나가 거실로 들어갔다

둥둥, 오소를 흔들고 달래며 주방을 도는 오소마츠가 카라마츠 뒤를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

서랍장에서 약 상자를 꺼내 앉아있던 카라마츠가 손짓하자, 오소마츠가 그 앞에 살포시 엉덩이를 내렸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는 오소를 토닥이는 손을 멈추지 않고, 수건으로 식혀두었던 손을 카라마츠에게 내밀었다.

약 상자에서 연고를 꺼내 오소마츠 손등에 바르고 조심스럽게 거즈를 올려 단단히 붙인 카라마츠가 한숨을 쉬며 오소마츠 품에 안긴 오소를 응시했다.


오소…. , 너무 화내서 미안하다.”

, ….”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소가 카라마츠의 사과에 작게 울며 오소마츠의 가슴에 얼굴을 숨겼다

오소를 토닥이는 오소마츠에게도, 축 늘어진 꼬리와 귀를 보고 있는 카라마츠에게도 쓴웃음이 피어났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쏟은 매실차를 닦고 정리를 하는 동안 거실에 모인 키메라들이 잔뜩 풀이 죽은 오소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엄마, , 아야 한 것 같았어!”

오소 형이 무슨 일 저지른 거 아냐?”

낮잠을 자느라 일련의 사건을 보지 못한 키메라들이 던지는 한마디에 오소가 더욱 몸을 작게 웅크렸다

토도의 말에 네 쌍의 눈동자가 오소에게 꽂혔다.


오소 형이 뭐 했어?”

뭘 했는데….”

오소 형아?”

엄마 다친 거, 오소 형 때문이야?”

오소를 둘러싸고 모여 검은 눈동자로 오소를 보는 형제들 앞에 카라가 섰다.


오소가 엄마 앞에서 엄청 바보같이 넘어져서 창피해하는 거다. 그리고 카라마츠가 발을 헛디뎌서 엄마한테 뜨거운 물을 쏟은 바람에 엄마가 손을 다친 거고.”

하아~?! 그 멍청이 개똥마츠 뭐 하는 거야!!”

카라의 말에 이치가 거친 목소리로 가르랑거렸다

쵸로와 쥬시, 토도도 카라마츠가 좀 더 조심해야 했다느니, 바보 같다느니, 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카라 뒤에서 웅크리고 있던 오소가 슬쩍 고개를 들어 제 앞을 지키고 있는 카라를 응시했다.


“…?”

꼬리를 잡아당기는 감각에 몸을 돌린 카라가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오소와 눈이 맞았다

고마워, 카라.” 하고 작게 속삭이는 오소의 목소리는 울음 때문에 낮게 쳐지고 조금 갈라져 있었다

평소와 전혀 다른 오소의 목소리에 숨을 집어삼키고 팔을 들어 빨개진 얼굴을 숨긴 카라가 고개를 저었다.


, 아니다. 이 정도로 감사 인사를 할 필요는 없어….”

….”

카라의 말에 오소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한마음이 되어 카라마츠 욕을 하는 키메라들을 보며 카라가 한숨을 쉬고 오소 옆에 엉덩이를 내렸다.

 

 

 

맛있는 아침 식사를 눈앞에 두고도 오소는 여전히 처진 꼬리를 올리지 않았다

우물우물 작은 입에 겨우겨우 밥을 넣고 먹는 오소의 모습에 오소마츠를 비롯한 육둥이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오소마츠가 오소에게 뭐라 말을 하려고 입술을 뗀 순간, ‘따르릉-’ 하고 투박한 전화벨 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현관과 가장 가까이에 앉아있던 오소마츠가 무릎을 펴고 일어나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오소마츠가 굳은 얼굴로 아직 밥이 남았는데도 거실로 돌아오지 않고 계단을 올라 2층 방으로 들어갔다.


오소마츠 형, 왜 저러지?”

전화, 누구한테서 온 거야?”

글쎄….”

오소마츠 형이 밥을 남기는 걸 보면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잠깐, 보고 오겠다.”

오소마츠가 올라간 층계를 보며 걱정하는 동생들을 둘러본 카라마츠가 몸을 일으켰다

오소가 카라마츠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올리며—.” 하고 작게 울자, 카라마츠가 걱정하지 말라는 얼굴로 빙긋 웃었다

비워진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자리를 바라보는 동생들의 얼굴에는 묘한 색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오소마츠, 무슨 일 있었나? 전화는 누구한테서…,”

데카판.”

닥터? 무슨 일로?”

방 중앙에 멍청히 서서 허공을 응시하는 오소마츠의 팔을 잡아 돌린 카라마츠가 눈을 마주 보고 물었다

눈썹을 늘어뜨린 오소마츠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연구소 수리, 다 됐다고 연락이 와서….”

그건, 축하할 일이군. 그런데?”

그래서…. ‘녀석들을 데려오라고….”

“….”

오소마츠가 말하는녀석들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잘 알고 있는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따라 입을 굳게 다물었다

눈을 아래로 깔고 답을 찾지 못해 시무룩한 모습이 꼭 어제의 오소와 너무나 닮아있었다

힘을 잃고 늘어진 어깨에 손을 올린 카라마츠가 걱정 없다는 듯이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나직이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오소마츠는 어쩌고 싶은가?”

, ….”

카라마츠의 차분한 목소리에 이끌려 오소마츠도 천천히 소리를 냈다

평소와 다른 목소리에는 많은 망설임이 실려 있었다

나름대로 답을 내려는 오소마츠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카라마츠가 귓가를 스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소!?”

?”

카라마츠의 외침에 오소마츠가 고개를 들었다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절망으로 파래진 오소의 얼굴이 들여다보였다

당황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오소에게 손을 뻗었지만, 눈물과 함께 팔을 흔들어 떼어낸 오소가 타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오소!!”

오소!”

황급히 문을 열고 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지만, 오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둘을 맞이한 것은 거실에서 나와 현관에 멍하니 서 있는 동생들이었다.


오소마츠 형! 오소가 밖으로 나갔어!!”

!?”

, 내가 고양이들한테 밥 주려고 문을 연 순간에….”

쵸로마츠의 외침에 오소마츠가 비명을 질렀다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오소마츠 옆으로 다가온 이치마츠가 죽음을 앞에 둔 사람과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순식간에 전신의 피가 역류하는 것처럼 섬뜩하고, 호흡이 가빠지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멍청히 그 자리에 서 있던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부름에 눈을 깜빡였다.


오소마츠!”

,”

운동화도 제대로 신지 않고 현관을 뛰쳐나가려는 오소마츠를 카라마츠가 붙잡았다

오소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눈동자로 카라마츠를 본 오소마츠가 팔을 휘둘렀다.


이거 놔!! 오소가,”

우리가 찾으러 가겠다. 형님은 오소가 돌아올 수도 있으니 집을 지키고 있어 줘.”

!? 나도 같이 나가서,”

저 녀석들을 달래줄 수 있는 건 형님 뿐이다.”

카라마츠가 거실 쪽을 눈짓하며 말했다

카라마츠의 말에 거실로 고개를 돌리자 공포에 질린 얼굴로 모여있는 키메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소가 뛰쳐나가고 육둥이가 모두 패닉에 빠지자 덩달아 키메라들도 영문모를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다

큰 숨을 내쉬며 카라마츠의 말뜻을 알아차린 오소마츠가 가녀린 눈빛으로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 찾아서 데려와 줘….”

, 물론.”

오소마츠의 부탁에 카라마츠가 옅은 미소로 끄덕였다

카라마츠의 뒤를 이어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현관을 뛰어나가는 것을 보며 거실로 돌아온 오소마츠가 한곳에 모여있는 키메라들을 모두 팔에 안았다

저마다 오소마츠를 위로하듯이 처량하게 울기 시작하는 키메라들을 보며 오소마츠가 뜨겁게 눈가를 적시는 눈물을 삼켰다.

 

 

 

 

 

5.

 

엄마가 좋았다.

정말로 너무너무

다정하고 상냥하고

가끔 동생들에게 핀잔을 듣고, 대충대충에 게으를지라도, 오소에겐 둘도 없는 너무나 소중한 엄마였다


처음 만났을 때도 자기들을 괴물이라 말하지 않고 편견 없이 받아준 것이 기뻤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자는 것이 좋았다

꼬옥 안아주는 엄마의 그 따뜻한 품이 너무나 좋았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

형제인 키메라들과는 엄마를 공유해도 상관없었다. 형제니까

그리고 오소는 형제 중에서 가장 으뜸이니까

동생들에게 엄마를 양보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와 똑같은 얼굴을 한 그들. 자신과 형제들처럼 엄마와 함께 태어나 지금까지 곁에 있었던 그들에게는 엄마를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오소에게 오소마츠는육둥이의 장남이기 이전에엄마였다

그래서 그 누구도 오소마츠 옆으로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설마 자기 때문에 오소마츠가 다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내가 나쁜 애라서 엄마가 우리를 다시 돌려보내려는 거야….’

볼을 타고 떨어지는 눈물을 아무리 훔쳐도 멈추지 않았다

흐느끼는 소리조차 죽이고 몸을 웅크린 오소가 서럽게 울었다.

 

 

노을 진 하늘이 서서히 짙은 파랑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본 카라마츠가 초조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소마츠에게 꼭 찾아오겠다고 말했지만, 동생들과 뿔뿔이 흩어져 찾고 있는 지금도 오소의 흔적은 무엇 하나 찾을 수 없었다

데카판의 연구소에서 나와 줄곧 마츠노 가에 있었던 오소가 이 마을의 지리를 알고 있을 리 없었다

그나마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갔다면 다행이지만…. 

키메라인 오소를 다른 사람이 본다면 놀라는 것은 둘째치고 나쁜 마음을 먹고 오소를 데려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 하고 혀를 찬 카라마츠가 다시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땅을 힘차게 차고 뛰며 골목골목, 가로등이 비치지 않는 어두운 구석을 찬찬히 살피며 온 동네를 돌아다니던 카라마츠가 별안간 멈춰섰다


한낮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을 작은 놀이터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어릴 적 동생들과 함께 놀았던 추억의 장소에 멈춘 카라마츠가 눈썹을 찌푸리고 발소리를 죽여 놀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네 옆, 나무 그늘

칠이 다 벗겨진 초라한 벤치 앞에 무릎을 꿇은 카라마츠가 벤치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덜덜 떨고 있는 오소를 발견했다.


여기 있었나….”

엄마에게 혼나고 울며 집을 뛰쳐나간 오소마츠가 항상 향했던 이곳

한 번도 와 본 적 없으면서 오소마츠와 같은 장소에 숨어있는 것이 신기했다

오소를 찾았다는 안도가 섞인 쓴웃음을 흘린 카라마츠가 오소에게 손을 뻗었다

애처롭게 떨고 있던 작은 몸을 들어 올리자 오소가 발버둥 치며 카라마츠를 밀어냈다

절대로 카라마츠에게 안기지 않겠다는 기세로 반항하는 오소를 힘으로 누르고 놓치지 않도록 꼭 껴안은 카라마츠가 오소를 보며 말했다.


진정해라, 오소. 정말로 오소마츠가 너희를 버릴 거로 생각하는 건가?”

카라마츠의 질문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오소가 저항을 멈추고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나를 믿어라, 리를 오소. 오소마츠는 절대 너희를 버리지 않는다.”

끊임없이 눈가를 비벼 눈물을 닦아내 붉게 부어오른 눈가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오소를 쓰다듬은 카라마츠가 놀이터를 나왔다

카라마츠의 말에 어떤 말도 돌려주지 않은 오소는 말없이 카라의 품에 안겨 카라마츠의 걸음걸이에 따라 꼬리를 흔들었다.

 

 

오소!!”

다급히 연구소 문을 열고 들어온 오소마츠가 카라마츠 품에 안긴 오소를 보자마자 큰 한숨과 함께 주저앉았다

힘이 풀려버린 다리에 작게 욕지거리를 던져주고 오소를 가만히 바라본 오소마츠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오소, 이리와.”

, 큐우~~!!!”

오소마츠의 부름에 폴짝 카라마츠의 팔을 발판 삼아 뛰어 내린 오소가 오소마츠의 품에 안겼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걱정했잖아!”

, 큐우—! 큐우—!”

안도하며 속삭이는 오소마츠의 야단에 오소가 일일이 대답하며 오소마츠의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밖에 오래 있어 차게 식은 오소의 몸을 꼬옥 껴안은 오소마츠가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소매로 닦고 카라마츠를 올려다보았다

시선을 맞추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 카라마츠가 데카판을 불렀다.


호에호에. 결정은 내렸나요?”

. 데카판, 이 녀석들 모두- 우리가 키울게.’

“…잘 생각했다요. 실은 저도 그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다요. 이 아이들을 처분하기엔 오소마츠 군이 너무 정이 들었을 테고….”

.”

데카판의 말에 오소마츠가 오소의 얼굴에 볼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데카판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대신 조건이 있다요. 매달, 키메라 전부 정기검진을 하러 와야한다요. 혹시라도 이상증세가 있다면 바로 이곳으로 데려와야 한다요.”

그 정도는 이지 워크다, 닥터-!”

연구소에서 매달 소액의 지원금을 주겠다요. 다만 외출은 해선 안 된다요.”

. 알겠어.”

데카판의 말에 오소마츠가 대답했다

과장되게 어깨를 들었다 놓으며 한숨을 내쉰 데카판이 사람 좋은 미소로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요.”

.”

-.”

데카판의 두꺼운 손을 잡아 위아래로 흔든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힐끗 눈을 돌려 시선을 맞췄다

, 하고 웃는 카라마츠를 따라 오소마츠가 씩- 미소를 피우며 검지로 코 밑을 문질렀다.

 

 

 

오소의 가출 소동이 일어났던 밤. 육둥이가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한 키메라들이 거실에 모여 비밀회의를 시작했다.


아빠는 필요해.”

“““““하아?!?!”””””

, 폭탄을 던지듯 내뱉은 오소의 말에 키메라 전원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크게 외쳤다

곧 오소가-!!” 하고 입을 모아 동생들을 조용히 시킨 후에 말을 이었다.


아빠가 있어야 엄마가 안심할 수 있는 걸 알았어. 나는, 아빠가 생기면 엄마를 뺏길 거로 생각했었는데…. 오늘 일로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어. 엄마는 아빠가 생겨도 우리를 버리지 않아!”

그걸 이제야 깨달은 건가, 브라더~?”

진짜 이제 와서야….”

히힛, 그럼 누가 아빠인데?”

쥬시마츠가 아빠임닷!!”

쥬시 형! 그럴 리 없잖아! 토도마츠가 아빠라구~!”

한심하단 눈으로 오소를 보는 카라와 쵸로에 이어 음산하게 웃은 이치의 질문에 쥬시가 손을 번쩍 들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쥬시마츠를 내세우는 쥬시를 가로막은 토도가 토도마츠를 앞세우는 것을 지켜보던 오소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둘렀다.


쥬시마츠도, 토도마츠도 아냐!”

그럼 쵸로마츠?”

이치마츠야?”

둘 다 아냐!”

오소의 말에 화색이 되어 묻는 쵸로와 이치에게도 고개를 저은 오소가 지그시 카라를 응시했다.


카라마츠.”

.”

아빠는 카라마츠야.”

““““뭐어!?!?!?””””

오소의 선언에 카라를 제외한 모두가 턱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평화를 찾은 마츠노 가. 키메라들을 맡아서 키우게 되었다는 오소마츠의 설명에 마츠요와 마츠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손자가 생겼다며 들떠서 키메라들이 입을 옷을 만들기 시작하는 마츠요를 말려야 하나 고민하는 오소마츠 뒤로 쵸로, 이치, 쥬시, 토도가 서로서로 팔짱을 끼고 벽을 만들었다

오소와 카라를 양쪽에 끼고 울상이 된 카라를 으르렁거리며 죽일 듯이 노려보는 네 키메라를 보며 카라마츠가 황망히 외쳤다.


“Why!?!?!?”

 

 

그 이후, 오소마츠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사라진 오소 덕분에 오소마츠도 전과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동생들이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가도 오소는 화내지 않았고, 다른 키메라들과도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냈다

다만, 단 하나. 쵸로와 이치, 쥬시, 토도의 경계 때문에 카라마츠만이 오소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게 된 것만 빼면 말이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랜만에 단편입니다. 솔직히 요즘 노느라 바빠서 글을 많이 못 썼어요...ㅎ


 * (비상금전쟁에 나왔던) 꽃집 카라마츠와 세라복 오소마츠 이야기입니다.

  카라마츠가 아픈 발언을 하지 않습니다..


 * 6,535자.  오탈자는 추후 수정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마츄~.”

꽃집 안으로 불쑥 얼굴을 내민 오소마츠의 눈동자가 커졌다

포장지로 예쁘게 감싼 큰 화분을 옮기던 카라마츠가 멍청히 저를 바라보는 오소마츠를 향해 빙긋 웃었다.


, 어서 와. 오소마츠.”

어디 가?”

꽃집 앞에 세워둔 작은 밴에 화분을 싣는 카라마츠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르며 오소마츠가 물었다.

이제 막 봄이 다가오려는 하늘은 한없이 푸르고 오소마츠의 허리에서 내려와 흔들리는 치마도 그 푸른빛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약간 길이가 부족한 상의를 감추려 팔을 길게 늘어뜨린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였다.


설마, 이사 가?”

불안한 얼굴로 묻는 오소마츠에게 활짝 웃으며 고개를 저은 카라마츠가 두르고 있는 푸른 앞치마를 벗었다

아카츠카 구에 있는 작은 꽃집, ‘플라워 아카츠카의 문구가 새겨진 앞치마를 팔에 건 카라마츠가 청바지 주머니에서 키를 꺼냈다.


조금 멀리 있는 곳으로 배달을 가게 되어서 말이야. 가게는 잠시 닫아두고 다녀오려고 한다. 하룻밤 자고 와야 할지도 모르고 말이지.”

후응~.”

카라마츠의 설명에 묘한 한숨을 늘인 오소마츠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만면에 올리고 카라마츠에게 팔짱을 걸었다.


나도 갈래!”

.”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 대답하지 못하는 카라마츠를 보며 오소마츠가 멋대로 말을 이었다.


내일은 토요일이고, 학교도 안 가니까 괜찮지? 하룻밤 자고 와도 오케이! 그러니까 나도 갈래!”

오소마츠의 말에 카라마츠가 난감한 웃음을 흘렸다

함께 가고 싶다는 오소마츠의 말은 굉장히 기쁘지만, 순순히 허락할 수는 없었다

오소마츠는 아직 고등학생. 단둘이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은 적잖은 죄책감을 불러오는 일이었다

기대로 눈을 반짝이는 오소마츠에게 쓴웃음을 건넨 카라마츠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오소마츠, 마음은 기쁘지만, 부모님 허락도 없이 멀리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

-, 그럼 부모님 허락받으면 되지?!”

?!”

- 하고 볼을 부풀린 오소마츠가 다시 미소로 얼굴을 돌리고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단축키에 등록된 부모님에게 전화를 건 오소마츠가 열 마디도 하지 않고 통화를 끝냈다.


다녀와도 된대~!”

그렇게 쉽게 허락해도 되는 건가?! 오소마츠의 마미!!”

헤헤, 우리 집은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는 걸~. 내가 한밤중에 취미 생활하러 나가도 뭐라 안 하고.”

하아~.”

생글생글 웃는 오소마츠의 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크게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반짝이는 눈으로 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맞췄다.


마미의 허락이 떨어졌다면 할 수 없지. 차에 타라.”

앗싸~!! !!”

카라마츠의 대답에 방방 뛰며 기쁘게 웃은 오소마츠가 혹여 카라마츠의 마음이 변할까, 서둘러 조수석에 올랐다.

~, 하고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운전석에 올라 반듯하게 개어놓은 앞치마를 뒷좌석에 던졌다

출발~!” 하고 발랄하게 손을 높이 올리는 오소마츠에게 안전벨트부터 해라.” 하고 가벼운 핀잔을 던진 카라마츠가 시동을 걸고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바닷가 마을

창문을 활짝 열고 바다 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는 오소마츠 옆에서 카라마츠가 운전대를 돌렸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구석. 마을에 단 하나 있는 작은 식당.

새로 문을 연 식당에 축하의 마음을 전하는 화분이 트렁크에 처연히 서 있었다.

머리칼을 흩뜨리는 바람에 콧노래를 띄워 보내는 오소마츠를 보며 피식 미소를 흘린 카라마츠가 식당 앞에 차를 멈췄다.


그럼 화분 건네주고 올 테니까 근처를 돌아보고 오겠나?”

~.”

카라마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오소마츠가 가볍게 조수석에서 뛰어내렸다

타박, 하고 땅에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푸른 스커트가 흔들렸다

경쾌하게 발을 굴리며 오소마츠가 바닷가로 향했다.

 

 

철썩철썩, 멈추지 않고 모래사장으로 밀려오는 파도 앞에 오소마츠가 걸음을 멈추었다

짠 내 섞인 바람이 기분 좋게 몸을 감싼다

곧 봄이 다가오는 시기라지만 여전히 바닷바람은 찼다

파도 소리에 맞춰 절로 나오는 콧노래가 오소마츠의 기분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카라마츠와 함께, 단둘이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항상 얼굴을 마주치던 아카츠카 구가 아닌 낯선 바닷가 마을

슬슬 붉은 해가 바다 저편으로 얼굴을 숨기고 있는 것을 보면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 가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카라마츠와 함께 있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매일 학교가 끝나고 카라마츠를 만나러 가도, 함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기 전에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돌려보냈다

어두워지면 위험하다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불량배들을 소탕하는 취미를 가진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의 걱정은 불필요한 것이었지만, 그렇게 카라마츠가 자신을 신경 써 주는 것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붉게 물든 하늘 저편은 서서히 어두운 푸른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곧 완전히 깜깜해진 하늘에 흐드러지게 밝은 별들이 떠오를 것이다.

카라마츠와 함께 무엇을 하며 밤을 보낼까.

여자아이들처럼 밤새 수다를 떠는 것도 좋고, 함께 DVD를 보는 것도 좋다

시시한 코미디쇼를 보며 바보 같이 웃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무엇을 하던 즐거울 것이라는 묘한 확신이 있었다

오늘 묵게 될 숙소는 어딜까. 바다가 보이는 이 멋진 마을의 허름한 민박집도 좋고, 고속도로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작은 호텔도 좋다

같은 방에 묵게 되면 함께 씻자고 꼬셔볼까, 그렇게 짓궂은 생각을 하며 씨익 웃는 오소마츠의 뒤로 발소리가 다가왔다.


오소마츠.”

카라마츠! 일 다 끝났어?”

-. 춥지 않나?”

모래를 헤치고 걸어와 오소마츠 앞에 선 카라마츠가 자연스럽게 손을 올려 오소마츠의 뺨을 감쌌다

오소마츠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오소마츠의 피부는 제법 차게 식어있었다

항상 발간 오소마츠의 볼에서 나오는 냉기에 짙은 눈썹을 찌푸린 카라마츠가 잠시만.” 하고 오소마츠에게 등을 돌리고 차로 뛰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오소마츠에게 걸어오는 카라마츠의 손에 들린 후드 집업을 본 오소마츠의 입가에 밝은 미소가 피어났다

짙은 회색 집업을 오소마츠가 쉽게 입을 수 있게 들어 올린 카라마츠가 .” 하고 웃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오소마츠가 팔을 쑥 집어넣었다

후드에 달린 하얀 털 장식에 두껍고 따뜻한 원단으로 만들어진 후드 집업은 꼭 카라마츠에게 안겨 있는 것 같은 포근함을 선사했다

- 웃으며 고마워~.” 하고 인사하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카라마츠가 잔잔한 바다에 울려 퍼지는 벨 소리에 황급히 스마트폰을 빼 들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카라마츠가 눈썹을 늘어뜨리고 미안, 잠시만 기다려 줘.” 하고 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카라마츠가 준 회색 집업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오소마츠가 타오르듯이 붉은빛을 발하는 하늘에 시선을 고정했다

카라마츠가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 주었던 붉은 색이 하늘에 가득했다

오소마츠에게는 세라복도 어울리지만 붉은 옷이 더 어울린다고, 오소마츠가 사복을 입고 카라마츠에게 놀러 갔을 때 카라마츠가 부드러운 미소로 건넨 말은 오소마츠의 가슴 깊은 곳에 소중히 남겨져 있었다

작게 행복한 한숨을 쉬는 오소마츠의 머리 위를 나는 갈매기 울음소리, 모래사장으로 기어오르려는 파도 소리, 그리고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카라마츠에게서 들려오는 카라마츠의 목소리.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일 관련 전화인 것이 분명했다

파도 소리 사이로 간간이 들려오는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기분 좋게 고막을 울렸다.


오늘은 계속 단둘~.’

바람이 헝클인 머리를 넘기자,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귓불을 간질였다.


오소마츠.”

!”

카라마츠의 부름에 해맑은 웃음을 얼굴 가득 피운 오소마츠가 스커트를 펄럭이며 카라마츠를 향해 모래사장을 뛰었다

붉은 노을을 지고 달려오는 오소마츠는 꼭 노을에 먹힌 것같이 아름다운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오소마츠를 보며 숨을 삼킨 카라마츠가 살며시 쥔 주먹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슬쩍 시선을 아래로 흘렸다

어느새 카라마츠 앞에 도착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이고 의아한 눈으로 카라마츠를 응시했다.


카라마츠?”

이제 돌아가자, 오소마츠.”

어색한 미소로 고개를 든 카라마츠가 내뱉은 말에 오소마츠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카츠카 구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지역에 왔다

곧 해가 완전히 지평선 너머로 숨어버리고 푸른 달이 뜰 시간이다

지금 아카츠카 구로 돌아간다면 밤새 운전을 해야 했다.


? ? 오늘은 자고 간다면서.”

아무리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 역시 외박은 좋지 않다. 그러니까,”

지금 출발하면 밤새워서 운전해야 하는데? 그냥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면 되잖아!”

짜증이 섞이기 시작한 오소마츠의 말투에 카라마츠도 눈썹을 찌푸렸다

철없는 말을 하는 오소마츠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카라마츠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오소마츠는 아직 어리니까.”

또 그거!?”

카라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발을 굴렸다

카라마츠가 항상 내세우는 변명, ‘오소마츠는 어리니까’. 

카라마츠와 더 오래 있고 싶어도, 카라마츠는 항상 그 변명을 앞세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오소마츠가 괜찮다고 말해도 카라마츠의 대답은 NO였다

그것이 너무나 분하고 또 분해서 오소마츠는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 오소마츠. 돌아가자.”

.”

오소마츠.”

나무라듯이 제 이름을 부르는 카라마츠를 흘겨보며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돌아가죠, ...

아저!?”

얼굴을 굳히는 카라마츠를 스쳐 지나간 오소마츠가 성큼성큼 도로변에 세워진 카라마츠의 차를 향해 걸었다.

큰 한숨을 내쉬고 오소마츠의 뒤를 따른 카라마츠가 운전석에 앉아도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조수석 창문을 활짝 열고 뿌루퉁한 얼굴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눈에 담는 오소마츠에게 카라마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카라마츠 역시 조금 더 오소마츠와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짙은 눈썹을 찌푸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카라마츠가 믿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얄팍한 이성

그 누구보다 소중한 오소마츠를, 카라마츠 자신이 함부로 대하게 될까 두려웠다

밤늦게 단둘이 있다면, 카라마츠는 자신의 이성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어른인데도 자신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한심해 오소마츠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도 할 수 없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카라마츠의 근심을 실은 밴은 어둠이 짙게 깔린 고속도로를 한참 동안 달렸다.

 

 

꽃집 앞에 도착해 밴을 세운 카라마츠가 운전석에서 내려 반대편 조수석으로 걸어갔다.

오소마츠가 내릴 수 있도록 조수석 문을 열자 못마땅하단 눈으로 카라마츠를 노려보던 오소마츠가 말없이 발을 내렸다.


오소마츠.”

왜요, 아저씨.”

아직도 화가 나 있는 건가. 하아~, 집까지 바래다주겠다.”

그럴 필요 없는데요. 혼자서 잘 갈 수 있습니다.”

내가 걱정되니까 따라가겠다.”

그러시던지요.”

뚱한 얼굴로 카라마츠보다 앞서 걷기 시작한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거칠게 머리를 헤집었다

- 한숨을 내쉬는 소리에도 오소마츠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갔다.

꽃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오소마츠의 집에 도착하자 겨우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향해 몸을 돌렸다.


다 왔으니까 이제 가보시죠.”

오소마츠. 다음에, 같이 어디 가지 않겠나? 놀이동산이나, 동물원도 괜찮을 것 같군.”

.”

, 은가?”

대답하지 않는 오소마츠를 보며 카라마츠가 멋쩍은 웃음을 띄웠다

안절부절못하며 오소마츠의 대답을 기다리는 카라마츠를 지그시 바라본 오소마츠가 어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도 카라마츠 앞에서는 금방 화가 풀려버리고 만다

자신에게 돌리는 한숨을 다시금 떨어뜨린 오소마츠가 빙긋- 작은 미소를 올렸다.


그럼, 놀이동산! 밤까지 놀아줄 거지? 카라마츠!”

-. 물론!”

헤헤-. 그럼 내일 가자!”

, 내일!?”

!”

알겠다.”

내일까지 가게를 쉴 것을 각오한 카라마츠가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옅게 피어났던 오소마츠의 미소가 카라마츠의 고개가 끄덕이는 것을 보자마자 밝은 태양처럼 환해졌다.


그럼 내일 봐! 카라마츠~!”

.”

현관문 문고리에 손을 올린 오소마츠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저를 지켜보려는 카라마츠에게 눈을 돌리고 씩- 장난스럽게 웃었다.


~라마츄!”

우왓!?”

현관문에서 카라마츠를 향해 펄쩍 뛴 오소마츠가 자연스럽게 펼쳐진 카라마츠의 팔 안으로 파고들었다

단단한 카라마츠의 등에 팔을 두르고 꼬옥-, 있는 힘껏 껴안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잘 자~. 내 꿈 꿔야돼!”

, -. 그럼 오늘밤은 꿈속에서 랑데부로군.”

후핫!”

앞머리를 튕기며 잘난 듯이 내뱉는 카라마츠를 보며 배를 잡고 큭큭거리며 웃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일 봐~.” 하고 손을 흔들던 오소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에 입 맞추어 카라마츠에게 슬쩍 날렸다

방해물 없이 카라마츠에게 닿은 어린 입맞춤에 순식간에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는 카라마츠를 보며 앙큼한 미소를 던진 오소마츠가 재빨리 현관문을 열고 그 안으로 쏙 사라졌다

어두운 주택가에 홀로 남겨진 카라마츠가 잘게 어깨를 들썩이며 골목으로 들어갔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음 단편은 주말에 올릴게요~

+ Recent posts